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7.26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엘벧엘..참회복의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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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5:1-15==내주를가까이하게함은338 내영혼이은총입어438.이땅의황무함을.보소서주님.주보혈날정결케하고.보혈을지나.약할때강함되시네.네.내안에사는이.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꿈에 나타나 언약하신 그 약속대로 오늘 여기까지 인도해오신 바로 그 하나님) 네게 나타났던 나님께 (네가 자원해서 약속한 바로 그 약속대로)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선결요건=회개)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환난날에~시50:15)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회개에합당한행위)

그들이 떠났으나(신뢰-예비공급양육훈계인도하시는임마누엘Q과 동행)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하나님의 집에 계신 하나님!!)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Q만 바라며 의지하는, 참되게 성숙한 신앙인격의 홀로서기..로 이끄심)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Q께, 벧엘로 돌아와야 진정으로 돌아온 것!!)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참믿음통한 아브라함의 복의 계승자로 인정!!)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엘샤다이)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말씀하시는 하나님영광의 생생한, 실지로 목도하는 체험!!)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언약 맹세=전인격의 결단)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오직HS으로)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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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여행 준비(창 35:1-5)

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그가 벧엘에서 한 서원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 서원을 이루도록 그를 그 곳으로 가게 하셨다(1절). 

....야곱은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28:21, 22) 하고 말한 바 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어 야곱으로 하여금 먹고 입을 것을 주셨을 뿐 아니라 넓은 땅과 큰 두 무리를 얻게 하셨다. 그러나 야곱은 그 서원을 잊어버렸거나 오랫동안 그 서원을 실천하는 것을 미룬 것 같다. 이제는 가나안에 돌아온 지 7, 8년이 되었다. 가나안에서 넓은 땅을 샀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신 것을 기억하고 제단을 쌓기도 했다(33:19, 20).

....그러나 여전히 벧엘은 잊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은혜에 대한 감사의 느낌과 그 은총으로부터 받은 깊은 인상이 퇴색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집안에 대단히 괴로운 시련을 주시어(34장) 야곱이 서원을 기억하고 수행하게 하셨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련당한 그 장소에) 하나님은 직접 찾아오시어 그것을 회상하게 해 주신 것이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잊고 있는 의무를 양심을 통해서, 혹은 어떤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을 통해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회상하게 하신다.

2. 하나님께 맹세를 했으면 그 맹세한 일을 하는 것을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전 5:4). 그러나 그래도 아예 지키지 않는 것보다는 좀 늦더라도 실천하는 것이 더 좋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에 가서 정착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야곱만 아니라 야곱의 온 가족이 야곱의 헌신에 동참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 벧엘에서 살기를 원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시 27:4). 

---하나님의 집 벧엘은 여관이 아니라 내 집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으로 하여금 직접적으로 그 서원을 기억하게 하지 않으시고 야곱이 서원을 하던 그 때 사정을 회상하게 하셨다.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라고 말씀하셨다. 이전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그 고난 속에서 우리의 영혼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생각해 내야 한다(시 66:13, 14).

Ⅱ. 야곱은 온 집안으로 하여금 이 의식을 준비하게 한다. 여행과 이사뿐 아니라, 신앙의 예식을 수행할 준비도 했다(2, 3절).

1. 경건한 의식 이전에 경건한 준비를 해야 한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게 하여……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6-18).

2. 가장들은 가정의 경건한 신앙을 독실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권위를 사용해야 한다. 우리 자신뿐 아니라, 온 집안이 주님을 섬겨야 한다(수 24:15). 야곱이,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18:19), 집안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것을 잘 살펴보라.

(1) 식구들은 모두 “이방 신상을 버려야” 했다. 

....야곱의 가정에 이방 신상이 있었다. 이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호와에 대한 지식을 풍성하게 배운 가정이 이방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두 번씩이나 그 모습을 보이신 하나님을 뵈었고, 더 자주 하나님을 만난 가장이 그런 신들을 묵인할 수가 있을까? 이야말로 의심할 바 없이 야곱의 커다란 결점이었다. 자기 자신이 착하고 훌륭하다고 해서 언제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도 당연하게 훌륭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종교적인 가정이라고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가정이라 할지라도 많은 실수가 있고 또 때로는 의심스러운 이방신을 모시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야곱의 집안에서는 라헬이 자기의 드라빔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경외심을 품고 남몰래 미신적인 일에 사용한 것이다. 세겜에게서 잡혀 온 사람들은 그들대로 자기네 신을 가지고 왔을 것이며, 아마 야곱의 아들들은 그저 욕심으로 그 신들을 가져왔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 신들이 야곱의 집안에 들어왔든지 이제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

(2) 그들은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어야” 했다. 

....예절에 맞는 옷을 입고 가장 깨끗하게 겉모습을 갖추어야 했다. 시므온과 레위의 손은 피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정결케 해야만 했고, 피로 얼룩진 그들의 옷도 새 옷으로 바꾸어 입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마음을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함을 상징하는 의식이었다. 새로운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깨끗한 옷이나 새 옷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라이트푸트 박사는 자신을 “정결케 했다” 즉 “씻었다”는 것은, 세례를 말하는 것으로 세겜 사람들과 아람 사람들을 개종시켜 야곱의 종교에로 받아들였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전의 할례는 추악한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3) 그들은 모두 벧엘로 가야 했다(3절). 가장이 하나님의 전에 나아갈 때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Ⅲ. 야곱의 가족들은 지니고 있던 모든 우상과 미신적인 것들을 버렸다(4절). 

....만약 야곱이 좀 더 일찍이 그렇게 하게 했다면, 그들은 양심적으로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깨닫고 좀 더 일찍 그 모든 것을 버렸을 것이다. 개혁하려는 시도가 예상한 것보다 더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도 그런 시도에 대해서 우리가 걱정하는 것만큼 완고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야곱의 종들은 물론 야곱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방 신상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장신구로 썼든지 자기네 신을 섬기는 데 썼든지 귀걸이까지도 버렸다. 모든 것을 다 버렸다. 개혁이 모든 면에 골고루 미치지 않으면 진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에브라임이 자기의 모든 우상을 버리면서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호 14:8) 한 것처럼, 또 자기 우상들에게 “나가라”(사 30:22)고 한 것처럼, 그들이 주저하지 않고 즐겁게 버렸기를 희망한다. 

....야곱은 그들의 우상들을 다 거두어, 그들이 다시 찾아가지 못하도록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어 버렸을 것이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보이지 않게 묻어서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듯”(사 2:20) 죄를 [[극한 혐오로!!]]완전히 떨쳐 버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Ⅳ. 야곱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세겜에서 벧엘까지 갔다(5절).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가나안 사람들이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에게 행한 야만적인 일에 분노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힘이 그들을 사로잡으셨기 때문에, 야곱 가족이 움직이는 이 때가 자기 이웃을 해친 원수를 갚기에 가장 좋은 기회였는데도 행동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야곱의 집이 죄를 범했을 때, 야곱은 이웃에 있는 다른 종족들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제 이방의 신들을 다 버리고 함께 벧엘로 내려가자, 두려워한 것은 오히려 그 주변에 있는 다른 족속들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때 우리는 특별한 보호하심 아래 있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네가 매년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출 34:24). 하나님은 사람들 마음에 우리가 모르는 은밀한 두려움이 생기게 하셔서 세상을 다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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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에 도착한 야곱(창 35:6-15)

야곱 일행은 안전하게 벧엘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자.

Ⅰ. 야곱은 그 곳에 제단을 쌓았다(7절). 틀림없이 희생 제물을 드렸을 것이다. “십분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고 서원한 바와 같이 

....가축의 십분의 일을 희생 제물로 바쳤을지도 모른다. 모든 제물을 바치면서 야곱은 이전에 하나님이 주신 모든 복을 새로이 기억했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과 가족들을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사랑해 주실 것을 기원했다. 그리고 그 장소를(즉 그 제단을)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인 엘벧엘이라고 불렀다. 

....이전에 야곱이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불러 주셨고, 야곱은 하나님을 엘엘로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예배했다.(세겜옆 숙곳에 집과 우릿간을 짓고 정착한다음, 세겜에 장막짓고 단을 설치할 밭을 사고 그곳에 제단을 쌓았음) 

....그런데 이제 벧엘에서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크신 사랑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엘벧엘 곧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예배하고 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직접(말씀으로, 즉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성례에서 얻는 많은 위로와 축복은 “벧엘에서, 곧 하나님의 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엘벧엘, 곧 하나님의 집의, 그 집에 계신 하나님에게서 직접” 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성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헛된 것일 뿐이다.(뜰만 밟는 것!!)

Ⅱ. 그 곳에서 야곱은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를 장사 지냈다(8절). 야곱은 가나안으로 온 뒤 가족들이 세겜 근처에서 살고 있는 동안 헤브론에 있는 아버지 이삭을 찾아간 것 같다. 아마 리브가는 이미 사망했고, 그의 유모(이 여인에 대해서는 24장 59절에 나타나 있다)만 남았는데, 자기 아이들도 가르치고 또 그 유모와 동족인 자기 아내들과 벗이 될 수도 있어서 자기 가족과 함께 있도록 집으로 데려온 것 같다. (마치 리브가를 대하듯 가족모두가 존중하고 의지했던 것 같다!!) 바로 그 드보라가 벧엘에 있는 동안 죽은 것이다. 모두가 크게 슬퍼했다. 어찌나 슬퍼했는지, 드보라를 상수리나무 밑에 묻었는데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 즉 곡함의 상수리라 불렀을 정도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가정에서 오랜 세월 동안 충실하고 성실했던 종을 존경해야 한다. 이 드보라는 직접적인 혈연 관계가 있던 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는데도, 야곱의 가정은 이 유모에게 정중한 경의를 표했다. 그럴 경우 우리는 생전에 그가 어떻게 섬겼는지 기억해야 한다.

2. 우리는 언제 죽음을 만날지 모른다. 어쩌면 벧엘, 하나님의 집에서 죽음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3. 가정이 모두 개혁을 하고 신앙이 점차 발전해 경건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도중에도 가정에는 어려움이 생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만사가 다 잘 되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방만하지 않도록!!) 삼가면서 즐거워해야 한다.

Ⅲ.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흠향하시고, “벧엘의 하나님”(7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신 것에 응답하시며, “슬픔 중에 있는”(8절) 야곱을 친히 위로하시기 위해 야곱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하나님께서는 의무의 완수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은총을 통해 나타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1.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이 바뀌었음을 재확인하셨다(10절). 전에 야곱과 씨름한 천사에 의해 야곱이 이름이 바뀌었다(32:28). 

....여기에서는 야곱에게 나타나신 거룩한 주님, 곧 쉐키나에 의해 [이스라엘!!]이름이 재확인되었다. 천사와 씨름한 그 때, 씨름한 천사에 의해 선포된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에서에 대한 두려움에 싸여 있는 야곱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은 유모드보라을 장사지낸 슬픔과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 싸여 있는 야곱에게 용기와 안위를 주시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이스라엘보다 누가 더 강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그처럼 고귀하게 된 사람들을 절망시키거나 좌절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야곱의 언약을 엘샤다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재확인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모든 것이 풍족하여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11절)이므로 약속한 바를 제때에 지킬 수 있고, 가장 어려운 때에 너를 도울 수 있고,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해 줄 수가 있다”는 뜻이다. 이전에도 살펴본 바 있지만 두 가지 사실이 약속되었다.

(1) 야곱이 큰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이스라엘의 각 족속은 각기 한 민족이었고 열두 족속은 민족 연합체였다) 야곱은 또 영광과 힘을 얻을 것이다.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2) 좋은 땅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12절).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그 땅을 상속받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땅을 지금 점유하고 있는 가나안 사람에게 양도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것인데, 지금은 야곱과 야곱의 자손에게 물려주시는 것이다. 자손은 있는데 재산은 없고, 재산은 있는데 자손이 없어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야곱은 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다.

---이 두 약속은 영적인 의미가 있다. 이에 대해 야곱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만큼 분명하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약속된 씨이고 하늘은 약속된 땅이기 때문이다. 모든 하나님의 사랑에 있어서 전자는 기초가 되고 후자는 제일 위를 장식하는 돌이 된다.

3. 하나님께서는 “그를 떠나 올라가셨다.” 말씀을 하시던 곳에서 그렇게 올라가신 것은 어떤 영광스러움을 직접 눈으로 보게 하시려고 한 것 같다(13절).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하는 행복한 교제는 극히 짧고 일시적이어서 곧 끝이 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나 하늘에서는 영원히 하나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곳에서 우리는 주님과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나 여기 이 세상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Ⅳ. 그 곳에서 야곱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웠다(14절).

1. 야곱은 기둥을 세웠다. 밧단아람으로 갈 때 야곱은 베고 자던 돌을 세운 적이 있다. 그 때 그는 사기가 저하되어 있었고 급하게 도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견고하고 훌륭하게 기념비를 세울 시간이 넉넉했다. 그 때 그 돌을 이번에 기둥을 세우는 데 넣었는지도 모른다. 이 기둥을 자기가 하나님과 만난 거룩한 기념비로 하기 위해 야곱은 기름과 다른 전제물(奠祭物)들을 그 위에 부었다. 이전에 그의 서원은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다” 하는 것이었다. 이는 건축자를 찬양하기 위한 집처럼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여기에서 그 약속을 지키어, 기름을 부어 이 기념비를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2. 야곱은 전에 자신이 명명한 바 있는(15절)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는 이름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바로 이 곳이 후에는 그 이름이 지닌 거룩한 명예를 잃어버리고 벧아웬, 곧 죄악의 집이 되고 말았다. 여로보암이 황금의 송아지를 그 곳에 두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사람들이라도 종교적인 정직과 외형을 후대에게 물려주기 힘든 것처럼 거룩한 장소를 계속 물려주는 것도 참으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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