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고후5
첨부파일 :

고후5장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화목하게 하는 직분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고린도후서 5장 (개요)

바울은 그들의 고난 아래에서 어떻게 견디어 나가는가를 계속 설명한다. 즉,

Ⅰ. 그들의 기대와 소망과 확신이 사후의 행복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1-5).

Ⅱ. 그들의 현재의 생할의 위로(6-8).

Ⅲ. 그들의 의무를 촉진시킨다(9-11).

Ⅳ. 자천에 대한 변명과 그의 열심과 근면에 대하여 말한다(12-15).

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며 중생과 화해에 대하여(16-21).

========

장막 집과 영원한 집(고후 5:1-11)

바울은 이 절에서 전 장의 논지를 계속한다. 즉 고난 아래에서 그들이 가지는 용기와 인내의 터전에 관하여 말한다.

Ⅰ. 바울은 사후의 영원한 행복에 대한 기대와 소망과 확신에 대하여 말한다(1-5절). 특히 다음을 관찰하자.

1. 사후의 신자의 영원한 행복에 대한 기대(1절). 신자는 믿음과 진리에 의하여 이 생이 끝나면 또 다른 행복한 삶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행복에 의하여 소망을 가진다. "우리는 우리가 하늘의 집과 장래의 행복에 의하여 소망을 가진다. "우리는 우리가 하늘의 집과 장래의 행복에 대한 확고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다음을 주목하자.

(1) 신자의 눈과 소망에 비취는 천국은 어떠한 곳인가? 거할 곳이 많고 영원한 집이 있는 집이요, 거주지요, 휴식처요, 피난처요, 하나님의 집으로 생각한다.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같이 이 지상의 모든 집보다 우월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이다. 건축자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가치가 있다. 장래의 행복은 하나님께서 예비한 것이다. 그것은 기초가 흙으로 된 우리의 영혼이 지금 사는 지상의 장막과는 다르다. 영원한 집이다.

(2)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우리는 이 기대로써 이 행복을 누린다. 다음을 주목하자.

① 땅의 집인 우리의 육체는 곧 무너진다. 못이 빠지고 줄이 풀리어지고 그러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간다.

② 이 일이 일어나면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집이 있다. 영은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고 이곳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살게 된다.

2. "우리가 탄식한다"(스테나조멘)라는 말의 의미와 같이 신자는 이 장래의 축복을 심히 갈구한다.

(1) 무거운 짐 아래에서 신음한다. 그러므로 신자는 생활의 짐 아래에서 신음한다.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2절) "우리가 이 장막 안에서 짐을 지고 신음한다." 인생의 재앙이 무거운 짐이다. 육의 몸은 무거운 짐이다. 신자는 죄의 짐과 그 안에서 아직도 남아서 날뛰는  많은 부패 때문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불평하게 한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롬 7:24).

(2) 다른 생활의 행복에 대하여 신음한다. 이래서 신자는 신음한다.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2절) 영광의 영생을 사모하는 것이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킴 바 되게 하려 함이며"(4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견발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3절). 하나님의 뜻이면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변화되리라. 그러므로 벗고자함이 아니다. 단지 육체와 영혼의 분리로써의 죽음은 원함이 아니요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영광으로 이르는 통로이다. 신자는 "사는 것보다 오히려 죽는 것을 바란다.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8절). 이 육체를 떠나 그리스도에게 가는 것이다. 즉 영광의 옷을 입기 위하여 누더기 옷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① 죽음은 육체의 옷을 벗어버리고 인생의 모든 안락과 괴로움을 제거한다. 벌거벗고 이 세상에 왔으니 벌거벗고 이 세상을 갈 것이다.

② 은혜를 입은 영혼은 저 세상에서 벗고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영광과 의와 칭찬의 옷을 입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고통을 벗어 버리고 그들의 옷을 씻어 양의 피로써 희게 된다(계 7:14).

3. 미래의 축복에 대한 확신의 두 가지 이유.

(1) 이 축복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5절).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가 이곳에 있는 동안 하늘 나라에 필요한 모든 것이 예비된다. 하늘 나라의 신령한 집의 돌들이 이곳에서 다듬어진다. 이 일을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우리의 영혼이 신령한 것을 입게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손만이 이 일을 할 수가 있다.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대하여 알맞도록 많은 것이 준비되어야 한다.

(2) "성령의 간절함이" 그들에게 이 확신을 주는 것이다. 간절함이 지불이다. 성령의 현재의 은혜와 위로가 영원한 은혜와 위로가 영원한 은혜와 위로의 간절함이다.

Ⅱ. 바울은 이 세상의 상태와 형편에 있어서 신자들의 위로를 추론한다(6-8절)

1. 그들의 현재의 상태와 위로. "그들은 주와 따로 거한다"(6절). 그들은 이 세상에서 순례자요 나그네이다. 그들은 이 곳에서 잠간 머문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와 동행하시나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상태는 아니다. 우리가 사는 한 그의 얼굴을 뵈옵지 못한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함이 아니다"(7절). 우리는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기쁨을 소유하지 못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믿음은 이 세상에 대한 것이고, 보는 것은 저 세상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보면서 살 때까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의무요 관심이다.

2.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죽음을 당하여 우리는 얼마나 위로와 용기를 가져야 할까?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야 하며"(6절) 다시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는 다른 세상에 대한 기대와 사후의 축복에 대한 온당한 소망을 주는 것을 생각하면 세상의 고난에서 위로받고 죽을 때에 도움을 얻는다. 마지막 원수를 대할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용기를 내어야 하고 이 장막을 벗어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기를 원해야 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위에서 난 사람은 위를 사모하는 것과 같이 몸에서 떠나 곧 주와 함께 있으면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며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눈을 감고 영광 중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믿음은 보는 것으로 변한다.

Ⅲ. 바울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의무를 수행하도록 격려한다(9-11). 천국에 대한 바른 소망을 나타나 죄를 행하도록 격려하지 않고 반대로 신앙에 있어서 주의와 열심을 내도록 한다. "그러므로" 혹은 우리가 주와 함께 거하기를 원하므로 우리는 노력하고 수고한다(9절). ‘필로티무메다’ - 즉 우리는 야망을 가진다. 마치 야망이 있는 사람이 자기의 목표를 성취하려는 것과 같이 노력한다.

1. 바울이 이처럼 야망적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우리가 살든지 즉든지 몸 안에 있든지 몸밖에 있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한다(9절). 우리의 위대한 주께서 "잘 하였도다" 칭찬하여 우리를 선택하신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노력한다. 그들은 이것이 최고의 은총이요 최고의 명예로 생각한다. 이것이 그들의 대망이다.

2. 다가올 심판으로부터 신앙 생활을 격려한다(10,11절). 가장 선한 사람도 신앙의 열심과 관심을 가지게 하는 몇 가지 관계된 일이 있다. 심판의 확실성, 즉 우리는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심판의 보편성, 즉 우리는 모두 나타나야 한다.  그의 심판대 앞에 우리가 나타나야 하는 재판관 즉 그는 불타는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실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받아야할 보상은 육체 안에서 행한 모든 일에 대한 보상이다. 선악간에 모든 일이 공정하게 나타난다. 바울은 이 무서운 심판을 "주의 두려움"이라고 불렀다(11절). 이것을 생각하여 사람들이 회개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며 그에 앞에서 편안하게 나타나게 한다. 바울의 충성과 근면에 대하여서는 하나님과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고후 5:12-15)

여기서 다음을 관찰하자.

Ⅰ. 바울은 자신과 동료들을 자천하는 것 같은 점에 대하여 사과한다(13절). 그리고 그들에게 말한다.

1. 앞의 절에서 그들의 충성과 근면을 언급한 것은 그들을 추천하거나 그들을 위함이 아니고 그들의 호의를 의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2. 외모로 영광을 구하며 비난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을 주기 위함이다.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주어서" 원수들의 비난에 대처하기 위함이다. 만약 말씀이 그들의 양심에 나타나고 그들의 행위와 교회에 효과가 있었다면 이것이 말씀의 사역에 대한 가장 좋은 방어가 된다.

Ⅱ. 바울은 그들의 열심과 근면에 대한 이유를 말한다. 바울의 원수들은 마치 바울이 미친 사람 같다고 비난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한다면 광적이었다고 말했다. 로마의 관원이 바울에게 말한 것과 같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도다"(행 26:24).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말한다.

1. 바울이 이와 같이 열중하며 열심인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함이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라." 너희가 이렇게 생각하든지 저렇게 생각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그리고 너희 유익을 위함이다(13절). 그들이 어떤 때에는 정열과 열중을 나타내고 어떤 때에는 이성으로 크게 침착하게 나타내어도 이것은 그 두 목적을 위함이다. 그 이유를 밝힌다.

2.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14절). 그들은 그들이 하는 일을 하도록 강권을 받고 있다. 사랑은 목사와 교인들이 의무를 수행하도록 격려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덕을 가지고 있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나타난 우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르게 생각되고 옳게 판단되면 우리에게 이런 효과를 가져온다. 사랑의 강권에 대한 바울의 말을 들어 보자.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며 영원히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었도다"(14절). 율법 안에서 죽었고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죄 가운데서 죽었으며 허물로써 죽고 영적으로 죽었다. 다음을 주목하자.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사람들의 비참한 상태였다. 그들은 잃어졌고 망하였다. 죽고 파멸되었으며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죽으시지 않았다면 영원히 이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즉 그들은 그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산 자들은" 다시 말하면 그의 죽으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산 자들은 "그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살으신 그를 위하여 살아야 하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계획이다." 즉 그들 자신을 위해 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15절).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들 자신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과 행동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 자기애를 치유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한 목적이다. 즉 그의 사랑의 명령으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에게 바쳐야 하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를 위하여 사는 것이 바른 삶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6-21)

이 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한 삶에 필요한 두 가지를 언급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결과이다. 즉 중생과 화해이다.

Ⅰ. 중생은 두 일로 구성되어 있다.

1. 세상에서 젖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16절). 우리는 육체의 목적과 유익을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나 물건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써 하며, 세상이나 세상의 일들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세상을 초월하여 산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있고 세상은 우리의 발 아래에 있다." 다음을 주목하자.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위로와 관계를 거룩한 냉담으로 즐겨야 한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육안으로 그리스도를 보았는지 논의된다. 아마도 이 편지를 받는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과대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육체의 임재를 제자들은 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성령의 임재와 성령이 주는 위로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초상을 만들어서 예배시에 사용함은 하나님의 신앙을 위하셔 정하신 길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뜻이다.

2. 마음의 철저한 변화이다. "만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만일 어떤 사람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 자신이 새로운 사람이며 사람이어야 함을 증명해야 한다(17절). "그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하여라"로 읽을 사람도 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의 관심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이름을 가질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자유와 새로운 마음과 성질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룩하는 역사가 그렇게나 크기 때문에 다음 말이 나온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즉 옛 사상과 옛 원리와 옛 행위가 지나갔다. "이 모든 일들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중생시키는 은혜는 영혼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시킨다. 모든 것들이 새롭게 되고 새롭게 된 사람은 새 원리와 새 규칙과 새 목적과 새 동료들과 함께 행동한다.

Ⅱ. 화해는 두 개념으로 말하여진다.

1. 의심없는 특권이다(18, 19절). 화해는 싸움이나 우정의 파열의 조정을 의미한다. 죄는 분열을 만든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우정을 파괴하였다. 죄인의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 하나님은 죄인에 의하여 배반을 당했다. 그러나 보라. 화해가 성립된다. 배반당한 하늘의 하나님께서 화해를 원하였다. 다음을 관찰하자.

(1) 하나님은 화해의 중보자를 정하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우리를 그에게 화해시켰다(18절). 중보자의 모든 수행과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정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화해는 하나님에 의한 것이다. 영향에 의하여 하나님은 자기에게 화해시키고 자기의 정의와 거룩에 손상을 주지 않고 배반자에게 화목을 주며 파기한 계약의 잘못을 인간에게 돌리지 않고 새로운 조약과 계약에 들어가기를 원하시며 이 계약의 취지에 따라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믿는 자를 의롭게 여기신다.

(2) 하나님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를 주셨다(18절)."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성경이 기록되었다. 성경은 화목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평화는 십자가의 피로써 이루워짐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정하시고 목사들은 죄인에게 자비와 화목의 조건을 선포하며 그것을 따르도록 설득시켜야 한다.

2. 화해는 우리의 필요불가결한 의무로 말하여진다(20절). 하나님께서 화목을 원하시니 우리는 화목하여야 한다. 죄인이 하나님에 대한 원수의 감정을 버리도록 설득시키는 것이 복음 즉 화목의 말씀의 계획이다. 충성된 목자들은 죄인과 평화와 화해를 맺도록 보내진 그리스도의 대사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며 그리스도 대신에 활동하며 그리스도께서 하셨고 원하시는 일을 한다. 얼마나 놀라운 겸허인가! 하나님은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으시며 평화로써 이득을 얻지 못하시지만 그러나 그의 목사를 통하여 죄인이 원수의 길을 버리고 그의 조건을 수락하여 화해하며 그의 법과 섭리에 따르고 속죄를 얻고 복음을 따르며 계획에 순응하도록 원하신다. 격려하기 위하여 바울은 첨가한다(21절).

(1) 중보자의 순결성. "그는 죄를 알지 못한다."

(2) 그가 당하신 희생. "그는 죄로 여겨졌다." 죄인이 아니고 죄이다. 즉 죄로써 드려지신 죄에 대한 희생이다.

(3) 이 모든 것의 목표. "저의 안에서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입는 것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① 자기의 죄를 모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로 간주되셨으므로 우리도 우리의 의가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로써 의롭다함을 얻는다.

② 하나님께 우리가 화목하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이다. 다만 그의 공로이다. 우리는 그에게만 의존하고 그의 의만 인정해야 한다.


이전글 : 고후4
다음글 : 고후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