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2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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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5장
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3.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변절을 경계하시다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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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5장
1.  대제사장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뽑혀서,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과 관계되는 일을 수행하라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예물과 속죄의 희생제사를 드리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연약함에 휩싸여 있으므로, 무지해서 유혹에 빠진 사람들을 너그러이 대하실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그 연약함 때문에, 그는 백성을 위해서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위해서도,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4.  이 영예는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얻는 것입니다.
5.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스스로를 높여서 대제사장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고 말씀하신 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6.  또 다른 곳에서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7.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경외심을 보시고서,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의 경외하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심을 얻었습니다.
8.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복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로부터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서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변절을 경고하시다
11.  ○멜기세덱을 두고서는 할 말이 많이 있지만, 여러분의 귀가 둔해진 까닭에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12.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이미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적 원리를 남들에게서 배워야 할 처지에 다시금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물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3.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어린 아기이므로, 옳은 가르침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14.  그러나 단단한 음식물은 장성한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세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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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5장
1.  For every high priest taken from among men is appointed on behalf of men in things pertaining to God, in order to offer both gifts and sacrifices for sins;
2.  he can deal gently with the ignorant and misguided, since he himself also is beset with weakness;
3.  and because of it he is obligated to offer [sacrifices] for sins, as for the people, so also for himself.
4.  And no one takes the honor to himself, but [receives it] when he is called by God, even as Aaron was.
5.  So also Christ did not glorify Himself so as to become a high priest, but He who said to Him, "THOU ART MY SON, TODAY I HAVE BEGOTTEN THEE";
6.  just as He says also in another [passage], "THOU ART A PRIEST FOREVER ACCORDING TO THE ORDER OF MELCHIZEDEK."
7.  In the days of His flesh, He offered up both prayers and supplications with loud crying and tears to the One able to save Him from death, and He was heard because of His piety.
8.  Although He was a Son, He learned obedience from the things which He suffered.
9.  And having been made perfect, He became to all those who obey Him the source of eternal salvation,
10.  being designated by God as a high priest according to the order of Melchizedek.
11.  Concerning him we have much to say, and [it is] hard to explain, since you have become dull of hearing.
12.  For though by this time you ought to be teachers, you have need again for someone to teach you the elementary principles of the oracles of God, and you have come to need milk and not solid food.
13.  For everyone who partakes [only] of milk is not accustomed to the word of righteousness, for he is a babe.
14.  But solid food is for the mature, who because of practice have their senses trained to discern good and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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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5장 (개요)
본 장에서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강론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이 주제가 너무나 고귀한 것이므로 가볍게 마무리하고자 하지 않는다.
Ⅰ. 바울은 일반 제사장직의 성격을 설명한다(1-3).
Ⅱ. 이 일반 제사직도 아무나 할 수 있은 것이 아니고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함을 말한다(4-6).
Ⅲ. 일반 제사직을 맡기 위해 필요한 자격을 언급하였다(7-9).
Ⅳ. 그리스도의 제사직의 반열의 성격.
그의 제사직은 아론의 반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에 의한 것이다(6,710).
Ⅴ.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그들의 지식이 아직도 유치한 상태에 있어서 성경의 난해하고 신비스러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책망하였다(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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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제사직(1)(히 5:1-9)
여기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직을 설명하기 위하여 일반직인 제사직의 특징이 서술되어 있다.
Ⅰ. 대제사장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취해져야만 한다.  대세사장은 사람이어야 하며, 우리와 같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며 우리와 같은 신체와 영혼을 지니고, 우리와 같은 성질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대제사장은 일만 명을 책임지게 된다.(1만명중 선발된 한명의 기수로서...1개사단규모는 3000-18000명)  이 모든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전해 준다.
1. 인간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다.
2. 하나님은 죄 지은 자가 사람 가운데서 택해진 대제사장을 통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단독으로 오는 것 허락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3. 하나님은 인간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셔서 그를 통하여 사람들은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또 하나님 자신도 그를 통하여 사람들을 맞아들이기를 기뻐하셨다는 사실이다.
4. 이제 모든 사람이 이 대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환영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Ⅱ. 누구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임명되어졌는가?
"사람을 위하여 즉 사람들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돕기 위하여" 그는 임명된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임명된 것이다. 
그리스도도 바로 그런 위치에 있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품거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입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Ⅲ. 모든 대제사장들이 어떤 목적을 위하여 대제사장직에 부름을 받았는가?
그들은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불리움을 받은 자들이다.
1. 그는 사람들이 자기 앞에 가져다 놓은 예물과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세워진 자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표시로 예물을 드리는데 이 모든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바로 대제사장의 임무인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그가 주시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이 모두 그의 것이라는 표시로 예물을 드리는 것이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1)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물은 자의에 의해 드려야 하며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기꺼이 드리는 예물이어야 한다.  또한 한번 드려지면 그것은 다시 찾아 갈 수는 없는 것이다.
(2)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인 대제사장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2. 대제사장은 속죄 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세움을 입는다. 
즉 속죄를 위하여 지정된 예물, 다른 말로 죄를 용서받고 죄인이 용납되기 위하여 드려지는 예물을 드리기 위해 세움을 입는다. 
그리스도는 이 두 목적 즉 죄를 용서하고 죄인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오신 대제사장이다.  우리의 선한 행위는 그리스도를 거쳐서 하나님께 드려져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들 자신과 우리의 선한 행위가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악행이 우리를 정죄하고 파멸시키지 못하도록 예수 자신이 드리신 속에 제물(그의 몸을 드리심)을 통해 사면되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용납되고 죄를 용서받으려면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이 크신 대제사장께 우리를 의뢰해야만 한다.
Ⅳ. 대제사장이 구비해야 할 자격(2절).
1. 대세사장은 두 종류의 인간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1) "무식한 사람" 또는 무지로 인하여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대제사장은 진심으로 무식한 인간들을 긍휼히 여기고, 하나님께 그들을 위해 중제할 수 있고 또 그들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자이어야 한다.
(2) "미혹한 자" 즉 진리와 의무와 축복의 길을 벗어난 자들을 용납할 수 있는 자이어야 한다. 
그는 사람들을 잘못된 길 즉 죄와 오류와 비참함 가운데서 그들을 이끌어내어 옳은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그는 커다란 인내와 하나님이 지닌 것과 같은 긍휼이 여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2. 그는 자신도 연약함을 지닌 자이어야 한다. 
그래야 만이 그가 인간을 이해하고 또 동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또한 이 때문에 연약함을 스스로 지니고 계셨다.  그는 우리와 같은 연약함을 스스로 지니시었다.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용기를 갖고 어려운 경우를 당할 때마다 그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겪는 모든 고통을 그리스도 당하셨기 때문이다.
Ⅴ. 이 대제사장은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아야 하는가?
대제사장은 자기의 직분에 대하여 내적 사명과 외적 사명을 둘 다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영예로운 직무는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4절).  즉 아무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될 것이며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다음의 것을 살펴 보자.
1. 제사장직은 매우 명예로운 직책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보여 주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과 그들이 당하는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는 직책이며 또 가장 높고 중요한 문제에 관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며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며 인간에게는 행복을 주는 직책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직책은 매우 존귀로운 것이다.
2. 제사장의 직책과 명예는 아무도 자기 스스로 취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스스로 이 직책을 취한다면 결코 성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며, 또 그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는 아론이 하나님께 소명을 받았듯이 그의 소명을 받지 못한 하나의 난입자인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자.
(1) 하나님은 모든 영광의 근원이신데, 특별히 참된 영적 영광의 근원이시며 또한 하나님은 참된 권위의 근원이 되신다.  그러므로 그는 아론에게 하신 것같이 일상적인 아닌 방법으로 어떤 사람을 제사장직에 부르실 수도 있고 또는 공통적인 아론의 계승자들의 경우처럼 일상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제사장직에 부르실 수도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도움과 그의 열납과 제사장직 현존과 축복을 기대할 수 있는 제사장은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축복 대신에 저주밖에 기다릴 것이 없는 것이다.
Ⅵ. 그리스도께서 소명 받으신 경우는 어떠하였는가? 
본문에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5절)"라고 하였다.  비록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대제사장 되는 것이 영광된 일인 줄로 알았지만 그는 스스로 그 영광을 취하시지 않았다.  그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나는 나의 영광을 취하려 온 것이 아니라(요 8:50)"은 말씀은 진실된 말씀이었다.  그가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생각할 때 그에게는 더 다른 영광의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인간이라는 면을 생각할 때 그에게는 영광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그는 중재자로서 하나님께로 보냄을 받으셨으므로 오신 것이지 스스로 제사장직을 취하시지는 않았다.  만일 그리스도 자신도 스스로 제사장직을 취하시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은 마땅히 제사장직을 스스로 취하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Ⅶ.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소명 받은 방법에 있어서나 인격의 거룩함에 있어서 아론보다 뛰어나심을 설명하였다.
1.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직에 소명 받으신 방법.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고 말씀하셨다(시 2:7 참조).  이 구절은 그가 하나님과 같이 영원 전부터 계셨다는 것과 인간으로서 그는 가장 뛰어나신 분이라는 것과 중보자로서의 그의 자격의 완전하심을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선언하셨고 또 자신이 그에게 중보자의 직분을 주셨다는 것과 자신이 그의 중보자의 직의 완벽함을 인정하셨다는 것과 또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서 행하신 일과 행하실 모든 일들을 인정하셨음을 엄숙히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아론에게도 그같이 말씀하시지는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소명에 대하여 말씀하신 또다른 구절이 인용되고 있다(시 110:4).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6절).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아론의 계열보다는 더 높은 계열의 제사직에 그를 임명하셨다.  아론의 제사장직은 일시적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영속적인 것이었다.  아론의 제사장직은 조상들에게서 자녀들에게 계승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사직은 일회적인 것이다.  이 대제사장은 영원하시며 따라서 그의 직책도 영원히 그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계승되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의 경우와 같이 출생과 죽음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하여 7장에 좀더 자세히 설명하게 될 것이다.
2. 그리스도는 그의 인격의 거룩성에 있어서도 아론을 능가하시는 분임이 본문에서 말씀되고 있다. 
모든 제사장들은 "타인들의 죄와 더불어 자기의 죄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죄를 위한 속죄제를 드릴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의 입에서는 궤사가 없었기 때문이다"(사 53:9).  이러한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Ⅷ. 그리스도께서 이 직분을 맡으신 것과 그의 이 직책을 맡으심으로 있어지게 된 결과에 대해 본문은 설명해 준다(7-9절).
1. 그리스도께서 제사장 직분을 맡으셨다.  "그는 육체에 계실때에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7절)."  다음을 살펴 보자.
(1) 그는 스스로 육신을 입으시고 얼마 동안 육신 안에 거하시었다. 
그리스도는 죽어야 하는 인간이 되셨으며 한정된 생을 사셨다.  그리스도는 이같이 자신도 한정된 생을 사심을 통하여 우리가 이 한정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본 보여 주셨다.  이같이 우리의 생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매일의 과업을 수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도 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 죽음의 지배 아래에 계셨다. 
그는 배고프시고, 유혹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셔야 했다니 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가! 이제 그리스도의 몸은 하늘 나라에 있다.  그러나 그 몸은 영적인 영광의 몸인 것이다.
(3)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죽음으로부터 구하실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미리 막을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막았다면 자신의 지혜와 은혜의 계획이 부수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지 아니하도록 구하셨다면,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였겠는가?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할지라"(마 27:43)고 그를 향하여 조롱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받아야 할 고통의 쓴 잔을 면하도록 허락지 않으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쓴 잔을 안 마셨다면 우리가 그 쓴 잔을 마셔야 할 것이고, 또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계실 때 아버지께 간구와 소원을 드렸다. 
이 사실은 그가 하늘 나라에서도 우리를 위해 중제하신다는 하나의 예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가 기도하신 예는 여러 군데서 찾아 볼 수 있다.  본문의 구절은(마 26:39; 27:46), 그의 수난 바로 이전에 하신 기도(요 17장)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이 기도를 그의 제자들과 그의 이름을 믿을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드린 기도였다.
(5) 그리스도께서 드린 기도와 간구는 통곡과 눈물이 포함된 간구와 기도였다. 
이로써 그는 우리에게 기도해야 한다는 본을 보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데 있어서 뜨겁고 끈질기게 간구 하여야 한다는 본을 보여 주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중에 형식적인 기도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에 비하여 진심어린 눈물의 기도는 얼마나 적었던가...
어떤 방법으로 그것이 가능하였는가? 그리스도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으며 또 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으므로 그는 죽음을 감당하시고 또 영광스러운 부활에 의해 죽음을 극복하실 수 있었다.  무슨 이유로 그에게 그런 응답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을까? 이에 대하여 본문은 "그의 경외 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노와 인간의 죄의 무거움으로 인하여 경외감을 가지고 계셨다.  인간으로서의 그는 너무나 짐이 무거워 만약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안과 도움이 없었다면 그대로 쓰러질 수밖에 없는 처지이셨다.  그러나 그는 응답을 받으셨고 죽음의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도움을 입으셨다. 그는 죽음을 극복하셨다. 
죽음을 피할 길을 누구에게나 없다.  오직 죽음을 통과함으로써만 죽음은 극복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병에서는 회복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 죽음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죽음을 통과하므로 죽음에서 구원받은 자들이 마침내는 영광스럽게 부활함으로 죽음에서 완전히 놓여날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러한 성도들의 부활의 전조요 첫 열매인 것이다.
2. 그리스도가 제사직을 맡으신 결과(8,9절).
(1)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어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8절).  다음을 유의하라.
① 그리스도의 특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곧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였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고난을 면제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양자 제도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누구도 고통으로부터 절대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채찍을 받지 않은 사람을 어찌 아들이라 할 수 있겠는가?"
②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셨다. 
그는 순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통하여 능동적으로 순종하는 법을 배우셨다.  그는 몸소 체험을 통해 그 일을 배우셨다.  그가 결코 불순종한 적은 없었지만 전에는 결코 죽기까지 즉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복종하셔야 될 경우는 없었었다.  여기서 그는 우리에게 우리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분을 보여 주셨다. 
복종함을 배우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고난이 필요한 것이다.
(2) 이런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완전케 되셨으며, 자기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들을 영원히 구원하실 수 있는 구주가 되시었다(9절).
① 고난을 통하여 또한 피흘림으로 제사장의 직분을 온전히 감당하셨다.
②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지상에서 수행해야 할 임무를 완수하시고, 불의한 자들로 하나님께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완전케 되셨다고 할 수 있으며 완전한 화해를 이루셨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③ 이 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인간들의 영원한 구원의 원천이 되셨다. 
그는 하나님께 고난의 대가를 치르심으로 자기의 백성들이 거룩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하셨고 죄와 불행으로부터 그들을 완전히 구원하시었다.  이러한 구원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언약 가운데 구원을 성취하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이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성령을 보내 주셨다.
④ 이러한 구원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자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교리적으로 그리스도에 관하여 조금 알고 있다거나 또는 그에 대하여 신앙 고백을 한다고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에게 순종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영광을 받으시사 우리를 구하시는 구제주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 되셨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왕으로 모시고 그들을 다스려 주시기를 원하는 사람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구세주가 되시려 하시지 않는다.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그의 적으로 여기시고 그들이 행한 바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즉 그에게 자신을 봉헌하고 또 자기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가는 자들에게는 그는 그들의 구원의 ‘아티오스’(159) - 즉 원천이 되실 것이다.  그들은 영원히 그를 그들의 구원의 주로 고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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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제사직(2)(히 5:10-14)
여기서 바울은 시편 110편에서부터 인용한 6절의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 그것을 설명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제사직의 계열, 곧 멜기세덱의 계열을 설명하였다.  다음을 살펴보자.
Ⅰ. 바울은 멜기세덱이라고 불리우는 신비한 인물에 관하여 유대인들에게 설명할 것이 많다고 선언하였다.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은 영원한 것이므로, 그를 통하여 주어지는 구원 또한 영원할 것이라고 그는 선언하였다.  이 멜기세덱에 관하여서는 7장에서 더욱 자세히 언급되었다.  어떤 이는 바울이 본문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알아듣도록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말한 그 대상은 멜기세덱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유형이다)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역주: 한글 개역에는 "멜기세덱에 관하여는"이라고 하였으나 공동 번역은 "이것은 관해서는"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신비하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할 말이 많았으나 설명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구속자의 직분과 인격 안에는 커다란 신비가 있다.  기독교는 경건의 큰 신비이다.
Ⅱ. 바울은 왜 자기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즉 우리의 멜기세덱에 관하여 그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가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에 관하여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은 그의 편지를 받는 히브리인들이 듣는 것이 둔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11절)"라고 하였다. 
듣는 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전파되는 내용이 너무 난해하기 때문인데 이유가 있겠고 또 복음 사역자들이 미숙하여 그들이 전하려는 내용을 명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데도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잘못은 듣는 자들에게 있다. 
이해가 둔한 자들 때문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 믿음의 가진 사람들까지도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이해가 더디고 또 믿는 것도 더디다.  그들은 이해력이 약하여 영적인 일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그들의 기억력도 빈약하여 오래 간직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Ⅲ. 바울은 그들의 연약함에 의해 빚어지는 잘못을 지적하였다. 
그것이 단순한 자연적인 결점이 아니라, 죄된 결점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먼저 들어서 크게 진보될 수 있는 이점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복음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이 다른 사람들 보다 큰 것이다.  그러므로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다(12절)"라고 하였다.  다음을 유의하라.
1. 그들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은 상당한 수준에 있었어야 옳았다. 
그들은 복음에 대하여 좋은 선생에게 지도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에 있었어야 옳았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우게 된다.
(1) 하나님은 우리로 성경에 대한 지식을 얻을 기회를 허락하시며 또한 가르칠 자를 허락하신다는 사실이다.
(2) 투자를 많이 한 사람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실이다.
(3) 복음을 잘 이해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공중 앞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해도 개인적으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4) 그 자신이 영적 지식에 있어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지 않고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선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 바울이 유대인에게 건 기대가 좌절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이러한 그의 실망은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12절)라는 말씀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음을 기억하자.
(1)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이해하기 수비고 또 꼭 알아 두셔야 하는 초보적인 진리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2)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는 깊고 장엄한 신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초보적인 진리를 깨우친 사람들은 이 오묘한 진리까지 깨달아야 하며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기까지 되어야 한다.
(3)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진보를 이루기 보다는 오래 전에 배웠던 초보적인 지식마저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실상 은혜에 의하여 발전되지 않는 사람은 곧 퇴보되는 자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연령으로 보거나 교회에서의 지위로 보거나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은 죄요 수치인 것이다.
Ⅳ. 바울은 복음의 교훈들이 그 듣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교회 안에는  어린이들도 있으며 성인들도 있다(12-14절).  또한 복음의 진리에 있어서도 어떤 진리는 우유와 같이 이해하기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진리는 질긴 고기와 같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는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자.
1. 어린이들 즉 의의 말씀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우유를 주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가장 평범한 진리로 교육되어야 하며 가장 평이한 방법으로 진리를 전해 주어야 한다.  이런 자들에게는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무리가 안 가게 전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 진리에 있어서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자일지라도 멸시하지 않으신다.  그는 그들에게 적절한 음식을 먹여 주신다.  그리스도에게 어린 아이처럼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항상 어린이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린이의 상태를 벗어나도록 해야만 한다. 
우리는 죄악에 있어서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있어야 되지만 진리를 깨닫는게 있어서는 성인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이라(14절)는 사실이다.  초보적인 지식을 잘 배워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보다 깊은 비의를 깨달아야 한다.  이 비의를 깨달음으로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여 선과 악, 마땅히 행할 의무와 죄,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을 명심하자.
(1)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과 청년과 같은 상태에 이른 사람들과 성인이 된 상태에 있는 사람은 여러 단계가 있다.
(2)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생명을 받고 난 다음에는 그 영적 생명을 보존하도록 풍부한 자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로 인해 주어진 생명을 유지해 주는 음식이며 자양분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새로 태어난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말씀의 것을 사모하라.  그리하여 자라나도록 하라"고 하였다.
(4) 사역자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구분하여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상태에 적당한 정도의 말씀을 줄 수 있어야 지혜로웁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는 우유를, 성숙한 사람들에게는 고기를 주어야 한다.
(5) 육체에 여러 가지 감관이 있는 것처럼 영혼에도 여러 가지 감관이 있다.  영혼도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또 맛을 안다.  육신과 마찬가지로 영혼에도 감관이 있는 것이다.  이 영적인 감관들은 죄로 인하여 대부분 상실되어 있으나 은혜에 의하여 영적 감관들은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6) 이 영적인 감관이 개선되어 완전히 기능을 발하게 될 때 선과 진리의 맛은 달콤하며 악과 거짓의 맛은 쓰다는 것을 재빠르게 또한 강력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성이나 믿음뿐 아니라 영적인 감각까지도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과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일, 우리의 영혼에 유익을 주는 것과 해가 되는 일 사이를 구별하도록 하라고 가르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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