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6.3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13.영혼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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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he choir director: A psalm of David....주음성외에는. 너 예수께 조용히. 너희마음에 슬픔이. 내맘이낙심되며...내눈여소서. 내마음에 주를 향한사랑이.은혜로만들어가네.나는비록약하나 God is so Good.내생애가장큰것theGreatest thing InallMyLife...어디든지 예수나를이끌면

1 O Lord, how long will you forget me? Forever?   How long will you look the other way?

2 How long must I struggle with anguish in my soul,   with sorrow in my heart every day?    How long will my enemy have the upper hand?

3 Turn and answer me, O Lord my God!   Restore the sparkle to my eyes, or I will die.

4 Don’t let my enemies gloat, saying, “We have defeated him!”  Don’t let them rejoice at my downfall.

5 But I trust in your unfailing love.  I will rejoice because you have rescued me.

6 I will sing to the Lord    because he is good to me.


*1.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나의 영혼이(네페쉬...숨쉬는 피조물, 영혼, 생명) 번민하고(에차...충고/조언/의논...돌파구를 골똘히 생각/궁구함) 종일토록(요맘...빛이 있는 낮동안) 마음에(레바브...내부인간, 마음-정신-의지) 근심하기를(야곤...비탄/고통/괴로움/큰슬픔)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룸...일어나다, 올리다, 자긍하다, 기세등등하다)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나바트...바라보다, 보다) 응답하시(아나...대답/응수/증거/노래하다) 나의 눈을(아인...샘/샘물/눈...사물/사건에 대한 열정적 이해-지식-견해, 성격- 태도- 성향-반응...내적 생각과 추구하는 열정, 보는 관점/이해하여 순종하는 태도) 밝히소서(오르...빛을 주다/밝게하다/비추다/빛나다)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야센...잠들다) 하오며

*4.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야콜...이기다/정복하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모트...미끄러지다/흔들리다/비틀거리다) 나의 대적들이(성도의 파멸 기뻐하는 육신-세상-마귀!!)기뻐할까(길...기뻐하다/즐거워하다) 하나이다

*5.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헤세드...그분의 이름 YHWH 그대로 지고지선, 신실하신 Q의 인자/자비/자애/친절...언약적 사랑의 신실함 : 잊지못할 이 체험은 참생명 Q맛봄/감상-누림-완전한 만족!!) 의지하였사오니(바타흐...믿다...신뢰/의지/확신하여 염려없고 안전/안심하다...확고부동/견고함-행복/안도감 누림 그안에 잠김!!)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예슈아...해방/구출/구조-도움/이김-번영/복리) 기뻐하리이다(영적 차원은 시공의 3차원을 이미 넘어섬...[보좌에 계신분의 품에 안긴 휴거의 영으로]현재 상황/환경/상태를 넘어서는 초월적 기쁨-즐거움으로 찬양하며 돌파 이루시는 Q기다림 !!)

*6.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쉬르...노래하다...찬양 : 애가[간구/의뢰]-->하나님의 구원/이김과 돌파[서술과 선포]의 찬양으로 바꾸셨던 Q...언제나 애가를 찬송으로 바꾸셨던 신실하신 Q)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가말...상을 주다, 칭찬/대우/보답하다/선대하다...항상 그리하셨다!!)


How long, O LORD? Will You forget me forever? How long will You hide Your face from me?

How long shall I take counsel in my soul, Having sorrow in my heart all the day? How long will my enemy be exalted over me?

Consider and answer me, O LORD my God; Enlighten my eyes, or I will sleep the sleep of death,

And my enemy will say, "I have overcome him," And my adversaries will rejoice when I am shaken.

But I have trusted in Your lovingkindness; My heart shall rejoice in Your salvation.

I will sing to the LORD, Because He has dealt bountifully with me.


주님,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원히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아픔을 견디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여야 합니까? 언제까지 내 앞에서 의기양양한 원수의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나를 굽어살펴 주십시오. 나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나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원수가 "내가 그를 이겼다" 하고 말할까 두렵습니다.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그 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너그럽게 대하여 주셔서, 내가 주님께 찬송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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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심령을 지닌 자의 상태와 그 치유에 대한 것이다. 

1.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로부터 오랫동안 숨으시고, 그에 대한 위로를 지연시키신 것을 슬프게 원망하고 있다(1-2).

2. 하나님께서 그의 형편을 생각하시고, 그를 위로해 주실 것을 진지하게 간구하고 있다(3-4).

3. 그는 평화의 응답을 스스로 확신하므로 이 시편을 기쁨과 개가로 결론짓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구원이 훌륭하게 이루어지리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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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고통과 그 치유(시 13:1-6)

환난 가운데 있는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 앞에 그의 영혼을 토로하고 있다. 그의 발언은 짧으나 그 방법은 매우 주목할 만하며, 지시와 격려에서 유용하다.

Ⅰ. 그의 고통들은 원망을 자아내고 있다(1-2절). 

곤고한 자는 “그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할”(102편 표제) 자유를 갖고 있다. 곤고한 자는 그 근심을 토로하는 것이, 특히 은혜의 보좌에 토로하는 것이 어느 정도 위로가 된다. 

우리는 이 은혜의 보좌에서 자신의 백성들의 환난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며, 그들의 연약함을 괴로워하시는 분을 틀림없이 발견할 수 있다. 

그분께 우리는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으며, 그곳에서 우리는 parjrJhsiva 즉 “언론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이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다윗이 원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불친절. 

그는 그것을 하나님의 불친절이라고 해석했는데, 그것은 그의 잘못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그를 잊으셨고, 그에게 하신 약속과 그와 맺은 언약, 그리고 그에게 보여주셨던, 또 그가 진심으로 갈구했던 자비를 잊으셨다고 생각했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위로와 도움이 필요하며, 그것을 기대하는 자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잊으셨다고 생각했다. 

시온은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말했고(사 49:14), 이스라엘은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다”고 말했다(사 40:27).

선한 사람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선하심과 성실하심을 의심할 수 없다. 이것은 강한 두려움에 대한 일종의 투정부리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을 높이 평가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갈망하는 마음에서 이런 투정이 나왔을 때는, 비록 고상하지 못하고 책잡을 만할지라도 그것은 간과되고 용서된다. 왜냐하면 다시 생각함으로써 철회하고 회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로부터 얼굴을 감추셨으므로(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나...궁극적으로는 자녀된 성도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신뢰하자...그러나 주님얼굴 봄, 곧 친밀함 회복의 갈망은 더 중요하다!!) 그는 예전에 얻고자 했던 하나님 안에 있는 그 내적 위로를 원했다. 그런 그는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신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하나님은 때로 자손들로부터 그의 얼굴을 감추시며, 그의 안에 있는 자들의 유익이 모호하도록 버려두신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 어떤 외적인 환난보다도 여기에 더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2) 그 자신의 불안정한 상태.

① 그는 그의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근심으로 고문당했다. 

“내가 나의 영혼에 상의(경영)하나이다. 나는 내가 신뢰할 수 있고 또 의논할 수 있는 친구도 없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을 돕기 위해서 무엇을 할까 하고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그 어느 계획도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의 기지는 다했고, 나는 끊임없는 번민 속에 있습니다.” 

걱정스런 근심은 선한 백성들이 흔히 필요 이상으로 그들 스스로에게 지우고 있는 무거운 짐이 된다.

② 그는 그의 가슴을 채우고 있는 슬픔에 압도당하고 있다. 

“내가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나이다.” 그는 항상 슬픈 상태에 있었고, 조용하고 고적한 밤에만이 아니라, 대화와 일로 인해 가벼운 근심이 전환되고 사라지는 낮에도 그 슬픔은 그의 심령을 좀먹어 들어갔다. 게다가 매일 거기에 새로운 근심이 더 들어왔다. “구름은 비를 몰고 온다.” 빵은 때로 성도들의 주식이 된다. 우리 주님도 슬픔을 지닌 분이었다.

(3) 그의 슬픔을 가중시킨 그의 대적들의 무례함. 

그의 큰 적인 사울과 그 밑에 있었던 다른 대적들은 그를 위압했고, 환난당하는 그에 대해 개가를 불렀고, 그의 번민을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를 완전히 이기게 되리라고 그들 스스로에게 장담했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불명예스럽게 비난하는 것으로 여기고 원망하고 있었다.

2. 그는 이것을 어떻게 하나님께 간언하고 있는가? 

그는 “이러한 상태가 어느 때까지니이까?” 그리고 “그것이 영영히 이러하겠습니까?” 하고 묻고 있다.

오랜 환난은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며, 흔히 우리를 지치게 한다. 환난이 오랫동안 지속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것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낙담은 절망으로 변하고, 오랫동안 기쁨을 느끼지 못했던 자들은 결국 소망을 잃기 시작한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실 것인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영영히 지속되지는 않으며, 결국 내게 긍휼을 베푸시리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이 현재의 환난을 더 참을 수 있을 것입니다.”

Ⅱ. 그의 원망들은 그를 기도하게 한다(3-4절). 

우리는 하나님께 올리기에 합당하며 우리를 무릎꿇어 기도드리도록 만드는 원망 이외에는 어떤 원망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1. 그의 청원은 어떤 것들인가? 

“나의 사정을 생각하시고 내 호소에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1) “내 믿음을 강하게 하소서.” 

왜냐하면 믿음은 영혼의 눈으로 사물의 의미 이상의 것을 보며, 그것을 꿰뚫어보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내가 현재 당하는 환난 저편을 볼 수 있게 하시고, 그 행복한 결말을 예지할 수 있게 하소서.”

(2) “나의 길을 안내하소서. 내가 나의 주위를 살펴보아 나를 노리고 있는 함정을 피할 수 있게 하소서.”

(3) “주의 구원의 기쁨으로 내 영혼을 소생시키소서.” 

침체된 영을 소생시키는 것은 “눈을 밝게 하는” 것이라고 일컬어진다(삼상 14:27; 스 9:8). “여호와여, 내 눈을 어둡게 하는 암울한 구름을 흐트려주옵소서. 그리고 내 얼굴을 밝게 하여주소서.”

2. 그의 탄원은 어떤 것들인가?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에게서 얻는 이로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그리고 긴급한 위로와 구조가 요청되었던 그 커다란 위험을 강조하고 있다. 만일 그의 눈이 빨리 밝혀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1) 그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나이다. 나는 이 모든 무거운 근심과 슬픔 아래서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부족한 것보다 더 영혼을 죽게 하는 것은 없으며, 그 은총이 주어질 때 영혼은 소생된다.

(2) 그렇게 되면 그의 대적들은 개가를 부를 것이다. “나의 대적들이 이르기를 내가 저를 그렇게 하였다 할까 두려우며, 사울이나 사단이 나의 멸망을 흐뭇하게 여길까 두렵사옵니다.” 

이 말은 그의 대적의 교만을 충족시켰을 것이며, 그의 대적은 “내가 저를 이기었다. 내가 그날을 획득했고 저와 저의 하나님은 매우 비참하게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또한 이는 그의 대적들의 악의를 충족시켰을 것이다. 즉 그들은 “내가 요동될 때에 기뻐할” 것이다. 

하늘과 땅에서 거룩한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짓밟히도록 만듦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일까?

Ⅲ. 그의 기도는 곧 찬미로 변하고 있다(5-6절). 

그러나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이다.” 여기 몇 줄 사이에서 얼마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는가! 

이 시편의 첫부분에서 우리는 그가 위축되어 떠는 것을 보았고, 또 우울과 절망 속으로 빠지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 끝부분에서 그는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높이 찬양하고 있다. 

믿음의 능력, 기도의 능력을 보라. 그리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보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근심과 걱정을 은혜의 보좌로 갖고 가서 거기에 맡긴다면 우리는 한나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을 것이다”(삼상 1:18). 여기에서 그의 위로의 방법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의 긍휼은 그의 믿음을 부축하고 있다. 

“나의 사정은 매우 악화되어 있으며, 나는 거의 그것을 비참하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비로소 주님의 무한히 선하심을 생각하나이다. 이제 내가 의지할 곳을 발견하였으므로 비록 내가 아무 공도 없사오나 위로를 받나이다. 이전의 환난 속에서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으며, 그것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의 인자하심은 합당한 때에 나를 구원해 주었고, 그것에 대한 나의 확신은 그동안 나를 부축해 주었습니다. 이 깊은 환난 속에서도, 즉 하나님께서 나로부터 얼굴을 감추셨고, 외적인 투쟁과 내적인 두려움을 지녔을 때에도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그것은 푹풍 가운데 있는 닻과도 같았습니다. 그 인자하심의 도움으로 인해 비록 내가 시달렸다 하더라도 전복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나이다”(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마침내 내게 유익하게 행해지리라는 확신과 함께 나 자신을 그것에 의뢰합니다.”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이 얻은(147:11) 기쁨을 아는 그는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다.

2.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그의 믿음은 그의 마음을 “구원의 기쁨”으로 채웠다. 왜냐하면 기쁨과 평강은 “믿음 안에서” 생기기 때문이다(롬 15:13). “

믿고 기뻐하라”(벧전 1:8).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의지하는 그는 구원을 완전히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날마다 슬퍼하던 그의 마음은 이제 “주의 구원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비록 울음이 오래 지속되더라도 기쁨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3.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그의 기쁨은 그의 입을 찬미의 노래로 채웠을 것이다(6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이다. 주께서 이전에 행하신 것을 기억하여 노래하리이다. 비록 내가 가졌던 평강을 결코 되찾을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께서 이전에 그것을 내게 주셨음을 송축하며 죽겠습니다. 주는 이전에 나를 관대하게 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지금 나를 어떻게 대하시더라도 나는 주께 그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나는 모든 것이 좋게 끝날 것임을, 영원히 좋게 끝날 것임을 확신하면서 주께서 결국 나를 위해 행하시리라는 소망을 갖고 노래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일로서 말하고 있다(“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왜냐하면 마음으로써 그는 구원의 전조를 얻었고, 이미 행해진 것과 같은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시편을 노래하고 그것을 간구함에 있어서, 만일 우리가 다윗과 같은 원망할 것이 없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며, 그의 숨으심을 두려워하고 탄원해야 한다. 또한 마음이 괴로운 자들을 동정해야 하며, 지극히 거룩한 믿음과 기쁨으로 우리 스스로를 격려해야 한다.

-------원수, 대적들------

((출23:22))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 너희가 그의 말에 절대 순종하여, 내가 명하는 모든 것을 따르면, 내가 너희의 원수를 나의 원수로 여기고, 너희의 대적을 나의 대적으로 여기겠다.

((신32:35,36 ))*35.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36.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35.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니, 내가 갚는다. 원수들이 넘어질 때가 곧 온다. 재난의 날이 가깝고, 멸망의 때가 그들에게 곧 덮친다.*36.그들이 기진맥진 하고, 갇힌 사람도 놓인 사람도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심판하시고, 당신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원수 대적 경쟁자 없는 삶]]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그 깊은 참 의도는 원수가 아예 없는 삶을 살라는 데 있습니다. 
영적으로 사탄 마귀가 원수인 것 외에 이 세상 삶에서는 원수도 대적도 라이벌도 없는 삶이 주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음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나를 원수 취급하고 대적하는 사람은 있어도 내게는 전혀 원수나 대적으로서의 영향력 제로, 무력화가 가능합니다. 
원수는 보통 외적 원수와 내적 원수 두 종류입니다. 그런데 내적 원수를 없애면 외적 원수는 따라서 사라집니다.
-----(사41:11~16)-------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15.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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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대적 경쟁자 없는 삶>.
“원수를 사랑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영혼의 진짜 근본적 대적원수는 사탄 마귀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착각해서는 안되는데, 주님이 [사랑하라]말씀하신 원수는 다름 아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원수 대적자 경쟁자가 없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십자가 복음 사건을 제대로 받으면 원수가 없고 대적자나 경쟁자가 없는 삶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적하는 사람이 있고, 경쟁자로 삼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영향력이 완전히 제로상태로 무력화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원수 없는 삶입니다.
본문 8절부터 보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8~10절에서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기복 위한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종교라면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종교라 불러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예수님의 복음’이라고 부르기에 합당합니다. 그 이유는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기에  차별화되기 때문입니다.
.....신과 우상을 숭배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숭배 받는 신과 우상들은 인간을 향해 요구하는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와 신과 우상을 만들어서 선택합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우리가 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이 택하셨다’라는 말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내가 택한 야곱아 /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셨기 때문에 기독교를 종교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에서 시작된 관계가 아니라, 신이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은 무려 70쇄나 거듭해서 찍어 낸 베스트셀러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접한 후에 교회를 떠난다고 합니다. 장신대 총장을 하셨던 김명용 교수님에 의하면 “이 사람의 책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교회 안의 청년들이 초토화 되고 있다”라고 하실 정도입니다. 또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직역하면 ‘신은 망상이다’라는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설쳐대는 이유는 모두 우리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종교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주도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속에서 생겨나는 모순이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에게 공격의 여지를 줍니다. 결국은 자기 주도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니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붙드시면 붙들리면 됩니다.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나를 부르시면 ‘예’하고 나아가면 됩니다. 싫어하여 버리지 않으시면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좋아하면 됩니다. 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 두려워하지 않으면 되고 놀라지 말라고 하시면 놀라지 않으면 됩니다. 나를 굳세게 하신다면 굳세어지면 됩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굳세게 하신다는 데도 굳세어지지를 않습니다. 나를 도와주시겠다고 하시는데 도움을 안 받습니다. 나를 붙드시겠다고 하시는데 붙드시도록 내버려두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시고 받아들이기만 하라고 하시는데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항상 삶이 어렵고 신앙생활도 기진맥진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굳세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원수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 삶에서 원수가 생기게 하였습니다. 원수에는 내적 원수와 외적 원수가 있습니다. 내적인 원수로 인해서 외적인 원수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내적인 원수만 없어지면 외적인 원수도 없어집니다. 내적 원수가 없어서 외적 원수가 없어지면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하시려는 모든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붙드시면 붙들림을 받고, 굳세게 하시면 굳세어집니다. 도와주실 때에는 도움을 받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놀라지 말라고 하시면 놀라지 않습니다. 원수만 없으면 이렇게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주시는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내적 원수를 만들고 이로 인해 외적 원수가 생기게 한 것입니다. 내적 원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가 이것을 원수로 여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60여년 후에 일어날 포로귀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아직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지도 않았는데 바벨론에서 포로들이 귀환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포로귀환 사건은 지금 이 예언을 듣는 유다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너희가 세상의 포로가 되어 있기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모든 인간들에게 문제가 되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본문은 두 종류의 원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수미상관으로 쓰인 본문은 크게 1~14절과 15~29절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4절에서는 고레스 왕의 등장이 이야기됩니다. 고레스의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가 바사 왕으로서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으로 귀환시키는 해방의 칙령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25절 이후에 다시 고레스 왕에 대한 언급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내용 속에서 의미적으로 14절까지는 외적인 원수 척결에 대해, 15절부터는 내적인 원수에 대한 교훈이 나타납니다. 외적인 원수 척결에 대한 언급은 듣기만 해도 속이 뻥 뚫리는 내용입니다.
11~12절을 보면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전혀 원수답지 못하게 되리리라는 것입니다. 원수가 원수답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내게서 아무것도 빼앗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원수가 원수인 이유는 내게서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70여년이나 지나고 포로에서 귀환할 때를 예언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여기에 복잡한 원수 관계가 깔려 있습니다. 15절에서 또 하나의 원수가 등장합니다. 이 15절 이하에 나오는 내적인 원수를 이해할 수 없다면 앞서 나온 외적인 원수가 생겨난 이유도 파악할 수 없습니다.
15~16절을 보면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17절부터는 지독한 갈증이 해결될 것이 예언됩니다.
....그리고 이 원수를 다 척결할 때에 나타나는 일이 16절에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 세상에서 내게 소중한 것들입니다. 목숨이 대표적입니다. 내 목숨이 모든 자랑의 뿌리가 되고 기초가 됩니다. 그리고 가족이 자랑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배우자와 부모형제 자녀가 소중합니다. 또 직장이나 사업체 혹은 모아둔 재산이 자랑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건강이나 명예도 이러한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모두 내적인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을 밀어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대신에 건강을 자랑하고 자식을 자랑하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감기 한 번 안 걸린 것이 그렇게 자랑스럽습니다. 60~70세에 혈압도 높지 않고 당수치도 정상이라 마음이 뿌듯합니다. 입으로는 꺼내지 않아도 마음으로는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건강을 자랑으로 여기고 싶은데 정작 건강이 없는 사람은 기가 죽어 살아갑니다. 자랑하고 사나 기가 죽어서 사나 영적으로는 똑같이 건강을 사랑하는 상태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세상의 소중한 가치가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이 들어오실 자리가 없어집니다. 마음에서 자녀가 차지한 자리만큼 하나님은 들어오실 곳이 없어집니다. 배우자를 좋아하면 하나님이 들어오실 수가 없습니다. 원수는 내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가장 소중한 분이시기에 그 하나님이 계실 자리를 빼앗아 갔으니 자녀도 내적인 원수가 됩니다.
....세상에서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건강보다 하나님이 더 중요합니다. 건강조차도 하나님의 주관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건강을 붙잡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건강을 먼저 잡고나면 결코 하나님을 소중히 여길 수 없습니다. 마귀는 이러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오히려 박수치며 좋아합니다. 세상 가치를 먼저 끌어안고 이제 그것들을 더 얻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종용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이러한 인간 주도적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리처드 도킨스가 보기에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아무런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 자녀일 수도 있고 건강이나 나의 목숨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직업이고 재산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이 소중한 줄 모르기에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것들이 나의 원수인 줄도 모릅니다. 마귀에게 배운 대로 하나님 이외의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자녀도 하나님이 주셨으니 소중하게 여기고, 내 몸도 하나님이 주셨으니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는 동안 정작 이것을 주신 하나님은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원수입니다.
....하나님이 도움을 주시려 해도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마음에서 하나님 이외의 소중한 것들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는 이것들을 위해서 주체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주체적이 되니 나의 주체성의 칼날이 하나님의 주체성의 칼날과 부딪힙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 원수는 나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자녀가 소중한데 이 자녀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내게는 처리해야만 하는 원수가 됩니다. 내 재산이 소중합니다. 이 재산에 손해를 주려는 모든 사람이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을 보고 잃어버린 돈, 하나님을 보면서 잃어버린 돈에 대한 피해의식을 느끼지 않을 때에, 하나님은 잃어버린 돈의 두세 배로 갚아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을 지키기 위한 체념이나 포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는 동안 내적인 원수가 척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중히 여길 때에 내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손에 붙잡히게 됩니다. 이것이 도와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경쟁자와 대적자가 늘어갑니다. 내가 마음에서 승진을 소중히 여기는 상황에서 부장 자리는 하나인데 경쟁자는 셋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모두 나의 경쟁자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회사에서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직장생활에서도 어떻게든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최고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쟁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승진을 못하게 될까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다면 열 명 중에서도 나를 뽑아 부장자리에 앉히실 것입니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고 있으면 됩니다. 부장자리보다도 하나님을 더 소중하게, 돈보다 건강보다 하나님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마음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세상의 가치들은 내적인 원수입니다. 이것들이 산들과 작은 산들로 비유된 이유는 그만큼 내 마음에 굳건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이것들 때문에 바벨론이나 앗수르 같은 존재들이 외적인 원수가 됩니다. 바벨론이나 앗수르는 마음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세상의 가치를 빼앗아 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외적인 원수를 만들게 하는 내적인 원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들이 원수인줄도 모르고 산처럼 굳건하게 자리 잡도록 붙잡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을 해방시키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동안 유일하게 소중하신 하나님은 바깥으로 쫓겨나고 마십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내게서 하나님을 빼앗는 원수임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소중하다 보니 가는 곳마다 외적인 원수를 만나게 됩니다.
....이 세상에 내게서 하나님을 빼앗을 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기를 쳐서 내 돈을 빼앗아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돈이 벌리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시로 비유된 질병을 몸에 짊어지고 다니면서도 족하다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이유가 있는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진실로 내게 가장 소중한 가치인 하나님을 빼앗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나에게 누가 손해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있으셔서 세상의 가치들이 내게 생기거나 없어질 수도 있을 뿐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가졌으니 다 가진 것입니다.
....그것들은 소중히 여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나와 연관을 맺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엄청난 착각을 하신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돌볼 수가 없습니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할 수 없는 내가 무슨 힘으로 자녀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셔야 될 일입니다.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하나님뿐이십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세상의 모든 가치들은 하나님을 빼앗아가는 나의 원수입니다.
. 이것들이 내 마음에서 부셔져서 가루가 되어도 실제로 그것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는 하나님만이 들어오셔서 소중하게 여겨질 수 있도록 세상의 가치들을 부셔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세상에서는 원수가 사라질 것입니다. 대적자 없고 경쟁자 없는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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