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2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히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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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제12장 주께서 주시는 징계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한 자들에게 주는 경고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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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제12장 주님의 훈련
1.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2.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  ○죄인들의 이러한 반항을 참아 내신 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4.  여러분은 죄와 맞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
5.  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자녀에게 말하듯이 하신 이 권면을 잊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주의 훈련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에 낙심하지 말아라.
6.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을 훈련하시고, 자녀로 받아들이시는 자마다 채찍질하신다."
7.  주께서 여러분을 훈련하시거든 그것을 견디어 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녀에게 대하듯이 여러분에게 대하십니다. 부모가 훈련하지 않는 자녀가 무슨 자녀이겠습니까?
8.  모든 자녀가 받는 훈련을 여러분이 받지 않는다고 하면, 여러분은 사생아이지, 참 자녀가 아닙니다.
9.  우리가 육신의 부모도 우리를 훈련하는 분으로 모시고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복종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더욱더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0.  육신의 부모는 잠시 동안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훈련하였지만, 영들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훈련하십니다.
11.  모든 훈련은 그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생각되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연단받은 사람들에게 의로움이 깃든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을 꼿꼿이 세워서,
13.  똑바로 걸으십시오. 그래서 저는 다리가 삐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한 자들에게 주는 경고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또 쓴 뿌리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16.  또 음란한 자나, 음식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와 같은 속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17.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에서는 그 뒤에 축복을 상속받기를 원하였으나, 거절당하였습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구하였건만,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18.  ○여러분이 나아가서 이른 곳은 시내 산 같은 곳이 아닙니다. 곧, 만져 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흑암과 침침함이 뒤덮이고, 폭풍이 일고,
19.  나팔이 울리고,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그러한 곳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더 말씀하시지 않기를 간청하였습니다.
20.  그들은 "비록 짐승이라도 그 산에 닿으면, 돌로 쳐죽여야 한다" 하신 명령을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21.  그 광경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세도 "나는 너무도 무서워 떨린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22.  여러분이 나아가서 이른 곳은 시온 산,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시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여러분은 축하 행사에 모인 수많은 천사들과
23.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집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께 나아왔고,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하게 말하는, 그가 뿌리신 피 앞에 이르렀습니다.
25.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 사람들이 땅에서 경고하는 사람을 거역하였을 때에, 그 벌을 피할 수 없었거든, 하물며 우리가 하늘로부터 경고하시는 분을 배척하면, 더욱더 피할 길이 없지 않겠습니까?
26.  그 때에는 그분의 음성이 땅을 뒤흔들었지만, 이번에는 그분께서 약속하시기를 "내가 한 번 더,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흔들겠다" 하셨습니다.
27.  이 '한 번 더'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을 없애 버리시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까닭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을 남아 있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그래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섬깁시다.
29.  "우리 하나님은 태워 없애시는 불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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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2장
1.  Therefore, since we have so great a cloud of witnesses surrounding us, let us also lay aside every encumbrance, and the sin which so easily entangles us, and let us run with endurance the race that is set before us,
2.  fixing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faith, who for the joy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despising the shame, and has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
3.  For consider Him who has endured such hostility by sinners against Himself, so that you may not grow weary and lose heart.
4.  You have not yet resisted to the point of shedding blood in your striving against sin;
5.  and you have forgotten the exhortation which is addressed to you as sons, "MY SON, DO NOT REGARD LIGHTLY THE DISCIPLINE OF THE LORD, NOR FAINT WHEN YOU ARE REPROVED BY HIM;
6.  FOR THOSE WHOM THE LORD LOVES HE DISCIPLINES, AND HE SCOURGES EVERY SON WHOM HE RECEIVES. "
7.  It is for discipline that you endure; God deals with you as with sons; for what son is there whom [his] father does not discipline?
8.  But if you are without discipline, of which all have become partakers, then you are illegitimate children and not sons.
9.  Furthermore, we had earthly fathers to discipline us, and we respected them; shall we not much rather be subject to the Father of spirits, and live?
10.  For they disciplined us for a short time as seemed best to them, but He [disciplines us] for [our] good, that we may share His holiness.
11.  All discipline for the moment seems not to be joyful, but sorrowful; yet to those who have been trained by it, afterwards it yields the peaceful fruit of righteousness.
12.  Therefore, strengthen the hands that are weak and the knees that are feeble,
13.  and make straight paths for your feet, so that [the limb] which is lame may not be put out of joint, but rather be healed.
14.  Pursue peace with all men, and the sanctification without which no one will see the Lord.
15.  See to it that no one comes short of the grace of God; that no root of bitterness springing up causes trouble, and by it many be defiled;
16.  that [there be] no immoral or godless person like Esau, who sold his own birthright for a [single] meal.
17.  For you know that even afterwards, when he desired to inherit the blessing, he was rejected, for he found no place for repentance, though he sought for it with tears.
18.  For you have not come to [a mountain] that may be touched and to a blazing fire, and to darkness and gloom and whirlwind,
19.  and to the blast of a trumpet and the sound of words which [sound was such that] those who heard begged that no further word should be spoken to them.
20.  For they could not bear the command, "IF EVEN A BEAST TOUCHES THE MOUNTAIN, IT WILL BE STONED."
21.  And so terrible was the sight, [that] Moses said, "I AM FULL OF FEAR AND TREMBLING."
22.  But you have come to Mount Zion and to the city of the living God, the heavenly Jerusalem, and to myriads of angels,
23.  to the general assembly and church of the first-born who are enrolled in heaven, and to God, the Judge of all, and to the spirits of righteous men made perfect,
24.  and to Jesus, the mediator of a new covenant, and to the sprinkled blood, which speaks better than [the blood] of Abel.
25.  See to it that you do not refuse Him who is speaking. For if those did not escape when they refused him who warned [them] on earth, much less [shall] we [escape] who turn away from Him who [warns] from heaven.
26.  And His voice shook the earth then, but now He has promised, saying, "YET ONCE MORE I WILL SHAKE NOT ONLY THE EARTH, BUT ALSO THE HEAVEN."
27.  And this [expression], "Yet once more," denotes the removing of those things which can be shaken, as of created things, in order that those things which cannot be shaken may remain.
28.  Therefore, since we receive a kingdom which cannot be shaken, let us show gratitude, by which we may offer to God an acceptable service with reverence and awe;
29.  for our God is a consuming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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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2장 (개요)
본 장에서 바울은 전 장에서 설명했던 내용들을 수신인들에게 적용시킨다. 그리고 앞장에서의 내용을 이유로 들어 그리스도인들의 인내와 끈기로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바울은 수신인들을 더욱 설득하기 위하여 다음의 사실들을 제시하고 있다.
Ⅰ. 바울이 지금까지 언급했던 것보다 더욱 위대한 본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1-3).
Ⅱ. 그리스도인인 그들이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이 참지 못할 정도의 어려운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있으며 또 은혜를 위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들에게 인내할 것을 권하였다(4-17).
Ⅲ. 지상의 복음 교회와 하늘의 승리의 교회 사이가 상관적이요 서로 일치된다는 점을 들어 그들의 인내를 권고하였다(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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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위대한 본이 되시는 그리스도(히 12:1-3)
여기에서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강조하였고 또 그들이 행해 주기를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큰 의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  본문에 보면 이에 대하여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1절)라고 하였다.  본문에 나타나는 그들이 해야 할 의무는 두 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예비 단계로써 있어야 할 일들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을 위해 있어야 할 일이다.
Ⅰ. 예비 단계로써 이루어야 할 의무.  그것은 "모든 무거운 것과 죄를 벗어 버리는"(1절) 것이다.
1. "모든 무거운 것"이라 함은 육이나 현재의 생활이나 세속에 대한 과도한 애정과 염려를 말한다.  현재의 생활에 대한 지나친 염려나 지나친 사랑은 영혼에 대하여 너무 무거운 짐이 되며, 영혼이 위로 향해 올라가려 할 때 끌어 내리며, 영혼이 나가려고 할 때 뒤로 잡아끄는 그런 역할을 한다.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해야 할 의무와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들을 더욱 무겁고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게 한다.
2. "우리를 얽어매는 죄"란 우리로 쉽게 죄에 빠지게 하는 환경, 우리의 관습, 우리의 동료들에 의해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죄란 저주해야 하는 불신의 죄를 뜻하거나, 또는 유대인들이 너무 구약에 집착하는 죄를 뜻하는 것이든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외적, 내적인 모든 구속에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Ⅱ. 완전을 위해 이루어야 할 의무.  이에 대하여 본문에는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1절)라고 하였다.  바울은 경주에 비하여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말하였다.  이는 그가 올림픽이나 또는 기타의 경기를 통하여 응용한 말일 것이다.
1. 그리스도인에게는 달려야 하는 경주가 있다.  그것은 섬김의 경주요 고난의 경주이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코스는 복종인데 우리는 능동적으로 때로는 수동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2. 이 경주가 그리스도인들 앞에 놓여 있다.  우리들이 달려야 할 경주 과정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 즉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허다한 증인들의 본을 통하여 설계된 것이다.  경주에는 방향이 있고 또 가서는 아니 될 경계도 있다.  또한 우리가 달려야 할 목표와 또 기대하는 상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3. 이 경주는 인내와 끈기로써 해내야 한다.  경주를 할 때 우리에게는 우리의 길 앞에 놓여진 시련들을 극복하려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또한 경주를 할 때 기권을 하거나 돌아서 버리고 싶은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의지도 있어야 한다. 믿음과 인내는 모든 것을 정복하는 은혜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인내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언제나 생생하게 역사 되어져야 한다.
4. 그리스도인들은 그들로 그리스도인으로 잘 달려가게 격려하교 또 원가를 북돋아 주는 훌륭한 분을 가지고 있는데 그 분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앞장에서 언급하였던 구약의 성도들은 결코 이러한 분을 소유하지 못했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 보자"(2절)고 하였다.  여기에서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주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이에게는 어떤 분이신가? "그는 믿는 이들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시다"(2절).  즉 그리스도는 믿음의 시작과 끝이시며 보상자이시다.
① 그는 믿음의 근원이시다.  즉 그는 우리의 믿음의 목적이 되실 뿐만 아니라 근원이 되신다.  그는 우리의 믿음의 위대한 지도자이시며 선조이시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셨고" 믿음의 성령을 우리에게 사서 주신 분이시며 믿음의 규례를 반포하신 분이시고 믿음의 은혜의 근원이시다.  그리고 그는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다.
② 그리스도는 우리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이다(2절).  그는 성경의 모든 예언과 언약의 완성자이시며 또 완성이시다.  그는 성경을 온전케 하는 분이시며 은혜의 완성자이시며, 믿는 사람들의 영혼 안에서 능력으로써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분이시다.  그는 그들의 믿음의 재판자이시며 보상자이시다.  그는 결승점에 도달한 자를 가려내시며 또 잘 달린 사람들은 그에게서 또한 그 안에서 상을 받는다.
(2)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경주를 하실 때 만난 고난이 무엇인가?
① 그는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셨다"(3절).  그는 죄인들이 말과 행동으로써 행한 반역을 참으셨다.  죄인들은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괴롭혔으며, 그의 크신 계획이 실현되지 못하도록 훼방하였다.  그는 그들을 쉽게 격퇴시키고 혼미케 할 수 있으셨지만 또한 실상 때때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시기도 하셨지만 그는 대부분 죄인들의 악한 태도를 인내로써 참아내셨다.  그들은 그리스도 자신과 신인(神人)으로서의 그의 인격과 그의 권위와 그의 말씀을 넘어뜨리려고 도전하였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참아 내셨다.
② "그는 십자가도 참아 내셨다."(2절).  그는 이 세상에서 만난 모든 고통들을 견뎌내셨다.  그는 때가 이르자 십자가를 지시고 마침내는 거기 못박히셨으며, 고통스럽고 저주스러웁고 욕된 죽음을 견디어 내셨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는 죄인들과 가장 악한 자들과 한가지로 취급을 받으셨다.  그럼에도 그는 불굴의 인내와 의지로 이 모든 것을 참아 내셨다.
③ "그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2절).  그는 살아 계신 동안에와 죽음에 이르렀을 때에 자신에게 던져진 모든 욕을 무시하였다.  그는 이러한 모든 비난 앞에서 초연하셨다.  그는 자신이 죄가 없으며, 뛰어난 분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으며, 또 자기를 경멸하는 자들의 악함과 무지를 못 본 체 하셨다.
(3) 이러한 비 할데 없는 고통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영혼을 지켜 준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앞에 놓인 즐거움이었다"(2절).  그는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바라보고 계신 것이 있었다.  그것을 볼 때 그는 몹시 기쁘셨다.  그는 자신이 고통을 겪음으로써 하나님의 상처받은 공의를 만족케 하며, 하나님의 영예와 통치를 보증할 수 있다는 것을 내다보시고 기뻐하셨다.  또한 그가 자기가 고통을 겪음으로 자신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며 은혜의 언약을 보증하고 또 이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며 죄인의 괴수에게도 구원의 길을 열어 주며 또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며 자신이 많은 형제들 중의 장자가 되심을 아시고 기뻐하셨다.  이 앞에 놓인 것들이 그에게 기쁨이 되었던 것이다.
(4) 그리스도께 겪으신 고통에 대한 보답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게 된 것이다"(2절).  중재자로서의 그는 가장 높은 명예와 가장 크신 능력과 권능의 위치로 올리움을 받으셨다.  그는 이제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어떤 교분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는 거기서 이루어져야 할 모든 일을 행하신다.  "그는 영원히 살아 계시면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중재하신다."
(5) 이러한 예수께 대하여 우리가 하여야 할 의무가 무엇인가?
① 우리는 그를 바라보아야 한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우리의 본보기로 삼고 그를 보고 용기를 얻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고통 가운데서 그를 바라봄으로 그의 지시와 도우심을 받고 또 그가 우리를 받으시게 해야 한다.
② 우리는 그를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되 깊이 생각하고 그의 경우를 보고 자신의 해야 할 바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조리 있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통과 우리의 고통을 비교해 보고 또 그의 고통이 그 성격과 정도에 있어서 우리 것 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내 또한 우리의 인내보다 큰 것이었다는 것도 찾아내어 그를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완전한 분으로 삼아야 하겠다.
(6) 이와 같이 함으로써 우리들이 얻을 수 있는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얻게 되는 유익은 이를 통해 낙심치 않고 피곤케 되지 않는 것이다(3절).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3절)라고 하였다.  이제 다음을 생각해 보자.
① 아무리 믿음이 좋은 자라고 할지라도 시련과 고통을 당하게 되면 피곤하게 되고 낙심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시련이 오래고 무거우면 더 그렇다.  이러한 현상은 믿음이 불완전하고 타락된 본성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발단되는 것이다.
② 이것을 막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를 생각하는 것이다.  믿음과 명상은 신선한 힘과 위로와 용기를 가져다 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으면, 도한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망은 그들의 투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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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이유와 그것이 주는 이유(히 12:4-17)
본문에서 바울은 히브리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는 가운데 겪는 고난의 정도가 가벼운 것이며 또 그들에게 유익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인내할 것과 믿음이 흔들리지 말 것을 강조하였다.
Ⅰ. 그들이 겪는 고통의 정도가 가벼운 것으로 참을 수 있는 것임을 바울은 먼저 말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4절)라 하였다.
1. 바울은 그들이 많은 고난을 받았고 죄를 대항해서 싸우느라고 고통이 컸음을 인정한다.
(1) 싸움의 원인은 죄이다.  그리고 죄와 대항해 싸우는 것은 선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대한 가장 나쁜 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 전쟁은 존귀한 것이며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넘어뜨리고 멸망시키려 하는 것과 대항하여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해야만 하며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2) 모든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징병된 군사들이다.  그들은 죄와 싸우기 위해 또한 죄된 가르침과 행실과 자기나 또는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죄된 습관이나 관습과 싸우기 위해 징병된 군사인 것이다.
2. 바울은 수신인들에게 그들이 더욱 많은 고통을 겪여야 할 것과 또한 그들이 지금까지는 다른 구약의 성도들처럼 대단한 고통을 받지는 않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아직 순교가 요구되기까지는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그들이 이러한 고난에 처하게 되겠는가 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배울 수 있다.
(1) "구원의 주인"이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처음부터 혹심한 시련 가운데로 불러내지는 않으신다.  그는 나중에 올더 큰 고난을 예비하여 작은 고난으로 믿는 자들을 단련시키신다.  그는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지 않으신다.
(2)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는 선하시어서 시련을 주시는 만큼 또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겪는 고통을 자랑스럽게 여겨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고난 속에 깃들어 있는 그리스도의 긍휼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피를 흘리기까지 하는 " 무서운 고난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을 동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적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피를 흘려 자신들의 증언을 수호하는 사람들을 동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3) 그들은 자신보다 더 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보고 또 그들도 언젠가는 더 커다란 고난을 당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자신들이 보잘 것 없는 고난 앞에서도 기진맥진해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만일 우리가 사람과 달리기를 하다가 지쳐버린다면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는가?  또한 우리가 살기 좋은 기름진 땅에 살면서도 곤비하게 된다면 우리가 살기 좋은 기름진 땅에 살면서도 곤비하게 된다면 요단강이 범람하는 땅에서는 어떻게 하겠는가?(렘 12:5)
Ⅱ.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닥칠 고난이 은혜로운 성격의 것임을 들어 인내할 것을 권면한다.  박해자들과 그리스도인의 적들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주는 도구 역할을 할 것이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채찍의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모든 박해자들까지 다 주관하시며, 그들까지 자신의 선하신 목적에 쓰여지게 하신다.  이 사실을 바울이 그들에게 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들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5절).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인간들이 볼 때는  박해라고 생각되어지는 고난도 실상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염려하셔서 내리시는 징계요 채찍인 것이다.  신앙에 대한 박해는 종종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 범하는 죄에 대한 선도의 질책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신앙 고백자들이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박해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앙 고백자들이 더욱 굳은 신앙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해자들을 통해 그들을 질책하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믿는 자들이 신앙 고백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박해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앙 고백자들이 그 신앙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응징하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고난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지시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난을 받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좌우로 치우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1)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의 질책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을 경시하지 말고, 고난 앞에서 어리석어지거나 둔감해지거나 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 고난은 하나님의 회초리요 죄에 대한 질책이기 때문이다.  고난을 멸시하는 자는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며 죄를 가볍게 여기는 자인 것이다.
(2)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은 질책 받을 때 낙심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고난받을 때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되며, 불평하거나 조바심해서도 안 된다.  다만 믿음과 인내로 견뎌야 한다.
(3) 만약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위의 두 가지 경우 중의 어느 한 쪽으로라도 치우치게 되면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진실하고 온화하신 애정으로써 그들에게 내려 주신 약속과 권면을 잊었다는 표시인 것이다.
3. 고난도 바르게 견디기만 한다면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불만의 표시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돌보아 주시며 사랑해 주신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6-7절).  그러므로 본문에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고 하였다.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아무리 훌륭한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그에게는 징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들도 결점과 어리석은 면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시정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은 죄를 짓게 내버려두시지만 그의 자녀들의 죄는 반드시 시정케 하신다는 사실이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가족의 한 구성원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징계가 있어져야 할 때 그들에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3) 징계하는 아버지만이 아버지다운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현명하고 좋은 아버지 치고 그가 비록 남의 자식의 잘못은 눈감아 버릴지라도 자기 자식들이 잘못할 때 묵인해 주는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는 자녀에 대해 부자라는 인연 때문에 또한 자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잘못 보다는 특히 자기 자녀들의 잘못에 대하여 민감한 법이다.
(4) 죄를 지었는데도 책망 받음이 없이 사건이 무서워 무마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버림받았다는 슬픈 표시인 것이다.  그렇게 된 자는 아들이 아니라 사생아이다.  그러한 자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씨, 다른 자녀인 것이다(7,8절).
4. 육신의 아버지의 징계에 대하여 우리가 공경하는 자세로 감수해야 한다면 하늘 아버지의 징계에 대하여는 우리가 더욱 공경하는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9,10절).
(1) 바울은 자녀들이 지상의 부모에게 의무를 다하며 복종하는 것을 마땅한 것으로써 말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이라고 하였다.  부모의 정당한 명령에 대해 공정하므로 복종하는 것은 자녀들의 의무이다.  또한 자신들이 불복종하였으므로 부모에게서 징계가 주어질 때 그 징계를 공경하는 자세로 받아들임 역시 자녀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이다.  부모는 필요할 때 자녀들에게 징계할 권위와 책임을 하나님께로부터 전해 받았다.  또한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부모의 징계를 바르게 받아들일 것을 명하셨다.  만일 자녀들이 응당한 징계가 주어지는 대도 완고한 자세를 취하고 또 불만만 품는다면 이는 이중적인 잘못을 범하는 것이 된다.  즉 징계가 주어지는 것은 이미 잘못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인데 게다가 부모의 징계권에 대하여 항거하므로 한 가지 죄를 더 범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2) 바울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대하여 더욱 겸손하여 순종하는 태도를 취해야 함을 재 권고한다.  그는 이러한 권고를 작은 자에 불과한 육신의 아버지에게 복종해야 한다면 더욱 크신 분의 하나님께 복종함은 더욱 당연한 것이라도 논리에 의하여서 행하고 있다.
① 지상의 아버지는 우리 "육신의 아버지"에 불과하시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리 영의 아버지"시다.  지상의 아버지는 우리의 몸을 낳는데 도구의 역할을 하신 분이다.  그러나 이 몸은 고깃덩이에 불과하며 천하고 가시적이며 악한 것이며 짐승의 육체나 다를 바 없이 흙으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육체는 신비한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고 우리의 인격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할 뿐 아니라 영혼이 거하는 장막이요 영혼으로 역사하게 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이 육신을 우리에게 부여하는데 도구 역할을 한 부모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의 아버지 되신 자에게는 더욱 더 큰 존경과 사랑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 영혼의 본체는 물질적인 요소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물질이라도 물질로는 영혼을 만들 수가 없다.  영혼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유래된 것이다.  그는 흙으로 사람의 몸을 만드신 후 인간의 몸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리하여 인간은 생명을 지니게 된 것이다.
② 지상의 부모는 "자기들의 마음 내키는데 따라서" 자녀들을 징계한다.  때때로 부모들은 자식들의 태도를 고치기보다는 감정에 치우쳐서 벌을 주는 수가 없다.  육신의 아버지들은 이러한 결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감정에 치우쳐서 부모들이 자식을 구타할 때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부모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또한 정작 있어야 하겠으므로 가한 징계까지 그 효력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영의 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들이라고 해서 기분 내키는 대로 자녀들에게 괴로움을 주거나 고난을 주시지는 않는다.  그는 언제나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만" 견책하신다.  또한 그가 견책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로 그의 거룩하심에 동참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의 견책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죄된 요소들을 시정하고 치료하며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인 아름다운 요소들을 개발 증진케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보다 하늘 아버지를 닮고 그와 같이 행동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이들이 가능한 한 자신을 닮게 하려고 하신다.  이러한 목적으로 필요할 때면 그는 자녀들을 징계하시기도 한다.
③ 육신의 아버지는 우리가 아직 어린애인 미성년일 때만 우리를 견책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잠시 동안"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투정부리는 연약한 아이일 때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또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아버지가 우리를 견책해 주신데 대하여 고마웁게 여기게 된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일생이란 저 세상에서의 삶에 비할 때 유년기와 같은 것으로 짧고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견책을 통해 단련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저 세상에서의 완전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그때에야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견책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가를 깨닫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
④ 하나님의 견책은 저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의 자녀들은 처음 견책을 당할 때는 그 견책이 자기를 향한 저주인가 하여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처음 견책을 당할 때는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욥 10:2)라고 부르짖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징계하시는 것은 저주받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로 세상과 함께 죄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인 것이다"(고전 11:32).  그는 그들의 영혼의 파멸과 죽음을 막고 그들로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닮으므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시기 위해 견책하신다.
5. 하나님의 아들들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그들에 대한 처사를 느낌에 의해 판단할 것이 아니라(즉 육신에 느껴지는 대로) 이성과 믿음과 경험에 입각하여 판단해야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는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1절)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고난을 느낌으로만 판단할 때 어떠한 마음이 주어지는지를 생각해 보자.  고난이 가해지면 육체는 감사한 생각보다 먼저 괴로운 생각을 가지게 된다.  육신의 감관은 고난을 느끼고 고난에 의해 괴로워하고 신음한다.
(2) 고난을 믿음으로 판단할 때 와지는 마음의 변화를 생각해 보자.  믿음은 감각에 의해 느껴지는 괴로움에 대한 불평을 제거시켜 주고 거룩하게 하는 징계는 의의 결실을 준다는 것을 마음에 설득시켜 준다.  이러한 의의 결실은 평온을 주며 영혼을 안정시키고 위로한다.  고통은 더 많은 의를 낳게 하므로 오히려 평화를 준다.  왜냐하면 의의 열매는 평화이기 때문이다.  만약 육신의 고통이 이와 같이 마음의 평안을 주는데 기여한다면 그리고 현재의 짧은 괴로움이 오래 지속되는 축복의 열매를 맺어 준다면 고통을 당함으로 괴로워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들이 견책을 당할 때 오직 관심을 두어야 할 사실은 어떻게 하면 그 고난을 잘 인내해 내고 그 고난을 통하여 보다 거룩함에 이를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①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그들은 인내로써 견뎌내야 한다.  바울이 이 주제를 논한 목적은 그들로 고통을 인내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고난이 그들을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울 것"(12절)을 재차 권고하였다.  무거운 고통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두 손을 내려뜨리게 하며 무릎을 끓게 만들고 그를 낙담시키고 실망시킨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고난에 이같이 지지 말고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영적 경주를 좀 더 잘 달릴 수 있기 위해서이다.  믿음과 인내와 거룩한 용기와 결단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보다 굳굳하게 해줄 것이며 곧 바로 앞을 향해 걷게 해 줄 것이요 방황하거나 흔들리지 않게 해 줄 것이다.  둘째, 그와 함께 같이 길을 달려가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낙심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향해 간다고는 하지만 절뚝거리면서 또는 힘없이 비틀거리며 걷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태는 다른 사람들도 낙심시키고 또 서로에게 장애가 된다.  그러므로 용기를 얻고,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 나라로 더욱 진진하게 서로를 도웁는 것이 되는 것이다.
② 그들은 자기들이 당하는 고난은 그들을 더 높은 거룩함의 단계로 이끄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고난이 하나님의 뜻인 한, 그의 자녀들을 새롭게 힘을 내고 참으면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는 것"을 그들의 과제로 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난을 당할 때 인내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을 향하여서도 결코 평온하고 평화롭게 대할 수 없으며, 또 하나님께 대하여 경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과 인내는 근면하게 기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르게 해 주는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자.  첫째, 고난을 당할 때라도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해야"하며 심지어는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과도 화평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이것은 어려운 과제이며 고차적인 교훈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시고자 하시는 것인 것이다.  고난을 당할 때 영혼이 그 고난을 감수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를 유지하여야 한다.  둘째, 평화와 거룩함은 상관 관계에 있는 것이다.  거룩함이 없이는 진정한 평화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선한 뜻과 우정을 보여 주며 신중하고 사려 깊은 인내를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의 평화는 거룩함이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롭게 살고자 한다는 핑계로 거룩한 길을 떠나고자 해서는 안 된다.  다만 거룩한 길 가운데서 평화로워야 한다.  셋째,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보지 못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구주 하나님을 뵈옵는 것은 오직 거룩한 자에게만 상급으로 주어질 것이다.  비록 평온한 기질이 하늘나라를 예비시키는데 우리에게 크게 기여하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거룩함이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6. 그리스도를 인하여 받는 고난과 고통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징계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선용하지 않는다면 그 고난은 우리를 배교하게 하는 함정과 유혹의 덫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깊게 이러한 가운데 빠지지 않게 위해 조심해야 한다(15,16절).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15절)"라고 하였다.
(1) 여기서 바울은 배교에 대하여 심각한 경고를 하고 배교의 무서운 결과를 예로 들어 경고를 뒷받침하였다.
① 바울은 배교에 대하여 심각한 경고를 하였다(15절).  여기서 다음을 유의하자.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며, 신앙이 파산된 상태를 이르는 것이며, 그리고 이같이 되는 것은 훌륭한 기반과 적절한 배려와 근면함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다"함은 은혜가 주어지며 또한 신앙은 고백하나 참된 은혜가 영혼을 지배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둘째, 배교의 결과,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게 되지 못할 때 쓴 뿌리가 싹틀 것이다.  즉 부패된 근성이 선을 이기고 솟아 나올 것이다.  그리고 "쓴 뿌리"는 배교자들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까지 쓴 열매를 맺게 한다.  쓴 뿌리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악한 생활 원칙에 의해 생활하게 하며 그것은 사람으로 배교하게 하며 또 사람이 배교하게 되면 이러한 악한 요소들은 더욱 강력해지고 확산된다.  그리하여 저주스러운 과오 즉 교회의 교리와 예배를 부패시키며 악한 행실이 솟아나게 한다.  배교자는 점점 더 악하게 되어서, 가장 사악한 악에 빠지게 되며 그리하여 결국 무신론에 빠지거나 파멸로 끝나고 말게 되는 것이다.  배교는 다른 사람들 즉 이런 배교자들이 속한 교회까지 나쁜 열매를 맺게 한다.  그들의 악한 생활 원리와 생활에 의해 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하고 교회의 평안히 깨어지며, 사람들의 마음속의 평안히 깨지고, "많은 자들이 더러움을 입게 되며" 즉 이러한 나쁜 생활 원리에 감염되어 더러운 행실을 행하게 된다.  그리하여 교회는 그 순결함과 화평함에 있어서 동시에 해를 입게 된다.  그러나 배교자들 자신이 결국은 가장 고난을 많이 받는 자들이 될 것이다.
② 바울은 두려운 예를 들어 자신의 권면을 보충하고 있다.  즉 그는 에서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에서는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태어났고 장자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예언자와 제사장과 왕이 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성한 특권을 멸시하고서 단지 한 그릇 팥죽을 받고 그것을 팔아 버렸던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첫째,  에서의 죄.  에서는 출생의 특권과 그 출생에 포함된 모든 것을 불경스럽게 멸시하여 팔아 버렸다.  배교자들도 마찬가지 부류의 인물들인 것이다.  그들은 박해를 피하고 감각적인 안락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비록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서 축복과 유산의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배교함으로 모든 권리를 포기해 버린다.  둘째, 에서의 받은 형벌.  그것은 그의 죄에 대하여 마땅한 것이었다.  에서는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을 깨닫기는 했으나, 그때는 이미 늦었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에서는 뒤늦게 축복을 물려받으려고 했으나 허사였다"고 하였다.  에서에게 내려진 벌은 두 가지이다.
a. 에서는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 스스로 정죄함을 받았다.  에서는 자신이 경시하던 그 축복이 많은 근심과 많은 눈물을 흘리고서도 찾아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b. 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다.  에서는 하나님에게서나 그의 육친의 아버지에게서나 "거절을 당하였다."  축복을 에서가 한 그릇의 죽에 그 축복을 팔아 버린 그의 동생에게로 내려졌던 것이다.  에서는 마음속의 커다란 악함 때문에 축복을 싼값으로 팔아 버렸고,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판단으로써 그가 축복을 판 사실을 기정 사실로 비준하고 확인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삭으로 하여금 그 축복을 돌이키지 못하게 하셨다.
(2) 우리는 여기서 다음을 배우도록 하자.
① 그리스도를 배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하늘의 유산보다 육체의 만족을 더 좋아한 결과라는 점이다.
② 죄인들은 신성한 축복과 유산에 대해서 지금처럼 언제나 멸시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잃어버린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그 어떤 고통의 배려나 눈물도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때가 이를 것이다.
③ 은혜의 날이 끝났을 때(은혜의 날은 지금 우리 생활 속에서 끝나 버릴 수도 있다) 그들은 결코 용납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죄를 회개할 수 없게 될 것이고 하나님 또한 자신이 그들의 죄에 대하여 내린 형벌 선고를 변역(變易)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결코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거룩한 신앙을 포기함으로 그들의 자격과 하나님의 축복과 유산에 대한 소망을 버리거나 자신을 하나님의 변개할 수 없는 분노와 저주 앞에 들어내 놓도록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악한 자들이 이유 없이 우리를 괴롭힐 때 그것은 박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고난을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께서 그들을 자신에게 연합시키고 자신과 교우하게 하시기 위하여 내리시는 판단과 견책의 막대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같이 사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의 본래적 이유를 제시하여 논증함으로 그의 논리는 강력한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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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속하게 될 나라의 본성(히 12:18-29)
여기에서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달려갈 길과 투쟁을 인내로 계속 감당할 것과 다시 유대주의로 돌아가지 말도록 하라고 권면하였다.  복음 시대의 교회가 율법 시대의 교회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차원에서 또 복음 시대의 교회가 하늘나라의 교회와 어떻게 유산한가를 보여 줌으로써 위와 같이 권면을 하였다.  그는 이 복음 교회와 하늘의 교회가 다같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근면과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함을 말하였다.
Ⅰ. 바울은 복음 교회와 유대 교회의 차이점과 또 복음 교회가 유대 교회보다 대단히 우수한 것을 말하였다.  본문에는 모세의 율법시대 아래에서의 교회에 대한 설명이 주어지고 있다(18-21절).
1. 모세 시대 교회는 매우 가시적(可視的)인 것이었다.  "구약 교회가 볼 수 있는 산이었다"(18절).  즉 구약 교회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구약 교회는 상당히 외형적이고 지상적이었으며 그러기에 그곳에서 요구되는 것 또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시온산에 세워진 복음 시대 교회는 보다 영적이며 합리적이며 안락한 곳이다.
2. 모세 시대 교회의 어두운 섭리에 속한 것이었다.  시내산 위에는 암흑만이 있었고 교회 또한 어두운 그림자와 유형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복음 교회는 보다 분명하고 밝은 곳이었다.
3. 모세 시대 교회는 무섭고 두려운 섭리에 속해 있었다.  유대인들은 구약 교회가 주는 두려움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천둥과 번개, 나팔부는 소리,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직접 하시는 말씀이 그들은 너무도 두려워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셨다"(19절).  그러므로 모세 자신도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고 하였던 것이다.  지상의 가장 선한 사람도 직접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복음의 교회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보다 겸손하여 약한 인간에게 적절하다.
4. 모세 시대 교회는 제약적인 섭리에 속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산에 갈 수는 없었고, 모세와 아론만이 그 산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복음 아래서의 교회는 모두 담대히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5. 모세 시대에 교회는 매우 위험스러운 섭리에 속해 있었다.  그 산은 불에 타고 있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그 산에 오르면,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둘로 침을 당하였다"(20절).  이것은 사실이었다.  사실 당시 교회는 외람되고 어리석은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다가가기에는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이같이 유대 교회는 완고하고 몰인정한 사람을 두렵게 하고 하나님의 엄격하고 공정한 재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구약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그 섭리를 떠나 복음 교회의 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통치에 응하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Ⅱ. 바울은 복음 교회와 하늘 나라의 승리의 교회와 얼마나 유사한가를 보여 준다.  하늘의 교회와 복음 교회 사이에 어떠한 의사 소통이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복음 교회는 "자유인의 나라인 하늘의 예루살렘"이 건설된 시온산이라고 칭하여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시온산은 사람을 얽어매는 구약의 시내산과 정반대인 것이다(갈 4:24).  이 시온산에 하나님께서 왕 메시야를 세우셨다.  따라서 시온산인 복음 교회에 이르는 믿는 자들은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며, 하늘나라의 사회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1. 그들은 복음 교회에 들어오므로 하늘나라의 처소로 들어가게 된다.
(1) 즉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교회를 자기의 거처로 삼으셨다.  이 때문에 복음 교회는 하늘 나라의 상징인 것이다.  교회에서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들에 대한 통치와 인도와 거룩하게 하심과 위로를 발견하게 된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복음 사역자들을 통해서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며 또 그들은 거기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그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 그의 백성들이 하늘나라에 합당하도록 훈련시키시며 그들이 상속받은 유산에 대한 약속을 주신다.
(2) 그들은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라며 자유로이 거주하게 된다.  교회를 통하여 믿는 자들은 하늘 나라의 보다 분명한 모습을 대하게 되며 그 나라의 보다 분명한 증거를 대하게 된다.  그리고 영혼은 이 교회에서 하늘 나라를 위해 준비하게 되고 그 나라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성품을 배우게 된다.
2. 그들은 복음 교회가 들어오므로 하늘 나라의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1) 그들은 "천군 천사"와 함께 거하게 된다.  이 천사들은 한분 가장 아래서 성도들과 한 가족들을 이룬다.  이 천사들은 신자들의 유익을 위해 섬기는 일을 통하여 성도들의 길을 안내하며 그들을 위해 주거지를 마련해 주는 일을 한다.  이 천사들의 수효는 부지기수이다.  또한 그들의 체계는 질서정연하고 그들의 단합은 놀라웁게 훌륭한 모습을 갖춘다.  믿음으로써 복음 교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천사들과 함께 합해지게 되고, 마침내는 천사와 같게 되며 동등한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2) 그들은 "하늘에 기록한 장사들의 총회와 교회"에 속하게 된다.  즉 그들은 하늘의 우주적인 교회에 속하게 된다.  우리는 믿음으로써 그 우주적 교회에 속하게 되고 한 주님을 모시고 동일한 성령을 통하여 그들과 사귀게 되며 그들과 동일한 복된 희망을 지니고 살게 된다.  또한 우리는 그들과 동일한 거룩한 길을 걷게 되며 같은 영적 원수들과 싸움을 싸우며 동일한 안식과 승리와 영광된 개선을 향해 서둘러 나아가는 것이다.  이 하늘나라에서 장자(長子)들의 총회가 있을 것이다.  이 총회에는 복음 시대에 대한 약속은 받았으나 그 약속을 맛보지 못한 이전 시대의 성도들이 참여할 것이다.  또한 이 총회에는 복음 교회의 첫 결실들인 모든 성도들이 참여할 것이다.  신실로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후사들이며 모든 사람은 다 장자의 특권을 누리게 된다.  이들 장자들의 이름은 이 세상의 교회의 명부에 올려 있듯이 하늘나라에 기록되어져 있다.  하나님의 집에 그들의 이름이 있으며 예루살렘의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신앙과 충성에 있어서 정평을 받은 자들은 마치 한 시의 시민이 그 시의 시민 명부에 올려 있듯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될 것이다.
(3) 그들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된다.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을 각각 그들의 법에 따라 재판하실 크신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  그전에 먼저 믿은 자들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들의 심판관에게 탄원을 하고 복음 안에서 사면을 받게 되며 그러므로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게 되며 그들은 이 복음과 부끄러움 없는 양심에 의해서 그들이 저 세상에 가서 의롭다 함을 입을 것을 여기서 미리 알게 된다.
(4) 그들은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함께 거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의인들이라 함은 그들의 이웃 사람들보다 의에 있어서 훨씬 뛰어나 으뜸가는 부류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며 "의인의 영들"이라 함은 의인의 성품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나고 온전한 그의 영혼을 말하는 것이다.  믿는 자들은 동일한 한 분 가장과 성령 안에서 헤어졌던 성도들과 연합하게 된다.  또한 그들은 성도들과 동일한 상속을 물려받을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지상에서는 후사요 하늘나라에서는 주인들이 되는 것이다.
(5) 그들은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님 자신과 아벨의 피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와 함께 거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 이 복음 교회에서 인내하도록 힘을 부어 주는 놀라운 약속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의 피와 함께 거한다는 것은 우리를 격려해 주는 커다란 위로의 약속인 것이다.  즉 그것은 우리가 새로운 계약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와 사귐을 가지게 되며 또한 그의 피와 사귐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들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① 복음의 계약은 새로운 계약으로 행위의 계약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복음의 계약은 새로운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있으며, 구약의 섭리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② 그리스도는 새 계약의 중보자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중간에 위치한 중개자이시다.  그는 새 계약의 장소로 양편을 다 오게 하신다.  그리고 인간편의 죄 있음과 이 죄로 인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노여움에도 불구하고 그 양편을 함께 거하게 하신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드리시며,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려 주신다.  또한 그는 우리편에 서서 하나님께 변론하고 반면에 하나님 편에 서서 우리들을 향해 설득하신다.  그리고 드디어 하늘나라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함께 모으시고 그들 사이에 영원한 합일을 이루시고 그 중보자가 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의 은총을 누리게 되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축복을 내리시게 될 것이다.
③ 이 언약은 제물의 피가 제단과 그 제물 위에 뿌려지는 것처럼, 우리 양심에 뿌려진 그리스도의 피로써 비준되었다.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의 진노를 푸고 인간의 양심을 말게 한다.
④ 그리스도의 피는 말하는 피이다.  그리고 이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말을 잘하는 피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피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말해 준다.  그리스도의 피는 아벨의 피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에게 복수해 주시기를 탄원했던 것처럼 복수를 탄원하지 않고 자비를 탄원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 이름으로 죄인들에게 말한다.  그 피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전해주고 그들의 영혼에는 평안을 전해 주며 또한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복종과 최상의 사랑과 감사를 그에게 돌릴 것을 말한다.
Ⅲ. 바울은 복음 교회가 하늘나라와 같은 속성을 지녔음을 말하므로 성도들에게 끝까지 인내할 것을 말한 후 한결 강한 어조로 그들의 복종을 권면하므로 본장을 종결짓는다.  그러므로 본문은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25절)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즉 자신의 피로써 말씀하신 분을 거역지 말라고 하였다.  다른 말로 땅으로부터 호소한 아벨의 피와는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천사와 모세를 통하여 시내산에서 말씀하신 하나님과 또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말을 거역지 말라는 말씀인 것이다.  전에 그리스도는 땅에서 말하셨으나, 지금은 하늘에서 말씀하신다.  이제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하나님은 현재 인간에게 가장 뛰어난 방법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는 또한 인간들이 아주 열심히 그의 말을 경청하고 주의를 기울일 것을 기대하신다.  하나님께서 가장 탁월한 방법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이 그가 복음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1) 하나님께서는 지금은 보다 높고 영광된 권좌에서 말씀하신다.  즉 지상에 있는 시대산에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말씀하신다.
(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살아 있는 말씀과 성령으로써 직접 말씀하신다.  이 둘은 다같이 하나님을 증거 한다.  그는 인간에게 새로운 일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인간의 양심에 늘 같은 말씀을 하신다.
(3)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전보다 더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말씀하신다.  과거에 하나님의 목소리는 오직 땅만을 울리게 하였으나 이제 복음 시대에서의 그의 음성은 당뿐만 아니라 하늘까지 진동케 하신다.  즉 하나님께서는 전에 하셨듯이 산과 들과 사람들의 영혼과 그의 백성들을 위해 마련한 가나안 땅 즉 이 세상을 진동시키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구약 시대에 지상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로 믿고 있었던 유대 교회까지도 진동케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보낸 복음으로써 유대 민족의 교회와 국가를 산산조각나게 하시고 결코 변동이 없고 땅에서는 결코 교체되지 않을 또한 하늘나라에서 완전하게 될 때까지 남아 있을 새로운 교회를 있게 하실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탁월한 방법으로써 말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자의 조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질 것이고 그들이 받을 벌은 더욱 피할 수 없게 되고 용서되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 형벌은 그들은 피할 수도 참을 수도 없게 될 것이다(25절).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 거하는 자들을 은혜로 다스리실 것이라면 복음을 멸시하는 자들은 그와는 달리 즉 심판으로 다루실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일이다.  복음의 영광된 모습은 다음의 세 가지 사실에서 나타난다.  이 복음이 이같이 영광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존경해야 하는 것이다.
(1) 복음 나팔의 소리에 의해 구약의 섭리와 하나님의 이전 교회가 흔들리고 사라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복음의 영광됨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자신이 세우신 교회를 이같이 무너뜨린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는 결코 멸시할 수 없는 것이다.
(2) 이 복음 나팔에 의해 다시는 흔들려서 파괴되지 않을 세 왕국이 이 지상에 하나님을 위해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복음의 영광됨을 볼 수 있다.  이 변혁은 단 한 번으로 영원한 효력을 나타내는 변혁이다.  이제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는 다른 변혁이 결코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즉 결코 사라지거나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지 않을 "나라"를 받았다.  성경 각 권의 경전성도 이미 확보되었고 "예언의 영도 그쳤으며" 하나님의 신비가 성취되었고 또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에 대해 마지막 손질을 하셨다.  복음 교회는 더욱 커지고 번창하며, 악의 오염으로부터 더욱 순결케 될 것이다.  그러나 복음 교회는 다른 섭리에 의해 변경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복음 아래서 멸망하는 자는 구제책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를 토대로 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①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그가 기쁘시도록 그를 섬기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말하였다.  만약 우리의 복음의 섭리 아래서도 하나님께 용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에게 용납되지 못할 것이다.  또 우리들이 하나님께 용납되지 못한다면 신앙의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고 말 것이다.
② 우리들이 하나님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섬기지 않는 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바울은 말하였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용납되려면 믿음과 동시에 거룩한 경외의 자세가 필요하다.
③ 우리로 올바른 태도로써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다.  우리의 본성은 우리로 하나님께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게 할 수 없다.  우리의 본성도 우리의 예배를 용납되게 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믿음이나 신성한 경외심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④ 하나님께서는 율법 하에서 나타나신 바와 같이 복음 아래에서도 똑같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바울은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되시고 또 그의 안에 거하는 우리는 자비롭고 은혜스러운 방법으로 다스리시지만 그의 은혜를 멸시하는 자들과 모든 배교자들에게는 복수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하여는 "소멸하는 불이시다."  복음 아래서 하나님의 공의는 율법 아래서 나타난 것처럼 엄격하지는 않지만 보다 두려웁게 나타났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하나님의 공의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내려져서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몸과 영혼을 죄를 대신한 속죄물로 삼으신 사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같이 복음 시대에서 시행된 하나님의 공의는 율법이 전수되었던 시내산에서 보여지고 들려졌던 하나님의 공의보다 훨씬 두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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