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1.1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요9.태생적 맹인을고치시고 두번째로 그리스도로 자신을 드러내심. 영적맹인논쟁.
첨부파일 :

개역개정]요9장

.......선줄로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선하심-인자하심-진실하심, 곧 체휼하시는 임마누엘 Q의 어떠하심의 빛에 자신의 전존재를 열어 오직 믿음으로 영접하라.. 점흠티주름 없는, 투명한 말씀거울앞에 서서 비추어 모든 거리낌마다 조명해 보라..Q께 합당하도록 접검하여 구체적으로 모든 거리낌 하나하나 회개하라, 주이름 부르라,  깨우치사 깨닫게 하시며 일깨워 깨어나게 하시는 HS께 전심으로 순종하기로 결단하라, 성령과 참생명 그 자체인 JC의 말씀안으로 붙들고 믿어 들어가서 하나됨 이루는 영적 민감성을 회복하라, 오직 HS과 참생명따라 행하라]

.......볼 수 있는데도 ((완고한 고집으로 보기를 거절하며 눈을 감아버리고 고의로 육적 혈기와 충동따라 자행자제하며 )) 보지 않으려는 자마다 진짜 맹인이요, 맹인 되었으면서도 본다는 착각과 망상에 빠지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치유불가의 병증이다 [누구에게 속한 자인지, 합당하게 살라. 오직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신 바로 그 사랑에 인쳐지고  공급받으라, Q의 사랑에 참되게 믿음으로 반응하여, 곧 받아들여 충만케 되고 감사함으로써 먼저 그 사랑으로 거룩함 이루며, 말씀으로 자신을 연단하여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 온전히 드러내라, 그 사랑의 통로로써 그 사랑을 공급하라]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시다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보게 된 맹인과 바리새인들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NASB]요9장

1.  And as He passed by, He saw a man blind from birth.

2.  And His disciples asked Him, saying, "Rabbi, who sinned, this man or his parents, that he should be born blind?"

3.  Jesus answered, "[It was] neither [that] this man sinned, nor his parents; but [it was] in order that the works of God might be displayed in him.

4.  "We must work the works of Him who sent Me, as long as it is day; night is coming, when no man can work.

5.  "While I am in the worl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6.  When He had said this, He spat on the ground, and made clay of the spittle, and applied the clay to his eyes,

7.  and said to him, "Go, wash in the pool of Siloam" (which is translated, Sent). And so he went away and washed, and came [back] seeing.

8.  The neighbors therefore, and those who previously saw him as a beggar, were saying, "Is not this the one who used to sit and beg?"

9.  Others were saying, "This is he," [still] others were saying, "No, but he is like him." He kept saying, "I am the one."

10.  Therefore they were saying to him, "How then were your eyes opened?"

11.  He answered, "The man who is called Jesus made clay, and anointed my eyes, and said to me, 'Go to Siloam, and wash'; so I went away and washed, and I received sight."

12.  And they said to him, "Where is He?" He *said, "I do not know."

13.  They *brought to the Pharisees him who was formerly blind.

14.  Now it was a Sabbath on the day when Jesus made the clay, and opened his eyes.

15.  Again, therefore, the Pharisees also were asking him how he received his sight. And he said to them, "He applied clay to my eyes, and I washed, and I see."

16.  Therefore some of the Pharisees were saying, "This man is not from God, because He does not keep the Sabbath." But others were saying, "How can a man who is a sinner perform such signs?" And there was a division among them.

17.  They *said therefore to the blind man again, "What do you say about Him, since He opened your eyes?" And he said, "He is a prophet."

18.  The Jews therefore did not believe [it] of him, that he had been blind, and had received sight, until they called the parents of the very one who had received his sight,

19.  and questioned them, saying, "Is this your son, who you say was born blind? Then how does he now see?"

20.  His parents answered them and said, "We know that this is our son, and that he was born blind;

21.  but how he now sees, we do not know; or who opened his eyes, we do not know. Ask him; he is of age, he shall speak for himself. "

22.  His parents said this because they were afraid of the Jews; for the Jews had already agreed, that if anyone should confess Him to be Christ, he should be put out of the synagogue.

23.  For this reason his parents said, "He is of age; ask him."

24.  So a second time they called the man who had been blind, and said to him, "Give glory to God; we know that this man is a sinner."

25.  He therefore answered, "Whether He is a sinner, I do not know; one thing I do know, that, whereas I was blind, now I see."

26.  They said therefore to him, "What did He do to you? How did He open your eyes?"

27.  He answered them, "I told you already, and you did not listen; why do you want to hear [it] again? You do not want to become His disciples too, do you?"

28.  And they reviled him, and said, "You are His disciple, but we are disciples of Moses.

29.  "We know that God has spoken to Moses; but as for this man, we do not know where He is from."

30.  The man answered and said to them, "Well, here is an amazing thing, that you do not know where He is from, and [yet] He opened my eyes.

31.  "We know that God does not hear sinners; but if anyone is God-fearing, and does His will, He hears him.

32.  "Since the beginning of time it has never been heard that anyone opened the eyes of a person born blind.

33.  "If this man were not from God, He could do nothing."

34.  They answered and said to him, "You were born entirely in sins, and are you teaching us?" And they put him out.

35.  Jesus heard that they had put him out; and finding him, He said, " Do you believe in the Son of Man? "

36.  He answered and said, "And who is He, Lord, that I may believe in Him?"

37.  Jesus said to him, "You have both seen Him, and He is the one who is talking with you."

38.  And he said, "Lord, I believe." And he worshiped Him.

39.  And Jesus said, "For judgment I came into this world, that those who do not see may see; and that those who see may become blind."

40.  Those of the Pharisees who were with Him heard these things, and said to Him, "We are not blind too, are we?"

41.  Jesus said to them, "If you were blind, you would have no sin; but since you say, 'We see,' your sin remains.

=======

[사29:9-14]*9.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10.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11.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12.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13.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4.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

요한복음 9장 (개요)

8장 끝부분에서 그리스도가 성전 밖으로 나가신 후 9장에 기록된 사건이 있기 이전에 그는 잠시 동안 약2,3개월 정도 예루살렘을 떠나 계셨었다. 

***그 시간적 간격 사이에 라이트푸트(Dr. Lightfoot) 박사와 네 복음서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누가복음 10장 17절에서부터 13장 17절까지 나타나는 모든 구절들을 이 사이에 배열시키고 있다7장과 8장에서 기록된 것은 9월 유월절 축제때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9장과 10장에서 기록된 것은 12월 수전절(修殿節)에 일어난 사건들이었다(10:22). 

***클라크(Mr. Clank)씨와 다른 몇 사람은 이것을 앞장에 바로 연결되어도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본 장(章)에서 우리가 다루게 될 문제는 다음과 같다.

Ⅰ. 소경으로 태어난 자에 대한 기적적인 치유(1-7).

Ⅱ. 그 치유로 인해 야기된 여러 논쟁들.

1. 그의 이웃들의 그에 대한 논쟁 및 그들과 소경과의 대화(8-12).

2. 바리새인들과 소경 사이의 논쟁(13-34).

3. 그리스도와 소경간의 대화(35-38).

4. 그리스도와 바리새인들 간의 대화(39-41).

===========

소경의 치유(1)(요 9:1-7)

우리는 본문에서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한 불쌍한 걸인에게 주어진 시력의 회복에 대한 기사를 대하게 된다. 이제부터 몇 가지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Ⅰ. 우리 주님 예수께서 불쌍한 소경의 가련한 입장을 목격하심(1절).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셨다. 

---본문의 첫 어귀는 본문의 전 장에 이어진 말씀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 이야기를 8장 마지막 사건에 바로 이어지는 사건으로 조화시키고 있는 자들의 견해를 뒷바침해 주고 있다. 8장 마지막 부분은 ‘파레겐’ - 즉 그가 나가시니라 이라고 되어 있는데 본 장(章) 서두에서는 그의 이름을 반복하지 않고 (우리의 번역자들은 그 이름을 제공하고 있지만) ‘카이 파라고’ - 즉 그리고 지나 가시다가로 되어 있을 뿐이다.

1. 유대인들이 매우 비열하게 그에게 비난을 퍼부었고 또 말과 행위로써 그를 할 수 있는 대로 격노하시게 하였지만 여전히 그는 그들 가운데서 선을 행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어떤 결단을 내리는 일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그는 마땅히 할 바를 하셨고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하여 그런 자들에게 호의를 베풀지는  아니하셨다. 

---이 소경의 치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전에는 그를 먹여 살리는 것이 이웃의 책임과 부담이 되었는데 이제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믿는 우리가 군중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괴로움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무력한 이들을 섬기기를 기꺼워하는 것은 고상하고 너그러운 일이며 그리스도의 행하심과 같은 일이다.

2. 비록 그리스도는 위협적인 위험을 피하며 생명을 위하여 도망가는 입장에 있었지만, 여전히 그는 기꺼이 이 불쌍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하여 잠시 가던 길을 멈추시었다. 

---보라, 우리는 우리가 선을 행할 기회에서 달아날 때는 평상시보다 더 빨리 달린다.

3.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하며 쫓아버렸을 때 그는 이 가난한 소경 걸인에게 가셨다. 

---교부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 사람을, 어둠 속에 앉아 있던 [태생적 죄인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가져온 한 인물로 여긴다. 유대인들은 이 생명의 복음을 거절하고 자기들로부터 추방시켰다.

4. 그리스도는 지나가시다가 이 불쌍한 맹인을 보시고는 그를 고쳐 주셨다. ((선행과 복음전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비록 지나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을 행할 기회를 잡아야 한다.

(1) 이 가난한 자의 정황은 매우 슬픈 것이었다. 

.....그는 소경이었고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났었다. 만일 빛이 사랑스러운 것이라면 평생 동안 어둠 속에서 먹는 그 사람에게 빛은 얼마나 필요하였을까! 소경이 된 사람은 빛을 즐기지 못할 뿐 아니라 태생적/선천적 소경은 빛에 대한 개념도 갖고 있지 못한다. 생각컨대 이러한 사람들은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빛, 색, 모양, 형태 이러한 것들을 보았으면 원이 없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태양의 빛을 볼 수 없으므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비참한 상태에 있는 자에게 생명의 빛을 주셨는가(욥 3:20-23). 이것을 우리가 당하지 아니했다는 점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자. 눈은 신체의 가장 신비한 부분 중의 하나이고 그 구조는 놀랍게도 미묘하고 훌륭한 것이다. 동물들의 신체가 형성될 때 눈이 처음으로 식별할 수 있도록 먼저 나타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들의 몸을 만드시는데 하나님에게 실수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그 얼마나 은혜스러운 일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질병으로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소경된 자들을 많이 고치셨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치셨다.

① 본문은 주님께서 가장 절망적 상태에 있는 자를 도울 수 있으며 아무도 어찌 할 수 없을 때 그에게 해방을 주실 능력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② 본문은 주님께서 죄인들의 영혼에 대하여 특별한 은혜로 역사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다. 이 은총은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게 시력을 주실 수도 있다.

(2) 그 사람에 대하여 우리 주 예수는 연민을 느끼셨다. 

.....그는 그 소경을 보셨다. 즉 그분은 그 소경의 입장을 인식하셨고 관심을 갖고 그를 응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는 일을 막 시작하려 하실 때, 먼저 상대방에게 그 상처를 참되게 잘 살펴 보고 그 아픔-절망의 심정과 함께 동시에 하나님의 연민/민망의 심정을 느끼며 체휼로 동참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리스도도 Q인도따라 이 불쌍한 사람을 보셨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보았으나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보신 것처럼 참되게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기도와 기대를 가지고 놀라운 치유의 결과를 기다리셨다. 

.....그리스도는 자주 자기를 찾지 않고 보지도 않는자들을 친히 찾으신다(사 65:1).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어떤 점을 알거나 이해한다면, 그건 우리가 그분에게 먼저 알려졌었기 때문이고(갈 4:9) 그에게 이해되었기 때문이다(빌 3:12).

Ⅱ. 이 소경에 관해서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나눈 대화, 

---그리스도가 성전 밖으로 나가셨을 때, 제자들은 그를 따라 나왔다. 왜냐하면 이들은 그가 시험받으실 때도 그와 계속해서 함께 있었고 그가 가신 곳은 어디든지 따라갔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분을 추종하여서 잃은 것은 없었고 오히려 풍부한 경험을 얻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것을 관찰해 보자.

1. 제자들이 이 소경의 경우에 대해 저들의 주인에게 물어본 질문(2절). 

---그리스도가 그를 쳐다보았을 때 그들도 역시 그 소경을 쳐다보았다. 그리스도의 연민을 우리들의 연민을 불붙게 하신다. 아마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이 불쌍한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이었다고 말했든지 아니면 그들이 그 사실을 소문으로 알고 있었는지 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를 치유하시도록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였다. 대신에 그들은 그에 관해 매우 진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즉 "선생님,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라고 물었다. 저들의 질문의 의도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무자비한 질문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놀라울 만한 불행은 어떤 특별한 악행에 대한 벌로써 당연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따라서 그들은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도 뛰어난 죄인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눅 13:4). 

.....야만적인 사람들이 "이 사람은 틀림없는 살인자라"고 추론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서를 알고 있고, 성경을 통해 체휼하시는 분, 인자와 자비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한결 같으시다는 말씀을 읽으므로써 가장 심하게 고통을 당한다고 그가 가장 큰 죄인일 수 있다고 함부로 짐짓추측하여 경멸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욥의 경우에서 체험한 사람들이 무심코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은 큰 실수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용서될 수 없는 것이었다. 

.....새롭게 마음 가다듬고 생각하라!!, 참회의 은혜를 받은 자는 진실로 내 자신들의 불행을 형벌로 인식하여 돌이켜 회개하며, 자비의 은혜를 받은 자는 다른 사람들의 재난들을 고난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 증거가 명백하지 않는 한 말이다.

(2) 그것은 어긋난, 짐짓추측의, 불필요한 호기심이었다. 

.....이러한 재난은 매우 흉악한 어떤 죄인들에게 가해진다고 섣불리 결론지으면서, 그들은 "이것이 누구의 죄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 사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그들에게 그 사실을 알도록 한다고 무슨 유익이 있단 말인가? 

.....어떤 거리낌이 있을 때 먼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마땅히 처리해야 할 우리 자신의 죄에 관해서 살펴보기 보다는 불평하면서 무슨 이유로 그분이 우리와 다투시는가를 알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 판단하고 회개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요, 짐짓 추측으로 섣부르게 우리의 형제를 판단하는 것은 죄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들은 묻는다.

① 이 사람이 이처럼 자기 자신의 어떤 죄로 인해 벌받았던 것은 이 자가 죄를 범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정해진 것인지를 묻는다. 

.....어떤 이들은 제자들이, 영혼들의 선재와 영혼들이 한 육신에서 또 다른 육신으로 윤회한다는 피타고라스학파 개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즉 이 사람의 영혼은 전에 생존했던 다른 육신 가운데서 범했던 어떤 큰 죄에 대한 댓가를 치루기 위해, 이 소경의 육신을 입고 태어난 것이 아니냐?고 보았다. 바리새인들도 이 사람에 대하여 동일한 견해를 가졌던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생각은 바리새인들의 다음과 같은 질문 즉 "본래 죄 가운데서 화인을 맞고 태어난 사람처럼 너도 온전히 죄 가운데서 태어났도다"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또 그들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② 그가 자기 부모의 사악함으로 인해 벌받았는지 아닌지를 묻는다. 

.....때때로 하나님은 부모의 받을 벌을 그 자녀들에게 내리신다. (출34:7..아비의 죄를 삼사대에 걸쳐서 갚고, 경외하는 자에게는  인자 베풀기를 천대까지 하리라..)  그것은 부모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저들의 자녀가 부모의 죄로 인해 고통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모들이 자신들이 범한 바 남은 죄를 회개-토설하는 것을 잊지 말것에 주의해야 한다는 좋은 근거를 제공한다. 우리도 마치 광야에 거하는 타조처럼 우리 자신들의 후손에게 잔인한 자가 되지 말자. 

.....아마 제자들은 이것이 그 자신의 어떤 실제적인 죄나 또는 그의 부모의 죄로 인해 가해진 벌이었다고 믿지는 않으면서 물어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른 환자에게 그의 죄가 중풍병의 원인이라고 말씀하셨다(5:14). 그러므로 제자들은 "주님이여, 이러한 불구의 원인은 누구의 죄로 인한 것입니까?"라고 지금 물은 것이었다. 이러한 섭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몰랐으므로 그들은 배우기를 바랬다. 선하신 하나님의 안배의 공평성은 항시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의 의로움은 거대한 산처럼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항시 설명되어질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의 판단은 아주 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Q앞에서 견손하라!!

2. 이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의 답변. 

---그는 항상 가르치기를 원했고 그의 제자들의 잘못을  부드럽고 온유함으로써 교정해 주기를 좋아하셨다.

(1) 그는 이 불쌍한 사람이 소경으로 된 이유를 설명하신다. 

.....즉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그가 소경으로 태어나서 이 날까지 소경으로 있는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그에게서 나타나기 위한 것이다"(3절)라고 말씀한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스러운 원천을 완전하게 알고 계신 그리스도는 그러한 특수한 재난들에 관해 두 가지 사실을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① 모든 징벌이 반드시 죄의 댓가로써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참을 하나님이 내리신 것이라고 하여도 인간이 하나님에게 할 말은 없다. 따라서 불행을 적게 경험하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비로우시다고 말해야 할 것이며 그렇다고 불행을 많이 당하는 사람들이 그가 불의하신 분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사실 이 세상의 생활 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그들보다 더욱 비참하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 이유는 반드시 그가 죄인이라든가 그의 부모들이 죄인이기 때문은 아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러한 고난을 주신 것은 남은 못보나 그만이 볼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죄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을 그 때 그가 더 큰 죄인일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이는 우리가 "(각사람의 지고지선의 진복 위해) 하나님이 치신 자들을 박해하였"을 뿐만 아니라(시 69:26) 그가  ((이미)) 의롭다고 하신 자들을 비난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를 위하여) 죽으신 바 된 자들을 정죄하는 잘못을 범한 자들로 발견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무모하고도 위험스러운 짓이다(롬 8:33, 34).

② 재난들은 때때로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통치권을 가지고 계시고 그들에게 대하여 처분 내릴 전권적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 그는 그들에게 (친절로써) 역사 하시거나 또는 고통을 주시든지 그분이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는 방식으로 그들이 그의 영광을 위해 섬길 수 있게 하실지도 모른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로 인해서 또는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다면, 우리가 헛되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은 소경으로 태어난 자였다. 그리고 그가 그처럼 소경으로 태어나서 오랫동안 암흑 속에서 계속하여 지낸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그에게서 나타나기 위한 것으로 인한 가치 있는 것이었다. 즉 다음과 같은 말이다.

첫째, "하나님의 속성"이 그에게서 분명히 나타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 하나님은 때로 죄인을 비참한 재난에 몰아 넣으심으로 자신의 의를 실현시키지도 하며 또 비참하고도 견디기 어려운 불행 중에 있는 한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을 통하여 그의 일상적 권능과 선하심을 나타내기도 하신다. 특히 그분의 비범한 권능과 선하심은 고난받는 자를 치유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섭리의 난해한 점들이 위와 같은 설명에 의해 해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즉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서 "스스로를 나타내시기도 하며" 그의 영광을 선포하기도 하시며 자신을 알리기도 하시는 것이다. 

--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서 그 분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비범한 사건들로 인해 경고를 받게 된다. 자신이 고난 당하므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참된 신앙인은 누구나 기꺼이 자기의 위로를 포기하려고 할 것이다.

둘째, 구속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게 하기 위한 일이었다. 

-- 그가 소경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는 그 사랑을 치유하시는 명예를 누릴 수 있으셨고 이로써 자신이 세상에 참된 빛이 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입증하실 수도 있었다. 즉 "소경의 눈을  뜨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그는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것은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지금까지는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었다. 섭리의 취지는 일반적으로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오랜 시간이 경과되어도, 아마 수십 년이 지나서도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섭리가 기록된 책의 문장은 때때로 아주 길기 때문에 그 뜻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읽기 위하여 많은 시간이 경과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2) 그는 자기 자신이 그를 돕고 치유하기 위해 자진하여 나서신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4,5절). 

-- 그것은 허세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해야 할 일을 수행하려는 것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때가 아직 낮이며 또 일할 시간에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내가 하여야 하리니..(이 일도 그의 하실 일 가운데 하나였다). 

--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영과 육을 위하여 계속적으로 선한 일을 하신 이유일 뿐만 아니라, 그날이 안식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특별히 치유를 행하신 이유도 된다. 안식일에도 필요불가결한 일은 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 치유가 필요한 일임을 증명하셨다.

① 그것은 그의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즉 "나는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냈을 때, 그에게 "해야할 일"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그는 높은 지위를 누리려고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오셨다. 하나님은 일하는 자를 보내신다. 그는 게으른 자는 아무도 보내지 않으신다.

둘째, 그리스도가 하셔야 했던 일들은 "그를 보내신 자의 일"이었다. 

.....그는 그분에 의해 임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분에 의해서 일을 하셨다. 또한 그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였다.

셋째, 그는 자기가 위하여 보냄을 받은 바로 그 일을 행하실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그는 "나는 일해야만 한다"고 말씀한다. 그는 구속의 계약에서 중재자로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맹세하였다(렘 30:21). 이같이 그리스도는  중재자로서 속박 받기를 기꺼워하시는데 그와 함께 걷는 우리는 놓여나기를 바라서 될 것인가?

넷째, 그리스도는 그의 일을 행할 책임이 주어지자 그의 일에 온 정력을 기울이셨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기가 행해야만 했던 일들을 하셨다. ‘에르가제스다이 타 에르가’(9:4) - 즉 그는 그의 일로써 주어진 바로 그 일을 행하셨다. 우리의 일을 바라보는 것 또는 그 일에 대하여 얘기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만 우리는 행해야 할 바로 (주와 함께)그 일을 해야만 한다.

② 지금 그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때가 낮이니 나는 일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신다. 일할 수 있는 시간과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빛이 주어져 있는 동안 일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도 시간의 한계안에 친히 머물러 있으셨던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중재 사업은 정한 시간 내에 또한 이 세상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종말에는 즉 세상의 역사가 종식될 때 그리스도의 중재권은 하나님 곧 아버지에게 넘겨질 것이고 하나님의 신비는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여기 지상에서 "몸을 입으시고" 이루실 모든 일은 그가 죽기 전에 행해져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을 여기서는 낮으로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생명이 주어진 동안 이 우리의 낮이요. 낮에는 낮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임을 기억하자. 

.....낮은 일하기에 적절한 때이다(시 104:22, 23). 인생의 낮에 우리는 바빠야 하고, 이 낮 시간을 소일해서는 안 되며 낮 시간을 놀이로 보내서도 안 된다. 날이 저물면 쉬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낮이 아니기 때문이다.

③ 그에게 주어진 기회가 종식될 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바쁘게 지내셨다. "밤이 오면 아무도 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죽음이 임박해 있다는 생각은 선을 행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인생의 모든 기회들을 선용하도록 우리에게 자극을 줄 것이다. "밤은 오고 있고" 또한 분명히 올 것이다. 또 갑자기 올 지도 모른다. 여하간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우리의 태양이 어디쯤 있는지를 계산할 수 없다. 그것이 정오에 져버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 생명이 주어진 낮과 죽음이 지배하는 밤사이의 황혼기가 얼마나 될 지 기약하지 못한다. 밤이 오면 우리는 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로 하여금 일할 수 있게 해 준 빛이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무덤은 암흑의 땅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은 어두움 속에서 수행될 수 없다. 더구나 우리의 일을 위해 할당된 우리의 시간도 그때가 되면 끝나고 만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가 행할 의무를 정하실 때, 그는 시간까지 정해 놓으신다. 

.....밤이 오면 그는 "모든 일군들을 부르신다." 그 때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을 그에게 보여드려야 하며 그리고 일한 결과대로 받게 될 것이다. 저 세상에 가면 우리의 연단은 끝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촛불이 떨어질 때 서둘러 보아야 아무런 소용없다. 그리스도는 비록 내부로부터 갈등이 있으셨던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부지런히 일하기 위한 자극제로 이 말씀을 하셨다. 더구나 우리는 스스로 마음에 채찍질을 함으로 각오를 새롭게 하는 일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④ 세상에서 해야 할 그의 일은 이 세상을 밝히시는 것이었다(5절). 

.....그러므로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그 기간이 길지는 않을 것이나,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이전에도 이 말씀을 하셨었다(8:12). 그는 의의 태양이시다. 그는 눈이 성한 자들이 볼 수 있도록 빛을 비춰 주시며 눈이 멀어서 볼 수 없는 자들의 시력은 회복시켜주신다. 그 안에는 낮을 지배하는 위대한 빛이 넘쳐흐른다. 

.....그리스도는 눈 먼 세계의 대표적인 이 소경을 치유하시려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는 빛을 줄뿐만 아니라 시력도 주기 위해 "세상의 빛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이제 이 사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첫째, 이 말씀은 인도하고 소생시키시며 활력 있게 하는 빛인 그에게 오도록 우리에게 위대한 용기를 준다. 

.....그분 외에 우리가 또 누구를 바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바라볼 곳은 빛이 비치는 곳 이외에는 없지 않는가. 우리는 태양의 빛의 혜택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돈과 대가 없이도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석할 수 있다.

둘째, 이 말씀은 세상을 사는데 유익한 본보기가 된다. 그리스도는 그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후, 그는 제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에서 빛들이다. 그러니 너희의 빛을 비추라." 빛을 밝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초를 만들었겠는가?

Ⅲ. 소경에 대한 치유 방법(6,7절). 

---기적이 일어난 환경은 단순한 것이고 의미 있는 것이었다.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저들을 이해시키신 후 그는 소경의 눈을 치유하는 일을 착수하셨다. 그는 그 일을 은밀히 행할 수 있을 때까지 연기하거나, 또는 안전을 거하기 위해서 그의 명예를 더욱 위대하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모일 때까지 연기하거나 또한 그 채유가 말썽을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연기하시거나 하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선을 행할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을 우리는 신속히 행해야 한다. 선을 행하는데 장애가 제거될 때까지 선행를 보류한다면 많은 훌륭한 사업이 그대로 방치되고 말 것이다(전 11:4). 치유에 대하여 고찰하여 보자.

1. 눈에 바를 것을 예수께서 준비하심. 

---그리스도는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기셨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씀으로 그를 치유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어떠한 방법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이러한 방식으로 행하는 길을 택하셨다. 

---그는 자기 자신의 침으로 진흙을 개셨는데 그 이유는 가까이에 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통하여 그는 우리에게 무슨 진기하고 근사한 방법을 쓰려고 하지 말 것을 가르치시려 했다. 그는 우리에게 어느 때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어떤 방법이든 그것이 유용하면 손쉽게 취할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을 가르치시려고 했다. 보다 쉬운 방법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다른 길을 찾아 돌아다녀야 된단 말인가?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의 침을 사용하신 일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것에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사실 그리스도의 침으로 개여진 진흙은 길리아드의 향유보다 더욱 더 귀중한 것이었으리라.

2. 눈에다가 그 진흙을 바르심. 

---그는 진흙으로 "소경의 눈에 바르셨다." 또는 난외주에 있는 대로 그는 상냥한 의사처럼 "소경의 눈에다 진흙을 두둑하게 바르셨다" (에페크리센). 그는 그 환자가 걸인이었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그것을 행하셨다. 이제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이를 행하셨다.

(1) 그는 보는 사람도 못 보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들 수밖에 없던 방법, 

.....곧 진흙을 눈에 바르는 방법으로 소경을 보게 함으로써 그의 능력을 효과 있게 과시하시기 위해 이를 행하셨다. 눈에 진흙을 바른다는 것은 눈을 보게 하기는커녕 더욱 닫히게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이 자주 반대의 방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또한 그는 사람들에게 시력을 주시기 전에 그들로 하여금 저들 자신의 소경됨을 의식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그는 태초에 인간을 진흙으로 만들었던 손과 그의 손이 동일한 권능 있는 손임을 알려 주기 위해 이를 행하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거대한 세계인 우주와 조그마한 세계인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진흙으로 구성되었고" 진흙으로 빚어진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최초에 육체를 형성하는데 사용했던 같은 재료를 육체에 시력을 주기 위해 사용하셨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써 마음의 눈들이 치료되고 열려진다는 것을 표현하고 유형화시키시기 위해서 그는 이 일을 행하셨다. 

.....복음의 의도는 "인간들의 눈을 열게 하기"위한 것이다(행 26:18). 마음의 눈을 열어 주는 안약은(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작동되는 바) 그리스도 밖에 누구도 만들 수 없다. 그 안약은 이것처럼 그분의 침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그의 피로 만들어지는데 곧 그의 관통된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로 만들어진다. 

.....우리는 안약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에게 나와야만 한다(계 3:18). 그분만이 그것을 만들 수 있고 그분만이 그 약을 만들 자격이 있으시다(눅 4:18). 이 목적에 동원된 도구는 보잘 것 없고 무슨 효력을 낼 것 같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권능이 임하자 그것은 효력을 나타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시고 또한 영혼이 눈먼 민족들의 눈을 띄우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세상이 보기에 어리석은 것과 연약하고 경멸받는 것들을 택하셨다. 그리스도가 취하신 방법은, 이 불쌍한 사람이 자기 눈에 진흙이 발라지자 느꼈던 것처럼 우선 그들 스스로가 눈이 멀었음을 느끼게 하시고 그런 다음 보게 하여 주신다. 

.....바울은 회심하던 때 삼일 간 "눈이 멀었다가 그 후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다." 영적인 지혜를 얻는 방법은, "그가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고전 3:18). 우리는 본문의 이 사람이 겪은 것처럼 우리의 눈이 멀었으므로 진흙으로 눈이 덮히는 것 같은 신앙의 괴로움을 당하나 그래야만 치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3. 환자에게 주어진 지시(7절). 

---그 환자의 의사는 그에게 "가서 실로암 연못에서 씻으라"고 말했다. 이 씻음이 치유의 효과를 내는데 필요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1) 그리스도는 이를 통하여 그의 순종을 시험하려 하셨다. 

.....그리고 그가 확고한 믿음으로써 매우 낯선 자인 그의 명령에 복종하려 했는지 어떠했는지를 시험하려고 하신 것이다.

(2) 그리스도는 그가 장로들의 전승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가를 시험하려고 하셨다. 

.....장로들의 전승에 의하면 눈을 씻으러 연못에 가는 것도 금지된 일이었지만 안식일에 치료의 효과가 있다는 침을 바른 눈을 닦는다는 것은 금지되고 있었던 것이다(눈이 먼 많은 사람들은 이 전승을 잘 알고 있었다).

(3) 이로써 그는 영적인 치유의 방법을 제시하려고 하셨다. 

.....비록 치료의 결과는 순전히 그의 능력과 은혜로 인한 것이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행해야 할 의무도 있다. 가서 성서를 연구해 보고 교역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 또한 지혜 있는자와 대화를 하여 보라. 이것은 실로암 연못에서 씻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약속된 은혜는 제정된 의식들을 통하여 받고자 해야 한다. 세례의 물은 실로암 연못과 같은 것이어서 어두움 속에서 단련 받아온 자들에게 주어진다. 그 안에서 그들은 씻기움을 받고 정결함을 받을 뿐 만 아니라 씻어 저들의 눈이 회복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세례를 받은 자들은 "교화된자"라고 불리워진다. 그러므로 초대 교인들은 세례를 "교화(fwtismov")"라고 불렀다. 실로암 연못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실로암 연못은 시온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온 물로 채워졌다. 

.....그래서 이 물은 생명수로써 치유케 하는 물이다(겔 47:9). 또는 성소의 물이라고 일컬어졌다(시 46:4).

② 실로암의 물은 옛부터 다윗 가문의 왕권과 왕국을 의미했었다. 

.....이 물은 메시야를 지시하는 것이었다(사 8:6). 그러나 유대인들은 "실로아의 물" 곧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법도를 거절하고 장로들의 유전을 기뻐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이 사람이 실로암의 물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시려 했다.

③ 복음서 기자는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을 지닌 그 이름의 의미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그리스도는 자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자" 또는 계약의 사자로 불리운다(말 3:1).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를 실로암 연못으로 보낸 것은 사실상 그를 예수 자신에게 보내신 것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영혼을 치유하는 오직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선지자로서의 그리스도는 제사장으로서의 자기 자신에게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인도해 주신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명하신다. "가서 연못이 아닌 열린 샘에서 씻으라. 생명의 샘에서 씻으라."

4. 이러한 지시에 대한 환자의 복종. 

.....본문에 의하면 "그는 (믿고 순종함으로써, 마땅한)  자기의 길을 갔다. 아마 그는 어떤 친구나 다른 자들에 의해 인도되어 갔을 것이다. 또는 그가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그는 스스로 그 길을 찾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연은 자주 시력의 결핍함을 진귀한 비법으로 대신 보충시켜준다. 그리고 "그는 그의 눈을 씻었다." 아마 제자들이나 구경꾼들이 이 사람보고 그에게 가서 씻으라고 명령했던 분이 그가 그토록 많이 들어왔던 예수였다고 알려 주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어리석은 심부름처럼 보이는 그의 명령에 의해 거기로 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분의 권능을 확신하였으므로 가서 씻었다.

5. 치유의 성취. 

....."그는 밝은 눈으로 왔다."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는 이 간단한 이야기 속에는 "나는 와서 보았고 정복했다(Veni, vid, vici)" 라는 시저의 말보다 더욱 감격적인 것이었다. 

.....진흙이 그의 눈에서 씻겨졌을 때, 모든 다른 장해도 그것과 함께 제거되었다. 이로써 새로운 출생의 고통과 투쟁은 끝이 나고, 회개의 아픔과 공포도 지나가고 죄의 멍에는 진흙과 더불어 씻기워지고 영광스러운 빛과 자유가 주어졌다. 우리는 여기서,

(1) 그리스도의 권능의 한 본보기를 보게 된다. 

.....이런 일을 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처럼 그 일을 직접 행하시기도 하는 그분에게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양 눈에 한 덩어리의 진흙을 바르고 그리고 다시 씻게 함으로써 그분은 가장 능숙한 안과의사가 가장 우수한 기재와 아주 능란한 손으로도 고칠 수 없었던 백내장(白內障)류의 병을 바로 고치셨다. "오실 이"(He that should come)는 틀림없는 이분이시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소경의 시력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2) 그것은 믿음과 순종의 덕의 본보기이다. 

.....이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게 해 드렸고 또 그가 그에게 하라고 지시한 바를 행했다. 그래서 그는 치유를 받았다. 

.....그리스도로 인해 치유 받으려는 자들은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는 연못으로부터 놀라운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이웃들과 친지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는 "밝은 눈으로 왔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약속에 따라 제정된 예식들에 참여할 때에 자비를 입은 영혼들이 받을 은혜를 나타내 준다. 연약한 상태에서 실로암의 연못을 찾아간다. 그러나 올 때는 만족함을 얻어 가지고 돌아오며, 통곡하며 갔으나 즐거워하면서 돌아오게 되며, 떨면서 갔으나 승리함에 젖어 돌아오게 되며, 눈이 멀어 갔으나 보게 되어 돌아오며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사 52:8).

-----------

소경의 치유(2)(요 9:8-12)

---소경으로 태어난 자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준 이 놀라운 사건은 그 마을을 화제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곧 잊혀지고 마는 다른 화제들은 제쳐놓고 이일만을 얘기하였다. 

---우리는 본문에서 그의 이웃 사람들이 이 사건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말한 내용을 대하게 된다.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던 이일이 후에는 의심없이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이 기적에 관하여 두 가지 사실이 논쟁되고 있다.

Ⅰ. 이 사람이 전에 소경이었던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하는 점이었다(8절).

1. 그가 태어났고 자랐던 곳 근처에서 살고 있었고 또 그가 소경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이웃들은 갑자기, 완전하게 그의 눈이 띄어진 것을 보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닌가?"하고 말했다. 이 소경은 생계 유지를 위해 일할 능력이 없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일하려고 하지 않으려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율법의 의무를 면제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기 저기 돌아다닐 수 없었으므로 앉아서 지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를 위해 조용히 앉아 있기라도 해야한다. 그는 자기가 일을 할 수 없고, 그의 부모들도 그를 부양할 수 없게 되자 "구걸하였다." 

---다른 방법으로 생존해 나갈 수 없는 자들은 부정한 청지기처럼, "구걸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명심하라.. 사람들로 죄 이외에는 부끄러워하지 말도록 하게 하자. 구호해 주어야 할 걸인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게으름을 부리거나 성을 잘 낸다고 일군들을 굶어 죽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이 사람이 기적의 대상이 된 것은 다음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였다.

(1) 이 기적의 대상으로 선택된 사람이 한 평범한 걸인으로서 알려진 자였다는 것은 섭리에 의해 잘 정해진 일이었다. 

.....바로 이 수단에 의해 기적의 진실함은 더욱 널리 증거 되었고, 또한 이 소경이 자기 아버지 집에서 부양되어 왔었다면 그가 소경이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을 이 신앙심이 없는 유대인들에 대해 더 많은 반증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2)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보다 치료하는데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하였을 터인데 이 비천한 걸인을 택하신 사실에서 우리는 그의 겸손함의 본을 보게 된다. 

.....그는 기적이 당시에 저명 인사들에게 알려질 필요가 있었을 때 그것이 더욱 효과적으로 알려지게 하기 위하여 가난과 비참함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을 기적의 대상으로 택하시었다.

2.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

(1)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적의 진실성을 증언한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그가 완전한 소경이란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2) 또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이웃에서가 아닌, 바로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자가 이처럼 갑자기 시력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니다, 그와 비슷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독백 속에서도 이 사람에게 일어난 일은 대단한 기적이라는 것을 수긍하고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하게 된다.

①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의 얼굴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지어졌으므로 같은 얼굴이 둘도 없이 각각 구별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데서 섭리가 지닌 지혜와 권능을 생각케 된다. 

.....사람들의 얼굴이 각각 다르게 되었다는 것은 사회 생활을 하는데 또는 사업상이라든가 치안유지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② 하나님의 회개케 하는 은혜가 이전에 매우 악했었고 타락했었던 자들에게 역사하셔서 그 사람이 예전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하고 현격하게 변화되게 하는 놀라운 역사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3. 이러한 논쟁은 그 사람 본인에 의해 곧 바로 해결되었다. 

---그는 "내가 최근까지 앉아서 구걸하던 바로 그 사람이요"라고 말했다. 즉 이런 말이다. "내가 소경이었던 그 사람이고 인간들의 동정을 받아 살아왔던 자요. 그러나 지금은 보게 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은덕이요." 

---우리는 이웃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해 줄 것을 그에게 간청했다는 사실을 발견치 못한다. 그러나 그 논쟁을 듣고 있던 그 사람은 말을 가로막고는 그 논쟁을 종결시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참된 입장에서 저들의 잘못들을 고쳐주고 참 사실을 그들에게 알리는 것은 우리의 이웃들에게 해야 할 정의로운 행위이다. 이 사실을 영적으로 적용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구속의 깨우침을 받은 자들은 축복으로 변화 받기전의 그들의 생활을 시인할 (곧 간증할)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딤전 1:13, 14).

Ⅱ. 눈이 열리어진 과정에 대한 소경 되었던 자의 설명(10-12절). 

---이제 그들은 고개를 돌려서 "이 놀라운 사실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그것에 관해 더 질문한다. 그분은 이러한 자비를 베푼 후 나팔을 불거나 무대 위에서 선전하지도 않으셨다. 그러나 이 사실은 언덕 위에 있는 성처럼 숨겨질 수가 없었다. 그 후에 이 이웃 사람들은 두 가지를 질문한다.

1. 치유의 방법에 대해 질문한다. 

---그들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라고 물었다. 주님의 하시는 일은 위대하므로 이 일은 연구되어져야 한다(시 111:2).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방향과 방법을 관찰하는 일은 좋은 것이다. 그러면 그 일들은 더욱 놀라운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영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다. 먼 눈들이 뜨인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그러나 그 눈들이 뜨인 과정을 생각할 때는 더욱 기이하게 생각된다. 얼마나 빈약한 수단이 사용되었고 또한 결국 정복되었으나 반대는 얼마나 강렬하였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그 불쌍한 사람은 그들에게 그 문제에 대해 숨김없이 완전하게 설명해 준다. 즉 "예수라는 사람이 진흙을 개어, ..했으므로 나는 보게 되었소"(11절). 

---세속적이거나 영적인 일들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의 특수한 경우들을 체험했던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용기를 주기 위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체험들을 전달할(간증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체험들과 다른 사람들의 체험을 모아서 집필한 다윗의 체험집을 보라(시 34:4-6). 그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분과 또한 우리의 형제들에게 지고 있는 의무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 안에서 갈 길을 잃고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의 가호함도 우리를 떠나가고 만다.((그것을 미리 막는 방법은 Q이 내개 행하신 일들을 늘 감사함으로써 증거하는 것이다!!))

2. 치유를 한 장본인(12절). 

---"그 사람이 어디 있소?" 어떤 자들은 아마 호기심에서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곧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그를 볼 수 있겠소?"라는 뜻의 질문이다. 이처럼 그러한 치유들을 행했던 그 사람은 알릴 필요가 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선한 길을 택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은 어쩌면 악한 뜻으로 물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소. 우리가 그를 붙잡아야 하겠소." 이미 그를 발견하거든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11:57). 그리고 사려깊지 못한 군중은 모든 이성과 공정성을 통해 분별함 없이 그냥 휩쓸려서  비방을 받는 자들을 악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바라건대 어떤 자들은 선의에서 이러한 질문을 했으리라. 그들은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가 자유로이 누리는 은혜에 참여해 보자"는 뜻으로 질문을 했을 것이다. 

---그가 어디에 있느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그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그 사람을 실로암 연못으로 보내시고 곧바로 딴 곳으로 가셨던 것같이 보인다(5:13 에서도 그는 그렇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마치 그 결과가 의심스러웠던 것 같이 여겨지더라도)  그의 감사함을 받으려는 마음으로 그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머물러 계시지 않았다. 

겸허한 영혼은 자기가 행한 선한 일에 대해 다시 듣는 것보다는 선을 행하는 것을 더욱 기뻐한다. 의인들이 부활하는 자리에서 그가 행한 선한 일에 대해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 사람은 결코 예수를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시력이 회복된 순간에 자기를 고쳐 준 의사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오히려 "그분이 어디에 계신가"라고 질문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앞에 나타났던 새롭고 놀랄 만한 모든 사물들 중에서 그에게는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만큼 그렇게 감격에 가득 찬 감사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처음 그분을 불렀을 때 이상으로 알지 못하였다. 그때도 그는 그를 "구세주-예수"라고 옳게 불렀었다. 

---이처럼 영혼에게 은혜의 역사가 임할 때 우리는 그곳에서 변화를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변화를 일으킨 손은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성령의 방향은 마치 바람의 방향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바람의 소리는 들을 수 있으나 그러나 그 바람이 어디로 가는지는 말할 수 없다.

----------

소경의 치유(3)(요 9:13-34)

그리스도가 소경에게 행했던 것과 같은 그런 기적은 그의 명성을 확고하게 했을 것이고 모든 반대자들을 침묵케 하고 부끄럽게 했을 것이라고 누구나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 기적으로 인하여 그는 예언자로서 받아들여지기는커녕 범죄인으로 박해를 받게 된다.

Ⅰ. 본문에 이 문제에 관해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정보가 제공됨. 즉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다"(13절). 

---그들은 그를 산헤드린 회의로 데려갔는데 그 산헤드린은 주로 바리새파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산헤드린에 있는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자들이었다.

1.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를 바리새파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던 자들은, 저희가 박해했던 이 예수가 저희가 주장했던 것과는 다른 실제로는 위대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명에 대해 놀라운 증거를 준 분이었음을 보여 주려는 선한 의도에서 그렇게 데려간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한 것을 알려 줄 수 있기 위하여 진리와 신앙의 탁월성을 확신하고 진리에 거슬리는 편견을 제거시켜야 한다

2. 그러나 사실은 바리새파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대해 더욱 화내도록 자극시키려는 악한 의도에서 그를 저들에게 데려갔던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미 극단적으로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만일 사람을 그대로 두면 모두가 그를 믿을 것이라"는(요 11:47, 48) 염려에서 그를 데리고 갔다. 박해에 달통한 이 지배자들에게는 언제나 이들을 부추켜 주는 모리배들이 있어서 박해하지 못한 적은 결코 없었다.

Ⅱ.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게 된 근거와 그 근거에 대한 저희의 합리화. 

---선한 것이 비난되어지는 배후에는 반드시 악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악의가 없다면 선이 비방되는 일은 결코 없다. 본문에 이 치유가 범죄로 고소된 이유가 나와 있다(14절). 그것은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었다"는 것이었다. 안식일을 더럽히는 행위는 분명히 악한 행위이며 또한 그날을 더럽힌 자는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전승은 안식일을 범하는 행위가 아닌 것도 안식일에 대한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규정해 놓았다. 여러 번 이 문제는 그리스도와 유대인들 사이에 논쟁이 되었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앞으로 올 세대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다. 

---혹자는 왜 그리스도는 안식일에 기적들을 행할 뿐만 아니라 그는 알고 있듯이 유대인들이 율법을 어기는 모욕적 행동이라고 생각될 그런 방법으로 기적들을 행하였는가?"라고 물을는지 모르겠다. "그가 어떤 불구자를 치유했을 때 왜 그는 그 병자보고 자리를 갖고 가도록 명령하셨는가? 그리고 지금도 그는 진흙을 이기지 않고 이 소경을 치유할 수 있던 것이 아닌가"하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서기관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권력의 횡포에 굴복하시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저들의 지배는 불법적인 것이었고 저들은 마음대로 세금을 징수하였다. 그리고 의식에 대한 저들의 열의는 신앙의 본질을 소멸시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한 시간이라도 저들에게 복종함으로써 저들의 지위를 인정하는 일을 하지 않으시려 했다. 

---그리스도는 저들의 율법 밑에서 행동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율법 아래서 행동하신 것이다.

1. 그는 말과 행동으로써 제4계명을 설명하고 저들의 잘못된 해석으로부터 그 계명을 변호하시기 위하여 안식일에 이를 행하셨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는 매주 한 번씩 있는 안식일은 교회에서 영원히 지켜져야 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만일 율법이 곧 폐기되어져야 한다면 그 율법에 대해 무슨 설명이 필요했겠는가?). 

---또한 안식일을 유대인에 의해 지켜졌던 것처럼 그렇게 형식적으로 지키지 말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안식일에도 필수적인 일과 자비를 베푸는 일들은 허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안식일의 휴식은 주의 일을 하기 위한 휴식이지 안식일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Ⅲ. 바리새파사람들의 이 사건의 진상에 대한 조사(15절). 

---대화는 지나친 열의, 편견, 악감정, 분별심의 결여 등으로 가득차 있어서 이 대화에서 교란시키는 질문 외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사람들이 만일 이런 체험을 가진 사람과 상면하게 된다면 그들은 그 기적을 찬양하며 그 가련한 사람이 받은 행복을 축하하고 또 그들이 그 자리에서 그 일을 목격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향한 저들의 원한은 모든 인도적인 생각과 신성에 대한 경의를 저들에게 불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면 그들이 이 사람을 어떻게 괴롭혔는가를 보기로 하자.

1. 그들은 치유에 관하여 그에게 성가신 질문을 하였다.

(1) 그들은 이 사람이 정말로 소경으로 태어났는가를 의심했고 또한 기소자들이 인정했었던 것까지도 그것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였다(18절). "그들은 믿지 아니하였다. 즉 그가 소경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리 명확한 진리라 하더라도 시비할 거리를 찾으면 시비의 근거가 생기는 법이다. 끝까지 속임수를 쓰려고 결심한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물고 늘어지려고 한다. 저들의 행위는 신중을 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편견으로 가득찬 불신앙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 문제를 밝히기 위하여 취한 방법은 올바른 것이었다. 그들은 "그 부모를 불렀던 것이다. 이 부모들은 가난하고 겁이 많은 자들이었다. 그런데 만일 이 부모들이 이 사람이 자기들의 아들이라고 확실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면, 또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좀 허약했고 희미했었을 뿐이지 먼 것은 아니며 그래서 만일 그에게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었으면 오래 전에 치유 받았을지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었다면, 또는 재판 받는 것이 두려워서 그냥 어믈어믈 발뺌을 했더라면 바리새인들은 목적을 달성했을 것이고 그들은 이기적의 명예를 그리스도에게 빼앗으려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는 그가 행한 다른 모든 기적의 명성도 감소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대화를 주관하시고 다스렸으므로 부모들의 증거는 기적을 더욱 효과 있게 입증해 주었고 바리새인들을 믿든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결과를 택하든지 할 수밖에 없게 하였다. 이제 이 심문의 부분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① 그들에게 주어진 질문(19절). 

.....그들은 위협적인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인가? 당신은 그 사실을 맹세할 수 있나? 그가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것이 틀림없는가? 그것이 정말 확실한가? 아니면 빌어먹으려고 소경인양 가장한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그가 어떻게 눈을 뜰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니 이 사실을 취소하는 게 좋을 것이다"라고 공박했으리라. 

.....진리의 빛을 발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진리 증거함을 방해한다. 이처럼 증거의 진위를 가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증언을 자기들 생각대로 이끌어가려는 경향이 다분한 편이다. 또한 그들은 증언자들에게 진리를 은폐시키고 오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같이 그들은 여로보암처럼 이중적인 죄를 범한다. 여로보암은 스스로 죄를 짓고 또 이스라엘도 죄를 짓게 하였던 것이다.

② 심문에 대한 그의 부모의 답변.

첫째,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음을 충분히 증언한다. 

....."자신 있게"라 함은 저희가 그를 잘 알았기 때문이었고 또한 저희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20절). 그들은 "이가 우리의 아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안다"고 말한다(왜냐하면 이들은 매일 그와 친밀하게 지내고 있었고, 왕상 3:26 의 진짜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본능적인 사랑을 갖고 있었다. 바로 이 본능적 사랑이 부모로 하여금 이 아이가 자기들의 아들임을 알게 하였다). 또한 "그가 소경으로 난 것도 우리가 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그를 알 만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그들은 아들의 눈먼 것 때문에 비관도 많이 하였고 또 늘 근심이 떠나지 않는 생활을 살았다. 얼마나 자주 그들은 슬픔으로써 그를 바라보았는가! 또한 가난으로 인한 모든 불편함과 부담보다 얼마나 그들의 자식의 눈먼 것을 탄식하였던가. 그리고 이렇게 불편스럽게 일생을 살기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중얼거렸다. 

.....신체적인 불구라는 것 때문에 저들의 자녀나 어떤 친척들을 부끄러워하는 자들은 본문에 나오는 부모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부모는 자식이 소경으로 태어나 구걸하며 살아왔으나 이것이 우리 아들이라고 서슴없이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부모들은 그의 치유에 관해 증거를 제공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거절한다. 

.....왜냐하면 부분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그 치유의 목격자들이 아니기 때문이었고 또 그들 자신들의 지식으로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그들은 그 문제가 미묘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 일에 개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가 저들의 아들이며 소경으로 태어났던 것을 인정한 후 다른 증언들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a. 그들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하였는지 관찰해 보자((21절).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저 남에게 들은 정도일 뿐이므로 우리는 그가 무슨 방법에 의해 또는 누구의 손에 의해 치유가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나이다." 

.....이 세상의 지혜는 인간들이 중대한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그 위기를 피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도 안식일 파기자와 협잡군으로 고소 당하신 적이 있었다. 사실 이 소경의 부모들은 비록 이 치유의 목격자는 아니었지만, 그 치료의 과정을 충분히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자기 아들에게 그렇게 큰 친절을 베풀어 주셨던 주 예수의 명예를 위해 감사하므로 솔선하여 증언해야 할 의무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 대하여 아무런 편벽 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그의 은혜를 갚지 못하는 자기들의 잘못을 속죄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심판날에는 그리스도를 명백하게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를 반대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눅 11:23; 막 8:38). 

.....그들은 이 문제에 더 이상 개입하도록 강요당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진술해야 한다든가 법정이 그들에게 무슨 지시를 내리지 않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사실이 뜻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성년이 되지 않았을 때는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대변해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그러니까 위의 말은 소경 되었던 자가 어린아이라면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부모들은 기도할 때 그들을 하나님께 의탁해야 하며 또한 그들에게 세례 줄 것을 교회에 의탁해야 한다. 성년이 되면 그들에게 부모들이 그들을 위해 행했던 것을 지키기를 원하는 지 아닌지가 질문되어야 하고, 이에 대하여 스스로 결단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비록 소경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친구들이 그에 대해서 말할 수 있었던 것보다 자신에 대해 더 잘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누구보다도 빠른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친절하신 섭리로써 신체적인 결핍을 보상하시는 방편으로 특별한 은사를 그 마음에 채워 주신다(고전 12:23, 24). 그 사람의 부모가 바리새인들을 그에게 향하게 한 것은 오직 자신들이 고통에서 놓여나기 위한 것이었고 또한 그를 나타내고자 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 예수의 자비를 크게 입었으므로 자기들을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행하셨던 예수의 영예를 위해서 그와 위험을 함께 나누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b. 부모들이 왜 그렇게도 조심하였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22,23절). 그것은 "그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변호케 함으로써 그들이 자기 아들의 영예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나, 또는 그들이 제일 적임자에게 문제의 해결을 의뢰하려고 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골탕을 먹는 것이 누구냐는 것은 상관할 것 없이 자기들만 우선 고통을 피하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 이런 경향이 있다. 내 친구도 귀하고 내 자녀도 귀하며 그리고 신앙도 귀하지만 그래도 Proximusegemet mihi -즉 제일 귀한 것은 나다라는 생각인 것이다. 나 자신은 더 가까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와 다른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고전 10:24; 에 8:6).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a) 산헤드린이 만든 "최근의 법"이 본문에 나온다. 

.....만일 어떤 사람이라도 그들의 통치 지역 안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한다면 그는 회당에서 출교한다"는 결의가 가결되고 당국에 의해 시행되게 되었다.

[a] 법에 의해 형벌을 저지하려 한 범죄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나사렛 예수를 예언된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일과 공공연한 행위로 이 사실을 나타내는 일로써 이는 그에 대한 신앙 고백으로 간주되었다. 그들 자신들도 메시야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 예수가 바로 그 메시야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참을 수가 없었고 그가 메시야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인정하려고도 아니하였다. 그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한 이유는 그분의 교훈들은 모두가 그들의 전통적인 율법과는 상반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규정했던 영적인 예배는 그들의 규례와 상반되었다. 그리고 예수가 가르쳤던 보편적인 자비처럼 더 효과적으로 그들의 특이성과 외고집을 파기해 버리는 것은 없었다. 겸손, 금욕, 회개, 자기 부정과 같은 교훈은 그들에게는 새로운 것이었고, 그들의 귀에는 거슬리는 이상한 소리로 들렸다. 

.....다른 한 이유는 그분의 약속들과 출현이 그들의 전통적인 희망들과는 너무도 상반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의 민족을 로마의 권력에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산헤드린의 위세를 발전시켜 주고 그 산헤드린의 전 회원들을 군주와 귀족들로 만들어 주어야 하는 외적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메시야를 기대하였다. 

.....그런데 현재 메시야에 대해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그 메시야의 외적인 상황들은 모두가 비천하고 가난한 것이었다. 그의 첫 번째 출현 장소와 원래의 거주지가 경멸받은 지방인 갈릴리였고, 또한 그는 자기들에게 아첨하거나 자기들의 협조를 구하지도 않았으며 그의 제자들은 무사도 아니요 법관도 아니고, 어떤 존경할만한 사람들도 아닌 천한 어부들에 불과하였다. 

.....그는 죄로부터 구원받는 것 이외에 어떤 구원도 제안하거나 약속하지않았고 영적이고 신적인 것 이외의 다른 어떤 이스라엘의 위안도 약속하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십자가와 박해받을 것을 각오하라고 명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이 백성들의 마음에다 심어주고 채워 준 모든 이상들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의 교훈은 그들의 권력과 이익에 타격이 되었고 그들의 그의 교훈에 동조할 수 없었고 정중하고 또는 참을성 있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못하게 하였다. 옳건 그릇되건, 무조건 그의 교훈에 동조할 수 없었고 정중하고 또는 참을성 있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못하게 하였다. 옳건 그릇되건, 무조건 그의 교훈은 제거시켜야만 하다고 그들은 생각한 것이다.

[b] 이러한 죄악에 대한 형벌. 

.....만일 어느 사람이라도 스스로 예수 제자임을 주장한다면, 그는 유대인 교회의 신앙을 버리는 변절자로서, 또한 그 교회의 지배에 반항하는 반역자요 기만자로서 정죄를 받고 회당에서 추방되었다. 즉 그 자신이 존경받을 가치가 없고 시민으로서의 특권을 누릴 자격도 없으며 유대교인의 자격을 상실한 자로서 회당에서 추방당해야 했다. 그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추방당해야 했고 쫓겨나야만 했다. 

.....이것은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는 단순한 종교적 책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적인 추방이었다. 법적 추방이란 상품거리가 금지되며 그에게서 자유와 재산까지 빼앗아 버리는 추방을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첫째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종교는 그 초기서부터 이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법에 의해 압제를 당하여 왔다는 점이다. 

.....이렇게 압제라도 하지 않으면 인간들의 양심이 본능적으로 이 신앙을 받아들이고 말리라는 듯이 비본래적인 폭력이 신앙을 억압하였던 것이다.

둘째, 기억할 것은 교회의 지배권이 악한 자의 수중으로 떨어졌을 때 그 교회의 무기는 교회 자체를 공략하는 데 쓰여졌고 교회의 견책권은 교권자들의 현세적이고 육적인 일들을 위하는데 쓰여졌다. 

.....회당의 가장 훌륭한 장식품이며 축복인 역할을 하면서도 회당에서 쫓겨난 자들을 보거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릴지어다"라고 고백하면서도 추방된 자들에 대해 듣는 일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사 66:5). 이제 이 법규가 생긴 유래를 잠깐 생각해 보자. 

.....한 가지 견해는 유대인들이 이 칙령을 불과 얼마 전에 결의했거나 공모했다는 견해이다. 저들이 교환한 협의와 음모는 구속자의 영광과 위엄을 말살시키고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적대하려는 완벽한 음모였었다. 

.....다른 견해는 그들이 오래 전에 그 칙령을 결의해 놓았었으리라는 견해이다. 비록 그가 그들 가운데 공적으로 나타나신 것은 불과 수개월 정도였었지만(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그를 시기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벌써부터 그들은 점점 그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고 그러므로 미리 그의 인기를 제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데 의견의 합의를 보았었다. 

.....그러나 그들은 최근 그가 성전을 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를 잡으려는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게 되자 계획을 변경하여 그들은 그에 대하여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처벌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같이 교회의 대적들은 교회를 박해하는 계략을 세움에 있어 만장일치로 신속히 일을 처리한다. 그러나 "하늘에 앉으신 그분은 그들을 보고 비웃으시며 그들을 조롱하신다." 이처럼 우리도 저희를 비웃어 주자.

(b.) 저희가 제정한 법이 그 소경의 부모에게 끼친 영향. 

.....그들은 이 때문에 그리스도에관해 아무것도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그들의 아들에게 넘겨버렸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아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신 이로 인해 당국의 미움을 자초하시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당국이 무서워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고(잠 29:25) 그들로 빈번히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와 그의 도리를 거부하게 하고 부정하게 만들며 그들의 양심과 반대로 행동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처럼 그의 부모들은 그들 자신들이 얽혀든 올무에서 벗어났고 더 이상 그들에게 시중드는 일에서 제외되었다. 이제 그 사람 본인에 대한 심문에 대하여 고찰해 보자.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났는가 아닌가 하는 바리새인들의 의심은 그의 부모의 답변을 통해 해결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2) 그들은 그를 치료한 사람과 그의 치유 방법에 관해서 질문하였고, 그의 말을 그들 나름대로 평가하였다(15,16절).

① 그의 이웃들이 그에게 했던 동일한 질문. 즉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다시금 그에게 질문하였다." 

.....그들은 그 소문이 최초로 어떻게 해서 유래된 것인가 추적해 봄으로써 진리를 발견해 내려는 신실한 욕구에서 질문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반박할 근거를 찾으려는 욕구에서 질문하였다. 그들은 만일 그 사람이 그 문제에 대해 사실대로 이야기 해 준다면, 그리스도를 안식일 파기자로 증거 하려 했고 만일 그가 전의 이야기와 다르게 얘기한다면 그들은 이 모든 사실이 공모된 것이라고 몰아버리고자 하였다.

② 그는 여기서도 이전에 이웃들에게 대답한 사실과 동일한 대답을 바리새인들에게 반복하고 있다. 즉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며 내가 씻고 보나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여기서 진흙을 내 눈에 바르며 내가 씻고 보나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여기서 진흙을 만든 과정을 말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진흙을 만드는 과정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실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이 사실에 대한 얘기는 바리세인들에게 그분에 반대할 적절한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전에 그는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그가 지금 희미하게 보일 뿐인데 흥분해서 잘 보이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할까 보아 그는 이제 "나는 볼 수 있나이다. 그의 치료는 완전하고도 영원한 치유요"라고 말하고 있다.

③ 이 이야기에 대한 견해는 대단히 구구하였다. 그래서 법정에서 논쟁이 일어났다(16절).

a. 이러한 비난의 근거가 되는 교리가 저희에게는 사실 있었다. 

첫째, 그것에 의하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다. 

.....저희가 예언자를 사칭하나 저희는 하나님이 보낸 자들이 아니요, 또 성자인양 자칭하나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아니다. 하나님께로서 온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것은 그분의 계명이다. ((***그런데, 좀 더 들어가 봐야 한다...안식일은 누구를 위함이며 무엇을 위해서인가 : 그 근본 목적은 사람을 위함, 사람의  생명 고양을 위함이다!!....즉, 중요한 것은 날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이다..안식일준수는 절대성이 아니라 상대성이다!!)) 하나님께로서 온 자들은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며 그의 말씀 듣기를 즐거워하며 그에게 말하는 일을 즐거워한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지킬 것이다. 이 날은 하늘과의 사귐을 위해 지정된 날인 것이다" 는 것이다. 

여기서 안식일준수는 일종의 거룩한 사람의 표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즉 (아무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일은 성결된 마음의 표징이기에, 안식일에 일함은 안식일을 더럽힘이요 안식일을 더럽히는 일은 더러운 마음의 표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b. 그것을 우리 주님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아주 부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경건하게 안식일을 지켰고, 어떤 경우에서도 안식일을 범한 적이 없었으며, 안식일에 해서 합당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행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장로들의 전통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미신적인 관례에 의거한다면 그가 안식일을 지키시지 않으셨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그는 다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생명과 사랑의 섬김 위해)) 안식을 지키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할 바 없이 그는 하나님께로서 온 자였고 그의 기적들은 그가 "안식일의 주인임"을 입증하였다. 

.....정말 조심하고 신중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 생명과 사랑의 우선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셨던 것보다도 (지나친 열심으로써??...그렇지 못한 타인들보다 더 뛰어나게 보이려고!!) 더욱 엄격한 신앙의 규례를 인간들은 만들어 내어 옥죄고, 하나님의 정한 것에 자기들의 상상력을 추가하여 그것으로 부당하고 무자비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함을 기억하자. 

.....안식일 성수에 대한 주장이 이와 같은 (상대적인) 것이었다. 즉 번거로운 일이기는 하나 (세우신 바 그 정신에 따라) 잘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까지 똑같이 엄격한 규율에 얽어매서는 아니 된다. 우리가 관습정도로 여기면 되는 것을 심판의 법칙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둘째, 또 다른 이들은 예수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였다. 

.....예수를 두둔하는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매우 타당한 의의를 제기하였다. 이처럼 사악한 모임중에서도 자유롭게 생각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적들 가운데서 그를 증거 했던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이 기적이 참된 기적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 기적을 자세히 살펴볼수록 이 사실은 더욱 명확해졌다. 그리고 이 기적은 그분이 전에 행하신 것과 비슷한 기적들을 상기하게 하였고 그것들도 위대한 기적들이었음을 기억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토이아우타 세메이아’(9:16) -즉 그가 행한 놀라운 기적들은 무수하고 또 명백한 것이었다라고 고백하게 하였다. 

.....그 기적으로부터의 다른 기적의 진실성을 추론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은 "죄인인 한 사람에 의해" 결코 행해질 수 없었다. 즉 어느 약한 사람에 의해 자신의 이름으로 행해질 수 없었고 그 자신의 권능으로써 행해질 수 없었다. 더구나 기만자나 협잡꾼과 같은 죄인의 부류에게서 이런 기적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들도 "어떤 표적이나 거짓 이적들을" 보여 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리스도가 행하셨던 것과 같은 표적들과 참된 이적들은 행할 수 없었다. 만일 그자신이 위임을 받지 않았었다면,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와 같은 신의 능력을 실현시킬 수 있었겠는가? 이처럼 그들 가운데서 "쟁론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들 사이에 견해 충돌이 있었고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회의는 양파로 분리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을 분리시킴으로 그들의 계획들을 깨뜨리신다. 박해자들의 악의에 대해 상대적으로 주어진 이러한 증거들로 인하여, 또는 그들 상호간의 의견 대립에 의하여 교회에 반대하는 자들의 계획들은 때때로 헛된 것으로 되어 버리고 실행되지 못하게 된다.

2. 치유에 관한 질문을 한 다음에 그들은 그를 고쳐 준 사람에 관하여 질문을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찾아 볼 수 있다.

(1) 그들의 질문에 대하여 그가 고쳐 준 분에 관해서 그들에게 언급한 내용. 

.....그들은 그에게 묻기를 "이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했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그가 이 일을 행하신데 대하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너는 그것을 행하신 그 사람이 어떤 자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여 그가 만일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투로 대답하였다면 그들은 승리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사실상 그는 그들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하여 그의 부모처럼 "나는 그가 어떻게 낫게 했는지 모른다. 내가 알기로는 그는 마술사나 협잡군으로 여겨진다"고 말해 버릴까 하는 유혹을 받았었는지도 모른다. 

.....전에 예수의 친구였던 사람들이 예수에 대하여 멸시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적들에게 그에 대한 원한을 공고히 해 주는 것은 없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에 대해 찬양하는 말을 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법규를 적용시켜 그를 기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법에는 예외가 없었고 또 그 형벌은 쉽게 견뎌 낼 수 있는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를 하나의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치유해 달라는 청을 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 

.....비록 치유는 그리스도에 의해 그들에게 거져 주어진 것이지만 그들은 병고침 받은 자들을 괴롭게 함으로써 그 대가를 값비싸게 지불하게 하려고 했다. 아니면 그리스도의 친구들이 그 사람에게 그를 고쳐 준 의사에 관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제의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가 지각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가 자기를 고쳐 준 의사에 대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알기 원해서 그러한 제안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도가 그 눈을 열어 준 사람들은 그분에 대해서 말할 바를 가장 잘 알고 있고 어떤 경우에서도 그분에 대해 좋게 말할 바를 가장 잘 알고 있고 어떤 경우에서도 그분에 대해 좋게 말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그 불쌍한 사람은 짤막하고 명확하며 직접적인 대답을 하고 있다. 즉 "이분은 예언자이다. 그분은 영감을 받은 자이고, 말씀을 선포하고 기적들을 행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달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자이다"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에게는 300년 동안 예언자들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들은 선지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환상과 예언을 봉인해야 할"자가 올 것으로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단 9:24). 이 사람도 유대인들이 그러했듯이 그리스도를 대예언자요 메시야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다른 예언자들과 동일한 계열 주의 한 인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사마리아 여인 역시 그가 메시야라는 생각을 품어 보지도 않고 먼저 그는 선지자라고 결론지었었다(4:19).  

.....소경은 그의 눈이 보게 된 사실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를 좋게 생각하기는 했으나 그를 충분하리만큼 바르게 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가 이미 성취한 것에 신실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만이라도 그에게 나타내 주셨다. 이 가난하고 눈멀었던 걸인은 선지자들을 심판할 권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귀인들보다도,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실들에 관해 더욱 분명한 판단력을 가졌고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증거들을 더 한층 깊이 간파하였다.

(2) 그 사람의 증거에 대하여 그들이 예수에 대해 답변한 내용. 

.....그 사실의 증거를 무효화시키려고 헛된 시도를 하였으나 놀라운 기적이 행해졌음과 그러한 사실들을 부정할 수가 없음을 알게 되자, 그들은 그것에 도전하고 그것을 묵살시키기 위해 저들의 음모를 새로이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람이 자기의 눈을 열어 준 그분에 대해 가졌던 좋은 견해를 혼란시키고 그리스도가 악한 사람임을 그에게 납득시키려고 갖은 수단을 다한다(24절). 그러므로 그들은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줄 아노라"고 말한다. 이 말은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① 하나의 충고의 말로 볼 수 있겠다. 

.....즉 치유에 대한 찬양을 죄지은 한 인간에게 돌리는 것을 주의시키고 그 모든 것을 마땅히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인 하나님에게 돌리도록 하려는 말로 볼 수 있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예에 열심히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그의 받으실 영예를 박탈하고 있다. 즉 그들은 예배 받으실 분은 한 분 하나님뿐이라는 이 위대한 진리에 충성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경배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이 "아버지를 존경하듯이 그들은 또한 아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이"아버지의 뜻이요 이 뜻은 선포된 것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가운데 저들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이 말을 한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인 인간들을 우리를 위하여 선의 도구들로써 사용하고자 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은 우리를 위하여 있어야 하겠기에 그분이 만드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도구들 때문에 감사할 일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라"는 것이었다. 

.....이 말씀은 맞는 말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은 이 장면에서는 잘못 사용되고 있다. 즉 "이 사람은 죄인이고 악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더러운 도구를 통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더욱 찬양을 돌리라"는 뜻으로 이 말은 사용되고 있다.

② "회유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이 본문을 그렇게 이해한다.(너는 이제 눈이 떠서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이고 지방 사람들을 속이는 굉장한 사기꾼인 줄 알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건 속에 숨어있다고 확신하는 사기와 공모에 대해 솔직한 고백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실을 말하라"고 말한다.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렇게 말하였었다). 

.....이처럼 교황의 종교 재판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오용되고 있다. 그들은 ex efficio-즉 맹세를 시켜서 무죄한자에게 죄의 고백을 강요하고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타인의 죄에 대한 고백을 강요한다. 

.....그들이 주 예수에 대해 얼마나 비열하게 말하는가를 보자. 그들은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고 말한다. 이 말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저들의 오만과 자만. 

.....그들이 그에게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무슨 정보가 필요해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그들은 그가 죄인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와 반대되는 사실을 그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는 자신을 죄인임으로 납득시키려는 그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였었다(8:46). 그때 그들은 아무 말도 답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예수가 없는 데서 그가 악인라고 말하고 그의 기적에 다 좋지 않은 증거를 뒤집어 씌우려고 하였다. 이처럼 거짓 기소자들은 증거가 없는 것을 믿게 만들려고 조작한다.

둘째, 이로 인해 주 예수에게 행해진 모욕과 상해. 

.....그가 인간이 되었을 때 그는 종의 형상뿐만 아니라 죄인의 형상도 입으셨다(롬 8:3).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공통되게 죄인으로 지내셨다. 아니 그는 일류급의 죄인 또는 모든 인간들보다 뛰어난 죄인으로 묘사되었다. 사실 그는 "우리를 위해 죄를 담당하시려고" 그는 이러한 수치까지도 담당하셨다.

3. 그리스도에 관해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이 불쌍한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논쟁. 

---그들은 "그는 죄인이라"고 말하고 이 사람은 "그분은 선지자"라고 말한다. 증인이 없어서 그리스도가 옹호 받지 못할까 염려했던 사람들은 길가에서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자들이 데려온 이 가련한 소경 거지가 그리스도의 가장 오만한 적들 앞에서 그를 위하여 증언을 할 때 용기를 얻었다.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증언하도록 요청을 받은 사람들은 이 소경이 "너희가 말할 때에 무엇을 말할 것인지 알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따라 신중하고도 용기 있게 예수를 변호한 사실을 발견하고 용기를 얻게 된다. 

---비록 그는 예수를 본 적은 없었지만 그는 그의 은혜를 느꼈었다. 이제 우리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이 불쌍한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대화가 단계로 진전하는 것을 관찰해 볼 수 있다.

(1) 그는 그들이 없애버리려고 애쓴 증거를 확정 사실로 고착시킨다. 

.....의심스러운 사실은 명백한 증거만 있으면 해결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① 그는 이 일이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 유익하였고 자기를 만족하게 해 준 것이라도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25절). 

.....즉"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나는 공연히 고집을 세워 논쟁하지 않겠다.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그 사건은 분명한 것이다. 또 설사 말해 본다고 한들 내가 누리는 이 평화가 그 사실의 정당성을 입증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혹은 더 좋게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만일 그분이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나이다. 나는 여러분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모릅니다. 도리어 그 반대가 되어야 할 것이오. 왜냐하면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즉 당신들이 그토록 확신하는 이상으로 내가 확신하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것이니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나에게는 좋은 친구였다고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선지자라고도 말할 수 있나이다. 나는 그분에 대해 잘 말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말할 책임도 가지고 있나이다"는 뜻으로 말한 것으로 보겠다. 여기서 몇 가지 유의해 보자

첫째, 그는 축복 받은 예수에 대하여 그들이 가진 잘못된 이해를 교묘하게 책망한다. 

.....즉 "너희는 말하기를 그 사람이 죄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나도 너희들이 아는 만큼 그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그를 그런 인물로 여길 수는 없다."

둘째, 그는 거룩하신 예수의 권능과 선하심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해서 담대하게 대답하고 이 사실을 고수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고수하고자 결심한다. 

.....그의 주장은 경험과 상반되는 것도 아니었고 상식에서 벗어난 그런 주장도 아니었다. 여기 비록 그리스도를 본 적은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권능과 은혜를 목격한 사람의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자비가 그 자비의 결핍을 절실히 느꼈다가 체험한 사람에 의하여 높이 평하듯이(지금까지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사람의 경우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영속적인 사랑도 그분을 체험적으로 아는 사람에게서 우러나온다는 사실을 유의하자(요일 1:1; 행 4:20). 

.....이 불쌍한 사람은 본문에서 치유의 방법에 대해 멋있게 설명을 하지도 않고 또한 그것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려는 흉내도 내지 아니한다. 다만 간결하게 "자기가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은혜의 활동에 대하여 언제, 어떻게, 무슨 매개체에 의하여 어떤 절차와 변화에 의하여 축복된 새로움이 안겨졌는지 말할 수 없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통해서 "사실은 내가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보게 되었다. 나는 육욕적이고 세속적인고 관능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지금은 다른 삶이 내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엡 5:8).

② 그들은 쓸 데 없는 질문들을 반복함으로써 그 증거를 꺾으며 묵살시키려고 애쓴다(26절). 즉 그들은 쓸 데 없이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는 질문을 하였다. 이러한 질문을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아무 답변도 못하고 있기보다는 아무 말이나 말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열렬한 논쟁자들은 잠잠케 되는 치욕을 회피하기 위해 같은 말을 반복하며 끝까지 지꺼린다. 따라서 이런 하찮은 말들에 대해서 그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둘째, 그들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증거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그 증거 안에서 약점이나 앞뒤가 안맞는 점을 잡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즉 그들은 훌륭한 포인트를 얻기를 바란 것이다.

(2) 이제 눈을 뜬 그는 그들의 완고한 불신앙과 꺾을 수 없는 편견들에 대해 그들을 꾸짖는다. 한편, 그들은 그가 예수의 제자라고 욕한다(27-29절). 

.....이 단계에 이르자 이 사람은 그들에게 대해 이전보다 더욱 담대해졌고 그들은 그 사람에 대해 이전보다 더욱 날카로와졌다.

① 그는 이 기적의 증거에 대해 원한을 품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반대를 하는 그들을 담대하게 꾸짖는다(27절). 

.....그는 이 치유 이야기를 반복함으로써 그들을 만족시켜 주려고 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라고 답변했다. 

.....어떤 자는 그들이 납득될 것으로 기대하여 그가 신중을 기해 말했다고 생각한다. 즉 "그분은 많은 제자들을 가지고 계신데 나도 제자가 되려고 한다. 당신들도 제자들이 되려고 합니까?"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열성적인 젊은 기독교인들은 믿어야 할 많은 동기들이 같게 될 것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나 본문의 말은 비꼬는 뜻으로서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고 합니까? 아니 나는 당신들이 그런 생각을 싫어하는 줄 아오. 그런데 왜 당신들은 당신들 스스로 그의 제자가 되게 하거나 그렇지 않고 (당신들이 듣기 원하는 바) 용서받을 수 없게 될 그런 이야기를 듣기를 바라는지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의적으로 빛에 대해 자기들의 눈을 감아버리는 자들은 여기에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첫째, 그들 자신들을 비열하고 비천한 자로 만든다. 본문에 나오는 자들이 그러하였다. 

.....그들의 비열하고 천박함은 이 소경이 술회한 내용을 반박할 말도 못하면서도 결단 내리기를 거부할 때 이 가련한 사람에 의해 드러나게 되었다.

둘째, 그들은 더 많은 유익한 교훈과 은혜와 지식과 확신의 수단 등 모든 것을 박탈당했다. 

....."한 번 듣고도 그들은 순종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이 또 다시 그것을 들으려고 하는가?"라고 그는 생각하였다(렘 51:9; 마 10:14).

세째,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 

.....다음과 같은 말 즉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고 하나이까? 아니오. 당신들은 이미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마음먹고 있는 것이요. 그런데 왜 당신들은 그것을 또다시 들으려고 하오. 먼저 들은 것만으로도 당신들은 고소할 수도 있고 박해할 수도 있는데"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근거를 보려하지 않고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합치려고 하지 않으려는 자들이라 해도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할 충분한 이유는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저희는 그렇지 아니했다.

② 이 말 때문에 그들은 그를 경멸하고 욕한다(28절). 

.....그들이 그가 말했던 바 지혜와 영으로 말함으로써 그 권고를 거절할 수 없도록 이성적으로 코너에 몰리자, (마음의 핵심이 드러났을 때 육적 반발심, 충동과 혈기가 끓어 올라올 때 대개 그러하듯) 그들은 별안간 흥분하기 시작했고, 그를 꾸짖었고, 저주하기 시작했으며, 그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들이 그분의 진리와 대의(大義)의 대적들로부터 무엇을 예상해야 하는가를 보라. 그들로 하여금 그의 증인들에 대해 "모든 악한 말"을 마음대로 퍼부으라고 하라(마 5:11). 비이성적인 사람이 공통적으로 취하는 방법은 진리와 이성이 결여된 사실을 들키게 되면 폭언으로써 애써 변론하려고 한다.

첫째, 그들은 그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를 힐책한다. 

.....그들은 책망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듯이 "너는 그의 제자냐?"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를 더 나쁘게 비난할 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을 경멸한다. 너 같은 악당이나 실컷 해먹어라"는 뜻으로 그들은 이 말을 하였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리스도 신앙의 이름을 더럽히고자 하였고 이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비열하고 창피한 사실이라고 표현하고자 애쓴다 "그들은 그를 욕했다." 

.....벌가타(Vulgate)판의 료현을 빌리자면 maledixerunt eum - 즉 그들이 그를 저주하였다는 뜻이다. 그들이 저주한 것은 "너나 그의 제자로 망해라"는 것이었다(본문에 대하여 성 어거스틴은) "그러한 저주가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에게 하소서!"라고 말하였다. 만일 우리가 맹목적이고 현혹된 이 세상의 소란함 속에서 우리의 가치 기준을 찾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부끄러움을 도리어 자랑하게 될 것이고" 또한 "우리의 영광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부를 이유는 없었다. 그는 가르치시는 그분을 본 적도 또 그의 가르침을 들은 적도 없었다. 다만 그는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행하셨던 친절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말하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바로 이 점을 참을 수가 없었다.

둘째, 그들은 모세가 그들의 주인인 점을 자랑하였다. 

.....즉 "우리는 모세의 제자들이라. 우리는 그분외의 다른 선생을 원치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한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a. 육적인 동기로 신앙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자기들의 신앙의 원리들과 능력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면서 자기들이 고백하는 신앙의 외적 위엄과 특권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신뢰하거나 자랑한다는 점이다. 

.....이 바리새인들은 전에는 그들의 좋은 가문을 자랑했었다. 즉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했었다. 여기서 그들은 자기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은 것을 자랑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고 한다. 마치 이 사실이 그들을 구원해 주기나 할 듯이 말이다.

b. 신앙의 한 부분에 대하여 열중한다는 명목하에 신앙의 다른 면이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리스도와 모세 사이에는 완전한 조화가 있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 준비했고 그리스도는 모세를 완성했다. 따라서 그들이 모세의 제자라면 역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반박했고 모세의 이름이란 미명 아래 그리스도를 박해하였다. (생명과 사랑의) 자유로운 은총의 교훈을 부정하는 자들은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고 말함으로 자기 자신들을 사람의 의무를 다하게 하는 조력자라고 자찬한다. 

.....한편, 율법에 대한 의무를 말살시킨 자들은 자기 자신들을 자유로운 은총의 수호자라고 으시대며 마치 자기들 이외에는 아무도 모세의 제자가 아닌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그 문제를 옳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본분이 서로서로 함께 만나고 입맞추며 화해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셋째, 그들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모세를 추종하는 일종의 이유를 제시하였다(29절).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여러 사실들 중에 이 말씀도 속해 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또 다른 선지자를 기대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더 진보된 계시를 기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는가? 

.....하지만 그들은 우리 주님 예수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데 따라 나타나셨고, 자신이 옛 신앙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 자신이 그들이 기다리던 바로 그 선지자라는 것과 그가 세움을 입은 교회임을 충분한 증거를 들어 제시하셨으나 그들은 자신들이 입을 수 있었던 긍휼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포기해 버렸다. 그들의 이런 변론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고찰하자.

a. 그들은 뻔뻔스럽게 끝까지 그들의 주장을 내세웠다.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적의를 공공연히 나타내면서 이같이 완고하게 고집했으므로 그리스도의 추종자들 중 누구도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자, 우리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이 사실은 어떤 다른 선자자들보다 모세에게서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 사실까지는 우리도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고 해서 당연히 예수가 사기꾼이라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가? 

.....모세가 예언자라는 말 그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예수는 선지자일 수 없다는 말인가? 모세는 예수를 높이 평가했고(5:46), 그리고 예수도 모세를 높이 평가하였다(눅 16:29). 그들은 둘 다 하나님의 동일한 집의 신실한 자들이었다. 

.....모세는 종으로서 신실했고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신실했다. 그러므로 모세의 신적인 권능을 이유로 들어 그리스도의 신적인 권능을 반대하려 했던 그들의 변론은, 생각이 없는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가 참된 선지자였었던데 비하여 예수는 거짓 선지자였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두 분 다 진실된 하나님의 사자들이었다.

b. 그들은 전혀 타당하지 않음에도 오히려 어줍잖게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무식함을 뻐기며 그것을 마치 그를 경멸해야 하는 당연한 이유처럼 주장하였다. 

.....그들은 경멸어린 말투로 "이 사람에 관해서 말하자면" (As for this fellow)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들은 마치 그의 이름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기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복된 예수에 대해 경멸적으로 말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목자를 양떼를 지키는 개떼들과 비교할 가치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경멸적으로 표현하였다. 즉, "이 사람은, 이 유감스러운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식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먼저 허가를 얻지 않고서는 아무도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선생이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먼저 자기들에게 신청함으로써 자기들을 만족케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예수는 결코 이를 행치 않으셨다. 그리고 허가권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를 침입자,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자로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그를 "죄인으로 결론지었다. 

.....사실 잘 알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열린 마음으로 자비를 가지고 판단해야 옳은 일이다. 그러나 오만함과 옹졸한 영혼의 소유자들은 자신들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자기들에게 이로운 자들만을 인정하려고 한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반대하기 위하여 본문과 같은 주장을 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7장29절에서 처음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어디서 오시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실 때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JC의 출신을 잘 안다는)그들의 말이 본문과는 정반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같이 그들은 한가지 사실을 놓고 그것이 자기들의 이익에 따라서 그 동일한 사실을 확신한다는 듯 긍정하든지 부정하든지 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었는가?

(a) 그들이 메시야의 나타남, 이 사실에 대하여 질문을 한 것은 확실하다. 

.....메시야는 이 시기쯤 나타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변 상황에 관심을 가졌고 또 모든 징조를 신중히 조사하였다. 그러나 이제 사장들은 예레미야 2장6절의 제사장들처럼 "여호와께서 어디에 계시냐"고 묻지는 않았다.

(b) 그들은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었어야 했다. 

.....그들은 호적부를 조사하여 그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분의 교훈, 기적들, 담화(談話)를 살펴봄으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으셨으며 그들이 그에게 줄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나은 질서와 더 나은 사명, 그리고 휠씬 더 나은 교훈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알아야 했었다. 

.....이들의 불신앙의 어리석음을 보라.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훈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그 교훈을 믿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그 교훈을 믿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그 교훈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리와 불신앙은 이같이 서로를 도와 상태를 악화시킨다.

(3) 그는 이 문제에 관해 그들에게 따졌고 그들은 그를 내쫓아 버린다.

① 그 불쌍한 사람은 자기의 논리가 옳고 이에 대해 그들이 답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점점 더 대담해지고 그들에게 더욱 따지며 대들었다.

첫째, 그는 그들의 완고한 불신앙을 이상하게 여긴다(3절). 

.....그는 그들의 불쾌한 표정에 전혀 위압 받지 않고 또 그들의 자신감에 의해 동요를 받지도 않으면서 용감하게 대답한다. "그가 내 눈을 고쳤는데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다니." 지각있는 사람들 가운데 이렇게 고의적으로 알지 않으려는 자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참으로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가 이상하게 여기는 점은 두 가지이다.

a. 그들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확실히 중요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고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는 일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캐묻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사교의 범위가 넓었으며 자신들을 교회의 눈, 교회 파숫꾼과 경비원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같이 중요한 사람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고 함께 대화로 나누어 보고자 하지도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 중에 사업을 잘 이해하고 다른 것에 대하여는 재치 있게 얘기를 할 줄 알면서도 그리스도의 놀라운 가르침에 대하여는 무지하고 관심도 없으며 "천사도 흠모한" 그 사실을 알려는 호기심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b. 그들은 의심할 바 없는 신적인 기적을 실현한 분의 신적 사명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는 점이 그들이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을 때 의미하고자 한 것은 "우리는 그의 교훈과 선교가 하늘에서 왔다는 어떤 증거도 알지 못한다"는 뜻의 말이었다. 

.....그 불쌍한 사람은 말한다. "나에게 일어난 기적이 당신들에게 믿어지지 않고 아직 의심이 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당신들에게 주어진 교육과 학문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하나님의 일들을 분별하는데 당신들의 큰 잇점이 되고 있는데 이같이 빛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처럼 "지혜로운 자 중에 지혜가 사라져 버리고"(사 29:14), 그들이 그것의 증거를 부정할 수 없이 확실한 진리를 거부한다는 것은 "이상스러운 일이며 하나의 경이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a) 지식과 확신에 이르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은 즐기면서 정녕 믿지는 않는자들의 불신앙은 정말로 놀랍고도 이상스러운 일이다(막 6:6). 

.....주 예수의 권능과 은총을 스스로 체험했던 자들이 그를 거부하는 자들의 완고함을 특히 이상하게 여기며 그리고 그들 자신들이 그처럼 좋게 생각하는 분을 다른 사람들이 좋지 않게 생각하는데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것임을 기억하자.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의 눈을 뜨게 했더라면, 그들은 그가 선지자라는 사실에 의심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그는 강력하게 그들과 맞선다(31-33절). 

.....그들은 예수에 관하여 그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자가 아니며(16절) 오히려 "죄인"(24절)이라고 결정을 지었다. 이에 대하여 이 사람은 본문에서 "그는 죄인이 아니고"(31절) "하나님에게서 나온"자(33절)라고 증거한다.

a. 그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a) 위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는 논증을 한다. 

.....비록 글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는 성서와 하나님의 일들에는 아주 정통한 이해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볼 수 있는 능력은 없었으나 반대로 듣는 능력은 잘 발전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들음에 의해 믿음은 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 성령의 특별한 임재와 성령의 특별한 도움이 없었다면 듣는 힘만으로 그가 진리를 깨닫기는 어려웠으리라.

(b) 그리스도의 명예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그는 논증한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비난하고 악담하는 것을 참고 들을 수가 없었다.

(c) 그는 자기의 대적들의 대단한 오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함과 용기와 불굴의 정신으로 논증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포부를 지닌 자들은 인간들의 불쾌한 표정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에 대하여 휘트비(Dr. Whitby)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 배우지 못한 한 소경이 박식한 바리새인들의 전체회의보다도 더 정당하게 하나님의 일들을 판단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공의회나 교황들, 감독들의 권위 그 자체때문에 [주앞에서 스스로 진지하게 다시 검토해 보지 않고] 그들의 인도함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과 또한 평신도들조차도 한가지 사실에 대해  여러 가지 다양한 견해를 지닌다는 것이 결코 부당한 일이 아님을 배운다. 이러한 감독관들조차 때때로 큰 것을 빠뜨리고 그냥 무심코 넘어가는 죄를 범하기를 잘한다."

b. 그의 논증은 다윗의 논증과 유사한 형태로 비유 할 수 있다(시 66:18-20). 

.....다윗의 존재에 있어서 명제는 "만일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하나님은 죄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리라"는 같은 취지의 말씀이 나오고 있다. 다윗의 말속에 함축되어 있는 사실은 "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나의 말을 들으셨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본문에 함축된 사실은 "하나님이 예수의 말을 들으셨으므로 예수가 전에는 결코 일어난 일이 없었던 일을 행하므로 자신이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전자가 하나님의 영예를 위한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로 종결되는데 비하여 후자는 주 예수의 영예를 위한 것으로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a) 그는 선한 사람들만이 하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분명한 진리를 주장한다(31절).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않으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본문의 뜻은 다음과 같다.

[a] 그의 주장들은 바르게 이해되었고 또 진실한 것이었다.

.....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신다"는 말은 악한 자들에게 겁을 주는 그러한 말씀이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미명 아래 그리스도를 가리켜 "죄인"이라고 칭한 바리새인과 같은 죄인들은 악마를 위하여 앞장을 서는 자들이라는 뜻의 말씀이다. 

.....이 말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들을 낙심시키기 위하여 언급된 것이 아니라, 계속 범행을 저지르며 위선자들이 행하는 것처럼 철저히 죄를 계속 짓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그 죄에 추종하는 자들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듣지 않으실 것이고 그들을 자기의 것으로 인정치 않으실 것이며 그들의 기도에 대해 평화의 응답을 주시지 않을 것이다. 또한 본문은 "만일 어느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들으실 것이라"는 의로운 자를 위한 위안의 말씀이기도하다. 

.....여기에 온전히 선한 사람의 성품이 기록되고 있다. 즉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뜻을 행하는 자이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끊임없이 그분께 예배하고 항상 그분과 대화를 나누는 자이다. 그는"창조자"에게 영광 돌리는 일을 자기 할 일로 여겨 그의 이름을 엄숙히 찬양하고 그의 법에 진실하게 복종하는 자이다. 

.....이 찬양과 복종은 항상 병행되어야 한다. 이런 의로운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위안이 따른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어주신다. 그의 불평을 들어주시며 그를 위로하여 주신다는 말이다. 또한 그의 호소를 들어주시고 권리를 찾아 주시며 그의 찬미를 들어주시고 그들을 용납하신다. 마찬가지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들에게 응답하여 주신다(시 34:15).

[b] 이러한 진리를 들어 예수가 나쁜 사람이 아니며 또 그가 거룩한 하나님에게 늘 관심이 있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언제나 들으신다"는 사실을 보아 그가 거룩한 자인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대단히 적절한 시도였었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을 통하여 소경이고 고침을 받는 것 같은 신적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었다.

(b) 그는 자기의 논증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행하셨던 기적들을 찬미한다(32절). 

.....즉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셨다"고 말한다. 이 말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 중 한 가지를 나타내려고 한 말일 것이다.

[a] 그 기적은 참된 기적이고 자연의 힘 이상의 것이라는 점을 나타내려는 말로 볼 수 있다. 

.....어느 사람이 자연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소경으로 태어난 자를 치유했다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는 일이었다. 이 사람과 그의 부모는 다른 누군가 이러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가를 무척 알고 싶어했다. 그런데 아무도 이러한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였음을 알게 되고 그는 더욱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혹은

[b] 이 기적은 보통이 아닌 비상한 기적이었고 그 이전에 전례가 없었던 그런 기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말로 볼 수도 있다. 

.....모세도 예언자들 중에 어느 사람도, 비록 이들이 위대한 일들을 행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일을 행한 적이 없었다. 즉 예수의 기적에서 신적인 권능과 신적인 선행은 보다 더욱 빛났던 것이다. 

.....모세는 재앙의 기적들을 행했으나 그리스도는 치유하는 기적들을 행하셨다. 이 사실을 통해서 먼저 주님 예수의 그 놀라운 행사들은 이전에 결코 행해진 적이 없었던 그와 같은 일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다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자비를 받았던 자들은 그들이 받은 자비를 찬미하고 그 자비를 존귀한 것으로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렇게 함으로 영광이 자신들에게 되돌아 갈 수 있고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더욱 영광을 받게 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해야 한다.

(c) 그러므로 그는 "만일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었다면 그는 아무 것도 행할 수 없었다"고 결론 짓는다. 

.....즉 이번 일과 같이 비상한 기적은 아무도 행할 수 없었으리라고 한다. 그러므로 의심할 바 없이 그는 하나님에게서 나셨다고 한다. 비록 그가 안식일에 일을 행하셔서 그들의 전승과 일치되게 행하지 않으셨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행하셨던 것은 자신이 하늘에서 있었던 때의 일을 명시하신데 불과함을 유의하자. 왜냐하면 만일 그가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지 않았었다면 그는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죄인은 참된 기적들이 아닌 "거짓기사"들을 갖고 온다는 사실은 진실이다. 마찬가지로 거짓 선지자도 신의 허락을 받아 이적이나 기사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신 13:1, 2). 그렇지만 이러한 기적에는 자체 내의 모순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적은 유혹을 강하게 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며 하나님과 거슬리는 삶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악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많은 경이스러운 일들을 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경이스러운 일들은 이런 일을 행했던 자들이 하나님께로서 온 자들이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오직 그 일들은 그들의 이름이 비롯된 자인 마귀에게 속해 있는 자임을 나타내 줄뿐이다. 

.....우리는 각자가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가?"를 살핌으로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온 자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영혼들을 위해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무엇을 더 많이 행하고 있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무엇을 더 많이 행하고 있는가? 를 물어보도록 하자.

②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신들이 그의 이론에 대답하거나 이 이론들을 감당할 능력이 없음을 알게 되자, 그를 정면으로 공격했고 교만과 격정으로 가득차서 그 논쟁을 주지시켰다(34절).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찾아보게 된다.

첫째, 그들이 말했던 내용. 

.....그들이 그의 논증에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인격을 비방하였다. 즉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고 하였다. 그들은 선의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을 나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의 말에 가슴을 찔림을 받아 회개를 해야 했으나 오히려 분노로 마음이 찔림을 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a. 그들이 그를 어떻게 경멸했고 또 그들이 그에게 내렸던 격한 비난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을 고찰해 보자. 

.....즉 "너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죄 가운데서 났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전적으로 타락하였다. 그리고 너의 영혼에는 물론 너의 육체에도 그런 타락의 흔적들이 있다. 너는 자연이 저주를 한 그런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계속해서 소경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으로 그를 비난하는 일과 또한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깊게 죄로 더러워진 자라고 추측하는 일은 야만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이제 그 치유가 그로부터 소경됨의 치욕을 벗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대표적 존재로 부각시키는 것도 또한 부당한 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본문을 "너는 평범한 걸인이었고 그런 걸인은 대개의 경우 평범한 죄인들인 경우가 많다. 의심할 것 없이 너도 그런 죄인들의 하나가 아니냐"는 말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사실은 그는 대화를 통해 자신이 그 반대의 인물임을 입증했었고 깊은 경건으로 감화된 자임을 뚜렷이 나타냈다. 그러나 교만한 바리새인은 한 사람을 처단하고자 마음을 먹자 어느 것이든지 허세를 위해 이용하려고 하였다.

b. 그들이 그분에 대해 배우거나 그의 교훈을 받아들이기를 얼마나 경멸하였는지를 살펴보자. 그러므로 "내가 우리를 가르치느냐?"고 말하였다. 

.....본문에서 "네가"란 용어와 "우리를"이란 말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 "자 너는 하루 종일 태양의 빛을 보지 못했던 어리석고 측은하고 무지하고 무식한 녀석이었고 마을의 쓰레기와 분뇨가 버려진 길가에 앉아 있지 않았던가? 그런 네가 모세의 보좌에 앉아 있는 율법에 박식하고 교회의 귀족들이며 이스라엘의 주인들인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는가?"라고 말한다. 

.....오만한 자들은 그들보다 못한 자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는 것을 경멸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런데 실은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배우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고 너무 현명하며 너무 선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더 많은 재산을 가지려고 한다. 그런데 지식이 많은 자들은 왜 더 많은 지식은 가지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에게 배움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같이 어리석은 녀석에 의해 교훈을 받고 새로운 사실을 배워 확신을 갖게 된다는 것은 명예에 손상이 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둘째, 그들이 행한 것. "그들은 그를 바깥으로 내어 쫓아버렸다." 

.....어떤 이들은 이런 추방이 그들의 회의실에서 그를 거칠고 모멸감을 주어 물러나게 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들은 당연히 그를 그 자리에서 쫓아냈고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하인들을 시켜 그에게 발길질을 명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양심에 그렇게 깊게 파고 들어온 그 자를 아주 멀리 보내야 할 때가 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본문은 형법상의 처벌인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그들은 그를 사회에서 추방해 버렸다. 아마 파문형 가운데 최고의 형을 그에게 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스라엘 교회의 회원권을 그에게서 박탈해버렸다. 

******라이트푸트(Lightfoot)박사는 말하기를 "세례 요한이 교회의 첫 순교자였듯이 불쌍한 사람은 그리스도 교회의 첫 신앙 고백자였다"고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라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그 사람은 회당에서 출교할 것"이라는 법이 이미 결의되어 있었다(22절). 그러나 이 사람은 예수에 대해 다만 말하기를 "그가 예언자이고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이다"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치도 그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었던 것처럼 그도 처벌의 대상이 되도록 그 법을 악용한다. .....clave non erranto - 즉 중요한 잘못을 저지른 일이 없는데 교회에서 출회를 당하고 추방되는 일은 아주 가공할 일이다. 왜냐하면 땅에서 매인 것은 하늘에서도 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락한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과(자진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리고 부당하게 쫓겨나는 것은 우리가 무서워하거나 불만을 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근거 없는 저주는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예수께서 예언한 것같이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그들의 회당에서 쫓아낸다면(16:2), 아무런 해도 없을 것이고 그 후 "그들의 회당은 사탄의 회당들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

치유 받은 소경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요 9:35-38)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Ⅰ. 우리 주님 예수가 이 불쌍한 사람에게 가지셨던 너그러운 관심(35절). 

---즉 "그들이 그를 내어쫓았다는 말을 예수께서 들으셨을 때"(이 소식은 종소리처럼 곧 마을 전체에 알려졌고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조치를 한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였다) "그는 그 사람을 만나셨다." 그가 이 사람을 찾으셨다는 사실은 그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기 위하여 그를 찾으셨다는 뜻을 의미한다. 그가 이 사람을 찾으신 이유.

1. 그 사람이 그분을 가장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또 그가 주님 예수를 변호하는 데 있어서 아주 훌륭하고 용감하고 담대하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증인들을 지켜 주실 것이고 자기와 또 그의 권리와 그 의도를 인정하는 자들을 확실히 지켜 주실 것이다. 

---지상의 군왕들은 이러한 증인들과 그들의 교회를 어떻게 지킬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는 어느 때라도 우리가 그분에 대해 전파하는 모든 신실한 증언들을 알고 계시고 살피고 계시며 기억록(記憶錄)에 기록하신다. 또한 그것은 이후에 우리의 명예로, 현재에는 우리의 위안으로 보답된다.

2. 바리새인들이 그를 쫓아냈고 그에게 욕을 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대한 의로운 심판자가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 가지는 평범한 관심 이외에도(시 103:6), 그리스도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자, 선한 양심을 증거하다가 고통 당하는 자들에게 취해지는 특별한 배려가 있는 법이다. 

---여기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 당하는 한 불쌍한 사람이 있다. 그는 자기의 고통이 많았던 만큼 "그 위안도 풍부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비록 박해자들이 선한 사람들을 그들의 집단에서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이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공동단체에서는 추방할 수 없고 그가 찾아오시는 길에서 그들을 내어쫓을 수 없다는 점이다.  ::: 사람들이 막을 수 없는 곳에 계신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자들은 행복하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부당하게 거절되고 쫓겨난 자들을 친절하게 찾으시고 용납하신다는 점이다. 

.....그는 추방된 자들에게는 피난처가 되실 것이고 그들의 형제들에게서 미움받고 쫓겨난 자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나타나실 것이다.

Ⅱ. 그리스도가 그 사람과 나누신 위로에 넘치는 대화. 

---이로써 그는 그분을 이스라엘의 위안이 되는 사람으로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이 가졌던 그에 대한 지식이 입증되는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는 그에게 더 나은 교훈을 주신다. 왜냐하면 그가 작은 일에 신실하였으므로 더욱 큰 일을 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마 13:12).

1. 우리 주님 예수는 그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즉 "네가 인자를 믿느냐? 네가 메시야의 약속을 믿느냐? 메시야가 너에게 계시될 때 너는 그분을 받아들이고 용납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의 오심을 기대하는가?"라고 묻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으로써 그의 현현 이전에 성도들은 이것을 기다리며 살았었다.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메시야는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워진다는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예언서들에서 그를 부르는 법을 배웠다.(시 2:7; 89:27).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즉 참된 메시야시라"고 쓰여진 요한복음1장 49절을 보라. 

.....그런데 메시야의 현세적인 왕국을 기대했던 이들은 메시야를 다윗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를 더 즐거워하였다. [다윗의 아들]이란 칭호가 그들의 기대에 더욱 잘 들어맞는 것이기 때문이었다(마 22:42).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기의 왕국에 대해 ((오직 JC를 영접함의 믿음으로 이스라엘과 열방을 아우르는 죄사함 통한 인한 구원과 회복의 하나님나라로서))순수하게 영적이고 신적인 관념으로 우리에게 제시하신다. 그러므로 자신을 [열방의 패망과  이스라엘나라의 회복-번영을 가져 올 자로서 다윗의 아들로 칭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셨고 좁은 의미에서의 다윗의 아들이라고 하기보다는 넓은 뜻에서 "인자"라고 부르셨다.

(2) 메시야에 대한 희망과 기대들은 구약의 성도들도 가졌었던 것으로 약속에 의해 전해졌고 약속을 기반으로 삼고 있었으며 은혜스럽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해석되었고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이러한 믿음이 있는가를 그에게 요구될 가장 위대한 것과(요일 3:23) 우리에 관해서 잠시 후면 한 마디로 질문될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다. 그리고 이 믿음에 의해 우리의 영원의 삶은 판가름되는 것이다.

2. 그 불쌍한 사람은 그 메시야를 받아들이고 그 메시야와 친밀해질 준비가 되어 있음을 고백하면서, 그는 자기가 믿게 된 메시야에 관해서 열심히 묻는다(36절). 고로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한다.

(1) 어떤 이는 생각하기를 그는 자기를 치유했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알고는 있었으나 누가 예수였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와 얘기를 하는 사람이 예수의 한 제자인 것으로 생각하고서 그가 자기를 그 주님에게로 인도할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희망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자기를 고쳐 준 분을 봄으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해서가 아니라, 더욱 확실히 그분을 믿고 그에 대하여 믿음을 고백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가 믿게 된 그분을 알고 싶어서"였다고 본다(아 5:6, 7; 3:2, 3). 

.....보라. 우리를 그분 자신에게 인도할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2) 또 다른 이들은 생각하기를, 그가 자기와 얘기를 했던 이 사람이 예수로서 자기를 치유해 준 분이며 그가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이고 선지자였다는 것은 믿었으나 그러나 아직도 그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참된 메시야였음을 알지 못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본문을 "주여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내가 믿습니다. 내게 시력을 주신 주여 내게 알려 주소서! 말해 주소서! 이 하나나님의 아들이 누구며 또한 어디에 계신지를!" 이라고 본다. 그리스도께서 질문 가운데 메시야가 오셨고 또한 지금 그들 가운데 계심을 암시하셨다. 

.....그래서 그는 곧 깨닫고는 "주님 그가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묻는다. "주여 내가 믿으려고 하는 그분이 어느 분입니까?"라는 그의 질문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것이었다. 그가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을 믿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믿으려고 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어느 분이신가"를 알려 주는 일이다(요 20:31).

3.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믿어야 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곧 자기 자신임을 은혜로써 계시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고 말하신다(37절). 

---"너는 더 이상 하나님의 아들을 찾을 필요가 없다. 말씀이 네 곁에 있느니라"는 뜻의 말씀인 것이다. 그리스도가 여기 이 사람과 사마리아 여인에게 만큼 어느 다른 사람들에게 이처럼 분명하고 이렇게 많은 말씀으로 자기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지 못한다. 즉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고 하셨다.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누구냐 하는 점을 논증을 통해 그들 스스로 깨닫도록 내버려 두셨었다. 그러나 이처럼 세상의 연약하고 미련한 것들에게는 자신을 분명히 보여 주신다. 이러한 태도는 현명하고 지혜 있는 자에게는 좀처럼 보이지 않으시는 태도였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두 가지 사실을 들어 이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설명하시는데 이는 그분이 그 사람에게 보인 큰 호의를 나타내 준다.

(1) "네가 그를 보았느니라"고 하신다. 

.....그는 볼 수 있도록 자기 눈을 뜨게 해 주신 주님 예수에게 많은 은총을 입고 있었다. 이제 그는 그의 멀었던 눈이 치유됨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볼 수 있게 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총을 경험하게 되었다. ::: 하나님의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 그 이상으로 그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었다. 육체의 시력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는 우리의 믿음과 우리 영혼의 권익을 위해서 그 시력이 쓰여질 때이다. 

.....이제 이 사람은 늙은 시몬처럼 그의 눈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으므로 이전의 눈먼 상태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기꺼이 그럴 수 있을 심정이었다. 

.....만일 우리가 이 본문을 마음의 눈을 여는 것으로 응용하면 영적인 시력이란 본래 그리스도를 대하는 목적을 위해 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고후 4:6). 

.....과연 우리를 보았으며 또한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셨고 구원하시기를 기꺼워하시는 그를 보았으며, 그에 관하여 만족하리 만큼 또한 그분 안에서 만족될 수 있을 만큼 그를 보았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신 그분께 찬양을 드리자

(2)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자가 바로 그이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는 겸손하게 이것을 말씀하신 그리스도에게 은혜를 입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보기를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그분과 친교를 나누고 우의를 맺도록 허락을 받았다. 

.....군왕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마음놓고 대화할 수 없는 분으로 여기는 것을 기뻐한다. 주님은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말씀과 셩령을 통하여 얘기하신다. 그리고 그들과 얘기하시면서 자신을 그들에게 나타내신다. 그가 그 두 제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말씀을 하신 순간 그가 자신을 그들에게 나타냈던 것과 같이 그렇게 자기를 나타내신다(눅 24:32). ::: 이 불쌍한 사람은 그분을 보고 그분과 얘기하게 되자, 그 구세주에 대해 열심히 질문하고 있었음을 관찰하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찾는 영혼들에게 그들 스스로가 깨닫는 것보다 더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의심하기 잘하는 기독교인들은 때때로 "주님이 어디에 계시냐"고 말하며 그러다가 "그들과 말하고 있고 그들에게 힘을 넣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분임을 깨달으면 그들은 그의 시야에서 쫓겨날까 봐 오히려 두려워한다.

4. 그 불쌍한 사람은 주저하지 않고 이 놀라운 계시를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기쁨과 놀라움에 취하여 그는 "주님 내가 믿습니다"라고 말했고 또 "그에게 경배를 드렸다."

(1)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였다. 

.....그는 그러한 은총을 자기에게 베풀어 주었고 자기를 위해서 그런 기적을 행하신 그분의 어떠한 말씀에 대해서도 논쟁하지 않으려 했다. 또한 그런 표적들로써 확증된 그의 교훈의 참됨을 의심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마음으로 믿고 또 입으로 고백한다. 이제 상한 갈대는 백향목이 된 것이다.

(2) 그는 그분에게 경의를 표했다. 

.....본문에는 그가 "그분에게 절하였다"고 했다. 위대한 사람에게 마땅히 돌려야 할 정중한 경의로써 또한 친절한 호혜자에게 돌려야하는 감사로써 뿐만 아니라 그는 주님을 신적 영광을 받을 분으로 또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로 경배하였다. ::: 하나님 한 분 외에 경배 받으실 분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그가 예수를 경배한 것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주 예수에 대한 겸손한 찬양에서 참된 믿음은 드러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분을 믿는 자들은 세상이 그분을 경배할 조건으로 가득 찬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사람에 대한 기사는 이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후로 그가 그리스도의 변함없는 추종자가 되었으라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일이리라.

-----------

바리새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요 9:39-41)

---박해를 당했던 이 불쌍한 사람에게 위안의 말씀을 하신 후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서 그이 박해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환란과 안식이 각각 보상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 있게 말씀하신다(살후 1:6, 7). 

---아마도 본문의 사건은 그리스도가 그 사람과 대화를 한 직후에 있었던 사건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바리새인들에게 설교하도록 주어진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 말씀을 하신다.

Ⅰ. 그리스도는 자기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관해서 설명하신다(39절). 

---즉 "나는 심판하기 위해 왔고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의 큰 일들을 이루고 또 치료하기 위해 왔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로운 섭리에 따라 또 그 섭리가 실현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심판의 권세를 쥐고 있다"고 하신다. 

---그리스도는 말씀하실 때 교단 위의 설교자처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마치 왕좌에 앉은 왕처럼 재판석에 앉은 심판관처럼 말씀하셨다.

1. 세상에서의 그분의 임무는 위대한 것이었다. 

---그는 재판을 주관하시고 죄수를 석방하기 위해 오셨다. 그가 심판하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은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닌다.

(1) 사람들을 심판하게 될, 주님은 또한 참된 사람들을 발견해 내고 구별하며 현재적으로는 통치의 규율로 적합하며 장차 얼마 후에는 심판의 척도로 모든 면에서 적절한 교훈과 계명을 가르치기 위해 오셨다는 말이다. ::: 다스리는 법으로, 또 얼마 후에는 심판하는 법으로 쓰여질 그의 교훈을 전하려고 오셨다는 말이다.

(2)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생각을 드러냄으로 인간들을 구분하고 또한 그들이 자기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지 악의를 갖고 있는지 이 한가지를 시험해 봄으로써 사람들의 참된 본성를 밝히시기 위해 오셨다는 말이다.

(3) 그의 교회 안에 통치법을 변화시키고 유대인의 조직을 폐지하고 또한 그 구조가 비록 하나님 자신의 손으로써 잠시 동안 세워졌지만, 여전히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케케묵은 것이 되어버렸음과 그것을 다스리는 자들의 고침을 받을 수 없을 정도의 부패로 인해서 썩어져 버리고 위험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그 구조를 허물어 버리고 또 다른 모습의 새로운 체계를 세우고 새로운 의식들과 공직들을 제정하려고 즉 유대교를 폐기시키고 기독교를 제정하기 위해 오셨다는 말이다. ::: 바로 이러한 심판을 위해서 그는 세상에 오셨고 이 심판은 곧 위대한 개혁이었다.

2. 그가 은유로써 설명하신 이 위대한 진리는 그가 얼마 전에 행하셨던 그 기적에서 도입된 것이었다. 

---즉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한다"는 말씀이 그렇다. 그리스도의 오심의 뜻이 사람마다 다른 이러한 현격한 차이는 자주 언급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의 복음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된다.

(1) 이 말씀은 전체 국가들과 백성들에게 적용된다. 

.....오랫동안 신의 계시의 빛을 가지지 않았었던 이방인들이 그 빛을 보게 되고, 반면 오랫동안 신의 계시의 빛을 즐겼었던 유대인들이 그들의 눈에서 그 평화의 사실들이 숨겨질 것이라는 뜻에서 전해진 말씀이다(호 1:10; 2:23). ::: 이스라엘에 눈이 머는 일들이 발생하고 그들의 시력이 약해진 동안 이방인들은 위대한 빛을 본다.

(2) 이 말씀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① 영적으로 소경된 자들에게 계획적이고도 의도적으로 시력을 주기 위해서였다. 

.....즉 말씀으로써 그 목적을 나타내고 성령으로써 영의 기관을 치유함으로써 많은 귀중한 영혼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말이다. 

.....그는 "심판하기 위해" 오셨다. 즉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자들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 오셨다(사 61:1).

② 또는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 

.....즉 스스로 지혜롭다고 큰 자만심을 가진 자들과 신의 계시와 담을 쌓고 있는 자들을 무지와 불신앙 속에 있도록 버려두시기 위해 그는 세상에 오셨다. ::: 십자가의 도는 지혜에 의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어리석은 것이었고 분별력을 잃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영적인 왕국의 문제들을 다스리고 "심판하시기 위해" 또 "인간의 마음에 좌정해 계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그런데 유대 교회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심판은 거의 이 세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통치하는 방법이 변경되어야 했던 것이다. 

.....또한 그의 왕국의 선한 종복들에게 하늘 나라에 있는 영적인 복들로 축복하고자 하신다. 이러한 사실들은 저들의 마음을 비추는 빛을 통하여 드러난다. 반대로 불신자들은 이전과 같이 전쟁, 기근, 전염병으로가 아니라 영적인 악질(병)을 통해 심판될 것이다. 

.....이 영적 심판을 당함으로 마음의 완고함, 양심의 공포, 강한 유혹, 악에 대한 사랑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양과 양 사이를 심판하실 것이다.(겔 34:17, 22).

Ⅱ. 이 말씀에 대한 바리새파 사람들의 힐난. 

---그들은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에게서 어떤 선을 배우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악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도 소경인가?"라고 물었다. 

---그리스도께서 "보는 자들은" 그가 오심으로써 소경이 되어질 것이라고 말했을 때, 이 말씀이 백성들 가운데 선각자요 자신의 통찰력과 선견지명을 자랑했던 자신들을 그가 말하고자 한 것으로 그들은 이해하였다. 그들은 말하기를 "일반 백성들이 소경일 수 있으나 그래 우리도 소경이란 말인가? 어째서 우리가 소경이요? 율법 학자요, 박사요, 율법을 배우고 학교를 졸업한 우리가 소경이란 말이요?라 한다. 

---이는 Scandalum Magnatvm -즉 지독한 명예훼손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때때로 견책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자들과 그것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무언의 견책을 분별할 수 있는 재치가 있음에도 올바른 견책을 감당할 만큼 너그럽지 못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바리새인들도 율법 교사들처럼(눅 11:15) 이 견책을 비난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우리도 소경이란 말이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심판을 존경항다는 말이요?"라고 말한다. 

---유익한 견해, 특히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는 고상한 견해일수록 인간들의 타락한 마음의 말씀에 대한 대적 행위를 더욱 강화시키며 말씀을 거절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사람들에게서 박수 갈채를 받는 모든 사람들은 마땅히 하나님에게도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할 때 이보다 거짓되고 기만적인 것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Ⅲ. 이러한 힐난에 대한 그리스도의 답변. 

---"너희가 소경 되었더라면 도리어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는 말씀은 그들을 납득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침묵하게는 만들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일반 대중처럼 장님(무지)이 아니었음을, 그래서 그들처럼 그렇게 남을 쉽사리 믿거나 남에게 넘어가지도 않았음을 자랑하였다. ::: 그들은 그들의 눈으로 보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인도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을 이끌어 줄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가 본문에서 그들에게 말씀한 그들이 자랑으로 여겼던 이러한 것들은 그들의 수치요 멸망이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만일 그들이 소경 되었더라면 죄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 "만일 너희가 실제로 무지했다면 너희의 죄는 그토록 심하게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너희가 책임져야 할 것과 같이 많은 죄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가 만일 불쌍한 이방인들이나 수많은 너희의 종복들처럼 소경이었다면(오히려 그들에게서 너희가 지식의 비결을 배웠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너희는 비교적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 하나님은 무지의 순간들과 정복할 수 없는 무지를 눈감아 주신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관용이 죄를 정당화시키거나 죄를 용서해 준다거나 죄의 책임을 경감시킨다는 말은 아니다. 빛에 거슬려 반항하는 자들보다는 앞을 내다볼 줄 모름으로 멸망당하게 되는 자들에게 관용이 더 낫게 베풀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2) "만일 너희가 너희 자신의 맹인 됨을 지각할 수 있다면 또한 너희가 너희에게 안내자가 필요하다는 오직 이 한 가지 사실이외에 아무 것도 몰랐다면 너희는, 너희의 안내자로서의 그리스도를 곧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고 너희는 복음의 의에 복종했을 것이고, 의로운 상태로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자기들에게 질병이 있음을 아는 자는 고침을 받을 좋은 길이 열리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자기 만족보다 영혼의 구원에 크게 방해가 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2. "그러나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본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 "너희가 알고 있다는 생각 또 율법으로부터 교육받았다는 생각이 너희의 죄를 보다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지식의 자만에 빠져서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갈 길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있고 너희의 경우는 절망적이며, 너희의 질병은 치료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신다. ::: 그리고 "보지 않으려 하는 소경이" 가장 고치기 어려운 병인 것처럼 소경이면서 본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은 가장 위험스러운 병이다. 자기들이 건강하며, 아무 것도 고칠 것이 없다고 열렬히 주장하는 환자처럼 다루기 어려운 환자는 없다. 

---자기 자만과 자기 만족에 차있는 자의 죄는 계속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은혜의 복음을 거절하고, 따라서 그들의 죄에 대한 책임이 용서되지 못하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은혜의 성령을 상실하고 따라서 그들의 죄의 세력은 깨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한 자만속에 빠져 있는 것을 당신은 보았는가? 바리새들이 우리는 본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있는가?" 그와 같은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바보들, 세리들, 창기들에게 더 많은 소망이 있는 것이다.


이전글 : 요15.포도나무.정결.생명.열매.사랑.기쁨.희생.친구.성령.증언
다음글 : 요10.양의우리_참목자비유.겨울의수전절_솔로몬행각 논쟁.베다바라에서의 영혼추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