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0.18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시98.공평과의.지고지선Q의무궁한참생명산출:양육과지도다스림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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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98장 시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3.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4.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5.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노래할지어다
6.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7.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주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8.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
9.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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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V]제98장Psalm 98 A psalm.
1.  Sing to the LORD a new song, for he has done marvelous things; his right hand and his holy arm have worked salvation for him.
2.  The LORD has made his salvation known and revealed his righteousness to the nations.
3.  He has remembered his love and his faithfulness to the house of Israel; all the ends of the earth have seen the salvation of our God.
4.  Shout for joy to the LORD, all the earth, burst into jubilant song with music;
5.  make music to the LORD with the harp, with the harp and the sound of singing,
6.  with trumpets and the blast of the ram's horn -- shout for joy before the LORD, the King.
7.  Let the sea resound, and everything in it, the world, and all who live in it.
8.  Let the rivers clap their hands, let the mountains sing together for joy;
9.  let them sing before the LORD, for he comes to judge the earth. He will judge the world in righteousness and the peoples with equ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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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시야의 왕국에 대한 예언과 그 왕국이 세상에서 건설될 것과 이방인들에 대한 그 왕국의 초대에 관한 예언이다. 갈대아역에서는 이 시편에 “예언적 시편”이라는 표제를 붙였다.
. 구속자의 영광(1-3).
2. 구속받은 자의 기쁨(4-9).
우리가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올바른 태도로 영광을 그리스도에게 돌리고 올바른 처지에서 이러한 기쁨을 가진다면 충분히 이해하면서 노래했다고 할 수 있다. 멀리 약속에서 그리스도의 날을 본 자들도 기뻐하고 이같이 승리해야 한다면, 이러한 것들이 성취되고 “우리를 위해 예비된 더 좋은 것”(히 11:40)을 직접 보는 우리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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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자의 영광(시 98:1-3)
우리는 앞 96편 1절에서와 같이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가장 고귀한 노래, 최선의 노래로 찬송하라.” 그리스도의 사랑의 노래는 솔로몬의 “노래 중의 노래”(아가)와 같다. 구속의 사랑에 대한 찬양의 노래는 전에 불리지 않았던 노래와 같은 “새 노래”다. 여러 세대에 걸쳐 감추어졌던 신비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노래해 왔던 것과 전혀 다른 “새 노래”로 바꾸라. 저들은 저들의 경이와 기쁨을 바꾼다. 따라서 저들의 음조도 바꾼다. 만일 하나님의 은총이 새 심령을 우리 가슴속에 준다면 새 노래가 울려 퍼질 것이며, 영원까지 새롭고, 결코 낡은 것이 되지 아니할 것이다.
다음 네 가지 사항을 숙고하며 이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도록 하자.
Ⅰ. 그가 행하신 이적들. “그는 기이한 일들을 행하셨다”(1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신 업적은 바로 이적이다. 만일 우리가 구원의 계획과 만세 전에 세운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을 위한 성취의 모든 단계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기이한 일을 행하셨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그가 행했으며, 그것은 “우리 눈에 기이”하다. 그것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더욱 경탄하게 된다.
Ⅱ. 그가 정복해 이기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승리를 취하셨다.” 우리의 구원자는 구원의 길에 있는 모든 난점들을 극복하며, 그것들을 모두 파괴하신다. 그에게 주어진 희생이나 고난 때문에 취소되지 아니한다. 그는 대적하는 모든 적들을 정복하고, 사단에 대해 승리하며, 사단을 무력하게 만들고, 그의 강한 팔로 내던지며,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렸다”(골 2:15). 그는 “용사에게서 노략물을 빼앗았으며”(사 49:24), 죽음에게 자기의 죽음의 상처를 주었다. 그는 그 자신은 물론 우리를 위해서도 분명하고도 안전한 승리를 취했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정복자 이상으로 강해진다. 그는 그 자신의 능력으로 이러한 승리를 취했다. 누구의 도움이나 지지도 없었으며, 감히 희생하려는 자도 없었다.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며”, 승리하게 하고,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푼다.”
여기에서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이라고 불린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은 주 예수에게 생명을 주고,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며, 그를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올리신다.
Ⅲ. 그가 세상에 남긴 구원 활동의 발견. 그는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을, 그 아들에 의해, 우리에게 계시해 주었다. 복음의 계시― “하나님이 보내신 말씀”(행 10:36)─는 복음 왕국이 세워지는 그곳에 있다. “인봉한 책을 여는 것”은 찬양의 노래로써 축제하려는 것이다(계 5:8). 그렇게 함으로써 오랫동안 하나님 안에 숨겨져 온 신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1. 이러한 발견의 주제는 그의 구원과 그의 의다(3절). 의와 구원은 종종 함께 나타난다(사 61:10, 46:13, 51:5-6, 8). 구원은 구속 그 자체를 의미하며, 의는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 수행된 것을 의미한다. 또 구원은 모든 우리의 복음의 특권을 포함하며, 의는 모든 우리의 복음의 의무를 내포한다. 이 두 가지가 알려졌다. 하나님이 그 둘을 결합시켰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의는 그리스도에 의해 복음에 나타난 믿음으로 얻는 의인의 길을 의미한다(롬 1:17).
2. 이러한 발견은 명백히 드러난다. 그는 공개적으로 보여주었다. 그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형태나 모습으로 씌어진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자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광선과 같은 것으로 씌어졌다. 목회자들은 그것을 명백한 말로 설교하라고 임명되었다.
3. 이러한 발견은 그 범위가 넓다. 그것은 유대인에게 한정되지 아니하고, 이방인의 시야에도 들어온다. “온 땅의 끝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라고 했다.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말씀이 보내졌다.
Ⅳ. 구약의 예언과 약속의 성취가 나타난다. “저가 이스라엘 집에 향하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위해 자비를 예비해 두셨고, 훗날 그들에게 주기로 한 크고 많은 친절의 보증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방인들에게 비추는 빛일 뿐 아니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 되는 그의 아들 예수를 들어올리는 일을 이행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들을 축복하기 위해 그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면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한 자비를 행하고,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한다”(눅 1:72)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장점을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거룩한 언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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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받은 자의 기쁨(시 98:4-9)
여기서 그리스도 왕국의 건설은 기쁨과 찬양의 일로 나타나 있다.
Ⅰ. 모든 사람의 자녀로 하여금 그리스도 왕국의 건설을 기뻐하게 하라.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로 인해 은혜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의 기쁨을 표현하는, 가능한 한 모든 방법과 수단을 통해 하나님께 찬양하라는 부르심이 반복되고 있다. 시편 95편 1-2절과 같이 “즐거이 소리할지어다.” 기쁜 소식을 듣고 감동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감동하기를 갈망하는 자들처럼 “소리를 발하여 즐거이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기뻐하고 찬양하며”, “호산나를 부르고”(마 21:9), “할렐루야”를 부르라(계 19:6). 솔로몬이 외친 것같이(왕상 1:40), 땅이 다시 울릴 때까지 큰 외침과 기쁨의 환호로써, 새 왕의 등극을 환영하게 하라. 군중의 외침에는 “악기로 노래하는 자들과 춤추는 자들”(87:7, 68:25)이 수반될 것이다.
1. 새 왕을 성스러운 노래로 모시라. “찬양하라, 시편의 노래로 찬미하라.” 너의 기쁨을 표현하고, 선포하며, 그것을 더욱 고무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라.
2. 수금의 부드럽고 은은한 멜로디로 성스러운 음악을 도울 뿐 아니라, 영광으로 송축되어야 하는 승리의 왕이며 정복자이기 때문에, “나팔과 호각으로”(6절) 용감한 곡조를 울리도록 해야 한다.
이 모든 기쁨은 하나님께 향한 것이 되어야 하며, 장엄하고도 경건한 태도로 표현되어야 한다. “여호와께 찬양하라”(5절). “왕 여호와 앞에 찬양하라”(6절). 육체의 환난은 이러한 거룩한 기쁨의 적이 된다. 다윗이 법궤 앞에서 춤을 추었을 때, 그것은 “여호와 앞”에서였다고 주장했다. 그가 행한 것을 경건과 예배라고 옹호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칭찬했다. 우리가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갈 때는 언제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며”(신 12:12), 주 예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왕이요, 왕 중의 왕이요, 교회의 왕이며 우리의 왕이신 그 앞에서 즐거워해야 한다.
Ⅱ. 땅의 피조물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왕국의 건설을 기뻐하게 하라(7-9절). 이는 우리가 앞에서(96:11-13) 본 것과 동일한 요지로 구성되어 있다. “바다여, 외칠지어다.” 흉용한 소리로써가 아니라, “기쁜 소리”로 부르게 할 것이로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에 의해 이루어진 구원은 이 세상의 온갖 고통과 공포의 성질을 뒤바꾸어놓았다. 홍수가 그 목소리를 높이며 그 파도를 높일 때, 우리는 바다가 우리를 향해 포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사람들이 그들의 손으로 박수치며 기쁨을 표현하는 것같이 홍수도 그 기쁨을 표현한다. 율법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시내 산에 내려왔을 때 산들이 그 앞에서 두려워 떨었지만, 시온에서 주의 말씀이 고요한 음성으로 나타나고 그의 복음이 가르쳐졌을 때 그 앞에서 기뻐 춤을 추게 된다. “산들이여, 주 앞에서 함께 즐거워할지어다.”
이것은 그리스도 왕국이 모든 피조물에게 영광이 됨을 암시해 준다. 땅의 피조물들이 창조자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같이(19:1) 그들은 구원자의 영광을 선포한다. 그로 말미암아 생명을 보존하며,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자녀들이 구원자에 대한 합당한 존경을 표하는 데 부족하므로 그는 바다와 홍수로부터 그의 영광을 찾으려 하는데, 이는 인류의 어리석음과 은혜를 모르는 부끄러운 사실을 암시해 준다. 아마도 존경은 “우리가 그의 약속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벧후 3:13)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그의 오심의 두 번째 언급은 원칙적으로 그의 재림에 관한 것이며(96편 참조), 그때 모든 것들은 순화되기 위해서 사라질 것이다. 그때 그는 “의로 세계를 판단하기 위해” 오실 것이다. 성화된 모든 것은 그날을 기대하면서 기뻐하며, 심지어는 바다와 홍수와 산들까지도 할 수 있는 한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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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는 천국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입니다. 그 통치원리가 바로 공평과 정의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시 97:2).

오늘 말씀에서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다”고 했습니다(마 20:1).
천국은 포도원 주인의 마음, 즉 하나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잃은 양을 찾아 나선 목자처럼(마 18:12), 새벽부터 품꾼을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하루에 다섯 번씩이나 찾아 나섭니다.
주인이 직접 수차례 품꾼을 찾아 나선 것은 짧은 수확시기에 고소득을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 건장한 품꾼을 직접 챙기려는 의도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시간만 일한 품꾼에게 열두 시간 일한 품꾼과 똑같이 일당을 준 걸 보면, 포도원 주인은 결코 돈벌이에 혈안이 돼 이권을 챙기는 사람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장면은 왜 굳이 맨 나중에 온 품꾼부터 품삯을 줬는가 하는 점입니다(마 20:8). 바로 천국의 통치 원리를 보여주고자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것은 바로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마 19:30)을 이해하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오후 5시까지 인력시장에서 서성이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요. 보통은 해가 뜨고 나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기에 집에 들어가 쉴 텐데, 하루 종일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곳에 있었던 건 아마도 일용할 양식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일한 시간은 한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를 기다리는 가족을 생각하며 그 어떤 품꾼보다도 감사한 마음으로 일했을 것입니다. 포도원에는 맨 나중에 들어온 꼴찌였지만 포도원 주인의 세심한 배려와 긍휼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깊이 깨달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맨 먼저 포도원에 들어온 품꾼은 주인의 마음을 가장 먼저 이해하며 열심히 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주인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배정의에 어긋난 ‘처사’에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재산을 허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품어준 아버지의 ‘처사’에 강력히 반발했던 첫째 아들처럼(눅 15:27), 포도원 주인의 너그러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마음과 가장 멀어져 나중 된 것입니다. 사실 주인은 그와 부당하게 계약을 어긴 것이 없이 공정하게 약속을 지켰지만, 한 시간만 일한 품꾼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을 보면서 내심 자신은 당연히 그 이상의 돈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기에, 그만큼 실망과 분노도 컸을 것입니다. 오늘날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도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는 강력히 항의했을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의 마음은 일한 만큼 받는 정당한 대가 혹은 ‘분배정의’를 뛰어넘어 가난과 절망 속에서 강도 만난 이웃을 돕고 섬기는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천국은 바로 땀 흘려 일하고 대가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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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과 정의
성경 전체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공평과 정의에 대한 메시지다. 토라의 메시지며 토라의 주석인 선지서의 메시지다.
우리 주님도 토라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하셨다. 구약을 읽으며 이것을 간파하지 못했다면 성경을 헛읽은 것이다.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과 나그네는 사회적 약자며 이들을 돌보는 것이 공평이며 정의다.

공평은 미슈파트(justice)의 번역어이고 정의는 체다카(righteousness)의 번역어다.

공평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행동방식(mode of action)'을 나타내며 정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인격적 소양(quality of a person)을 뜻한다.
체다카(righteousness:정의)는 미슈파트(justice:공평)의 상위개념이다.
미슈파트가 엄격히 지켜져야 할 개인의 행동의 구체적 의무라면, 체다카는 자비심(benevolence), 친절함(kindness), 관대함(generosity)의 내포하는 인격적 태도다.

미슈파트가 법률이라면, 체다카는 억압 받는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동정심이다.
우리는 토라의 법조문을 따라서도 이웃에게 사랑을 행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토라의 정신, 곧 우리 심비에 새겨진 사랑의 계명을 따라서 이웃에게 자비를 나타내어야 하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다.
신약과 구약은 일관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경외함을 율법이 요구하는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 드러낼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계명이다.
성경 전체에 이 메시지가 가득해서 그냥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나올 판이다. 그럼에도 낙타는 삼키고 하루살이는 거르는 일이 팽배하다.

동성애는 성경이 금하는 많은 죄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이혼은 인간이 지닌 여러 연약함이 빚은 죄일 뿐이다. 마음의 음욕이 육체적 간음보다 괜찮은 것은 아니다. 그것이 간음이든 동성애든 이혼이든 본질은 삼위하나님께서 서로 사랑하시는 관계 중에 계심을 따라서 살지 않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성부를 사랑하시는 자, 성자를 사랑받으시는 자, 성령은 사랑 그 자체라고 했다. 삼위하나님과 교제하는 백성은 그의 도덕적 통치를 따라서 공평과 정의가 하수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공평(정직.올곧음.거리낌이나 거침이 없이 매끄럽고 평탄함..메샤르 **정의 : 율례와법도따른 공정한 참된 판결+그에 따른 집행)과 의(공의...계시하신바 Q성품의 어떠하심그대로의 영광을 공급, 반영/반사함)]-----
미쉬파트) justice, judgement 심판, 재판, 공의, 법령 등  ::: 의로우신 하나님(Q은 말씀하신 바로그대로 그분의 성품따라 행하심)의 담지자로 살기를 선택한 자의 마땅히 취할 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고 교정함, 더 나아가 소송사건 공판자리에서 치우침 없는(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바, 정의구현은 판결따른 합당한 대가지불/보응/공변까지를 포함)판결/심판과 통치/다스림에 있어서 판단-분별-선택의 기준(즉, 하나님의 성품따라 하나님추구하는 자마다 베푸신 성경말씀을 지고지선의 참생몀 실현과 누림의 패러다임안에서 파악하며 최우선순위의 권위로서 Q말씀을 따라 분별/선택함이 참된  정의, JUSTICE, NORMA!!...이에 따른 판결이 normal judgement임....이를 혼동케 하는 new normal이란 단어의 미혹을 경계하라!!)
......미쉬파트(명남)는 샤퍄트(fp;v; , 8199: 재판하다, 다스리다)에서 유래했으며, '심판, 재판 judgment, 공정, 공의 justice, 법령 ordinance, 관습 custom, 방식 manner'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00회 이상 나온다.
미쉬파트는 분명히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나 하나님이 전체 피조물을 다스리는 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사상이 무엇인지를 나타내준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용된 미쉬파트가 거의 400여회 '심판' judgment으로 번역되고 또한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다손 치더라도 이 번역은 입법, 사법, 행정적 기능과 정부에서 기능들이 뚜렷이 분리된 오늘날의 새로운 통치 방식을 고려해 볼 때 현대의 우리에겐 종종 불완전한 번역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다스리다, 통치하다'를 의미하며 정부의 모든 기능들을 가리키는 일반동사 샤파트(이 단어에서 미쉬파트가 파생됨)가 사법적 기능만을 잘못 국한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반면에 동사와 명사 모두는 이 모든 기능들을 포함한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모든 용례를 분석하면 적어도 13가지 관련 용법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의미의 영역을 지닌 단 하나의 영어 단어로 번역한다면 명확한 핵심 사상은 반드시 justice라는 단어로 표현될 것이다. 심지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매우 강력하게 규칙적으로 번역하는 RSV도 미쉬파트를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새롭게 번역했다("주의 판단"[시 72:1]과 "공의로"[시 72:2]를 대조하라). 명사 미쉬파트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 혹은 종교적 통치의 거의 모든 측면을 지칭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a)  일반적인 재판장 앞에 가져온 소송 사건을 판결하는 행위. BDB는 출 21:31에서부터 출발하여 204개의 실례를 제공한다 - RSV와 NASB는 출 21:31을 이에 대한 실례로 간주하지 않고, 달리 번역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 용례들은 매우 분명한 것들이다(신 25:1, 수 20:6 등).
(b)  소송 사건을 판결하는 장소. 보다 희귀한 이 용법의 분명한 예는 왕상 7:7이다(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c)  소송의 과정은 미쉬파트라고 불리운다. 의미1과 의미2 사이에 구분하기가 어려운 의심스러운 실례가 많이 있다. 한가지 예는 사 3:14이다. '소송' litigation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용례를 번역하기에 적합한 단어일 것이다. 가장 명백한 용례는 뒤따르는 명사와 함께 임(im)을 사용한다. "그러그러한 심판"(욥 22:4, 시 143:2).
(d)  소송 사건(즉 관원에게 가져온 특수한 소송 사건). 예를 들면 솔로몬은 그가 "미쉬파트를 들을"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했다 - 여기서 미쉬파트는 그 앞에 가져온 송사를 뜻한다(왕상 3:11, ASV marg). 이 실례는 인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RSV) 욥기에 나오는 아라크티 미쉬파트("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욥 13:18)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왕상 8:59도 보라. 이러한 용법은 명사 리브의 용법과 비슷하다.
(e)  법정 재판관의 선고 혹은 판결. 이 의미는 매우 일반적인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판결' judgment이라는 단어가 미쉬파트의 역어로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매우 옳다(왕상 20:40). 렘 26:11, 렘 26:16에서 "죽음이 합당하니"라는 표현은 미쉬파트 마우웨트를 번역한 것이며, 분명히 사형 선고를 의미한다.
(f)  심판의 때. 분명한 예는 시 1:5, 전 12:14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미쉬파트로 가져 올 것이다"(한글개역,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심판하시리라")에서 미쉬파트는 위에 제시한 것과 매우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BDB는 일반적인 '심판의 집행'이 앞의 실례를 포함하여 일단의 구절들에서 미쉬파트가 지니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에서 인용한 예는 공의의 개념 혹은 성질과 관련하여 분류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아 보인다.
이상의 모든 실례는 미쉬파트가 통치의 사법적인 면을 나타내는 주된 예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권위라고 생각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의미로 이 단어가 사용되는 용법은 다음과 같다.
(g)  주권(sovereignty), 궁극적인 권위 혹은 권리라는 의미에서의 통치의 법적 근거. 오늘날 사람들은 이것을 조직과 인간의 본질("자연권")에서 찾곤 한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①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미쉬파트라고 지칭되는 것이 바로 이 권위이다. '미쉬파트(재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신 1:17).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전체 미쉬파트는(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하나님의 창조물인 각 개인은 양도할 수 없는 미쉬파팀(권리 rights)을 가지고 있다(참조: R. D. Culver, Toward a Biblical View of Civil Government, 1974).
② 재판장의 미쉬파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이 사실은 왕되신 메시야의 엄연한 권위에 대하여 언급하는 시 72:1-2에서 가장 잘 예증된다. 물론 섭리의 교리가 이 개념의 기초가 된다(시 103:19, 참조: 롬 13:1 이하). 하나님의 이러한 우주적 통치와 지배는 렘 8:7의 미쉬파트가 전달하는 개념인 것 같다: "내 백성은 여호와의 율법(한글개역 "규례")을 알지 못하도다".
또한 통치의 입법적인 면과 관련되는 용법이 있다.
(h)  정의의 성격은 모든 옳은 인격적인 행정에 강조되어 있다.
① 이 공의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이다. 모든 참된 미쉬파트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며, 따라서 미쉬파트는 하나님의 요구를 수반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하나님의 미쉬파트에 대하여 말할 때, 자주 그러하듯이, 이 단어는 특별한 뉘앙스를 지닌다. 즉 이 때 미쉬파트는 하나님의 당연한 법령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당연한 요구(just claims)를 뜻한다. 주되신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실 수 있으며, 그는 요구하신다"(Koehler, OT Theology, pp. 205-206).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권리(정의, 권위, 등)가 그에게 있다(사 30:18, 참조: 창 18:25). 하나님은 이러한 의미에서 미쉬파트를 사랑하신다(시 37:28). 시 36:6)은 '주의 미쉬파트(단수형)는 큰 심연이다'라고 기록한다(한글개역,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② 공의로서의 미쉬파트, 즉 하나님의 속성에 뿌리 박혀 있는 의는 일반적인 인간의 속성이 되어야 하며 인간 중에서 사법적 과정의 특성이 되어야 한다(시 106:37). 지혜로운 자는 공의를 말하며(시 37:30) 공의를 생각한다(잠 12:5).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공의를 요구하신다(미 6:8). 의인은 공의를 즐거워하며(잠 21:15) 의로운 재판장은 재판할 때 공의를 사용한다(미 3:1, 참조: 잠 29:4).
(i)  미쉬파트는 또한 율법의 규정을 나타낸다 - 이 단어는 종종 호크(법령, 출 15:25)와 토라(율법, 사 42:4)와 대등하게 사용된다. 오경의 법령들은 미쉬파트이며(레 5:10, 레 9:16 등), 사실상 모세 율법의 각 규정들이 미쉬파트이다(신 33:10, 신 33:21, 시 119편에서 16회 사용됨).
(j)  방법, 설계도(출 26:30, 한글개역 "식양").
(k)  풍습(왕하 17:33, 한글개역 "풍속").
(l)   취해진 알맞은 크기(왕상 5:8). 이 세 가지 의미들(왕상 5:10, 왕상 5:11, 왕상 5:12)은 거의 표준적인 것들이 아니고 확대된 의미들이긴 하지만 역시 이 단어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m)  율법, 인간, 하나님 아래 어떤 사람의 권리는 미쉬파트라고 불리운다(신 18:3, 렘 32:7).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관한 구약성경의 묘사에서 체테크 및 체다카와 자주 연관되는 이 개념은 성경의 세계관과 인생관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핵심을 이룬다.
주(註): 대제사장의 가슴에 붙인 흉패는 "판결 흉패"(출 28:15, 출 28:29-30)라고 불리우는데, 이렇게 불리운 이유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보석을 통하여 주어지는 소위 어떠한 계시 때문이 아니라 그 흉패가 아론의 가슴을 덮었으며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흉패가 그 가슴 위에 있게 되고, 따라서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미쉬파트)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론이 하나님 앞에서 관여된 바는 이스라엘의 칭의, 즉 범죄에 대한 사법적인 선고(위를 보라)였다. 예컨대 '실제 동양의 생활에서처럼 예언적인 환상에서 칭의의 선언은 종종 입고 있는 옷의 성질에 의해 표현되었다. 사 61:10은 이에 대한 좋은 실례다'. 또한 사 62:3, 계 3:5, 계 7:9, 계 19:14, 에 6:8-9, 에 6:12을 보라(A. C. Hervey, Smith's Dictionary of the Bible, Hackett ed., Ⅱ, pp. 1066-67).
(참조: R. D. CU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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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데크 ::::  올바름, 공의, 공정, 의로움  ::::   Equity = RIGHTEOSNESS  .... 하나님의 성품(=선하심/토브-인자하심/헤세드-진실하심/에무나로 묘사되는 Q의 어떠하심...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  참회개하는 자 사유하기를 기뻐하시며 대속의 구주JC의 죽으심과 부활로 오셔서 내주하시는 바, 부활생명능력이신 HS통해 거룩함을 회복/완성시키심,  인자와진실이 무궁하심) 바로 그대로 생생하게 나타냄..모든 이들을 선대함으로 살아가며 나타냄...성령의 9열매를 맺는 삶 

체데크(명남)는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삷속에 그대로 참되게 나타남의) 올바름, 공의, 공정, 의로움..참된 거룩함'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20회 나온다(레 19:15, 레 19:36, 신 33:19, 욥 6:29, 시 35:27, 시 37: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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