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09.13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느3.예루살렘성벽재건.수축/보수.흥왕케하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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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3장 예루살렘 성벽 중수 :::나의갈길다가도록 384...이전에주님을내가몰라597.... 교독문84(히11)..할수있다하신이는.(항기쉬기범감!!)

***[[중보의 영]]사랑-겸손-온유-연합/일치의 감동-자원-헌신-배려/격려-온전함의 영

***52일만에, 시계반대방향으로, 75+알파의, 각계각층(심지어 여자들도) 사람들의 헌신, [통나무들기]훈련처럼!!


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6.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7.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쪽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 및 미스바 사람들과 더불어 중수하였고

8.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그들이 예루살렘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9.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10.  그 다음은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

11.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화덕 망대를 중수하였고

12.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고

13.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주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14.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15.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었으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 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16.  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17.  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하사뱌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

18.  그 다음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

19.  그 다음은 미스바를 다스리는 예수아의 아들 에셀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까지 이르렀고

20.  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21.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 엘리아십의 집 모퉁이에 이르렀고

22.  그 다음은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이 중수하였고

23.  그 다음은 베냐민과 핫숩이 자기 집 맞은편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아나냐의 손자 마아세야의 아들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24.  그 다음은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하되 아사랴의 집에서부터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25.  우새의 아들 발랄은 성 굽이 맞은편과 왕의 윗 궁에서 내민 망대 맞은편 곧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중수하였고

26.  (그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여 동쪽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민 망대까지 이르렀느니라)

27.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내민 큰 망대와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오벨 성벽까지 이르렀느니라

28.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29.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

30.  그 다음은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의 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31.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성루에 이르렀고

32.  성 모퉁이 성루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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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V]제3장

1.  Eliashib the high priest and his fellow priests went to work and rebuilt the Sheep Gate. They dedicated it and set its doors in place, building as far as the Tower of the Hundred, which they dedicated, and as far as the Tower of Hananel.

2.  The men of Jericho built the adjoining section, and Zaccur son of Imri built next to them.

3.  The Fish Gate was rebuilt by the sons of Hassenaah. They laid its beams and put its doors and bolts and bars in place.

4.  Meremoth son of Uriah, the son of Hakkoz, repaired the next section. Next to him Meshullam son of Berekiah, the son of Meshezabel, made repairs, and next to him Zadok son of Baana also made repairs.

5.  The next section was repaired by the men of Tekoa, but their nobles would not put their shoulders to the work under their supervisors.

6.  The Jeshanah Gate was repaired by Joiada son of Paseah and Meshullam son of Besodeiah. They laid its beams and put its doors and bolts and bars in place.

7.  Next to them, repairs were made by men from Gibeon and Mizpah -- Melatiah of Gibeon and Jadon of Meronoth -- places under the authority of the governor of Trans-Euphrates.

8.  Uzziel son of Harhaiah, one of the goldsmiths, repaired the next section; and Hananiah, one of the perfume-makers, made repairs next to that. They restored Jerusalem as far as the Broad Wall.

9.  Rephaiah son of Hur, ruler of a half-district of Jerusalem, repaired the next section.

10.  Adjoining this, Jedaiah son of Harumaph made repairs opposite his house, and Hattush son of Hashabneiah made repairs next to him.

11.  Malkijah son of Harim and Hasshub son of Pahath-Moab repaired another section and the Tower of the Ovens.

12.  Shallum son of Hallohesh, ruler of a half-district of Jerusalem, repaired the next section with the help of his daughters.

13.  The Valley Gate was repaired by Hanun and the residents of Zanoah. They rebuilt it and put its doors and bolts and bars in place. They also repaired five hundred yards of the wall as far as the Dung Gate.

14.  The Dung Gate was repaired by Malkijah son of Recab, ruler of the district of Beth Hakkerem. He rebuilt it and put its doors and bolts and bars in place.

15.  The Fountain Gate was repaired by Shallun son of Col-Hozeh, ruler of the district of Mizpah. He rebuilt it, roofing it over and putting its doors and bolts and bars in place. He also repaired the wall of the Pool of Siloam, by the King's Garden, as far as the steps going down from the City of David.

16.  Beyond him, Nehemiah son of Azbuk, ruler of a half-district of Beth Zur, made repairs up to a point opposite the tombs of David, as far as the artificial pool and the House of the Heroes.

17.  Next to him, the repairs were made by the Levites under Rehum son of Bani. Beside him, Hashabiah, ruler of half the district of Keilah, carried out repairs for his district.

18.  Next to him, the repairs were made by their countrymen under Binnui son of Henadad, ruler of the other half-district of Keilah.

19.  Next to him, Ezer son of Jeshua, ruler of Mizpah, repaired another section, from a point facing the ascent to the armory as far as the angle.

20.  Next to him, Baruch son of Zabbai zealously repaired another section, from the angle to the entrance of the house of Eliashib the high priest.

21.  Next to him, Meremoth son of Uriah, the son of Hakkoz, repaired another section, from the entrance of Eliashib's house to the end of it.

22.  The repairs next to him were made by the priests from the surrounding region.

23.  Beyond them, Benjamin and Hasshub made repairs in front of their house; and next to them, Azariah son of Maaseiah, the son of Ananiah, made repairs beside his house.

24.  Next to him, Binnui son of Henadad repaired another section, from Azariah's house to the angle and the corner,

25.  and Palal son of Uzai worked opposite the angle and the tower projecting from the upper palace near the court of the guard. Next to him, Pedaiah son of Parosh

26.  and the temple servants living on the hill of Ophel made repairs up to a point opposite the Water Gate toward the east and the projecting tower.

27.  Next to them, the men of Tekoa repaired another section, from the great projecting tower to the wall of Ophel.

28.  Above the Horse Gate, the priests made repairs, each in front of his own house.

29.  Next to them, Zadok son of Immer made repairs opposite his house. Next to him, Shemaiah son of Shecaniah, the guard at the East Gate, made repairs.

30.  Next to him, Hananiah son of Shelemiah, and Hanun, the sixth son of Zalaph, repaired another section. Next to them, Meshullam son of Berekiah made repairs opposite his living quarters.

31.  Next to him, Malkijah, one of the goldsmiths, made repairs as far as the house of the temple servants and the merchants, opposite the Inspection Gate, and as far as the room above the corner;

32.  and between the room above the corner and the Sheep Gate the goldsmiths and merchants made rep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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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3장 (개요)

말과 행실이 종종 다를 수도 있다. “일어나 건축하자”라고 말해 놓고도 가만히 앉아 아무 일도 안 하는 자들이 많다. 마치 “예, 가겠습니다 하고서도 가지 않는” 저 말장이 아들과 같은 자들이다. 여기에 나온 자들은 한 사람도 그런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기로 결의한 이후, 즉시 착수했다. 우리는 그것을 본 장에서 보게 될 것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까지 미루어도 된다는 말은 결코 하지 말자. 본 장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1. 건축자들의 이름에 관한 기록이다. 그들의 이름은 명예롭게도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조국에 지극히 열성이었고, 신앙심과 공공심도 있었고, 근면과 용기에도 뛰어났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행적은 그들을 칭찬하기 위해서나 그들의 선행을 본받으려는 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에 합당했다.

2. 성곽 건축 사업에 대한 순서. 건축하기 전에 먼저 기존 성벽을 정돈했고, 시작한 곳에서 다시 끝을 맺었다.

   (1) 그들은 양문(羊門)에서부터 어문(魚門)까지 수리했다(1, 2).

   (2) 옛 문을 수리했다(3-5).

   (3) 골짜기 문을 수리했다(6-12).

   (4) 분문(糞門)을 수리했다(13, 14).

   (5) 샘문을 수리했다(15).

   (6) 수문을 수리했다(16-26).

   (7) 말문(馬門)을 수리함으로써 시작했던 곳 양문에 이르렀다(27-32).

그리하여 그들은 성곽 주위를 완전히 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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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곽의 중수(느 3:1-32)

본 장을 구분한 방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길은, 성곽 건축자들이 그 일을 어떻게 나누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건축자들 각자가 자기들이 해야할 일을 알게 하고, 선한 경쟁심이나 좀더 잘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게 하기 위해서 일을 분할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어떤 분쟁이나 원한 그리고 파벌 의식은 없었을 것이다. 

 장은 내용을 보면, 그들은 어떤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오직 공적인 유익을 위해 그들의 최선을 다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예루살렘 성벽을 중수하는 이 이야기에는 주목할 만한 일이 몇 가지 있다.

Ⅰ.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건축하는 자들의 선두에 나서서 지휘했다(1절). 사역자들은 모든 선한 일에도 앞장서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리로 뿐만 아니라 모범된 행동으로도 남을 가르치고 권면해야 할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힘든 일이라면, 그들보다도 더욱 합당한 자가 어디 있겠는가? 

만일 위험한 일이라면 그들보다도 더욱 합당한 자가 어디 있겠는가? 

만일 위험한 일이라면, 그들보다도 더욱 그러한 모험을 하기에 적합한 자가 어디 있겠는가?

대제사장의 권위는 매우 큰 것이었으므로, 그는 이 일에서도 독특한 역할을 해야 한다. 

제사장들은 “양문”(羊門)을 수리했다. 성전에 바칠 양을 이 문을 통해 가져왔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여호와의 번제물은” 제사장들의 유업이 되는 것이므로, 제사장들이 그것을 수리하는 일을 맡았다. 

이 문에 대해서는 “그들이 그것을 성별하였다”는 이야기만 언급되어 있는데, 그들은 말씀과 기도로써 그리고 아마도 제물도 드려서 양문을 성별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것이 성전으로 통하는 문이었거나,

2. 아니면 성벽이 거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비록 그들이 모든 곳의 벽을 동시에 건축했겠지만) 이 문이 제일 먼저 중수되었으므로, 그들은 이 문에서 그들의 성읍과 성벽을 하나님의 보호에 맡긴다는 의식을 거행했을지도 모른다.

3. 아니면 제사장들이 그것을 건축한 때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제사장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성별케 된 자들이므로, 그들은 모든 일을 하나님을 위해 성별해야 했고, 평범한 행동도 “경건한 방식을 좇아” 행해야 했던 것이다.

Ⅱ. 이 일에 참여한 자들은 매우 많았다. 그들은 능력에 따라 일을 분담했다. 

모든 사람은 공적인 사업을 위해 각자 자기 직책과 권리에 따라 최선을 다하여 돕도록 해야 한다. 혼자서는 감시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라도, 힘을 합하면 해낼 수 있다. 많은 사람의 협조가 일을 수월하게 만들 것이다.

Ⅲ. 예루살렘에 거하지 않는 많은 사람도 매우 적극적으로 이 일을 행했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사욕이나 그들 개인의 이익을 위하지 않고 단지 공적인 유익만을 위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제일 먼저 여리고 사람들이 나와 있으며(2절), 또 기브온과 미스바 사람들(7절), 그리고 사노아 거민들(13절)이 나와 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Ⅳ. 예루살렘과 다른 성읍의 지도자들 몇 명도 이 일을 매우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들은 자기들의 명예를 걸고 자기들의 재력과 능력을 최대한으로 기울여 이 선한 일을 촉진시켜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을 일컬어 각 성읍의 “지방(부분)”을 또는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라고 했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도 있었고(12절), 또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자도 있었고(14절),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자(15절),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16절), “그일라(keilah)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와, “그 나머지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가 있었다(17, 18절). 아마도 바사 정부는 한 사람에게 하나의 강한 성읍을 맡기지 않고 두 사람을 두어 서로 감시하게 했던 것 같다. 로마도 두 명의 집정관을 두었다.

Ⅴ. 여기에 드고아 귀족들에 대한 타당한 비난이 나와 있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여호와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한” 때문이었다(5절). 즉 그들은 이 일에 대한 의무를 행하러 오지 않았다. 마치 귀족의 권세와 자유가 하나님을 섬기며 선한 일을 하는 의무를 면제시킬 수 있는 것처럼 행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귀한 영예이며, 참된 자유인 것이다. 

귀족들도 자기 나라의 공익 사업에 힘쓰는 것이 자기들을 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지 말라.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보다 자기들이 고귀하고 유용한 일에 더욱 깊이 참여하는 것 이상으로 귀족들의 고귀성을 말해 주는 것이 있겠는가?

Ⅵ. “옛 문”을 중수하는 일에 두 사람이 협력했다(6절). 

그들은 함께 이것을 건축하여 그 영예를 나누어 가졌다. 우리만의 힘으로는 선한 사업을 이룰 수 없을 때, 우리의 일에 동참해 주려는 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옛 문”으로 불리는 이유는, 멜기세덱에 의해 제일 먼저 건축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옛 살렘 성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Ⅶ. 선하고 정직한 상인들도 제사장이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일에 적극적이었다. 이들은 “금장색”과 “향품 장사와 상고들”이었다(8, 12절).

 그들은 직업 때문에 그 일이 자기들에게는 면제된다고 생각하거나, 공적인 일을 하기 위해 그들의 상점을 떠날 수 없다고 항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손실이 자기들의 직업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분명히 보상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Ⅷ. 이 일을 진척시키도록 도와준 자들로 “살룸(shallum)과 그 딸들이” 언급되어 있다(12절). 이 여자들에게는 비록 개인적인 봉사를 할 만한 능력은 없었지만, 그들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혹은 부유한 과부로서 재목을 사들이고 인건비를 지불할 수 있는 돈을 기부했을 것이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4장 3절에서, “복음에 그와 함께 힘쓰던” 선한 여인들을 언급해 놓고 있다.

Ⅸ. 어떤 자들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했으며(10, 23, 28, 29절), 또 어떤 자는(그는 유일한 숙박인이었던 것 같다)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30절).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사업이 있을 때는, 각자 자기와 가장 가깝고, 또 자기의 손이 미칠 수 있는 곳부터 해 나가야 한다. 만일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집 문 앞을 쓴다면 거리는 깨끗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각자가 한 가지를 고친다면 모든 것을 고칠 수 있게 된다. 만일 침방만을 가진 자가 그 앞을 중수한다면, 그는 그의 할 일을 한 것이다.

Ⅹ. 어떤 자는 그에게 합당된 일을 “힘써” 중수했다고 적혀 있다(20절). 즉 그는 매우 열성을 기울여 그 일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은 냉담하거나 무관심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힘써 일했으므로 두드러져 보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한 일에 온 성의를 기울이는” 것은 좋은 일이라 하겠다. 그리고 아마도 이 선한 자의 열성이 매우 많은 사람을 자극하여 더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일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XI. 이 건축가들 가운데 한 사람은 “여섯째 아들”이었다는 것이 주목되어 있다(30절). 

그의 윗형 다섯은 이 일을 돕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그는 했다. 

선한 일을 할 때는, 윗 사람이 먼저 나설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윗 사람들이 혹시 선행을 하기를 싫어할지도 모르므로, 우리가 그들을 따라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나이 어린 자가 더욱 훌륭하며 하나님과 자기 세대에게 남보다 더 나은 봉사를 한다면, 그는 그야말로 훌륭한 신사일 것이다. 가장 쓸모 있는 것이 가장 영예로운 것이다.

XII. 그들 중 어떤 자들은 “먼저 그들의 동료를 도왔으며”, 수리가 필요한 또 다른 곳을 돌보았다. 

므레못은 한 곳을 중수하고(4절), 또 다른 곳을 중수했다(21절). 

드고아 사람들도 자기들이 중수한 곳 외에도(5절) 또 다른 곳을 중수했다(27절). 그런데 이들의 태도가 더욱 훌륭하게 보였던 것은, 귀족들은 일하기를 피하려는 나쁜 본보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가만히 앉아 있기 위해 변명을 하지 않고, 귀족들의 태도에 대한 반발로 더욱 열심히 일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열성으로 탐욕스럽고 게으른 귀족들을 부끄럽게 하려 했거나, 아니면 그러한 귀족들의 태도에 대한 벌충을 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끝으로, 느헤미야 자신이 이 일에서 어떤 특정한 몫을 담당했다는 이야기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와 같은 이름을 지닌 자가 16절에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겠는가?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가 어떤 특정한 성벽 일부분을 중수하지는 않았더라도,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 모두를 감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일꾼들 중 반수는 긴요하게 중수해야 할 곳에서 일했고, 나머지는 파수를 섰다는 사실을 우리는 후에 발견할 수 있다(4:16). 한편 그는 손수 그 주위를 돌아다니며 건축하는 자들을 지시하고 격려했다. 그리고 틈이 있을 때마다 일을 손에 잡았다. 그리고 그는 또한 적의 동태를 살폈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읽을 수 있다. 

키잡이가 돛대의 밧줄을 잡아당길 필요는 없다. 그에게는 앞을 살피는 일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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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자.....by: Abigail Gilbert, BFP Staff Writer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마치 어느 연극 전투 장면의 구호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말을 탄 기수들이 오르내리며 검을 뽑아 들고 모든 사람들을 향해 일어나 어깨를 맞대고 서서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자고 외치는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 고무적인 구호는 수천 년 전 느헤미야가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어려움에 맞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도록 백성들을 격려하며 외쳤던 말입니다(느헤미야 4:14).

BC 444년, 바사왕 아닥사스다의 술관원이었던 느헤미야는 유다에 남아있는 자들이 환난 가운데 있으며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에 유다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수 있도록 왕에게 허락을 구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그는 모든 면에서 공격해오는 유다의 대적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2일만에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유다로 돌아온 첫날부터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습니다. 이 견고한 방어막 없이는 백성들의 안전이 취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건축이 시작되자 유다의 대적들이 일어나 항의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 황폐해진 성읍 안에서 조심스레 지내는 동안에는 그리 걱정할 것이 없어보였지만, 일단 백성들이 공동의 목표 아래 단결하여 그들의 유산을 다시 세우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면 주변 국가들에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느헤미야서를 통해 고대 유적을 재건하는 놀라운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굳건한 영적 성벽과 대적에 맞서는 견고한 방어막의 중요성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성벽의 무너진 틈 사이에 서는 것의 의미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무너진 성벽 (Photo: Momentmal/pixabay.com)

느헤미야서 초반부에 그는 홀로 예루살렘 성문들을 다니며 무너진 곳을 살펴봅니다. 놀람과 충격 속에 돌아온 그는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느헤미야 2:17) 그후에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아닥사스다 왕이 호의를 베푼 일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백성들을 향해 다함께 일어나 성 무너진 데를 막고 성벽을 재건하자는 이 간절한 호소는 에스겔서에도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과 그분의 거룩한 분노 사이에 중재자를 세워 그가 백성을 위해 중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에스겔 22:30)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이 행한 죄의 깊이를 이렇게 묘사하셨습니다. “너 이름이 더럽고 어지러움이 많은 자여 가까운 자나 먼 자나 다 너를 조롱하리라” (5절) “네가 자신 때문에 나라들의 목전에서 수치를 당하리니…” (16절)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26절) 이것은 곧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직면한 파멸의 현장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조롱당했고 열방의 눈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비춰졌습니다. 성읍은 이전의 ‘거룩함’을 잃어버렸고 이제는 그저 돌 무더기에 불과했습니다.

에스겔 2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명령에 따라 일어나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쇠퇴한 것들을 다시 세울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의 이야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느헤미야서에는 그가 백성들에게 도움을 청하자마자 즉각적인 합의를 얻어냅니다.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느헤미야 2:18b) 하지만 늘 그렇듯,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대적들의 반대에 부딪힙니다. 그들은 이 일을 방해할 뿐 아니라 그들이 가진 군대와 세력으로 백성들의 생명까지 위협합니다.

==반대하는 자들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이 성벽을 재건하기 시작할 때 이에 맞서 대립하는 자들로 북쪽에서 사마리아를 다스리는 호론 사람 산발랏, 암몬 사람 도비야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등장합니다.

목사이자 신학자인 윌프레도 데 헤수스(Wilfredo De Jesús)는 《무너진 틈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견고하게 섰을 때 일어나는 일(In the Gap: What Happens when God’s People Stand Strong)》이라는 그의 글에서 각각의 대적들이 상징하는 바를 ‘타협, 분열, 폭풍’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죄에서 생명으로’라는 뜻을 가진 이름 산발랏이 타협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들 가운데 있는 이교도들을 수용하기 위해 삶, 기준, 신앙을 굽혔습니다. 이 일은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지만, 몇 년이 흐른 후에 그곳의 유대인들은 구별된 신앙과 문화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또 암몬 이교도 도비야가 분열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대적들은 마음을 나뉘게 만들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려고 합니다. 

게셈은 폭풍 혹은 비를 상징하며, 개인과 가족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중독, 학대, 포기, 가난, 우울증 혹은 수치심을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느헤미야에게도, 우리에게도 절반쯤 완성된 성벽은 방어에 충분치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일을 끝맺어야 합니다.”라고  드 헤수스는 이야기합니다. 

느헤미야서에서 예루살렘의 대적들은 건축하는 자들의 정신을 공격하고 잘못된 동기를 부여하며 그들의 노력에 경멸을 표함으로써 백성들을 훼방합니다. 

산발랏은 말합니다.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느헤미야 4:2) 

그는 백성들의 노력을 조롱하면서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이 일을 계속하느니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씨를 뿌립니다. 이것은 데 헤수스가 언급한 함축된 타협을 입증합니다. 

산발랏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라는 극단적 암시를 사용하여 위업의 불가능함을 은연중에 나타냄으로써, 백성들이 이 일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낙심시켜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낫겠지?”라는 생각을 품게 만듭니다. 

그런 다음 암몬 사람 도비야가 산발랏 곁에서 말합니다.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느헤미야 4:3) 

그와 함께한 무리들은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가는 것에 분노하며 예루살렘을 치고 “요란하게 할” 음모를 꾸밉니다(8절).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각 개인의 신앙의 행로나 가족 혹은 공동체에서 무너진 것을 재건하려 할 때 반대 세력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먼저 대적의 일반적인 책략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들은 타협, 분열, 폭풍 등의 수법을 사용하여 우리가 목적에서 물러나거나 낙심하도록 위협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재건을 위해 더 노력할수록 우리의 성벽은 대적을 방어할 수 있을 만큼 더 견고해집니다.

==칼 그리고 삽 

그럼 대적들이 모든 면에서 싸움을 위한 전열을 갖추고 다가올 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합니까? 그는 대적들의 책략을 파악하고 그들을 대적하는 기도를 하며 계속해서 일을 진행해 나갑니다. 이 전술로 건축하는 자들이 힘을 얻고 성벽의 절반이 중수됩니다(느헤미야 4:6). 

그러자 대적들이 다시 일어나 위협하며 건축하는 자들을 공격하고 죽일 음모를 꾸밉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느헤미야 4:13-14)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여전히 백성들을 성에 돌아와 일하게 하되 이번에는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게 합니다.

느헤미야의 행동에는 주목할 만한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백성들을 그들의 종족, 가족에 따라 성벽의 무너진 틈 사이에 세웁니다. 이것은 성벽을 방어하는 상황에서 가족이 함께 어깨를 맞대고 설 때 갖는 힘과 동기를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정의 안팎에서 무너지는 상황과 마주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오래되고 진부한 방법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우리를 다 함께 강하게 만듭니다. 또 느헤미야는 가족들에게 “주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싸우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그들을 칼과 창으로 무장시킵니다. 

이후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는 또 백성들의 무리를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공사를 계속하게 하고 다른 절반은 무기를 들고 파수하게 합니다. 건축하는자들조차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느헤미야 4:17-1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너진 틈 사이에 선다는 것의 의미가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삽을 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든 면에서 위험을 경계하고 그에 따라 대비하는 한편, 그들이 목적한 바에 집중하면서 대적이 이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일했습니다. 

랍비 나프탈리 와이즈(Rabbi Naphtali Weisz)와 조쉬 이븐첸(Josh Even-Chen)은 이스라엘 바이블(The Israel Bible)에서 이 같은 접근 방식이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선서식에서 모든 군인들은 한 손에는 총을, 다른 한 손에는 히브리어 성경을 받습니다.”  이것은 군사 임무 수행을 통한 물리적인 방어와 함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 순복함으로써 열방에 빛이 되는 목적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중보의 능력

오늘날 우리는 무너진 틈 사이에 서서 우리 주변 사람들과 공동체를 위해 중보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시편에 이러한 예가 등장하는데, 바로 금송아지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던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시편 106:23) 

사도들의 서신서(Writings of the Apostles, 신약)에서 우리는 또 한 명의 위대한 중보자를 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골로새서 4:12) 

모세와 에바브라의 기도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보십시오. 이것은 주일날 예배당에 앉아 의무적으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무너진 틈 사이에 서서 서로를 위해 열정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영적 노동입니다. 이러한 중보에는 분명히 희생이 요구되지만 마침내 그에 따른 결실을 얻게 됩니다.

온라인 잡지 “워드 어멍 어스(The Word Among Us)”는 《무너진 틈 사이에 서서(Standing in the Gap)》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이 말은 그저 누군가가 잘되기를 바라는 공손한 표현이 되어버렸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성경 본문에 묘사된 중보자들의 모습은 오늘날 무심한 성도들이 마음을 반쯤 담아 건성으로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마치 완전 무장을 한 무관심한 중보자가 뜨거운 전투의 열기 속에 자신의 칼을 한낱 지팡이로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앞서 살펴본 두 성경 본문에 등장하는 중보기도는 매우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드려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7)는 권면의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이사야 58:12)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거룩한 모범

무너진 틈 사이에 서서 고대 유적을 재건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이와 관련하여 우리를 위해 나타내신 모범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에는 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브리서 7:24-25)

 이 말씀의 실제적인 예가 복음서에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예견하시고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누가복음 22:31-32)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무서운 구절 중 하나입니다. 사단이 하나님 앞에 서서 베드로를 시험하겠다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베드로와 같은 상황에 놓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로 서도록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을까요?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만 후에 그의 신앙은 교회가 세워지는 반석이 됩니다.

또 다른 구절을 봅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로마서 8:26-27) 

이거룩한 모범을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해 중보할 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종종 시험을 당할 때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는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어려운 시간을 지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그때가 바로 아버지 앞에서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역할과 책임을 질 수 있는 우리의 가장 큰 특권일 것입니다.

==마음 들여 하는 일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무너진 성읍들’을 재건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러한 폐허에 해당되는 상황은 많습니다. 깨어진 관계가 될 수도 있고 개인적인 신앙의 무기력함이 될 수도 있으며 무너진 가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초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중보라는 특별한 도구를 주셨습니다. 

중보는 대적들의 화살을 방어하는 무기이자 동시에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공격적인 무기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모범을 통해 ‘반대’에 직면할 때의 교훈을 배웁니다. 그러한 반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이 될 수도 있고 길을 따라 막아서는 대적의 책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먼저 돌이켜 기도하고 대적들 앞에서 중보합니다.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느헤미야 6:9) 

느헤미야는 대적의 책략을 파악하고 즉시 하나님께 힘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마음을 들여 주님의 일을 하며 우리 안에 느헤미야의 기도를 품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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