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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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6장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성소분향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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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6장 (개요)

하나님의 섭리가 기록된 책이 그리스도의 손에 옮겨지자마자, 그리스도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즉시 그 책의 인봉을 떼고 그 내용을 공개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그 예언은 심히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렵게 공개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에스겔이 본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겨우 발목이나 무릎 또는 간신히 허리까지 찰 정도였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막을 수 없는 강물로 불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사도 요한이 본 환상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 그리고 앞서의 두 장에서 본 찬양의 환상들은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래도 강한 자들을 위한 고기라기 보다는 어린애들을 위한 우유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깊은 곳으로 배를 저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할 일은 그 깊이를 재기보다는 그물을 던져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매우 명백하게 보이는 사실에서도 다만 암시 정도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예언들은 일곱 인이 개봉되며, 일곱 천둥이 울리는 것과, 일곱 대접들이 쏟아지는데 따라서 구분된다. 

일곱 봉인이 개봉되는 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승천하신 때로부터 콘스탄틴 황제의 통치 때까지의 3세기 간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이것은 두루마리 책 속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여러 곳에 봉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의 봉인이 떼어지면 거기까지 읽을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전부가 개봉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책에 기록된 것에 대한 말은 없다. 

사도 요한이 본 것은 수수께끼와 상형문자와 같은 광경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척할 필요가 없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신 것이다." 

이 제 6장에서는 일곱 봉인 중의 여섯 봉인이 개봉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환상들은 서로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첫째 인의 개봉(1,2). 둘째 인의 개봉(3,4). 셋째 인의 개봉(5,6). 넷째 인의 개봉(7,8). 다섯째 인의 개봉(9-11). 여섯째 인의 개봉(12-16).

==[축복이야 저주냐 그대가 선택하라!!]==

첫째 인의 개봉(계 6:1-2)

1.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첫째 인을 떼신다. 그는 이제 교회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위대한 일을 착수하시기 시작하신다.

2. 교회의 목사 가운데 하나가 우레 같은  소리로 사도 요한을 불러 어떤 일이 전개되는가를 "와서 보라"고 말한다.

3. 그 광경은 다음과 같다(2절).

(1) <주 예수께서 명명백백한, 명료한!! 복음 그 자체인> "흰 말"을 타고 나타나신다. 

((계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흰말은 보통 전쟁시에는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흰말을 타면 쉽사리 적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틀림없이 이기셨고 또 이기시며 끝까지 이기시려 하신다. 

그는 정결케 하지만 멸시받는(!!!) 복음의 말을 타고 온 세상을 질풍같이 달리며 이기신다.

(2) 그는 손에 "활을 가졌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치심을 받은 확신은 날카로운 화살이다.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다. 

말씀의 종들이 비록 세인들이 보기에는 어설프게 활을 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화살이 갑옷의 이음새 사이를 꿰뚫게 하실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여 주신다. 

그리스도의 손안에 있는 활은 능력을 가진 활이기 때문에 요나단의 활과 같이 "빈 것으로 <소득없이는>돌아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눈 모든 말씀의 확실성과 정확성을 잠시 묵상해 보라..(시 19:1-4..*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로 다시 변개할 수 없으시다....만물이 그 말씀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변개하신다면 만물이 설 수 있는 근거가 없어져 버린다.))

(3) 그는 "면류관을 받았다." 

면류관을 받았다 함은 [주권적 섭리의 Q]의 허락하심따라 그대로 [하나님의 열심으로]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존재의 중심으로 받아들여 믿는 자는 그리스도를 반드시 그의 왕이요 주로써 영접해야 하며, 그의 신실하심을 빼어 닮아 충성된 신하가 되어야 한다. 

그는 복음의 성공적인 전파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 어떤 사람은 전쟁에 나가는 그리스도께는 면류관보다는 투구를 드리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승리의 보증과 상징으로써 면류관이 그에게 수여되었다. ((교만과 오만 그 자체인 그 짐승, 음녀인 바벨론은 스스로 면류관을 만들어 쓰고 있음에 주의하라!!))

(4) 그는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셨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명령따라, 함께 하나되어]전투를 계속하는 동안에는(!!) 그리스도는 언제나 정복하신다. 

그는 어떤 한 세대에서 적들을 정복하고도 또 다른 세대에서 새로운 원수들과 대면하신다. 

비록 불신세상 사람들은 계속 그리스도께 도전하고, 그리스도는 한번도 물러섬 없이 계속 그들을 정복하신다. 

먼저 싸움에서의 구주의 승리는 다음번 싸움에서도 역시 승리하신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이제 그 말씀을 믿는 성도들에 대한 그분의 신실성을 대입해 보라,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 사이에서(!!!) 그의 원수들마다 이기신다. 그 원수들의 죄는 진실로 그 성도들의 원수가 되며 그리스도의 원수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능력을 가지고 그들에게 임하시면(더군다나, 지금은 믿는 이의 영의 보좌에 내주하사 연합한 하나되심 인해 먼저 돌아보아 회개하고 참마음과 진실한 믿음으로 JC이름 부르고 붙들며 나아가는 성도마다 정복자 그 이상의 존재됨을 입증하신다!!) 이 원수들을 반드시 이기시며, [마침내!! 지고지선의 뜻하심따라]그들을 성결케 하여 주시고 최후의 승리를 거두신다. 

그리스도는 그의 원수들이 죄인들을 세상에서 정복하여 더러는 그의 발 앞에 꿇어 엎드리게 하고, 더러는 그의 발등상이 되게 하신다. 

우리는 나머지 6개의 인들이 개봉되는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의의를 찾아 볼 수 있다.

①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 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전파되는 광경은 바라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광스러운 광경이다. 

그 광경은 선한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유쾌한 광경이다.

② 세상 나라와 왕국들에서 어떤 변동이나 변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런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왕국은 자리를 잡고 확장되어 나간다.

③ 언제나 기회의 아침이 재난의 밤보다 앞서 찾아온다. 

재난이 발상하기에 앞서 복음의 말씀이 먼저 전파된다.

④ 그리스도의 일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전파 될 때 온 세상을 이끌고 간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반대에 봉착하며 서서히 진행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방법으로 그의 시간 계획에 따라 그의 일을 효과적으로 완성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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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받았고 백마를 탄 자에 대한 다른 해석...물론, 이 때에도 알파요 오메가, 주권적 섭리의 전지전능 하나님의 주도하심이란 관점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1>로마제국이나 로마의 정복자, 2>메시야, 3>복음과 그리스도, 4>적그리스도와 악의 세력, 5>장차 나타나게 될 어떤 정복자... 2,3,4째 인들이 시사하는 바 전쟁(피차 피를 흘림의 살육전으로 변한 내란)-기근(빈익빈부익부를 더 조장하고, 궁핍한 자들은 아사를 겪게 됨)-전염병 재앙(빈부귀천 막론한 사망으로 귀결) 으로 인한 상당한 수의 사망자 발생 야기... 이 모든 것이 불신세상의 회개 촉구와 믿는이 들의 성결과인내 통한 그리스도빼어닮기 [--불신세상에 대해서는 구주예수 믿고 회개함 통해 구원 받기를 촉구하면서 동시에 믿는 이들에게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참된 믿음과 끝까지 견디는 인내의 소망을 붙들며 육이 아니라 영으로, 하나님 말씀과 성령따라 그리스도를 살아냄으로써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고 삶으로써 복음의 능력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로써 마귀와 세상을 이기며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빼어닮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에, 무엇보다도 그 허용된 시간안에 주께로 돌이키기를 촉구하는 뜻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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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셋째, 넷째 인의 개봉(계 6:3-8) ...[하늘과 땅,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께 회개하고 돌이켜 경배하라'는 영원한 복음 선포후, 회개의 기회를 상실하는 자에게는 더 이상  돌이킬 기회가 박탈되고 이어지는 심판의 제물이 되어 버린다!!

다음 세 개의 인은 우리에게 매우 슬픈 면을 보여주고 있다. 

"회개하고 <천지와 물근원을 지으신>창조주께 돌아와 경배하라"는 영원한 복음을 거부하거나 남용하는 자들에게 있을 하나님의 큰 심판이 예상된다. 

그리스도 교회에 닥쳐 올 박해에 대하여 저들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심판의 경고라고 어떤 이들은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유대인의 멸망에 대한 경고라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분명한 것은 복음을 경히 여기는 자들에게 복수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 그 자체를 말해 주는 것 같다.

Ⅰ. 둘째 인을 떼실 때 사도 요한에게 그 인을 주시하라는 당부가 있었다. 

"다른 말"이 나오는데, 이는 전에 언급되었던 흰말과는 다른 "붉은 말"(4절)이었다. 이 붉은 말은 피의 살육이 벌어지는 전쟁의 황량한 심판을 의미한다. 

그 붉은 말을 탄 자는 지구 위에서 평화를 제거할 만한 힘을 가졌고, 땅 위의 모든 거민을 서로 죽이게 하였다. 

이 붉은 말 탄 자가 누구일까? 만군의 주이신 그리스도일까? 아니면 전쟁을 지휘하려 일어선 무기들일까? 

그것은 명확치 않다. 그러나 다음 몇 가지 사실은 확실하다.

1. 복음의 활에 복종치 않는 자는 하나님의 공의의 칼로 죽임을 당하도록 예비된 자임에 틀림이 없다. 

(기억하고 먼저 내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라, 그 다음에 주님 주시는 마음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사 돌이킬 수 있도록 대신 중재의 기도를 드리라...지구상의 모든 전쟁 중 그 어느것 하나도 주님 허락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은총의 왕국에서 뿐만 아니라 섭리의 왕국에서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3. 전쟁의 칼은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것은 땅 위로부터 평화를 제하여 버리며, 가장 큰 축복을 도말하며, 사람을 서로 살륙하게 한다. 

사람은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존재인데 전쟁은 서로 죽이게 한다.

Ⅱ. 셋째 인을 뗄 때 요한에게 먼저 말과 다른 말을 주시해 보라는 말이 들려 왔다. 

이번에는 "검은 말" 이었다. 그것은 무서운 심판을 나타내는 기근을 의미한다. 

검은 말을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다"(5절). 이것은 사람들이 자기 양식을 저울에 달아 먹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레 26:26). 

6절에 계속 보면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라.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는 말이 있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말은 기근의 때가 아니라 풍년의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그들의 통화 가치가 이 예언이 기록될 때의 가치를 표준으로 생각한다면 풍년 때의 환상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도량형의 분량과 통화량의 가치는 지금에 비한다면 밀 작은 한 되에 7펜스라는 거액을 지불한 셈이 된다. 

그러나 이 기근은 다른 어떤 재난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가혹했던 것 같다. 

반면에 부자들이 애호하는 감람유나 포두주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식생활의 기본이 되는 빵이 모자란다면 기호품인 감람유나 포도주도 기근이 든 장소에는 공급되지 못한다.

1. 사람들이 영의 양식을 싫어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일용할 양식을 빼앗아 가신다.

2. 심판은 어떤 것이든 한 가지만 나타나는 일이 없다. 

전쟁의 심판은 기근의 심판을 의당 이끌어 온다. 한 가지 심판을 받고도 겸허한 마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더 큰 다른 심판을 예상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끝내 설복시키고야 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양식의 기근은 가장 무서운 심판이다. 그러나 말씀의 기근은 더욱 무서운 심판이다. 

그런데 죄인들은 흔히 말씀의 기근에 대해 무관심하다.

Ⅲ. 넷째 인을 뗄 때 요한은 또 다른 말을 주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번에는 "청황색 말"이 나왔다.

1. 말 탄 자의 이름은 고질적인 공포의 왕 "사망"이다. 

의 왕국은 죽음뿐이다. 그의 나라는 모두 죽음이 다스리고 있다. 그 말 등에는 죽음이 행진하며, 시간 시간마다 생명을 정복해 가고 있다.

2. 공포의 왕, 사망의 수행원과 추종자는  "음부"이다. 

음부는 자기 죄로 인하여 죽은 모든 사람이 거하는, 영원히 비참한 나라이다. 대량 파멸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무방비 사태로 빠져들어 가는 파멸의 골짜기이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의 죽음 다음에 따라 오는 것은 영원한 저주이다.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세계를 진동시킬 만큼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1) 어떤 심판과 또 다른 하나의 심판과의 사이에는 공정한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당연한 관계도 있다. 

전쟁은 황폐시키는 재난이다. 이 전쟁 후에는 반드시 궁핍과 기근이 따르며, 기근은 사람에게 충분한 영양을 제공하지 못하게 만들며, 마지막에는 불건전한 것을 취하도록 강요한다. 

기근 다음에는 가끔 전염병이 만연되었었다.

(2) 하나님의 전통에는 화살이 가득차 있다. 

그는 악인을 벌하는 데는 수단 결코 방법을 가리지 않으신다.

(3) 하나님께서 돌아오는 죄인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는 것과 같이, 경멸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심판을 준비하셨다고 성서는 밝히 말한다.

(4) 성서에 보면 하나님은 악인에게는 위협을 가하시고, 의인에게는 약속을 주셨다. 

우리는 약속과 위협을 모두 알고 믿어야 할 의무가 있다.

Ⅳ. 임박한 심판과 그 상태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있은 뒤에 우리는 "저희가[전쟁, 기근, 온역으로 인해 사망-음부에 처하는 바]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8절)는 일반적인 광명이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의 도구로써 권세를 주셨다. 심판은 모든 그의 진노의 도구이다. 손에 바람을 잡고 있는 그는 역시 그의 계명 속에 모든 재난도 담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허용받은 이상으로 나가지 못하며, 다만 보냄을 받을 때만 갈 뿐이다. 

전쟁, 기근, 온역이라는 하나님의 삼대 심판에, 에스겔이 말한 또 다른 하나의 무서운 심판 즉 "땅의 짐승"이라는 것이 여기 첨부되어 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4:21). 

짐승의 심판의 마지막에 나온 것은 칼과 기근과 온역으로 백성이 없애어지면, 지극히 적은 남은 자가 황량한 광야에서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들짐승에 의하여" 다른 나머지 사람들은 야수가 되고 잔인해지며 본래의 인간성을 상실하고 다른 사람을 파멸시키는 일을 기꺼이 하는 파멸의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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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여섯째 인의 개봉(계 6:9-17)

본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우리는 다섯째 인과 여섯째 인의 개봉을 보게 된다.

Ⅰ. 다섯째 인의 개봉.

여기서는 누가 사도 요한에게 이것을 주시하게끔 하였는지 일체 언급이 없다. 아마 그것은 이 환상이 너무도 분명하여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네 생물 중 하나하나에게 각각 감독자로서의 책임을 해제시켰고 또 여기서 개봉된 사건들은 지금의 교회의 목사들의 시각과 시간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장차 있을 어떤 또 하나의 새로운 예언을 내포하고 있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큰 고난을 당한 자들에게 위로와 권고를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1. 다섯째 인을 뗄 때 사도 요한이 본 광경은 매우 충격을 주는 광경이었다(9절).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더라." 사도 요한은 순교자들의 영혼을 보았다.

(1) 그가 본 장소는 "제단 아래"였다. 

다시 말하면 가장 거룩한 장소인 분향하는 제단 밑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발등상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① 박해자들은 그들의 몸은 죽일 수 있었지만 그 영혼은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다. 그들의 영혼은 살아 있다.

② 죽기까지 충성한 자들은 더 이상 세상에서 고난받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장소를 예비하셨다.

③ 거룩한 순교자들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바로 곁에 있다. 그들은 거기서 최고의 상좌를 차지하고 있다.

④ 그들이 하늘나라로 영접을 받고 거기서 보상을 받은 것은 그들 자신들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 때문이다. 

그들은 거기서 자기 옷을 자기 피로 씻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씻는다.

(2) 그들이 고난당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또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고 고백하다가 고난을 당했다. 

그들은 죽음을 초래하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믿음의 고백을 그들은 굳건히 붙잡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과 그런 신앙을 고백하기 위하여 그의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그들은 이런 고상한 이유 때문에 고난을 당했다.

2. 그가 들은 소리는 그들의 원수들에 대한 의로운 보복을 언제까지 연기하시려는지를 겸손히 묻는 큰 소리였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10절)

(1) 비록 "온전하여진 의인들의 영혼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잔악한 원수들에게서 받은 악행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복심을 간직하고 있다. 

순교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사랑으로 죽지만, 하나님께서 그 박해자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면서도 그들의 박해의 죄만큼은 바르게 심판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와 복음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믿음 때문이다.

(2) 그들은 그 보복의 까닭을 모든 보복을 주관하시는 자의 손에 맡긴다. 

그들은 자신이 갚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원한을 맡긴다.

(3) 죄인 하나가 회개했을 때만큼이나 하늘에서는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끈질긴 원수들이 멸망되었을 때에도 기뻐한다. 

바벨론이 함락될 때 이렇게 노래되어질 것이다. "하늘과 성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계 18:20).

3. 사도 요한은 순교자들의 간청 소리에 친절히 응답하는 다음 두 가지의 행동을 보았다. 

하나는 무엇을 주고, 하나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11절).

(1) 순교자들에게 주어진 것은 "흰 두루마기" 였다. 

이것은 승리의 옷이요, 영광의 두루마기이다. 그들의 현재의 기쁨은 과거에 당했던 고난에 대한 풍성한 보상이다.

(2) 순교자들에게 들려온 음성은,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가 오래지 않을 것이며, 그 수가 차면 그들의 소원이 성취되고 평안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말은 지상에 있는 성도들의 불안전한 상태보다 하늘에 있는 그들의 상태가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말하는 적절한 표현이다. 

거기는 고통이 없고 아픔이 없으며 책망도 없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이 세상에만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① 이 세상에는 "양처럼 베임을 받아야 하며," 말씀의 증인으로 구별받은 성도들이 있다. 하나님은 그들과 그들의 수를 알고 계신다.

② 박해자들의 죄가 채워지는 것같이, 순교당하는 그리스도의 종들의 숫자도 채워진다.

③ 이 수가 채워지면 하나님은 그들의 잔악한 박해자들에 대해 공의와 영광에 찬 보복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괴롭히던 자들에게는 괴로움을 주시며, 괴로움을 당하던 자들에게는 끊임없는 평안을 주실 것이다.

Ⅱ. 여섯째 인의 개봉(12절).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콘스탄틴 황제의 대개혁에 의한 이교도의 몰락이라고 간주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세상 끝날에 자유악인들의 멸망을 나타내는 대심판의 상징으로써의 예루살렘의 붕괴를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의 처참한 모습은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예언하신 그 내용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래서 같은  의미의 말이 두 곳에 모두 실렸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붕괴가 이미 과거에 이루어졌다고 본다(마 24:29, 30 참조).

1. 놀라운 사건들이 신속히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그 날에 있을 땅의 지진-해달별의 변화-하늘의 형태변화-산과 섬의 이동이 무섭게 느껴지게 하는 몇 가지 사건들이 전개된다.

(1) [땅]"큰 지진이 일어난다." 

이것은 정치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유대 교회와 나라는 땅처럼 확고한 것으로 보여지지만, 그 기초가 무섭게 흔들릴 것이다.

(2) [해]"해가 총담같이 검어진다." 

자연 현상으로는 개기 일식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지고, 정치적으로는 그 땅의 두령이 무너짐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3) [달]"달이 피같이 된다." 

부하 장군들과 군졸들은 피 속에 뒹굴게 될 것이다.

(4) [별]"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진다"(13절). 

그것은 마치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 

별이란 비록 낮은 차원에서이기는 하지만, 영향력이 있는 저명한 사람들을 나타낸다. 이렇게 전반적인 면에서의 황폐화가 일어난다.

(5) [하늘]"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간다." 

이것은 그들의 교회적인 신분이 말살되고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을 나타낸다.

(6) [섬과 산]"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 운다." 

유대 민족의 멸망은 그 주변에 있는 도도하게 자고하며, 스스로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이것은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심판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2. 그 크고 두려운 날에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다(15절). 

그 때에는 권세 잡은 자나, 왕족들이나 부자나 강한 자들이나 할 것 없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람들의 생각에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으니 만큼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 같은, 가난한 노예도 그날에는 크게 두려워한다.

(1) 그들의 공포와 경탄의 도를 살펴보자. 

절망 가운데 빠진자들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우리를 가리우라"고 말한다. 그들은 숨겨지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2) 그들이 이처럼 두려움과 공포에 쌓인 까닭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과 어린양의 진노" 때문이다.

① 그리스도께 불쾌한 일은 하나님께도 불쾌한 것이 된다. 

두 분 중 한 분에게 대해 불쾌하게 하든지, 유쾌하게 하여 드리든지 그것은 곧 다른 한 분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 된다. 그 두 분은 온전히 일체이시다.

② 하나님은 비록 보이지 않는 존재이시지만, 그는 이 세상에 사는 자들로 하여금 그의 노여움의 표정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신다.

③ 그리스도께서 비록 어린양이시지만, 그도 노여워하실 수 있으며, 진노를 발하시기도 하신다. 

"어린양의 진노"는 매우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의 노여우심을 달랠 구속주 자신이 우리의 노여운 적대자가 되신다면 우리는 우리를 위해 변호해 줄 친구를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구속주의 진노 때문에 멸망당하는 자에게는 치료받을 길이 없다.

④ 사람들에게 은혜의 때와 기회의 날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는 정당한 진노의 날이 있다. 

그 날이 오면 아무리 만용을 부리는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공포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날에 거기에 살던 죄인들에게 실제로 임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 때에는 그 이상 더욱 무서운 공포가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에게 강력하게 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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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류관, 왕관, 화관.stevfano"(4735, 스테파노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스테파노스(Homer 이래)는 스테포(stefw: 둘러싸다)에서 유래했으며, '면류관, 왕관'을 의미한다.
스테파노스는 운동 경기들에서 승리한 사람이 쓰는 월계관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승리, 축제, 예배, 공무나 명예, 왕권이나 왕의 방문'을 의미한 용어로 사용되었다.
스테파노스, 즉 면류관은 '기쁨, 슬픔, 탁월'을 표현하며, 밀폐된 면류관은 마술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스테파노스는 약 50회 나오며, 거의 항상 히브리어 아타라(관, 왕관, 화관)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왕관'(삼하 12:20 등), 여왕의 관(렘 13:18), 귀족이 쓰는 관(에 8:15), 혹은 신랑이 쓰는 관(아 3:11)을 가리킨다. 관은 금과 은으로 만들기도 하고(시 21:3; 슥 6:11) 꽃으로 만들기도 했다(겔 23:42).
이 단어의 가장 중요한 용법은 비유적 용법이며,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 영예와 권위를 나타낸다. 잠언에서 흰 머리카락(잠 16:31), 손자(잠 17:6), 훌륭한 아내(잠 12:4), 지혜(잠 4:9; 잠 14:24)는 관(면류관)으로 간주된다. 마지막 비유로, 사 28:5에서 여호와께서 남은 자의 관(면류관)이 되실 것이다! 그는 남은 자를 축복하실 것이며 그들의 자랑이 되실 것이다(겔 16:12).
이러한 은유는 면류관이 옮기울 것이라는 것과 같이 부정적인 면이 강조될 때도 사용된다. 슥 6:11에서 선지자는 바벨론 유수에서 귀환하는 남은 자들이 가져온 금과 은을 취하여 관(히브리어는 복수형임, 아마도 최상급, 즉 최종적인 관을 나타내는 것같음)을 만들고 그것을 제사장 여호수아 머리에 씌우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 관은 성전에 보관해야 한다(슥 6:14). 이와 같은 관 씌움은 메시야에 대한 상징이다. 여호수아는 그 왕관을 받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의 직무와 왕의 직무가 결합됨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만이 그 관을 쓸 수 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스테파노스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스테파노스는 '가시 면류관'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27:29(병행구 막 15:17; 요 19:2; 요 19:5),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가시투성이의 초목으로 만든 이 면류관은 군인들에게 있어서 거짓 왕권을 의미했으며, 조롱하기 위한 모조품이었으며, 상처를 내어 고통을 일으키고 예수님을 경멸하려고 고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복음서 기자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또한 예수님께서 곧 죽음을 이기실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영적 왕국을 다스리실 그리스도의 참된 왕권에 대한 증거가 되었다. 요한에 의하면 가시관을 쓴 자가 참 승리자였다(참조: 요 16:33; 요 19:30; 요 20:28).
(b)  스테파노스에 대한 바울의 비유적 용법.
필로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썩을 면류관의 비유를 사용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운동 경기에 비유한다. 
비유의 초점은 목표를 위하여 힘쓰는 자기 절제이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경주에 자주 비유한다. 고전 9:24-26 상반절 뿐만 아니라 갈 2:2; 갈 5:7; 빌 2:16; 빌 3:12-14도 참고하라.
형용사 아파다르토스로 수식되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은 스테파노스 테스 조에스(생명의 면류관)로서,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선물이다. 
여기서 비유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이 비유는 딤후 4:8에서 바울 자신의 삶과 관련하여 다시 사용된다.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딤전 4:6)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딤전 4:7)고 하였다. 따라서 그에게는 호 테스 디카오쉬네스 스테파노스("의의 면류관"), 즉 "그 날에" 궁극적인 의롭다하심을 가져 올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참조: 고전 4:1-5). 이 면류관은 호 디카이오스 크리테스("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주실 것이며, 바울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토이스 헤가페코시 텐 에피파네이안 아우투("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다(딤전 4:8). 따라서 이 면류관을 받는 전제 조건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인데, 이 충성은 주의 나타나심에 근거하며,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여 완전히 충성을 바치는 그러한 충성이다.
-이 진술은 약 1:12 및 계 2:10과 유사하다. 딤후 2:5은 일반적인 규칙을 명확히 표명한다. 그리고 다른 비유들도 사용된다. 딤후 2:3과 딤후 2:4의 군사, 딤후 2:5의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자(아드레오), 딤후 2:6의 농부의 비유이다. 경기자에 대해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승리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법대로 경기해야 한다(노미모스 아드레인). 노미모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예수 그리스도와(딤후 2:8) 그의 사도(딤후 2:1 이하)로부터 명백히 알 수 있다.
면류관 비유는 바울에 의해 또 다른 방식에서 사용된다. 그는 공동체를 그가 주님 앞에 설 때 쓰는 면류관이라 부른다: 빌 4:1,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살전 2:19-20,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여기에서 바울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수사 의문문 형식을 취한다음 확언의 가르(**)로 직접적으로 답변을 되풀이함으로써 생동감 있는 문체를 구사한다. 본문은 잠 12:4; 잠 17:6과 같은 개념을 채용한다. 본문 말씀은 신학적으로 중요하다. 
바울은 그와 모든 신자들이 궁극적으로는 주님에 의해 구원 받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심판에서 그의 삶의 열매가 측정되고 판단 받을 것이다(고전 15:10; 고전 3:11-15; 고전 4:1-5; 고전 5:5; 고전 9:5-18; 고후 5:10 등). 
바울은 단지 개인적으로 구원 받기만을 원하지 않는다. 그의 삶의 결과가 시험 받아 견디어내므로 그것에 대한 보상과 칭찬을 원한다. 그의 삶의 결과(공력)들이 견디어 낸다는 사실은 파루시아의 날에 그의 면류관이요 기쁨이요 소망이요 영광인 교회들로 나타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면류관과 기쁨의 결합이다. 면류관은 기쁨을 표현한다. 그리고 또한 면류관과 영광의 결합도 주목할 만하다. 면류관은 영광의 표시요 외형이다. 소망은 면류관을 바라는 것이다. 이 면류관으로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영광과 칭찬을 받으므로, 영광스러운 면류관인 것이다.
(c)  승리와 생명의 면류관.
계 2:10에서 핍박과 고난의 위협을 받는 서머나 교회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부름을 받는다. 
이 말씀은 약 1:12에 나오는 축복의 말씀과 일치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또 딤후 4:8도 유사하다. 고난 당하는 자들, 어떤 경우에는 순교까지도 당할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주님이 직접 씌워주실 승리자의 면류관을 약속하는 이 세 말씀 사이의 내면적 관계는 권고의 공통적인 근거를 지시한다.
안 에핑겔리라토("약속된)라는 언급이 포함된 약 1:12은 주님의 말씀으로 여겨질 수 있는 확실한 약속을 나타낸다. 
"생명의 면류관"이 뜻하는 것은, 만일 그 면류관이 승리의 보상이라면 그것이 전달하는 내용물은 생명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과 유사한 것으로 생명나무의 비유가 있다(계 2:7). 
우리는 면류관이 이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생명은 그것으로 만든 관을 쓴 자로부터 사망이 결코 빼앗아갈 수 없는 생명이다. 이 면류관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에게 충성하는 자들에게 주시는(도소, 계 2:10) 주님의 약속이자 선물이다(약 1:12; 딤후 4:8). 이 충성은 공격에 저항하고 고난을 견디는 데서 나타난다.
계 3:7 이하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의 말씀과 인격(이름)을 굳게 붙들었다고(계 3:8 하반절) 증언한다. 그리하여 그 교회는 임박한 공격에 직면하여 "내가 또한 너를 지키리라"(계 3:10)는 약속을 받으며, 아울러 주께서 속히 임할 것이므로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권면을 받는다(계 3:11). 
승리의 면류관은 약속된 선물이다. 주님의 말씀을 굳게 지킴으로써(계 3:8; 계 3:10) 그것은 주님 안에 약속된 이 선물을 굳게 붙잡을 것이다. 그 표현 형식은 유대 지혜 문학의 형식을 취한다.
벧전 5:4에 따르면 생명의 면류관은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 즉 불멸성이 그 빛나는 성질의 구성 요소인 영원히 썩지 않는 잎사귀로 엮은 것이다. 생명과 빛은 어둠과 사망처럼 함께 속하는 것이다. 생명의 면류관은 빛의 면류관이고, 따라서 머리 둘레에 빛나는 후광으로 나타난다.
벧전 5:4은 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양떼를 돌보는 목자로써 그들은 본이 되어야 하는데, 그리하면 목자장이 곧 나타나실 때 승리와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벧전 5:4은 바울의 진술들과 계 2:10에 속하는 부류의 말씀 중간에 위치한다.
(d)  하나님의 영예의 상징으로서의 면류관.
요한계시록에서 기자는 24보좌에 앉아 있는 24 장로들을 본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계 4:4). 
여기서 "금 면류관"은 빛나는 형태의 면류관이다. 그들은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그 앞에 면류관을 던진다(계 4:10). 
또 하늘에 있는 여자가 빛나는 광휘 가운데 나타난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계 12:1).
이 여자에게 대적하여 적대적인 세력을 상징하는 큰 용이 일어나는데, 머리가 일곱이요 "그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다(계 12:3). 
용과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즉 그가 지배하고 관할하는 권세를 상징하는 바다에서 나오는(계 13:1) 그 짐승은 계 6:2에서 이기는 자로 불리운다: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 6:2). 계 9:7에서 황충들은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여기서 면류관의 이미지는 다소 약화되며, 황충들의 재앙을 묘사하는 모든 곳에서처럼 직유법이다: "그 머리에 금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계 9:7).
마지막으로 인자가 또한 구름 위에 앉았는데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다"(계 14:14). 그는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 있는" 백마 탄 자로 나온다(계 19:12). 이 많은 면류관은 그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불리우는 자로 구별시켜 준다(계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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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white. leukov"(3022, 류코스) 
1. 고전 헬라어 문헌 
류코스는 세속 헬라어에서 호머(Homer) 이래로 나타나며, '빛나는, 밝은, 고운'을 뜻하며, 여러 가지 뉘앙스의 '흰, 순백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우유, 눈, 흰 옷, 달걀의 흰 부분, 희생제물의 색깔, 제사장과 입교자들의 옷의 색깔, 죽은 자와 유족의 옷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흰색은 기쁨이나 승리의 색이며, 신들을 기쁘게하는 색으로 간주된다. 도움을 주는 신들은 스스로를 희다고 일컫는다.
2. 70인역본 및 유대 문헌 
(a)  류코스는 70인역본에서 33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라반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주로 흰색을 의미한다(창 49:12; 사 1:18; 슥 1:8).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흰색은 연노랑색을 포함하기도 한다. 사 32:4에서는 `분명한 말'에 대해 사용된다. 류코스는 이렇게 구약성경에서도 여러 가지 뉘앙스를 나타낸다.
히브리 세계에서도 흰색은 중요한 색으로 여겼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빛의 중요성 때문이지만, 그 보다는 오히려 거룩의 개념의 중요성 때문이다. 
흰색은 하나님 자신의 색깔이며(단 7:9), 죄악의 부정으로부터 정화된 상태를 상징한다(시 51:7; 사1:18; 단 11:35; 단 12:1O). 
흰색은 '순결'(purity)을 상징하는 제사장의 세마포옷의 색깔이었다(Schurer Ⅱ,1,276 이하; W.Michaelis, TDNT IV 242 242; 참조: 출28:40-43; 39:27 이하; 겔 44:17 이하; Josephus, Ant 3,7,1 이하). 그러나 이 단어는 문둥병의 색점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레 13장에는 이 단어의 사용중 약 절반이 나온다).
(b)  필로(Philo)와 요세푸스(Josephus)는 이 색깔의 상징적인 의미를 이해하였다. 
필로는 삶과 죽음, 선과 악 등과 나란히 흰색과 검은 색을 대조하였다. 알레고리에서 흰색은 진실의 색으로 나온다. 요세푸스는 레위인들이 흰 세마포 옷을 입는 권리를 보장받았다고 하며, 에세네파는 항상 흰옷을 입고 다녔다고 언급한다(War,2,123).
(c)  랍비 자료들도 흰옷을 선호한 것을 나타낸다. 
흰옷은 기쁨이나 구별의 표시이다. 흰옷은 또한 청결, 순결을 나타낸다. 주후 1세기 이후부터 죽은 자를 흰 세마포를 입혀 장사하였다.(TDNT.IV 244 이하). 이것은 아마 성도들이 변화된 상태에서 입는 영광의 의복에 대한 형상과 관계되었다고 볼 수 있다(Sth.En 62:l4ff;  Sl.Enoch 22:8).
3. 신약성경의 용법 
류코스는 신약성경에서 25회 사용되었으며, 복음서, 사도행전, 요한계시록에만 나온다.
(a)  류코스는 요 4:35에서 추수할 때가 된 익은 이삭이 희어진 것, 곧 곡식의 황금 빛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5:36에서 하나님만이 머리카락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네 머리로 하는 맹세는 미쉬나 산헤드린 3:2에 언급되어 있다. 랍비들은 어떤 누구든지 머리로 맹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어떤 것에 대하여 맹세로 자기 머리를 위태롭게 하는 자는 마치 자신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힘을 가진 자처럼 말하는 자이다(T.Zahn). 비록 자신의 머리에 대해, 즉 자신의 머리 색깔에 대해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b)  다른 여러 문맥들에서,
① 흰색은 종말론적인 색깔이며, 특히 겉옷의 묘사에 있어서 그러하다. 
예수님의 변모에서 그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그의 옷은 눈부신 흰색으로 나타난다(마17:2; 막 9:3; 눅 9:29). 예수님의 무덤 곁에 있던 천사들의 모습(마 28:3; 막 16:5; 참조: 요 20:12; 눅 24:4)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말을 거는 두 사람의 모습도 역시 그러 하였다(행 1:10).
② 흰색은 또한 천국의 성도들의 옷 색깔이기도 하다(계 3:4 이하; 계 3:18; 계 4:4; 계 6:11; 계 7:9; 계 7:13; 계 19:14).
여기에서 흰옷 만으로도 천사들의 영광의 초월적 성격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변모시에 천사로 보여졌다는 것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계 4:4의 장로들도 흰옷을 입고 있었으며, 계 3:4 등의 이기는 자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흰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경우에 흰옷의 광채는 그의 독특한 위치를 의미하는 것이고, 천사들의 경우에 그것은 그들의 천상적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기는 자들의 경우에 그것은 높임 받으신 주님의 깨끗케 하시는 사역으로 말미암은(참조: 계 6:11; 계 7:13 - 계 7:14) 그분과의 영광스러운 친교의 선물이다(계 3:4 - 계 3:5).
③ 흰색은 하나님 자신의 색깔이다. 
하나님의 보좌가 흰색이며(계 20:11), 또한 환상에서 요한은 "사람과 같은 이"가 구름 위에 앉았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예리한 낫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계 14:14). 요한의 첫번 환상에서 그리스도는 양털과 눈 같이 흰 머리털을 가지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로 나타나는데(계 1:14)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옷의 희기가 눈 같고 머리털이 양털 같이 흰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단 7:9)와 관련시키며, 요한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동등하시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다(W.Michaelis,TDNT; J.Behm).
아마도 요한계시록에는 흰색이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적 색깔이므로 성도의 흰옷은 하나님만이 주시는 거룩과 순결을 상징한다는 함축적인 사상이 있을 것이다. 
이와 일치하여 심판 가운데 오시는 영광스러운 그리스도께서는 백마를 타고 나타나며(계 6:2; 계 19:11), 그를 따르는 천군들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역시 "백마"를 타고 나타난다(계 19:14). 그러나 음부가 그 뒤를 따르는 사망을 상징하는 말은 "청황색" 말이다(계 6:8; 참조: R.H.Charles).
(c)  계 2:17에서 버가모의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승리한 자들은 "감추었던 만나"와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안 사람이 없는 새 이름이 새겨진 흰돌"을 약속받는다. 
흰돌은 다양한 의미를 까지고 있다. 흰돌은 배심원들이 무죄 방면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Ovid,Metamorphoses 15,41). 또한 더없는 행복의 표시로 간주 되었다(PIiny의 서간집,6,11,3). 왕이 주관하는 특별한 집회에서 흰돌을 소유함은 무상의 환대의 자격을 주는 것이였고, 또한 보석들이 만나와 함께 떨어졌다고 하는 랍비들의 전설도 있다(R.H.Charles). 이스라엘 지파들은 대제사장의 흉배에 붙은 보석들로 대표되었다(출 28:15-21). 아마 요한은 이런 개념들 중의 몇 가지를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Lord)로 고백하는 것과 하나님의 소유라는 함축적인 추론과 결합 시키고 있는 듯하다(참조: 마 10:32; 막 8:38; 눅 12:8; 롬 10:9 이하; 고전 12:3; 빌2:11). (참조:W.Michaelis; G.T.D.A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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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인장, 봉인 sfragiv"(4973, 스프라기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스프라기스(trag., Hdt. 이래)는 기본어이며, '인, 인장, 봉인'을 의미한다.
(a)  이 명사는 인을 치는 도구(예. 인장 반지)와 그 도구에 새겨진 석판석(작은 활자), 그리고 그 인장의 날인 뿐 아니라 그 인장에 새긴 것(형상이나 이름) 모두를 뜻한다.
(b)  인장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널리 사용되었으며, (주전 3천년 전부터) 특히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러했다. 
인장이 지니는 실제적인 중요성은 법적인 것으로, 소유주는 자기의 소유물, 즉 가축들, 노예들에다 그의 부호를 새기고 그것으로 그의 소유물들이 도난 당하는 것을 방지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인장을 보호의 표시 또는 보증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인장이 문서(유언장, 판매증서 등)에 사용될 때는, 거기에 적힌 것을 인정한다는 하나의 표시였다. 
인장이 찍힌 물건들은 인장 주인이 처리할 권리를 가지며, 이것은 개인에게 적용되었을 뿐 아니라 특별히 그 도시의 권력자들과 왕들에게도 적용되었다. 
인장은 그들의 권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c)  인장은 종교에서도 역시 중요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짐승은 희생 제물로 적절한가라는 것을 검사 받아 표시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인을 새김으로써, 자신들이 그들의 신의 소유임을 나타내었다(Hdt.).
사람들은 집과 같은 것들이 보존 구역으로 지정되었음을 더욱 확실하게 보증하기 위하여 그곳에 인을 찍었으며, 비밀 내용을 지키기 위하여 문서에 인을 찍기도 했다. 이리하여 입이나 말들이 인쳐졌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참조: Diog. Laert.).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스프라기스는 70인역본에서 25회 나오며, 히브리어 호탐(2368: 인장, 인장 반지, 출 28:11; 출 39:30; 학 2:23등), 하흐(2397: 갈고리, 사슬, 출 35:22)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스프라기스는 신약성경에서 16회 나오며, 요한계시록에 자주 나타난다.
(a)  롬 4: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인침'이라는 단어를 아브라함의 할례와 관련시켜 사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이유는 그가 세례(침례)를 일종의 '인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참조: 골 2:11이하. 여기서는 손으로 행하지 않은, 즉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할례에 관하여 언급함). 
롬 4:11을 할례의 인을 치므로 아브라함이 할례를 언약의 징표로 하여 그와 언약을 맺은 하나님 앞에서 조차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하나님께서 확증하는 것으로 본다면, 이 구절은 가장 쉽게 이해된다(창 17:10이하). 따라서 여기서 할례는 하나님의 확증 표시를 의미할 것이다.
(b)  고전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여기에서 바울이 고린도 공동체를 그의 사도직의 인이라고 부를 때 그가 말하려고 한 바는 이 세상에서 이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그의 사도적 권위의 합법성을 확증해 주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이 그의 추천서이라는 것이다(참조: 고후 3:1-3)
(c)  딤후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찌어다 하였느니라". 
여기에서 스프라기스는 인의 각인, 즉 인에 새겨진 명각을 의미한다(참조: 출 28:36). 문제는 이 표가 찍힌 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가(참조: 고전 3:10이하), 교회인가(참조: 딤전 3:15), 사도의 증거인가(참조: 엡 2:20), 또는 거짓 선생들이 가르치는 것과 반대되는 진리인가(딤후 2:15-18)? 
하나님은 인을 침으로써 그 터가 견고함을 보장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자기 자신의 것을 알고 있으며 또한 불의를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2개의 각인은 70인역본의 민수기 16:5에 의한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디벨리우스(M. Dibelius)와 콘첼만(H. Conzelmann)은 이것을 헬라어 구약성서의 영향을 받은 초기 기독교도의 시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The Pastoral Epistles, Hermeneia, 1972, 112).
요한계시록에서 스프라기스의 용법은 다음과 같다.
(d)  스프라기스는 말씀의 인봉에 관해 사용되었다.
① 계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여기서 환상을 본 자에게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는 것을 금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가 가까워졌으므로 그 말씀을 숨기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참조: 반대 내용인 단 12:4).
② 계 10:4,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이것은 인봉된 것은 감추어진 것이라는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참조: 사 29:11). 최후 심판의 시작을 예고하는 우뢰의 메시지는 환상을 본 자의 귀에만 들렸을 뿐이며 그가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그것을 전달해서는 안된다.
(e)  스프라기스는 일곱 인이 찍힌 책에 대해 사용되었다. 
계 5:1에서는 보좌에 앉은 이의 오른손에서 양 쪽에 일곱 인이 찍힌 두루마리 책을 요한이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린 양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열어볼 수 없을 것이다(계 5:2-10).
두루마리에 씌어진 내용은 두루마리의 양면에다 기록할 만큼 방대한 것이었다(참조: 겔 2:9이하).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감추어져 있으며, 심지어 환상을 본 사람에게 까지도 감추어진 것이다(참조: 단 12:4; 단 12:9).
고대 문서의 내용은 모든 인봉을 뜯고 난 후에야 비로소 드러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각 인을 뗄 때마다 최후  대변동의 일면이 드러나기 때문에(계 6:1; 계 6:3; 계 6:5; 계 6:7; 계 6:9; 계 6:12; 계 8:1), 그 두루마리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추측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기자는 이러한 사상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어린양만이 최후 사건을 일으킬 자격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f)  스프라기스는 신자들의 인침에 대해 사용되었다. 
계 7:2이하는 네 명의 심판할 천사들이 활동을 개시하라는 허락을 받기 전에 신자들의 이마에 인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에 관하여 언급한다. 
이것은 앞으로 세상에 임할 심판에서 신자들을 보호해 줄 것이다(계 9:4; 참조: 겔 9:4; 솔로몬의 시편 15:6이하). 
여기서 인이란 것은 소유권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표시이므로, 보호자의 표시이기도 하다. 즉 하나님은 심판에서 자기의 것을 지키시는 것이다. 
인침을 받는 자의 숫자가 각 족속 당12,000 즉 12×12,000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심판에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이름(참조: 계 14:1; 계 22:4)이 새겨진 인을 찍음으로써 손과 이마에 "짐승의 표"를 가진 자들과 신자들이 구별될 것이다(참조: 계:13:16이하; 계 14:9; 계 14:11등). 
하나님의 표는 사람을 심판에서 보호하며 짐승의 표는 사람에게 심판을 가져다 줄 것이다(계 9:4; 참조: 계 14:9이하). 
이것이 박해의 시련을 겪으면서 살아나가는 공동체에게 주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JC의 영광에 참여케 된다는] 위로의 말씀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곧 이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보호를 말해주는 것이다.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Schi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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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 나팔 신호. savlpigx(4536, 살핑크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살핑크스(Homer 이래)는 철이나 청동, 또는 뿔로 만든 관악기나 나팔을 의미한다. 살핑크스는 단지 악기 뿐만 아니라 악기가 내는 소리, 그 신호나 연주도 의미한다. 그리고 살핑크스는 '천둥, 나팔수'를 의미한다.
(a)  나팔의 기원. 
나팔은 근동에서 옛날부터 사용되었다(페르시아인들, 힛타이트인들, 이집트인들). 헬라인들은 호머 시대에 나팔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시대에는 군사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다.
(b)  전쟁 나팔. 
나팔은 군대에서 신호를 보내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인들이 사용하던 피리와 크레타인들이 사용하던 수금은 나팔로 대체되었다. 
이 나팔은 신호를 주며, 사기를 북돋우며, 적들을 떨게 하며, 후퇴를 알리며, 흩어진 자들을 다시 모으며, 전쟁을 끝내는데 사용된다. 로마 진영에서는 나팔 소리로 취침, 경계, 기상을 알리었다.
(c)  평화시의 나팔. 
목자들은 양떼를 모으기 위해 나팔을 사용한다. 사람들은 나팔 소리로 재난을 알려 준다. 사람들은 나팔 소리를 듣고 기도하기 위해 침묵을 지키거나,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인다. 나팔수들은 장례식에도 참석하여 나팔을 불었다. 나팔 시합은 경기의 한 종목이다.
(d)  악기. 나팔이 악기로서 많은 역할을 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집트의 나팔들은 두 음조만을 지니고 있다. 이 나팔들은 신호를 보내고 운율을 정하는데 사용되긴 했지만, 실제의 곡을 연주하는데 사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팔은 크고 째지는 소리를 내었으므로, 이 소리는 때로 당나귀의 울음 소리나 황소의 우는 소리에 비유되었다(참조: G.Friedich).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살핑크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00회 나오며 6개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흔히 사용된 단어는, 본래 구부러진 "양의 뿔"을 뜻하다가 후에는 보다 일반적인 '뿔' 혹은 '관악기'를 뜻한 쇼파르와, 군사용이 아니라 주로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던 은을 두드려서 만든 길게 쭉 뻗은 '나팔'을 뜻하는 하초체라이다.
나팔은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릴 때(민 10:10; 대하 29:27; 대하 29:28), 축제일에(레 25:9), 왕의 대관식에(왕하 9:13), 봉헌 시에(대하 5:12; 스 3:10) 불었다. 
물론 전쟁에서 전투의 시작을 알리거나(욥 39:24; 욥 39:25; 마카베오일서 9:12, 13), 침략을 경고하기 위해(암 3:6) 불었다. 나팔은 여리고를 탈환하는 전투(수 6:4-수 6:21)와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을 쳐부술 때에도 중요한 못을 담당하였다(참조: M.J.Harris).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실핑크스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나팔 그 자체와 그것이 내는 소리(고전 15:52)를 의미한다.
(a)  전쟁시의 나팔. 
바울은 방언에 대한 그의 언급에서 군대의 나팔을 은유로 사용하여, 회중에서 선포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고전 14:8). 
바울은, 오로지 분명한 나팔 소리만이 군대를 일으켜 싸움에 임하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분명하고도 알아들을 수 있는 의사 전달만이 온전한 교회 예배에 자리 잡아야 한다.
(b)  신현현과 환상에 관한 나팔. 
히 12:19에 의하면 시내산에 나팔 소리는 출 19:16이하에서 처럼,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신현현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의 하나이다.
그렇지만 계 1:10과 계 4:1에서 선지자는 나팔 소리같은 소리를 듣는데 그 소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이다.
계 1:10에서는 그 큰 음성으로 편지를 쓰게 하고, 계 4:1에서는 큰 소리로 환상이 시작된다.
(c)  종말론적인 의미의 나팔. 나팔은 마지막 때에 큰 심판을 선포한다.
계 8-9장에서는 일곱 천사들이 부는 일곱 나팔 소리를 신호로, 회개를 목적으로 삼는 연속적인 나팔재앙심판들이 시작된다(참조: 계 9:20-계 9:21). 
이 일련의 심판들은 하나님의 비밀 선포(계 10:7)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지배 체제 확립(계 11:15이하)으로 끝난다.
마 24:31에서 나팔 소리는 땅의 사방에서 택하신 자들을 불러 모으는데 이용된다(살피조와 함께 취급됨).
고전 15:52에서는 마지막 나팔 소리를 듣고, 즉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울리는 종말론적인 신호를 듣고서(살전 4;16), 산자는 변화되고 죽은 자는 일어난다.
(참조: G.Friedrich; M.J.Harris; Walter Ba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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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 bowl fiavlh(5357, 피알레) 
1. 고전 문헌 및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피알레(Homer. 이래)는 (얕은)사발을 의미한다. 70인역본에서 미즈라크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2.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피알레는 신약성경에서 요한계시록에만 12회 나온다.
·계 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 15:7,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계 16: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계 16:2,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계 16:3,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계 16:4, "세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계 16:8, "네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계 16: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계 16: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계 16:17,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계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계 21: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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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제 6장
=====6:1
@내가 보매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 본절과 다음절은 첫째 인에 해당된다. '어린양이...그 때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테 에노잎센 토 아르니온'(* )은 마지막 인을 뗄 때까지(8:1)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문구이다(3,5,7,9,12절). 이는 그 어떤 인간도 뗄 수 없는 (5:3) 종말의 비밀을 어린양 자신이 여심으로 어린양께서 심판을 주관하시는 주체이심을 나타낸다.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 '우뢰 소리같이'는 하늘의 소리를 가리킨다(4:5; 요12:29). 한편 '오라'에 해당하는 헬라어'에르쿠'(* )가 누구를 향한 명령인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요한에게 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Moffatt, Plummer). 그러나 본서에서 요한이 자신을 향해 '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듀로'(* )를 사용하고 있어(17:1;21:9) 받아들이기 어렵다. (2)혹자는 그리스도에게 명한 것이라고 해석한다(Alford,Swete).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용인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일곱 인을 떼시는 주체가 어린양이므로 네 생물이 그리스도를 향해 '오라'고 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3)혹자는 말 탄 자에게 명한 것으로 본다(Weiss, Robertson, Morris, Ladd, Johnson, Mounce,Charles).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네 생물의 '오라'는 초청에 말탄 자가 등장하여 즉각 행동하기 때문이다.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 요한이 첫번째 인을 떼고 난 후에 본 환상은 흰말의 모습이다. 이는 슥6:1을 반영한다. 그러나 스가랴서에서는 색깔이 특정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 반면 본서에서는 말 탄 자와 관련하여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흰색은 승리와 정복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땅에 심판을 위한 재앙을 내리려는 의도를 암시한다.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 본절에서 흰 말이 나오고 그 탄자가 활을 가지며 승리를 상징하는 면류관(* , 스테파노스)을 가진 것으로 보아 말 탄 자가 승리자요 정복자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다섯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로마 제국이나 로마의 정복자로 해석한다(Spitta, Bengel, Ramsay). (2)혹자는 메시야로 해석한다(Lange, Clarke).(3)혹자는 복음과 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1:14; 2:17; 3:4,5; 19:11-16; 20:11, Zahn,Alford, Greijdanus, Augustine, Ladd). (4)혹자는 적그리스도와 악의 세력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Bruce, Swete, Walvoord, Caird, Beckwith). (5)혹자는 장차 나타나게될 어떤 정복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Mounce, Morris, Barclay). 이 견해들 중 처음의 두 견해는 과거적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문맥상 본문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예시하는 것으로 보아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3-8절, 16,17절).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 '이기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니콘'(* )은 '니카오'(* , '정복하다')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 심판의 현재성을 시사한다. 또한 '이기려고'의 헬라어 '카이 히나 니케세'(* )는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 과거 능동태 가정문으로 궁극적인 승리를 시사한다.
=====6: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 둘째 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스프라기다 텐 듀테란'(*)은 문자적으로 '그 두번째 그 인봉'이란 의미이다. 이것은 첫번째 인을 단지 '일곱 인 중에 하나'라고 언급한 것과는 달리 시간적 순서를 분명히 나타낸다. 또한 비록 둘째 인을 뗀 자를 언급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처음 인을 뗀 어린양이 둘째 인도떼었음이 분명하다.
=====6: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 '붉은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프포스 퓌르로스'(* )는 '피 혹은 불같이 붉은 색체의 말'이란 의미이다. 여기서 붉은 색은 전쟁 혹은 살륙을 암시한다(12:3; 왕하3:22,23; 슥1:8; 6:2).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 본문은 말탄 자의 사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붉은 말'이 상징하는 전쟁이나 살륙의 의미와 일치한다. '허락을 받아'는 무서운 모든 전쟁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도록 의도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라베인 텐 에이레넨'(*)은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 과거 부정사 구문으로 '화평을 제거하기 위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붉은 말을 탄 자의 사명이 전쟁이나 살륙을 통해서 화평이 사라지게 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 '서로 죽이게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카이 히나 알렐루스 스팥수신'(* )은 목적을 나타내는 미래 능동태로 철저하게 끝까지 전쟁을 완수할 것을 묘사한다. 한편 '큰 칼을 받았더라'는 '큰 무기'를 받은 것을 묘사한다. 이것 역시 전쟁이나 살륙을 암시한다. 이 전쟁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종교적인 핍박'으로 해석한다(Hendriksen). (2)혹자는 적그리스도에 대항한 전쟁으로 해석한다(Bede,Grotius).(3)혹자는 전쟁을 통한 복음의 전파로 해석한다(Greijdanus). (4)혹자는 로마의 내란으로 해석한다(Ellocott). 이러한 견해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 여하튼 붉은 말의 사명은 전쟁과 살륙을 통해서 종말을 알리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6:5
@셋째 인을 떼실 때에...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검은색'은 슬픔과 기근을 나타내는 것으로 셋째 인의 재앙은 기근을 상징한다(렘4:27,28, Vincent, Bengel). 한편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는 말은 전쟁 후에 식량을 저울에 달아 배급하는 절박한 기근의 상황을 묘사한다. 이러한 상황은 유혈의 전쟁이 가져다 주는 필연적인 결과이다(겔4:9).
=====6: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 '나는 듯하는 음성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포넨'(* )은 어떤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접속사로 본서의 독특한 문체 중의 하나이다(19:1,6, Beckwith). 이 음성에 대한 견해는 세가지이다. (1)혹자는 어린양의 음성이라고 주장한다(Bousset). (2)혹자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주장한다(Morris). (3)혹자는 생물들의 음성이라고 주장한다(Alford,Swete). 세 가지 견해 중 처음 두 가지 견해가 타당성을 지닌 듯하다.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 '한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나리우'(* )는 가격을 나타내는 소유격으로 보통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마20:2). 또한 '되'의 헬라어 '코이니케스'(*)는 건강한 남자의 하루 식량을 나타내는 고대 단위이다. 본문에 나타난 이러한 가격은 당시의 보통 시세의 12배 또는 최고 16배가 되는 가격으로(Cicero, Ver.iii. 81, Beckwith, Rist) 전쟁과 살륙의 재앙이 있은 후 초래된 심각한 기근의 상태를 시사한다(마24:7).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말라 하더라.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네 가지이다. (1)혹자는 도미티안(Domitian)황제 때에 내린 포도원 폐쇄 명령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harles). 그러나 이 명령은 곧 강력한 반대로 인해 취소되었다. (2)혹자는 '감람유'와 '포도주'는 사치품으로 가난한 자는 굶주림의 고난을 당하나 부자들은 여전히 사치를 즐긴다는 의미로 해석한다(Hendriksen). (3)혹자는 '감람유'와 '포도주'를 성찬과 관련지어 해석하여 이를 믿는 자들에 대한 기근의 면제를 약속한 것으로 해석한다(Lilje). (4)혹자는 '감람유'와 '포도주'를 사치품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으로 보아(신7:13; 11:14; 호2:8,22) 본문은 기근의 한계성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Mounce, Ladd, Johnson, Morris).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따라서 본문은 기근의 피해가 심각하게 증대되고 있긴 하나 본격적인 재앙은 아님을 나타낸다.
=====6:7,8
@넷째 인을 떼실 때에...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 '청황색'의 헬라어 '클로로스'(* )는 누르스름한 녹색으로 창백한 모습을 암시한다. 이는 전쟁과 기근으로 인한 사망의 공포를 나타낸다(Ladd, Morris).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란 표현은 의인화된 표현으로 근본적으로는 '죽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망'에 해당하는 헬라어 '다나토스'(* )는 70인역에서 '온역'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데베르'(* )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예언하신 것(눅21:10,11)과 에스겔의 예언과도 부합되는 것으로(겔14:21), 흔히 전쟁과 기근에 이어 나타나는 재앙이다(Johnson, Mounce). 한편 '음부'의 헬라어 '하데스'(* )는 부정 접두어 '아'(* )와 '보이다'라는 의미의 '이데인'(* )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는 전쟁과 기근과 온역과 같은 온갖 재앙의 결과를 의미한다(1:18 주석 참조, Swete).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 '땅 사분 일'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처음의 세 인에서 사분의 삼은 멸망하고 남은 사분의 일이라고 주장하다(Alford). (2)혹자는 땅 전체의 사분의 일로 부분적인 멸망이라고 해석한다(Hengstenberg). (3)혹자는 땅 위의 전면적인 환난이 일어나되 그 가운데서 사분의 일이라고 해석한다(Mounce, Ladd, Ellicott). 마지막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이것은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한정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권세를 얻어'는 사망과 음부의 권세가 땅의 사분의 일을 통제하는 막강한 것이라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시사해준다.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 넷째 인으로 인한 환난의 구체적인 방편은 겔14:21을 반영한 것으로 앞서 언급된 세 인에 의해 실행된 환난보다 강한 것임을 시사한다. 여기서 '검'은 '전쟁'을 상징하며, '흉년'은 '기근'을 말한다. '사망'은 죽음의 특수한 형태인 '온역'을 말하며(2:23; 겔14:21), '짐승으로 인한 죽음'은 전쟁 이후에 나타난 황폐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사망을 의미한다.
=====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에 대한 묘사이다(1:9). 공관복음에서는 복음 증거로 인한 순교가 여로 모양으로 예고되었으나(마24:9,10; 막13:9-13; 눅21:12-18) 본문에서는 이미 성취되고 있다. 그 순교자들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13:15),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18:24)로서 일반적으로 역사상에 있는 순교 사건들 가운데 죽임을 당한 자들을 가리킴과 동시에 종말에 핍박을 당한 자들을 가리킴과 동시에 종말에 핍박을 당해서 죽게 될 순교자들을 암시한다. 한편 '영혼들'은 순교당한 '목숨'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들이 비록 순교를 당했으나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여진 것을 의미한다(Johnson).
@제단 아래 있어. - '제단'에 대하여는 몇몇 견해가 있다. (1)혹자는 순수한 상징으로 해석한다(Alford). (2)혹자는 하늘에 있는 제단으로 해석한다(Jeremias,Delitzsach). 이 중에서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를 통해 하늘의 제단이 여러번 언급될 뿐 아니라(8:3,5; 9:13; 11:1; 14:18; 16:7) 땅의 제단은 하늘 제단의 모형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출25:9; 민8:4; 히9:23). 한편 '제단 아래 있어'라는 표현은 순교자들의 순교가 하나님께 드린 산 제물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Mounce).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적대한 자들의 흉칙한 박해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복음을 위해 종말에 교회가 순교의 각오를 새롭게 갖도록 한다(Ladd, Morris).
=====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 '거룩하고 참되신'은 하나님의 신적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순교자들의 확신과 신뢰를 시사한다(Morris). 한편 '대주재여'의 헬라어 '호 데스포테스'(* )는 원래 종이 주인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절재적 권력과 소유권을 가진 자에 대한 호칭이다(딤전6:2; 딛2:9). 이러한 호칭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과(눅2:29; 헹4:24) 그리스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다(벧후2:1; 유1:4). 본문에 사용된 이 칭호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하나님을 지칭한다(Johnson, Morris, Robertson).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세상에 거하는 자들이다(3:10; 11:10; 요8:23, Burrows, Morris, Mounce). 한편 '신원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에크디케이스'(* )는 구약 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형벌과 보복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개인적인 보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복의 권한은 인간에게 있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롬12:19). 본문에 나타난 신원 역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를 핍박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에 대한 보응으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중심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눅23:34; 롬12:19).
=====6: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 '흰 두루마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톨레 류케'(* )는 '비품을 마련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스텔로'(* )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옷들을 차려 입는 것'을 의미한다(3:4; 4:4; 7:9,13; 19:14; 막12:38).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에게 흰 두르마기를 주시는 것은 영생과 승리를 보장하심을 시사한다(Mounce, Johnson, Walvoord).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 '잠시 동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티 크로논 미크론'(* )은 시간의 연속을 나타내는 목적격으로 동일한 사건의 연장 속에서의 휴식을 의미한다. 이는 복수를 신원하는 순교자들의 울부짖음으로부터의 휴식을 나타낸다(14:13). 한편 '쉬되'에 대하여 혹자들은 '잠시 동안'과 연결지어 '탄원하기를 쉬었다'는 의미라고 주장하며(Bengel, Bousset), 혹자는 천상계의 축복 가운데 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Alford, Morris, Swtet, Plummer).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천상에서의 '잠시 동안'이란 시간의 개념이 인간들에게는 영원과 같은 긴 시간이 될 수 있으며(20:3), 의로운 자들의 쉼은 자연히 천상에서의 축복이기 때문이다(14:13, Johnson). 한편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이들 모두가 동일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순교한 자들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Mounce, Alford). (2)혹자는 순교치 않은 일반 성도들과 순교한 신자들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한 듯하다.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 '차기까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사본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어떤 사본에는 '플레로도신'(*, '완성되었다')으로 되어 있어 미래부정을 의미하는 부정 과거 가정법으로 해석된다(* , P). 이는 '가득차게 될 것'이란 의미로 '가득 채워질 때까지', 혹은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을 다하기까지'를 의미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본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교자들의 수가 채워져야 종말이 온다는 숫적 개념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교회가 더 많은 순교를 각오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을 시사한다(7:14; 롬11:25, Ladd. Johnson).
=====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떼자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자연의 질서가 대혼란에 빠지며 마지막 날이 임박했음을 보여준다. '큰 지진'에 대한 경고는 종말의 현상 중 하나로 이미 예시되었고(8:5; 11:13,19;16:18; 겔38:19; 욜2:10; 암8:8; 학2:6; 마24:7,8; 막13:8, Charles) 하나님의 형벌로도 나타난다(사2:19). 한편 여섯째 인을 뗀 이후의 자연의 혼란에 대한 해석의 방법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이들을 마24장과 관련하여 사실적으로 해석한다(Barclay, Walvoord). (2)혹자는 이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한다(Clarke,Ironside,Mounce,Marshall). 이 두 견해 모두 타당성이 있다.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 '총담같이'에 해당하는 헬라어'호스 샅코스 트리키노스'(* )에서 '샅코스'(*)는 '사코스'(* )에서 파생된 단어로 '물건을 담는 자루' 혹은 '머리에 쓰는 질 나쁜 옷감'을 의미한다. 이는 검정색 염소 털로 만든 옷으로 슬픔을 표시하는데 사용되곤 하였다(사50:3, Mounce). 해가 자신의 빛을 상실하고 슬픔을 상징하는 총담같이 검게 되었다는 것과 달이 핏빛으로 변하는 것은 종말의 현상을 묵시적으로 나타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을 우주적 대이변의 심판을 시사한다(사13:10; 렘4:23; 겔32:7,8; 욜2:31; 3:15; 람8:9; 미3:6; 마24:29).
=====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 본문에서는 하늘의 별들이 겨울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무화과로 비유된다. '선 과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스 올륀두스 아우테스'(*)는 잎이 나오기 전에 겨울에 맺히는 푸른 무화과로 약한 바람에도 모두 떨어지는 설익은 무화과를 가리킨다. 선 과실과 같이 별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종말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구약 성경에서도 비슷한 예가 제시되고 있다(사34:4; 나3:12, I Enoch 2:1; 41:5; IV Ezra 4:15).
=====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 '떠나가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코리스데'(* )는 '분리하다'는 의미를 지닌 '아포코리조'(*)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말지 않은 두루마리 종이를 반으로 자르면 한쪽으로 말리는 현상을 나타낸다(사34:4). 이는 종말에 있을 하늘의 대변동에 대한 비유로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 임할 심판의 엄중성을 나타낸다.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 본무은 전혀 움직임이 없던 산과 섬들도 지각의 변동으로 요동하는 현상을 묘사한다(렘4:24; 나1:5). 이러한 종말의 양상은 상징적이든 축자적이든 큰 재앙과 고통을 나타낸다(Mounce, Johnson).
=====6:15
본절은 종말의 대변동을 맞아 각 계층의 사람들이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일곱 계급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은 예외없이 심판의 대상이 됨을 시사한다(Mounce, Johnson).
@땅의 임금들과. - '땅의'라는 언급은 인간들이 처한 모습이 불신앙 상태였음을 묘사해 준다(Jub. 23:19; II Baruch 70:3,4,6; I Enich 62:3). 한편 '임금들'은 궁극적으로 권력을 가진 통치자들을 가리킨다.
@왕족들과 장군들과. - '왕족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이 메기스타네스'(*)는 최상급을 나타내는 헬라어 '메기스토스'(* ,'가장 큰')에서 파생된 단어로 임금에 버금가는 권력을 소유한 자를 가리킨다(18:23;막6:21, Swete, Mounce). 한편 '장군들'의 헬라어 '호이 킬리아르코이'(*)는 보병 약 600명을 지휘하는 '군단의 지휘관'으로(막6:21; 19:18) 군대의 권력을 가진 자들을 지칭한다.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 본문은 앞서 언급된 권력을 지닌 지배층과는 달리 자기만족적이며, 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유력한 계층을 가리킨다(13:16; 19:18).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 '각 종과 자주자'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인권이나 자유가 없는 계층과 대개 상업에 종사하는 일반 서민을 가리킨다. 설사 이들이 지배 계급이나 경제적 부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귀의 종이라면 천지가 대변동하는 종말에는 동일하게 공포와 심판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한편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는 종말에 나타날 고통과 심판을 피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심판의 괴로움을 암시한다(사2:10,19,21; 호10:8; 눅23:30; 히11:38).
=====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우리를 가리우라. - '이르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구신'(* )은 현재 능동태 직설법으로 극적이며 생동감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종말에 심판을 당하는 자들이 산과 바위에게 비참한 재앙을 가리워 달라고 하는 요구는 종말의 재앙이 얼마나 참혹한가를 시사해 준다(호10:8, Johnson, Mounce). 혹자는 본절이 수신자들을 경책하기 위한 요한의 삽입구라고 주장하나 (Caird)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가 사실적이며(롬1:18), 동시에 종말적인 사건임을 볼 때 인정할 수 없다. 한편 '우리 위에 떨어져'로 번역된 헬라어 '페세테 에프 헤마스'(* )는 부정과거 명령문으로 '지금 당장 떨어져라'는 긴급함을 나타낸다. 이는 10절의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신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무생물들에게 호소하는 비참함을 보여준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 와'는 심판의 날에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창3:8, Swete). 한편 '어린양의 진노'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본서에서 유일하게 언급된다. 어린양이 상징하는 온유와 진노가 역설적으로 결합되었다 하여 혹자는 '하나님의 진노'(11:18; 14:10,19; 15:7; 16:1,19; 19:15)를 대신해서 후대에 삽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Weiss, Spitta).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그리스도께서 종말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시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 어린양은 희생과 온유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더 깊고 영구적(永久的)인 분노를 나타내는  '오르게스'(* )와 연결시킨 것은 철저한 악의 종말을 극명하게 나타낸다(5:5; 마25:41).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 '그들의 진노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오르게스 아우톤'(* )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를 의미한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경 여러 곳에서 동격으로 언급된다(22:3,13; 살전3:11;살후2:16). 이런한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는 역사적 사실이며 동시에 종말론적 심판으로서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대적하는 악에 대한 보응이다(Mounce). 한편 '큰 날이'의 헬라어 '헤 헤메라 헤 메갈레'(*)는 문자적으로 '그 큰 그날'이란 의미로 '큰'이 강조된 표현이다. 이는 악의 무리들에게 임하는 심판의 공포로 인해서 외쳐진 용어로(Beckwith) 하나님의 마지막심판의 날임을 시사함과 동시에(욜2:11; 습1:14; 유1;6) 하나님의 진노의 범위가 전우주적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Mounce, Johnson).
@누가 능히 서리요. - 본문은 심판으로 인한 멸망이 너무 엄청나므로 그 어떤 죄인도 피할 길 없이 무력함을 나타낸다(나1:6; 말3:2).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티스뒤나타이 스타데나이'(* )는 부정과거 수동태 부정사 구문으로 수사의문문이다. 이는 본문을 말한 주체가 15절에 언급된 모든 계층을 대표한 인간들임을 나타낸다(Swete). 이것은 그들이 피할 길 없는 엄청난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여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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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6장 설교(일곱 인)==
서론)
대환난은 우주의 임종 즉 세상 끝이다. 이 대환난은 적그리스도의 권세로 다스리는 때이다-참된 그리스도인을 대환난에서 뽑아내는 기간이다, 
대환난은 구원받을 자를 총정리 하는 때이다. 
이제 드디어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심, 네 개의 말이 나온다
여기서 (전후문맥상) 말은 적그리스도가 탄 말들이고-말탄 자는 적그리스도이고, 말은 적그리스도의 사역이다.
예수님께서 타시는 말은 (이 땅에서는, 겸손한) 나귀이다(마21:1-11, 막10:46-52, 눅18:35-43), 예수님도 초림 때에는 구원을 이루기 위해 평화의 왕으로 나귀를 타시지만 재림 때에는 심판을 이루기 위해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흰 말을 타고 오신다.
>>흰말(적그리스도의 거짓 평화 조약)(흰색은 평화를 의미)
1) 탄 자가 활(적그리스도의 무기)을 가짐-예수님은 입의 검으로 심판하신다
계2:12-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계19: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백마 탄 자인 예수는 자신의 이름을 공개한다-그러나 적그리스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처럼 흉내를 내기 때문에 이름을 공개하지 못한다)
계19:14-16=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틀을 밟겠고 그 옷과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계19:21-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 활은 속이는 것-정확성이 떨어진다는 뜻(빗나가기 때문에 속이는 것이라고 말함)
시편 78:57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활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음으로 빗나감이 많다)
2)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여기에서, 면류관은 스테파노스 즉 적그리스도의 면류관이다...예수님의 면류관은 디아테마타이다-많은 면류관이다
계19:12-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 이기고-유브라데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말한다
계13:7-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 이기려고 하더라-아마겟돈 전쟁에서 이기려 하는데 패하여 잡힌 자가 된다
계19:19-20=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 붉은 말
1) 허락을 받아-용인 마귀의 허락을 받음
계13:4-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2)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림-흰말은 평화를 말하는데 이제 전쟁으로 나아감
단9:26-27=예순 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아마겟돈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평화조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 화평은 평화 조약을 말하는데 그 평화 조약을 깨뜨린다는 뜻. 평화 조약은 흰 말탄 자가 맺은 7년 평화조약이다
3) 서로 죽이게 하고-전쟁으로 죽임
계13:7-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4) 또 큰 칼을 받았더라-전쟁도 큰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에 핵 전쟁을 시사한다
계9:18-이 세 재앙 곧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 불과 연기와 유황은 핵을 말한다
3. 검은 말
1)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경제 통제 정잭으로 사람들을 통제한다
2)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하루 품삯으로 밀 한되를 사서 끼니를 잇는다)
3)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감람유와 포도주는 하나님의 종들을 의미한다(대환난 전삼년 때까지 하나님의 종들은 적그리스도가 해치지 못하게 지킴과 보호를 받는다)
계7:3-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청황색 말
1)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적그리스도의 사역은 사망으로 죽이는 일을 이룬다
2)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땅 사분의 일 권세는 유럽과 아시아를 지배함을 말한다
3)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거짓 선지자-새끼 양>들로써 죽이더라
:::: 검은 전쟁, 흉년은 기근, 사망은 질병<전염병>, 땅의 짐승은 살인
5. 순교자의 신원
1)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이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를 가진 하나님의 종들로서 제단 아래서 살아서 하나님께 신원의 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신자와 성도들은 그 영혼이 낙원에서 잠을 자고 있다(살아서 기도하는 영혼과 잠자는 영혼의 차이가 있다)
살전4:14-15=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고전15:18-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전15: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15:51-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리
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3)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흰 두루마리는 예복) 세마포는 상급
4)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6. 인자의 진노의 날(세상이 끝나는 천지개벽이다)
1) 큰 지진이 나며
계16:18-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 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계16:20-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대 지진의 결과)
2)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마24:29-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막13:24-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눅21:25-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마24:29-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막13:25-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눅21:26-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마24:29-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막13:25-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계16:20-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대 지진의 결과)
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이 바위 틈에 숨어<세상에서 잘나갈 때 떵떵거리며 살던 자들이 숨어 산다-그러므로 최후 승리는 믿는 자들이다>
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어린 양의 진노>
:::: 어린 양은 진노하시고 재림하시어서 세상은 심판하시고 교회는 구원받는다
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진노의 큰 날-예수 재림으로 심판하는 날>
7. 천년왕국 전환기
계8:1-일곱 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한편 '고요하더니'에 대한 견해는 다섯 가지이다.
(1) 혹자는 평안과 안식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Victorinus).
(2) 혹자는 안식일의 휴식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de, Scroggie).
대환난이 다 끝나고 천년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쉬는 휴식기로 다니엘서는 1335일에서 1290일을 뺀 45일 기간으로 본다
(3) 혹자는 이스라엘 즉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찬양을 듣기 위한 침묵이라고 주장한다(Charles, Rist).
(4) 혹자는 핍박을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와 절규를 듣기 위한 침묵이라고 주장한다(6:10, Beckwith, Barclay).
(5) 혹자는 보다 격렬하고 광범위한 재앙을 가져다 주는 일곱 나팔의 진노가 임하기 이전의 긴장감과 경외심을 나타내기 위한 침묵이라고 주장한다(Ladd, Johnson, Morris, Mounce, Greijdanus). 다섯가지 견해 중 마지막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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