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2.16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신6..아헤브=아가페사랑으로!!
첨부파일 :

[신6장] 일편단심, 전심전력으로 주 하나님 사랑하기....아헤브=아가페사랑으로!!

1.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이것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가르치라고 나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입니다. 당신들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이것을 지키십시오.

2.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내가 당신들에게 명한 모든 주님의 규례와 법도를 잘 지키면, 당신들과 당신들 자손이 오래오래 잘 살 것입니다.

3.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그러니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이 모든 말을 듣고 성심껏 지키면, 주 당신들 조상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당신들이 잘 되고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NASB]신 6:4 "" Hear, O Israel! The LORD is our God, the LORD is one! //[NRSV]신 6:4 Hear, O Israel: The LORD is our God, the LORD alone. //[NKJV]신 6:4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NIV]신 6:4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5.너는 마음(레바브)을 다하고 뜻(네페쉬)을 다하고 힘(메오드)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아헤브)//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NASB]신 6:5 ""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ght. //[NRSV]신 6:5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ght. //[NKJV]신 6:5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NIV]신 6:5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6.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

8.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또 당신들은 그것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으십시오.

9.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이십시오."

10.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당신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그 땅에, 당신들을 이끌어들이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당신들이 세우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들이 있고,

11.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당신들이 채우지 않았지만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이 있고, 당신들이 파지 않았지만 이미 파놓은 우물이 있고, 당신들이 심지 않았지만 이미 가꾸어 놓은 포도원과 올리브 밭이 있으니, 당신들은 거기에서 마음껏 먹게 될 것입니다.

12.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당신들이 그렇게 될 때에, 당신들은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당신들을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13.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하십시오.

14.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하십시오.

15.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당신들 가운데 계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분노하시면, 당신들을 땅 위에서 멸하실 것입니다.

16.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당신들이 맛사에서 시험한 것처럼,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 됩니다.

17.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며//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과 그가 명한 훈령과 규례를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18.19.(동)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당신들은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올바르고 선한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잘 되고, 주님께서 당신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저 좋은 땅에 들어가서, 그 곳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19.//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당신들 앞에서 당신들의 모든 원수를 쫓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하거든//나중에 당신들의 자녀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명하신 훈령과 규례와 법도가 무엇이냐고 당신들에게 묻거든,

21.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당신들은 자녀에게 이렇게 일러주십시오. '옛적에 우리는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로 있었으나,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22.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의 온 집에 베푸시고//그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가 보는 데서, 놀라운 기적과 기이한 일로 이집트의 바로와 그의 온 집안을 치셨다.

23.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주님께서는 우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시고, 우리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이 땅으로 우리를 데려오시고,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

24.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명하여 지키게 하시고, 주 우리의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셨다. 우리가 그렇게만 하면, 오늘처럼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가 잘 살게 하여 주실 것이다.

25.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 그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충실하게 지키면, 그것이 우리의 의로움이 될 것이다.'"

-----

bb;le(3824, 레바브) 내부인간, 마음, 정신, 의지

레바브(명남)는 레브(ble , 3820)와 동일하며, '내부 인간, 마음, 정신, 이해력, 의지'를 의미한다.→ 3820 레브를 보라. 

ble(3820, 레브) 내부 인간, 마음, 정신, 의지

레브(명남)는 레바브(bb;le , 3824)의 한 형태이며, '내부인간, 마음 heart, 정신 mind, 이해력 understanding, 의지 will'를 의미한다.

레브의 실제적인 의미는 내부기관과 유사 신체기관을 말한다. 그러나 추상적인 의미에서 "마음"은 인간내부의 총체 혹은 영적인 본질에 대한 가장 풍부한 성경 용어가 되고 있다. 성경 문학에서 이 단어는 성경에서 실제로 인간의 모든 영적인 기능이 "마음"에서 기인되기 때문에 기능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용어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적인 인격 기능에 대한 가장 빈번한 용례이다.

본 항목에서 3820레브와 3824레바브를 다룬다.

구약성경에서 레브는 약 600회, 레바브는 약 250회 나온다.

율법서, 예언서, 시편은 종종 '마음'에 대해 언급한다. 이 단어의 어근은 아카드어, 앗시리아어, 이집트어, 우가릿어, 아람어, 아랍어, 후기 성경 히브리어에도 나온다. 상응하는 아람어 명사는 다니엘서에 7회 나온다.

'마음' heart은 창 6:5의 사람에 관한 언급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창 6:6에서는 하나님에 대하여 레브( )가 사용되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레브는 몸의 기관을 가리키기도 한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 판결 흉패를 '가슴' heart에 붙여..."(출 28:29), "요압이...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압살롬의 '심장' heart을 찌르니..."(삼하 18:14), "내 '심장' heart이 뛰고..."(시 38:10).

레브는 어떤 것의 내부나 한가운데를 가리키기도 한다: "...큰 물이 바다 '가운데' in the heart 엉기니이다"(출 15:8), "...그 산에 불이 붙어 화염이 충천하고..."(신 4:11, KJV는 '하늘 한가운데' in the midest of heaven, RSV는 to the heart of heaven),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잠 23:34).

레바브는 신 30:14에서와 같이 겉 사람과 대조되는 속 사람에 대하여 사용될 수도 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으리라"(신 30:14, 참조: 욜 2:13),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레바브는 종종 강조를 위해 '영혼' soul과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또 마음을 다하고 '영혼' soul(한글개역 -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대하 15:12, 참ㅁ조: 대하 15:15).

네페쉬(영혼, 생명, 자아)는 KJV에서 15회, '마음'으로 번역된다. 모든 경우에 이 단어는 '속사람'을 나타낸다: "대저 그 마음(네페쉬)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

레브는 그 사람 자체 혹은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해 사용되기도 한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기를..."(창 17:17),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라"(전 1:16).

레브는 또한 이런 의미로 하나님에 대해서 사용된다: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렘 3:15).

욕망, 성벽, 의지의 자리를 '마음'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출 7:14),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출 35:5, 참조: 출 35:21, 출 35:29),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시 86:12).

레브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이 의미로 사용된다: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렘 32:4).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어울릴 때 그들은 동의한다고 한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그러하냐"(왕하 10:15). 대하 24:4의 "요아스가 여호와의 전을 중수할 뜻을 두고..."에서 '뜻을 두고'는 히브리어로 '마음에 품다'라는 뜻이다.

'마음'은 감정의 자리로 생각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출 4:14, 참조: 삼상 2:1). 그래서 즐거운 마음(삿 16:25), 겁내는 마음(사 35:4), 떨리는 마음(삼상 4:13)들이 있다.

'마음'은 지식과 지혜의 자리로 간주되며 '정신, 지성'의 동의어로 생각되기도 한다. '마음'이 '알다'라는 동사와 함께 나올 때 종종 이런 의미를 나타낸다: "너는...마음에 생각하고..."(신 8:5, NASB는 '너는...마음으로 알고'), "그러나 깨닫는(아는) 마음과...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 29:4, KJV, RSV, 'mind').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참조: 왕상 4:29). 기억은 마음의 활동이다: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욥 22:22).

'마음'은 양심과 도덕적 특성의 자리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와 우리 주위의 세상의 계시에 어떻게 응답하는가? 욥이 대답한다: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욥 27:6). 이에 반하여, "다윗이...그 마음에 자책하고"(삼하 24:10). 마음은 인간 행위의 근원이다: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창 20:5, 참조: 창 20:6). 다윗은 '정직한 마음'으로 행하였고 히스기야는 '전심'으로 행했다.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한"(시 24:4)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레브는 반항과 교만의 자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고 말씀하셨다. 두로왕도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도다..."(겔 28:2). 그들은 모두 "죄가 마음 판에 새겨진"(렘 17:1) 유다와 같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지배하신다. 인간의 자연 그대로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에 놓여 있다: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그러므로 죄인들은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시 51:10),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시 86:11). 또한 다윗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대상 29:17)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승인을 구한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시 62:2).

'마음'은 인간의 내적인 존재, 곧 그 자신을 대표한다. 마음은 그 자체로서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다(잠 4:4). 사람의 모든 생각, 욕망, 말, 행동들은 그의 내부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렘 17:9). 사람이 자기 자신의 방식대로 행하기를 계속할 때, 그의 '마음'은 점점 더 완고해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여(마음의 부정함을 제거시켜) 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도록 하실 것이다(신 30:6).(참조: NEDOT; TWOT). 

------

vp,n<(5315, 네페쉬) 숨쉬는 존재, 영혼, 생명 등

네페쉬(명여)는 '숨쉬다, 원기를 회복하다'를 뜻하는 동사 나파쉬(vp'n: , 5314)에서 유래한 명사이며, '숨쉬는 것이나 호흡하는 존재(피조물), 영혼, 생명' 등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750회 나온다.

(a)  네페쉬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간에 육체를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어떤 경우에서(창 36:6) 소마(몸 body)로 번역되어질 수 있다. 네페쉬가 프쉬케로 번역되어 지면 프쉬케는 '넓은 의미에 있어서 인간의 생명적인 것을 의미하며'(G. 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1, 1962, 153), 다른 말로는 살아 있는 것을 뜻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살아 있는 혼'이라는 말을 읽게 된다(창 1:20, RSV, living creatures). 죽어가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밖으로 불어내거나(AV 'gives up the ghost' 영혼을 포기한다. 참조: 렘 15:9), 혹은 영혼을 쏟아 붓는다(애 2:12). 영혼은 죽는 자에게서 떠난다(창 35:18). 그러나 영혼(즉 생명)은 육체로 되돌아 올 수 있다(왕상 17:21). '영혼은 영혼으로'라는 것은 '생명은 생명으로'라는 것을 의미한다(출 21:23). 생명의 좌소로서의 피(Blood)는 실질적으로 '네페쉬'나 프쉬케와 동일할 수 있다(창 9:4 이하, 레 17:11, 레 17:14, 신 12:23). (G. Harder).

(b)  "생물"(네페쉬 하이야)는 창 1:20에서 물에 사는 생명체 피조물에 대해 창 1:24에서는 땅에 사는 동물에 대해, 창 2:7에서는 사람(개역: "생령")에 대해, 창 9:10에서는 새들과 땅에 사는 동물에 대해, 창 9:16에서는 사람과 동물에 사용되었다. 동일한 용어가 '모든 생물', 그리고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런 경우에 네페쉬 하이야라는 용어는 생명을 가지고 호흡하는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일 용어 '네페쉬 하이야'가 모든 생물에 사용되었다고 해서 모든 생물이 우리 인간과 같은 혼이나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분명히 네페쉬의 기능과 능력에 있어서 곤충과 물고기의 네페쉬와 소, 말 등의 네페쉬와 사람의 네페쉬가 다른 것이다. 기계의 가치와 능력에 따라 장착되는 동력이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있다.

특히 인간적 존재는 본래부터 충동, 욕구, 소망, 의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네페쉬는 그런 의미들로도 사용되었으며, 한 개인의 생명을 의미한다. 소생시키고 회복시키는 대상으로서 네페쉬는 영혼(soul)이라는 개념과 생명 life이라는 개념을 모두 포함한다(R. V. Harris의 구약원어사전).

동물의 네페쉬와 사람의 네페쉬가 다른 것은 우선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대한 기사가 밝혀준다. 사람은 창조될 때 동물들과는 달리 생명의 숨(니셰마트 하임, 생명의 숨)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다. 그래서 '네페쉬 하이야'가 된 것이다. 이는 사람의 네페쉬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과 창조 의지에 의해 창조된 동물의 네페쉬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의 네페쉬와 동물의 네페쉬의 차이를 밝혀주는 또 하나의 성구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전 3:19-21을 보면 "19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것이 헛됨이로다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 누가 알랴"

전 3:19에서 단지 한 사건, 즉 죽음이 사람과 짐승에게 똑 같이 찾아온다는 것, 전 3:20에서 '단 한 곳으로 간다는 것은 일종의 무덤을 가리킨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인간이건 짐승이건 간에 예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 3:21에서 사람의 네페쉬와 동물의 네페쉬가 돌아가는 곳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전도서에서는 루아흐[영]가 사용되었지만 문맥상 네페쉬[혼]를 의미한다). 일부 학자들이 전 3:21을 회의적으로 해석하지만 매우 분명하고 명확한 어투로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간다'고 말한다. 이 사실을 누가 알겠는가? 오직 하나님 선만이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자는 이 사실을 안다. 그러면 솔로몬도 알고 있었다.

(c)  네페쉬는 자아 생명의 민감한 부분으로서 감정, 사랑(Cant. 1:7), 갈망(시 63:1), 기쁨(시 86:4)의 좌소를 의미한다. 이것은 어떤 것을 더 숙고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영혼'은 그 생명의 운동과 감정의 여러가지 표현을 나타낸다. 영혼은 인간의 내적 능력을 결합한 요소이다. 따라서 "너의 영혼을 다하여"라는 말이 성립된다(신 13:3). 영혼의 내부에서 음식에 대한 욕망(신 12:20, 신 12:21), 육체의 욕망(렘 2:24), 살인과 복수에 대한 갈망(시 27:12)이 거주하고 있다. 영혼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즉 그것은 울고(시 119:28), 눈물을 흘리며(욥 30:16), "오래" 참는다(욥 6:11). 그러나 지식과 이해(시 139:14), 생각(삼상 20:4)과 기억(애 3:20)도 마찬가지로 영혼에 자리잡고 있다. "영혼"은 전 인격 곧 인간의 전 자아의 총체이다. 따라서 "영혼"은 의미상 "나 자신" 또는 "네 자신"과 동일시 될 수 있을 정도이다(삼상 18:1). 창 2:7에서 네페쉬는 '사람' person, 혹은 '존재' being를 의미한다.

살아있는 피조물 역시 혼(soul)으로 묘사되어 질 수 있다. 집합적 의미에서의 살아있는 모든 것, 곧 모든 생물들(레 11:10). 율법에서 영혼(soul)이라는 말은 특별한 법규와 관련된 당사자를 의미한다(레 4:2, 레 5:1, 레 5:2, 레 5:4, 레 5:15). 사람들을 계수할 때 영혼들(souls)이라고 계수한다(출 1:5, 신 10:22). 구약성경이 죽은 사람을 가리켜 그 사람의 영혼이라 말하며 따라서 이러한 표현으로써 죽은 시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영혼이 몸과는 별개라는 개념 또는 죽을 때 영혼이 몸에서 분리된다는 개념에 구약성경이 전혀 친숙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해 주고 있다(민 6:6). (G. Harder) 

----

daom](3966, 메오드) 힘, 굉장히, 매우, 대단히

메오드(명남)는 '많음, 힘, 풍부'를 의미하며, 부사적으로 '굉장히, 엄청나게, 매우, 대단히'라는 의미를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00회 나오며, 주로 부사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명사로는 드물게 사용되었다.

(a)  명사로는 '힘 force, might'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신 6:5, 왕하 23:25).

(b)  부사적으로 '굉장히, 엄청나게, 크게, 매우, 대단히, 많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창 1:31, 창 4:6, 창 7:18, 창 7:19, 창 27:33, 창 17:2, 창 17:6, 창 17:20, 출 1:7 등). (참조: BDB; HELOT). 

-------------

bhea;(157, 아헤브) 사랑하다 love, 좋아하다 like, 사랑스러운 lovely

동사 아헤브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를 의미하며, 그 의미의 강도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부터 게으른 대식가의 육체적인 식욕에까지 이른다. 이 동사는 칼 어간의 모든 법(mood)과 니팔 분사형, 그리고 피엘 분사형으로 나온다. 16회의 피엘형은 강의적인 것이 아니라 대개 부정한 '연인' lover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00회 이상 나온다.

구약성경에서 사랑은 그 사람을 강요하여 그가 좋게, 또는 올바르게 평가하거나 인정하는 사물이나 사람에게로 이끌어 가는 자발적인 힘이다. 사람은 이 사랑의 힘에 제어를 받아 자기 자신을 주거나 혹은 사랑의 원인이 되는 대상을 확고히 붙잡거나 혹은 즐거움을 주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랑은 내적 인격에 심은 영혼의 불가해한 힘이다. 사람이 사랑의 대상을 올바로 인정하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한다(신 6:5). 사랑과 미움은 생의 양극이다(전 3:8, 전 9:6). 사랑은 인간 상호간의 사랑, 하나님의 인간과의 사랑, 사물에 대한 사랑 등을 나타낸다.

(a)  이 단어는 남녀의 사랑에 대해 사용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하나님과 관계, 그리고 남녀의 성적 관계를 시사해 준다. 이 남녀의 사랑은 이성(sexes) 상호간의 생명력 넘치는 충동을 의미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렘 2:25)나 호세아(호 3:1, 호 4:18), 그리고 에스겔(겔 16:37)은 사랑의 성적(sexual) 측면을 매우 진하게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단어는 남녀의 연애나 열애(창 29:18이하, 창 34:3, 삿 16:4), 합법적인 부부의 행복한 사랑(창 24:67, 삼상 1:5)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창조의 기사는 성의 구별과 부부간의 사랑이 생을 풍요하게 하는 은사임을 설득력 있게 이해시켜 준다(창 2:18이하).

「그러나 이 사랑은 성적 사랑의 범위를 포함하지만 그것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헌신적 사랑과 생활의 충실함이 합쳐져 있다. 구약의 초기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사랑은 일부다처나 일처다부 사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구약성경은 충실(참조: 창 20:13, 삿 14:16, 삿 16:4-5, 겔 16:8, 겔 23:17, 호 3:1), 상호의존(참조: 창 24:67), 책임(참조: 삼하 13:1, 삼하 13:4, 삼하 13:15)과 같은 인간 사랑의 다른 측면을 제외하고 성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위험을 이해시켜 준다(The interpertreter's D.B).」

더 나아가서 아가서는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라고 열정적인 사랑의 강력한 힘을 찬양까지 한다. 이 노래는 성적(남녀) 사랑의 기이함과 적극적인 힘을 찬양하지만 그 찬양에는 그 사랑이 근거를 두고 있는 상호의존과 신앙심(헌신)을 강조하고 있다(참조: 아 2:16, 아 3:1-8, 아 7:10, 아 8:6-7). 아가서에서 사랑을 묘사할 때 거의 대부분 아헵(아가파오)과 아하바(아가페)를 사용했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를 부른 칭호는 도드(d/D , 1730, 사랑하는 자)를 사용했다.

이러한 사랑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암논과 다말의 이야기는 성충동의 야수성, 즉 대상자와 성적 관계를 가지려는 무절제한 요구를 보여준다(삼하 13:1-22). 사랑은 성애 또는 성욕적인 영역에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근원, 곧 마귀로부터 기인한 원시적 힘인 미움을 부인함으로 맞서는 적극적인 능력이다. 이 이야기는 이 두 가지 충동의 야수성도 투명하게 보여준다(삼하 13:1-22). 결혼이나 부부 생활은 상대에 대한 사랑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 삼손의 신부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치 아니하는도다"라는 히스테릭한 말에서(삿 14:16, 참조: 삿 16:15, 창 29:31, 창 29:33) 동일한 요소가 표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법까지도 사랑과 미움의 성욕적 증상에 관여하고 있다(신 21:15이하, 신 22:31이하, 신 24:1이하).

아헤브가 '사랑의 행위를 하다'(일반적으로 이것은 야다<알다>나 샤카브<~와 함께 눕다>로 표현된다)라는 뜻을 가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러나 왕상 11:1에서 이 단어는 이러한 부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참조, 렘 2:25).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바를 기록할 때, 이러한 의미를 사용하였다: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호 3:1). 이 단어의 이런 의미는, 이 동사가 사역동사의 어간(분사로서)으로 나올 때 현저하게 나타난다.

(b)  이 단어는 부모와 자식, 가족간의 사랑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사랑했으며(창 22:2), 리브가는 아들 야곱을 사랑했다(창 25:28). 야곱은 요셉과 베냐민을 사랑했다(창 37:3, 창 44:20). 잠언은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경계하느니라"고 했다(잠 13:24).

또한 이 단어는 며느리의 시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같은 가족간의 사랑을 표현한다(룻 4:15).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어느 곳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부모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또 부모에게 복종해야 한다.

「참고 - 창 47:29에 보면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인애(헤세드: 친절, 자비)란 단어를 사용하여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기를 요청했다. 이것이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족속이나 가족의 유대는 이스라엘에서 매우 강하였다. 그러므로 '근친' 관계의 중요한 요소인 사랑에 대하여 놀랄 일이 아니다. 그것은 룻 3:10에서 이성 곧 남녀 사랑과 관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인애(헤세드: 친절, 자비)는 남녀 사랑의 개시와 가까운 친족에 대한 충실, 이 둘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가족적 사랑이 너무 선택적일 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창 25:28). 그 결과로 야곱과 에서가 서로 반목하고 미워하게 되었다. 요셉에 대한 야곱의 편애로 인하여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었다(창 37:4). 배타적인 사랑은 증오가 들어올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다. 이는 사랑이 헌신적일 뿐만 아니라 책임을 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c)  아헤브은 때때로 종이 그 주인의 지배하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주인에 대한 특별하고도 강한 애착심을 나타낸다. 출 21:5에 보면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라고 한다. 아마 여기에는 가족애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그의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종이 그의 주인을 사랑한다(신 15:16). 이러한 의미가 강조되는 구절로는 삼상 16:21이 있는데 여기에는 사울이 다윗을 크게 사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사랑하고(삼상 18:16) 심히 존경하게 되어 그의 모든 행동들을 경탄으로 바라보았다.

(d)  이 단어는 친구의 특별한 애착을 나타낸다.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사랑은(삼상 18:1, 삼상 18:3, 삼상 20:17) 여인의 사랑보다 더 깊은 우정의 차원이었다 -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 1:26).

(e)  아헵은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 부친을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 신복을 솔로몬에게 보내었으니 이는 히람이 평일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왕상 5:1). 다윗에 대한 히람의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국제적인 우호 관계나 화해 정책을 예증하는 것이다. 후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그것이 그가 지극히 충성스러웠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f)  더 나아가 이 사랑은 사회적 공동 생활의 근본과 규범으로 나타난다 -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 19:18). 이러한 면에서 사랑은 이웃을 위한, 그리고 이웃을 향한 헌신이며, 이웃을 형제로서 받아들이는 것이고 이웃이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특히 외국인(레 19:34)과 가난한 자(레 25:35)와 고아의 권리와 관련된 사회적 법률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이웃 사랑은 단순한 친절이나 호의로 해석할 수 없다. 이것은 편협한 배타주의를 배제한다. - 바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웃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적(enemy)으로 생각되는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의미한다.

그 이유로 신 22:1-4이 동포를 도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인 반면, 출 23:4-5은 특별히 이 의무를 적대적인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은 동료일 수도 있고 적일 수도 있으므로, 그는 사랑의 대상이지 법적 제한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개인은 법적 개인보다 우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형태에서 출 23:4이하의 요구와 아마도 한층 더 높은 수준인 잠 25:21에 있는 기본적 진술("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은 원수를 향한 성향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으나 한 특별한 방식의 행위의 의무를 지우는 것으로서, 원수에 대한 사랑을 실천적으로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요셉은 그의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선으로 악을 갚는 그런 실례를 보여준다(창 50:19).

물론 구약성경에는 이러한 원수를 사랑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시 109편과 잠 14:20 및 적대 국가들에게 향한 일반적인 태도는 이에 대한 예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의해 부과된 윤리적인 요구의 고결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g)  이 단어는 구체적인 것이나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름(잠 21:17), 은과 풍부(전 5:10), 뇌물(사 1:23)을 사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악(시 52:3-5), 사망(잠 8:3), 허사(시 4:2-3), 거짓 맹세(슥 8:17)를 사랑했다.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시 119:47), 율법(시 119:97), 증거(시 119:119), 법(119:159), 그리고 그들은 선(암 5:15), 진실과 화평(슥 8:19), 구원(시 40:16-17)을 사랑했다.

(h)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기를 "사랑하라"고 명하셨다(신 6:5). 그리고 시편에는 이 계명에 대한 순종의 증거들이 포함되어 있다(시 116:1, 시 145:20). 반대로 하나님은 사람들, 특히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신 4:37, 사 43:4, 말 1:2). 주님은 또한 시온의 문들(시 87:2), 정의와 공의(시 33:5), 성전(말 2:11)과 같은 것들을 "사랑하신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한다(수 22:5). 예레미야는 이 백성이 방황하기를 좋아한다고 질책하였다(렘 14:10).

(i)  이 분사형들은 종종 '친구' friend로 변역되곤 한다. 대하 20:7에 보면, 아브라함은 주의 "벗"이라고 한다.

(j)  위에서 지적하였듯이 피엘형 분사를 번역한 영어 단어 "lover" (연인)는 종종 매춘을 암시하는 경멸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 선지자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등은 이스라엘의 부정한 관계를 언급하기 위해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 호 2:7, 호 9:12, 겔 16:33, 겔 16:36-37, 렘 22:20, 렘 22:22, 렘 30:14, 애 1:19, 슥 13:6 등).(참조: R. L. Alden; Nelson's EDOT). 

------------

d/D(1730, 도드) 가장 사랑하는 자, 사랑, 아저씨, 삼촌....목숨다해 사랑할 내 모든 것, 내 유일한 사랑, 내 연인(아가페) ....도드(명남)는 '가장 사랑하는 자 beloved, 사랑 love, 아저씨, (외)삼촌 uncle'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0회 나온다.

(a)  도드는 '(목숨다하기까지, 죽기까지 사랑하는)가장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38회 사용 중 사 5:1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가서에서 사용되었다. 도드는 그녀의 연인에 대하여 술람미 여인에 의하여 사용되거나 혹은 그 연인에 대하여 말하는 자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다(아 1:13, 아 1:14, 아 1:16, 아 2:3, 아 2:8, 아 2:9, 아 2:10, 아 2:16, 아 2:17, 아 4:16, 아 5:1, 아 5:2, 아 5:4, 아 5;5, 아 5:6, 아 5:8, 아 5:9, 아 5:10, 아 5:16, 아 6:1, 아 6:2, 아 6:3, 아 7:9, 아 7:10, 아 7:11, 아 7:13, 아 8:5, 아 8:14).

이사야 선지자는 포도원의 노래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 언급한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사 5:1).

(b)  도드는 '사랑'을 의미한다.

① 아가서에서 사랑 그 자체인 도드는 다음과 같이 칭송, 묘사된다.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아 1:2);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아 1:4);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와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아 4:10);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아 7:12)

② 에스겔 선지자는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자애에 대하여 언급한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16:8).

③ 그러나 바벨론 사람들은 "나아와 연애하는 침상에 올라" 이스라엘을 욕되게 하였다(겔 23:17).

잠 7:18에서 매춘부는 어리석은 젊은 사람에게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라고 말하고 있다.

(c)  도드는 '아저씨'에 대해 사용되었다.

① 도드는 레 20:20에서 근친상간에 관해서 언급되는데, 여기서 자기의 백숙모와 함께 동침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백숙부의 하체를 범하는 것이다.

② 레 25:49에서 가난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팔려갈 처지에 있는 자를 구해야 할 입장에 있는 근친 중에는 "삼촌"이나 "사촌"이 있었다는 것을 언급한다.

③ 암 6:10에서 "죽은 사람의 친척"은 '죽은 사람의 아저씨'라고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시체를 매장할 의무가 있는 가까운 친척을 가리킨다.

④ 아저씨에 대한 다른 언급들은 단순한 신원 확인을 위해 사용되었다(레 10:4, 민 36:11, 삼상 10:14, 삼상 10:15, 삼상 10:16, 삼상 10:50, 왕하 24:17, 대상 27:32, 에 2:7, 에 2:15).(참조: R. D. Culver; BDB). 

===============

신명기 6장 (개요)

본 장에서 모세는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이 그들의 신앙을 굳게 지키도록 하기 위해 교훈을 계속한다. 제4장과 같은 내용이 많이 나온다.

1. 그의 서언은 순종의 강청이다(1-3).

2. 그는 순종의 중대 원칙들을 규정한다. 믿어야 할 첫째 진리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이다(4). 행해야 할 첫째 의무는 마음을 다하여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이다(5).

3. 그는 신앙을 고수하기 위한 방편들을 지시한다(6-9).

4. 그는 그들에게 신앙을 파괴할 일들―풍요함의 남용(10-12), 우상 숭배에의 경향성(14, 15)―에 대해 경계하고, 그들에게 일반적인 율례들을 제시한다(13, 16-18).

5. 그는 그들이 자녀들에게 교훈해야 할 바를 그들에게 지시한다(20 이하).

--------------------

순종하라(신 6:1-3)

Ⅰ.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모든 것, 오직 그것만 그 백성들에게 가르쳤다(1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그의 교회에게 그 분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하며,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된다(마 28:20).

Ⅱ. 그들이 가르침을 받는 목적은 배운 바를 행하기 위함이며(1절),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기” 위함이고(2절),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게” 하기 위함이다(3절). 우리가 부모와 지도자들이 주는 선한 교훈대로 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죄가 더 클 수밖에 없다.

Ⅲ. 이제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중이므로, 그 땅의 풍요를 누리면서 그것에 유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세상에 나아가 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과 경건함에 관심을 집중하라고 모세는 각별히 교훈했다.

Ⅳ.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이 순종의 가장 유력한 원칙이 될 것이다. 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모든 규례를 지키게 하기” 위함이다(2절).

Ⅴ. 가정이나 국가에 있어서 신앙의 상속이 최선의 상속이다. 즉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 자녀의 자녀들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Ⅵ. 신앙과 의는 어떤 백성이든 발전시키고 안전하게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누구나 좋은 가르침을 받고 그들이 배운 대로 행한다면,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잘됨같이 그들도 잘될 것이다.

-------------------------

신앙의 요약(신 6:4-16)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Ⅰ. 신앙과 순종의 첫째 되는 원리를 포괄하고 있는 신앙의 본질에 대한 간단한 요약이다(4, 5절). 유대인들은 이 두 구절(4, 5절)을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즉 그들은 다음과 같이 써서 가죽 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고, 또 적어도 하루 두 번은 그것을 읽어야 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들이 기록하고 다니는 말씀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라고 말하는 자는 복되도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우리가 그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행할 때에 더욱 복되다.

1.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 믿도록 가르침을 받는 것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라는 것이다.

(1)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여호와시요,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완전하시며, 자존하시고 자족하신 존재다.

(2) 그 분은 살아 계시며 참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며, 그 분만이 하나님이고 오직 한 분밖에 없으시다. 이 자명한 진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신들이 많이 있다고 함으로써 근본적인 오류로 이끄는, 모든 우상 숭배에 대항하도록 그들을 무장시킬 것이다. 한 분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 외에는 어떤 다른 신도 없다는 것(막 12:32)은 논의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신을 찾지도 말고, 찾으려고 생각지도 말자.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신성(神性)에 있어 통일되는 삼위일체의 명백한 암시가 나타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세 번 나오지만 모두가 하나로 선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분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들이 복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고 한 분의 후원자만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수천 개의 물통보다도 하나의 우물을 가지는 것이 더 좋고, 수천의 불완전한 신들보다도 완전하신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2.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운다. 그것은 원칙적으로 “너는 마음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에 모두 요약되어 있다. 모세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치는 책임을 맡았다(2절). 자기의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그는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그들에게 가르친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그 분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도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를 존경하는 자녀는 의심할 바 없이 부모를 사랑할 것이다. 세상에 그 어떤 왕이 자기 신하들이 자기(왕)를 사랑해야 된다는 법을 제정한 일이 있는가?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의 원칙으로 인해 그 분께 대한 우리의 의무의 모든 다른 부분들을 이행하라는 것을 하나님의 율법의 첫째가는 위대한 계명이 되게 하심은 하나님의 은혜의 겸손한 표현이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줄지어다”(잠 23:26).

우리는 그 분을 가장 높게 생각하고, 그 분 같은 존재가 있음을 기뻐하고, 그 분의 모든 속성에 대해, 또 그 분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기쁨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갈망이 그 분을 향해 있고, 우리의 희열이 그 분 안에 있고, 그 분만 의지하며, 그 분께만 우리를 온전히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분을 생각하고,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 분께 아뢰고, 그 분을 받드는 것을 끊임없는 우리의 기쁨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 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가장 뛰어나고 사랑에 넘치며, 만물 중의 최상의 존재이신 주(主)로서 사랑해야 한다.

(2)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친구들과 후원자들 중에서 가장 친절하시고 가장 관후(寬厚)하신 우리의 하나님으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명을 받고 있다.

① 신실한 사랑으로. 우리 마음이 그 분과 함께 있지 않으면서 말로나 혀로만 하지 말고, 내심으로 진실 가운데서 우리 자신이 그 분을 즐거워하면서 사랑해야 한다.

② 강한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이 그 분을 향하여 큰 열정과 사랑의 열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혹자는 여기에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다해 이런 것 저런 것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우리가 흔히 버릇처럼 말하듯이)은 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을 다해서 할 만한 것이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룩한 열정에 관해 말하고 있는 이 말(마음을 다하라)은 결코 함부로 사용되어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그 분만이 우리의 모든 것을 가지셔야 하며, 그 분 외에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이것이다.

③ 최고의 사랑으로. 우리는 어떤 피조물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하며, 그 분을 위하는 것과 그 분께 속한 일 외에, 즉 그 분 외에는 어떤 것도 그 분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

④ 지혜로운 사랑으로. 이것은 마가복음 12장 33절에 기록되어 있다. 마음을 다하고 명철을 다하여 그 분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분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그 분을 사랑해야 할 마땅한 이유를 알고 있는 자들로서 그 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⑤ 온전한 사랑으로. 그 분은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이 사랑 안에서 연합되지 않으면 안 되고, 우리 애정의 전 흐름이 그 분을 향해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오,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넘치게 하소서!

Ⅱ. 신앙이 시들거나 부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 마음과 가정에 신앙을 견지하고 그대로 지키게 할 수 있는 방편들이 규정되어 있다. 그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1. 묵상.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6절). 내용 없는 말씀만으로는 우리에게 유익이 없겠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빛과 능력을 우리 마음속에 전해 주는 일반적인 수단이 되는 말씀을 우리가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 말씀의 내용까지도 상실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매일 하나님의 말씀과 대화하고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온 영혼이 말씀의 영향과 감화 아래 성장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그 율법 바로 뒤에 나와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 사랑의 증거와 결과로서, 또 그 말씀을 보존하고 확대하는 방편으로서,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는 법이다.

2. 자녀들에 대한 신앙 교육.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네 지식을 그들에게 전함으로써, 너희는 그 지식을 더욱 크게 할지니라”(7절). 그들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자녀들의 열정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며, 그들 가정의 신앙의 상속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것을 “너희는 네 자녀들을 부지런히 수련시켜야 한다”라고 읽는다. 이런 교훈들을 자주자주 그들에게 가르쳐, 마치 칼을 갈 때에 처음에는 이쪽으로 갈고 다음에는 저쪽으로 갈듯이, 그들의 마음속에 교훈이 뿌리박아 그들 마음속을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강구하라는 것이다. “네 자녀들을 교훈함에 있어서 주의하고 엄하게 하며, 칼을 갈 때와 같이 그들을 예리하고도 민감하게 되도록 지도하라. 너희 자녀들을 가르침에 있어 너희 자신의 친자녀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네 관심과 지도하에 있는 모든 자들을 가르치라.” 패트릭 주교는 모세가 그의 율법을 아주 단순하고 쉽게 가르쳐 주었으므로, 모든 아비가 다 그 율법으로 자식들을 교훈할 수 있고 모든 어미가 딸들을 훈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은 타당한 관찰이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위탁된 선한 일이 영속되게 하기 위해, 우리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그것을 조심스럽게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경건한 강론. “너희는 이런 일들을 마땅히 드려야 할 존경과 진지함으로 말해야 할지니, 비단 너희 자녀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너희 이웃의 가정 권속들과 친구들과 동료들을 위해서도 해야 하며, 너희가 집에서 일할 때나 식사 때나 휴식 때나 혹은 손님을 맞이했을 때에도 그렇게 해야 하고, 또 기분 전환을 위해 산보할 때나 여행할 때도 그러해야 하며, 밤에 잠자리로 들기 위해 가족들과 헤어질 때나 아침에 기상해서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될 때도 그러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강론하되, 계시되지 아니한 비의(秘義)의 문제들이나 의심을 일으키는 논쟁이 될 문제들을 가지고 하지 말고, 명백한 진리와 하나님의 율법과 우리에게 화평을 이루는 문제들로 하라.” 우리가 신성한 사물로 우리의 친밀한 강론 제목으로 삼아 서로 이야기한다고 하여, 그것이 그 신성한 사물을 결코 경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신성한 일들에 관하여 잘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것들을 더 찬양하게 될 것이고, 그것들에 대한 애착심도 더 커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빛과 열을 전달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말씀을 자주 읽을 것. “너는 그것을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에 기록할지니라”(8, 9절). 당시에는 아마 율법 전체를 한꺼번에 기록한 사본들이 거의 없었고, 기껏해야 절기가 되면 회막이나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낭독되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적어도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포괄적인 것을 선택하여 그들의 벽이나 작은 양피지 두루마리에 써서 손목에 걸고 다니라고 지시하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유대인들이 성경 구절 함을 많이 가지고 다녔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것은, 그들이 이런 것들을 가지고 다녔기 때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것보다 더 넓은 것을 가진 것을 자랑했기 때문이다(마 23:5). 그러나 성경이 그들 가운데 많이 보급되었을 때는, 이런 방법은 별로 취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방법은 성경이 희귀하던 때에, 영국 교회의 처음 개혁자들에 의하여 신중하고 경건하게 사용되었다. 즉 그들은 성경 중에서 선택된 구절들을 뽑아 교회의 벽이나 기둥에 써 붙여, 본문에 나와 있는 지시 사항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그 말씀에 익숙하게 되도록 했다. 우리는 본문 구절의 의도에 귀를 기울이나, 유대인들은 본문 구절의 문자에 매여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죄를 삼가고, 해야 할 의무를 지시받고 열성을 얻기 위해 어떤 경우든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으려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친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말씀이 “손바닥에 새긴”(사 49:16) 것처럼 되어야 하고, 언제나 우리 눈앞에 있게 해야 한다(잠 7:1-3). 이것은 역시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공언(公言)하기를 결코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 되며, 우리 자신이 그 신앙의 지도와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를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대문에 기록하여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읽게 함으로, 우리가 여호와께서 오직 하나님 됨을 믿는다는 것과 우리 자신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하자.

Ⅲ. 번창하고 풍요해진 날에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주의가 주어져 있다(10-12절).

1. 하나님은 약속하신 좋은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을 허락하시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그들의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10절). 그들은 이제 양치는 목자와 비천한 나그네로서의 장막 생활은 중단하고 크고 풍성한 성읍에 정착하게 될 것이며, 이제 메마른 광야를 헤매지 않고, 잘 정돈된 집과 아름답게 가꾸어진 풍성한 정원에서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11절).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들 자신의 어떤 수고나 비용이 들지 아니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점을 여기서 크게 강조하신다.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성읍,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되리라.”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나 값싸게 그런 것들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그 자비를 훨씬 더 귀한 것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사실상 그것을 귀중히 여기지 못한다면, 그 자비는 오히려 훨씬 더 낮은 값으로 평가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비싼 값을 지불한 물건이 우리에게 귀하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선물을 그렇게 쉽게 받게 될 때, 자기들을 정착토록 해 주신 분을 잊어버리기가 쉬웠을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 자신의 마음이 사악해지지 않도록 경성하라고 경고하신다. 너희는 평안하고 안락할 때, “조심하여 여호와를 잊지 말라”(12절). 그러므로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우리가 잘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그 분을 의지하고, 필요로 해야 하며 그 분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함을 망각할 위험에 빠진다. 세상이 미소 지을 때, 우리는 세상의 환심을 사려고 하기 쉽고, 우리의 행복을 거기서 찾으려 하기가 쉬우며, 그리하여 우리의 유일한 몫이요 안식이 되시는 그 분을 잊어버리게 된다. 아굴은 이런 유혹에 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9).

(2) 그러므로 이런 때에는 마음과 주의를 다하여 조심하며, 우리의 마음을 엄하게 감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조심하라. 즉 너희의 위험을 경고받을 때, 그것에 대비하여 깨어 있으라. 하나님을 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라. 너희가 가나안에 정착했을 때에도 애굽에서 구원받은 일을 잊지 말라. 너희가 깎여져 나온 그 바위를 보라. 너희의 나중 형편이 크게 번창되었을 때에는, 너희의 시초가 비천했음을 상기하라.”

Ⅳ. 몇 가지 특별한 교훈과 금령이 여기서 주어지는데, 그것들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1. 그들은 어떤 경우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13절).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라”(만일 그 분이 우리의 주인이시라면 우리는 그 분을 공경하고 그 분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즉 그들은 어떤 경우든지 진리의 식별자와 또 악행의 보복자를 찾아야 할 때, 다른 어떤 것에 호소해서는 안 된다. 오직 그 분으로 말미암아 맹세하고, 어떤 다른 우상이나 피조물로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웃 나라들과 거래를 하거나 언약을 세움에 있어서도 그 분의 이름으로 서약하고, 그들의 신들로 서약할 정도로 그것들에 찬동하지 말라. 그 분의 이름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때때로 그 분의 이름을 공적으로 말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모든 혀가 맹약하리라”(사 45:23)는 말씀은 로마서 14장 11절에서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고 설명되어 있다.

2. 그들은 어떤 경우든지 다른 신들에게 영광을 돌려서는 안 된다. “너희는 다른 신들을 좇지 말라”(14절). 즉 “너희는 그들을 섬기거나 예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우상을 좇으면 방황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질투하시는 하나님”(15절)이신 참하나님께 대해 음행을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박식한 패트릭 주교는 이것을 마이모니데스(Maimonides)에서 인용하여―율법이나 예언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인간이 우상 숭배를 할 경우에만은 “분노”, “격노”, “분개” 따위가 하나님의 속성이 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으로 본다.

3.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함으로써(16절) 하나님께 불명예가 돌아가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즉 “너희는 어떤 위급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와 섭리를 불신하지 말아야 하고, 그 분께 반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불신앙의 악한 심령에 빠지게 되면, 그들은 가나안에서도 광야에서와 같은 경우를 당하게 될 것이다. 어떤 외적 조건의 변화도 원망과 안달하는 인간의 심정을 고쳐 주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이 구절의 경고를 인용하셔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즉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하심에 대해 절망하든지, 혹은 우리가 그 길을 이탈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악용함으로써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다(마 4:7).

-----------------------

이스라엘 백성의 책임(신 6:17-25)

Ⅰ. 모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명령했다. 즉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을 삼가 지키라”(17-19절). 우리의 마음과 생활 속에 살아 있는 신앙을 지속하는 데에는 많은 관심과 수고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태만은 우리를 파멸케 할 것이다. 우리는 부지런함이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 이 사실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모세는 여기서 그들에게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1. 부지런히 지키는 일은 하나님께서 대단히 기뻐 받으시는 바, 그것은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하다.” 곧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옳고 선하다. 만일 우리가 우리 창조주의 은혜를 우리의 지복(至福)으로 생각하며, 창조의 율법을 우리의 법칙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굳건한 신앙인이 된다.

2. 그것은 또한 그들 자신에게도 유익하고 이익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의 소유와 그 곳의 풍요를 보장해 주고, 그들의 진로를 가로막는 자들을 끊임없이 이기는 승리를 보증해 줄 것이다. 한 마디로 해서, “옳게 행하라. 그러면 너희가 복을 받으리라(4:40, KJV에는 “잘되리라”라고 되어 있음).”

Ⅱ. 모세는 그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교훈하라고 가르쳤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자녀들로 하여금 양육되는 동안 지적으로, 또 애정적으로 신앙적인 봉사에 참여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후 한창 때가 되었을 때 신앙을 지키고 그들 후에 오는 자손들에게 그것을 전해 주도록 하기 위함이다.

1. 여기에 자녀들이 물을 것으로 가정되는 타당한 질문이 있다(20절). 즉 “증거와 말씀과 규례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준행하는 절기들과 우리가 바치는 희생 제물의 의미가 무엇이며, 우리가 지키는 많은 특유한 관습들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는 것이다.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하나님의 모든 제도에는 어떤 의미와, 어떤 중대한 목적이 있는 법이다.

(2) 우리는 마땅히 그것들의 의미와 뜻을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눈 먼 희생으로 드리지”(말 1:8) 않을 수 있게 된다.

(3) 때가 되어서 자녀들이 그들이 훈련받고 자라난 그 신앙적 예식의 참된 의도와 의미에 대해 묻게 되는 것은 선한 일이다. 만일 어떤 아이들이 신앙적인 일들에 대해 꼬치꼬치 묻기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그것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좋은 징조이며, 그것들에 대해 크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

2. 여기에는 이런 좋은 질문에 대해 부모들이 답변해야 할 충분한 답변이 나타나 있다. 부모와 교사는, 자녀들이 묻지 아니할지라도, 아니 그들이 그것에 반대할지라도, 그들을 교훈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물며 자녀들이 그것을 요구할 때, 교훈을 주고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질문하는 자녀는 또한 그 해답도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율법의 의미를 물었는가? 그들에게 알 수 있도록 이야기해 주자. 즉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 주라는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지난날 그들에게 베풀어 주셨던 호의, 특히 애굽에서의 구원을 기억하고 감사하라는 것(21-23절). 자녀들은 그 조상들이 애굽에서 노예였을 때의 비참한 상태와 그들을 거기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대해 자주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런 특별한 법도를 주신 데는 그와 같은 놀라운 역사(役事)를 영구히 기억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을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들어야 한다.

(2)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 조건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24절). 즉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명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신앙적이 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인 동시에 우리에게 유익이다.

① 그것은 우리의 생명이 될 것이다. “그 분이 우리로 생존하게 하실 것이다”(KJV). 그것은 위대한 은총이다. 특히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생명 자체를 잃게 되는가를 생각해 볼 때, 이것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은총이다. 생명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있는 한, 신실한 신앙은 지금 존재하는 생명의 지속과 안녕을 약속한다.

② 그것은 우리의 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하나의 계명이라도 완전히 지킬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 외에는 결코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무죄의 언약의 은혜를 줄 수 있는 의(義)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율법에 기록된 그대로 행한다면, 그 율법이 우리를 정당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노아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웠던” 것과 같이(창 7:1; 눅 1:6; 요 3:7), 우리의 진실한 순종만이 중보자를 통해 받아들여질 것이다. 시리아역은 이것을 “우리가 이 계명들을 준수하면, 우리에게 보답이 있을 것이다”라고 읽는다.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는 큰 상급이 있는 법이다.

=================

[레19]내몸같이 이웃 사랑하기

17.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너는 동족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이웃이 잘못을 하면, 너는 반드시 그를 타일러야 한다. 그래야만 너는 그 잘못 때문에 질 책임을 벗을 수 있다.//'You shall not hate your fellow countryman in your heart; you may surely reprove your neighbor, but shall not incur sin because of him.//[NRSV]레 19:17 You shall not hate in your heart anyone of your kin; you shall reprove your neighbor, or you will incur guilt yourself. //[NKJV]레 19:17 'You shall not hate your brother in your heart. You shall surely rebuke your neighbor, and not bear sin because of him. //[NIV]레 19:17 "'Do not hate your brother in your heart. Rebuke your neighbor frankly so you will not share in his guilt.  

18.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 갚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주다.//'You shall not take vengeance, nor bear any grudge against the sons of your people, but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the LORD.//[NRSV]레 19:18 You shall not take vengeance or bear a grudge against any of your people, but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the LORD.//[NKJV]레 19:18 'You shall not take vengeance, nor bear any grudge against the children of your people, but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the LORD. //[NIV]레 19:18 "'Do not seek revenge or bear a grudge against one of your people, bu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the LORD. 

-------------------------

Ⅶ. 이웃을 사랑으로 견책하라.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17절).

1. 자신에게 피해를 준 이웃을 미워하지 말고, 그를 책선해야 한다. 우리 이웃이 우리에게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우리는 원한을 품고 그에게 보복해서는 안 된다. 또한 충분한 보복을 하기까지는 자기의 분노를 감추어 두는 사람처럼(삼하 13:22), 선악간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을 따돌려도 안 된다. 오히려 지혜롭고 온유한 마음으로 우리의 분개심을 제어하고, 그를 잘 설득하여 잘못을 깨우쳐 주려고 노력하여, 마음속에 품은 미움을 풀어 버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구주께서 보여 주신 원리다(눅 17:3).

2. 그가 하나님께 대해 지은 죄를 책망하여 깨우쳐 주어야 한다. 그래서 회개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가 용서받을 수 있고, 그 죄에서 돌이킬 수 있고, 그 죄로 인한 벌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시 141:5).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잠 27:5, 6). 우리는 서로 우정어린 책선을 할 의무가 있으며 책선을 할 때에나 받을 때에 늘 사랑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엄하게 명령하신다. “반드시 책선하라. 어떤 구실로도 그 일을 빠뜨리지 말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견책을 하지 않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것은 형제를 미워하는 죄와 같다고 했다. 우리는 즉시 “그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이니 그의 과실을 이야기해 주어 기분 나쁘게 하고 싶지 않아!”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므로 그에게 잘못을 이야기해 주는 친절을 베풀 거야!”라고 말해야 한다. 사랑은 남의 죄를 덮어 준다. 그러나 죄인 자신을 덮어 주지는 않는다.

(2) 견책하지 않으면 우리가 불행을 당한다.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원수의 나귀가 짐이 무거워 쓰러졌을 때도 도와주어야 한다면, 친구의 영혼은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출 23:5). 우리가 “그의 죄를 담당하게” 될 위험이 있다. 우리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엡 5:11)을 견책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런 일에 물들게 되고, 사후(事後)에는(ex post facto) 그런 일에 종범(從犯)이 된다. 우리는 형제와 이웃을 염려해 주어야 한다. “내가 내 형제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말하는 사람은 가인과 같은 사람이다.

Ⅷ. 모든 악의를 버리고 형제애를 옷 입으라(18절).

1. 우리는 아무에게도 악한 감정을 품지 말아야 한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17절)라는 말씀도 이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 마음에 악의를 품는 것은 이미 살인을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형제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더라도, 그것을 되갚으면 안 된다. 즉 복수하지 말아야 한다. 복수심 때문에 기회 있을 때마다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를 용서해 주고, 그의 잘못을 잊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그처럼 용서해 주시기 때문이다. 모욕과 침해에 대해 늘 분개하는 마음을 품고, 말로 “영영히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삼하 2:26)은 악한 것이요, 우정을 파괴하는 독이다.

2.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지녀야 한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18절).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 잘못을 범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자기 잘못은 손쉽게 용서하며, 그것 때문에 자신을 조금이라도 덜 사랑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는 이웃을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이것을 율법의 제2계명으로 삼으셨다(마 22:39). 사도 바울도 둘째 돌판의 율법을 요약하면 바로 이것이라고 했다(롬 13:9; 갈 5:14).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진실하게 그리고 가식 없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또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 그대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입증해 보여서, 최대한의 힘을 기울여 이웃이 상하지 않도록 해 주고 이웃의 유익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마 7:12) 이웃에게 베풀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그들의 마음 자리에” 두어 보아야 한다(욥 16:4, 5). 우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사도 바울처럼 이웃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유익을 부정해야 한다(고전 9:19 이하). 바로 이 점에서 복음은 율법의 가장 뛰어난 계명까지도 초월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도 버리심으로써, 경우에 따라서는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라”는 교훈을 주셨으며, 자신보다 이웃을 더욱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요일 3:16).

-----------------------------

jk'y:(3198, 야카흐) 결정하다, 판단(심판)하다, 입증하다, 꾸짖다, 징계하다

야카흐(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결정하다 decide, 판단하다 judge, 입증(증명)하다 prove, 꾸짖다, 비난하다 rebuke, 징계하다 correct'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0회 나오며, 니팔, 히필, 호팔,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a)  니팔형에서

이 단어는 '논증하다 reason'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사 1:18, 욥 23:7).

사 1:18에서 야카흐는 언약적 소송에 나타난다. 이사야는 고소자, 여호와께서 유다가 자기들 마음대로 종교 축제를 행한다고 비난하는 반역에 관한 기록(사 1:10-15)에 뒤이어 회개하도록 촉구한다(사 1:16-20). 따라서 우리는 이런 맥락 안에서 "함께 논해 보자"(KJV, NIV, "법정에서 우리의 문제를 논의해 보자"라는 의미로 쓰임)라는 표현을 이해해야 한다.

창 20:16에서는 '논증이나 이론으로 해결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b)  히필형에서

① 이 단어는 '결정하다, 판단(심판)하다'를 의미한다.

야카흐의 사법적 개념은 이 단어의 초기 용법들 중의 하나에 의해 분명하게 확립되었다. 즉 야곱을 뒤쫓아 와서 자기의 가치 있는 부적을 찾기 위해 헛되이 야곱의 모든 소유물들을 다 뒤진 라반은 야곱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비난 받는다. "나의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나를 불같이 급히 쫓나이까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 보셨으니 외삼촌의 가장집물 중에 무엇을 찾았나이까 여기 나의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두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창 31:36 이하). 그 다음 그는 라반에 관해 전날 밤에 꾼 꿈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나의 고난과...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라고 주장한다(창 31:42). NASB는 "그래서 그가 지난밤에 심판을 하셨습니다"라고 번역한다.

대상 12:17, 욥 9:33, 욥 16:21, 사 2:4, 미 4:3에서도 '판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야카흐의 기본적인 의미인 이 법적인 요소는 사 11:3에서 볼 수 있듯이 분명한 신학적 토대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이새의 줄기, 가지"의 활동은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샤파트)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않을" 사람으로 언급된다. 이런 대구법이 우리의 논제를 뒷받침해 준다. 게다가 사 11:4의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라는 구절도 탐욕과 무자비함으로 압제 당하는 무지한 사람, 가난한 자, 과부, 고아에 대해 늘 호의를 갖는 것과 관련하여 이와 같은 두 단어를 사용한다(참조: 사 1:17, 사 1:23, 민 6:8).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시고, 그가 백성들에게 그들의 삶 속에서 이런 하나님의 형상(image dei)의 요소를 나타내도록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언약 때문이다.

② 이 단어는 '정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창 24: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창 24:44에서도 마찬가지다.

③ 이 단어는 '입증하다, 증명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욥 19:5, 욥 13:15).

욥 13:3에서는 논증하는 것을 묘사한다. 욥 15:3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어찌 유조치 아니한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④ 이 단어는 '유죄를 입증하다, 죄를 깨닫게 하다, 확신 시키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시 50:21에서 '유죄를 입증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다후드는 "나는 너를 고소하여 진상을 밝혀낼 것이다" I will accuse you and draw up a case before your eyes(AB, 16, p. 304, 그러나 ASV, "질책하다" reprove, NIV, "나는 너를 비난하고 네 보는 데서 너를 고소할 것이다" I will rebuke you and accuse you to your face)라고 번역한다.

잠 30:6, 욥 32:12에서는 '확신(납득) 시키다'를 의미한다.

⑤ 이 단어는 '비난하다, 꾸짖다'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꾸짖는 것(욥 22:4, 시 50:8, 시 105:14 = 대상 16:21, 왕하 19:4 = 사 37:4), 사람이 비난하거나 꾸짖는 것(호 4:4, 겔 3:26, 욥 6:25, 욥 6:26, 잠 24:25, 잠 25:12, 암 5:10, 사 29:21, 창 21:25, 잠 9:8, 잠 28:23, 렘 2:19, 욥 40:2, 욥 6:26, 잠 9:7, 잠 9:8, 잠 15:12, 잠 19:25).

레 19:17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이웃이 죄를 지었을 때 그들과 대결하도록 명령했다는 사실은 전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너는 네 이웃을 반드시 질책하라" thou shalt surely rebuke your neighbor(ASV), "너는 반드시 꾸짖을 필요가 있다" you may surely reprove(NASB). RSV는 이것을 매우 약화시켜, "너는 이야기하라" you shall reason with로 표기하고 있다. 이것은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라는 명령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첨가되어 있다. 즉 이웃에 대한 증오심이 발전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그의 죄에 연루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게다가 레 19:18은 이 행동을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두 번째 큰 계명으로 부연 설명한다. 따라서 대결, 질책, 징계는 형제 사랑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고찰되어야 한다.

질책하고, 징계하고, 납득시키거나 유죄를 선언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죄를 노출시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회개를 촉구 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죄를 벗어나서 하나님에 대한 회개를 지시해 주는 신의 둔주곡풍의 운동을 지닌다. 여기에서 - 그리스도의 몸을 깨끗케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변덕스러운 사람으로 하여금 거룩한 삶과 언약적 봉사를 회복하도록 하기 위해서 - 교회의 징계라는 놀라운 의미가 나온 것이다(참조: 마 18:15, 엡 5:11, 딤전 5:20, 딤후 4:2 등).

⑥ 이 단어는 '징계하다, 견책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잠 3:12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를 언급한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욥 5:17에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고 한다.

합 1:12, 시 141;5, 욥 13:10, 삼하 7:14, 시 6:2, 시 38:2에서도 하나님의 징계나 견책을 묘사한다.

야카흐는 하나님의 법적 행동의 결과인 '양육' education과 '훈계' discipline를 의미한다. "이것은 죄인들의 죄의 자각에서부터 응징과 처벌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시험으로 의인을 훈육하는 것에서부터 가르침과 훈계로서 그를 지도하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교육의 모든 측면을 다 포괄한다"(Buchsel, in TDNT, Ⅱ, p. 473).

(c)  호팔형에서

이 단어는 '징계를 받다'를 의미한다.욥 33:19, "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d)  히트파엘형에서

이 단어는 '논증하다'를 의미한다. 

미 6:2,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쟁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쟁변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참조: P. R. GILCHRIST; BDB). 

이전글 : 시103
다음글 : 레19>주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