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8.11.19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26 as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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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6장 (개요)

거룩한 다윗은 이 시편에서 자신을 엄숙한 재판대 위에 놓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자신의 양심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이 두 가지에다 자신의 완전함을 고려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으며(1-2),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진술하고 있다.

1. 하나님과 그의 은혜에 대한 끊임없는 주시(3).

2. 죄와 죄인들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4-5).

3. 하나님의 의식에 대한 신실한 사모와 관심(6-8). 자신의 완전함을 증명하고 난 후,

   (1) 그는 악인의 파멸을 호소하고 있다(9-10).

   (2) 자신의 완전함을 굳게 지키려는 결의와 하나님께 대한 소망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그 자신을 맡기고 있다(11-12).

시편을 노래함에,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되어야 하고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가르치며 권면해야 한다. 우리가 다윗과 같이 은혜로 말미암아 이런 자세를 지닌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양심을 편하게 하고 거기서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박식한 아미랄두스(Amyraldus)는, 이 시편은 다윗이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예언의 영에 의해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시사하고 있다. 즉 다윗이 그리스도의 흠 없는 결백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충분한, 그리고 현저한 진실이었으며, 그것은 오직 그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편을 노래함에 이를 그에게 적용시킬 수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온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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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깊은 호소(시 26:1-5)

다윗이 이 시편을 사울과 그의 무리들에게 핍박당했을 때 지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사울과 그의 무리는 그들의 부당한 분노를 위장하기 위해 그를 매우 악한 자로 진술했고, 많은 중죄와 경범죄로 그를 그릇되게 정죄했고, 그를 곯리기 위해 들짐승의 가죽을 그에게 입히기도 했다. 결백 그 자체는 비방의 화살로부터 양심을 지켜줄 수는 있을지라도 평판을 지켜주지는 못한다. 여기에서 그는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당하셨고, 그의 추종자들도 모든 악으로부터 그릇되게 비방당하리라는 것을 예고하셨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고 있다. 이런 경우에 다윗이 어떻게 행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Ⅰ. 그는 하나님의 의로운 판결에 호소하고 있다(1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나와 나의 고소자들을, 박해자와 불쌍한 죄수를 판단하소서. 나를 영예롭게 구출하시고, 나를 그릇되게 고소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최고 재판장이었던 사울이 그의 대적이었으므로 사울과 그의 논쟁에서 그가 호소할 수 있는 자는 하나님밖에 없었다. 그가 하나님의 감정을 상하게 해드린 것에 대해 그는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143:2). 내 허물을 기억지 마소서(25:7)” 하고 간구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사울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에 관해서는 43편 1절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판단에 호소하나 자신을 위해 판단해 주실 것을 요청하고 있다.

또는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그는 죄에 대한 책망을 스스로 정당화할 수 없다. 자신의 죄악이 중대해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긍휼로 용서해 주시지 않는다면 멸망하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위선에 대한 책망에 관해서는 그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고, 은혜의 언약 방침에 따라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할 수 있는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기를 바랄 수 있다. 거룩한 욥도 그가 죄를 범한 것을 시인하면서도 자신의 완전함을 굳게 지키고 있다. 억울하게 비난당하는 자들에게는 조만간에 그들의 결백을 밝혀주실 의로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위로가 되며, 믿음에 진실한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성실을 목격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Ⅱ. 그는 하나님의 정확한 조사를 부탁하고 있다(2절). “여호와여”, 금이 정량인가를 달아보듯이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소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진실된 성품을 알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는 마음의 생각과 뜻을 아시고 모든 위장까지도 꿰뚫어보시기 때문이다. 다윗은 “여호와여, 나를 살피소서” 하고 기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아시는 것을 매우 기뻐했으며, 하나님께서 본래의 그를 발견하시고 온 세상에 드러내실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헌신과 왕에 대한 그의 충성이(그는 이 두 가지 면에서 위선자로 의심받고 있었다) 매우 진실된 것이었으므로, 그는 누구나 그 마음을 뚫어볼 수 있도록 그의 마음에 유리문이 있기를 바랐다.

Ⅲ. 그는 그의 성실함을 엄숙히 표명하고 있다(1절).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따라서 나의 이야기는 내 고백과 일치하고, 그 이야기의 한 부분은 바로 고백의 한 부분이 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우리가 우리의 완전함에 행했음을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말이 꾸밈없고 경건한 성실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우리가 입증할 수 없는 한 우리의 완전함을 자랑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는 여기에서 자신의 완전함에 대해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가 오명을 벗게 되리라는 확신과(“그러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그를 그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고, 그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며, 그의 이름을 더럽히고, 그가 면류관을 쓰는 것을 막으려고 모의하는 자들이(62:4) 이기지 못하게 되리라는 확신과 함께 여호와를 그의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의지하도록 격려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의로운 송사를 옹호하시고 변호해 주실 것이다. 믿음에 성실한 자들은 하나님께 의지해 요동치 않을 것이다. 즉 그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1. 그는 하나님과 그의 은혜를 항상 주시했다(3절).

(1)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그의 목적과 으뜸 되는 선으로 지향했다.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우리가 믿음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원칙에서, 그를 모든 존재의 최고자와 가장 훌륭한 친구와 은인으로 여기는 그에 대한 선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리고 우리에게 특별히 선하심을 베푸신다는 것을 평생 동안 체험해 온 것에 대한 감사함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성실함의 좋은 증거가 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우리의 귀감으로서 우리 목전에 두고, “열심으로 선을 행하는” 자로서(벧전 3:13) 그것을 따르려 한다면─우리가 그것을 우리 의무에 대한 큰 약속과 격려로서 우리 목전에 두고, 하나님의 은총을 빼앗길 일을 행함을 두려워하고 온힘을 기울여 그의 사랑 안에 거하려 한다면─이것은 우리의 완전함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보존하려 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2)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규범으로 삼아 그것으로 스스로를 다스렸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였나이다. 즉 주의 법도대로 행하였나이다. 이는 주의 법도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입각한 그의 진리와 법도대로 살아가는 자들은 그의 인자하심의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그가 선함과 인자함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진리와 성실함에 관한 면에서도 하나님의 본을 따랐다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손들로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분명히 올바르게 행한다.

2. 그는 흑암의 헛된 일들이나 그런 일을 하는 자들과는 교제하지 않았다(4-5절). 이것에 의해, 그가 왕의 충성된 신하로서 그의 정부에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과는, 즉 “그를 멸시한 벨리알의 아들들”(삼상 10:27)과는 결코 사귀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는 그들의 음모에 가담하거나 불의를 계획하는 자들과 손을 잡지 않았다. 또한 마음으로 왕을 저주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의 증거였으며, 믿음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나 믿음의 권세에 대해 공공연한 대적이 되고 그릇된 친구들이 되는 자들과는 결코 사귀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나쁜 동료들을 피하는 데 큰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의 무죄함을 나타내는 좋은 증거가 되며, 그것을 고수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1) 이런 그의 확인은 그가 여지껏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음을 회고하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리라 함을 예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저희와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저희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선한 행실이 하나님의 힘 가운데 그것을 끝까지 지키고 취소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수반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 완전함의 증거가 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리의 선한 결심으로 인해 우리의 선한 행실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면, 우리는 그 사실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2) 그는 악한 자들뿐만 아니라 허망한 자들의 무리도 멀리했다. 그들은 환락과 쾌락에 완전히 탐닉된 자들로서 견실하거나 신실된 면은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자들이었다. 선한 자는 철저한 사악함뿐만 아니라, 허망함에 대한 감염을 막아낼 준비도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무리들은 그 어떤 사람들에게보다도 선한 자에게 더욱 해롭다.

(3) 간사한 자들의 무리는 그 어느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므로, 경건할 뿐만 아니라 신중하게 그들을 피해야 한다. 행악자들은 함정으로 유혹하고자 생각하는 자들에게 우정을 가장하고 자신의 거짓됨을 숨긴다. “그들이 교묘히 말할지라도 그들을 믿지 말라.”

(4) 때로 그가 악한 자들의 무리 속에 있는 것을 피할 수 없을지라도 그는 “저희와 동행치” 아니하려 했다. 그런 자들을 그의 동료로 택하거나 그들과 사귀고 대화할 기회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가 우연히 그들과 마주친 적은 있었을지라도 약속 아래 동행하려 하지는 않았다. 혹은 그들과 우연히 한 모임에 있었을지라도 그들과 같이 앉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오래 머물러 있으려 하지도 않았다. 업무상 필요한 이상으로 그 무리 가운데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자”들과(1:1) 합세하지 않았고, 그들처럼 말하거나 행하지도 않았다. 또한 그들과 함께 해를 끼칠 수단이나 방법을 꾀하지 않았고, 또한 그들과 함께 심판대에 앉아 의로운 자들을 정죄하지도 않았다.

(5) 우리는 우리의 행실에서 악한 무리들을 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원칙과 마음에서도 그것을 미워해야 한다. 다윗은 여기에서 “내가 그것을 피했나이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내가 그것을 미워하였나이다”(139:22) 하고도 말하고 있다.

(6) 행악자의 모임, 그 집단, 그들의 공모는 선한 백성들이 특별히 미워하는 것이다. “나는 악인의 회중(ecclesiam malignantium)을 미워해 왔습니다.” 통속 라틴어에서는 이렇게 풀이해 놓고 있다. 선한 사람들은 협력해 서로를 더 선하게 만들고 선을 더 많이 행할 수 있게 되는 반면에, 악한 자는 도당을 만듦으로써 서로를 더 나쁘게 만들고 더욱 큰 해를 끼친다.

이 모든 일에서 다윗은, 비록 죄인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해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먹었을지라도 거룩하고 악의가 없으며 더럽혀지지는 않았던, 또한 죄인들과는, 특히 위선자들인 바리새인들과는 분리되었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고 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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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의식 가운데 있는 기쁨(시 26:6-12)

Ⅰ. 다윗은 그의 완전함을 더욱 증거하는 것으로서 그가 하나님의 규례를 진심으로 사모했던 것과 그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온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얻었던 것을 언급하고 있다. 사곡한 자들과 위선자들도, 교만한 바리새인들이 회개하는 세리와 함께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갔던 것과 같이 실제로 하나님의 규례를 행하는 모습으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6-8절), 우리가 그것을 수행한다면 성실함을 나타내는 좋은 표지가 될 것이다.

1. 그는 거룩한 규례를 준비하는 데 매우 배려 깊었고 성실했다. “내가 무죄함으로 손을 씻으리이다.” 그는 죄인들의 모임을 멀리했을 뿐만 아니라, 죄의 더러움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지켰다. 그리고 그의 눈은 하나님의 제단을 두루 다니는 자들 가운데 두었다. “나는 씻고, 그리고 나서 제단을 두루 다니겠나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환영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후에야 먹고”(고전 11:28), 그리하여 준비하게 되는 내용과 같다. 이것은 다음의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1) 습관적인 준비. “내가 무죄함으로 손을 씻으리이다. 즉 내가 모든 죄를 경계하고, 양심을 더럽히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그 죽은 일들로부터 내 양심을 깨끗하게 지키겠나이다”(24:3-4 참조).

(2) 실제적인 준비. 이것은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 씻는 규례를 시사하고 있다(출 30:20-21). 다윗은 제사장은 아니었을지라도, 모든 경배자들이 그러해야 하는 것과 같이, 제사장들이 명령을 받고 있는 그 그림자의 실체를 보고자 했다. 거룩한 규례를 준비함에 우리는 부정이나 사곡함에 대한 책망으로부터 우리를 깨끗이 하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결백함을 표명할(그것은 “손을 씻는” 것으로써 의미되고 있다. 신 21:6)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회개를 새롭게 함으로써, 그리고 우리의 양심을 깨끗이 하고 평정케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보혈에 새롭게 의지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지닌 죄악의 오점을 제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씻음을 받는(즉 의롭게 된 상태에 있는) 자는 이처럼 “발을 씻고”(요 13:10), 손을 씻을 필요가 있다. 즉 무죄함으로 그들 자신을 씻을 필요가 있다. 회개하는 자는 거의 무죄하다(pene innocens). 그리고 용서받는 자는 지극히 무죄하므로 그의 죄가 그에게 불리하도록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2. 그는 그 의식에 매우 근면했고 정중하게 참가했다. “내가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리이다” 하는 말은 제사장들의 관례를 시사하고 있다. 제사장은 제물이 바쳐지는 동안 제단을 두루 돌아다녔고, 마찬가지로 제물을 바친 자도 어느 정도 떨어져 그렇게 했을 것인데, 이것은 행해지는 것을 열심히 주목하고 봉사를 충실하게 수행함을 암시하고 있다. “내가 두루 다니리이다. 내가 그것을 행하는 자들 가운데, 그들이 가장 많이 모인 가운데 있으리이다.” 존귀한 자며, 사업가이며, 용사인 다윗은 군중과 함께 하나님의 제단에 참여하는 것이 그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라고 생각지 않았고, 그 규례의 참석을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었다.

(1)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의 은총에 전념하며 틀림없이 하나님의 제단을 섬길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단이시다. 그러나 그 제단은 유대인들이 먹었던 유대 교회의 제단과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으며 그로 말미암아 “사는” 제단이다(히 13:10).

(2) 하나님의 제단을 두루 다니는 것을 보는 것과 그것을 두루 다니는 자들 가운데 있는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3. 하나님의 규례에 참여함에,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삼았고 그에 대한 감사의 찬미와 숭배에 전념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는 곳으로서(8절) 그 경배하는 장소를 주목했다. 따라서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을, 하나님의 모든 기이한 일들에 대한 감사의 소리를 널리 알리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았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일들은 우리의 감사를 요구하는 것으로서 모두 기이한 일이며, 그것은 우리의 경탄을 요한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를 찬미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그것을 알리고 그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깨달은 자로서 감사의 소리로 그것을 행해야 하며,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

4. 그는 기쁨을 갖고 하나님과 그의 제도에 대한 참된 애정에서 나온 원칙에 의해 이것을 행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는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는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즉 주의 백성들 가운데 임하심을 나타내시고 그들의 경의를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성막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아시나이다”(8절). 다윗은 때로 핍박으로 인해 우상 숭배자들의 나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제단을 섬기는 일을 방해받았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굴레를 씌워놓은 핍박자들은 그것을 그의 죄로 책망했을 것이다(삼상 20:27 참조). 그러나 그는 “여호와여, 비록 내가 주의 집에 거할 수 없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사랑합니다. 나의 마음은 그곳에 있으며 내가 그곳에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나를 매우 괴롭히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식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 의식 가운데에서 그가 자신을 나타내시므로 그들은 그를 영화롭게 할 기회를 얻는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사랑한다. 우리 주 예수는 그의 아버지의 영광을 사랑했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을 그의 일로 삼았다. 그는 그의 집에, 사람들 가운데 있는 그의 교회에 거하는 것을 사랑하셨고, 그의 집을 짓고 봉헌하는 것을 사랑하셨으며, 또 그것을 위해 그 자신을 바쳤다.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사랑하고 그에게 접근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들은 그것이 끊임없는 즐거움이며, 그들의 완전함에 대한 충분한 증거이고, 그들의 끝없는 지복에 대한 충분한 증거임을 발견한다.

Ⅱ. 다윗은 그의 완전함을 증명한 후에 그가 악인의 운명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을 향한 겸손한 확신을 갖고(이런 자들은 마음으로 자기를 정죄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간구하고 있다(9-10절).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거두지 마소서.”

1. 다윗은 여기에서 이 죄인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는 이들이 비참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서, 이 세상에 있는 그의 어느 대적에게도 그보다 더 나쁜 상태를 바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비참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서 묘사했다. “그들은 살인자로서 피를 갈구하며, 중대한 살인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재앙을 행하며 재앙은 항상 그들의 손에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사악한 행위에 의해 얻을지라도(그 오른손에 의를 악용해 얻은 뇌물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의 형편에 더 보탬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 그는 그들과 같은 운명을 갖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결코 그들을 사랑하지도 또한 사귀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저 세상에서 그들과 운명을 같이하지 않게 되기를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었다. 우리 영혼은 그것을 주셨고 또다시 그것을 요구하실 하나님께로 되돌아갈 것이다(욥 34:14 참조). 이 사실에 의해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그때에 성도들과 모일 것인가 아니면 죄인들과 함께 모일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충실된 자의 영혼처럼 영원히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일 것인가(삼상 25:29), 아니면 불사르게 될 가라지의 단 속에 묶일 것인가(마 13:30)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죽음은 우리를 우리의 백성들에게로 모은다. 즉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백성 된 자들에게, 우리가 택해 사귀는 자들에게, 우리가 더불어 운명을 같이하는 자들에게로 죽음은 우리를 모아들일 것이며, 우리는 그들과 함께 영원까지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 발람은 의로운 자로서 죽기를 원했다. 다윗은 악인으로서 죽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와 같이 이 두 사람과 같은 마음을 품고 그것에 따라 행하려 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쾌락을 추구하는 죄인들의 동료가 되지 않으려 하고,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으려 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비참함을 나누는 동료가 되지 않고, 그들의 떨림의 잔을 마시지 않게 되기를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다.

Ⅲ. 다윗은 거룩하고 겸손한 확신을 갖고 그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에 의탁하고 있다(11-12절).

1.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그의 의무를 지키겠다는 것을 약속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하든간에,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다.” 우리가 완전함을 따라 행했다는 양심의 증거가 우리에게 위안을 줄 때, 우리는 그것을 지속시키리라는 결심을 굳게 해야 한다.

2. 그는 그에게 그렇게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고, 위안을 줄 거룩한 은혜를 간구하고 있다. “나를 대적들의 손에서 구속하시고, 살아 있을 때나 죽어갈 때나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가 우리의 완전함에 대해 아무리 자신을 갖고 있더라도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긍휼과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놓으신 위대한 구원에 의지해야 하며, 그 혜택을 간구해야 한다.

3. 그는 자신의 확고함을 기뻐하고 있다.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그곳에서 나는 흔들거리거나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경건함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있어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자로서,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은혜 안에 있는 그의 위로가 확고해 세상의 고난과 환난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자로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는 계속 하나님을 찬미할 것을, 그리고 찬미할 만한 일을 마련하고 찬미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며, 비록 그가 당시에 공적인 규례에서 추방당했을지라도 그의 백성들의 회중에서 하나님을 송축할 기회를 다시 가질 것을 그 자신에게 약속하고 있다. 행악의 회중을 미워하는 자들은 의인의 회중에 참가하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미할 것이다. 그리고 선한 무리들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 일이 더 많을수록 더욱 좋으며, 더욱더 천국과 비슷해질 것이다.

===assum======

1) 복부초음파 표준영상의 범위=========================================

가) 일반(12개)...[늑간하] 담낭-BD-우간>우간-간정맥(우간횡)....[심와부횡](좌간횡)IVC-PV-좌간>....[심와부 종]..췌두-체-미부-좌간....[우계늑부사]담낭장축)-문맥-EHBD>(약간좌상방이동)EHBD-PV......[우늑간]우간+우신>(약간상방)우간+담낭>.....[좌늑간]좌신>(약간하방)비장-췌미-좌간 으로 순서를 진행

 

[간좌엽]의 종스캔(1), 간좌엽의 횡스캔(2)--, [간우엽]의 횡스캔(3)--, [간정맥]의 늑간하 스캔(4), 간우엽의 상부(5)<늑간하>--, 간우엽의 늑간스캔(6), 우간하부와 우측신장피질의 관상면 스캔(7), [담낭]의 장축(8)<늑교>, [비장]의 장축스캔(9), 췌장두부의 횡스캔(10), 췌장체부·미부의 횡스캔(11), 간외담관의 종스캔(12)<늑교상>,


나. 판독소견서 작성..1) 등록번호, 성명, 생년월일/나이, 성별, 검사명, 검사일시, 검사와 판독한 의사(면허번호), 검사소견, 결론, 판독일시, 의료기관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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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디스크 굽기 및 복사]...Sono와 연동되는 PC의 Sono View를 미리 띄우고, 환자등록후 저장, 단계별검사가 끝날때마다 저장해 주면 연동PC로 이동됨!!

1.Sono View 띄워진 창에서 OPEN선택(좌상부)-->C:선택(리스트 나옴)환자선택하면 하단부에 이미지 뜸--->이것은 D:로 BACK UP 

2.D:를 열어보면  나오게 되어 있는 ㅁ IMAGE DICOMDIR URANOS를 선택 

3.((이제는 E:에 공디스크를 넣은 후)) E:로 복사(먼저 자동포맷되고 진행됨)해 준 다음, D: 의 3가지항목을 반드시 지워주어야 한다... 


[이미지재전송방법]

1.전송받을 PC의 SonoViewPro On..

2.SONO on상태에서  Sono View버튼 누른다

3.SONO 모니터화면상 좌상단 OPEN을 누른다

4.전송할 환자의 ID 및 이름 입력해서 검색버튼 누른다(리스트 나옴)

5.리스트에서 환자선택 반전시킨후 SEND 버튼 클릭

6.하단에 이미지가 업로드되면 SONO선택후 SEND버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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