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1.1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요14.아이테오.길진리생명.믿음앎말씀순종.상호거함하나됨.사랑신뢰.보혜사.평안기쁨자유함.고난주간일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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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4]]====먼저 아이테오로 나아가라..아이테오안에서 에로타오를 행하라..우선순위!!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아이테오))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아이테오)) 내가 행하리라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에로타오))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개역개정]요14장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보혜사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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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요14장
1.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believe in God, believe also in Me.
2.  "In My Father's house are many dwelling places; if it were not so, I would have told you; for I go to prepare a place for you.
3.  "And if I go and prepare a place for you, I will come again, and receive you to Myself; that where I am, [there] you may be also.
4.  "And you know the way where I am going."
5.  Thomas *said to Him, "Lord, we do not know where You are going, how do we know the way?"
6.  Jesus *said to him,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but through Me.
7.  "If you had known Me, you would have known My Father also; from now on you know Him, and have seen Him."
8.  Philip *said to Him, "Lord, show us the Father, and it is enough for us."
9.  Jesus *said to him, "Have I been so long with you, and [yet] you have not come to know Me, Philip? H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how do you say, 'Show us the Father'?
10.  "Do you not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The words that I say to you I do not speak on My own initiative, but the Father abiding in Me does His works.
11.  "Believe M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n Me; otherwise believe on account of the works themselves.
12.  "Truly, truly, I say to you, he who believes in Me, the works that I do shall he do also; and greater [works] than these shall he do; because I go to the Father.
13.  "And whatever you ask in My name, that will I do, that the Father may be glorified in the Son.
14.  "If you ask Me anything in My name, I will do [it.]
15.  "If you love Me, you will keep My commandments.
16.  "And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Helper, that He may be with you forever;
17.  [that is] the Spirit of truth, whom the world cannot receive, because it does not behold Him or know Him, [but] you know Him because He abides with you, and will be in you.
18.  "I will not leave you as orphans; I will come to you.
19.  "After a little while the world will behold Me no more; but you [will] behold Me; because I live, you shall live also.
20.  "In that day you shall know that I am in My Father, and you in Me, and I in you.
21.  "He who has My commandments and keeps them, he it is who loves Me; and he who loves Me shall be loved by My Father, and I will love him, and will disclose Myself to him."
22.  Judas (not Iscariot) *said to Him, "Lord, what then has happened that You are going to disclose Yourself to us, and not to the world?"
23.  Jesus answered and said to him, "If anyone loves Me, he will keep My word; and My Father will love him, and We will come to him, and make Our abode with him.
24.  "He who does not love Me does not keep My words; and the word which you hear is not Mine, but the Father's who sent Me.
25.  "These things I have spoken to you, while abiding with you.
26.  "But the Helper, the Holy Spiri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He will teach you all things, and bring to your remembrance all that I said to you.
27.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to you; not as the world gives, do I give to you.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nor let it be fearful.
28.  "You heard that I said to you, 'I go away, and I will come to you.' If you loved Me, you would have rejoiced, because I go to the Father; for the Father is greater than I.
29.  "And now I have told you before it comes to pass, that when it comes to pass, you may believe.
30.  "I will not speak much more with you, for the ruler of the world is coming, and he has nothing in Me;
31.  but that the world may know that I love the Father, and as the Father gave Me commandment, even so I do. Arise, let us go from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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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 (개요)
이 장은 저녁만찬 후에 주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신 대화의 연속이다. 유다의 죄를 아시고 그를 제자들의 집단에서 제외하신 후에 주님은 자신이 떠나 갈 것이라고 한 말씀 때문에 슬픔에 잠겨있는 남은 제자들을 위로하시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될 유익한 말씀들을 해 주셨다.
이 이야기는 대화체로 기록되었고, 전장에서 베드로가 주님과 대화했듯이 여기서는 주님의 말씀 도중에 도마와 빌립과 가룟인이 아닌 유다 등이 끼어 들어 대화를 나누었고, 주님은 이들의 말을 허락하시고 쾌히 들어 주셨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누는 대화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외쳐지는 연설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의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장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미 1절에 나타나는데, 즉 제자들의 마음에 있는 근심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 말씀이다. 이제 제자들은 마음의 평온을 되찾기 위하여 주님께서 주신 이 말씀들을 믿어야 하며 다음과 같은 것들이 기억되어져야 한다.
Ⅰ. 하늘은 제자들의 영원한 안식처이다(2, 3).
Ⅱ. 그리스도는 제자들의 길이다(4-11).
Ⅲ. 열심히 기도함으로 큰 권능을 옷 입게 될 것이다(12-14).
Ⅳ. 또 다른 위로자가 올 것이다(15-17).
Ⅴ. 주님께서 떠나가신 후에도 주님과 제자들 사이에 친교와 교제가 있어야 한다(18-24).
Ⅵ. 보혜사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25,26).
Ⅶ. 제자들에게 남겨 주신 그리스도의 평화(27).
Ⅷ. 아버지께로 가심을 기뻐하시는 주님(28-31).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 주신 이 모든 말씀들은 모든 주님의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을 위로하시기 위하여 기록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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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위로의 말씀(1)(요 14:1-3)
이 귀절들에서,
Ⅰ. 주님은 근심에 싸여 있는 제자들을 권면하신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1절). 그들은 근심하면서부터 시험에 빠져들고 있었다. 다음을 살펴 보자.
1. 주님께서는 그들이 근심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리셨을까? 아마 그들의 얼굴에 그런 기색이 나타났을 것이다. 근심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고 주님은 그들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우리들 속에 숨겨져 있는 슬픔과 피흘리는 상처까지 아시는 주님께서 이런 정도의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고통과 괴롬을 아시며 또한 그것이 항상 우리들 주위에 존재하고 있었고 언제든지 우리가 그 속에 빠져들어 갈 위험성을 지니고 있음도 아신다.
이제 여러 가지 일들이 서로 연결되어 제자들의 마음을 근심케 만들었다.
(1) 제자들 중 일부로부터 받게 될 불친절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의 마음은 근심으로 휩싸였다.
베드로는 말할 것도 없이 주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말씀 때문에 슬퍼 보였고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를 측은히 여겼다. 또한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또 다음엔 자기들 중의 누구를 가리키시면서 좋지 않은 일을 하리라고 하실지 몰라 낙심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주님은 그들을 안심시키신다.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들을 겸손하고 주의 깊게는 하지만, 결코 우리의 영혼을 불안케 하거나 우리의 영적인 기쁨을 꺾지는 않는다.
(2) 주님은 제자들의 곁을 떠나 가시면서 고통의 구름에 휩싸여 가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책망의 말씀을 듣는 것도 잠시이고, 이 말씀들은 그들의 뼈 속에 사무치는 말씀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또 주님께서 잔인한 욕을 당하고 죽는 것을 보게 되고, 이것은 그들의 영혼을 꿰뚫는 칼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님을 택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섰으며,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볼 때에 그 영광스러운 결과와 열매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 아파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광경이 너무 참혹해서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떠나가신다면,
① 그들은 부끄러워하며 낙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며 세상의 권력과 영광 속에 그의 왕국을 세울 줄로 믿고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랐기 때문이다. 이제, 만일 주님께서 지금까지 살아오신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거나 혹은 그보다도 못한 환경에서 떠나가신아면, 제자들은 매우 좌절할 것이 틀림 없다.
② 제자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외롭고 지쳤다고 생각하며 슬퍼할 것이다.
그들은 과거의 어렵고 절박했던 상황에서 조금도 침착하지 못했던 경험에 비추어 보아. 이제 그들이 선생과 헤어진다면 절망하여 쓰러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은 이러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여기에 특별히 강조된 세 단어가 있다.
첫째, "근심하다"이다.
잠시도 쉼이 없이 휘몰아치는 바다처럼 근심으로 인하여 서두르고 혼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은 슬픔에 젖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애타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또 절망하거나 동요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시 42:5).
둘째, "마음"이다.
"비록 온 나라와 도시가 근심하며, 네 작은 가족과 가축이 근심할지라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을지라도 영혼만은 소유해야 한다. 마음은 성채의 중심과 같아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마음에서 근심을 멀리하며 부지런히 이를 지켜야 한다. 영혼은 쇠약해지기 쉬우니 이것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셋째, "너희"이다.
주님은 "너희는 나의 제자요 추종자요 속죄되고 선택되어 성결케 되었으나.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현재의 슬픔에 사로잡혀 있을지라도 너희는 슬퍼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들보다 모든 것을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시온의 죄인들은 떨리라. 그러나 시온의 아들들은 그들의 왕과 함께 즐거워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모든 것이 소란스러울 때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남들보다 더 일해야 하고 더 마음을 고요하게 지켜야 한다.
2. 제자들의 마음 속에 생겨진 근심이 점점 크게 작용할 것을 아시고 주님께서 구제책으로 내려 주신 처방은 일반적으로 "믿는다"라는 것이다.
(1) 어떤 사람들은 본문의 두 부분을 모두 명령적 용법으로 읽는다.
"하나님을 믿으니, 즉 그분의 완전하심과 섭리를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즉 중재자의 사명을 지닌 나를 믿으라"는 것이다(1절).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그는 가장 성스러운 분이시고 명철하시며 능력이 있고 선하시고 그뿐만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시고 만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라고 가르치는 자연 종교의 일반화된 원리를 그대로 의지하고, 이에서 더 나아가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 준 거룩한 종교의 특별한 교훈으로 위로를 얻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런데,
(2) 주님께서 "그러나 만일 너희가 만일의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나를 또한 믿으라"고 하신 것을 보아서 우리는 앞부분의 말씀은 제자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증거로써 읽을 수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의 계약 가운데 서게 되며 그의 은혜와 약속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반면에,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오히려 근심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평안케 된다. 아버지를 믿듯이 아들도 믿음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알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도 믿게 될 것이며,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마음의 근심을 없애는 훌륭한 방법이다. 믿음으로 얻는 기쁨이 감각적인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며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이 약속이 주어진 구제책이다. 내가 믿지 않았더라면 나는 쇠하였으리라.
Ⅱ. 영생의 약속을 믿게 하는 특별한 안내가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2, 3절).
주님은 하나님을 믿고 또 자기 자신을 믿도록 제자들을 지도하셨는데, 그들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육체와 이 세상이 끝날 때와 비로소 얻게 될 행복과 또한 불멸의 영혼과 영원한 세계와 함께 언제까지나 지속될 행복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 행복이 현재의 근심 속에 최고의 강심제로써 제시되었고, 또한 이 하늘의 행복은 그 안에 놀라웁게 적응시키는 그 무엇이 포함되어 있다.
성도들은 그들이 당면했던 극도의 곤경 속에서 하늘은 모든 것을 보상한다는 믿음으로 힘을 얻곤 했다. 이제 여기서 이 행복에 대한 것이 어떻게 제시되었는가 살펴보자.
1.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것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2절)고 하심으로써 영원한 행복이 실제로 있으니 믿고 항상 고대하라는 것이다.
(1) 하늘의 행복의 개념이 거할 곳으로 표현된 것을 눈여겨 보라.
아버지에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① 하늘은 텐트나 장막이 아니고 집인데, 손으로 만든 집이 아니고 영원한 집이다.
② 그 집은 아버지의 집이요, 그의 아버지는 우리들의 아버지이시다.
그런데 지금 주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시니 이는 모든 신실한 신앙인들이 그들의 맏형이신 그리스도의 우편에서 행복을 누리도록 영접하기 위함이다. 그 집은 왕 중의 왕이요, 세상 모든 주인 중에서도 주인이신 분이 빛 가운데서 영원히 거하시는 집이다.
③ 바로 그곳에 거할 것이 있다. 이말은,
첫째, 개개인마다 별개의 거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주위에 있는 성직자들의 방을 암시하는 듯하다. 하늘에는 특별한 성도들을 위한 거처가 있다. 따라서 모두가 한꺼번에 하나님께 올라갈지라도 우리의 개성은 계속 지니게 될 것인데, 이것은 가나안에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의 땅을 가졌고 장로들은 자기의 자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계 4:4).
둘째, 견고한 거처를 말한다.
집 자체도 계속 되겠지만, 그 속에 있는 우리의 소유도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여인숙에 들어 있는 것 같으나 하늘에서 우리는 정착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머리 둘 곳도 없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그들의 집을 버렸으니 하늘의 거처가 그들에게 보상될 것이다.
④ 그곳에는 거처가 많다.
왜냐하면 영광을 얻을 아들들이 많기 때문이며, 주님은 그들의 숫자를 정확히 알고 계신다. 만일 그 숫자를 알지 못한다면 예상보다 많은 무리가 올 때에 방이 없어서 고생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가 주님을 따를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을 실망시키지는 않으셨다. 그것은 하늘에 그들 모두를 위한 거처가 있기 때문이다(르호봇-창 26:22).
(2) 우리는 우리가 행복 자체의 실재성에 대하여 무슨 보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어느 정도의 신실성을 가지고 제시되고 있는가를 살펴 보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너희가 미래의 보이지 않는 행복을 기대하며 너희의 생계를 포기하고 내게 생명을 건 모험을 각오한 채 따라 나섰을 때에, 그 희망이 헛된 희망이었다면 내가 곧 너희를 그 꿈에서 깨어나게 했을 것이다. 그 보장은,
① 그의 말씀의 진실성 위에 나타나 있다.
즉 주님은 "만일 그렇게 가치있고 또 도달할 수 있는 행복이 없었다면 나는 그것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말씀하신다.
②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신실한 사랑이 나타나 있다.
그는 참되시며 자신이 제자들을 속이지 않듯이 또한 친절하시며 그들이 속임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지도 않는다. 만일 거할  곳이 없거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라 나선 그들을 위한 계획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주님은 그들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하며 살도록 적절한 시기에 그들에게 실수를 알렸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선하신 뜻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 희망을 갖도록 크게 격려해 준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주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고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자신이 심어 준 기대를 좌절시킬 수 없고, 이제까지 충성해 온 제자들을 불행한 무리들 속에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는 것이다.
2. 주님께서 가시는 것은 제자들을 위한 거처를 하늘에 예비하기 위한 것임을 믿고 기억하라. "너희는 내가 떠나가는 것을 슬퍼하나, 나는 선구자로서 너희의 심부름을 가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들어가려고 한다." 주님은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려 가셨다. 이것은 즉,
(1) 우리들의 옹호자요 대리자로서 우리를 점유하며, 우리의 권리가 취소되지 않도록 지키기 위하여 가시는 것이다. 이 점유권은 그를 믿는 자들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2) 우리들의 친구와 아버지로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시러 가셨다.
하늘의 행복은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준비되어 있었지만 타락한 인간을 위해서는 좀 더 조정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계심으로써 한결 진전을 보이기 때문에, 장차 제자들이 공유하게 될 영광에 주님께서 먼저 들어가시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주님께서 그곳에 계시지 않는다면 하늘은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식탁을 준비하고 또 왕좌를 준비하기 위해서 가셨다(눅 22:30). 따라서 주님은 하늘의 행복은 성자들에게 적합하도록 그들을 위하여 준비되어졌다고 선언하신다.
3. 그러므로 주님은 지금 자신이 소유하기 위해서, 그리고 제자들을 위하여 예비하러 가시는 축복의 처소로 그들을 데려가시기 위하여 정해진 때에 다시 오실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하신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만일 이것이 나의 여행의 목적이라면 모든 것이 준비될 때에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이후로는 너희가 나를 따르고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되리라"(3절). 이 말씀들은 진실로 위로가 되는 말씀들이다.
(1) 주님께서 다시 오리라는 말씀은 그가 오실 것이며 그것도 매일 오실 것이라는 확신성을 선언하시는 말씀이다.
우리가 어느 곳에 가기 위하여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을 때에 "곧 간다"라고 말하듯이, 주님의 오시겠다는 말씀은 그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이다. 주님께서 확실히 말씀해 주신 그의 재림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마음 속의 모든 문제와 고통을 길이 참고 견디게 해 준다(빌 4:5; 약 5:8).
(2) 주님은 그의 충실한 추종자들을 데려가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그는 저들을 은밀한 가운데 죽음의 자리에까지 보내시고, 거기서 다시 그들을 하나씩 모으신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그들이 영광 중에 다 함께 장엄한 행진을 할 것이며 주님은 나오셔서 그들을 맞이하여 풍성한 은혜와 사랑으로 영접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주님은 거들을 존귀히 여기시고 최고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
주님의 오심은 우리들 모두를 그에게로 모으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다(살후 2:1).
(3) "그가 있는 곳에 그들도 있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이 또한 우리에게 한 없이 위로가 된다. 이 말씀은 성서의 다른 부분에서 선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주님이 계신 곳에 함께 있는 것이 바로 하늘의 행복의 본질이라는 것이다(요 17:24; 빌 1:23; 살전 4:17).
주님은 그가 지금 그곳에 마치 계신 것처럼 "나 있는 곳에"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잠간 있는 곳에 너희도 잠간 있겠고, 내가 영원히 있을 곳에 너희도 영원히 있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곳(there)이라고 표현된 말은 주님께서 계신 장소뿐 아니라 그가 현재 누리고 있는 형편과 상황까지 의미한다. 그들은 주님의 세 제자들처럼 산상에서 주님의 영광을 구경만 하는 구경군으로서가 아니고 그 영광을 함께 누리는 자들이 될 것이다.
(4) 이 말씀은 우리들의 처소를 예비하려 가시면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주님은 집을 지으며 그 설비를 갖추기 위하여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그때까지 기다리고 서 있으라고 하시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저자로서 이미 시작한 일의 완성자이시며, 우선 우리를 위한 처소가 예비되면 그 다음에는 처소에 합당하도록 우리들을 예비시키시고 정해진 때가 올 때에 우리들로 하여금 그 처소를 소유하게 하실 것이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들의 부활을 보증하듯이, 주님께서 승천하시고 승리와 영광을 얻으신 것은 우리들도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보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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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위로의 말씀(2)(요 14:4-11)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최종적 목표로써 하늘나라의 축복을 제시하시면서 그 자신이 하늘나라의 축복으로 나아가는 길이 됨을 보여 주신다.
또 주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걸어가야 할 길과 그들이 바라는 최종 목표에 대하여 그들이 스스로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이미 잘 알고 있었다고 말씀하신다. "네가 알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이와 같은 사실이 너희와는 무관하게 숨겨진 것이 아니고 밝히 드러난 것으로써 그것을 얻기 위하여 이제 너희가 하늘에 올라가거나 음부에 내려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말씀이 너희에게 가까이 있고(롬 10:6-8), 그것은 바로 너희를 위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2. 너희들은 아직 본향이나 길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지만 어느 것이 본향이고 길인지 알고 있다. 너희가 지금까지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계속 귀로 들어 왔으므로 너희가 회상해 보고 숙고해 본다면 틀림 없이 알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부족해서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깨닫고 알게 되기를 기뻐하고 계시는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스스로 행하여 나타낸 선보다 더욱 아름다운 선이 그들 속에 들어 있음을 알고 계시며 그들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하는 이러한 지식과 믿음 그리고 사랑이 그들 속에 들어 있음을 확실히 알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해 제자들은 두 가지로 질문하였고 주님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대답하셨다.
Ⅰ. 도마는 실례를 무릅쓰고 주님을 반박하면서 그 길에 대하여 물었다.
 "주여, 우리는 당신이 어디로 가시는지 그 장소와 거처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하오니 우리가 당신을 따라야 하는 그 길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고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으므로 방황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들 제자들의 무지함을 일깨워 주었고 또한 무지에서 빛을 추구하도록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도록 한 것이다. 여기서 도마는 베드로보다 더 정중함을 보여 주고 있는데 베드로와는 달리 그는 자신이 지금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고 싶어했다. 도마도 그것을 알 수 없어 불평을 늘어 놓았지만, 이제 그는 그 길을 알려고 한 것이다.
1. 자신의 무지에 대한 도마의 고백은 칭찬할 만하다.
만일 착한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그리하여 흑암 속에서 있어서 부분밖에 모르고 지낸다면 이는 곧 그들이 결함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2. 도마의 무지의 원인은 비난할 만하다.
제자들은 모두 위풍이 당당하고 권세가 있는 일시적인 세상의 왕국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했다. 주님은 제자들 생각과는 정반대로 거듭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어디로 가셔야 할 것과 그들이 그를 따라와야 할 것을 역설하실 때 제자들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을 회복한 것처럼 주님께서 이제 어떤 유명한 도시 베들레헴이나 나사렛 혹은 가버나움 또는 이방인의 어떤 도시로 가시는 구상을 하였던 것이다. 어떤 길이 이러한 장소로 인도하는지 또한 그들의 공상 속에 있는 이러한 성들이 동서남북 어느 곳에 세워지게 될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미래의 교회 형태에 대하여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무지 속에서 상상하기 쉬운데 이는 우리가 그것을 세상적인 영화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약속이 지시하는 그러한 세계는 영적인 진보의 상태 바로 그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도마가 만일 그리스도께서 영들의 세계, 영적인 일들만 말해지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가시게 된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그는 주여 우리가 그 길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Ⅱ. 주님이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 내포되어 있는 그들의 무지에 대한불평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대답을 6,7절에서 하고 계신다.
도마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그 길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두 가지 질문을 모두 대답해 주셨고 그가 물은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인 것처럼 만드시었다.
그리스도께서 길이시며 이 길되신 주님을 그들 제자들이 알고 지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인식한 것들을 조금만 깊이 이해했다면 그들에게는 답변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제자들은 이미 아버지를 알고 있었으며 그가 그들의 마지막 목표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디로 가는지 너희는 알며, 그 길을 너희는 알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마지막 목표로써 믿어라. 그리고 나를 그것에 이르게 하는 길로 믿어라(1절). 그러면 너희는 해야 할 일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는 본문 6절에서 자신을 길로써 말씀하고 계신다.
너희가 "그 길을 알지 못하느냐?""내가 곧 길이며," 나만이 그러한 길이 되는데 이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관하여 매우 중요한 일들을 말씀하고 계신다.
(1) 그리스도의 중보의 성격. 그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첫째, 여기서 뚜렷이 드러나는 점들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a. 그리스도는 이사야 35장 8절에서 표현된 높은 길로써의 바로 그 길이 되시는 분이다.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길이 되시는데 이는 그가 그 자신의 피로써 성전에 들어가셨기 때문이다(히 9:12).  그리스도는 우리의 길이 되신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그를 통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가르침과 실천을 통해 우리에게 우리들의 의무를 가르쳐 주셨고 자신의 공로와 중재를 통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 그 자신은 곧 길 되신 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고 함께 내재(內在)하게 된다. 인간은 아무리 순진하다고 해도 생명나무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러한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이 되신 분이다.
길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교역이 시작되어 하늘과 땅 사이가 연결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하게 되었고 우리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며 그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내리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안식으로 인도하는 좋은 영원한 길인 것이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랐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이 길을 따랐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계속 따른다면, 그들은 이 길에서 이탈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b. 그는 진리이시다.
(a) 진리는 표상이나 그림자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구약 형태의 실체가 되는 분이시다. 구약의 유형들은 히브리서 9장 24절에 의하면 진리의 표상이라고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참만나이며(히 6:32), 참장막인 것이다(히 8:2).
(b) 진리는 거짓과 잘못된 것과 반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참된 가르침이다. 우리가 진리를 알려고 할 때,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진리임을 알고 그것을 배워야 한다.
(c) 진리는 오류와 허위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진실하시다(고후 1:20). 그는 생명이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또한 그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기 때문이다(롬 6:11).
우리 영혼이 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과 관계를 맺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둘째, 이러한 것들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a. 그리스도는 시작이요, 중간이며 끝이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시작해야 하고 계속되며 끝마쳐야 한다. 진지를 통해 그는 우리 길의 안내자가 도시는 것이다. 생명으로써 그는 생명의 마지막이 되시는 것이다.
b. 그리스도는 참되고 살아 있는 길이 되신다(히 20:6).
그 길의 마지막 부분에서만이 아니라 그 길의 중간에서도 진리와 생명을 맛볼 수 있다.
c. 그리스도는 생명에 이르는 참된 길이며 유일한 길이다. 다른 길은 옳은 길처럼 보여도 결국 죽음의 길이 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중보의 필요성.
"아무도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 타락한 사람은 심판자로서의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대할 수는 없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이 없이는 회개와 예배의 행동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의무를 이행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공로와 의가 없이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요, 변호인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아버지에 대해 마지막으로 말씀하고 계시다(7절).
"만일 너희가 나를 바로 알았다면 너희가 내 아버지도 또한 알았을 것이요, 또한 너희가 내 안에서 본 영광과 내게서 들은 그 진리를 통하여 너희는 그를 알고 그를 본 것이다."
(1)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이 계속 그리스도를 따라 다니고 함께 생활하였지만 그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인식하지 못한 그 우둔함에 대해 말없는 책망이 그들에게 내려 누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너희가 만일 나를 알았다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나 너희가 알 수도 있었고 또한 알아야 할 만큼 아버지를 알지 못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또한 알았을 것이다"라고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빛의 자녀들의 지식과는 역행되고 잘못된 그들의 무지에 이르렀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시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만일 그리스도를 바로 알았다면 그의 나라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영적인 나라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오셔서 하늘로 올라가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며 그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내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의 영광을 위해 내가 아버지께로 가노라고 말씀하실 때, 그가 어디로 가려고 하시는지 알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기독교를 잘 알기 원한다면 자연 종교 역시 더 잘 알아야만 할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이해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진지성에 대해 만족을 표하셨다. "지금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일러 준 말이 내가 지금까지 너희에게 준 모든 가르침에 대한 열쇠의 역할을 할 것이며 너희가 나를 알고 보았듯이 너희가 아버지를 알고 본 것이다."
마치 아버지를 닮은 아들의 얼굴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그렇게 무지하지 않음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들이 아직 어린 자녀밖에 되지 않지만 그들이 아버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요일 2:13).
그리스도의 대부분의 제자들은 그들 생각에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지식과 은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스스로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들 안에 지니고 있는 그러한 좋은 것들을 기뻐해 하시고 그것에 관심을 가지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하나님 아는 것을 한번에 즉시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요일 2:3)
Ⅲ. 빌립은 아버지에 대하여 질문하였고(8절), 주님은 그에게 대답하셨다(9-11절).
1.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발견을 위한 빌립의 질문.
빌립은 제자들 중의 어떤 사람들처럼 불쑥 말하는 기질의 사람이 아니었으나 보다 잘 알고 싶어하는 마음에서"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라고 부르짖었다.
빌립은 그리스도께서 지금까지 하신 말씀을 다 들었고 주님이 마지막으로 "너희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씀에 그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해 빌립은 "아니요,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족하겠나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1) 이것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열렬한 갈망을 암시한다.
빌립의 요청은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우리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해 주소서 그러한 관계를 말입니다"라는 것이었다. 그가 이러한 질문을 던진 것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머지 제자들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 주시면 족하겠나이다."
그의 이러한 고백은 자신에게서 우러나온 고백일 뿐 아니라 제자들 모두에게도 공감된 고백이었던 것이다. "우리로 아버지를 한번만 보게 해 주소서. 그러면 족하겠나이다." 젠센시우스(Jansensius)는 "빌립은 그렇게 말하려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성령은 그의 입을 통하여 영혼의 만족과 행복은 하나님의 비전과 그것의 성취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빌립을 움직였다"고 주장하였다(시 16:11; 17:15).
하나님의 지식 안에서 이해력은 만족을 얻고 그 욕구가 성취되며 우리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의 지식 속에서 영혼은 만족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습은 지상 위에 있는 하늘 바로 그것이며 우리를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채운다.
(2) 빌립의 말을 통해 볼 때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일러 주신 하나님의 그러한 발견에 대해서는 별로 만족을 못 느끼고 모세에게 임했던(출 33:22)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임했던(출 24:9) 어떤 보일 수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그에게 보여 주기를 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당신을 보는 것같이 우리의 육안으로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러면 족하겠나이다. 더 이상 주님을 괴롭히지 않겠사오니 당신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려 주십시오."
이와 같은 질문은 그의 믿음의 연약함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아버지를 보여 주는 복음의 방법에 대한 그의 무지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인 것이다.
빌립은 생각하기를 그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되면 그들은 만족하게 되리라 생각하였으나 그렇게 그를 보았던 사람들은 만족치 못했고 곧 타락하여 우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자신의 인위적인 의도로 하는 것보다 더 낫게, 우리의 믿음을 견고케 하기 위해 더 나은 제도를 마련하신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아버지가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고 이를 말씀하고 계시다(9-11절).
(1) 주님은 빌립에게 그가 본 것에 관해 말씀하시며(9절) 이에 대한 그의 무지와 부주의성에 대해 책망하셨다. "내가 너희와 함께 오래 같이 지내지 않았느냐? 3년 이상을 너희와 같이 아주 친밀하게 교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빌립 너는 아직 나를 알지 못하느냐? 이미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묻느냐? 자, 여기서 살펴보도록 하자.
① 주님은 빌립에게 두 가지를 책망하시고 있다.
첫째, 그것은 빌립이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에서 분명하고 뚜렷한 그에 대한 지식을 얻지 못한 점이다. "빌립아, 네가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따라 다니고 같이 지냈는데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빌립은 처음 주님을 만나던 날 그가 메시야이심을 깨닫고 이분이 바로 메시야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다(1:45).
그러나 이때까지 주님 안에 계신 아버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성서에 나타난 많은 지식과 신비한 일들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그들이 지니고 있는 진리를 잘 종합하지 못하고 완전해 지도록 노력하지 않음으로 그들이 바라던 일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아나 그들이 그에 대해 무엇을 알고 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빌립이 이러한 일에 더욱 우둔해 있다는 것은 그가 그렇게 오랫 동안 주님을 바로 잘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는 바로 그 점에 기인하고 있다. "내가 너와 함께 오랫 동안 있었지 않느냐?"
우리가 지식과 은혜에 대하여 그것을 오래 맛보면 맛볼수록 우리가 만일 은혜와 지식에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실패한다면, 우리는 더욱 용서받을 수 없고,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점점 성장함에 따라 더욱 숙련되기를 원하시지 우리가 항상 어린 아이로 남아 있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우리 자신을 한번 돌이켜 보자. 나는 오랫 동안 설교를 들어 왔고 성서를 배우는 학생이며 그리스도의 학교의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왜 이리 연약하고 의의 말씀에 왜 그리 세련되어 있지 않을까?
둘째, 주님은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라고 부르짖는 빌립의 기도의 허약함을 책망하고 계신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연약함이 들어나고 있는데 그들은 그들이 무슨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롬 8:26). 그래서 때때로 서투른 요청을 하는 것이다.
② 주님은 빌립에게 그리스도를 바로 보게 함으로써 또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도록 가르치고 계시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7절)을 여기서 입증하고 계신다. "너희가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라고 요청한 빌립의 물음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어려움이 해소되었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을 본 자가 곧 아버지를 본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첫째, 육으로 계신 그리스도를 본 모든 사람이 만일 사탄이 그들의 마음 눈을 멀게 하지 않은 이상 그리스도 안에 계신 아버지를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고후 4:4).
둘째,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본 모든 사람은 그들이 하나님을 본 것을 갑자기 알아 차리지는 못하지만 결국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본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을 빛의 아버지로서 본 것이다. 기적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을 능력의 하나님으로 본 것이다. 흠없고 순결한 그리스도의 생애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비쳐지고 그가 이루신 모든 은혜의 행동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던 것이다.
(2) 주님은 빌립에게 그가 믿을 만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10,11절).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므로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본 것임을 너희가 믿지 않느냐? 믿지 않을지라도 내가 한 말을 통하여 지금 믿어라."
①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기서 고찰해 보도록 하자.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며(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주님은 아버지와 자신을 두 인격으로 생각하고 계시지만 두 분으로 분명히 나누어졌다든지 그렇게 둘로 나뉘어질 수 있는 분이 아닌 오직 한 분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하나님으로, 빛 중의 빛으로, 피조물이 아닌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또한 아버지와 같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분으로 그리고 그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된 그러한 분으로 우리가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또한 아버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뵈온 것보다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②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믿어야만 하는 무슨 동기가 있나 살펴 보도록 하자. 그 동기는 두 가지인데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만 한다.
첫째, 그의 말씀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내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하셨고 7장 16절에 보면 "나의 교훈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들에게는 인간의 말같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대수롭지 않은 말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말씀은 만물을 창조 해낸 하나님의 지혜였고 그것을 운행하는 하나님의 의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의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영원한 인도자이신 하나님의 마음에 맞도록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 그의 행하신 일 때문이다.
"내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의 일을 행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어라."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a.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신과 인간의 성품의 피치 못할 연합을 통하여 ‘호 엔 에모이 메논’ - 즉 아버지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 하나님은 이 지상에 거하기 위하여 주 예수의 몸과 같은 성전을 지니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2:21). 여기에 진정한 지성소가 있는 것이다. 장막 안에 있는 지성소는 유형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몸을 지니고 계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신다(골 2:9). 아버지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발견되어진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찾으면 발견하게 될 것이다.
b. 아버지는 일하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많은 능력과 자비의 일들을 이루시었고 아버지께서 이 일들을 그를 통해 하신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구속 사업은 하나님 자신의 일인 것이다.
c. 바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그 일들을 통하여 우리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와 아버지 사이의 관계를 보다 분명히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의 창조의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완전함을 믿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권능이 그 속에서 역사하고(마 14:2) 그 안에서 하나님이 계셔 역사하시는 그러한 위대한 일들, 곧 구속 사업을 인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믿어야만 한다.
그리스도가 베푸신 기적은 그가 신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증거로써(2:11; 5:36; 10:37) 그의 제자들의 믿음을 견고케 해 주는 것이 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로 믿음을 얻게 하는 증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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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위로의 말씀(3)(요 14:12-14)
제자들은 주님과 이별해야 될 생각으로 슬픔이 마음에 가득 찼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이 떠나실 때, 그들 자신에게 다가올 근심으로 가득 찬 것이다.
주님이 그들 곁에 계시는 한 주님께로부터 돌보심을 받고 위로를 얻게 될 것이지만 만일 그가 그들을 떠나신다면 그들은 목자 잃은 양처럼 그들을 삼키려 하는 원수의 먹이가 쉽게 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시려고 그리스도는 여기서 그들이 이러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옷입게 될 것이라고 그들을 안위하고 계시다.
그리스도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면 그들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얻게 될 것이다.
Ⅰ. 지상의 위대한 권세(12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한 일을 저도 할 것이라."
이 말씀은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가 됨을 알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그의 하신 일을 통해 증명하신 그의 말씀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히려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즉 그를 믿는 믿음에 의해 기적을 또한 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떤 것보다 더욱 그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며 그는 기적 자체를 스스로 행하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같은 능력을 주셨던 것이다.
1. 주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일을 확신시키셨다.
(1) 그들은 주님께서 행하신 그러한 일들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일들을 함에 있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을 더 많이 얻게 되리라고 하셨는데 이러한 능력은 마태복음 10장 8절에서 주님께서 처음 그들을 내 보내셨을 때, 이미 경험한 바가 있었다.
주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문둥이를 깨끗케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는가? 제자들도 이제 그렇게 할 것이다. 주께서 죄인들을 위안하시고 회개시킴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셨는가? 제자들도 또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떠나갈 것이지만 그의 사업은 멈추지 않고 힘차고 성공적으로 영원히 진행될 것이다. 그 일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2) 제자들은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들을 하게 될 것이다.
①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위대한 기적들을 행할 것이다.
기적이란 적은 것이 아니며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어떠한 기적들은 특별히 위대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리스도는 그의 겉옷가로 병든 자를 고치셨지만 베드로는 그의 그림자로 병든 자를 고쳤으며(행 5:15), 바울은 손수건을 스치게 함으로 병든 자를 고쳤던 것이다(행 14:12). 그리스도는 한 나라에서 2. 3년 동안 기적을 행하셨지만 그의 제자들은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러 시대를 거쳐 그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던 것이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회가 주어진다면 보다 큰 기적들을 행하게 될 것이다. 믿음의 기도는 언제나 어디서든지 산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② 제자들은 은혜의 시대 속에서 계속 기적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승리를 얻었던 것보다 복음에 의해 더 큰 승리를 얻게 된다.
외부의 불리한 악조건 밑에서도 세계의 한 부분을 안전히 그리스도에게 향하도록 하게 하는 것은 정말 기적 중의 기적이다. 나는 이것이 특별히 방언의 선물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적적 현상은 성령 강림의 즉각적인 결과였으며 그것은 마음에 부어진 영원한 기적으로써 영광스러운 복음을 각 나라 사람들에게 그들 언어로 선포되도록 말이 터져나온 것이다.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표적이었고(고전 14:22) 어떤 다른 기적보다 그들을 확신시키는 데 있어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 이런 것들을 주시는 이유는 그가 아버지께로 가시기 때문이다.
(1) "내가 떠나갈지라도 하나님의 일이 중단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너희는 능력을 받을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2) "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 나는 너희를 그러한 능력으로 채워 줄 수가 있으며 내가 아버지께로 가 보혜사를 보내리니 너희는 그로써 능력을 받게 될 것이다"(행 1:8).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그 위대한 일들은 그리스도께서 높이 승천하셔 영광의 보좌에 오르신 이후에 된 일들이다(엡 4:8).
Ⅱ. 하늘의 위대한 권세.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할 것이다"(13,14절). 너희가 내 안에서 관계되어 있고 내가 내 아버지 안에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너희들도 그러한 위대한 능력을 행하게 될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떠나가신 후 그리스도와 교제를 계속하고 그로부터 능력을 얻는 방법은 기도인 것이다.
사랑하는 친구들 사이에 있어서 먼 곳으로 이별하게 되는 경우 그들은 서로 서로 서신을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마련해 놓는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께로 떠나가시려고 할 때, 그들 제자들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어떻게 주님에게 편지를 쓰며 또한 그들의 편지가 잘못 전달되거나 중도에 방치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전달 방법을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너희가 믿고 간구하면 성령을 통하여 너희에게 응답할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이후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에 있어서 개설되었던 가장 오래 된 방법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죽음을 통하여 그것을 활짝 열어 놓으셨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자유로운 교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 요구되는 겸손.
제자들은 간청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일들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나님께 빚으로 요구할 수 없으며 겸손히 간청해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파멸에 빠짐을 명심해야 한다.
(2) 허용된 자유.
"너희에게 유익하고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구하라. 너희가 요구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서 그것을 다 구하라. 너희가 일을 이루려 함에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나 혹은 먹을 것, 지혜, 대적으로부터의 해방, 기적의 능력 행함. 그 밖에 영혼을 회심시키는 거룩한 사업을 위해 간구하라." 무슨 일이든지 그것들은 은혜의 보좌 앞에 상달되어지며 환영받게 될 것이다.
2. 무슨 이름을 가지고 그들은 청원을 아뢰어야만 하는가? "나의 이름으로 구하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1절)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재로 탄원하는 것이다. 구약에 나타난 성도들은 그들이 주를 위해 기도하고(단 9:17) 기름 받은 자를 위해 기도할 때, 이러한 방식을 취하여 기도하기도 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중재는 복음에 의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났고 우리는 이제 확실하게 그의 이름으로 간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자들이 이와 같은 일들이 성령이 부어진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에 이러한 기도의 형식은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간구한다면 그 이름은 낯설은 것이 되기 때문에 성공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하늘에서 잘 알려져 있고 그것은 선한 이름이며, 대단히 귀중한 이름이다.
(1)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의 영광의 최상을 의미하며 우리의 기도에 있어서 최고의 위치를 점유하는 것이다.
3. 무슨 이유로 해서 그들 제자들의 기도는 그렇게 잘 이루어지게 될 것인가.
아버지께서 아들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다는 것은,
(1) 그들이 기도할 때,
기도의 목표가 됨을 꼭 기억해야만 한다.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야말로 기도의 중심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와 구원 사건을 통해 영광받으시도록 의도되어야 한다.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될지어다. 이 기도는 응답된 기도로써 충심으로 이렇게 기도하게 되면 다른 모든 간구들도 함께 봉헌되게 하는 능력을 지니며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해야 할 내용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통해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시고 이루어 주신다. 또한 이로써 아들 안에 있는 아버지의 영광은 분명히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선함은 구속주 안에 밝히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로부터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오고 그의 이름에 의해 발휘하게 될 때 이루어진다. 또한 사도들과 주님의 사역자들은 위대한 일들을 하게 되는데 이는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가르침이 진실되고 참됨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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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위로의 말씀(4)(요 14:15-17)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안위하시기 위하여 그러한 일들을 말씀하시고, 여기서는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고 계신다. 성령은 오시면 그들의 위로자가 되시고 이러한 주님이 분부하신 일들을 그들에게 모두 다 이루실 것이다.
Ⅰ. 주님은 약속의 이러한 경고를 전제하시고 있다(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계명을 지킬지니"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일은 일반적으로는 경건의 연습을 위해 그리고 특별하게는 사도로서의 직분을 신실하고 근면하게 수행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이를 보면,
1.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위안하실 때 그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킬 것을 명하셨다. 왜냐하면 우리는 위로를 기대하기 보다는 의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말인 parakalevw - 즉 훈계하다와 위로하다라는 두 가지 뜻을 모두 지니고 있다.
2. 제자들이 주님께서 떠나신 후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무엇이 그들 앞에 일어날 것인가 근심 중에 있을 때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의 계명을 지키기를 명하고 계시며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그들을 잘못되게 못할 것이다. 어려운 때의 하루 일에 대한 우리의 걱정은 그날 해야 할 의무에 관한 걱정으로 가득 차게 되곤 한다.
3. 제자들이 그리스도가 떠나시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슬퍼함으로써 그에 대한 자기네들의 사랑을 보이고 있고 또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며 슬퍼하고 있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만일 그들이 주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부인다면 이러한 약한 연민의 정을 보이지 말고 그들의 신뢰를 수행할 성실한 염려와 주님의 계명을 모두 복종함으로써 그것을 나타내 보일 것을 명하시고 계신다. 이것이 제사보다 더 낫고 눈물보다 더 나은 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4.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과 보혜사의 오심 등에 대한 귀한 약속들을 주실 때 그는 이러한 조건을 덧붙여 약속의 말씀을 하고 계신다. "만일 너희가 나의 예명을 지킨다면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라." 그리스도는 아무 사람이나 그들을 지도하는 분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옹호해 주신다. 성령의 지시에 움직여라. 그러면 너는 성령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Ⅱ.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위대하고 말할 수 없는 축복을 약속하시고 계시다(16. 17절).
1. 그들은 다른 보혜사를 가지게 될 것을 약속받았다. 구약성서의 약속은 메시야의 오심이었으나, 이 위대한 신약 성서의 약속은 보혜사의 오심인 것이다(행 1:4). 한 약속이 슬픔 속에서 위안을 구하고 있는 제자들의 당면한 고난에 떨어진 것이다. 여기서 살펴 보자.
(1) 약속된 축복(알론 파라클레톤) 이 말은 요한1 서 2잘 1절과 그리스도의 말씀 중 단지 여기서만 사용되었는데 요한 1서에는 그것이 변호자로 번역되었다. 레미스트(Rhemist)들과 하몬드(Hammond) 박사는 헬라어 보혜사(Paraclete)의 뜻을 그대로 보존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사도행전 9장 31절에서 보혜사로서의 모든 직임을 내포하고 있는 성령의 위안이라는 말을 찾아 볼 수 있다.
① 우리는 다른 보혜사를 가게 될 것이다. 성령의 직임은 그들 제자들과 그 밖에 다른 모든 사람들을 변호해 주는 그리스도의 변호 즉,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괴로움을 돌보고 탄원해 주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업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고통 당할 때 그들을 위해 말씀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떠나가실지라도 그들은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성령이 그들 안에서 계속 말씀해 주시고(마 10:19, 20), 이러한 대변인에 의해 탄원되어지는 청원은 꼭 이뤄지고야 만다.
② 너희들은 또 다른 주와 선생, 그리고 다른 훈계자를 가지게 될 것이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지냈을 때에는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의 할 일을 격려하고 훈계하셨다. 그러나 주님이 떠나시는 이 시점에서 주님은 비록 고요하게 일하시지만 이러한 일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할 한 분을 그들에게 머무르게 하신 것이다. 얀세니우스(Jansenius)는 이러한 분을 가리켜 가르치는 일과 보호하는 이 두 가지 일을 모두 하는 분으로서 변호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③ 다른 위로자.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위로자로서 기대되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기대되는 메시야의 이름 중의 하나는 위로자(Menahem)였다. 탈굼(Targum)은 메시야의 날을 위안의 날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늘 그들을 위로했다. 그들을 떠나려고 하는 이 순간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인 다른 위로자를 주님은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2) 이러한 축복의 수여자. "아버지께서 그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요, 이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바로 그분이시다." 모든 인류의 구세주이신 그 아들을 주신 바로 그분이 그와 똑같이 모든 인류의 위로자이신 그의 성령을 주실 것이다. 아들로서의 주님이 제자들에게 위로자를 보낼 것을 말씀하고 있다(15:26). 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보내시는 분은 바로 아버지이시다.
(3) 이러한 축복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그것은 주 예수의 중보를 통해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다.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14절)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라는 것과 왕이시며 또한 제사장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자신이 모든 것을 대신하여 간구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대제사장으로서의 그가 인간들을 중재하도록 책임을 맡았고 그는 왕으로서 아버지로부터 심판할 권세를 위임받으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내가 아버지께 간구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께서 원하시지 않으므로 그 일을 위해 떼를 쓰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은 그의 공로로 이루어지며 그의 중보에 의하여 그같은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4) 이러한 축복의 연속. "그가 너희와 영원히 머무시도록." 이 말씀은,
① "너희가 살아 있는 한 너희와 함께 하시며 너희는 위로자가 안 계신다거나 내가 떠난다고 슬퍼하는 것같이 그의 떠남을 슬퍼하게 될 염려도 없는 것이다." 잠간 위로받지 못하게 되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한 위로가 지속되리라는 확신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은 임기응변의 말이 아니다. 공적인 사명을 위해 택함을 받은 그들은 집단생활을 항상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 흩어진 어떤 곳에서든, 어떤 재난에 직면해 있든 그들의 위로자가 되어야 하므로 주님의 이 말씀은 매우 진실되고 적합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② "너희가 사라질지라도 너희 후계들과 끝까지 함께 할 것이며 그들의 목회 속에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③ 이러한 위로의 최고의 상태는 모든 성도들의 영원한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위원 속에서 성취될 것이다.
2. 이러한 위안자는 진리의 성령이시다(16,17절).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주님과 대등한 분으로서 위로자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하나님의 영을 받을 것이요, 그는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아들과 같은 분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1) 약속된 위로자는 영이시며 인간들의 영 위에 임재하는 분으로서 내적으로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방법으로 그의 일을 성취하실 것이다.
(2)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그는 너희에게 진실함을 나타내 보이시며 너희를 끝까지 돌보실 것이다. 그는 너희에게 진리를 가르칠 것이며, 너희 마음을 진리의 지식으로 비추며 진리에 대한너희의 신앙을 견고하게 할 것이다. 또한 진리에 대한사랑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방인들은 우상 숭배로 유대인들은 전통 때문에 커다란 실책과 잘못에 빠졌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은 너희들을 모든 진리에로 인도할 뿐 아니라, 너희들의 역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도 진리에 이르도록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며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기름 부음 받은 그러한 영 즉, 그리스도의 영이신 것이다."
(3) 세상은 그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신다.
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선택받고 부름받았기 때문에 세상과 구별된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다른 세상의 자녀들이며 상속자인 것이다.
② 진리의 영을 받을 수 없도록 이 세상에 푹 파묻혀 있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세상의 영과 하나님의 영은 정반대가 된다(고전 2:12). 세상의 영은 높아지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으나 하나님의 영은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의 임금들은 임금으로서 지식이라는 유리한 도구를 지니고 있으나 이를 극도의 편견을 가지고서 사용하므로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알지 못한다(고전 2:8).
③ 사람들은 진리의 영을 받을 수 없는데 그들은 그 진리의 영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성령의 위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처럼 어리석게 보인다. 또 율법처럼 복음의 위대한 사실들 역시 이상하게 보인다. 그들의 판단은 이것을 이해하기에 미치지 못하며 오히려 성령의 일을 너희가 그들에게 말한다면 그들은 너희들을 야만인처럼 취급하게 될 것이다.
④ 진리의 영을 잘 알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경험에 의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진리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너희는 그와 함께 교제하며 이로써 진리의 영을 알 수밖에 없다. 그들 제자들은 어떤 점에 있어서 성령으로 옷입혀지게 된다. 무엇이 그들로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며 역경 속에서도 그와 함께 계속 지내도록 하는 것일까?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심으로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 기적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성도들의 경험을 통하여 이 약속의 말씀은 명백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의 자녀에게 있어서 역설처럼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명한 이치로 드러난다.
⑤ 성령과의 교제를 경험한 사람들은 주님이 계속 함께 하신다는 확증을 지니고 있다. 성령은 축복의 영으로써 계속 너희 안에 거하실 것이다. 성령의 내주하는 경험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이 성령이 얼마나 위대한지 또 어떻게 그를 영접하고 환영해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성령은 그들 안에 공중의 빛같이, 나무의 수액같이 몸 안의 영혼같이 그들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그와의 친교는 친밀하게 이루어지고 결코 분리될 수 없게 된다.
⑥ 성령의 선물은 제자들을 세상과 구별짓게 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특수한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은 그들에게 있어서 감추어진 만나이며 흰돌이다. 나타나 보이지 않는 위로일수록 고요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선택하심의 특성이며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의 얻을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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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위로의 말씀(5)(요 14:18-24)
친구들이 서로 이별할 때, "아무쪼록 네 소식 좀 자주 전해다오"하고 부탁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이와 같이 그의 제자들에게 당부하셨고 떨어져 볼 수 없더라도 마음이 멀어져서는 안 될 것을 말씀하셨다.
Ⅰ. 주님은 그들을 계속 돌보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18절). "나는 고아와 같이 너희를 버려 두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떠라가지만 너희에게 보혜사를 남겨 두며 나는 다시 올 것이다." 그들과 헤어져 떠나시는 것은 커다란 슬픔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별은 마지막이요 최종적 비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자들 생각과 같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1. 주님의 떠나심은 모든 일의 종결이 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이 세상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너희를 떠나가지만 나는 너희에게 위로를 남기지 않고 떠나는 것은 아니다." 어리고 부족하지만 제자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영접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이제 그들의 아버지가 되는 축복을 받고 고아로 남겨질 그들이 자비를 얻게 된 것이다. 주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영원한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때때로 슬픔이 닥쳐 오지만 결코 고아처럼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2. 주님의 떠나심은 마지막 이별이 아니다. 주님은 다시 분명히 오실 것을 말씀하셨다.
(1) "나는 부활 후에 너희에게 다시 올 것이다." 주님은 때때로 삼일 후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다.
(2) "나는 성령으로 매일 너희에게 올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려고 계속 오시는 것이다.
(3) "나는 확실히 이 세상 마지막에 올 것이다. 그때에 즉시 강림하여 너희를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신다는 생각은 그가 떠나가심으로 고아로 남겨진다는 생각을 말끔히 씻어 준다. 주님은 잠시 후에 오실 것이며, 우리는 그를 다시 영접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슬픔을 위로해 주며 주님이 우리와 가까이 계신다는 것은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Ⅱ. 주님은 그들 제자들이 그와 교제를 계속하며 관계를 맺게 될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19,20절). "잠시 동안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그가 세상에 계시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후에 세상은 더 이상 그를 보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다시 살아나셨지만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시지 않기 때문이다(행 10:41). 악의에 찬 세상은 그리스도를 보고서 고함을 지르고 그를 결국 내쫓고 못박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가 완전히 처형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세상은 더 이상 그를 보게 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믿음의 눈을 가진 자만이 주님을 영원히 보게 될 것이다. 세상은 그가 다시 두 번째 세상에 오실 때까지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주님이 안 계실지라도 그와 더불어 교제를 계속할 것이다.
1. "세상은 나를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후 육안으로 그를 보았다. 주님은 확실한 많은 증거로써 그들에게 자신이 부활하셨음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행 1:8). 그들이 주님을 다시 뵈었을 때 그들은 기뻤다. 주님은 이제 만민의 주로서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그들은 승천하신 이후에도 믿음의 눈을 가졌기 때문에 그를 본 것이다. 주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세상은 보지 못하나 그들은 본 것이다.
2. "내가 부활했기 때문에 너희도 또한 살 것이다." 제자들이 슬퍼한 이유는 그들의 주가 죽으셨고 그들도 그와 함께 죽는 것 이외에는 별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지 않는 다고 말씀하셨다.
(1) "나는 살아 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도 그와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신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가 생명을 자신 안에 지니고 있어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날 것이고 또한 정녕 그가 살아 계심을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우리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 알고 있는 한 결코 고아가 되지 않을 것이다.
(2) "그러므로 너희도 또한 살아나리라."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과 결속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한 믿음에 의해 그와 결합된 자들은 또한 살 것이며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적인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숨기어져 있다. 또한 머리와 뿌리가 살아 있는 한 줄기와 가지 역시 살아 있다. 그들의 몸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인하여 살아날 것이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장차 올 세상에서 그들의 몸은 영광스럽게 변화되고 축복받게 될 것이다(사 26:19).
3. "너희는 이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20절). 내가 영화롭게 된 때 곧 성령이 부어지는 그 때에 너희는 지금 너희가 아는 것보다 더욱 분명하고 확실하게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 이러한 영광의 신비는 하늘에서 완전히 알려지게 될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주님 있는 곳으로 영접할 그 때에 분명히 뚜렷하게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장차 될 형태로 지금 보이지 않지만 그때에는 과거의 우리가 나타나게 된다.
(2) 사도들에게 성령이 부어진 이후 그들은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성령이 부어짐으로 신의 광채가 비추어 그들의 눈은 더욱 분명히 보게 될 것이고 그들의 지식은 깊어져서 광범위하고 특별하게 될 것인데 이는 주님이 세상 계실 때 눈먼 자를 처음 만지심으로 나무들이 걸어가는 것을 본 것을 다시 주님이 두 번째 만지심으로 눈먼 자가 완전하게 된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3) 제자들은 진리의 성령을 받음으로써 모든 것을 충분히 알게 되고 만족하게 되었는데 이는 이러한 지식 안에서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① 그리스도가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과 그와 아버지는 하나이시라는 사실은 제자들 속에서 그들을 위해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통해 볼 때 분명해진다. 그들은 기독교와 자연종교 속에 경탄할 만한 만족과 조화가 들어 있으며 후자가 전자 속에 결합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로써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② 그들은 그리스도가 그들 안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령의 경험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요일 3:24).
③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시고 그리스도 안에 그들이 서로 분리할 수 없이 긴하게 관계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는 그들도 자연히 살아나게 되리라는 명제가 성립하게 된다.
첫째, 그리스도와의 결합은 신앙인들의 생명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관계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관계는 모두 그들의 커다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이러한 연합의 지식은 그들에게 있어서 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리스도안에 그리스도는 그들 안에 계셨다. 그러나 주님은 이와 같은 사실을 큰 은혜의 행동을 통하여 그들이 알게 되고 위로를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관계와 그러한 일에 대한 지식은 때때로 분리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Ⅲ.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어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21-24절).
여기서 다음의 문제들을 고찰해 보자.
1.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보시고 영접하실 사람은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다. 이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여기서 말씀하신 내용들이 현재 그를 따르는 자들만이 아니라, 계명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을 가리키는 것임을 나타내신다.
(1) 제자됨의 품위(품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무. 우리가 그리스도의 계명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나 고백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계명을 가진 사람들은 귀에 들리는 소리로써, 눈 앞에 쓰여진 글씨로써, 계명에 대한 지식으로써 그 계명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으로써 충분하지 않다. 진정 우리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임을 입증할 수 있도록 계명을 지켜야만 한다. 우리가 계명을 머리 속에 가졌다면, 그것을 마음 속에서 지켜야 하고, 삶 속에서 실행하여야 한다.
(2) 제자의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의 품위. 이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로 보여지게 된다. 즉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를 향하여 말하는 방법을 알고 훌륭한 기지(機智)를 가진 사람도 아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놓을 자산(資産)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다만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뜻한다. 주목할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리스도의 법에의 복종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하여 순복하는 신앙이며, 의무와 존경과 복종에 입각한 사랑이며, 그리스도의 뜻에 합치하고 그의 지혜 속에서 만족을 누리는 사랑인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무엇으로 보상하시는가? 많은 보상이 있다. 특히 그리스도의 어떤 사랑도 잃지 않는다.
(1) 아버지의 사랑을 가질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21절).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향한 선한 뜻 안에서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만족스런 사랑을 약속하셨다(잠 8:17 .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사랑하시고, 미소를 주시고, 포옹해 주신다는 것을 알도록 하신다.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아들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2)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질 것이다. "나도 그를 사랑하여……"라고 하신 그리스도는 신인(God-man)으로서, 중보자로서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로서 사랑하시고 그리스도께서는 형제로서 사랑하실 것이다. 창조자는 사랑하시므로 인간의 행복이 되어 주시고, 구세주는 사랑하시므로 인간의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 하나님의 본성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보다 더 찬란히 빛나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업적 가운데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보다 더 영광스럽게 나타난 것도 없다. 이 두가지 사랑이야말로 "진실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면류관과 위안이 되고, 은혜와 영광이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성도들을 떠나 계시지만 그들에 대하여 계속적인 사랑을 약속하신다. 즉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안 계실지라도 그는 믿는 자들에 대한 애정을 유지하실 뿐만 아니라 그 애정을 실행하신다. 또 그들을 마음에 품으시고 중재역할까지 해 주신다.
(3) 사랑의 위안을 얻을 것이다.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에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으로써, 이들을 다 포함시켜 해석해야만 된다. 그리스도의 영적인 현현과 사랑은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사랑과 그 사랑의 크기(엡 3:18, 19)를 신자들에게 깨우쳐 주실 때, 은사를 북돋으시고 실행으로 이끄시며 자기 안에서 성도의 위안을 확장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기에 대한 성도들의 관심의 증거를 확인할 때, 그들에게 사랑의 표와 자비심의 체험과 그의 나라와 영광의 확증을 주신다. 그런 다음에야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나타내 보이시기를 기뻐하는 자가 아니면 아무에게도 나타나지 않으신다.
3. 그리스도의 약속에 따르는 문제.
(1) 제자 중의 한 사람이 그의 의문과 놀라움을 나타내었다(22절). 이것을 관찰해 보자.
① 이 말을 한 사람은 "가룟인 아닌 유다"였다. 유다(Judah, or Judas)란 이름은 유명한 이름이다. 이스라엘의 가장 유명한 지파도 유다 지파이다. 그리스도의 제자 중에 두 사람이 이 이름을 가졌는데, 한 사람은 배신자 유다요 다른 한 사람은 야고브의 형제 유다이다(눅 6:16). 또 한사람 유다는 예수의 형제 유다였다(마 13:55). "레베오"와 "다대오"라고 불리워진 이 사람이 신약 성서 마지막 서신인 유다서의 저자였다. 이 사람이 여기서 말한 유다이었다. 여기서 생각해 보면,
첫째, 똑같은 이름을 가졌음에도 선인과 악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름 때문에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다거나,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름 때문에 사도 유다가 악인이 안 된 것도 아니고, 배신자 유다가 선인이 안 된 것은 결코 아니다.
둘째, 그러나 복음서의 저자들은 이 양자를 주의 깊게 구분한다. 충실한 유다와 말씀하실 때, 저자는 "가룟인 아닌" 유다란 말을 덧붙인 것이다. 훌륭한 사람과 비열한 사람을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② 유다는 "주여, 어찜입니까?"라고 말했다.
첫째, 이 말은 그의 이해력이 부족하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러한 해석을 한다. 그는 메시야 왕국이 현세적으로 도래하기를 기대하였다. 이 왕국은 외적으로 화려한 의식과 권력 가운데서 출현할 것이고 온 세상 사람들이 놀라게 뢰 것이었다. 그래서 유다는 "어찌하여 우리들에게만 제한되었을까?"하고 생각하였다. ‘티 게고넨’(어찜입니까?) - "이제 과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자기를 열어 보이시지 않으시고 도리어 이방인들이 빛으로 나아오며, 임금들이 부활의 빛으로 오리라는 말씀은 어떻게 된 것일까?" 우리들 자신이 곤경에 빠지는 것은 그리스도 왕국의 본질을 세상 나라처럼 생각하는 오류 때문인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
둘째, "주여 어찜입니까?"란 말은 그의 그리스도에 대한 애정의 강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는 그들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각별한 은총에 대하여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다윗의 그랬듯이(삼하 7:18) 하나님의 은혜의 친절하심에 대하여 크게 놀라워하였다. 과연 우리 속에는 그렇게 위대한 은총을 받을 만한 것이 있는가?
우리는 다음 사실에 주목해 보자.
a.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시는 방법은 특별하다. 즉 어두움에 대한 세상에게는 나타내시지 않고 제자들에게만 하시며, 유능하고 존귀한 자에게는 나타내시지 않고 비천한 자에게 하시며, 지혜있고 총명한 자들에게는 나타내시지 않고 어린 아이들에게 하신다. 특별하신 은총은 지나쳐 버린 사람도 존중하고, 마주친 사람도 존중하듯이 매우 정중한 것이다.
b. 이것은 우리들의 눈에는 정녕 신기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설명하기 어렵고, 주권적인 은혜와 자유 안에 귀착되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버지께서는 그것이 당신에게 선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아주 공평하게 취급하신다.
(2) 이 질문에 관한 그리스도의 답변은 23, 24절의 말씀을 설명하시고 확인하신다. 그는 유다의 질문 속에 있는 약점을 간과하시고 위로의 말로써 계속하신다.
① 그리스도께서는 더 나가서 축복의 조건을 설명하신다. 그 조건은 그를 사랑하는 것과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 그는 사랑과 복종 사이에 있는 불가분의 관계를 보여 주신다. 즉 사랑은 뿌리요, 복종은 그 열매이다.
첫째,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그 마음 속에 있으면 복종도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정녕 나를 사랑하면, 그 사랑이 그의 속에서 계명에 구속력 있는 원리가 될 것이요 또한 그는 의심 없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있으면, 거기에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을 가치가 있으며, 그의 권위에 대한 존경심도 있고, 그의 지시와 다스림에 대한 전인적(全人的)인 온전한 복종이 있다. 사랑이 있으면 물론 의무가 수반되고 평안함과 자연스러움이 있고, 감사의 원리가 솟아난다.
둘째, 다른 한편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그에게 복종하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24절). 이 말씀은 여기서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발견으로써 나온다. 그들이 하려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확실히 진리를 믿지도 않고 그리스도의 법에 순종치도 않는다. 이런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헛된 이야기이거나, 좋아하지 않고 어려운 말이 될 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시려고 하지 않는 이유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말을 지키지 않고 그리스도를 모욕하기 때문이다. 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모르는 생소한 사람들과 가까워지시겠는가?
② 그리스도께서는 약속을 더욱 더 설명하신다(23절).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나도 나 자신을 그에게 나타낼 것이다."
첫째,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다." 이 말은 앞서 21절에서 말씀하신 것인데, 여기서 우리의 믿음을 확고히 하기 위해 되풀이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위대한 하나님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이 되었던 인간들을 당신의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유다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에게, 자신을 보이시겠다는데 의아해하였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음 질문의 대답이다. "내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면, 왜 나도 당신과 함께 자유하지 않습니까?"
둘째,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자기현현(自己顯現)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며, 그의 은총을 나타내는 것이다.
a. "내가……하리라"(I will) "우리가 ……하리라"(We will)고 하셨는데, 여기서 우리 즉 아들과 아버지는 한 분이다. 14장 9절을 보라. 하나님의 빛과 사랑은 구속자의 빛과 사랑 안에서 인간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는 곳마다 그대로 하나님의 본성이 나타났다.
b. 멀리서 "저에게 나 자신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저에게 가까이 저와 함께 되기 위하여 "우리가 저에게 오리라"고 하셨는데, 그러한 말씀은 진실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령에 대하여 강력한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뜻한다.
c. "내가 나를 잠간 보여 주거나, 저에게 짧고 유동적인 만남을 허락하리라"고 하시지 않고,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는데 이 거처야말로 사람들에게 만족스럽고 영구불변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복종하는 신자들을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저들을 사랑하심으로 기쁨을 누리시며, 저들에게 사랑 안에서 거하실 것이다(습 3:17). 그는 마치 가정에서와 같이 저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③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약속을 붙잡도록 격려하시는 것과 그 조건을 살피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것에 한 좋은 동기를 주신다.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24절). 이러한 의미를 자주 말씀하셨다(7:16; 8:28; 12:44 를 보라). 그런데 여기서는 더욱 적절한 중에 말씀하셨다.
첫째, 의무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교훈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지켜야 할 그리스도의 말씀이 곧 바로 아버지의 말씀이며, 그의 뜻이 곧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의 위로의 중심도 그리스도의 약속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약속에 의존하여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담대하게 하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충분한 보호가 되는지 안 되는지 조사하도록 약속은 우리와 관계를 갖는다. 그래서 이 말씀은 약속이 그리스도의 노출된 말씀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라는 사실로써 우리를 만족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씀을 믿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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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위로의 말씀(6)(요 14:25-27)
여기서 그리스도는 두 가지를 가지고 그의 제자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Ⅰ. 제자들은 성령의 가르치심을 받게 될 것이 25, 26절에 나타나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점을 고찰해 보도록 하자.
1.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이 오셔서 그들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을 다시 일깨워 주실 것을 말씀하고 계시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일러 준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1) 주님은 그가 전에 하신 말씀을 철회하거나 취소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다 견고하고 확실하게 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주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을 다시 되풀이 하고 계시면 그가 하신 말씀을 성령을 통하여 더욱 확실하게 하실 것이다.
(2) 주님은 이제 제자들과 육체로 함께 거하시는 그러한 방법을 궁극적으로 변경하고 계신 것이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과 이 세상에서 함께 자내실 동안에는 늘 걱정이 없었으나 이제 떠나려 하시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이를 생각해 볼 때 주님이 우리 곁을 떠나려 하실 때 제자들의 고백과 같이 주님이 우리와 계속 머무시도록 당부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다른 선생님을 그들이 기다리도록 당부하고 계시며 제자들에게 그가 떠나간 후 어떻게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인가를 알려 주고 계시다(26절). 그는 이 말씀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다른 보혜사를 아버지께서 보내 주시리라는 것을 미리 말씀하셨으나(16절) 여기서 또다시 말씀하시고 있다. 이스라엘의 위로자로서 성령을 기대하여야 한다. 주님은 여기서 성령을 어떻게 보내실 것인가 제자들에게 일러 주셨다.
(1) 주구를 위하여 성령을 보내실 것인가?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나의 오이었을 따라 내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실 것이다. 성령은 나의 대리자며 나를 대표하는 분이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셔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업을 계속 진행하시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라 불리워지며 오셔서 그리스도를 변호하고 그의 일을 이루신다.
(2) 성령은 무슨 사명을 가지고 오시는 것일까? 성령은 두 가지 해야 할 사명을 띄고 계신다.
①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선생으로서 일하시었다. 만일 미숙한 제자들을 두고 떠나신다면 제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왜 성령은 오셔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변함없는 교사가 되어야 하는가? 성령은 그들에게 그들 자신이 배워야 하며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에 대하여 배워야 하는데 이러한 일을 성령이 오셔서 이루신다. 이사야 59장 21절을 찾아 보라.
② "성령께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제자들은 주님이 그들에게 가르쳐 주신 좋은 교훈을 잊었으나 그것이 필요할 때 알고 싶어할 것이다. 제자들은 정학하게 그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서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복음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그 말씀을 이해하도록 깨우쳐 주시며 그들이 배운 것을 생각하게 해 주실 것이다. 모든 사도들은 말씀을 전파했고 몇몇 사도들은 예수께서 하신 일과 가르쳐 주신 말씀을 글로 기록하여 여러 나라와 세대에 전하기도 했다. 만일 제자들 홀로 남겨졌다면 그들은 필요한 말씀들을 다 기억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불확실한 기억을 통해 다른 것들이 잘못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하신 것을 바로 전하고 기록하게 하도록 성령의 약속이 주어진 것이다. 모든 성도들에게 있어서 은혜의 성령의 약속이 주어진 것이다. 모든 성도들에게 있어서 은혜의 성령은 기억나게 하는 자로서 주어진다. 또한 우리들은 우리가 듣고 아는 것을 하도록 믿음과 기도로써 성령께 의탁하게 된다.
Ⅱ. 제자들은 주님의 평안을 함께 맛보게 될 것이다(27절). "평안을 내가 너희에게 끼치노라." 주님은 세상을 떠나실 때 그의 뜻을 이루시었다. 주님은 아버지께 그의 영혼을 부탁하고 맡기셨다. 그 의 몸은 요셉의 손에 장사되도록 남겨졌으며 그의 입으셨던 옷은 군병들에게 남겨졌다. 또한 주님은 그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돌보도록 맡기셨다. 그러나 이제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그의 가련한 제자들에게는 무엇을 남기셨는가? 주님은 은과 금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 곧 그의 평안을 남겨 주셨던 것이다. "내가 너희를 떠나가지만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라. 너희는 이 평안을 얻을 자격과 그것을 소유할 권한을 얻게 될 것이다." 주님은 온화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죽어가는 아버지가 그의 남은 자녀들에게 유산을 남겨 주는 것처럼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라"라고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계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값진 유산이 아닐 수 없다.
1. 여기서 남겨진 유산은 "나의 평안" 그것이다. 평안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주어졌으며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두 필요한 선, 참되고 진실한 선한 모든 것, adll 얻어진 약속된 선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 평안은 화해와 사랑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남겨진 평안은 하나님과의 평안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평안이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평안을 특별히 의미하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義)의 의식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평정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마음의 자제나 용서 같은 것과는 대치되는 개념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평안이기 때문에 이것을 그리스도께서 그의 평안이라 부르시고 있다(엡 2:14). 그것은 그가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사신 평안이며 우리에게 전파된 평안이며 천사들이 주님이 태어나실 때 축하했던 바로 그 평안인 것이다(눅 2:4).
2. 이러한 유산은 누구에게 남겨진 것인가? "고난은 겪고 평안을 필요로 하게 될 너희 제자들과 나를 따르는 너희에게, 또한 평안의 아들로서 그 평안을 받기에 합당한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라." 이런 유산은 교회의 대표자들과 그 후계자들 그리고 각 시대에 있어서의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겨진 것이다.
3. 어떠한 방법으로 평안이 남겨졌는가?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즉,
(1) 너희에게 평안이 있도록 평안을 보충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고 진정한 축복이다.
(2)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웃으며 주는 그러한 평안이 아니며 또한 세상의 찌그러진 얼굴로써 그것을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러한 평안이다.
(3) 내가 너희에게 주는 선물들은 이 세상이 그의 자녀들과 애호자들에게 주는 것과 같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세상의 선물은 단지 몸과 시간에 관계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선물은 영원한 것으로써 영혼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은 허황된 것을 주어 우리를 속이지만 그리스도는 참된 축복을 주셔서 결코 우리로 낙심케 하지 않으신다. 세상은 주었다가 도로 빼앗지만 그리스도는 결코 빼앗지 않는 좋은 선물을 주신다.
(4)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보다 아주 무한한 가치가 있다. 세상의 평안은 무지에서 시작되고 죄로 지속되며 끝없는 고통으로 끝나지만 그리스도의 평안은 은혜로 시작되어 죄 없이 지속되며 영원한 평안으로 끝을 맺는다. 죽음으로 이끄는 혼수 상태와 원기를 회복시키는 수면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평안과 세상의 평안 사이에는 이러한 차이가 있다.
4. 그들은 주님이 주신 평안을 무슨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너희의 마음으로 근심하지 말라. 과거나 현재의 불행으로 인해 앞으로 어떠한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라. 은혜의 계약에 관계되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은 슬픔과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이것은 큰 일의 결과로써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주님께서 1절에서 "너희 마음으로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는 주님께서 그럴 만한 충분한 근거를 예비하셨으므로 거듭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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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위로의 말씀(7)(요 14:28-31)
그리스도께서는 그 제자들이 그가 떠남에 대해 왜 근심하게 되지 않을지 또 다른 이유를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것은 주님의 마음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님은 제자들이 그를 바라보고 인내하게 할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무엇이 그가 십자가를 참고 수욕을 당하는 것을 참게 하였는지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는 스스로 안위받으셨다.
Ⅰ. 그리스도는 떠나셨지만 다시 오실 것이다. "너희는 내가 말할 것을 지금까지 들어왔지만 말하노니 나는 다시 오실 것이다." 자 우리가 여기서 그의 두 번째 다시 오심에 관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는 재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수난과 슬픔, 두려움, 걱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리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빌 4:5).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고통과 죽음 속에서도 그가 다시 와야 하는 사실로 인하여 자신을 격려하고 계신다. 그가 다시 오시리라는 바로 그것이 또한 죽음을 맞는 우리들을 위로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다시 오도록 떠난다. 우리는 헤어짐이 오히려 좋은 밤이 되고 최후의 이별이 아니므로 이러한 이별은 친구로서 맞이하는 것이다(살전 4:13, 14).
Ⅱ. 주님은 그의 아버지께로 가셨다. "너희가 만일 나를 사랑하였다면 너희가 슬픔으로 행동한 것과 똑같이 너희의 애통하는 대신 기뻐했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떠나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께도 가게 되는데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으로 내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나의 진보와 너희의 유익이 될 것이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시다. 여기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1. 주님이 고아들을 돌보고 조인들을 중재하기 위해 아버지께로 가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기쁨의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주님의 승천은 어두운 면만 있을 뿐 아니라 밝은 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의 부활 후 "내가 너희의 아버지 그리고 나의 아버지께로 올라 가노라"는 메시지를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었다(20:17).
2. 그 이유는 아버지가 그보다 크시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와 그러므로 함께 할 때의 그의 직위는 현재보다 더욱 우월하고 영광스러웁게 되리라는 것이다.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현재 그가 지니고 있는 위치보다 훨씬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Hammond 박사 주장). 또한 아버지 자신에게로 가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로 그가 가 계신 곳으로 이끄는 것은 그의 임무의 최종 목표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제자들이 그들의 행복을 꿈꾸는 것보다 더 큰 어떤 것에 대한 기대와 꿈을 심어 주고 계시는 것이다. 주님이 모든 것 중에 모든 것이 되실 그의 아버지의 왕국은 중보자로서 일하셨던 이 세상 왕국보다 더 클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들이 주님의 굴욕의 슬픔을 통곡함보다 그가 부활 후 영광에 이르신 것을 기뻐해야 한다. 또한 그가 가 계신 곳에 우리도 그와 함께 있게 되리라는 사실을 기뻐해야 하는데 이러한 일은 모두 주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느껴지도록 그들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만일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로 말미암아 계속 고통 속에 지내야만 하며 또다른 반면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평안히 거하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게 될 것이다.
Ⅲ. 그가 떠나 가게 되심을 그가 승하시기 전에 미리 그가 예언하신 것은 그 제자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기 위함인 것이다(29절).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보혜사를 보내리라는 것을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이름은 그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기 위함이다." 13잘 19절, 16장 4절에서 이러한 이유를 알아 보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죽는다는 사실이 제자들을 슬프게 하고 당황케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결국 두 가지 면으로 그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는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에, 주님은 그의 죽음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1. 이러한 일들을 미리 말하신 것은 그가 신적인 예견을 지니고 있으며 그날이 다가오기 전에 이미 다 알고 계심을 보여 주기 위함인 것이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있을 때 그는 주님이 그곳에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나 주님은 그 일을 뜻하고 계신 것이다.
2. 이러한 일을 미리 말씀하신 것은 신의 목적과 계획에 의해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영원한 위로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고 이 일이 이루어질 때에 근심치 않게 하도록 미리 말씀하셨던 것이다. 말씀의 시련은 그 후에는 진정한 유익을 초래하게 하므로 현재 무거움을 우리에게 안겨 주지만 시험을 통해 그것은 대단히 귀한 것이 된다(벧전 1:6).
Ⅳ. 주님은 그가 떠나 가심으로 사탄과 싸움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사탄결국 누르고 승리할 것을 확신하셨던 것이다(30절). "앞으로는 내가 할 말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을 부어 주기 위해 옮겨 가야 하므로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이 말씀 하신 후에도 많은 유익한 말씀을 나누셨지만(15, 16정)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계속해 온 말씀보다는 적은 말씀인 것이다. 그의 때라 곧 다가오므로 기회가 없기 때문에 주님은 지금 그들에게 자세하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자 이제 오래 이야기할 수 없으니 요점되는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리는 빨리 숨이 멈추게 됨을 명심하고 항상 좋은 것을 숨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병들어 죽게 될 경우 우리에게 유익한 이야기들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건강할 때에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충고를 해 주어야 한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다른 해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 임금이 올 것이다." 주님은 사탄을 이 세상 임금으로 부르고 계시다(12:31). 제자들은 그들의 주님이 세상 임금이 되기를 꿈꾸고 있으며 그들은 주님 밑에서 도도하게 임금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이 세상 임금의 그런 원수라고 말씀하고 계시며 이 세상 임금들은 주님에 의해 움직여지며 통치되고 있는 것이다(고전 2:8). "세상 임금은 내 안에서 아무것도 차지할 것이 없다." 여기서,
1.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장차 겪어야 할 싸움은 사람들과의 싸움뿐 아니라 어두움의 권세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예견하셨던 것이다. 사탄은 주님에게 이 세상 나라를 주겠다고 시험하였다. 사탄이 주님에게 이 세상 나라를 바치겠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를 이 세상 임금이라고 경멸하셨던 것이다. 그후 사탄은 그에게서 잠시 떠났으나 주님은 이제 지금 사탄이 다시 모여서 격렬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으며 유혹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그 일을 공포를 통해 얻으려고 준비하고 있음을 알려 주셨다. 시험에의 예고는 우리에게 그것을 제지함에 있어서 매우 유리한 이점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경고를 미리 해 줌으로써 우리가 미리 준비하고 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한 사탄은 항상 우리를 대항해 오는 것을 명심하고 방비하여야만 한다.
2. 주님은 싸움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시는 분으로 확신되어 진다. ‘우크 에케이 우덴’(14:30) - 즉 사탄은 내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 이 세상 임금으로 공포 속에서 활동하도록 권한을 주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탄은 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히 2:14). 유대인들은 사탄을 사형 집행인과 같은 죽음의 사자라고 불렀다. 그리스도는 악한 일을 한 적이 없는 분이므로 사탄은 그를 제어할 권세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사탄은 그리스도를 못박게는 하였지만 그를 놀라게 하지는 못했고, 그리스도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지만 그를 절망에 빠뜨리지는 못했다. 사탄이 우리를 괴롭힐 때는 그가 우리를 소란케 하는 그 일의 원인을 우리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우리가 범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탄은 그리스도를 괴롭히려 할 때 사탄은 그를 해결할 조건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2)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 세상 임금은 시험할 수 있는 유리한 이점을 만들 수가 없게 된다. 사탄은 그로 죄에 빠지도록 이끌지 못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에게서 죄를 찾아 볼 수 없으며 시험받을 만한 비정상적인 면을 발견할 수 없고 또한 그를 불에 던져 넣을 부싯깃 통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죄의 가능성을 초월해 계시는 분이며 그는 흠없는 순결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탄은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 대한 사탄의 관심이 박살이 나고 쇠미해지면 질수록 우리는 고통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Ⅴ. 그리스도가 떠나 가신 것은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여 복종했기 때문이다. 사탄은 그의 생명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없었으나 주님이 죽음을 자취하셨던 것이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함은 세상이 다 알고 있다"(31절). 우리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는데,
1. 그리스도의 임무는 자신을 중보자로 이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일이라고 주님이 종종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확고하게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1)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순종하셨는데 이로써 그가 아버지를 사랑하셨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사실 속에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들어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죽으신 사실 속에서 또한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사이에는 완전한 사랑밖에는 없다는 것을 세상에서 알게 해야 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어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신 것같이 아들도 아버지를 사랑하여 그의 아버지 손에 부탁하셨던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복종하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분부하셨으므로 나는 그 분부하신 대로 모두 지키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가장명확한 방법은 그가 우리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그대로 지키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죽기까지 복종하심과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예명을 지키려 함에는 고난받고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아시고는 기쁨으로 그 길을 걸으셨고 세인(世人)들이 꺼려하는 십자가를 지고 어려움을 극복하셨는데 이는 아버지께부터 받은 명령을 이루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로 세인들로부터 받는 수욕을 견딜 수 있게 하며 또한 우리로 어려운 일들을 잘 감당케 해 주는 힘이 된다. "이 명령이야 말로 나를 부르시고 세상의 보내신 아버지의 뜻인 것이다."
2. "내가 아버지를 사랑함에 세상도 알고 있다"는 말씀은 주님이 지금까지 그가 하신 말씀을 결론짓게 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이 약속의 십자가를 즐거운 마음으로 지러 가셨음을 알 수 있다. "일어나 동산으로 가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자." 우리는 고난이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주여, 내가 당신이 어디로 이끄시든지 따라가겠나이다"라고 쉽게 고백하지만 정말 어려움에 직면하여 피할 수 없는 십자가를 우리가 지고 가야 할 경우에는 그것을 회피하기 쉬운데 그럴 것이 아니라, "일어나 그것을 지도록 하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일이 되는 것이다. 만일 이 설교 말씀이 유월절 만찬이 끝날 즈음에 있었더라면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락방으로 물러나 그곳에서 좀더 자유롭게 그의 제자들과 함께 다음 장(章)에 나오는 설교 말씀과 기도를 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굿윈(Goodwin) 박사는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분부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고난 당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그는 또한 이제 고난받고 죽으러 가시려고 서두르시면서 행여나 자기를 팔아 넘기려고 오는 가룟 유다와 만날 시간을 놓치게 되지나 않을 까 걱정하셨다. 주님은 "일어나 가자"고 말씀하셨으나 그는 물끄러미 푸른 초장을 내려다보신 후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시고는 다시 앉으셔서 다른 설교를 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 주님은 이 말씀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그를 따르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주님은 "내가 가야 한다"고 하시지 않고, "함께 가자"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주님이 제자들로 역경을 맞게 하려고 말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들의 지도자로서 먼저 나아가시려고 말씀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그들이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다. 주님은 "이제는 됐다. 가자 그리고 너희들이 얼마나 그 약속을 잘 지키는지 보도록 하자"고 말씀하셨다.
(2) 주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에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는데 특히 이 어려운 시기에 처하여서는 그는 그곳에 있는 물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시면서 사색에 잠기신 후 그들에게 떠나실 것에 대해 말씀하시었다. 우리가 여기 온화한 분위기에 파묻혀 안락하게 앉아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여기에 있을 수만은 없다. "일어나 여기를 떠나자." 만일 이 말씀이 유월절 마지막 성만찬석상에서 있었던 일이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교제가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기쁨을 나누고 여기 있는 것이 좋다고 느낄 때 우리는 일어나 여기를 떠나야 한다. 곧 산에서 내려와야 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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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예수님 일람표]] http://kcm.kr/dic_view.php?nid=38113

1. 고난주간에 예수의 생활 일람(1)

일요일 --유월절6일전에 베다니 도착/마리아의 주님의 발에 도유, ***월요일, 예수가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마 21 : 1 - 11, 막 11 : 1 - 11).

월요일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마 21. 18 - 19, 막 11 : 12 - 14). //(세금의 질문에 설명) 성전 청결케 함(마 21 : 12 - 13, 막 11 : 15 - 19).

화요일 --무화과나무 마름(마 21 : 19 - 22, 막 11 : 20 - 25).//제사장 바리새인의 질문(막 11 : 27 - 33, 눅 20 : 1 - 8).//경고의 세 가지 비유, 포도원 비유(마 21 : 28 - 22 : 14, 막 12 : 1 - 12).//바리새인과 헤롯 왕이 예수께 질문(마 22 : 15 - 40).//메시야에 대한 예수의 질문(눅 20 : 41 - 44).//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 책망(막 12 : 38 - 40).//과부연보에 대하여 칭찬함(막 12 : 41 - 44, 눅 21 : 1 - 4)//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함. 예루살렘 멸망과 말세를 예언함(눅 21 : 5 - 38, 요 12 : 37 - 50).

수요일 --(성경에 수요일 기록은 없음.)  ***[매튜헨리]베다니로 이동...아마도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 식사??..마리아의 주님의 머리에 도유 

목요일 --예루살렘에서 최후 성만찬, 예수 그리스도의 고별사(마 26 : 31 - 35, 막 14 : 12 - 26, 눅 22 : 31 - 38...요13-18장). 

금요일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반역과 예수의 포박(마 26 : 36 - 47, 막 14 : 32 - 52).//안나스와 가야바의 심문(막 14 : 53 - 72, 요 18 : 13 - 27).//빌라도의 심문(마 27 : 2 - 11, 31, 요 18 : 13 - 29).//십자가의 고난(마 27 : 32 - 56, 눅 23 : 26 - 45).//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장사함(마27 : 57 - 61, 막 15 : 43-47).

토요일 --무덤을 파수군이 굳게 지킴(마 27 : 62 - 66).

일요일 --부활의 새벽(마 28 : 1 - 10, 막 16 : 1 - 17).//파수군이 부활의 사건을 제사장에게 보고(마 28 : 11 - 15, 눅 24 : 13 - 35).//엠마오 도상의 예수(눅 24 : 13 - 35).//도마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 나타남(막 16 : 14, 요 20 : 19 - 25).

2.. 고난주간에 예수의 생활 일람(2)표

3. 십자가의 사실로 이루어진 구약의 예언 

(1) 제자에게 배척 당하심(시 41 : 9, 눅 22 : 48).

(2) 은 삼십에 팔리심(슥 11 : 12, 마 26 : 15).

(3) 심문 당하실 때 잠잠하심(사 53: 7, 마 26 : 63).

(4) 강도와 함께 못 박히심(시 22. 16,사 53 : 12,눅 23 : 39-43).

(5) 옆구리 창 맞음(요 19: 34-39, 슥 12 : 10).

(6) 신 포도주를 드림(시 69; 21, 요 19; .29).

(7) 의복을 제비 뽑음(시 22 : 18, 요 19 : 24).

(8) 다리뼈를 꺾지 않음(시 34 : 20, 요 19 : 31-37).

(9) 부자의 무덤에 장사됨(사 53; 9, 마 27 : 57-60) 

4. 십자가 사후에 일어 난 사실들 

(1) 지진으로 성전 휘장이 찢어짐(마 27 : 51).

(2) 무덤이 열림(마 27 : 52).

(3) 백부장의 증거(마 27; 54).

(4) 무리들의 확신(눅 23; 48).

(5) 도적의 다리를 꺾음(요 19 : 31-32).

(6) 옆구리 찌름(요 19 : 34).

(7) 장사 지냄(요 19 : 38-42).

(8) 무덤 봉하고 파수꾼 세움(마 27 : 66). 

5. 고난에 관한 금언 ·격언 ·속담 

(1) "고난은 축복을 갖다 주는 지름길이다. " -M. 루터-

(2)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살려고 하는 이는 고통을 보석으로 삼는다. " -하천풍언-

(3) "고난은 성공의 축대를 쌓는 것과 같다. " -M.NL. 영안-

(4) "고생보다 더 중요한 교육은 없다. " -지스레지-

(5) "고난을 모르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다. " -도미트 아쓰 -

(6)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 영광도 크다. " -M. T시세로

(7) 초년 고생은 말년 낙의 근본이라. 네가 자라면 오복이 구비하고 남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리라." -이광수 -

(8) "대부분의 생의 고난은 우리 자신이 햇빛에 서 있기 때문에 생긴다" -에머슨-

(9) "고난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다. 어려움이 우리에게 찾아 왔을 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로써 하나님의 신임의 증거 라고 간주해야 한다. " -비쳐(H.W. Beecher)-

(10) 고난이란? 좋은 것이다.

고난은 좋은 훈련이다.

고난은 사람이 살기에 귀찮을 정도다.

고난은 여행하는 것과 같다.

고난은 자신이 깨뜨려지는 것이다.

고난은 나쁜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이다.

고난은 한 성도가 받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고통을 겪게 된다.

고난은 하나의 체험이다.

고문을 받는 것도 심한 고난이다. 

6. 참혹한 십자가 

십자가(Cross)는 라틴어 '크룩스(crux)'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고문대(拷問臺)'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형벌 가운데 가장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고대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이미 통용되어 왔던 사형법 이었습니다. 알렉산더 왕도 그가 점령한 지역에서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즐겨 십자가에 매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드로 사람 일 천명을 십자가에 처형했다고 합니다. 에스라 6 : 11에는 파사의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리는데 자기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십자가에 달아 매어 죽이라고 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에 와서는 노예만을 십자가에 죽였으나 때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도 중죄(로류)를 범한 경우 이를 적용시켰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참혹했기 때문에 로마 본국 내에서는 가급적 십자가 형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콘스탄틴 황제가 십자가 형벌 금지령을 내렸고, 그 후 이 사형법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릴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서 예표로 알려진 것과 같이, 십자가를 쳐다보는 사람은 죽지 않으리라는 그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 구원이란 신학적 의미를 가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 : 6-7)

7.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예수님의 일곱마디 말씀 (가상칠언)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린 것이 오전 9시이고, 운명한 것이 오후3시니 십자가 위에서 6시간 동안 생명이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빨리 죽지 않고 모든 고통을 겪으며 서서히 죽기 때문에 십자가 처형은 가장 고통스러운 처형 방법인 것입니다.

이 6시간 동안에 예수는 일곱 마디 밖에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4복음서에 나타난 것을 종합해서 순서대로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말-"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 : 34). 이것은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둘째말-"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 : 43). 이 것은 파라다이스(낙원)의 약속이었습니다.

셋째말-"어머니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입니다. " "보라, 네 어머니다"(요 19 : 26-27). 이것은 아들로서의 효도였습니다.

넷째말-"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 27 . 46). 이것은 영적인 고민이 었습니다.

다섯째말-"목 마르다"(요 19 : 28). 이것은 육신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여섯째말-"다 이루었다"(요 19 : 30). 이것은 승리의 선언이었습니다.

일곱째말-"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눅 23 : 46), 이것은 최후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상 일곱 마디 중 처음 세 마디는 9시부터 12시 사이에 말씀하셨고, 12시부터 3시까지 세 시간 동안 갑자기 온 땅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세 시간 동안 예수는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고 오후 3시에 예수께서는 나머지 네 마디 말씀을 연거푸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 목차고리 : 신학 > 실천신학 > 교회력 > 고난주간 

>> 연결고리 : 예수, 고난주간, 십자가, 고난

====[debate]=====

[토요일안식일 바로 다음날인 일요일..유월전6일전]베다니 도착..나사로의 집에서 식사..마리아의 향유 1차 도유(발)...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오리, 3-4km) 위치 

[월요일]메시아로서 예루살렘입성 

[수요일]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마리아의 향유 2차 도유(머리) 

[목요일]예루살렘에서 최후 성만찬-세족식...+ 수난절강화 ...감람산으로 이동-기도...한밤중에 잡히심

[금요일]십자가상에서 운명.....금요일의 일부, 토요일 모두, 그리고 일요일의 일부 동안 무덤에 계셨기 때문에 삼일 동안 무덤에 계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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