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6.23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8.인자구주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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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8===

*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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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Who have displayed Your splendor above the heavens!

From the mouth of infants and nursing babes You have established strength Because of Your adversaries, To make the enemy and the revengeful cease.

When I consider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You have ordained;

What is man that You take thought of him, And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

Yet You have made him a little lower than God, And You crown him with glory and majesty!

You make him to rule over the works of Your hands; You have put all things under his feet,

All sheep and oxen, And also the beasts of the field,

The birds of the heavens and the fish of the sea, Whatever passes through the paths of the seas.

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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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영화롭게 생각해야 하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하심에 대한 엄숙한 묵상이며 찬미.... 

이는 하나님의 무한히 뛰어난 이름을 시인하는 것으로써 시작되어 있으며, 또한 그것으로 끝나고 있다. 1절은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뛰어남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되어 있고, 그것은 마지막 절에서 이미 증명된 것으로서(논증되어야 했던 것으로서) 반복되어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인간에 대한 그의 선하심의 여러 가지 예를 들고 있다. 즉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일에 대해 영광받으셔야 한다는 것이다.

1. 우리에게 그 자신과 그의 위대하신 이름을 알리신 것에 대해(1).

2. 가장 약한 인간의 자손들을 그의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하신 것에 대해(2).

3. 천체까지도 인간에게 유용하게 해주신 것에 대해(3-4).

4. 그를 이 아래 세상에서 창조물들을 지배하게 하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를 천사(하나님)보다 조금 낮은 자리에 두심에 대해(5-8).

이 시편은 신약에서, 그리스도와 그가 역사하신 구원의 사업에 적용되어 있다. 즉 그리스도가 스스로를 낮추시어 천사들보다 좀 못한 자가 되셨고, 또 높이 들리시어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쓰신 일 속에서, 인간의 자손들은 그를 영화롭게 했고(2절을 마태복음 21장 16절과 비교해 보라), 그는 인간의 자손들을 영화롭게 하셨다. 5-6절을 히브리서 2장 6-8절, 고린도전서 15장 27절과 비교해 보라. 우리가 자연과 섭리의 왕국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고찰해 볼 때, 우리는 그 고찰에 의해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은혜의 왕국에 있는 그의 영광을 관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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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함(시 8:1-2)

시편 저자는 여기에서 하나님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고 있다. 

Gittith은 일반적으로 음률이나 혹은 악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에 맞추어 이 시편이 노래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하몬드 박사는 이 시편의 표제를 그것이 지어지게 된 동기와 관련시켜 추측하고 있다. 그는 “Gittith”을 “Gittite,” 즉 싸움에 패해 죽임을 당했던 “가드 사람 골리앗”(Goliath the Gittite, 삼상 17)으로 추측해 본다. 그 대적은 자기에 비해 젖비린내나는 갓난아기에 불과한 다윗에 의해 잠잠케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만일 이와 똑같은 표제를 가진 다른 두 시편을(81, 84) 발견하지만 않았다면 이런 추정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윗은 여기에서 다음 두 가지 사실에 대해 감탄하고 있다.

Ⅰ. 하나님은 얼마나 명백하게 그의 영광을 스스로 나타내시는가(1절). 

그는 모든 겸손과 경외감을 갖고 주님이신, 그리고 그의 백성들의 주님이신 하나님께 스스로 아뢰고 있다. “여호와 우리 주여!”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그가 우리의 주인이심을 주장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그가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특별히 돌보시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주님이심에 틀림없으므로 우리는 그에게 복종/순복하고 엎드려 경배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긍휼을 보여달라고 탄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러 올 때뿐만 아니라,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그를 찬미하러 올 때에도 이런 그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최선을 다 하더라도 그분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영광을 올려드릴 수는 결코 없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1. 이 낮은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은 얼마나 찬란하게 빛나는가.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창조물들과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존재와 능력과 온전함의 근원이 되시며, 최고의 통치자, 강력한 보호자, 모든 창조물의 너그러운 은인 되시는 무한한 존재자가 있음을 온 세상에 명시하고 선포한다. 온 땅에서 그의 이름은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혁혁하며 얼마나 장엄한가. 그 빛은 어느 곳에서나 사람의 얼굴에 비추인다(롬 1:20). 만일 그들이 그것에 대해 눈을 감는다면 그것은 그들의 과실이다. 그 속에는 언어나 말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들리거나, 들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향하고 있다. 

전에는 오직 이스라엘에서만 거룩한 계시에 의해 크게 알려졌던 하나님의 이름은 온 땅에 퍼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땅 끝까지 이처럼 “하나님의 크신 구원을 얻게” 되었다(막 16:15-16).

2. 저 위 세상에서 그것은 얼마나 더욱 찬란하게 비추일 것인가.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1) 하나님은 가장 고귀한 피조물들이나 매우 찬란하게 빛나는 것들보다도 더욱 무한히 영화로우시며 뛰어나시다.

(2) 땅 위에 있는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뛰어난 이름을 듣기만 하고 찬미하는 반면에, 위에 있는 천사들과 축복받은 영들은 그의 영광을 보며 그를 찬미한다. 그러할지라도 그는 그들의 송축과 찬미보다 무한히 높이 계시다.

(3)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버지의 영광을 찬란하게 하고 그의 인격의 형상을 표현하신 주 예수를 하나님 우편에 높이 두심으로써 하늘 위에, 모든 주권과 권세보다 매우 높은 곳에 그의 영광을 두셨다.

Ⅱ. 그는 그의 가장 연약한 피조물에 의해 얼마나 강력하게 그것을 선포하시는가(2절).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셨다.” 또는 그 찬미를 온전케 하셨다(마 21:16).

1. 이것은 자연의 왕국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시사하고 있다. 

어린아이를(그들이 어떤 동물들보다도 가장 무력한 상태로 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 돌보시는 하나님의 배려, 그들이 받는 특별한 보호, 그리고 자연이 그들에게 주는 혜택 등을 우리 각자는 그의 능력과 선하심을 보여주는 큰 예로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은혜를 입고 있는 우리는 더욱 예민하게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않도록 무릎이 우리를 받았고, “우리로 유방을 빨게 한” 혜택을 우리가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주의 영광에 대한 대적자들을 영원히 잠잠케 만들 수 있는 주의 선하심의 일례입니다.”

2. 섭리의 왕국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시사하고 있다. 

이 낮은 세상을 통치함에 그는 사람의 자손들, 곧 그를 아는 자들과 알지 못하는 자들(사 45:4), 그리고 어린아이와 젖먹이였던 자들을 사용하신다. 아니, 그는 때로 지혜와 힘이 약한 자, 어린아이와 젖먹이들보다도 더 나을 것이 없는 자들을 종으로 쓰시어 그의 목적을 돕도록 하시는 것을 기뻐하신다.

3. 또한 은혜의 왕국, 메시야의 왕국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시사하고 있다. 

어린아이에 불과한 자로서, “본래 학문이 없는 범인(凡人)”으로서(행 4:13),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자로서 간주되었던 사도들과 그들의 어리석은 가르침에 의해, 여리고 성벽이 나팔소리에 무너진 것처럼 마귀의 왕국이 무너질 것이라고 여기에 예언되어 있다. 

복음은 “여호와의 팔”, “그의 힘의 막대기”라고 불리고 있다. 이것은 이적을 행하도록 규정되었다. 이 복음은 철학자나 웅변가, 정치가나 정객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매우 극단적인 역경 속에 놓여 있는 초라한 어부들 무리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그를 멸시하며 거절했을 때 아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외치는 것을 듣는다. 그러므로 우리 구세주께서도 이런 사실을 언급하시어(마 21:16) 그의 대적들을 잠잠케 했다. 

때로 하나님의 영광은 어린아이들 속에서 놀랍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금방 젖을 떼고 품에서 떨어진” 그런 자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신다”(사 28:9). 

하나님의 능력은 때로 매우 보잘것없고 마땅치 않은 도구들로 하여금 그의 교회에 큰 일을 행하도록 하며, 세상의 비천하고 약하고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귀하고 지혜있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그것은 어떤 인간의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고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그 능력의 뛰어남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도록 하기 위함이다(고전 1:27-28). 

그의 “대적들로 인해”, 즉 그들이 무례하고 오만하기 때문에 그들을 조용히 만들고, 침묵을 지키고 부끄러워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행하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복수자 위에 정당한 보복이 내려지는 것이다(행 4:14, 6:10 참조). 마귀는 큰 대적이며 복수자다. 그러나 복음이 전파됨으로써 그는 매우 조용해졌으며, 그의 연설은 잠잠해졌다. 그리고 그의 대변자들은 부끄러워했고 정결치 못한 영들은 말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을 노래함에 우리는 하나님께 그의 위대하신 이름에 대한 영광을 돌리도록 하자. 그리고 높이 들리심을 받은 구속자께서 승리하시기 위해 병거에 오르셨을 때, 그의 복음의 능력으로 그가 행하신 그 위대한 일들에 대한 영광을 돌리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찬미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장 큰 소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힘/권능이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부터 나오도록 명령될 때 찬미는 온전케 된다(즉 하나님은 가장 지고하게 영광받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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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겸양(시 8:3-9)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특히 인간 그리스도 예수를 영화롭게 하신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여기에서 계속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있다. 

거룩한 은혜의 겸양은 거룩한 영광의 높임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찬미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친절하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셨는가를 시편 저자는 여기에서 놀라움과 감사함을 품고 관찰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제 다음 사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Ⅰ. 그로 인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겸손한 은총을 사모하도록 인도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천체의 광채와 영향력에 대한 통찰이었다(3절). “주의 하늘”과, 특히 그곳의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옵니다.” 

그러나 그는 왜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해는 언급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가 해가 사라지고 오직 달과 별들만이 있었던 밤에 달빛 속을 걸으면서 묵상하기를 즐겼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가르쳤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것들이 모두 해처럼 그렇게 유용하지는 못하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창조주의 지혜와 권능과 선하심을 해에 못지않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다음을 살펴보자.

1. 하늘을 주시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다. 볼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사실 가운데서 이런 점에 의해 사람은 동물과 구별된다. 즉 그것들은 몸의 구조가 땅을 내려다보도록 만들어졌으나 사람은 하늘을 향해 올려다볼 수 있도록 세워져 있다. “인간에게 그는 직립한 얼굴을 주셨으며, 하늘을 응시하도록 명하셨다”(Os homini sublme dedit, coelumque tueri jussit) .그리하여 인간이 위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도록 하셨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가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2. 우리는 항상 하늘을 하나님의 하늘로 생각해야 한다. 

즉 이 세상 모든 것, 심지어 땅과 그 위의 모든 것조차도 그의 것으로 여겨야 할 뿐만 아니라, 특별하게 여겨야 한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다” (115:16). 그곳은 그의 영광이 거하는 곳이며, 우리는 그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해야 한다.

3. 하늘은 그의 손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의 것이다. 

그는 그것을 만드셨고, 그것을 쉽게 만드셨다. 하늘을 펼치실 때 그는 팔을 펴실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말씀으로 이루어졌으며, “주의 손가락”만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매우 진지하고 훌륭하게 예술가가 손으로 만든 훌륭한 작품처럼 그것을 만드셨다.

4. 좀 열등한 빛들, 곧 달과 별들까지도 하나님 빛의 영광과 권능을 나타내며, 우리에게 찬미의 일을 부여한다.

5. 천체는 거룩한 권능의 창조물일 뿐만 아니라, 그 거룩한 통치에 의해 다스려진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베푸셨다.” 그런 하늘의 법도는 결코 변경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찬미하기 위한 이런 것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가?

(1) 위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빛나는가를 생각할 때, 즉 그가 인간처럼 천한 창조물을 인지하신다는 사실과 가장 빛나고 축복된 창조물 속에 거하시는 그가 스스로를 낮추시어 이 세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신다는 사실에 우리는 매우 경탄하게 될 것이다(113:5-6 참조).

(2) 하늘이 땅 위에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유익하며, 어떻게 하늘의 빛들이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되었는가를 생각할 때(신 4:19; 창 1:15), 우리는 당연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그와 그의 유익을 위해 하늘을 베푸셨으며, 하늘의 빛을 만드시고 그 운행을 명하시어 그를 즐겁고 편하게 하셨나이까!”

Ⅱ. 그는 어떻게 그 경탄을 표현하고 있는가?(4절) 

“주여, 사람이(주를 잊어버리고 주에 대한 의무를 잊을 정도로 사악하고 연약하며 비참한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이처럼 저를 생각하시며 그와 그의 행동과 일들을 인지하시고 세상을 지으실 때 그를 존중하셨나이까!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먹이시고 입히시며, 저를 다른 창조물들과 같게 보호하시고 부양하실 뿐만 아니라, 친구를 방문하시듯 저를 찾으시어 그와 더불어 교제하시고 관심을 기울이기를 기뻐하시나이까! 사람이(이처럼 비천한 창조물이) 무엇이관대 저를 이처럼 영화롭게 하시며, (이처럼 사악한 창조물을) 대면하시고 총애하시나이까!”

1. 이것은 일반적인 인간을 가리키고 있다. 

비록 인간이 벌레고 인자가 구더기일지라도(욥 25:6) 하나님께서는 그를 존중하시며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신다. 조용히 창세시부터 계시록까지 흐름을 묵상하여보라....사람은 이 아래 세상의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JC안에서 하나님 경륜과 섭리의 중심적 위치에 있는 바, 총아이며 귀염둥이-사랑둥이-사랑과 기쁨이다.

(1) 인간은 매우 영예로운 부류의 존재에 속한다. 

우리는 사람이 이 낮은 세상에 거하는 만물 중에 제일 윗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정말 조금 못하게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몸을 통해 부서져버리는 땅이나 짐승들과 관련되어 있을지라도, 영적이고 영원한 그의 영혼에 의해 그 거룩한 천사들과 매우 가깝다. 따라서 실지로 그는 단지 “천사보다 조금 못할”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순위로는 그 다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의 위대한 영혼이 흙으로 된 집에 갇혀 있는 동안에는 단지 천사들보다 조금 못할 뿐이나 부활의 자녀들은 “천사와 동등”하게 되어(눅 20:36) 더이상 그들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2) 그는 귀한 자격과 능력을 부여받는다. “주께서 저를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그의 존재를 부여하시는 그가 저를 구별하시며 열등한 창조물들을 지배할 권한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지혜 주시기를 땅의 짐승과 공중의 새에게 주심보다 더하게 주시어(욥 35:11) 저로 그들을 다스리기에 합당하게 만드셨다. 그들은 인간에게 다스림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 인간의 이성(理性)은 그의 영광의 면류관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소홀하게 사용함으로써 그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인간은 하나님 아래서 자기보다 열등한 창조물들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받았고, 그들의 주인으로 선정되었다. 

그들을 만드시고 그들을 아시며 그들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저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셨다(6절). 인간이 창조되던 그날에 그는 이런 권한을 갖게 되는 특허장을 지녔고(창 1:28), 그것은 노아의 홍수 후에 갱신되었다(창 9:2). 

하나님은 만물을 사람의 발 아래 두시어 스스로 자급자족하게 하셨다. 즉, 노동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열등한 창조물의 소산물과 생명에 의해서도 필요한 물건을 얻도록 하셨다. 그들은 모두 사람의 손에 양보되었다. 아니, 그들은 모두 “사람의 발 아래 두어졌다.” 그는 몇 가지의 하등동물들을 열거하고 있다(7-8절). 즉, 사람들이 돌보고 양육하는 우양뿐만 아니라 들짐승도, 그리고 인간 활동 범주가 다른 곳에 사는 “공중의 새”와 보이지 않게 지나가는 “바다의 어족”을 열거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것들을 잡을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그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사람보다 더욱 강하거나 더욱 날렵할지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그는 그들을 지배한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버러지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다”(약 3:7). 

그는 또한 필요한 경우에 그것들을 사용할 자유를 갖고 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행 10:13). 우리는 생선이나 새고기로 식사할 때마다,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것에 대한 사람의 주권을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우리의 우두머리 되시는 주님께 복종해야 하고 그의 다스리심에 복종해야 하는 이유다.

2. 그러나 이것은 특별한 면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그에 관한 설명을 히브리서(2:6-8)에서 읽을 수 있다. 거기에서 사도 바울은 하늘과 땅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증명하기 위해 그가 바로 그 사람임을, 인자임을, 즉 여기에 씌어진 대로 하나님께서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고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신 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에게 보여준 것 중에서 가장 큰 은총과 인간성에게 부여된 가장 큰 영예가 주 예수의 성육신과 높이 들리심 속에서 예증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창조와 섭리로써 우리에게 베풀어진 은총과 영화는 매우 크고, 우리가 받을 만한 것보다 더욱 많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높이 들리심은 그런 것들을 크게 능가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 속에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평가하고,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모해야 한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성품을 취하시고, 그 속에서 그 스스로를 낮추셨다. 

그는 “인자”, 곧 육체와 피를 취하신 자가 되셨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권고하셨는데 어떤 사람은 이것을 그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일에 적용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죽음의 고난을”, 진노의 권고를 “받으심을 인하여 그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고 일컬어지기 때문이다(히 2:9). 

하나님은 그를 권고하셨다. 즉, 그에게 우리의 모든 죄악을 씌우신 후에 그를 죄인으로 간주하시어 막대기와 회초리로 그를 권면-징계하셨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고침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는 “잠깐 동안”(그 사도는 그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시어 종의 형체를 취하셨고 자리를 비워놓으셨다.

(2) 이런 성품 속에서 그는 높이 들리시어 모든 것의 주님이 되셨다. 

그가 자기를 낮추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셨고 “영화와 존귀로”, 즉 세상이 있기 전에 그가 갖고 계셨던 그 영화로 관을 씌우셨다. 그리고 그를 그의 우편에 두셨고, 그로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한 만물을 그의 손에 주셨고, 은혜의 왕국과 관련을 맺고, 또 그것에 종속되어 섭리의 왕국을 통치하시도록 그에게 위임하셨다. 모든 피조물이 그의 발 아래 있다. 그리고 그가 육신을 입으신 날에도 그는 바람과 바다를 명하시고, 물고기로 찬미를 받으셨을 때와 같이 그들에 대한 그의 여러 가지 권능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훌륭한 이유와 함께 시편 기자는 그가 시작했을 때와 같은 구절로 이 시편을 이렇게 끝내고 있다.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구속자가 계심으로 인해 주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었고, 그것은 그의 복음으로 인해 여전히 밝혀지고 있으며, 그의 지혜와 권능으로써 다스려지고 있다.

이것을 노래하고 간구함에 우리는 특히 그 열등한 피조물이 우리에게 주는 유용함 속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을 참된 마음으로 인정하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주 예수가 우리의 주님이심을 인정하고, 우리 주님으로서 그에게 복종하며, 만물이 그 아래 있고 모든 그의 대적들이 그의 발 아래 엎드림을 볼 때까지 기다림으로써 우리는 특별히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JC안에서 믿는이 각사람의 위치와 지위]===========
a beloved child... a favorite child... a darling...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JC처럼 사랑과 기쁨인 아/기린아/사명자[믿는 이는 각자가 하나님앞에서 단독자로서 그러함을 고백하고 그렇게 살기를 결단해야 함....이들이 바로 하나님나라, 백성, 새예루살렘, 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인 교회를 이루는 성도임] ...***총아 : 모든 피조물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기대[총애...은총]을 받는 자요 마침내 나타나, 자유케 해 주기를 만물이 고대하는 자....하나님자신이 JC의 십자가/부활로 낳으신 바, 특별히 사랑하는 자녀-백성.....***기린아(하나님 경외하기-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배워 실행함으로써, 곧 JC를 믿는 믿음안에서 하나님이 부어주신 HS을 통해 친히 이루어 가시는 바, 지혜/총명/-슬기/재능/권능이 탁월하여 하나님 뜻하신 바를 십자가의 길을 따라 이룰,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사명자(하나님이 맡기신 시대적 소명을 깨닫고 실행하는자....하나님을 맛봄/누림--하나님을 체득/성장성숙--모든 피조계를 섬기며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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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estic.....이름-성품-영광의 능력 경험.....지고지선/아름다움의 극치, 초월적 권능의 풍성-부요-충만, 경이로움-비교불가-형언불가-다함없음, 장엄, 탁월-경탄-황홀-매료-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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