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8.11.08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현대선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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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선교의 흐름과 동향-미전도종족선교를 중심으로(1)...2015.04.20[코람데오닷컴]


Ⅰ. 들어가는 말

▲ 손승호 목사 육도교회 담임목사 전 태국 선교사(KPM & OMF 소속)KPM 선교훈련원장 역임


“현대선교의 흐름과 동향”이라는 주제로 총회세계선교후원교회협의회가 주관하는 선교포럼을 준비하면서 필자의 마음에 질문하고 싶은 것은 ‘이 세대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분명하게 인도하시는 선교의 방향이란 있는 것일까?’라는 것이었다. 각 시대 혹은 세대를 향한 선교의 방향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된 것이 아닌 이상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할 만한 이 시대를 향한 세계선교의 방향은 이렇다고 성경적 권위를 가지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교역사와 선교학의 발전 과정을 통하여 세계복음화를 앞당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도하신 뚜렷한 자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세계선교를 이끌어 가실 때 각 시대마다 선구적인 역할을 한 소수의 선각자들을 통하여 선교의 방향을 인도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선교운동을 이끌었던 핵심지도자들은 하나님과 깊이 동행하면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장 고동을 느끼고,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비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이다.2) 

필자는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개신교 현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 1761-1834)이후 현재까지 전개된 세계선교의 중요한 흐름을 살펴보고 앞으로 한국교회 선교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윌리암 케리가 1793년 인도에 들어가 선교하기 전에도 해외선교를 감당한 개신교 그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풀러선교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폴 피어슨은 윌리암 케리 이전에 개신교 선교운동의 모체가 되었던 네 가지 선교운동을 언급하였다. 그것은 청교도운동, 경건주의운동, 모라비안운동 그리고 18세기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이다.3)

경건주의운동의 선구자는 필립 스페너(Philip Jacob Spener/1631-1705)이며 그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은 어거스트 프랑케(August Hermann Franke/1663-1727)이다.4) 

모라비안교회는 기독교역사 가운데 가장 창의적이며 열정적인 선교운동을 이끈 그룹이다.5) 보헤미아에서 살던 모라비안들은 1722년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개신교 탄압을 피해, 독일의 드레스덴의 니콜라우스 진젠도르프 (Nikolaus Ludwig von Zinzendorf, 1700-1760)백작의 영지로 이주하였다.6) 모라비안들은 1732년 최초의 선교사를 서인도제도에 파송하였다. 윌리암 케리보다 60년이나 앞선 시점이었다. 그들은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을 전도하기 위해 노예가 되었고, 감옥에 갇혀서도 전도하였다. 선교사와 가족 절반이 병으로 죽었다. 1760년 진젠도르프가 죽을 때까지 모라비안 공동체는 226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하였다.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은 개신교선교의 기폭제가 되었다.7)

영국의 시골 구두 수선공 출신으로 무명의 농촌 목사였던 윌리암 케리를 ‘개신교 현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1792년 10월 2일 영국 최초의 선교단체가 된 침례교선교회(The Baptist Missionary Society)의 창립회의 석상에서 발표한 “이방인의 개종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방법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관한 연구(An Enquiry into the Obligations of Christians to Use Means for the Conversion of the Heathens”8)라는 긴 제목의 소책자가 개신교 선교에 관한 첫 번째 연구 논문이면서 최초의 선언서였기 때문이다. 

케리가 펴낸 ‘인콰이어리’의 분량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영어책으로 계산하면 38페이지에 불과하다. 서론을 제외하고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주님께서 주신 지상대명령에 관한 연구, 이방인의 개종을 위한 과거의 역사 회고, 각 대륙별 현대의 세계 상황 조사(나라이름과 면적, 인구, 종교)와 분석, 이방인의 개종을 위해 과거보다 더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 세계복음화를 위한 방법과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대한 연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9) 18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하이퍼 칼빈주의(Hyper Calvinism)10)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는 일은 인간의 노력보다는 하나님의 예정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11) 윌리암 케리가 속해 있었던 침례교회 내에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인간의 복음전파, 특히 해외선교를 무시하던 분위기 속에서12) 시골의 무명 목사가 수준 높은 세계선교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것에 대하여 제3세계 선교학계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조동진 박사는 케리의 논문을 “인콰이어리는 선교전략의 제시와 함께 실천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대헌장이라고 할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이다”라고 평가하였다.13)


Ⅱ. 윌리암 케리 이후 세계선교의 두 가지 특징

윌리암 케리 이후 근대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 후 세계선교는 거의 국가단위 중심의 선교였음과 동시에 추수이론에 따른 선교전략 이었다.

첫 번째는 국가단위 중심의 선교였다. 

국가란 정치적 정체단위로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主權)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이며 국민, 영토, 주권의 삼 요소를 필요로 한다. 윌리암 케리가 선교하던 때는 식민주의14) 시대 기간에 속하였다. 데이비드 보쉬는 한스 큉이 기독교 전체 역사를 여섯 개의 주된 패러다임으로 세분화 한 것을 소개하였다.15) 원래 패러다임이란 물리학자이며 과학 역사가인 토머스 쿤16)이 사회과학은 배제하고 자연과학에 제한하여 사용하였던 개념이다. 

조동진 박사는 1세기 이후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선교의 패러다임을 여섯 단계17)로 나누는 가운데 1750년부터 1960년에 이르는 기간을 식민주의 시대의 선교 패러다임(The Paradigm of Mission in Colonial Age)으로 분류하였다. 식민통치는 대상지역을 정치적 정체단위로 구분하므로 서구인들의 개념 속에 타문화권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정치적 국가 단위로 자리를 잡으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선교개념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런 국가단위 중심의 선교는 제국주의적 식민통치 기간 동안을 거치면서 윌리암 케리 이후 거의 150년 이상을 개신교회들 가운데서 지속되어져 왔다. 세계2차대전이 종식되면서 점차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게 되지만 서구 국가들이 만들어 놓은 정치적 국가의 경계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어졌고 선교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둘째는 윌리암 케리 이후 세계선교의 특징은 도날드 맥가브란의 추수신학(秋收神學, Theology of Harvest)에 따른 선교였다. 

추수신학은 ‘복음전도가 어떤 사람들 가운데서는 열매가 있으나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는 그렇지 못한가?’라고 질문한다. 추수신학은 복음이 모든 인간들에게 동일하게 선포될 때, 모두가 동일하게 수용하는 것은 아님을 인식하고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복음을 전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자는 것을 주장한다. 이는 선교의 우선순위를 복음을 듣는 청중의 반응에 따라 정함으로써 교회의 외적성장에 더 초점을 두는 선교전략에 사용되었다. 그 결과 이미 복음이 들어간 곳에 대부분의 선교사가 배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18)


Ⅲ. 개신교선교의 현대 선교운동 세 시대 이론19)

랄프 윈터(Ralph Winter, 1924-2009) 박사20)는 근대 개신교선교의 역사를 3구분하여 70년을 주기로 새로운 선교의 물결이 일어났다고 주장하였다.

첫 번째 시대는 해안선지역 중심의 선교시대 이다. 이 시대의 선교는 식민 세력들이 세운 연안의 여러 무역 도시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선교회들은 ‘해안선’에 집중하여 선교를 시행하였다. 이 시기는 1790년대 윌리암 케리를 필두로 1860년대 중국내지선교회(CIM: China Inland Mission)를 창립한 허드슨 테일러가 나타날 때까지의 기간을 일컫는다. 윌리암 케리 이후 25년 동안 미국과 유럽에는 10여 개의 선교회가 결성되었다. 이 시대의 선교사들은 온갖 고난과 질병과 죽음에 직면하면서도 해외선교를 감당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음을 알고도 계속해서 나갔다. 첫 번째 시대 처음 60년 동안 아프리카로 파송된 선교사 중에는 2년 이상 살아남았던 사람이 거의 없었다. 20명이 파송되었다면 19명은 선교지 도착 후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오늘날 해외선교지에 이러한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면 누가 과연 선교사로 헌신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시대 선교사들의 헌신을 생각하면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만들며 겸허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두 번째 시대는 1865년에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1832-1905)에 의해 주도된 내지선교의 시대이다. 그는 1865년 중국내지(內地)선교회(CIM: China Inland Mission)를 시작하였지만 1854년 중국복음화협회(China Evangelization Society)소속으로 중국에 도착하였다.21) 대부분의 서양선교사들이 중국대륙의 해안선을 중심으로 사역할 때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내륙 지방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사람들은 “해안선 지역에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데 왜 내륙지방으로 가는가? 중국 내지로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젊은 선교사들을 사지(死地)로 내몰아 죽게 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하나님은 그의 시선이 세계에서 가장 복음이 미치지 못한 사람들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높이 들어 사용하셨다. 그가 신앙선교회(faith mission)인 중국내지선교회를 조직한 이후 영향을 받아 직간접적으로 생겨난 새로운 선교기관은 40개 이상이 되었다.22) 두 번째 시대 동안 하나님은 해외선교를 위한 학생자원운동(SVM: 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을 1886년 일으키시고 1940년까지 적어도 20,500명의 선교사가 북미와 유럽으로부터 여러 선교지로 나가게 하셨다.23) 첫 번째 시대와 달리 대학교육을 받은 많은 신참선교사들이 많은 실수들을 했지만 1925년 무렵에 와서야 제대로 된 선교의 열매를 볼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양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1945년 세계2차대전 후 전 세계 식민조직이 와해되었다.24)

세 번째 시대는 캐머런 타운센드(William Cameron Townsend, 1896-1982)와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 1897-1990)에 의하여 시도된 사회계급 및 언어적인 집단을 나타내는 종족선교 패러다임 방식이 시작되었다. 캐머런 타운센드는 남미의 과테말라에 가서 과거 방식으로 원주민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된 성경을 나누어주었다. 한 인디언이 “당신의 하나님이 그렇게 똑똑하다면, 왜 우리 말을 할 줄 모릅니까?”라고 물었을 때 스페인어로는 과테말라 모든 사람들을 복음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그들의 언어로 전도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1934년 위클리프성경번역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를 발족하게 되었다. 캐머런 타운센드가 성경번역선교회를 시작할 그 시기에 도날드 맥가브란은 ‘동질집단’(homogeneous unit)이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말로는 ‘종족집단’(people group)을 발견하였다. 도날드 맥가브란은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하여 이미 복음이 파고 들어간 집단 내에서는 교회성장운동(church growth movement)을 일으켰고,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집단에서는 전방개척선교운동(frontier mission)을 일으켰다. 세 번째 시대에도 많은 새로운 선교기관이 새롭게 생겨났고, 아직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던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s)으로 선교의 초점이 맞추어지기 시작하였다.25)

미전도종족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며 토착교회가 없는 종족을 말한다. 1982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세계선교를 위한 로잔 위원회를 통해 미전도종족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정립하였다. “자신의 종족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믿는 그리스도인의 자생적인 공동체가 없는 종족집단(a people group within which there is no indigenous community of believing Christians able to evangelize this people group)”. 이와 유사한 개념을 가진 용어들은 미복음화종족(the unevangelized),잃어버린 자(the lost), 이교도(heathen), 숨겨진 종족(hidden peoples) 등이 있다. 랄프 윈터는 1974년7월 스위스에서 열린 로잔세계복음전도대회(Lausanne Congress on World Evangelism) 때 “최고의 우선순위-타문화간 복음전도”(The Highest Priority-Cross Cultural Evangelism)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그는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어느 그리스도인과도 문화적으로 인접해 있지 않은 미전도종족선교의 당위성을 발표하여 이로 인해 세계선교의 패러다임이 미전도종족선교로 방향이 바뀌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미전도종족의 전도라는 혁신적 사고는 선교의 개념과 전략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 후 선교전문가들은 ‘이제는 국가 또는 지역 개념에서 벗어나서 미전도종족이 존재하는 모든 세계와 문화 양식 등을 선교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미전도종족집단의 수는 정의의 범주에 따라 숫자가 다르지만 랄프 윈터는 로잔세계복음전도대회에서16,750개가 있다고 주장하였다.26) 세계선교학계에서는 12,000 종족설로 의견을 절충하고 있지만 미전도종족집단의 현황에 대해서는 각기 상이한 주장들이 있어 각종 통계들을 살펴보면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하다.27)

개신교선교의 현대 선교운동 세 시대 이론을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28)


Ⅳ. 세계복음화의 성경적 개념 이해

세계복음화란 전 세계의 73억 인구29)가 한 명도 빠짐없이 구원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 말씀30) 등을 근거로 이 견해가 주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으나 성경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은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31). 

그렇다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세계복음화의 목표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세계복음화를 명령하신 주님의 지상대명령을 상고해 보기로 하자. 지상대명령을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주께서는 독특한 용어를 사용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panta ta ethne)32)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말씀하시고 마태복음 24:14절에서는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pasin tois ethnesin) 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고 하신다. 누가복음24:47절에서는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panta ta ethne)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라고 하신다.33)

이런 구절들에서 주님은 이 세상 사람들의 단위를 우리말로는 “족속”, “민족”, 혹은 “나라”등으로 표현되어있지만 헬라어로는 한 단어인 ethnos를 사용하며 말씀하고 있다. 이 단어는 오늘날 영어의ethnic34) 이라는 단어가 유래되어진 단어인데 인종언어학적인 종족 그룹(ethno-linguistic people group)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로 보건데 예수님께서는 세계복음화의 명령을 주실 때 전 세계의 사람 한사람 개개인을 지칭하시기보다 모든 종족에게 각 종족단위로 복음이 전달되어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복음화의 궁극적 목표는 전 세계 모든 인구 개개인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딤전2:4)이지만 현실적인 목표는 각 종족 단위(ethnos)마다 빠짐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되어야할 것이다.


Ⅴ. 미전도종족 개념의 발전과 세계 및 한국교회

미전도종족선교운동 평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전도종족의 개념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핵심 리더는 캐머런 타운센드와 도날드 맥가브란 두 사람이다. 캐머런 타운센드는 선교역사상 그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복음에 소외된 세계에 흩어져 있는 부족민들에게 주의를 돌리게 하였다. 그는 처음에 전 세계에 약 500개의 미전도부족집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후에는 미전도부족집단이 1,000개, 2,000개 그리고 5,000개에 육박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1917년부터 남미의 과테말라에서 사역하다가 1934년 자신의 선교기관인 위클리프성경번역선교회를 발족하였고, 오늘날은 수천명의 선교사들이 그 선교단체 안에서 사역하고 있다.35) 성경번역선교회는 전 세계에 6,918개의 언어가 있으며 아직까지 성경번역이 필요한 언어는 1,919개에 이르며 2025년까지 성경번역이 필요한 모든 언어로 성경번역이 시작되는 것을 목표로 비전 2025를 향하여 야심차게 나아가고 있다. 현재는 평균 5일마다 새로운 성경번역이 시작되고 있다.36)

도날드 맥가브란은 우리에게 ‘교회성장운동의 아버지’(the Father of Church Growth Movement)로 알려져 있으나 그는 선교사인 조부모와 부모를 가진 3대째 선교사였다. 그는 1897년 인도 다모(Damoh)에서 태어나 1923년부터 1954년까지 32년 동안 인도선교사로 헌신하였다. 그의 나이 60세가 되던 해인 1958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신학교교수가 되어 교회성장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교회성장 학자로서 맥가브란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5년 파사데나(Pasadena)의 풀러신학교 선교학과(the School of World Mission)의 초대 학장으로 초빙되면서부터였다. 1954년에 출간된 맥가브란의 책 「하나님의 교량들」(The Bridges of God)은 교회성장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으며, 1970년에 출판된 그의「교회성장이해」(Understanding Church Growth)란 책을 통하여 교회성장운동에 본격적인 불을 붙였다. 맥가브란은 67세 되던 해인 1965년부터 1981년 84세의 나이까지 풀러신학교에서 가르쳤고, 은퇴한 후에도 1990년 그가 죽기까지 활발한 저술, 연구, 여행, 강연 계획들로 꽉 찬 왕성한 생애를 살았다.37)

캐머런 타운센드와 같은 시기에 도날드 맥가브란은 인도의 사회적 장벽 때문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동질집단’(homogeneous unit)이라고 부르는 오늘날로 말하면 ‘종족집단’(people group)을 발견하였다. 선교적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하여 종족 중심으로 접근하면 ‘하나님의 다리’(Bridge of God)가 마련되어 그 종족 집단에 전략적인 복음전도와 교회개척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그는 이미 복음이 전파된 집단 내에서는 교회성장운동(church growth movement)을 통해 교회를 확장하는데 이바지했고,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종족집단에는 ‘전방개척선교운동’(frontier mission movement)을 통하여 하나님나라 확장에 헌신하였다.38)

캐머런 타운센드와 도날드 맥가브란의 미전도종족 개념은 랄프 윈터가 1974년 7월 로잔세계복음전도대회에서 미전도종족선교를 강조하기까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로잔세계복음전도대회는 조직적인 권력구조를 가지지 않고 하나의 운동으로 출발하였다. 운동이란 견고한 조직을 가지고 결속력이나 구속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의 방향을 제시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1차 로잔세계복음전도대회는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27억의 사람들에 대한 선교의 과제를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39) 그 이후 복음주의자들이 중심이 된 선교대회나 선교전략회의 등에서는 미전도종족선교라는 주제가 중요 이슈로 부상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 6월 16-27일까지 태국 파타야에서 전 세계에서 온 8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세계복음화대회(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를 열었다. 주제는 ‘그들은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How shall they hear?)라는 슬로건을 걸고 아직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 지구상의 많은 영혼들에 대하여 책임감을 통감하였다.40) 이 모임에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는 미전도종족을 포함시키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해 10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에딘버러에서 모인 세계전방개척선교대회(World Consultation on Frontier Missions)에서는 지난 6월 태국 파타야에서의 모임보다 범위를 더 좁혀 아직도 교회가 개척되지 않은 미전도종족 복음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모임의 주제는 ‘2000년까지 모든 종족에 하나의 교회’(A Church for Every People by the Year 2000)라고 정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전 세계가 서로 협력하기 위하여 지역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서로 기도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각 단체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전도종족에 대한 자료들을 나눈 것이었다. 그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월드비전의 MARC출판사가 발행한 미전도종족 목록, Gospel Recording 단체가 보유한 광대한 종족 파일(Peoples file), 위클리프성경번역선교회가 제공한 ‘에스노로그’(Ethnologue)41) 등 수천 쪽의 분량에 해당하는 자료들을 서로 공유하였다.42) 이대회는 랄프 윈터의 리더십 하에 열린 것으로 미전도종족 선교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전도종족 입양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바로 1980년 에딘버러에서 모인 세계전방개척 선교대회 때였다. 그러나 미전도종족선교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조직화된 것은 1995년 5월 17-26일까지 서울에서 모인 세계복음화대회(Glob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 GCOWE ’95)이다. 그 대회의 주제는 ‘2000년까지 모든 종족을 위하여 한 교회, 모든 개인을 위한 복음’(A church for every people and the gospel for every person by AD2000)이었다. 이러한 원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전 세계의 약60만개의 교회가 국가와 인종과 교파를 초월하여 서로 협력할 것을 다짐하였다.43)

1970년대 이후 전 세계 선교의 패러다임이 미전도종족 선교 중심으로 옮겨감에 따라 한국교회 선교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1993년 3월 미전도종족 선교를 표방한 연합체 ‘한국미전도종족입양운동본부’(Korean Center for Adopt-A-People, 이하 AAP)라는 ‘운동’성격으로 시작되었다. 선교의 후발주자인 한국교회 선교도 드디어 국가 단위의 선교 개념에서 미전도종족 중심의 전략적 선교를 생각하게 되었다.44) 1991년 12월 31일 전 세계 65개국 이상에서 초교파적인 배경을 가진 기독교지도자들이 모여AD2000운동45)의 목표인 ‘2000년까지 모든 종족을 위하여 한 교회, 모든 개인을 위한 복음’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매진하기로 다짐하는 것46)을 통하여 미전도종족 선교의 중요성이 한국교회에도 인식이 되면서 1993년에 ‘한국미전도종족입양운동본부’가 설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47) 또한 1988년부터 매 2년 마다 열리는 선교한국대회를 통하여 한국교회의 젊은 선교인적자원들인 청년 대학생들에게 미전도종족선교가 지속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AAP 운동이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알려진 것은1995년 5월 서울에서 모인 세계복음화대회(GCOWE ’95)부터이다. ‘여호수아프로젝트2000(Joshua Project 2000)’은 전 세계의 미전도종족 중에서 우선입양종족으로 1,752종족을 선정하여 이 종족을 먼저 입양대상으로 삼고 복음화를 이루어가자는 세계적인 종족입양연합운동인데 이 운동을 한국교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AAP, 횃불선교센타, 기독교21세기운동본부, 각 교단 선교국 등이 함께 동참하여 한국교회도 세계적인 선교 흐름에 맞추어서 활발하게 움직일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한 움직임의 결과 각 교단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Korea World Missions Association, 이하 KWMA), 횃불선교센타, 21세기 운동본부가 공동주최하고 AAP가 주관하여 ‘한국교회 미전도종족선교대회’가 1996년 5월28~29일에 열려 11개의 교단이 참여하고 지역 교회 목회자를 비롯하여 선교실무자 등, 약 1,200여명이 모여 미전도종족선교의 중요성과 입양운동에 함께 참여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1990년대는 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의 미전도종족 선교 동참이 저조하였고 선교현지에 많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 후 전략적으로 업그레이드된 미전도종족선교를 위한 노력이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Nation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 이하 엔코위)였다. 엔코위에서 항상 미전도종족만을 위한 주제를 다룬 것은 아니고 다른 중요한 선교의 이슈들도 다루었지만 2000년의 엔코위 Ⅲ, 2006년의 엔코위 Ⅳ, 2010년의 엔코위 Ⅴ, 2014년 엔코위 Ⅵ가 몇 년을 간격으로 연속적으로 열려 미전도종족선교에 대한 강조를 계속하였다.48)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한국교회에 미전도종족에 대한 선교가 소개된 이후 미전도종족 선교를 위한 여러 차례의 모임들이 있었다.

하나 더 살펴볼 것은 세계의 미전도종족 복음화를 위한 ETHNE운동이다. 1990년대에 온 세계를 뜨겁게 달구면서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남아있는 미전도종족들을 복음화시키려 했었던 운동들인 로잔복음화운동,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Fellowship), AD2000운동(AD2000 & Beyond Movement)등을 통해 세계복음화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원래의 목표를 완성하지 못하고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2001년 4월 28~5월 1일 말레이시아에서 세계의 선교지도자들이 ‘대위임령원탁회의’(GCR: the Great Commission Roundtable, 이하 GCR)라는 회합을 가졌다.49) 이어2002년 10월 28~31일까지 미전도종족 복음화를 위한 GCR회의를 싱가포르에서도 가지면서50) 미전도종족 선교운동을 다시 일으키기로 합의했었다. 이러한 일련의 모임들을 근거로 미국의 Kent Parks는 모든 민족들이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새로운 비전으로51) 아직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전 세계의 28%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2006년 3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제1회 국제에스네 대회를 시작하였다. 그 이후 2009년 11월 콜롬비아의 보고타에서 그리고 2012년 11월27~30일까지 분당에 위치한 할렐루야교회에서 미전도종족선교지도자들의 전세계적 모임이라 할 수 있는 ETHNE 2012 대회가 ‘우리 세대에서 종족에서 종족으로’(ETHNE to ETHNE This Generation)이라는 슬로건으로 KWMA가 주최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46개국으로부터 325명의 미전도종족 선교를 하는 지도자들이 모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미전도종족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전략들을 의논하였다.52)

한국교회 선교지도자들과 선교단체들은 서구 교회들로부터 미전도종족 선교운동을 소개받은 이후1993년부터 AAP 운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에 확산시키려고 노력하였으나 쉽지 않았다. 1993년 이후 17년이나 지난 시점인 2010년 한국미전도종족선교연대(UPMA: Unreached People Missions Alliance, 이하 UPMA)53)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입양된 종족은 총 180개 이며, 이외 UPMA에 종족입양을 알리지 않고 사역하는 지역교회와 그들이 파송한 선교사들의 미전도종족까지 포함하면 최소 200개에서 최대 300개 까지 한국교회가 입양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었다.54) 이러한 열매는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의 장기간의 노력에 비하면 만족할 만한 수확은 아니었다. AAP 운동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실제적으로 선교지에 있는 미전도종족을 위한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추진력은 부족하였다. 그 동안 문제점을 발견하고 보완하여 실지로 선교지의 미전도종족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개척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이 남은과업완수운동(FTT: Finishing The Task Movement, 이하FTT운동) 개념이다. FTT운동이 한국교회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06년 7월이었다.


Ⅵ. 남은과업완수운동(FTT)

FTT운동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랄프 윈터가 1974년 7월 로잔세계복음전도대회에서 미전도종족선교를 강조한 후 세계선교계는 서서히 미전도종족을 복음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힘을 집중하여 어느 정도 열매를 거둘 수 있었으나 2000년도가 되었으나 여전히 복음으로 접근하지 못한 미전도종족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미전도종족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도 하였고 선교사들을 파송하기도 하였으나 선교의 장애들로 인하여 실지로는 미전도종족 가운데 효과적인 선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적극적인 반성’으로 FTT 운동이 태동하게 되었다. FTT 운동은 교회 개척의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지금’ 실행에 옮긴다는 취지로 시작된 운동이다.55)

2000년 7월 29일~8월 6일까지 빌리그래함전도협회(Billy Graham Evangelistic Association)는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전 세계 209개국으로부터 10,287명의 복음전도자들을 초청하였다.56) 대회기간 중 어느 날 약 500명의 선교전략가들을 따로 불러 모아 100개의 테이블을 준비하여 모임을 진행하였는데 그 중 71번 테이블에는 CCC, YWAM(예수전도단), 위클리프, 예수영화(Jesus Film), 미국남침례교단 선교부(IMB: International Mission Board, 이하 IMB)등 주요 선교단체 대표들이 앉아 있었다.57) IMB 총재인 애버리 윌리스 박사의 간증에 의하면 CCC 총재 스티브 더글라스는 예수영화(JESUS FILM)총재인 폴 애쉴만에게 ‘우리 테이블에 앉아 있는 단체에 속한 선교사 숫자만 합해도 5만 명은 될 것이고, 수십 억불의 선교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보는데 우리가 연합으로 그 일을 합시다’라고 제안했다고 한다.58) 그 선교단체의 대표들은 미전도종족 개척선교를 위해 조건 없는 협력과 전략적인 동역을 약속하였다. IMB는 교회개척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했고, 위클리프는 성경번역 노하우와 사역의 개방을 약속했고, CCC는 전 세계 네트워크를 제공하여 미전도종족 복음화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하였다. 이후 이 그룹은 ‘테이블 71’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4회씩 만나 사역을 점검하고 미전도종족을 위한 선교를 계획하였다. 이 운동의 지도자들에 의해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FTT운동이 시작되고 ‘미개척미전도종족’(UUPG: Unengaged Unreached People Group, 이하 UUPG) 가운데 우선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기로 하였다.59) UUPG는 단순히 미전도종족과 분리된 개념이다. 

FTT운동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 선교학에 새롭게 도입된 용어인 ‘Engagement’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 뜻은 UUPG 안에서 전임사역자가 교회개척배가운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뜻이다(교회개척배가운동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 FTT운동에서 Engagement 되었는가의 기준은 ‘종족에 헌신된 종족사역자의 유무’ 그리고 ‘자생적인 교회개척의 진행 여부’를 핵심적인 기준으로 보고 있다.60) FTT운동은 IMB가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IMB는 1986년 선교의 초점을 국가단위에서 종족단위로 맞추기로 결정하였고, 1997년 모든 IMB선교사들이 종족중심의 선교를 할 뿐만 아니라 선교부 조직을 종족중심 선교를 할 수 있도록 재편하기로 하였다.

미국세계선교센터(USCWM: US Center for World Mission)는 미전도종족 12,000종족을 무슬림 4천 종족, 부족 3천 종족, 힌두교 2천 종족, 중국 1천 종족, 불교 1천 종족 그리고 기타 1천 종족으로 분류하였다.61) 테이블 71에 속한 선교단체의 지도자들은 UUPG 가운데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이유는 UUPG에 대한 체계적인 홍보의 실패와 교회개척 개념의 부재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들이 첫 번째로 한 일은 복음전파 대상에서 소외되어 아직도 선교사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종족들을 구별해 내어 종족리스트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속단체 데이터베이스와 현지 네트워크를 통하여 조사한 결과 2005년 UUPG 2,486개 종족 중 인구 10만 명 이상의 종족그룹이 639개62)나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래의 지도는63)은 각 나라별 UUPG가 가장 많은 순서를 따라 14개 국가를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FTT운동은 그 이전의 어떤 운동과도 속도 면에서 달랐다는 것이다. 그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6년 이후 불과 5년이 된 시점인 2011년 4월 현재 세계 340개 주요교단들과 국제선교단체들이 힘을 합하여 11,969개의 새로운 종족교회가 개척되었다.64)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나중에 세계선교역사 가운데 없었던 놀랄만한 영적 대추수가 FTT운동을 통하여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소개할 것이다. 

우선 필자가 교제하고 있는 I국의 A선교사는 2015년 3월 21일 아래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지난 5-6년 동안 자신의 팀을 통하여 UUPG 가운데 개척된 교회의 숫자와 회심자들의 통계를 묻는 질문에 ‘교회는 수천 개가 되어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회심자의 숫자는 40만 명은 분명하게 넘겠지만 그것도 통계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가. I국 (미개척)미전도종족(UUPG) 개척 선교 진척 상황: 2010년부터 2014년 6월 까지 미전도종족 개척 사역자들을 양성하여 개척한 미개척미전도종족(UUPG)은 약 350개가 됩니다.65) 2004년부터 2009년 까지는 I국의 선교단체와 교회들이 미전도 종족들을 개척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2004년 남은과업 성취운동본부(Fishing The Task)에서 발표한 I국의 인구 10만 이상 되는310개 미개척 종족들(UUPG)을 2012년 까지 다 개척하였습니다. 2013년부터 시작하여 인구 5만 명이 넘는 미개척 종족들(UUPG)과 인구 2만명이 넘는 미개척 종족들(UUPG)도 다 개척을 하였습니다. 2014년에만 72개 종족들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나. 미전도 지역 무교회 동네 개척 상황: 미전도 종족들을 개척하면서 하나님의 세계 완전 복음화의 비전에 순종하여 미전도종족들이 사는 모든 무교회 동네들과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을 개척할 것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1. 2011년부터 시작하여 2015년 2월 까지 목표로 세운 13만 동네, 1천 3백만 가정전도와 1만 동네 교회 개척의 목표를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성취하였습니다.

2.현재 I국 전국 29개 주 중에 23개 주에서 미전도 종족 개척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약 1만개의 무교회 동네에 가정 교회가 개척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2,500개의 가정 교회는 10명 이상의 세례 받은 신자들을 가진 지역 교회로 발전을 했습니다.

약 2,500명의 지역 교회 사역자들이 세워졌습니다. 16명의 주 개척사역 책임자들과 함께 약20명의 부 개척 사역 책임자들이 있고, 그 밖에 약 40명의 지역 개척 사역책임자들이 있어서 지역 교회들과 가정 교회들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FTT운동에 참여하는 지도자들은 1년에 한차례 모여 보고회를 가진다. 2015년 2월4-5일 새들백교회에서 보고된 내용을 보면 전 세계 85개 선교부에서 181명의 대표들이 모여 UUPG 개척 결과를 보고하였다. 2007년부터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데이터를 보면 다음과 같다.66)

2007년 FTT운동 통계가 나온 이후 1,585개의 UUPG 가운데 교회가 세워졌다. 현재 FTT운동에 참여하는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의 숫자는 1,262개에 달하고, 295개의 선교단체에서 17,545명의 전임사역자가 파송되었다. 51,193명의 파트타임 사역자들이 사역하고 있고, 76,292개의 교회가 개척되었으며, 1,579,405명의 회심자들이 보고되었다. UUPG를 많이 입양하여 교회들을 개척한 선교단체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지면관계상 FTT운동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FTT운동은 선교지에 전략선교사(SC: Strategy Coordinator, 이하 SC선교사)67)가 있고, 그 운동을 후원하는 지역교회에는 하나의 UUPG를 담당하는 종족담당 책임자인 쳄피언(Champion)이 있다. FTT운동에 있어서 후원교회는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재정만 후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후원교회에 속한 성도들(남여전도회, 청년회, 중고등부 등)이 수시로 선교지를 방문하여 핵심 현지인 사역자와 함께 UUPG 가운데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필자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 I국에 있는 SC선교사와 함께 한해에 하나의 UUPG를 입양하고 방학 때 청년들을 보내고 그 종족 가운데 교회를 개척한 경험이 있다. 2011-12년은 인구 약 20만에 불과한 간디아종족(Gandia People)을 입양하여 두 명의 사역자들에게 매월 300불을 후원하여 약 50개의 가정교회가 개척되었다. 2012-13년은 한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 25,000여명 규모의 라즈풋 종족(Rajput People)을 입양하여 동일한 방식으로 UUPG를 입양하고 교회를 개척한 경험이 있다.

FTT운동 본부 홈페이지(http://www.finishingthetask.com/)를 들어가 보면 수시로 업데이트된 통계들이 올라오고 있어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UUPG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선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2015년 2월 6일 정리한 UUPG종족 리스트에는 722개의 종족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볼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자료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종족 리스트 맨 앞에 그 종족 고유번호가 있고 그 번호를 클릭하면 더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2015년 4월 3일 홈페이지에는 인구 1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488개의 UUPG 가운데 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처럼 오늘날 UUPG 선교는 첨단의 통신과 FTT운동에 참여하는 단체가 수시로 자신들이 입양하는 그룹의 정보를 국제FTT운동본부에 업데이트 할 수 있도록 하여 중복투자를 피하고 모든 자료를 공유하며 땅 끝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UUPG까지 복음화하기 위하여 세계선교역사상 전례 없었던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상역사의 종말에 메시아의 재림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마태복음 24: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말씀이 성취되기 위하여 미전도종족 0%를 향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전방개척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다. FTT운동에 참여하는 교단, 선교단체, 교회들이 1,262개68)에 이를 정도로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생략한다.

그런데 FTT운동이 그렇게도 빨리 확산되는 이면에 이 운동을 주도하는 선교단체의 선교사들이 사용하는 교회개척전략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개척배가운동(CPM:Church Planting Movement, 이하 CP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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