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빌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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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몬1장

===인사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

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오네시모를 위하여 간구하다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끝 인사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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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서론)

이 빌레몬서는 바울의 이름으로 기록된 서간문집의 제일 끝에 들어 있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가장 짧고 또 다른 서간문과는 특이하게 다른 형식의 글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이 편지를 기록한 하나님의 영처럼 이런 훈담(訓談)은 그것대로 교회에 대단히 교훈적이며 유익했을 것은 틀림없다. 

사건의 진상은 다음과 같다. 브리기아의 골로새란 도시의 교회에 중요한 인물이며 어쩌면 그 곳 목회자일지도 모르는 빌레몬이란 사람에게 오네시모란 종이 있었는데 그는 주인의 재산을 횡령하고 도망쳐 다니다 구경삼아 로마에 들르게 되었다. 

당시 로마에는 복음으로 인하여 죄인의 몸이 된 바울이 있었고 오네시모도 우연히 그가 설교하는 것을 듣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개하였고 얼마동안 갇힌 사도를 돌봐 주게 되었으며 바울에겐 상당히 도움이 되는 인물이 되었으나 그가 남은 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주인의 허락도 없이 그를 붙들어 둘 수도 없어 그의 주인에게 그를 용서하고 따뜻하게 받아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이 서신과 함께 그를 돌려보낸다.

주해에 들어가기 전 서신 및 관련된 몇가지 일반적인 사항을 알아 두고 넘어가자.

1. 가련하고 방황하는 죄인을 은총 속에서 갖가지 시련을 통하여 결과적으로 회개토록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 

그러하여 그는 “그(하나님)를 구하지 않던 자가 그를 찾아 내면, 그를 찾지 않던 자가 그를 발견하게 되는” 자가 되었다(사 65:1)

2. 진심으로 회개한 자와 하나님께서 그를 회개시키시려고 도구로 사용하신 사도 사이의 깊고도 진실한 사랑. 

바울은 이 가련한 도망자를 신앙으로써 자기의 친자식처럼 여기며 그를 자기의 심복이라고 부르고 있다. 오네시모도 감옥에 있는 바울을 기꺼이 섬겼으며 사정만 허락한다면 계속 그 일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종이기 때문에 그 주인에게 돌아가 엎드려 주인의 처분을 기다려야 했다.

3. 이와 같은 은총의 사도 바울이 지닌 간절하고 선한 마음이 보잘것없는 노예에게 두는 관심이 얼마나 큰가! 

이제 자기 설교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였으므로 그와 그의 주인이 화해하도록 애쓰고 있다. 그를 위해 쓴 이 편지는 얼마나 그에게 동정적인가! 아직 사건이 잊혀지지 않았으므로 언제든지 일이 있을 때마다 들춰 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심한 압박감을 받고 있던 그로서 주인에게 구할 수 있는 최대의 자비는 더 이상 그 일을 들춰 내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4. 이와 같이 특정한 개인에게 보낸 서신일 뿐 아니라(디모데, 디도, 가이오, 주임의 부르심을 받은 여인에게 보낸 서신도 마찬가지이지만) 사적인 개인 문제, 즉 주인에게 해를 입히고 도망친 가련한 종을 사랑으로 가족처럼 받아들이라는 내용의 서신으로 그다지 교회에 중요한 의미를 줄 수 없을 것같이 보이는 짧막한 글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 이 서신 속에 일반적인 구원과 관련된 것이 무엇일까? 이외에도(다른 성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으로써 나름대로 어느 정도는 “교리, 책망, 훈계, 정의에 대한 교훈에 유익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담고 있다. 

하나님께선 가장 미천하고 악한 죄인까지도 찾아 용서하시고 자비를 내리시며 위로와 용기를 주신다는 증거와 그 예로써 목회자들이나 누구든 남을 멸시하지 말 것이며 더욱이 남의 행실을 보고 이젠 더 이상 구제할 수 없는 자라고 판단하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회개하도록 하라는 교훈으로써, 또한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보여 주시려 하셨다. 

한 사람이 회개함으로 얻는 기쁨은 땅에서 뿐 아니라 하늘에서도 큰 것이다. 이런 자들이야 말로 사랑받고, 도움 받고, 행복을 얻고, 행복하게 키워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려 주신 축복의 도구로 쓰신 사도들에게 고맙게 여긴다면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피해를 입힌 경우에 그 보상을 위해, 그리고 감사와 순종의 생활을 위해 어떤 지시라도 따르겠다는 준비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에서 이 편지는 쓰여졌고 지금까지 읽혀져 있다.

5. 이런 것들을 고찰해 볼 때 밝혀지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암시적이나 불쌍한 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중재와 간구를 알 수 있다. 

우리도 오네시모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버리고 뛰쳐나가 그의 공의를 손상시켰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으시고 그의 은혜의 역사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아버지와 화해하도록 중개 서심으로 다시 그의 사랑과 품 안으로 받아들이시고 과거의 죄를 용서받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항상 그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도록 설득하였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누구든 자기에게 문제를 맡기고 간구하면 아버지께 모두 받아들이시도록 간구하실 것도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개관을 끝내고 이제부터 주해로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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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제

 이 책은 개인적인 서간(書簡)이므로, 원래는 아무런 표제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헬라어 사본들은 이 책에 단순히 “빌레몬에게”라는 표제를 붙여 두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바울의 편지서들을 함께 모아서 하나의 전집으로 하게 된 어떤 이름모를 그리스도인이 덧붙인 제목일 것이다.

 2. 저자

 이 편지서는 바울을 저자라고 명확하게 주장하고 있다(몬 1). 이 편지가 단지 개인적인 사정만을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과 어떤 새로운 교훈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없다는 사실은 그것이 진짜임을 나타내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오늘날 학자들은 이 간략한 편지서를 확정적으로 바울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사실상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3. 역사적 배경

 빌레몬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투옥되어 있던 동안에 골로새에 살고 있던 빌레몬이라는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개인적인 서간이다. 이 편지는 골로새와 함께 바울의 친구 두기고에 의하여 동시에 보내졌으며 이것을 기록하게 된 동기는 바울이 회개시킨 사람들 중의 하나가 생사의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골로새의 그리스도인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는 노예 생활에 불만을 품고, 그의 주인의 돈과 소유물 얼마를 훔쳐 가지고는 도망하였다(몬 18). 마침내 그는 많은 노예들이 하던 것처럼 로마로 가서, 그 도시의 무수한 인파 속에 자신을 숨기고자 하였다. 로마에 있는 동안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났다. 아마도 그는 궁핍해졌던 것 같고 그가 주인의 집에 있을 때에 자주 목격한 바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동정을 얻고자 그들을 찾아가려는 충동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로마에 있는 동안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양심의 가책을 깊이 느낀 나머지 전에 빌레몬의 집에 손님으로 온 적이 있는 바울에게서 영적인 지도를 얻고자 그를 찾아 갔을 것이다.

 그의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오네시모는 따뜻한 영접을 받았고 연로한 사도를 헌신적으로 봉사하도록 격려를 받았다. 그의 양심과 의지는 옛날의 주인에게로 다시 한번 돌아감으로써 지난날의 잘못들을 보상하도록 다시 말해서 의무의 길을 따르도록 그를 고무하였다. 오네시모는 바울의 편지에 대하여 그의 주인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기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바울의 사자인 두기고와 더불어 길을 출발하였다. 그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빌레몬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그처럼 부드러운 중보의 탄원을 외면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편지의 정중하고도 은근한 표현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사랑받는 형제”(몬 16)로 용납해 줄 것을 믿는 바울의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바울이 믿었던 대로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바울 당시의 로마 제국에 존재하던 노예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빌레몬서를 온전히 해독할 수 없다. 노예들은 사회 구조의 공인된 한 부분이었으며, 그들의 주인의 가족의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다. B.C. 146년으로부터 A.D. 235년 사이에 노예와 자유인의 인구 비율은 3대1이었다고 전해진다. 플리니우스는 말하기를 아우구스투스시대에 캐실리우스라는 이름의 자유인은 4116명의 노예들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처럼 많은 부분의 인구를 노예로 데리고 있던 탓으로 지배 계급의 사람들은 그들의 도주와 반란을 방지하기 위한 가혹한 법률들을 제정해야 한다고 느꼈다. 로마의 법률에 의하면 주인은 자기의 노예들에 대하여 생사에 관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노예가 돈을 벌어서 저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는 하였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었다. 법적으로 노예들은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으나 그들은 결혼을 하도록 권장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서 태어나는 자녀들이 주인의 재산을 증가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노예는 그의 주인의 마음대로 그의 배우자와 자녀들로부터 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노예들은 재판을 해달라고 국가의 사법 기관에 호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도망한 노예는 아무곳에서도 피신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고문을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증인으로 나설 수가 없었으며 대반역죄와 음란죄와 근친상간과 종교적으로 성물을 범하는 일 등과 같은 큰 범죄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죄에 대해서도 그의 주인을 고소할 수가 없었다. 만약 주인이 어떤 범죄로 소송되었을 경우, 그는 자기 대신에 노예가 고문을 당하면서 심문을 받을 수가 있었다. 도주에 대한 형벌은 자주 사형이었고 때로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거나 양어장에 던져져서 칠성장어 떼의 밥이 되기도 하였다.

 어떤 상전들은 보다 더 이해심이 많기도 하였으며, 어떤 노예들에게 맡겨진 어떤 과업들은 상대적으로 즐거운 일도 있었으며 어떤 일들은 고도의 지능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교사들과 의사들, 심지어는 철학자들까지도 군사적 정복의 결과로 노예가 되는 일이 있었다. 많은 노예들이 그들의 주인들을 위하여 상점이나 공장을 경영하였고 재산을 관리하였다. 그러나 노예들은 그들의 주인의 뜻이라면 그것이 지혜로운 뜻이든 변덕스런 뜻이든 간에 언제나 전적으로 복종해야만 했다. 노예 제도는 비겁, 아첨, 부정직, 뇌물 증여, 부도덕, 및 그 밖의 다른 악덕들을 가르쳐 주는 도장이었다. 왜냐하면 노예는 주인의 요구가 아무리 악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무엇보다도 먼저 충족시켜 주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노예들에게 자유에 대한 모든 희망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았다. 법률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들의 석방 또는 해방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가장 흔히 하던 방법은, 주인이 그의 노예를 관리 앞으로 데리고 와서는 그가 보는 데서 그 노예를 돌려 세운 후, 그 오랫동안 갈망해 오던 “자유롭게 되라”(liber esto)는 말을 선언하고는 막대기로 그를 때리는 방법이었다. 또한 노예 해방은 그 종을 남의 자녀들을 맡아보는 후견인으로 삼는다는 문서를 써 주거나 그 종의 머리에 “필레우스”(pileus)라고 일컫는 자유의 두건을 씌워 주는 것과 같은 방법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노예 해방이 개인적 소유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률에 의해서 선언되지 않는 한, 그 노예는 그의 주인의 예속자로 계속 남아 있어야 했으며, 해방이 될 때에 그에게 부과되는 어떤 의무들이라도 이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자유인이 되면 영향력있는 지위와 심지어는 통치자의 지위까지 오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만약 자유인이 된 사람들이 상속자가 없이 죽을 경우에는, 그들의 재산은 그들의 옛날의 주인에게로 복귀되었다. 그와같은 일의 실례는 유대의 총독 벨릭스의 경우였다.

 4. 주제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재치를 담은 이 조그마한 주옥같은 편지서는 성경 가운데서 참으로 독특한 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전히 그 당시의 가정적인 문제, 곧 그리스도인 주인에게서 도망을 갔었지만 회개한 노예 사이의 관계를 취급한 개인적인 서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회 전반을 위한 교훈을 진술하거나 특별한 권면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레몬서가 우리의 성경 가운데 포함된 이유는 그 편지를 연구하고 그것과 바울의 다른 편지서들과의 관계를 연구함으로써 명백히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바울과 그의 양무리 중의 개인 신자들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믿어지는 상당한 서신 거래 가운데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단편이다. 그 편지서는 그리스도교의 몇가지 기본 원칙들을 일상 생활에 적용시키고 있다.

 5. 개요

Ⅰ. 인사 1-3

Ⅱ. 빌레몬에 대한 칭찬 4-7

     1. 그의 그리스도인적 사랑과 성실이 교인들을 격려함 4-6

     2. 자신이 개종시킨 사람들의 영적인 성취에 대하여 바울이 감사함 7

Ⅲ. 오네시모를 전심으로 영접해 달라는 호소 8-20

     1. 재치있는 간청 8-10

     2. 오네시모의 유용성 11-13

     3. 바울과 빌레몬의 상호 존경 14

     4. 섭리의 인정 15, 16

     5. 바울의 충분한 중재 역할 17-19상단

     6. 빌레몬의 이중 부채 19하단, 20

Ⅳ.결론과 축도 21-25

     1. 거듭된 당부 21, 22

     2. 문안과 축도 23-25

빌레몬서 1장 (개요)

빌레몬서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Ⅰ. 머리말(1-7).

 

Ⅱ. 빌레몬서의 요지(8-21). 결론(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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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1장 (개요)

빌레몬서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Ⅰ. 머리말(1-7).

Ⅱ. 빌레몬서의 요지(8-21). 결론(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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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인사(몬 1:1-7)

Ⅰ. 인사 부분의 첫 두절 속에서 이 편지를 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이름이 약간의 수식에 덧붙여 밝혀지고 있으며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이 넌지시 암시되고 있다.

1. 편지를 쓰는 인물.  그 대표인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갇힌 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로 칭하고 있다.  단순히 갇힌 자가 된 것은 위로도 영광도 될 것이 없다.  그러나 바울처럼 "신앙과 복음의 선포를 위하여"갇힌 진정한 영광이며 그런 자로부터 받은 빌레몬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였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하여 고통받고 있는 자로부터 간곡한 부탁을 받을 때 그리스도의 신자나 목회자는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특히 교회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바울이 믿음의 아들이라고 부르며, 이젠 성장하여 그의 형제라고 부른 디모데가 연명으로 간구할 때엔 더욱 잘 받아들일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사도의 부탁을 거절할리 있겠는가? 바울은 가련한 회개자를 돌보는 일에 있어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도와 주었다.

2. 편지를 받은 인물들은 "빌레몬과 압비아"외에 아킵보와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이다.  대표적 인물은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으로 그의 이름으로 편지가 기록되었고 그는 가장으로서 집안에 들어가고 나가는 모든 일의 책임과 권리가 그에게 있었으며 오네시모는 그의 재산의 일부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를 대상으로 편지를 쓰고 있다. "우리의 사랑은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에게" 그는 선한 사람이었고 목회자였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는 바울의 사랑을 받았다.  "선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참 목회자의 품격 중의 하나이다.  특히 복음의 사업에 동참하고 그 안에서 성실한 자를 사랑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보통 그리스도인으로 소명을 받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로 묶여지게 된다.  한편 목회자들과 같이 특별한 소명을 받음으로 그 묶은 끈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목회의 절정에 다다른 바울은 디모데를 그의 복음 전도자, 형제라고 불렀을 뿐 아니라 평범한 목사인 빌레몬도 자기의 사랑하는 동역자라고 불렀다.  이것은 교회에 제일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동역자에 대한 겸손에 넘친 존경의 표현이다.  빌레몬과 함께 압비아도 언급되었는데 빌레몬의 내조자인 듯하다.  그리고 사도는 가정 일에까지 관심을 표시하면서 그녀에게도 마찬가지로 인사를 한다.  그녀도 오네시모 때문에 손해보고 상처를 입었으므로 용서와 화해를 부탁하는 편지에 그녀를 언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파울은 자기가 쓰는 편지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데 그녀가 도움이 될 것으로 알아서 확실하고 분명하게 그녀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녀는 아킵보 보다 먼저 언급되었는데 보다 관심과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가정 문제에 있어서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며 둘의 관심은 하나이고 둘의 애정과 행위는 일치되어야만 한다.  이상이 편지를 받는 중요한 인물들이다.  이외에 "아킵보와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가 있다.  아킵보는 빌레몬의 친구로서 골로새에 있는 교회의 목회자이며 아마도 빌레몬의 보조 목회자인 듯하다.  바울은 그야말로 빌레몬과 함께 상의하며 화해와 용서의 선한 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능력이 있는 자로 보아 편지 속에 그를 언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 "함께 군사된"이란 치사를 붙여 불렀을 것이다.  그는 빌레몬을 "동역자"로 불렀다.  목회자들은 자신을 일군이나 군사로 보아야 한다.  그들은 고통을 받고 괴로움을 이겨내야 한다.  그들은 경계하여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들은 동역자로서 동료 군사로서 함께 일어나, 그들의 거룩한 임무와 부르심에 합당한 어떤 일이든 함께 함으로 서로 몸과 마음을 강하게 해 주어야 한다.  영적인 무기를 소유하였다.  그 무기를 쓸 수 있는 기술을 지녔는가를 늘 지켜 볼 필요가 있다.  일군으로서 그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일"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전과 신앙 훈련을 집행하고 영혼들을 돌봐야 한다.  그리고 군사로서 그들은 주님의 전쟁에 나가 싸워야 하며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그들을 군사로 불러 주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딤후 2:4).  여기에 "그리고 네 집안의 교회에게"라고 덧붙였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을 하고 있는 그의 온 집안이 교회가 되는 것이다.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1) 대체로 경건하고 질서가 잡힌 집안일지라도 그 안에는 버릇 없고 악한 생각을 품은 식구가 한두명 있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오네시모의 죄가 더 커졌다.  그는 집안에서 좀 더 옳게 사는 법을 배웠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아마 그는 자기 잘못을 숨기고 있다가 도망침으로 비로소 그의 죄가 드러나게 된 것 같다.  속을 드러낼 행동을 하지 않는 한 누구도 그 속 마음을 알 수 없다.

(2) 못된 종 한 사람 있다고 빌레몬의 가정이 교회로서 불리워지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지는 않는다.  종교적인 예배와 질서는 그 안에서 계속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가족이 그러해야 할 것이다.  신앙 생활의 훈련소이며 하나님께 호소하고, 그의 말씀을 일고 그의 안식일을 지키며, 개개인들이 그에 대한 지식과 그에 대한 의무를 깨닫게 되는 모임으로써 이런 것들을 소홀하게 되면 무지와 파멸이 찾아 오기 마련이다.  선한 가족이 천군 훈련소라면 악한 가족은 지옥 훈련소라 할 수 있다.

(3) 가정의 주인이나 식구 개개인은 자기들만 개인적인 능력에 충실하여 선하다고 만족해서는 안 되고 가족 전체적으로도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  여기 빌레몬의 가정이 하나의 교회였듯이, 그래서 바울은 온 가족이 약간이나마 오세시모 사건에 관심을 두고 있었을 것이므로 그들에게 빌레몬처럼 그를 사랑하도록 요구하면서 그들의 처지에서 그들 나름대로 바울이 원하고 바라는 화해를 방해하지 말고 성사시켜 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에 가족 온 식구는 그들 개개인의 행복과 가족전체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남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모든 식구들이 이 불쌍한 죄인은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그를 더 사랑하게 하기 위하여 바울은 이 편지에다 이렇게 일일이 기록한 것이다.

Ⅱ. 언급한 사람들에게 한 사도의 인사(3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은 모든 서신 중에 표현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사도는 그렇게 쓰고 있다.  그는 자기의 모든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잘 되길 빌었고 그들이 최상의 것을 얻게 되길 바라고 있다.  제일 먼저 금이나, 은이나, 세상적인 재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을 얻기를 바라고 있다.  그 자신이 이것을 줄 수는 없고 다만 그들에게 이것을 내려 주실 수 있는 분에게 간구할 뿐이다.  은혜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선한 뜻이며 모든 축복의 샘이며 냇물이고, 평강이란 은혜의 열매와 결과로써 모든 선함을 말한다.  "너희에게"다시 말해, 너희 안에 은혜와 평강의 훈훈한 느낌과 확신이 너희에게 내려지고 있어지기를 바라노라는 말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성령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성령에 대한 이해가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피조물은 향한 모든 행위는 삼위 일체 전체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좇아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존재 뿐아니라 행위의 제일 원인이시다.  그리스도를 좇아, 하나님으로서 그의 사랑과 선하신 뜻, 그리고 신성을 지닌 인간 중재자로서 그를 통하여 맺혀진 사랑과 선하신 뜻의 열매를 얻는다.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분만이 우리를 받아 주시며 그를 통하여 평강과 모든 선한 일이 이루어지는데 그분이야말로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이 모든 것으로 간구하고 감사하고 찬양드릴 분이시며 예수와 그리스도로 뿐아니라 주님으로써도 모셔야 할 분이다.  고린도 후서 13장 13절에 사도의 축복 기도가 남김없이 기록되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영적인 축복이야말로 우리 자신 뿐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가장 먼저, 특별히 구해야 할 것임을 유의하자.  하나님의 보살핌과 그로부터 얻는 평강이야말로 가장 귀하고 가장 얻어야 할 축복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다른 모든 일이 해결되고 모든 행복이 뒤따르게 되고 세상적인 재물이 없는 형편에서라도 행복을 얻게 해 준다.  "비록 우리에 양이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을지라도 주 안에서 기뻐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할"수 있게 된다(합 3:17, 18).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가 누구뇨?"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들어 비추시기만 하면" 이로 인하여 세상의 어떤 소독보다 더한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시 4:6, 7).  그리고 민수기 6장 26절에는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을 주시기 원하노라"하였다.  간단히 말해 모든 선한 것은 단 하나의 근원, "아버지와 아들을 영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사도는 빌레몬 및 그의 동역자와 가족에게 안부하면서 더욱 그와 같이 되기를 바랐다.

Ⅲ. 그는 4-7절에서 빌레몬을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기도를 드리며 그가 한 선한 일을 들어 알게 된 기쁨과 함께 그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표현하였다.  빌레몬에 대한 사도의 감사와 기도는 여기에 그 대상, 정도, 내용이 빌레몬의 선함의 지식이 얻어지게 된 비결과 함께 진술되고 있다.

1. 빌레몬에 대한 바울의 감사와 기도의 대상.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4절), 다음 사실을 유의하자.

(1) 만들어진 것이든 있는 것이든 모든 선함의 창조주는 하나님이다.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호 1:8).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감사를 그에게 드려야 한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드릴 제물과 드릴 수 있는 마음과 뜻까지도 주께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그는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이시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 29:13, 14).

(2) 선한 사람들이 감사와 찬송을 통하여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모시게 되는 것이 그들만의 특권이다.  다윗은 "우리의 하나님,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 하였다.  바울도 "내가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이라 하였다.

(3) 우리의 감사와 기도는 우리들만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개인적인 기도를 할 때도 우리의 문제만 문제삼아 개인의 영혼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남의 일도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가 아는 한, 그들이 품고 있는 선한 생각, 그들이 이룬 선한 업적, 그들이 받은 축복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하여 간구해야 한다.  여기에 대부분 성도들의 친교가 이루어진다.  바울도 개인적인 기도와 감사를 하면서 자기 동료의 일을 기억하는데엔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내가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때론 그 이름을 부르며 하지만 적어도 마음 속으론 특별히 기억하고 있으며, 비록 이름을 대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그가 누구인지 아신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을 나타내며 남을 위해 선한 일을 하는 방법인 것이다.  사도는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와 함께 애쓰자"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바를 남을 위해서도 간구해야 한다.  모두가 그래야 한다.  "서로 기도하라"고 야고보 5장 16절에 기록하고 있다.

2. 감사와 기도의 정도.  "향상 너를 말함은" 항상 한두번이 아니라 자주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 동료들이 곤경에 빠졌을 때마다, 그들을 마음 속으로 또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고하면서 그들을 틈틈이 기억하여야 한다.

3. 빌레몬으로 인한 그의 감사와 기도의 내용.

(1) 감사의 내용

① 빌레몬이 주 예수에 대해 지니고 있는 사랑으로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는 그의 거룩한 완전성이 요구하는 바 하나님으로 사랑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 대하여 주님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구세주이며, 구속자로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인해 자신을 버리신 분이다.  바울은 이것을 듣고 그것이 빌레몬이 지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며 그 증거인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② 또한 그리스도 안의 믿음으로 인해 감사드린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은혜이다.  이유는 로마서 1장 8절에서 "내가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한 것 같이 그가 누구든 이 은혜로 축복하였다함은 하나님께 찬양드릴 큰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골로새인들에게 한 말(1:3, 4)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이며 그리스도인 삶의 절대 원칙이며 모든 선행의 근본이다.

③ 그는 마찬가지로 모든 성도에 대한 빌레몬의 사랑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이 둘은 함께 지켜져야 한다.  왜냐하면 "낳은 자를 사랑하는 자는 그로부터 태어난 자들도 사랑하여야"하기 때문이다.  사도는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하면서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받을 자들이다.  어느 정도 그리스도의 형상이 식별되는 정도에 따라 그 사랑의 정도가 다르겠지만, 별로 중요치 않은 것에 대한 감정이나 습관에 차이가 있다고 해서 진리에 대한 태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외적인 차이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못된다.  바울은 보잘 것 없은 회개한 노예를 "자기의 심복"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도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모든 성도를 사랑해야 한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뿐아니라 그가 편지를 보내는 특별한 사람들이 행한 거룩한 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다.  그것도 단지 보고를 통해 들었을 뿐이면서도 "주 예수와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하였다.  이것이 그의 동역자들, 진리, 믿음의 성장, 그들의 은총의 열매,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가진 믿음, 그리스도와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랑은, 그것이 진실하다면, 모든 성도들에 대한 보편적이며 광범위한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은 비록 마음 속에 숨겨진 것들이지만 그 열매를 통해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2) 사도는 감사에 이어 기도를 한다.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의 열매가 더욱 더 명백해져서 그들의 교제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그와 그의 가족이 이룬 선한 일들을 깨달을 수밖에 없게 되기를 바라며, 그들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춰짐으로 그들도 그들의 선한 행실을 보고" 그들을 본받지 않고는 못견디게 만들어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라고 있다.  영광을 나타내지 않는 헛된 행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선한 행실을 이루어야 한다.

4. 그는 자기의 기도와 감사의 이유를 또 하난 덧붙이고 있다(7절).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그대가 지금까지 해 왔고 지금도 행하고 있는 선한 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으며 우리는 또한 그대가 하나님의 영광과 신앙의 명예를 위해 계속해서 선한 열매를 더욱 풍성히 맺기를 원하노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고후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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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시모를 보냄(몬 1:8-25)

Ⅰ. 편지를 쓰게 된 본래 목적.  오네시모를 위하여 빌레몬에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것을 부탁한다.  바울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8-12절에서 여러 가지 설득을 한다.  첫 번째 설득, 그가 앞서 기록한 내용을 근거로 해서 주어지고 있다.  이처럼 많은 선행을 네가 행하였다는 말을 듣고 또 네 안에서 발견하였으며 특히 모든 성도들을 네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이제 또 다른 일을 통해 내게 그 사랑을 보여 줄 것이라.  즉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영접하여 오네시모 뿐 아니라 나로 주 안에서 기쁨을 얻게 하라.  "그는 이제 회개하여 진심으로 성도가 되었으니 너는 사랑과 보살핌으로 그를 받아들이라" 한다.  선행을 행할 의향을 가진 자에게 과거에 선행한 예를 들어 주고 지금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줌이 선행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방법임을 유의하자.  "선행을 하다 지치지 말라.  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하라.  새로운 일과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대로 계속하라."  두 번째 설득, 그에게 이런 요구를 하고 있는 사도의 권위에 근거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8절).  사도들은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 다음으로 높은 위치에 있어 일반 목회자들 뿐아니라 신도들에 대해서도 훈계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그들은 그대로 순종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빌레몬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 일도 사도로서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었던 내용의 것이었으나 여기에선 그 권위를 사용하지 않았다.  목회자들은 그들이 교회 안에서 가지는 힘이 크다 할지라도 일단 그 힘을 쓸 때엔 신중하여야 한다.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사용함으로 약효과를 낼 수도 있다.  만사에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판단으로 그 힘을 쓸 것이다.  세 번째 설득, 그가 내세울 만한 권위를 포기하고 오히려 빌레몬에게 간구하는 태도를 취한다(9절).  "사랑을 인하여 오히려 간구하노니." 힘을 지닌 자가 겸손히 있는 것과 때로 권위를 내세워 그 힘을 행사할 수도 있는 처지에서 오히려 간구하는 태도는 결코 비굴한 것이 아님을 유의하자.  사도이면서도 바울은 이처럼 말하고 있다.  그는 명령을 할 수 있으면서도 간구하며, 권위 대신 사랑으로 호소하였으니 이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그 효과를 더 낼 수 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네 번째 설득, 부탁을 하는 사람의 인품은 그의 부탁에 덤으로 효과를 내고 있다.  "나의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연장자는 존경을 받는다.  그리고 그의 행동의 정당하고 적합하여 존경을 받게 마련이다.  이런 나이 많은 사도, 이제 다시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갇힌 바된 바울의 요구는 기꺼이 받아들여질 것이다.  "만약 그대가 이처럼 나이 많고 불쌍한 죄수를 위해 무엇인가 하겠다면, 갇힌 나를 위로해 주겠다면, 조금이나마 내 사슬을 가볍게 해 주겠다면, 나의 소원하는 바를 들어 줄 것이라.  그렇게 함으로 너는 한편으로 나이 많아 고통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의 종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에게 한 것으로 받아들이실 것이다."  다섯 번째 설득, 그와 오네시모 사이의 영적인 관계를 통해 시도하고 있다.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10절).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그가 네 종이지만 영적인 면으로는 그는 이제 내 아들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이 지경에서도 나를 통하여 그를 회개시키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고난받는 종을 통하여 영광과 위로를 받으시는데, 그들의 고난, 훈련, 단련을 통하여 그들 자신의 은총을 받게 하심으로 복을 주실 뿐아니라 여기 오네시모처럼 회개를 시키거나 빌립보 1장 14절에서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는" 것같이 확신과 용기를 심어 주는 것으로 남을 위하여 보다 큰 영적인 축복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의 종들은 묶여 있을지라도 그의 말씀과 영은 묶이지 않는다.  영적인 자녀들이 그들에게서 태어날 것이다.  사도는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그는 소중한 아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빌레몬에게도 소중한 아들이 되기를 바랐다.  감옥에서 얻은 사랑은 아름답고 몹시 귀중하다.  바울은 이처럼 갇힌 중에서 낳은 자식인 오네시모와 그 사이의 소중한 관계를 말하며 빌레몬을 설득하고 있다.  여섯째 설득, 빌레몬 자신의 이해 관계를 통해하고 있다.  "저가 전에는 네게 무엇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11절).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a. 성화되지 못한 자들은 무익한 자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존재와 삶의 중요한 목적에 부응하지 못한 자들이다.  은혜로 뭔가 달라지게 되었다.  "전에는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유익하므로 즉, 유익한 존재가 되려고 애쓰고 있으며 또한 될 소질을 갖추었고, 그가 회개한 후로 내 감방에서 나를 돌봐 주며 나와 함께 있는 것같이 그대가 그를 맞아 들인다면 그의 주인인 그대에게도 또한 유익한 존재가 될 것이다." 오네시모란 이름이 유익한이란 뜻이 있어 무언가 암시해 주는 듯하다.  이제 비로소 그는 이름값을 하게 되었다.  이런 일을 말하는 사도의 태도에 대해서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오네시모의 지난 일과 행위를 증언하는 듯하지 않고 있다.  그는 주인을 속이고 도망쳐 나와 그의 종이 아닌 듯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회개하는 자의 죄를 덮어 주시고 용서하시고 꾸짖지 않으셨으니 사람들도 그래야 할 것이다.  여기 바울이 하는 말이 얼마나 부드러운자! 오네시모의 죄가 작아서도 아니고 그가(오네시모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죄를 과소평가 하려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는 자기 죄 때문에 겸손해졌고 그로 말미암아 스스로 수치를 느끼고 있었으므로 사도는 다시 그것으로 계속 그에게 짐을 지워 그의 영혼을 눌러버리려 하지 않고, 이처럼 부드럽게 말함으로 그가 지금 부탁을 하는 빌레몬에게도 그의 과오를 심각하게 다루지 말고 용서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b. 회개를 통해 얻어진 놀라운 변화.  악이 선으로! 무익한 것이 유익한 것으로! 신앙있는 종들은 가정의 보배이다.  신앙으로 그들은 섬기는 주인의 이익을 도모하며 최선을 다해 헌신함으로 자기들의 책임과 입장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선 이렇게 설득한다.  "이제 그를 받아들임은 그대에게 유익할 것이다.  그는 비록 전에는 그렇지 못했지만 이제는 변하여 충성되고 신앙 깊은 종으로서 그대를 섬기게 될 것을 기대해도 될 것이다."  일곱 번째 설득, 그는 오네시모에게 품은 지극한 사랑을 강조하면서 빌레몬에게 부탁하고 있다.  앞서 그는 그와의 영적인 관계를 언급하였다.  "갇힌 중에 낳은 아들" 그리고 이제 그가 얼마나 그에게 소중한가를 강조하고 있다.  "네게 저를 돌려 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12절).  나는 그를 내 몸처럼 사랑한다.  그리고 그를 네게 돌려보내는 목적은 네가 그를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행하라.  이처럼 내게 소중한 자로서 그를 받아들이라."  다음 사실을 유의하자.  아무리 착한 사람일지라도 화를 품고 원한을 없애고 자기에게 손해를 입히고 상처를 준 자들을 용서하게 하기까지는 간절한 노력과 간청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바울이 그가 요구하는 부탁이 받아들여지도록 이처럼 많은 간청과 설득을 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브리기아인이었던 빌레몬은 아마도 대단히 거칠고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보여 그의 마음을 움직여 용서하고 받아들이도록 하기엔 적잖은 수고가 필요했으리라 본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 화내기를 더디하시고 언제나 용서하시며 속량의 은혜가 풍성하도록 되어야 한다.  여덟 번째 설득, 오네시모를 돌려 보냄은 자기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를 더 오래 곁에 두더라도 빌레몬이 허락할 줄 알고 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13,14절).  바울은 현재 감옥에 있으므로 그를 위해 일하고 도와 줄 동역자와 종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선 오네시모가 적격인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빌레몬 그보다도 자기를 돕도록 계속 곁에 머무르게 하고 싶었다.  설혹 빌레몬에게 그런 일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더라도 그는 거부하지 못했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자기 대신 자기의 종이 이 일을 해 주는 것을 탐탁찮게 여기지 않을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형편이 이렇다 하더라도 그는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지 않으려 하였다.  "내가 그를 그대에게 돌려 보내는 것은 나를 위한 사소한 자선이라도 마지 못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할 수 있게 하나님께나 사람들에게 가장 좋게 인정받게 된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사도의 권위를 사용해도 됨에도 불구하고 공민권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려 한다.  기독교는 이 권리를 무시하거나 약화시켜선 안 되고 오히려 인정하고 강화해야 한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종이란 사실을 안 그는 주인의 허락없이 그를 자기 곁에 붙들어 두려하지 않았다.  회개하기 전까지 그는 이 의무를 어기고 주인에게 손해를 입히고 도망쳤었다.  그러나 이제 죄를 깨닫고 회개했을 때 그는 자기 의무를 감당하려 했으며 그 일을 열망하였다.  바울은 이것을 막지 않고 오히려 적극 도와 주려 하고 있다.  그는 빌레몬이 자기 원하는 대로 기꺼이 승낙할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필요한 일이면서도 그는 자기 욕심을 포기하고 돌려 보내는 길을 택하였다.  아홉번째 설득, 오네시모는 지금 전적으로 변하여 다시는 빌레몬을 떠나거나 해칠 염려는 더 이상 안해도 될 정도가 되었다.  "기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15절).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건져 주게 되리라"(잠 19:19)한 솔로몬의 말처럼 그런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오네시모의 변화는 다시는 그를 위해 중개할 사람이 필요없게 될 정도가 되었다.  사랑이라면 그렇게 되리라 기대하고 인정하려 할 것이며 사실이 또한 그랬다.  그러나 사도는 다른 사람이 이같은 은혜를 자기도 얻을까 시험해 보고자 엉뚱한 짓을 저지를까 걱정하여 말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a. 악한 일에 쓰일 만한 것을 말할 때에는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너그러운 은총이 죄를 야기하고 정의를 축출하거나 말씀시키는데 악용되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잠시 너를 떠나게 된 것 같다."

b. 그래도 회개한 죄인의 죄에 대하여서는 부드러운 어투로 말하고 있다.  그는 그의 죄를 낱낱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동안 떠나게 됨"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 편에서 뒤집어 판단한다면 죄는 "떠남"이다.  그러나 그 떠남 자체는, 그 떠나는 행위의 성격이나 태도로 보아 "도망치는 죄악"이었다.  하나님께 지은 죄나 반역의 성질을 말할 때엔 그 죄의 질을 경감해서는 안 된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 죄를 덮어 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회개한 죄인의 인격을 감싸주어야 한다.  "그가 잠시 떠난 것은 네가 그를 영원히 받아들이기 위함이라.  또한 회개하여 그가 돌아오며 그가 사는 날까지 네게 충성되고 유익한 종이 되게 하기 위함이라."  "바보는 절구에 빻아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다시 바보가 되지 않을 것이다.

c.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그처럼 불행하게 시작되어 진행되었던 일들을 결국엔 이처럼 행복할 것으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선하심과 능력을 보자.  이처럼 보잘 것 없는 노예, 이처럼 비천한 지위와 환경 속에서 사람들도 알아 주지 않던 자를 통하여 이처럼 선하고 크신 일을 이루셨다.  그는 악의 길로 멀리 도망갔으며, 그처럼 선한 주인을 배반하고, 그처럼 경건한 가정을 버리고, 은혜의 도구인 집안의 교회를 떠나게 된 것은 그가 피해 도망쳤던 구원의 길로 인도되기 위함이요, 골로새에 있을 땐 도무지 먹혀 들어가지 않았던 사도들의 말씀이 로마에 와서는 더없이 귀중한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인가! 도저히 가망 없다고 포기한 자보다 더 비천하고 가련하고 불행한 자는 없다.  하나님께선 그로부터 도망치는 자도 만나실 수 있다.  다른 때엔 중요하지 않았던 시간과 장소를 어느 한 순간에는 중요하게 만드실 수 있다.  오네시모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이제 그가 자기 주인에게 돌아가서 전보다 더욱 주인에게 봉사하고 받들 것이다.  자기의 책임을 분명히 깨닫고 그 책임에 충실함으로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봉사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의 관심은 주인이 그를 받아 줄 것인가에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때로 그의 백성들에게 잃은 것을 얻게 해 주신다.  열번째 설득, 이제 돌아가는 오네시모의 자격을 들어 그 자격으로 빌레몬이 받아들이도록 권고하고 있다(16절).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영적인 면에서)곧 사랑받는 형제로 그리스도 안에 형제로 받아들여지고, 그 안에 이루어진 거룩한 변화로 인하여 형제로 사랑을 받는 자로서, 따라서 네게는 전보다 더 나은 태도와 더 좋은 행동 원칙으로 유익한 자가 되며, 네 가정 안에서 가장 복된 것을 사랑하고 키우며 가정의 축복이 될 것이며 네 집에 있는 교회를 유지해 나가는 데에도 보탬이 될 자로서 받아들이라." 다음 사실을 유의하자.

a. 사회적인 위치나 외모는 다르다 할지라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에겐 영적인 형제의 사랑이 있다.  그들은 모두 같은 하늘 아버지의 자녀들로서 그들이 부름을 받은 지위와 처지와 입장에서 형제로서 서로 남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영적인 특권과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기독교는 개개인의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거나 혼란케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책임을 지키도록 독려하고 그 책임을 정당하게 수행하도록 이끈다.

b. 평범한 종보다는 신앙 깊은 종이 훨씬 더 낫다.  그들은 마음속에 은혜를 간직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얼굴에서 은혜를 찾았으며 마찬가지로 신앙 깊은 주인의 얼굴에서도 은혜를 찾을 것이다.  "내 눈이 이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시 101:6)."  "오네시모는 이처럼 변하였으니 이제 그를 같은 신앙의 공유자(共有者)로서, 그를 회개시킨 도구로 사용된 내겐 특히 사랑하는 형제로서 그를 받아들이고 대우하라." 참된 목회자들은 그들이 얻은 외형적인 이익에 따라 사랑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이 얻을 영적인 이익을 더 구한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기 심복이라 부르고 있다.  다른 회개자들을 기쁨과 영광으로 부르는 것과 비교할 만하다.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두 가지 관계(사회적으로, 신앙적으로)로 그는 네 종이라.  네 재산이며, 네 집과 가족의 일부이며, 이제는 영적인 면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네 형제로서 계약을 더욱 견고히 할 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며 또한 네 종이다.  여기서 그가 내 밑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관계로 매여 있다.  그리하여 그는 언제든 네 가족의 일원으로, 진정한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 네 집과 네 집에 있는 교회의 일부로 언제든 받아들여지고 사랑받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 설득은 다음 설득으로 보충된다.  열한번째 설득, 성도의 교제.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17절).  성도들 가운데에는 친교가 있다.  그들은 서로 관심을 가지며 이에 따라 사랑하고 행동한다.  "이제 내 몸처럼 소중하고 가까이 여기는 사람을 보내니 그를 사랑하고 받아들여 네가 내게 지닌 사랑과 내가 네게 지닌 관심을 보여 주도록 한다.  똑같이는 못할지라도 나를 대하듯 적극적으로 진실된 같은 사랑으로 그를 받아들이고 대우해 주라."  도대체 일개의 종, 더구나 잘못을 저지른 바 있는 노예에게 이처럼 관심을 두고 열성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오네시모는 회개했으므로 그렇게 함으로 그가 전에 그처럼 기만하고 농락했던 주인에게 돌아가면서 자질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없애 주고, 용기를 복돋아 주고, 낙심하여 우울하게 되지 않게 하고, 자기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 줄 것은 틀림 없는 일이다.  현명하고 참된 목회자들은 새로 회개한 자들을 극진히 돌보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그리고 그들의 책임을 다하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돋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주인을 배반했을 뿐아니라 손해도 입혔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열두번째 설득, 빌레몬에게 손해 배상의 약속을 해 준다.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18,19절) 여기엔 세 가지 사실이 있다.

a. 빌레몬에게 진 오네시모의 빛.  "만일 저가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믿지 못하여서 "만일"이란 말을 쓴 것이 아니라 추측해서 인정하는 뜻에서 쓴 것이다.  그가 네게 불의를 한 것으로 보아 그로 말미암아 네게 빚진 것이 있을 것이다.  골로새서 3장 1절, 베드로후서 2장 4절 등에 기록된 "만일"과 같은 뜻이다.  진실된 회개자들은 자기들의 과오를 자백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유의하자.  오네시모도 그가 깨어나 회개하게 되었을 때 바울에게 털어 놓았을 것이 틀림 없다.  그리고 특별히 남에게 해를 입힌 것에 대해선 더 솔직히 말했을 것이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통하여 잘못을 자백하였다.

b. 여기서 바울도 손해를 배상해 줄 것을 약속하였다.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a) 성도의 교제는 재산상의 손해를 무시하지 않는다.  이제는 회개하고 사랑받는 형제가 된 오네시모이지만 아직은 빌레몬의 종이며 그가 저지른 불의로 빌레몬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그 빚을 무시해서는 안 되고 주인이 자유 의사로 기꺼이 탕감해 주거나, 아니면 스스로의 힘으로 갚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 대신 갚아 주어야 하는데 사도가 이를 버려두지 않고 대신 그 역할을 감당하기로 한 것이다.

(b) 매사에 보증서는 것이 어리석은 것인 것만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선하고 자비로운 행위가 될 수 있다.  다만 상대와 문제를 잘 알고 "타인을 위하여 보증서지 말고(잠 11:15), 능력 이상의 보증도 서지 말라.  타당성 있고 검약한 생활에 어긋나지 않는 한 도내에서 할 수 있는 한 네 친구를 도우라." 그런데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연약의 보증이 되셨으니 "죄를 모르셨던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죄를 지시고 우리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정의로 세우셨으니"(히 7:22)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c) 말이나 약속으로 한 보증뿐만 아니라 글로 쓴 보증도 정당하게 요구하고 지켜야 할 것이다.  사람도 죽고, 말도 잊혀지거나 변하게 되지만, 기록된 것은 보다 안전하게 보존되며 선한 사람들뿐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연령에 관계없이 쓰여질 수 있었다(렘 3:2 이하; 눅 16:5-7).  바울도 자신이 남의 도움으로 살아왔으면서도 못된 종으로 인하여 생긴 손해를 그 주인에게 보상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 그는 오네시모에 대한 진실하고 큰 사랑을 나타냈으며 회개한 그에 대해 완전히 믿고 안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있게 보증을 서 주지만 한편으로 빌레몬이 그것을 고집하지 않고 그 모든 빚을 탕감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음 내용을 살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c. 그와 빌레몬과의 관계.  "너는 이외에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을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너는 내가 깨우쳐 주지 않더라도 기억할 것은 다른 면에서 네가 내게 빚진 것이 지금 그가 네게 빚진 것보다 더 크다는 사실이다.  자기를 찬양할 때 겸손한 것이 진정한 찬양이다.  사도는 그가 빌레몬에게 끼친 유익을 익히 알고 있다.  "네게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속하게 되고, 무엇을 하든 옳고 평안함 맘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나의 전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그의 손에 붙들려 네게 영적인 축복을 얻게 한 도구가 되었다.  이 점에 대해 네가 지켜야 할 책임에 대해선 그대 생각에 맡기는 바이다.  한 가련한 죄인이 진 금전적인 빚을 나를 위하여, 내 부탁으로 탕감해 주는 것은, 더구나 이제 내가 그 빚을 갚아 주겠다고 했을 때, 그 빚을 면제하겠다는 것은 너도 알겠지만 그다지 큰 일이 되지 못한다.  이에 반하여, 너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이 있다."  여기서 목회자들과 그들의 수고를 회개하며 영적인 성장을 얻도록 축복받은 신도들 사이의 긴밀한 사랑이 보이지 않는가! "너희가 할 수만 있었다면(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말하고 있다) 너희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갈 4:15).  반면에 그는 그들을 자녀라고 부르며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이루시기까지" 다시 말해, 좀 더 완전히 그리스도를 닮기까지 그들로 인해 고생하노라 하였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서 2장 8절에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하였다.  생각해 보건대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배반하고 죄로 인하여 그에게 불의를 행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 보증의 책임을 저 주시고 "불의한 자를 의로운 자로 만드신 것은 우리로 하나님께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일 죄인에 네게 빚진 것이 있거든 내게 회계하라.  내가 갚으리라.  그가 부정한 것이 있거든 내게 회계하라.  내가 갚으리라.  그가 부정한 것이 있으면 내게 씌우라.  내가 벌을 받으리라."  열세번째 설득, 사도는 이와 같이 빌레몬은 믿음과 복종으로 맺히는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로 인하여 오네시모뿐 아니라 빌레몬 자신에게 이루어진 결과로써 기쁨과 평강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20절).  빌레몬은 바울의 믿음의 자식이지만 이제는 형제로 대하고 있다.  오네시모가 보잘 것 없는 노예에 불과하지만 사도는 마치 자기에게 중요한 일을 요구하듯 그를 위해 부탁하고 있다.  얼마나 동정심이 많은가! "오 형제여, 혹은 오 나의 형제여(이 말은 소원하고 부탁할 때에 쓰이는 말이다)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라.  나는 지금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 때문에 갇힌 자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자들이 내게 줄 수 있는 모든 평안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도 잘 알고 있다.  이제 이것만이 내게 기쁨이 될 수 있다.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힘을 북돋아 줌으로 그 일로 너 자신의 그리스도의 믿음과 사랑의 열매와 그 증거를 봄으로 나는 주 안에서 너로 인하여 기쁨을 얻게 되리라."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a. 그리스도인들은 신자와 목회자 상호간, 그리고 그들의 형제들의 목회자를 서로 기쁘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세상에서는 어려움밖에 얻을 것이 없다.  그러니 그들이 서로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찾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b. 신자들이 신앙과 복종의 열매를 맺는 것을 볼 때에 목회자들은 최고의 기쁨을 얻는다.  특히 그들의 하늘 아버지께서 자비로 우신 것처럼 자비를 베풀어 빚진 자들을 용서하고 동정을 베풀며 그리스도와 신자들에게 더욱 사랑을 나타내게 될 때 기쁨을 얻는다.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얻게 하라.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육적인 욕심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그 안에서 그는 영광을 받을 것이다."  다음 사실을 유의하자.

(a) 주님의 영광과 주님께 봉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만사에 이루어야 할 제일의 목적이다.

(b) 참된 목회자에게는 신도들이 선한 일을 즐겨하며 열심인 것을 볼 때 특히 빚진 자를 용서하고 그들의 권리와 자격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이 생길 때마다 자비와 선행에 남보다 열심인 것을 볼 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얻게 된다.  열네번째 설득, 빌레몬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솔직한 소망과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하고 있다.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함으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21절).  우리 일을 보다 힘있게 추진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사도는 빌레몬이 진실된 자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선한 일을 행하되 건성으로 무성의하게 할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성실하게 행할 것을 간곡히 청하고 있는 것이다.  선한 자들은 선을 행할 때 옹졸한 마음으로 좁쌀만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도록 행한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사 32:8).  마게도니아 교인들은 우선 자신을 주님께 바치고 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이 생기는 대로 그들이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한 선한 일을 하므로 사도들께 자신을 바친다.  지금까지 서신의 본론 부분을 살펴 보았다.

Ⅱ. 결론

1. 그는 그들의 기도로 석방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며 곧 그들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며 빌레몬에게 자기를 위해 처소를 마련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오직 혹은 무엇보다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22절).  그는 다른 얘기로 돌린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루었던 문제와 전혀 관계 없는 것은 아님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이렇게 곧 뒤따라가서 이 편지의 효과를 보게 되길 바란다고 암시함으로 빌레몬으로 부탁한 것이 더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 보자.

(1) 요구한 내용.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이 안에 방문객들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자기의 목적을 위해 빌레몬의 손님이 되려 하면서 그가 이 일을 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후한 영접, 특히 사도처럼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인하여 당한 고난과 위험으로부터 풀려 나온 목회자들에 대한 영접은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임무임을 유의하자.  그러한 목회자에게 최대의 사랑을 베풀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랴.  가이오에게 "나와 온 교회의 석주"라는 명칭을 붙인 것은 참으로 영광된 일이다(롬 16:23).  오네시보로 역시 이런 일로 인하여 사도가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하게 되었다(딤후 1:16, 18).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유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또 "저가 에베소서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3) 사도의 요구의 근거.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하실지 알수는 없었으나 그도 종종 기도의 응답을 보았고 그래서 다시 석방되어 그들에게 갈 수 있도록 자유를 얻기를 바라고 있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① 우리의 삶과 자유와 봉사의 기회까지도 모두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기쁘시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② 이 중에 하나 또는 다른 은혜를 거두시더라도 우리는 약해지거나 좌절하지 않고 우리의 문제가 종결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신뢰하고 희망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③ 신뢰할 때엔 무언가 도구가 있어야 한다.  특히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할 때 기도가 꼭 필요하다.  기도는 하늘 문을 열고 감옥 문도 열고 만다.  "의로운 자의 간절한 기도는 큰 능력을 나타낸다."

④ 목회자들을 위하여, 특히 그들의 절망과 곤경에 빠져 있을 때 신도들이 기도하는 것은 그들의 중요한 임무이다.  목회자들은 그 기도를 필요로 하며 요구하고 있다.  바울도 사도이면서도 이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롬 15:30; 고후 1:11; 엡 6:18, 19; 살전 5:25 참조).  이런 방법으로 가장 보잘 것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⑤ 기도로 얻었다.  하더라도 그 얻는 것으로 자랑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리스도가 값을 치른 것이다. "너희 기도로 ‘카리스데소마이 휘민’(5483) - 즉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일단 주신 후에도 계속 지켜보시는데 그 이유는 베푼 은총이 계속 가치가 증가하고, 그 은총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깨달아 알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게 하기 위함이다.  목회자들은 신도들의 행복을 위해 살며 수고하는 것이다.  이들을 위해 직분이 생기게 되었다.  "그가 선물을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 4:8, 11, 12), 그들의 직분, 수고와 생애는 모두 신도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다 너희 것임이라"(고전 3:21, 22).

⑥ 신도들이 신앙 깊은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의 수고와 평안과 성장을 위하여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고후 4:15 참조).

⑦ 사도의 겸손.  그는 자기가 자유를 얻게 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기도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기도보다는 그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돌린다.  그는 단지 많은 사람들의 기도에 대해 품고 있는 간절한 소망과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백성들을 지켜보시고 계심을 말해 줄 뿐이다.  이상으로 결론 부분의 첫 번째 내용을 살펴 보았다.

2. 그와 함께 갇힌 동역자와 다른 동역자들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23,24절).  문안은 건강과 평화를 비는 것이다.  기독교는 인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사를 즐겨야 한다(벧전 3:8).  인사는 사랑과 존경의 간결한 표현이며 그 사랑과 존경을 유지하고 키워나갈 수 있는 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가 그대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는 골로새 사람으로 빌레몬과 같은 고향 같은 도시민이었다.  그는 골로새 사람들 가운데(초대전도사는 아니었을지라도) 수고하였으며 그로 인해 바울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었던 복음 전도자의 직분을 가진 자였을 것이다.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자(바울의 말이다) 그리고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요"(골 1:7).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그가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 하노라"(4:12, 13).  그렇다면 이는 탁월한 인격의 소유자로 로마에 있던 중 바울을 도와 복음을 전하는 같은 사업에 종사하다 같은 죄목으로 같은 감옥에 갇히게 된 것 같다.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갇힌 자"라고 칭하는 것을 보아 그들의 갇힌 이유는 어떤 범죄나 위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를 섬긴 것 때문인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하여 수치를 받고 고난받는 것은 영광된 일이다.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라 한 것은 그의 영광과 사도의 평안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가 죄수로서 일을 못하게 되어서가 아니라(사실 이것도 하나의 불행이지만)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를 택하여 부르셔서 고통받게 하시고 그들이 함께 고통받을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시어 그들이 함께 기도로서 힘과 평안을 얻을 뿐 아니라, 어떤 때엔 서로 도울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을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의 은혜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선 때때로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갇힌 중에도 서로 위로함으로 그 고통을 덜게 하신다.  함께 하나님을 위하여 고난받을 때만큼 하나님의 기쁨을 느낄 때는 없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두 발이 족쇄에 매여있으면서도 그들의 혀는 자유로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흘러 나왔던 것이다.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 이들을 언급한 것은 어느 면에서 이 편지의 목적을 그들에게 다시 주지시키지 위함인 듯하다.  적어도  이들과 같이 중요한 인물들의 이름으로 문안하는 이 편지의 요구를 묵살한다면 그처럼 몰상식한 일이 있겠는가? 마가. 그는 바나바의 조카이며 마리아의 아들로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을 환대했으며(골 4:12, 13).  그의 집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기도 모임이 모이고 있었다.  바울과 그가 서로 헤어질 당시엔 뭔가 그에게 결점이 있었지만, 바나바와 손을 잡고 다시 복음 사업을 계속하게 되었고 이제 바울과 그는 화해하고 오해가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디모데후서 4장 11절에 보면 바울은 마가를 자기에게 데려오기를 부탁하고 있다.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다시 말해 복음전도자로서 필요한 존재였다.  아리스다고는 마가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골 4:10).  거기서도 바울은 그를 나와 함께 갇힌자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거시서 바나바의 생질 마가를 얘기하면서 "너희가 명을 받았으며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그를 영접했고 화해했다는 증거이다.  다음으로 데마, 여기에서는 흠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있으나 전에 그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갔다고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딤후 4:10).  그러나 언제까지 그가 버리고 갔는지, 그가 자기 일과 책임을 모두 버렸는지. 아니면 일부분만 버렸는지, 언제 그가 회개하고 다시 책임을 지게 되었는지, 이에 대해 성서는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 이상 알 수가 없다.  단지 여기에서는 그에 대해 불명예스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골로새서 4장 14절에 나타난 그의 모습처럼 신앙 깊은 사람들과 함께 불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누가, 그는 "사랑하는 의사"이며 복음 전도자로서 로마에 와서 바울과 합류하였다(골 4:14; 딤후 4:11).  그는 바울이 곤경에 빠졌을 때 함께 있었고 그의 동역자였다.  목회란 육신의 편안함이나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는 일이다.  누구든 그 고통을 꺼려한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분부하신다(마 9:38).  또한 신도들은 "저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저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저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화목하기를" 권고하고 있다(살전 5:12, 13).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사도는 말한다.  목회자들은 서로 진리의 보조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같은 주님을 섬기고 같은 성역(聖役)과 직분을 감당하고 있으며 같은 영광스런 보상을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위대하고 공통된 주인의 이익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여야 한다.

3. 이제 바울은 기도와 축복으로 끝을 맺는다(25절).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기도와 소원의 내용.  "은혜"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사랑과 보호하심, 그것과 함께 영으로나 육으로, 현세에나 영원히 선한 일 속에 맺어지는 그 사랑의 열매와 결실의 은혜야말로 우리뿐 아니라 누구라도 제일 원하는 것임을 유의하자.  사도는 이 은혜로 시작하고 끝맺는다.

(2) 누구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는 하나님의 아들, 삼위일체의 두 번째 인격, 처음부터 계신 "주님이시며 그에 의해서 그를 위하여 만물이 창조된 바"(골 1:16; 요 1:1-3).  만물의 상속자이며, 신 - 인간 중개자로서 우리를 사셨고 그를 통하여 우리는 아버지께 나가게 되었다.  예수란 말은 구세주란 뜻이다(마 1:21).  우리는 길을 잃고 황폐하였으나 그가 우리를 건져 주시고 상처를 꿰매 주셨다.  그의 공로의 우리는 용서하심과 생명을 얻게 되었고, 그의 능력으로 우리는 죄와 사탄, 지옥으로부터 보호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기쁨에까지 나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야말로 예수이며, 또한 그리스도이며 메시야이고 그의 교회의 왕으로 대제사장으로 예언자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임명받으신 분이다.  율법 아래 있을 때엔 이와 같은 직분을 가진 자는 기름으로 부음을 받았으나 구세주는 영적으로 성령으로 부음을 받아 이 모든 직분을 받으셨다(행 10:38).  그밖에는 어느 누구도 이 모든 직분을 얻지 못하였고, 그처럼 고귀한 자리에 있지 못하였다.  "즐거움의 기름으로 그에게 부어 그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우리를 택하셨고, 복음으로 손을 펴시고 선물로 주시고, 그가 우리를 사셨고, 우리 스스로 그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그와 신비적인 결합을 함으로 그는 우리의 것이 되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우리에게 내리는 모든 은혜는 그리스도로부터 임한다.  그 은혜는 그가 사셔서 우리에게 내리신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더라"(요 1:16).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라"(엡 1:23).

(3) 누구에게. -  즉 너희 심령(메타 투 프뉴마토스 휘몬, 1:25), 빌레몬 뿐만 아니라 편지 속에 기록된 모든 이들의 심령에게.  "너희 심령과 함께" 다시 말해 너희와 함께, 영혼 또는 심령은 은혜가 제일 먼저 임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로부터 온 몸에 미치게 되고 은혜스럽고 거룩한 행동을 하게 된다.  문안 받았던 모든 집안이 여기 끝맺는 축복을 함께 받는다.  그들 모두 이 편지의 목적을 잊지 않고 행하는데 더욱 매진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멘"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기도나 기원을 마치면서 "그대로 되어지리라"하는 강한 소원 때문 뿐아니라, 잘 듣고 "그대로 되도록 할지어다"하고 믿음의 표현으로 쓴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영혼과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 어디 있으랴!  이것은 늘 하는 일반적인 축복 기도이다.  그러나 여기에선 상황에 따라 특별한 뜻을 가질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의 특히 빌레몬의 영혼과 함께 함으로 그들의 영혼이 기쁨을 얻고 힘을 얻어, 해함을 받아 깊고 맺힌 한을 풀어 주고 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그들도 그를 용서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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