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9.11.2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글락 도려냄 1124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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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4 저녁기도

**무엇을 위한 부요함인가....주여, 머리되신 주님 임재의 영광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CORAM DEO SOLA FIDE, SOLA SCRIPTURA, SOLI DEO GLORIA....사탄/마귀도 믿는이들을 미혹하려고 열심히 기록된 말씀을 연구하고 오용한다는 것 잊지말라..하나 참되게 믿는 이는 주님 사랑하고 경외함으로써(주와 하나됨과 그분께 복종함으로써) 주님임재의 영광 나타냄((경건)) 위해 연구하고 탐구하는 바 그것을 HS께서 친히 가르쳐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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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2]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새번역]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멸망하여 버릴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닙니다.....(AMP) Yet we do speak wisdom among those spiritually mature [believers who have teachable hearts and a greater understanding]; but [it is a higher] wisdom not [the wisdom] of this present age nor of the rulers and leaders of this age, who are passing away;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 우리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세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but we speak God’s wisdom in a mystery, the wisdom once hidden [from man, but now revealed to us by God, that wisdom] which God predestined before the ages to our glory [to lift us into the glory of His presence].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 이 세상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None of the rulers of this age recognized and understood this wisdom; for if they had, they would not have crucified the Lord of glory;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한 것과 같습니다.....but just as it is written [in Scripture], “Things which the eye has not seen and the ear has not heard,  And which have not entered the heart of man,  All that God has prepared for those who love Him [who hold Him in affectionate reverence, who obey Him, and who gratefully recognize the benefits that He has bestowed].”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For God has unveiled them and revealed them to us through the [Holy] Spirit; for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diligently], even [sounding and measuring] the [profound] depths of God [the divine counsels and things far beyond human understanding].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For what person knows the thoughts and motives of a man except the man’s spirit within him? So also no one knows the thoughts of God except the Spirit of God.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Now we have received, not the spirit of the world, but the [Holy] Spirit who is from God, so that we may know and understand the [wonderful] things freely given to us by God.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 우리가 이 선물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We also speak of these things, not in words taught or supplied by human wisdom, but in those taught by the Spirit, combining and interpreting spiritual thoughts with spiritual words [for those being guided by the Holy Spirit].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 그러나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그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But the natural [unbelieving] man does not accept the things [the teachings and revelations] of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absurd and illogical] to him; and he is incapable of understanding them, because they are spiritually discerned and appreciated, [and he is unqualified to judge spiritual matters].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But the spiritual man [the spiritually mature Christian] judges all things [questions, examines and applies what the Holy Spirit reveals], yet is himself judged by no one [the unbeliever cannot judge and understand the believer’s spiritual nature].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누가 그분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For who has known the mind and purposes of the Lord, so as to instruct Him? But we have the mind of Christ [to be guided by His thoughts and purposes]...주께서 내주하시어 (주님의 심정과 뜻을)깨닫게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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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22:30-31]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잠25:13]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Like the cold of snow in the time of harvest Is a faithful messenger to those who send him, For he refreshes the soul of his masters.....Like the cold of snow [brought from the mountains] in the time of harvest, So is a faithful messenger to those who send him; For he refreshes the life of his masters.

영원히 사랑하올 아바 아버지여, 

자행자제함으로 자주 넘어지는 연약한 자녀들이, [십자가를 의지하여 나아오라]하심따라, 무한감사로, 주 앞에, 주 말씀앞에 나아옵니다

--우리 개개인의 이름, 마음, 근본동기까지 완전히 아시는 하나님, 우리의 의식보다 호흡보다 더 가까우신 사랑의 아버지여, 

허락하심까지 바로 그렇게 주님 참으로 알기 원하여 온맘다해 주이름 부릅니다,  그 영광 열어주소서

성령님, 마음 눈 밝히사 사랑의 계명 따름으로써 친히 상호소유-상호기업-상호누림-상호거함되신 하나님을, 참되게 알며 믿고 누리며 살도록 이끄소서 

--연인의 사랑앓이보다 더한 열정으로, 그토록 간절히 우릴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드님을 향한, 주예수님의 아버지를 향한 그 극진하고 친밀한 사랑, 무엇으로도 끌 수 없는 그 열정을, 우리 두팔과 심장에도 인쳐 주소서, 

그 친밀함, 늘 새로운 생생한 알아감, 매료되어 이끌림, 샘솟는 사랑-자원함의 헌신으로 하나되어 행함, 

지극히 사소한 일 하나라도 오직 주님 하시듯 주께 하듯 사랑의 감동따라 행하는 자녀들 만드소서.

아버지여, 주님을 얻고 그안에서 발견되는 친밀한 기쁨 열어 주옵소서, 

--고난중에 있는 성도들을 친히 붙드시는 주여, 주님 뜻 이루소서

[고난 통해 마침내 하나님을 얻고 그 가운데서 발견되며, 빼어닮게 하신 바 그 주님을 넘치게 공급하는 자로 만들려 하심] 이루소서, 

산 믿음 발휘함 가르쳐 주소서, 

주이름 부르며, 늘 주께 마음과 생각을 고정하며 우리 위해 일하시는 주님따라 함께 돌파함으로써 주님이 이미 이긴 이김,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하여, 아드님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까지 하나님 신뢰하는 믿음-소망-사랑 그 거룩하심을 극도로 이루게 하소서.

--아버지여, 교회를 아버지의 말씀,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 

믿음으로 산을 옮기며, 주님갈망 그대로, [또하나의 <성육신>과 동일시, 참제자요 증인된 삶] 이루게 하소서.

말씀 앞에 기쁨과 떨림으로 회개하는, 부드럽고 열린 감동된 마음 주소서 

주님 기뻐하시는 참사랑, 상호 거함과 누림, 나는죽고 예수로 사는 삶 온전케 하옵소서

일깨우실 때마다 순종하고, 주께서 넣어주시는 감동된 말씀을 말하며, 주님을 말하며 주님에 대해 말함으로 주님을 살아내게 하여 주옵소서.....

머리되신 주님 임재의 영광, 하나됨의 그 교통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주여, 전능하신 주님은  복음횃불을 건네받은 은혜의 시대의 마지막주자요 주님 뜻 그대로 충만하게 환히 밝혀 땅끝, 예루살렘까지 전파할 사명을 감당케 하시려는 주님의 뜻과 소원을 따라 이 시대, 한반도에 대한민국을 세우시고, 그 위에 살아 생동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한국교회를 일으키셨습니다 

이 땅이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적대함은 다름 아닌 우리 죄악과 고집, 무지함 때문이라, 통일 이루도록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도 오직 주님이십니다.

오 주님, 그러나 오늘 십자가로 낳으신 친자녀들이기에 사랑의 채찍으로 징계하시는 아버지의 찢어지는 애통과 슬픔, 눈물을 또한 느낍니다.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친히 왕을 폐하고 세우시는 하나님....지혜와 지식을 주시는 하나님..(주는 모든 복과 저주-생사여탈, 나라의 흥망성쇠의 주관자).

주께 매료되고 매혹된 황홀달콤오묘한 처음사랑과 극락의 기쁨, 그 사랑의 언약-말씀진리를 소홀히 여겨 저버리고, 행음하여 병들고 영적 민감성이 무감각해진 우리, 

놀랍도록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우리의 눈 멀고 벌거벗은 철저한 영적 빈곤과 그 수치를 깨닫고 회개케 하시려 먼저 이 대한민국에 총체적 혼란과 광야를 허락하셨습니다... 

주여,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랑하십니까... 

유일한 중보이신 그리스도를 빼어닮은 중보자들,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회의에 참여하며 그 심정 알아드리며 주님 뜻 깨닫고 경배하고 기도하고 전하며 중재하는 아들들, 이 땅의 성 무너진 데(뜻/계획이 있어서 이 나라를 세우신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하고 악한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일러주시는대로 기록하여 철저히 점검하며) 살펴 보수함으로써[마음 찢어 회개하고 보혈로 덮어 정결케하고 :: 주님 주신 권세로 (묶임과 재갈물림, 십자가로 추방 선포함으로써) 매며 (약속말씀, 보혈과 성령 부으시기를 구함으로써)풀어놓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들이라 하셨는데..

바로 나와 우리들이 그 직무를 등한히 하고 주안에서 모든 것 능히 해 낼 수 있도록 늘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자족함의 비결배우기를 부러 잊고 세상과 짝하여 영적 행음과 탐욕, 우상숭배의 죄악을 범했음을 고백합니다. 

자행자제하며, 파수꾼의 직무를 소홀히 하였으며, 기도를 쉬는 죄, 곧 게으름-오만-교만-자만-자기기만 죄를 범했음을 인정합니다, 

가슴치며 회개합니다, 통회함으로 마음을 찢습니다......용서하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구하오니 주께 합당치 못한 우리를, 이제 철저히 깨뜨리사 고쳐주소서 주님의 교회를 거룩하게, 성결과 의로 다시 세우소서, 

순결-겸손-온유의 예수님을 옷 입게 하소서, 하여 이 땅을 고치사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뜻 온전히 아루게 하옵소서 

또한 이것을 우리 전존재와 오는 영적후사들의 마음과 교회역사에 잊지못할 교훈 삼게 하소서....

[주와 합한자는 한 영]이라 하신 주님. 믿는 이의 마음을 성전 삼아 친히 내주하시기에

우리는 또한 부활주님안에서 이미 함께 삼층천하늘에 앉혀진 자요, 

또한 이땅에 성령님과 함께 보냄받아 주를 따라 함께 영혼구원과 복음전파의 소명을 행하며 주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요, 

이 땅에서 영적 전쟁에 참여하되 말씀대로 이미 이기신 주님을 더 나아가 주님의 승리를 믿음으로 함께 누리는 정복자 그이상임을 선포하며 

그 의미를 날마다 더 깊이 묵상하며 굳게 서도록 늘 새롭게 일깨우소서

--주님 뜻하신대로 오늘의 말씀 예비하사,  ****님을 단에 세우셨사오니 

육을 제하소서... 오직 성령의 감동의 기름부으사, 성별된 그 입술 통해, 주님의 심정과 뜻과 그 영광 친히 나타내시옵소서... 

--이시간, 듣는이마다 모두, 열어주시는 말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기쁨으로 반응하는 기경된 단 마음 주사, <영과 생명> 하늘양식 흡족히 누리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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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나는 너를 네이름으로도 아는데... 너는 나를 아느냐, 나를 진정 사랑하느냐, 너는 어디에 서 있느냐, 무엇을 추구하느냐, 네삶을 스스로 해석하고 돌파해 보려느냐...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대하 7:14]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마18]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겔33]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말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들 가운데의 하나를 택하여 파수꾼을 삼은 3.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4. 그들이 나팔 소리를 듣고도 정신차리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거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5.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6.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8.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9.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10.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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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40편]하나님의 음성....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청종하고자 회개함으로) 기도하면....(귀를 기울이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네...깊은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주시고, 나의 발을 반석위에 세우시사..나를 튼튼히 하셨네...//주를 의지하고 교만하지 않으며 거짓에 치우치지 아니하면 복이 있으리라 여호와 나의 주는 크신 권능의 주라 그의 크신 권능으로 우리들을 사랑하여 주시네 

 ===(후렴)새노래로 부르자,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반복] 

---------[시글락을 기억하라!!]----------------------

##시글락의 상실과 다윗의 반응을 통한 교훈

오늘은 사무엘상 30장....

도입부에서처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무엘의 박해를 피해 블레셋의 왕 아기스에게 갔고 그가 그들을 받아주고 정착할 수 있도록 시글락이라는 도시를 주었다. 사무엘상 29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이스르엘에 군대를 집결한 블레셋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 싸움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목숨을 잃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음모를 꾸밀까 봐,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이 자기 군대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다시 시글락으로 돌려보냈다. 사무엘상 1~6장을 읽어보자.

사무엘상 30:1-6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사무엘상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우리는 사울과 다윗의 시대에 시글락에 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와 다윗 및 그의 사람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나가 있거나 “자고” 있는 동안 적이 우리 영토에 침입해서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훔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중에 실망하고, 희망과 방향을 잃고, 비전과 열정을 잃을 수 있다. 형제들은 우리를 믿는다. 악마가 우리의 희망과 열정을 훔치지 못하면, 악마는 지는 것이다. 악마는 단순히 우리에게 뭔가를 훔치려는 목적이 아니다. 악마의 최종 목표는 우리의 희망, 열정, 마음을 훔치려는 것이다. 악마는 희망으로 가득찬 마음이 살아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리 마음과 희망을 목표로 한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분을 보았다. 문제는 우리가 악마도 보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누가 (이것이 무엇이든) 우리 시글락을 훔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파괴로부터 보호해주시기를 바랬다. 그러나 결과가 다를 수도 있다. 인생에서 우리가 바라지 않았던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갑자기 좋은 사람에게 나쁜 일이 발생하는 경우도 본다. 좋은 사람의 “도시”도 영혼의 적에게 함락당할 수 있다. 이러한 화살에 맞서기 위해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마음을 마비시켜서 더는 아픔을 느끼지 않고 “믿음의 길”이라 부르는 계속 가야한다. 그 길은 봉사와 일로 가득하겠지만, 봉사와 일이 없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정적이거나 따뜻할 수 없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을 불편해하지 않으며, 잃어버린 것이나 되찾아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과 생동감 있는 관계를 추구하지 않고 희망이나 꿈 없이 살아가는 것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바꾸고 싶을 때까지 우리를 이런 상태로 두신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더이상 패배와 타협하지 않을 때까지 혹은 손실을 받아들이고 숨기지 않으며 잃어버린 모든 것을 추구하고 발견하기 위한 결정을 내린다. 잃어버린 것은 주로 희망, 열정, 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 결정을 내리면, 하나님꼐서 바로 우리 근처에 계신다. 그분은 항상 근처에 계시다. 그분은 달라지지 않으신다. 변하는 것은 우리다. 오늘 메시지는 아무도 훔쳐가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아니다. 악마가 우리를 건드리지 않게 하는 10가지 방법을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방법은 없다! 도둑이 있는 한, 무언가를 훔쳐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그 메시지는 적이 우리에게 열정, 믿음, 희망, 즐거움 등을 훔쳐간 것을 알아차리기 위한 공격이다. 원하는 만큼 오래 울 수 있다. 삶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전부이다! 그러나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했듯이, 우리도 무감각, 무관심, 종교활동으로 좌절감을 숨기고 손실을 외칠 것인지 아니면 타협하기 위해 부정할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할 부분이다. 다윗이 그러했듯이 주님 안에서 용기를 얻으면 모든 것을 회복하기 위해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영적 생존이나 죽음의 결정이므로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영적으로 다친 상태로 살 수도 있고 영적 영웅으로 살 수도 있다. 오늘 강조하려는 부분은 우리가 다치면 패배와 손실를 받아들이고 “다시 돌아가기 너무 멀리 왔어”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잊고 살면 우리 상처는 회복될 수 없다. 상처는 울기를 멈추고 모든 것을 회복하기 위해 일어서서 예전으로 돌아갈 때 나을 수 있다! 하나님은 바뀌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대로이시다. 우리가 상처를 입지 않으면 체념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찾고”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없다. 종교가 없이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은가? 여러분의 활동을 보지 말라! 왜곡된 결과를 보여줄 뿐이다! 그보다는 활동이 없는 자신을 상상해보라. 아무 활동도 없이 하나님과 함께 살수 있는가, 아니면 신앙 “활동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가 처음처럼 여전히 살아있는가? 활동을 부인하고 진실을 숨기는 논리를 보정하라! 진실이 필요하다! 바울은 우리에게 우리가 신앙 속에 있는지 시험해보라고 말한다! 우리는 손실 때문에 울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일어서서 하나님 안에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일어서면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다. 그것이 다윗이 선택한 일이다.

사무엘상 30:6-8, 18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다윗도 그랬다. 아무도 상처를 즐거움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상처는 상처고, 눈물이 날 것이다. 그러나 놀란 후, 두 가지 반응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울고 다윗에게 화를 내려고 했지만(이와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이 아픔에 대해 화를 내고, 그 상황, 목사, 사람, 하나님, 일반적으로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해 돌을 집어든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용기를 내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쭤보았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아말렉 사람들을 쫓아가면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시글락에서 생긴 일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잃어버린 것이 있지만, 되찾을 길이 있었다.

하나님꼐서는 훔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울음을 멈추고 그분께 여쭤보기 전까지 아무 말씀을 안해주셨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왜?”라는 질문을 생각하며 몇 일, 몇 달, 심지어는 몇 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욥처럼 이 질문이 속마음의 생각보다 더 길게 지속될수록, 답은 없어진다. 삶의 좌절에 대한 내 개인적인 대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로마서 8:28)는 것이다!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과 좋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 말이다. 우리의 인생은 악마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악마가 우리를 다치게 해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질문은 “하나님께서 왜?”가 아니다.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일어설 것인지, 주님 앞에 용기를 낼 것인지, 손실과 타협하지 않을 것인지, 이전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일어서면, 100% 여러분은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다윗과 그의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다. 시글락이 사라지기 전 하나님과 좋은 관계였던 그 시간을 기억하라. 그분도 똑같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똑같은 관계로 돌아올 수 있다. 이제, 최종적인 회복은 문제가 아니다. 회복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다. 타협하지 않고 예전처럼 희망, 믿음, 열정을 가지고 살겠다는 결심만 한다면 말이다. 상황은 순식간에 완전히 변할 것이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도 시글락이 함락되고, 가족과 물건, 희망, 꿈, 열정을 적에게 빼앗겼지만, 전과 같은 시글락을 원했고 소망, 믿음, 열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바라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적은 전투에서 졌다. 그 순간 사람들은 울기를 멈추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 싸움으로 그들은 모든 것을 되찾았다!

========[말씀따라 분별하고 회개하여 도려냄]의 아픔=============

>>“오늘날 인권운동은 인권이라는 이름의 영적전쟁이다”....2월 6일/ 2018 gnpmedia 에세이, 칼럼

▶ ‘복음과 삶’ 시간에 ‘복음과 학생인권’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최근 우리 사회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찬반 논란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학생인권에 대해 당사자인 10대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한 기독학교에서 ‘복음과 삶’이란 시간에 ‘복음과 학생인권’이란 주제로 발표된 학생의 한 학기 연구 결과를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인권이 강조되는 때를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 등록된 1만4000여 개의 비영리단체 중 반 이상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인권단체들인 것을 보면 그 현실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제정된 바 있으며, 1948년 UN의 세계인권선언문 채택으로 지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어느 때보다 힘주어 인권을 외치는 지금, 인간다운 삶을 더 누리게 되었을까? 실상은 인권을 외칠수록 동성애 등으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일은 증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교회와 복음은 가로막히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한 인권 문제가 아닌 인권이라는 이름 안에서 벌어지는 영적전쟁이다.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된 인권

인권이란 한마디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주신 권리다. 따라서 인권을 말할 때 하나님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인권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빼놓은 채 인간 자체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해 외치고 있다. 이러한 인권에 대한 인식의 출발은 어디서부터일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며 모든 영역에서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이 사상의 뿌리는 프랑스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혁명은 절대왕정과 귀족 중심의 봉건사회를 거부하고 부르주아들과 평범한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킨 사건이다. 인권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을 억압받던 시민계급이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인권보장의 기본적인 틀을 마련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 인권보장은 프랑스 혁명 당시 선포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은 겉보기엔 농민들과 평범한 시민들의 봉기였다. 하지만 이 사건의 중심에는 계몽주의 사상이 있다. 당시 전 유럽을 휩쓴 계몽주의는 이성을 통해 사회의 무지를 타파하고 현실 개혁을 요구했다. 그들은 사회계약설과 인민주권론을 주장했다. 그들은 왕권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왕권신수설을 정면으로 반대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나 교회의 주장보다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을 중요시했다. 프랑스 혁명을 기초로 한 인권의 역사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계관을 전제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외치고 있는 인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반역하고 성경의 진리와 반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세계 대전으로 사회주의 부상

프랑스 혁명 이후 개인의 인권과 인간의 평등을 중시하는 주장은 유럽 전역과 전세계로 확산됐다. 19세기 산업화의 등장으로 노동자들의 인권이 화두에 오른다. 자본주의의 본격화로 노동자 계급이 증가하면서 그들과 함께 억압받던 여성의 인권 또한 대두된다. 이 무렵 사회주의 사상이 인권운동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제도를 폐지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사상으로 이후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으로 이어졌다.

이 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주로 ‘좌파’라고 불렸다. 이는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공회에서 진보적이고 기존 체제에 대해 반발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왼쪽에 앉은 것에서 유래됐다. 이 사상들은 개인의 권리와 사회 내의 평등, 또 기존 체계에 대한 반발을 강조했다.

이러한 생각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힘을 얻게 된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사람들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전쟁 이전에는 내정간섭, 주권침해로 여겨져 다른 나라의 인권에 대해 관여할 수 없었던 분위기가 달라졌다. 자본주의와 기독교 전통적 가치 체계를 옹호하는 권위적이던 기존의 정치 체제는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밀려난다. 개인적인 인권을 주장하고 평화를 외치는 진보주의적 주장들이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개인 인권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1960년대부터 프랑스와 미국을 중심으로 사회정의와 개인적 자유를 추구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일어난다. 구체적인 예가 바로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68혁명 또는 5월 혁명이다. 프랑스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자 가장 진보주의적 성향을 띄던 대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일으키고, 1000만 노동자의 파업으로까지 이어진다.

‘금지함을 금지하라(Il est interdit d’interdire), 구속(제한) 없는 삶을 즐겨라, 혁명을 생각할 때 섹스가 떠오른다’와 같이 그 당시 유명했던 혁명 슬로건은 노골적으로 기독교적 가치관, 종교적 삶, 경건에 대해 증오심을 표출해냈다. 그들은 종교, 애국주의, 권위에 대한 복종과 같은 보수적인 가치들을 평등, 성 해방, 인권, 공동체주의와 같은 진보적인 가치들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물들은 지금 우리 눈 앞에 나타나 있다.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차별금지법과 기존 가치 체계와 기독교의 진리를 부정하는 인권운동들,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제한하거나 금지하면 인권침해라는 인식들이 가득한 다음세대들이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결과물이다.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 신봉자들은 ‘좌파’적 성향을 띈다. 그들은 현재 정체성 정치라는 전략을 사용하며 사람들에게 세속적 인권에 대한 인식을 주입하고 있다. 정체성 정치는 사회정의를 수행하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론이며 이들이 말하는 사회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완벽한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때문에 포스트 모더니즘은 가장 억압받고 빈곤한 사람들에게 ‘사회적 약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들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이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막시즘(Marxism) 같은 사상은 좌파의 진영에 포함되기 때문에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을 매주 중시한다.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던 그 이론이 이제 학생, 여자, 유색인종, 성소수자, 비주류 종교 등을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기존 가치 체계의 결함 때문이며 이에 대해 반발하고 대항하는 것이 곧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어가는 길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그들이 주장하는 인권은 기존의 보수주의적인 가치들과 기독교적 가치들을 역 차별하는 인권이 될 수밖에 없다.

전교조 영향 받은 학생인권운동

우리 사회의 학생인권도 포스트 모더니즘과 좌파적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사상들은 1960년대 한국에서도 사회 각계 각층에 영향을 주었다. 많은 교사들은 교원노조 운동을 시작해 1980년대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은 본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전교조는 교원들이 스스로 국가에 억압받는 노동자들이라고 인식한다. 전교조는 진보적 교육을 주장하고 체벌 반대, 야간자율학습 반대, 학교 내 차별 금지, 평등, 자유 등을 주장하며 그 누구보다 학생인권운동에 앞장선다. 학생들에게 사회적 약자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들의 인권을 위해서는 기존의 가치 체계의 결함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교조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에 의해 2000년도 초반, 학생 인권운동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교내에서 자신들의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다가 2004년에는 청소년 인권단체가 등장했다. 그들은 야간자율학습, 체벌, 연애 탄압 등을 반대했다. 학생인권조례는 2009년에 제정, 발의됐고 2010년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통과됐다.

현재 다음세대의 세계관 속에 인권에 대한 지배적인 생각은 세속적 세계관의 치밀하고 전략적인 공격으로 인해 형성된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제제나 제한은 무조건 침해로 여기고 있다. 또 그로 인해 끊임없는 기성세대와 기독교적 가치관에 대한 반발, 불만들이 교육, 사회, 정치,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다음세대에게 주입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원하는 세계관으로 형성되고 있다.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은 사회에서 하나님을 배제해버렸다. 스스로 기독교인이라 부르던 그들이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상들에 타협하면서 기독교적 윤리, 도덕 가치 체계만 남았다. 생명은 없고 껍데기만 남은, 경건의 능력은 없이 경건의 모양만 희미하게 남은 사회가 되어버렸다. 교회는 물질과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며 증인이 되지 못했다. 복음을 맡은 교회의 타협으로 세상은 사회주의, 막시즘,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뒤덮였다.

그 결과, 어느 때보다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사회규범적으로 타락한 사회로 병들어 갔다. 죄가 왕노릇하는 사회가 되었고 다음세대는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추구하는 교육을 받게 되었다. 다음 세대 안에 복음에 대한 열망은 갈수록 희귀해지고 자유를 억압하고 제한하는 것 같은 성경의 진리를 증오한다. 진리와 관련된 기존의 규범들에 반발심을 느낀다. 이것은 교회가 복음의 증인이 되지 못한 당연한 결과물이다.

이런 암담한 현실에 있는 우리와 다음세대에게 무엇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소망이라는 것이다(딤후 3:15~17). 다음세대에게 복음을 선포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는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은 하나님과 완전한 사랑과 기쁨의 교제를 누리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권리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것이 바로 인간답게 사는 방법이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의무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 첫 인권침해가 일어나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다. 죄가 우리 생명에 들어옴으로 우린 그 인권의 본질,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누릴 수 없게 됐다. 그 결과, 인간 사회 전체가 끝이 없는 부자연스러움의 길로 들어섰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형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그것은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었다. 고아와 과부와 병든 자와 죄인 중에 죄인들과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지 못하고 있던 자들을 돌아보시고 다가가셔서, 사랑하셨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원형의 삶이 권리포기의 삶임을 몸소 보여주셨다. 그는 신권을 가진 분이셨으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완전한 인권을 누리며 살아간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믿음으로 십자가에 동참해 그 생명을 받았음을 믿기만 하면 그 원형의 삶을, 정말 창조하신대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택할 길은 예수님과 같이 다른 이의 인권을 위해 나의 인권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전도와 나의 권리포기는 가장 위대한 인권운동이며 지체를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은 가장 큰 인권침해이다. [복음기도신문]....박은준 형제(헤브론원형학교 11학년)


=====[말씀따라 분별하고 회개하여 도려냄]의 아픔...개신교의 교회내 세습 시도= 불신앙의 문제!!!=====

@@범신론/다원론/종교다원주의(이것이 ,이 어둠의 세상 주권자>란 실체 중 한 단면,,,,,영적 민감성으로 인도하시는 HS의 음성따라 깨어 기도하며분별해야할 필요가 있음!! ...겉으로나마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WCC대회중 샤먼의 참여/연합마저 허용(Tolerance??)하려는 자세나 태도가 큰 문제 =영분별과 대적이 필요함!!! :: (구원받는 길이 서로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 이룰 수 있음을 인정하는 모양새.....(세계교회연합체WCC는 정교회를 가입회원으로, 가톨릭을 또한 명예회원으로 두고 있음)==>인본주의/뉴에이지/포스트모더니즘((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사상들의 견고한 진,,,오직 성령의 강력으로 깨뜨림)) 

WCC, KNCC의 근본문제는 tolerance....성경만이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말씀임을 부인하고 기독교만이 유일한 참 종교임을 포기하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인의 유일한 구주이심을 부인하며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만인 구원설을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개신교의 근본 정신을 뿌리째 부정하는 것과도 같다.......WCC는 교회론적으로 'Ecclesiam Unam Sanctam(하나된,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인 교회)'을 표방:...**이 모든 단어의 [하나님 앞에서 통찰-적용하는] 비가시적 교회 에 대한 고백이기에 [하나님앞에서] 영적 통찰을 통해 해석하고 고백함이 중요한데, 그 중  [사도성] 단어가 교회의 영적 하나됨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음 ...이 단어의 의미를 육적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중요.....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세상적, 육적으로 관철시키려 하는 것이 가털릭의 [예수회]임......특히 이 부분에 서 영향을 받고, 현실정치에의 적극적 참여를 요구하는 WCC의 선교방식과 불가시적(不可視的)교회에 대한 WCC의 공식 성명이 전무하다는 점은 WCC의 교회론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WCC에 가입되어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세계교회협의회와 에큐메니컬 운동(tkehtlsruddml rhdryghl vygus)을 같이 하는 협력 단체로서 개신교 내의 일치운동 뿐만 아니라 동방 정교회,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일치 운동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다.!!!.....한편,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 및 문제점에 주목하여 보자...가톨릭은 : 구약39+신약27권만을 성경으로(유일무이한 하나님이 말씀으로) 인정하는 장로교의 기원  마르틴루터의 주장을 따르는 개신교와 달리 가톨릭은 구약39권외에 외경7권을 추가적으로 구약성경으로 여김.....교회론에 있어서도 교회의 전통성과 사도성(JC께서 세우신 사도들을 통해서 내려왔다는 유일한 권위 계승)이 교회론의 특징,  개신교는 참된 교회는 각자의 양심안에 있으며, 글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계시(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견지.....KNCC  **회원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구세군 대한본영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한국루터회  한국정교회  **회원 단체 : CBS기독교방송 대한기독교서회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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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로교 분열의 원인

WCC 가입 문제는 한국의 개신교 최대교파인 장로교회(예수교 장로회, 이하 예장)를 두 교단으로 분열시켰다. 한국의 예장은 이미 1930년대 아빙돈성경주석 사건부터 온건파와 보수파가 대립하던 양상을 꾸준히 보였으며, 1950년대에 예장의 WCC 가입시기에 이르러, 당시 WCC 총재가 네덜란드 개혁교회 목사 호프트였는데도, 정작 회원교단이 아닌 천주교회와의 일치운동[4]이라고 주장하며 반대하는 장로교 보수파인 예장합동과 WCC 가입에 찬성하는 장로교 온건파 예장통합으로 분열됐다.

한국의 예장 총회는 1956년 9월에 열린 제 41회 총회에서 WCC 문제로 찬성파와 반대파가 크게 대립하자 이 운동을 연구할 에큐메니칼 연구위원 8명을 발족했다.여기에 선정된 위원은 한경직을 위원장으로, 유호준, 안광국, 박형룡, 박병훈, 환은균, 정규오 등 8명이었는데 앞의 네 사람은 WCC에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뒤의 네 사람은 반대파였다. 이들은 다음해 열린 42차 총회에 발표한 첫 보고서에서 단순한 친선과 협조라는 측면에서는 WCC를 지지하지만 교회의 단일화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즈음 박형룡은 장로교 신학지인《신학지남》에 WCC에 반대하는 견해를 발표하였는데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WCC는 교리적으로는 혼란한 자유주의 지도하에 움직이며 정책적으로는 세계 단일교회의 구성을 최종 목표로 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고로 복음주의에 입각한 교회의 전통적 신앙을 존중하며 보수하려는 교회와 신도로서는 이 운동에 방심하고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5]"

예장합동에서는 WCC 신학은 기독교만이 참 종교임을 포기하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임을 부인하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내포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또 WCC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회원교단들이 있는데 그 모든 교단들을 하나의 연합체 안에 모두 수용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교리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개혁주의 교회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하는 하나의 교회를 주장하지만 WCC의 교회론은 머리되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교회의 본질보다 기능적인 차원의 교회론이기 때문에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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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교황, 종교 간 대화 위해 WCC(세계교회협의회) 본부 방문한다...21일 WCC 70돌 행사 참석, 교단 위원들과 대화할 예정

▲ 프란치스코 교황은 21일 세계교회협회(WCC) 본부를 방문한다. 사진은 교황이 2016년 10월 스웨덴 룬드를 방문해 루터교 세계연맹 사무총장 마르틴 웅에 목사와 포옹하는 모습. 【CNS 자료 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은 21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 본부를 방문해 종교 간 대화와 일치의 ‘다리’를 놓는다. 1948년 설립된 WCC는 개신교가 주도하는 세계 최대 에큐메니컬(교회 일치) 운동 조직이자 개신교회 대표기구다.

교황은 이날 WCC 설립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장로교ㆍ감리교ㆍ루터교ㆍ성공회 등 350여 개 교단 지도자들과 일치기도 시간을 가진다. 또 중앙위원회 위원들과 종교 간 협력과 일치에 대해 대화할 예정이다.

바오로 6세(1969년)와 성 요한 바오로 2세(1984년) 교황이 WCC 본부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주요 교단 대표격인 중앙위원회 위원들과 대화의 자리에 앉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이다. 바오로 6세 교황은 방문 당시 가톨릭교회와의 신학적 쟁점이 해결되길 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가톨릭교회는 완전한 신앙 교리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세(Bose) 초교파 수도승 공동체의 엔조 비앙키 전임 수도원장은 교황의 이번 방문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일치운동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또 다른 표징”이라고 밝혔다.

가톨릭은 WCC 회원이 아니다. 하지만 1968년부터 신앙과 직제위원회에 신학자들을 파견해 세례ㆍ성찬ㆍ성품성사 등에 관한 신학적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가톨릭은 갈라진 개신교파 형제들 가운데 루터교와 가장 활발하게 대화하고 있다. 500년 전 루터의 종교개혁 과정에서 주요 신학적 쟁점이었던 의화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문을 발표했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종교개혁 500주년 정신을 함께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10월 루터교 본부에 찾아가 “오직 하느님만이 재판관”이라며 “분열은 하느님 백성의 뜻이 아닌 세속의 권력(종교 및 정치 지도자들)에 기인했음을 인지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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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하나님을 따라 영적씨름 하는 믿는이의 위치]: 마귀들은 이 세상과 공중(지구와 우주)을, 우리는 우주공간을 넘어선 3층천, 아버지와 아드님의 보좌 앞,,,,,

>>2016-11/6 존 파이퍼 "우리를 향한 사탄의 10가지 전략 "...기독일보 

존 파이퍼 목사. ⓒ베들레헴 침례교회 제공

존 파이퍼 목사는 4일  자신이 운영 중인 '하나님을향한갈망'(DesiringofGod.org) 블로그에 '여러분을 향한 사탄의 10가지 전략'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 칼럼에서 파이퍼 목사는 "삶에 있어서 우리를 가장 각성시키는 사실은 모든 인류에게 초자연적인 적이 있다는 점이다. 그의 목적은 고통과 기쁨을 이용하여 영원히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우리를 어리석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경은 그를 '마귀 그리고 사탄, 전 세계를 속이는 자, 참소자(12:9~10), 세상의 주관자(요 12:31),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라고 표현한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파이퍼 목사는 "그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우리의 대적(벧전 5:8)이다. 그러나 가장 끔찍하고 원치않는 구속 가운데, 이 세상은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엡 2:2)을 따르고 있다. 사탄의 길은 분명히 파멸이며, 사탄은 가능한 많은 이들을 자신의 길로 끌고가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깨어 전쟁에 임하라'는 제목으로 기록한 '선한 싸움'(딤 1:18)에는 날마다 이 원수를 대적하고(벧전 5:9, 약 4:7), 날마다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엡 4:27), 날마다 그의 계략에 대항하는(엡 6:11) 것들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파이퍼 목사가 소개한 사탄의 전략 10가지이다.

1. 사탄은 거짓말쟁이며, 거짓의 아비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니니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사탄은 자신의 속성에 따라 거짓을 말한다. 그는 거짓말쟁이고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창세기 3장에 처음 등장한다. 그의 입술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진리에 대한 의심이었다("하나님께서 정말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리고 두 번째 나온 말은 교묘한 거짓말이었다("네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요한은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진리에 서지 못하고 진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거짓과 속임의 핵심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2. 사탄은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리운다.

이 세상의 신은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리우고,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후 4:4). 그는 거짓을 말할 뿐 아니라 참된 것을 숨긴다. 그는 복음의 귀함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는 우리가 사실과 증거들을 보면서도, 그 귀한 가치는 알지 못하도록 가리운다.

3. 사탄은 빛과 의로움의 옷으로 자신을 가장한다.

고린도후서 11장 13~15절에서 바울은 어떤 이들은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인체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와 같이 사탄도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말씀한다. 따라서 사탄의 종들이 스스로를 의의 종으로 가장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즉, 겉으로는 교회에 참여하기에 충분한 지식을 말하지만 안으로는 바울 사도가 '귀신의 가르침(딤전 4:1)'이라고 언급한 내용들을 가르치는 이들은 사탄의 종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마7:15)와 같다고 하셨다. 사도행전 20장 30절 말씀은 이들이 무리들을 끌어내어 멸망으로 이끈다고 기록돼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분별의 은사(빌1:9)가 없다면, 우리의 사랑은 우둔함에 빠질 수 있다.

4. 사탄은 기적을 행한다.

데로니가후서 2장 9절은 마지막 날이 이와 같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사탄은 마치 이러한 기적들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한다. 사실, 일부 사람들은 사탄이 거짓된 기적들만 행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심의 여지가 있다. 설령 이것이 진리라고 해도, 사탄의 거짓은 거의 모든 이들에게 충분히 진짜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5. 사탄은 사람들을 유혹해 죄짓게 한다. 

사탄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계실 때, 그분을 유혹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사탄은 예수님이 고통과 순종의 길을 포기하길 바랬다(마4:1~11). 그러나 예수님의 마지막 삶에서 유다를 유혹하는데는 성공했다(눅22:3~6). 고린도후서 11장 3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모든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을 전한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6.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뽑아내고, 신앙을 죽인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4장 1~9절에 나타난 4가지 밭 비유를 말씀해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의 땅에 뿌려지는데 일부 씨앗은 길 가에 뿌려져서 새들이 재빨리 먹어버린다. 주님은 15절에서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것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은 말씀을 빼앗아간다. 왜냐하면 말씀을 통해 믿음이 자라나는 것을 미워하기 때문이다(롬 10:17).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염려의 말씀을 전했다.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의 신앙을 죽이려는 사탄의 계획을 잘 알고 있었다.

7. 사탄은 때로는 아픔과 질병을 일으킨다. 

예수님은 허리가 굽어져서 스스로 펼 수 없는 한 여인을 치유해주셨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이 안식일에 이같은 일을 행한다며 예수님을 비난했다. 이에 예수님은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눅 13:16)"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같은 질병의 원인이 사탄에게 있음을 아신 것이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증거한다. 즉, 사탄이 병으로 사람들을 누른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그의 계획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모든 질병이 마귀의 역사라고 말하는 실수를 범해선 안 된다. 분명 '육체의 가시'가 우리의 성화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일지라도, 사탄의 사자가 될 수 있다(고후 12:7). 그러나 질병이 온전히 하나님의 계획인 경우도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그가 예수님의 자비로운 계획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탄을 데려올 필요를 못 느끼셨다.

8. 사탄은 살인자이다. 

예수님은 그를 죽이려고 계획한 이들에게 "너희는 마귀의 아비로부터 나왔고, 그 아비의 일을 행하려 한다.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요8:44)"고 말씀하셨다. 요한 사도는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2)"라고 전했다. 예수님은 흠이 없는 서머나 교회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계 2:10)"고 말씀하셨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탄은 피에 굶주려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를 충만케 하려고(요10:10) 이 땅에 오셨다. 그러나 사탄은 할 수 있는대로 생명을 빼앗고, 결국 영원히 불행하게 만들고자 한다.

9. 사탄은 사역자들의 계획을 대적한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전서 2장 17~18절에서 자신의 선교 계획이 어떻게 죄절되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사탄은 전도와 제자도를 싫어한다. 그는 선교사들을 비롯해 전도에 열정이 있는 이들의 길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해물들을 던져 놓는다.

10.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신자들을 고소한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은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나고"라고 말씀하신다. 사탄은 반드시 패배한다. 그러나 그의 고소는 그치지 않고 있다.

사탄은 욥에게 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를 대한다. 사탄은 하나님께 우리에 대해 "그들은 정말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당신이 주시는 이익만 바라본다"고 참소한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1:11)." "그들의 신앙은 진짜가 아니라"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를 고소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항상 살아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시는 분(히 7:25)'이 계시다는 사실이 매우 영광스럽다.

사탄은 결국 이기지 못할 것이다. 

앞에서 사탄의 계획을 소개했지만, 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은 이미 결정적인 승리를 하신 그리스도를 굳건히 붙드는 것이다.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골로새서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마가복음 3: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요한계시록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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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2]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NASB) Therefore I urge you,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and holy sacrifice, acceptable to God, which is your spiritual service of worship. (KJV)I beseech you therefore,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hat ye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sacrifice, holy, acceptable unto God, which is your reasonable service. (AMP)Therefore I urge you, [b]brothers and sisters,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dedicating all of yourselves, set apart]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well-pleasing to God, which is your rational (logical, intelligent) act of worship.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NASB)And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so that you may prove what the will of God is, that which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KJV)And be not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y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at ye may prove what is that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will of God. (AMP) And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any longer with its superficial values and customs], but be [c]transformed and progressively changed [as you mature spiritually]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focusing on godly values and ethical attitudes], so that you may prove [for yourselves] what the will of God is, that which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in His plan and purpose for you]. 

[골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NASB)and have put on the new self who is being renewed to a true knowledge according to the image of the One who created him--(KJV)And have put on the new man, which is renewed in knowledge after the image of him that created him:(AMP) and have put on the new [spiritual] self who is being continually renewed in true knowledge in the image of Him who created the new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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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43:1-7] 1.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But now, this is what the Lord, your Creator says, O Jacob, And He who formed you, O Israel, “Do not fear, for I have redeemed you [from captivity]; I have called you by name; you are Mine!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 I will be with you; And through the rivers, they will not overwhelm you. When you walk through fire, you will not be scorched, Nor will the flame burn you.  3.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For I am the Lord your God, The Holy One of Israel, your Savior; I have given Egypt [to the Babylonians] as your ransom, Cush (ancient Ethiopia) and Seba [its province] in exchange for you.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Because you are precious in My sight, You are honored and I love you, I will give other men in return for you and other peoples in exchange for your life. 5.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I will bring your offspring from the east [where they are scattered], And gather you from the west. 6.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I will say to the north, ‘Give them up!’ And to the south, ‘Do not hold them back.’ Bring My sons from far way And My daughters from the ends of the earth,  7.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Everyone who is called by My Name, Whom I have created for My glory, Whom I have formed, even whom I have made.”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7/ 2017년 7월16일)...탈라하시장로교회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하며 특별한 존재인지를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 혹시 낙심되고 지치고 두려움 가운데 있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자아가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과 힘을 얻고 돌아가시는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서는 절망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소망을 선포하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죄를 지어 벌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고통을 당했습니다. 자신들의 죄값을 치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회개하고 돌아오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시고 힘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전체를 ‘야곱아’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야곱이라는 이름은 부정적인 이름을 나타낼 때 주로 등장합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뜻은 거짓말장이, 사기꾼, 약삭빠른 자라는 뜻입니다. 진짜 야곱의 인생이 그랬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부끄럽고, 변덕스럽고, 약삭빠른 처세술의 삶을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너희들도 야곱같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너도 야곱처럼 연약하고 변덕스럽고 쓰러지기 잘하는 사람이 아니냐고 보십니다. 너희의 약함을 내가 너무 잘 안다고 하시면서 야곱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연약한 야곱같은 우리에게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를 창조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라는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잘 아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낙심되고 지치고 두려우면 길이 안보인다며 앞이 깜깜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내 수준에서 안 보이는 것이고 창조주 하나님의 수준으로 가면 반드시 기적같은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9)”

그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옛날의 하나님이 아니고 기약없는 미래의 하나님이 아니고 바로 지금 내 옆에 계셔서 내게 말씀하고 계신 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아’라고 그러시더니 이번엔 또 ‘이스라엘아’ 그러면서 이름을 바꾸어 부르십니다. 같은 사람인데 이름이 바뀌어 졌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새롭게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랑 씨름하고 나서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져서 불구가 됩니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엘로힘 하나님은 ‘엘’이라는 당신의 이름이 담긴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제부터 너는 네 꾀를 의지하고 사는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싸우는 이스라엘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서 옛사람이 강하던 야곱같은 때도 말씀하시고, 이제 옛사람이 죽고 하나님이 주관하는 새사람 이스라엘이 된 우리에게도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실 때 자기 자신을 주십니다. 우리는 말만 하면 다냐 그러는데 하나님은 말씀만 하시면 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절망적인 상황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여러분에게 주시고 있다면 여러분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열릴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은 적당히 넘겨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목숨걸고 그 말씀을 붙잡아야 됩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면 여러분은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본문 5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인류 역사는 두려움의 산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류는 두렵기 때문에 산성을 쌓았고 두렵기 때문에 부를 축적했습니다. 우리가 왜 돈을 벌어 노후를 대비합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자녀들을 공부시킵니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성도라 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있는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포로생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밤낮없이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내일은 뭐 먹고 살지? 내일 잠자고 일어나면 어디가서 텐트 치지? 또 어떤 적들이 새롭게 공격해올까?’하는 두려움으로 가득차 밤에 잠도 잘 못 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근거를1절 후반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b)”

먼저 내가 너를 구속하셨다고 했습니다. 구속은 영어로 redemption인데 값을 주고 노예를 사서 해방시켜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치르고 죄의 포로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길에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불러 재미삼아 구원하신게 아닙니다. 나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그 이름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렇게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너는 내 것이라(You are mine)’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도 자기 것은 얼마나 철저히 챙기고 지키는지 모릅니다. 하물며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것이라고 선포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너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사가 흠모하고 마귀가 두려워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것이라고 선포하신 이스라엘과 함께 하면서 이스라엘을 지킬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갈 당신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물 가운데로 지난다는 것은 인간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환난을 하나님이 뚫고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보통 고난이 아닌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함께 물을 몇 번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고 물 가운데로 인도하셨고 약속의 땅에 들어올 때도 요단강을 가르고 장마철에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를 극복하고 건너자 이번에는 불타는 광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는 우상숭배를 거부하다가 풀무불 속에 던져졌지만 불이 그들을 사르지 못했습니다. 인자같으신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한 가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도 고난 자체에서 열외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라고 해도 여러가지 고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을 없애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보다 더 큰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그 고난을 이겨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2절 말씀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우리를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 34:19)” 고난이 없는 인생이 축복받는 인생이 아니고 모든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건지시는 인생이 축복받는 인생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어떠한 고난이 있으십니까? 어떠한 두려움이 있으십니까? ‘나와 우리 가정의 진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와 우리 가족에게 어떻게 이런 병이 찾아왔을까? 우리 가정에 어떻게 이런 생각지도 않은 환난이 찾아왔을까?’ 하고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으십니까? 물 가운데를 지나가고 불 가운데로 지나가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고난일지라도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그 고난을 넉넉히 이겨나갈 줄로 믿습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3)”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거룩한 자다. 다른 사람의 구원자가 아니라 바로 너의 구원자이다. 너를 죽이려는 심판주가 아니라 너를 살리려는 구원자이다. 그러므로 어떤 환난 가운데도 두려워하지 말라.” 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도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자라는 증거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치르신 대가인데 3절 후반에 기록 되었습니다.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3b)”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한 속량물로 애굽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애굽은 본문 당시 나일강 하류 지역에 위치했던 하애굽을 말하고 구스와 스바는 나일강 상류 지역에 위치했던 상애굽을 말합니다. 후대에 구스와 스바는 애굽과 하나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구스와 스바는 애굽과 동의어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사야 선지자가 이들을 모두 언급하며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해 치르신 대가가 매우 컸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입니다.

이 이해가 안되는 일에 대한 이유가4절에 나옵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4)” 이 말은 세상의 만국은 얼마든지 멸망시킬 수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끝까지 책임지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을 희생시켜 이스라엘로 상징되는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Love Letter 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보내는 Love Letter입니다. Love is blind 라는 말처럼 사랑은 상식을 초월합니다. 아무리 잘난 애들이 바글거리는 발표회라고 해도 부모는 자기 자녀를 딱 찾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니까 딱 보이는 것입니다. 또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을 위해서 어떤 값비싼 대가도 희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애굽을 희생시킨 것보다 더 충격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죄인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시킨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우리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속량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1:7)”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아들 보내사/ 화목제물 삼으시고 죄용서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느냐가 그 사랑의 질을 결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속하시기 위해 예수님의 생명을 내어주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적어도 예수님짜리 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나 같은 건 쓸모없는 존재라며 자신을 비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적어도 예수님의 생명을 주고 구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그렇게 비싼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땅 끝에서부터 모아 오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5)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6)” 그 당시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중해 각지로부터, 멀리 아프리카와 인도에 이르기까지 사방에 노예로 팔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제대로 모으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로 기적같이 그들이 다 오게 되었습니다. 고향 땅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엄청난 열심과 인내와 능력으로 이들을 모아 오실까요? 왜 그들을 열방 가운데서 이끌어 오실까요? 왜 나라를 세우시고 회복시키실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7절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7)”

먼저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사방천지에서 모으셔서 하나의 교회 공동체로 불러 주신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을 하나님의 강함으로 메꾸시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증인으로 택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하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돌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열방에서 부르셔서 구원하시는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말로 우리의 존재 목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본래 창조된 목적, 존재하는 목적을 잃어버렸으나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 그 존재 이유를 발견하고 창조 목적에 부합된 삶,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이끄실 것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그 자리에서 본분을 다할 때입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겨서 잘 자라갈 때 행복하고,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음을 확인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갈 때 행복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본질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서 그분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때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고백의 표준이 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문답 1조1항에 “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 로마서5장2절 후반부에서도 인간의 존재 목적을 “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론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존재 목적을 잊고 2차적인 것에 목숨걸고 살아갑니다. 세상에서의 부와 명예, 안정된 직장,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피조물이 창조주 안에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불안과 걱정과 어두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사람의 존재 목적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바로 우리가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하는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 분 안에 거하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난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라. 내가 너를 창조하였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함께 찬양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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