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19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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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4장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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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4장
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약속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에,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여러분 가운데서 아무도 생기지 않도록,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십시오.
2.  그들이나 우리나,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서도, 그것을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그 말씀을 믿은 우리는 안식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진노하여 맹세한 것과 같이, 그들은 결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실상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일을 끝마치셨으므로, 그 때로부터는 안식이 있어 온 것입니다.
4.  일곱째 되는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하나님께서 일곱째 되는 날에는 그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 하고,
5.  또 이 곳에서는 그는 다시 "그들은 결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6.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기쁜 소식을 먼저 들은 사람들은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7.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오늘'이라는 어떤 날을 정하시고, 이미 인용한 말씀대로, 오랜 뒤에 다윗을 시켜서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8.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뒤에, 다른 날이 있을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9.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하는 것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10.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마치고 쉬신 것과 같이, 그도 자기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을 씁시다. 아무도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 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가려 냅니다.
13.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 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예수는 위대한 대제사장이시다
14.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킵시다.
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범하지 않으셨습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래서 우리는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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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4장
1.  Therefore, let us fear lest, while a promise remains of entering His rest, any one of you should seem to have come short of it.
2.  For indeed we have had good news preached to us, just as they also; but the word they heard did not profit them, because it was not united by faith in those who heard.
3.  For we who have believed enter that rest, just as He has said, " AS I SWORE IN MY WRATH, THEY SHALL NOT ENTER MY REST," although His works were finished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4.  For He has thus said somewhere concerning the seventh [day], "AND GOD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S";
5.  and again in this [passage], "THEY SHALL NOT ENTER MY REST."
6.  Since therefore it remains for some to enter it, and those who formerly had good news preached to them failed to enter because of disobedience,
7.  He again fixes a certain day, "Today," saying through David after so long a time just as has been said before, "TODAY IF YOU HEAR HIS VOICE, DO NOT HARDEN YOUR HEARTS."
8.  For if Joshua had given them rest, He would not have spoken of another day after that.
9.  There remains therefore a Sabbath rest for the people of God.
10.  For the one who has entered His rest has himself also rested from his works, as God did from His.
11.  Let us therefore be diligent to enter that rest, lest anyone fall through [following] the same example of disobedience.
12.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and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and piercing as far as the division of soul and spirit, of both joints and marrow, and able to judge the thoughts and intentions of the heart.
13.  And there is no creature hidden from His sight, but all things are open and laid bare to the eyes of Him with whom we have to do.
14.  Since then we have a great high priest who has passed through the heavens, Jesus the Son of God, let us hold fast our confession.
15.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cannot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One who has been tempted in all things as [we are, yet] without sin.
16.  Let us therefore draw near with confidence to the throne of grace, that we may receive mercy and may find grace to help in time of n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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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장 (개요)
전 장에서 유대인의 조상들이 저지른 죄와 그에 대한 형벌을 서술한 바울은 본장에서는 다음의 내용을 전개하였다.
Ⅰ. 우리가 복음 시대에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모세 시대의 유대 교회가 받은 특권을 능가하신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를 선용해야 된다고 한다(1-4).
Ⅱ. 바울은 고대 유대인들이 이같은 특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익을 얻지 못한 이유를 지적하였다(2).
Ⅲ. 바울은 믿는 자와 특권과 계속 믿지 않는 자의 비참성을 확실히 말하였다(3-10).
Ⅳ. 바울은 믿고 복종해야 한다는 적절하고 강력한 논증을 제시함으로 본장을 결론지었다(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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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의해 부여된 특권(히 4:1-10)
Ⅰ. 바울은 복음 시대에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우리들의 특권이 위대할 뿐 아니라, 모세 율법 아래 유대 선조들이 누리던 특권보다 더욱 위대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말하였다. 
그것은 우리로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와 계약 관계를 맺게 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귀게 되며 거기서 성장하여 우리가 영광을 받을 만큼 완전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서는 이러한 안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최선의 방법을 우리에게 남겨 주신 약속이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상속자가 됨을 아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죄와 사탄과 육의 지배로부터 헤어나와 안식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영혼은 진정한 안식을 박탈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할 일은 율법과 율법에 대한 번거로운 의식과 섬김의 멍에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과 하나님의 법도와 섭리 하에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평화를 누릴수 있으며 하늘 나라에서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을 바랄 수 있게 되었음을 주장하는 일이다.
Ⅱ. 바울은 우리로 유대인들의 조상과 마찬가지로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그의 주장의 옮음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저희와 같은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다(2절)"라고 말하였다. 
사실 신약에나 구약에나 본질에 있어서는 같은 복음이 증거되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구약에 나타난 복음을 신약에 나타난 복음보다 분명치가 않으며 보다 마음 편하게 의존할 수 없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것일 뿐이다. 
유대인이 조상들이 누릴 수 있었던 최대의 특권은 복음에의 특권이었다.  구약의 희생 제사와 제의는 그때 당시로 볼 때는 하나의 구원의 복음이었다.  이처럼 만약 복음이 조상들의 최고 특권이었다면, 우리도 결코 그들에게 뒤떨어지진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오히려 그들이 가진 것보다 더 순수하고 명료한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Ⅲ. 바울은 이제 다시 왜 유대의 조상들이 다같이 복음의 섭리 하에 있었으면서도 그 섭리에 의하여 유익을 얻은 사람은 소수밖에 될 수 없었는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역주: 율법도 좀 분명하지는 않으나 일종의 구원의 복음으로 바울이 말하고 있음을 주의하라).  그러므로 "그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라(2절)"고 본문에서 바울은 말하였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말씀이 우리에게 전파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에 의해 유익을 얻고 영적으로 부요해지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말씀은 풍부한 재능과 지혜를 구입할 수 있도록 우리의 손에 쥐어진 화폐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2. 어느 시대나 말씀을 들으면서도 유익함은 얻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많은 것들을 얻은 듯이 보이나 실상은 그들의 영혼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곤 한다.  
그리고 들음에 의해 얻지 못하는 자는 많은 것을 잃은 자인 것이다.
3. 말씀을 듣고도 유익함을 얻지 못하는 근거는 바로 우리의 불신에 있다. 
우리는 들은 바의 내용에 믿음을 화합시키지 않는다.  듣는 자가 믿을 때 말씀은 생명력을 나타낸다. 
목회자가 복음을 믿고 설교함으로 신자들의 믿음을 깊게 하려고 애쓰며 노력하여도 만약 듣는 자가 말씀에 화합하려고 하는 믿음을 마음에 지니지 않고 있으면 결코 영혼에게 더 보탬이 되는 점은 없다. 
믿음은 모든 말씀 가운데서 역사하여야 하며, 우리가 듣는 동안에도 믿음은 역사 되어져야 한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시인하며, 자비가 베풀어짐을 받아들이고, 우리 자신이 사랑을 가지고 말씀을 실천하면 우리는 전해진 말씀에 의하여 유익을 얻고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Ⅳ. 바울은 위와 같은 여러 가지 근거를 이유로 그가 여러 번 되풀이하여 간절히 권면하고 충고하였던 사실, 즉 복음을 받은 자들이 스스로 주의하여 거룩한 두려움과 열심을 잃지 말 것을 강조한다.  또한 바울은 그들에게 그렇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불신에 의해 말씀의 유익을 상실하고, 복음 안에서 얻을 수 있고 발견되어지는 영혼의 안식을 빼앗길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1절)"고 한다.  여기에서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복음 안에 거하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은총과 영광을 얻을 수 있다. 
복음은 사람들에게 은총과 영광을 주리라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 복음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은총과 영광을 주리라고 약속을 한다.
2. 영광과 은총에 대한 약속을 받았더라도 그 약속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자부하던 자들도 불신에 의하여 구원에 미치지 못하고 될 수도 있는 것이다.
3. 복음의 약속하는 구원에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즉 그는 스스로 구원의 소망이 상실된 것처럼 여겨질 때 또 다른 사람들이 나를 거룩한 신앙을 잃어버린 것처럼 여길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안식에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정도가 이렇게 두려운 것이라면 정말 안식에 이르지 못하게 되면 그건 더욱 무서운 일인 것이다.  참으로 그것은 치명적인 것이다.
4. 우리가 구원에 정말 도달하지 못하거나 또는 구원에 도달하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것을 방지하는 길은 거룩하고 신심어린 두려움을 늘 마음에 지니는 길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구원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두려운 마음을 지니게 될 때 우리는 방심하지 않게 되며, 근면하고 성실하며 신중하게 된다.  이 두려움은 우리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게 하며 단련하게 된다.  그러나 두려움이 없는 방심의 태도는 멸망으로 이끄는 대로(大路)이다.
Ⅴ. 바울은 복음을 참으로 믿는 자들에게 축복이 주어질 것을 확신하게 말한다.
1. 바울은 자신의 경험과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말이 진실됨을 확언한다.  그는 본문에서 "그러나 우리는 믿었기 때문에 그 안식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합일이 있게 될 것이며 또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며, 성령 속에서 즐거워하게 되며, 은총은 증가되고 영광은 점점 더욱 밝게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보일 것이며 죄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오게 되고 우리가 하늘 나라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하나님 안에서 보장된 삶을 살게 된다."
2. 바울은 믿는 자들은 이처럼 행복을 얻으며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구체적 설명을 통해 보여 준다.
(1) 하나님께서 창조의 사업을 마치시고 안식을 취하신 것과(3,4절) 우리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일곱 번째 날에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것을 예로 들어 믿는 자들이 누릴 안식을 보증하였다. 
이제 하나님이 일을 마치시고 안식에 들어가 계시듯이 그는 믿는 자들을 또한 그들의 일을 끝내고 안식을 누리도록 조처하실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하였음에도 그들에게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하신 것과 또 구세주를 보내신 사실을 예로 들어 믿는 자들이 누릴 안식이 보증하였다. 
유대의 조상들은 일곱 번째 날을 주의 안식일로 지켜야 했다.  그날 그들은 무에서 유를 능력으로 창조하신 그를 찬양하고 은총의 성령에 의해 그들을 재창조해 주실 것을 간구하며 또한 그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약속된 구세주 즉 만물의 회복자를 믿도록 인도해 주실 것과 이 믿음에 의해 그들의 영혼이 안식을 얻게 해 주시도록 간구해야만 했다.
(3) 하나님이 믿는 유대인들에게 가나안을 안식처로 주시겠다고 하셨고 또한 그것을 믿었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살아서 가나안으로 들어갔던 사실을 예로 들어 믿는 자들이 누리게 될 안식을 보증하였다.
(4) 인간이 타락하기 전부터 제정되어 타락 후에까지 계속 지켜져 왔던 안식일과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불신함으로 도달하지 못했던 가나안의 안식 외에 또다른 안식이 있음이 틀림 없음을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증거한다. 
그 이유는 시편 기자가 또 다른 날 즉 또 다른 안식에 대해서 말했기 때문이다.  이로 보아서 여호수아가 유대인들을 이끌어 갔던 가나안에서의 안식보다 더욱 영적이고 훌륭한 안식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음이 틀림 없는 것이다(6-9절)
① 다윗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말한 이 안식은 복음 교회 시대에 주어진 은총과 안락과 거룩함의 안식이다. 
이 안식은 우리가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 예수와 함께 누릴 안식이다.  주 예수께서는 피곤한 영혼들과 잠에서 깨어난 인간들에게 이 안식을 주심으로 피곤을 면케 하실 것이다.
② 다윗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고 말한 이 안식은 영광 가운데 있을 안식이며, 하늘 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이다. 
이 안식은 모든 것이 완성되는 하늘 나라에서의 안식이다.  이곳에서 그들의 신실함에 대한 보답을 얻게 될 것이요 그들이 바라던 모든 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
(5) 이 안식을 이미 소유한 영광스러운 선두주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믿는 자들이 누릴 안식을 보증하셨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두주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이 육일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안식에 들어가셨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성취하시고 안식으로 들어가셨음도 확실하다.  이 사실들은 믿는 자들이 안식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본보기가 될 뿐 아니라, 확실한 전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10절)"고 하였다. 
참으로 믿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창조와 구원의 일을 하신 후 안식하신 것처럼 이미 그들의 죄의 행위와 자신의 의를 의지하려는 수고와 율법의 번거로운 제약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Ⅵ. 바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비참해질 것을 확신 있게 말하였다. 
믿지 않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의 은총이나 저 세상에서의 영광과 같은 영적 안식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맹세로 말씀하신 것이기에 확실히 실현될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가신 것이 확실한 것처럼 완강한 불신자들이 안식에서 추방될 것 또한 틀림없는 일이다.  믿지 않았던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쓰러지고 약속된 땅에 결코 들어갈 수 없었던 것처럼 믿지 않는 자들도 파멸 당하고 하늘 나라로 결코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탁월한 지도자였던 여호수아 자신의 탁월한 용기와 지도력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불신 때문에 그들을 가나안에 들어가게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들의 구세주이신 예수께서도 그의 안에 있는 모든 은총과 능력의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적인 안식이나 영원한 안식을 줄 수 없으리라는 것은 확실한 것이다. 
영원하고 영적인 안식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위해서만 남겨진 것이다.  믿지 않는 이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스스로 영원히 쉴 수 없는 상태에 몸을 내맡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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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히 4:11-16)
본장의 뒷 부분에서 바울은 먼저 되풀이하여 수신인들에게 진지하게 권고한 후 수신인들이 자기의 권고를 들어야 하는 적절하고도 강력한 이유를 제시한다.
Ⅰ. 바울의 진지한 권고.  그는 본문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11절)라고 하였다.  이제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우리의 최종 목표.  그것은 영적인 안식과 영원한 안식이다. 
즉 이 세상에서는 은총의 안식을 맛보는 것이요, 저 세상에서는 영광의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이 세상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며 하늘 나라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안식하는 것이다.
2. 이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  그것은 꾸준한 수고이다. 
수고하는 것만이 안식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일하지 않으려는 자에게는 훗날 하늘 나라에서의 안식은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한 바를 충실히 다하면 달콤하고 편안한 안식이 뒤따를 것이다.  또한 수고 끝에 오는 안식은 더욱 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힘든 노동을 한 자의 잠은 꿈처럼 달다"고 하였다(전 5:12).  그러므로 우리는 일하자.  모두 일치 단결하여 일하고 서로서로 격려하며, 서로 근면하도록 권고하자.  우리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서성대는 것을 우리가 보면 그들에게 해야 할 일을 깨우쳐 주고 열심히 일하도록 권고해야 한다.  "여보시오! 우리와 함께 일하러 갑시다.  우리가 앉아서 쉬고 있어서 되겠습니까? 우리가 빈들거리며 놀아서야 되겠습니까? 자 일하러 갑시다.  지금은 우리가 일할 때요 쉴 때는 아직 아닙니다." 이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를 일깨우고 또 서로를 권하여 의무를 행하는데 부지런해야 한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우리는 더욱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Ⅱ. 이제 바울은 위에서의 권고를 듣는 이들이 깊이 있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그래야 하는 적절하고도 강력한 이유들을 제시한다.
1. 이미 불신으로 인하여 멸망한 사람들의 끔찍한 정황의 예로들어 바울은 히브리인들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 쓸 것을 촉구한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옛사람들처럼 순종하지 않다가 낭패를 보아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우리 앞에 이미 멸망한 자들이 많이 있음을 보면서도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파멸한 자들의 예는 우리를 크게 깨우쳐 주고 있다.  그들의 버림당하여 방황하는 영혼들은 고통 가운데서 우리에게 그들처럼 죄를 지움으로 비참한 처지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또 유익을 얻을 수 있음을 이유로 들어 히브리인들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 쓸 것을 촉구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이 안식에 얻게 하고자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해 주며 부지런하도록 촉구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힘써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12절)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라고 볼 수도 있고 또 기록된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가 곧 하나님이었다"(요 1:1).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문의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말씀으로 이해한다.  이제 이 말씀에 대해서 살펴 보자.
(1) 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으며, 생생하면서 만물에 영향을 끼치고, 죄인의 양심을 사로잡으시며 죄인의 마음에 찔림을 주며 영혼의 상처를 싸매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죽은 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빛에 비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소생케 한다. 그것은 생명의 빛이다.  또한 그것은 살아 있는 말씀 곧 ‘존’(2198)이다. 
성도들이나 죄인이나 모두 죽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며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4, 25)라고 하였으며 또 "너희 열조가 어디 있느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 내 말과 내 전례들이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않았느냐?"(슥 1:5, 6)라고 하였던 것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의 말씀에 임하시면 말씀은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강력하게 사람들을 개심시키며 강력한 위안을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능력이 있으므로 어떤 견고한 요새도 파할 수 있으며(고후 10:4, 5), 죽은자를 살리시며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장님이 눈을 뜨게 하시며, 벙어리가 말을 하고, 절름발이가 걸을 수 있게 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왕국을 멸하시고, 파괴된 사탄의 왕국 위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울만치 강하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칼보다도 날카롭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면에 다같이 날이 있다.  그것은 "성령의 검"이다(엡 6:17).  또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좌우에 날이 선 검이다(계 1:16).  이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 보다도 날카롭다.  왜냐하면 어떠한 검도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장소도 들어갈수 있고, 날카롭게 해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영과 혼을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즉 영과 그 영의 지금까지의 잘못 길들어진 성격을 찔러 쪼갠다. 
이 말씀은 오래 자만하던 영혼을 겸손해지게 하며 사악한 영혼을 온화하고 순종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의 영혼에 타고 날 때부터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죄된 관습을 이 말씀은 식별해 내고 또 베어 버린다. 
이 말씀은 인간이 육에 속해 있을 때 하나님을 향하여 인간을 절대적이게 한 무지와 반역심을 베어내 버린다. 
이 말씀의 칼은 "관절과 골수" 즉 인간의 가장 은밀하고 내면적인 부분까지도 들추어 내고 잘라 버린다. 
이 말씀은 마음만을 찌를 뿐 아니라 폐부까지도 찔러 인간들로 죄를 제거하기 위하여 참기 어려운 수술도 기꺼이 받게 한다.
(4)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하였다. 
즉 말씀은 아무리 은밀하고 아직은 구체화되지 아니한 생각과 계획이라 할지라도 감찰할 수 있다. 
이 말씀은 인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목적, 그들의 비굴함, 그들의 악한 생활신조를 추구하고 있는 못되고 죄악된 목적들을 그들 앞에 드러내 보여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의 마음을 들추어서 죄인에게 그 자신의 마음을 보여 준다.  말씀에는 이같은 힘이 있으므로 그것은 우리가 믿음과 순종의 생을 사는 데 크게 유익한 것이다.
3.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함.  즉 그의 인격과 직분의 완전하심을 예로 들어 히브리인들로 안식에 들어가기를 애 쓸 것을 촉구한다.
(1) 그리스도의 인격의 완전, 특히 그의 전지(全知)하심에 대한 고찰. 
바울은 본문에서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13절).  이 13절은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신 내용 즉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는 자인 줄 알지라(계 2:23)"은 것과 일치한다. 
어떠한 창조물도 그리스도 앞에서 감춰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예배의 대상이시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모르게 은밀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자신의 전지하심에 의하여 우리가 그에게 드리는 희생 제물의 각을 떠서 아버지께 열납되게 하신다.  대제사장이 희생된 제물로 받쳐진 짐승들을 조사할 때, 희생 제물이 진정으로 온전한가를 보려고 등뼈를 가르는 것같이 우리의 대제사장의 날카로운 눈 앞에는 모든 것이 해부된 것처럼 밝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희생 제물을 시험해 보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는 마침내 그 제물에 의해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영원히 처해 있어야 할 운명을 결정하실 것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라는 말씀을 "우리가 결산보고를 드려야 하는 분 앞에 라는 뜻으로 번역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아신다.  그는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아신다.  또한 그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아시고 계신다.  우리의 공과는 모두 그의 앞에 밝히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같이 전지하시고 또 우리는 그에게 자신의 행위를 보고 할 의무가 있으므로 우리는 그가 우리보고 일을 그만 두라고 멸하실 때까지 믿음과 복종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 직책의 완전성. 
특히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그의 완전하심에 의한 고찰.  바울은 우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대제사장이 어떤 분이신지 그가 어떤 종류의 대제사장인가를 가르쳤고 그 다음 그들이 그에게 행해야 할 의무에 대하여 가르쳤다.
① 그리스도는 어떠한 대제사장인가?
본문에 보면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다"(14절)고 하였다.  그러면 그는 어떤 분인가? 
첫째, 그는 큰 대제사장이시다.  아론보다는 그리고 아론의 반열의 다른 어떤 제사장들 보다 더 위대한 대제사장이다.  율법 아래서 대제사장들은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인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희미한 유형과 그림자일 뿐이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 위대한 점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드러난다.
a. 그리스도는 하늘로 올라 가셨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율법시대의 대제사장들은 일 년에 한번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휘장 안으로 즉 하나님의 임재를 표시하는 상징적인 여러 기구들이 있는 지성소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단번에 하늘 나라로 승천하셨다. 
그가 승천하신 것은 만물을 그의 통치 아래 두시고 성령을 보내사 그의 백성들로 준비하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지상에서의 대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해 내셨다.  또한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며 그들이 드리는 제물을 열납하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일을 하늘 나라에서 하실 것이다.
b. 그리스도의 위대함은 "예수"라는 그의 이름에 의해 드러난다. 
이 이름은 의사라는 뜻이요, 구세주라는 뜻이다.  또한 신성을 지닌 분 곧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뜻의 이름이다.  이같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격을 지니셨으므로 그를 통해 오는 모든 자를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실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위대할 뿐 아니라 그의 백성들에게 자비로우신 대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15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위대하시며 또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없는 훌륭한 분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매우 친절하시며 또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지니시고 있는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철저히 우리 연약함을 맛보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타락한 상태에 처한 우리 인간들이 느끼는 감정과 고민을 몸소 겪으셨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그는 우리를 대속할 수 있었을 뿐아니라 우리를 동정도 하시는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는 죄라고는 없는 대제사장이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15절)." 그리스도는 사탄에게 시험받으셨으나 죄짓지 아니하시고 그 시험에서 빠져 나오셨다.  우리들은 시험을 받게 되면 무언가를 죄를 저지르고 만다.  우리는 굴복하지는 않더라도 의기가 소침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악마와 만났지만 결백하게 죄에서 빠져 나오셨다.  악마는 그리스도에게서 죄도 찾아 낼 수 없었고 또 어떠한 오점도 범하게 할 수도 없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서 엄격하게 시험받으셨다.  그리스도는 시험을 받으셨으나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로 결코 죄짓지 않으셨다.  이 사실이 하나님을 기쁘게 했다.  그리스도는 행위로 죄를 지은 일이 없었고 그의 입에는 궤사가 없었다.  그는 거룩하고 악의가 없으시며 더러운 곳이 없으셨다.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이제 우리의 대제사장이 어떠한 것인가를 말한 바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설명하였다.
②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가를 설명하였다. 
첫째, 우리는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한다(14절).  우리는 그리스도를 결코 부정하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머리로 기독교 가르침을 깨달아 간직해야 하며 기독교 정신의 생기를 주는 원칙을 우리의 가슴속에 간직해야 하고, 우리의 입술로는 누구에게나 공개적으로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의 삶 속에는 기독교 정신이 생활화되고 또 그 말씀에 복종함이 있어야 한다.  이제 다음을 살펴 보자.
a. 우리는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기본 진리를 지니고 실행해야만 한다.
b.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할 때, 마음의 부패로 인해 또는 사탄의 꼬임이나 악한 세속의 유혹 때문에, 우리가 확고히 하고 있던 것이 흔들릴 염려가 있다.
c. 우리가 신앙 고백의 대상이신 뛰어나신 대제사장이 우리의 그에 대한 배반을 가장 가증스럽고 변명할 수 없는 죄로 간주하신다.  배교는 가장 어리석고 감사할 줄 모르는 비열한 행위다.
d. 그리스도인은 처음에 잘 출발해야 할 뿐 아니라 또 잡은 것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끝날까지 견디는 사람들은 구원받을 것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구원을 못받을 것이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뛰어나신 대제사장에 힘을 의지하여 은총의 보좌로 기운차게 나아가야 한다(16절).
a. 은총의 보좌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예배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나님은 은총의 보좌에서 영광스럽게도 불쌍한 죄인들을 만나 주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회개하는 자세와 믿는 마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다가갈 것이다.  하나님은 엄하고 용서가 없는 재판정을 여시고 그 앞에 소환된 모든 자들에게 그들의 죄에 대한 보응으로 죽음을 선고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총의 보좌를 세우시는 길을 택하셨다.  보좌는 권위를 나타내며, 경외와 존경을 상징한다.  또한 은총의 보좌라 함은 아무리 나쁜 죄인에게도 희망이 있음을 나타내 준다.  이 보좌는 은총이 집행되는 보좌이다.  또한 이 보좌는 자유와 능력과 관대함으로 통치되는 보좌인 것이다.
b. 이 은총의 보좌에 나가서 개별적으로 또는 공적으로 예배를 드리며 그를 앙망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권리이다. 
우리가 은총의 보좌에 있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
c. 은총의 보좌에서 우리의 사명과 할 일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는 일이다."
우리는 긍휼과 은혜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긍휼을 입음으로만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며 은혜를 입음으로만이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이다.
d. 일상 생활 속에서 주를 의지하며 그의 도움심을 받는 것 이외에 우리에게는 특별히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이 요구될 때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때를 대비하여 미리 기도의 탑을 쌓아 놓아야 한다.  즉 우리는 역경을 만나므로 또는 모든 것이 잘 되므로 시험을 받게 된다.  특히 죽음을 우리에게 가장 큰 시련의 시기이다.  이러한 때를 대비하여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은 죽은 우리가 "마지막 날에 그의 긍휼하심을 받을 수 있도록" 약속하셨다(딤후 1:18).
e. 긍휼하심을 받기 위해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때, 우리는 겸손하고도 담대하게 나가야 한다. 
우리는 아무 것도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해야 된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처럼 그에게 나아가야 한다.  또한 우리는 공포와 놀람이 아니라 존경과 경의를 지니고 나아가야 한다.  또 우리는 공의의 재판석 앞에 끌려가는 것 같은 태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긍휼의 자리에 초대받아 가는 사람 같은 태도로 나아가야 한다.  그곳은 은혜로 다스려지며 사랑이 넘치는 곳이다.
f.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되고 더렵혀진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것은 다 더렵혀졌다.  그래서 우리는 단독으로 의해서만 하나님께 나가갈 수 있다.  우리는 오직 중재자의 도움에 의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는 그에게 나아갈 어떤 소망도 없다.  우리는 예수가 흘린 피를 힘입어 지성소로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다.  예수는 우리의 대변자이시다.  그는 믿는 자들을 위하여 간구하실 때, 그는 거저 간구하시지 않으신다.  그는 우리의 영혼이 필요로 하고 있고 또 바라고 있는 모든 것을 사 주실 수 있는 화폐를 지니시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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