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4.06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행6.일곱집사 선택_안수. 심문받는 스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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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6장

===일곱 일꾼을 택하다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스데반이 잡히다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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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장 (개요)

본장의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Ⅰ. 구제에 나간다는 한 제자들의 의견 대립(1).

Ⅱ. 구제 문제를 전담할 일곱 집사의 선택과 안수, 사도들의 업무가 가벼워짐(2-6).

Ⅲ.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입함으로 교회가 확장됨(7).

Ⅳ. 일곱 집사의 한 사람인 스데반에 대한 특별한 설명.

1. 그리스도를 위한 그의 뛰어난 활약(8).

2. 그가 기독교의 적들로부터 반대에 직면함. 그들과 그의 논쟁(9, 10).

3. 그로 인해 산헤드린 회의가 소집됨. 그에게 죄를 씌우다(11-14).

4. 심판대 앞에 선 스데반을 하나님이 귀하게 보심(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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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일꾼을 택하다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택함 받은 일곱 집사들(행 6:1-7)

우리는 교회가 그의 적들과 투쟁한 내용과 교회에 주어진 승리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제 우리는 교회가 그 내적인 문제들을 처리하는 것을 살펴 보도록 하자.

Ⅰ. 몇몇 교인 간의 불행스러운 논쟁은 나쁜 영향을 끼칠 것처럼 보여졌으나 신중하게 조정이 되어지고 적절한 시기에 처리되었다. 

"그 때에 제자의 수가"(제자라 함은 기독교인은 처음에 그리스도를 배우는 자로 불리워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수천 명으로 증가하는데 이 때 원망이 일어났다.

1. "제자들의 수가 많아졌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준다. 

그러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것을 보고 마음이 초조하였다. 

복음 전파에 대한 반대에 부딪쳤으나 그것은 그 진행을 저지하는 대신에 오히려 촉진제가 되었다. 

초창기의 기독교 교회는 애굽에서 초창기의 유대 교회가 그러하였듯이 "박해를 받을수록 더욱 왕성하여졌다." 

전도자들은 매를 맞고 위협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였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그들이 심판대 앞에서 보여 준 놀라운 인내와 변함없는 기쁨을 보고 그들이 자신들에게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영에 의해 보존되고 일을 수행한다는 것을 확신케 되었다.

2. 그러나 제자들의 수가 증가하므로 원망이 생겼다는 것은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 

지금까지는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그들에게 명예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수가 많아지자 원망이 시작되었다. 

구약에서와 같이 "그들이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스스로 타락하였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셨으나 그 즐거움은 더하시지 않았다"(사 9:3)(한글 개역과 다름. 한글 개역에는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다로 되어 있음:역주). 

아브라함과 롯의 가족이 많아지므로 "그들의 목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본문에서도 그러하였다. 즉 노골적인 불평은 아니었고 은밀히 가슴 태우며 하는 그런 불평이 일어났다.

(1) 불평한 사람들은 "헬라파 유대인들의 히브리파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리스와 다른 지역에 흩어져있는 유대인들로서 그들은 보통 희랍어를 말하였고 희랍어판 구약 성서를 읽었으며 히브리원어 성경은 읽지 않았다. 

절기를 당하여 예루살렘에 왔던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였고 이리하여 교인의 수가 늘었고, 그들은 계속 머물러 있었다. 

이 사람들이 히브리 원어로 된 구약 성서를 읽는 유대 본토인 히브리인들에 대해 불평하였다. 

양쪽에서 얼마씩 기독교인이 되었는 바, 기독교 신앙을 함께 받아들였지만 회심하기 전에 그들이 서로 품고 있었던 사소한 시비가 채 해소되지 않은 것 같다. 서로서로 부패한 죄된 본성, 곧 옛 누룩을 다 완전히 처리하지는 못한 상태였는 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희랍인도 없고 유대인도 없으며" 히브리파와 헬라파의 구분도 없고 모두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요 또 그로 인하여 서로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거나 또는 기억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2)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평은 "그들이 과부들이 무시를 당하여 날마다의 식량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한글 개역과는 조금 다름. 공동 번역 참조:역주) 즉 구제를 베푸는 일에 있어서 히브리파 유대인의 과부들이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보살핌을 받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기독교 교회안의 최초의 논란거리는 다름아니라 금전에 관한 것이었다. 

"이 세상의 사소한 문제들이" "저 세상의 보다 큰 일에" 전념해야 할 사람들 가운데서 화근이 되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물론, 상당한 양의 금액이 가난한 자들의 구제를 위하여 모금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종종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을 분배하는데 있어서 모든 사람을 만족케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발 아래 놓인 돈을 다루는 사도들은 헌납자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도록 그것을 처리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고 물론 그 일의 계획을 수립하는 데도 최대 한도의 공정성을 기하였을 것이었다. 따라서 희랍파 유대인들보다 히브리파 유대인을 더 유의하지도 않았으리라... 그런데도 그들은 그 일에 대해 불평하였고 들어 내놓고서가 아니라 남몰래 "희랍파 유대인 과부들이 무시되어진다고" 불평하였다. 

물론 그들도 구제를 받기는 했지만 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적게 할당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식의, 또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처럼 많은 사람에게 분배되지 않는다든가 때맞게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리라.

① 아마도 이 불평은 근거도 없고 부당한 것인 듯하다. 

실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붙이든 간에 유리한 입장에 서지 않은 사람들은(희랍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입장과 비교해 보고 그러하였듯이)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은데 그들이 무시받고 있다고 시기하기 쉽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열등감과 연관된 시기와 탐심에 노출되기 쉬운 결점인 바, 그들에게 주어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대신에 불평하며 소란을 일으키고 그들에게 더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든가 또는 그들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준다고 흠을 잡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시기와 탐심은 늘 있어서 이 비정함의 근원은 부자나 빈자나 할 것없이 발견되며 이들은 겸손히 절약하며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② 그러나 반면에 우리들은 그들의 불평에 근거가 있을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어떤 이는 [히브리파에 속한] 가난한 과부들은 상대적으로 잘 공급을 받고 있는데 희랍파에 속한 과부들은 상대적으로 무시를 당한 것 같이 보인 것은 재정을 맡아 관리하며 나누어 주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 히브리인들이 지켜 왔던 옛 관습은 그대로 두고 배분 문제를 다스렸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제시한다. 

이것은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가 있다면 [교회가 먼저 돌보기전에] 그들로 하여금 먼저 그 과부를 대접하게 하라"는 말씀이다(딤전 5:4).

둘째, 나는 본문에서 과부들이 모든 가난한 사람들보다 우선적으로 대접받았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교회에 전해오는 여러 책 가운데 구제를 받은 많은 사람들은 과부들로서 그들은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 그들의 노력에 의하여 잘 지냈으나 그들이 죽으므로 곤경에 빠지게 된 자들이었다.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특례를 정하여 과부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했었던 것처럼(사 1:17; 눅 18:3) 구제 문제를 다스리는 사람들도 특별히 과부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야 한다(딤전 5:3). 본문의 과부들과 또 다른 가난한 사람들이 매일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아마 그들은 앞날을 예측하지 못했고 따라서 훗날을 위해 저축한 것도 없었던 것 같으며 그러므로 재정 관리자들은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였는데, 겨우 근근히 살아가는 정도였던 것 같다. 

이제 희랍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비교적 무시당하였던 것같이 보이는 면을 생각해 보자. 

아마 금전을 다루는 사람들이 헌납자들, 곧 부유한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부유한 희랍파 유대인들보다 더 많이 헌납한 것을 고려한 것일 수도 있다. 

희랍파 유대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처럼 재산을 팔지는 않았고 따라서 가난한 희랍파 유대인들에게 그 기금에서 적게 배당이 된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넓게 생각하면 [나름대로 서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들은 매정하고 부당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 세상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교회에서라 할지라도 잘못과 부당한 처사, 불만스러운 일이나 또는 적어도 어떤류의 불평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최상의 것일수록 불완전이 최소로 줄어들 수는 있으나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Ⅱ. 문제에 대한 적절한 조치 및 이 불평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대책의 설정. 

지금까지는 사도들이 이 문제를 다스려 왔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직접 구제를 신청하였고 그들의 비참한 입장을 호소하였다. 

따라서, 사도들은 그 지휘 하에 사람들을 두어야 했는데, 이 사람들은 사도들처럼 잘 보살피지도 못하였고 편파적인 유혹에 대해 확고히 거절하지도 못했던 것 같으며, 결국 사도들보다 이 문제를 다룰 만한 여유가 있고 이 문제를 전담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몇 택정되어야만 했다. 

또한 이들은 사도들이 채용했던 사람들보다 신용을 보장할 수 있어야 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사도들에 의해 제출된 선출 방법. 

"그들이 모든 제자" 즉 예루살렘에서 모이는 집회의 회장들 곧 주도적 역할을 하는 인물들을 불렀다. 

그들을 제쳐놓고 12사도들이 어떤 문제이건 결정하려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과 의논하는 것이 안전하며" 또 이런 사건에서는 사도들보다  세상의 일반사에 보다 정통한 사람들이 가장 적절하게 조력할 수 있겠기 때문이었다.

(1) 사도들은 막중한 사업을 앞에 두고 지금과 같은 큰 분열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다(2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금전을 받고 지불하는 일은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의 업무와 같이" 세상적인 살림의 문제였다. 이것은 사도들이 본래 불리워진 사명과는 생소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했다." 

그들은 지금 우리들과 같이 매 경우마다 그들이 전할 것을 연구하지는 않았지만(그들이 말해야할 것은 그 시각에 성령에 의해 주어졌으므로) 그러나 그들은 그들 한 사람이 우리 열 명보다 아니 천 명보다 나았으나 이 일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것으로 즉 그들의 생각과 염려와 시간을 모두 투입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만일 그들이 교회 생활, 특히 전반적인 행정에 관여하면 그만치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일은" 손해가 될 수 있었고 그들은 그들의 능력껏 세심하게 복음 전파하는 사명에 노력을 집중할 수 없었다. 

우리의 마음이란 한 번에 두 가지의 다른 염려스러운 문제들을 같이 감당하지 못하는 법이다. 

물론 공궤하는 일은 경건한 목적을 위한 것이었고 부유한 기독교인들이 도움을 받아 가난한 교인들의 궁핍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 둘 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었지만 사도들은 이 일을 해야된다고 해서 말씀 전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등에 채찍을 맞았다고 해서 이 복음전파사명에서 떠날 수 없었던 것처럼 사도들의 발 앞에 놓은 금전 때문에 말씀 전파를 멀리 한다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자들이 수효가 적었을 때는 사도들은 그들의 주 업무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지 않고 서로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제자들의 수가 증가했으므로 그들이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마땅치 않은 일이었다. 

즉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 곧 육신의 떡 때문에 영혼을 먹이는 일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합당한 일 또는 장려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교역자가 해야할 최고의 사명이요, 가장 적절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그는 이 일에 자신을 전적으로 바쳐야 한다(딤전 4:15). 

복음 전파에 전적으로 충성하고 이 세상 문제 처리나 Q의 집의 외적 업무의 분주함때문에 마음을 분산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딤후 2:4)(느 11:16).

(2) 그러므로 그들은 이 목적을 위해 합당한 일곱 사람을 선택하기를 원하였다. 

이들의 업무는 공궤하는 일 - 즉 살림을 맡아 다스리는 집사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2절). 

이 다스리는 일은 전에 사도들이 맡아 하며 신경쓰던 것보다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했기에 적당한 사람이 선택되어야 했던 바, 이 사람들은 때때로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도 종사할 수 있되, 사도들처럼 전적으로 이 일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교회의 재산을 돌아보며 세심하게 살피며 지불할 것은 지불하고 회계를 관장하는 것, 곧 그 일들 중 하나를 예를 들자면 "명절에 대비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구입하는 일이었다."(요 13:29). 

그외에도 영적인 활동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등, 모든 일이 규모있고 질서있게 다루어져야 했고 한 개인이나 어떤 일도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① 이 사람들은 알맞은 성품을 지녀야만 한다. "너희 가운데서 사람 일곱을 택하라." 

제자들은 선출하였고 사도들은 안수하였다. 그러나 실지로는 인간은 참으로 선택할 권한도 없고 사도들도 안수할 자격이 없다. 사람들은 전적으로 이 일에 합당치 않은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사람 일곱을 택하라." 그들은 현재로써는 이만한 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필요하다면 후에 증원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이 사람들은,

첫째,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했다." 

부정함이 없으며 이웃들에게 흠 없고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어떤 추한 결함도 없고 오히려 모든 일에서 덕스럽고 찬양할 만하다 여겨지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사람들의 오가는 말 속에서 선한 행실이 입증되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교회에서 직책을 맡은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신망이 있고 결점이 없는 사람들이어야 하는데 이 조건은 그들의 직책의 신용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 직책을 그때 그때 수행하는 데도 필수적인 것임을 기억하자.

둘째, 그것은 "성령이 충만해야"만 하였다.

 즉 주어진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데 필요한 성령의 은사가 충만해야만 하였다. 

그들은 정직한 사람일 뿐 아니라 재능과 용기를 겸한 사람들로서 이런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백성을 재판하는 직책을 맡을 수 있었다(출 18:21).

"재덕이 겸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였다. 그러나 본문에는 "성령이 충만한 자"로 표현된다.

셋째,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정직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각이 있고 현명한 사람들로 억지로 떠맡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깊어 최선을 다하여 일을 순서있게 처리하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는 말은 지혜의 영뿐만 아니라 성령도 마찬가지로 충만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지식의 말씀과는 구분되게 같은 성령이 주시는 지혜의 말씀을 볼 수 있다(고전 12:8). 

공금(公金)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이어야 하며 그리하여 성실하고도 검소하게 금전을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② 백성들에게 추천이 맡겨졌다. 

"너희 가운데서 사람 일곱을 택하라. 너희 가운데서 누가 이런 일을 맡기기에 가장 적당한지 생각해 보고 가장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택하라." 

백성들은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가 하는 데 대해서는 사도들보다 더 잘 알고 적어도 이런 사람들을 찾는 데 자기들이 더 적절할 것이라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선택하는 일이 그들에게 맡겨졌다.

③ 사도들은 봉직함에 있어서 그들에게 안수하기를 바랐고 그리하여 그들에게 직책을 맡기려 하였다. 

즉 그들로 하여금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하며 직책 수행에 자신있게 임하게 하며 그들과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상대하는 사람들이 누구며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그들에게 복종해야 함을 알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우리가[사도들이] 이 일을[교회의 재정관리 및 구제/공궤하는 일이나 교회의 일반행정사무들을] 저희에게[선택의 위임을 받은 회중들이 선택하여 사도들에게 천거한 자, 그들에게] 맡기고" 

영문판 성서 중에서 오류를 범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여기에서는 "너희가 이 일을 맡긴 사람"이라고 [잘못] 해석하므로 책임을 맡기는 권력이 백성에게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것은 사도들에게 있는 것이었다. 

즉 "우리가 이 일을 맡기고" 이 일을 돌보도록 하고 낭비나 부족함이 없는지 살피겠다는 말씀으로 봄이 옳다(우리말 성경과는 다름-역주).

(3) 사도들은 목회자로서의 그들의 사업에만 전념할 것이며 이 부담스러운 직책인 공궤하는 일을 완전히 중단하며 더욱 일에 힘쓸 것이라 한다(4절).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① 복음의 이대(二大) 강령은 "말씀과 기도이다." 

이 강령에 의하여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교류가 이루어지고 보존되어야 한다. 

말씀을 통해 그가 백성들에게 말하시고 기도를 통하여 인간들이 하나님에게 호소한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보완한다. 

이 두 강령에 의해 그리스도의 나라는 전진하며 그 수효가 증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른 뼈에게 예언해야 하며" 그런 다음 하나님에게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에 의해 다른 강령도 우리에게 성별되며, 성례는 그 효력을 발한다.

② 복음 사역자들의 대 임무는 계속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며 말씀을 먹이는 것이다. 

그들은 이 임무에 자신을 적응시키며 늘 준비를 갖추어야 하며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또는 그밖에도 이 일에 전념해야 한다. 

그들은 말씀을 전함으로써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어야 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백성의 대언자가 되어야 한다. 

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케하기 위하여, 성도들을 교화하고 위로하기 위하여 목자는 위하여 기도해야하며 그들에게 말씀을 먹여야 한다. 

또한 우리의 노력에 약속된 방법인 기도에 의해 활력을 공급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말씀만 먹여서는 안 된다. 그 말씀이 효력을 지니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설교없이도 역사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이 없는 우리의 설교는 헛된 것이다. 

사도들에게는 특별한 성령의 은사가 주어졌고 그리하여 방언과 기적을 행하였다. 

그렇지만 아직 그들은 이를 위해 계속해서 전파하고 기도해야 했었으며 이로써 교회를 교화할 수 있었다. 

목회자들은 분명히 사도들의 계승자들이다(그렇다고 사도들의 능력 충만까지 계승하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러한 것을 가장하는 사람들은 외람된 침해자이다. 사도적인 직무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에서만 계승자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계속해서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해야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실 것이다.

2. 이 제안에 합의를 보아 곧 제자들에 의해 실행에 옮겨졌다. 

비록 사도들은 이것을 행하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말할 수 있었지만 절대적 권력으로 강요하지는 않았다(빌 8). 오직 듣기 좋은 말로 제안하였다. 

그러자 "온 무리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였다"(5절). 

무리들은 사도들이 세속적인 문제에 관여하는 일을 기꺼이 피하고 이 문제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또한 그들은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사도들이 전념하겠다는 말을 듣고 만족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문제로 논쟁을 벌리지도 않았고 그 집행을 연기하지도 않았다.

(1) 그들은 사람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가 같은 사람들을 택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각자마다 그의 친구가 있었고 그는 그 친구들을 좋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다수의 표가 본문에 명기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되었다. 또한 나머지 후보들이나 다른 유권자들도 이 결과에 순응하여 일반 사회 단체에서 이러한 경우에 하는 것처럼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다. 

특별한 임무가 주어진 사도의 자리를 채우는 데 제비로 결정하였다. 이것은 보다 직접적인 하나님의 행위를 뜻하는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집사는 사람들의 투표로 선출되었다. 그렇지만 이 안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수중에 모든 인간의 마음과 혀를 장악하신다. 

우리는 택함받은 사람들의 목록을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그들이 전에 칠십인의 제자였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칠십인의 제자는 오래 전에 바로 그리스도에 의해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 안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칠십인 전도자인 제자들, 그들도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일을 제쳐놓고 공궤하는 일을 맡을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 일곱집사로 선출된 그들도 성령이 임재한 후에 회심한 사람들 중에 속해 있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세례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되리라는 것"이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약속에 의하면 은사는 성령 충만이요, 또한 성령 충만은 이 일을 위해 선택된 사람들이 갖추어야할 필수조건이었다. 

우리는 이 일곱 사람에 관해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①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팔아 공동재산에 돈을 바친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른 것이 대등한 입장이라면, 관대하게 자신의 재산을 기증한 사람들이 그것을 분배하는 일을 맡는 것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② 또 이 일곱 사람은 모두 헬라파 유대인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 모두 희랍식 이름이었고 이들을 세움으로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평을 막기에 적절하였고(이 불평 때문에 이런 조직이 이루어졌다.) 외국인들에게 자기들과 꼭 같이 신뢰를 표현하므로 그들이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니골라는 안디옥 출신의 개종자였는데 그가 그들 중의 한 사람인 것을 보아도 그것은 명백하다. (*어떤 이는 성서의 표현 방식에 비추어 볼 때 그만이 안디옥 출신이고 다른 이들은 예루살렘 출신 개종자들이라고 본다.)

==첫 번째 기록되고 있는 사람은 스데반인데 그는 이들 일곱 집사의 집단의 영광이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믿었고 다른 누구보다 믿음으로 충만하였으며, 성실함과 용기로 충일하였던 바 그가 성령 즉 그의 선물과 은총으로 충만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범한 인물이었고 모든 것 중에서 특출났었다. 그의 이름은 "면류관"을 의미한다. 

==빌립이 다음에 기록되고 있다. 

그는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여 점차 인정을 받아 후에는 사도들의 동료와 조력자로서 전도자의 직무를 서품받았기 때문에 그는 특별히 전도자라고 불려지고 있다(21:8). 에베소서 4장 11절과 비교해 보라. 

빌립의 가르침과 세례의 베품은(우리가 8:12 에서 읽게 되는데) 확실히 집사로서가 아니라(집사직은 "말씀을 전하는 일"과는 정반대로 공궤하는 일인 것이 명백하다.) 오히려 복음 전도자로서의 역할이었다. 그가 복음 전하는 일을 택하였으므로 그가 집사의 일은 그만 두었을 것이라고 추론해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두 일을 한 사람이 다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데반에게 있어서는 그를 복음 전도자로 여길 만한 아무 일도 그가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다만 회당에서 변론을 하였고 법정에서 자기의 생명에 대하여 항변했기 때문이다(7:2). 

==맨 끝으로 기록된 사람은 니골라 였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그는 후에 타락하여(일곱 집사 가운데 가룟 유다와 같이) 우리가 계시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니골라당의 설립자가 되었다고 본다(계 2:6, 15).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기를 그것은 그가 미워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몇몇 고대인들은 그로부터 이러한 오명을 제거해 주고 있다. 니골라를 편견을 가지고 악평하는 이들은 악독하고 불순한 <니골라당이란> 이단이 자칭 그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전혀 부당한 누명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니골라는 "아내있는 자들은 없는 자처럼 [영적 순전함의 경건생활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하라"고 주장했을 뿐인데 이단들이 이 말을 악랄하게 변조해서 "아내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그들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하라"는 말로 바꾸어 버렸다고 본다. 그러므로 터툴리안이 공동체의 소유에 대해 말할 때 특히 이것만은 제외하였다. - 즉 우리들 가운데 모든 것은 공동 소유이나 우리의 아내들만은 예외로 한다.

(2) 사도들은 그들을 시급한 과제였던 공궤하는 일에 임명하였다(6절). 

백성들이 그들을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은 그들의 선택을 인가하고 집사들을 안수하였다.

① 그들은 집사들과 함께 또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더욱 성령과 지혜를 주실 것과 그들이 소명받은 사명을 위하여 자격을 부여하실 것과 그들도 그 사명에 충성하게 하여 교회, 특히 가난한 무리에게 복이 되게 하여달라고 기도하였다. 교회의 직분을 맡은 모든 사람들은 교회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에 위탁되어져야 한다.

②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즉 "사도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다." 왜냐하면 손을 얹는 일은 축복할 때 이행되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이게 축복하였다." "두말할 것 없이 축복이란 것은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해 주는 것이다"(히 7:7). 

집사들은 사도들에게 축복을 받았다. 즉 회중의 목회자들에 의하여 가난한 자를 돌보는 사람들이 안수를 받았다. 

그들은 기도함으로 그들에게 축복하시기를 간구하였고 안수함으로 그들에게 축복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수여되었음을 확신케 해 주었다. 

또한 이 안수를 함으로 그들에게 직무를 수행할 권한을 주었고 백성들이 그들에게 순종하도록 의무를 부여하였다.

Ⅲ. 이제, 이로 인하여 교회가 발전한다. 

교회내에서 질서있게 문제들이 처리되자(불평이 사라지고 불만이 가라앉았다) 신앙이 뿌리를 내렸다(7절).

1.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게 갔다." 

이제 사도들은 전보다 더욱 복음 전파에 힘썼다. 그러므로 복음은 더욱 널리 퍼졌고 더욱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목회자들은 세속적 일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전적으로 그들의 사업에만 몰두함으로 반드시 복음이 크게 역사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밭에 뿌린 씨앗이 자라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이같이 증가하리라고 기록되고 있다.

2. 기독교인들의 수가 많아졌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예루살렘에서 그의 복음 전파는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도시에 제일 많은 개종자들이 생겼다. 하나님께서는 최악의 장소에서도 그의 남은 자를 찾으신다.

3.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즉 복음을 반대하였거나 그렇지 않다 하여도 반대한 자들과 관련돼 있는 본문의 제사장들과 같은 자들이 복음을 믿게 됨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은총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들의 높은 직책을 실상 모세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얻게된 제사장들이 기꺼이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나아 왔으며 또한 그들은 "무리로" 온 것같이 보인다. 

그들은 서로 신용을 지키고 서로 격려하면서 같이 단번에 그리스도에게 그들의 이름을 드리려고 약속하였다. 

- 즉 많은 제사장의 무리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그들의 편견을 극복하고 본문에 그들의 회심이 묘사된 대로 "이 도에 복종하였다."

(1) 그들은 복음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리스도의 능력있는 진리에 그들은 매혹되었고 모든 부정적인 사상이 변하여 그에게 복종하게 되었다(고후 10:4, 5). 

이 복음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롬 16:26). 

믿음은 복종의 행위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요일 3:23).

(2) 그들은 모든 복음의 명령과 교훈에 기꺼이 따름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성실함을 나타냈다. 

복음이 시도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을 정케하고 개혁하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에게 계명을 주며 우리는 그 계명에 복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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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이 잡히다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스데반의 교훈(1)(행 6:8-15)

스데반은 교회의 구제하는 일을 책임 맡은 자로서 근면 성실하게 책임을 잘 감당하였던 바, 그 문제를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진력하는 고로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주었다. 

본문에 의하면 그는 비범한 은사를 지닌 자였고 따라서 더 높은 직책을 맡는 것이 합당하였지만 집사직으로 불리움을 받게되자 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이같이 작은 일에 충성하였기에 더욱 큰 것이 주어졌다. 

우리는 그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줌으로 복음을 보급했다는 것은 볼 수 없지만, 그가 본문에서 매우 명예스러운 직무를 수행하며 그 직책을 잘 감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Ⅰ.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함으로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였다(8절).

1. 그는 믿음과 능력이 충만하였다. 

즉 강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이 믿음으로 그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다. 

믿음이 충만한 자들은 능력도 충만하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믿음이 충만하였으므로 그에게 불신의 여지가 없었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총만이 그를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예언자들이 말하던 것처럼 "만군의 여호와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력이 충만하였다(막 3:8). 

믿음에 의하여 우리는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로 채워야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시다."

2. 그러므로 그는 "큰 기사와 기적을 민간에" 즉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의 앞에서 행하였다. 

그리스도의 기적은 그 기적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정밀한 조사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데반이 비록 직책상 전도자는 아니었지만 이러한 큰 기사를 행하였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전혀 아니다. 이러한 기적들은 명백한 성령의 은사였기 때문이다. 은사는 몇 가지로 나누어진다.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이 주어졌다(고전 12:10, 11). 그리고 이러한 표적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는 자에게도 주어진다"(막 16:17).

Ⅱ. 그는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변호하였고 기독교를 반박하는 일에 대하여 반론을 전개하였다(9,10절). 

그는 고지에 선 논쟁자로서 복음을 옹호하였고 한편 다른 이들은 청지기나 하인처럼 그들의 들러리만 섰을 뿐이었다.

1. 본문은 그의 적들이 누구였는지를 말해 준다(9절). 

그들은 유대인들이었지만, 헬라파 유대인들 즉 흩어진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이 본토 유대인들보다 그들 신앙에 더욱 열성인 것같이 보이는데, 그들의 본향이 아니라 낯선 땅에 살면서 신앙을따라 행하고 고백하는 것을 유지하기는 힘든 일이었으리라... 거기서 그들은 몇 마리의 참새떼 같은 처지였으며, 또한 예루살렘을 계속 방문하는 데는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쉽고 값싸게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보다 더욱 유대주의를 철저히 고수하게 하였던 것 같다. 

그들은 "리버리노" 회당이라고 불리우는 회당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로마인들은 "리버티(Liberti) 또는 리버디니(Libertini)라고 불리워졌다. 이들은 외국인으로서 로마에 귀화하였거나 노예로 태어나 석방되었거나 자유인이 된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 리버디노인들이 바울처럼 로마의 시민권을 얻은 유대인들이라고 생각한다(22:27, 28).)

바울은 스데반과 논쟁하는 리버디노 회당에 속한 사람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었으며, 다른 사람들까지 논쟁에 끌어들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스데반을 돌로 치고 그의 죽음을 허용하는 등의 일로 분주함을 보게 된다. 또한 구레네인과 알렉산드리아인의 회당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있었고(*이들 회당에 대해서는 유대 저술가들도 말해 준다.) 또 길리기아와 아시아의 회당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만일 로마의 시민으로서 바울이 리버디노인의 회당에 속하지 않았다면 그는 길리기아의 한 도시인 다소 출신으로써 길리기아 회당에 속하였으리라. 어쩌면 그가 두 곳에 다 회원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에서 출생하였으나, 조국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았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자주 갔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거하기도 하였다. 

각 나라마다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 런던에 프랑스, 네델란드, 덴마크 교회가 있었던 것과 같다.)

이러한 회당들은 이들 나라에 거하는 유대인들이 유대 학문을 그들의 자녀들에게 가르치려고 보내는 학교였다. 

이제 이들 회당의 교사들과 신앙인들은 복음이 확장되는 것을 보고 또 관리들이 그 성장을 묵인하자 복음이 유대 종교에 미칠 어떤 악영향을 두려워 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의 하나님나라 복음운동의 선함이 사람들이 신뢰를 받고 또한 사도들을 중심으로 스스로 닥치는 문제들을 잘 다스려 나가자 질투를 느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논변의 힘으로 기독교를 붕괴시키려고 착수했던 것이다. 

논변으로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것은 정당하고 합리적인 방법이며 어떤 종교이건 논쟁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소송을 일으키라……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모이라"(사 14:21). 

그런데 왜 그들은 사도들과 논쟁하지 않고 스데반과 논쟁을 벌렸는가?

(1) 어떤 이들은 유대인들이 사도들을 무식하고 몰상식한 자들로 경멸하였기 때문에 그들과 상종하는 것을 수치스런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스데반은 학자로 성장하였으므로 그들의 적수로 삼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했다고 본다.

(2) 다른 이는 그들이 사도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었던 스데반에게 대하는 것처럼 사도들에게는 자유스럽고 또 마구 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3) 내 의견으로는 아마도 제자들은 공식적인 도전을 받은 것 같다. 

그러자 제자들은 스데반을 그들의 대변자로서 선택 임명하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을 내버려두고 논쟁에 참여하는 것을 합당치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스데반은 교회의 집사로서 탁월하고 명철하게 일을 잘 처리하였고 매우 날카로운 젊은 이로 다방면으로 재주가 있었기에 사도들보다는 논쟁하는 데 더 자질이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그가 이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어떤 역사가들은 스데반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자랐고 그가 개종하자 사울과 그 문하생들이 그를 탈선자로 간주하였고 특별한 증오심을 갖고 그를 대하였다고 한다.)

(4) 또 그들이 스데반과 논쟁한 것은 그가 열성적으로 그들과 논쟁을 전개하였으며 그것을 통해 그들에게 복음진리에 대한 확신을 주려했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었던 사명이었다.

2. 우리는 그가 논쟁을 통하여 얼마나 요령있게 논리를 전개하였는가를 볼 수 있다(10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땅치 못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입장을 논증하지도 못하였고 그의 말에 답변하지도 못했다. 

그는 아무도 대항할 수 없는 논조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고 명쾌하고도 완벽하게 자신의 뜻을 나타냈으므로 그가 말한 데 대해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설득 당하여 신앙을 가지게 되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혼란을 느꼈다. 

그들이 그에게 항거할 수 없었다라고 기록되지 않고 그들이 "그가 성령과 지혜로 말함을 능히 당치 못하였다" 했다. 

즉 그가 말한 것이 아니라 지혜의 성령이 스데반안에서 말씀하였던 것이다. 

이제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는 약속이 성취되었다(눅 21:15). 

그들은 스데반과 논쟁을 벌임으로써 그들 편에 유리한 입장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스데반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성령과 쟁변하였고 이 성령은 결코 그들에게는 상대가 안 되는 적수였다.

Ⅲ. 결국 그는 그의 피로써 복음을 굳건하게 하였는데 다음 장에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본문에서 그의 대적들이 복음에 대하여 취한 몇 개의 단계적 조치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은 논쟁으로서는 그에게 대항랄 수 없다는 것을 알자 그를 범인으로 기소하였고 그를 대항하여 거짓 증인을 세우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본문에 대해 박스터씨(Mr. Baxt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와 같은 식으로 우리는 적개심을 지닌 사람들과 변론한다. 그러면서도 상당수의 종교인들이 법이란 미명하에 세계 도처에서 살해당하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기적의 섭리이다. 어쩌면 수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거짓 서원하는 자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리라." 

대적자들은 사람들을 시켜 거짓 증거하게 하였다. 즉 그들에게 무엇을 말하라고 지시하였고 또 그들을 시켜 말한 바를 서원하도록 하였다. 

스데반이 그들에게 그들의 잘못됨을 입증하고 바른 길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에게 더욱 격분하였다. 

실상 그들은 그의 이런 지적에 대해서 최대로 사의를 표해야 마땅했던 것이다. 

"그가 그들의 적이 된 것은 그들에게 진리를 말하였기 때문이요." 또 그 사실을 합증했기 때문이 아닌가? 이제부터 그에 대한 그들의 획책을 고찰해 보자.

1. 그들은 가능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정부와 군중이 같이 그를 향하여 노를 발하도록 충동하였다. 

만일 한 가지 수단으로 이길 수 없다면 다른 수단을 쓰려고 했던 것이다(12절). 

"그들이 백성들을 충동하여" 즉 그들은 산헤드린 회의가(가말리엘의 충고에 따라서) 스데반을 내버려두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긴다면 그들은 그를 군중의 격분과 소요에 의해 처치하려했다. 

그들은 또한 장로들과 서기관들을 선동함으로 해서 백성들이 그에게 호의를 보이고 그를 보호한다면 그들은 권력으로 그를 제압하려하였다. 

그들은 두 개의 화살로 겨냥하였기에 그들이 승리할 것을 의심치 않았다.

2. 그들은 그를 법정으로 끌고 갔다. 

그들은 그가 예상하지도 않았는데 "그에게 다가와 그를 잡아 공회로 끌어갔다." 

그들은 떼를 지어 몰려와 말 그대로 사자가 그의 먹이에게 덥쳐들 듯이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들은 그를 횡포하게 다루므로 백성과 정부에게 그를 위험한 인물로 부각시키려 하였고 그를 경계하지 않으면 그가 피신할 것을 두려했고 또 폭력을 씀으로 그의 기세를 꺾으려 하였다. 

그를 사로잡자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그를 공회로 끌고 갔다. 이 모든 일이 순간적이었으므로 그의 동료들이 아무도 그와 함께 가지 못하였던 것같이 보인다. 그들은 제자들을 한번에 많이 사로잡아 오면 이들이 서로 격려하여 용기를 얻게 됨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제자들을 하나씩 처치하려고 노력하였다.

3. 그들은 그를 모함할 증거를 미리 준비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전에 주님을 심판하였을 때처럼 고소할 이유를 찾지 못하여 그때서야 증인을 구하였던 식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단단히 마음 먹었다. 

이 계획들은 사전에 준비된 것이었고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가 모세와 하나님을 거스려 또한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서원하도록 일러두었다(11, 13절). 

그들은 스데반이 예수께서 성전과 율법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이루게 되리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14절). 

아마 그가 그러한 취지를 말하였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를 대항하여 이 사실에 대해 서약한 자들은 거짓 증인이라고 불리워졌다. 

왜냐하면 그들의 증언에 다소 사실과 부합되는 점이 있었다 해도 그들은 그가 말한 것을 근거로 이를 잘못되고 악랄하게 이용하고 사실을 곡해하였기 때문이었다.

(1) 그에 대한 일괄적인 문책은 그가 모독적인 언사를 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모독적인 언사를 마지 아니하는도다"하고 말하여 더욱 문제를 악화시키려 하였다. 

"그가 무리들 앞에서 흔히 이런 말을 하노라. 그가 어느 곳에 가든지 그와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그의 생각을 주입시키려고 몰두하였도다"라고 말한다. 

또한 그가 관명을 항거하고 경고를 멸시하였다고 한다. "그에게 하지 말 것을 경고하였으나 그래도 쉬지 않고 말하여 지금에 이르렀도다." 

신성모독(경멸조로 창조주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가장 극악한 죄로 취급되었다. 

스데반에게 이런 죄를 씌움으로 반면에 사람들에게 자기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는 일에 깊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려 하였다. 

그들은 이 모든 일을 질투와 시기때문에 하였다. 

구약 시대의 믿음의 용사들과 순교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신약 시대의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그들을 싫어하고 추방하는 이들은 바로 그들의 형제였고 "주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하는 자들이었다. 

그가 "모세와 하나님에게 모독하는 말을 하였다"고 하였다. 

모세를 모독하는 자들은(만일 그들이 모세의 글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것이므로) 하나님 자신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그들의 말은 분명히 옳다. 성서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를 경멸하는 자들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크신 뜻은 율법을 존귀하게 하고 영광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을 비방하고 경멸하는 자들은 곧 그의 이름을 경멸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과연 스데반이 모세를 모독하였는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 전도자들은 결코 모세를 경멸하는 것과 같이 들리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경외하는 심정으로 그의 글을 인용하였고 그 말씀에 호소하였으며 모세가 말한 것이 이루리라는 것 밖에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스데반이 모세를 모독하였다는 고소는 부당한 것이었다.

(2) 그러나 이러한 고소가 어떻게 지지를 받고 입증되었는지를 알아 보자. 

그가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이 기소의 근거로 삼은 것은 "그가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모독적인 언사를 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모세와 하나님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그들의 고소는 증거가 요구되자 점차로 줄어들었다.

① 그가 "이 거룩한 곳을 모독하였다"고 고소되었다. 

어떤 이는 이곳이 곧 예루살렘을 말한 것이라 이해한다. 이 도시는 거룩한 도성이요, 그들이 열심히 사모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본문은 거룩한 집인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봄이 옳겠다. 

그리스도는 성전을 연상케하는 곳에 대하여 말한 모독자로 정죄당하였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그들이 저지른 악행으로 성전을 모독하고서도 성전의 명예에 관심이 있는 척하려 하였다.

② 그는 율법을 모독하였다고 고소되었다. 

그들은 율법을 자랑으로 여겼고 율법을 신뢰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실상 "율법을 거역하므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다"(롬 2:23).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은 이 고소를 성립시켰는가? 앞서 고찰한 대로 다시 그들의 고소는 그 기반이 약화되었다. 

그들이 이제 그에 대하여 고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도 논란이 대상이 되고 있는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고 그가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어떻게 그가 말하게 되었고 무엇이라고 설명하였는가를 그들 자신이 근거를 댈 자신은 없었다). 

그가 성전과 율법을 모욕하는 말을 하였다고 고소할 수는 없었다. 

제사장들 자신이 성전을 장사하는 곳으로 도적의 굴혈로 만들므로 성전을 모독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성전에 대하여 어떤 실언도 하지 않았고 제사장들보다는 오히려 그 근본 취지에 따라서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받들었던 사실은 제쳐놓고 자기들이 성전을 명예롭게 하는 데 열성인 것으로 여겨지기를 바랐다. 

또한 그는 그들처럼 율법을 모독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다음 사실을 말하였다.

첫째, 그는 "나사렛 예수가 이곳" 즉 성전 또는 예루살렘을 "파괴하리라"고 말하였다. 

그가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 거룩한 곳이 실로처럼 영존하지 못할 것이요,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성전의 특권을 남용하는 자들에게 그 특혜를 계속 베풀지 않으시겠다는 것이 성전에 대한 모독일 수 있는가? 

예언자들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갈대아인들에 의해 그 거룩한 처소가 파멸될 것이라는 같은 경고를 하지 않았는가? 

또한 성전이 처음 건축되었을 때 하나님 자신이 같은 경고를 하여 이르시기를 "이 전이 비록 높을 지라도 무릇 그리고 지나가는 자가 놀라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대하 7:21) 말하리라 하셨다. 

만일 그가 모독자라면 누가 경고를 하겠는가? 

누가 그들에게 그들이 계속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나사렛 예수께서 이 성전과 민족을 멸하실 것이라 경고하겠는가? 

그들은 오히려 이 경고자에게 감사해야 옳지 않겠는가?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중에 그 무엇보다도 상대방으로부터 신앙에 대한 조롱이나 비난을 당하게 되는 경우, 때때로 그 비난을 모욕적 언사라 하여 역으로 상대방의 신앙을 악랄하게 헐뜯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그는 이 예수가 "모세가 우리에게 주어진 규례를 고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메시야의 날이 임하면 모세의 규례가 바뀌고 실체가 임하므로 그림자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의 본질적인 변화가 아니라 율법의 완성이다."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율법을 멸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코자 오시었다." 

그러므로 그가 모세에 의해 주어진 몇몇 규례를 고치겠다함은 더 나은 규례를 소개하고 이를 확고히 세우려는 것이며 만일 유대인들이 이 새로운 율법을 완고하게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형식적인 율법 추종에서 벗어나려 했다면 (내가 확신하기로는) 그들의 성전이 파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들의 파멸을 막으려고 그들이 지금 같은 생활을 버리지 않으면 파멸할 것이라고 예고하였으나 그는 모독자라고 고소당하였다.

Ⅳ. 하나님께서 스데반이 공회 앞에 섰을 때 어떻게 그를 보호하시며 그의 곁에 같이 서 계셨는가를 보여 주는 징조가 있었음을 본문에서 보게 된다(15절).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 즉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낯선 사람을 보듯이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뜻밖에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보였다." 

판사가 죄수의 안색을 살펴 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때로 그것은 죄수가 죄가 있는지 무죄한지를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법정 앞에 선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1. 그가 특별히 기쁘고 쾌활한 안색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박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일말의 어떤 두려움이나 노여움도 없었음을 알려 준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였으므로 소환되었고 순교의 면류관 앞에 당당히 섰다. 

그는 지금 이상으로 기뻤던 적이 전에 결코 없었던 사람처럼 보였다. 

동요되지 않는 고요와 담대한 용기와 또한 부드러움과 위엄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그의 얼굴 전체에 퍼져있었다. 

그가 천사처럼 보인다고 누구나 다 말하였다. 사두개인들도 그들 앞에 인간의 모습을 입은 천가를 봄으로 천사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정도였다.

2. 또한 그의 얼굴에는 기적적인 밝은 광채가 어리고 있었던 것 같이 보인다. 

그 광경은 마치 우리 구세주께서 변형되셨을 때의 모습과 같았고 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의 모습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실한 증언의 명예를 높이시며 그러므로 그를 박해하며 심판하는 자들을 당황케 하신다. 

그것으로 그들의 죄는 더욱 무겁게 되며 빛을 거스려 행함을 그들에게 보여 준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 기적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를 정죄하려 하였다. 

스데반이 자기 얼굴의 피부가 빛난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된 바가 없었다. 

그러나 "공회 중에 앉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았다." 

그들은 서로 소근거리며 그 사실상대방에게 전하였을 것이며 그것을 보고 분명히 수치를 느꼈을 것이고 그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법정에 서있는 그를 죄수석에 앉으라고 명하지도 못하였다. 

지혜와 거룩함이 사람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 그렇지만 이 지혜와 거룩함이 사람들을 격화된 냉대 속에서 건져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스데반의 얼굴의 광체가 그를 보호하지 못했다고 놀랄 것은 없다. 

하지만 만약 그가 모세에게 치욕적인 죄를 저질렀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영광을 그에게 입혔을 리가 없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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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coro"(4402, 프로코로스) 브로고로 Prochorus(인)

프로코로스는 문자적으로 '춤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그의 이름은 행 6:5에 한번 나온다. 그는 예루살렘 기독교 공동체에서 과부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일을 감독하기 위해 뽑은 "일곱"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이 이름은 헬라어이므로 그는 헬라인일 가능성이 많다. 전승에 따르면 니코메디아(Nicomedia)의 감독이 되었으며, 안디옥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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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avnwr(3527, 니카노르) 니가노르 Nicanor(인)

니카노르는 '정복자'를 의미한다. 그는 안디옥 출신(?) 니카노르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다.

신약성경에서 행 6:5에 한번 나온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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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vmwn(5096, 티몬) 디몬 Timon (인)

디몬은 '존경 해야함'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이 이름은 행 6:5에 한번 나온다. 헬라파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을 특별히 돕도록 사도들이 선택한 일곱 사람중 한 사람이다. 이 이름이 헬라어인 것을 보아 헬라 디아스포라에서 성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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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mena'"(3937, 파르메나스) 바메나 Parmenast

파르메나스, 즉 바메나는 행 6:5에서 한번 나온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택한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서 사도들을 도와 가난한 교인들에게 물질로 봉사하는 임무를 맡았던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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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vlao"(3532, 니콜라오스) 백성의 지배자, 니골라.

 

니골라는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도록 선출된 일곱명 중의 한 사람으로(행 6:5) 안디옥에서 개종한 자, 개종자들의 참고자료에 따르면 그는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마침내 기독교에 개종한 본래는 이방인이었다. 예루살렘 교회가 실시한 구제품 분배를 위하여 선택된 일곱 사람들 중의 다른 이들과 같이 그의 이름이 헬라이즘인 것을 보아서 여타의 사람들도 역시 개종자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들이 모두 이방인들인데 "개종자"란 이름이 니골라에게만 적용된 것을 보아서 그만이 유대교를 거쳐 기독교에 들어온 것으로 보여진다. 여타의 여섯명은 직접 이교도에서 들어왔거나 최소한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것은 물론 초대교회에 있어서 할례와 그 중요성에 대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초대교회 안에서의 유대교적 실천의 중요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본 결과, 일곱명을 모두 개종자이거나 헬라 이름을 사용한 유대인들이었을 것으로 자주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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