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고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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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3장

===권면과 끝 인사

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3.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6.  우리가 버림 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7.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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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3장 (개요)

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이 장에서 고집스러운 죄인들에 대하여 엄하며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한다(1-6).

Ⅱ.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이유를 든다(7-10).

Ⅲ. 바울은 이 서신을 고별사와 축도로써 결론을 맺는다(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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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자신을 살피라(고후 13:1-6)

Ⅰ. 잘못된 것을 수정하기 위하여 제 일과 제 이의 서신을 보냈기 때문에 세 번째 고린도에 가면 고집이 강한 죄인들에게 아주 엄하게 될 것을 말한다. 이 일에 관해서 주목하자.

1. 그의 책망에 있어서 취하는 그의 주의. 엄한 처벌에 성급하지 않고 , 첫째와 둘째의 충고를 주었다.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세번째 너희에게 갈터이니"는 제1과 제2의 서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비록 떨어져 있으나(2절), 그들과 함께 있는 것같이 그들을 충고하였다. 이 해석에 의하면 전 후서는 1절에서 말하는 증거이다. 우리 구주의 지시와 (마 18:16) 모세의 율법보다 더 극단으로 나가기 전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범법자들을 취급해야 하는 가에 대한 것이다(신 17:6; 19:15). 우리는 우리 형제의 잘못을 말하기 위하여 여러 번 그에게 나가야 한다. 이리하여 바울은 전에도 말하고 지금도 말한다. "전에 죄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쓴다. 세 번째 나가면 범법자를 심하게 책망할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에 방문할 것을 두 번 계획 했으나 저지되고 세 번째로 그들에게 갈 것을 알린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어떠하든지 간에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의 유익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수고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2. 경고에 대하여. "그가 다시 가면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무례한 죄인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앞에서 "회개하지 않는 죄인을 발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낮추실 것이라"하였다. 이제 바울은 그러한 죄인을 용서하지 않았고 교회의 책벌을 가하기를 원했다. 이 때에 이런 책벌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표시로써 해석되었다. 다음을 주목하자.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이 은혜로운 방법이지만 항상 참으시는 것은 아니다. 마침내 오셔서 회개시키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리고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다.

Ⅱ. 바울은 자기가 엄하게 되는 이유를 말한다. 즉 "저희들이 구하는 그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위함이다. 그가 전하는  복음의 성공을 위하여 그의 사도됨이 증명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사도직을 부인하는 자들을 엄히 책망해야 했다. 이것을 문제 삼게 한 것은 거짓 교사들의 계획이었다. 이 사도직에 대하여는 거짓 사도들의 중상과 경멸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강하게 증거하고 있었다(3절).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이셨으나 혹은 십자가에서 약하고 경멸받는 사람으로 나타났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그의 부활과 생명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내셨다." 이와 같이 사도들도 세상에서 아무리 천박하고 경멸을 받아도 도구로써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내며 세상을 기독교로 변화시키는 은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안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증거를 찾는 그들에게 그들의 기독교를 가르친다(5절).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 만약 그들이 자신의 기독교를 인정한다면 이것이 바울의 사도직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암시한다. 만일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시면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앙은 바울의 사역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말씀은 그들의 선생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들을 다시 낳았다. 위로부터 사도직을 받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동반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버림을 받지 않았다면은 바울도 버리운 자가 아님을 알 것이라 믿는다(6절). 바울이 앞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요청한 의무 즉 "너 자신을 시험하라"는 말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된다. 즉 자신의 영적 상태를 살펴야 한다.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문제에 기만을 잘 당하고 이 기만은 가장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증거하는 데 관심을 가지며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지 영혼에게 묻게 된다. "우리가 버리운자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 우리는 참다움 그리스도인이든지 크게 속이는 자이다. 사람이 자신과 자신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 것이 얼마나 책망할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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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을 보내는 이유(고후 13:7-10)

Ⅰ. 고린도 교인들이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께 바울은 기도한다(7절). 죄에서 떠나며 악을 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 우리의 친구를 위하여 가장 원하는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우리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이 은혜를 위하여 자주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악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보다 악을 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Ⅱ.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유와 제목에 대하여 관찰하자.

1. 자신의 명성 때문이 아니고 신앙의 수호를 위함이다.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비록 우리가 비난을 당하고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신앙의 명예를  위함이다"(7절). 다음을 주목하자.

(1) 복음의 충성스러운 종의 소망은 그들이 무시되더라도 전한 복음이 귀중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2) 거룩한 신앙을 장식하는 가장 좋은 길은 "선을 행하며 칭찬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다."

2. 또 다른 이유는 이러하다. 바울이 그들에게 갈 때에 그들이 아무런 비난받을 것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8절에 암시되어 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들이 악을 행하지 않고 복음을 거슬러 행하지 않았다면은 바울은 그들을 벌할 아무 권력이나 권위가 없는 것이다. 주께서 바울에게 준 권위는 파괴함이 아니요 덕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전에도 말했고(8장), 여기서도 말한다(10절). 비록 바울이 복음의 전도를 위하여 큰 권세가 부여되었지만 진리를 경멸하고 그 진리를 순종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권리는 없다. 진리를 거스릴 수도 없고 원하지도 않았다. 이 거룩한 약함을 얼마나 바울이 기뻐하였겠는가.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한다(9절). 즉 믿음이 강하고 선한 열매를 맺는 자들을 비난할 권세가 없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도 한다. "비록 우리는 핍박과 경멸로 약하지만 너희는 거룩함에 부유하고 선한 일에 인내하는 것을 보고서 우리가 기뻐하노라."

3. 바울은 그들이 온전하기를 원했다(9절). 그들은 진실하여 완성을 목표하도록 바란다. 진실은 복음의 온전함이다. 혹은 철저한 개혁이 그들에게 있기를 원했다. 바울은 그들이 죄에서 떠날 뿐만 아니라 은혜와 거룩함에 있어서 자라나기 부족한 것이 고쳐지고 개혁되기를 원했다. 이것이 이 편지를 쓰는 큰 목표였다. 그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사도로서 주께서 바울에게 주신 권세를 행사하며 엄하게 하지 않게 하려함이다. 즉 "모든 불순종을 벌하는 일"(6장)을 피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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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격려와 축도(고후 13:11-13)

바울은 이 편지를 맺는다.

Ⅰ. 그의 고별사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특별한 고별사를 하며 그들의 영적 복지에 대한 충심의 소원을 하면서 당분간 떠나 있다.

1. 그는 그들에게 얼마의 좋은 격려를 한다.

(1) 온전하며 사랑으로 연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모임에 크게 유익한 것이다.

(2)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견디는 모든 고난과 핍박 아래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혹은 이 세상에서 하는 역경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3) 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형제들과 화목하면 할수록 우리 영혼이 평안하다. 바울은 가능한 한 그들이 같은 마음과 판단을 가지기를 원했다.

(4)그들은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의견의 차이가 소외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즉 서로 서로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바울도 그들의 모든 분열이 치유되고 싸움과 분노가 없으며 "싸움과 시기와 중상과 수근거리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것은 평화의 적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임재가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을 약속하면서 격려한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11절). 다음을 주목하자.

(1) 하나님은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평화의 원천이시며 하나되게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화복하시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를 사랑하며 그와 화목하며 우리도 서로 사랑할 것을 명령하신다.

(2) 하나님은 사랑과 평화 중에서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들과 함께 사시며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속에서 은혜의 임재를 허락받고 이후에 영광스러운 임재를 가지게 된다.

3. 바울은 그들이 서로 인사하라고 지도하며 그와 함께 한 성도들의 문안을 그들에게 전한다(12, 13절). 사랑의 거룩한 입맞춤으로 애정을 증명하라고 지도했다. 이 당시에는 시행되었으나 교회가 부패하여짐에 따라 호탕함과 불결함이 일어나서 금지되고 말았다.

Ⅱ. 사도의 축도이다(14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렇게 바울은 이 서신을 맺는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을 작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의 교리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다른 인격이나 그러나 한 하나님이다. 이 세 분은 인간의 축복의 근원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에게 눈을 집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의 이름으로 축복을 받고 세례를 받는 삼위 일체 하나님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사는 것이 의무이다. 이것은 장엄한 축도이다. 이 축복을 받기 위하여 열심을 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은 이런 것이다. 구속자로서 그리스도의 은혜요 구속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리스도성령에 의하여 우리에게 부여되는 모든 은혜와 사랑이 교통하심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 이외에 더 무엇을 원하겠는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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