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딤전2
첨부파일 :

딤전2장

===기도에 대한 가르침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

디모데전서 2장 (개요)

2장에서 바울은 다음의 것들을 다루고 있다.

Ⅰ. 기도에 관하여, 여기서 그는 기도를 해야 하는 많은 이유들을 언급하였다(1-8).

Ⅱ. 여인들의 치장에 관하여(9,10).

Ⅲ. 복종에 관하여, 또한 그 까닭을 설명하였다(11-14).

Ⅳ. 여인들에게 주는 약속의 말씀(15).

========

모든 사람을 위해 해야 하는 기도(딤전 2:1-8)

위의 구절에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Ⅰ.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특별히 권세있는 자들은 기도하여야 할 것을 명하였다.  

디모데는 이것을 행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였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기도의 형태에 대하여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목회자들로 하여금 자기가 제시한 기도의 틀에 얽매이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해서 였던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목회자들이 일반적으로 "간구하고 기도하고 도교하며 감사를 하여야 할 것"을 권하였다.  

즉 악을 피하기 위해 간구하며, 선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제 기도를 하여, 이미 받은 긍휼에 대하여 감사하라고 했다.  

바울은 그들에게 기도할 것을 지시하는 성서가 있고 또 기도의 성령이 그들에게 부어졌으므로 더 이상의 지시를 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일반적인 기도의 원칙만을 말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 18절에 "무시로 기도하라"고 한 것이다.  

기도자들은 우선적으로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이같이 기독교는 구별없는 사랑을 가르치는 종교이다.  

또한 왕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2절).  당시에는 왕들이 이교도요 또 기독교의 적일 뿐 아니라 기독교의 박해자들이었다.  그렇더라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정부가 올바르게 되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바르게 될 때 그것은 곧 모든 사람을 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만 한다.  

본문에는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는데(2절), 이말은 낮은 위치에 있는 권세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며 그들로 인하여 감사 드려야 하며 그들의 번영을 위해 또 그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번영을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반역을 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평화로 말미암아 우리가 평화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통치의 혜택을 우리가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다"(2절)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왕들을 위하여 무엇이라고 간구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사 그들을 인도하시고 그들을 유용하게 하시고 그들의 다스림 아래서 조용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도록 해 주십시사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들의 다스림 아래서 승진되고 부를 얻으며 영예와 권세를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이 바랄 최고의 것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며 가난하나마 사적 생활이 보장된 가운데 세상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이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평화로운 삶을 살도록 소망하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 각자가 경건함과 단정함을 지키지 않고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이 유지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에 충실하라.  그리고 난 후에 우리는 하나님과 국가의 보호를 받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2절)라고 하였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의무가 두 가지 말로 요약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는 경건이며 다른 하나는 단정함이다.  

경건은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예배를 의미한다.  단정함은 모든 사람에 대한 좋은 행위를 말한다.  이 둘은 서로 조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만약 경건하지 아니한다면 진실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단정하지 않다면 진실로 단정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려고 도적질을 한다면 하나님이 이것을 기뻐하실 리 없으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1.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기도에 풍부해야 한다.   또한 그를 자신을 기도와 간구하는 데 써야 한다.

2.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만큼 타인들에 대하여 광범위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감사를 드려야 한다. 

또한 우리는 기도의 대상을 제한해서는 안 되며 또 자기 개인이나 가족들만을 위해 감사하여서도 안된다.

3. 기도는 간구, 도고, 감사의 여러 가지 부분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미 받은 긍휼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긍휼을 위하여서도 기도하여야 한다.  또한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죄와 사람의 죄에 대해 심판을 받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4.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어려움을 만나며 그들의 높은 위치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에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5.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평화롭고 조용한 생활을 하기 위한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을 사로잡아 간 그 성읍의 평안을 위해 힘쓰고 그 성읍을 위해 주께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왜냐하면 그 성읍이 평안하므로 그들도 평안할 있었기 때문이었다(렘 29:1).

6. 만약 우리가 평화롭고 조용한 삶을 원한다면 우리는 경건과 단정함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를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어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서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라"(벧전 3:10, 11)고 하였다.  

바울이 이 모든 것을 명한 것은 이 일이 "우리 주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로 이것을 요구한다.  즉 우리가 우리 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을 행할 것과 그러한 일에 풍성할 것을 요구한다.

Ⅱ.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모든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4절).

1.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위해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5절) 아무도 그분과 같은 자가 없으며 그와 같이 될 수도 없는 유일하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무한하신 분은 오로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 유일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주께서는 아무도 멸망하거나 죽지 않고(겔 33:11),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복을 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리라고 못박아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모든 사람이 구원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만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아무도 그들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멸망받기를 원치 아니하시는 선한 소망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한다(마 23:37).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지식에 이르고 또 다른 길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께서 주신 방법에 의해 구원되기를 바라신다.  복음은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지니기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길이시요 진리이시요 또한 생명이 되신다."

2. 우리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또다른 이유는 한분의 중보자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죄의 제물로 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긍휼이 모든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나타난 것처럼, 그리스도의 중보도 모든 인간의 자녀들에게 미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인류가 하나님과 더불어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하셨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행위의 계약으로써의 율법 아래 거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법 아래 거하는 것이다.  

그들은 은혜 아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무죄를 요구하는 언약 아래가 아니라 새로운 언약 아래에 있는 것이다.  이 계약은 "주께서 자신을 속죄물로 내어 주셨으므로" 성립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속죄의 대가였음을 명심하자.  우리는 죽어야만 하는 죄인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죽음과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시되 자신을 기꺼이 모든 사람을 위한 속죄물로 내어 주셨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의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좋은 상황 아래에서 거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중보자의 일을 스스로 맡으셨다.  분쟁이 없으면 중보자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다툼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양자 사이의 평화를 이루는 중제자가 되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을 하나로 묶기 위한 중보자이시다.  즉 그는 양자 사이에 손을 얹은 판결자이시다(욥 9:33).  

그리스도께서는 기약이 이르면 나타날 속죄물이었다.  즉 구약의 시대에서는 주의 고난과 영광이 말세에 계시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던 것이다(벧전 1:10, 11).  그 예언에 따라서 주님은 오셨다.  

그리고 바울은 위임받고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원과 속죄의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사도와 전도자로 위임되었던 것이다. 

 또한 바울은 이 그리스도의 중보의 교훈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위임을 받았던 것이다(막 16:15).  바울은 이방인들의 교사로 임명을 받았다.  그는 사도로 부름받은 이외에 "믿음과 진리 안에서" 또는 믿음과 진리로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라는 특별한 위임도 받게 되었다.  다음을 유의하라.

(1) 우리가 모든 사람들과 우리의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과 평화롭고 조용한 생활을 사는 것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가 평화롭고 조용히 살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2)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지 않고자 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 구원받고자 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의 복되신 주님은 이러한 우리의 잘못을 경고하신다.  즉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요 5:40)라고 하시고 또 "내가 너희를 모으려 하였으나 너희는 모이지 아니하였다"고 하셨다.

(3)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진리를 알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지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정하신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진리를 아는 지식이 없이는 사람의 마음이 선하여질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진리를 모른다면 진리에 의해 살 수 없는 것이다.

(4) 하나님이 한 분이듯이 중보자도 한 분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로마 교회는 많은 중보자를 내세움으로 많은 신들을 만들어 내는 우를 범하였다.

(5) 신약 성서에 나타나는 중보자이신 주님은 자신을 속전으로 내어 주셨다.  

그가 이렇게 하신 것은 바울에 의하면 자신을 드림이 중보자로서 필요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중제의 근거로도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도들은 많은 중재자들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마치 속죄의 중보자는 한 분뿐인 것처럼 주장하는데 이는 거짓된 것이다.

(6) 바울이 사역자로 세움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주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한 중보자이심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모든 전도자들이 이세상 끝날까지 전하여야 할 본질인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자기 직책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롬 11:13).

(7) 목회자들은 자기가 이해하고 그 진리를 전하여야만 하며 또 그것을 자기 자신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목회자들은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믿음과 진실함으로 설교하며 그들 자신도 신실하고 진실하여야 한다.

Ⅲ.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줌(2절).

1. 복음 아래 있는 사람들은 특별한 기도처에서만 기도하도록 규제를 받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에 적당치 않은 곳이 있다거나 기도가 하나님에게 더 잘 열납되는 특별한 곳에 있다는 것을 기독교 신앙은 부인한다(요 4:21).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든지 기도하라"고 했다.  우리는 벽장 속에서 기도할 수 있으며 우리 집에서도 하며 식사 때도 기도하고 여행을 할 때도 기도하며 회중 가운데서 홀로 기도하며 공공의 장소에서나 은밀한 곳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2. 기도하는 중에 우리가 거룩한 손을 드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라"고 하였다(8절).  즉 순결한 손, 죄의 오염에서 깨끗한 손, 죄와 불결을 씻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개방된 생명의 샘에서 씻은 그 손을 들고 기도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시편 26편 6절에서 "나는 나의 손을 씻기 원합니다"고 하였다.

3. 우리는 사랑 안에서 기도하여야 한다.  

분노와 악덕이나 어떤 사람에 대한 노함을 가지고 기도하여서는 안 된다.

4. 우리는 의심함이 없이 믿음으로 기도하여만 한다(약 1:6).  

또는 어떤 이들이 해석하듯이 "따지지 말고"기도해야 한다.  그럴 때 그 기도는 응답된다.

-----------

여인들에게 주는 바울의 경고(딤전 2:9-15)

Ⅰ. 위의 구절에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여인들을 반드시 그리스도인답게 아담하고 경건하고 조용하며 순종하여야 할 것이 명령되고 있다.

1. 여인들은 차림이 단정해야 하며 자극적인 화려한 옷이나 지속한 것이나 값비싼 옷으로 단장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자기를 단장하는데 사용할 더 좋은 장식이 있기 때문이다.  즉 그 장식품은 바로 "선행"이므로 이것으로 단장하는 것이 신앙을 고백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이다.  

선행은 가장 좋은 장식품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선행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대단히 값진 것이다.  신앙 고백을 한 사람들은 다른 일에 있어서나 마찬가지로 몸차림에 있어서도 자기의 고백에 알맞는 차림을 해야 할 것이다.  

좋은 옷을 입기 위하여 돈을 낭비하는 대신에 경건과 자비의 사업을 위하여 돈을 쓰는 것이 진실로 선한 일이다.

2. 여인들은 기독교의 원리와 그리스도와 성경을 배워야 한다.  

여인들이 자기들은 여자인고로 구원에 필요한 공부를 면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3. 여인들은 조용하고 순종하며 복종하여야 하며 남자의 권위를 빼앗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이유가 본문에서 주어지는데 그 까닭은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그 다음에 이브가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실은 여인들이 남자에게 의존하며 남자에게 순종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여 주는 것이다.  

또한 여인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고 남자의 반려자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 준다.  창조 때에 나중 지음 받은 것이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할 하나의 이유이지만 또한 여자가 먼저 범죄했다는 것도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해야 할 또다른 이유이다.  

본문에 "아담이 과일을 보지 아니하였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그가 처음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뱀이 남자에게 직접으로 유혹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여인이 먼저 범죄하였다(고후 11:3).  그러므로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형벌이 여자에게 선고된 것이다(행 3:16).  

정절은 지키는 여인들을 해산함으로(메시야가 여인에게서 출산하므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위로의 말씀이다(15절).  

이 말씀은 여인의 몸에서 나신 메시야께서 뱀의 머리를 쳐부수실 것이라는 의미이며(창 3:15), 혹은 그들이 만약 믿음과 긍휼과 거룩함과 절제를 지킨다면 죄아래 있을 때 그들이 받은 형벌이 그리스도께 용납받음에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Ⅱ.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1. 기독교 규칙의 적용범위.  

기독교의 교훈은 남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여인들에게도 또한 그들의 인격뿐만 아니라 옷차림까지 규제한다.  여자들은 옷차림도 여성답게 단정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여인들은 태도와 행동에 있어서 복종하는 마음으로 종용하여야 하는 것이다.

2. 여인들도 남자들처럼 같은 신앙 고백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세례를 받기 때문이며 도 이 세례로 말미암아 여인들도 경건해야 할 의무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들의 영예를 높여 주기 위해 사도행전에 사도들의 시대에 기독교를 위하여 종사한 유명한 여인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는 것이다.

3. 여인들에게는 사치스러운 복장을 하려는 경향이 더하기 때문에 여인들은 이점에 조심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4. 신앙 고백을 한 사람들의 가장 좋은 장식품은 선행이다.

5.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여인은 반드시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하며 교회 안에서 공중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가르친다는 것은 권위를 필요로 하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인들은 남자의 권위를 침해해서는 안 되며 잠잠하여야 한다.  

이렇게 금지가 있긴 하지만 훌륭한 여인들이라면 가정에서 신앙 원리를 자녀들에게 가르칠 수 있고 또 가르쳐야만 한다.  

디모데는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아니라면 누가 그를 가르쳤겠는가?(딤후 3:15) 

또한 아굴라와 그의 부인 브리스길라도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법을 좀더 정확히 알도록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은 은밀히 행했다.  

이 사실은 그들이 그를 데려다가 사사로이 가르쳤다.  그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행 18:26).

6. 남자의 권위가 여인의 위에 있다는 것과 또한 여인이 남자에게 순종하여야 한다는 두가지 좋은 이유가 본문에 제시된다(13,14절),  

그 첫째 이유는 아담이 먼저 창조되었고 하와는 그 다음에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즉 남자가 여인을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 창조되었다(고전 11:9).  

또한 둘째 이유는 여인이 죄를 짓고 또 남자로 하여금 범죄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7. 여인에게는 해산의 위험과 고통이 주어졌다.  

이것은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같은 여인으로서 받는 벌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원을 받으리라"는 위로가 주어진다.  

여자는 해산의 어려움을 당하지만 생명을 출산하며 살아있는 아이들의 산 어머니가 될 것이 그 위로가 된다.  그러므로 여인들을 해산의 고통을 당할 때 그들이 필요할 때 도우시리라는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 믿음으로 의지해야 할 것이다.


이전글 : 딤전1
다음글 : 딤전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