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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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7장

===인치심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각 나라에서 온 무리

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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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 (개요)

본 장에 수록된 내용은 앞으로 있을 이 세상의 큰 재난을 예언하는 여섯째 인이 개봉된 후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교회의 큰 혼란을 경고하는 일곱 나팔 소리들이 울러펴지기 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 양자 사이에 있는 일종의 안위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큰 재난의 때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은혜와 위로가 간직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Ⅰ. 바람을 붙잡아 두심(1-3).

Ⅱ. 하나님의 종들을 인치심(4-8).

Ⅲ. 천사들과 성도들이 이 일을 두고 찬양함(9-12).

Ⅳ. 그리스도께 충성하고 그를 위해 고난 당한 성도들이 누릴 영광과 축복에 대한 묘사(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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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환상(계 7:1-12)

Ⅰ. 여기서 우리는 바람을 붙잡아 두는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아마 여기서 바람이 의미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오도와 미혹의 바람, 즉 크게 잘못 인도할 종교적인 과오와 타락일 것이다. 때로 성령이 바람으로 비유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서로 엇갈려 불어오는 "사망의 바람", 곧 악한 영들을 암시하고 있다. 

사방에서 불어닥칠 그 바람은 하나님의 동산과 포도원인 교회를 크게 해하며, 가지를 꺾어뜨리며 과일을 시들게 한다. 

마귀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마귀는 큰바람을 이용하여 욥의 맏아들의 집을 무너뜨렸다. 

악은 바람과 같다. 뿌리 없는 자들을 흔들어 놓으며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엡 4:14).

1. 이것들은 "땅의 바람"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 바람들은 지면 가까이 에만 낮게 불기 때문이다. ...하늘은 언제나 맑고,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2. 이 바람들은 "땅 네 모퉁이에 선" 네 천사들의 조정에 의해 제지당하고 있다. 

이는 악한 영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작용할 수 없다는 것과 천사들은 교회의 원수들을 제지시킴으로 교회를 돕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3. 천사들이 바람을 제지하고 있는 기간은 어느 한 기간이며,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이다. 

하나님은 시험과 유혹의 때에 그의 종들을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돌봐 주시며, 거기에 물들지 않도록 안전한 길을 마련해 놓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선 그들을 인치심 통해 든든하게 세워 주시고 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까지 그 성품이 자라도록 [시련을 통해] 그들을 단련하신다. 

그들이 시련 받는 때도 여전히 모두 하나님의 품에, 장중에 있고, 주님 마음과 손바닥에 그들의 이름을 새겨 놓으셨다.

Ⅱ. 하나님이 종들에게 인치시는 것을 여기서 살펴보자.

1. 이 일은 천사 곧 "다른 천사"에게 맡겨졌다. 

어떤 천사들이 사탄과 그의 부하들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제지하고 있는 동안, 다른 천사들은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을 가려내기 위해 그들에게 표시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고용되었다.

2. 그들이 구별되는 방법은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이 찍히는 것이다. 

그 인이 이마에 찍히리만큼 그 자신도 알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뚜렷하게 공개된다. 

그리고 그 표시로 말미암아 그들은 가장 흉악한 때에도 자비와 안전의 혜택을 받도록 구별되었다.

3. 인 맞은 자의 수를 살펴보자.

(1)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의 수는 각 지파마다 일만 이천이요, 도합은 "십 사만 사천" 명이다. 

여기에 나오는 지파의 명단에 단 지파가 빠졌다. 아마 그들은 너무나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파의 순서도 바뀌었다. 아마 하나님께 대한 각 지파의 충성의 다소에 따라 작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숫자가 예루살렘 멸망시에 살아남도록 자비를 입게 될 유대인들의 숫자를 나타내었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때가 이미 지나갔으므로 보다 더 넓게 그 숫자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종말시에 남겨놓도록 선택한 자의 숫자에 해당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예루살렘의 붕괴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사실 붕괴되었다는 증거를 대기도 곤란하다) 이 숫자는 다만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우신 선택에 의해 그 백성 중에 남겨놓으시고자 하신 숫자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만 우리는 하나의 무제한적인 수를 나타내기 위해 제한된 수를 사용한 경우를 찾아 볼 수 있다.

(2) 이제 이어지는 광경을 보라,  다른 족속들 가운데서 구원받은 사람들에 관한 기사가 있다(9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 구원받았다." 

그들이 [이마에] 인을 맞았다는 말은 비록 없지만, 그들은 모든 족속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그의 교회로 인도하심을 받고, 보좌 앞에 서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보혈과 극진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침받았으리라!!]

①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 가운데서 보다 이방인들 가운데서 더 많은 영혼들을 추수하실 것이다.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사 54:1).

② 여호와께서는 누가 그의 사람인 것을 아시며, 위험한 시련의 때에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신다.

③ 하나님의 교회는 비록 사악한 세상과 비교해 볼 때 적은 무리에 불과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조직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그 조직이 크며 앞으로도 더욱 확장되어 나갈 것이다.

Ⅲ. 천사들과 성도들이 이를 두고 부른 찬양을 들을 수 있다(9-12절).

1. 그 찬양은 유대의 남은 자들을 남겨 놓으신 것과 그들을 불신앙과 파멸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돌리는 성도들의 찬양인데(내가 보기에), 그 성도들은 이방인 신자들인 것 같다. 

유대의 교회는 이방인의 교회를 위해 그들이 믿기 전에 기도했고, 이방인의 교회는 다른 유대인들은 멸망당하는 판에 그래도 그 중에서 많은 유대인들을 남겨 주시는 은혜를 보이신 것을 인해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1) 찬양하는 성도들의 자세에 대해 살펴보자. 

그들은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 즉 창조자와 중보자 앞에 서서 찬양하였다. 

종교적인 예배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간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시에 하나님의 존전에 나간다는 자의식을 가져야 하며,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한다. 

하나님의 보좌는 중보자가 없이는 죄인들이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곳이다.

(2) 그들의 복장에 대해 살펴보자.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서서 찬양하였다. 

그들은 칭의와 성결과 승리의 옷을 수여 받았으며, 흔히 정복자들이 개선식에 임할 때에 하듯이,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모습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마친"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이 마지막으로 취하게 될 모습이다.

(3) 그들의 직분에 대하여 알아보자. 

그들은 "큰 소리로 외치기를,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교회가 이 세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세력이 확장되어지기를 바라는 "호산나" 소리 또는 하나님과 어린양에 대해 그들이 베풀어주신 위대한 구원에 대해 찬양을 돌리는 "할렐루야" 소리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찬양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로 관련지어졌다. 아버지는 구원을 계획하시고, 아들은 그 구원을 완성하시었다. 

그 구원을 찬양하는 자들은 여호와와 어린양을 축복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공개적으로 할 것이며 영원히 그렇게 할 것이다.

2. 천사들의 찬양에 대하여(11,12절) 살펴보자.

(1) 그들이 서 있는 장소는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있으며,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그 주변에 서 있는 곳이다.

(2) 그들의 찬양의 자세는 매우 겸손하며 크신 외경을 나타내는 태도이다. 

"그들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며, 아무 죄도 짓지 않았고, 또 언제나 하나님의 앞에 있던 천사들도 그들의 얼굴을 가리웠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것을 보라! 

그렇다면 우리 연약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출전에 나갈 때는 얼마나 더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하며, 깊은 외경심을 품어야 하겠는가! 

우리 역시 그의 앞에 엎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모든 찬양에는 영적인 외경심과 겸손한 태도가 모두 있어야 한다.

(3) 천사들의 찬양의 내용에 대해 알아보자. 

그들의 찬양은 성도들의 찬양에 대해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다. 

하늘에서는 천사들과 성도들 사이에 온전한 조화가 이룩된다. 그리고 나서 천사들은 그들 자신들의 찬양을 덧붙다.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로다. 아멘."

① 그들은 모든 지혜와 능력과 힘이 하나님께로서 비롯되며, 모든 영광을 그가 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② 하나님은 찬송과 영광과 축복을 영원히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라고 그들은 선언하며, 또 그들은 "아멘"으로 이를 확언해 주고 있다. 

우리 하늘의 일이 어떤 것인지 알며, 또 우리의 마음이 늘 그것을 바라며, 또 그런 생활에 훨씬 더 젖어 있기 위해서는 그런 찬양의 생활을 지금의 세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우기 저 세상에서 우리가 축복된 백성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찬양도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더욱 열심히 찬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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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누릴 영광과 축복(계 7:13-17)

여기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충성스럽게 섬겼으며, 그를 위해 고난 당한 성도들이 누릴 영광과 축복에 대한 묘사를 볼 수 있다.

Ⅰ. 장로들 중의 하나가 질문을 하였는데 이는 자기가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요한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목사들은 교인들로부터, 더욱이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성도들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 

하늘에 있는 매우 낮은 성도 하나가 이 세상에 있는 위대한 사도보다 아는 것이 더 많다. 

그런데 그 질문을 두 가지로 하고 있다.

1.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냐는 것"과 또

2. "그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그것은 아가서 3장 6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냐"고 묻는 것과 같은 놀라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여진다. 

충성된 성도들은 우리의 주목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주목해야" 한다.

Ⅱ. 사도의 응답은 그 자신의 무지로 전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그 장로에게 알려 주기를 간청하는 것이었다.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자는 그 자신의 무지를 나타내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누구든지 그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자에게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소원을 감추지 말아야 한다.

Ⅲ. 승리의 종려 가지를 손에 들고 "흰옷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많은 수의 순교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사도 요한은 듣게 되었다. 

그리고 주의를 환기시키도록 일깨움을 받았다.

1. 그들은 전에 매우 천하고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전에 큰 환난을 당했는데,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으며, 사탄의 유혹을 받았으며, 때로는 그들 자신들의 영혼이 괴로움을 당했으며, 물질이 궁핍하기도 했으며, 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하늘에 가는 길은 많은 환난 가운데를 통하고 있다. 그러나 환난이 아무리 심하다 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환난을 용케 참고 이기면, 하늘에서의 우리의 생활을 더 영광스럽게 만들어 준다.

2.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영광과 축복은 그들이 애써 준비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었다"(14절). 그것은 순교자 자신들의 피가 아니라, 어린양의 피이다. 

어린양이 되어야 죄를 없이할 수 있으며, 인간의 영혼을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고 정결하게 할 수 있다. 

다른 피는 다만 얼룩지게 만들뿐이다. 성도들의 옷을 희고 깨끗하게 하는 것은 오직 어린양의 피뿐이다.

3. 그들이 누릴 축복이 다음과 같이 준비되어 있다.

(1) 그들은 매우 축복된 자리에 서 있다. "그들은 밤낮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다." 또 "그들 가운데 살고 있다." 그들은 충분한 기쁨 가운데 살고 있다.

(2) 그들은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섬기는 직분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누리고 있다. 

그들에게는 약함도, 지루함도, 염려도 없다. 천국은 고통을 모르는 가운데 섬기는 곳이다. 

게으름을 모르는 안식의 곳이다. 다시 말해서 기쁨이 충만한 안식을 찬양하는 곳이다.

(3)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불편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축복을 누리고 있다.

① 그들은 모든 궁핍으로부터 자유롭다.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한다." 모든 요구가 공급되며, 궁핍에서 오는 불안감이 사라졌다.

② 모든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들은 이제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한다.

(4) 그들은 주 예수의 사랑과 인도하심 가운데서 축복을 누리고 있다.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 

예수께서 그들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기쁘게 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주시기 때문에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한다.

(5) 그들은 모든 슬픔으로부터 건짐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전에는 죄와 고통 때문에 슬픔을 당하고 많은 눈물을 흘렸으나, 하나님이 친히 부드러운 은혜의 손으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매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 때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는 사랑하는 자녀를 본 아버지처럼 그들을 대하사, 그들을 유도하여 주시며,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며,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신다. 

이 때문에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슬픔을 감당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을 능히 이길 수 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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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제 7장
=====7:1
@이 일 후에. - 이는 환상의 새로운 국면의 시작으로 본장이 여섯째 인의 재앙과 일곱번째 인을 떼는(8:1) 그 사이에 일어나는 것임을 나타낸다.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 '네 천사'는 바람을 맏은 천사로서 이들은 자연계를 다스리는 천사들이다(Mounce), 한편 '땅 네 모퉁이'는 세상의 모든 곳에서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을 예언한 사 11:12의 '땅 사방에서'와 동일한 의미의 표현으로 온 세상을 가리킨다.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 '바람'은 파괴나 전쟁의 재앙을 상징한다(렘49:36-38;51:1). 그러기에 '땅의 사방의 바람'은 종말에 온 세상에 임할 커다란 재앙을 암시한다(왕상 19:11; 욥 1:19;21:18; 시 1:4;14:18; 단 2:35;7:2). 한편 '붙잡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툰타스'(* )는 '단단히 붙잡다'는 의미를 가진 '크라테오'(* )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 계속해서 재앙을 행사치 못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Charles).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 '불지 못하게 하더라' 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 메 프네에 아네모스'(* )는 현재 능동태 가정법으로 '바람이 계속해서 불지 못하도록'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인치기까지 재난을 중지시킨 사실을 암시한다(2, 3절).
=====7: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 '다른 천사'에 대해서 혹자는 그리스도로 해석하나 (Walvoord, Ladd) 앞서 언급된 '네 천사'외에 또 다른 천사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Johnson, Mounce, Morris, 8:3 주석 참조). 본절에서 다른 천사의 역할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인을 쳐 보호 받도록 하는 것이다(3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 '살아 계신 하나님'이란 표현은 묵시 문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이교의 죽음은 우상에 반하여 창조자의 살아 계심을 부각시키는 표현이다(4:9, 10;15:7; 마 16:16;26:63; 히 3:12). 요한은 이 표현을 사용하여 비록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인을 친다 할지라도 그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시사한다. 한편 '인'의 헬라어 '스프라기다'(* )는 자신의 문서나 노예, 혹은 소유물등에 소유권이나(엡 1:3), 보증(고전 1:22)을 나타내는 표시를 뜻한다. 이는 짐승의표와 대조를 이루어(13:16)인을 맞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소유사 되며(14:1)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호나 안전을 보장받는 자임을 시사한다.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 '해 돋는 데로부터'의 헬라어 '아포아나톨레스 헬리우' (* )는 문자적으로 '동쪽으로부터'를 의미한다. 인을 가진 다른 천사가 동쪽에서 올라온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은 다석 가지이다. (1) 혹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 문에서 올라온다는 예언의 성취로 해석한다(겔 43:4,Swete). (2) 혹자는 메시야가 동방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ibylline 3:652, Erbes, Lohmeyer). (3) 혹자는 '동쪽'이 묵시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일종의 자세한 묘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Mounce). (4) 혹자는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동쪽에서 별을 보며 박사들이 온 사실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마 2:1,Barclay, Morris). (5) 혹자는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주는 태양이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암시한다고 가리킨다(De Wette, Hengstenberg). 이러한 다양한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 대하여는 몇몇 해석이 있다. (1) 혹자는 '하나님의 종'들(1:1;2:20;19:2, 5;22:3,6)과 '우리 하나님'(10, 12;12:10;19:1, 5)을 합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ngel). (2) 혹자는 하나님께 봉사함에 있어서 천사들과 비할 수 있는 존재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Robertson). 두 가지 견해 중 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장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인침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마에 '인침'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공개적으로 임할 마귀의 권세로 부터 하나님의 종들이 보호받는 것으로 해석한다(Charles, Clark). (2) 혹자는 이기는 자가 받게 될 흰 돌(2:17) 혹은 성전의 기둥으로 해석한다(Rist). (3) 혹자는 성령 혹은 초대교회 이후의 세례로 해석한다. 세 가지 견해중 첫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인'은 소유나 보호를 나타내는 것으로 (9:4;14:1;겔 9:1-7;딤후 2:19) 짐승의 미혹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 대상에서 벗어나 승리와 보호를 약속받는 것을 시사한다(13:7;16:2;20:4, Johnson).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 '해하지 말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아디케세테'(* )는 강한 부정 명령의 능동태 가정법으로 '해하기 시작하지 말아라'는 의미이다. 이는 인침을 받은 자는 짐승의 미혹에 기만당하지 않고 종말의 재앙에서 보호 받아 승리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7:4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 '인맞은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에스프라기스메논'(* )은 완료 수동태 분사로 더이상 변함이 없는 완료된 수를 요한이 들었음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중에서. - '이스라엘'에 대한 해석은 본서에서 가장 난해한 해석 중의 하나로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스라엘을 문자적 의미로 취급하여 유대인 성도들로 해석한다(Bengel, Clarke, Walvoord). (2) 혹자는 '이스라엘' 을 문자적 의미가 아닌 영적 의미로 해석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 즉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De Wette, Ladd, Johnson, Moffatt, Charles, Plummer,Vincent, Kiddle, Rist).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에서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로, 새 예루살렘 성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예수를 따를는 자를 참이스라엘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14:4;15:1ff. ;21:9-12). 더욱이 5-8절까지 언급된 12지파명도 구약성경에 나타난 12지파명과 다르다.
@인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 '십 사만 사천'이 누구를 나타내는가에 대한 견해는 세가지이다. (1) 혹자는 순교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Kiddle,Caird). (2) 혹자는 '이스라엘'자르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십 사만 사천'도 문자적으로 인치심을 받고 보호함을 받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 해석한다(갈 6:16, Walvoord,Richardson). (3) 혹자는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십 사만 사천을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완성된 교회로 해석한다(롬 2:28, 29;9:6, 7, Alford, Swete, Beckwith,Vincent). 이 세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한편 144,000에 대한 상징적 숫자 해석은 (3 * 4)** 2 * 10 ** 3 = 144,000이다. 3은 하나님의 수이며 4는 땅의 수로서 곱한 수가 완전수인 12이며, 이 12의 제곱과 충만수 10의 세제곱이 곱해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충만함을 의미한다(Greijdanus, Lohmeyer, Ladd,Johnson).
=====7:5,6,7,8
@유다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일만 이천이라. - 요한은 인맞은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열거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이름과 순서와 내용은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Ladd, Lohmeyer, Hendriksen). 왜냐하면 12지파의 순서가 창세기나 에스겔서와 다를 뿐만 아니라 기록된 방식이 독특하여 영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점에서 비롯된 본문의 특징은 다섯 가지이다. (1) 구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이 먼저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창 35:22-26;신 33:5-25) 본문에서는 유다 지파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이는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나신 것을 반영하고 있다(창 49:10;대상 5:2;히 7:13, 14, Johnson, Mounce, Morris). (2) 본문에서는 단 지파가 생략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단'(* )이 부주의로 '만'(* , man, '사람')으로 기록되었거나(Spitta, Bleek) 혹은 우상 숭배로 인해서 고의적으로 제외되었거나(창 49:17;삿 18:18, 19, 30;왕상 12:29, 30, Clarke), 아니면 렘 8:16을 확대 해석하여 단 지파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는 랍비들의 해석과 연관되어 제외되었다고 한다(Weiss, Charles, Alford, Walvoord). (3)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동시에 등장하지 않고 본문에서 에브라임은 생략되고 대신 요셉이 삽입되어 있다. 이는 에브라임도 단 지파와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로 인해서 생략되었고(호 4:17) 단 지파의 생략으로 12숫자를 맞추기 위해 욥셉이 삽입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Johnson, Mounce). (4) 레위 지파의 삽입이다. 요셉 지파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로 나뉘어 12지파에 들어가고 레위 지파가 12지파에서 빠져 제사장 지파로서 신분이 격상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에 본문에서는 레위 지파가 삽입되어 혈통적 제사장 지파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5) 모든 지파에 '중에 일만 이천'이 반복된다. 이는 12의 1,000배로 완전하고 큰 숫자임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동일하게 '...중에'(* , 에크)를 반복하여 인맞은 자들이 선택된 무리임을 암시해준다(Johnson).
=====7:9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은 앞서 언급된 십사만 사천과 본절 하반절에서 언급되는 '셀 수 없는 무리'를 연결하는 표현이다(5:9 주석 참조). 이렇게 요한이 중복적 으로 표현한 것은 144,000이라는 숫자가 영적인 의미의 수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구원의 문이 모든 민족에게 열려져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Morris).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 본문이 누구를 의미하는가에 대하여는 세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큰 무리'가 십 사만 사천이라는 수로 상징된 자들과 동일인이라고 해석한다(Beckwith, Morris, Eller). (2) 혹자는 십 사만 사천과 구별하여 십 사만 사천은 유대인을 가리키고 본문은 큰 환난 가운데서 구원받은 이방인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Lamp). (3) 혹자는 본문이 큰 환난 때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순교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Kiddle, Moffatt). 세 가지 견해중 첫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 '흰 옷'은 정결과 승리를 상징하는 옷으로(3:4 주석 참조)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아 구속받았음을 나타낸다. '종려 가지'는 일반적으로 승리나 기쁨의 상징으로 사용된다(요 12:13, Trench, Vicent, Alford).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흰 옷을 입은 허다한 무리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속 하심에 대해 기쁨으로 찬양할 것이다.
=====7:10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 본문은 허다한 무리들의 찬양가(9절). '구원하심'의 헬라어 '소테리아'(* )는 허다한 무리 자신들의 업적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어린양의 구속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을 가리킨다(Caird, Weymouth). 허다한 무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하나님의 구속하심에 대해 찬양을 성부와 어린양에게 돌린다(5:13;19:1).
=====7: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 '주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클로'(* )는 문자적으로 '원형으로'라는 뜻으로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생물들을 옹위하는 모습을 묘사한다(5:11 주석 참조).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 '엎드려 얼굴을 대고' 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산...에피 타 프로소파 아우톤'(*)은 경건한 예배의 행위를 나타낸다(4:10;5:14;11:16;19:4, 10;22:8, Charles).
=====7: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 본문은 모든 천사가 구속된 자들의 찬양에 대해(10절) '아멘'으로 화답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으로 5:12절의 찬양과 대조를 이룬다. 5:12절의 찬양과 대조해보면 본문의 찬양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1) 5:12, 13의 찬미는 어린양에게 바쳐졌으나 본절은 하나님께 드려진다. (2) 찬양 내용 중에서 5:12의 '부'가 본절에서는 '감사'로 대치되어 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것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구속하신 것에 대한 것이다. (3) 본문에 '세세토록'이란 말이 삽입되어 이 모든 것이 영원한 것임을 강조한다. (4) 본문에는 두 번의 '아멘'이 사용된다. 처음의 '아멘'은 큰 무리의 찬송에 대한 응답이며 마지막의 '아멘'은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영광스런 예배의 모습을 암시한다(5:12-14, Morris, Mounce,Lohmeyer).
=====7: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 '장로 중에 하나'는 본서 가운데 나타나는 교회를 대표하는 장로들이 아니라 어떤 천상적인 존재인 듯하다(4:4 주석 참조, Johnson). 한편 '응답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크리데'(* )는 '아포크리노마이'(* ,'대답하다')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응답한 사실을 나타낸다. 이는 예언서에서 흔히 등장하는 문답 형식으로(렘 1:11;겔 37:3;슥 4:2, 4, 5) 질문없이 스스로 해석하고 답하는 히브리어 중복성(Hebrew redundancy)을 나타낸다(Swete).
=====7:14
@내가 가로되.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카'(* )는 완료 능동태로 생생한 증언을 나타낸다(Swete).
@내 주여. - 이는 천상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Vincent).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 '당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수'(* )는 강조적인 표현으로 '바로 당신'이란 의미이다. 이 말에는 자신의 무지에 대한 진지한 고백뿐 아니라 존경과 두려움의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Plummer, Swete).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 '큰 환난'의 내용에 대해서는 몇몇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모든 시대의 성도가 겪는 보편적인 환난으로 해석한다(Morris, Alford, Greijdanus, Niles). (2) 혹자는 종말에 겪을 바 대환난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3:10;단 12:1;막 13:19, Charles, Walvoord, Mounce).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큰 환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 들리프세오스 테스 메갈레스'(*)에는 정관사 '테스'(* )가 사용되어 그것이 특정한 사건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린양의 피에.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 하이마티투 아르니우'(*)는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 구문으로 그들의 사죄 받음이 인간의 공적에 의한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속죄피로 말미암은 것임을 시사한다(사 1:18;히9:14;요일 1:7, Swete, Milligan). 한편 '씻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플뤼난'(*)과 '희게 하였느니라'의 헤라어 '엘류카난'(* )은 모두 부정과거 시제로 단회적인 행위를 나타낸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 사역이 단회적이면서도 그 효력은 영원함을 나타낸다. 허다한 무리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깨끗함을 입고 구속받은 자들이다.
=====7:15
@그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투토'(* )는 문자적으로 '이것 때문에'라는 의미로, 본문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인한 결과임을 나타낸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 본문은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자가 누리게 될 특권에 대한 진술이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담대함은 오직 어린양의 속죄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이다(히 10:19).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 본문은 21:22에 '성전이 없다'는 말씀과 상치되는 듯하다. 그러나 본절에서 17절까지는 21, 22장에 나오는 구속받은 자들과 연관된 것이기에(21:3, 4,6)본문의 성전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Johnson). 한편 '섬기며'의 헬라어 '라트류우신'(*)은 '봉사한다'는 의미를 가진 '라트류오'(* )에서 파생된 단어로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은 물론 '제사장들의 특별한 제사적인 예배'를 의미한다(마 4:10;히 8:5). 이것은 본문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이 제사장의 중보나 제물의 필요없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며 예배하며 섬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벧전 2:9). 그렇지만 섬김과 예배는 '밤낮'없이 행해진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성에는 밤과 낮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21:25;22:5). '밤낮'은 쉼이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상태를 나타낸다(20:10, Mounce). 구속받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지속적으로 그를 경배하고 섬기게 된다.
@보좌에 않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 '장막을 치시리니' 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케노세이'(* )는 미래시상으로 이래에 함께 거하실 것을 나타낸다. 이는 광야에서 여러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다(출 13:21;대하 7:1-3). 즉 본문은 하나님께 구속 받은 자들과 함께 거하셔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약속의 성취를 나타낸다(겔 37:27;슥2:10, Morris, Johnson, Mounce).
=====7: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 본문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벧론 포로 상태에서 귀환할 때의 이사야의 진술을 반영한 것으로(사 49:10) 구속 받은 자들이 누릴 영원한 축복을 나타낸다. '주림과 목마름'은 단순히 육체적 빈곤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갈급의 상태를 나타낸다. 구속 받은 자들은 그러한 주림과 목마름이 더이상 없는 완전히 충족된 상태를 누리게 될것이다(마 5;6;요 6:35).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 '아무 뜨거운 기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 카우마'(* )는 '불에 타다'라는 의미를 가진 '카이오'(* )에서 파생된 단어로 고통스러운 열기를 말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고통이나(Morris) 혹은 넷째 대접의 재앙을 가리킨다(16:9, Mounce). 한편 '상하지 아니할지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데 메 페세'(* )는 '떨어지다'의 의미를 지닌'피프토'(* )의 부정관사 시상으로 강한 이중부정이다. 이는 구원받은 자들에게 지상에서와 같은 고통스러움이 경단코 없을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성도들이 전형적인 육체의 모든 고통에서 장차 해방될 것임을 시사한다(Mounce, Moffatt, Ford).
=====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 '보좌 가운데 계신'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보좌와 이십 사 장로들과의 중간 위치를 가리키나 위치적인 의미보다는 그리스도의 '중보자 직임'을 상징한다. 한편 '저희의 목자가 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마네이 아우투스'(* )는 '보살피다'는 의미의 '포이마이노'(* )에서 파생된 미래 능동태로 문자적으로 '그들을 보살피실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중보적 사역을 실제로 행하실 것을 약속해 준다(요 21:16;행 20:28;벧전 5:2, Swete, Ford).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 '생명수 샘으로'의 헬라어 '에피 조에스 페가스 휘다톤'(* )은 어순상 '생명의'(* , 조에스)를 강조한다. 이는 다함이 없는 생명의 근원을 시사한다(21:6;22:1, 7;요 4:12, 14:7:38).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을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 본문은 사 25:8을 반영한다.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의 해당하는 헬라어 '여살레이프 세이'(*)는 문자적으로 '...으로 부터 제거해 버리다'라는 의미의 미래 시상으로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구속 받은 자들을 고통과 아픔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을 시사한다(21:4). 이것은 장차 구속받은 자들이 누릴 영원하며 절대적인 희락과 평강의 축복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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