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8.11.2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사람의 영 혼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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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8 김준식목사 사람의 영 혼 육의 관계와 동물의 혼 창세기 1:20-28 

성경은 사람의 구성을 영혼과 몸으로 구성된 것 같이 보여 줍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이분설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의 구조를 영혼육으로 구성된 것으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2:7, 히브리서 4:12과 데살로니가전서 5:23입니다. 성경은 이분설과 삼분설을 뚜렷하게 구분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영과 혼이라는 단어를 뚜렷이 구분했다기 보다는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떤 곳에서는 영혼을 사람 자체로 표현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구약에서 영과 혼의 존재에 대한 용어가 분명하므로 성경이 영과 혼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영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이며 헬라어로는 프뉴마이며 혼은 히브리어로 네페쉬이며 헬라어로는 프쉬케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사람의 영혼육의 구조는 신비에 속합니다. 피조물인 사람은 영-혼-육의 결합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성경도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이 명쾌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이 해석에 대한 바른 해석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인간의 구조가 영혼육으로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삼분설관점으로 사람의 몸과 혼과 영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몸은 성경에서 분명히 흙으로 만들어졌다했습니다. 그러나 영혼 없는 몸만 있으면 시체입니다. 그 속에 영혼이 있어야 삽니다. 누가복음 8:54-55에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에 아이야 일어나라 하실 때에 그 아이의 영이 돌아오매 그 아이가 살아 일어났다*54.And he put them all out, and took her by the hand, and called, saying, Maid, arise.*55. And her spirit(프뉴마, 네페쉬, 루아흐) came again, and she arose straightway: and he commanded to give her meat.[KJV]고 했습니다. 짐승도 혼이 있습니다. 그 짐승의 혼은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흙에 명령하여 짐승의 혼을 내라 하시므로 혼이 생겨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짐승이 죽으면 혼도 없어집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사람의 혼은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먼저 짐승의 혼부터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쉬운 것부터 접근해서 사람의 몸과 혼과 영에 대해서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짐승의 혼의 창조 (창 1:20-23)

1. 물고기를 만드심

창세기 1:20, 21에서 쉬운성경에서 번역하기를 ‘20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은 움직이는 생물을 많이 내어라. 새들은 땅 위의 하늘을 날아다녀라.”라고 해서 물에게 물고기와 새를 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창세기 1:19절 이전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광물질들은 숨을 쉬지 않는 것들입니다. 생명이 없는 것들입니다. 식물들도 숨을 쉬기는 하지만 성경에서 동물들과 같이 혼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숨을 쉬는 동물들에 대해 우리말 성경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살아 있는 생물로 번성케 하라' 해서 '생물(creature)로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네페쉬 하이야'인데 영어로는 Living soul로 번역했습니다. 하이야는 살아있다는 의미입니다. 네페쉬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구약성경을 영어로 번역할 때에 가장 많이 번역되는 것으로는 혼(soul)입니다. 두번째로는 생명(life)입니다. 세번째는 생물(creature)입니다. 우리말성경에는 ‘네페시 하이야’를 ‘살아 있는 생물’로 번역했습니다. 네페쉬를 생물(creature)로 본 것입니다.

숨을 쉬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살았냐 죽었냐를 알기 위해서는 숨을 쉬느냐 아니냐를 살펴 봅니다. 네페쉬는 생명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숨을 쉬게 만드느냐 입니다. 그것은 혼(soul)입니다. 영혼이 우리로 하여금 숨을 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우리 몸을 떠나면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영혼이 몸과 분리 되면서 숨이 끊어지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숨을 쉬는 동물체는 물고기와 새, 그리고 땅에 있는 짐승과 곤충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물에 명령해서 물고기를 내라 하십니다. 그래서 물이 물고기와 새를 냈습니다. 그것을 만드는데 있어 모세는 무슨 단어를 사용했는가 하면 창1:21에서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창조(바라)했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다는 단어가 두개 있습니다. 하나는 ‘바라’인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때에 바라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어떤 존재하는 물질을 재료로 하여 만드실 때는 아싸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물이 물고기를 만들고 물이라는 본질로부터 물고기가 되는 것은 창조(바라)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아싸가 되어야 하는데 왜 모세는 아싸 대신에 바라를 사용했습니까? 그리고 새와 짐승들도 마찬가지로 흙에서 만들어졌으면 아싸라고 해야 하는데 바라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여기서 물고기나 새의 몸은 물이 내지만 그 속에 숨을 쉬게하고 생명을 유지시키는 살아 있는 혼(네페쉬 하이야)은 하나님께서 없는 것에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물고기와 새를 창조(바라)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물로 하여금 물고기 몸을 만드는 것은 아싸이고 그 몸을 움직이게 하는 살아 있는 혼(네페쉬 하이야)은 바라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20에서 '생물' 대신에 '혼'으로 번역하는 것이 창세기 1:20의 의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1:20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살아 있는 생물로 번성케하라.'는 히브리어 문장을 한국말로 표기하며 '와이오메르 엘로힘 이스르츄 함마임 세레츠 네페쉬 하이야' 했습니다.  여기서 세레츠는 물고기들이 물에서 와글와글한 것을 말합니다. 물은 네페쉬 하이야로 가득차라, 살아 있는 혼으로 가득차라했습니다. 한글 성경에서는 살아  있는 생물로 가득차라고 했는데 히브리어성경(강신택박사)은 그것을 생물로 번역하지 않고 혼(Soul)로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은 물로부터 살아 있는 혼으로 가득차라고 했는데 그 혼은 물고기 혼인 것입니다. 물고기가 혼이 있는 것입니다. 물고기들 사는 것을 보면 신비롭습니다. 저희들끼리 모여 살고 돌고래는 아주 영리합니다. 재주도 잘 부리고 사람에게 훈련을 잘 받습니다. 그리고 연어는 산란시기에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찾아 갑니다. 그것은 혼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알을 산란할 때는 물고기들이 수컷과 암컷이 번갈아 가며 지킵니다. 특히 가물치의 부모애는 지극합니다.

2 새를 만드심.

창세기 1:20, 21에서 또 물로 하여금 새를 만들라고 했는데 땅의 하늘에는 새가 날라라 했습니다. 창세기 2:19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흙으로 각종 새를 지으셨다고 합니다. 창세기 2:19에서는 새가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창세기 1:20에서는 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창1:20과 창2:19의 두 구절의 차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게마라와 미쉬나가 합쳐지면 탈무드가 됩니다. 게마라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새를 스왐(Swarm)즉 바다 뻘에서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뻘은 바다 밑바닥에 있습니다. 바다 밑바닥에 있는 뻘에서 하나님께서 새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다에 명령하시고 흙이 새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는 땅의 짐승들을 만드시는 여섯째 날에 만들지 않으시고 다섯째 날인 물고기를 만드시는 날에 만드셨습니다. 아마도 새의 몸의 성분이 땅의 짐승들의 몸의 성분과는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 위의 동물들의 어머니가 흙이듯이 바다의 생물들과 새들의 어미는 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새들 중에 물에서 헤엄치고 물에서 사는 새들이 많습니다.

3. 짐승과 곤충을 만드심

여섯째 날(창세기 1:24-25)에는 땅 위에는 각종 짐승들과 곤충들을 만드셨습니다. 그 런데 땅 위의 각종 짐승들과 곤충들도 땅에서 만들어 집니다. 하나님께서 땅에게 명령하시기를 창세기 1:24에, '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했습니다. 그리고 25절에서,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했습니다. 땅에서 각종 짐승이 나왔지만 역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고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역시 각종 짐승이나 곤충이 땅에서 나왔기에 땅이 짐승과 곤충들의 어머니입니다. 물속의 물고기들이 죽으면 물로 돌아가는 것은 물에서 나왔기 때문이요(?), 각종 식물이나 짐승들이 죽으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땅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0을 다시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이 ‘생물’로 번역되었던 히브리어 단어는 ‘네페쉬 하이야’ 인데 ‘살아 있는 혼’을 말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물에게 그런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물은 하나님의 힘을 가지고 자기 안에서 soul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창세기 1:24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생물은 살아 있는 혼(네페쉬 하이야, 리빙 소울)입니다. 살아 있는 혼을 흙이 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고기나 새나 짐승에게 있는 혼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입니다. 혼은 혼인데 물질입니다. 물에서 만들어진 혼, 흙에서 만들어져 나온 혼은 육체를 움직여 나가는 힘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나 물고기 새 짐승들을 만드실 때는 아주 단순합니다. 물에서 명령하시니 물고기의 혼이 만들어지고, 땅에 명령하시니 짐승들의 혼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4. 짐승의 혼의 위치

성경은 혼들이 짐승들의 피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피를 먹지 말라고 합니다. 피를 먹는 것은 리빙 소울을 먹는 것 때문이라 합니다. 강신택박사의 히브리어 한글 대역 구약성경의 레위기 17:10-13에서, '이스라엘의 집중에, 그리고 너희들 가운데서 거하는 이방인 중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피를 먹는다면, 그러면 나는 나의 얼굴을 그 피를 먹는 혼을 반대해서 세우겠다. 그리고 내가 그 혼을 그의 백성 중에서 잘라버리겠다. 왜냐하면 몸의 혼은, 그것은 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너희들의 혼을 위해서 속죄하기 위해서, 너희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혼 안에 피가 (그 혼을)속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말한다. 너희 중에 있는 모든 혼(생명)은 피를 먹지 말라.

그리고 보라 너희 중에 있는 이방인도 피를 먹지 말라.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들 중에서, 그리고 너희들 중에 거하는 이방인들 중에서 먹어질 수 있는 들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면, 그러면 그는 그의 피를 흘려내야 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흙으로 덮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육체의 혼은 그의 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혼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이야기 했었다. 모든 육체의 피를 너희들은 먹지 말라. 왜냐하면 모든 육체의 혼은 그것은 그의 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먹는 모든 자는 잘라질 것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짐승들의 피를 사람들이 먹지 말게 하신 것은 짐승들의 혼이 피에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짐승의 피에 있는 짐승의 혼이 사람의 죄를 속죄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 염소나 송아지, 어린 양을 제물로 제단에 드릴 때에 그 짐승의 피에 있는 혼이 사람의 죄를 속죄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레위기 17:11에, ‘11 육체의 생명(동물의 혼)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사람의 혼)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혼)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했습니다.

둘째로 사람 창조(창세기 1:26-27)

삼위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몸과 혼과 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했습니다. 아담은 사람이란 뜻이고 또한 흙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사람에게 너는 흙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담의 이름 자체가 흙이란 뜻입니다. 창세기 1:26에서는 사람을 만드셨다(아싸) 했습니다. 창세기 1:26에서는 사람을 아싸하셨다고 한 것은 사람의 몸의 외모를 하나님을 닮게 하셨다는 의미에서 아싸하셨고 했습니다. 창세기 1:26, 27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지으심에 대해서는 1번의 아싸(만드심), 2번이나 창조(바라)하셨다고 하셨는데 이 2번은 사람의 영과 혼을 창조하신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26,27에서 창세기 2:7에서와 같이 영과 혼과 몸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창2:7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로 생기(영,NIV: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를 불어 넣으실 때에 생령(living soul) 즉 살아 있는 혼(네페쉬 하이야)이 되었다 했습니다.

1.  사람의 몸을 만드심

사람의 몸도 동물들과 같이 흙으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동물들의 몸과는 달리 사람의 몸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사람의 몸의 기능은 사람의 혼과 영을 담는 그릇이요, 집입니다. 사람의 몸은 5감을 가지고 세상을 인식합니다. 시각, 미각, 후각, 청각, 촉각입니다. 시각으로 안전한지 위험한지 분별하고, 미각으로 영양분을 섭취하고, 후각과 청각, 촉각도 몸의 안전을 도모합니다. 동물들의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죽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일단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동물들의 몸은 흙으로 돌아갈 때에 완전히 분해 되어 흩어져 없어 집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흙으로 분해 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루는 몸의 모든 원소들을 기록하시고, 기억하셔서 부활할 때에 이 사람의 본래 가지고 있던 원소들을 다시 결합시켜서 완전한 몸을 이루어 부활시킵니다.

계시록 20: 13에,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했는데 여기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준다고 했는데 이 죽은 자들이란 바다에서 죽은 자들의 시체를 말합니다. 이 바다에서 죽은 자들 중에 죽어 5백년, 천년이 지나서 그 사람의 몸의 원소들이 5대양에 흩어져 있을 텐데 이 원소들을 다 모아 결합해서 사람의 시체를 만들어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한 것은 사망은 육지에서 죽은 자들의 시체를 말하고 음부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내어 주어 결합해서 불신자의 몸의 부활을 말합니다. 계시록 20:13에서 ‘죽은 자들을 내준다’는 말을 두 번이나 합니다. 한 번은 바다에서 죽은 자들을 내어 준다고 한 것인데 이 죽은 자는 시체를 말하며, 또 한 번은 사망과 음부도 죽은 자들을 내어 준다고 했는데 사망은 땅에서 죽은 자(시체)요, 음부는 바다에서 죽거나 땅에서 죽거나 막론하고 예수 믿지 않고 죽은 모든 영들을 말합니다.

에스겔 37:1-10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마른 뼈들이 쌓여 있는 골짜기로 인도하셔서 그 뼈들에게 명령해서 뼈들이 서로 결합되고 그 뼈 위에 근육과 살이 채워져 시체를 만들고 그리고 생기에게 명령해서 그 시체 속으로 들어 가도록 명령했더니 그대로 되어 사람이 부활해서 큰 군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영, 루아흐)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했습니다.

시편 139:16에서는 우리가 지음 받을 때에 우리의 형질을 하나님께서 책에 다 기록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을 부활시킬 때에 우리 몸을 형성하던 모든 원소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바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찾아 모아 몸을 이루고 살을 입히고 시체를 만드신 후에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실 때에 영혼들을 데리고 오셔서 각 시체 마다 넣으셔서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4에서,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했습니다. 데살로니카전서 4:14과 에스겔서 38장 말씀을 종합하면 부활이 이루어지는 구조가 그림을 보듯 생생하게 보여 집니다.

고린도전서 15: 35-37에 부활의 몸을 설명할 때에 부활의 몸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과 형질이 전혀 다르지만 그 부활의 몸의 근본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했습니다. 우리 몸을 수박 씨라고 하면 그 씨가 땅에 묻혀 썩어 그 영양분을 에너지로 하여 수박씨 에서 순이 나와 큰 넝쿨을 이루고 큰 잎들과 꽃을 피우며 수박이라는 큰 열매를 맺는데 이 수박 넝쿨이 부활의 몸과 같다는 것입니다. 수박 씨에서 나왔는데 수박 씨와는 전혀 다른 수박넝쿨이라는 형제가 나왔습니다. 보잘 것 없는 수박씨에서 엄청나게 화려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박넝쿨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몸은 현재 우리 몸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몸을 근원으로 하여 부활의 몸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몸과 혼과 영을 얼마나 신묘막측하게 만드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을 거룩하게 보존하셔야 합니다. 사람의 혼은 자기의식을 하지만 사람의 몸은 그 혼의 상태를 밖으로 표출하는 매개체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부끄러워지면 옷을 입게 되고 저절로 숨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부끄러우니까 무화과 잎으로 몸의 부끄러움을 가리고 자기 몸을 나무 뒤에 숨겼습니다. 그래서 혼은 자기의식이고 육은 자기의식을 나타내는 매개체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존재인 사람은 육체로 인해서 완전한 인격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우리 영혼이 나타나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온전히 우리를 통해서 나타날 수 있도록 우리는 그 몸을 깨끗이 거룩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아무 것이나 먹고 아무 것이나 마시고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우리 몸을 병들게 하고 약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몸을 건강하고 깨끗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몸을 거룩하게 보전해야 합니다. 죄짓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몸은 물질만으로 된 것이 아니고 영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꼭 알아 두시기를 바랍니다.

2. 사람의 혼을 만드심

창1:26-28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했습니다.

혼의 역할은 세상과 사람을 접촉하며 이 세상의 삶을 주관합니다. 혼은 정신을 가지며, 지식, 의지, 감정을 행사합니다. 혼은 내 자아이며 내 자신을 의식합니다. 내 자신을 나타냅니다. 혼은 내가 이 세상에서 생활하는 주체입니다. 혼은 지정의로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사람을 혼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영혼이라 하기도 하고, 영으로 표현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26, 27에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의 기능을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들과 땅의 모든 짐승들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인간의 기능이 사람의 혼의 역할입니다. 사람의 혼은 모든 동물들의 혼들을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혼에 심어주신 능력은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달나라를 여행하고 우주를 여행하고 탐사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무한한 인간의 혼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혼에 무한한 능력을 주셨는데 죄로 말미암아 이것들을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제한, 축소하시고 사용하지 못하도록 잠그셨는데도 이렇는데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자가 될 것입니다.

짐승들도 혼이 있어 본능과 어느 정도의 학습능력이 있습니다. 돌고래를 훈련시키고, 개를 훈련시키고, 얼마 전에 세계 뉴스에 오스트랄리아에서는 기린을 훈련시켜 다이빙을 하게 했습니다. 북극 팽긴의 새끼 양육과 짐승들이 무리지어 살고, 그들 자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위계가 있으며, 독수리나 사자처럼 새끼들을 훈련시키는 지적 능력을 가집니다. 연어와 같이 어떤 물고기들은 자신이 출생한 고향으로 귀향능력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물들에게 이런 능력들을 그들의 혼에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혼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습니다....모든 동물의 몸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목숨(이로 인해 살아가는데 필요한 세포내 에너지생성을 주관)의 근원을 산혼[동물에게 있어서는 비록 네페쉬 하이야이긴 하지만 저급하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영은 없음]이라 할수 있겠지요..

사람의 혼은 동물들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동물의 혼을 만드실 때는 흙에게 명령하여 흙으로 하여금 짐승들과 곤충들의 혼을 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혼을 만드실 때는 흙에게 혼을 내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의 코에 영을 불어 넣으시니 생령 즉 혼 네페쉬 하이야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혼(Living Soul)은 네페쉬 하이야 이지만 영에서 만들어진 고급 네페쉬 하이야입니다. 사람의 혼은 흙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에 사람이 죽을 때에 흙과 함께 소멸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을 혼으로 대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의 혼은 사람이 죽을 때 몸과 영이 분리될 때에 혼은 영에 붙어 천국으로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시록 6:9에 순교한 성도들의 영혼들(Souls)이 천국의 제단 아래에서 큰 소리로 불러 아뢰기를 거룩하고 참되신 하나님께 호소하는 광경이 나옵니다.

여기서 영혼을 영어로 Souls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짐승이나 새나 물고기는 죽으면 그 네페쉬가 몸과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물고기의 육체는 물 속에서 물로 변해 사라지고, 짐승들은 땅에서 흙으로 변해 그 육체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네페쉬도 같이 사라져 버립니다. 흙으로 변해 끝나고 맙니다. 그러므로 짐승은 죽으면 지옥에 가거나 천국에 갈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 중에 ‘죽으면 그만이야’ 하는 사람들은 나는 짐승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시편 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했습니다.((동물과 사람의 차이점은 결국 영이 있는 영적 존재냐, 또한 혼을 가졌다 해도 그 네페쉬 하이야의 근원은 무엇이며 그 질이 어떠하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말씀을 듣고 그 의지로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감정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것은 구원받은 영을 가진 자의 혼의 기능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부르실 때가 되면 본래대로 몸과 영혼이 분리되고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본래 왔던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게 되면 (하나님품으로)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실은 [돌아가셨다]라는 이 표현은) 예수 믿어 구원 받아 영이 거듭나서 하늘나라에 그 이름이 기록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에게만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예수믿지 않고 죽은 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자들은 다른 곳으로 갑니다. 마태복음 25:41에,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는 말씀에서 '저주 받은 자들'은 불신자 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천국의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고 마귀가 갇힌 지옥(음부)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두고 돌아가셨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3. 사람의 영을 만드심 

창세기 2:7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몸은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말라기서 2:15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실 때는 각각의 천사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각각의 영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을 창조하실 때는 한 영만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한 영만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참 자녀를 얻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의 영은 하나로 지으시고 그 아담의 한 영에서 분리(=분배)해서 다른 사람의 영을 만드셨습니다. 하와의 영도 아담에게서 분리되었고 그 이후의 모든 사람들의 영들이 아담에게서 분리(분배)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영의 본질은 사람의 영으로서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서 그 사람의 영이 많지만 사람의 영은 하나입니다. 이것은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세 인격이시면서 한 하나님이시듯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의 영도 개체는 수억 수십억이지만 한 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에 할아버지도 하나님께 아버지라 부르고 아버지도 하나님을 부를 때에 아버지라 부르며, 아들도 하나님을 부를 때에 아버지라 부르며, 손자도 하나님을 부를 때에 아버지라 부릅니다. 이 말은 사람의 영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주 교회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신랑은 예수님이요, 신부는 교회라고 합니다. 그 교회는 한 영입니다.

영의 기능은 하나님을 감지하게 하는 기능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그 영의 기능이 (상당부분 찌그러들고) 상실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어 죄씻음을 받으면 (거듭 난)그 영이 다시 작동되어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구원받은 영은 그 혼과 함께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사랑하며 예배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육 중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영입니다. 요한삼서 2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soul, psyche --내적사람/속사람을 의미)이 잘됨 같이(=구원받은 결과로 영과 혼의 기능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게 작동함)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겉사람의 번영+건강 =형통..)’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은 자기를 의식합니다. 영이 없으면 자기의식(특히 양심의 기능인 도덕성 : 예의염치를 느끼고 구별)을 못합니다. 혼을 가진 개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개가 부끄럽다고 바지를 입고 나옵니까? 사람은 더워서 옷을 벗고 있다가도 사람이 오면 옷을 주워 입는 것은 영이 있기에 자기 의식을 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람의 혼도 영이 있기 때문에 자기 의식을 하고 무한한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이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를 믿어 죄씻음 받고 영이 구원받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생을 소유하여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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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ar:B:(1254, 바라) 만들다, 창조하다 create

1. 바라(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창조하다, 만들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3회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 피엘형으로 사용되었다.

바라는 '창조하다' create라는 기본 의미를 지닌다. 바라는 창조 기사에서 등장하는 야차르(rx'y: , 3335: 모양 짓다, 형성하다)와 아사(hc;[; , 6213: 행하다, 형성하다, 만들다)와 구별되는데, 야차르는 주로 어떤 물체의 형태(모양을 만드는 것이나 형성하는 것)를 강조하고(창 2:7, 창 2:8), 아사는 자주 바라와 상호 교대로 사용되어 단순히 창조 과정에서 관련된 대상들을 조성하거나 만드는 행동을 나타내는 반면에 바라는 그 물체에 대한 창시를 강조한다.

(a)  칼형에서 동사 바라는 오로지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나타내는데만 사용된 순전한 신학적 용어이다. 동사 살라흐(jl's; , 5545: 용서하다)가 하나님의 용서에만 사용된 것과 비교할 만한다.

바라의 이러한 독특한 용법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창조 개념에 특히 적절하다. 바라는,

(l)  관련된 대상의 개시의 개념을 담고 있으며,

(2)  항상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며,

(3)  창조된 대상의 완전한 새로움을 강조하며,

(4)  무에서 창조라는 암시를 전달한다.(T.E. Mccomiskey).

폰 라드(Von Rad)는 그의 명저 창세기 주석에서 바라, 곧 '창조하다'란 동사는, 한 편으로는 전혀 힘들이지 않는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재료에 대한 진술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무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란 의미를 포함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정당하다.

창조 기사의 공공연한 진술에서 사용된 바라의 용법은 그 당시에 물리적인 현상들이 존재하게 되었고, 그 물리적인 현상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창조된 형태 이전에는 어떤 존재도 없었다는 암시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무에서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가 창세 전에 그의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구절들에 확실히 함축되어 있다(시148:5; 잠8:22-27). 본 회퍼는 '하나님은 전적으로 무에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바라는 사 41:20에서 하나님께서 새롭고 다른 것을 실행하시는 회복 때에 일어날 변화에 대해, 사 45:8에서 새로운 상태와 환경 곧 의와 구원의 창조에 대하여, 렘 31:22에서 자연 질서에서 일어날 근본적으로 변화한 새 일(한 남자를 안는 여인)의 창조에 대해, 사 65:17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그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실 것을 기도하였으며(시 51:10)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 안에 새 영을 넣어주실 것에 대한 간구와 결합시켜 생각하고 있다(참조: 민 16:30, 사 4:5, 사 65:18).

독특한 강조점을 지닌 바라는 가장 자주 사용된 것이 우주적이고 자연적인 현상들의 창조를 묘사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라는 하늘과 땅(창 1:1, 창 2:2, 사 45:18), 인간(창 1:27, 창 5:1, 창 5:2, 창 6:7, 신 4:32, 시 89:47, 사 45:12), 하늘의 모든 것(사 40:26), 하늘(창 42:5), 땅의 끝들(창 40:28), 남북(시 89:12), 바람(암 4:13), 모든 생물(창 1:21), 개인(말 2:10, 전 12:1), 장인과 파괴자(사 54:16), 국가로서 이스라엘(사 43:15), 야곱(사 43:1), 이스라엘의 씨(사 43:7), 흑암과 악(사 45:7), 입술의 열매(사 57:19), 고라 자손의 멸망(민 16:30), 시온산 위에 구름과 화염(사 4:5)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단어의 용법이 나타내주는 신학은 분명하게 정의되는 신학이다. 하나님의 능력의 광대하심은 창조에서 예증되었다. 이것은 약한 자(사 40:26, 참조: 사 40:27-31)와 하나님의 목적이 역사에서 전개된다는 것(사 42:5, 사 45:12)을 암시해 준다. 창조는 하나님의 위대함(암 4:13), 명령(사 45:18), 그리고 주권(시 89:12, H13)을 나타낸다. 인류학적으로, 말 2:10에서 인간의 일반적인 창조는 일치를 위한 탄원이 된다. 그리고 시 89:47, H48에서 인간은 무익하게 창조된 것으로 간주된다.

(b)  니팔형에서 바라는 '창조되다, 창조함을 받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라는 천지(창 2:4), 피조물(시 104:30), 인간(창 5:2), 하늘(시 148:5)이 창조된 것을 묘사한다. 바라는 출생에 관해, 개인이 창조함을 받는 것(겔 21:30, 겔 28:13, 겔 28:15), 백성이 창조함을 받는 것(시 102:18)을 묘사한다.

니팔형에서도 칼형에서와 같이 하나님에 의한 새로운 일의 개시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사 48:6, 사 48:7에서 새것들의 창조에 대해 사용되며, 출 34:10에서 결코 이전에는 보여진 적이 없는 새롭고 놀라운 일에 대해 묘사한다.

(c)  피엘형에서 이 단어는 '베어 넘기다, 베어버리다'를 의미한다.

① 수 17:15, 수 17:18에서 산림을 베고 개간이나 개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② 겔 23:47에서는 칼로 사람을 베어 버리거나 넘기는 것, 즉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 군대가 그들을 돌로 치며 칼로 죽이고 그 자녀도 죽이며 그 집들을 불사르리라".

③ 겔 21:19에서 하나의 표시로서 나뭇가지나 묘목을 베어 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인자야 너는 바벨론 왕의 칼이 올 두 길을 한 땅에서 나오도록 그리되 곧 성으로 들어가는 길 머리에다가 길이 나뉘는 지시표를 하여".

2. 바라(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뚱뚱하다, 살찌다, 비대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삼상 2:29에서 1회 나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참조: BDB; T. E. Mccomiskey; TBC). 

**창1:26..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hc;[;(6213, 아사) 일하다, 행하다, 만들다, 형성하다, 이루다

아사(동사)는 기본 어근이며, '일하다, 행하다, 만들다, 형성하다, 이루다'를 뜻하며, 그 기본 의미는 '행하다, 만들다'이다. 이 단어는 많은 표현에서 항상 동일한 기본 개념을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630회 나오며, 칼형, 니팔형, 푸알형으로 사용되었다.

(a)  아사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서 매우 자주 나타나며, 이는 중요하고도 매우 흥미롭다.

바라(ar:B: , 1254)는 칼형에서 (1) 관련된 대상의 개시, (2)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 (3) 창조된 대상의 완전한 새로움, (4) 무에서 창조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아사는 의미의 영역이 훨씬 넓으며, 어떤 특수한 어감을 거의 지니지 않은 채 대상의 형성을 주로 나타낸다. 아사는 자주 바라와 상호 교대로 사용되어 단순히 창조 과정에서 관련된 대상들을 조성하거나 만드는 행동을 나타내는 반면에 바라는 그 물체에 대한 창시를 강조한다(참조: 창 1:1).

창 1:7에서 하나님께서 '창공(궁창)이 있으라'고 명령하셨으면 창공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공을 만드셨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창공이 있으라는 명령이 창공이 실존하기에 불충분함으로 보충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진 이후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계속적으로 발휘되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성령의 역사를 감지할 수 있다.

아사는 하나님께 사용되면 흔히 역사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활동을 강조한다. 이러한 문맥들은 구약성경 신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 즉 하나님은 초월적이실 뿐만 아니라 역사 안에 내재하셔서 그의 주권적인 목적을 이루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모세는 애굽에서의 하나님의 크신 행사들을 회상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백성들에게 상기시킬 수 있었다(신 29:1).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들에게 행사신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심을 증거해 준다(수 23:3). 솔로몬은 봉헌 기도에서 하나님께서 "행동하실" 것을 간청한다(왕상 8:39). 아사는 종종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대해 사용되어(수 24:17, 시 98:1, 사 25:1)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내재하심에 관하여 크게 강조함을 다시 증명한다.

아사는 구약성경의 그 밖의 곳에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여러 측면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시 86:9, 시 95:5, 시 96:5).

(b)  아사는 윤리적인 의무의 개념으로 종종 사용된다. 언약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행하라'는 명령을 자주 받는다(출 23:22, 레 19:37, 신 6:18, 등). 이 개념이 나타나는 무수한 문장은 하나님께 윤리적으로 응답하는 것의 중요성을 입증해 준다. 여기에서 응답은 단순한 정신적인 추상적 개념을 넘어선 것이며, 논증할 수 있는 행동에서 분명이 증거되는 순종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아사는 선악간에 행하는 것(창 3:14, 창 20:10, 왕하 12:3, 왕하 14:13, 왕하 8:18, 왕하 8:27, 신 16:12, 신 30:8, 민 15:39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사는 죄, 잘못에 대해 사용될 때 '저지르다, 범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며(호 6:9), '~에 대하여 행동하다'(슥 1:6), 그리고 충고를 따른다는 의미에서 '따르다'(삼하 17:23)를 뜻한다.

(c)  아사는 어떤 것을 만들다(출 20:4, 신 9:12, 창 3:21), 전쟁하다(창 14:2, 수 11:8, 신 20:12, 신 20:20), 친절하게 대하다(삿 1:24), 신실함을 보여주다(창 32:10), 제물을 드리다(출 10:25), 어리석게 행동하다(신 22:21), 희생제물을 드리다(출 10:25), 유월절을 지키다(출 12:48), 복수하다(삿 11:3), 식물이 열매를 맺다(창 1:11), 음식을 준비하다(창 18:7 이하), 직무를 행하다(왕하 17:32), 화해하다(사 27:5), 제사장들을 세우다(왕상 12:31, 왕상 13:33), 사용하다(삼상 8:16), 보내다(전 6:12) 등을 의미하거나 그런 의미를 구성한다.

(참조: T. E. Mccomiskey; BDB; KB). 

**창2: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rx'y:(3335, 야차르) 형성하다, 만들다, 고안하다

야차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형성하다, 모양으로 만들다, 만들다 form, fashion, 고안하다 fram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0회 나오며, 칼, 히필, 푸알,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a)  칼형에서 이 단어는 '형성하다, 모양으로 만들다, 만들다, 고안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가 많은 구절들에서 바라(창조하다 create) 및 아사(만들다 make)와 함께 동일 의미를 지닌 병행어로 나오기는 하지만, 이 단어의 기본적인 강조점은 관련된 대상의 모양을 만드는 것이나 형성하는 것에 있다.

신학적 의미를 지닌 많은 히브리어 단어들과 마찬가지로, 어근 야차르는 신적인 기능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기능에 대해서도 사용되는 것 같다. 이 단어가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 이 단어는 '도공'(potter) 즉 흙으로 형성하거나 만들어내는 자를 의미하는 분사형으로 가장 자주 나온다. 이 단어는 "도공"이 예언적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도구가 되는 예언서들에서 자주 이런 형태로 사용되었다(사 29:16, 렘 18:2, 렘 18:4, 렘 18:6, 슥 11:13).

"만드는 것"의 개념은 사 44:9, 사 44:10, 사 44:12에서 특히 분명하다. 여기에서 우상은 해머로 모양 지어진 것(야차르)으로 묘사된다(사 44:12). 합 2:18에서는 새긴 우상을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언급한다. 이와 똑같은 개념은, 악한 통치자들이 나쁜 짓을 저지를 방법을 궁리하거나 고안해내기 위해 율법을 이용한다고 하는 시 94:20에서의 이 단어의 용법에서 증명된다: "율례를 빙자하고 잔해를 도모하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교제하리이까".

야차르는 하나님의 기능에 사용될 때,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가장 자주 나타낸다.

이 단어는 땅의 먼지를 가지고 인간과 짐승을 만드는 도공이신 하나님의 기능을 묘사한다(창 2:7, 창 2:8, 창 2:19).

이 단어는 우주(사 45:18), 땅 그 자체(렘 33:2) 그리고 자연 현상들(암 4:13, 시 95:5)의 창조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들에서 바라(창조하다 create)나 아사(만들다)와 관련하여 나온다.

또한 시 33:15, 시 74:17, 시 94:9, 렘 10:16, 렘 51:19, 슥 12:1도 참조하라.

야차르는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어떤 것을 궁리하거나 고안한다는 의미로도 나온다. 이 단어는 여호와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계획 뿐만 아니라(렘 18:11) 그의 예정된 목적(왕하 19:25, 사 37:26, 사 46:11)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야차르는 이스라엘을 존재케 한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국가를 형성하시는 것에 대해 사용된다. 이 단어는 이사야에 의해서만 이런 방식으로 사용되었으며 언제나 이런 관점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을 의미한다(사 43:1, 사 43:7, 사 43:21, 사 44:2, 사 44:21, 사 44:24).

'도공' potter을 의미하는 분사형은 사 64:7에서 하나님께 적용되는데, 여기에서 인류는 그의 손의 업적으로 나온다.

이 단어가 하나님의 창조 작업의 대상들에 사용될 때, 그 강조점은 이런 현상들을 형성시키는 것, 혹은 만드는 것에 있다. 이 단어는 어떤 물체의 모양을 짓거나 만들어내는 행위가 역시 그 물체의 시작을 암시하는 한에서만 이런 현상들의 창조 방식을 언급한다. 이런 식으로, 어근 야차르는 바라의 적절한 대리어이지만 정확한 동의어는 아니다.

(b)  니팔형에서 이 단어는 '형성되다, 만들어지다'를 의미한다.

사 43:10에서 나의 전에 어떤 신도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c)  푸알형에서 이 단어는 '예정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시 139:16에서 하나님의 목적에서 예정된 날을 묘사한다.

(d)  호팔형에서 이 단어는 '만들어지다'를 의미한다.

사 54:17에서 '만들어진(제조된)' 기계를 언급한다: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참조: T. E. MCCOMISKEY;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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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있는 질료로 만드심 --아사 : 물로, 뻘로, 흙으로 ---바다물고기(물)와 하늘의 새들(뻘), 땅의 짐승들과 곤충들(흙)(( 바다와 땅이 만들어 내도록 명령하여 산 혼이 됨)), 사람((직접 손으로 흙을 사용하여  지으시고 이에 더하여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써 영을 가진 생령/산혼이 됨))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심(창조)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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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1 사람의 영의 기원 창세기 2:7 말라기서 2: 13-16 :::김준식목사 

I. 천사의 영과 사람의 영   

1)  천사의 영

우주에 세가지 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천사의 영, 사람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스스로 계시는 영이요, 창조의 영이요, 살리는 영입니다. 그러나 천사의 영은 피조된 영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영은 피조의 영이요, 사는 영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지으실 때에 각각의 천사에게 각각의 영을 부여하셨습니다. (말라기 2: 15).   

천사의 영은 한번 만들어 지면 영원 불멸입니다.  천사가 범죄하면 구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 각각의 영들을 위해 주님이 그 대가를 치루시기 위해 천사들의 수 만큼 죽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처음부터 창조하실 때에 천사의 구원에 대해서는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사탄과 그 무리들은 구원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천사들은 부리는 종으로 만드셨습니다(히브리서 1:14). 천사도 형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몸은.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2) 사람의 영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천사들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만드셨습니다. 천사들은 부리는 종으로 만드셨지만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창조하셨습니다. 천사들은 한 번에 많은 개체로, 각각의 형체와 각각의 영으로 만드셨지만 사람은 한 영과 한 개체만 만드셔서 그 한 개체 즉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하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인류가 번성하도록 구상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구원도 계산하셨습니다. 그 구원의 계획 속에는 사탄도 포함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포함시킨 것입니다. 사탄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인간의 범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서 많은 인간들 중에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 될 자들을 선택하는 방법을 계산하셨습니다.

 II.  인간의 영의 기원

사람의 영의 기원 즉 우리의 실제적 존재인 영이 어떻게 생겨나느냐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그 속에 들어가는 영이 어떻게  생 겨나느냐하는 것입니다. 몸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줄은  알지만 사람의 영혼은 어떻게 생겨나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창세기 2:7말씀에 하나님이 사람,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 즉 아담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이후의 사람들의 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이 문제는 왜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며 그리스도는 무죄한 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영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는 세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재설,  창조설, 분리(분배)설입니다.

 1. 선재설

선재설이란 인간의 육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많은 영들을 창조해 두셨다는 설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모태에서 나올 때마다 천사들이 영을 하나씩 아이에게 넣어 준다는 것입니다. 아직 육체속에 들어가지 못한 영들은 빨리 육체와 결합하여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몰몬교는 이 선재설을 믿기 때문에 일부다처제를 하여 될 수 있는데로 많은 자녀를 낳아 좋은 일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 선재설은 희랍의 플라톤이나 유대 랍비들도 받아들였고, 교부 오리겐도 이 설을 주장했습니다. 선재설은 하나님이 영을 먼저 만드시고 육을 후에 만드셨다는 논리가 되겠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 아담을 만드실 때에 흙으로  몸을 먼저 만드시고 그 후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영을 만드셨다는 성경 말씀에 위배됩니다. 또 아직 육과 결합되지 않은 영들은 죄가 없겠기에 태중에 있는 아기는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중에 태어난다고 한 말씀, 이사야 48:8, 시 51 : 5 말씀에 위배되며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롬 3:10) 는 말씀과도 위배됩 니다.

 2. 창조설

창조설은 하나님이 지금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을 창조하고 계신다는 설입니다. 즉 모태에서 육체가 나오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도 지어 육체 속에 넣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설은 육체와 영을 구별하여 설명하는데 편리하여 칼빈을 비롯해서 많은 개혁파 계통의 신학자들이 믿어 왔습니다. 히브리서 12:9에서는 육체의 아버지와 영의 아버지를 구별합니다.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해서 육체의 아버지, 영의 아버지를 구별합 니다.

 육체의 아버지는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증조, 고조, 조부, 아버지가 있습니다. 영의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느냐 고 주장합 니다. 그러므로 창조설은 영과 육을 구별하는데 편리합니다. 예수가  무죄한 분임을 설명하는데 편리합니다. 즉 그분은 죄 없는 영을  가졌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죄 중에 태어난다는 원죄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일일 이 영을 별도로 창조하시는 것이라면 그 창조된 영은 깨끗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머니 뱃 속에서부터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시편 51:5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영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성령으로 거듭난 후의 일이지 그 이전의 불신자일 때는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고 부르지도 않습니다(로마서8:7)..

 3. 분리설(분배설)

 분리설은 모든 인류의 영은 아담의 영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이랍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만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말라기 2:15에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 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영을 많이 지을 수도 있지만 사람의 영은 많이 만들지 않으시고 아담의 영 하나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와의 영도 아담에게서 분리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함께 범죄하므로써 그 영들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의 영은 아버지 아담의 영에서 분리된 영을 받아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영의 기원은 아담의 영 하나로부터 분리됩니다. 현재까지 분리설이 인간의 영의 기원을 제일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III. 어찌하여 하나의 영만 지으셨나이까?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했습니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자가 되어 범죄했기에 모든 인간이 아담으로부터 분리된 영을 받았으므로 아담이 지은 죄 아래에 묶이게 됩니다. 그런데 또한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대표자가 되셔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으므로 경건한 자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5:18, 19절에, “그런즉 한 범죄로 말미암아  많 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 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했습니다.

 만약 사람들의 영을 각각 따로 지으셨다면 아담의 죄가 다른 사람에게 전가되지 않으며, 각자가 지은 죄는 각각 해결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은 천사람 만 사람의 죄를 담당하려면 천번 만번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에 우리 모두의 죄를 사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담에게서 분리(분배)된 한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 28에,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 째 나타나시리라’했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범죄하면 죄사함이 없습니다. 아담의 아내, 하와도 남자에게서 났습니다. 고린도전서 11:8에,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은 전 인류를 대표한 자입니다.

분리설은 인간의 원죄를 쉽게 설명합니다.

즉 아담이 죄를 범하여 그 죄로 물든 영에서 분리(분배)되어 나온 영들도 이미 죄로 오염되어 버린 것입니다. 로마서 5:12 말씀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나니’라고 말했습니다. 즉 아담의 범죄는 전 인류의 범죄요 그의 사망은 전 인류의 사망이었습니다.

 분리설은 그리스도의 무죄도 쉽게 설명합니다. 여자는 자녀들에게 인격적, 생리적 유전을 할 수 있지만 남자는 이것들 외에 영을 유전시킵니다. 따라서 자녀는 남자의 성씨를 따릅니다. 즉 씨는 남자로 말미암아 유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씨를 받는 밭과 같 습니다. 박씨를 심으면 박씨가 나고, 이(오얏)씨를 심으면 이씨(오얏)가 나옵니다. 박 심은 데 박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입니다. 족보를 보아도 남자의 혈통을 따릅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족보도 아브라함으로 비롯해서 부계를 따라 열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나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 아버지의 씨를 받지 않았으므로 죄 없이 출생하셨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는 무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의 무죄설을 주장하나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사람인 아버지가 있는 이상 죄인임을 면치 못합니다.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각각 구원받지 않으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자는 예수님의 영(성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은 유전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영은 사람의 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유전된 다면 조상 중 어느 한 사람만 예수 믿었어도 그 유전된 영을 받은 자손들은 저절로 천당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각각 개인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으로 비롯해 인간의 영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영의 창조자요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아버지라 부릅니다. 할아버지도 하나님께 아버지, 아버지도 하나님께 아버지, 나도 하나님께 아버지, 내 아 들도 하나님께 아버지, 내 손자도 하나님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면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우리 모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을 중심으로 천국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천당에서는 육체적, 인격적 생활이 아니라 영적 생활만이 있기에 부부관계, 부모 자식관계, 형제 자매관계 등 모든 인간관계는 다 사라지고 오직 믿음의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 성도의 관계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요, 구원받은 성도들의 관계는 형제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 다. 마태복음 22:30에,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천사들의 관계는 인간관계가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믿음의 관계만 있습니다.

 IV. 적용

 말라기 2:13-16절 말씀에서 사람의 영은 하나라고 말씀하시는 의도는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 여기서 ‘경건한 자손’이란 히브리원문에는 “하나님(엘로힘)의 씨”라는 의미로 되어 있습니다.(= 곧, 예수그리스도)  하나님께서 한 영을 창조하신 것은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씨를 얻기 위함이란 것입니다.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해서는 가정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파괴되면 사회가 파괴되고 사회가 파괴되면 세상이 음란한 영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회는 멸망하게 됩니다. 사람의 영은 (그 근원상)하나임으로 사람이 사람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2:13-14 에,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이까 하는 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신의의 언약 깨뜨림)를 행하도다.”하셨고 15절 하반절에도 “…..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했으며 16절에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했습니다.

 오늘날도 가정폭력이 극도로 심각하지만 그때도 마찬가지였는가 봅니다.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를 학대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아내를 내어쫓는 일로 궤사를 행치말라고 본문에서 세 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궤사를 영어성경 NIV에서는 ‘Breaking Faith’라고 합니다. 궤사란 ‘남몰래 행동하다’ ‘속이다’ ‘배반하다’ 아내를 학대하고 내어쫓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이방인들과 결혼함으로써 여호와의 거룩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첫째는 같은 영, 한 영을 가진 아내를 학대하고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요 둘째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인류구속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가정에 들어와서 남편으로 하여금 폭력을 휘두르고 이혼을 하게하고 가정을 파괴함으로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가정 폭력이 심각한 것은 큰 죄악입니다. 이것은 이혼으로 연결되는데 이혼은 가정파괴가 되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성적문란으로 이어지며 사회적 성적문란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회적 성적문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기록은,  세가지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에서 시작되는 노아시대의 홍수심판입니다. 이 홍수심판의 원인이 많이 있겠지만 성경에서 보여주는 원인이 누가복음 17:26, 27에서 볼 수 있 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 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에서 ‘장가들고 시집가더니’에서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이 무엇이 죄이겠습니까? 그러나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이 심판의 원인이 됐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결혼상태를 보여줍니다. 한 사람이 한 번만 장가가야 하고 한 여자가 한 번만 시집 가야 하는데 이혼하고 결혼하고 또 이혼하고 또 시집, 장가간다면 가정이 파괴된 상태며 그 결과로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심각하게 혼란된 상태였음을 보여줍니다.

--두번째 경우는 창세기 19장에서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사건입니다.  아시다시피 소돔과 고모라 사회의 성적 문란이 멸망의 원인이었음을 봅니다.

--세번째 경우는 사사기 20장에서 에브라임 지역에 사는 어떤 레위인의 첩의 살인 사건에서 베냐민지파의 주거지인 기브아 사람들이 동성연애 집단이었는데 이들이 그 여인을 윤간한 나머지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브아 사람들 뿐만 아니라 베냐민 지파 사회 전체가 이런 사회적 성적문란으로 생긴 끔직한 문제를 하나님의 법에 따라 처결하려 하지 않고  성적문란의 죄를 옹호함으로 인해 이스라엘 11지파와 베냐민 한 지파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나 베냐민 지파가 패망하게 되는데 베냐민 지파 용사 2만 5천이 죽임을 당하고 베냐민 남녀노소가 다 죽고 군인 600명만 남았을 정도였습니다. 이 군인들이 아내를 가질 수 없어 이스라엘 11지파가 곤란을 당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쑥대밭이 되도록 베냐민이 멸망한 것은 사회적 성적 문란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이 세가지 사건들을 두고 생각해 볼 때에, 모두 다 성적 문란이 그 원인이었는데 그 결과는 모두 심판과 멸망이었고 결국 하나님의 경건한 자손을 갖고자 하는 목적에 방해가 되었습니다. 

말라기 2장은 진실로 마지막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전 세계 각국의 가정의 폭력상황에 대한 유네스코 통계조사가 나와있는데, 각국의 가정폭력에 대한 통계결과는 매우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가정폭력은 가정의 파괴를 가져오고, 가정 파괴는 성적 문란을 통한 사회 파괴로 이어집니다. 현재 가정폭력이나 성적 문란은 세계적 현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마지막 세대에 도달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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