작성일 : 2018.02.0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아버지의 뜻 카드포인트.예배찬양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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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4:18.....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5: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히브리서 11:27....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말씀이신 창조주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이신 JC, 이땅을 거니시며 인생 사시는 동안, Q말씀을 존귀케 하시며, JC께서 겸손히 성령께 의지하여 날마다 새롭게 배우심 바로 그대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임재안에 거함으로써 아버지의 보이심과 말씀하심 보고 듣는대로 살기를 연습하고 주께서 뜻하신 바를 나를 통해 이루시도록 요청하라..

**찬양 : Q의 모든 은혜를 감사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찬송 드림....인생광야길, 주님 함께 하시는 동행이라면 충분합니다!!

**경배 : 감화-감동-충만-교통하시는 Q, 그 선하시며 인자하심, 진실하신 분의의 임재의 현현, 그앞에 서서 말씀과 영광(성품-능력-이름)을 누림, 감사-사랑으로 자원하여 순복하여 엎드림 

**예배 : Q께서 나의 영광이요 모든 것 되심 인정하며 나를 열어 내어드려 영광의 Q과  이루는 친밀한 하나됨의 교제로 아루는 동행, 곧 찬양과 경배

*선하심 : 뜻과 계획을 마침내 다 이루신 삼위일체Q과 그 백성들이 함께 하는 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즐거움-만족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안식하시는 축제...Q과 교제하여 동행하는 친밀함안에 함께 살며 Q의 어떠하심으로 적셔지고 변화되고 그분의 영광의 통로요 반사경으로서 그분을 세상에 공급하며 반영하고 반사하여 나타내며,  생육-번성-충만-정복하여 다스리라 하신대로 그분의 어떠하심으로 피조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림의 섬김 통해 하나님 생명과 그 은택 넘치도록 공급함 

*인자하심 : 인생광야의 모든 과정마다 손수 동참하사 체휼하시며 안아주시는 사랑, 두렴 없이 Q을 닮아갈 수 있도록 하는 믿음-소망-사랑의 인침, 연단 통해 하나님 닮음 이루심에 있어, JC의 장성하신 분량의 충만함의 성장성숙에 이르도록 하시는 자비-은혜-긍휼의 언약적 사랑 

*진실하심 : Q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Q의 호흡하심)을 전존재의 영광을 걸고 반드시 이루시는 Q의 신실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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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편73:28 (구약 855쪽)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히.토브)이라~"

<서언>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주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주고 싶은 것을 주는 동기이고,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주고 싶은 것을 주기 시작한 수단에 해당하는 것이고,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주고 싶어하는 것을 주는 성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몸부림치며 그토록 주고 싶어하는 것은 행복(=토브, 지고지선의 진복...극락, 곧 기쁨과 즐거움의 최고경지)입니다.

<본론>

1. 행복은 최고의 기쁨 말합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31Q사이에 이루고 계신)), 하나님이 뜻하신 바, 지복직관의 넘치는 사랑/평강/만족/안식의 관계안에 참여하여 누리는, 지고지선의 희락과 즐거움, 솟구쳐 터져나오는 환희의 노래와 춤의 축제/잔치..celebration

  본문에 나오는 '복'(福)은 히브리어로 '토브'(טוב)인데 이는 행복(幸福)이라는 단어로 많이 번역됩니다. 신명기10:13에 "내가 오늘 네 행복(토브)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했는데 여기에서 '행복'으로 번역된 단어가 '토브'입니다. '토브'는 형용사로서 '좋은' '선한' '기뻐하는' 등의 뜻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자신이 계획한 대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심히 좋았더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매일 창조가 끝날 때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창세기1:31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좋았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토브'입니다. 보기에 좋았다는 것은 감상이나 평가의 의미로 좋았다는 것이 아니라 축하와 축제와 잔치의 가장 기쁜 상황을 누림을 말합니다. 영어의 셀러브레이션(celebration)인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기쁘고 좋을 때 브라질 사람들은 '따봉~'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 예~' 호남사람들은 '아따 미쳐불겄구만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분이 가장 좋아서 어쩔 줄 모를 정도로 행복할 때 감탄할 때를 표현한 단어가 '토브'인 것입니다.

  그것은 구속과 관련된 기쁨입니다. 신약 마태복음5:3-12에 보면 예수님이 산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교할 때 8가지 복에 대해 가르쳤는데 복이 있다는 것을 표현할 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복'은 히브리어로 '마카리오스'(μακαριοs)인데 이 단어는 구약의 토브와 같은 뜻으로서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의 마카리오스를 영어성경에서는 해피니스(happiness)가 아니라 블레씽(blessing)으로 번역했습니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블리드(bleed)라는 말에서 왔는데 그 단어는 '피를 흘리다'는 뜻입니다. 영어에서 '복'이라는 단어에 기본적으로 피와 관련한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짐승을 잡아 피로 제사를 드리므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맺고 유지했습니다. 영국인들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이 복 혹은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축복을 할 때 '갇 블레스 유'(God bless you)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행복'이란 예수를 믿어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로마서4:6-8에 "~복(마카리오스)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마카리오스)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마카리오스)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2.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만들고 자유의지를 주어 세상의 모든 구조와 환경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토브를 누리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미혹을 받아 범죄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하나님이 주신 질서와 원리와 환경을 거절했습니다. 육체의 죽음과 삶의 고통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토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은 찾아가 부릅니다. 그럴 의무와 책임이 없지만 자기의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나는 너 없이 못살아' '나는 널 사랑해' '너를 반드시 구원하여 토브(마카리오스)를 누리게 할거야' 하고 여인의 후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보내 주어 그를 통해 구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때가 되매 자기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연약한 육체를 입고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의 대가를 대신 치렀습니다. 대신 고난 당하고 대신 죽었습니다. 그가 자기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는 죄와 그 모든 결과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그 구원받은 기쁨을 생활 가운데 적용시키십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그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합니다.  

3. 행복은 모든 상황을 초월합니다. (행복은 어떤 능력이 있는가?)

  민수기 20장과 신명기 34장에 나오는 내용을 네러티브(narrative)적 요소를 가미하여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학대받는 애굽에서 구원하여 젖과 굴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광야를 지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모세를 통해 광야에서 40년을 통과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힘들 때마다 모세를 원망하고 대적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거의 다 이르렀을 때 가데스 바네아(Kadesh-barnea)에서 또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그들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확신에 찬 모습으로 지팡이로 반석을 쳤습니다. 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놓고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는데 지팡이로 쳤다고 책망했습니다. 더욱이 화를 내면서 물을 내서 하나님의 의를 상실했다고 책망했습니다. 그 죄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측은했으나 위로할 수 없을 정도로 어깨가 쳐져 있었습니다. 모세는 아무 말도 없이 가나안 땅이 보이는 느보(Nebo)산으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어깨에 손을 대고 '모세야 힘드냐. 분하냐. 억울하냐'고 물었습니다. 모세는 '아닙니다. 저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으로 만족합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힘든 상황들이 연속되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이 행복했습니다. 저에게는 지나온 동안 하나님이 함께 한 그 광야가 가나안이었습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과 고린도후서 11장과 빌립보서 1장에 나오는 내용을 각색하면 이렇습니다. 바울은 유대교 신봉자로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닌 거짓선지자로 알고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여 결박하고 감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Damascus)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빛이 너무 강렬해 그 앞에 엎드러져서 고개를 들거나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바울아 어찌 니가 나를 핍박하느냐'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바울은 그 자리에서 회심을 하고 세계 각처로 복음을 전하러 다닙니다. 사역을 하는 동안 먹을 것이 없었고 입을 것도 부족했고 편히 잠잘 곳도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과 로마 정권의 박해로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사람들이 죽었다고 성 밖에 버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로마로 호송되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동역자들도 다 떠난 뒤였고 돈은 다 떨어졌고 몸은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사하고 재판의 결과가 사형이 내려질지도 모르는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주님이 '바울아 힘드냐. 억울하냐. 후회되냐'라고 물었습니다. 바울은 '주님 아닙니다.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택하여 구원해준 것, 나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소명과 기회주신 것,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해주어 복음의 열매 맺게 해 준 것으로 감사했습니다. 힘들긴 했지만 주님이 함께 해주시므로 주님을 위해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이제 죽는 것이 주님의 복음 사역에 유익이 된다면 그 또한 최고로 행복한 일입니다."고 했습니다.   

<결언>

  시편 23편은 우리가 잘 알고 외우고 다니는 성경입니다. 우리 찬송으로 불러봅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23:6에 "내 평생에 선하심(토브)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73:28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토브)~"고 했습니다. 행복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행복의 매뉴얼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행복이 적용되고 성경 말씀대로 살 때 그 행복이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 2015/10/20  2015/10/20 제 22강 셀 수 없는 큰 무리(7:9-17)..이석봉  

1.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존재와 그 특징(9-14절)

1)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무엇을 의미인가?

  9)a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d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c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b큰 무리가 f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e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존재와 특징(7:9~17절)

9~17절에서는 1~8절의 십사만 사천에 대한 기록과 다소 대조 정황이 전개된다. 1~8절에서는 땅에서 전투하는 교회공동체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9~17절에서는 하늘 성전에서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영적 전투와는 상관없이 안식을 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9절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소개하고 15~17절에서는 그 큰 무리가 하늘에서 누리는 축복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일 후에’는 ‘이 후에’로 번역해야 한다. 이는 또한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 순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셀 수 없는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라는 것을 보여 준다(참조 창 13:16; 창 15:5; 창 32:12; 대상 27:13; 왕상 3:8).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신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창 1:28)”가 답이다. 아브라함에게도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 13:16)”의 연장이다. 그리고 이것은 144,000의 상징의 수와 함께 연결되는 말씀이다.

2)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외침 내용이 무엇인가?

10)a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b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원을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9절과 관련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승리의 이유를 구원이란 이름으로 하나님과 어린양께 돌려 드린다.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외침은 어린 양 예수가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이다. ((광대하신 하나님, 십자가보혈의 구속은 모든 인류가 대상...복음으로 그 사랑을 보이시고 의지적 선택을 기다리신다)) 

3) 천상의 존재들이 경배와 찬양한 내용은 무엇인가?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11절 12절의 찬양은 4:11절에서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십사 장로), 5:12절에서 ‘찬송과 영광과 존귀와 능력’(모든 만물)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병행적 관계에 의해서 역시 4-5장에서 어린양을 통해 성취된 하나님이 구속 계획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 가운데 구현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4)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어디서 왔는가?  
13)a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b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a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b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c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5:5절에서 언급한 ‘장로 중의 하나’와 동일한 표현이다. 이 장로는 이십사 장로들 가운데 한 명을 가리킨다. 5:5절에서는 울고 있는 요한에게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했는데 여기서도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라고 물음으로써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앞에서 흰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이 누구를 상징하는지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은 자들이다. 어린 양의 피로 씻어 희게 하였다고 한 것은 이들의 승리에는 어린양의 희생 제사의 피로 말미암은 구속의 사건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9). 환난에서도 예수님의 피를 믿으며 승리한 자들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라고 하였다.
2.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늘에서 누리는 축복들(15-17절) =지고지선의 진복
1) 셀 수 없는 큰 무리인 흰옷 입은 자들이 누리는 복이 무엇인가?
15)a “그러므로 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b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c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 그의 성전에서 그들 위에 장막을 치는 복이다(7:15). 
 ‘장막(σκῆνος)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묘사하는 요 1:14에서 한 번 사용되었고 오직 본서에서만 나타난다(계 7:14; 12:12; 13:6; 21: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장막을 ’그들 위에‘ 치심으로 당신께서 직접 흰 옷 입은 이들과 함께 그 장막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신다. 그래서 요한은 계 21:3에서 ’보라 하나님이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서서‘라고 언급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구약의 오랜 약속의 완전한 성취이다(겔 37:27; 슥 2:10). 
(2) 다시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고 해도 받지 않는다. (7:16). 
16)a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b목마르지도 아니하고 c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위 본문 말씀은 이사야 49:10절을 배경으로 주어진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사 49:10). 
이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할 것을 약속하는 문맥에서 주어진다. 바벨론 포로귀환 사건은 이사야에서 역사적 출애굽을 배경으로 ‘새 출애굽’이라는 모티브로 구성된다. 곧, 위에서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와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이다‘라는 표현들은 광야 여행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광야 여행은 이미 역사젂 출애굽 사건에서 이스라엘이 경험한 바 있다. 새 출애굽’의 사상을 하늘에 존재하는 ‘큰 무리’에게 적용하려는 것이다. 
(3) 어린 양은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은 눈물을 씻어주신다(7:17).   
17)a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b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c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17절은 다시 새 출애굽 사건을 전망하는 말씀을 배경으로 주어진다(사 49:10; 25:8; 겔 34:23). 어린 양이 목자가 되시는 것(17; 겔 34:23),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는 것(17; 사 49:10), 저희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는 것(17; 사 25:8)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 모든 것들이 새 출애굽 모티브(motive)와 관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해로 인한 고난과 눈물의 세월을 아름다움과 평안과 안식과 목마름이 없는 천상의 생활로 보상하신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역사의 진노의 큰 날에 누가 능히 서리요((6:17) 이에 대답은 7:10절에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7:16~17절에서 성도의 모든 눈물을 씻어주신다. 심판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의 성취를 보여준다. 결국 인간이 기초한 것 중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흔틀리고 무너지고 떨어진다. 하나님만이 대주제이시며 영원하시다. 그리고 역사의 Key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질문
1. 천상의 존재들이 경배와 찬양한 내용이 무엇인가?
2.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3. 흰옷 입은 자들이 누리는 복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 이루시려 하나님이 손수 이루어 가시는 선교Missio Dei에 대한 선교적 회심 통해 (날마다 더 깊이 하나님의 속내/속사정을 알아드리는 친밀함 안에서 오직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성숙함...무능한 종!!......오직, 성령의 감동안에서 이해-공감-배려하고 함께 참여하고<있으라 하신 곳에서!! 즐거워 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섬기며 나누며 베푸는 사랑=온유/겸손의 삶--생명의 은사)
>>2011.03.05 십일조의 복음주의적 해석은 무엇인가?  
=십일조의 율법주의적인 해석과 복음주의적인 해석   =이석봉      
오늘의 한국교회는 십일조 신앙에 있어서 아직 건재합니다. 그러나 서구신학을 여과없이 받아들인 일부 목회자들에 의해서 상당한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십일조를 반대하시는 분들은 십일조가 율법이니 폐지해야 한다고 그 이유를 줄줄이 열거를 합니다.  
필자는 그 분들이 열심은 있는데 헛된 열심을 내고 있구나 생각을 하면서 딱한 심정이 듭니다. 그들은 십일조가 율법이니까 폐지하여야 옳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해 무지한 소치입니다. 그냥 겉할키식으로 표현을 할 뿐입니다. 필자는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십일조의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겠다는 심정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모세를 통하여 주신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을 율법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구약을 통상적으로 율법이라고 합니다. 구약은 모세 오경을 기준으로 주신 말씀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의 생활양식입니다.    
율법의 의도는  몽학선생(파이다고고스)으로서 죄를 깨닫게 하여 악을 멀리하고 하나님 중심의 예배와 행함으로 살라는 명령입니다. 한 마디로 죄에서 자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주신 계명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런 본래적인 의도를 벗어나 율법에다 새로운 규율들을 만들고 또 만들어서 사람을 올가메어 죄짐을 무겁게 하여 죄에 더욱 눌려서 부자유하게 하였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런 율법과 규율의 무거운 짐에서 자유하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으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 사망과 죄책의 값을 십자가에서 청산하게 하시고 이를 믿는 자에게 의롭다 칭의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의 정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하여 의롭게 됨과 동시에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율법은 십자가에서 폐지가 된 것입니다.   
율법이 폐지가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율법 전체가 없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정죄하는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율법이 어떻게 폐지되었는가 하는 것은 요한복음 8장에 나타나는 바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의 사건에서 확연하게 들어나고 있습니다. 본래 율법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돌로 쳐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아온 여인을 두고 "모세는 율법에 돌로 치라"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겠는가? 질문한 것입니다. 
주님의 답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죄 없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고 모두 사라졌을 때 주님은 여인에게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과 복음을 극명하게 들어내신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으로 주었는데 사람들이 정죄하는 기능으로 사용하여 죽이는데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죄를 깨닫게 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정죄하는 율법으로서의 기능은 폐지하셨지만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으로서의 율법은 유효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율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율법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며 율법을 죽이는 율법되게 하지 말고 율법을 살리는 복음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완성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 율법의 완성을 위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구속사적 율법의 최종 완성은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율법이 율법 되게 하느냐? 복음 되게 하느냐? 바리새인들은 율법이 사람을 죽이는 율법이 되게 만들었지만 예수님은 율법이 사람을 살리는 율법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 사람을 살리게 하는 율법이 복음인 것입니다.   
십일조를 구약 율법이니 폐지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마치 바리새들의 율법 적용과 같은 것입니다. 왜? 십일조를 사람을 억압하고 옥죄는 율법으로 만드는 것입니까? 왜? 십일조를 자유하는 복음으로 보는 눈이 닫혀져버린 것입니까?  왜? 십일조를 바리새인의 눈으로 보십니까? 왜? 예수님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십니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을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 23:23)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주님은 십일조도 행해야 하고 의와 인과 신도 행해야 한다고 하질 않습니까? 어디에 십일조는 율법이니까 하지 말고 의와 인과 신은 율법이 아니니까 이것만 행하여야 한다고 했습니까?   
율법과 복음을 흑백논리로 설명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율법주의자인 너희가 율법적으로 십일조는 행하면서 율법에서 가르치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둘 다 행하라고 하신 것 아닙니까?   
누구든지  십일조 반대 운동에 앞장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십일조 신앙은 귀한 신앙입니다. 서구신학 따라가면 안됩니다.   
서구신학이 무엇입니까? 이성철학과 자율주의, 심리분석학, 정신분석학에 따른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 아닙니까? 십일조를 율법이라고 몰아붙이면 않됩니다. 그것은 이성주의자들이 하는 이론입니다.   
주님은 율법을 온전케 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율법이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려는 것은 반대하셨지만(요 8:1-11),  율법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찬성하신 것입니다(마 23:23).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십일조를 구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물질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바른 신앙입니다. 물론 십일조는 자원하여 드릴 때 바른 십일조가 될 것입니다. 
복음 정신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으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율법주의적인 사고가 아닌 복음 안에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정죄에서 구원받고 칭의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물질과 몸으로 헌신하는 것은 개혁주의의 바른 신앙입니다. 물질 헌신의 기초가 바로 십일조 신앙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칭의된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율법이라고 정죄하고 드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악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대상이 하나님이시고 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가지고 따지면서 불응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에 인색한 궁리를 표출하는 것은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것으로 타락하고 잘못된 신앙구조입니다. 복음적인 신앙으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아름답고 복된 일입니다. 자꾸 십일조를 율법주의 안에서 해석하니까 문제가 일어납니다.   
참된 성경 해석이 무엇입니까? 율법주의가 무엇이고 복음주의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드리는 자세가 문제인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자세에 따라 율법주의가 있고 복음주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주의적인 십일조는,  십일조를 드려 창고가 차고 넘치게 부자가 되겠다는 보상적 차원에서 드리는 것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 목적이 내가 땅에서 물질적인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복음주의적인 십일조는,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차원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차원에서 드리기 때문에 올바른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보상적 관계에서 드리지만, 복음주의는 헌신적 관계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Reference] : 다니, 「설교 -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이석봉 목사)」 http://lovebible.co.kr/xe/?document_srl=3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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