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0.15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왕상12:16-33.여로보암의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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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2:16-33]

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18.  르호보암 왕이 역꾼의 감독 아도람을 보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죽인지라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19.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20.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으니라

스마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다

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22.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3.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24.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다

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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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지파의 반란(왕상 12:16-24)

열 지파의 나라가 다윗가에서 이탈해 나갔다. 그렇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Ⅰ. 백성들이 대담하고 단호하게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르호보암이 자기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사실에 대해 지극히 분개했고, 그의 협박에 분노했다. 그래서 이 정권이 이렇게 처음부터 교만하니 갈수록 가혹해져 가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침내 이 반란을 일으켰다. 모두가 하나같이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라고 소리쳤다(16절). 이제 그들은 다윗에 대해 함부로 말했다. 그는 그들 민족의 대은인인데도, 그들은 그를 자기 동료와 조금도 다름없다는 식으로 “이새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선한 사람들이 세금을 위해 수고한 선한 봉사도 얼마나 쉽게 잊혀지고 마는가를 보라. 저들의 성급한 결심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시간을 두고 신중히 의논했더라면, 그들은 르호보암과 서로가 만족할 만한 원칙적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들이, 누가 르호보암에게 이 같은 조언을 할 것이며, 그 주위에 있는 그 악한 자문관들을 쫓아낼 수 있을까 궁리해 보았더라면, 이러한 불화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자기들의 자유와 재산에 대한 그 열성이 그 자유로운 백성에게 복이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 포로가 되었느냐?”(렘 2:14)

그들은 기꺼이 지배를 받고자 했다. 그러나 시달림을 받기는 원치 않았다. 보호는 충성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파괴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만일 다윗가가 그들을 영달시켜 준 목표인 “선한 일을 위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는 것에서 이탈했다면, “이스라엘이 다윗가를 떠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19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불러서 나라를 주셨던(그 계승권을 그의 후손에게 주셨으며) 바로 그 다윗의 자손에 대해서 배신하고, 새로운 왕을 내세워 대적한다는 것은 중한 죄다(대하 13:5-8 참조). 하나님은 그것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왕들을 세우나 내게서 난 왕들은 아니니라”(호 8:4).

유다 족속에 대해 “그들이 다윗의 집을 좇았다”고 한 것은 그들을 칭찬해 주기 위해 여기에 언급한 것이다(17, 20절). 그리고 아마 그들은 르호보암이 말보다는 더 훌륭한 자이며, 처음에 말한 그런 잔인한 협박으로 통치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Ⅱ. 르호보암은 이 일의 사후 처리에도 현명하지 못했고, 갈수록 이성을 잃게 되었다. 그는 제 발로 위급한 상태에 빠져 들어가서, 벗어나오려고 발버둥쳤지만 더욱 깊숙이 빠져 들게 되었다.

1. 그가 “공물(貢物) 감독”인 아도니람을 보내어 그들을 진압하려 했던 것은 큰 잘못이었다(18절). 공물은 그들이 가장 불만스러워 하던 물건이고, 아도니람은 가장 못마땅해하던 사람이었다. 그들은 평소 어렵게 느끼던 이름의 주인공, 아도니람을 보자마자 성을 내고 말았다. 그들은 그의 말을 인내심 있게 들어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소동을 피우고 “그를 돌로 쳐 죽였다.”

르호보암은 이전에는 자문관을 잘못 선택하더니, 이번에는 자기의 사신을 선택함에서 불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2. 르호보암이 그렇게 성급하게 자기의 터전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도 잘못이라고 보는 자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 기회에 그는 친구를 잃었고, 원수들에게는 이점을 주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적들은 실상 기분 나쁜 태도로 자기들의 장막으로 돌아갔다(6절). 그러나 르호보암이 돌아가기까지는 여로보암이 왕이 될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20절). 이 어리석은 임금이 한 극단에서 다른 한 극단으로 얼마나 가볍게 옮겨 가는가를 주목하라. 그는 모든 것이 자기 손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큰소리를 치고 허세를 부렸으나, 자신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는 꽁무니를 빼면서 아주 초라하게 행세했다. 잘될 때 건방진 자들이, 잘 안 될 때는 가장 비굴하게 구는 것이 보통이다.

Ⅲ. 하나님은 그가 잃어버린 그 칼을 통해서 르호보암이 권력을 회복하려는 기도를 못 하도록 막았다. 일단 되어진 일은 하나님께 속했다. 그는 그 일이 다시 전복되는 것을 용서치 않으신다(즉 르호보암이 더 좋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열 지파를 복원시킨다면, 하나님의 일이 다시금 전복되는 것이다). 또한 여로보암이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그 두 지파마저 정복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다윗의 집으로서는 최악의 사태를 맞는 것이 되었으리라. 만사는 적당한 곳에서 끝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싸움을 중지시킨 것이다.

1. 르호보암이 무력으로 반란민들을 복원시키려 한 것은 용감한 계획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용기가 생겨났다(21절). 거기서 그는 자기가 든든한 친구들 속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모두가 그에게 친절하고 자기편이라고 생각되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그들은 여호와와 왕을 두려워했고, 일어난 변화에 대해 쓸데없이 참견하지 않았다)는 당장 18만 명의 군사를 모집하여 열 지파에 대한 저들의 왕의 권리를 회복하려고 했고, 그 왕을 지지하기로 작정했다(말하자면 거기에 자기들의 목숨과 행운을 걸었다). 그들은 다른 지파들과 같이 그런 불평을 할 이유나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 그러나 하나님이 한 선지자를 보내어 그 군대를 해산하라고 했을 때, 그가 자기의 용감한 계획을 그만두고 만 것은 더욱 용기 있는 일이었다. 그는 비겁하게 앉아서 나라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에게는 주군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까지 목적을 달성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형제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24절)―그들은 그 형제들을 사랑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그들의 하나님과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다―그들은 그에게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나님은 “이 일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손해와 곤경, 그리고 우리의 형제들이 그 일에 도구 노릇을 한 그런 손해와 곤경 속에서도 우리 자신을 순응시킬 줄 알아야겠다. 그러므로 복수심을 품지 말자.

르호보암과 그의 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군사를 해산하고, 평정을 지켰다. 인간적인 전망에서 보면, 비록 그들에게는 승리의 희망이 엿보였지만(그들의 군사의 수효가 많고 그들의 의지가 결연했으며, 여로보암 편은 약하고 정리되지 못한 채였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큰 힘의 손실을 보았으면서도 조금도 복구하려 하지 않으면, 꽃만 피워 놓고 아무런 결실이 없다고 하여 그들이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 비록 초라한 선지자를 통해서 전달되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중시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때에는, 그것이 우리 자신의 뜻과는 아무리 맞지 않더라도 기필코 시행해야 한다.

(2) 그들은 모든 사태가 자기들에게 유리하고, 또 정당한 권리도 가지고 있는 일이건만, 그것이 하나님을 거슬러 싸우는 싸움이라면 자기들에게 번영이 오지는 않으리라고 결론짓고, 자기들 자신의 이익을 의논해 보았다. 올라갔다가 더 깊이 떨어질 바에야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더 좋다. 그 다음 왕대(王代)에 가서 하나님은 그들과 싸울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승리도 주셨다(대하 13장). 그러나 지금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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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의 우상 숭배(왕상 12:25-33)

여기에서는 여로보암의 통치가 시작되는 일을 보게 된다. 그는 먼저 세겜을, 그 다음에는 부느엘을 건립했다. 즉 그 성읍들을 단장하고 수비를 튼튼히 했으며, 아마 그 두 곳에 자기의 궁궐을 지었을 것이다(25절). 세겜은 에브라임의 땅이요, 부느엘은 요단 강 동편에 있는 갓 지파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왕국을 튼튼히 만들려는 또 하나의 계획을 꾸몄는데, 그 계획이 그 나라의 종교적 사업에 치명적인 운명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Ⅰ. 이제 스스로 저들의 왕으로 군림한 그는 어떤 유효 적절한 조처를 내려서 백성들이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26, 27절).

1. 그는 백성들을 경계했고, 어느 시기가 오면 자기를 죽이고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소요로 인해 득세한 자들은 흔히 또 하나의 소요에 의해서 묵살되고 만다.

여로보암은, 비록 백성들이 지금은 자기를 무척 좋아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릇된 방법이나 찬탈의 형식으로 얻은 것은 안심하고 만족하며 즐길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2.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임할 수 없었다. 그가 자기의 의무에 충실하는 한,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워 주리라”(11:38)는 약속을 자기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어떤 수단이든, 비록 죄악적인 방법일지라도 강구하고자 애를 썼다.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실제적인 불신이 하나님을 떠나가는 모든 악질적인 배신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Ⅱ. 그런 일을 위해서 그가 취한 길은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가지 못하게끔 막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장소다. 거기에는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다. 그 성전은, 모든 이스라엘인이 보는 가운데서―많은 생존자들이 지금도 그 광경을 기억하고 있었다―구름으로써 하나님이 친히 차지하시겠다는 것을 보여 주었던 그 성전이다. 그 곳에 있는 제단에 여호와의 제사장이 참례하며, 거기서 모든 이스라엘인은 절기를 지켜야 했고, 그들은 제물을 그 곳으로 가져가야 했다. 그런데,

1. 이제 여로보암은, 저들이 계속 그런 일을 하다 보면, 머지않아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요, 다윗의 집의 궁전과 성전의 장엄함에 매혹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들이 자기들의 옛 신앙을 지속한다면, 그들의 옛 왕에게 돌아가려 할 것이다.

그가 만일 르호보암과 협정을 맺어 지정된 절기 때에는 자기 자신이나 백성들이 자유로이 예루살렘을 왕래할 수 있게 했더라면, 그것이 그에게 그렇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은 자기 백성들이 강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2. 그래서 그는 그들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구실 아래,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못 가게 단념시켰다. “이제는 너희가 예배하려고 먼데까지 가지 않아도 되느니라(28절). 너희가 예루살렘까지 그렇게 멀리 간다(혹자는 그렇게 읽는다)는 것은 무거운 멍에다. 이제 그 멍에를 벗어버려라. 너희들이 지금 사용하던 그 성전은 처음처럼 그렇게 화려하지도, 그렇게 신성하지도 않다(보이는 영광은 점차 사람들에게 낮게 평가되는 법이다). 이제 너희들은 모든 짐에서 벗어나, 이 일에서도 자유를 누리라. 우리는 왜 사무엘 시대 이상으로 이렇게 한 장소에만 매여 있어야 하겠는가?”

3. 그는 그들의 고향의 예배를 지원했다. 자기의 정치인들 중 어떤 자들과 상의하여, 그 문제를 이렇게 해결했다. 즉 하나님의 임재의 징표나 표적으로 금송아지 두 마리를 세우고, 이제는 고향에 머물러 있어도 좋으며, 법궤 앞에서 예배드리려고 예루살렘에 가듯이, 이제는 이 두 마리의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설득시켰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관대하여, 그 두 마리의 금송아지는 속죄소와 법궤 위에 있는 그룹들을 상징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운 것은 애굽인들의 우상 숭배를 차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는 그 지방을 여러 번 여행했고, 그들은 송아지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자기들의 신 아피스(Apis)를 숭배하고 있었다.

(1) 그는 솔로몬처럼 금으로 성전을 짓는 비용을 지불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지불할 수 있는 것이란 두 마리의 금송아지 값이었다.

(2) 그는 물론 그의 말과 마찬가지로, 이 송아지를 가지고 어떤 거짓 신, 몰록이나 그모스를 표징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한 신, 이스라엘의 참하나님만을 표상하려고 했을 것이다(28절). 그러므로 그것은 제1계명이 아니라 제2계명을 범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는 백성들의 신앙심을 보증해 주는 길을 모색한 것이다. 그는 그들 중에는 형상에 대한 애착이 대단히 심하므로, 송아지를 만들어 두면 아무런 형상도 놓을 수 없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갈 생각은 않을 것이라고 미리 계산했기 때문이다.

(3) 그는 두 마리를 세움으로써, 신성의 통일성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리게 했다. 두 마리의 송아지상은 이방인들의 사신론에 이르는 길을 닦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는 단에, 하나는 벧엘(한 곳은 그의 나라의 최북단에 있는 국경지대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최남단이다)에 세웠다. 그래서 마치 송아지상들이 그 나라의 수호자들인 양 꾸몄다. 벧엘은 유다에 가까웠다. 그는 하나는 거기다가 세워서, 르호보암의 백성을―그들 중에도 형상 숭배를 원하는 자들이 있었다― 또 유혹함으로써, 자기 백성들 중에 계속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자들을 대신하려는 속셈이었다. 다른 하나는 단에 세웠는데, 그것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한편 미가의 우상이 거기에 세워졌었기 때문에 여러 세대 동안 큰 존경을 받아왔던 지역이기 때문이다(삿 18:30, 31).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 그것은 미신적인 색채가 짙은 이름이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그 곳을 “벧아웬”, “허무의 집”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4. 백성들은 이 점에 대해서는 그에게 순응했다. 새로운 것을 지극히 좋아했다. 그들은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했다”(30절). 단에 세워진 것이 먼저였다. 먼저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까지”, 그렇게 멀리까지 갔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하는 일은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들의 고안대로 예배하기 위해서는 그 두 배의 거리가 되는 단까지 가는 데 아무런 애로를 느끼지 않았다. 또 그들은 단에 있는 한 송아지에게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왜냐하면 유다 왕 아비야가 그 후 20년도 못 되었을 때 벧엘을 복원해 버렸기 때문이다(대하 13:19). 그래서 아마 아비야가 금송아지를 치워버렸거나 사용을 금했기 때문에, 그들은 불가불 단까지 가야 했다. “이것이 죄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말해진 제2계명을 어기는 중한 죄였다.

하나님이 때로는 일정한 한곳에서만 예배하라는 율법을 면제해 준 일도 있다. 그러나 형상을 만들어 예배하는 일은 한 번도 허용하신 적이 없다. 이리하여 그들은 호렙에서 자기 조상들이 송아지를 만들던 일을 변론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그 조상들에 대한 자기의 심한 분노를 보여 주시고, 때가 되면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셨던 것이다(출 32:34). 그리하여 그 우상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한 것이었듯이, 또한 하나님의 진노를 크게 무시한 처사였다. 그리하여 저들은 죄에 죄를 더했다.

패트릭 주교는 유대인들의 말을 인용하여, 여로보암 시대까지는 이스라엘인들이 오직 한 마리의 송아지에서 젖을 빨아먹었으나, 그 후로부터는 두 마리의 송아지에게서 젖을 빨아먹었다고 했다.

5. 그는 신들을 세우고 나서, 그 신들을 위한 부설물을 준비했다. 이 점에서 그는 우리가 본문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탈했고, 이것은 그가 다른 일에 있어서도 유다에게 되어진 일(32절)을 가능한 한 본받으려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나의 죄가 얼마나 많은 죄로 불어나는가를 주목하자.

(1) 그는 산당이나 제단의 집을 지었다. 즉 단에다 하나, 벧엘에 하나, 성전을 지었을 것이다(31절). 그리고 아마 예루살렘 성전에는 제단이 하나밖에 없는 것을 탓하면서 각 성전에다 여러 개의 제단을 만들었을 것이다. 제단을 많이 만든 사실이 어떤 자들에게는 신앙심의 발로로 보이겠지만,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그 점을 다르게 보셨다. “에브라임이 많은 제단을 만드는 죄를 범했도다”(호 8:11).

(2) 그는 백성들 중에서 제일 천한 자를 골라 제사장으로 삼았다. 물론 아무리 천한 사람들이라도 그의 송아지의 제사장이 되기에는 충분하며, 아니 너무나 위대한 것이다. 그는 “그 백성의 말단”(한글 개역에는 “보통 사람”이라고 되어 있음), 즉 그 나라의 가장 촌구석에 사는 자들을 제사장으로 삼았다. 그는 그들을 그들의 이웃들과 더불어 살도록 명했는데, 그것은 자기의 명령대로 그 백성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일반 사람들과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그 제사장들은 레위인들처럼 분산되어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레위 자손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산당이나 제단의 제사장들에게는 예루살렘에 제사장들이 살 듯이, 벧엘에 거주하게 했다(32절). 그래서 공중예배에 참례하게 만들었다.

(3) 초막절―하나님은 7월 15일을 지정하셨다―을 “자기가 생각한 달”(33절) 8월 15일로 정했다. 이것은 그가 교회의 문제에 있어서 가지는 권한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월절과 오순절을 고유한 절기로 지켰다. 또는 모두 다 지키지는 않았고, 초막절에 비하면 별로 엄숙하지도 않게 지킨 것이다.

(4) 그는 자기에게 제사장을 지명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자기 손으로 제사장들의 일을 했다고 해도 조금도 놀랄 것은 아니다. “그는 제단에 제사를 드렸다”고 했다. 두 번이나 그런 말이 나오며, 그는 분향도 했다. 이것은 그의 여러 불법 중의 하나였으므로, 그에게서는 거의 묵살되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이 그런 일을 했을 때는, 그가 문둥이가 되는 벌을 받았다.

그는 손수 그런 일을 함으로써, 자기 백성들에게 자기를 위대하게 보이게 했고, 신앙 깊은 사람이란 존경을 사려 했으며, 자기의 새로운 축제를 보다 엄숙하게 하고자 했다. 아마 그 축제를 그의 제단 봉헌식과 겸해서 한 것 같다. 그리하여,

① 여로보암은 직접 죄를 지었다. 그러나 솔로몬이 다른 신을 섬겼던 것에 비하면, 세상에 대해서나 그의 양심에 대해서는 솔로몬처럼 악하지는 않았다는 식으로 변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② 그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했다.” 그들을 참하나님 예배에서 떠나게 하고 우상 숭배를 그들의 자손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윗 집의” 보좌를 버린 벌을 받았다.

학식이 많았던 휘스톤(Whiston)은, 그의 연대기에서, 유다와 이스라엘 두 나라의 연대표를 맞추기 위해서, 여로보암이 연한의 계산을 변경시켜 일 년은 11개월로 정했고, 나아가 예후의 혁명이 있기까지는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 기간을 그런 연한으로 계산했으며, 따라서 이 기간에는 유다의 11개월이 이스라엘 왕국의 12개월에 상당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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