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9.11.19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권위/권세 능력 권능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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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7:12]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Saying, Amen: Blessing, and glory, and wisdom, and thanksgiving, and honour, and power, and might, be unto our God for ever and ever. Amen.(KJV..NASB) (NIV)saying: "Amen! Praise and glory and wisdom and thanks and honor and power and strength be to our God for ever and ever. Amen!" (AMP) “Amen! Blessing and glory and majesty and wisdom and thanksgiving and honor and power and might belong to our God forever and ever. Amen.”


[마28]

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Authority.엑수시아..주어진 법적 위치에서 한정된 책임과 의무, 곧 뚜렷한 목표 달성을 위해 허용된 구체적-실제적인 지도-통제-집행이나 영향력을 실행할 수 있는 권리/권세/권위.....체포권/불체포 특권...등등....한편 보통 뒤나미스로 쓰여지기도 하는 power는 권세-통제-영향력의 효과가 그대로 발현되게 하는 실제적 합목적적 능력(반면 육체적 실행력은 strngth/might로 대개 표현)...타인의 행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며, 그에 합당한 지식과 기술의 보유자에게 주어짐...때로 혼용하기도 함....행1:8의 권능의 원어적 표현은 뒤나미스...이제, 주예수님의 공생애시작시점에 그러하셨듯이  위로부터 부으시는 성령세례로 성령충만해진 제자들은 저마다 마28:18-20에 따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께서 주JC께 주셨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사랑-평안-성령(생명의 영)을 나누어주신 주JC께서 친히 또한 세상끝날까지 함께 내주하시며 한 영으로서 돕는 상태이므로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고전6:17]의 그 믿음으로 행하는 이들은  power+authority 를 합한 성령임재를 덧 입는 권능의 충만을 받은 상태이므로 <권능>으로 번역한 것은 당연..그러므로 참되게 믿는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재현이라 본다)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일5장]

18.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We know that no one who is born of God sins; but He who was born of God keeps him, and the evil one does not touch him.

19.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We know that we are of God, and that the whole world lies in the power of the evil one.

20.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And we know that the Son of God has come, and has given us understanding so that we may know Him who is true; and we are in Him who is true, in His Son Jesus Christ This is the true God and eternal life.

21.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Little children, guard yourselves from idols.  


[고후10]

3.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4.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성령의 능력)이라....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AMP] 3.For though we walk in the flesh [as mortal men], we are not carrying on our [spiritual] warfare according to the flesh and using the weapons of man. 4 The weapons of our warfare are not physical [weapons of flesh and blood]. Our weapons are divinely powerful for the destruction of fortresses. 5 We are destroying sophisticated(qhrwkqeksksgks) arguments and every exalted and proud thing that sets itself up against the [true] knowledge of God, and we are taking every thought and purpose captive to the obedience of Christ, 6 being ready to punish every act of disobedience, when your own obedience [as a church] is complete. [NASB] 3.For though we walk in the flesh, we do not war according to the flesh, 4. for the weapons of our warfare are not of the flesh, but divinely powerful for the destruction of fortresses. 5.We are destroying speculations(추측) and every lofty(고상한..높아진) thing raised up against the knowledge of God, and we are taking every thought captive to the obedience of Christ, 6.and we are ready to punish all disobedience, whenever your obedience is complete. [KJV] 3.For though we walk in the flesh, we do not war after the flesh: 4.(For the weapons of our warfare are not carnal, but mighty through God to the pulling down of strong holds;) 5. Casting down imaginations(상상), and every high thing that exalteth itself against the knowledge of God, and bringing into captivity every thought to the obedience of Christ; 6.And having in a readiness to revenge all disobedience, when your obedience is fulfilled.


[엡6].

[마18]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단10:12, 13]

.사탄/악령들의 위계질서 ..마귀/사탄(통치권자...JC께서 직접 다루시어 이미 이기셨음...1,2,3단계에서 믿는이가 JC이름으로 마땅한 싸움을 싸워 마귀의 수족울 날마다 묶어야 함..마18:18)--(하늘)영역 : 악의 영 <군주price..Dominions>들..도시/나라/열방 등 지역관할권...단10장에서 다니엘이 본 바, 하나님의 때를 온전히 이루시도록 중보기도로 요청할 때 보냄받은 천사<가브리엘>을 도와 군주 미가엘이 직접 상대했던 바사 군주 마귀)..여기까지는 하늘영역--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믿는이가 상대해 할 악령중 가장 강력한 악령..그 아래는 권세, 최하급은 정사/통치자)) : 주여 나를 깨뜨리소서!! 신자 개개인의 마음[개개인]의 깨달음과 결심 통한 자세변혁이 있을 때 비로소 영적 대부흥이 일어나게 됨

10.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Finally, my brethren, be strong in the Lord, and in the power of his might.:: [능력/힘]strength : 개인적 ....might : 단체적/공동체/군사적

11.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아르케/머리, 근본,다스림, 통치, 치리..아르케고스는 임금.창시자..rulers..principalities.)와 권세(엑수시아...authorities, powers)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세상군사력들..world forces..Thrones.왕좌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spiritual forces of evil...Dominioin..지배자들/군주들) 대함이라.....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권세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For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contending only with physical opponents],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powers, against the world forces(Thrones) of this [present] darkness(현존하는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까지는 JC이름으로 믿는이가 직접 매일 결박해야), against the spiritual forces(Dominions) of wickedness in the heavenly (supernatural) places.(다니엘처럼 중보기도 통해 천사와 협력 가능

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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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power’와 ‘authority’의 관계

    행 1:8의 헬라어 ‘dunamis’를 한글성경에서는 “권능”으로, 영어성경에서는 ‘power’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나오는  [권능] ‘dunamis’는 [능력]‘power’와 [권세]‘authority’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한글에서 ‘권능’이란 말은 권세(authority)와 능력(power)을 합친 합성어이다.  이 단어의 뜻을 성경의 진술을 기초로 성경을 통하여 찬찬히 살펴 확인해 본다면... 성령세례를 받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인은 비록 수십년의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린 아이의 신앙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성령세례를 받지 않는 사역자 곧 성령님의 권능을 받지 않는 사역자는 아직 진정한 의미의 사역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케 될 수도 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한글에서 ‘권능’이란 말은 권세(authority)와 능력(power)을 합친 합성어로서 권세(authority)와 능력(power)의 뜻을 동시에 다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성령세례를 통하여 받게 되는 성령님의 권능이란 무슨 뜻인가를 살펴보자.

===눅 20:1-2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eksusia, authority)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eksusia, authority)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행 4:5-7   이튿날에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예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dunamis, power)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눅 20:1-2에서 “무슨 권세(eksusia, authority)로 이런 일을 하느냐,” 그리고 행 4:5-7에서 “무슨 권세(dunamis, power)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라고 하여 ‘authority’(eksusia)와 ‘power’(dunamis)는 전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요 17:2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eksusia, authority)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라고 하였고, 

.......마 28:18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eksusia, authority)를 내게 주셨으니”라 하였고, 

.......눅 4:14에서는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dunamis, power)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라 하였다. 

.......따라서 요 17:2, 마 28:18에 기록된 권세(eksusia, authority)와 눅 4:14에 기록된 권능 (dunamis, power)은 전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eksusia, KJV는 power로 번역, NIV는 authority로 번역)을 주시니라.

===눅 9:1-2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dunamis, KJV-power, NIV-power)과(and, kai) 권세(eksusia, KJV-authority, NIV-authority)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은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마 10:1의 ‘eksusia’를 KJV에서는 ‘power’로 번역하고, NIV에서는 ‘authority’로 번역하여 ‘eksusia’는 영어의 ‘power’와 ‘authority’의 뜻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마 10:1에서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eksusia’를 주시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면서, 눅 9:1-2에서는 제자들에게 ‘dunamis’와 ‘eksusia’를 동시에 주시어 복음사역에 임하게 하시었다. 여기에서 ‘dunamis’와 ‘eksusia’가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면 문제가 생긴다. 똑같은 예수님의 똑같은 말씀을 마태와 누가가 서로 각각 다르게 기록했다면 모순이다. 그러나 ‘dunamis’와 ‘eksusia’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음으로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행 1:8에서는 ‘dunamis’를, 눅 10:19에서는 ‘eksusia’를, 눅 9:1-2에서는 ‘dunamis’와 ‘eksusia’를 주시어 복음전도와 병고침의 사역에 임하게 하시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경우에 ‘dunamis’와 ‘eksusia’의 뜻이 다르게 사용하셨다면 이는 모순이다. 그러나 ‘dunamis’와 ‘eksusia’는 서로 같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단어 중에서 어느 한 단어만 사용해도 되며, 눅 9:1-2에서와 같이 두 단어를 동시에 사용해도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눅 9:1-2에 나오는 “과”(and, kai)는 서로 다른 뜻의 두 단어를 연결시키는 접속사 “과”의 뜻이 아니라 “곧, 즉”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요 19:10-11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eksusia, authority)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eksusia, authority)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eksusia, authority)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지상의 이스라엘에 계실 때에 이스라엘 총독이었다. 

빌라도 총독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는 권세(eksusia, authority)는 로마의 황제가 준 것이다. 빌라도가 로마의 황제로부터 총독의 권세를 받지 아니했다면 그는 총독이 결코 될 수 없으며 절대로 총독이 아니다. 한 나라의 경찰관이 되려고 한다면 그는 그 나라의 시민이어야 하고 대통령이 그를 경찰관로서 임명하여 경찰로서의 권세를 주어야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가 경찰관으로서의 임명장을 받아야 경찰관이 되어 경찰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경찰관의 임명장을 받지 아니하면 그는 절대로 경찰관이 아니다. 여기에서 임명장은 ‘권위, 권세, 권능’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사회에서 어느 학교의 정식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사범학교나 혹은 특정학교에서 교사가 되기 위한 소정의 교과과정을 이수하고 정부기관으로부터 교사 자격증 내지는 교사의 임명장을 부여 받아야 한다. 비록 그가 교사가 되기 위한 소정의 과정을 이수했다고 하더라도 교사자격증이나 교사의 임명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 정식 교사가 아니다. 교사의 자격증이나 교사의 임명장은 교사가 갖게 되는 권위 곧 권세(authority)를 상징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초중고의 학교를 마치고 장성하여 어른으로서 행세를 하고 어른으로서의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면 각 나라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18세가 되어야 하고, 18세가 되었다는 출생증명서가 있어야 하고, 자동차를 운전하려고 하면 운전면허증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이 맡긴 복음사역을 감당하는 복음의 사역자들은 비록 그가 신학교를 졸업하여 목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성령세례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님의 권능(power and authority)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아직 복음사역자로서의 임명장을 받지 못한 것과 같다.

........성령세례를 통한 성령님의 권능을 받는 것은 경찰관의 임명장을 받는 것과 같으며, 교사가 되는 자격증 내지는 임명장에 해당되며,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운전면허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군병이라 말한다. 군복을 입었지만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지 아니했다면 아직 정식 군인이 아니다. 민간인이 군인이 되고자 할 경우에 군에 입대하면 군복으로 갈아입게 되고 군인이 되는 각종 훈련을 받게 된다. 이때의 군인은 분명히 군인인데 계급장이 없는 군인이다. 소정의 기본적인 군사훈련의 과정을 마치면 일등병 또는 소위의 계급장을 달게 되어 정식 군인이 된다. 계급장은 권위와 권세를 상징한다. 사관학교의 4년간의 전 교육과정을 이수했다고 하여 그는 장교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졸업과 동시에 소위라는 계급장을 부여받아야 그는 정식 장교가 될 수 있다. 계급장이 없는 훈련병, 계급장이 없는 사관생도는 분명히 군인은 군인이지만 정식 군인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십자가 군병이 된다. 십자가의 군병이 되는 조건은 예수님을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세주(Savior and Lord)로 인정하고 영접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누구든지 십자가가 군병이 된다. 십자가의 군병의 사명은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세상에서의 일반 전쟁에서 계급장이 없는 군인은 없다. 이 계급장은 그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통하여 달아준다. 

기독교에서의 전쟁은 마귀와의 영적 전쟁이다. 영적인 전쟁에 임하는 십자가의 군병들이 계급장이 없이 전쟁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왕 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의 군대의 총사령관으로서 임명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은 직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성령세례(권능충만)를 통하여 성령님께서 주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eksusia, authority, 마 28:18)를 받으셨다. 눅 3:21-22의 기록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성령님을 통하여 성령세례(충만) 곧 성령님의 권능을 부여 받은 것은 십자가 군병의 총사령관으로서의 임명식에 비유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모든 그리스도인들, 평신도, 교사,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선교사, 목사는 십자가의 군병이 되었다. 십자가의 군병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성령세례를 통하여 성령님이 주시는 권능의 계급장을 부여 받아야 한다. 성령세례를 통하여 성령님의 권능의 계급장을 받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그가 비록 모태신앙의 소유자로서 수십년을 넘게 권사와 장로의 직분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수많은 신자가 모이는 큰 교회를 이끄는 목사라고 하더라도 그는 십자가의 정식 군인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삼년 동안에 복음사역에 필요한 신학과정의 모든 교육과 마귀를 쫓은 등의 모든 실습교육을 받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을 직접 체험하였다. 3년간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이라 하더라도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권능을 받지 못했다면, 즉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면 그들은 아직 십자가의 정상적인 군병이 결코 아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통해 권능을 받지 아니한 제자들에게 복음사역에 임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아니하시고 대신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리시었다.

===눅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행 1:4-5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이상의 구절들을 바르게 해석해서 그대로 적용해야 성령세례의 뜻이 제대로 드러날 것이다. 눅 24:49, 행 1:4-5, 행 1:8의 기록은 문자적인 표현이 다르지만 같은 뜻을 가진 기록이다. 눅 24:49과 행 1:8의 한글성경에서 ‘능력과 권능’은 헬라어 원문으로는 ‘dunamis’인데 단순히 ‘power’의 뜻이 아니라 ‘authority’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눅 24:49에서 말하는 “능력으로 옷 입히운다,” 행 1:8에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의 뜻은 군복에 권위와 권세의 상징인 계급장을 단다는 뜻이다. 계급장은 바로 권위와 권세(authority)를 의미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군병이다. “성령세례를 받는다. 성령님의 권능을 받는다”는 것은 군병의 계급장을 단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의 교육과 실습을 마친 십자가 군인이지만 아직 성령세례를 통하여 권능의 계급장을 달지 아니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들에게 예루살렘이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제자들이 복음사역자로서 눅 24:49, 행 1:4-5, 행 1:8, 행 2:3-4의 관문을 통과하지 아니했다면 그들은 정식 군병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관문을 통과하여 권능의 계급장을 단 십자가의 군인으로서의 사역을 정식으로 오순절 날로부터 시작하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주님의 군병이 된 신학자, 목회자, 선교사, 전도사들을 위시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반드시 눅 24:49, 행 1:4-5, 행 1:8, 행 2:3-4의 성령세례를 위한 오순절 다락방의 임관식을 통과해야만 한다.  

오늘날에도 120명의 제자들고 같이 성령세례를 위한 오순절 다락방의 임관식을 통과하지 아니했다면 그는 예수님이 임명한 신학자, 목사, 선교사, 전도사들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도, 외관상으로 볼 때 그럴듯 해 보이는 신학자들, 목사들, 선교사들, 전도사들, 장로들 중 많은 이들이 어쩌면 성령세례의 임관식을 통과하지 아니한 상태에 있을 수 있다...나는 어떠한가...[주와 합한 한 영으로 사는가]..면밀히 점검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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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oma(3686, 오노마) 이름 nam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오노마(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

(b)  '명성, 평판'

(c)  어떤 사물에 대응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

(d)  속격과 함께 사용되어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지칭

(e)  문법에서는 '명사', 또는 '단어'

(f)  파피루스에서는 책이나 목록의 명칭에 근거하여 '법적인 제목', '설명 항목', 금융업에 있어서 실제적인 평가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오노마는 70인역본에서 약 100회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솀(이름)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오노마는 신약성경에서 22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사람과 다른 존재들에 대한 이름.

①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 위에 적힌 열 두 사도의 이름들(계 21:14)과 성문 위에 적힌 열 두 지파의 이름들(계 21:12)은 하나님에 속한 옛 백성들과 새 백성들의 최종적 단일성을 나타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름으로 자기 양을 부르시고 그들을 개인적으로 아심으로써 자신이 선한 목자라는 것을 증명하셨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 10:3).

③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새 이름들을 지어주시고 그들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의 일을 맡겼다(마 10:2이하; 막 3:16이하; 눅 6:14이하).

막 3:17에서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니"라고 언급한다. 어떤 사본들은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열 둘 모두에게 적용시키고 있으나, 이것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이 단어는 아마도 아람어 혹은 히브리어 문구를 음역한 것 같다. 보아네는 명백하게 베네(~의 아들들)를 나타낸다. - 르게스는 우뢰를 의미하는 일상 단어가 아니라, 히브리어 로게스(동요, 흥분, 격노; 참조: 욥 37:2, 우뢰); 아람어 레가즈(분노); 혹은 히브리어 레게쉬(군중; 참조: 시 55:14[15]; 후에 히브리어에서는 소동, 진동; 참조: 아람어 리그샤[소란])등을 나타냈을 가능성이 있다. 레게쉬와 관련된 아랍어는 '우뢰'를 의미한다. 렌델 해리스(J. Rendel Harris)는 이 어구가 그들이 쌍둥이임을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으나 보다 유력한 해석은 막 9:38과 눅 9:54에 관련된 감정의 격발에서 찾는다. 베드로의 이름이 반석을 의미하고 따라서 하나의 약속을 수반하고 있는 것 같이 아마도 또한 그들의 증거가 우뢰처럼 강력할 것이라는 함축된 약속이 있을 것이다(C. E. B. Cranfield).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사실(눅 10:21)은, 그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속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 승리자가 받는 새 이름은 그리스도 그 자신과의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교제를 표현한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④ 악령들도 역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이름들은 그들의 어떤 본성 혹은 힘을 함축하고 있다: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막 5:9). 예를 들면 계 13:1에서 그 "짐승"은 참람된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즉 그 짐승은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에게만 속하는 이름들과 경칭들을 가진 것이다. 짐승의 이름은 수 Number에 포함되어 있으며(계 13:17이하), 그 짐승을 신봉하는 자들도 역시 그 수를 가지고 있다(계 13:17; 계 15:2). "큰 음녀"(계 17:1, 참조: 계 17:3) 즉 "큰 바빌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계 17:5)의 이름은 계 12장에 기록된 여자와 대조되어 있는데 그 여자는 남자 아기를 뱄으며, 신실한 모든 자의 어머니이다(참조: 계 12:4이하, 계 12:17과 더불어).

(b)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계시에서 나타난다. 인격자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인격으로 향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통하여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데서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나타내신다: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2, 요 17:26). 예수님 오직 그만이 하나님의 이름을 인간에게 아버지의 이름으로서 나타내신다는 사실이 이와 조화를 이룬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 17:6). 요 12:28에서 "아버지",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이름"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존"된다는 것은, 그들이 효력이 발생하는 힘의 영역에서 살며, 그러한 힘은 그들을 멸망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들을 서로 단결케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이하). 하나님의 이름을 아버지로 선포하는 목적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또한 믿는 자들 안에서 발견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6). 요한복음의 이와 같은 진술들에서, 특히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의 진술들에서(요 17장)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에 대한 구약성경 증언에서 기독론적인 해석을 발견한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고대 성서 전승의 노선을 취하여 그 노선을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계시는 한 인간의 이름 즉 예수 그리스도와 결속돼 있다(참조: 이것에 대하여 마 11:27과 마 28:18과 더불어 요 3:35; 요 5:20; 요 13:3; 요 7:29; 요 10:15; 요 17:25)고 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심과 그의 아들되심의 증거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활동하신다(막 11:19이하; 요 10:24이하). 그의 재림시에 그는 "주의 이름으로" 오실 것이다(마 23:39). 하나님의 이름이 아들과 성령의 이름과 합쳐질 때, 이러한 것은 완전함과 풍성함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정확한 삼위일체의 관용어구가 없지만 이것은 삼위일체의 사상이다. 주기도문의 첫 간구내용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참조: 사 29:23; 겔 36:23). 하나님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죄를 인하여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는다. 기도로써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은, 그의 이름 그 자체의 신성화와 그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무시하는 자, 또는 자신의 주인에게 불복하는 기독교인 종은 사실상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이다: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4).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찌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딤전 6:1). 계 13:6에 나타난 그 짐승은 또한 마지막 날에 재앙으로 환란을 겪는 자들이 하는 것 같이(계 16:9)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장막을 훼방한다.

(c)  예수님의 이름.

① 예수님의 생활과 활동의 의미는 예수님의 이름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마 1:21; 마 1:23). 예수님께서는 아들이라는 빼어난 이름을 가지셨다(히 1:4이하).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 19:13; 참조: 요 1:1). 주(Lord)라는 하나님의 이름도 예수님의 이름이다(빌 2:9이하; 계 19:16). 이에 대하여 그는 자신 혼자만이 아시는 이름(계 19:12)과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는 이름(계 19:13)을 가지고 계신다. "예수"라는 이름은 간단히 "이름"으로 대치될 수 있다(행 5:41; 요삼 1:7; 참조: 유대인들이 여호와 대신 솀을 사용). 예수님 안에서 계시된 구원 진리의 전 내용은 그의 이름에 포함되어 있다(행 4:12; 고전6:11). 아들의 이름을 믿는 것, 즉 예수님의 메시야적 선교를 믿는 것(요 3:18)은 하나님의 명령이다(요일 3:23; 요일 5:13). 그의 이름을 믿는 자는 누구나 죄의 용서를 받고(행 10:43; 요일 2:12), 영생을 얻으며(요 20:21; 요일 5:13),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 3:18). 기독교인의 전체의 삶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배되며(골 3:17)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신앙의 목표이다: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살후 1:12).

예수님의 이름은 모든 나라들에 대한 선포의 기초이다(행 8:12; 행 9:16; 롬 1:5).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 대한 선포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당국자들은 사도들이 "이 이름으로 " 가르치는 것을 금했다(행 5:17이하; 행 5:28, 행 5:40). 신앙과 선포는 그 이름을 시인하는 것(계 2:13; 계 3:8)과 그의 이름으로 고난 받을 각오를 함을 의미한다(마 10:22; 마 24:9). 예수님에 대한 신앙과 충성은 그의 이름을 단단히 잡고 있는 것과 같다(계 2:13; 계 3:8). 그리스도의 이름은 영광과 연루되어 있으며, 벧전 4:14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라고 말한다(참조: 사 11:2).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교회에 속한 자들이며(행 9:14; 고전 1:2), 구원을 받는다(행 2:17-21; 롬 10:13; 참조: 욜 2:32). 그리스도인으로 불리우는 것은 그 이름 때문이다(행 11:26; 참조: 행 26:18; 벧전 4:16).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아름다운 이름"이다(약 2:7). 마지막 날의 선물들 중의 하나는 승리자들이 어린 양의 이름을 지닐 것이라는 그 사실이다(계 3:12; 계 14:1; 계 22:4).

②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관용어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을 주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감사가 그의 이름으로 드려진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20).

열방이 그들의 소망을 그 이름에 둔다: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12:21; 참조: 사 42:4). 또한 교회가 그의 이름으로(요 14:13이하; 요 15:16), 즉 그의 뜻과 교훈에 따라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속한 자들에게 주신 임무가 성취되도록 하기 위하여 기도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의 기도는 응답된다. 제자들이 예수님에 의하여 보냄을 받았으므로 그들은 그를 대신하여 그의 능력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으며, 이적과 긍휼을 베푸는 활동들을 수행할 수 있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 막 8:38이하).

부활 이후에 예수님의 이름은 계속하여 능력을 나타내었다(행 3:6; 행 14:10). 이름과 "능력"은 서로 병행하여 사용된다(행 4:7; 행 16:18). 예수께서 친히 도와 주시고 그의 이름 속에 임재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마술로 귀신을 쫓아내는 데에 그 이름을 오용하려 할 때 임재하지 않으신다(행 19:13-16). 이러한 진술들을 고려해 볼 때 여호와의 이름을 말하는 구약성경의 방식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이름에 이전되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울이 예수님에 의하여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위임과 권위를 부여 받은 자로서(고전 5:4; 살후 3:6) "예수의 이름으로" 권고하고(살후 3:6, 고전 1:10) 판단할 수 있었다.

③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침례). "이름(속)으로"를 의미하는 에이스 토 오노마라는 세례(침례) 관용문구는 세례(침례)가 상징적으로 죄의 사함을 위하여, 세례(침례)받는 자를 그리스도께 넘겨 준다는 의미이다(행 8:16; 행 19:15; 고전 1:13, 고전 1:15; 참조: 마 28:19). 이름 안에서(엔), 또는 이름을 향하여(에피) 세례(침례)를 받는다는 언급이 주어질 경우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참조: 행 2:38; 행 10:48과 더불어 70인역본 수 9:9; 삼하 22:50; 집회서 47:13). 그리스도의 충만한 구원 사역이 그의 이름에 내포되어 있으며(여호와의 구원 사역이 그의 이름에 있는 것 같이), 교회 안에서도 현존하고 계신다. 이러한 것은 개인의 세례(침례)에 의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세례(침례)받은 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속으로 붙잡혀 들어가기 때문이다(롬 6:1-11; 골 2:12; 참조: 고후 4:10).(참조: H. Bietenhard). 


[계11]

3.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ejxousiva(1849, 엑수시아) [[권세]]선택의 자유, 권리, 통치력, 권력자.....위임받은 바, 주어진 법적 권한에 따라 자유로이 합목적적 선택-결정-행동-집행을 통해 그 대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리..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엑수시아(Soph., Thu. 이래)는 엑세스티(e[xesti, 1832: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용인이나 허용되어 왔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a)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어떤 행동을 행할 수 있는 '능력' ability을 의미한다.

(b)  그 다음 이 단어는 보다 높은 사법기관이 허락한 '권리' right, '권세' authority, '승인' permission.

① 정부가 허용해 준 가능성.

② 여러 가지 사회 관계에서의 권리를 의미한다.

(c)  엑수시아는 어떤 잠재적 힘이 타고난 육체적, 정신적, 혹은 자연적인 힘들에 의거하며, 무의식적 행동들, 강한 행위들 그리고 자연 현상들 안에서 드러나는 뒤나미스라는 말과는 대조적으로, 법률, 정치, 사회, 혹은 도덕적 사건들의 영역 안에서 발휘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Plato, Definitiones 415b). 예를 들면 이 말은 늘 특별한 지위나 명령과 함께 사용되므로, 그 말은 마음대로 처분하는 왕권이나 부권 혹은 소작권(P. Qxy. 11, 273)이나, 관리들 혹은 사자들의 권한을 의미한다(Diod. Sic. 13, 36, 2; 14, 81, 6). 그 외에도 그 말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받아들이거나 행하는데 필요한 도덕적 자유를 의미한다(Plato, Definitiones 412d). 따라서 그 말은 사람에게만 적용될 뿐이지, 자연적인 힘이라는 의미로는 사용될 수 없다.

(d)  또한 이 단어는 율법에 맞서는 주제넘은 자유나 변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경우 그 문맥은 대개 법적인 명령이다.

(e)  이 단어는 파생된 의미들로 '권력있는 지위', 복수로 '집권자들이나 권력자들, 공무원, 찬미의 말, 군중' crowd, 그리고 '화려한 것' pomp을 뜻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엑수시아는 70인역본에서 약 80회 나오며, 메스샬라, 살레탄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엑수시아는 70인역본에서 법적인 의미에서 '권리, 권력'을 나타내며, 율법에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다니엘과 마카베오서에서 이 단어는 왕이나 하나님의 힘을 가리킨다. 70인역본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엑수시아를 사용함으로써, 이 용어를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주권의 개념과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능력인 하나님의 개념을 우수하게 표현해주는 용어로 소개하고 있다(참조: 단 4:14).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엑수시아는 신약성경에서 108회 나오며, 요한계시록, 누가복음, 고린도전서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엑수시아는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명령권' the power to give orders(마 8:9, 병행구 눅 7:8; 눅 19:17; 눅 20:20)을, 그리고 실제적인 의미에서는 '재판권' jurisdiction(눅 23:7)을, 그리고 복수로서는 '공직자' officials, '당국자' authorities(눅 12:11; 딛 3:1)를 의미한다. 롬 13:3의 "관원들(아르콘테스[archontes])"와 마찬가지로 1절의 "위에 있는 권세들(엑수시아이스 히페레쿠사이스)"은 (누군가 언급한 것처럼) 천사의 권세들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국가의 공직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외의 것은 블랙의 저술(M. Black)을 참조하라.

신약성경 기자들이 엑수시아와 뒤나미스(duvnami", 1411)를 모두 그리스도의 사역, 우주적인 힘의 구조에 따르는 새로운 질서, 그리고 신자들에게 부여된 권능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눅 9:1에는 두 단어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엑수시아는 성령의 은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뒤나미스(duvnami", 1411)는 기름부음 받은 그의 본질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의 엑수시아는 파송받은 그의 본질에 기초하는 것이다. (1) 하나님 자신에게; (2) 마지막 날의 위임자에게; (3)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기독교인에게 속해있는 능력, 권세 그리고 행동의 자유가 바로 엑수시아이다.

(a)  하나님의 엑수시아.

① 하나님의 종말론적 권위는 세계사의 지배자이자 세계의 심판자로서의 그의 역할과 결부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권위로 마지막 날과 때를 결정하며, 역사의 종말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계신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행 1:7). 하나님은 인간들을 영원한 파멸로 이끌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5). 우리는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자유한 분이심을 그의 예정 속에서 실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을 흙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토기장이에 비유한다(롬 9:1; 참조: 사 29:16; 사 45:9; 렘 18:6; 지혜서 15:7; 집회서 36[33]:12이하).

② 하나님은 종말론적 권세를 위임하실 수 있다. 예를 들어 천사들에게는 심판날에 처벌할 권세가 위임될 수 있고(계 6:8); 다른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받을 수 있다(계 9:3, 계 9:10, 계 9:19). 이와는 대조적으로, 천상의 권세(엑수시아이)들은 이러한 종말론적 사건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천상의 권능들이란 말은 아르카이라는 말과 함께 언급되었고, 그 말은 뒤나메이스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엡 1:21; 엡 3:10; 골 1:16; 골 2:10). 그리스도의 높아 지심은 그 권세들이 그에게 복종함을 의미한다(엡 1:21; 벧전 3:22). 그러나 아직 적대 세력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 즉 이 말은 메시야의 통치가 당분간 계속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4).쿰란 문서들에도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자연인은 흑암의 권세와 악마의 주권하에 있다(골 1:13; 참조: 행 16:18). 그 반대편에 빛의 영역과 성자의 왕국과 하나님 자신이 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악마도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적그리스도에게 세상의 통치권을 위임할 수 있다(계 13:2, 계 13:4, 계 13:12). 심지어 악마는 세상 지배권을 주겠다는 말로 예수님을 유혹하였다: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 그러나 이것을 이원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악마의 권세도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것이며 그의 활동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며, 따라서 그의 활동 범위는 제한된다: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눅 22:53). 악마의 권세에 관한 언급은 세상에 관한 비관적인 견해에서 부여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대한 기쁜 소식에서 부여된 것이다. 악마를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른 바로 그 대목에서 예수님은 악마의 파멸을 선언하신다.

(b)  예수님의 엑수시아.

①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은 악마와 귀신들이 그들이 권세를 박탈 당했다는 것을 선언한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 분은 악마의 활동을 파괴하고 악마의 지배로부터 인간들을 구해낼 권세를 갖고 계신다. 따라서 귀신 축출은 예수님의 권능에 의거한 것이며(눅 4:36), 예수님의 파송을 받은 제자들도 그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마 10:1, 병행구 막 3:15; 눅 9:1; 막 6:7; 눅 10:19). 예수님께서 치유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고, 자신의 말씀에 권능이 있음을 확증하셨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권위에 따라 행하신 것이다(마 9:2-8, 병행구 막 2:3-12; 눅 5:18-26; 참조: 시 103:3). 예수님은 자신의 종말론적 사명,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려는 목적 때문에 결국 → 바리새인들 Pharisees이 이해한 것으로서의 → 율법 Law과 충돌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주장하였던 랍비 할라카(Halachah)의 주장에 의거하여 율법의 축자적인 이해를 거부하였다(참조: 마 12:10, 마 12:12; 막 3:4; 눅 14;3; 요 5:10). 예수님의 권위는 뭇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이 가르침에서 드러날 수 있었다(막 1:22, 막 1:27; 마 7:29; 눅 4:32). 왜냐하면 그의 가르침은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달랐기 때문이다.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그들의 전통에 따른 것이었는데 반해(마 7:29), 예수님, 즉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은 모세나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 아버지 Father를 아시고 그분을 드러내실 수 있는 아들의 유일한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다(마 28:18; 참조: 마 11:27; 눅 10:22; 요 3:35; 요 13:3; 요 10:15; 요 17:25). 성전 정화에도(참조: 마 21:12이하; 막 11:11-17; 눅 19:45이하; 요 2:13-17; 출 30:13; 레 1:14; 사 56:7; 렘 7:11) 메시야적 권위에 대한 의식이 전제되어 있다.

②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위는 예수님께서 아들이시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 17:2). 그는 마지막 날의 심판권도 부여받았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 5:27). 그러나 공관복음에서과 마찬가지로 요한의 기록에서 예수님은 인간들을 심판하고자 하는 분이라기보다는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그의 능력은 강제적인 지배에 있지 않고 세상을 위해 종이 되신 절대적인 자유에 있다. 예수님은 목숨을 버릴 엑수시아도 갖고 계시며 그것을 다시 취할 권세도 갖고 계신다(요 10:18). 그를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엑수시아를 부여받았다(요 1:12).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권위의 표상은 부활 사건을 예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부활절 이후 들어 올리우심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예수님은 인자가 나라의 보좌에 오를 것이며 그에게 권능이 부여되리라는 다니엘의 환상을 성취하셨다(참조: 단 7:14).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도들"과 함께 계신다. 게다가 하나님의 권능은 강압적으로 국가들을 정복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 복음 Gospel 전파로, 즉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세상을 정복함으로써 실현된다. 외견상 지상에서의 메시야 통치로 여겨지는 것은 교회이지, → 이스라엘 Israel의 주권적인 통치가 아니다(행 1:6-8). 왜냐하면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높이 올리우심은 악한 자의 멸망과 심판과 시대의 전환점에 대한 전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좋은 소식으로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따라서 승귀하신 주님은 사자들을 파송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권세를 부여하신다(마 28:18-20). 지상에서 행해진 예수님의 사역과 비슷한 임무를 띠고 있으며, 부활절 메시지의 취지에 따라 활약하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성령을 수여할 권세를 부여 받았는데(행 8:19; 행 2:38; 행 19:6; 행 10:44-48), 그 권세는 인간을 파하는 권세가 아니라 오히려 세우는 권세이다(고후 10:8; 고후 13:10). 사도는 교회에서 종으로서의 영적인 사역을 행하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육신의 양식을 구할 권리가 있다(고전 9:4-6; 살후 3:9). 이 성구들에서 엑수시아는 '권리'나 '특권'을 의미한다.(참조: O. Betz; W. Foerster;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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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예수님의 성육신과 부활로 보이신 바 초자연적인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역량...믿는 이는 성령의 선물을 통해 JC께서 아버지께 받으신 바 JC이름의 권능 --...예를 들면 축귀, 신유, 소생케함, 기적-을 행사할 수 있는 엑수시아-권세를 지니게 됨))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duvnami"(1411, 뒤나미스) 힘, 세력, 능력, 역량.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뒤나미스(Homer. 이래)는 뒤나마이(duvnamai, 1410)에서 유래했으며,

(a)  ① '능력, 힘, 세력'

② '가능성, 할 수 있음'

③ 신체적, 지적, 영적 '힘, 능력'을 의미한다.

(b)  호머 이래로 자주 발견되는 뒤나미스는 '성취할만한 능력, 체력'을 의미하며, '군대, 전투력', 그리고 '정치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사고하는 헬라 철학자들과 의학자들은 그 개념을 체력과 정신력에 의존하는 생존하고 활동하고자 하는 힘 혹은 능력이라는 그 말의 본래 의미로 사용하였다.

뒤나미스는 자연의 영역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그 말은 더위와 추위의 기세, 식물들과 자연 요소들을 치유하는 능력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헬라 시대에 그 말은 형이상학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포시도니우스(Posidonius)는 기본적인 원소에서 생명체의 원리를 보았다.

스토아 학자들은 사방에 퍼져있는 창조적인 힘을 하나님과 동일시하였다(Alexander of Aphrodisiensis).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자로 찬양하였으며 인간들이 거룩한 힘과 합해짐으로써 구원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Corp. Herm., Poimandres, I, 26).

사람들은 특히 마술을 통해서 초자연적인 능력들을 공유하고자 하였다(I amblichus, De Mysteriis 2, 1). 병든 사람들은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 신의 능력의 실연으로 말미암아 치료 받고자 하였다(P. Oxy).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뒤나미스는 70인역본에서 약 600회 나오며, 주로 하일(138회)과 차바(113회)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일반적으로 '군사력'을 의미한다.

뒤나미스는 또한 통치자의 힘, 천국 그리고 하나님의 힘에 대해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뒤나미스는 신약성경에서 11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그리스도의 사실.

신약성경의 모든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의 힘에 관한 개념도 그리스도의 사실에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 사실은 분명히 언제나 하나님의 힘과 관련되는 구약성경의 메시야관과 관련되어 있다(참조: 사 9:5; 사 11:2; 시 110:2; 마 5:5). 이 힘은 주로 왕적인 능력이지만 예언적인 힘도 포함되어 있다(참조: 미 3:8; 행 7:22[모세]; 눅 1:17[세례(침례)요한]).

신약성경에서는 예언적인 면이 매우 두드러진다(참조: 눅 24:19). 그렇지만 그리스도는 힘을 부여받은 선지자 이상의 존재이다; 그의 전 존재는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결정된 유일 무이한 것이다. 이것은 동정녀 잉태 기사에서 성령과 지존자의 능력의 병행에서 표현된다. 형식을 묘사하려는 어떤 시도도 행해지지 않았다. 성육신은 정상적인 발생 과정을 초월하는 잉태와 더불어 시작된다. 그리스도 탄생 때 독특하고 특별한 능력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가 붙여진다(눅 1:35). 이런 사실에 의거해 볼 때, 그리스도는 그의 사역에서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자이다(눅 4:14, 눅 4:36). 하나님의 본질이 힘이므로, 힘의 부여는 성령의 선물과 결부되며, 성령의 선물은 그리스도에게 그의 권세(엑수시아)를 전달해 준다. - 이 권세는 그가 귀신을 쫓아내거나 병자를 고칠 때 행사할 수 있는 능력(뒤나미스)을 지니는 권세이다(눅 5:17; 눅 6:19; 눅 8:46). 이런 이유로, 그의 제자들이 증거한 바는 하나님께서 성령과 권능으로 예수님께 기름 부으셨다는 것이다(행 10:38). 그가 행한 일들도 뒤나메이스(복수)라고 불리워질 수 있다(막 6:2; 눅 19:37; 또한 행 2:22). 이 일들은 그 당시 세계에서 행한 비슷한 능력의 행동들과 다음의 세 가지 면에서 다르다:

① 이 일들은 마술과 관련이 없다.

② 이 일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말씀으로 행해지는데,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가 역사 속으로 들어와서 적대 세력의 지배를 전복시킨다.

③ 이 일들은 이 일을 행하시는 분에 대한 믿음과 이 일들이 행해지는 사람들의 믿음을 전제하며, 따라서 인격적인 관계가 요구된다(마 13:58; 참조: 막 9:14이하). 믿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믿음에는 능력이 있다(막 9:23). 왜냐하면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한 일들은 놀라움과 찬양을 불러 일으키며(마 13:54; 눅 19:37), 헤롯에게서는 양심의 불안을 불러 일으킨 것 같다.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마 14:2).

요한복음은 뒤나메이스를 사용하지 않고, 엑수시아나 세메이온과 함께 동사 뒤나스다이를 사용함으로써, 강조점을 행동에서 능력으로 전이시킨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 충만한 메시야적인 능력에서 행해진 세메이아는 독특한 행동들이다.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즉 그가 아버지와 교제함으로써 하나님의 권능을 지니기 때문에 그것들을 할 수 있다.

요한복음에는 뒤나미스라는 말이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예수님의 메시야 활동은 아들의 보내심에,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뜻의 통일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버지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요 5:19, 요 5:30, 뒤나타이). 그리고 그의 기적들은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드러내는 징표이다(요 3:2; 요 9:16; 요 10;21, 항상 뒤나타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반대로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실재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어둠의 세계 속에 감금되어 있기 때문이다(요 3:3; 요 8:43; 요 14:17, 우 뒤나타이). 그들은 오직 선택(요 6:44)과 거듭남(요 3:5)을 통해서 해방될 수 있다.

요한에게서 볼 수 있는 특별한 특징은

① 뒤나스다이에 유일무이한 그리스도 사건이 있다는 점.

② 이 사건 속에 있는 권능은 새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점이다. 이 권능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에서 특별하게 나타난다.

그리스도 자신의 부활은 마 22:29에 나오는 그의 말씀을 뒷바침해 준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 2:24에서 베드로는 이 부활의 권능을 매우 인상깊게 부정적인 표현으로 나타낸다: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죽음의 권세는 깨뜨려졌다. 하나님의 권능이 예수님께서 권능의 행동을 하도록 그에게 능력을 부여해 준 것처럼 또한 예수님께서 새 생명을 가지도록 능력을 부여해 준다.

바울은 고전 6:14("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과 고후 13:4("성구삽입")에서 이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전파한다: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며 그에게 권능 그 자체가 부여된 것도 아니다; 부활로 말미암아 그가 소유하게 된 것은 성육신의 외적인 약함과 대조되는 완전한 능력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 13:4). 만약 그리스도가 절대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불리운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인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 안에서 승리적으로 작용하며 그것을 목적지에까지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에서 이 능력은 파괴될 수 없는 생명의 능력이라고 일컬어진다; 이 권능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의 도달 범위를 넘어 선다. 이 능력으로 아들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이 세상을 다스린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요한계시록에서 이 능력은 영광과 동일시된다: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계 1:16).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 5:12).

그리스도의 백성들은 그가 그의 일을 완성하고 다른 모든 세력들을 굴복시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확립하실(*빌 3:21) 능력을 가지고 오시기를 기다린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막 9:1). 이 오심은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는 그의 능력있는 천사들을 동반하신 것이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살후 1:7).

(b)  하나님의 능력, 악마적인 세력들, 그리고 구원의 능력.

① 그리스도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빛을 던져준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따라서 이것은 부여된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눔으로써, 이 능력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그의 능력은 구약성경에서처럼, 종말론적 사건의 역사적인 능력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그리스도 사건에서 나타난다(마 22:29; 참조: 히 11:19). 하나님은 그의 전능하신 통치에 의해 뒤나토스가 된다(참조: 눅 1:49). 그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참조: 마 19:26). 믿음으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만물은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 1:20).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마 6:13; 계 4:11 등에서처럼, 구약성경의 송영을 받아들인다. 계 11:17-18과 계 12:10의 송영은, 그리스도 사건에서 하나님 능력이 이미 나타났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적대적 세력들을 멸망시키고 세상을 완전하게 하시리하는 고백을 암시하고 있다.

② 그리스도 사건은 또한 악마적인 세력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빛을 비춰준다. 신약성경은 이 세력들을 인정한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 24:29). 이 세력들은 우주적 세력인 동시에 천사적인 세력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더불어 그 힘을 잃어버렸으며 그의 재림 때 공개적으로 그 힘을 박탈당할 것이다. 이 두 사건들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신자들의 새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유래한 것이며 그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엡 1:20-21; 롬 8:38, 롬 8:39), 이 세력들은 제거된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싸우며(계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결국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4). 적그리스도는 능력을 가지고 나타나서 거짓을 퍼뜨릴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심만이 다시 그를 최종적으로 멸망시킬 것이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살후 2:9).

③ 그리스도의 사역 또한 구원의 능력에 관한 질문에 새로운 답을 준다. 제자들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묻자, 그리스도는 구원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참조: 마 19:26).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인간의 무능력을 날카롭게 강조한다. 우리의 약함 때문에, 율법조차도 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롬 8:3).

히브리서는 제사에서 똑같은 무능력을 발견하고 있다(*히 10:1, 히 10:11).

요 3:3에서 언급되듯이, 만약 거듭나지 아니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로다"(요 8:43).

만약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신다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올 수가 없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하나님만이 구원할 능력을 지니시며, 그는 예수님 안에 그의 권능을 나타내신다(롬 1:16; 고전 1:18). 이 능력은 신비적인 입교식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구원을 지시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도의 능력이다. 이것은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부터 해방시키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김으로써, 구원을 부여해 준다. 이것은 그리스도 사건의 구원 행동, 즉 역사 안에서 행한 하나님의 능한 행동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는 벧후 1:3-4에서만, 즉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고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들을 주신다고 할 때만 역동적인 개념보다는 실질적인 개념을 엿볼 수 있다.

(c)  제자들의 능력.

전파는 하나님의 뒤나미스로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계속하며,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부여 받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눅 9:1), 능력으로 그들을 무장 시켰다. 이 능력은 악마의 힘을 이긴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9). 제자들은 믿음으로만 이 능력을 가질 수 있다(참조: 막 9:14이하). 이것은 성령에 의한 그리스도 자신의 임재의 능력이다(눅 24:48; 눅 24:49; 행 1:8). 능력으로 설교하고 병을 고치게 하는 특별한 능력의 부여가 오순절에 일어났다(행 4:7이하, 행 4:33; 행 6:8, 행 6:10).

바울의 사역은 표적과 기사의 능력에 의해, 즉 성령의 능력에 의해 효력을 발한다: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9).

뒤나메이스는 사도직의 표시이다(갈 3:5; 살전 1:5). 그러나 이 능력은 그리스도의 임재 방식뿐만 아니라 신자의 존재 방식으로서의 성령의 능력이다. 사도들은 십자가의 증인들이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약하나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파하며, 따라서 청중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거하게 된다(참조: 고전 2;1이하). 뒤나미스는 메시지의 형식이 아닌 메시지의 내용과 관련된다. 전파의 목표는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울이 사역자가 된 것도 똑같은 능력에 의해서이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엡 3:7). 고전 5:3-4에서처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은 또한 사법적인 것일 수도 있다: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여기에서는 만일 신자들이 사단에게 넘겨지지 않는다면, 사단은 신자들을 제어할 힘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과 심지어 사단에게 넘겨질 경우에도 그 목적은 여전히 구원에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 사도 자신의 삶과 사역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은 끊임없이 능력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빌 4:13; 딤전 1;12; 딤후 4:17). 이 강화하는 것은 원조의 형태를 취하며, 따라서 마나(mana)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종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의 견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d)  공동체의 능력.

하나님의 구원 능력에 의거하는 공동체가 바울의 목표이다(참조: 고전 2:1이하). 신자들은 "주 안에" 있을 때 강할 것이다(참조: 엡 6:10). 사단의 세력에서 구출되었지만, 여전히 위험에 싸여있는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들을 보호하고 보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보호 받는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 1:5). 이 사도의 기도는 그들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누리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9), 혹은 그들이 모든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 1:11).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이 능력은 그들의 부름과 영광스런 기업에 대한 소망을 만들어 낸다. 기독교인들이 참고 인내하려면 이 능력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보전할 뿐만 아니라 변화시키는 힘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에게는 소망이 넘친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속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됨으로 그들은 포괄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성장한다(참조: 엡 3:14이하).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사랑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가진다(참조: 요일 4:7). 모든 선한 결의와 믿음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성취될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살후 1:11). 공동체의 구성원들도 뒤나미스를 행하는 영적인 은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 12:10). 더구나 공동체에서 역사하는 능력은 궁극적으로 부활의 능력이다: "3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 13:3-4). 하나님은 주님을 일으키셨으며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일으키실 것이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전 6:14). 비천한 몸이 영광의 몸으로 변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근거한다(빌 3:21). 어느 누구도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손에서 잡아챌 수 없다(요 10:28-29).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부활의 능력 - 그의 백성을 위해 새롭고 영원한 생명을 창출해내는 능하신 행동 - 을 알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이것은 진정한 뒤나미스의 원천이다.

(e)  능력과 약함.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 존재의 약하고 부패하기 쉬운 영역에서 역사한다. 따라서 이것은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알려진다. 십자가의 도는 외적인 약함 속에 감추어져 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참조: 고후 13:4). 그러나 하나님의 약함이 인간의 강함보다 더 강하다(고전 1:25). 바울은 이런 사실을 그의 사도 직무의 모든 약함 속에서 인식하게 되었다(고후 12:9-10; 참조: 빌 4:13). 이 초월적인 능력은 비겁의 영이 아닌 능력과 사랑과 자제(딤후 1:7)의 영을 주시는 하나님께 속한다(고후 4:7).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데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이 약함은 그리스도의 임재의 보증(증거) - 바울은 이 증거에서 자아로부터 해방과 하나님에 대한 의지를 발견하다. - 이다. 약함 속에서 강해진다는 법칙에 따라 하나님의 부활 능력은 복음의 사역자에게 있어서나 그리스도교 공동체 전체에게 있어서나 더욱 더 풍성하게 역사한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능력안에 있어")'는 사도와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믿음의 실재를 표현해 준다(고후 6:7).(참조: W. Grundmann). 


mavrtu"(3144, 마르튀스) 증인 witness.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마르튀스(Pind., Hdt. 이래)는 인도 유럽 어근 스메르(smer: 기억하다, 기억하고 있다, 주의하다[실수나 위험을 피하거나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에서 유래했으며, 기억이나 회상으로 어떤 것에 대하여 알고 있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자, 즉 증인이다. 증인은 무시되거나 잊혀질 수 없는 어떤 일을 경험하고 이제 이런 점에서 다를 사람들의 주목의 대상이 된 자로서, 기억이나 화상으로 그 경험의 내용을 말할 수 있고 말하는 자이다.

일반 헬라어에서 이 단어는,

(1)  사건이나 사실들에 대한 법적 '증인'

(2)  사실들에 대한 '증인'이란 일반적인 의미로,

(3)  진리나 견해들과 신념들에 대한 '증인'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기 자신을 신적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도록 부름 받은 증인으로 생각하고, 역경에서 - 고통을 감수하고 시련의 상태를 수용하고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 그들의 실천을 통하여 자신의 관념들과 교리들의 진실성을 입증하거나 증거했다(참조: Epictetus, Dissertationes). 이 종류의 마르튀스가 비록 죽음까지도 불사할지라도, 후대 기독교인들의 순교자들의 개념과 동일시 할 수 없다. 죽음이 진실의 증거가 될 가능성이 있으나 반드시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에픽테투스가 소크라테스를 마르튀스라고 부르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2. 70인역본의 용법. 

(a)  명사 마르튀스는 70인역본에서 약 55회 나오며, 히브리어 에드(증인)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마르튀스는 70인역본에서 범인에 대해 판결에 관한 증인(민 35:30; 신 17:6; 신 19:15; 신 17:7), 거짓 증인(시 27:12; 시 35:11; 신 19:16-21), 소유물 매매(렘 32:10, 렘 32:12, 렘 32:25, 렘 32:44) 및 구속 행위(룻 4:9-11와 같은 여러 가지 거래의 증인),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이스라엘(사 43:9-10; 사 44:8-9), 증인으로서 하나님 자신(삼상 12:5; 욥 16:19; 렘 29:23; 말 3:5)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b)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는 사람의 행위 안에는 고통의 사상이 내포되어 있으며 유대주의에서는 이런 순교가 대단히 존경을 받았다(참조: 마카베오서, 특히 마카베오 사서 18: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르튀스(마르튀리아) 혹은 마르튀레오 그리고 심지어 마르튀리온과 같은 용어들이 결코 그런 신앙의 위인들에게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참조: H. Strathmannn, TDNT). 그 말들을 상세히 그리고 신중하게 분석하고 난 후에 브록스(N. Brox)는 "순교자(martyr)라는 말이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발전되었기 때문에 구약성경과 후기 유대주의가 순교자라는 칭호의 기원일 가능성이 없으며" 또한 "순교자들과 예언자들을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하였다(Zeuge und Martyrer).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마르튀스는 신약성경에서 34회 나오며, 일반 헬라어 문헌과 거의 같은 용법으로, 확신할 수 있는 사실들에 대한 증인이란 의미와 진리, 즉 확신하여 고백하는 진리에 대한 증인이란 의미를 지니고 발전했다.

(a)  일반적 용법.

사실들에 대한 증인. 이 용법은 막 14:63에서 나타나며, 대제사장은 예수님의 고백 이후에 더 이상의 증인들에 대한 여하한 필요성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행 6:13; 행 7:58에서도 의미가 동일하다.

히 10:28과 마 18:16에도 마찬가지다. 이 두 구절에서는 두 명 이상의 증인을 요구하는 신 17:6과 신 19:15을 인용 내지 채용하고 있다.

딤전 5:19에 의하면 장로에 대한 고소도 동일한 원리에 따라야 한다: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바울은 고후 13:1에서도 이 원리에 호소하는데 여기에서 그는 자기의 2회에 걸친 방문을, 사실을 명백히 확증한 두 사람의 증인들과 비교하고 있다. 이와 근소하게 상이한 용법은, 바울이 하나님을 자기의 끊임없는 기도 등에 대한 증인으로 부른 경우(롬 1:9), 혹은 그가 데살로니가인들(과 하나님)을 그의 비난할 데가 없는 행동에 대한 증인으로서 부른 경우이다(살전 2:10).

고후 1:23에서 그는 만일 자기가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면 자기에 대(항)해 증언해 달라는 하나님께 대한 요청을, 이러한 호소로 삼는다. 사실들에 대한 인간 증인이 눅 11:48의 요점이다. 여기에서는 선지자들의 무덤 숭배가 그들에 대한 핍박을 입증해 준다.

마르튀스가 딤전 6:12에서도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디모데의 신앙 고백이 많은 증인들 앞에서 이루어진다(참조: 딤후 2:2).

히 12:1에서 경주를 지켜보는 증인들은 신앙 고백적 증인들이라고 여겨지지만(참조: 히 11:2) 이것이 사실적 증언의 요소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b)  누가의 특별용법.

눅 24:48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누가의 용법은, 직접적으로 알려진 예수님에 관한 사실들의 증언을 포용하고 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러나 이러한 증언은 단지 그 사실들의 의미가 진가를 인정 받을 경우에만 주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증언은 믿음의 형태, 복음 전도자적 신앙 고백의 형태를 취한다. 복음은 역사적 계시이므로 사실들의 증언과 진리의 증언은 동일하다. 사상이나 신화가 아닌, 사실들이 쟁점이다. 이 사실들을 증언하는 자들은 그것들을 통하여 살았다(눅 24:47; 행 1:8). 그들은 또한 그 사실들을 이해하였다. 성령을 받을 때 그들은 이로써 세계를 향한 증인들로서 나갈 수 있는 채비를 갖추게 된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자들은 복음 전도자 바울 및 바나바와 대조되는 자들로서(눅 24:32), 특별한 의미에서의 그의 증인들이다(행 13:31).

(c)  누가복음에 나타난, 사실적 증인과 신앙 고백적 증인의 시초적 분리. 그러나 누가는 바울(행 22:15)과 스데반(행 22:20)을 여전히 증인들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비록 행 1:8의 엄밀한 의미에서는 아니라 할지라도(그가 행 9:3이하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우는 제외하고), 그의 선교사역 중에서 사실들에 대한 증인이 된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실들의 의미에 대한 증인이다. 즉 예수님에 '대한'(to) 증인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을 '위한(옹호하는)"(for) 증인이다(행 22:15). 이제는 신앙 고백적 요소가 사실적 요소보다 더 강하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신앙 고백 그 자체는 그리스도의 삶, 죽음 및 부활의 역사적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다.

스데반도 역시 주요한 의미에서는 신앙 고백적 증인이다. 그리고 그는 특별한 방식으로 그러한 증인이 된다. 즉 자신의 죽음에 의해 자기의 신앙 고백의 진지성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여 행 22:20의 용법은, 피에 의한 증인 즉 순교자를 뜻하는 마르튀스의 후기 용법을 위해 그 기초를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d)  베드로전서.

벧전 5:1에 독특한 양면적 용법이 존재한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첫째의 명백한 의미는 목격자이다. 그러나 그 연장선상에서 그 위에 동참의 뜻도 시사한다. 기자는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그리스도의 고난이 무엇을 수반하는지를 알고 있다(참조: 벧전 4:13).

(e)  계 3:14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계 11:3에는 예루살렘에서 1,260일 동안 증거하고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는 두 증인에 대하여 말한다. 그들은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아니라 그들의 예언적 활동 때문에 증인들이다. 유사하게 2:13에서 안티바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증인으로 불리워진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라는 의미에서 증인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것은 계 17:6에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고 말한 것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여기에 "증인들"이란 말은 후기의 순교자들이란 의미를 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순교한 성도들이 따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주석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증인들에 대한 참된 개념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것이다. 복음의 증거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는 자들은 단순히 자기들의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자들과 함께 언급되어 있다. 자기들의 신앙 때문에 죽을 처지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증인으로 불리워지지 않는다. 그 명칭은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에 종사하는 자들을 위해 구별해둔 것이다.

증인은 이제 복음의 진리를 설득력있게 선언하는 자이다. 그러나 또한 이것을 행하는 자마다 증인이 아니다. 그 명칭은 죽임을 당함으로 그들의 증거의 궁극적 중대성을 입증하는 자들을 위해 구별해둔 것이다. 이들은 충성된 증인들이며, 오직 충성된 증인은 완전한 의미에서 증인들이며, 참된 증인들이다. 요한계시록의 증인의 개념은 사도행전 22:20의 증인의 개념과 동일하다.

이 빛에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충성된 증인"(본절과 3:14)으로 불리워진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문구는 시 89:37에서 취한 것이다: 하늘의 충성된 증인. 시편에서 그것은 하나님께 적용되며, 본문에서 메시야에 적용된다. 그 의미는 1:1, 2에서 볼 수 있다.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즉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전해준 계시이다. 따라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고 부른다(1:2). 그는 이 책무를 확실하게 수행하신다. 이것은 인사에(1:5), 마지막 편지의 시작에(3:15)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충성된 증인"이란 의미를 다 말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와 관련하여 뿐만 아니라 더욱 일반적으로 그 타이틀(title 칭호)을 가지고 있다: "내가 났으며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함이로다"(요 18:37). 그는 죽으심으로 이 소명에 충성하신 것을 보여 주셨다. 우리는 그의 칭호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부른 것을 생각할 때, 순교자 안티바가 동일한 칭호를 가졌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은 기독교 증인의 모델(model)이다(H. Strathmann).

모든 고백과 증거 행위의 배후에는 그리스도 자신이 참된 증인으로 임재하여 계신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의 표준으로서, 하나님의 영(영)을 지닌 자로서, 종말론적 증인과 심판자로서 공동체의 고백과 증거를 지지하신다(참조: O. Michel). (참조: A. A. Trites; H. Strathmann; Walter Bauer; J. H. Thayer). 


[요3:2]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shmei'on(4592, 세메이온) 표시, 표적.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세메이온은 세마(sh'ma: 표시, 예고)에서 유래했으며, 세마와 함께 '징조, 표시'를 의미하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a)  이 단어는 사람이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하는 '표적' sign, 확신 시키는, 확증하는, 증명하는 '특징', '표' mark 혹은 '표', '증거' token를 의미한다. 호머의 작품에서 이 단어는 병의 징후, 짐승의 냄새, 배의 깃발, 희생제물로 바칠 짐승임을 보증해주는 표시, 통치자의 왕관, 반지의 인장, 방패에 있는 문장, 양 떼에 찍은 소인 등을 나타낸다.

(b)  이 단어는 다가올 사건을 알리는 '징조' foretoken, 혹은 '전조' omen을 의미한다.

(c)  세메이온에 놀라움의 성격이 있을 때 이 단어는 "기적의 표적"(miraculous sign)의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사물의 자연적 진행과는 모순되는, 신 혹은 기적을 행하는 자가 행한 '기적'(miracle)을 뜻하기도 한다.

이 단어는 주전 2세기의 저술(Polyb. 3, 112, 18)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어구 세메이가 카이 테라타(표적들과 기사들)에서 발견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세메이온은 70인역본에서 약 12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오트의 역어이며, 이 히브리어 처럼

(a)  '표적' sign, '특징', '표' mark, '징후' token.

(b)  '기적의 표적' miraculous sign, '기적' miracle을 의미한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세메이온은 신약성경에서 77회 나온다.

(a)  ①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세메이온은 어떤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는(눈에 보이는)표시 sign이다. 예를들면, 마 26:48에서 배신자가 성전 파수꾼에게 예수님을 넘겨 줄 때의 입맞춤(사전에 합의한 표시임) 혹은 눅 2:12에서 갓 태어난 구세주임을 지적해주는 말구유("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에 대해 1Q 27Ⅰ1:5; 출 3:12; 삼상 2:34; 삼상 14:10를 참조하라)가 세메이온이다.

경고의 '징조' omen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며, 대개 우주적 성질을 띠며, 역사의 종말을 알리는 것이다(막 13:4; 눅 21:7). 혹은 인자의 임하심과 세상의 끝(세대의 완성)에 징조가 있다(마 24:3). 이때 "메시야의 발자국"과 함께(m. sota 19:15) 전쟁의 무질서와 기근, 온역, 지진이 있으며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눅 21:11)가 있을 것이며, "일월 성신에 '징조'"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구약성경의 영향이다(참조: 막 13:24이하와 병행구에서 사 13:10; 사 34:4과 행 2:19에 인용된 요엘 3:3). "여호와의 날"에 수반하는 현상은 마지막 때의 세대에게 경고의 표시로서 삽입적이고 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표적"은 이해되지 않는다(마 16:3). 파루시아의 중대한 시점은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나타나는 것인데(마 24:30), 이것은 완성을 가리키며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으며, 또 다니엘이 밤에 이상 중에 본 종말론적 심판관의 도래 및 즉위와 관련된다(단 7:13이하; 슥 12:10-14). 예수님 자신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비방을 받는 표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세움 받는다; 예수님의 사역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낼 것이며, 이 마음들은 그들 자신의 종말론적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② 세메이온, 하나님의 주권의 은혜로운 의를 드러내고 믿음을 전제로 하는 능력의 역사(뒤나미스)인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과는 대조되어,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혹은 선지자임을 확증해주는 기적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표적들은 믿음을 일깨우기 위해 의도되며(참조: 출 4:1-9), 간청된다기 보다는 강력히 요구되거나 촉구된다.......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한 기적이 한 예이다(출 3:12; 출 4:1-5; 출 7:8이하); 애굽의 재앙들도 하나님을 지시하는 표적들이다(출 7:3; 출 10:2; 신 7:19; 신 26:8; 참조: 행 7:36). 유대 전쟁 이전에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증명하려는 의도에서 "자유의 표적들"을 약속하면서 나타났다(요세푸스 B.F.ⅱ259: Ant. xx. 168). 이들이 약속한 기적들의 상징적인 특징은 모세나 여호수아의 행위들과 일치한다는 것이었다(참조: Ant. xx. 97.과 수 3:7; xx. 169이하와 수 6:8이하). 그러나 요세푸스는 그들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하였다(Ant. xx. 167; B.J.ⅱ259-61). 막 13:22과 마 24:24은 거짓 선지자들과 메시야들에 대해 경고한다. 그들은 심지어 택함 받은 백성까지도 속이려고 큰 포적들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참조: 신 13:1-4). 그들의 활동무대는 광야이다(마 24:26; 참조: B.J.ⅱ259).

예수님은 "하늘로서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표적"을 행하라는 요구를 강력하게 거부하신다(막 8:11이하; 마 16:1; 눅 11:16; 참조: 마 12:38); 이 요구는 단지 패역한 세대의 믿음의 결핍을 드러낼 뿐이다(막 8:12; 마 16:4; 마 12:39). 마 12:39; 마 16:4; 눅 11:29에 따르면 이 세대는 오직 "요나 선지자의 '표적'"밖에 받을 것이 없다. 이것은(Q에 따르면) 이방의 도시 니느웨에서 요나의 성공적인 회개에의 요청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스라엘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회개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마 12:41; 눅 11:32). 마 12:40에 따르면 물고기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된 것이 이 "요나의 표적"이며 따라서 인자가 "땅 속에" 있는 것,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킨다. 아마도 이 해석은 눅 11:30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요나는 니느웨에게 표적이 되었다). 

요한복음에서는 나흘 만에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일이(요 11:39) 요나의 표적 대신 나온다. 

마지막으로 헤롯 안디바는 예수님에게서 (확증해주는) 표적을 헛되이 기대했다(눅 23:8). 마 4:1-11 병행구의 마귀의 요구들도 표적을 요구한 것으로 이해되며, 예수님에게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도전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막 15:30 병행구). 폭풍을 꾸짖으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소량의 떡으로 많은 무리를 먹이신 것과 같은 기적들은 출 14-16과 관련이 있으므로 확증의 표적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그러한 기적들은 도움을 주시는 자비의 행위로 묘사된다(막 4:38이하; 막 6:34, 막 6:50이하). 

마가복음의 끝맺음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약속하시는데, 이 기적들은 제자들이 보고하였고 교회에서 은사들 가운데서 나타났다(막 16:17; 참조: 눅 10:17-19; 고전 12:4이하, 고전 12:28이하). 그러한 기적들은 선포를 눈에 보이도록 확증하기 때문에 "표적들"이라 불리운다(막 16:20).

③ 비록 요한도 역시 표적들과 표적에 대한 요구에 포함되어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인식하지만(요 2:18, 요 2:23; 요 4:48; 요 6:2, 요 6:14, 요 6:30)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들을 세메이아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기적들을 통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의 사명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요 2:11; 요 20:30이하). 세례(침례)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않은 반면에(요 10:41), 많은 위대한 표적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특징짓는다(요 3:2; 요 7:31; 요 9:16; 요 11:47; 요 12:37). 부활하신 예수님의 나타나심도 이와 유사하게 이해되어야 한다(요 20:30). 요한복음의 기적들은 기적 자체를 넘어 종말론적 구세주를 지시하며(요 6:14; 요 7:31; 요 12:18), 그에 대한 믿음을 가져오는 것이다(요 2:11, 요 2:23; 요 4:53; 요 9:35; 요 11:47이하; 요 20:30이하); 그러나 이 믿음은 피상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인 채로 남아있기도 하고(요 4:48; 요 6:14, 요 6:30) 거부되기도 한다(요 12:37, 요 12:39). 그리고 예수님이 일개 사기꾼이라는 확신을 표적들이 항상 제거할 수는 없었다(요 11:47이하, 신 13:1-4을 따름). 따라서 표적이 의미하는 것, 즉 기적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그의 "팔"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이 간과된다(요 12:37이하, 사 53:1의 인용; 참조: 요 5:20, 요 5:36; 요 9:3이하; 요 17:4). 표적들을 해석하는 구절들을 제쳐놓더라도 요한은 표적들의 확증하는 능력을 각각의 특성들로써 설명하는데, 그것의 목적은 모세, 엘리야, 엘리사의 기적들 같은 고전적인 실례들을 무색케 하는 것이다(참조: 요 2:1-11; 요 4:46-54; 요 5:1-7과 왕상 17장; 왕하 5장, 요 6:9과 왕하 4:42이하, 요 6:31과 출 16:4, 출 16:13-15). 요 2:11; 요 4:54에서 시작된 표적의(단속적인) 계수는 모세(출 4:8)와 엘리야(왕상 17장)의 처음 두 표적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찰하면 이 표적들은 요한의 신학과 일치하고 빈틈을 드러내지 않는다.

④ 사도행전도 역시 예수님과 사도들의 기적들을 확증하는 표적으로 이해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표적에 대해서는 뒤나메이스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고 또한 세메이아 카이 테라타(표적과 기사)에 부가되어 나타나기도 한다(행 2:22; 행 8:13). 자주 사용된 "표적과 기사"라는 어구는 두 표현 사이의 차이점이 모호해져서 "기사와 표적"이라는 순서도 역시 가능하다(행 2:22, 행 2:43; 행 6:8; 행 7:36).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 가운데서 그를 통하여 행하신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그들 앞에 "입증되셨다"(행 2:22). 이 표적들의 계시적·도구적 성격은 선교사역의 이상에 기초하며 모세를 향하여 있으며, 연속성을 위해 의도되어 있다: 모세는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으니" 하나님 자신과 같이 임하는 선지자임을 지적하는 것이다(행 7:36이하): 하나님께서 이 선지자에게 능력을 부여하셔서 보내셨기 때문에(신 18:15) 하나님은 또한 예수님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표적의 근원이시다. 표적과 기사들은 사도들에 의해(행 2:43; 행 5:12), "집사" 스데반에 의해(행 6:8), 빌립에 의해(행 8:6; 행 8:13), 바울과 바나바에 의해(행 14:3; 행 15:12) 행해졌다. 비록 하나님 자신께서 사도들의 표적들에서 역사하시지만 행 4:30에 따르면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적을 행한다(참조: 행 3:6과 행 2:21이하).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은 그의 사자들을 통하여 치유하시고(행 9:34), 따라서 예수님 자신이 그를 선포하는 말씀의 진실됨을 확증하신다(행 14:3). 이 표적들은 말씀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앉은뱅이를 고친 일(행 3:1-8)은, 심지어 적대자들까지도 시인하였으며, 그들이 말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모든 거민에게 알려진 표적으로서(행 4:16), 말씀 선포의 진실됨에 관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 표적들은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며(행 8:6; 참조: 행 9:35, 행 9:42) 시몬 마구스의 마술을 패배 시킨다(행 8:13). 그러나 이 표적들은 애굽의 술사들에 대한 모세와 아론의 승리 같은 단순한 시위적인 기적들도 아니고(참조: 출 7:1-13), 응징의 기적들도 아니며(행 5:1-11은 세메이온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치유이다(행 4:22; 행 9:32-42). 욜 2:30을 인용한 행 2:19에서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는 실로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세메이아)"로 보완된다. 여기서 세메이아는 아마도 예수님과 사도들의 기적을 가리키는 것 같다. 행 15:12에 언급된 "표적과 기사"는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인 가운데서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가리킨다.

(b)  ① 바울에게 세메이온은 서신을 끝맺을 때 자신의 서명과 같은 (외적) '표시'이기도 하다(살후 3:17). "할례의 표"는 아브라함을, 믿는 이방인들의 조상으로 만든 "믿음의 의의 인"이다(롬 4:11).

②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지만(고전 14:22)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것을 하나님에 의해 유발된 의사소통으로 인식하지 못하며(참조: 고전 14:21에 인용된 사 28:11), 그것을 조롱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완악함과 구제할 도리가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드러낸다.

③ 마지막으로 세메이온은 임박한 구속과 하나님의 활동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기적'일 수 있다. 바울은 "표적을 구하는 것"을 유대인의 종말론적 기대의 특징으로 간주한다(고전 1:22); 십자가의 선포를 받아들이는 것은 헬라인들이 지혜를 사랑하는 것 만큼이나 똑같이 거리끼는 것이 된다(참조: 막 8:11이하). 고후 12:12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가운데서 그를 통하여 행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참된 사도의 표"라고 말한다. 그 표들은 바울이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 평가는 어리석은 짓이다(고후 12:11), 왜냐하면 이 표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바울 사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복음의 진실을 증거하고 복음 선포자를 정당화 시켜준다. 사도의 표는 카리스마적인 기적들 뿐만 아니라 회중들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는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가리키기도 한다(참조: 고후 3:2).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때 기적을 수반할 것이다. 바울은 신 13:1-4을 따라서 그런 기적들을 "거짓 '표적'과 기사"라고 부른다(살후 2:9). 교회의 분당은 믿음을 시험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필요한데,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종말론적으로 상징적인 특성을 가진다(고전 11:18이하).

히 2:4에 따르면 예수님의 선포와 그의 최초의 경청자들의 선포는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 증거되었다(참조: 행 2:22).

(c)  요한계시록 기자는 통렬한 묵시적 표적들을, 즉 극적인 사건들을 가져올 상징적으로 의도된 하늘의 장면들을 본다: 즉 초승달 위에 있는 한 여자(계 12:1), 그녀의 대적자 용(계 12:3),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들(계 15:1)이다. 이 표적들은 또 기적적인 일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이 기적적인 일들을 행하여 사람들이 "짐승"을 섬기도록 유혹한다(계 13:13, 계 13:14; 계 19:20). 이 짐승에게서 나온 영들도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종말론적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은다(계 16:14).(O. Betz).(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K. H. Rengstorf; O. Hofius). 

---[영적씨름 하는 믿는 이는 이미 JC와 함께 삼층천 하늘에 앉아 있음..마귀영역은 공중(대기와 우주영역)임] : 주적을 알고 대적하자--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Ts9h&articleno=166&categoryId=9®dt=20120927070445 귀신들의 위계질서

--이미 이기신 JC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로되 보냄받아 이 땅을 살며 주님이 JC이름을 주며 맡기신 바 영혼구원과 하나님나라 회복의 영적씨름을 수행중인 믿는 이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주적 :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머리......특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는 모든 교만한 사상-철학-종교- 이념과 이론들과 아이디어를 창안/사람의 마음을 장악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기회만 있다면 택함받은 성도까지라도 미혹받고 넘어지게 하여 포로로 사로잡으려 함....간교한 계책과 계획, 시도들을 고안, 하부구조에 집행 명령 발신자) --이들 체계 예하에 직접 부리는 군대귀신들과 악령들이 소속되어 있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의 모든 계책과 시도들의 폭로, 무효화와 그들의 수하로서 활동하며 권새들, 곧 권력을 지닌 통치자에게 조언하는 참모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권력자를 조종하는 권세들((기술/지식 전문가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양육/조언 그룹)), 권세들의 조언을 받고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들은 그대로 그 계획을 집행하는 손발된 통치자(정사)들....이들의 손발 묶임과 입에 재갈물림, 십자가로의 추방을 이미 이기신 JC의 이름으로 선포하라....그들로 인해 포로되고, 감옥에 갖혀 눈 멀고, 전존재가 눌려 진정한 자유누림을 상실하고 잊어버렸던 영혼들의 놓임, JC를 믿고 그의 이름을 불러 누리는 구원과 은혜를 JC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성령부어주시기를 주께 요청드리라....비유컨데, 땅의 제국/황제(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어두움의 나라의 머리...통치의 목적과 방향성 설정 및 실행 체계 계획 구상/확립...이를 위한 하부실행체계 지정...불신자 개인의 품성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마귀에게 사로잡힌 포로로서 자기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타인과 사회에 두려움과 속박을 조성하는 충동적 파괴-살인-유해한 행동 유발 조종)-->제후국/국왕(권세.....모든 방면/영역에서 어둠의 영향력/방향성 파급/전파/교육....어둠과 사망의 파급/만연에 대해 자포자기, 무감각/냉담.. 방관/방조 당연시..)--->성주/영주(정사, 권력......실제적으로 각방면애서 적용 실행 강요).....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각영역에[자유케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따라 회복되어야 할 하나님나라의 8영역..정치-경제/사회-교육-과학기술-매스컴-문예(오락, 스포츠)-교회/종교-가정/가족] 보냄받은 선교사들임을 자각하고 주님의 자녀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두보를 구축-확장-정복-이김을 실제적으로 적용, 이 땅에 주님 나라를 회복하도록 힘써야 함은 당연!!!

[마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전4:] 9.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요일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9.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14.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요일 3:1-8]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계12:11]11.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잠4: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NASB)Watch over your heart with all diligence, For from it flow the springs of life.(AMP)Watch over your heart with all diligence, For from it flow the springs of life. (KJV) Keep thy heart with all diligence; for out of it are the issues of life.

...**[마귀체계]통치자(권력0)....권세(권력x영향력0...지식/기술 전문가...거짓선지자의 배경은 땅)....어둠의 세상 주관자(종교-철학-사상가들 =>인본주의 :뉴에이지, 포스트모더니즘 :하나님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사상, 생각들 곧 견고한 진..적그리스도/짐승의 배경은 바다.....[적그리스도=짐승]일곱머리왕관(하나님 대적하는 견고한 진 고안자/무신론의 근본) 열뿔(10나라 통치권 얻음)...[거짓선지자] : 짐승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축적된 인간기술발달의 극치와 교묘함을 이용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짐승의 우상을 세우게하고 생기를 주어 말하게 하며, 그 우상에게 경배하기를 거절하는 자를 살해하게 함으로 땅의 사람들을 압제.. .거짓선지자의 권세 근원은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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