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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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3장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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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ians 3  Amplified Bible

==The Goal of Life

1 Finally, my [a]fellow believers, continue to rejoice and delight in the Lord. To write the same things again is no trouble for me, and it is a safeguard for you.

2 Look out for the [b]dogs [the Judaizers, the legalists], look out for the troublemakers, look out for the [c]false circumcision [those who claim circumcision is necessary for salvation]; 

3 for we [who are born-again have been reborn from above—spiritually transformed, renewed, set apart for His purpose and] are the true circumcision, who worship in the Spirit of God and glory and take pride and exult in Christ Jesus and place no confidence [in what we have or who we are] in the flesh— 

4 though I myself might have [some grounds for] confidence in the flesh [if I were pursuing salvation by works]. If anyone else thinks that he has reason to be confident in the flesh [that is, in his own efforts to achieve salvation], I have far more: 

5 circumcised when I was eight days old, of the nation of Israel, of the tribe of Benjamin, a Hebrew of Hebrews [an exemplary Hebrew]; as to the [observance of the] Law, a Pharisee; 

6 as to my zeal [for Jewish tradition], a persecutor of the church; and as to righteousness [supposed right living] which [my fellow Jews believe] is in the Law, I proved myself blameless.

7 But whatever former things were gains to me [as I thought then], these things [once regarded as advancements in merit] I have come to consider as loss [absolutely worthless] for the sake of Christ [and the purpose which He has given my life]. 

8 But more than that, I count everything as loss compared to the priceless privilege and supreme advantage of knowing Christ Jesus my Lord [and of growing more deeply and thoroughly acquainted with Him—a joy unequaled]. For His sake I have lost everything, and I consider it all garbage, so that I may gain Christ, 

9 and may be found in Him [believing and relying on Him], not having any righteousness of my own derived from [my obedience to] the Law and its rituals, but [possessing] that [genuine righteousness] which comes through faith in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comes from God on the basis of faith. 

10 And this, so that I may know Him [experientially, becoming more thoroughly acquainted with Him, understanding the remarkable wonders of His Person more completely] and [in that same way experience]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which overflows and is active in believers], and [that I may share] the fellowship of His sufferings, by being continually conformed [inwardly into His likeness even] to His death [dying as He did]; 

11 [d]so that I may attain to the resurrection [that will raise me] from the dead.

12 Not that I have already obtained it [this goal of being Christlike] or have already been made perfect, but I actively press on [e]so that I may take hold of that [perfection] for which Christ Jesus took hold of me and made me His own. 

13 [f]Brothers and sisters, I do not consider that I have made it my own yet; but one thing I do: forgetting what lies behind and reaching forward to what lies ahead, 

14 I press on toward the goal to win the [heavenly] prize of the upward call of God in Christ Jesus. 

15 All of us who are mature [pursuing spiritual perfection] should have this attitude. And if in any respect you have a different attitude, that too God will make clear to you. 

16 Only let us stay true to what we have already attained.

17 Brothers and sisters, together follow my example and observe those who live by the pattern we gave you. 

18 For there are many, of whom I have often told you, and now tell you even with tears, who live as enemies of the cross of Christ [rejecting and opposing His way of salvation], 

19 whose fate is destruction, whose god is their belly [their worldly appetite, their sensuality, their vanity], and whose glory is in their shame—who focus their mind on earthly and temporal things. 

20 But [we are different, because] our citizenship is in heaven. And from there we eagerly await [the coming of] the Savior, the Lord Jesus Christ; 

21 who, by exerting that power which enables Him even to subject everything to Himself, will [not only] transform [but completely refashion] our earthly bodies so that they will be like His glorious resurrected body.

==Footnotes

Philippians 3:1 Lit brethren.

Philippians 3:2 Jews often used “dogs” as a derogatory term to refer to Gentiles, so Paul’s reference to his Jewish opponents in this verse is ironic. Most dogs were untamed scavengers and considered disgusting because they ate anything.

Philippians 3:2 Because circumcision was not necessary for salvation, the circumcision demanded by the Judaizers was nothing more than mutilation.

Philippians 3:11 Lit if somehow.

Philippians 3:12 Lit even if I may. Paul knew that he could not really reach perfection in this life, but his goal was to “press on” as if it were attainable. 

Philippians 3:13 Lit Breth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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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장 (개요)

그는 그들에게 그들을 유대교로 개종하게 하려는 유혹자들에 대하여 경고한다(1-3). 

그리고 자신의 본을 따를 것을 권한다. 또한 본문에서 그는 그가 거부한 유대인으로서의 자신의 특권들을 열거(列擧)하고(4-8) 자신의 선택한 것에 대하여 서술한다(9-16). 

그 후 그는 악한 자들을 경계하고 그의 본을 따르라는 권고로 본 장을 끝맺는다(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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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그리스도인 상(빌 3:1-3)

빌립보의 교회는 신실하고 번창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기독교를 유대교화하려는 교사들에 의해서 혼란이 있었던 것같이 보여진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보전하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가 베푸신 제도들과 함께 율법 준수를 혼합하려고 하였다. 그는 본장(本章)을 이 유혹자들에 대한 경고로써 시작한다.

Ⅰ. 그는 주 안에서 기뻐하기를 권한다(1절). 즉 그들이 그로 인하여 얻게 된 기업과 그들이 그에 의해서 희망하게 된 약속으로 만족할 것을 권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성격과 기질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신앙으로 인하여 위로를 받을수록 우리는 신앙에 더욱 밀접하게 매달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할수록 우리가 그들 위하여 일하며 고난받는 것을 더욱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떠나게 될 위험에서 더욱 멀어지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고 하였다.

Ⅱ. 그는 그들에게 거짓 교사들을 조심할 것을 경고한다. 그러므로 그는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네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1절)고 하였다. 여기서 "같은" 말이라 함은 "이미 내가 너희에게 전했던 것과 같은 것"이 라는 뜻이다. 그의 말의 뜻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에 내가 너희에게 들려 주었던 것을 이제 너희 눈으로 보게 제시하노라. 즉 내가 전에는 말로 하던 것을 이제 기록하여 너희에게 알림은 내가 지금도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에 대하여 그는 이 일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다"고 말한다.

1. 사역자들은 회중들이 어떤 사실을 아는 것이 그들에게 안전하고 유익하다고 생각되어질 때 그들에게 그것을 알리는 것을 수고롭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2. 우리의 기억을 새롭게 하고 그리고 중요한 요점들을 특별히 잊지 아니하기 위하여 우리가 자주 같은 진리를 듣는 것은 유익하다는 점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듣고자 하는 것을 시건방진 호기심에 불과한 것이다. 그가 본문에서 필요하게 여겨 주신 경고는  "개들을 조심하라"(2절)는 것이다. 이사야는 거짓 예언자들을 가리켜 벙어리 개라고 불렸다(사 56:1). 사도는 여기서 이사야의 말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한 것같이 여겨진다. "개들"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실히 고백하는 자들에 대해 해를 입히며 그들을 향해 짖어대고 그들은 물어뜯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반대되는 선행(율법의 행위)을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악행자들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열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찢어 분열시켰고 그리고 조각조각을 내었다. 그리고는 폐기된 의식을 단순히 무의미한 육체의 일부를 베어내는 것으로 자족하였다.

Ⅲ. 그는 참 그리스도인들을 묘사한다. 이들이 실제로 할례받은 자들로 구약의 이스라엘 족속이 그리했듯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그의 선택된 백성이며 영적 할례를 받은 자들이라고 한다. 이 참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그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3절)고 하였다. 여기에 세 가지 특징이 있다.

1. 그들은 고기와 마실 것(drink)과 여러가지 정결법으로 구성된 구약의 육체의 의식과는 반대로 영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이런 껍데기를 베껴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내적으로 함께 하는 신앙적인 예배를 드리는 데 요구되는 의무들을 가르친다. 우리는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요 4:24). 신앙하는 데는 진심만이 제일 요구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골 3:23)고 하였다. 또한 우리는 진심으로 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힘과 은혜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이것은 복음의 시대의 특징으로 곧 "영적인 예배"인 것이다(고후 3:8).

2.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대인들이 유대 교회에서 주어지는 특유한 특권들로 인하여 자랑하는 자랑이나 또는 교회에서 주어지는 기독교 교회가 그들에게 단순한 외적 즐거움과 자랑거리를 부여한다는 뜻의 자랑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그의 안에서의 얻어지는 유업 때문에 기뻐하는 자를 말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들이 그의 전의 뜰에서 기뻐하는 것을 그들의 의무로 삼으셨다. 그러나 이제 본질이 나타났으므로 그림자는 폐지된 것이요 그리고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3. 그들은 육체를 즉 모든 육적인 의식들과 외적인 행위들은 신뢰하지 않는 자들을 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바탕을 신뢰하는 데서 벗어나서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야 한다. 우리의 기쁨은 물론 우리의 신뢰도 그에게 근거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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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된 신뢰의 대상을 배격함(빌 3:4-8)

그 사도는 여기에서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그에게 주어진 특권들을 신뢰하지 않은 실례로써 자신을 제시한다.

Ⅰ. 그는 유대인이요 바리새인으로서 자랑해야 하는 것은 보여준다. 이는(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자신이 이스라엘인으로서 별로 자랑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그러한 특권들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가 육체를 자랑하고 신뢰하기로 한다면 그 누구보다도 그렇게 할 만한 조건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만일 누구든지 그러하다"(4절)고 말한다. 그는 어떤 뛰어난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것 이상으로 자랑거리를 많이 지니고 있었다.

1. 그의 혈통상의 특권. 그는 개종자가 아니라 토착 이스라엘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 자기를 가리켜 "이스라엘의 족속"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베냐민의 지파였다."  그 지파에서 속한 경내에 성전을 세웠고 베냐민 지파는 다른 모든 지파들이 반역했을 때도 유다를 지지 했었다. 베냐민은 아버지의 귀염둥이었고 이 지파는 가장 총애받는 지파였다. 또한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라고 했다. 즉 부모가 다 유대인이요 대대로 이방 혈통이 개입한 적이 없음을 말하며 그의 조상들 중 누구도 이방인과 결합한 일이 없음을 말한다.

2. 그는 유대 교회와 계약과는 관계를 자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8일만에 할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즉 그는 자기 육체에 하나님과 계약의 표시를 가졌으며 또한 하나님이 지시한 바로 그 날에 할례를 받았던 것이다.

3. 학식에 있어서 그는 바래새인으로서 율법에 뛰어난 학자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받았다. 그리고 유대인의 모든 학식에 능통한 학자였고 그 조상들의 율법을 완전한 격식을 따라 가르침을 받은 학자였다. 그 조상들의 율법을 완전한 격식을 따라 가르침을 받은 학자였다(행 22:3). 그는 "바래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행 23:6)이요 그리고 "그의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행 26:5)

4. 그는 흠없는 생활을 했다. 그러므로 그는 "율법에 의로는 흠없는 자라"(6절)고 하였다. 바리새인이 율법을 해석하는 바에 따르는 한, 또한 율법의 외적으로 보이는 바의 축조적인 준수에 있어서 그는 율법을 어긴 일이 없었고 또 누구에게도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아니하였다.

5. 그는 그의 종교를 위해서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바리새인으로서 부끄러움 없는 생활을 살았으며 또한 그는 자기 신앙의 적수로 간주되는 자들을 박해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했다"고 그는 말하였다.

6. 그는 자기가 열성적으로 박해에 앞장 섰음을 보여 주었다. 그는 박해를 지시하고 통솔하는 데 아는 것도 없이 열성을 내었다. 그러므로 그는 "나는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다(행 22:4)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은 유대인으로서 자랑할 만한 것이었고 그를 외롭다고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Ⅱ. 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가 받을 유익과 기대에 비하여 이러한 것들(유대인의 특권)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가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그러므로 그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다"(7절)고 말한다. 즉 그가 바리새인이었을 때 그가 유익하다고 여겼던 것들 그리고 그가 이전에 중대하게 여겼던 것들 "이 모든 것들을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해로 여겼다."  그는 "말일 그것들을 지키기 위하여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나의 이익을 잃었다면 나는 자신을 말할 수 없는 손실자(損失者)라고 여겨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유대인의 특권을 잃어버린 것으로 간주했다. 그는 그것들을 그를 윤택하게 하기에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만일 그리스도에 반대하여 그가 그것들을 신뢰했다면 분명히 그를 허약하게 하고 파멸하게 할 것이라고 여겼다.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사도는 그들에게 자기 자신이 행한 것 이상의 것을 행하라고 설득하지도 또한 자기가 그만 둔 것 이상의 것을 그만 두라고 설득하지도 않았다. 또한 자신의 불멸의 영혼을 내겐 기초인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근거도 그들에게 제공하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8절)고 말하였다. 여기서 사도는 자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그는 우리에게 그가 열망하였고 얻으려고 애썼던 것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그것은 그의 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이었다. 즉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경험하여 아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개념적이고 사변적인 지식이 아니라 그에게 실제적이고 효험있는 지식이었다. 한 지식은 때때로 믿음을 촉진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자식으로 혹은 그에 관한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외롭게 하리라"(사 53:11)고 하였다. 더구나 그가 가진 지식의 지식 중에도 가장 고상한 지식이었다. 기독교 신앙 혹은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는 여러 뛰어난 인간의 지혜와 자연에 대한 모든 지식을 넘어서는 풍성하고 초월적인 고상한 지식이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지식은 타락한 죄인들의 정황에 알맞는 것이며 그리고 그 지식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 그리고 그들이 바라고 희망하는 모든 것은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2. 그는 어찌하여 유대인으로서 또한 바리새인으로서의 그의 특권들을 포기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그러나"(7절)라는 말로 자신의 승리감과 자랑스러움을 표현한다. 그러나라고 우리말로는 번역되었으나 원래는 ‘아라 메눈게 카이’라는 말로써 다섯 개의 작은 단어들로 구성된 말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이란 그가 앞서 말한 그의 유대인으로서의 특권이다. 그가 본문에서 "모든 것들"이라고 말한 것은 모두 세상적인 쾌락과 단순한 외적 특권들 즉 그리스도 대신에 그의 마음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모든 것들, 또한 그리스도 대신 가치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나타나는 모든 것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다만 해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그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일관했는지 또는 그것들을 표기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는가?"라고 반문해 볼 수 있겠다. 물론 그에게 그러한 점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현재 시제로 "그러나 내가 이 모든 것을 해로 여기노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쉽지만 그러나 그가 시련을 당했을 때는 어떻게 할까?"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 모든 것을 해로 여겼음을 말한 사실속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게 된다. 즉 그는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8절)고 말했던 것이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그리고 바리새인으로서 그의 모든 존귀와 이점들을 내어버렸다. 그리고 복음을 고백하고 전파함으로 따라 오는 모든 불명예와 고난을 견뎠다. 기독교 신앙에 닻을 내리게 되자 그는 거기에다 희망을 걸었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특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 그는 그것들을 해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그것들을 배설물 또는 빗물 ‘스퀴발라’ 즉 개들에게 던져주는 찌꺼기로 여겼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에 비해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그리스도와 겨루고자 할 때 최고도로 경멸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신약 성서는 구원의 은혜를 손해보는 것으로 말하지 않고 반대로 구원의 은사를 인간의 영혼 안에 맺힌 성령의 열매로서 또한 인간의 영혼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형상의 결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또한 신약 성서는 구원의 은사를 신적인 것,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말한다. 그리고 믿음을 귀중한 믿음이라고 일컬어지며 온유함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값진 것"이라고 부르고 있다(벧전 3:4; 벧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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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소망의 내용(빌 3:9-14)

우리는 사도가 무엇을 배격하였나를 살펴 보았다. 이제 그가 붙잡고 집착하기로 결정하기로 무엇인지를 살펴 보자. 그는 주로 그리스도와 하늘나라에 전념을 기울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특색에 유념했다.

Ⅰ. 사도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의로써 마음에 모시었다. 그는 이것을 몇 가지 실례를 들어 설명하였다.

1. 그는 그리스도를 얻고자 했다. 그리고 만일 그가 그리스도와 그의 의에만 관심을 쏟고 그리고 그리스도가 그의 주와 구세주가 된다면 이것으로 자신은 큰 승리자가 된 것으로 여겼다. 고로 그는 "내가 그를 얻고자 함이라"고 하였다. 그는 경주자가 상을 얻으려는 것처럼 또한 항해사가 항구가 정착하는 것을 목적 삼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얻으려 하였다. 그 표현은 우리가 그를 위하여, 그리고 그를 좇아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를 얻는 데 비하면 모든 것을 하찮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2. 그가 "그의 안에서 발견되고자 하였다"(9절). 이 말은 살인자가 피의 보수자로부터 안전한(민 35:25) 도피성에 정착하듯이 그리스도 안에 정착되고 싶다는 내용의 표현이다. 또는  여기서 발견된다함은 법정에 서게 됨을 나타낸 말로써 우리의 재판관이신 주님 앞에 부끄러움없이 우리가 발견됨을 말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벧후 3:14).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그리스도의) 의가 없으면 멸망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우리를 위해 마련된 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완전한 의다. 자신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그리고 진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 이외에 그 누구도 이 의에 의해 혜택을 얻지 못한다. 본문은 다음과 같은 뜻의 말씀이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다. 표면적인 율법 준수와 선행들이 나의 악한 것들을 대속할 수 있다거나 혹은 선행으로 악을 누름으로 내가 하나님과 상대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생각지 말라. 오히려 내가 의지하는 의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율법적인 의가 아니라 복음적인 의이다.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는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또 지정해 주신 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시는 주님이시다(사 45:24; 렘 23:6). 만일 그가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는 우리의 의가 되실 수 없었을 것이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는 그의 고난에 상당한 가치와 공로를 부여하여 그 고통이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에 충족한 것으로 간주하셨고 또 그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유효한 의로써 삼으신 것이다. 믿음은 그의 피로 값을 주고 산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또 구원의 은혜에 우리로 동참하게 하는 정해진 수단이다. 이 구원은 그의 "피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롬 3:25) 주어지는 것이다.

3. 그가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였다(10절). 그러므로 본문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라고 말하였다. 이사야서에서 믿음은 지식이라고 불리워졌다(사 53:11). 따라서 여기서 그를 아는 것은 곧 그것은 그들을 변화시키는 능력과 덕은 느낌으로써 오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사도는 그가 의롭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화된 것을 자랑으로 알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덕택으로 의롭게 된 사실 뿐만 아니라 그의 안에서 죄를 죽이고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일으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을 알기를 열망했다.

4. 그가 그에게 순응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그의 성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죄에 대하여 죽은 것 같이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을 때 그의 죽음에 순응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때 육과 육에 대한 애착은 극복되어지며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하여 세상이 우리에게 대해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며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게 된다." 이것이 그의 죽음에 자신을 순응시키는 것이다.

Ⅱ. 사도는 자기의 마음을 하늘에 두고 있음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겼다. 이러한 심정은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11절)는 그의 말 가운데서 나타난다.

1. 하늘에서의 행복은 본문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라고 불리운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믿는 자들의 영혼이 세상을 떠날 때 즉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후의 날에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할 때까지는 그들의 행복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ajnavstasi"(부활)은 때때로 장래의 상태를 의미한다. 사도는 바로 이 부활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는 이 부활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때에는 불의한 자들도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부활하여 피하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기쁘고 영광스런 부활은 ‘카트 엑소켄’(2596 1851)-즉 권능에 의지한 부활이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의 머리요 첫 열매로써의 그리스도의 부활의 힘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악한 자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그들에 대한 심판의 능력에 의해서만 부활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부활은 축복과 생명과 영광으로 환원되는 부활이 될 것이다. 반면에 악한 자들의 부활은 무덤에서는 부활하는 것이 되겠지만 그러나 그 부활은 두 번째의 사망을 위한 부활인 뿐이다. 반면 성도들의 부활은 "의로운 자들의 부활" 또는 "생명의 부활"이라고 불리운다(요 5:29). 그리고 이들 성도들은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로 간주된다(눅 20:35).

2. 이 기쁜 부활을 향하여 사도는 전진하였다. 이 부활은 얻기 위하여 무슨 일이고 기꺼이 행하려 하였고 또 고통이라도 달게 받고자 하였다. 이 부활의 희망과 그것에 대한 기대가 그가 자기 사명을 수행하면서 만난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그에게 많은 용기와 인내심을 부여해 주었다. 그는 마치 그들이 부활을 잃게 되고 그것에 미치지 못하게 될 위험에 처한 것처럼 두려움으로 말한다. 부활에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거룩한 두려움은 우리로 인내하게 해 주는 최선의 방책이 된다.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으려는 데 있었다. 바울은 자신의 공로와 의를 통하여 그것에 이르기를 바랐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이르기 위해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에게 관심이 있는 자로 발견되려고 하노라"고 하였다. 다음사실을 명심하자.

(1) 그는 자신을 불완전과 시련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다"(12절)고 말한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현재의 그들 자신의 상태가 불완전함을 솔직히 인정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 성취하지 못했고 이미 온전히 된 것도 아니다. 우리의 모든 의무와 은혜와 위안에는 아직도 많은 부족이 있다. 만일 바울이 온전함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였다면(그는 실상 고도의 거룩함에 이르러 있었다.)  우리는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다. 다시 그는 "형제들아 나는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한다"(13절). ‘우 로기조마이’-즉 내가 현재의 입장을 돌이켜 볼 때 나는 자신을 그렇게 여길 수 밖에 없노라는 말이다. 자신은 충분한 은혜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바로 그러한 생각이 그들이 거의 은혜를 갖지 못하였거나 또는 전혀 갖지 못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참된 은혜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보다 많은 은혜를 갈망하게 되며 또한 은혜의 완성을 향한 전진이 있기 때문이다.

(2) 이러한 확신에 따른 사도의 생활 태도. 그는 자신이 다 이루지도 않았고 온전히 붙잡지도 못하였음을 살펴 본 후에 한걸음 나아가 "나는 좇아가노라"(12절)고 하였다. ‘디도코’(1377)-즉 나는 경주하는 자처럼 과감하게 좇아간다. 나는 보다 많은 은혜를 얻으려고 그리고 보다 많은 선을 행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결코 내가 충분한 것을 행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말한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① 그러므로 우리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잡힌 바 됨에서 온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먼저 붙잡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붙잡으시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에게 붙잡히는 것이 우리에게 행복이 되며 구원이 된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사랑한다"(요일 4:19)고 하였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붙잡은 것이 우리에게는 안전하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벧전 1:5).

② 하늘에서의 행복이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것을 붙잡으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붙잡을 때 우리는 하늘로 인도함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가 우리를 붙잡은 것은 우리의 온전한 축복을 성취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그는 다음과 같이 부언한다(13절). "오직 한 일(이것이 그의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다.)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 한다." 과거의 죄들과 과거의 긍휼은 지속적인 회개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나 바울은 현재의 은혜의 분량만으로는 만족치 않기 위하여 뒤에 있는 것들을 갖기를 원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좇아갔다. ‘에페크테이노메노스’-즉 전진하였다로 그의 열렬한 관심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3) 사도의 "좇아 감의 목표." 이에 대하여 그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14절)고 하였다. 그는 푯대를 향하여 나갔다. 경주하는 자가 목표를 결코 잊어버리지 않고서 그가 할 수 있는  한 빨리 앞으로 뛰어가는 것같이 하늘을 그들의 목표로 바라보는 자들은 거룩한 바람과 희망 그리고 꾸준한 노력과 준비로 그것을 향하여 전진해야 한다. 우리가 하늘에 보다 적절하게 되면 될 수록 우리는 더욱 빨리 그것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하늘은 푯대라고 불려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궁수(弓手)가 자기가 맞히려고 하는 표적에 자기 눈을 고정시키는 것과 같다. 이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시이다. 그리스도인으로의 부름은 위로부터 부름임을 기억하자. 이 부름은 하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또한 그 부름은 하늘을 지향한다. 하늘나라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다. ‘토 브라베이온’은 우리가 위하여 싸워야 하고 달려야 하며 씨름해야 할 그러한 상을 말한다. 또한  이런  "상"은 우리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목표가 되어야 하며 또 우리의 당한 모든 고통에 대한 보상이 될 것이다. 하늘 나라를 목적으로 삼는 것은 기독자로서의 과정을 추구함에 있어서 대단히 힘이 된다. 이것은 모든 섬김을 감당하도록 우리에게 힘이 되며 우리를 깨우쳐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게 해 준다. 하늘나라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그러기에 하나님에게 우리는 그 나라를 기대하는 것이다.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롬 6:23). 그러나 영생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주어진다. 영생이 그에 의해 우리를 위해 확보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손을 통하여 그것은 우리에게 와진다. 우리의 길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를 우리의 집으로 획득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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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와 권고(빌 3:15-16)

사도는 실례로 자신의 입장에 대하여 말한 후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기의 본을 따를 것을 촉구한다. 축복된 바울이 품은 것과 같은 마음을 우리 안에서 품도록 하자. 우리는 본문에서 그가 어떠한 마음을 품었는지를 보았다. 우리도 그와 같은 마음을 품자. 그리하여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와 하늘나라에 우리의 마음을 두자.

1. 그는 그리스도를 가장 귀중한 분으로 삼고 그들의 마음을 저 세상에 두는 것이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일치하여 추구해야 할 일임을 제시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여러 사실들에 대하여 그들의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하며 그리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금생이나 내생에 있어서의 우리의 행복이 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입장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동일한 법칙을 따라 살며 같은 일을 생각하도록 하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로 우리의 전부를 삼으려 한다면 "우리에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이어야만 한다."  우리 다같이 합심하여 푯대를 향하여 나가자. 그리고 하늘 나라를 우리의 목표로 삼자.

2.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사소한 견해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서로 관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된 문제에는 서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즉 너희가 먹는 것과 날들에 대해서 또한 유대의 율법의 여러 가지 사실들에 대해서 견해에 차이가 있고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너희가 서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너희 모두가 그리스도를 구심점으로 하여 만나며 머지않아 너의 집으로써 하늘 나라에서 너희가 만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소한 견해 차이에 대하여서는 그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이것까지 나타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서로 입장을 달리 취하는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든지 너희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보다 좋은 이해를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때가되면 하나님이 그것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오히려 그 동안에 너희가 할 수 있는 한 너희는 함께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며 너희가 일치하고 있는 모든 위대한 목표를 향해 힘을 합해야 한다." 그리고 너희가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깨달음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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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본을 따르라는 사도의 강권(빌 3:17-21)

그는 본장을 경고와 권고로 끝맺는다.

Ⅰ.그는 그들에게 유혹자들과 악한 교사들이 본을 따르는 것에 의하여 경고한다. (18,19절). 그러므로 그는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고 말하였다. 다음 사실들을 생각해 보자.

1.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는 것 같으나 실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원수 노릇을 하며 십자가의 목적과 의도에 대적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그들이 어떠하냐 하는 것은 그들의 가식적인 고백에 의해서 보다는 그들의 행함에 의하여 잘 드러난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은 알 수 있는 것이다"(마 7:20). 사도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회중들에게 경고한다.

(1) 그는 매우 자주 경고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내가 너희에게 자주 말했다"고 하였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경고들에 대하여 너무 부주의하기 때문에 반복해서 경고를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사도는 "같은 말들을 쓰는 것이 안전하다"(1절)고 하였다.

(2) 또한 그는 정적으로 또 사랑에 넘치는 어조로 그들을 경고한다. 그는 "내가 이제도 눈물로써 말한다"고 본문에 술회하였다. 예레미야가 눈물을 흘리는 예언자였던 것처럼 바울도 상황에 따라 눈물을 잘 흘리는 설교자였다. 똑 같은 주제의 설교자라도 새로운 정열을 가지고 설교해야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는 전에 자주 말하였던 것을 되풀이해서 말해야 한다. 그러나 열정을 가지고 말해야 하며 설교의 능력에 사로잡혀야 한다.

2.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인 자들의 특징들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1) 그들은 그들의 배로 자기의 하나님을 삼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의 육욕적인 욕망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는다. 감각적인 욕망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우상이요, 모든 사람들에게 거침돌 노릇을 한다. 이러한 감각적인 욕망들은 그리스도인들로 하나님의 은총과 그들의 양심의 평화와 하늘 나라에서의 영원한 행복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다. 탐식과 술취함에 대한 욕망은 그들로 그들의 배를 신으로 삼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배를 즐겁게 하게 것과 그리고 배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것이다. 선한 회중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정성을 향락주의자들은 그들의 욕망에게 바친다.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 그는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긴다"(롬 16:18)고 말하였다.

(2) 그들은 그들의 부끄러움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들은 죄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랑한다. 그리고 마땅히 그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 죄는 죄인들에게 수치가 된다. 특히 그 죄를 영광으로 여길 때 그것은 그들의 치욕거리가 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흠과 책망이 되는 것을 오히려 높이 평가한다.

(3) 그들은 땅의 것들을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셔서 그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대하여 세상을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우리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셨다." 그러므로 세상의 일들을 생각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리고 그것의 큰 목적에 직접적으로 대적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땅의 일들을 좋아하고 영적이고 천상적인 일들에 대하여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땅의 일들에 그들의 마음과 사랑을 쏟는다. 그들은 그것들을 사랑하고 심지어 그것들에 빠져서 그것들을 신뢰하고 거기서 자기 만족을 갖는다. 그는 이러한 특징을 그들에게 제시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것의 본을 따르며 그들에 의해서 인도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우리로 그러한 행위를 못하게 하기 위하여 그는 그들의 파멸의 운명을 우리에게 제시해 보여 준다.

(4) 그들의 종말은 파멸이다. 그들의 세상에서의 삶은 즐거운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 마지막에는 죽음과 지옥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롬 6:21)고 말씀되어 있다. 비록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이 시대에 영합하는 삶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그들의 길을 선택한다면 또한 그들이 당할 종말도 각오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가 유대 국가의 완전한 파멸을 말하려고 한 것으로 여겨진다.

Ⅱ. 그는 이러한 악한 본에 반대하여 자신과 그의 형제들을 한 본으로 제시한다. 그러므로 그는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그리고 여러분이 우리를 모범으로 삼고 따르듯이 그렇게 행하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라"(17절)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너희의 본으로 삼으라"고 한다. 그는 그들로 그리스도와 하늘 나라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예로써 설명한다. 그들이 하늘 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들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20절).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일지라도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들의 ‘폴리튜마’-즉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가 말한 것은 세상과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리고서 예루살렘의 시민들이라는 뜻의 말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빚이 아니고 저 세상의 우리 집이다. 그 나라에 우리가 부여 받은 최대의 특권이 있으며 또 우리의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시민권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현재의 삶도 그것에 준한 삶이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저 세상과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또한 그 세상과 계속 교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늘을 목적으로 한다. 그는 그곳에 그의 마음을 두어야 하며 그 곳을 그의 집으로 여겨야 하며 곧 거기에 있을 수 있기 위하여 그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는 위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그 곳에 둘 때 그의 시민권도 다른 사역자들을 따르도록 촉구 하였다. 그들이 "왜 당신의 유명하지도 않고 세상에서 아무 권리도 행세하지 못하는 가난하고 멸시 받으며 박해받는 사람의 동무가 되고 있는가?  그래 가지고 누가 당신을 따르겠는가?"라고 말 할 수도 있었다. 이에 대하여 그는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 자랑으로 여길 것은 저 세상에 대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모습처럼 미천한 것도 멸시받는 것도 아닌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와 친교를 갖는 자들과 그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1.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 나라로부터 구세주를 바라기 때문이다(20절). 그러므로 그는 "거기로써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으며 그는 위로 올라갔으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우리는 거리로부터 그가 재림하셔서 그 새 예루살렘의 모든 시민들을 자기에게로 불러 모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2.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우리는 거기에서 행복되고 즐겁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권을 하늘에 둘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거기에 있을 뿐만 아니라 머지 않아 우리도 거기에 있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과의 몸의 형제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하였다(21절). 성도들의 몸을 위하여 영광이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그들이 부활때에 받게 될 것이다. 현재의 몸은 최대로 "낮은 몸" ‘소마 테스 타페이노세오스’-즉 비천한 몸에 처하여 있도다. 몸은 땅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땅의 소산에 의해 지탱되며 그리고 많은 질병에 예속되어 있다가 마침내 죽음을 당하게 된다. 게다가 몸은 자주 많은 죄의 기회와 도구 노릇을 한다. 그러므로 이 몸은 "이 사망의 몸"이라고 불리워진다(롬 7:24). 혹은 본문의 "낮은 몸"이라 함은 그것이 무덤에 있는 상태를 묘사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부활 때에 그것은 수치스러운 몸으로 발견될 것이며 썩어 진토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간다"(전 12:7)고 하였다. 그러나 성도들의 이 "낮은 몸"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될 것이다. 다시 생명으로 부활할 뿐만 아니라 부활하여 큰 특권을 얻게 될 것이다.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그리스도의 영광을 입으신 몸이 우리의 변화의 산 증거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가 산 위에서 변화되셨을 때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마 17:2). 또한 그는 우리를 위해 하늘 나라의 기업을 마련해 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시고 하늘로 가셨다. 또한 그가 육신을 입으시고 하늘 나라로 간 것은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가 되기 위해서이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자녀들 가운데 처음 난 자"가 되시기 위해서 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야 한다. 그 이유는 이로써 그가 많은 형제 중에서 받아들이게 되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롬 8:29).

(2) 또한 이 변화를 일으킨 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본문에 보면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라고 하였다. 그에게는 능력있는 힘 곧 "지극히 크신 능력과 강력한 힘의 역사하심"이 있으시다(엡 1:19). 그가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킬 수 있었고 그리고 조만간에 만물을 그의 권한 아래 장악하시리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그리고 이 힘에 의해서 부활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요 6:44)고 하였다. 이제 우리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튼튼하게 갖자. 그 이유는 우리에게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성서가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부활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마 22:29). 그리스도의 부활이 하나님의 능력의 영화로운 실례이며 그러므로 그에 대하여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롬 1:3)고 선포되었듯이 또한 우리의 부활도 그러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구원자의 왕국의 모든 원수들은 완전히 정복될 것이다.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히 2:14) 뿐만 아니라 "맨 나중에 멸망받은 원수 즉 사망까지"(고전 15:26) "이김의 삼킨 바 될 것이다"(고전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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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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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 '종말로'(* , 토 로이폰)는 대부분 '결론적으로', '마지막으로'로 번역되었다(KJV, JB, NIV, RSV). 그러나 이 단어가 서신서에서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 경우는 극히 드물며(고후13:11), 오히려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려고 할 때(살전 4:1;살후 3:1)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본절의 '종말로'는 바울이 끝을 맺기 위해 사용했다기 보다는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기 위해 사용했으며 '이제는', '더 나아가서', '덧붙여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Goodspeed, Knox, Houlden, Moffatt). 
한편 바울은 본 서신의 여러 곳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다(1:18;4:4,10).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옥중에 있을 때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기뻐하라'고 한 것은 기뻐함을 통해서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일치를 해소(解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는 성도들의 이러한 기쁨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가능한 것임을 시사한다.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같은 말'에 대한 해석에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주 안에서 기뻐하라'를 가리킨다(Alford, Weiss, Moffatt). (2) 3,4장에서 언급된 교회내의 불일치에 대한 경고를 가리킨다(Lightfoot).(3)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이다(Zahn, Meyer, Scott, Vincent).  이 세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1)은 문맥상 다음에 이어지는 '너희에게 안전 하느니라'와 연결되어지지 않으며 (2)도 2절 이하에 기록된 거짓 교사의 경고와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은 복음에서 벗어난 사실들을 지적해 주는 것이 아무리 지나치다고 할지라도 지루함이 없다는 의미이다.
=====3:2
본절은 유대주의를 따르고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유대주의를 강요하는 자들에 대해 조심하라는 권면이다.
@개들을 삼가고 - '개들'은 길거리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짐승을 가리키는 것으로(Lightfoot) 경멸스러운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했던 상징적 표현이다 (신 23:18;삼상 17:43;잠 26:11;사 56:10,11). 예수께서도 이 말을 진리를 거역하는 자들에게 사용하셨고(마 7:6) 이방인을 가리킬 때도 사용하셨다(마 15:26,27). 본문에서의 '개들'은 성도들을 괴롭히는 유대주의 행악자들을 지칭한다(Michael).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 '행악하는 자들'은 문자적으로 '악한 일꾼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않고 율법을 행함 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손할례당을 삼가라 - '손할례당'의 헬라어 '텐 카타토멘'(*)은 문자적으로 '절단한자'를 의미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인간적 노력의 산물인 의식적인 행위만 중요시하는 자로서 율법을 고수하였다.
=====3:3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 본절은 2절에서 경고한 내용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율법에 따른 행위만을 일삼는 유대주의자들은 진정한 할례당이 아니고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이 진정한 할례당이다(롬 2:25-29;골 2:11). 
바울은 진정한 할례당의 특징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여 - '봉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라트류온테스'(*)는 유대인들이 공식적인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한 말이다(눅 2:37;행 26:7;롬 9:4,TDNT). 진정한 할례당은 전통이나 형식에 지배받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예배드린다(시 51:17).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참할례당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자들로서 모든 만족과 소망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오는 것임을 아는 자들이다(갈 6:14).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 '육체' 에 해당하는 헬라어 '사르키'(* )는 일반적으로 몸(눅 24:39), 인간의 성품(요 1:14), 타락한 본성(롬 7:5) 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Schweitzer, Muller). 본절의 '사르키'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것 즉 인간의 의식(儀式)이나 공적 등을 가리킨다. 본절은 진정한 할례당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의(義)를 얻을 수 없는 의식과 자랑을 신뢰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함을 시사한다(Kent, Martin).
=====3:4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 사도 바울은 육체를 신뢰하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을 반박하기 위하여 자신의 간증을 하고 있다. 그는 성령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자이기도 하지만 육체를 자랑할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육체를 자랑하지 않았다. 바울이 육체를 자랑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만이 자신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확실한 진리이며, 그 어떤 것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다(Ridderbos).
=====3:5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육체를 신뢰할 만한 근거들을 제시한다.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난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으며(창 17:12;레 12:3),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는 성인이 되어서 할례를 받았다(행 16:3). 바울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과 달랐을 뿐만 아니라 난 지 십삼일 만에 할례를 받았던 이스마엘 족속과도 달랐다. 그는 오로지 율법에 정한대로 난 지 팔 일만에 부모로부터 할례받은 진정한 유대인이었다.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 바울은 이스라엘 족속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여 얻은 선택된 언약의 백성임을 의미하며 '족속'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민족으로 하나님과 약속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거룩한 백성의 개념을 가지고있다(Lightfoot). 바울은 이방인에서 개종한 사람이 아니라 순수한 이스라엘태생으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권리와 특권을 소유하고 있다(Hawthorne).
@베냐민의 지파요 - 베냐민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아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사울이 이지파였다(삼상 9:1,2). 하만의 음모(陰謀)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베냐민 지파였다. 또한 베냐민 지파는 왕국이 분열되었을 때 다윗 왕조에 신실하게 충성하였으며 바벨론 포로때에는 성전 건축을 위해 유다와 레위 지파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다(느 11:7-9). 바울은 이런 베냐민 지파에 속한 것을 매우 자랑하였으며(롬 11:1) 이 자랑을 통해서 자신이 베냐민 지파에 속한 순수한 유대인임을 밝히고있다(Hendriksen, Kent).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 본절은 바울 자신이 '아브라함의 씨'로서 이방인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히브리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히브리인임을 밝히고 있다(Kent, Hawthorne). 그는 유대인 방식으로, 히브리말로써 양육을 받은 자였다(행 22:2,3, Muller).그러므로 그는 혈통은 물론 히브리말과 히브리 관습을 그대로 보존한 순수한 히브리인이 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 바리새파는 가장 엄격한 유대 종파로서 구약의 율법은 물론 구전이나 서기관이 해석한 전승을 연구하며 따르는 자들이다(Hawthorne,Muller).
바울은 바리새인의 아들로 태어나(행 23:6) 바리새파에 입문한 자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존경받는 선생 가말리엘 밑에서 수학했다(행 22:3). 그러므로 그는 바리새인중에서 가장 신실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였다(Beare).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바울은 유대인이면서 바리새인으로서 예루살렘성 밖에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였다(행 9:13,21).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었다. 
한편 '율법의 의'는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명령들과 기준들을 지킴으로 얻어지는 '의'를 의미한다. 바울은 이런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다른 사람이 볼 때 흠이 없었던 자였다. 그러나 바울이 지킨것은 율법에 대한 형식적인 순종에 불과하며 하나님이 진정으로 요구하시는 영적 순종에는 미치지 못하였다(Kent).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 '무엇이든지'는 단지 앞의 구절(5, 6절)에서 언급된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앞절들(5,6절)에서 언급한 바울이 신뢰할 만한 육체의 조건들은 다만 대표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본절의 '무엇이든지'는 바울 자신에게 이익이 되었던 모든 것을 가리킨다(Vincent, Kent). 바울은 유대교에서 자신의 외적인 것들이 자랑거리가 되었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 후부터 이전의 자랑거리가 이제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되고 말았다. 구원이 단지 예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과거에 구원을 얻을 조건이 되리라 생각했던 외적인 조건들이 해로 여겨지게 되었다. '여길 뿐더러'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게마이'(* )는 완료 중간태로서 해로 여겼을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해로 여기고 있음을 나타낸다.
=====3:8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 앞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헤구마이(* , '해로여김')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자신이 해로 여기고 있는 확신이 지속되고 있는것을 나타내며(Kent) '모든 것'은 7절의 유익했던 '모든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Martin, Bonnard, Dibelius).
'가장 고상함'의 헬라어 '휘페레콘'은 '탁월함'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바울 자신이 가장 뛰어난 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음을 의미한다. 한편 '내 주'는 그리스도와 바울 자신과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내가 그를 위하여'라 함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지금까지 그가 귀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때는 그의 회심의 때를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다. '배설물'의 헬라어 '스퀴발라'(* )는 개에게 던지는 것으로 '똥'이나 '음식 찌꺼기' 또는 '쓰레기'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난후 그 이전의 삶 전체에 대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버렸는가를 시사한다(Hawthorn, Martin).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 본절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재림의 날에 구원얻는 것을 나타낸다(Kent, Martin). '발견되리'는 앞절의 '그리스도를 얻고'와 동등하게 '히나'(* ,'...하기 위하여')에 연결된 목적절로서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이 발견되려'라는 의미이다(Vincent, Hawthorne).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긴밀한 연합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를 힘입고 있음을 시사한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 '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카이오쉬넨'(* )은 법정에서 사용된 용어로 두 부류 가운데서 한 쪽은 '옳다'고 인정하고 다른 한 쪽은 '정죄'할 때 사용되었다(Hawthorne).그러므로 본절은 믿음을 통하여 '의'를 얻으며 율법을 통해서 의를 얻지 못한다는 의미로, 바울 자신이 갖고 있는 의가 자신의 노력이나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 의해서 온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하나님께부터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은 오로지 십자가에서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 유일한 조건인 '믿음'은 '행위'와 반대되는 것으로 자신의 노력이나 행위로는 '의'를 얻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Kent).
=====3:10
@내가 그리스도와...알려 하여 - 8절의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Kent).여기서 '알려하여'의 헬라어 '그노나이'(* )는 지적지식 뿐 아니라 경험적 지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과거나 현재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알기를 원한다는 강한 의지를 시사한다.
@그 부활의 권능 - 바울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알기를 원했던 것 '그 부활의 권능'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이나 그리스도인이 죽음 이후 경험하게될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Muller) 부활하셔서 믿는 자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낸다. 이 부활의 권능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한다(롬 6:4). 바울은 그리스도를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서만 알기를 원치 않았다.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그의 개인적 삶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했다(Hawthorne).
@그 고난에 참예함 - 본문은 '부활의 권능'과 분리된 전혀 새로운 경험이 아니라 같은 경험의 또 다른 측면이다(Hawthorne). 이것 역시 단순히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내외적인 고난을 말하는 것으로(Kent),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함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골 1:24).이러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롬 8:17-18;고후 4:7-11).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 본문은 앞서 언급한 '그 고난에 참예함'을 보다 직접적이고 심도있게 표현한 것이다(Muller).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에 참예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자신의 옛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고(롬 6:5,6;고전 15:31;갈 2:20), 그리스도의 새로운 부활의 생명으로 연합(聯合)하여 계속 성장해야 함을 시사한다(Kent).
=====3: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 '어찌하든지...이르려 하노니'의 헬라어 '에이 포스 카탄테소'(* )는 부활에 대해 다소 의심을 내포하는 듯하다. 이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이 부활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방법에 대해 의심한다고 주장한다(Lenski). 그러나 오히려 이것은 그의 깊은 겸손과 조심스런 바람의 표현으로서 자기 신념을 배제하는 것으로 보아야한다(Lightfoot, Kent, Hawthorne, Hendriksen, Muller). 
한편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엑사 나스타신 텐 에크 네크론'(*)은 신약성경에서 찾아보기 힘든 아주 드문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의인과 죄인 모두의 부활을 나타낼 때는 '아나스타시스 톤 네크론'(*)을 사용한다. 이러한 일반적 표현과는 달리 본절에서는 전치사 '에크'(* ,...로 부터')가 두번씩이나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 의인의 부활 혹은 영광의 부활을 뜻하는 부분적인 부활로 보아야 한다(Kent, Muller, Hawtherne). 즉 본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의 고난에 참예하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와같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게 될 영광의 부활을 시사한다(계 20:4-15).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본절은 바울이 이미 도달한 현재의 상태와 앞으로 도달하여야 할 목표 사이의 갈등을 나타낸다(Martin).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났던 것을 암시한다(Muller). 그는 그곳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회심하게 되었다. 그의 회심은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서(Robertson) 그가 열망하는 완전함에 이르기 위하여 믿음의 경주 즉 영적 성장을 향해 계속해서 달음질해야 한다. 여기서 '좇아가노라'로 번역된 헬라어 '디오코'(* )는 '추적한다'라는 의미로 사냥이나 달리기 경주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본절에서 '디오코'는 좀더 적극적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강한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배우고 닮아가고자 하는 바울의 진지한 노력을 시사한다.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목적을 계속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자각시키고 있다.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본절은 앞절의 반복이다. 바울이 자신의 과거에 집착(執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나아감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마도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 행위와 의식을 강조하며 자신들이 받은 영적 은혜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극단적 완전주의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인 듯 하다(Kent). 본문의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는 바울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일관된 삶의 자세를 나타낸다. 여기서 '잊어버리고'의 헬라어 '에필란다노메노스'(*)는 과거의 기억이 자신의 관심을 빼앗아 진보를 방해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에필란다노메노스'를 통해서 전에 지녔던 유대인으로서의 특권이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루어 놓은 업적들로 인해서 믿음의 경주를 방해받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앞에 있는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목적을 잡기 위하여 전력을 다해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고 있다(Martin).
=====3:14
@푯대를 향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스코폰'(* )은 문자적으로 '푯대를 똑바로 쳐다보고'라는 의미이다. 이는 경주자가 달려가고 있는 경주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바울이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히12:1,2)만을 바라보고 경주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들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시키고 그를 향하여 전진하여야 함을 시사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위에서 부르신 부름'은 경주의 승리자에게 상을 주기 위해 심판관 앞에있는 높은 단으로 올라오도록 명하는 것에서 연유된 표현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부르심을 의미하며(고전 1:26;7:20;엡 1:18;4:1,4;살후 1:11) '상'은 경주 뒤에 있을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을 시사한다.
=====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 '온전히'의 헬라어 '텔레이오이'(* )는 더 이상의 노력이 필요치 않은 절대적 완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연약과 무지에 비하여 꽤 성장한 상대적 완전으로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한 노력의 여지가 아직도 남아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전 2:6;14:20;엡4:13;골 1:28;4:12, NIV, KJV, Kent, Vincent).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소속되었고 하나님께로 구별되어서 '온전히 이룬 자'가 되었으나 아직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分量)까지 성숙해가야 한다(Muller).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 바울은 자신이 생각하는 '온전'에 대해 혹시나 빌립보 교인들 중에 반대가 있거나 다른 생각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고 확신한다(Martin, Kent).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지라도 그 성숙의 정도가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해 영적 성장을 이루어가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히 6:11,12). '그대로 행할 것이라'의 헬라어 '토 아우토 스토이케인'(*) 중 동사 '스토이케인'은 '보조를 마추라', '일치하여 행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갈 6:16). 바울은 '스토이케인'을 사용해서 다시 한번 성도들 상호간에 성숙과 의견의 차이가 존개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조화와 협력을 이루어 나갈 것을 일깨우고 있다(Hawthorne, Kent).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 (고전11:1) 빌립보 교인들이 따라야 할 모델로서 자신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의 이와 같은 권면은 자기를 자랑하는 우월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Kent).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의 헌신에 대하여 모델을 통한 실제적인 교훈이 필요하였고,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구체적인 모델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다(7-16절;고전 11:1, Hendriksen).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만을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암시한다(2:25,29, Muller, Hendriksen).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은 물론 다른 동역자들의 삶을 빌립보 교인들이 배우기를 권면한다.
=====3:18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십자가의 공로를 무시하고 율법의 규범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로서 2절에 언급된 유대주의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Lenski, Muller, Barth, Hawthorne). (2) 혹자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왜곡하여 율법의 모든 금지 조항을 부정하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Lightfoot, Kennedy, Beare).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죄를 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왜곡(歪曲)하여 참자유가 아닌 방종을 일삼는 자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Kent).
=====3:19
본절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한 설명이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 '멸망'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레이아'(*)는 '구원' (* , 소테리아)의 반대 개념이다. 이는 특별히 사악한 자들에 대한 형벌로서 영원한 파멸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마 7:13;벧후 3:7;계 17:8).  '십자가의 원수'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될수 없으며 육신의 욕망에 빠져 있기에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저희의 신은 배요 - 본문은 쾌락주의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Muller, Kent),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것을 시사한다(롬 16:18;고전 6:13;유 1:11).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 '부끄러움'의 헬라어 '아이스퀴네'(*)는 '벌거벗음'(nakedness), 또는 '사람의 은밀한 부분'을 가리킬때 사용되는 단어이다(Hawthorne). 따라서 본문은 '저희'가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부도덕한 일들을 서슴지 않고 즐겼음을 시사한다(엡 5:12).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 - 그리스도인들이 '하늘 일'에 관심을 두는 반면(20절, 요3:12)이들은 '땅의 일' 즉 본능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며 세상적 가치 기준을 따라 행동한다(Muller, Kent).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 본절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된 자들과 반대되는 참그리스도인의 특성을 나타낸다. 빌립보 시민들이 비록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로마 제국에 속해 있어서 로마의 시민으로서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빌립보 교인들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히 11:13;벧전 2:11)처럼 산다 할지라도 하늘에 소속된 시민이다(Martin, Kent, Calvin).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비록 지금은 지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므로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합당한 모든 책임과 의무를 기뻐하여야 함을 권면한다(Hawthorne).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거기로서'가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혹자는 '시민권'(Martin), 혹자는 '하늘'(Muller, Moffatt)이라고 주장하나, 두 가지를 모두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Kent).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연고지가 하늘이기 때문에 모든 관심사가 하늘에 있으며 진정한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롬 8:21-23). 왜냐하면 그의 재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해방시키는 온전한 구원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Muller).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임할 온전한 구원의 모습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인의 몸은 '낮은 몸'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으로 완전히 변화된다.여기서 '낮은 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갖고 있는 현재의 몸으로서 죄짓기 쉬운 욕망, 죽음, 질병, 고난등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있는 육체의 연약성을 시사한다(Kent).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현재의 썩어질 몸을, 당신이 부활하실 때 입으신 '영광의 몸' 즉 '썩지 아니할 몸', '신령한 몸' 으로(고전 15:42-44) 변화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 곧 '그리스도'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역사'(役事) 의 헬라어 '에네르게이안'(*)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킨다(Muller, Kent). 그리스도는 온 우주와 원수들,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초자연적이며 주권적인 능력을 가지시기에 마지막날 성도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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