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1.1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요15.포도나무.정결.생명.열매.사랑.기쁨.희생.친구.성령.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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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요15장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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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요15장

1.  "I am the true vine, and My Father is the vinedresser.

2.  "Every branch in Me that does not bear fruit, He takes away; and every [branch] that bears fruit, He prunes it, that it may bear more fruit.

3.  "You are already clean because of the word which I have spoken to you.

4.  "Abide in Me, and I in you. As the branch cannot bear fruit of itself, unless it abides in the vine, so neither [can] you, unless you abide in Me.

5.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he who abides in Me, and I in him, he bears much fruit; for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6.  "If anyone does not abide in Me, he is thrown away as a branch, and dries up; and they gather them, and cast them into the fire, and they are burned.

7.  "If you abide in Me, and My words abide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shall be done for you.

8.  "By this is My Father glorified, that you bear much fruit, and [so] prove to be My disciples.

9.  "Just as the Father has loved Me, I have also loved you; abide in My love.

10.  "If you keep My commandments, you will abide in My love; just as I have kept My Father's commandments, and abide in His love.

11.  "These things I have spoken to you, that My joy may be in you, and [that] your joy may be made full.

12.  "This is My commandment, that you love one another, just as I have loved you.

13.  "Greater love has no one than this, that one lay down his life for his friends.

14.  "You are My friends, if you do what I command you.

15.  "No longer do I call you slaves, for the slave does not know what his master is doing; but I have called you friends, for all things that I have heard from My Father I have made known to you.

16.  "You did not choose Me, but I chose you, and appointed you, that you should go and bear fruit, and [that] your fruit should remain, that whatever you ask of the Father in My name, He may give to you.

17.  "This I command you, that you love one another.

18.  "If the world hates you, you know that it has hated Me before [it hated] you.

19.  "If you were of the world, the world would love its own; but because you are not of the world, but I chose you out of the world, therefore the world hates you.

20.  "Remember the word that I said to you, 'A slave is not greater than his master.' If they persecuted Me, they will also persecute you; if they kept My word, they will keep yours also.

21.  "But all these things they will do to you for My name's sake, because they do not know the One who sent Me.

22.  "If I had not come and spoken to them, they would not have sin, but now they have no excuse for their sin.

23.  "He who hates Me hates My Father also.

24.  "If I had not done among them the works which no one else did, they would not have sin; but now they have both seen and hated Me and My Father as well.

25.  "But [they have done this] in order that the word may be fulfilled that is written in their Law, 'THEY HATED ME WITHOUT A CAUSE.'

26.  "When the Helper comes, whom I will send to you from the Father, [ that is] the Spirit of truth, who proceeds from the Father, He will bear witness of Me,

27.  and you [will] bear witness also, because you have been with Me from the begi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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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장 (개요)

본장과 다음 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강화(강화)는 그가 팔리우시던 날 밤 성만찬석에서 행하여졌던 것으로써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이 강화는 앞에 있는 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에 계속되는 것이다. 주님이 하신 이 강화는 이별 설교의 슬픈 정황을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다. 이제 주님이 제자들을 떠나가려 하시기 때문에,

Ⅰ. 그들 제자들은 유혹을 받아 다시 그를 떠나 모세에게로 돌아갈 것이므로 주님은 그들이 믿음으로써 자신에게 붙어 있고 그 안에 거하여야 할 것과 이렇게 그 안에 거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그들에게 당부하고 계시다.

Ⅱ. 또한 그들은 서로 거리가 멀어지고 알지 못하게 되는 사이가 될 것을 주님은 우려하여 그들이 서로 사랑할 것과 그가 떠나갔을지라도 지금까지 그들의 위안이 되었던 그러한 친교를 계속 유지할 것을 당부하고 계시다.

Ⅲ. 제자들은 어려운 역경을 만났을 때 그들의 사도직(使徒職)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키게 될 것이므로 주님은 세상의 악의의 찬 공격을 막도록 준비시키시고 있다. 본 장(章)에 있는 그리스도의 강화(講話)는 요약해서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열매(1-8).

2. 사랑(8-17).

3. 미움(18-25).

4. 보혜사(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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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요 15:1-8)

그리스도께서는 포도나무 비유를 통하여 제자들이 맺어야 하는 열매 곧 성령의 열매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있다. 여기서 음미해 보자.

Ⅰ. 이 비유의 교훈.

여기에 표현되어 있는 이 비유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 것인가.

1. 예수 그리스도는 참 포도나무이시다. 주님이 비유를 통해 자신을 낮고 천하게 표현하기를 기뻐하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겸손하시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의(義)의 태양이시며 밝게 빛나는 새벽별이신 주님이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다. -- 교회는 신비스러운 그리스도 자신이며 포도나무다(시 80:8). 또한 그리스도는 교회의 씨가 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교회는 병존된다.

(1) 그리스도는 포도원에 심기워진 포도나무이지 우연히 생긴 나무는 아니다. 그는 이 땅에 심기워졌는데 이는 그가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포도나무는 볼품도 없고 뛰어나지도 않는 외형을 지니고 있듯이 그리스도도 모양이 없고 보기에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사 53:2). 

-- 포도나무는 옆으로 퍼져나가는 식물인 것처럼 그리스도도 역시 세상 끝까지 구원하는 구세주로 알려질 것이다. 포도나무 열매는 하나님을 즐겁게 하고 사람을 기쁘게 하듯이(삿 9:13) 그리스도의 열매 역시 그렇다. "그것은 정금보다 더 낫다"(잠 8:19).

(2) 그리스도는 참된 것이 꾸밈과 허위에 반대되는 것처럼 참 포도나무가 되신다. 그는 참으로 열매맺는 나무이며 영예로운 나무가 된다. 그리스도는 추숫군으로 헛탕을 치게 하는 야생 포도나무가 아니라(왕하 4:39) 참 포도나무가 된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들은 모두 가짜이며(합 3:17), 그리스도는 그렇게 속이는 포도나무가 아니라 참 포도나무인 것이다. 

-- 피조물 중에서 아주 뛰어난 속성을 지니고 있어 그것으로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선한 백성을 위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은총의 결과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의 진액으로 풍성하게 되었던 유다의 포도나무와(창 49:11) 담장을 넘어간 요셉의 풍성한 포도나무와(창 49:22) 그 밑에서 평안히 안주할 수 있었던 이스라엘의 포도나무를 상징하는 바로 그 참 포도나무인 것이다(왕상 4:25).

2. 신앙인들은 이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며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의 뿌리가 된다. 뿌리가 보이지 않고 감추어져 있듯이 우리의 생명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감추어져 있다. 뿌리는 나무를 지탱해 주고 있고(롬 11:18) 활력소를 나무에 공급해 주며 나무를 무성하고 풍요하게 만든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공급되고 지탱되는 것이다. 포도나무 가지들은 무성하게 되면 집이나 담장 이편 저편에 널려져 퍼져 나가지만 결국 뿌리에서 모든 것이 다시 합쳐지고 그것은한 포도나무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 이와 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는 곳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지라도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게 되는데 이때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로 통합하게 하는 중심점이 되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포도나무 가지처럼 약하고 스스로 혼자 서기에는 부족하지마는 그러나 서서 버티게 된다(겔 15:2).

3. 아버지는 gewrgov" - 즉 농부가 되신다. 만일 온 땅이 주님의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일하시지 않는다면 땅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것이다. 

-- 하나님은 포도나무와 모든 가지들의 소유주이시며 보호자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작물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심으시고 물을 주시며 자라게 하신다(고전 3:9; 사 5:1, 2; 27:2, 3). 

-- 하나님은 뿌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그의 눈을 드시고 그를 붙들어 주심으로 건조한 땅에서도 무성하게 자라도록 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가지도 항상 돌보시어 가지들을 잘 쳐 주시기도 하고, 아무것도 해치 못하도록 항상 보살펴 주시기도 한다. 아마 그의 포도원에 대하여 그렇게 지혜롭고 철저하게 보살피는 농부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그의 교회도 보살피심으로 교회는 번창하게 되는 것이다.

Ⅱ. 이 비유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열매를 꼭 맺어야 한다는 것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1. 우리는 꼭 열매맞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 우리는 포도나무로부터 포도를 기대한다(사 5:2). 또한 그리스도인으로부터 기독교적인 모든 것을 기대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기질과 특성,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과 대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건과 모범, 이러한 것이야말로 우리의 열매가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우리가 고백하는 종교의 능력과 순수성을 나타내 보여야 하며 선을 행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열매 맺는 생활인 것이다. 주님은 따르는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의(義)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사도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의 향기를 뿜어냄으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주님은 이러한 사실을 제자들이 납득하고 이해하도록 역설하고 계시는 것이다.

(1) 열매 맺지 못하는 자들의 운명(2절). 그들은 제거당하게 된다.

① 여기서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가지로 간주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들이 정말 신앙으로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있다면 그들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외적인 고백의 끈나풀에 의해 그에게 묶여져 있기 때문에 비록 그들이 가지들처럼 보인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곧 마른 가지들로 보여지게 될 것이다. 열매맺지 못하는 고백자들은 불신앙의 고백자들이다. 그들은 더 이상 고백자라고 할 수 없다. 

-- 본문(2절)은 "내 안에 있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모든 가지"라고 읽혀질 수 있다. 하나님(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것이 나오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과 은혜 안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은 마치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과 같다(호 10:1).

② "여기서 제해 버린다"는 말씀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들) 당연한 것으로, 나머지 가지들(열매맺는 가지들)에게는 친절함으로 대하는 경고의 말씀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진실로 합하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조차 빼앗기게 될 것이다(눅 8:18).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이 유다를 가리킨다고 생각하고 있다.

(2) 열매맺는 자들에게 이루어진 약속. "그는 그들이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열매맺지 못하는 가지들) 깨끗게 하신다."

① 더욱더 열매 맺게 하심은 처음 열매 맺음에 대한 축복의 보답이다. 첫 번째 축복은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직도 커다란 축복이다.

② 열매 맺는 가지조차도 더욱 더 열매 맺게 하기 위해서 그는 가지를 정케 하시고 다듬을 필요성을 느끼셨다. ‘카다이레이’(2508) - 즉 그는 불필요하고 무성한 가지들을 제해 버리신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히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좋은 가지들도 병든 부분 즉 aliquid amputandum - 즉 제해 버려져야만 하는 부분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씀과 성령과 섭리를 따라 인간적인 사상들과 감정들, 그리고 불경건한 언사들을 깨끗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러한 것들은 적당한 기회에 조금씩 제거될 것이다.

③ 더욱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가지들을 깨끗게 하심은 농부의 배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의 교훈으로 인해 믿는 자들은 유익을 얻고, 그러한 능력을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하여 얻게 됨을 나타내 보이도록 해야만 한다. "이제 너희가 깨끗하니라"(3절).

① 유다가 그리스도의 말씀, "네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곧 행하라"는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로부터 이탈해 나감으로써 그들은 이제 깨끗하게 된 것이다. 

-- 그리스도의 말씀은 구별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존귀한 자와 천한 자 사이를 갈라 놓으며 최후 심판날에 교회를 정화(淨化)시키실 것이다.

②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인하여 모두 깨끗하게(거룩하게) 되었다(17:17).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인 제자들의 믿음이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었던 것이다(행 15:9). -- 은혜의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 이제 그들로부터 세상적이고 육적인 것에서 벗어나게 하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적인 요소를 제거시켰던 것이다. 그들 자신이 주님에게 대하여 반항과 증오의 감정이 속에 들어 있음을 깨달아 알았을 때(회개의 감정) 그들은 이제 아주 깨끗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에게 선포되었을 때, 그 말씀은 은혜의 역사를 가져오고 부패한 것을 제거시킴으로 그 말씀의 선포와 함께 깨끗하게 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은 불이 금을 불순물로부터 깨끗이 하는 것이나 의사가 환자를 병으로부터 깨끗이 함과 같다. 

-- 우리는 우리가 거룩함의 열매를 맺게 될 때, 말씀에 의해 우리가 깨끗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가나안 땅에 있는 포도원의 법규에 대한 암시가 들어 있다. 가나안 땅에 있는 포도원에 심겨진 포도나무는 심은 지3년까지는 그 열매가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가 되나, 4년째 되는 해에는 거룩함을 받게 되어 주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된다(레 19:23, 24). 제자들도 3년 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후에야 "이제 깨끗하게 된 것이다."

(4) 우리는 우리가 열매를 맺음으로 우리 자신에게 돌아 올 영광과 위로를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8절). 우리가 만일 많이 열매를 맺는다면,

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사도들이 전도하여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키어 그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롬 15:9, 16) 이러한 열매맺는 일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다. 

-- 낮고 천한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열매를 맺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많은 일을 행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일로 인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② 우리는 부르심에 합당히 행함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됨을 나타내 보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의 제자됨을 나타내 보여야 하고, 이러한 영광스러운 직분에 대한 긍지를 가져야 한다. 또한 주님의 이름에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그의 제자로서의 마땅한 도리인 것이다(렘 13:11).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장차 주께로부터 상급과 보상을 받게 되며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맺을수록 우리는 선함이 가득하게 되고 더 많이 영광을 주님께 돌려 보내게 된다.

2.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하며, 믿음을 가지고 그와의 교제를 계속해야 하고 이러한 교제 속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충실해야 한다. 여기서

(1) 첨가된 의무(4절).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니" 

--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항상 그리스도에 의존해서 그와 교제의 생활을 유지하고 그로부터 실제로 영적 양식을 얻는 일에 최대의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그의 안에 거하여야 한다. "믿음을 가지고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도 성령으로 너희 안에 거할 것이다.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틀림없이 내가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자들 사이의 관계는 결코 파손되지 않는다. 

-- 우리는 말씀에 주의하고 그 말씀을 발에 등불로 삼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여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가, 우리의 의(의)와 탄원이 되며 그것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지지(지지)해 주고 안위해 주는 것임을 알고 그리스도의 공로 안에 거하여야 한다. 포도나무 가지의 마디는 포도나무에 매달려 있고 포도나무의 즙액은 가지 안에 들어 있어 서로 이것들은 끊임없는 유대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2) 열매를 맺기 위하여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할 필요성(4,5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으려니와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지 못하리니 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하며 이로써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 일은 우리의 위안과 행복을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① 우리가 착한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역사(役事)를 따라 항상 살아가는 자와 그의 약속을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자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할 수 있으며 주께로부터 큰 상급을 받게 된다. 

--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모든 선을 창조하는 고귀한 원리가 된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의 생활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얻게 되는 최상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상적이고 순수하며 천상적인 삶인 것이며 우리에게 유익하고 평안함을 가져다 주고 삶의 목적의 대답이 된다.

② 우리가 어떠한 선을 행할지라도 그것은 필요한 일이다. 

-- 그것은 이미 우리 자신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선을 개발시키고 증가시키는 방법이 될 뿐 아니라, 모든 선의 근본이요, 원천인 것이다.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이나 병든 자를 고치는 놀라운 일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라갈 수 있는 능력이 창조주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정신적이고 영적인 모든 생활이 중보자이신 예수의 유용하고 끊임없는 은총에 기인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 움직이고 존재하는 영육간의 모든 생활이 신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의 공로가 없이는 우리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영이 아니고는 결코 우리는 성화(성화)의 경지에 도달 할 수 없다.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나 우리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일들을 다 할 수 없게 된다(고후 3:5).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가 매달려 있듯이 그리스도에게 의존해야 하고 가지가 뿌리로부터 지탱되어 있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박고 그로부터 공급을 받아야 한다.

(3) 그리스도를 저버리는 자들의 피할 수 없는 결과(6절). "누구든지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질 것이다." 

--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은 위선자들과 사기꾼들이 당할 무서운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다.

① 그들은 나무에 해를 주기 때문에 꺾어 내팽개쳐 시들은 나무가지처럼 버림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필요치 않다고 느꼈으므로 그리스도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입지 못하고 또한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배척했으므로 그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당연한 이치가 아닐 수 없다. 

--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자는 그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수치스러운 죄에 홀로 떨어지게 되고 자연히 믿는 자들의 교제에서 떨어져 버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② 그들은 나무에서 잘림을 당한 가지처럼 시들어 버린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자들은 잠깐 동안 무성하게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곧 시들게 되어 아무 쓸모도 없게 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 선물받은 것, 모두가 시들게 된다. 그들의 열정과 애착심도 식어지며 그들의 평판과 신용은 추락되고 그들의 소망과 위로 모두가 시들어 버리게 된다(욥 8:11-13). --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은 모든 것이 다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리스도께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얼마나 빨리 시들어 버렸는가!

③ "사람들이 그 가지를 모을 것이다. 

-- 사탄의 하수인과 사자들이 곧 그들을 데려다가 그들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간 자들은 곧 죄인의 자리로 떨어진다. 그리스도의 양우리를 떠나 방황하는 양들을 사탄은 잡아 채려고 준비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주의 영이 사울에게로부터 떠났을 때 약령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④ "사람들이 가지를 모아 불에 사르는 것처럼 열매맺지 못한 자들도 불로 떨어질 것이다.

-- " 그들을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한 사탄이 불구덩이로 그들을 던져 넣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의 사자들이 그들로 하여금 지옥의 자식이 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마른 가지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으므로 마른 가지들에게도 불이 최상의 적합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겔 15:2-4).

⑤ 그들은 불에 태워질 것이다. 

-- 이것은 저주의 상태를 뜻하고 있는데 그 상태가 무시무시한 서임을 우리에게 각성시켜 주고 있다. 그들은 솔밑에서 타는 가시나무같이 (전 7:6) 잠간 동안에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코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 속에서 불타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버린 결과이며 열매맺지 못하는 나무들의 종국인 것이다. 

-- 배교자들은 두 번 죽게 되는데(유 1:12) "그들이(배교자) 불에 던짐을 당하고 그곳에서 불에 태움을 받는다"는 것은 그들이 두 번 형벌받을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해석하기를 이러한 사람들을 사람들이 최후 심판날에 천사들의 손에 넘겨주며 천사들은 거스리는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몰아내어 불에 던지려고 그들 가라지들을 묶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4) 그리스도 안에 거한 자들이 얻는 축복의 특권(7절). "내말 이 너희 안에 거하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시행될 것이다.

①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어떠한 방법으로 지속될 것인가? 그것은 말씀으로 가능하다. 주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이라고 바꾸어 말씀하고 계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앞에, 그리고 우리에게 제시되는 것은 곧 말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롬 10:6-8). 

--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모셔들이는 것은 말씀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충만한 곳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 말씀이 우리의 영원한 지도자가 된다면, 또한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신 것이다.

②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어떠한 방법으로 지속될 것인가? 그것은 기도로 가능하다. "너희가 원하는 데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 우리가 요청하는 이 기도외에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마음에 기쁨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음의 소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신다면 우리는 선한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이 약속 속에는 두 가지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의 말이 우리 안에 거한다면 우리를 위해 필요한 것 이외에는 분수를 넘어 더 요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 안에 거하는 약속들은 다시 기도에로 환원되도록 준비되어 있다. 따라서 그렇게 조절된 기도는 빨리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한다면 우리가 우리 모든 기도에 대하여 평안의 대답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중보와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는 관심을 갖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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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요 15:9-17)

사랑의 본질이신 그리스도는 여기서 네 가지의 사랑에 관해 말씀하고 계신다.

Ⅰ. 그리스도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 주시고 있다.

1.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셨고(9절), 하나님의 충보자로서의 그를 사랑하신 것이다.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했고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셨다. 우리 모두를 위해 그를 넘겨 줄 만큼 또한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 고통 가운데 빠졌을 때에도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안위받으셨던 것이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미움을 경멸한다.

2. 그리스도는 그의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셨다(10절). 그는 끊임없이 아버지를 사랑했고 그로부터 사랑을 받으시었다. 심지어 그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저주를 받으셨을 때에도, 주님은 그러한 고난 당하심을 기뻐하셨는데 이는 그가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셨기 때문이다. 시편 89편 33절을 보라. 

--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계속하여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즐거이 그의 고난을 자취하셨으며, 또한 아버지께서도 그에게 계속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던 것이다.

3.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의 법을 지키셨으므로 그는 그의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 것이다. "내가 중보자로서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으므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노라." 

-- 그리스도는 계명을 지키심으로 끊임없이 그의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으며 그는 계속해서 그의 일을 감당해 나가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는 그를 계속 사랑했던 것이다. 그는 실패하지도 용기를 잃지도 않으셨는데, 이는 그의 영혼이 그 아버지로 인하여 기쁨을 얻으셨기 때문이다(사 32:1-4). 

-- 우리는 창조의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구속의 법을 따라서 우리를 위해 희생당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우리를 원상태로 회복시키셨던 것이다.

Ⅱ. 제자들에 대한 그리스도 자신의 사랑. 주님은 그들을 떠나시지만 그들을 사랑하고 계신다. 여기서 몇 가지 주목해보도록 하자.

1. 이러한 사랑의 유형을 살펴 보자. 

--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듯이 또한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그리스도의 이 겸손한 은혜의 경이로운 표현이여! 아버지께서 가장 값진 주님을 사랑하셨으나, 그리스도는 가장 무가치한 그들을 사랑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로서 그를 사랑하셨으며,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그의 자녀로서 사랑하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시었다. 그래서 그는 그 자신과 함께 모든 것을 자유롭게 우리에게 주셨다. 

-- 아버지는 그를 중보자로서, 교회의 머리로서, 그리스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신뢰하는 이들의 유익을 위해서 지니고 있는 거룩한 은혜와 사랑의 위대한 보관자로서 그를 사랑하셨던 것이다. 또한 그는 말한다. "나는 신실한 보증인이다. 아버지께서 그의 사랑을 내게 주셨으므로 내가 이를 너희에게 전한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그를 기뻐하셨고 아버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심으로 또한 그를 통해 우리를 그의 사랑하는 자로 받아 주시는 것이다(엡 1:6).

2. 이러한 사랑의 네 가지 증거와 결과.

(1)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그의 삶을 내어 던질 정도로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셨다(13절). 그의 친구를 위해 그의 삶을 바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랑의 증거는 없다. 

-- 사랑을 가지고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는 우리의 중보자로서 그가 우리의 빚진 것을 아셨으며 얼마나 많은 대가를 그가 치루어야 할 것을 아시고 우리의 몸을 위해서 그의 생명을 내어 주신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 보도록 하자.

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한계. 

--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친구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버린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사랑은 갈리디아서 4장 5절에 나오는 눈을 뽑아 주고자 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의 행위일 서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그의 생명을 준다면 그는 그것을 그의 친구를 위해 모두 준 것이고 더 이상 줄 수 없게 된다. 

-- 그리스도는 가장 모범이 되는 사람들과 동등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능가하는 분이시다. 다른 이들은 그들의 삶을 내버리기도 하나 이는 그들로부터 만족을 얻기 위함인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그의 삶을 포기하고 남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산 것은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택한 능동적 삶의 결과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던진 생명과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해 바친 생명은 모두 같은 목적에서 이루어진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내던진 그러한 생명은 주님의 생명보다 가치가 적은 것이다. 

-- 그리스도는 우리 만 사람보다 더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계시다. 다른 이들은 그들의 생명을 친구를 위해 버렸으나 그리스도는 로마서 8장 10절의 표현처럼 우리들이 그의 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버리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드럽게 되거나 감화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쇠나 돌보다 더 단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칼빈).

(2)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그래서 그는 그 자신과 함께 그의 제자들을 가까운 우정의 관계로 이끄셨다(14:15). "너희가 만일 순종함으로 나의 제자 되기를 참으로 원한다면 너희는 나의 친구요, 친구로서 대접받을 것이다." 

-- 주의해 보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며, 주님은 넘치는 은혜의 음성으로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기쁨으로 하고 계신 것이다. 그의 제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친구가 되는 특권을 얻게 된다. 다윗은 그의 궁정에 한 명의 시종을 가졌고 솔로몬도 그랬는데 그것은 왕의 친구가 되는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고 있다(삼하 15:37; 왕상 4:5). 그러나 이런 명예를 그리스도의 모든 종들이 가지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특별히 낯설은 손님으로 취급될는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친구로서의 주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 줄 것을 확신하게 된다. 또한 주님 역시 그를 믿는 자에 대하여 그의 친구로 대우해 주시는 것이다. 주님은 그들을 방문하여 그의 친구로서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에 관한 모든 것을 참고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시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괴로워하고 그들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는 하늘에서 그들을 위해 변론하시며 그곳에서 그들이 관심을 가진 일들을 돌보아 주신다. 친구들은 하나의 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주님과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 고린도 전서 6장 17절은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자주 불친절함을 드러내 보이나 주님은 언제나 사랑을 가진 친구가 되신다. 주님의 애틋한 애정이 어떠한지 살펴 보도록 하자.

① 그들 제자들이 주님을 주인과 구주로 고백한다고 해서 주님은 그들을 하인이나 종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 겸손한 그리스도께서는 주인으로서의 권위와 우월성을 지니고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시지 않는다. 주님의 종된 그들은 주님의 친구로서의 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② 그리스도는 그들을 그의 친구로 대우하신다. 

-- 그는 그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이러한 사실을 알기를 원하고 계시는데 주님의 말씀 속에는 항상 따뜻한 친절과 사랑이 깃들어져 있다. 주님이 부활하신 후 그는 제자들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친근한 정다움을 가지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형제에게 가라"(20:17). "아이들아, 고기를 가지고 있느냐?"(21:5)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리스도는 그들을 친구로서 불렀으나 그들 곧 베드로와(벧전 1:1) 또한 야고보가(약 1:1)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불렀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예를 주시면 주실수록 우리는 주님을 더욱 명예롭게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님은 더 높아지도록 그리고 우리 자신은 낮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3) 그리스도는 제자들과의 마음이 자유롭게 통할 수 있었으므로 그들을 사랑하셨다(15절). "이제부터 너희는 현재 하는 일에 관해서만 말하는 종들처럼 너희가 지금까지 지내온 어둠 속에서 더 이상 지내지 못할 것이다. 성령이 부어지면 주님이 곧 너희의 친구가 되심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내 아버지로부터 들은 모든 서들을 나는 너희에게 말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가 깨닫기에는 어려운 것이 많이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충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아버지께로부터 계시받아 우리에게 전해 주셨다(1:18; 마 11:27). 인간을 구속하시는 일에 대한 중요한 사실들을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고 또한 이로써 제자들은 다른 이들에게 전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제자들은 주님의 대변인이 된 것이다(마 13:11).

(4)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셨는데 이는 그가 그들을 이 세상에서 그의 영광과 명예를 전하는 최고의 방편으로 선택했고 명했기 때문이었다(16절). "나는 너희를 선택했고 또한 명한다." 이 말씀 속에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표현되어 있다.

① 사도의 신분으로서 그들을 선정한 것(6:70). 

-- "내가 너희 12명을 선택했노라." 이는 그들의 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였다.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너희를 택한 것이다." 왜 그들은 그와 함께 이러한 친밀한 관계를 허락받았으며 그를 위해 수행원으로 고용되었으며, 하늘로부터 이러한 권세를 부여받았는가? 이는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인으로 선택함에 있어서 그들의 지혜나 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의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한 까닭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역자들을 그의 마음에 맞도록 선택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님은 그의 섭리와 성령에 의해서 선택하고 계신다. 사역자들은 그 거룩한 부르심을 그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리스도의 선택은 그들의 생각보다는 높은 것으로써 자신이 이를 결정하신다. 은혜와 영광으로 선택되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들을 선택할 것이다"(신 7:7, 8)라고 말하는 일이 옳은 일일 것이다.

② 그들에게 주님이 명하심. 

-- ‘에데카 휘마스’(15:16) - 즉 나는 너희에게 명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직분을 주며(딤전 1:12), 또한 임무를 주노라." 이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그러한 명예와 함께 머리에 관을 씌워 주고 그들에게 이러한 확신으로 채워 주실 때 그가 그들을 친구로 여겼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주님이 그들을 그의 왕국에 관한 일들을 이 땅에 전하는 대사로서, 그것을 관리하는 정부의 지방 장관으로 임명하실 때, 이같은 사실은 주님이 제자들을 확고하게 신뢰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복음의 보물이 그들에게 맡겨진 것이다.

첫째, 너희는 이 복음의 사실을 다니며 전파하러 가라. 

-- ‘히나 휘메이스 휘파게테’ - 즉 목회란 하나의 일로써 너희는 마땅히 짐이나 멍에 아래로 가야 하며, 여러 가지 일들을 겪어야 하고 세상 어디론지 이곳 저곳으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해야 할 것이다. 제자들은 명령을 받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일하였고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는 지칠 줄 모르고 헌신했다. 그들은 명령을 받고 모든 나라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손 안에서 도구로 쓰여진 것이다(롬 1:13). 그리스도가 하신 명령을 받은 자들은 결실을 맺어야 하고 또한 결실을 맺을 것이다. 그들은 수고하되 헛되이 수고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그 사업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 그들의 수고의 결과가 계속되어 그들이 일한 훌륭한 결과는 세상에서 이 세대에서 저 세대로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져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짧은 영광을 받고 사라져버린 많은 철학자들의 많은 분파처럼 그러한 생명을 지녀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하룻밤 동안에 생겨난 것도 아니며 하룻밤에 소멸될 수도 없는 영원한 날들로 이루어진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교회가 70명의 제자들과 사도들의 활동으로 처음 설립된 이래 사도들의 기록과 설교는 우리에게 계속 전달되어졌고, 오늘날의 우리는 그것을 기초로 서게 된 것이다. 사도들과 그리스도인의 한 세대 한 세대가 지나가고 또 따른 세대가 지나가고 있다. 주님의 그 위대하신 분부대로(마 28:19),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시고 그의 몸된 교회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생명을 유지하도록 보살피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명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달된 것이고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③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그들이 은혜의 보좌에 매달렸을 때, 특별히 나타나 있다. 

--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아버지께 내 이름으로 간구하면 그가 너희에게 그것을 줄 것이다." 아마도 이 말씀은 제자들이 기도함으로써 능력을 옷입히듯 하고 기적을 행하며 일했던 사건에 첫째로 관계되어 있다. "너의 일을 잘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선물이 무엇이든지 간에 혹은 너희가 언제고 필요로 하는 하늘의 도움이 무엇이든지간에 이를 오직 구하게 되면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함에 있어서 용기를 북돋아 주는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이 암시되어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첫째, 그것은 우리가 아버지이신 분께 갈 수 있는 하나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그리스도는 여기에서 그를 자기와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계신다. 말씀과 우리 마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도 우리로 아바 아버지를 향해 부르짖게 하신다.

둘째, 우리는 선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면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은혜의 보좌 앞에 무엇이든지 가지고 나갈 수 있게 되는데 이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인하여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시게 된다.

셋째, 평안하게 되리라는 것이 우리에게 약속되었다. 

-- 너희가 요구하는 대로 이뤄질 것이다. 그 위대한 의무에 의해 이뤄진 이 위대한 약속은 하늘과 땅 사이에 편리하고 유익한 교제를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Ⅲ. 주님이 제자들을 사랑한 그 위대한 사랑 속에 지시되어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제자들의 사랑에 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자. 

-- 그의 사랑 안에 계속 거하라(9절). "나에 대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나의 사랑 안에 계속 거하라." 이 두 가지는 모두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연속성 속에서 우리의 행복을 생각하여야 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계속되는 증거를 나타내 보여야 한다. 그리하면 아무 것도 우리를 주님께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할 것이고 우리로부터 주님을 분리되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 계속 거하며 항상 그를 사랑하며,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보이고 끝까지 사랑해야 할 것이다.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세상에 나갈 때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사랑 안에 계속 거하라"고 이끄시고 있다. 나에 대한 너희의 사랑을 보존하면 너희가 부딪치는 모든 어려움은 쉽게 해결될 것이다. 사랑은 야곱의 7년 간의 어려운 봉사를 쉽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너희가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 때문에 그리스도에 대한 너희의 사랑을 약화시키지 말고 오히려 견고하게 하도록 하라.

1. 주님의 기쁨이 너희 안에 거하며 충만케 하도록 할 것(11절). 주님은 제자들에게 대하여 베푸신 약속과 교훈을 통하여 이것을 말씀하셨다.

(1) 그의 기쁨이 너희 안에 거하게 하도록 하라는 이 말씀은 제자들이 다음과 같이 이해하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

① "너희 안에 나의 기쁨이 머무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 만일 제자들이 많은 열매를 맺고 그의 사랑 안에 계속 거한다면, 주님께서는 기뻐하실 것이다. 열매 맺고 믿음이 충만한 제자들은 주 예수의 기쁨이 된다. 주님은 그들에 대한 그의 사랑 안에 거하신다(습 3:17). 죄인들이 회개하는 것이 하늘나라의 기쁨인 것 같이 성도들의 인내는 역시 기쁨의 연속이 된다.

② "나의 기쁨, 즉 너희 안에 나의 기쁨이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다. 

-- 제자들이 주님 안에서 즉각적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이다(빌 4:4). 위선자의 기쁨은 순간적이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들의 기쁨은 영원한 잔치의 기쁨, 바로 그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이 말씀으로 인하여 넘쳐 나오는 기쁨은 모두 그의 사랑 위에 근거되어 있다.

(2) "너희의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요, 너희가 완전한 나의 기쁨에 이르기까지 너희의 기쁨이 충만케 될 뿐 아니라 내 안에, 나의 사랑 안에 있는 기쁨이 보다 크고 충만케 되기 위한 것이다."

① 그리스도의 기쁨을 그들 안에 지니고 있는 사마들은 기쁨이 충만케 될 것이다.

--  세상이 주는 기쁨은 속이 비었고 곧 싫증을 내고 만족을 얻지 못하게 되지만, 그것은 영혼을 채울 지혜의 기쁨인 것이다(시 36:8).

②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을 하신 목적은 그의 백성의 기쁨을 충만케 하기 위함이다(요일 1:4). -- 이곳에서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은 우리의 기쁨이 자꾸 차고 넘쳐 완전한 기쁨에 도달하게 된다고 하셨다.

2. 그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은 주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 "너희가 만일 내 계명들을 준수한다면 너희는 내 사랑 안에 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나에 대한 너희의 사랑이 계속적이며 견고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며, 너희에 대한 나의 사랑이 계속될 확증이 될 것이다." 여기서 고찰해 보면,

(1) 주님은 "너희가 내 사랑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의 사랑 안에 보금자리를 얻고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얻을 서이며, 온전히 지낼 수 있는 피난처를 구하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고 계신다. 

-- 너희가 나의 사랑 안에 거하면 나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은혜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 마음속에 제일 처음 심기어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계속 보존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의 사랑 안에 오래 거하지 못하고 세상의 사랑이 들어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2) "너희가 나의 계명들을 지킨다면" 이것이 바로 약속의 조건이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계명들을 자기 자신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준수해야만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모든 일들을 가르쳐야만 하기 때문에 그러한 분부가 그들 손에 맡겨진 보증인으로서 계명들을 준수해야만 한다(마 28:20). 그들은 흠없이 이러한 계명을 지켜야만 하며(딤전 6:14), 그들이 그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그의 계명들을 제자들이 지키도록 주님은 말씀하신다.

① 그리스도 자신의 모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것과 같이 너희도 그의 사랑 안에 거하라." 

-- 우리는 다른 방법을 통하여는 주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영광과 위로를 얻을 수 없다. 이러한 영광과 위로는 단지 중보의 규율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중보의 법에 복종하셨으며 우리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중보자의 규율에 복종하는 것인지 가르쳐 주기 위하여 중보의 규율에 대한 영광과 위로를 우리에게 보존해 주신 것이다.

② 주님에 대한 제자들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계명 준수의 필요성(14절). "너희가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행한다면 너희는 나의 친구다" 여기서 고찰해 보자.

첫째, 그들 스스로가 복종하는 종으로 일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충실한 친구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을 그들의 통치자로 모시지 않는 사람들은 그의 적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는 반감과 애착의 교우 관계 모두를 포함한다. 

둘째, 그것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든지 없든지 간에 주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복종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보편적 복종을 의미한다.

Ⅳ.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한 보답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제자들의 사랑에 대한 감사한 보답으로써, 제자들이 서로 사랑해야 함에 대하여 우리는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하며, 우리는 그 계명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 주님의 계명임을 알아야 한다(12:17). 종교의 의무는 서로간의 사랑이나 선한 행실을 요구하는 것이며, 그 이상의 어떠한 감상적인 요소가 요청되는 것이 아니다.

1. 이러한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신 말씀(12절)의 재현인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로 서로 사랑하도록 권고하시고 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대로, 또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로 인하여 우리는 같은 동기와 태도에서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 주님은 제자들에 대한 그의 사랑을 특별하게 표현하시고 있다. 주님은 그들을 친구로 부르시고 주님은 그들과 서로 의사 소통하셨는데, 이는 이미 주님께서 그들의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도록 하기 위한 예비적 방법이었던 것이다. "너희도 가서 그와 같이 하도록 해라."

2. 서로 사랑하는 일은 주님의 교훈에 의해 요구되는 일이다. 주님은 그의 권위를 세우셨고 그것이 그의 왕국의 필요한 법규의 하나가 되게 하셨다. 주님은 그가 말씀하신 두 귀절 속에서 이같은 사실을 아주 다르게 표현하고 계시고 이 두 가지를 모두 강조하고 계심을 주시해야만 한다.

(1) "이것은 모든 계명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들처럼, 중요한 것으로써 나의 계명이 된다"(12절). 

-- 사람들이 가장 우상 숭배에 잘 빠져 들어감으로 우상 숭배 금지 법령이 다른 계명보다 훨씬 강조되는 것처럼, 그리스도 교회가 쉽게 사랑을 잃게 될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특별히 이러한 사랑의 교훈에 대하여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2) "이러한 것들을 너희에게 명하노니"(17절) 주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것들을 요구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그들이 서로 사랑할 것을 지시하시고 계시는데 이는 사랑이 모든 의무들을 다 포함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선하게 이끄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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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과 핍박에 대한 예고(요 15:18-25)

여기서 그리스도는 미음에 관해 말씀하고 계신다. 사랑이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한 것처럼 미움은 사탄의 나라의 특성이요, 요소가 된다.

Ⅰ. 하나님의 자녀와 구별되어지는 이 세상의 자녀들은 그들 속에 미움이 들어 있는 사람들, 즉 이 세상 신에 끌려 그 형상을 힘입고 그 권세에 굴복하는 사람들, 이런 모든 사람들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간에 그리스도의 교회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확실히 우리를 부르고 계시고 이 악한 세대에서 분명히 분리해 살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나 이 세상이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그들에게는 더욱 가깝게 들리고 있다.

1. 핍박자들의 수효.

그리스도와 기독교를 반대하는 세계가 있다. 주여, 다윗의 아들을 괴롭히는 자가 얼마나 많이 증가되었는지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투표를 하게 된다면 사탄이 우리들에게 많이 투표하게 될까 두렵다.

2. 핍박자들의 동맹과 연합.

이 많은 세상의 임금들은 서로 합쳐 하나가 되고 있다(시 83:5). 이방인들도 유대인들도 모두 그리스도의 종들을 핍박하는 데는 동의를 표하고 있다.

3. 핍박자들의 정신과 기질.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며(시 17:14)전적으로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것에 헌신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결코 다른 세계를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인들의 죄를 미워하도록 가르침을 받았지만, 사람들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도록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사악하고 원한을 품고 시기 분쟁하는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 아니고 세상의 영이다.

Ⅱ. 미움이 없어지는 것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곧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고 아버지를 대적하는 것이 된다.

1. 세상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미워한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9절). 주님께서는 요한1서3장13절에서와 같이 18절에서도 그들 제자들에게 이러한 미움의 사실이 기대되고 닥쳐 오리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1) 이 말씀이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는지 살펴 보도록 하자.

①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친구로서 대우하고 계심을 밝히셨다. 그러나 그들이 이에 자만하지 않도록 바울에게 육의 가시를 주신 것처럼, 제자들도 그리스도를 위해 비난과 박해를 받도록 하셨다(고후 12:7).

②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일을 명하셨고 그 일을 이루려함에 있어서 역경들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이는 그들이 그 일을 당할 때 놀라지 않고 이를 준비하게 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③ 주님은 그들에게 서로 사랑하도록 명령하셨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을 주님은 말씀하셨다. 또한 남에게 친절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그들이 사랑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많은 불친절과 악의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너희 안에 평화를 유지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희와 세상의 싸움에서 이기도록 너희를 강하게 할 것이다." 대적하는 적들 속에 싸여 있는 사람들이 서로 맞잡도록 요구된다.

(2) 여기 무슨 뜻이 함축되어 있나 살펴 보자.

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대적하는 이 세상의(적의) 증오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이 세상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미워한다.

그리스도께서 축복하시는 것을 세상은 저주한다. 하늘의 총아와 유업을 이을 자들은 결코 이 세상의 총아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 오래된 중오의 감정은 여자의 씨와 뱀의 씨 사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왜 가인은 아벨을 미워했는가? 단지 그의 행위가 옳았기 때문인가? 에서는 야곱이 받은 축복 때문에 야곱을 미워했다.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사랑했기 때문에 요셉을 미워했다. 사울은 주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다윗을 미워했다. 아합은 미가야를 그의 예언 때문에 미워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다 세상이 까닭없이 미워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② 세상의 증오의 결과를 우리는 20절에서 2가지만 열거해 보면,

첫째, 세상은 너희를 핍박할 것이다. 

-- 왜냐하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기 때문이며 그 미움은 쉬지 않는 열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디모데 후서 3장 12절에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자들이 마땅히 박해를 받게 되는 그러한 십자가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역자들이 세상에서 그들의 활동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내쫓긴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부딪치는 그러한 악한 대우를 예견하셨고, 그는 그들을 늑대 가운데 양을 보내는 것같이 그들을 보내신 것이다.

둘째, 그들 증오의 다른 하나의 결과는 세상이 제자들의 가르침을 배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그들이 나의 말을 듣고 너희를 보존한다면"하고 말씀하실 때 주님은 "그들이 너희를 보존하고 너희의 것을 보호하고, 또한 그들이 나의 것을 보호하고 지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복음의 사역자들은 그 사신(message) 때문에 그들 자신이 커다란 해를 받게 될 것이며 또한 그 말씀이 크게 경멸히 여김을 받게 됨을 명심해야만 한다. 마치 그것은 "그의 말에 아무것도 주의치 말자"라고 예레미야에게 말한 커다란 수욕과 같은 것이다.

③ 그러한 증오의 원인들은 무엇일까?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첫째, 그들은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19절). "만일 너희가 세상에 또한 그들의 정신과 관심 속에 나왔다면, 너희가 육욕적이고 세상적이라면, 세상은 너희가 그 자신의 자녀이므로 너희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 밖으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세상은 너희와 너희의 생각을 미워하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a.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세상에 의해 세상의 친구로서 받아들여질 때 모든 사람들은 그 탐욕스러운 사람을 축복한다는 것을 보고 놀라서는 안 될 것이다(시 10:3; 49:18).

b. 또한 세상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세상에 의해 그들의 원수로써 비방을 받게 된다는 것에 놀라서도 안 된다. 

-- 이스라엘이 애굽에서부터 구출될 때에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뒤쫓았다. 주의할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은, 또 세상과 구별되어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의 지혜나 덕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세상에서 택해서 세상과 떨어지게 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a) 이러한 선택의 은덕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그들 자신이 세상을 초월하도록 하고 세상의 증오의 대상이 되게 하도록 하는 영광을 얻었다.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게 될 것이고 정직한 자가 다스리게 될 것이므로 종국에는 오히려 세상이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b) 이러한 선택의 은덕으로 인하여 제자들은 그들 자신을 세상에 항거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 은혜를 입는다. 그들은 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헤엄쳐 나가고 그것에 어울려 지내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에 반대하는 증언을 하고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구별된 생활이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함으로 생기는 역경에서도 그들을 지켜 주며 제자들이 미움을 받는 것은 그들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주 예수의 선택될 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a]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없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이 미웁게 하도록 어떤 일을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슬퍼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우리를 마땅히 사랑해야 하고 존경해야 할 것에 대해 우리를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동정할 이유는 있지만 우리 자신을 당혹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b] 이것은 제자들 자신의 기쁨에 대한 당연한 이유이다. 부유하고 번영하므로 미움당하는 사람은 그것 때문에 애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오히려 만족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핍박이 세상의 미움을 받고있는 제자들을 더욱 기쁘게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둘째,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또 다른 이유는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있기 때문이다(21절).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핍박을 받으리라." 여기에 논쟁의 초점이 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그 이름을 보존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a. 주님의 제자들의 특성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존립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그들은 그 이름에 의하여 살고 그 이름 때문에 죽는 것이다.

b. 제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어렵고 많은 일들을 만나 고난을 당해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한다면 아무리 큰 고난 속에서라도 오히려 위로를 받을 것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다(벧전 4:14). 고난 당하는 것을 명예(행 5:41)로 생각하며 또한 고난 당하는 자에게 부어 주시는 위로를 생각한다면 이는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그 고난이 가지고 오는 영광의 면류관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게 느끼게 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한다면 그와 함께 왕노릇하게 될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 세상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적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세상의 무지 그 자체이다(2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a.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 만일 사람들이 자연종교에 대하여 초보의 원칙 정도만이라도 안다든지 이해한다면 그들은 기독교를 이해하게 되고 또 하나님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거나 박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삼켜 버리는 사람들은 참으로 무지한 자들이다(시 14:4).

b. 세상은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나 그 분을 평화의 위대한 중보자로 세우신 사실을 알지 못한다. 

-- 만일 우리들이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제자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사실 역시 알지 못하는 것이 뇐다(고전 2:8).

2. 세상은 그리스도 자신을 미워한다. 이러한 사실은 여기서 두 가지 목적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1) 세상의 미움에서부터 생기는 주를 따르는 제자들의 고난을 완화시키고 그러한 고난이 이상한 것이 아니며 슬픔을 가져다 주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주님은 "세상이 너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프로톤 휘몬) 나를 미워한 줄 알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 주님의 말씀 속에는 시간적인 선재성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먼저 고난의 쓴 잔을 마시었고 그후에 우리로 그를 따르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제자들보다 높은 그리스도의 우월성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즉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는 것은 너희들의 두목이요, 대장이 되며, 지도자가 되는, 그리고 사령관으로서의 나를 미워하는 줄 알라."

① 선행이 탁월하시고 완전히 순결하시고 우주적으로 자비심이 충만하신 그리스도께서 미움을 받으신다면 우리야 우리의 무슨 어떠한 공로나 행적으로도 이러한 적으로부터 막을 수가 있다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② 우리의 대장이시며 우리 종교의 창설자이신 그분이 우리 종교를 처음 시작하실 때에 그렇게 큰 반대에 직면하셨다면 그의 종으로 그를 따르는 우리는 이 종교를 선전하고 고백하는데에만 전심전력해야만 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세우실 때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라"고 그 자신이 그 제자들을 상기시키고 계신다(20절).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하신 그의 말씀과 비교함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섭리를 자세히 설명해 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를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데 제일 좋은 것이 된다.

첫째, 이러한 말씀 속에 평범한 진리가 들어 있다. 즉 종은 그 주인보다 위대하지 못하다. 이것에 주님께서 그 종들에게 하신 말씀이다(마 10:24). 

--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열심히 주님의 모든 행동에 수행해야 하고 그의 모든 처분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잠자코 동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종은 그 주인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가장 평범한 진리가 때로는 가장 힘든 의무로 인하여 가장 강력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엘리후는 욥의 수많은 말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사람보다 위대하시다라는 하나의 진리로써 답변하고 있다(욥 33:12).

둘째, 그것으로부터 추론된 적절한 말씀이 또 있다. "너희가 보아 왔듯이 세상이 나를 미워했다면 이제 너희도 그만큼 미워하고 박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러한 일을 미리 기대하고 직면하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a. "내가 세상 사람들을 격동시켰던 것처럼 너희도 똑같이 그렇게 행하게 될 것이다. 즉 너희는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회개하도록 만들며 그들로 거룩한 생활을 위한 강력한 규범들을 그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다."

b. "너희는 내가 그들을 강요했던 것보다 더 강력하게 강요하지는 못할 것이다." 주님께서 먼저 그렇게 큰 모범을 보이셨으므로 제자들이 그러한 일을 행함에 있어서는 그렇게 홍역을 치르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내 말을 지켰은 즉 너희 말도 또한 지킬 것이다"라고 덧붙여 말씀하시고 있다. 즉 "나의 설교를 듣고 그렇게 행동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또한 너희의 설교에 의해 행동하는 사람이 약간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약간 다른 의미로 해석하려 한다. ‘에테레산’(15:20) - 즉 수행하였다를 parhthvrhsan - 즉 주목하였다로 대신 바꾸어 생각하려 한다. 그러므로 본문을 "그들이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내 말을 가만히 숨어서 지켰은 즉 똑같이 그들은 너희말로 너희를 얽으려고 가만히 숨어 지킬 것이다."

(2) 그것은 이 불신 세상의 사악을 가증시키며 그 큰 죄악성을 노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시도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도 매우 나쁜 짓이지만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 자신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은 더욱 나쁜 것이다. 

-- 세상은 성서에서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이름으로 불리워지는데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했기 때문에 성경에서 제일 나쁜 이름으로 불리워 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무리들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주님은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의 사악을 노여워하실 때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신다.

① 그들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커다란 이유가 있다. 사람들의 선한 말이나 행동은 흔히 그 일을 행한 사람들로 호감을 가지게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어떠한가.

첫째 주님의 말씀들은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것들이다(22절). "그들의 사랑을 구하기 위하여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은 죄가 없었을 것이며 그들의 반대가 나를 미워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는 않을 것이며, 그들의 잘못은 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애정을 구하여 많이 말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의 죄에 대하여 핑계도 변명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자.

a. 복음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유익.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다. 그리스도는 그 세대 사람들에게는 인간으로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지금은 성경과 사역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며 우리에게 대하여 절대적 권위와 사랑을 가지고 계신다. 그의 모든 말씀은 순순하시고 엄격한 주권을 내포하시고 계실 뿐만 아니라 가장 무서운 독사라도 길들일 만한 겸손한 부드러움도 가지고 계신다.

b. 복음을 기뻐하지 않는 자들이 가지는 핑계.

"내가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서는 그로 인한 구원에 대하여 듣지 못하였더라면 그들은 죄가 없었을 것이다."

(a) 죄의 종류로 지적되지 않는 것.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그의 은총을 쏟아 부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그리스도를 모욕한 그런 책벌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는 이치처럼 복음이 없는 곳에서는 불신앙도 죄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다른 죄는 저주를 받지 않는다 할지라도 구속에 반항하는 죄는 가장 유일한 저주받을 죄이다.

(b) 죄의 정도로 여겨지지 않는 것.

만일 그들이 복음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죄들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지한 시대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도 그에 대해 간과하시기 때문이다(눅 47:48).

c.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말씀하신 것을 헛되게 한 자들의 무서운 범죄.

그리스도의 초대를 헛되게 한 자들, 그의 말씀을 헛되게 만든 자들은 도저히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 그들은 심판날에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믿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가 우리에게 분명해지고 충만함을 발견하면 할수록 우리의 죄는 더욱 크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죄악의 외투를 벗겨서 죄가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만든다.

둘째, 그리스도의 행적은 그의 말씀과 함께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것이다(24절).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은 죄가 없었을 것이며 그들의 불신앙과 적대 행위가 변명이 되었을 것이고, 나의 말이 신뢰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할 만한 그럴 듯한 구실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한 행적으로써 그의 거룩한 사명에 대한 만족할 만한 증거를 만드신 것이다.

a. 창조자로서의 그의 능력을 과시하고 그의 행적으로 그의 신성을 나타낸 것처럼(롬 1:20) 구속주께서는 그렇게 활동하셨다. 그의 기적들, 자비하심, 놀라운 행적, 은혜운 행적,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특협한 사명을 띄워 보내셨다는 것을 충분히 증거한다.

b. 그리스도의 행적은 전에 아무 사람도 행하지 못한 것이다. 

--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사명을 받으셨으며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다(요 3:2). 어떤 선지자도 그렇게 많이 그런 종류의 기적을 베푼 적이 없다. 모세와 엘리야도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어진 능력을 따라 기적을 행하였지만 그리스도는 그의 아들로서 그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질병과 사귀들을 명령한 그 사실이 사마들을 놀라게 만들었다(막 1:27). 그들은 그들이 전혀 보지 못한 일들을 보았던 것이다(막 2:12). 그것들은 모두 선한 일들이요, 자비스러운 행적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행적 때문에 그리스도를 미워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주님은 그 사람들을 꾸짖고 계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생각지도 못할 그런 유용한 일을 행하시고 광범위하게 사랑받을 만한 그런 분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미움을 받으셨던 것이다.

c. 그리스도의 행적은 죄인들의 불신앙과 그리스도에 대한 적대행위, 그리고 그들의 악함과 불합리성을 드러나게 하고 있다. 

--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말씀만 듣고 그의 행적을 보지 못하였다 면, 만일 우리들이 기록상에 남은 그의 설교만 가지고 그의 기적들을 가지지 않았다면 불신앙의 죄악은 증거 불충분이라는 변명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런 핑계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버리는 행위는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단순히 고집스러운 불신앙의 죄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배은망덕의 죄악인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최대의 천진성을 보았고 그가 그들에게 최대의 친절을 베풀려고 노력하신 것을 보았으면서도 그를 미워하였고 그에게 해를 주려고 애썼던 것이다. 우리는 그의 말씀 속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보면서도 그 사랑을 따라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②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미워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어떤 때는 사람들이 호감을 사는 언행을 하고 또 어떤 때는 저주하고 화나게 하는 언행을 한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일을 하거나 선한 일을 많이 행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하여 주님은 성경을 인용하시면서 말씀하고 계시다(25절), "나를 아무 까닭없이 미워하고 내 이름으로 인해 나의 제자들 역시 미움을 받고 있는데 이는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성취케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들은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이 말씀은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자신에 대하여 한 말씀이다(시 35:19; 69:4).

첫째,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어떤 명백한 이유없이 미워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에 대한 적대행위도 사실 이유없는 적대행위인 것이다. 미움을 받을 만한 사람은 거만불손하고 완고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온유하시고 낮아지셨으며 동정심이 많으신 분이신 것이다.

-- 미움받을 사람은 원한에 차 있으며 심술궂고 시기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를 이용하려는 자들을 위해 자신을 바쳐 봉사하고 그를 욕하는 자들에게 친절하고 남들의 안일을 위하여 땀흘려 노력하고 우리들을 부유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은 가난해지셨던 것이다. 왕들과 군주들에게 해를 주고 공중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자는 미움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반대로 자기 나라를 위하여 최대의 축복을 주었지만 오히려 미움을 받았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그 사람들이 이유없이 자기를 미워하므로 그들의 행동이 악하다는 것을 증거한다.

둘째, 여기에서 성경이 성취됨을 볼 수 있다.

즉 구약의 유형(類型)의 원형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사울과 그의 신하들은 이유없이 다윗을 미워하였다. 다윗이 하프를 가지고 사울에게 봉사함에 대하여 사울은 그의 칼로써 오히려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압살롬과 그의 무리들은 다윗을 미워하였던 것이다. 다윗은 압살롬에게는 어진 아버지였고 압살롬의 무리들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은인이었다. 이와 똑같이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도 미움을 받았고 아주 부당하게 핍박의 대상이 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미워한 자들은 자기들이 성서를 이루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그같이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하나님께서 이를 묵과하시므로 그들을 통해 성서를 성취시키신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이같이 메시야에 관한 작은 문제까지도 예언되고 또 예언된 것이 그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에서 그리스도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더욱 확고히 믿게 된다. 우리에게 닥쳐 와 저 구약의 예언이 바로 현재의 우리 자신에게도 성취되고 있음을 볼 때 그것을 이상스럽고 어렵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박해를 받는 것이 부당하다는 이유를 들어 닥치는 고난에 대해서 불평을 터뜨리는 경향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러나 이유없이 주어지는 고난일수록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과 더욱 같은 성격의 고난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과 같은 성경의 것임을 알 때 우리는 더욱 쉽게 그 고난을 참을 수 있는 것이다.

3. 그리스도를 미워하므로 세상은 하나님 자신을 미워한다는 사실이 두 번이나 언급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다(23절).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자는 자기의 미움이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자는 또한 그의 아버지도 미워하는 것이 된다.

(1) 하나님의 본성의 아름다움과 그의 섭리의 관대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분노한다. 그들은 또한 그것을 믿고 떠는 악마들처럼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초조하게 여기며 하나님의 속박을 산산이 깨뜨리고 싶어한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스스로 부인할 수는 없으나 그러나 하나님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을 보고서도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에 대한 미움은 하나님에 대한 미움으로 간주됨으로 심판되어질 것이다. 

--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그의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났으며, 그의 직무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위대한 대리인이며 대사인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과 같이 그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을 영접하는 것이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적들은 그들이 아무리 자연종교를 부르짖을지라도 실제로는 모든 종교의 적으로 추론되어지는 것이다. 자연종교주의자들은 결과적으로 무신론자들이다. 복음의 빛을 조롱하는 자들은 자연의 빛도 끄는 자들이며 양심의 복종과 하나님에 대한 경의를 다 없애버리는 자들이다. 불신의 사악한 세상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그들의 적대행위가 마지막 심판 날에 축복의 하나님 자신을 대적한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임을 알게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를 위한 고난을 당한 모든 자들은 그로서 장차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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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임재에 대한 예고(요 15:26-27)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복음이 세상에서 배척을 받을 것과 또 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시련을 당할 것을 앞에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복음 전도자들이 그들 자신과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무서운 박해에 의해 진멸당할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다음의 말씀을 하신다. 즉 예수를 위해 또 그가 뜻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위해 복음이 잘 보존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이 복음은 주로 성령의 증언에 의하여(26절)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사도들의 증언에 의하여 보존될 것이다. 증언은 진리를 옹호하는 적절한 수단인 것이다.

Ⅰ.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배척을 당하더라도, 복되신 성령께서 오서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위하여 일하실 것이 약속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비난의 소리를 들으셨을 때에 자기의 억울함을 아버지께 호소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 호소를 들으시고도 잠잠하심을 경험하면서도 낙심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보혜사께서 오셔서 그리스도를 위해 강력히 대변해 주시고 또 자신의 목적이 승리로 끝나도록 이끌어 가실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 그러기에 주님은 본문에서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보혜사, 곧 대변자가 오시리라. 그는 내가 너희에게 보내는 것으로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난 후 나의 빈 자리를 대신 담당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나에 대해 증거할 것이다." 다만 한 귀절을 통하여 성령에 관해 이같이 명쾌하게 말씀되고 있는 것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이곳밖에 없다.

1. 본문에는 성령의 본질 또는 성령의 실재가 설명되고 있다. 그는 "아버지께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시다."

(1) 본문에서 성령은 단독적인 인격으로서 칭하여지고 있다. 

-- 그는 하나님의 한 속성에 불과하신 분은 아니시다. 그는 "성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그리고 "진리의 성령"이라는 별칭이 붙은 인격체이시다. 그에게 진리의 성령이라는 칭호가 주어진 것은 그가 바로 진리의 증언자이시기 때문이다.

(2) 본문에서 성령은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신적 인격체로서 칭하여지고 있다. 

-- 인간에게 있어서 호흡은 "생기"라고 칭해진다. 인간은 숨을 내뿜으며 산다. 그는 어느 때는 그의 숨을 크게 내뿜어 불을 끄기도 하고 또 불을 살아나게 하기도 한다. 성령도 이와 마찬가지 기능을 하신다. 그는 하나님의 빛의 광선이시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을 활동하게 하는 활동체이시다. 태양은 그 광선을 통해 빛과 열과 영향력을 분배하고 퍼뜨린다. 그런데 이 광선은 바로 태양에서 나온다. 그러면서도 광선은 태양과 일체인 것이다. 

-- 니케아 신조에는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온다. 왜냐하면 성령은 아들의 영이라고도 말씀되고 있기 때문이다"(갈 4:6)라고 하였다. 또한 본문에서도 아들이 성령을 보내시는 것으로 말씀되고 있다. 그러나 희랍 정교회는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나온"(from the Father by the Son)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2. 성령의 사명이 본문에 설명되고 있다.

(1) 그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도 풍성하게 그의 은사와 은혜와 능력을 내리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랫 동안 ‘호 에르코메노스’ - 즉 오실 이로 불리워져 왔었다. 그러나 그는 오셨던 것이다. 이제 본문에서는 성령께서 "오 실이"로 약속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그를 보낸 것이다"라고 하셨다. 앞 장에서 그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했었다. 이 모든 말씀은 성령은 그리스도의 중제로 통하여 임재될 수 있음을 뜻하는 말씀이다.

① 성령은 중제자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보냄을 받으셨다. 

-- 이 그리스도는 이제 "인간들에게 은사를 주시기 위해 하늘에 올라가 계시며" 또한 모든 권력을 부여받으시었다.

② 성령은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으셨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말씀한다. "성령은 나의 아버지 집인 하늘나라에서 보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성령은 "하늘나라로부터 소리와 함께"임한 것을 볼 수 있다. 행 2:2) "아버지의 뜻과 예정에 따라 보내지는 것이다."

(3) 성령께서는 사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 그들의 말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3. 그의 직책과 기능. 그의 기능은 먼저 그에게 붙여진 명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본문에서 그는 "보혜사" 또는 "옹호자"로 칭해지고 있다. 즉 불신의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정당성을 지지해 주는 그의 옹호자라는 말이요, 또한 세상에게 미움을 받는 성도들의 위로자이시라는 말이다. 또 다른 그의 기능은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라"는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옹호자이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증인이시다. 따라서 복음 사역이 능력있게 되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복음 사역자들에게 힘을 공급하시는 원천이 되시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가 능력있기 위해서도 성령의 능력의 공급이 역시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바로 능력있는 사역자와 성별된 성도들을 통하여 증거되신다.

Ⅱ. 본문에서는 사도들 또한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는 영예를 지닐 것이 약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서 "너희도 나를 증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7절).

1. 사도들은 세상에서의 그리스도를 위한 증인들로 임명되고 있다. 

-- 그리스도는 "성령께서 나를 증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 덧붙여서 "너희도 또한 나를 증거할 것이라"고 하였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그는 우리 대신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이다. 즉 우리로 일하게 하시고 또 격려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증거하시지만 또한 사역자들도 증거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 복음 사역은 그의 사역자들의 본분이다. 그들은 사실(truth) 곧 그리스도에 대해 실제 있었던 것을 증언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사실 이외 에 어떤 것도 증언해서는 안 된다. 비록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가 재판을 당하실 때 대제사장과 빌라도 앞에서 도망하였지만 그럼에도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신 후 그들은 그리스도를 변호하기 위하여 담대히 사람들 앞에 나섰던 것이다. 

-- 기독교의 진리는 대부분 물적 증거를 통하여 증거되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러하였다. 이 증거를 위하여 사도들은 특별히 증인들로 선택되었던 것이다(행 10:41).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의 증인들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 주님은 "성령께서 나를 증거할 것이요, 너희도 아를 증거할 것이라" 하다. 그리스도께서 복음 사역자들에게 이같이 높은 영예를 부여하셨으므로 그들은 담대히 세상의 증오와 멸시에 맞서 대항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2. 그들은 증언자로서의 자질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대중에게 하신 설교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와 사적인 대화의 시간을 계속 가졌었다. 그들 이외의 무리들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자기들이 사는 동리나 읍에서 행하시는 놀라웁고도 자비로운 기적만을 보았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동거하였던 제자들은 그가 행하신 모든 기적을 빠짐없이 목격하였다. 그러므로 예수와 함께 생활하였던 그들이야말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를 가장 잘 증거할 수 있는 적격자들이었던 것이다. 

-- 사역자들은 먼저 그리스도에 대해 배워야 한다. 그 다음에야 그는 복음을 전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또한 "처음부터" 그리스도와 사귄 사람은 그의 증언자기 될 수 있는 최상의 자격을 지닌 사람인 것이다. 우리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와 사귐을 갖도록 하자. 일찍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또 복음과 친숙해질 때 그는 가장 좋은 청지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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