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06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행5.아나니아_삽비라.교회의 강성.체포되는사도들_ 천사들에의해풀려남.공의회판결_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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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도들이 표적을 일으키다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도들이 능욕을 받다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21.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22.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23.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25.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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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개요)

본장의 내용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Ⅰ. 성령을 속이고 베드로의 저주로 즉시 죽어버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와 형벌(1-11).

Ⅱ. 복음 전파와 함께 나타나는 많은 능력으로 날로 교회가 부흥함(12-16).

Ⅲ. 사도들의 갇힘과 극적인 석방. 그들이 전한 복음을 전하라는 새로운 명령과 박해자들이 품은 의혹(17-26).

Ⅳ. 산헤드린 회의에서 그들이 당한 비난과 그들이 행한 바에 대한 사도들의 변명(27-33).

Ⅴ. 그들에 대해 가말리엘이 자기 입장을 밝힘. 즉 그들을 박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 어떤 결과가 오나 보자고 함. 이 충고에 순응하여 사도들을 채찍질만 하고 석방함(34-40).

Ⅵ. 사도들에 대한 방해와 모욕에도 불구하고 계속 즐겁게 복음을 전함(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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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행 5:1-11)

본장은 여러 좋지 않은 일로 시작된다. 

선한 일로서 처음 시작이 순조로웠기에 앞으로도 순조로울 것으로 전망되었던 일에 뜻밖의 장애가 부딪침을 보게 된다. 

개인에게 있어서나 교회에 있어 순조로운 가운데서도 예외는 있게 마련이다.

1. 제자들은 성별되고 세속에 물들지 않아 모두 아무 흠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도 그 심령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위선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례받을 때 "경건의 모양"은 취하였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정하는 자들이었고 그것은 곧 나타나고 말게 된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사회라도 좋은 사람들 가운데 악인도 끼이게 마련이다. 추수 때까지는 가라지도 밀 가운데서 자라는 것이다.

2.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부자 청년에게 [영생에 들어가기위해] 권고하셨던, 바로 그 완전에 이르게 됨을 기뻐하였다. 

"그들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매우 선하다고 누구나 여기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섞여 있을 수 있는 바 내부에는 위선이 감추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3. 사도들이 행한 표적과 기사는 [진정] 자비의 기적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심판의 기적이 일어난다. 

본문 기사를 통해서 선행으로 섬기려 하는 이들 중에 교묘히 섞여들 수 있는 [각 사람의 행위와 그 마음의 모든 동기을 통찰하여 아시는, 성령님의 마음의 통찰 능력을 멸시하여 <자행자제함>, 곧 위선적 거짓말로 범하게 되는 바, 하나님을 시험함의 유혹을 따른 극악한 불경건의 행위를 심판하심]을 보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성령을 무시함으로써 [= 성령을 시험함] 행하는 바,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겉치레의 교만, 곧 그것을 드러내사 제해버리심으로써 모든 기독자들에게 내리시는 준엄한 경고, 주님의 심판하시는 손의 가혹함을 보게 되고 이는 진정,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또한 두려운 존재임을 깨닫게 해 준다. [[오로지 참되고 진정한 경건과 경외함따라 겸손-단순-순전-온전을 이루도록 하자!!]]

Ⅰ.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의 죄. 

남편과 아내가 연합하여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합동하여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담과 이브의 행위와 같은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 살아계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행자제함으로써] 일치하여 금지된 과실을 따 먹음으로 한 가지로 불순종하였었다. 그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1.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보자면 전심으로 단순-순전-경외함으로 복음진리말씀과 성령님을 따르는 제자라 할 수 없었기에...오직 주님만 아신다!!...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알게 된다!!] 제자가 될 수 없었는데도 제일 뛰어난 제자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야망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사건의 근본적 의도를 은폐한 채 그리스도의 포도원에 가장 열매를 풍성히 맺는 나무로 인정받고 싶어하였다. 

그들은(바나바가 했던 것처럼) "재산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의 발 아래 가져왔다." 

그들 신실한 신자들 속에서 묻혀 지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교회에서 멋있게 발탁되어 칭송을 받고 싶어하였고 그럼으로써 세속적인 허영과 자만심을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던 것 같다. 

위선자들이란 보통 어떤 한 가지 일에서는 자신을 부인할지 모르나 다른 일에서 그 대가를 찾아내어 결국 자기에게 유익하도록 만들려 애쓰는 법이란 것을 기억하자. 그들은 그리스도에 합당한 제자의 요건, 곧 자기부인-자기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함이 아니라 무언가 이익을 얻기를 바라서 세속적인 이익이 있을 일에 앞장 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였고 "겉으로는 훌륭히 이를 입증하였으나,"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조롱하고 다른 사람들을 속였던 것이다. 

그런 마음자세로는 결코 기독교 신앙에서 요구하는 바 전심의 순전-단순-온전- 철저한 순복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결국 그들은 알게 된다. 

보라, 사실상 [겉으로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척 하려 해서는 결코 안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하라]는 것이 부자 청년에게 주어진 충고였다. 

이 사실을 지적받자 그 청년은 그리스도의 말대로 할 수 없음을 알고 "슬픈 표정으로 떠나갔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됨의 조건]을 따를 수 있는 척하였고 그러므로 제자됨의 명예를 얻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참으로 그들은 제자이지 못하였고 그러기에 제자로서의 자격을 잃고 말았다. 

마음 속으로는 믿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는 장중하게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흔히 그 사람에게 치명적인 것임을 기억하자.

2. 그들은 세상의 부를 탐하였고 하나님과 그의 섭리는 불신하였던 것이 둘째 죄였다. 

"그들은 그들의 땅을 팔아" 

당시에는 솟아오르는 열심 때문에 판 돈 전부를 경건한 용도에 봉헌하리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할 것을 서원하였다. 

그러나 돈이 수중에 들어오게 되자 그들이 마음은 변하였다. 그들은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2절). 

그들은 [정녕 세상 염려와 근심조차 주께 맡겨드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돈을 너무 사랑하였고 단번에 내놓아 사도들의 손에 맡기기에는 너무나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도 쓸 돈이 [따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같이 쓰고 있지만 얼마 오래가지 않을거다. 그리고 한 푼도 없이 떠나게 된다면 그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걱정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쓸 것을 준비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에, 그들은 남들보다 현명하게 불상사를 당할 경우를 생각하여 저축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 맘몬을 다 같이 섬기려했다. 

돈의 일부를 사도들의 발아래 가져다 놓음으로써 하나님을, 다른 돈의 일부는 그들의 주머니에 넣음으로 맘몬을 섬겼던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모든 일에 풍족하신 분이 아닌 것처럼 신원보증금의 얼마를 그들의 손아귀에 쥐고 있으려 했다.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므로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호 10:2). 

그들은 두 틈에서 방황하였다. 만일 그들이 철저히 세상적이었다면 그들의 소유를 팔지 않았을 것이며, 그들이 철저한 기독교인이었다면 판값의 일부를 착복하지 않았으리라.

3. 그들이 사도들을 속이고, 실은 일부에 불과했는데도 그들이 판돈 전부를 가져 왔다고 믿게 하려던 것이 세째 죄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확신있게 경건하고 열성있는 모습으로 다가와 그 돈이 전부인 것처럼 "돈을 사도들이 발 아래 놓았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성령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 사역자들을 우롱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죄였다.

Ⅱ. 아나니아에 대한 정죄. 

이것은 죄에 대한 저주와 형의 집행이기도 하다. 

그가 돈을 가져와서 다른 사람들처럼 추천받고 칭찬받기를 기대하였을 때 베드로는 그 일에 대해 그를 책망하였다. 

그는 이 일에 관한 증거를 조회하거나 검증하지도 않고 단호히 범죄에 대하여 문책하였고 그의 본성을 드러내 보여 줌으로 죄를 더욱 가중시켰고 그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하였다(3, 4절). 

베드로의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은 누구의 정보 없이도 사실을 밝혀냈을 뿐 아니라(아마도 세상에서는 그와 그의 아내 외에 아무도 알 사람이 없었는데도) 아나니아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불신앙의 본질로 규정하고 명료하게 드러내어 지적하였다. 

이 불신앙은 마음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갑자기 아나니아를 거스려 나타났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불시의 유혹에 의한 연약함의 죄였다면 베드로는 아나니아를 따로 가까이 오게 하여, 집에 가서 나머지 돈을 가져오고 그들을 속이려는 어리석은 계획을 회개하라고 명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마음이 악으로 가득찬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에게 회개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본문에서 아나니아에게 다음 사실을 지적하였다.

1. 그의 죄의 근원을 지적했다. 

그것은 "사탄이 그의 마음에 가득하였기"때문이었다. 성령으로부터 나지 아니한 것은 무엇이나 악령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사탄이 그에게 죄를 암시하였을 뿐 아니라 그의 머리 속에 주입시켰고 그로 하여금 그것을 행할 결심을 내리도록 촉구하였다. 

이들의 마음은 사탄으로 가득차 그의 마음을 세속적인 생각이 지배하고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아나니아도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은사로 충만했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령을 노하시게 하므로 그에게서 떠나셨고 이제는 "사탄이 그의 마음에 가득 찼던 것이라"한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을 떠나자 하나님이 보내신 악령이 그를 괴롭혔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거짓말하는 영이다. 

이 영이 아함의 예언자들의 입술을 지배하였고 마찬가지로 아나니아의 입술을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에 가득찬 것이 이로 인하여 나타난 것이다.

2. 죄 자체를 지적하였다. 

"그는 성령을 속였다." 

이것은 극악한 성질의 죄로써 만일 사탄이 그의 마음에 가득차지 아니하였더라면 이러한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1) "성령을 속이다"는 말의 원문은‘프슈사스다이 세 토 프뉴마 토 하기온’(5:3)으로써 어떤 이는 "성령을 실망사키다"라고 번역한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다.

① 그는 자기 안에 계시는 성령을 실망시켰다. 

그러므로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아나니아가 평신도가 아니라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120문도와 함께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일 거라고 가정한다(왜냐하면 바나바 다음에 즉시 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감히 속이는 짓을 함으로 성령을 실망케 하고 그 은사를 욕되게 하였다. 아니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그들의 재산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의 발아래 갖다 놓은 사람들은 특별한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 일을 행하였고 성령이 그들로 위대하고도 관대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그가 행한 일이 다른 사람들처럼 성령의 감회로 된 것처럼 가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비열함을 미루어 보아 결코 그는 성령의 지배 하에 있지 아니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령의 역사였다면 완전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② 그는 사도들에게 돈을 가져옴으로 사도들 안에 계시는 성령을 실망시켰다. 

그는 사도들을 주장하시는 성령을 잘못 판단하였다. 

즉 그들이 소유하였다는 능력을 정말로 지녔을까 의심하였든가(이것은 아주 비열한 생각으로 마치 그들이 그들 안에 깃들인 진실에 대해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그들이 거짓말을 발견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가 성령을 실망케 하는 그러한 일을 행한 것은 성령의 은사를 받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처럼 쉽사리 속여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게하시가 그의 스승에게 "내 심령이 네게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그의 잘못을 문책받을 때와 같은 경우였다(왕하 5:26). 

본문의 아나니아처럼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도 패역하여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 즉"(렘 5:11, 12)이라 말함으로 주님을 실망케 하였다. 

아나니아는 다른 사도들도 자기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같이 그들 안에 계신 성령이 영들을 분별하시는 분이 아닌 것으로 여겨서 그들 안에 계신 성령을 속이려는 결과를 자초하였다. 

사도들은 모두 그들 안에 성령의 은사를 지녔고 이것은 각 사람에게 여러 가지로 나누어 주신 은사이다(고전 12:8-11). 

성령의 능력을 받은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들은 말로써 또는 행동으로써 그들이 경험한 환상을 교회에 강요하고자 한다. 

그들은 위로부터 감화를 받았다고 말하므로 그들의 프라이드를 살리고 탐욕을 채우며 지배욕을 충족시키므로 성령을 실망케 하는 것이다.

(2) 그러나 "성령을 속이었다"라는 말씀은 4절에서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함으로써 한층 강조되고 있다.

① 아나니아는 신중하게 거짓말을 하였다. 

그는 고의로 속이려 했던 것이다. 그는 베드로에게 그가 재산을(집 또는 토지) 팔았고 이것이 그 판돈이라고 말하였다. 

어쩌면 그는 애매모호한 말을 하여서 그의 말을 이중적인 뜻을 띠게 함으로 노골적인 거짓말한 죄를 피하고 사태를 조금 무마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무 말도 없이 돈을 앞에다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죄는 동일하였다. 

그는 판돈을 전부 가지고 온 사람들처럼 행동하였고 그렇게 한다고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그렇게 행한 데 대해 칭찬해 줄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누리는 것과 같이 고동재산 관리에 같은 특권을 얻고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판돈 전부를 가져 왔다고 명백히 단언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 일부를 감추었기 때문에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일에 있어서 교만이 앞서고 사람의 칭찬을 더 사랑하여 거짓말하는 조잡한 짓을 행함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우리는 조작한 거짓 은사에 대해 허풍을 떨지 말아야하며(잠 25:14) 참된 은사일지라도 자랑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것이 구세주께서 구제에 대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주의하신 말씀의 의미이다. 

그들이 결코 하지도 않은 선행을 한 것처럼 자랑하거나 하지도 않으면서 공연히 약속만 하거나 그들이 한 것 이상으로 선행을 과장하는 자들은 아나니아와 같이 거짓말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② 그가 거짓말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성령"이었다. 

그 돈은 사도들 못지않게 그들 안에 계신 성령에게 가져간 것이었다. 

그러므로 4절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사도들도 사람에 불과하였지만 그렇다고 사람에게만이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께로다"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에서 성령이 곧 하나님이란 것이 암시되고 있다. 즉 성령에게 거짓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생활하며 활동하는 자를 속인 자들은 곧 하나님에게 거짓말한 것이 되는데 그 이유는 사도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에 의해 활동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휘트비(Whitby) 박사가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성령의 권능과 권위는 곧 하나님의 권능과 권위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더욱 논리를 발전시킨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에게 거짓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도들로 하여금 사람의 마음과 행위의 비밀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시는 그들 안의 성령에게 거짓말하였기 때문이다. 이 분별력은 홀로 한 분 하나님의 권한이시며 그러므로 성령에게 거짓말하는 자는 하나님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로 할 수 없는 특권을 지닌 분에게 거짓말하였기 때문이요 이는 필연적으로 신적인 본질을 속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3. 죄에 대한 문책(4절). 

다음 같이 힐문하고 있다.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 없었더냐?"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겠다.

(1) "네가 값의 일부를 감출 유혹을 자초할 필요가 없었도다. 그것을 팔기 전에도 너의 것이었다. 저당잡혔거나 채무를 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팔았을 때도 그 돈을 너의 뜻대로 처분할 권한이 네게 있었도다. 그러므로 전체에서 일부만 가져오는 것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네게 치루어야 할 빛이 있는 것도 아니요 부양할 어린 자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돈의 일부를 감출 특별한 이유도 없었도다. 그런데 네가 이유없이 범죄하였노라"는 뜻이다. 또 다음 같은 뜻도 된다.

(2) "네가 땅을 팔아야 될 이유가 없었도다. 또한 사도들의 발 아래 돈을 가져올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원한다면 돈으로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고 땅으로 지니고 있어도 되었다. 결코 이같이 완전을 가장하지 말았어야 했도다." 

사도가 제시하고 있는 구제의 법칙은 사람들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쁘게 내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고후 9:7). 

바울도 빌레몬이 선행을 하는 데 있어서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기를, 바랐다(몬 14). 

맹세하고 이행치 않는 것보다 맹세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처럼 그에게는 값의 일부를 감추는 것보다 차라리 땅을 팔지 않는 것이 좋을 뻔하였다. 

반만큼 선행을 하는 것보다 선행을 하는 척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말이다. 

"팔았을 때도 임의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선서된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주께 입을 열어 약속한 것은 철회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림에 있어 일부만 드린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어린애의 가짜 어미가 자식을 짤라 주기를 바랐던 것처럼 사탄은 반이라도 취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체를 받으시든지 아니면 안 받으신다."

4. 이같이 문책된 모든 죄는 그에게 부과되었다. 

그리하여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고 묻는다. 

비록 사탄이 그의 마음에 가득차 그 일을 행하였지만 그가 자신의 마음 속에 죄를 생각하였다고 기소되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우리 죄의 책임을 악마에게 전가시킨다고 그 죄가 경감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악마는 유혹할 뿐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가 이리 저리 끌려 다니며 유혹을 당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 때문이다." 

악한 일은 그것이 말로써이거나 행위로써거나 무엇이든지 죄인이 자신의 심중에 생각한 것이요 그러므로 "네가 남을 경멸한다면 그 대가로 네가 홀로 받을 것이니라" 기록되었다. 

고소의 마지막 부분은 매우 고조된 상태이나 또한 정당한 것이었다. 즉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였다." 

아하스의 죄에 대하여 선지자 아사야가 강조한 것도 이러한 것이었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하느냐"(사 7:13). 

모세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문책도 같은 내용이었다.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출 16:8). 

이와 같이 본문도 "네가 너와 같은 인간인 우리를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속지도 않으시고 조롱당하지도 아니하신다"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속이려 한다면 종국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속인데 불과하다는 것이 들어나게 될 것이다.

Ⅲ. 아나니아의 죽음과 장례(5,6절).

1. 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유구무언이더라"(한글 개역과는 다소 다름:역주). 

혼인예식에 예복없이 참여한 자의 경우와 같은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아무 말도 변명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죽었기 때문에 변명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가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베드로가 그에게 말한 즉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계획하고 또 바랐는가 하는 사실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계획한 것같이 보이는데 그것은 베드로가 그의 아내 삽비라에게 특별히 죽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천사가 그를 쳤으므로 헤롯과 같이 그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12:23). 

또는 죄책감에 대한 공포와 놀람으로 양심의 가책이 커서 그 중압감에 눌려 죽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어쩌면 그가 성령을 속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성령을 거스리는 죄"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였고 이 사실이 비수처럼 그의 마음을 찔렀는지도 모른다. 

사도들의 입에서 역사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기억하자. 

어떤 이에게 그것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향기"요, 어떤 이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저주"가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인정받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주를 받는 사람도 있다. 

아나니아의 처벌이 가혹하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그것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확신해야 한다.

(1) 아나니아의 처벌은 복음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최근에 사도들에게 임한 성령의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시도된 일이었다. 

아나니아가 성령에게 가한 모욕은 대단한 것으로 그는 성령을 속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것은 또한 사도들의 증언을 무효화시킬 위험을 내포하였다. 

만일 그들이 성령에 의해 이 거짓말을 발견할 수 없었다면 어찌 성령으로 또한 하나님의 오묘한 사실들을 발견하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사도들의 은사와 능력은 보장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2) 이 처벌은 또한 애초에 다른 이들도 이 같은 외람된 짓을 못하도록 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 후 마술사 시몬(8:9 절 이하)이나 박수 엘루마(13:8 절 이하)도 이같이 처벌당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제 아나니아는 그 첫 본보기였다. 

성령을 영접하는 것이 얼마나 고무적인가 하는 뚜렷한 증거가 주어진 것과 같이 성령을 거스리고 그를 모멸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나타내 주는 뚜렷한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금송아지에 예배함으로, 또한 안식일에 나무를 함으로 그 처벌이 얼마나 혹독하였었는가! 이제 그 새로운 계명이 주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림으로, 또 고라와 그의 무리가 반역함으로 불이 그들을 삼키었던 것같이 이제 하늘로부터 심판의 불이 새롭게 임하였으며 모세와 아론에게 주어졌던 위엄이 새롭게 전하여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처벌은 베드로에 의하여 다스려졌다. 얼마 전에 베드로 자신도 거짓으로 주님을 부인하였다는 사실을 베드로가 그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원한으로 아나니아를 벌한 것이 아님을 지시해 준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결점을 지니고 있다면 같은 범죄를 저지른 자를 불쌍히 여겼을 것이며 자신이 회개하고 그러므로 용서를 받았다면 이 모욕도 용서하고 이 범죄자가 회개하도록 종용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베드로 안에 계신 성령이 하신 일이었다. 그에게 모욕이 가해졌고 그러기에 그에 가하여 처벌도 행하여진 것이다.

2. 그는 즉시 장사되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관습이었다(6절). 교회에서도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일을 맡은 "젊은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사도들의 시중을 들며 뒷바라지를 해 주던 젊은 이들이 있어서 비록 아나니아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즉시 죽었지만 이들 젊은 이들이 그 시신을 관보로 싸서 친절히 "장사"하였던 것 같다.

Ⅳ.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의 응보. 

아마도 이 여자가 먼저 범죄할 마음을 품고 금단의 실과를 자기 남편에게 먹으라고 유혹했던 것 같다. 

그의 아내가 이제 사도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솔로몬의 행각인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그곳에 모인 내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12절). 

이곳은 성전의 일부로써 그리스도께서 자주 출입하시던 곳이었다(요 10:23).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들어왔다." 

그녀는 그녀의 유산이라 랄 수 있는 땅을 팔도록 허용한 데 대해서 그녀가 들어갈 때 경의가 표해질 것을 바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만은 피할 수 있도록 누군가 그녀에게 달려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아마 누군가 알리기 위해 갔지만 그녀가 집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녀가 사도들 앞에 나아왔을 때 기금을 기증한 자로서 축복을 받은 대신에 저주에 직면하게 된다.

1. 그녀가 남편의 죄에 동참한 범죄 사실이 있음이 베드로가 그녀에게 묵은 질문에 의해 밝혀졌다(8절). 

"그 땅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는 말씀은 아나니아가 가져다 사도들의 발 아래 놓은 돈의 총액을 말하는 것이었다. 

"너희가 땅을 팔아 받은 돈이 이것이 전부인가 아니면 더 이상 받은 것인가"라고 묻는다. 

"예 한푼도 숨김 없이 받은 돈을 다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그녀는 답한다.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는 미리 무슨 얘기를 할지 의논을 하였을 것이다. 

이익을 취한 것은 둘만 아는 것으로 그들끼리 비밀을 지키면 아무도 알 수 없을거라고 의논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안심하고 거짓말할 수 있을 줄 알았고 또 신임도 얻으리라고 믿었다. 친분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마음을 굳게 하여 경쟁하듯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을 대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2. 그녀도 그녀의 남편과 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라는 선고가 내려졌다(9절).

(1) 그녀의 죄가 폭로되었다.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그는 선고하기 이전에 그녀에게 그녀의 추행을 알려 주고 그녀의 죄의 악함을 보여 주었다. 그럼 그들이 행한 죄는 무엇이었나 살펴 보자.

① 그들은 주의 성령을 시험하였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수 많은 Q의 기적적인 능력을 체험하고서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지 아니 계신지" 의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뿐 아니라 그의 통치하심도 의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실 수 있나 보자"라고 말하였다. 

본문의 이들 부부도 같은 생각을 하였다. "사도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거짓말도 알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그들에게 이것이 판돈 전부라고 하면 이것이 그 일부에 불과한 것인 줄 분별할 수 있을까?" "그가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욥 12:13). 

그들은 사도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설마 그들이 영분별의 은사도 받았겠는가라고 생각하였던 것 아닐까.. 

죄를 짓고도 무사히 벌을 받지 않을 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시험하는 셈이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여기고 그를 시험한다.

② 그들은 그것을 행할 것을 공모하였다. 

그들은(거룩한 제도에 의해 결합되어) 부부로 결속된 관계를 불법 이행에도 이용한다. 

부부 간에 또는 친척들 사이에서 선한 일에 의견이 대립되고 악한 일에 협조가 잘되는 경우, 부부간에, 또는 친척간에 악을 도모하는 일이 더 나쁜지 규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이미 그들 부부는 이 일을 행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봄으로써 더 나아가 그들은 성령을 시험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이 문제를 놓고 서로 의견을 나눌 때 그들은 주의 성령이 그들을 주의 성령이 그들을 발견해 낼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 아닐까. 

그들이 그들의 뜻을 여호와께 숨기려고 아무리 피하였지만 헛되게도 그것은 알려지고야 만다. 

"어찌 너희가 미혹되었는가? 어찌하여 너희가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가. 이미 지나간 시험에 다시 걸려들다니!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너희가 보다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단 말인가! 어찌 너희가 그같이 엄청난 모험을 하였는가"라고 꾸짖는다.

(2) 그녀가 당할 운명이 예고된다.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아마도 그는 그들이 오는 소리를 들었거나 또는 오래지 않아 올 것을 알았던 것 같다)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공모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함께 낙원에서 쫓겨났듯이 공모하여 주의 성령을 시험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함께 이 세상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3. 선고가 곧 형 집행을 의미하였다. 

무슨 형리가 필요 없었다. 때로 베드로의 말이 떨어지자 곧 병고치는 능력이 일어났듯이 파멸하는 능력이 그의 말과 함께 일어났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말하기만 하여도 사람을 죽이시기도 하고 살리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입에서(이제는 베드로의 입에서) 선과 악이 나오느니라." 말씀되었다. 그녀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져 혼이 떠났다"(10절). 

어떤 죄인에 대해서 하나님은 단번에 결판을 내리시는가 하면 또 다른 죄인에게는 오래 참기도 하신다. 

이같이 차별하여 대하심에는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으시리라.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는 않는다. 

그녀는 그때까지 그녀의 남편이 죽은 것을 듣지 못하였다. 그녀의 죄가 드러나면서 그 사실도 알려졌다. 

그리고 죽음의 선고가 내려지자 그것이 벼락처럼 그녀를 내리쳤고 회오리바람처럼 그녀를 휩쓸어갔다. 

그렇다고 갑작스럽게 죽는 모든 경우를 이와 같이 끔찍한 죄에 대한 처벌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갑자기 죽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이상 가는 죄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좋은 일이다. 어쨌든 누구나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항상 준비해야 된다는 경고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것이 심판인 것은 분명하다. 

^^어떤 이는 아나니아와 삽바리의 저 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육을 멸하심은 "주 예수의 날에 영혼이 구원받게 하심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만약 이들 부부에게 근친상간한 고린도인의 경우처럼 회개할 만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나로서도) 다소 너그러운 이런 견해에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어떤]비의는 주어지지 아니하였다. [단지] 그녀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 이 떠났다" 말씀되고 있다. 

그녀가 판 값 전부를 그곳에 갖다 놓았다면 스스로가 자신의 몸으로 부족량을 메꾸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장례를 돌보는 "젊은이들이" 들어와 그녀가 "죽은 것을 보고,"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아나니아의 경우처럼 "시신을 싸서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였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무덤에 묘비를 세워 성령을 속인 죄로 신의 진노를 받아 죽었다는 것을 기념하였으리라. 

^^어떤 이는 그들이 가져온 돈, 그들의 거짓에 관련된 돈을 어떻게 하였을까 묻는다. 어떤 자들이 [대제사장들이] 미신에 사로잡혀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둠이 옳지 않다"(마 27:6)라 한 것처럼 [동일하게] 그들이 미신을 따르지는 않았으리라. 순결한 자에게는 모든 것이 순결하기 때문이다. 

악인들이 가져온 재물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가져온 것을 받는 그 사람까지 더럽히는 것은 아니다. 

[재물이란 그 자체로 중립적이다]. 그들이 감추었으므로 감춘 사람만이 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고라 일당의 반역자들이 사용했던 향로를 버리지 않고 다른 것을 만들어서 다시 사용하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민 16:36-40).

4. 이 일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이야기 중간에 이 문제에 대해 언급되고 있다(5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즉 베드로가 말한 것을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본 사람들 또는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두려워하였다. 

의심없이 이 일은 온 시내의 화제거리가 되었다. 

다시 11절에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기록하여 파급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1. 먼저 교회에 참석하고 있는 무리들에게 하나님과 그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주를 경외함이 증가하였다. 

성령의 역사 아래서 생활한다는 경외감이 일어났다. 

그 일 자체가 그들의 신앙에서 우러나는 기쁨을 막거나 저지하지는 않았으나 이 일은 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서 결코 경솔히 행해서는 안되고 떨림으로 기뻐해야 함을 가르쳐 주었다. 

이 일 후에 구제와 자선 목적으로 재물을 가져오는 사람들마다 먼저  자기들의 근본동기를 살펴보고 주앞에 정직하게 행함, 곧 판 값의 일부라도 감추는 것을 당연히 두려워하게 되었으리라..

2. 이 사실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몹시도 당황하여 말하기를 사무엘 상 6장 20절 말씀과 같이 그런즉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과" 사도들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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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전파되는 복음(행 5:12-16)

두 위선자에 대한 무서운 심판이 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더욱 널리 전파되는 모습이 설명되고 있다.

Ⅰ. 본문에는 사도들이 행한 기적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있다(12절).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즉 심판의 기적 대신에 많은 자비의 기적이 일어났다. 이제 복음의 능력이 그 본 궤도로 돌아오는데 그것은 자비와 은총의 능력이었다. 

하나님께서 벌하시려 그의 자리를 떠나셨으나 이제 그의 자리 즉 자비로우심으로 돌아가신다. 

그 기적들은 곧 그들의 사명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임이 입증되었다. 

이따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가끔 되풀이되며 많이 일어났다. 

이러한 표적과 기사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 능력의 구체적인 표시가 되었다. 

이 기적들은 모퉁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마음대로 질문을 퍼붓는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여졌다. 

만약 그들 가운데 거짓이나 책략이 있었다면 곧 발견되고 말았을 것이다.

Ⅱ. 본문에는 또한 사도들이 행한 기적의 결과가 어떠하였는가를 전해 주고 있다.

1. 교회가 긴밀히 연합되었고 사도들을 따르며 또 서로 신뢰하였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 그들은 성전 즉 솔로몬 행각이라 불리우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보였다. 

성전을 관할하는 자들이 그들이 거기서 모이도록 묵인한 것이 이상스럽게 생각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한동안 그들이 그곳에 모이는 것을 관대히 대하게 하셨다. 

그 이유는 복음이 더욱 손쉽게 확장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또한 물건 매매를 묵인한 그들이 거기서 말씀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 일을 금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공중 예배에서 만났다. 

성전에서 행하여진 신앙적인 집회제도는 아주 일찍부터 행하여졌으므로 결코 포기되거나 폐기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신앙은 직업처럼 지켜졌다.

(2) 그들은 거기서 한 마음으로 가르침과 예배와 훈련에 참여하였다. 

고라와 그의 무리가 죽었을 때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했던 것처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에 대해서 불만이나 불평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이스라엘은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라고 불평하였었다(민 16:41). 

심판으로 위선자들을 가려내셨기에, 남은 자들은 더욱 단합하여 복음 전파에 힘을 다하였다.

2. 이 일로 그리스도의 나라의 첫 번 사역자들인 사도들은 대단한 존경을 받게 되었다.

(1) 다른 사역자들과 사도들 간에 거리가 유지되었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니" 

즉 아무도 사도들과 대등하게 대우 받으려 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성령을 받았고 방언으로 말하였으나 사도들과 같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사도들의 직위를 존중하였고 무슨 일에서나 그들에게 복종하였다.

(2) "백성이 칭송하였다." 

대단히 그들을 존경하였고 경외감으로 그들에 대해 말했으며 그들을 하늘이 돕는 자들 또는 이 땅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받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비록 제사장들이 그들을 모략하고 할 수 있는 온갖 중상을 행하였지만 참 빛 가운데서 모든 것을 본 백성들이 그들을 칭송하는 것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사도들이 스스로 영광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주의깊고 성실하게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에게 돌리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그들을 칭송하였다. 

스스로 겸손한 자는 오히려 높임을 받는 바, 주께서 높여주사 명예를 누리는 사람들은 오직 마땅히 하나님에게만 그 명예를 돌려야 됨을 기억하자.

3. 교회가 더욱 부흥하였다(14절).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물론 그들은 하나님이 사실로 그 안에 거하시는 것을 보았을 때 스스로 자원하여 교회에 참여하였다. 

"남녀의 큰 무리였다." 

그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를 보고 이같이 엄격한 규례가 지켜지는 집단에 들어오기를 단념한 것이 아니라 자진하여 참여하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주 예수를 믿는 자들이 증가하였다. 즉 그와 연합하여 그의 신비스러운 몸에 참여한 것이었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많은 사람이 주님 앞으로 나왔으나 아직도 그는 오라고 하신다. 

교인이 되는 자는 주님과 연합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비의가 완성될 때까지, 선택된 자의 수가 지워질 때까지 이 부름을 계속될 것이다.

(2)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회개하였음을 기억하자. 

이 현상은 유대인의 교회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과거에 그들은 할례의 표시도 받을 수 없었고 절기 행사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부인들의 집회소는 성전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계셨을 때 그를 따르던 자들 가운데와 그가 승천하신 후 믿는 무리들 가운데는 훌륭한 여인들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4. 많은 병자들이 사도들에게 나아왔고 그들 모두가 나음을 얻으므로 사도들과 그들의 가르침이 더욱 널리 알려졌다(15, 16절).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도시인이나 농촌 사람이거나 모든 계층이 사람들이 도움을 받으러 나와 이를 경험하였다.

(1) 기적은 시내에서 일어났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그것은 제사장들이 환자를 성전인 솔로몬 행각으로 데려오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사도들은 또한 한가롭게 그들의 집을 하나 하나 방문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환자들을 "침대와 요 위에 뉘었다"(그들이 걷고 서기에는 너무 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베드로가 지난 때에 혹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랐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 모두에게 미칠 수 있지는 못하였다. 

본문을 보아 한 여인이 그리스도의 옷가를 만진 것과 같이 바라기만 하여도 병이 난 것같이 보여진다. 

이로써 그리스도께서 "이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느니라" 하신 말씀이 다른 말씀과 마찬가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돌보시겠다 말씀하신다. 그가 함께 계시며 그들의 오른팔을 붙들어 주신다.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부드러운 도우심은 "바위의 그림자"와 비교된다(나무가 희귀한 지역이었으므로 광야에서 큰 바위 그늘은 나그네에게 도움이 된 것 같고 이를 비유한 말이다:역주). 

베드로는 그들과 태양 사이를 막아서서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 위하여:역주) 그들을 치료하고 그들로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피조물을 의존하지 말게 하고 오직 은혜의 성령의 도우심만 바라라고 한다. 이 성령으로 그는 충만하여 있었다.

 베드로의 그림자에 의하여 기적이 임하였다면 바울의 손수건에 의해서도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19:21) 다른 사도들에게로 베드로에게와 같은 기적이 있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베드로나 바울의 경우 모두 양자에게는 병을 고쳐 주고자하는 의향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미 죽어서 사라진 성자의 유물이 병 고치는 힘이 있다고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 

실상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 그리스도 자신의 어떤 유물이 병을 고쳤다는 기사를 볼 수 없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였으리라.

(2) 농촌에서도 일어났다.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병든 몸과 마음이 다 온전하여졌다. 사도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백성들은 자기 나름대로 기적에 대하여 판단하고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하늘에서 주어진 것임을 확신하였고 그리하여 더욱 사도들도 그들의 가르침을 신봉하였다. 이 가르침은 이 천한 세상의 안녕을 위해 큰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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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도움으로 사도들이 석방되다(행 5:17-25)

선한 사업을 하면서 성공을 바라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많은 반대와 고난에 직면하게 된다. 

마음이 왜곡되어 악행만 일삼는 사람들이 선한 사업을 힘써 하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룰 수는 없다. 

인류의 파괴자인 사탄은 인류에게 유익을 안겨 주는 사람들에게는 과거-현재-미래에 공히 극악한 적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가르치고 병 고치는 일을 행함에 있어서 저지당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들을 둘러싸고 지옥의 악한 세력과 하늘의 은사의 힘이 겨루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전자는 이 선한 사업을 막으려하며, 후자는 이 일을 행하도록 더욱 그들을 고무해 준다.

Ⅰ. 제사장들이 그들을 시기하여 그들을 옥에 가둔다(17, 18절).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1. 사도들의 적과 박해자들은 누구였는가, 

그 주모자는 대제사장들이었다. 

안나스와 가야바는 만약 그리스도의 영적이고 신비한 가르침이 자리잡고 백성들 가운데서 세력이 커져가게 된다면 그들의 부와 위엄과 권력과 독재적인 행사가 위태롭게 되고 불가피하게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을 예감하였다. 

여기서 가장 솔선하여 대제사장과 합세한 무리들은 "사두개인의 당파"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저 세상의 교리와 죽은 자의 부활, 미래 등 그들이 부정하는 것을 믿고 가르치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특별한 원한을 품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참되고 순수한 신앙을 반대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2. 그들은 사도들에게 악랄한 태도를 취하고 극도로 격분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많은 무리가 따르며 그들이 큰 관심거리가 되는 것을 보고 듣게 되자,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사람과 같이 격렬히 "일어나" 이 일을 앞장 서서 막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도리를 전하고 병자를 고치는 사도들과 이를 듣고 병고침을 받기 위하여 사도들에게 환자를 데려오는 백성들과 이 일이 널리 퍼지는데도 처음에 그것을 제압하지 못하고 묵인한 자신들과 자기 당에 대하여 분노가 충일하였다. 

그리스도와 복음의 원수들은 고통을 자초한다. "질투는 어리석은 자를 죽이나니"라는 말씀과 같다.

3. 사도들을 대적한 절차는 어떠했는가(18절). 

그들은 "사도들을 잡았다." 아마 직접 체포하였거나(하수인들이 의기소침하여 직접 손을 댔는지 모른다) 하수인들을 시켜서 체포하여 흉악범을 가두는 "공동감옥"(한글 개역과는 다소 다름:역주)에 감금하였다. 그들이 획책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사도들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그들에게서 사형시키거나 구속시킬 범죄를 뒤집어  씌울 수는 없었으나 그들을 옥에 가두어 두는 동안만은 그들의 일을 계속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고 바로 이 점을 그들이 노린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일찍이 구속당하게 된다.

(2) 그들에게 공포감을 주어서 일에서 손을 떼게 하고자 하였다. 

지난번에는 다만 그들을 앞에 불러 위협하는 것으로 끝냈었다(4:21). 그러나 이제 그것이 소용없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두려움을 맛보이려고 하였다.

(3) 그들에게 치욕을 맛보게 하려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을 공동 감옥에 가두었고 그들을 중상함으로써 백성들이 전처럼 그들을 칭송하지 못하게 하려했다. 

사탄은 복음을 고백하고 전하는 사람들로 모욕을 당하게 함으로써 계획적으로 복음을 대적한다.

Ⅱ. 그런데, 보라,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그들을 옥에서 석방하시고 복음 전파하는 그들의 사명을 새롭게 하신다. 

어둠의 세력들이 그들을 대항하여 싸웠으나 빛들의 아버지가 그들의 편이 되셔서 그들을 돕기 위하여 빛의 천사들을 보내신다. 

주님은 그의 증인들과 성도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고 그들 곁에 계시며 지지하여 주신다.

1. 사도들이 석방된다. 그들의 석방은 정당한 것이었다(19절). 

"주의 사자가 밤에" 

그들을 막고 있는 빗장과 자물통에도 불구하고 "옥문을 열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서" 단단히 경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은 죄수들을 감옥에서 내어 놓는 바, 부정한 방법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초월적 권위를 그들에게 주어 모든 장애를 뚫고 그들을 인도해 내었다(23절). 

본문으로 보아 이러한 석방은 베드로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12:7) 여기서도 이와 같은 기적이 있음을 믿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그 옥이 어둡고 강하게 세워졌다 해도 그 속으로 그의 백성을 찾아가시며 원하신다면 그들을 이끌어 내실 수도 있으시다. 

천사들에 의한 사도들의 석방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유사하다. 

그는 무덤이라는 감옥에서 나오시어 사도들이 복음전하는 것을 굳게 하여 주셨으리라.

2. 그들에게 책임이 주어졌다. 

즉, 대제사장들이 그들에게 가한 방해에서 그들을 석방하고 그들의 일을 계속하도록 격려의 말씀과 함께 당당히 수행할 책임이 주어졌다. 

천사들이 그들에게 명하기를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한다(20절). 

그들이 기적적으로 방면되고 나서 그들의 힘으로 적들의 수중에서 벗어나 생명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니 오히려 기적적인 도움으로 회복, 고통에서 놓여남은 우리로 삶의 기쁨을 맛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을 드리어 하나님을 섬김으로 영광을 돌리고자 주어진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내 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119:175)라 하였고(본문의 사도들처럼)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시 142:7)"라 하였다. 이사야 38장 22절을 보라. 그러면 그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무엇이었는가.

(1) 성전에서 전하라고 하신다. 

"성전에서 말하라.",,당당하게!! 

사도들, 그들의 일을 중단할 수는 없지만 보다 한적한 곳에 가서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성전에서 보다는 제사장들의 감정을 덜 상하게 할 것이요 그들에게 자주 보이지도 않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성전에서 전하라. 이곳이 집회처이기 때문이요 너희의 아버지의 집이며 아직은 버림받아 황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자들은 많은 군중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한 한 구석으로 물러가 있어서는 안 된다.

(2) 그들이 전할 대상은 백성이었다. 

"백성에게 말하라. 군왕이나 관헌들이 아니다. 그들은 듣기를 싫어한다. 백성들에게 전하라. 그들은 가르침을 기뻐하며 사모한다. 이들의 영혼을 그리스도께서 귀하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너희도 이들을 가장 큰 자의 영혼처럼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말하라. 모든 평민에게 전하라. 이들 모두가 귀중한 때문인 것이다."

(3) 그들이 전하는 방법은 "가서 서서 말하라"였다. 

이 말은 그들이 공개적으로 말해야 할 뿐 아니라 서서 말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듣게 하라는 의미이다. 

또한 그들은 담대하고 결단력있게 말해야 했다. 

"서서 말하라"는 말은 굳게 결심이 되어 그것에 의해 살고 죽는 사람처럼 말하라는 뜻이다.

(4) 그들이 말할 내용은 "이 모든 생명의 말씀"이었다. 

이 생명은 너희가 너희 가운데서 말하던 것이다. 

아마 그들은 옥에서 자신을 격려하고 서로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하늘 나라의 생명에 관하여 말했던 것 같다. 

"그 같은 말씀을 가서 세상에 전하라. 그 말씀으로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위로를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같은 위로를 받게 하라." 또는 이러한 말이다. 

"너희를 핍박하고 이 생명에 대해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에게 이것을 전하라. 비록 그들이 분을 품는 것이 이 때문임을 너희가 안다해도 말이다." 또는 

"이 생명에 대해 강조하라. 이 세상의 생명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늘의 신적인 생명에 대해 말하라." 또는 

"이 생명의 말씀 즉 너희가 전한 바요 성령이 너희 입술에 부어 주신 이 말씀을 전하라"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복음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요 생동하는 말씀임을 기억하자. 이 말씀은 곧 영이요 생명이며 "구원받을 만한 말씀"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본문이 말해 주는 말씀이다(11:14). 

복음은 이 세상 삶을 위한 말씀이기도 하다. 

이 말씀이 우리의 가정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 노정을 특별히 보호하여 주며 장래의 삶을 약속해 줄 뿐 아니라 현재의 생도 보장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생명"이라 부른 것은 복음서에서 비쳐 주는 생명은 영적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 말씀이 너에게 이미 가까이 이르러 있다. 

복음은 생과 사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이를 전해야 하며 따라서 백성들은 청종해야 한다. 

그들은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해야 한다. 감정을 상하게 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조금도 감추어서는 안 된다. 

또는 관헌들의 비위를 맞추려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모든 진리를 다 전할 것을 서원해야만 한다.

Ⅲ. 그들은 계속 사명을 수행하였다(21절). 

"저희가 듣고,"즉 그들이 계속해서 성전에서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그들은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12절).

1. 그들은 새롭게 주어진명령에 대해 아주 만족하였다. 

그들 마음대로 하도록 하였다면 그들은 아마도 전과 같이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전해야 할 것인지 망서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에 그리스도로부터 "이 도시에서 너희를 핍박하면 다른 도시로 피하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의 사자가 성전에 가서 전할 것을 명하였으므로 이제 그들의 거취는 분명해졌다. 

그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성전에 들어갔고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 않았다. 

우리가 주어진 임무에 만족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할 일은 이 임무에 전력하는 것이요, 그런 다음 기쁨으로 안심하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그들은 지체하거나 서로 격론을 벌이지 않고 즉시 이 명령을 수행하였다. 

그들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즉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그 곳으로 모이기를 시작하자마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쳤다. 

그리고 누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할 것인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본문의 경우는 아주 비상한 것이었다. 

복음의 모든 보화가 그들의 수중에 있었고 그러기에 만일 그들이 잠잠하면 복음의 근원이 막혀버리고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 끝나고 말 것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역자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번 일로 사자의 아가리에 먹히울 수는 없었다. 

주께서 선한 사업을 할 기회를 주실 때는 비록 우리가 인간들의 권력의 위협과 제제 아래 있다고 해도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야 한다.

Ⅳ. 대제사장과 그의 일당은 계속 그들을 박해하였다(21절). 

그들은 사도들이 옥에 갇혔으려니 생각하고 공회를 소집하였는데, 그것은 대규모의 긴급회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를 다 모았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전도자들을 박멸하기 위하여 그들은 많은 준비를 하였고 기대도 컸다. 

그들은 공회에 관련된 사람을 모두 모았다. 

지난 번에는 사도들을 구금하고 대제사장의 문중이 모인 위원회에서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있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모든 장로들을 다 모았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가 말한 것처럼]예루살렘에 있는 3부의 관리들이 다 모였다. 

구태여 그 규모를 말하자면, 70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와 다른 두 재판기관 즉 하나는 성전 외곽 문 안에 세워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내부 즉 미문 안에 세워져 있었다. 이 두 재판 기구는 각각 23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들 모두가 참여하였다면 116명의 재판관들이 모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적들이 일어나고 사도들이 그들을 대적하여 증거하므로 더욱 널리 퍼지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이 재판정 앞에 서지 않고는 복음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들려지게 될 것이라 하셨다. 

대제사장은 물론 이렇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고 마음에 생각조차 품지 않았다. 

다만 실력으로 사도들을 저지하고 일반의 승인을 얻어 그들을 단번에 제거하려는 것이 그의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뜻을 이루신다.

2. 그들은 실망하고 그들의 얼굴은 수치로 일그러졌다. 

"하늘에 앉으신 이가 비웃으심이여," 

우리는 재판정의 분위기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상상할 수 있다. 또한 대제사장이 엄숙한 어조로 그들에게 모인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도 그려 볼 수 있다. 

"최근에 아주 위험스러운 분파가 예루살렘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예수의 교리를 전하는데(지금과 같은 위험이 전에는 결코 없었는데) 교회의 보전을 위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제압해야 하겠다. 이제 일을 처리하기는 용이하다. 그 일당의 주모자들을 옥에 가두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이 동의만 하면 가장 가혹하게 다스리겠다"는 뜻을 말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관리를 불러 즉시 죄수들을 재판정에 데려오라고 보냈다. 그러나 뜻밖의 결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 관헌들이 돌아와서 죄수들이 감옥에 없다고 보고한다(22,23절). 

지난번에는 그들이 부르는 즉시 왔었다(4:7). 그러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관리들이 보고하는 바에 의하면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아무것으로도 문을 열 수는 없었다) "지킨 사람들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우리가 가보니 지킨 사람들도 문에 섰더이다. 도대체 죄수들이 없어질 만한 이유가 없었는데, 우리가 들어가 보니 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한 사람도 잡아오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보고하였다. 

그들은 거기서 일반 죄수들은 보았을 것이다. 주의 사자가 그들을 어떤 방법으로 데려갔는지 그들만이 아는 방법을 이용했는지 아니면 문을 열고(간수들이 졸고 있는 동안) 다시 그것을 단단히 잠궜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어찌하였든 그들은 없었다. 우리는 모르지만 주님은 아시리라. 

그 경건한 사람들을 위험에서 어떻게 건지셨는지 그의 이름으로 인하여 갇힌 자들을 어떻게 석방하셨는지 그만이 아신다. 

본문에서와 같이 그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 그는 이와 같은 일을 하신다. 

이 관리들이 그들의 상관에게 돌아왔을 때 재판정이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하여 보자(24절). 

"대제사장과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서"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될까"라고 말했다. 그들은 극도로 당황하여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결코 전에는 여러 가지 생의 문제에서 이렇게 낙심해본 적은 없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터져나왔으리라... 

어떤 이는 그들이 마술로 옥에서 탈출했을 것이라 했고 다른 이들은 간수들 중에 이 죄수들의 많은 친구가 있으며 백성들의 신뢰를 받는 줄 알고 농간을 부린 것이라고도 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놀라운 방법으로 탈출하였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따를 것이라고 염려하였다.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이 이들을 예루살렘에서는 위협할 수 있으나 그러면 이들이 다른 지방으로 가서 활동하게 될 것이고 거기서는 이들이 더 악한 짓을 한다 해도 이 나쁜 영향이 확장되어 나가는 것을 저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악질을 고치는 대신 더 악화시키지나 않는지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입을 막고 방해하려던 사람들은 스스로 어려움을 당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자.

(2)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의혹에 결론이 주어졌다. 

그렇지만 그들의 고뇌는 다른 전달자에 의해 더욱 더 증대될 수 밖애 없었다. 그는 죄수들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25절). 

"보소서 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재판정으로 끌려와야 할 그들이, 참을 수 없게, 당신들이 왈가왈부하는데도 당신들을 무시하고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탈출한 죄수들이란  으례히 다시 체포될 것을 두려워하여 피신하는 법인데, 지금 탈출한 이 죄수들은 그들의 박해자들의 영향이 대단한 곳에서 감히 얼굴을 나타낸 것이다. 이 일은 무엇보다 그들을 당황케 하였다. 

일반 범인들도 옥을 탈출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이 행한 짓을 공언할 용기까지 지닌 이상한 죄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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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에 대한 심문(행 5:26-42)

사도들이 무엇을 전하였는지는 기록되지 않고 있으나 분명 천사의 지시에 따라 "이 생명의 말씀"를 전하였을 것이다. 

그들과 공회 사이에 일어난 일을 본문은 설명해 준다. 

왜냐하면 말씀을 전하는 순간보다 그들이 고통을 받을 때 신적인 능력과 힘이 더욱 나타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볼 수 있다.

Ⅰ. 두 번째 사도들의 체포. 

하나님께서 이 일을 계획하셨다면 "어째서 그들을 구금당하였을 때 구하셨는가"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은 그들의 박해자들의 교만을 꺾고 광분을 저지하고자 계획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들이 석방된 것은 재판을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님을 보여 주려 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돼 있었고 가장 큰 그들의 원수 앞에 나타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1. 그들은 사도들을 폭력을 쓰지 않고서 오히려 존경감과 부드러운 태도로 데려왔다. 

단에서 그들을 끌어 내리거나 결박하고 질질 끌고 가지도 않고 그들을 존중하며 데려갔다. 

그들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은 거룩한 곳인 성전을 존중하고 또 사도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였다. 

사도들이 아나니아에게 행한 것처럼 그들은 저주하거나 또는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멸할 하늘로부터 불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이 폭력을 쓰지 않은 것은 백성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도들을 존경하였으므로 관리들이 어떤 모욕을 그들에게 가한다면 돌에 맞아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2. 그렇지만 이들 관리들은 그들이 알고서도 사도들을 박해하고 난폭한 짓을 획책하고 있는 자들에게 데려왔다(27절). 

그들은 그들을 범죄자처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웠다" 이리하여 악행을 하는 자와 악행을 저지하기 위해 있는 권력이 선한 행위도 막는 것을 보게 된다.

Ⅱ. 그들의 심문. 

이 엄숙한 공회에 끌려오자 그 회의의 대변자로서 대제사장이 그들이 체포된 데 대해서 사도들에게 말하였다(28절).

1. 그들이 관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명령과 금지 조항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28절). 

"우리의 직권에 의해서 우리가 가장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도 엄히 문책하고 또 너희에게 명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너희가 우리의 명령을 어기고 허락도 없이 계속 가르칠 뿐 아니라 우리의 특별 명령까지 거스리는도다."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자들이 흔히 엄하게 자신들의 법령은 강조하고 자신의 권력을 주장한다. 

"우리가 너희에게 명하지 않았느냐?" 물론 그들이 명령하였었다. 

그러나 그 때 동시에 베드로가 하나님의 권위가 그들의 권위보다 우위에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2. 그들이 백성들 가운데 거짓 도리를 전한다고 하였다. 

적어도 한 가지 교리, 즉 그것은 유대 교회에서 금지되었고 또 모세의 가르침과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여 공중의 안녕을 깨뜨리고 백성들을 공중 질서에서 떠나게 하는도다." 

어떤 이는 이 말씀을 무례하고 조소적인 것으로 여긴다. 

"너희의 교리는 어리석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로다. 이것으로 너희가 이 거룩하고 큰 도시를 시끄럽게 하고 그 교리로 가득차게 하여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구나"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들이 경멸해오던 사람들이 이와 같이 논의의 대상이 된다는 데 노여웠던 것이다.

3. 그들이 정부에 악의를 품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획책한다고 하였다. 

그들이 정부를 악하고 전제적이며 하나님과 사람앞에 추악한 것으로 말한다고 하였다. 

"너희가 이 사람의 피를, 하나님 앞에는 불경스럽고 인간들에게는 수치스러운 그 피를 우리에게 돌리려 하는도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사도들에게 관여 하거나 법정에 대한 모독죄 뿐만 아니라 분열획책, 선동 사람들로 그들에게 반란을 일으키게 음모하였다고 죄를 씌웠다. 사도들이 예수와 같이 흠없고 선하시고도 위대한 분을 박해하여 죽게 한 죄를 자기들에게 씌우고 로마인들까지 끌어들여 죄인을 만들었다고 힐난하였다. 

본문에서 우리는 무엄하게 악한 일을 행한 그들이 그렇게 행하였다고 지적하는 것을 참고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를 열광적으로 박해할 때 그들은 대담하게 외치기를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영원히 우리가 그 치욕을 당하리이다"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자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대단한 모욕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하였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양심에 의하여 죄를 깨닫고 스스로를 정죄하였으며 전에는 그들이 관련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 죄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무서워하였다.

Ⅲ. 문책에 대하여 사도들은 그들에게 항거하는 답변을 하였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다 같은 취지로 말하였다. 

따로 따로 심문을 받든지 같은 내용의 답변이 요구되든지 그들은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한 사람같이 같은 내용을 말하였다. 

그들은 공회 앞에 설 때에 "그들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려 주시겠다는" 그들의 주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용감히 증거하였다.

1. 그들은 자신들이 산헤드린 회의가 아무리 존엄하다 하여도 산헤드린의 명령에 불복종한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밝혔다(29절).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기적을 행하는 능력에 호소하지 않았다(그들을 위해서 충분히 이것을 말할 수 있었으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겸손하게 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들은 오직 인간이 지켜야 할 최고의 명령에 호소하였다. 

이 명령에 모든 자연 양심도 속해 있는 것이고 그들이 이 명령에 따라서 행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칠 것을 명하셨다. 

그러므로 비록 제사장들이 금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 일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상 하나님에게 불복종하는 자를 처벌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인데 그러기는커녕 자기들에게 불복종한다고 인간을 처벌하는 집권자들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들이요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함을 기억하자.

2. 그들은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의 도리를 전하는 일에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비록 그를 전하면서 악한 생각으로 그를 죽인 자들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그들이 피를 흘리게 한다면 자기들은 감사한 심정으로 그 길을 따르리라 말하였다. 

그들에게 범죄 사실로 기소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었다. 

사도들은 말한다. "자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이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그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말하겠도다.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전해야 할지를 당신들이 판단해 보라. 너희가 듣든지 안듣든지, 참든지 참지 못하든지 우리는 이 기회에 너희에게 이 도리를 전하리라."

(1) 사도들은 제사장들이 예수에게 행한 불의를 정면에서 공격한다. 

"너희가 그를 나무에 달아 죽인 것을 부인할 수 없도다." 

사도들은 이 사람의 피를 흘린 죄를 그들에게 전가시킨 데 대해 변명하고 용서를 비는 대신에 되풀이하여 그들의 잘못을 말함으로 맞선다. 

"그를 죽인 것이 바로 너희라. 그것이 너희가 행한 것이라." 

백성들이 그들의 결점을 말해 주는 것을 듣기 싫어한다고 그들에게 그 결점을 성실하게 말해 주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죄를 공박하지 않고자 하는 일반적인 변명은 시대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를 공박하는 것이 그의 사명인 사람들은 이 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시대가 그 공박을 허용해야만 하며 또 허용해야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리 높이 외치라. 그리고 묵인하지 말라." 소리 높이 외치라. 그리고 두려워말라.

(2)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예수에게 어떤 영광을 입게 하셨는지를 제사장들에게 말하였고 그들에게 그의 교리를 박해하는 자들과 그 교리를 전하는 자들 중 누가 옳은지 판단해 보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 우리뿐 아니라 너희의 하나님이라고 부름으로 그들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어떤 새로운 신을 전하는 것도 아니요 백성들을 모아 다른 신들을 예배하도록 유혹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하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예명과 반대되는 법령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조상의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였다. 

그들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이름은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대한 응답이요 계약의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하심을 뜻하는 것이요, 그가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율법의 원형이요 모형이라고 말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요 아버지"이시다. 그럼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주신 명예는 무엇인지 살펴 보자.

① 하나님이 그를 "일으키셨다." 

그는 예수에게 그의 크신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주셨고 그 일을 위하여 부르시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행하신 약속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인다. "주 너희 하나님께서 한 예언자를 너희에게 일으키시리니," 

하나님께서 그를 어두움 속에서 일으키사 위대하게 하시었다. 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를 무덤에서 살리셨다는 의미도 된다. 

"너희가 그를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과 너희가 이 예수에 관하여 다투고 있는 것이 명백하도다. 그렇다 하면 우리가 어느 편에 서는 것이 마땅하뇨?"

② 그가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셨다". 즉 그들 높이 드셨다는 말이다. 

"너희는 그에게 치욕을 가했으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명예로 관씌우셨으니 하나님이 명예롭게 한 그분을 우리가 존귀히 여겨야 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셨다. 그 말은 그가 그의 권능으로 높이셨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셨다. 

또는 오른손으로 높이셨다는 말은 오른편에 앉히시고 거기서 쉬게 하시며 다스리게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장 높은 위엄을 주시고 또한 가장 높은 권능을 맡기셨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가르쳐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기 때문이다."

③ "하나님께서 그를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전하는 것이요 그가 임금이므로 그의 나라의 법령을 선포하는 것이요 그가 구세주이시므로 우리가 그의 은사의 공급자가 되는도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를 우리의 임금으로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로 되실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예전에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자로서 이제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지배하심은 구원하시기 위함이요 믿음은 이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신뢰인 것이다. 

그는 우리를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다.

④ 그를 임금과 구주로 삼으신 것은 "이스라엘로 회개하게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택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국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 가르침을 거스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관헌과 장로들은 어찌하여 결코 적은 축복이 아닌 회개와 용서를 이스라엘에게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을 반대하는가? 

만일 그가 높임을 받으시어 이스라엘을 로마의 속박에서 구하시고 이웃 국가들을 지배하게 하셨다면 제사장들은 그를 진심으로 환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개와 죄 사유는 그의 가치도 인정하지 아니하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축복이었고, 그래서 결코 그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첫째, 회개와 죄사유는 병행한다. 

회개가 있는 곳에 예외 없이 죄 사우는 따른다. 그의 가호하심은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회개없는 죄 사유는 없다. 죄의 세력과 그 지배로부터 자유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죄책감과 죄에 대한 형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회개는 죄로부터 돌아섬이요 그것과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회개와 죄사유를 주시며 그것을 주시도록 권한이 부여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새 계약인 복음서에 약속된 것은 무엇이든지 죄를 회개하여 사유함 받은 바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는 이마다 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에게 회개가 주어졌는가? 그리스도는 회개를 주시는 분으로 임명되어지셨으며 말씀과 함께 역사하는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양심을 일깨우시며 죄에 대한 뉘우침을 불러 일으키며 마음과 생활에 효과적인 변화를 주시는 것이다. 

그의 역사하심으로 새 마음이 지어지고 그가 제공하신 희생으로 상한 심령이 고침을 받는다. 

그가 회개는 허락하시고 죄 사유는 주시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손으로 역사를 포기하는 것이 되고 만다.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를 회개케 하는 그의 은총에 대해 믿음을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의탁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기억하자.

⑤ 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졌다.

첫째, 사도들에 의해 성취되었다. 

그들은 누가 요구하든지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사 부활하신 후 사십여일간 친히 살아 계신 것을 보았고 또 그가 하늘로 승천하시는 것을 보았다고 엄숙히 증언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마음 속에 은총의 능력을 경험하였다는 것과 그들의 천연적 성품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우리는 세상에 이 사실을 선포하기 위해 그에게 임명받은 그의 증인이라. 만약 너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로 우리가 침묵을 지킨다면 배신자가 되며 위선자가 되는도다." 

한 운동이 시작될 때는 모든 사람에 대한 증인들은 침묵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운동의 성패는 그들의 증언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성취되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유력한 증인들로서 우리의 증언은 인간의 법정 앞에서도 유효하도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성령이 친히 증인이시라." 

그런데 성령하나님, 그는 하늘로부터의 증인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물과 은사를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이름을 전한다. 왜냐하면 이 목적을 위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요 우리가 그의 역사를 억누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순종하는 신자들에게 성령을 주심은, 즉 그들에게 순종의 믿음을 주실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 뛰어난 역사를 하게 하심은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훌륭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에 의하여 그의 이름으로(요 14:26)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요 14:16) 성령을 주시었다.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보내도록 하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인 것이다(요 15:26; 16:7). 그리고 이것은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신 영광을 입증해 준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옳다 증거하실 뿐 아니라(딤전 3:16) 그를 영화롭게 하시며 또 성령께서 베푸는 모든 은사는 그의 이름을 높이시기 위한 것인데 이 모든 사실은 예수의 가르침이 신성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거기서 신적인 능력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끝으로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은 그들이 복종을 돕고 그들의 복종에 대해 보상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를 반대하여 너희에게 복종해야 될지 판단해 보라."

Ⅳ. 사도들의 자기 변호가 법정에 미친 영향. 

그들의 말은 분별력있고 진지하며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확실히 이같이 정당한 변론은 죄수들의 결백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며 판사들의 마음을 돌이킬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은 그 변론을 인정하기는커녕 분노로 충만하였다.

1. 그들은 사도들의 말에 대해서 분해 분개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가 바로 그들 앞에서 논리정연하게 진술되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와 같이 변증할 수 있다는 것과 따라서 그만치 기반이 확고해진 것을 보고 그들은 광분하였다. 

이 같은 취지의 설교를 백성들에게 전하였다면 "마음에 찔림을 받아" 자책과 슬픔에 잠겼으리라(2:27). 

그런데 이 사람들은 분노로 "마음에 사무쳤다"(한글 개역과는 다소 다름:역주). 

그러므로 똑같은 복음이 어떤 이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향기요, 다른 사람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취가 된다. 

복음을 적대시하는 자들은 스스로 그 위로를 거부할 뿐 아니라 공포로 가득 차 스스로 고통에 몸부림친다.

2. 그들은 바로 사도들에게도 악의를 품었다. 

사도들을 죽이는 것 외에 그들의 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모의를 하였고 그러므로 복음이 확장되는 것을 막기를 바랐다. 

사도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마음의 평온이 완전히 조화를 이루며 스스로 내적인 기쁨을 만끽함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동안 그들의 박해자들은 끊임없는 혼란과 마음의 동요 속에서 스스로 괴로워하며 계속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있었다.

Ⅴ. 이 회의의 주도적인 인물, 가말리엘이 이 사건에 대하여 제시한 진중한 충고는 어느 정도 이들 무뢰한들의 광란을 제어하였고 폭력 수행을 저지하였다. 

이 가말리엘은 바리새파에 속해 있으며 직책은 "교법사"로서 구약 성서를 연구하고 성서 기자들에 대해 강의를 하며 성서를 가르침으로 생도들을 육성하는 사람이었다. 바울이 그의 문하에서 배웠고(12:3) 스데반과 바나바도 그에게 배웠다고 전승은 전해 준다. 

^^어떤 이는 그가 그리스도께서 성전에 드려졌을 때 그를 팔에 안은 시몬의 아들이요 유명한 힐렐의 손자라고 한다. 

본문에 그는 지혜와 행동에 있어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는 온건한 사람이었던 것 같으며 극단적인 분위기에 말려들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온건하고 자애로운 성품의 사람들은 세계를 불지를 듯이 날뛰는 선동자들을 제지하므로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는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그는 전에 있었던 사례를 들어 공회에 필요한 주의를 준다. 

그는 보다 자유롭게 말하고 또 자유로운 답변을 듣기 위하여 "사도들은 잠깐 밖에 나가게 한다"(죄수들 당사자의 문제가 논의될 때 그들이 자리를 떠나는 일은 합당한 처사다). 

그렇게 하고 그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그들의 가열된 머리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냉철히 판단할 수 없음을 말해 주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고 그는 말한다(35절). 

이것은 평범한 문제가 아니므로 조급하게 결정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그들에게 경고심을 강조하는 뜻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여러분들이여 이성을 찾으라. 지각이 없는 말이나 나귀처럼 행동하지 말지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자들이여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나그네나 이방인처럼 행하지 말라. 너희가 스스로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이 사람들에게 분내는 것을 조심하라."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자들은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기억하자. 

우리도 혹시 의인의 마음에 슬픔을 주지 않도록 우리가 괴로움을 끼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그는 그의 의견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그런 사례를 인용한다. 

그는 당을 지어 선동하던 사람들에 대해 두 사례를 든다(그들은 사도들도 이 같은 무리로 취급하였다). 

그들의 선동 시도는 결국 수포로 돌아갔었다. 만약 이들도(사도들) 그와 같은 무리라면 제풀에 꺾이고 말 것이요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을 혼미케 하여 패하게 할 것이니 그들이 직접 박해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1) 드다라는 자기 있었는데 그는 한동안 대단한 소요를 일으키고 교회와 국가에 대 개혁을 일으키기 위해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라 또는 교사나 임금 같은 위대한 자라고(본문에 의하면) "스스로 자랑하였다." 본문에서 가말리엘은 그에 관해 다음 같이 말한다.

① 그가 얼마나 득세하였는가를 말한다. 

"약 사백이나 되는 무리가 그를 따랐으나 무엇을 해야 할 지 무엇을 바라는 것이 좋은지를 몰랐도다. 그러나 당시에는 무시할 수 없는 집단처럼 보였도다."

② 그의 자만이 얼마나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는가를 말한다. 

"그가 살해당하자"(아마 전쟁에서)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흩어졌고 그러므로 더 이상 근심할 필요가 없었도다. 그들은 태양 앞에 눈 녹듯이 쓰러지고 말았으니 그때의 경우를 지금과 비교해 보라. 너희가 이 당파의 주모자인 예수를 죽여 없이 하였도다. 만약 그가 너희가 말하는 것처럼 사기꾼이요 위선자라면 드다의 경우와 같이 그가 죽으므로 그가 시작한 운동도 끝날 것이요 결국 그의 추종자들도 흩어지고 말 것 아닌가," 

과거의 일을 살펴 봄으로 우리는 그와 같은 경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말할 수 있다. 목자가 흩어지면 양도 흩어지게 될 것이다. 

만일 평강의 하나님이 위대한 목자의 죽음에서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 없다면 그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2) 이 사건은 "갈릴리 유다"의 사건과도 같았다(37절).

① 갈릴리 유다의 시도.

"그 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이는 "이 일 외에"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견해로는 "그 후에"로 보고 싶다) 이는 드다의 폭동이 있은지 오래지 않아 유다의 폭동이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호적할 때"라 하였으니 주로 주님께서 탄생하시던 때를 말함이요(눅 2:1)드다의 폭동은 요세푸스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스피우스 파도스(Cuspius Fadus) 통치 시대였고 유다의 사건을 콜라우디우스 씨이저 당시의 일로써 여러 해가 지난 후 가말리엘이 이에 대해 말하였던 것으로 같은 연대의 사건 일 수는 없다. 

이 사건들이 언제 일어났는지 정확히 결정짓기는 쉬운 일이 아니며 본문의 호적하던 때가 주님 탄생시의 그것과 같은 것인지 그 후의 것인지도 결정짓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는 갈릴리 유다가 요셉푸스가 말하는 유다 갈로나이트(Judas Gaulonites)와 동일 인물이라고도 하고 다른 사람은 아니라고도 한다. 

이 사건들은 그 당시의 최근에 일어났던 사건들로서 기억에 생생하였던 것 같다. "이 유다도 백성을 꾀어 쫓게 하였다."

② 그러나 본문을 보면 그의 기도도 실패하고 말았다. 

산헤드린 회의가 간섭하지도 않았으며 그를 정죄하지도 않았지만(그렇게 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그 또한 망하였고 그를 쫓던 모든 사람도" 즉 그에게 설득되었던 사람들도 흩어지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그들의 생명을 버렸고 다른 사람들도 같은 함정에 빠지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바벨론의 왕을 섬기도록 결정하였음에도 그들은 주어진 섭리에 만족하지도 않고 세금도 징수하는 때에 보다 큰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봉기하였던 것이다.

3.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그의 결론.

(1) 그들이 사도들을 박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38절).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은 충고는 "이 사람들을 상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이 행한 일을 처벌하려 하지도 말고 앞으로 금하려 하지도 말라. 그들을 묵인하라.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라. 우리가 손을 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가 백성들과 로마인에게 원한을 사므로 일을 더 악화시킬까 두려워하여 이렇게 겸손히 말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여하튼 사도들은 외적인 무력으로 무슨 일을 기도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전쟁 무기는 육적인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을 대적하여 어찌 외적인 무력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또는 그가 적어도 기독교 가르침의 진리에 대해 그 가능성을 인정함으로 회심 과정 아래 있었기에 그들이 보다 낫게 대우를 받도록, 즉 적어도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분명치 않다. 

또는 그의 말은 양심의 문제에 대해 박해하는 데 대한 항변으로서 온유하고 사려깊은 정신에서 우러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또는 하나님께서 이 때에 사도들을 놓아 주시기 위해 가말리엘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말하도록 이 말을 그의 입에 두셨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사건 속에 초월적인 섭리가 있음을 확신한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석방될 뿐만 아니라 명예롭게 석방되는 것이다.

(2) 그는 그들로 하여금 이 문제를 섭리에 맡기라고 말한다. 

"사건의 추이를 기다리라.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두고 봅시다." 

"만일 사람에게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 났으면 너희의 권력과 책략에도 불구하고 무너뜨릴 수 없으리라." 

명백히 악하고 부도덕적인 것은 제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치안관에게 주어진 권력은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은 그것이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의심스러운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그대로 묵인해 두는 것이 최선책이며 그것을 제압하려 외적인 무력을 행사하지 말고 되어 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 최선책이다. 

그리스도는 검으로써가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다스리신다. 

JC께서 요한의 세례에 관해 "그것이 사람으로부터냐 하늘로부터냐" 물으신 것처럼 사도들의 가르침과 세례에 대해서도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에 앞서 활동한 것처럼 사도들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활동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질문에 대해 그들이 그것이 사람에게서인지 하늘로부터인지 말할 수 없었던 것처럼 사도들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희가 어떤 길을 택하든지 박해하여서는 안 된다는 이유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① "만일 이 모임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고 한 공동체까지 이룬 이 일이 사람에게서라면 무너질 것이다. 만일 이 모임과 역사가 무엇을 해야할지 알지도 못하는 어리석고 우매한 자들의 소행이라면 잠시 동안 내버려두면 스스로 기진할 것이요 그들의 어리석음이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날 것이요 스스로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만약 이 모임과 역사가 간사하고 술책을 부리는 자들이 종교라는 미명 아래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한다면 내버려두라. 그러면 가면이 벗겨질 날이 올 것이요 그들의 협잡이 모든 사람들 앞에 드러날 것이요 추한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이 결코 그것을 장려하지 않으리라. 시간이 지나면 무너질 것이요 그렇다면 너희가 박해하고 그것을 반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스스로 고통을 사서 하며 증오를 받으며 시간만 지나면 제품에 죽을 것을 없애려 할 필요가 없도다. 권력을 불필요한 곳에 쓰는 것은 남용에 불과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② "그러나(지혜있는 너희들의 착각으로) 이 사상과 이 소행이 하나님께로 났으면 또한 이 전도자들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과 지도를 받고 있고 구약 예언자들처럼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의 참된 사자라고 한다면 그들을 핍박하고 그들을 살해하려는 너희의 이 기도가 어떠할지 생각해 보라(33절). 만일 그렇다면 너희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째, "그들을 적대하는 것이 소용없는 것이란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으리니 여호와를 대적할 만한 지혜도 사상도 세상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에 앉으신 이가 너희를 비웃으시리라." 

이 사실은 성실히 하나님 편에 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이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그들의 목적은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아무리 거세게 반대한다 해도 결코 모든 것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것이 짓밟힌다 해도 다시 일어난다.

둘째, "자신에게 위험스런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간청하노니 혹시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내버려 두라. 이 싸움에서 누가 악한 자로 판명될지 결과를 보도록 하자." "그의 창조주에게 대적하는 자가 화있을진저," 

왜냐하면 그는 무력한 대적자로서 그 앞에서 정복될 뿐 아니라 그의 의로우신 임금을 대적한 반역자요 사기꾼으로 가혹하게 취급되겠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증오하고 학대하며 그의 신실한 사역자들을 막으며 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려 싸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대적하는 일을 자기에게 대한 적대 행위로 보시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들을 건드리는 것은 곧 그의 눈동자를 다침이라." 

이러한 내용이 가말리엘의 충고였다. 

우리는 이 말이 양심의 거리낌 때문에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온당하게 숙고되어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가말리엘이 어떤 사람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이 견해는 좋은 사상이요 타당성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 저술가들의 전승에 의하면 그는 철저하게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증오하는 자로서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적어도 지금은).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을 핍박하는 것을 만류했지만 여전히 그는 오늘날도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과 기독교를 박멸해 달라고 기도할 때 사용하는 기도문을 지은 사람이다. 

이와는 반대로 교부들의 전승에 의하면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전에도 그가 가르치던 바울의 추종자로 저명한 기독교 수호자로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이 말이 옳다면 우리가 사도행전이나 서신들 가운데서 그에 대하여 어느 정도 소식을 들을 수 있어야 했으리라..

Ⅵ. 전반 문제에 대한 회의의 결정(40절).

1. 그들이 가말리엘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으나 사도들을 죽이려하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 속에서 상당한 타당성이 있음을 알았고 당시로써는 그것으로 그들의 광분을 제지할 수 있었고 여분의 분노도 막을 수 있었다.

2.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의 양심과 판단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분노를 분출시키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그들의 분노는 굉장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을 그대로 놔두자고 충고를 받았지만

(1) "그들을 채찍질하였다." 

그들이 회당에서 흔히 하였듯이 그들을 악인처럼 형을 가하였으니 그들의 옷을 벗기고 매질하였다. 

그들이 받은 능욕에 대해 언급되고 있다(41절). 

그러므로 그들은 사도들이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히 여기며 백성들도 듣는 것을 부끄러워하리라 생각하였다. 

그들은 빌라도가 예수에게서 아무 결점도 발견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도 자기를 들어내기 위하여 우리의 구세주를 채찍질하듯 하였던 것이다.

(2) 그들은 더 이상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아무런 결점도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이제는 이 근거를 가지고 그들을 책잡을 수 있게 해 놓았다. 

즉 복음을 가르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고 금지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상급 관리들의 특별 명령을 어겼다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Ⅶ. 사도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모욕과 무례 속에서도 놀라운 용기와 지조를 보였다. 

그들은 석방되자 "공회 앞을 떠났다." 

그들은 공회와 그들에게 가한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 한 마디의 비방도 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이 모함을 당하여도 다시 모함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고통을 당하여도 협박하지 않고" 가말리엘이 말하였던 의로써 판단하시는 그 하나님에게 "그들의 사정을 의탁하였다." 

그들의 모든 관심사는 자신의 영혼을 보존하고 그들에 대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었다. 이 두 가지를 그들은 훌륭히 하였다.

1. 그들은 그들의 고통을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견디었다(41절). 

그들이 떠날 때에 그들의 팔과 손에 채찍 흔적이 나타났었으리라. 

그리고 종들이나 하층민들에게 조소를 받았고 사람들은 그들이 불명예스러운 처벌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와 관련된 것을 부끄러워하는 대신에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 

그들은 덕망있는 사람들로서 스스로 악행을 저지른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통당한 것을 수치로 여길 수밖에 없었고 흔히 소박한 심정을 지닌 자들에게 그러하듯 분하다기 보다는 더욱 침통한 기분이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능욕받는 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것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에게 속하였고 그의 관심사를 위해 섬기며 또 그들의 당하는 고통은 그의 이름을 더욱 널리 펴는 데 공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1) 그들은 그것을 명예로 여겼다. 

즉 "그들이 능욕받는 것을 합당하게 여겼다" 

즉 그리스도를 위해 수치 당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다. 

그리스도를 위해 수치를 받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형상을 닮게 해 주며 그의 일을 위해 봉사하게 함으로 오히려 참다운 의미의 승진이다.

(2) 그들은 첫 전도 여행을 떠날 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마 5:11-12) 수치당함을 기뻐하였다.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할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들은 그들이 고통을 당하였음에도 오히려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기뻐하였다(그들이 받는 고통이 기쁨을 감소시키지 않았다). 

그들이 당한 고통은 그들의 기쁨을 증가시켰고 더욱 크게 하였다. 

만일 우리가 선행을 하고도 치욕을 받고 또 그것을 잘 견딜 수 있다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시는 은사에 대하여 기뻐해야 한다.

2. 그들은 끈질기게 부지런히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였다(42절). 

그들은 복음 전한다하여 처벌을 당하였고 또 전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쉬지 않았다." 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열심이나 솔선하는데 결코 꾀를 부리지 않았다.

(1) 그들은 "매일" 복음을 전했다. 

안식일이나 주일뿐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던 것처럼 매일 매일 어김없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하였다(마 26:55; 눅 19:47). 

그들은 죽지나 않을까 또 듣는 사람들이 싫증내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았다.

(2) 그들은 공개적으로 성전에서 또는 사적으로 각 개인의 집에서 복음을 전했다. 

전자는 모든 사람이 모이는 혼잡한 집회였고 후자는 특별한 의식으로 선별된 기독교인의 집회였다. 

그들을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하여 핑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말씀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그들은 자주 눈에 뜨이고 따라서 적들의 감시를 받아야 했지만 그렇다고 설교를 자기들의 집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위험을 무릎쓰고 성전을 사용했다. 그들은 성별된 곳인 성전을 이용할 자유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비록 가난한 오두막집일지라도 모든 사람의 집에서 전하는 것을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가 책임맡은 가족을 방문하였고 어린이나 하인에게까지 그들의 형편에 따라서 개별적인 교훈을 전하여 주었다.

(3) 그들이 가르친 주제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그들은 그에 관해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그를 높여 전하였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그가 그들의 임금과 구주라고 계시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 전한 것이 아니라 신랑의 신실한 친구로서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그들이 한 일은 오로지 그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제사장들의 설교에서 가장 큰 실수는 그들이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전하는 것으로써 그들은 자기의 원대로 설교 주제를 바꿀 수 없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복음의 사역자들의 계속적인 의무이다. 

그리스도 그가 못박히셨다는 것과 그리스도 그가 영광을 입으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요약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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