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딤전4
첨부파일 :

딤전4장

===거짓말하는 자들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

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

디모데전서 4장 (개요)

4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바울은 여기서 무서운 배교가 있을 것을 예언한다(1-3).

Ⅱ.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논한다(4,5).

Ⅲ. 디모데에게 여려 가지 지시를 한다. 즉 자기 자신의 품위를 잃지 말 것과 자신의 교훈이 사람들에게 무시되지 않게 할 것과 모든 사람들을 돌볼 것을 지시한다(6-16).

=========

배교에 대한 예고(딤전 4:1-5)

위의 구절에서 후일 배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바울의 예언을 읽을 수 있다.  

바울은 이미 기독교 내에 배교가 있을 것을 내다 보고 있었다.

Ⅰ. 전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경건의 비밀을 요약한 것을 살펴 보았다.  

이제 본 장에서는 적절하게도 불의의 비밀이 요약되고 있다.  본문은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리라고 말씀하셨다"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  

그가 여기서 말한 성령은 구약에 나오는 영이든지 아니면 신약의 예언자들 가운데서 역사한 성령을 말하는 것이든지 또는 이 양자를 다 염두에 두고 한 말인든지일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성령에 의해 예고되었듯이 본문의 적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도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고 있다.  

성령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을 순수하게 예배함으로부터 사람들이 배교할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후일에" 또는 "마지막 날"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바울은 장차 교회에서 불법이 있을 것인데 그 이유는 이미 이 불법의 비밀이 태동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문에 보면 "어떤 사람은 믿음을 떠나고"라고 했는데 이 말은 떠난 배교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배교하지는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최악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선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를 두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 1:3) 즉 복음의 굳은 교리를 믿는 믿음에서 떠날 것이다.  또한 본문에 그들이 "미혹케 하는 영을 좇으리라"하였는데 이 말은 성령을 좇는 것처럼 꾸미기는 하지만 진실되이 성령에 의하여 인도됨을 받지는 않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요일 4:1).  

그러므로 이르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다.  즉 이 말은 영들이 성령의 영을 가장한다고 해서 그 영을 다 믿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1. 배교의 가장 큰 보기 중의 하나를 들면 사탄의 가르침과 사탄에 관한 가르침을 좇는 것이다.  

즉 이 말씀은 불멸하시는 하나님과 죽은 인간 사이의 중간 계층으로써 성자들과 천사들을 경배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뜻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것은 사실 이방인들이 귀신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로마 교회가 이러한 짓들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배교의 첫 단계인 것이다.  로마 교회가 하는 일을 보다 자세히 말한다면 그들은 순교자들의 유물을 사당에 모셔놓고 그것들에게 신적인 영광을 부여하고 제단을 설치하며 향을 피우며 신상을 만들고 교회 건물을 우상시하며 타계한 성도들의 영예를 찬양하고 또 그들의 공로에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탄 숭배는 이교주의의 재흥(再興)이며 첫 번째 짐승의 형상을 다시 숭배하는 것일 뿐이다.

2. 이러한 배교와 미혹을 증진시키고 전파하는 도구.

(1) 그 도구는 거짓을 말하는 자들의 위선이다.  

그들은 사탄의 후예들로 이들은 거짓과 위선과 거짓된 기적을 행하는 체하여 미혹을 널리 퍼지게 할 것이다(2절).  그들은 이 일을 선을 가장한 위선에 의하여 자행할 것이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 같이 하난 실상은 주의 기름 부음 직분을 대적하여 싸우며 주께서 세우신 모든 직분을 타락시키며 훼손할 것이다.  

이들은 "양심에 화신 맞은 자들이다."  그들은 처음에 가졌던 덕의 원리와 도덕적 정직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자들이다.  

만약 인간들이 그들의 양심에 화인을 맞지 않았다면 선을 행하지 않겠다고 하지 못할 것이요, 이단적인 신앙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인도적인 정신과 자비로운 마음을 결코 벗어 버리지 않을 것이요, 교회의 유익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가장 야만적인 무자비함을 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 이들 배교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결혼이 하나님의 질서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금지하고 사제들의 결혼을 금지하여 결혼을 부끄러운 것으로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의 특징은 고기를 먹지 말도록 명하고 또 어떤 특별한 시기나 절기에 그러한 것을 먹지 말도록 금하여 마치 신앙의 좋고 나쁨이 이러한 일을 잘 지키느냐 못지키느냐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이같이 함으로 인간의 양심 위에 서서 폭군 노릇을 하는 것이다.

3. 그 모든 것을 통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1) 후일에 일어날 배교를 보고 우리는 놀라지 말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성령에 의하여 예언된 바이기 때문이다.

(2)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그렇지 않다면 성령께서 멀리 앞의 사건까지 정확하게 미리 알 수 없을 것이다.  기분과 욕망에 좌우되는 우리에게 미래의 일은 불확실하며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일 뿐이다.

(3) 성령의 예언과 이단의 신탁(信託) 사이의 차이점은 뚜렷하다.  

성령은 확실히 말하는 반면에 이단의 신탁은 항상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이다.

(4) 그러한 배교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몇 사람에게만 있어진다고 생각할 때 위로를 받게 된다.

(5) 미혹자나 현혹자들은 성령을 빙자하여 미혹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그럴듯하게 보인다.  사람들은 이 세력이 우리 가운데서 그럴듯하게 역사하므로 성령께로부터 온 것으로 속고마는 것이다.

(6) 인간이 믿음으로부터 떠나 다른 것을 좇지 이전에 반드시 그들의 양심은 강퍅해지고 그러므로 화인을 맞게 된다.

(7)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 즉 성자나 천사나 사탄 숭배를 명령할 때는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이 믿음으로부터 떠났다는 표시인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허용하신 것 즉 결혼이나 음식을 금지한다면 그 사람 또한 믿음에서 떠났다는 표인 것이다.

Ⅱ. 그들의 위선적인 금식에 대하여 언급한 후 바울은 우리가 복음의 시대에서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며 즐길 수 있다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교훈을 언급하였다.  

율법 시대에서는 정하고 부정한 짐승 즉 먹을 수 있고 먹을 수 없는 음식 사이에 구별이 있었으나 이제 그 모든 것은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하고 부정하다는 구별을 하지 않아도 된다(행 10:15).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1. 우리는 우리의 음식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음식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를 위하여서라도 그 음식을 이용해야만 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그리스도인들 즉 "진리를 알고 믿는 자들을"특별히 고려하여 만드셨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피조물에 대한 권리를 계약에 의해 부여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이 권리를 그리스도인들 덕분으로 함께 누리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감사함으로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거절하여서는 안 되며 또 하나님께서 차이 두시지 않을 것을 우리 스스로 면밀하게 구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것들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인식하고 또 그것들을 주신 하나님의 은사의 무한하심을 인식하면서 주신 것을 받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4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제의법에 의해 규정된 음식에 대한 규제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고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는 본문의 말씀이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척도가 되고 있다.  

특히 이 말씀을 통하여 유대인들이 안 먹는 돼지 고기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을 우리가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을 때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되기 때문이다"(5절).  우리가 피조물을 거룩하게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 그것들은,

(1)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우리에게 허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사용할 자유를 우리에게 허용하셨다.  또한 그는 우리에게 먹을 양식을 허락하셨다.  

이 사실은 우리들의 마음에 위로가 된다.  반면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거룩하게 쓸 것을 지시해 준다.

(2) 기도에 의하여 우리에게 허용되었다.  

기도는 음식을 정결하게 한다.  우리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거나 계획할 때 기도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본다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믿음 안에서 행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만드셨으므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살림의 짐승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나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시 50:10, 11)라고 하셨다.

②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은 선하다는 사실이다.  

찬양받으실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그 지으신 것을 보셨을 때 모든 것들을 그가 보시기에 심히 좋았었던 것이다(창 1:31).

③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피조물을 이용하도록 축복해 주셨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된다고 말씀하시었다(마 4:4).  따라서 먹을 문제는 논란이 될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다.

④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기도에 의하여 모든 피조물을 성별시킬 수 있는 것이다.

-------

경건에 대한 교훈(딤전 4:6-16)

바울은 디모데에게 유대 선생들에 의한 유혹을 방지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가운데 분별력을 가르쳐 주라고 지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좋은 목회자는 자기의 일에 부지런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무슨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데 부지런한 것을 말함이 아니라 "형제들이 받았고 또 들은 것을 깨우쳐 기억케 하는 일에 부지런한 복음 사역자가 훌륭한 사역자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고 한 것이다(벧후 1:12).  

또 다른 곳에서 이르기를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려고 편지를 쓴다"(벧후 3:1)라고 하였다.  

또한 사도 유다는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유다서 1:5)라고 하였다.  

사도들과 복음 전도자들이 주로 복음을 들은 사람들로 다시 그 복음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을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주의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잊기는 빨리 하고 배우는 것과 기억하는 데는 느리기 때문이다.  

이같이 "성도들을 깨우치면 따르는 믿음의 원리와 참된 교훈으로 점점 자라게 될"것이라(6절)고 하였다.  다음을 살펴 보자.

1. 복음 사역자 자신들일지라도 그리스도와 주의 교훈을 아는 지식이 자라고 더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들도 믿음의 말씀 가운데서 양육되어야 한다.

2. 복음 사역자들이 지식과 믿음 안에서 자라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형제들로 하여금 말씀을 기억나게 하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가르칠 동안 우리 스스로가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3. 목회자들이 가르치는 사람들은 형제들이며 또 형제와 같이 대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 사역자라고 해서 하나님의 소유물의 주인 노릇을 할 수은 없기 때문이다.

Ⅰ.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와 다른 사람들에게 경건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7,8절)고 한다.  

유대의 전통에 대해 어떤 이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행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즉 실천적인 신앙을 소유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여야 한다.  즉 경건에는 끊임없는 훈련이 요구된다.  그 이유는 경건의 유익은 쉽게 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거나 혹은 잠간의 유익이 있을 뿐이다.  음식과 결혼으로부터 절제하거나 또 그와 같은 행동은 절제와 자기 부정에는 유익이 있을지 모르나 경건에는 별 유익이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만약 우리가 죄를 억제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억제도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을 살펴 보자.

1.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전체의 삶에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금생과 내생을 약속해 주기 때문이다."

2. 경건을 통하여 얻는 이익은 주로 장래의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경건한 사람들에 대해 주어진 약속은 현재와 관련하여 주어진 약속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앞으로 올 삶에 관련을 가진 약속이다.  

구약 시대에는 약속이 대부분 세상적인 축복에 관한 것이었으나 신약 시대에는 영적이며 영원한 축복이다.  만약 경건한 사람들이 금생에서 조금의 유익밖에 얻지 못한다.  해도 앞으로 올 생애에 있어서는 많은 좋은 것들을 받게 될 것이다.

3. 사도 시대에도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디모데가 비록 뛰어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속된 것을 버리라는 충고의 말에서 제외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4. 우리가 속된 것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스스로 경건을 훈련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악행을 그쳐야 할 뿐아니라 잘 행하기를 배워야 하며(사 1:16, 17) 경건을 연습하도록 하여야 한다.

5.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은 마지막에 잃은 자가 되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경건은 약속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육체의 연습으로 만족하는 자들은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할 것이다.

Ⅱ. 우리가 경건에 이르기를 힘쓰는 중에 어려움과 실망을 당할지라도 경건의 길로 나아가고 이르기를 힘써야 한다는 격려의 말씀. 

 바울은 8절에 말하기를 "경건은 범사에 유의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경건을 통해 얻는 이익이 과연 경건을 통해 잃는 것을 보충하겠느냐는 것이다.  만일 잃은 것이 얻는 것보다 더 많다면 그것은 유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익이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여기에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바울의 믿음직한 말이 또 다시 나와 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신앙의 사역을 하는 중에 우리가 한 모든 수고와 일어버려진 것들은 충분히 보장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잃은 것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 그것은 잃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에게 소망을 두기 때문이다"(10절)라고 하였던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라.

1. 경건한 사람들은 수고를 해야 하며 비난을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좋은 일을 행하나 동시에 나쁜 일을 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힘써 일하는 것과 고난받는 것은 이 세상에 살동안 인간으로서 또한 성도로서 당연히 당하게 되는 것임을 각오해야 한다.

2. 하나님을 섬기고 또 신앙의 사역을 위해 수고하고 또 수치를 당하는 사람들은 이 수고와 수치 때문에 신앙을 팔아먹지 않도록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노라"는 말씀으로 위로를 받아야 한다.  우리에게 대가를 지불하실 영원히 살아계시면서 자기를 섬기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샘이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특별히 우리의 섬기는 것과 그를 위하여 당하는 고통 중에도 구세주께서 우리를 격려해 주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러면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생각해 본다.

(1) 하나님은 그의 섭리를 통하여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사람들의 자녀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다.

(2)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구원을 얻기를 바라시며 어떤 사람도 멸망당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죽음을 원치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아무도 타락한 천사가 처해 있는 것과 같은 운명에 처하기를 원치 아니하시는 모든 사람의 구세주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같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신다면 그를 찾고 그를 섬기는 자들에게는 더욱 놀라웁게 상 주시리라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에 대해 이 같은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신다면 거듭난 새 피조물들을 위하여는 더욱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은 만민의 구세주이시지만 특별히 믿는 자들의 구주이시다.  또 그가 그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구원은 그들의 봉사와 수고에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① 그리스도인의 삶은 노력과 수고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한다"고 하였다.

② 현생에서 우리가 가장 좋은 수고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선행과 우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때문에 수치를 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③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 이외에 어떤 것이고 믿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였다.

④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의 자리로 이끌어 주시는 만인의 보편적 구주시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특한 면에 있어서 진실한 신자들의 구주이시다.  그러므로 일반 구원과 특별 구원이 있는 것이다.

Ⅲ. 바울은 디모데에 대한 훈계로 4장을 끝맺었다.

1. 바울이 지금 그에게 가르치고 있는 "이것들은 명하고 가르치도록 훈계함." 즉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명한다.  "형제들로 하여금 스스로 경건에 이르기 위해 연습하도록 명하고 또 그들에게 경건의 유익을 가르치라.  또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반드시 보상하시는 분임을 가르치라"고 하였다.

2. 디모데가 비록 젊다고 하여도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위엄 있고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훈계함.  본문에 "누구든지 네가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누구든지 그의 젊음을 멸시할 기회를 주지 말라는 말이다.  만약 사람이 젊더라도 허영에 빠지지 않고 또 미련을 떨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의 젊음을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다.

3. 좋은 본을 보임으로써 그의 교훈을 확고히 하도록 훈계함.  그러므로 본문에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하였다.  다음을 명심하자.  교훈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의 생활로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자기가 한쪽으로 세워 놓은 탑을 다른 손으로 허물어 버리게 되는 결과가 된다.  남을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말과 생활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언행은 덕스러워야 한다.  그럴 때 그것은 좋은 본이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의 생활은 엄격해야 하는데 이 또한 좋은 본이 될 것이다.  또한 성도들은 "사랑"의 본이 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과 착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본을 보여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영적 생활"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역주: 한글 개역에는 없음).  즉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는 일과 영적 예배에 본이 되어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믿음에 본이 되어야 한다." 즉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일에 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정절" 또는 "순결"에도 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바울은 디모데에게 열심히 공부할 것을 명하였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13절).  비록 디모데가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일상적인 연구 역시 버려서는 안 되었다.  또한 이 말씀은 디모데에게 회중 앞에서 성경을 일고 해석하라는 말로도 볼 수 있겠다.  즉 성경을 풀어서 그 교훈과 교리를 알려 주고 또 디모데는 그들에게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말씀인 것이다.  다음을 살펴 보자.

(1) 복음 사역자들은 그들이 배운 것과 행하도록 명령받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치고 명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성도들이 알도록 가르쳐야 한다(마 28:20).

(2) 복음 사역자들이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는 가장 최선의 길은 자기가 명령받은 것을 가르치고 실행하는 것이다.  만약 복음 사역자로서 그러한 일을 가르치지 않거나 성도들에게 선한 본보기가 되지 아니하고 자기가 가르친 교훈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였다면 그들이 업신여김 받는 것을 당연하다.  왜냐하면 복음 사역자는 그무리의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3)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가장 잘 성취한 목회자들도 계속 공부하는데 뜻을 두고 또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에게 부여된 일에 대해 늘 신경을 써야 한다.  그들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해야 한다.

5. 바울은 디모데에게 태만을 경계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대하여 본문은 "네 속에 있는 은사를 조심 없이 말며"(14절)라고 기록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의 은사를 소홀히 한다면 그 은사는 시들어 버릴 것이다.  이 말은 그가 받은 직책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말이거나 혹은 그 직책을 위해 위로부터 부여된 능력들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말이거나 일 것이다.  만일 전자의 의미로 본다면 본문의 "은사"는 안수(직책 수여)를 뜻하는 말일 것이고 후자의 의미로 본다면 본문의 은사는 특별한 능력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자의 것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 은사가 본문에 보면 "안수를 통해"주어진 것이라고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직책 수여에 대한 성서적인 방법을 배우게 된다.  당시의 직책수여는 안수로 말마암아 즉 장로회에서의 안수를 통해 수여되는 것이었다.  디모데도 사람들에 의해 직책을 수여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바울이 디모데에게 안수하였다는 말씀을 우리가 다른 곳에서 보게 되는데 이때 디모데에게 수여된 것을 특별한 하늘로부터의 은사였고 그가 직책을 수여 받을 때는 장로회의 안수에 의하여서였던 것이다.

(1) 목회자의 직책은 은사인데 곧 그리스도의 은사임을 잊지 말자.  그리스도의 승천하셨을 때 인간을 위하여 은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시었다.  그리고 그는 그 은사를 가지고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목자로 또는 교사로 삼으셨다(엡 4:8, 11).  이러한 은사는 그가 교회에 베푸신 배려 깊은 은사였다.

(2) 목회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 디모데의 직분이 예언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많은 사람의 장로들이 손을 얹어 안수하는 것이 동반되었다는 사실이다(그의 특별한 능력은 예언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다).  디모데의 직분은 이런 방법을 통해 수여된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장로들에 의해 직책을 수여하는 정도는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바울이 디모데의 직책 서임에 관여하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이 안수함으로 그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했던 것은 확실하다(딤후 1:6).  직책 수여의 안수에 관여하였다 해도 장로들은 제외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문에 장로회의 안수에 대하여 특별히 기록한 것을 볼 때 장로들이 세습적인 직책 서임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명백한 것이다.

6.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직분을 부여받았으니 그 일에 전심전력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하였다.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15절).  디모데는 현명한 지성인이었는데도 더욱 지식을 얻어야 했고 또 자신의 지식의 진보를 나타내야 했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목회자는 명상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떻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대해 미리 생각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자기에게 위임된 임무와 불사의 영혼의 가치와 귀중함에 대해 그리고 또 마지막 날에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목회자들은 위의 일들에 전심전력하여야 하며 이것들을 그들의 당면 과제로 여겨야 한다.  그리하여 본문에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라고 말한 것이다.

(3) 이같이 전심전력할 때 그들의 진보가 모든 일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것이다.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목회자들이 지식과 은혜 또다른 모든 것들에서 자라가는 방법인 것이다.

7. 바울은 디모데에게 매우 조심하기를 강조하였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 즉 네가 사람들에게 전한 복음을 삼가 생각하고 이일은 계속하라.  즉 네가 받은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을 구하고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다음을 유의하라.

(1) 복음 사역자들은 구원 사역을 위하여 고용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2) 복음 사역자들은 먼저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네 자신을 먼저 구하고 그 후에 너에게 듣는 자들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라."

(3) 설교에 있어서 목회자는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구원을 목표로 해야 하며 그 다음으로 자기의 영혼의 구원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4) 이러한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우리가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전글 : 딤전3
다음글 : 딤전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