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7.29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39.나그네인생의 참소망.지혜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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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39==나의한일죄뿐이라.주님의뜻을이루소서.아버지여나의맘을.변찮는주님의사랑과270...주여작은내소망을..보혈을지나.은혜로만, 주님의성령.아버지사랑합니다.예수귀하신주님.주앞에나와.나약해있을때에. CauseMeToCome.WaitOnTheLord.살피소서오늘내마음을.내주의은혜강가로.주내소망은.주품에.주께가까이.내주님없이는못살아.예수는내구주나의참소망.만족주지못할것구했었네.오나의자비로운주여 ChristInMeIsToLive.. IworshipYouAlmightyGod.. IloveYouLord.. He'sTheSaviorOfMySoul.. Isn't He.. Beautiful,beautiful.. FaceToFace..Father,I LoveYou..


*1.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모든 언행심사를 사랑-기쁨-화평-생명의 주님안에서 살펴 행하며!!)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2.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치우침!!...생명과 사랑의 관점에 서라)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새로운차원의 내적갈등과 혼란...주와 하나된 영의 새사람된 표징...누구앞에서든지 적절한 때와 장소에 합당한 지혜의 말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더 중요...마침내, 참된 균형을 훈련/익숙-생명안의 사랑/평강으로 바뀔 것)

*3.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매일아침 주, 곧 생명말씀으로 먼저 내영혼을 교화하리!!))

*4.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I'm Nothing, NoBody withoutYOU..주를 진실로 "야다"함 이루소서!!) 알게 하소서

*5.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유령)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모든 정욕과 세상자랑 헛됨..변화하는 찰나요 순식간.)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유일한 참실재, 참생명이신)주께 있나이다

*8.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거듭난 영, 하나됨의 살가우심, 그 사랑, 생명의 교통, 회복의 기쁨안으로!!) 우매한(우매무지완고한=미욱한...언행심사/됨됨이가 미숙/어리석음+상황분별/판단감각이 민첩하지 못하며 변덕/고집스럽고 훈육을 거절하며 미련/아둔하고 배역하는, 죄에 중독된 죄성-사망- 부패-허망한 옛사람)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9.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인생중 경험하는 모든 수모-멸시-환난곤고를 참고 견딤) 주께서 (오직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혐오함안에서 결단함으로, 죽어야 다시사는 회개통해서만 길생명진리의 주님, 지고지선의 진복 얻고-누림-동행-OD, Destiny이루는 사명자됨 열리기에 이를 위한 훈육으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10.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11.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죄악된 생활, 그 길을 벗지못하는)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12.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마음찢는, 중심의 회개로)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13.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회복시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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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으로 다짐하였다. "나의 길을 내가 지켜서, 내 혀로는 죄를 짓지 말아야지. 악한 자가 내 앞에 있는 동안에는, 나의 입에 재갈을 물려야지."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좋은 말도 하지 않았더니, 걱정 근심만 더욱더 깊어 갔다.

가슴 속 깊은 데서 뜨거운 열기가 치솟고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올라서 주님께 아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주님 알려 주십시오. 내 인생의 끝이 언제입니까?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나의 일생이 얼마나 덧없이 지나가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나에게 한 뼘 길이밖에 안 되는 날을 주셨으니, 내 일생이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진실로 모든 것은 헛되고, 인생의 전성기조차도 한낱 입김에 지나지 않습니다. (셀라)

걸어다닌다고는 하지만, 그 한평생이 실로 한오라기 그림자일 뿐, 재산을 늘리는 일조차도 다 허사입니다. 장차 그것을 거두어들일 사람이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내 희망은 오직 주님뿐입니다.

내가 지은 그 모든 죄악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나로 어리석은 자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가 잠자코 있으면서 입을 열지 않음은, 이 모두가 주님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채찍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주님의 손으로 나를 치시면, 내 목숨은 끊어지고 맙니다.

주님께서 인간의 잘못을 벌하시고, 그 아름다움을 좀이 먹은 옷같이 삭게 하시니, 인생이란 참으로 허무할 뿐입니다. (셀라)

주님, 내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내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 눈물을 보시고, 잠잠히 계시지 말아 주십시오. 나 또한 나의 모든 조상처럼 떠돌면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손과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다시 미소지을 수 있도록 나에게서 눈길을 단 한 번만이라도 돌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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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aid, "I will guard my ways That I may not sin with my tongue; I will guard my mouth as with a muzzle While the wicked are in my presence."

I was mute and silent, I refrained even from good, And my sorrow grew worse.

My heart was hot within me, While I was musing the fire burned; Then I spoke with my tongue:

"LORD, make me to know my end And what is the extent of my days; Let me know how transient I am.

"Behold, You have made my days as handbreadths, And my lifetime as nothing in Your sight; Surely every man at his best is a mere breath. Selah.

"Surely every man walks about as a phantom; Surely they make an uproar for nothing; He amasses riches and does not know who will gather them.

"And now, Lord, for what do I wait? My hope is in You.

"Deliver me from all my transgressions; Make me not the reproach of the foolish.

"I have become mute, I do not open my mouth, Because it is You who have done it.

"Remove Your plague from me; Because of the opposition of Your hand I am perishing.

"With reproofs You chasten a man for iniquity; You consume as a moth what is precious to him; Surely every man is a mere breath. Selah.

"Hear my prayer, O LORD, and give ear to my cry; Do not be silent at my tears; For I am a stranger with You, A sojourner like all my fathers.

"Turn Your gaze away from me, that I may smile again Before I depart and am no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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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anity of Life. To the Chief Musician; for Jeduthun. A Psalm of David.39 

1 I said, “I will guard my ways That I may not sin with my tongue; I will muzzle my mouth While the wicked are in my presence.”

2 I was mute and silent [before my enemies], I refrained even from good, And my [a]distress grew worse.

3 My heart was hot within me. While I was musing the fire burned; Then I spoke with my tongue:

4 “Lord, let me know my [life’s] end And [to appreciate] the extent of my days; Let me know how frail I am [how transient is my stay here].

5 “Behold, You have made my days as [short as] hand widths, And my lifetime is as nothing in Your sight. Surely every man at his best is a mere breath [a wisp of smoke, a vapor that vanishes]! Selah.

6 “Surely every man walks around like a shadow [in a charade]; Surely they make an uproar for nothing; Each one builds up riches, not knowing who will receive them.

7 “And now, Lord, for what do I expectantly wait? My hope [my confident expectation] is in You.

8 “Save me from all my transgressions; Do not make me the scorn and reproach of the [self-righteous, arrogant] fool.

9 “I am mute, I do not open my mouth, Because it is You who has done it.

10 “Remove Your plague from me; I am wasting away because of the conflict and opposition of Your hand.

11 “With rebukes You discipline man for sin; You consume like a moth what is precious to him; Surely every man is a mere breath [a wisp of smoke, a vapor that vanishes]. Selah.

12 “Hear my prayer, O Lord, and listen to my cry; Do not be silent at my tears; For I am Your temporary guest, A sojourner like all my fathers.

13 “O look away from me, that I may smile and again know joy Before I depart and am no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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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편을 저작했을 때에 매우 심한 궁지에 몰려 있었던 것 같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아주 불안정했던 것같이 보인다. 그가 자기의 격정을 억누르고 스스로의 심정을 가다듬고서 자기가 타인들에게 내렸던 선한 교훈(37편), 즉 여호와께 의지하며 초조함이 없이 끈기 있게 그를 기다리라는 좋은 교훈을 이제 그 스스로가 받아들이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이유는 곤경 아래서는 평온한 모습의 좋은 모범을 보여주는 일보다는 선한 충고를 하는 일이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다윗이 이때에 겪고 있던 갈등을 야기시킨 구체적 곤란이 무엇이었는지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의 인내심에 대한 시험이 되었던 것은 아마 어떤 사랑하는 벗이나 친척의 죽음이었을 것이며, 그것은 언젠가 죽어야 하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이와 같은 명상을 그에게 떠오르게 했을 것이다. 

또한 동시에 그 자신도 쇠약해졌고 병들었으며, 어떤 유행성 질병에 걸려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그의 원수들은 그에게 해를 끼치려 면밀히 탐색하고 있었으며, 그가 넘어지기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그에 대한 비난거리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1. 자기 흉중에 은혜와 부패, 격정과 인내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투쟁을 말하고 있다(1-3).

2. 그는 인간의 취약성과 필멸의 숙명에 대한 교훈을 숙고하고, 이 일에 대해 교훈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다(4-6).

3. 그는 자기의 죄를 용서하시고 고난을 제거해 주시며, 자기가 죽음을 맞을 준비가 될 때까지 생명을 연장시켜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7-13).

이 시편은 추도시며, 그 경우에 아주 적합하다. 이 시편을 노래함에 우리는 인생살이의 짧음과 불확실성과 참상에 대해 충분히 감동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머지않아 닥칠 소천의 느낌으로 인해  안락이 흔들리는 것을 예감하는 자들은 그런 예감가운데 하루하루 살아가면서도 반드시 획득해야만 하는 목표가 있음을   이 시편이 드러내주고 있음에 유의하라..그것은 우리의 영적 온전함을 위해 우리에게 성별해 주시며, 그 안에서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화해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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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생의 헛됨(시 39:1-6)

다윗은 여기서 그의 고난시에 그의 마음의 움직임에 대해 회상해 기록하고 있다. 우리도 그와 같이 기록해 두어 잘못 생각한 것은 수정하고 잘 생각한 일은 다음에 더 발전하도록 함이 유익할 것이다.

Ⅰ. 그는 하나님과 맺은 자기의 언약을 기억했으니, 그 언약은 그가 신중히 행하고 행동이나 말을 다 같이 아주 조심하겠다고 했던 것이었다. 

......언제라도 우리가 죄의 유혹을 받거나 죄 가운데로 빠질 위험에 봉착하는 때에는 우리의 엄숙한 맹세를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범하려 하는 개개의 죄를 멀리하겠다는 맹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맹세들을 상기시켜 주실 수가 있으며, 또한 상기시켜 주실 것이다(“네가 말하기를 나는 순복지 아니하리라 하도다”, 렘 2:20).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그 맹세들을 상기해야만 한다. 다윗도 여기에서 그렇게 행했다.

1. 그는 자기가 전반적으로 그 행위에 극히 조심하고 신중하기로 결심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1절). “내가 말하기를 내 행위를 조심하리라 하였도다.” .....그것은 참 잘한 말이었고, 그가 결코 취소하지 않을 말이다. 다음을 명심하자.

(1) 우리의 길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 즉 타인들이 온갖 모험을 하면서 걸을 동안에도 신중히 걷는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유의해야 할 중대한 일이다.

(2) 우리는 우리의 길을 조심하리라는 확고한 결의를 하고 있어야 하며, 또 자주 그 결심을 새로이 다짐해야 마땅하다. 단단히 단속해 두면 분실하는 법이 없는 것이다.

(3) 우리는 우리의 길을 조심하기로 결심하고 나서는 모든 경우에 스스로 그 결심을 깨우쳐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망각되어서는 아니 될 언약이며, 우리가 언제든지 유의하고 있어야만 하는 약속인 까닭이다.

2. 그는 특히 입술의 죄에 대한 자기의 언약을 기억하고 있다. 그 약속은 그가 혀로써 범죄치 않으리라는 것과 그가 잘못 말해 하나님께 득죄하거나 “의로운 자들을 죄짓게 하는”(73:15)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용이하지가 않다. 그러나 그는 설사 그의 마음속에서 악한 생각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손을 자기 입에 대고 그 악한 생각이 더이상 나오지 못하도록 억누를 작정이었다. ......이것은 아무나 해내지 못할 엄청난 터득이어서 “말로 범죄치 않는 자는 완전한 사람”인 것이다. 또 이것은 아주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에 경건하게 보이면서도 “그 입에 재갈을 먹이지 않는” 자에게는 “그의 신앙생활이 헛되다”고 공언할 수 있다. 다윗이 결심한 바는 다음과 같다.

(1) 그가 어떤 때라도 구설의 죄를 경계하겠다고 하는 것. “나는 내 입에 재갈이나 굴레를 먹이리라.” ...

.....그는 흡사 다루기 힘든 말에게 재갈을 물려 그 말을 이끌고 지시하며 견제하고 억제하여, 바른 길로 가게 하고 알맞은 보조를 유지하고 뛰게 하듯(약 3:3) 자기의 입에도 재갈을 먹이고자 했다. 

.....습관에 대한 경계는 머리에 대한 재갈이다. 행동과 실천에 대해 방심하지 않는 것은 손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그는 사나워서 화를 입히는 맹견에게 하듯 자기 입에 굴레를 씌울 참이었다. 특별하고도 확고부동한 결의로 말미암아 부패한 것은 억제되어 입술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으며, 그것은 마치 멍에를 씌운 경우와 같은 것이다.

(2) 그 위험한 추문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저들에 대한 감시를 배가하리라는 것. 즉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 

.....그가 악인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들을 강퍅하게 하거나 그들로 하여금 불경스러운 말을 지껄이게 할 만한 것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고자 했다. 만일 선한 사람들이 악한 자들과 어울리게 되는 경우에는 그들의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혹은, “악인이 내 앞에” 즉 내 생각 “속에 있을 때에” 말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행악자들의 교만과 권세, 형통과 번창하는 재산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으므로 잘못된 말이 자꾸만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뒤에는 자기가 하는 말을 특별히 주의하려고 했다.

.....죄에 대한 유혹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것에 대항하는 결의도 더욱더 공고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Ⅱ. 이들 언약에 순응한 그는 고심참담 끝에 자기 혀에 재갈을 먹일 수 있었다(2절).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도다.” 

.....그의 침묵은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도발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의 침묵은 더욱더 칭찬할 만했다.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 안에서 갖는 경계심과 결의는 비록 혓바닥이 다루기 힘든 화근이라곤 하지만, 그것에 재갈 먹이는 일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선한 말도 발하지 않은” 것에 관해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않으려는 것같이 그가 자기 앞에 악인이 있을 때 선한 담화를 자제한 것은 그의 지혜였던가? 나는 오히려 그것을 그의 나약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무 말도 않는 게 좋았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극단으로 뛰어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극단과 극단 사이의 중용을 명령하고 있는 율법에서는 비난거리가 된다. 모든 부패한 의사소통을 금하는 동일한 율법이 “선하고도 덕을 세우는 데에 소용이 되는 말”을 요청하고 있다(엡 4:29).

Ⅲ. 그가 말을 적게 하면 할수록 더욱 많이 생각하고 더욱 뜨겁게 되어갔다. 병든 부위를 싸매는 것은 환부에다 종기를 더할 뿐이다. “나의 근심이 더 심하였고,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졌도다”(3절). 

.....그는 그의 혀에 재갈을 먹일 수는 있었으나, 감정은 억누를 수가 없었다. 비록 그가 연기는 진압했으나 그것은 그의 뼛속에 있는 불과 같아서, 그가 자기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을 조용히 생각하는 동안에 불이 붙어올랐던 것이다.

.....성급하고 불평이 많은 기질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숙고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니, 이는 저희가 자기들의 재난에 대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느라고 머리를 쓰는 동안에 저희 불만의 불은 연료의 공급을 받아 더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는 까닭이다. ---조바심은 우리 안에 나쁜 동기를 가지는 죄악이며,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 불타는 것에 못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규제할 수 없는 격정의 화를 예방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제어하기 어려운 잡념들의 불평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Ⅳ. 그가 결국 입을 열었을 때 그 말은 적절한 것이었다. “드디어 나는 나의 혀로 말하였도다.”

.....혹자는 그가 말했다는 사실이 그의 선한 목적을 침해한 것이라고 이해해, 그가 말을 했다는 사실에서 그는 자기 혀로 범죄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은 엘리야나(왕상 19:4) 욥처럼(욥 6:8-9) “그가 죽기를” 열렬히 소원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가 말했던 것을 그의 선한 목표에 대한 파괴라기보다는 너무 무리하게 적용했던 자기 과실을 개선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는 선한 말도 토설하지 않고 잠잠했으나 이제는 더이상 그와 같은 침묵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악인들에게는 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것은 저들에게는 그가 자기 말을 어떻게 구사해야 할지 몰랐던 까닭이다. 그러나 오랜 숙고 후에 그가 한 첫 말은 기도였고, 우리 모두가 소중히 여기면 유익할 주제에 대한 신앙심 깊은 묵상이었다.

1. 그는 인생의 단명과 불확실성, 그리고 사망의 근접성을 깨닫도록 해주십사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4절).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소서.” 

.....그것은 “여호와여, 내가 얼마나 오래 살며 언제 죽을지 알게 하소서” 하는 뜻은 아니다. 신앙 안에서는 우리가 그와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없으니,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적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안에서 그 지식을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은밀한 일 중에 감금해 두셨으며, 그것을 안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하등 유익하지 않을 것이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을 알게 하소서” 하는 말씀의 의미는 “여호와여, 내게 지혜와 은혜를 주사 그 사실을 깨닫게 하시며, 내가 그것에 관하여 알고 있는 것을 활용하게 하소서!”이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전 9:5)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이는 드물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에 의해 우리의 부패한 마음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싫어하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기도드려야 한다. “여호와여, 나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을 고찰하게 해주소서.”

(1) “죽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종말이고 내 삶의 종말이며, 인생이 가지는 모든 직업과 향락의 끝입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들의 종결입니다”(전 7:2). 그

.....그것은 우리의 집행유예와 예비 상태에 대한 마지막 종지부인 동시에 보상과 응보의 상태에로 들어가는 두려운 관문이다. 악인에게는 죽음이 모든 기쁨의 종말이 된다. 그러나 경건한 자에게서는 모든 슬픔에 대한 종말이 된다. “여호와여, 나로 하여금 내 종말을 알게 해주시고, 죽음이란 것을 더 잘 알도록 해주옵소서. 내가 사망과 더 친숙하도록 해주시고(욥 17:14), 변화의 위대성에 더 많은 감동을 받도록 해주옵소서. 여호와여, 나로 하여금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엄숙한 일인지 살피게 해주소서.”

(2)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가? 여호와여, 나로 하여금 내 날들의 한도를 생각하게 해주시고, 내 연한은 주의 의향 안에 정해져 있고(종말은 정해진 끝임을 의미한다. “내 날들은 정해져 있다”, 욥 14:5), 그것은 매우 짧다는 것을 참작하도록 해주소서. 내 날들은 곧 계수되어서 마감될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이라는 것을 멀리 있는 요원지화로 보게 될 때 우리는 그 죽음에 대비해 꼭 해야 할 준비를 지체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이 얼마나 짧은 것인지 고려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 손이 찾아낸 일을 혼신의 힘을 다 기울여서 행하려 할 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신속하게 완료하려 할 것이다.

(3) “사망이 끊임없이 우리 속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살피게 하소서. 여호와여, 때가 얼마나 가냘픈 존재이며, 생명의 줄기가 얼마나 빈약한지, 그리고 계속 등불을 타오르도록 유지시켜 주는 기름 같은 우리의 영혼도 얼마나 희미한 건지 우리로 하여금 살펴 알게 하소서.” 

.....우리는 일상적인 경험에 의해, 이 땅 위의 장막 집(육신)이 퇴락하며 쇠잔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호와여, 우리로 이 점을 살피게 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손으로 짓지 않은 저택을 확보하도록 해주소서.”

2. 그는 생의 짧음과 덧없음을 상고하고, 욥이 자주 그러했듯 인생의 중한 짐에서 건져주실 것을 하나님께 탄원하며, 자기 자신에게는 인생의 사업을 급히 행하도록 역설하고 있다.

(1) 인간의 지상생활은 짧으며 연속성이 없다. 이 점은 바로 왜 우리가 세상살이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야 하며, 생의 종말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다(5절).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셨나이다.” 

.....손가락의 폭인 그것은 확실한 치수의 작은 단위고, 늘 우리 주변에서 사용하며, 우리 눈앞에서 항상 보는 측정단위다. 우리는 우리 날들의 치수를 잴 측량막대나 측량간이나 줄자가 필요 없으며, 우리 날들의 수효를 계산하는 데에 쓰이는 산수의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그날들의 계산에 필요한 척도를 우리의 손가락 끝에 가지고 있으며, 또 그것에는 곱셈도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은 필요치 않다. 모두 합쳐봐야 한쪽 손의 넓이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짧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는데, 이는 “우리의 달 수도 주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은 그 시간이 짧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은 “주의 앞에는 없는 것과 같사옵니다.” 그는 “우리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고” 있다(89:47). 혹자는 이것을 “그것은 주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해석한다. 모든 시간도 하나님의 영원에는 보잘것없는 것이니, 하물며 우리의 시간에 있어서랴!

(2) 지상에서의 인간의 삶은 헛되고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그런 삶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으며, 더 나은 삶을 확신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아담은 현세에서는 “인간은 허사로다”라는 면에서 아벨과 같다. 그는 외견상 보이는 그가 아니며, 스스로 기대하던 것을 소유하지도 못한다. 그와 그의 모든 위안물은 불확실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만약 이 현세의 삶 뒤에 또 다른 삶이 없다고 한다면, 만사를 고려하더라도 그는 헛되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는 헛되다. 그는 사멸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으며 가변적이다.

① 여기에서 이 진리가 얼마나 강한 어조로 표현되고 있는지 살펴보라.

첫째, 사람마다 예외 없이 “허사뿐이니이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이 점에서는 일치한다.

둘째, 인생은 “그의 든든히 선 때도” 허사이니, 즉 그가 젊고 강하며 건강이 넘치고 재산과 명예를 얻고 번영의 극치에 있을 때에 헛되다. 그가 아주 편안하고 즐거우며 극히 안전할 때에도, 또 그의 뒤에도 산이 든든히 서 있다고 생각하는 때에도 허사다.

셋째, 그는 “허사”뿐이니, 당신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헛되다. “모든 사람은 아주 허사이다”(이렇게 해독될 수도 있다). 그에 관한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새로운 인간과 관련되는 것 외에는 본질적이고도 영속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넷째, “진실로” 헛되다. 이것은 의심할 나위 없이 확실한 진리인데도, 흔한 실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이런 진리를 무척이나 믿으려 들지 않아서 우리에게 엄숙히 맹세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주목을 요하는 기호로써 “셀라”가 추가되어 있다. “여기서 멈추고 잠깐 쉬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허사라는 이 진리를 생각해 보고 적용해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도록 하라.” 우리들 자신은 진실로 그렇게 헛된 것이다.

②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의 헛됨을 증명하기 위해 다윗은 다음 세 가지 일을 언급하고, 그 세 가지가 각각 허사임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6절).

첫째, 우리들의 희락과 명예의 헛됨. “진실로 각 사람은(그가 위풍당당히 걸을 때나 즐거움 가운데서 행할 때조차도) 그림자같이”, 영상으로 헛된 모습으로 다닌다. 

....그가 이채를 띠며 두각을 나타내더라도 그의 모습은 사라지게 마련이어서 그의 화려한 위의는 큰 환상에 불과한 것이 된다(행 25:23). 그것은 겉모양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무지개와 같은 허상에 불과하다. 그 무지개의 현란한 색깔은 그 토대가 구름이요 증기이기에 반드시 없어지고 말며, 금방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다. 인생도 그러하며(약 4:14), 따라서 삶의 모든 환락도 그렇다.

둘째, 우리의 슬픔과 공포의 헛됨. “진실로 저희는 헛된 일에 분요하나이다.” 

....우리의 동요는 종종 무근하며(우리는 아무런 정당한 이유도 없이 안절부절못하게 되며, 우리의 고뇌가 우리 자신의 공상과 상상의 산물인 때가 이따금씩 있다), 또 그런 분요는 언제나 무익하다. 우리는 헛되이도 스스로를 불안케 하는데, 이는 우리가 아무리 안달을 낸들 사정을 변경시키지 못하며, 하나님의 의향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들에 대해 아무리 조바심을 낸다고 하더라도 사태는 여전할 것이다.

셋째, 우리의 염려와 수고의 헛됨. 

....인간은 “재물을 쌓기” 위해 무한한 고심을 하지만, 재물은 뿌려지지 않으면 아무 쓸 데가 없는, 밭이랑에 쌓인 퇴비더미와 같다. 

....창고마다 쓰레기 같은 재물로 가득 채웠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것들을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자기가 가버린 뒤에 그 재물들이 누구에게 전해질 것인지도 모른다. 

....재물들은 인간이 함께 가져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인생은 “내가 누구를 위해 수고하는고?” 하고 반문하지 아니하는데, 그것은 그의 어리석음이다(전 4:8). 그러나 설령 그가 질문을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그 계승자가 현자가 될지 우자가 될지, 친구일지 적일지 구별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전 2:19). “이것도 헛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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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탄원(시 39:7-13)

시편 저자는 인생의 단명과 불확실성을 관조하고, 삶의 모든 위안물에 따르는 심령의 헛됨과 괴로움을 숙고하고 난 뒤에 이 문단에서는 그의 눈과 마음을 돌려 하늘로 향하고 있다. ----피조물에게서 확고한 만족을 얻을 수가 없을 때에는 하나님에게서,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만족이 발견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얻은 실망에 의해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다윗이 본문에서 표현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Ⅰ.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존(7절). 보이는 모든 것은 헛된 것이며, 인간 자체도 그렇다.

1. 따라서 그는 세상사에서 얻는 행복을 단념하며, 세상으로부터의 모든 기대도 포기한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감각과 시간에 속한 것들로부터는 아무것도 기다릴 것이 없습니다. 나는 이 땅으로부터는 아무것도 소원할 것이 없으며, 희망할 것도 없습니다.”

.....인생의 무상과 취약성에 대한 성찰은 이 세상의 일들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사장시켜 주고, 이 세상에서 오는 우리의 기대를 낮춰준다. “만약 세상이 이와 같은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의 몫을 소유하거나 구하는 일로부터 나를 구출해 내실 것이다.” 

....우리는 항구적 건강과 번영을 기대할 수 없으며, 어떤 관계 안에서도 위로를 고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현재의 우리 존속만큼이나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내가 비록 지금까지는 어리석게도 세상으로부터 이런저런 일을 즐겨 기대하던 적이 이따금 있었지만, 이제 내 마음이 달라졌다.”

2. 그는 하나님 안에서 행복과 만족을 붙잡는다.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피조물에 대한 신뢰가 실패로 끝이 날 때도 우리에게는 찾아가서 의뢰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우리의 위안이 되며, 우리는 그 사실로 자극받아 믿음으로써 그를 더욱더 꼭 잡아야 마땅하다.

Ⅱ. 하나님께 대한 그의 순종과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대한 그의 즐거운 묵종(9절). 만약 저 세상에서의 행복에 대한 우리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에 당연히 만족할 수 있다. “나는 잠잠하고, 불평과 불안 때문에 입을 열지 아니하나이다.” 

.....그는 동요되었던 마음(2절)으로부터 이제 평정과 침착을 다시금 회복했다. 그가 이제 어떤 위로를 박탈당한다고 하든지간에, 또 어떤 십자가를 지게 되든지간에 그는 편안할 것이다.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그것은 우연히 발생하게 된 것이 아니라, 주의 예정에 의거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1. 우리와 관련되는 모든 일을 행하시고 모든 사건을 예정하시는 선하신 하나님. 

.....우리는 모든 사건에 관해 누가 그 도구가 되었든지 “이것은 하나님의 손가락이며, 여호와의 일이시다”라고 말할 수 있다.

2. 바로 이런 이유로 이 일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선량한 인간 그는 벙어리같이 잠잠하고, 반대할 아무것도 발견하지 않으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하등의 논란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은 다 잘 행해지는 것이다.

Ⅲ. 하나님을 향한 그의 희망과 하나님께 고하는 그의 기도.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러면 그로 하여금 여기서의 다윗처럼 다음을 위해 기도하게 하라.

1. 자기 죄의 용서와 수치의 방지를 위해(8절). 

.....“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10절) 하고 기도하기 전에 그는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소서(8절)” 하고 기도한다. 즉 “내가 걸려든 죄악과 내가 받아 마땅한 징벌, 나를 노예로 만든 장본인인 부패의 권능으로부터 나를 건지소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실 때 그는 우리를 그런 것으로부터 구해 주실 것이며, 우리를 그 모든 것들로부터 건져내실 것이다.

.....그는 “내가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하고 탄원하고 있다. ---악한 자들은 우매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조롱함으로써 자기들의 기지를 자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때에 기실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가장 심하게 노출하게 된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기 죄를 용서해 주시며, 그로 하여금 악인의 치욕거리가 되지 않게 해주십사고 기도할 때에 그 기도는 양심의 평화를 위한 기도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여호와여, 나를 우울증의 세력에 내어주지 마소서. 우매한 자들은 나의 침울함 때문에 나를 비웃을 것입니다”), 또 그가 악인에게서 지탄받을 일을 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방임해 두지 마시기를 바라는 은혜를 위한 기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가 왜 죄에 대해 경계를 게을리 않고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즉 우리 신앙 고백의 명예가 우리의 순전성을 보전하는 것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까닭이다.

2. 그가 현재의 자기 짐에서 한시바삐 편안하게 될 수 있도록 고통을 제거해 달라고 바라면서(10절), “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라고 기도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손길 아래 있을 때 구원을 원하는 우리의 눈은 하나님 그분께로 직접 향해야 하는 것이지 다른 어떤 자에게 향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타격을 입히는 자만이 그 타격을 없앨 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 죄가 사함을 받을 때에(사 38:17), 그리고 여기에서와 같이 고통이 성별되어 제 할 일을 마칠 때에 우리의 고난이 옮겨지도록 믿음 안에서 만족감을 갖고 기도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 아래서 낮추어지는 것이다.

(1) 그는 자기 불행으로 말미암아 빠지게 된 극심한 곤경을 호소하는데, 이것은 그를 하나님의 동정의 적당한 대상이 되게 했다.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그의 병고는 그의 심령이 약해지고 기력이 피폐해지며 신체가 초췌케 될 정도로 악화되었다. “당신의 손이 가하신 일격, 혹은 투쟁은 나로 하여금 사망의 문전에까지 이르게 하였습니다.”

인간들 가운데에서 가장 강하고 담대하며 훌륭한 자라도 하나님의 진노의 힘 아래에서는 버티어낼 수 없으며, 대적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는 그의 경우에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누구를 막론하고 그 스스로 전능자의 적수가 되지 못하리라 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11절).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다투시고 우리를 책망하실 때,

① 우리는 그의 공평한 논쟁을 탄핵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 일에서 하나님이 의로우시다고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가 인간을 징계하실 때는 언제든지 그의 교도는 불법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길과 행위는 우리 자신에게 환난을 불러들일 뿐이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매로 맞게 된다. 그것은 설사 “그의 손으로 묶고 얽은” 것이(애 1:14)라 할지라도 우리의 범죄의 멍에가 되는 것이다.

②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다투실 때에는, 우리는 그의 논쟁의 효험을 저지시킬 수 없으며, 그는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완강하시다. ---우리가 그의 판결을 정지시킬 만한 것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음과 마찬가지로, 그 판결의 집행을 회피할 수 있는 길도 우리에겐 없다. 하나님의 견책은 “좀 먹음같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소멸하게 한다.” 우리는 신체가 병고로 말미암아 극도로 약해지며 쇠잔해 버리는 일을 흔히 보며, 피부로 느끼게 되는 일이 적지 않다. 용모도 변해 버린다. 불그스레하던 뺨과 입술, 초롱초롱하던 눈, 생기 도는 표정, 그리고 미소짓던 얼굴은 어디로 갔는가? 지금 드러내 보이는 모습은 이와 같은 모든 것들과는 정반대다. 아름다움이란 것도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뽐내는 자들이나 아름다움에 빠져 그것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 아름다움이 갑작스럽고 급속하게 쇠잔하는 날에는 얼마나 바보스런 자들이 될 것인가!

....어떤 이는 좀이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따지고 보면 인간도 손가락으로 대기만 해도 쉽게 부서지고 마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다(욥 4:19). 또 이 좀을 하나님의 견책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징책이 조용한 가운데에서 부지불식간에─좀이 의복을 갉아먹듯─ 우리를 피폐케 하고, 쇠잔케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이전에 했던 말, 즉 사람은 진실로 허사며, 약하고 무력한 존재라는 말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생과 다투러 오실 때에는 그가 그런 존재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2) 그는 자기의 고난이 주는 유익한 영향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그 불행을 보내신 목적이 성취될 것을 희망했고, 그리고는 그 괴로움이 하나님의 자비로 옮겨질 것을 바랐다. 만약에 그 고난이 제 할 일을 완료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설사 그것이 옮겨진다 하더라도 자비에 의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① 고난은 그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고, 그는 하나님께서 그 점에 주목해 주시기를 희망했다. 

.....주 하나님께서 애곡을 요구하셨을 때에 그는 그 요청에 응답했고 그 처분에 순응했다. 그러므로 그는 믿음 안에서 “여호와여,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하고 기도할 수가 있었다(12절). ---인간의 자손들에게 괴로움과 슬픔 주시기를 즐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자녀에게는 더더구나 괴로움과 슬픔을 주고 싶지 않으실 것이며, 저희 눈물에 잠잠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한 구원의 말씀을 발하시거나(그가 말씀하시면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아니면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희락과 기쁨의 말을 듣게 하실 것이다.

② 고난은 그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었다. 

.....고난은 기도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보내진다. 만약 그것이 그런 효과를 거두고 우리가 쓰라린 괴로움을 당할 때에 이전보다 더욱 많은 기도를 드리며, 더욱 기도를 잘 하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주실 것을 희망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그가 일으키는 기도와 그의 은혜의 영에 의해서 작성하는 기도는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③ 고난은 그를 세상으로부터 떼어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며, 그곳으로부터 그의 애착심을 벗어버리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제 다윗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을 그의 모든 열조와 같이 “객”과 “거류자”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세상은 본향이 아니라 다른 세계, 즉 더 좋은 세상으로 가기 위해 통과하는 여로에 불과해서, 그는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는 자신이 집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이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다. “여호와여, 나를 인정해 주소서. 그리고 내게 부족한 것들과 중한 짐들도 인지해 주소서. 이는 내가 여기에서는 나그네인 연고로 낯선 관례에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그네로서 등한히 취급되며 압박을 받습니다. 당신께로부터 오는 구원 이외에, 내가 속해 있는 저 다른 나라에서 오는 구원 이외에 내가 어디서 구원을 기대하겠습니까?”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잠시만 더 집행을 유예해 주시도록 기도드리고 있다(13절). 

.....“나를 용서하사 내가 사망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떠나기 전에, 이 세상에서 없어지기 전에 나를 편안케 하시며, 이 병으로부터 나를 들어올리소서. 그리하여 내가 심신 양면으로 힘을 회복하게 하시고, 더 평온하고도 안정된 심정 안에 들어앉도록 하여서 저 다른 세계를 위해 더 훌륭히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옵소서.”

혹자는 이것이 욥의 경우처럼(욥 10:20-21) 하나님께서 한시바삐 그에게 도움을 보내주시어 그 구원이 너무 늦지 않도록 해주시기를 희구하는 열망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 그 은혜에 의해 이 세상을 떠나기에 알맞도록 하실 때까지 자기를 여기에 존속시켜 주시며, 그의 생명이 끝나기 전에 그가 생의 대업을(original design-destiny) 완성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경건한 기도로 받아들이고 싶다. 

....“내 영혼으로 하여금 살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 영혼이 당신을 찬송하리이다.”

Jesus, name above all names..Beautiful Saviour, Glorious Lord..Emmanuel, God is with us..Blessed Redeemer, Living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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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3==

*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9.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13.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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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다스리기(약 3:1-12)

전 장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 얼마나 무익하며 쓸모 없이 죽은 믿음인가를 보여 주었다.  그러한 믿음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의 성품과 말에 있어서 잘난 체하며 거만하게 만들기가 쉽다는 것이 3장에서 분명하게 연관되어 기록되어 있다.  2장에서 정죄되고 있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본 장이 비난하는 혀의 죄를 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혀를 사용하는 최선의 방법이 혀를 함부로 사용하여 남을 명령하고 비난하여,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에 대한 경계로써 요구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들을 배우게 된다.

Ⅰ. 우리의 혀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도록 하라.  "내 형제들아,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1절).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하여 지시하고 가르치거나 잘못된 그리스도인의 길을 갈 때에 그들을 책망하는 것을 금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씀은 항상 지휘자의 위치에 서려고 하는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즐겨해서는 안 되며, 또한 우리 자신의 판단을 다른 모든 사람들이 기준으로 삼아 행동하도록 명령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각기 다양한 은사를 주셨으며, 그들이 받은 바 지혜에 따라 합당하게 행동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였다.  즉, "너 자신이 선생과 권세기와 재판관과 같은 거만한 자세를 지니지 말고 다만 배우는 자로서의 겸손과 정신으로써 말하라.  마치 다른 모든 사람들이 너의 기준으로 판단 받아야 하는 것처럼 서로 비난하지 말라."  이것은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강조되었다.

1.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남을 비난하고 재판하는 자로 나선 자는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우리 자신은 그 보다 더 엄격하고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마 7:1, 2).  다른 사람의 잘못을 몰래 염탐하는 것을 즐겨하고 오만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말하고 행한 잘못들을 극도의 노하심으로 기록해 두실 것이다.

2. 선생으로 행동하지 말라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2절),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잘못과 범죄에 대하여 좀더 깊이 생각한다면, 한결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남에게서 잘못을 찾아내려는 심한 충동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남을 향한 범죄 의식을 깨닫지 못한다.  스스로의 의롭다 여기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다른 사람의 약함과 허약성에 대하여 헛되이 떠드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내적으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거의 생각지 못한다.  아니, 아마도 그들의 거만한 태도와 비난하는 혀가 그들이 비난하는 다른 사람들 속의 잘못보다 더욱 나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을 판단할 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는 자비롭게 하는 태도를 배우자.

Ⅱ.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혀를 제어함으로 우리 자신이 완전하고 올바른 사람으로 판명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몸 전체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2절).  여기서 암시되어 잇는 것은 양심에 혀로서 저지르는 죄의 유혹을 받고도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고결한 사람이며, 그것이 바로 참된 은혜를 받았다는 분명한 표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만일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1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기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면, 그의 신앙 고백과 경건은 헛 것이다(1:26).  더욱이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성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증명될 뿐만 아니라 한층 진보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도 판명된다.  따라서 한 사람의 혀를 다스릴 수 있는 은혜와 지혜는 그 사람의 모든 행동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비교함으로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

1.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며 이끌 수 있는 것은 그 입에 재갈을 먹임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먹여 온 몸을 의거하며"(3절)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짐승과 같은 맹렬함과 방약무인한 요소가 다분히 많다.  이런 요소는 거의 대부분이 혀에 의하여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혀를 재갈먹여야만 한다.  이 필요성에 대하여서는 시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가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시 39:1).  우리의 혀가 재빠르며 활동적이면 일수록 더욱 더 그것을 다스리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마치 의거하지 못하고 다스리기 힘든 말이 주인을 태운 채 달아나거나, 주인을 내동댕이치듯이, 다스려지지 못한 혀도 그 주인에 대하여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영향을 받아 마음에 각오와 경계심으로 혀를 제어하게 하면, 우리 몸이 행하는 모든 몸짓과 행동이 쉽게 인도하며 다스려질 것이다.

2. 키를 바르게 조종함으로 배를 조종할 수 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4,5절).  키가 배의 작은 부분인 것과 같이 혀도 우리 몸에서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키를 올바르게 조종할 때 그 배가 운전하는 사람의 뜻대로 움직여 나아가는 것과 같이, 대개의 경우에 혀를 바로 사용함으로써 한 인간이 전체적으로 다스려지는 것이다.  이러한 비교에는 작은 것들이 거대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여 주는 경이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혀의 바른 사용에 대하여 더욱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혀가 작은 지체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대단히 큰 유익을 가져다 주거나 아니면 크나큰 해를 입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Ⅲ. 우리는 다스려지지 않은 혀를 가장 크고 치명적인 악으로써 두려워해야 할 것을 배운다.  많은 가연성 물질 가운데 있는 적은 불꽃이 순식간에 큰 화염으로 변하여 마침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것과 같이, 혀는 작은 불꽃에 비교되었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5,6절).  혀에는 그것이 불의의 세계라고 불릴 만큼 많은 죄가 포함되어 있다.  혀가 저지르는 더러운 죄악이 얼마나 많은가! 혀가 일으키는 불길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것인가! "하늘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6절).  여기서 혀가 일으키는 죄 가운데는 크나큰 공해와 불결히 있음을 명심하라.  더러운 정욕이 불타오르고 남에게까지 나타나며, 마음속에 이 정욕이 솟아오르는 것은 모두 이 제어되지 못한 혀로 인하여 되어지는 것들이고, 온 몸이 죄에 빠져 범죄케 되는 것도 바로 이 혀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말하기를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전 5:6)고 하였다.  인간들이 자기의 혀로 인하여 걸려들게 되는 덫은 스스로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며 타인들에게는 파괴적인 것이다.  혀가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6절).  인간과 그 사회의 일은 자주 혼란에 빠지며, 모든 것이 불꽃과 같이 격렬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 대부분이 인간의 혀가 원인이 되는 수가 많다.  어떤 주석자는 위의 구절을 "우리의 모든 세대가 혀로 인하여 불살라진다"라고도 해석한다.  이러한 예가 적용되지 않는 시대나 삶의 정황, 그리고 개인 또는 집단이란 없다.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6절).  지옥은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혀에 불을 더해 준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간의 혀가 격분되어 불타오르는 것은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시작되며, 결국 악마적 계획에 종사하게 된다.  악마는 거짓말쟁이 이며, 살인자이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라고 분명하게 불리운다.  인간의 혀가 이러한 일에 사용될 때는 언제나 지옥의 불로 타오르게 된다.  성령이 불의 혀와 같이 갈라진 형태로 내려온 적이 한번 있었다(행 2장).  그때에 혀는 하늘로부터 있었다(행 2장).  그때에 혀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에 의하여 말해져서 선한 마음과 거룩한 감동, 그리고 뜨거운 헌신을 불일 듯하게 했다.  그러나 인간의 혀가 지옥의 불로 뜨거워졌을 때에는 적당한 열이 가해지지 않았을 경우처럼 우리에게 해로울 뿐이며 분노와 미움만을 일으키고 사탄의 계획에 종사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므로 너는 불꽃과 화염을 두려워하듯이, 말다툼과 욕설과 중상모략과 거짓말, 그리고 그 밖의 너의 영혼이나 다른 사람의 영혼에 진노의 불을 타오르게 하는 모든 일을 두려워해야 한다.

Ⅳ. 그러나 다음으로 우리가 배우는 것은 혀를 다스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이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나"(7,8절),  야고보가 말한 것은 마치 다음과 같다.  사자들과 야수들과 가장 힘센 동물들도 말과 낙타처럼 길들여져서 인간이 다스리고,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공중의 날아다니며 야생적이고 겁많은 새들도 인간에 의하여 다스려지며, 독을 지니고 교활한 뱀도 인간과 친밀해지고 무해할 뿐만 아니라, 바다 속에 있는 생물까지도 인간에게 이용되고 필요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피조물들은 기적에 의하여서만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것은 아니고(사자가 다니엘을 삼켜버리기는커녕 그저 웅크리고 앉아만 있었고,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음식을 날라다 주었으며, 고래가 깊은 바다 속에서 요나를 건져내어 마른땅에 데려다 준 기적들처럼),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되어질 수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써 사람이 길들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혀는 그러한 동물들보다도 더욱 길들이기 힘들며, 이런 동물들을 길들이는 기술과 능력으로는 결코 길들일 수가 없다.  "혀로 길들일 수 있는 것은 초자연적인 은혜와 도움뿐이다."  야고보가 여기서 의도하는 바는 그 일이 아주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며, 따라서 혀를 질서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경계와 수고와 기도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때때로 이 모든 수고가 그래도 부족하여 수포로 돌아갈 때가 있다.  왜냐하면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8절)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서운 짐승도 어떤 우리 안에 가두어 둘 수 있고 어떤 훈련법으로 다스릴 수 있으며, 심지어 뱀까지도 그들의 모든 독에도 불구하고 해롭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그들의 인간의 혀는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울타리와 규칙을 파괴하고 때때로 독을 뱉어내기 쉽다.  그러므로 혀에 대해서는 야수나 또는 해롭고 독을 지닌 생물들처럼 다스려지고 경계될 뿐만 아니라 그 해롭기 이를 데 없는 피해의 발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좀더 강력하고 세심한 주의와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Ⅴ. 우리는 신앙 생활과 하나님께 대한 예배에서 우리의 혀를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도록 가르침을 받는데, 이것은 우리가 그러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서 우리의 혀를 남을 욕하고 비난하며 그밖에 악을 행하는 일에 사용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9,10절).  자기의 혀를 기도와 찬송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또한 그 혀를 저주와 비난과 같이 악한 일에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만약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선한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을 한 혀가 또한 자기의 동료 인간들을 욕하는 언쟁적인 말을 한다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들은 남을 욕되게 하는 비난을 감히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래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로이 지음 받은 인간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들 자신과 그들이 위대한 원천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체하는 태도와의 사이에는 가장 부끄러운 대조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10절)는 말씀대로 만일 이런 생각이 항상 가까이에 있다면 설마 그같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경건에 사랑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경건은 그 나타내는 모든 일 중에서 치욕을 당하게 된다.  이 같은 사람의 혀는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그에게 찬양을 돌리는 척하는 자신을 변호하면서, 동시에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기처럼 말하고 표현을 나타내지 않을 때에는 그 사람을 정죄하는 자신을 또한 변호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러한 생각을 확고하게 하기 위하여 야고보는 동일한 원인에서 상반되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 근본이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이는 덕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11,12절).  참된 경건은 부정을 받아들일 수 없고, 참으로 경건한 사람은 자기의 말과 행동에서 이같은 자가당착을 허용할 수 없을 것이다.  경건은 진실로 이러한 죄를 방지하며, 믿음과 행실의 상호 모순 가운데 빠진 인간을 다시 회복시켜 항상 자기 자신과 일치한 삶을 살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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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온 지혜(약 3:13-18)

이미 전 구절에서 정죄한 죄들이 남보다 더 현명한 체하며 자기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 더 총명한 듯이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야고보 사도는 이 구절에서 스스로 지혜 있는 자인 체하는 사람과 진실로 현명한 사람 사이의 차이를 보여 주며, 또한 아래에서(이 세상과 지옥) 생겨진 지혜와 위에서부터 온 지혜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Ⅰ. 우리는 그 특이한 표식과 열매로써 참 지혜를 분간해 낼 수도 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13절).  참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사물을 바로 인식하는 사람이다.  그는 충분한 지식을 지니지 않은 채 현명하다는 평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또한 그 지식을 올바르게 적용하며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단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을 가치 있게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참 지혜의 진위를 결정하는데 꼭 같이 필요한 요소이다.  누가 지혜로우며, 또한 지식을 부여받았는가? 다행히도 이 두 가지가 더 구비되어 있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함께 있을 것이다.

1. 선행.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지혜롭다면, 우리의 행실에서 거칠고 허탈함이 보이지 않고, 선함이 보임으로써 그 지혜가 증명되어야 한다.   남에게 알려 주며 화해시키고, 선을 행하는 말들을 지혜의 표지가 되고,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나 또는 다른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 위대하게 보이면서 해독을 끼치며, 악의 기회가 되는 말들은 지혜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다.

2. 참된 지혜는 그 행하는 일로써 알려진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행"의 의미는 단순히 말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전 인격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선행으로 네 하는 일을 나타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된 지혜는 선한 개념이나 환상속에 남아 있지 않고, 오히려 선하고 유익한 행위로 나타난다.  만일 선하게 행동하며 선하게 살지 않는다면 그가 아무리 깊이 생각하고 훌륭한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성서가 의미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다.

3. 참된 지혜는 영혼과 성격이 온유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13절).  우리들 자신의 진노를 조심스럽게 재갈먹이며, 다른 사람의 노함을 끈기 있게 참고 견디는 것은 지혜가 있음의 훌륭한 증거가 된다.  또한 지혜는 온유함으로 자신을 증명하듯이, 온유함은 지혜의 둘도 없는 벗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격정이야말로 우리가 지혜롭게 행동하는데 필요한 공정한 사고력과 엄격한 판단, 그리고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온유하고 마음이 고요할 때 사건의 이유에 대해서 가장 잘 들을 수 있고, 또 그에 대하여 가장 적절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온유함을 낳고, 온유함을 지혜를 더해 준다.

Ⅱ. 우리는 여기에 언급된 것에 상반되는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들의 지혜는 그들의 자만함과 행실에서 그 성격이 밝혀진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14절).  만일 네가 사랑과 화평케 하는 생활을 그만두고 시기와 다툼으로 일삼는다면, 이것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겉으로 현명한체 행세하는 네 자랑을 즉시 중단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만일 네게 진리와 정통적인 것에 대한 열심히 있으며 남보다 더 많은 지식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길지라도 이것들을 남을 미워하는데 사용하거나 네 마음을 원한으로 불타오르게 하는데 사용한다면, 이는 너의 기독자로서의 신앙 고백에 부끄러움이 되며, 기독교에 정반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를 거슬려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을 유의해 보자.

1. 시기와 다툼은 지혜의 온유함에 반대된다.  우리 마음은 이 두 가지가 다 거처할 수 있는 진리이다.  그러나 시기와 지혜가 한 마음속에 함께 거하지 못한다.  거룩한 열심과 격심한 질투는 천사들의 거룩한 화염과 지옥의 불길이 서로 다른 것과 같이 상이한 것이다.

2. 시기와 다툼에도 순서가 있다.  시기심이 먼저 발생하고 이것이 다툼을 일으킨다.  다툼은 헛된 자랑과 거짓말로 자신을 변명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로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뒤따라 일어나게 된다(16절).  악함과 시기와 자만과 혼란 가운데 사는 사람은 모든 악한 일을 행하도록 자극 받고 서두르게 되기 쉽다.  그러한 무질서는 많은 유혹을 일으키며, 그 유혹을 점점 더 거세게 만들어서 마침내는 인간들로 하여금 대단히 많은 죄를 짓게 한다.  하나의 죄는 또다른 죄를 낳으며, 그 악 영향이 얼마나 클 것인가는 결코 상상할 수 없으며 많은 죄악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혜를 자랑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의 가르침이 거짓이라고 비난하며 이 거짓 지혜가 정직한 지혜인 체 속이지 않고서야 이 지혜가 자랑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을 명심해야 한다.

3. 이런 지혜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이 땅에서 생겨난 것으로써 더 분명히 말한다면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이다(15절)" 그것은 이 세상적인 원칙에서 생겨나서 세상적인 동기에 따라 행동하고, 세상적인 목적에 사용되기 위한 것이다.  이 지혜는 정욕적이고 육의 쾌락을 도모하며 육신의 번뇌와 욕망을 성취시키려고 준비한다.  또한 원어인 ‘프쉬키케’(5591)라는 단어의 뜻은 영적인 것에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동물 또는 인간으로서 어떤 초자연적인 빛의 도움이 없는, 전적으로 본성의 욕구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분명히 악마적인 것으로써 이 지혜는 마귀의 지혜이며(불만을 조성하고 해를 입히며), 마귀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마귀의 꾀임은 교만이며(딤전 3:6),  성서의 다른 부분들을 이 마귀가 내뿜는 분노와 형제에 대한 비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악한 지혜를 갖춘 사람은 마귀가 받을 심판을 함께 받아야 한다.

Ⅲ. 우리는 이 땅에서 생겨난 마귀의 지혜와 반대되며, 하늘로부터 내려온 충만한 지혜의 아름다운 모습을 여기서 읽을 수 있다.  즉,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17절) 참된 지혜는 오직 하나님의 은사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지혜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인간과 더불어 사귀는 가운데 얻거나 세상 지식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  이 지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구성된다.

1. 이 지혜는 그 가치를 떨어뜨리게 될 다른 교훈이나 목적과 뒤섞이지 않은 채 성결하며, 또한 불의와 더러움과 상관이 없고 죄라고 알려진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 지혜는 오직 마음과 생활에 거룩함을 간직하기를 바랄 뿐이다.

2. 하늘로부터 오는 이 지혜는 화평하다.  평화는 성결함의 뒤를 따르며 성결함에 의존한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평화를 보존할 수 있는 일을 하므로 평화가 결코 깨어지지 않으며, 또한 그들은 평화를 이룩하는 일을 하므로 평화가 상실된 곳에 평화가 다시 회복되게 된다.  국가와 가정과 교외와 모든 사회안에, 그리고 모든 회담과 계약에서, 하늘로부터 온 지혜는 인간을 화평케 만든다.

3. 위로부터 이 지혜는 관대하여서 재산 문제에서 과격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며, 거친 말과 행동으로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우리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에 대하여 그 의로나 중요성을 무시한채 무조건 자신의 의견만을 맹렬히 주장하지 않는다.  또한 타인과 대화할 때 무례하거나 오만하지 않고, 또 성격이 거칠거나 무정하지 않다.  이와 같이 관용함은 이 모든 것에 반대된다.

4. 하늘에서부터 온 지혜는 양순하다. 여기서 양순하다는 말은 ‘유페이케스’ ─ 즉 매우 쉽게 권고될 수 있다는 뜻으로써 선한 일을 권하거나 악을 떠나라고 권하는 말은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연약하고 그릇된 양순함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권고하는 바와, 우리의 동료들의 모든 정당하고 합리적인 조언과 요청에 대하여 우리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은 비난받을 양순함이 아니다.  이 양순함은 논쟁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고, 또 그 논쟁을 통해서 선한 결과가 오게 될 때는 논쟁도 포기하지 않는 양순함이다.

5. 하늘에서 온 지혜는 구제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구제하며, 죄를 범했을지라도 용서를 구하는 자를 용서해 주는 등 친절하고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생각을 내면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실제로 그러한 기회가 생겼을 때는 그 기회에 적절하게 행동하는 긍휼과 선한 열매로 가득차 있다.

6. 하늘에서 온 지혜는 편파적이 아니다.  원어인 ‘아디아크리토스’(87)는 여러 사람 중에서 특별히 한 사람을 지목하여 의심하거나 판단 또는 엉뚱하게 그릇된 추측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난외의 주에 의하면 이 말의 뜻은 분파적인 행동이나 지기파의 유익만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또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해 주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을 비난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7. 위로부터 오는 지혜에는 거짓 없다.  이 지혜는 위장하거나 속이지 않는다.  또 이 지혜는 교활하고 간사하며, 세상에서 현명하다고 말하는 술책에 빠져들지 않는다.  이 지혜는 오직 신실하고 개방적이고 꾸준하고 변동되지 않으며 그 지혜 자체와 항상 일치된 길을 걷는다.  당신과 내가 다같이 이와 같은 지혜의 인도함을 받는다면 우리로 바울처럼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말하는 것은 육신의 지혜를 따름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단순함과 경건한 신실성으로니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참된 지혜는 계속하여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둠으로써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룰 것이다(18절).  평화로 심은 것은 기쁨의 수확을 얻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경쟁에서 얻은 열매를 수확하도록 하자.  그들은 거기서 자신의 유익을 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화평으로 의의 씨를 계속 뿌리도록 하자.  우리가 이 수고를 계속하는 한 그 수고한 대가를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빛은 의로운 자들에게 비추어졌고, 기쁨은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의가 하는 일은 화평을 이루는 일이고, 그 결과는 마음의 평온과 영원에 대한 보증일 것이다.


@@하나님의 에차(모략) =명철
**인생광야길 걷는 동안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그것을 극복(=그 결과는 형통)하기위해, 대안을 주께 묻고듣고 상의하여 지시하시는 바 그 방책을 달성하기 위해 기본 계획-단계별 전략 수립, 주님의 도우심 의지하여 숙달된 전문가가 되도록 부지런히 훈련하고 익힘((주님이 나를 섬기시듯!!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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