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1.08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요5장.두번째유월절예루살렘베데스다연못.38년된중풍병자.산헤드린에서의JC의 자기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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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요5장

===오래된 병을 고치시다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유월절,,두번째해)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아들의 권한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를 믿게 하는 증언

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32.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35.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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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요5장

1.  After these things there was a feast of the Jews, and Jesus went up to Jerusalem.

2.  Now there is in Jerusalem by the sheep [gate] a pool, which is called in Hebrew Bethesda, having five porticoes.

3.  In these lay a multitude of those who were sick, blind, lame, and withered, {waiting for the moving of the waters;

4.  for an angel of the Lord went down at certain seasons into the pool, and stirred up the water; whoever then first, after the stirring up of the water, stepped in was made well from whatever disease with which he was afflicted.}

5.  And a certain man was there, who had been thirty-eight years in his sickness.

6.  When Jesus saw him lying there, and knew that he had already been a long time [in that condition,] He *said to him, "Do you wish to get well?"

7.  The sick man answered Him, "Sir, I have no man to put me into the pool when the water is stirred up, but while I am coming, another steps down before me."

8.  Jesus *said to him, "Arise, take up your pallet, and walk."

9.  And immediately the man became well, and took up his pallet and [began] to walk. Now it was the Sabbath on that day.

10.  Therefore the Jews were saying to him who was cured, "It is the Sabbath, and it is not permissible for you to carry your pallet."

11.  But he answered them, "He who made me well was the one who said to me, 'Take up your pallet and walk.'"

12.  They asked him, "Who is the man who said to you, 'Take up [your pallet,] and walk'?"

13.  But he who was healed did not know who it was; for Jesus had slipped away while there was a crowd in [that] place.

14.  Afterward Jesus *found him in the temple, and said to him, "Behold, you have become well; do not sin anymore, so that nothing worse may befall you."

15.  The man went away, and told the Jews that it was Jesus who had made him well.

16.  And for this reason the Jews were persecuting Jesus, because He was doing these things on the Sabbath.

17.  But He answered them, "My Father is working until now, and I Myself am working."

18.  For this cause therefore the Jews were seeking all the more to kill Him, because He not only was breaking the Sabbath, but also was calling God His own Father, making Himself equal with God.

19.  Jesus therefore answered and was saying to them, "Truly, truly, I say to you, the Son can do nothing of Himself, unless [it is] something He sees the Father doing; for whatever [the Father] does, these things the Son also does in like manner.

20.  "For the Father loves the Son, and shows Him all things that He Himself is doing; and greater works than these will He show Him, that you may marvel.

21.  "For just as the Father raises the dead and gives them life, even so the Son also gives life to whom He wishes.

22.  "For not even the Father judges anyone, but He has given all judgment to the Son,

23.  in order that all may honor the Son, even as they honor the Father. He who does not honor the Son does not honor the Father who sent Him.

24.  "Truly, truly, I say to you, he who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does not come into judgment, but has passed out of death into life.

25.  "Truly, truly, I say to you, an hour is coming and now is, when the dead shall hear the voice of the Son of God; and those who hear shall live.

26.  "For just as the Father has life in Himself, even so He gave to the Son also to have life in Himself;

27.  and He gave Him authority to execute judgment, because He is [the] Son of Man.

28.  "Do not marvel at this; for an hour is coming, in which all who are in the tombs shall hear His voice,

29.  and shall come forth; those who did the good [deeds] to a resurrection of life, those who committed the evil [deeds] to a resurrection of judgment.

30.  "I can do nothing on My own initiative. As I hear, I judge; and My judgment is just, because I do not seek My own will, but the will of Him who sent Me.

31.  "If I [alone] bear witness of Myself, My testimony is not true.

32.  "There is another who bears witness of Me, and I know that the testimony which He bears of Me is true.

33.  "You have sent to John, and he has borne witness to the truth.

34.  "But the witness which I receive is not from man, but I say these things that you may be saved.

35.  "He was the lamp that was burning and was shining and you were willing to rejoice for a while in his light.

36.  "But the witness which I have is greater than [that of] John; for the works which the Father has given Me to accomplish, the very works that I do, bear witness of Me, that the Father has sent Me.

37.  "And the Father who sent Me, He has borne witness of Me. You have neither heard His voice at any time, nor seen His form.

38.  "And you do not have His word abiding in you, for you do not believe Him whom He sent.

39.  "You search the Scriptures, because you think that in them you have eternal life; and it is these that bear witness of Me;

40.  and you are unwilling to come to Me, that you may have life.

41.  "I do not receive glory from men;

42.  but I know you, that you do not have the love of God in yourselves.

43.  "I have come in My Father's name, and you do not receive Me; if another shall come in his own name, you will receive him.

44.  "How can you believe, when you receive glory from one another, and you do not seek the glory that is from the [one and] only God?

45.  "Do not think that I will accuse you before the Father; the one who accuses you is Moses, in whom you have set your hope.

46.  "For if you believed Moses, you would believe Me; for he wrote of Me.

47.  "But if you do not believe his writings, how will you believe My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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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장 (개요)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행하신 것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행 1:1). 

이 두 가지는 서로 뒤섞여 있다. 그의 가르치심이 행하신 바를 설명해 주고, 또 가르치심을 입증하는 것이 행동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5장에서 놀라운 기적과 설교를 읽을 수 있다.

Ⅰ. 기적은 38년 된 불치 병자를 고치신 것(1-16).

Ⅱ. 설교는 산헤드린 앞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자신에 대한 변호였다. 안식일을 범한 죄인으로서 박해를 받을 때였다.

1. 주께서는 메시야로서 자신의 권위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증보자로서 자신을 강조하였다(17-29).

2. 주께서는 아버지, 세례 요한, 그리스도의 이적, 구약 성서 등의 증언으로 그것을 입증했다. 그리고 유대인의 불신을 비난했다(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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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병을 고치심(요 5:1-16)

병자를 고치신 이 기사는 다른 복음서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주로 갈릴리에서의 기적에 대하여 언급하였으나, 요한은 예루살렘에서의 행적을 주로 기록하였다. 이것에 관하여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언제"병자를 고치셨나? 그 때는 "유대인의 명절"이었다. 즉 유월절이었는데 유대인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성대한 절기였다. 

-- 그리스도께서는 갈릴리에 거주하고 계셨지만 그 때 예루살렘에 올라 가셨던 것이다(1절).

1. 왜냐하면, 그 명절은 "하나님의 규례"이며, 주께서도 율법 아래에 나셨던 때문이다. "아들"이므로 예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긴 했다. 

-- 이와 같이 주께서는 우리에게 종교적인 모임을 지키라고 가르치셨다(히 10:25).

2. 선을 행할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1) 그 때에는 대단히 많은 군중들이 모일 것이며, 예루살렘은 모든 사람들의 집합지인 까닭이다. 

-- 적어도 깊이 생각하는 사람과 그 나라 안의 각 지방에서 온 사람들과 동시에 다른 나라에서 온 개종자들이 모일 것이었다. 지혜는 "광장에서 소리쳐야" 한다(잠 1:21).

(2)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종교적인 행사로 시간을 보낼 것이므로 모두가 "좋은 심성"을 가질 것이라 기대되었던 까닭이다. 

-- 마음을 경건히 하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며 경건의 의식을 행하고 거룩한 빛과 사랑을 좀 더 얻기 위하여 마음 문을 열게 되므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Ⅱ. 고치신 "장소"는 어디였는가? "벳세다의 연못가"였다. 그 연못은 기적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곳이었다. 2-4절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1. 벳세다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는가? 

-- "예루살렘 근처, 양을 파는 시장 옆"이었다. 그곳은 아마도 양을 두는 우리이었으리라. 혹은 느헤미야 3 장 1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양의 문"이었을 것이다. 그곳을 통과하여 양을 데리고 들어가서 양의 시장에서 팔았을 것이다.

-- 어떤 해석자는 그곳이 예루살렘 성전과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아름답진 못해도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2. 어떻게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가? 그것은 "히브리 말로 벳세다라는 못"이었다. "벳세다"는 "자비의 집"이라는 뜻이다. 

-- 거기서는 아프고 병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곳처럼 너무나 불행한 일이 많이 있다. 그래서 몇 군대의 "자비의 집," 벳세다가 있는 게 좋다. 

**하몬드박사는 "자선소"같은 곳이라고 본다. 

**라이트푸트(Lightfoot)박사는 벳세다가 "윗못"과 (사 7:3) "옛 못"(사 22:11)이라고 추측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곳이 깨끗이 "씻는"의식을 행하던 장소였다. 그리고 편리상 행각을 지어서, 옷을 갈아입게 했는데, 나중에는 병을 고치는 장소였다. 그리고 편리상 행각을 지어서, 옷을 갈아입게 했는데, 나중에는 병을 고치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3. 그곳은 어떻게 준비되었나?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가 누워 있었다. 

-- 인간의 자비는 절망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역사하는 하나님의 자비와 합력한다. 자연은 치료를 줄 것이나, 인간은 "병원"을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4. 병자와 절뚝발이는 자주 그곳에 모여 있었다(3절). "그 안에는 혈기 마른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다." 

-- 이 세상에는 얼마나 고통받는 자들이 많은가. 또 많은 불평으로 가득 차 있으며, 많은 혈기 마른 자들이 있다. 우리가 때때로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재난을 위로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심을 감사드릴 기회를 갖게 된다.

-- 요한복음 기자는 그곳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세 가지 질병으로 분류하였다.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이다. 혈기 마른 자는 특별한 부분만 그런 사람도 있고 전체가 마비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행각"에서 오랜 동안 누워 있으면서, 누군가가 물 속에 자기를 집어넣어 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신체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멀리"까지 오는 수고를 하며, 치료될 때까지 "긴" 시간을 인내한다. 누구나 그런 경우에 처하여서는 꼭 같이 그래야 한다. 

-- 그러나 자기의 영혼에 대하여도 그렇게 하는 자가 슬기로운 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손이 마르고 장님, 절뚝발이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고침 받기 위하여 준비하여야만 할 것이다.

5. 그 곳은 병든 자를 고쳐 주는 힘을 갖고 있었다(4절).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고 했다. 

-- 연못의 이러한 함은 "자연적인"것이거나 "인공적인" 것이었으리라. 혹은 정결 의식의 결과였다. 그러나 "장님"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리고 천사가 "사자"였는지 혹은 보통 사람이 물을 동하게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인 것 같다.성전에는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손을 씻는 방이 있었다.

-- 주석가들은 이 못에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는 것에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유대인 작가들 중 모두가 예루살렘을 찬양하여 자세히 묘사하기를 좋아하나 아무도 병을 고치는 못에 대하여서는 말하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것이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전조였으며 ...그래서 메시야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징후를 비밀로 하고자 해서였으리라.

(1) 약의 "준비"는 천사가 한다. "천사가 못으로 내려 와서 물을 동하게" 하는 것이다. 

-- 천사는 하나님의 종이며 인류의 친구이다. 아마도 천사는 우리들이 아는 것보다도 더 열심히 질병의 퇴치를 위하여 일할 것이다. 라파엘이라는 천사는 "하나님의 의사"를 의미한다. 거룩한 천사가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얼마나 겸손하게 일하는가! 천사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우리를 비천하게 할 것이 없다.

-- "물이 동하는 것"은 천사가 내려온다는 징조였다."뽕나무 꼭대기에서 나는 발자국 소리가 다윗에게의 신호였듯이, 물이 동하면, 그들은 "물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성소의 물은 "동할" 때 들어오면, "고칠 수" 있는 힘이 있다. 

-- 사역자들은 자기들 안에 있는 "은사를 선용해야"할 것이다. 그들이 자기의 목회에서 냉정하고 둔하다면, 물은 "고정되어"있고, "치료할" 수도 없을 것이다.

천사가 "물을 동하러" 내려오는 일은 매일이나 자주 있는 것이 아니었고, 가끔씩 한 번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주요한 절기에 물이 동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시술의 "작용"을 보자. "누구든지 처음 들어간 사람은 낫는다."

① 병을 고치는 범위가 실로 대단해 넓다. 어떤 질병일지라도 그 물은 고칠 수가 있는 것이었다. 

-- 자연적이든가 인공적인 목욕은 어떤 질병에는 이로울지라도 어떤 경우에는 해로울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질병에 대하여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목욕이 해로운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의 힘이 "다하는" 곳에도 기적의 능력은 "성공하는" 것이다.

② 병 고침 받는 사람은 놀랍게 한정되어 있었다. 맨 먼저 들어간 사람에 한한 것이었다. 즉 물이 동하기를 마친 즉시 들어간 사람만이 고침을 받은 것이다. 

-- 그 다음에 들어온 사람은 소용이 없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그것을 놓치지 말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 하나님께서는 성서와 규례(의식)가운데 그런 힘을 주셨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를 질병에서 고쳐 주시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병을 고칠 기회를 이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우리가 스스로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놀라운 기적에 대한 설명의 전부이다. 그것이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나는지 확실하지 않다. 혹자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예루살렘 성벽을 쌓기 시작할 때 그 물이 동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못에 그런 능력을 주심으로써, 그 성벽을 받아들였다는 증거를 주셨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그리스도의 탄생 후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라고 추측한다.

**라이트푸트 조세푸스의 "고대사"에서 이런 것을 인용한다(고대사15권7장). 그리스도 탄생 30년 전, 헤롯 즉위 7년에 대단히 심한 지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 천사가 내려 올때는 항상 지진이 일어났는데, 먼저 이 못의 물을 동하러 내려온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후에 그쳤다고 보고, 또 혹자는 그리스도가 운명하실 때 그쳤다고 본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은혜의 표시임에 틀림이 없다.

첫째,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향한 선한 의지인 것이다. 

-- 비록 그들이 선지자와 기적이 없이 오랫동안 기다리기는 하였으나, 하나님은 아직도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들은 억압받고 멸시받는 백성이었으므로, 대부분이 그렇게 말할 터였다. 즉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말하던 놀라운 기적이 다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로써 그들의 거룩한 도성에 아직도 자비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 한 것이다. 

-- 우리는 약수가 유익하며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은 인류의 건강에 대단히 공헌을 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샘을 만드셨기"때문이다(계 14:7).

둘째, 그것은 메시야의 모형이었다. 그는 "열린 샘"이다. 또 그분은 의의 태양되시며,"날개 아래 치료의 광선을 간직하고 있음"을 사람들로 기대케 하려는 것이었다. 

-- 이 물은 이전에는 거룩하게 하는 데 씌었으나 이제는 병을 고치는 힘이 있었다. 이것은 깨끗이 하고 또 고침을 주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실로암의 물이 이 연못을 채우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윗과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의 나라를 상징한다(사 8:6). 따라서 이제는 "다스리는" 힘도 곁들어야 할 것이다.

Ⅲ. 고침을 받은 병자는 누구인가?(5절). "삼십 팔 년 된 병자" 하나가 누어 있었다.

1. 그의 "질병"은 "고통스러운"것이었다. 그는 "약함" 즉 연약한 자였다. 

-- 그는 중풍환자들이 보통 그렇듯 적어도 한쪽을 못쓰는 증세가 있었다. 육신이 그렇게 무능하게 된 것은 슬픈 일이다. 영혼을 담는 도구가 되는 대신에 오히려 이 생을 살아가는 데에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의 강건함을 주시고 주를 위한 도구로 쓰실 때 감사해야 할 것이며, 자기 "육신의 포로"가 된 자들을 동정하여야 할 것이다.

2. 그 "기간"이 얼마나 길었는가! "삼십 팔 년"동안이었다. 

-- 그는 일생을 거의 불구자로 살았다. 많은 사람들은, 시편 기자의 표현과 같이, 자기들이 오랫동안 무능력하게 되었기 때문에 "공연히 태어났다"고 말한다. 봉사하기 위하여 살지 않고 고통받기 위하여 살기 때문이다. 항상 죽기 위하여 태어난 것이다. 

-- 우리는 하루 밤만 병에 걸려도 탄식한다. 몇 년 동안씩 앓으면서 건강한 하루밤만 병에 걸려도 탄식한다. 몇 년 동안씩 앓으면서 건강한 하루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Ⅳ. 고침을 받은 상황이 간략히 요약되어 있다(6-9절).

1. "예수께서 그가 누운 것을 보셨다." 

--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궁궐이 아니라 병원을 찾으신 것을 유의하라. 그것은 주의 겸손과 친절과 자비를 베푸는 연민을 나타내 주며, 병들고 상한 자를 찾아서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서 오신 뜻을 보여 주는 것이다. 

-- 벳세다에는 가련한 절름발이들이 대단히 많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이 사람만을 보시고, 다른 사람을 제쳐두고 그를 선택하셨다. 그 까닭은 그가 이 행각에서 가장 오래된 "연장자"였으며,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가장 비참했기 때문이었다. 

-- 그리스도께서는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자들을 도우시기를 베푸셨다. 아마도 그 병자의 친지들은 그이 재난을 모욕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종 실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선택하셨다.

2. 주께서는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는지를 아시고 그것을 고려하셨다. 

-- 오랫동안 환란 속에 있었던 자는 이 기사를 읽고 위로를 받을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매우 오랫동안" 지켜보셨으며, 우리의 체질(처지)를 아시기 때문이다.

3. 주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 그렇게 오랫동안 아픈 사람에게 낫고자 원하느냐고 묻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기가 낫기를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의 병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동정을 구하고 게으름을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련한 사내는 구걸하러 갈 수조차도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아셨다.

(1) 병자에 대한 그의 심판과 동정을 나타낸다. 

-- 그리스도께서는 고통받는 자들의 희망을 알고 싶어하시며, 그들의 청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신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해 줄까?"

(2) 그 병자가 다른 지위 높은 자들처럼 자기에게 대해 편견을 갖고 있거나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편파적으로 생각하는 지 고쳐 죽 것을 기대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것이다.

(3) 병자에게 자비의 중요함을 가르치고 그것을 소망하는 그에게 기쁨을 주시려고 하였다. 

-- 영혼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치료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기가 고침을 받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일은 반(半) 성공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만약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고쳐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마 8:3).

4. 가련한 병자는 자기의 사정을 말할 기회를 포착하였다.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나이다"(7절). 

-- 그는 그리스도의 질문이 자기의 부주의와 태만에 대한 비난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네가 만약 낫고자 하였다면 벌써 이전에 고침을 받았을 것이 아니냐?" 는 물음으로 생각하였다. "아닙니다. 주여 낫고자 하는 의자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좋은 친구나 없었기 때문에 낫지 못하였나이다. 내가 할 수 있다면 혼자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허사가 되고 맙니다".

(1) 그 병자는 물에 들어가는 것 이외에 병 나을 방도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거기에 들여보내 줄 친구가 없음을 한탄한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를 고쳐 주셨을 때, 병자의 기대와 상상력은 치료에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그가 그런 것을 생각할 수도 없었던 때문이다.

(2) 그는 자기를 넣어 줄 친구가 없음을 탄식하였다. "그런 친절을 베풀어주는 친구가 내게는 없나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고쳐줄 제3의 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그것은 친구가 없는 자들이 보통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도 자기들의 영혼을 돌아보지 않는다." 병들고 허약한 자들에게는, 그들을 위하여 일해 주고 그들을 구제하여 주는 것도 진실한 자선 행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난한 자들도 서로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 수가 있다. 또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 경우가 드물다는 것은 그들의 부끄러움이다.

(3) 그는 자기의 무력을 한탄하였다.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가나이다." 그 병자는 한 발자국만 나아가면 치료된다. 

-- 그러나 그는 아직도 병자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너의 경우가 나보다도 더하니, 네가 먼저 들어가라. 나는 다음 번까지 기다리겠다." 이런 속담이 있다. "모든 사람은 저만을 위해서 산다." 

-- 그는 너무나 여러 번 실망하였으므로 절망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원을 위하여 오신 것이다. 이 병자가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불친절에 대하여 심술궂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부드럽게 이야기하였음을 명심하라.

-- 이와 같이 우리는 최소한의 친절에 대하여서도 감사해야 하듯, 아무리 커다란 멸시도 견디어야 한다. 원한을 나타내지 않고 공정하게 우리의 감정을 조용히 나타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헛되이 누워 있는데도 아직도 못가를 떠나지 않고 있음을 유의하라. 언젠가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도울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히 2:3).

5. 우리 주 예수께서는 병자가 요청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았었으나 그를 말씀으로 고치셨다.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그의 말씀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는 것이다.

① 그는 "일어나 걸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 그것은 병자에게는 이상한 명령이었다. 근래 오랜 동안을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룩한 말씀은 거룩한 권능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병자에게 "걸을 만큼 강건해지라"는 말씀이었다. 그것은 그 병자에게 "스스로 분발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는 "일어나서 걸어야"하였고, 그것을 시도하여야만 한다. 병자는 그것을 행함으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죄인의 회심도 오랜 고질병의 고침과 같다. 그것은 말씀에 의하여 고치며, 명령하는 말씀으로 가능하다. "일어나서 걸으라." "돌아와서 살라." "새로운 마음을 품으로." 갖고 있는 힘보다도 더 강한 힘을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 그러나 만약 병자가 스스로 그것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고침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며 비난을 받아서 마땅하다. 그가 일어나서 걸었을 때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가 모든 영광을 받으셔야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물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시지 않고 "일어나서 걸으라"고 하신 것을 유의하라.

② 그는 "자리를 들고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첫째, "완전한 고침"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 왜냐하면 그는 점차적으로 힘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 약하고 병든 궁지에서 갑자기 최고의 강한 힘으로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오랜 동안 사용하고 있던 자리를 짐군처럼 가지고 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 한 중풍병자는 "집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마 9:6). 그러나 이 사람은 들어 갈 집이 없었을 것이다. 그 병원이 자기의 집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일어나 걸으라"는명령을 받았다.

둘째, 그것은 치료를 "선언"하심이며, 공공에게 알리는 말씀이었다. 그 날은 안식일었으므로 누구든지 짐을 들고 거리를 걸어간다면 남의 눈에 띄일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을 것이다. 이래서 이 사건은 널리 알려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리라.

세째,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장로들의 전통에 반대되는 명령을 하셨다. 그것은 안식일에 관한 율법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께서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이 되심을 보여 주고 율법을 고칠 수 있으며, 다스릴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 이스라엘 군 대장 여호수아는 안식일에 여리고성 주위를 행군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렇게 할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역시 이 사람도 명령에 순종하여 자기의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이 기사는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간 것이 "필요"나 "자비"를 위한 일일 때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것은 "신앙"의 일이었다.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넷째, 이로써 그 사람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려 하셨다. 그가 자리를 들고 공공연히 걸어간 것은 교회 지도자들을 자극하고 "회당에서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 이제 그는 운명에 맡기고 그리스도께 순종할 것인가? 그렇다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만한 대가로 요구하든지 그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다.

(2) 이 말씀의 효과를 보자(9절). 그 말씀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였다. 그는 "성하게 되어,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①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능력이 자기를 고쳐 주심을 알았다. "즉시 그가 성하게 되니라." 

-- 이 가련한 환자에게 그렇게 쉽게, 그렇게 강하게 도와주심이 얼마나 놀라운 기쁨이었는가. 그는 새로운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시기에 어려운 일은 없는 것이다.

② 그는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시는 말씀에 순종하였다. 그는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 자기를 비난하고 모욕하였던 사람들에 관하여서는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우리의 영적인 치료의 증거는 우리가 일어나서 걸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의 병을 고쳐 주셨는가? 우리는 일어나서 "그의 앞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Ⅴ. 고침을 받은 병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을 본 유대인들과 그 사람 사이에 무엇이 일어났는가? 그가 고침을 받은 날은 안식일이었으며, 그것도 유월절 절기 중이었다. 그러므로 "거룩한 날"이었다. 그리스도의 사업은 안식일이나 평일이나 구별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언제나 아버지의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 주께서는 안식일에 여러 가지 질병을 고치셨다. 아마도 교회가 주께로부터 오는 영적인 도우심을 기대하고 용기를 얻게 하기 위하심일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의 안식일(주일)을 지킴은 바로 주께서 놀라운 이적으로 병을 고치심으로써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1)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사람과 언쟁을 하였다. 그들은 그에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다"고 말하였다(10절). 

--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그를 벌 줄 수 있는 관원들이었는지 혹은 단순히 그 사실을 고발할 수만 있었던 서민들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데 열심이었으므로 안식일을 범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다(느 13:17 참조).

(2) 그 병자는 자기가 명령을 받았다는 근거에 의하여 자신을 정당화하였다. "나는 이 율법과 안식일을 모욕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고쳐 주시는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그분이 다른 때문이다. 나를 고쳐 주시는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그분이 내 자신리를 들고 가라는 명령을 하셨다. 자연의 법칙을 다스릴 수 있는 그분이 사회의 법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은가? 나를 고쳐 주실 정도로 친절하신 그분이 죄된 것을 하도록 명령하실 수가 있겠는가."

-- 다른 중풍 병자를 고치실 때는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용서할 권능"을 입증하셨다. 여기서는 "율법을 줄" 권능을 입증하셨다. 만약 그의 용서가 정당한 것이라면 그분의 명령 또한 정당한 것임을 이 기적이 입증하고 있다.

(3) 유대인들은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12절). "그 사람은 누구이냐?" 

--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신앙"의 기반을 얼마나 부지런히 "간과"하는가 보라. 그들은 알려고 묻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응답으로 부지런히 찾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병자를 고쳐 준 그리스도께 반역자라는 소환장을 보내려 한 것이었다. 그들의 질문에서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① 그들은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간"으로 취급하였다. "어떤 사람이나?" 

-- 확실한 증거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결코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② 그들은 그리스도를 법을 어긴 "사람"으로 체포하고자 하였다. 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데 대한 반응이었다. 감히 그런 명령을 한 "사람이 누구나?"

(4) 그 가련한 병자는 예수께 대하여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다"(13절).

① 그리스도께서 그를 고쳐 주셨는데도 치료된 사람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아마도 그가 예수의 이름을 들은 적은 있을 것이었다. 

--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심을 유의하라(사 45:4, 5). "우리는 그를 모르지만," 그는 우리에게 용기와 위로를 준다. 이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르므로, 그가 자기를 고쳐 주리라고 믿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심령을 아시고, 그에게 알맞게 처분하였다. 

-- 9장36절의 장님에게 하신 것에서도 그런 예를 볼 수 있다. 하나님과 더불어 맺은 언약과 교제는 주께 대한 우리의 지식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를 아시는 지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오히려 그분이 우리를 아신다는 뜻이다(갈 4:9).

② 당시까지는 예수께서는 "자신을 알리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병을 고치시자마자, 사랑이 많으므로 "거기를 피하셔서,"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셨기" (혹자는 그렇게 해석한다) 때문이다. 이것은 다음의 것을 설명하여 준다.

첫째,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거기를 피하셨는가? 군중 속으로 섞여 들어가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통 사람들과 구별이 되지 않기 위해서인 것이다. 

-- 만군의 주께서 스스로 군중의 한 사람이 되신 것이다. 때때로 스스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군중들과 같게 되어 구별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둘째, "왜" 피하셨는가? 그 곳에는 "사람이 많으므로" 행하신 이적을 보고 요한하게 박수 갈채를 받을 것을 피하시기 위해서다. 

-- 하나님을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들은 "좋은 평"도 "나쁜 평"도 다 만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 두 가지 평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한편에서 칭송을 할 때, 다른 한편은 비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적을 그대로 놔두시고, 고침을 받은 자가 그것을 실증하도록 하셨다.

2. 고침을 받은자가 두 번째 주 예수를 만났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14절) 다음을 유의하자.

(1) 그리스도께서는 어디에서 그를 만나셨는가. 모든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 "성전 안에서" 만났다. 

-- 우리는 공중 예배에 참석하므로 그리스도를 만날 것을 기대하며 그분과 친구됨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① 그리스도께서 "성전에 가셨다." 비록 많은 적들을 갖고 계실지라도 아직도 주께서는 공중 예배에 참석하셨다. 왜냐하면 선을 행하실 기회를 얻고, 또 하나님의 제도를 증거하기 위해서다.

② 고침을 받은 사람도 "성전에 갔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고쳐 준 그날 거기서 다시 그를 만나신 것 같다. 고침을 받은 자는 곧바로 성전으로 갔다.

첫째, 오랫동안 병으로 인하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 아마도 38년 동안 그 곳에 가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묶는 굴레가 풀리자마자 그는 성전을 찾았던 히스기야의 심정과 같았다.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징조가 무엇이뇨?"(사 38:22)

둘째, 병을 치료받았으므로 거기에 가야 할 좋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그는 병이 회복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자 성전으로 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실 때는 언제든지 우리는 주께 엄숙한 칭송을 돌려야만 할 것이다(시 116:18, 19). 빠르면 빠를수록 더욱 좋다. 자비에 대한 감정이 생생할 때 감사드려야 한다.

세째, 자기의 자리를 들고 걸어감으로써 안식일을 모독한 것으로 보였으니, 이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 "불가피한"일이나 "자비"를 베풀기 위한 노동은 안식일에도 허락된다. 그러나 그 후에는 "성전으로 가야"만 할 것이다.

(2) 주께서는 그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고쳐 주셨을 때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주께서는 "말씀으로" 그 사람의 영혼을 고치고 계신다.

① 주께서는 그에게 치료를 상기시켜 주셨다. "보라, 네가 나았느니라." 

-- 주께서는 그가 다 나은 것을 보시고, 그것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보라, 얼마나 갑자기, 얼마나 신기하게, 얼마나 쉽게 고침을 받았는가! "그것을 놀라와하라." "그것을 기억하라."

② 주께서 그에게 죄에 대한 경고를 주셨다. "네가 나았으니, 더이상 죄를 범치 말라." 

-- 이것은 그의 질병이 죄의 징벌이었음을 뜻한다. 무슨 뚜렷t한 흉악한 죄가 있거나 일반적인 죄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죄는 병을 얻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시 107:17, 18). 

--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람과 또 그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죄에 관하여 언급하시지 않으셨다(막 2:5). 그러한 만성적인 질병이 있는 동안은 많은 외적인 죄를 제약받았다. 그러므로 이제 고쳐졌을때는 더 많은 조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병이 나은 것을 알려 주시고 그가 다시 죄짓기 쉽다고 말씀하셨다. 공포와 구속이 지나갔을 때 죄로 돌아갈 위험 가운데 있으니, 하나님의 은혜의 샘이 마르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경고를 주셨다. 

-- 물의 흐름을 방해하던 돌이 없어지면, 물은 옛날 흐르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침을 받은 후에는 다시 나쁜 곳으로 빠지지 않기 위하여 대단한 주의가 필요하다. 고침을 받은 후에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는 경고가 되어야 하며 죄의 마력을 깨닫게 해야 한다. 

-- 우리를 고쳐 주신 "자비"는 우리를 고쳐 주신 분을 마음 상하게 하지 말라고 명한다. "가서 다시는 죄짓지 말라"는 말씀은 가장 지혜로운 경고이다. 이 사람은 성전 안에서 희망에 찬 새 삶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아플 때에 병이 낫기만 하면 무엇인가를 완수하겠다고 맹세하고도 병이 나은 후에는 그것을 "전부 잊어버리는"것이 보통이다.

③ 주께서는 그의 위험에 대한 경고를 하셨다. 이전의 죄 된 길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심이다.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하라." 

--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심령을 아시고 그 사람도 죄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는 사람인 것을 아셨다. 38년 동안 고통을 받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고쳐 주신 후에 죄로 빠져들어 간다면 더 나쁜 일이 그에게 생길 것이다. 그가 누어있던 행각은 얼마나 음울한 장소였는가? 그러나 지옥은 그곳 보다도 더 나쁠 것이다. 배반자에 대한 최후의 심판은 38년의 고통보다 더 나쁜 상대일 것임에 틀림없다.

Ⅵ. 그리스도와 고침을 받은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한 후에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1. 그 단순한 사람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유대인에게 알려 주는 것을 볼 수 있다(15절). 그는 자기를 고쳐 주신 이가 예수라는 것을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 아마도 그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유대인의 편리를 위하여 그렇게 하였던 것 같다. 그는 그렇게 많은 권능과 선하심을 지닌 분에게 적이 있을 것으로는 거의 생각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자는 "뱀의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적어도 자기의 열심 때문에 이익보다 해를 받지는 말아야 하며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유대인들의 적대적인 분노를 보라.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고 했다. 다음을 유의하라.

(1)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적대 감정은 터무니없고 모순에 찬 것이었다. 단순히 불쌍한 병자를 고쳐 주고 그가 살아가도록 하여 주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주를 박해하였다. 단지 이스라엘에서 선을 행하였다는 이유 때문에.

(2) 그들의 분노는 얼마나 잔인하며 냉혹한 것인가! "그들은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다." 예수의 피와 생명 이외에는 그들을 만족시킬 것이 없었다.

(3) 안식일에 대한 것으로 위장된 열심히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보라. "안식일에 이 일을 행하심으로" 인하여 죄로 간주되었다. 마치 그런 주위의 상황이 가장 최고이며, 가장 신성한 행위를 손상시키기에 충분하였다는 것이다. 

-- 그들은 가장 가치 있는 행동에 대하여 미움으로 대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위선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열심이라는 핑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권세에 대하여 대적하는 적의를 은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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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자기 증거(요 5:17-30)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을 범하였다는 비난을 받고 이야기한 것을 여기서 볼 수 있다. 

그것은 주께서 책을 잡히셨을 때 산헤드린 앞에서 하신 변호였던 것 같다.

그날인지 이틀이나 사흘 후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같은 날이었을 것 같다. 여기서 다음을 알 수 있다.

Ⅰ. 안식일에 행하신 것을 정당화하여 주장하셨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답하셨다"(17절). -- 아마도 주께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비난을 받으신 것 같다. 아니면, 그들이 서로서로 제안한 것을 그가 "아셨을"것이다. 그들이 주를 죽이고자 생각하였을 때, 주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대답하셨다. 

-- 다른 때에도 비난을 받으셨을 때, 다윗이 성전의 전설병을 먹은 예, 또한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희생 제물을 죽이는 일, 또 사람들이 안식일에 자기의 가축에게 물을 주는 일 등을 실례로 들어 대답하셨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버지와 하나님의 권위를 예로 들어서 인용하였던 것이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듯을 더욱 확장시킨 것이다.

1.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직접적으로 부름으로 해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주장하였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분의 거룩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 것이다.

2. 하나님과 함께 일하시는 분임을 말했다.

(1)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라." 

--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을 본받아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은 안식일을 쉬는 날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당시 육일 동안  하셨던 그런 일만 쉬신다. 그밖에는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신다." 

-- 하나님은 날마다 일하신다. 안식일이나 주간 중에나 일하셨다. 모든 자연의 운동과 법칙을 지속하시며,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신다.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에는 쉬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직접적인 일을 하는 것을 쉬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나도 일한다." 

-- 그러므로 그분이 일하시는 것처럼 나도 "일할 수"있다. 주간 중의 어떤 날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에도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나도 일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의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부지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이다(히 1:3). --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예외가 없다. 모든 것을 행하시는 그분은 만유의 주이시며, 따라서 "안식일의 주인"도 되신다. 이것은 그분의 고유한 권위의 한 가지인 것이다. 일곱째 날을 첫날로 바꾸어 놓으신 것도 그 같은 사례이다.

Ⅱ.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다"(18절). 

-- 예수의 변명은 공격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더욱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하여 깨달음을 받지 않으려는 자는 그 말씀에 대하여 성을 내며 분격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리스도께서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시편 2편3-5절을 보라. 그들은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다.

1. 이유는 안식일을 범하였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무엇이라고 변명을 하시든, 옳든 그르든, 그들은 그를 안식일을 범한 자로 정하였던 것이다. 

-- 악덕과 적대감이 재판석에 좌정했을 때는 이성과 정의가 법정에서도 침묵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들이 단연 묵과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그 일을 행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때문이다. 

-- 전에는 안식일을 범한 것만을 따졌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인 척하면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말하였다해서 극악한 죄를 지었다고 비난하였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것은 가장 큰 죄였던 것이다. 그것이 계명성(사탄)의 죄였다. "내가 지극히 높은 하나님같이 되리라."

(1) 그러나 예수의 말씀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을 "아버지," "친아버지"라 한 것이다. 

-- 예수께서는 자기가 동일한 권세와 능력으로 아버지와 함께 일한다 했고, 또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했다. "아리아인주의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라. 유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다!"

(2)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취급하셔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아버지와 동등하게 말했다 해도 그것은 부당한 공격이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비난에 대한 답변으로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에 대한 동등함을 증명하시고 선언하셨던 것이다.

Ⅲ. 이 일에 즈음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보자. 5장의 끝까지 이 설명이 계속된다.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시며, 절대적 권한을 가진 위임자임을 밝히셨다. 단 이것은 피조물로서는 받을 수 없는 영광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이며 아버지와 동등한 분이다.

1. 일반적으로 말해 보자. 그는 중보자로서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이다. 

-- 이 모든 문제 대하여 그와 아버지간에는 완전한 이해가 있다. 그것은 엄숙한 서두로 장식되어 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19절) 그것은 다음과 같음을 암시한다.

(1) 그의 말의 내용이 대단히 두렵고 위대한 것이며, 가장 심각한 주의를 요하는 것이란 뜻이다.

(2) 그것은 거짓 없는 성실한 내용으로써 동의를 요하는 것이란 뜻이다.

(3) 그것은 순수히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문제임을 말한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계시가 없이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하신 것은 계시가 없이는 알 수가 없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하신다는 말씀에서 다음을 알 수 있다.

① 아들은 "아버지와 뜻이 일치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알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19절). 

-- 중보자로서의 예수는 "먼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 자기 뜻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므로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 꼭 같은 의미로 하나님은 "거짓말을 할 수 없으며 자기를 부정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그의 완전한 진리성을 나타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분리되어서 혼자 임의대로 행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 또 그는 "아버지의 뜻을 준행한다." 그는 "아버지가 하시는 것을 보고만" 행할 수 있다. 사람으로서 아무도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없다. 오직 아들에게만 그것이 알려져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품안에 거하며 아버지의 행하심을 볼 수 있으므로, 그분의 목적을 잘 알고 있다. 중보자로서 예수께서 행하신 것은 아버지의 행하신 것과 꼭 같이 행한 것이다.

② 아버지께서 아들과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다(20절).

첫째,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셨다." 

--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고 했다. 그는 수행할 좋은 뜻 뿐만 아니라 복종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다는 사실로 위로를 받으신 것이다.

둘째, 그 보기를 들 수 있다.

a. "하나님은 자기가 행하는 것을 아들에게 보였다." 

-- 아버지께서 이 세계를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방법을 아들이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아들은 교회를 다스고 다스리는 방법도 아시는 것이다. 그 일은 창조와 섭리의 역사의 닮은 꼴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올 세상"이라고 불리운다. 아버지께서는 자기가 행하신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b. 아들에게 알리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이보다 더 큰 일"도 보이실 것이다.

(1) "혈기 마른 자를 고치는 것"보다 더 큰 일을 행하실 것이다. 

-- 주께서는 죽은자를 살리실 것이며, 그 자신도 부활할 것이다. 자연의 힘에 의하여도 병이 고쳐질 수 있다. 그러나 자연적인 힘으로 죽은자를 일으킬 수는 없다.

(2)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명령보다 더 위대한 "권위"로 역사 하실 것이다. 

-- 그들이 안식일에 일하시는 것을 비난하였으나, 그는 앞으로 모든 의식적 법은 폐기할 것이며, 새로운 명령을 세우실 것이다. "너희가 놀랄 것이다." 지금 그들이 주께서 행하신 것을 보고 분개를 하고 있으나, 그들이 장차 더 놀라운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역사를 보고 감탄케 될 것이다.

2. "세밀히" 살펴보자. 아버지와 동등하심을 증명하셨다. 

-- 아버지께서만 하실 수 있는 고유한 일을 예수께서 행하심으로써이다. 그것이 21절에서 30절에까지 길게 설명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만의 전능하신 능력에 속하는 일을할 수 있고, 또 하신다. "죽은자에게 생명을 주신다"(21,25,26,28절). 

-- 또 "세상을 심판하는" 일을 하신다(22-24,27절). 이 두 가지 일은 서로 상관 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시다"고 말한 것이 잘못이 아님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1) "죽은 자를 일으키고 생명을 주는 것"이 중보자의 권세에 속한 것임을 알 수 있다.

① "아버지께서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를 살리시느니라." 여기에 그의 "권위"가 있다(21절).

첫째, 죽은자를 살리고 생명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다.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처음으로 생명을 불어 넣으셨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역사하셨고, 그들의 사명을 완전케 하셨다. "죽은 자의 부활"은 자연의 일반 규칙에 속한 일도 아니다. 

-- 이런 격언이 있다. "만유는 한 번 꺼지면 다시 빛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일이며, 거룩한 계시에 관한 지식에 속한 일이다. 유대인은 이것을 안다(행 17:32).

둘째, 중보자는 이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가 기뻐하는 사람"을 일으키시는 것이다. 

-- 그는 자연의 필요성에 따라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다. 태양이 제 길을 따라 빛을 비치고 서쪽으로 가는 것처럼 아들은 자유로운 행위자로서 행하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에서 거룩한 권능을 나누어주신 것이다. 강제로 억지로 그렇게 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능을 가졌듯이 또한 하나님의 지혜와 통치권을 가지고 계시다. 

-- 또한 "죽은 자와 무덤문을 여는 열쇠"를 가지고 계시다(계 1:18). 종에게는 문을 여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열쇠와 같은 것을 지니고 계신다." 그것은 주인의 것이다(계 3:7). 절대 군주를 이런식으로 표현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죽이고 살리느니라"(단 5:19). 바로 그리스도가 그러하다.

② 그것을 할 수 있는 그의 "능력."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원하시는 사람을 살려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26절). "왜냐하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들도 자기 가운데 생명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첫째,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생명을 갖고" 계심이 확실하다. 

--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으로서, 다른 어떤 존재에 의하여 유도되거나 파생되는 분이 아닐 뿐만 아니라, 생명을 다스리며 주시는 분인 것이다(출 3:14). 그분은 스스로 생명의 처분권을 가지고 계시다. 

-- 모든 선의 근원이 되신다. 모든 만물은 그분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그분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생명과 선의 근원이 되신다. 또한 모든 존재와 선한 존재들의 주재가 되신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생명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아들에게도 그 자신의 생명을 갖게 하실"것이 분명하다. 

-- 아버지가 모든 자연적인 생명과 선의 근원이 되시는 창조주이시듯, 아들은 대속자로서 영적인 생명과 선의 근원이 되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대하여 근원이 되시는 것처럼 아들은 교회의 근원이 되신다(고전 8:6; 골 1:19 참조). 

-- 은혜의 왕국과 그 나라에서의 모든 생명은 예비해 두신 하늘 나라가 창조주의 손안에 있는 것과 같이, 전적으로 절대적으로 대속주의 손안에 있는 것이다.

③ 주께서는 이런 권위와 능력을 따라서 "행동하신다." 자신 안에 생명을 가지시고 있고, 원하는 사람을 살려내시는 권위를 가지고 있기에 , 그의 권능의 말씀을 따라서 두 가지 부활이 가능한 것이다.

첫째, "현재"의 부활(29절). 

-- 즉 그리스도의 은혜의 권능에 의하여 죄 된 죽음으로부터 의로운 생명으로의 부활인 것이다. "그 시간은 오고 있으며, 지금이 그때이다." 그것은 이미 시작된 부활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목소리를 죽은 자들이 듣게 될 때에 완성되는 것이다. 

-- 이것은 28절에서 볼 수 있는 부활과는 크게 구별된다. 28절은 세상 끝 날에 있는 부활을 말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무덤 속에 있는 죽은 자에 관한 것이 아니다.

a.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야이로의 딸, 과부의 외아들, 그리고 나사로를 살렸을 때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녀야, 일어나라." "젊은이야 일어나라." "나사로야 나오너라." 

-- 구약 가운데에서 이런 경우를 찾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말씀이 아니라 다른 매개체를 통해서 일어났다(왕상 7:21; 왕하 4:34; 13:21). 그래서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난 성도들로 이해한다. 그러나"하나님의 아들의 목소리가 그들을 부른다"고 할 수는 없다.

b.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오히려 허물과 죄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회복되고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권능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엡 2:1). 

-- 복음의 "설교"에 의하여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살아 있는 심령이 될 때, 그 시간이 이미 온 것이다. 아니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이미 그 때가 왔던 것이다. 

-- 또 그것은 "이방의 부르심"을 특별히 말할 수도 있다. 그들은 죽음으로부터 얻은 생명과 같았으며, 에스겔의 환상 가운데 미리 보았던 것이다. 

-- 또 이사야 16장19절에 죽은 자가 살아 날 것이라 하는 예언도 있었다. 그러나 복음의 놀라운 역사는 유대인과 이방인 둘다에게서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때는 아직까지 "존재하며," 또 여전히 "오고 있는" 중이다. 다음을 유의하라.

(a) 죄인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에 있다. 

-- 영적인 생명의 결핍이며, 지각과 힘과 행동을 잃었으며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있는 상태이다. 비참하게도, 그들이 처해진 불행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자신을 그것으로부터 탈출시킬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다.

(b) 하나님께로 향한 영혼의 회심은 죽음으로부터 생명에로의 부활인 것이다. 

--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따라 살고, 하나님을 좇아 호흡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살아가는 것이다.

(c) 영혼들이 영적인 삶으로 돌아서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목소리"에 의하여서인 것이다. 그것은 주의 권능에 의하여 역사하며, 그 권능은 주의 말씀에 의하여 전달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 "죽은 자가 들을 것이다." 듣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믿게 될 것이다. 그 말씀에 의하여 성령이 생명을 주시리라. 그러나 "문자는 죽인다."

(d) 우리는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들어야 살게 될 것이다. "들으라. 그러면 너의 영혼이 살게 될 것이다"(사 4:3).

둘째, 또 다른 부활은 "아직 오고 있는" 것이다. 

-- 이것은 28,29절에 소개되어 있다. "기이히 여기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첫 부활에 관하여 말하였었다. 그것이 믿을 수 없는 것이나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배척하지 말라. 이 세상 끝 날에는 너희 모두가 인자의 권능과 권위의 더 놀라운 부활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그의" 부활이 그의 개인적인 사명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것이었듯이, 모든 사람의 부활은 자기 영혼에 의하여 수행된 행위를 증명하게 될 것이다. 이제 여기서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a. 언제 이러한 부활이 있을 것인가? "그 때는 오고 있다.

-- " 그것은 "고정되어" 있다. 이 위대한 약속은 매우 정확하게 실행될 것이다. 심판은 연기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그날을 약속하셨다. 그 시간은 오고 있는 것이다.

(a) 그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25절에서 말씀하신 때와는 다른 때이다. 

-- 부활은 "과거에 이미 일어났던"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딤후 2:18).

b. 그러나 그 때는 "확실히 온다." 그때는 오고 있으며 날마다 가까워지고 있다. 

-- 그것은 목전에 다가왔다. 그것이 얼마나 남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틀림 없이 계획되었으며, 변경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c. 누가 부활하게 될 것인가?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다. 

-- 태초부터 이 세상 끝날까지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다. 다니엘서(단 12:2)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라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많은" 사람은 "모두"에 해당된다고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이 심판자 앞에 서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 갖자가, 전체가, 전부 일어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몸으로 돌아갈 것이며, 모든 뼈가 자기의 뼈를 찾을 것이다. 무덤은 죽은 자의 감옥이다. 거기에서 그들이 갇혀 있었다. 거기에서 그들이 "소멸되었었다"(욥 24:19).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을 기대하는 가운데 우리는 무덤을 그들의 "침상"이라고 부르고, 거기서 그들이 자다가 다시 "깨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의 보물을 다시 사용하게 될 것이다. 무덤에 "들어가지" 않은 자들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이 무덤에 들어가게 되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 있는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 유대인들의 "스올"(음부)이라는 말은 "무덤"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죽은 자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듣게 될 것"이다.

(a) 이 부활의 실시자. "그들은 주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 즉 나사로가 "이리 나오라"는 목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주께서 그 목소리를 듣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 목소리와 함께 하시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며, 그들이 그 목소리에 순종하게 만드신다. 

--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셨을 때,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런 말도 없었던 것은 주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일어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이 부활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다(살전 4:16). 주께서는 "치는 소리"와 더불어 내려가시니, 옹의 외침소리요, "천사장의 목소리"가 동반될 것이다. 

-- 그리스도 자신이 천사들의 왕이며, 하늘 나라의 사령관이요,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오실 것이다. 병사들의 나팔소리는 전쟁을 예고하고 심판자의 나팔 소리는 재판의 소집을 알려 주는 것이다.

(b) 부활의 결과. "그들은" 무덤을 열고 밖으로 "나올 것이다." 

-- 죄수처럼 감옥에서 밖으로 나올 것이다. 그들은 먼지를 털고, 일어날 것이다(사 52:1, 2, 11 참조).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판대 앞에 설 것이며 자기들이 노력한 바대로, 앞으로 나와서 피고석에 서서 판결을 받을 것이다.

e. 일어나서 어떻게 되는가? 행복하게 되든지 불행하게 되든지 각각 자기들의 행실대로 될 것이다. 그들이 행하였던 바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a)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영원히 살게 된다.

[a] 사람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었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든, 그 위대한 심판의 날에는 "선한"행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이다.

[b] 육신의 부활은 끊임없이 선을 행하며, 신실하였던 사람들 모두 그리고 그들에게만 생명의 부활이 될 것이다. 

-- 그들이 죄를 용서받은 자로서 무죄로 방면되어서, 자기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존전에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며, 그들의 삶은 현재의 삶보다 더욱 좋은 것이 될 것이다.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며, 가멸성은 삼켜지고 불멸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b) 악을 행한 자들에게, 부활은 심판의"부활"이 있을 것이다. 

--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공공연히 고발 받게 될 것이고, 영원한 형벌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유예가 없으며, 그들의 벌은 즉시 행하여질 것이며, 즉시 시행될 것이다. 부활이란 이런 것이다.

(2) "심판을 행할" 중보자의 "권위"에 대하여 어떻게 언급되어 있는가 보자(22-24, 27절을 보라). 

-- 전능하신 능력을 지니셨듯이, 사법권도 행하신다. 또한 생명의 아버지가 되며 근원이 되는 분이 아니라면 다른 생명을 심판하는 위대한 일을 누가 맡을 수 있을까?

① 심판의 날에 그리스도께서 맡으신 일과 위엄이 두 가지로 설명되어 있다.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22절). 27절에도 있다.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첫째,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신다." 

-- 아버지께서 다스리심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스리기를 기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의 공포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중보자에 의해 그에게로 접근할 수 있는 위로를 얻은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신다." 즉

a.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단순히 "창조"의 권리에 의하여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언약"에 의하여 다스리시는 것이며, 중보자에 의하여 정해진 조건으로 다스리신다. 

--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므로 흙을 마음대로 빚는 토기장이처럼 우리를 마음대로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이런 이점을 이용치 않으신다. 오히려 "사람의 방식대로" 다루신다.

b. 하나님께서는 "율법시대의 언약"에 의하여 우리의 영원한 상태를 결정하지 아니하시며, 그 언약을 파괴했다 해서 우리를 벌하지 아니하신다. 

-- 중보자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하시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다스림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하시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다스림으로 우리를 대하시도록 화해자가 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자의 "율법으로" 다스리지 아니하시고, 속죄자의 "은혜로" 다스리시는 것이다.

둘째,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 이 말은 그가 "만유의 주"가 되심을 의미한다(행 10:36; 롬 14:9). 

-- 애굽에서의 요셉과 같다(창 1:40). 이것은 이미 예언되어 있다. 시편 67편 4절, 72편 1절, 96편 13절, 98편 9절, 이사야 11장3,4절, 예레미야 23장5절, 미가5장1-4절에서 볼 수 있다. 모든 심판은 우리 주 예수께서 맡으신다.

a. 그분은 예비하여 두신 하늘 나라의 다스림을 위탁받으시고, 모든 만물의 주가 되시며(엡 1:22), 모든 사람의 머리가 되신다.(고전 11:3). 모든 일은 그분에 의해서 결정된다(골 1:17).

b. 그분은 양심을 구속하는 법을 위임받으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라는 말은 하늘 나라의 헌장에 나오는 어법이다. 그것은 주 예수에 의하여 공포되고 시행된다. 시행중인 모든 행사는 그분의 홀이 관활한다.

c. 그분은 새로운 언약 조건을 정하시고, 명하시도록 위임받으셨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 조약을 설정하셨다. 

-- 이 세상과 화해하신 분은 그리스도안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영생을 주도록 권능을 주신 것이다. 생명의 책은 어린양의 책이다. 그분의 기록에 따라서 우리가 설 수도 있으며 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d. 그분은 어둠의 권세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종결지을수 있도록 위임 받으셨다. 이 세상의 왕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12:31). 

-- 그분은 심판을 위임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하실 것이다(계 19:11). 사탄을 멸하는 하나님의 전쟁은 그의 기치 아래서 군병을 모집하게 될 것이다.

e. 그분은 대심판의 날에 재판의 유일한 주인으로서 예정되신 것이다. 

-- 고대인들은 심판의 권세를 최고의 권한으로 이해하였다. 최종적이며 우주적인 심판은 인자에게 위임된 것이다. 재판장의 자리는 그의 것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판석이 될 것이다. 수행원들도 그의 것이며, 그들은 전능한 천사들인 것이다. 주께서 심판하시며 선고하실 것이다(행 17:31).

세째, "심판 시행의 권세"를 주셨느니라(27절). 다음을 유의하자.

a. 우리의 대속자에게 위임된 것은 어떤 권위인가? "심판할 권위"인 것이다. 

-- 그분은 사법권뿐만 아니라, 그 "시행할" 권위를 갖고 계셨다. 이 구절은 특히 정죄의 판결에 사용되었던 것이다(유15). 회개하지 않는 죄인의 파멸은 그리스도의 손에서 온다. -- 그들을 심판하시는 분은 그들을 구원코자 했던 그분이다. 이것은 그 형벌을 더 무거워 한다. 구원주의 심판에는 구제책이 없다. 구세주가 정죄한 자들은 구원할 수 없다. 그것은 구제할 수 없는 파별인 것이다.

b. 어디서 그 권위를 받으셨나? 아버지께서 "그에게 권세를 주셨다." 

--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군위는 위임받은 것이며 파생된 것이다. 그분은 아버지의 대리로서, 주의 기름 받은 자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로서 행하신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불경하다는 죄에서 그를 해제시킨다. 실로 "하나님과 동등하게" 해 준다. 그것을 믿는 모든 성도들의 위로가 되며, 그들의 가장 위대하신 중보자인 것이다.

② 그에게 이러한 사명이 주어진 두 가지 이유, 그는 두 가지 이유로 해서 모든 심판을 위임받으신 것이다.

첫째, 그는 "인자"(人子)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 점을 의미한다.

a. 그의 겸비와 은혜로운 겸양, 

-- 인간은 하나의 벌레와 같으며, 인자도 벌레와 다름없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대속자께서 사랑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떠맡은 본성이요 특성이다. 낮은 자리에까지 자신을 굽히시고 모든 모욕을 받으셨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놀라운 순종에 대한 보답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또한 고귀하게 하셨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인자"가 되시기까지 겸비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그를 "만유의 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빌 2:8, 9).

b. 그와 우리의 유사성 및 결연을 의미한다. 

--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인생들을 다스릴 것을 위임하셨다. 그가 "인자"이며, 따라서 다스림을 받을 자들과 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더할 나위 없이 심판자로서 재판관으로서 가장 적합한 부이다. "그들 가운데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올 것이다"(렘 30:21). 저 율법은 이것의 상징이다. "너희 형제 중에서 너희의 왕으로 선출될 것이다"(신 17:15).

c. 그는 약속된 메시야임을 의미한다. 

-- 그의 나라와 영공의 놀라운 광경에서(단 7:13-14), 그를 "인자"라고 부르고 있다. "당신의 손으로 지은 모든 것들을 다스리던 당신이 인자가 되셨나이다." 그는 메시야이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다. 유대인들은 항상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셨다. 그것은 좀 더 비천한 호칭이나, 유대 나라만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자임을 가리킨다.

둘째, "모든 사람들이 아들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다"(23절)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함이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이라고 언급되어 있다(12:32). 그러한 계획에 순응하는 것이 인간의 위대한 의무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들로 하여금 영광을 받기 원하신다면,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모든 인간들의 의무인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a. 우리 주 예수께 "존경"을 보내야 한다. 

-- 우리는 아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영광을 받으실"분으로 존경하여야 한다. 그것은 그의 탁월한 우수성과 완전성 때문만이 아니다. 그와 우리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거기에 맞는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또한 "그가 주이심"을 고백하고, 경배드려야 할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부끄러움을 당하신 그에게 영광을 드려야 할 것이다.

b. 그 정도. "아버지께 드리는 영광"과 같다. 

-- 본문은 "아들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지시하여," 또한 그에게 "거룩한"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돌리는 똑같은 영광을 구원 주에게도 돌려야 할 것이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결코 불경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대하여 창조주에 대한 의무와 꼭 같은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의 섭리와 마찬가지로 대속자의 은총에 의존할 필요를 갖고 있는 것이다.

③ 아들이 이러한 임무를 실행하게 될 법칙이 나와 있다. 

--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24절)는 것이다. 여기서 총체적인 복음의 본질을 볼 수 있다. 그 서두는 이 말에 "주의"를 환기시키며, 그 내용에 "찬동"을 요하고 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는 모든 심판을 다스릴 것이며, 나의 입술에서는 거룩한 말씀이 나온다. 나로부터 그리스도인의 특권과 특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기독교인의 특성. 

-- "나의 말을 듣는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이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a.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다." 

-- 단순히 그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아니하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마치 학생들이 스승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아야 할 것이다. 또한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종과 같이,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야 하며, 우리들의 믿음과 그 규휼의 규칙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고정시키고 그 안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b. "그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 그의 뜻은 "우리를 하나님께 데려 가는" 것이다. 주께서는 모든 은혜의 근원이 되시듯, 모든 믿음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안식"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어야 할 것이며, 우리들의 믿음과 사랑의 대상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가운데서,""그의" 아버지되시고 "우리의" 아버지되시는 분으로서 영광을 나타내신 것이다(고후 4:6).

둘째, 기독교인의 "특권" 그 안에 모든 기독교인이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의하여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a. 용서의 "특권"이다. 

-- 그는 "심판하러 오시지 않을 것이다." 복음의 은혜는 율법의 저주로부터 완전 해방인 것이다. 믿는 자는 영원한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그 위험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롬 8:1).

b. 특별한 특권. 그는 "죽음을 이기셨다." 

-- 그는 영원한 생명 가운데서 미래의 행복을 누리며, 영적인 생활로써 현재의 행복을 누린다. 첫 번 계약의 주지(主旨)는 "이것을 행하면 살리라"였다. 그대로 행하는 자는 살게 될 것이다. 이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들으면 살리라, 믿으면 살리라." 우리는 "행하며,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17:2).

④ 이러한 임무 수행에서 지키는 그의 의가 나와 있다.(30절). 

-- 모든 심판은 그에게 위임되었다. 우리는"주께서 어떻게 행하실 것인가"를 물을 수가 없다. 그런데 대답이 있다. "내 심판은 옳으니라."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모든 행위는 "합법적"이며 "정의로운"것이다. 또 공평의 법칙에도 합당한 것이다(잠 8:8). 구원자의 결정에는 어떤 예외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을 폐기할 수 없으며, 그의 재판에 대하여 의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의 심판은 확실히 정의로운 것이다. 그것은 다음에 의해서 지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아버지의 "지혜"에 의해서, 

-- 그는 "아버지의 뜻이 아니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19절).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행한다.

a. 아버지의 영원한 뜻을 받들어 "내가 판단한다." 

--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원하는 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라."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비밀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비밀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다스리심과 심판에 대한 드러난 계시에 주의만 하면 된다. 그것은 우리에게 오류가 없는 인도를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판결하시는 것과 아버지께서 판결하신 것은 정확히 동일하다.

b. 구약의 기록으로부터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일에서 구약성서를 주목하고 행하시며, 그것을 완성하는 것을 임무로 삼으신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뜻을 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거기에 따를 것을 가르치고 있다.

둘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지도된다. "나의 판단은 옳다." 

-- 나의 뜻을 따라 한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뜻이 아버지의 뜻이 아버지의 뜻에 반대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은 영혼의 뜻에 반대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우리 안에 육신은 영혼의 뜻에 반대된다.

a.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께서는 자연스럽고 무궁한 인간 본성과 경향성을 갖고 계셨다. "고통"과 "기쁨," 생명에로의 경향성과 죽음에 대한 혐오를 지니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에 따랐던 것이다.

b. 중보자로서 그가 행하신 것은 그 자신의 어떤 특별하고 특수한 목적과 계획의 결과가 아니다. 그가 행하고 찾는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얻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 가운데서 그는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인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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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자기 증언(요 5:31-47)

여기에서 우리 주 예수께서는 자기가 선도하신 사명을 증거하시고 확고히 하셨으며,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증거하는 일은 "밀어 두었다."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다(31절). 진리인 것이라도 곤란하다. 인간들은 그런 증거를 합법적인 증거라고 보지 아니할 것이다."

1. 그러나 이러한 말은 인생들을 꾸짖는 것이며, 그들의 성실성과 정직성을 비난하는 것이다. 

-- 다윗이 서둘러 말한 바 있는 "모든 인간은 거짓말장이다"라는 말을 우리는 정중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증거는 의심스럽고 취할 바가 못된다는 격언이 생겼을 리가 없다. 이것은 자기에 대한 애착이 진리에 대한 애착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2.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드러낸다. 또 그의 놀라운 겸양을 말해준다. 

-- 그는 "성실한 증인"이며 진리 그 자체이고, 아무도 그의 영광의 신실함에 도전할 수 없지만, 주께서는 기꺼이 "자기의 특권을 포기하셨다."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고 완전한 만족을 얻게 하고자, 자신을 살인자들에게 내어 주신 것이다.

Ⅱ. 주께서는 자기의 하나님께서 보낸 자임을 증거해 주는 다른 증인을 말하셨다.

1.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 대하여 증거를 하셨다.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32절) 곧 하나님이다." 여기서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1).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위임하신 증거.

--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하늘로부터 들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하여 그리했을 뿐 아니라, 나와 함께 거하시는 임재의 징표에 의하여 지금도 그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증거하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① 그가 "보내시고" "고용하신" 사람들이다. 

-- 그의 위임이 있는 곳에 신임장이 있을 것이다.

② 그에 대하여 증거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하셨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자들의 영광을 드러내 주실 것이다.

③ "자기를 위하여 증거하기를 거절하는 " 자들을 위해 증거한다. 

--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자들을 돌보신다. 자기 영광을 찾지 아니하는 자도 손해보지 않을 것이다.

(2) 그리스도는 이 증거에 만족에 만족하셨다.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32절). 나는 내가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것을 확신한다. 그것에 대하여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 사탄은 그리스도께 대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됨을 의심하도록 하였으나 성공할 수 없었다.

2.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였다(33절). 요한은 "그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왔다(1:7).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그에게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 임무였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1) 요한의 증거는 이러하였다.

① "엄숙"하고 공공연한 증거였다. 

-- 너희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그가 말한 것에 대하여 책잡을 기회를 노렸다. 그것은 민중의 증거는 아니나 사법적인 증거였다.

② "진실한" 증거였다. 

-- "그는 진리에 따라 증거하고, 진리만을 증거하여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가 나를 증거하러 왔다." 다만 그리스도께서는 정직한 사람답게, 그는 "진리를 증거하러"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같이 그렇게 거룩하고 선한 사람이 굴욕을 당하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죄를 지으리라고 상상할 수는 없었다.

(2) 요한의 증거에 두 가지의 것을 더 할 수 있다.

① 그것은 필요 없는 증언이었다.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34절). 

--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의 증거를 인용하기에 알맞게는 보았으나,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특권, 즉 충분한 자족적 자기 증거를 부인하지는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추천의 글이나 증빙서류나 보증서를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다만 그리스도 자신 가운데 그런 뛰어남을 지니고 계셨던 것이다.

--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왜 요한의 증언을 여기서 인용하셨는가?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구하려 하심이 아니요,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시려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그들 중의 한 사람, 세례 요한으로부터 증거를 인용하시고, 그들이 그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라.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대적이나 박해자들까지도 구원하시려고 생각하시고 희망하셨다.

둘째, 그리스도의 말씀은 구원의 일반적 수단이 된다.

셋째, 말씀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약점을 고려하신다. 

-- 우리의 능력을 알고 계시므로 위대한 왕에게 맞게 한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말로 말씀하셨던 것이며,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될 그런 말로 하셨다.

② 그것은 "사람들에게 주는" 증거였다. 세례 요한은 그들이 존경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너희 가운데 있는 빛이었다"(35절). 다음을 기억하자.

첫째, 세례 요한의 특성. "그는 불타고 있으며, 빛나고 있는 빛이었다." 

--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을 존경하여 말하였다. 그가 당시 감옥에 갇혀 있어서 구름에 가려 있었으나, 그리스도께서 그를 높이 칭찬하신 것이다. 우리들도 하나님께 신실하게 봉사하는 사람들을 칭송할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a. 그는 "하나의 빛"이었으며, 빛 그 자체가 아니었다. 

-- 요한의 임무는 메시야의 도래가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어두운 세상에 알려 빛을 비추는 일이었다. 즉 세례 요한은 "새벽별"이었다.

b. 세례 요한은 "불타고" 있는 빛이었다. 이것은 "신실성"을 의미한다. 

-- 그림 속의 등불도 빛나게 보일지 모르나 불타고 있는 빛(등)이 진짜 빛이다. 또한 세례 요한의 능동성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의 영혼에 대하여 타는 듯한 열심과 열정을 의미한다. 불(빛)은 항상 무엇엔가 작용을 가하듯 선한 목회자도 그러하다.

c. 세례 요한은 "비치는"빛이었다. 그것은 요한의 "훌륭한" 말씀을 의미한다. 

--- 요한은 다른 사람들의 시야를 조명해 주었다. 비록 그가 어둠 가운데서 갇혀 있을지라도, 광야에 있었을지라도, 그의 교훈과 그의 시야를 인도하고 있었다.

둘째, 세례 요한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 "너희는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다"(35절).

a. 요한이 나타남으로써 백성들은 "즐거움"에 빠졌다. "

-- 너희가 원하였다." 즉 그 빛 가운데에 있기를 즐거워하였다. "너희들은 너희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대단히 자랑으로 삼고 있었다. 세례 요한은 너희 나라의 영광이었다. 너희들은 춤추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빛에 대하여 모닥불가에 모인 어린이들처럼 소란스러웠다."

b. 그것은 "덧없는" 빛이다. 

-- "너희들은 그를 좋아하였으나, 한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운 것을 좋아하듯 너희는 잠시 동안 세례 요한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곧 그에 대하여 싫증을 내고, 그의 전도를 싫어하여, 사탄의 증거를 한다고 트집을 잡아, 이제 그를 감옥에 가두지 않았는가?" 

--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복음을 즐거워하며 좋아하다가 후에는 그것을 배척하고 멸시하게 됨을 명심하라. 요한의 빛을 기뻐하기는 하였으나 그 빛 가운데서 걷기를 거부하며 그 빛을 지키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돌짝 밭과도 같았다.

-- 헤롯이 세례 요한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는 동안, 백성들은 그를 좋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한에게 헤롯이 눈쌀을 찌푸리자 그를 따르는 자들이 모두 달아났던 것이다. "너희는 요한의 비위를 맞추기 원하였다. 그러나 일시적인 목적"에서였다. 너희는 그를 기뻐하였으나, 그를 하나의 도구로 만들기를 원하였다. 요한의 명성으로 이 로마의 멍에를 벗어나서, 너희 백성들의 자유를 되찾고, 너희 나라의 영예를 되찾는 도구로 쓰는 데 흥미를 갖고 있었다."

(a)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에 대한 그 백성들의 존경을 언급하시고 그들이 이제 세례 요한에 대한 존경심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마땅히 요한의 증거를 믿고, 그리스도를 마음 가운데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 했다.

(b) 그리스도께서는 백성들의 요한에 대한 존경심이 덧없는 것임을 언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그들이 행한 대로 모든 것을 박탈하실 것이다. 등경 아래 등불을 놓아두었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 자신의 일을 증거한다.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36절). 

-- 요한의 증거가 수긍시키는 힘이 적으며, 덜 중요한 증거라 할지라도, 주께서는 즐겨 그것을 인용하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것들이 시위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하나도 무효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필요로 한 때가 있다.

-- 그러나 더 위대한 증거는 아버지께서 아들로 하여금 성취케 하시려고 맡기신 "일"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의 전체 생애와 전도이다. 

-- 우리에게 하나님을 계시해 주고 인간들에게다 천국을 만들며, 이 세상을 개조하고, 사탄의 왕국을 쳐부수며, 그리스도의 원초적인 신실함과 순수함에 대하여 실족한 인간들을 격려시키며 인간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어주며 서로서로 사랑하도록 하여 주는 것이다. 그 모든 일은 그리스도의 운명 일은 그리스도의 운명 때문에 성취된 것이다. -- "다 이루어졌다." 그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가치 있는 사업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모든 것은 거룩하며 하늘 나라에 속한 것이다. 또한 거룩한 고결함과 권능과 은혜가 그 안에서 빛난다.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라는 것을 충분히 증거하는 것이다.

(2) 자세히 말해 보자. 그리스도 자신의 사명을 증명하기 위해 행하신 기적이다.

① 이 일들은 "아버지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 했다. 

-- 그리스도께서는 그 일을 수행하여 권능을 받고 위임받은 것이다.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로부터 권세와 의무를 받으신 것이다.

② 그 모든 것을 "성취케"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가 이미 결정하신 놀라운 사업을 성취해야만 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완성하심은 하나님의 권능을 증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완전하기 때문이었다."

③ 이 일들이 "그를 증거했다." 

-- 즉 그가 하나님께서 보낸 자임을 증명했고,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임을, 즉 주인이 종을 심부름 보낸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만약 아버지께서 그를 보내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를 "찬성"하거나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의 창조주가 세상을 속이는 자가 될 수는 결코 없다.

4. 그는 자기에 대한 아버지께서 나를 증거를 이전부터 더 많이 제시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를 증거하고 계시다"(37절). 

-- 하나님은 세례식 때도 하늘로부터 음성을 들려줌으로써 아들을 증거하기를 즐거워하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마 3:17). 하나님은 자기가 "보낸"자를 친히 "증거 하신다." 그는 어디에 파견하든지 반드시 자기의 인을 함께 보낸다. 하나님은 신앙을 요청하는 어느 곳에서나 반드시 충분한 "증거"를 주신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하신 것도 그러한 것이다.

--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를 증언하셨다면, 어떻게 유대 민족과 그 지도자들이 그를 인정하지 않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 그리스도는 두 가지로 답하셨다.

(1) 그들이 하나님의 뜻이 그같이 비상하게 계시되는 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은 일도 없고 그의 모습을 본 일도 없다. 우리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에 대해서 그러하듯,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한 자신들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그의 아들에 대한 기록을 거부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2) 또한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자신을 그들에게 자신을 그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일상적인 방식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머물러 있지도 않다"(38절).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속에 없었다. 

-- 그들 "에게" 있었으나 그들 "속에" 있지는 않았다. 즉 그들의 마음속에는 없었다. 그들의 심혼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귀에 지나가고 눈에서 어른거릴 뿐이었다. 그들이 이 같은 신학들을 저들 속에서 "지배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맡겨진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롬 3:2). 만일 그들 속에 말씀이 지배하고 있었더라면,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것이다.

둘째, 그것이 "머물지"않았다. 

-- 많은 사람이 잠시 동안 말씀을 듣고 인상을 받으나, 말씀과 더불어 있지 못한다. 사람이 집에 살 듯이, 말씀이 그들 속에 살지 못한다.

--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이 어떻게 드러났는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지 않음"으로써이다. 말씀, 성령,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이 보내신 것, 특히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그 사실이 실증된다.

5. 그가 제시한 다음의 증거는 구약 성서이다. "성경을 연구하라"(39절).

(1) 이것은 다음처럼 읽을 수 있다.

① "너희는 성경을 연구한다. 그리고 그것은 잘하는 일이다"하는 뜻이다. 

-- 그리스도는그들이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한다. 사람이 성경의 글자 연구에 대단히 몰두하면서도 그 권능과 영향력에 대해서는 낯선 자가 될 수 있다.

② 혹은 "성경을 연구하라"라고 읽을 수도 있다. 이 말은 "그들"에게 "호소"의 형식으로 말해진 것이다. 성경을 찾아보라는 호소이다. 성경을 빠짐없이 "다" 찾아 보라. 그리고 하나하나 비교해보라. 서로서로 해명해 보라. "밑바닥까지" 철저히 연구해 보라. "처럼" 보이는 뜻을 보지 말고, "정말로" 의미하는 것을 찾아내라. 이것은 우리에게는 "권고"의 형식으로 된 말이다. 

--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성경"을 연구하라. 그리고 첫째는 "부지런히" 마음을 다 경주하여 하고, 둘째는 뜻을 발견하려는 "열망과 계획"을 가지고 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종종 "지금 내가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해 보아야 한다. 금이나 은을 파내려고 광속으로 들어가듯 혹은 진주를 채집하러 바닷 속으로 내려가듯 해야 한다.

(2) 또한 성경을 연구할 때 유의해야 할 두 가지를 지시하고 있다. 그것은 "하늘"을 목표로 하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길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① "그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너희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 성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를 확증해 주며, 그 나라에서의 영생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는 "너희는" 성경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그들은 그저 읽고 연구하는 것으로써만 영생을 찾았다. "율법의 말씀을 지니고 있는 자는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들이 흔히 해 오던, 그러나 잘못된 말이었다.

②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 이같은 목표에 도달케 하는 새로운, 살아 있는 "길"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나를 증거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성경이란, 구약 성경까지도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를 "증거한다."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이 메시야를 증거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구절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거기에 부주의했고, 그 해석을 잘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연구해야"한다. 이유는, 그것이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기 때문이다. 또 이유는, "그를 아는 것이 곧 영생"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바로 성경이라는 밭에, 그 우물에 감추인 보배이다.

(3) 이러한 증거에 따라서 그는 4가지 책망을 제시했다.

① 그들이 "그를 모르고" 있고, 그의 교훈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생명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치 않았다"(40절). 

-- 그들이 그리스도와 단절된 것은 그들의 이해력 탓이 아니라 "의지"탓이었다.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었는데, 그들이 받지 않았다.

여기에 그리스도께서 가엾은 영혼들과 나누어 가지려는 "생명"이 있고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생명이다. 

-- 이 생명을 원하는 자는 그것을 얻으려고 그리스도 예수께 나와야 한다. 죄인이 멸망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가기를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불가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의지"에서 오는 것이다. 그들은 치료를 원치 않는다. 치료의 방책을 지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괄호 속에 나와있다(41절). 그것은 그에 대한 반대를 명시해 주는 말이다. 마치 모든 자들을 그에게 오게끔 만드는 것이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식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칭찬을 탐내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는 사람의 칭찬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치욕"을 당했다. 또 그는 사람들의 인기가 필요치 않았다. 그것이 그의 영광이 보탬이 될 수는 없었다.

②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결핍"되고 있음을 지적했다(42절). "

-- 나는 너희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음을 안다." 그리스도를 경시하는 이유가 바로 그들 속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책망했다(37절). 그리고 여기서는 사랑이 없다고 책망한다. "그러므로,"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 그들이 고발당하는 범죄는 무엇인가? "너희 속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도다." 그들은 크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했다. 율법에 대한 지극한 열심히 그것을 증거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 

-- 하나님을 거창하게 고백하나, 실은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무지한 자들이 많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경건과 선을 무시한다.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거함이요,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수용"(용납)할 것이다. 사랑은 거기서부터 흘러나온다.

-- 이 책망의 증빙은 그리스도가 앎이다. "내가 너희를 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가면을 꿰뚫어 보신다. 그리고서 "내가 너희를 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는 "이웃 사람"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신다.

③ 또 하나의 책망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를 쉽게 받아들임이다.

--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안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받아들이리라.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든 자기 이름으로 오는 자에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자기들의 자비를 잊었다. 이것도 대단히 나쁜 일이다. 그러나 "거짓된 것" 때문이었다. 이 점이 더 나쁘다.

-- 자기들 이름으로 오는 예언자들이 있다. 진리를 받지 않은 자들은 속도록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이 옳으신 것이다. 참 빛을 향해 눈감아 버리는 자들은 이상하게도 "거짓 빛"에 빨려 들어간다. 또 그들은 교만, 헛된 영광, 불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받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경시했다. 즉 "자신들을 찬미하고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

첫째, 세상적 영예에 대한 야망, 그것은 그리스도가 멸시하신 것이다(41절). 

-- 그런데 그들의 마음은 거기에 있었다.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받는다." "너희는 영광 받으려 하고, 매사에 그것을 염두에 두고 한다. 너희는 남들에게 영광을 돌리며, 칭찬한다. 그러나 그것은 너희가 영광과 칭찬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다. 어떤 영광이 오든지 너희는 그것을 스스로에게 돌리고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한다."

둘째, 신령한 영광을 무시한다. 

-- 즉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광"은 무시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을 누린다. 우리가 추구할 것은 바로 이같은 영광이다.

세째, 이것이 그들의 불실성에 영향을 미쳤다. 

-- 그렇게 움직이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세상 욕망에 좌우되는 것은 그리스도 신앙에 큰 장애물이다.

6. 여기에 나온 마지막 증인은 모세이다(45절).

(1) 모세는 유대인의 불신앙을 고발하는 증인이다. "너희를 고발하는 이는 모세이다." 다음 뜻일 것이다.

①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말한 것이다. 

-- "모세 곧 율법이 너희를 고소한다." 율법으로 죄를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너희를 정죄한다." 그러나 너희를 고소하는 것이 복음의 목적은 아니다. "내가 너희를 고소한다고 생각지 말라." 그는 고소자가 아니라 변호자로 왔다.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러 왔다.

② 혹은 저들의 불실성이 부당한 것임을 증거하는 말이다. 

-- "내가 너희의 법정에서 하나님께 탄원한다고 생각지 말라.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처럼." 그는 아버지께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를 고소하기는 커녕,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하고 기도했다. 모세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라. 마치 그가 한패가 되어 예수를 배척한 다는 식으로 생각지 말자. 아니 너희가 믿는 모세도 너희를 고소한다."

(2) 모세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을 지지하는 증인이다. 

-- "그는 내게 대해 썼다"(46,47절).  모세의 율법의 의식들은 "오실 자의 그림자"였다. 그리스도는 모세가 자기를 고발하는 글이 아니라 "차지하는" 글을 썼다고 밝히셨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그들이 모세를 믿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그는 그들이 모세를 "신뢰"한다고 말했었다(45절). 그러나 여기서는 그들이 그를 불신했다고 비난한다.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으리라."

-- 많은 사람이 입으로는 믿는다 하는 데, 행동으로는 믿지 않는다. 성경을 어느 한 구절이라도 제대로 믿는 자는 성경 전체를 받아들일 것이다.

-- 모세에 대한 불신에서, 그들이 자기를 배척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이론을 예수는 끄집어냈다. "너희가 그의 글을 믿었더라면 어찌 내말을 안 믿을 수 있느냐?" "거룩한 글을 믿지 않는데, 말을 믿겠는가?" 전제를 믿지 않고 어찌 귀결을 믿으랴? 이래서 그리스도의 변명은 끝난다. 당분간 그들의 "입"은 "침묵"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더욱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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