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1.0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예수님생애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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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old.champyungan.com/bbs/board.php?bo_table=4_3&wr_id=95 참평강


[[1차 예루살렘 방문]].BC4년, ...태어난지 40일만에, 결례받으심(눅2:22)
역사가 요세푸스는 헤롯 대왕의 죽음을 주전 4년 유월절 직전의 일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은 헤롯 대왕 죽음 얼마 전의 일이다(마 2장).

당시 유대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으로 주전 8년부터 시작된 인구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구레뇨는 AD6년에야 수리아총독으로 임명받았으나 이미 그전에 실질적으로 BC12년부터 수리아지방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원어적 의미로 볼 때 눅2:2의 '수리아총독이 되었을 때"란 '수리아총독 일을 하고 있을 때'란 의미인데 당시 구레뇨가 실질적으로 총독과 같이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인구 조사 방식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호적을 받는 로마 방식과 자신의 지파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을 받는 유대 방식 두 가지가 있었는데, 예수님 출생 무렵에는 유대 방식으로 호적을 실행했기에 요셉과 아기 예수를 임신 중인 마리아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야 했다(눅 2:3-5).
이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다.

출생의 기쁨과 목동들의 경배, 동방박사들의 경배도 잠시, Q께서는 요셉에게 헤롯의 유아 살해 명령을 피해 애굽으로 도망할 것을 명령하셨다(마 2:12-15).
베들레헴에서 애굽까지는 120km 거리로, 산모의 걸음을 생각하면 약 10-15일 거리에 해당한다.
아기 예수님 가정이 애굽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레 헤롯이 죽었고,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현몽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 말씀하셨다(마2:19).
이 모든 일은 단 40일 만에 이루어졌으며, 예수님께서는 40일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와 레위기 12:1-8에 기록된 출산 규례를 행하실 수 있었다(눅 2:22-24).
결례를 마치신 예수님은 성전에서 시므온과 안나 선지자를 만나셨고,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서 메시아 되심을 알아보고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예언했다(눅 2:25-38).


[[2차 예루살렘방문]] 12세 되던 해 유월절(눅2:42)
예수님께서는 12세 되셨을 때 부모님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셨다(눅2:41-42).
육신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유월절 절기를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갔지만, 예수님은 ‘아버지 집’, 성전에 남아서 랍비들과 대화하셨다(눅2:43-50).
누가복음 2:52의 아기 예수님께서 ‘지혜와 키가 자라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셨다’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장하시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되셨음을 보여준다.

그 말씀과 같이, 갈릴리로 돌아온 이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사생애(私生涯) 동안 육신의 아버지 요셉이 하던 목수 일을 하시면서(마 13:55, 막 6:3), 십계명의 제 5계명, 부모 공경의 명령대로 육신의 부모에게 효도를 행하시며 순종하고 받드셨다(눅 2:51).


[[3차 예루살렘 방문]], 공생애시작후 첫 입성, 성전정화(요2:13-22)
예수님은 서른 살이 되실 때 사역을 시작하셨다(눅3:23).
사역을 시작하시면 이후 유월절 가까이에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시작 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신다.

장사하는 집으로 타락한 성전을 정화(淨化)하시고 이 성전을 헐어버리면 3일 만에 일으키리라 말씀하셨다(요 2:13-25).

이는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영원한 성전이 완성되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
성전 청결을 마친 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니고데모를 만나 거듭남에 대해서 가르치셨으며(요 3:1-21), 유대 땅에서 제자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셨다(요 3:22, 4:1-2).
당시 세례 요한은 살렘 가까운 애논 땅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는데, 그는 그의 제자들이 예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로 가는 모습을 보며 중매자의 기쁨을 고백했다(요 3:23-36).
요단동편 베다니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으며(마 3:13-17, 막 1:9-11, 눅 3:21-22), 유대광야에서<여리고 인근의 유대광야로 인정하고 있으며 머무르셨던 시험산이 근처에 있음> 40일간 금식하시고 시험을 받으셨다(마 4:1-11, 막 1:12-13, 눅 4:1-13).
시험받으신 그 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던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요단 동편의 베다니 :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가 살던 예루살렘 인근 베다니와는 다른 곳임)로 돌아가셔서 그곳에서부터 제자들을 부르시게 되었다.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요한과 안드레를 만나 하루 함께 거하며 말씀을 가르치시고 제자를 삼으셨다(요 1:19-40).

안드레는 자기 형제 베드로를 전도하고, 예수님을 만나 전도받은 빌립은 나다나엘을 전도했다(요 1:40-51).
이후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돌아가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첫 번째 이적을 보이셨다(요 2:1-11).
갈릴리 지역 회당들을 순회하면서 말씀을 선포하던 예수님께서는(눅 4:14-15), 하나님의 정확한 시간표에 따라 나사렛 회당에서 희년을 선포하셨다(눅 4:16-30). 정확한 날짜에 희년을 선포하셨다면 이 날은 아마도 유대력 7월 10일이었을 것이다 (레 25:9-11).
그런데 이 시점에 상황이 급변한다. <갈릴리에서 요단강 주위 상하로 이동하며 사역중이었던>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세례 요한이 헤롯의 부도덕함을 지적하다가 투옥되고 만 것이다(마 14:3, 막 6:17-18, 눅 3:19-20).

이에 예수님께서는 유대 땅에서 갈릴리로 물러가셨다(마 4:12, 막 1:14).
한편, 당시 유대인들은 유대 땅에서 갈릴리에 가려면 부정하다고 생각한 사마리아를 피해서 요단강을 건너 베레아 지방을 거쳐 갈릴리로 들어가는 우회로를 택하곤 했으나 예수님은 수가 성의 한 여인을 전도하시고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거리낌 없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셨다(요 4:5-42).

‘넉 달이 지나야 추수 할 때’라는 말씀을 볼 때, 이때는 보리가 익기 전인 유대력 9월에 해당했을 것이다(요 4:35).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에 도착하신 JC께서 두 번째로 행하신 이적은 가나에 사는 왕의 신하의 죽어가는 아들을 말씀 한 마디로 고치신 것이었다(요 4:43-54).
이후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버나움을 본부 삼아 갈릴리 방방곡곡을 다니시면서 안식일마다 가르치시고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다(마 4:13-17, 막 1:14-15, 눅 4:31-32).
그리고 갈릴리에서 어부로 일하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다(마 4:18-22, 막 1:16-20, 눅 5:1-11).

<이전에 셰례요한의 제자였던 요한과 안드레, 그리고 그들이 예수께 데리고 나온 베드로는 요1:19-51을 볼 때, 공생애를 시작할 때 예수님을 처음 만난자들이었다. 이들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을 수발하였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들은 공생애 초기에 예수님을 돕다가(요4ㅣ2, 8), 모종의 이유로 갈릴리로 돌아가서 어부로 일하고 있었다>


[[4차 예루살렘 방문]]..38년된 병자를 고치다.(요5:1-9)..유월절 전 부림절<에스더서 참조..3월 중순경/유대력12월중순경> 즈음..
요한복음 5:1-9에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 ‘유대인의 명절’은 요한복음 6:4에서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라는 말씀을 볼 때, 유월절 바로 전 절기인 부림절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때는 유대력으로 12월경이다.
예수님께서 부림절 전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날은 안식일이었는데,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시작했다 (요 5:16).
이후 예수님께서는 다시 갈릴리로 올라가셔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다(마 9:9-13, 10:2-4, 막 2:13-17, 3:13-19, 눅 5:27-32, 6:12-19).

그리고 안식일에 일하심으로 안식일의 주인되심을 나타내시고(마 12:1-13, 막 2:23-28, 3:1-5, 눅 6:1-10) 병자들을 치유하시다가, 한 산에 오르셔서 산상수훈을 통하여 팔복(八福)을 선포하셨다(마 5-7장). <그 산은 갈릴리 해안 북서쪽에 있는 가버나움과 게네사렛 사이에 있는 에레모스산이 가장 유력함>
그 뒤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셔서 종을 고치셨으며(마 8:1, 5-15, 막 3:20-21, 눅 7:1-10),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셨다(눅 7:11-17).

또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다양한 비유를 통해 복음을 증거하시며 갈릴리의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셨지만(마 13:1-52, 막 4:1-34, 눅 8:4-18), 정작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인기를 시기했고 모친과 형제들은 예수님이 미쳤다며 배척했다(마 12:46-50, 막 3:21, 31-35).
실로 예수님께는 머리 두실 곳조차 없었다(마 8:19-20).3)

예수님과 제자들은 가버나움 지방에서 거라사(가다라) 지역으로 갈릴리 바다를 건너 배를 타고 이동하다 큰 풍랑을 만났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폭풍을 잠잠케 하심으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되심을 분명히 보이셨다(마 8:18, 23-27, 막 4:35-41, 눅 8:22-25).
그리고 거라사 지방에서 군대 귀신을 쫓아내시고(마 8:28-34, 막 5:1-20, 눅 8:26-39) 다시 가버나움으로 친히 찾아가셔서 혈루병 걸린 여인을 치료하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다 (마 9:18-26, 막 5:21-43, 눅 8:40-56).
그러나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오셨을 때, 나사렛 사람들은 “우리가 잘 아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며 예수님을 배척했다 (마 13:54-58, 막 6:1-6).
이후 예수님께서는 12제자에게 전도의 능력을 주시며 둘씩 [유대지역에 한하여]파송하신다(마 10:1, 5-42, 11:1, 막 6:7-13, 눅 9:1-6).
이 시기에 옥에 갇혀 있었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메시아로 소개했던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물었다(마 11:1-2, 눅 7:18-28). 이에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믿음의 실족을 안타까워하시며 그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로 비유하셨다(마 11:7).

세례 요한은 결국 엘리야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헤로디아의 궤계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마 14:3-12, 막 6:21-29)
세례 요한의 죽음을 들으신 예수님은 침통한 마음으로 배를 타고 벳새다의 빈들로 향하셨다(마 14:13, 막 6:32, 눅 9:10, 요 6:1).
요한복음 6장 4절을 볼 때, 이때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다.

빈들에 모여있는 큰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통하여 남자만 오천이나 되는 큰 무리를 배불리 먹이셨다(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요 6:1-14).
몰려든 무리가 예수님을 영적 양식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닌, 단순히 식량을 배부르게 주시는 분으로 오해할 것을 우려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게네사렛 땅으로 가도록 하시고 홀로 산에 올라가 밤이 맞도록 기도하신다(마 14:22, 막 6:45-46, 요 6:15).
밤중에 풍랑을 만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가 그들을 구원하시고 믿음 없음을 꾸중하신 뒤, 게네사렛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말씀을 전하셨다(마 14:23-36, 막 6:47-56, 요 6:16-21).
이때 종교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서부터 게네세렛까지 올라와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 트집을 잡았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유전으로 폐하는 그들을 책망하셨다(마 15:1-20, 막 7:1-23).
오병이어 사건을 목도했던 무리는 배를 타고 예수님을 쫓아왔다.

그들은 게네사렛 인근을 찾다가 결국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예수님을 따라온 것은 영혼의 양식이 아니라 보이는 떡을 먹기 위해서였다(요 6:2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버나움에서 보이는 떡이 아닌 생명의 떡으로 오신 자신에 대해서 가르치셨지만, 수많은 제자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라고 하면서 다 예수의 곁을 떠나버리고 열두 제자만이 남았다(요 6:22-71).
이후 예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올라가셔서 이방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 그녀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귀신들린 딸을 치유하신다(마 15:21-28, 막 7:24-30).
이를 시작으로 이방 지역과 갈릴리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을 전도하시다가 데가볼리에 이르러 칠병이어로 이방인 사천 명을 먹이시고(마 15:32-39, 막 8:1-10), 막달라 지방에서 ‘요나의 표적’에 대한 가르침과 건너편 벳새다에서 ‘종교지도자들의 누룩을 주의 하라’는 가르침을 주셨다(마 16:1-12, 막 8:11-21).
이후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으며, 예수님은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말씀하셨다(마 16:13-20, 막 8:27-30, 눅 9:18-21). 

이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시기 시작했다(마 16:21-28, 막 8:31-38, 눅 9:22-27).
약 팔일 후(눅 9:28),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세 제자를 데리고 기도하시기 위해 변화산(다볼산이라 여기고 있음...나사렛과 요단강 사이에 위치)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신 중에,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일에 대해서 논의하셨다(마 17:1-21, 막 9:2-29, 눅 9:28-43).
다음날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는 [귀신들려 경련 일으키는 아이를 고치신 후], 갈릴리에서 다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에 대해서 예고하셨으며(마 17:22-23, 막 9:30-32, 눅 9:44-45), 조용히 가버나움을 지나가면서 통행료 반 세겔을 내시고(마 17:24-27)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믿음이 없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도 못했고(막 9:14-29, 눅 9:38-43) 예루살렘을 향하는 길 위에서 계속 누가 크냐며 쟁론을 벌였던(마 18:1-22, 막 9:33-50, 눅 9:44-62) 철부지들이었다.

<마8:19-20에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님이 어디로 가든 나는 좇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그의 허례허식의 속마음을 보시고 "인자는 머리 들 곳이 없다"고 탄식하신 사건은 병행구절 눅 9:57-58로 보아 다섯번째 예루살렘 방문길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태가 이 사건 위치를 바꿔 기록한 것은 예수님의 형제들까지도 예수가 미쳤다며 배척하는 상황을 강조하여 전달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5차 예루살렘 방문]]..초막절(요7:1-10) 
예수님께서 주로 갈릴리에서 활동하셨던 것은 유대 지역에 예수님을 죽이려는 종교 지도자들이 칼을 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7:1).

<3대절기중 하나닝 초막절이 임박하기까지 갈릴리에 머무르신 것은 당시 70인의 전도자들을 유대를 넘어 베레아 등 이방지역까지 파송한 상태였기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초막절이 가까워 오자>예수님의 형제들은 도리어 예수님께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라”면서 유대로 가라고 종용했다.

이는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를 믿지 않고 미쳤다고 생각하여 빨리 잡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요 7:5, 참고-막 3:21).

<형제들더러는 아직 (당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으니, 형제들 먼저 올라가라 하셨음>
예수님께서는 비통한 마음 가운데, 형제들의 눈을 피해 몰래 숨어서 초막절에 맞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요 7:10).

이는 고난주간 약 6개월 전으로, 승천하실 때를 맞추시기 위함이었다 (눅 9:51).
이때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지나가기를 원하셨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간다는 이유로 예수님의 통행을 거부했다(눅 9:52-53).
길 가실 때 찾아온 한 서기관은 의로운 척 “어디로 가시든 나는 좇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의 속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인자에겐 머리 둘 곳이 없다”며 한탄하셨다(눅 9:57-58, 참고-마 8:19-20).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에 이미, 70명의 전도특공대를 세우시고 그들을 이방과 베레아지역에 앞서 보내셨었다(눅 10:1-16).

이들은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증거하며 귀신들을 쫓아냈다.

이들이 돌아와 기뻐 보고할 때, 예수님의 눈은 사단의 총 두목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계셨다(눅 10:17-18).

사단이 땅으로 떨어진 뒤, 더욱 극심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때 처음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위해 베다니를 지나가실 때, 마리아의 집에 거하시며 마리아와 마르다의 봉사를 받으셨을 것이다(눅 10:38-42).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오시는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예수님이 좋은 사람인지, 아니면 무리를 미혹하는 자인지에 대해서 논쟁이 뜨거운 상태였기 때문이다(요 7:12, 43).

예수님께서는 장막절<초막절> 중간이 되어 성전에서 가르침을 시작하셨다(요 7:11-36). 이후 장막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고, 이 말씀을 들은 무리들의 혹자는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참 선지자라, 또 다른 혹자는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올수 있겠냐며 논쟁했다(요 7:37-53).
이러한 와중에도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기도하시고 백성들을 가르치시며(요 8:1-2),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다(요 8:3-11).

그리고 성전에서 유대인들을 가르치시며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셨으나 (요 8:57-58), 유대인들은 그 말씀에 격분하여 돌로 예수님을 치려고 했다(요 8:59).
이들에게 쫓겨 나가시는 긴급한 와중에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된 이를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으로 고쳐주셨고, 이 소경의 증거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메시아인지, 귀신의 힘을 입은 것인지 논란을 만들었다(요 9:1-41, 10:1-21).


*****[[“70인 제자들”의 파송 이야기(10:1-24)]]*****

 예수가 자기를 따르는 추종자들 가운데서 특별히 열두 제자들을 세워 나중에 그들을 전도 파송했던 이야기는 공관복음서 모두에 소개되고 있다(막 3:14, 마 10:1-5; 눅 9:1-2).

그러나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는 이야기와는 별도로, 또는 열두 제자 파송에 추가해서, 70인 혹은 72인의 “다른”제자들을 다시 세워 “둘씩”파송했다는 이야기는 오직 누가복음 10장에서만 나온다.

1) 누가의 이중적인 제자 파송
 예수가 열두 제자들 이외에 칠십 인의 “다른” 제자들을 별도로 파송한 이야기가 오직 누가복음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그리고 칠십인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그들에게 주신 명령들이 부분적으로 마태복음 10장에서 열두 제자들에게 주셨던 파송 명령과 거의 똑같은 형태로 나오기 때문에, 70인 제자 파송 이야기는 누가가 특별한 의도를 갖고 이런 문학적 중복 형태(doublet)를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된다.
 누가가 칠십인 제자들의 파송 이야기를 별도로 구성하여 소개하는 이유는 눅 10:2에서 찾아볼 수 있다.

누가는 10:1에서 예수께서 칠십인의 “다른” 제자들을 뽑아 여러 마을과 여러 곳으로 “둘씩” 보내셨다고 말한 직후에, 곧바로 10:2에서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군이 적다. 그러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줍시사고 청하라”는 말씀을 첨가하였다.

누가가 이 말씀을 여기에, 즉 칠십인 제자의 파송 이야기와 관련하여 소개하는 이유는 추수하는 일, 곧 선교의 대상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고려할 때, 열두 제자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예수가 칠십 인을 파송할 때에 “둘씩”보내셨다고 했는데, 분명히 이것은 사도행전에서 안디옥 교회가 이방 선교사를 파송할 때 바나바와 바울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낸 것”(행 13:1-3)을, 그리고 나중에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결별했을 때에도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과 함께, 그리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각각 “둘씩” 한 팀을 이루어 선교 여행을 떠난 것(행 15:37-40)을 고려하여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2) “72인”제자들인가? “70인”제자들인가?
본문 사본들 가운데는 “70인”으로 기록된 것들이 있는가 하면,  또 “72인”으로 기록된 것들도 있다. 이것은 마치 창세기의 히브리어 본문에서 야벳과 함과 셈의 자손들의 숫자가 70인이라고 기록되었는데, 헬라어 70인 역 본문에서는 그 자손들의 숫자가 72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 경우를 보더라도 70이란 숫자는 분명히 보다 본래적인 72란 숫자를 나타내는 대충적인 숫자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래는 72인이었는데 전승 과정에서 나중에 70인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보인다.
70이란 숫자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사용된 숫자이기도 하다. 창세기 10:2-31의 목록에 나오는 세상 나라의 숫자가 70으로 되어 있고, 민수기 11:16-17에서는 모세가 자기를 돕기 위해 70인 장로들을 임명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이밖에도 신명기 10:22에 보면 이방 땅인 애굽에 내려갔던 70인의 유대 조상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따라서 눅 10:1에 언급된 70인 제자들은 창세기 10장에 열거된 70개의 세계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면서, 따라서 누가가 소개하고 있는 70인 제자 파송은 세상 나라의 이방인들을 위한 파송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3) 70인 제자 파송 이야기의 구성 의도
결국 중요한 질문은 다른 복음서 저자들과는 달리 오직 누가만이 열두 제자들에 이어 70인 제자들을 별도로 파송하는 이야기를 그의 복음서에서 추가해서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한 마디로 누가가 예수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 12제자들에 의한 유대인들에 대한 선교와 그 이후 초대 교회 시절에 “다른” 제자들에 의한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를 모두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누가로서는 나중에 사도행전에서 전개될 이방 선교를 염두에 두고, 초대 교회의 이방 선교가 사도행전에서, 즉 초대 교회 시대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파송과 명령을 토대로 시작된 것임을 밝히기 위해 이 이야기를 구성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누가로서는 다른 복음서 저자들과는 달리 예수가 누가복음 9장에서 일차적으로 12 제자들을 파송한 것은 유대인들을 위한 선교를 위한 것이고, 누가복음 10장에서 다시 이차적으로 70인의 “다른” 제자들을 파송한 것은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를 위한 파송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마 10:5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열두 제자들은 예수로부터 “이방사람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사람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의 잃은 양에게로만 가라”는 전도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열두 제자들로부터 사마리아 선교나 이방인 선교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사도행전을 보더라도 실제로 열두 제자들은 초대 교회 안에서 이방인 선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누가로서는 자기 시대에 이미 시작된 이방인 선교와 그 성과가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누가만이 예수가 주로 유대인들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도한 내용을 소개하는 누가복음에 이어서, 나중에 그의 제자들이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도한 내용을 소개하는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실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열두 제자들이 예수로부터 사마리아 지역과 이방 지역 선교에 대한 금지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누가 시대에 이미 시작되어 열매를 거두고 있는 사마리아 지역과 이방 지역에 대한 선교의 성과는 누구에 의한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란 말이다. 그들은 분명히 열두 제자들이 아닌 “다른” 제자들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4) 눅 9:1-6 그리고 눅9:52-56과의 관계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9:1-6에서 열두 제자들을 파송했고, 9:52-56에서는 사마리아 지역으로 “사자들”(messengers)을 보내셨으며, 10:1-20에서는 칠십 인 제자들을 파송하셨다.

이렇게 볼 경우, 누가는 열두 제자들을 유대인 선교를 위해, “야고보와 요한”을 포함한 “사자들”을 사마리아 선교를 위해, 그리고 칠십인 제자들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 파송하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 세 본문은 각각 “그가 그들을 보내셨다”는 똑같은 후렴 문구(9:2; 9:52; 10:1)로 시작되고 있다.

따라서 누가의 이 세 본문은 행 1:8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의 세계 선교를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눅 9:1-6에서 열두 제자들을 파송한 것에 이어서 눅 9:52-56과 눅 10:1-20을 기록한 것은 갈릴리 사역 초기에 제시되었던 4:16-30과 마찬가지로, 여행 설화 서두에서 복음이 모든 백성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누가의 보편주의(the Lukan universalism or globalism)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누가의 이런 의도는 다른 한편으로 그가 이른바 누가복음의“여행 설화”가운데서 소개하고 있는 예수의“큰 잔치 비유”(눅 14:15-24) 내용에서도 그대로 잘 드러나고 있다.

마태복음에서 평행 본문으로 소개되고 있는“혼인 잔치 비유”(마 2:1-4)에 의하면, 처음 초청 받은 손님들이 당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혼인 잔치에 참석을 거절했을 때, 임금이 다른 종들에게 “결혼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마땅하지 않으니 너희는 큰 거리에 나가서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라”(22:9)고 했고, 그래서 종들이 큰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만나는 대로 다 잔치 자리에 데려왔다. 그런데 누가가 소개하는 평행 본문인“큰 잔치 비유”에 의하면, 누가는 마태와 달리 처음 초청 받은 손님들이 모두 참석하기를 거절했을 때, 주인이 일차적으로 종들을 내보내서“동네 큰 거리와 골목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불구자들과 맹인들과 절뚝발이들을 이리로 데려 오너라”(눅 14:21)고 시킨 후에, 그래도 여전히 자리가 남아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이차적으로 종들을 내보내서 “큰 길이나 울타리 밖에 나가서 억지로라도 사람들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도록 하라”(눅 14:23)고 명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차적으로는 “동네 큰 거리와 골목에서” 데려오는 일이었고, 이차적으로는 “큰 길이나 울타리 밖에 나가서” 데려오는 일이었다.
다음으로 누가가 열두 제자들의 파송 이야기에 이어 다시금 칠십인 제자들의 파송 이야기를 구성하여 소개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의도 가운데 하나는 누가로서는“선교의 특권이 결코 열두 제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열두 제자들에 뒤이은 칠십인 제자들의 파송 이야기는 “열두 제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선교에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 정말이지 세계 선교가 열두 제자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란 점을 분명히 밝힘과 동시에, 사도행전에서 소개될 열두 제자들의 활동과 그들의 뒤를 이은 바울과 같은 “다른 사람들”의 활동을 명확히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생각된다. 이렇게 볼 경우, 누가복음에서 9:1-6과 9:52-56과 10:1-24는 결국 사도행전에서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로부터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리라”는 말의 모형이 되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Talbert가 말한 바와 같이 “누가의 세계 선교 신학”(the Lukan  theology of world mission)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5) 사도행전과의 관계
우리는 칠십인 제자 파송 이야기가 누가복음 10장에서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도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자료가 소개되고 있는 문맥이 또한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10장에서의 70인 제자 파송이 9장에서 예수가 열 두 제자들을 파송한 직후이기 때문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특히 예수가 사마리아 동네에 들어간 이야기(눅 9:51-56)가 소개된 직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된다.

더구나 눅 9:51-19:44는 일반적으로 누가복음의 “여행 설화”(the travel narrative)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 부분의 내용들이 대부분 사도행전의 전도 여행 부분과 여러 모로 평행을 이루고 있는데, 특히 70인 제자들의 파송 이야기가  눅 10:1-24에서 열두 제자의 파송 이야기(눅 9:1-6)에 뒤이어 소개되고 있는 점이 의미 있는 일이다.

누가에게 있어서 70인 제자들의 파송은 예수와 열두 제자들에 의한 전도 활동(누가복음)에 이어 사도행전에서 계속될 더 많은 “다른” 제자들에 의한 전도 여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선교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규정들
예수께서 12제자에게 준 선교 명령과 70인 제자에게 준 선교 명령이 이렇게도 너무나도 비슷하게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런 말씀들은 “교회의 규정들에 속하는 것”이라면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분은 실제로 역사적 예수가 아닌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며, 따라서 이 말씀은 “교회의 산물,” 곧 “후대 부활절 이후의 교회 선교 가운데서 이용되던 선교 교훈들”이라고 말한다.

초대 교회가 선교 규정으로 사용하던 것의 반영이란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눅 10:4-11에서 예수가 칠십인 제자들에게 준 선교 명령은 선교 파송을 받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선교 규정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1) “전대나 여행용 자루나 신을 가지고 가지 말라”(4절):
이 명령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생활이나 사역에 있어서 전적으로 보내신 분을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며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복음에서만 제자들을 불러낼 때 그들이 모두 “모든 것을 다 버리고”(5:11; 5:28)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는 사실과 또한 누가복음서만 제자직과 관련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13:33)은 말이 강조되고 있는 사실과도 연관되고 있다. 소유물에 마음을 뺏기는 한, 온전히 선교 사역에 임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2)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4절).
이 명령은 여러 가지 해석을 야기했다. 첫째로 이 명령은 선교 파송을 받은 사람들이 선교 활동 중에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하는 일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들의 인사는 7-8절에 암시되어 있듯이 “길에서”가 아니라 “집”이나 “동네”를 향해서 해야 할 것이다.

파송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도중에” 덜 중요한 일 때문에 지장을 받거나 잘못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일 것이다.   
(3) “이 집에 평안이 있으라”(5절).
마태에서는 “평안을 빌어주라”(마 10:12)고 했는데, 누가에서는 보다 셈족의 형태에 가깝게 “이 집에 평안이 있으라”(Peace be to this house)로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집”(“oikos")는  그 집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권속을 포함하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행 10:2; 16:15). "길에서”나누는 진부한 인사(4절 참조)와는 대조적으로 예수의 구원이 가져다주는 평안을 선포해주는 것이다.

예수의 입에서는 평안이 때때로 구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눅 7:50; 8:48).  
(4) “거기서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너희에게 주는 음식을 먹으라”(7-8절).
이것은 베드로가 사도행전 10장에서 환상 가운데 하늘로부터 내려온 더러운 짐승들을 잡아먹으라는 명령을 듣고, “주님,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속된 것이나 깨끗하지 않은 것은 먹은 일이 없습니다”(10:4)라고 주저하며 거절했던 것을 반영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 때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게 여기지 말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찾아들어갔고, 거기서 “며칠 동안”을 더 유숙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초대 교회 안에서 이방인들과 음식을 나누는 일이나 이방인의 음식을 먹는 일은 유대인들의 음식법(food laws)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이런 점에서 볼 때, “거기서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는, 그리고 “너희에게 주는 음식을 먹으라”는 명령은 이방인들을 향해 복음을 들고 나간 사람들에게는 음식과 관련하여 정결과 부정을 구별하지 말하는 교훈이기도 한 셈이다.      
(5) “병자들을 고쳐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하라”(10절)
누가는 여기서 보냄을 받은 선교자들이 해야 할 선교 활동의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병자들을 고치는 일”과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하는 일”이다.

마태 10:7-8에서는 예수가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그들이 가서 할 일에 대해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라”는 말씀(10:7)과 함께 “앓는 사람을 고쳐주고....귀신을 쫒아내라”(10:8)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누가는 여기서 그 순서를 바꾸어 예수가 “앓는 사람을 고쳐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하라”고 명령하신 것으로 기록하였다.
(6) “환영하지 않거든...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고 가라”(11절)
예수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다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보냄을 받고 사마리아 동네에 들어갔던 야고보와 요한 등 예수의 “사자들”(messengers)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예수는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제자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배척을 받을 경우, 예수는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그곳을 떠나라고 지시한다. 이것은 눅 9:51-56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들의 일행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태워버릴까요?”라고 말했던 것을 반영한다.

누가는 앞에서 예수가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그런 보복적 태도를 보였던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었다고 기록한 바 있다.

선교를 위해 보냄을 받은 자들이 영접을 하지 않았다고 보복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 되고, 다만 먼지를 털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소식만 알리고 떠나면 된다.

실제로 누가는 행 13:51에서 바울과 바나바는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발의 먼지를 떨어내고 있다고 전해주고 있다.
7) 칠십인 제자들의 귀환 보고(10:17-20)
예수의 열두 제자들의 경우에도, 파송 귀환 보고에 대한 언급은 나온다.

눅 9:10에 보면,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행한 모든 일을 예수께 말씀드렸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칠십인 제자들의 귀환 보고에 관한 누가의 기록은 열두 제자들의 경우와 아주 다르다.

열두 제자들이 돌아와 보고했을 때는 누가가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고 하는 동네로 물러가셨습니다”(눅 9:10)고 기록했다. 막 6:31에서 예수가 그들을 향해 “따로 조용한 곳으로 가서 잠시 쉬자”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수는 열두 제자들이 선교 여행으로부터 돌아왔을 때, 그들에게 휴식을 마련해주시고자 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눅 10장에서 칠십인 제자들이 선교 여행으로부터 돌아와 보고한 중요한 내용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10:17)라 한다. 그런데 예수는 그런 보고를 하는 70인 제자들에게 “귀신들이 굴복한다고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10:20)는 말씀을 주신다.

선교사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돌리며, 가장 근본적이며 궁극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인 권능을 가졌다는 것이 구원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권세를 부여받았다고 하더라도 예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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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 예루살렘 방문]] .....수전절(요10:22)
겨울이 되어 수전절(修殿節)이 되었다. 수전절은 유대력 9월 25일부터 8일간으로, 고난주간 약 4개월 전이다.
솔로몬 행각에 다니시던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찾아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밝히 드러내라고 종용하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밝혀주셨다(요 10:22-30). 그러나 깨닫지 못한 유대인들은 예수를 다시 돌로 치려 했고 (요 10:31-39), 이 사건 이후 종교지도자들은 공개수배령을 내려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했다(참고-요 11:57). 당시 교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도리어 바리새인들에게 찾아가 예수님을 밀고하기까지 했다(참고-요 11:46).

이에 예수님은 요단을 건너 베레아 지방으로 물러나셨다(요 10:40-42)

<"베레아"는 요단강동편 유대 건너편 지역으로서, 헬라에 있는 행17:10-14의 베뢰아와는 다른지역임에주의하라>)
예수님께서는 베레아 지역에서 3개월 가량을 머무셨다.

이 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고(눅 11:1-4), 주로 비유를 통해서 천국에 대한 말씀들을 집중적으로 선포하셨다(눅 11:5-16:31).
겨울 무렵,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이틀 뒤 나사로를 찾아가신다.

베다니가 위치한 유대 지역은 예수님을 이단이라며 돌로 쳐죽이려는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다(요 11:8).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기꺼이 베다니로 향하셨고, “나사로야 나오라”말씀 한 마디로 나사로를 살리셨다(요 11:1-44).

이 사건은 유대 지역 종교지도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소식으로 인해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날로 늘어간 것이다(참고-요 12:9-11).

이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눈에 불을 켜고 찾기 시작했으며 (요 11:47-53),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피해 약 5km 떨어진 에브라임 광야로 피하셨다 (요 11:54-55).  에브라임 광야로 피하시는 긴급한 와중에도 예수님께서는 전도하시기를 쉬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갈릴리와 사마리아를 빙 돌아 경유하시면서 열 명의 나병 환자를 고치시고(눅 17:12-19) 하나님 나라와 재림에 대해 가르치시며(눅 17:20-37), 기도의 자세(눅 18:1-14)와 율법의 참 의미(마 19:3-12, 16-30, 막 10:2-12, 17-31, 눅 18:18-30) 등을 말씀하셨다. 
이 시기를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최후 순회전도라고 표현한다.
유대력 12월경,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시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정치적인 메시아가 되어 세상적인 정권을 차지할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마 20:17-28, 막 10:32-45, 눅 18:31-34).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서 여리고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소경 바디매오를 고쳐주시고(마 20:29-34, 막 10:46-52, 눅 18:35-43),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며 그를 구원하시고 열 므나의 비유를 가르치셨다(눅 19:1-28).

그리고 마침내 주전 29년 유월절 엿새 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빈민촌 베다니에 예수님께서 도착하셨다(요 12:1).


[[7차 예루살렘 방문]]..AD29년...종려주일
==종려주일 (마 21:1-11, 막 11:1-11, 눅 19:29-40, 요 12:12-19)
갈릴리와 데가볼리 지역에서 예루살렘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당시의 갈릴리-예루살렘 간의 일반적 경로는 요단강을 따라 베레아  지역을 거쳐서 가는, 사마리아를 우회하는 통행로 였음) 요단강을 따라 남하하다가 여리고를 지나 벳바게와 베다니를 지나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보다 앞서 예루살렘을 향하시며 두 제자를 불러 벳바게에 가서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나귀는 말과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로 덩치가 작다. 더구나 나귀 새끼는 어린애 하나 태우기도 벅찰 정도다.

예수님께서 그런 나귀 새끼를 타셨으니 땅에 발이 닿을 듯 말 듯, 보는 사람마다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나귀새끼 위에 오르셨고, 나귀 새끼는 주저앉지 않고 자신의 등에 만왕의 왕을 태운 채 예루살렘으로 입성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유대인 약 270만 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예수님의 입성을 기뻐하면서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호산나’라고 외쳤다.

‘호산나’는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의 히브리어 ‘호쉬안나’(, 시 118:25)의 음역으로서,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생각하고 로마의 압제 속에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해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의 환호성 속에서도 저들이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박으라!”외칠 것을 미리 보시면서 고독하게 입성하셨다.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다(눅 19:41-44).

여기‘우시며’는 헬라어 ‘클라이오’로, ‘격렬한 괴로움, 비통함, 대성통곡’을 의미한다.

즉, 사람들의 열렬한환호를 받으며 들어오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통곡하고 격렬하게 괴로워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통곡하신 이유는 약 40년 뒤, 주후 70년 8월 10일에 로마의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약 11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할 것을 보셨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예루살렘의 멸망 당시, 흰 돌로 세워져 해가 높이 뜨면 황금색으로 빛을 반사해 ‘황금의 성’이라고 불리던 예루살렘의 별명 때문에 로마군 사이에 ‘예루살렘은 돌과 돌사이에 황금을 넣고 지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로마군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성벽과 성전을 파괴하였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후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그 피를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 돌리라’고 소리쳤다(마 27:25).

그 소리친 대로 성취되어 예루살렘의 멸망 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고 이후 세계 각지로 흩어져 오랜 기간 동안 천대받고 배척 받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일 먼저 성전에 가셔서 성전을 둘러보셨고, 해가 저물자 베다니로 가셔서 유하셨다(막 11:11).


==월요일: 권위의 날(마 21:12-22, 막 11:29-19, 눅 19:45-48, 요한복음에는 월요일에 대한 기사가 없다)
고난주간 월요일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을 깨끗이 하심으로써 예수님의 권위를 나타내신 날이다.
종려주일 다음날인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며 성전으로 향하셨다.

베다니에서 나와 사랑하는 제자들과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던 예수님께서는, ‘무화과의 집’이라는 지명의‘벳바게’를 지나실 때쯤 시장함을 느끼시고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찾으셨으나 열매가 하나도 없음을 보시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무화과나무는 3-4월경에 아직 먹을 수 없는 초록색 열매가 먼저 열리고, 뒤이어 잎이 나기 시작하여 6월경에 열매가 노랗게 익어 먹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아직 무화과의 때는 아니었다 (막 11:13). 그러나 이 나무는 잎이 무성했지만 초록색 열매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기 처음 맺혀지는 초록색 열매는 먼저 언약 백성이 된 장자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은 무화과나무의 무성한 잎같이 권위적인 종교의식들은 가득했지만, 정작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예수님께 저주를 듣게 되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깨닫지 못하고 열매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책망, 그리고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한 믿음의 요구였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깨끗이 하셨다. 이 성전 정화사건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있었던 사건(요 2:13-22)에 이어 두 번째이다.

성전에는 ‘돈 바꾸는 자들’이 가득했는데 이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렙돈’, ‘드라크마’과 같은 헬라 돈과 ‘데나리온’ 같은 로마 돈을 사용했지만 절기마다 속전의 값으로 드리는 성전세반 세겔(노동자 2일 품삯에 해당)을 내기 위해서는 유대 돈인 ‘세겔’로 환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환전하면서 약 12.5%의 커미션을 떼었고, 제사장들은 상인들과 결탁하여 백성들이 가지고 온 제물을 트집잡아 돌려보내고 상인들이 폭리를 취하며 팔고 있는 제물을 사도록 유도했다. 그래서 당시 하나님의 기도하는 성전은 장사하는 곳, 강도의 굴혈이 되어 있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여 성전의 매매하는 자들에게 강도라고 소리지르 시고 내쫓으셨다.

유대 백성들에게 가장 대접받던 종교지도자들을 강도라고 부르며 쫓아내신 예수님의 폭탄선언은 삽시간에 예루살렘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화요일: 변론의 날(마 21:23-26, 막 11:20-14:11, 눅 20:1-22:6, 요 12:20-50)
고난주간 화요일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공개 전도 최후의 날로 하루 종일 종교지도자들과 변론하시며 시달림을 당하셨던 날이다.
화요일 아침, 베다니를 떠나 벳바게를 지나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저주받았던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막 11:20-21, 마태는 이 사건을 즉시 일어난 것으로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다?. 마 21:19-20).
뿌리까지 마른 것은 무화과나무의 생존권까지도 박탈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씀으로 권고 받을 때가 바로 열매를 맺어야 하는 때임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종려주일에 백성들이 예수님을 열광적으로 맞이한 일 때문에 시기와 질투가 극에 달해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대중 앞에서 예수를 망신시키고자 갖은 변론과 질문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서 질문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종교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과시하고자 했지만 도리어 요한의 세례에 대한 역질문을 답하지 못하고 망신만 당했으며(마 21:23-27, 막 11:27-33, 눅 20:1-8),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두 아들의 비유:마 21:28-32, 악한 농부의 비유: 막 12:1-12, 혼인잔치 비유:마 22:1-14, 눅 14:15-24)를 통하여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셨다.
이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자신들을 책망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이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예수님을 잡고 백성들 앞에서 다시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다(마 21:45-46).
예수님 당시 유대교는 외적인 율법 준수에 대해서만 토론하는 사변(思辨)의 종교로 빠져가고 있었다.

이를테면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고 정결해져야 한다면 손은 몇 분 동안 어떻게 씻어야 하는가?’와같은 허례허식이 가득 차 있었다.
따라서 종교지도자들은 그중 난해한 사변들, 즉 납세의 대상에 대한 문제나 부활의문제, 계명 중 가장 큰 계명의 문제등 어려운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질문을 명쾌히 해결하시고,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면,어찌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칭하셨는가?’(마 22:41-46, 막 12:35-37, 눅 20:39-44, 시 110:1)라는 질문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분임을 선포하셨다.
이외에도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일곱 가지 화를 말씀하시고(마 23:1-36, 막 12:38-40, 눅 20:45-47), 예루살렘의 멸망을 미리 보시며 탄식하셨다(마 23:37-39).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던 중, 한 과부가 연보궤(헌금통)에 두 렙돈, 즉 한 고드란트를 헌금하는 것을 보셨다.

렙돈은 1/128 데나리온으로(1데나리온은 하루 노동자 임금으로 약 10만 원의 가치), 두 렙돈이면 오늘날 약 1,500원 정도에 해당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구차한 중에서도 자기 모든 소유를 드릴 만큼 아낌없이 헌금했음을 칭찬하셨다(막12:43-44).
그 후 헬라인들이 빌립에게 찾아와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도행전 17:21을 볼 때 이들은 ‘새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당시 대단한 이슈의 주인공이었던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며 십자가의 시간이 다가옴을 말씀하셨고(요 12:24-26),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 길을 놓고 번민하며 기도하시자 하늘에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약속하는 음성이 들렸다(요 12:27-33).
웅성대는 군중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 땅에서의 ‘들림’과 그 들림으로 말미암은 ‘이끎’에 대해서 가르치셨고(요 12:32-33), 믿지 않는 군중들을 떠나가 숨으셨다(요 12:36, 37-50).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나오시는 길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마 24-25장,막 13장,눅 17, 21장).

예수님께서는 가까운 미래에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을 예언하시고(마 24:1-2) 종말의 징조와 종말을 깨어 예비하고 기도하며 준비할 것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열 처녀의 비유(마 25:1-13)와 달란트에 대한 비유(마 25:14-30, 눅 19:11-27), 양과 염소의 비유(마 25:31-46)를 통해 늘 깨어 종말을 준비하는 신앙의 중요성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변론과 가르침으로 분주히 다니시는 동안 악한 종교 지도자들 역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그들은 가야바의 집에 모여 예수를 죽일 방책을 연구하고 언제 죽일지 회의를 벌였다(마 26:1-5, 막 14:1-2, 눅22:1-2).

회의 끝에 백성들의 반응이 두려우니 명절이 지나서 예수를 죽이자고 합의를 보았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주간 동안 저녁마다 예루살렘에서 베다니로 돌아가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묵으셨다.

이날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 예수님의 머리에 부음으로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했다(마 26:6-13, 막 14:3-9, 요 12:3-8). 이 향유는 300데나리온, 오늘날 수천만원에 해당하는 값비싼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리아의 행동이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고(마 26:12) 도리어 가룟 유다의 선동에 휘말려 마리아를 질책했다(요 12:4-5).

그러나 가룟 유다의 질책은 선한 사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리아의 헌금을 몰래 빼돌려 도둑질할 생각 때문이었다(요 12:6).

이 마음을 꿰뚫어보신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가룟 유다를 도적으로 지적하셨고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한 마리아를 기념하라며 칭찬하셨다(마 26:10-13, 막 14:6-9).


==수요일: 침묵의 날, 기도의 날(마 26:1-5, 막 14:1-2, 눅 22:1-6)
4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수요일에 행하신 일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 날 예수님께서 화요일에 행하신 일이 많아 베다니의 집에서 편안히 쉬셨다고 설명하면서 ‘은퇴의 날’ 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인류의 죄를 걸머지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일이 1분 1초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편안히 쉬실 리가 없다.
이날 예수님께서는 내적으로 깊이 침묵하시며 공생애 3년 동안의 모든 행적을 마음 속에 기도하심으로 정리하셨다.

그리고 나사로까지 죽이려는 종교지도자들을 생각하시고 나사로에게 피할 것을 통지하셨다(요 12:9-11).
시몬의 집에서 망신을 당한 가룟 유다는 한밤 중에 빠져나갔다.

그리고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대제사장들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팔겠노라 약속하고 은 30냥을 받았다(마 26:14-16, 막 14:10-11).
본래 종교지도자들은 명절이 끝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가룟 유다의 배신 덕분에 명절 전에 예수님을 죽이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가룟 유다의 ‘가룟’은 ‘열성적인 유대주의자’, 혹은 ‘그리옷 출신의 남자’라는 뜻으로 추측된다. 만약 가룟 유다가 그리옷 출신이라면 12제자 가운데 가룟유다만이 잘 사는 남쪽 유다 지역 출신이고 나머지는 천한 북쪽 갈릴리 출신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지역적인 역차별을 느꼈을 수도 있으며 평소 유다 지역의 사람들이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가룟 유다는 회계라는 중책을 맡으면서 야망도 가지고 제자들을 선동하는 역할을 해왔다. 처음에는 귀히 쓰였지만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데 악인으로 쓰여지게 되었다(잠 16:3).


==목요일: 고민의 날, 비애의 날(마 26:17-35, 막 14:12-31, 눅 22:7-38, 요 13:1-17:26).
목요일은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고민하신 날이다.
이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될 정도로 기도하시며 십자가를 예비하셨다.
이날 저녁을 가리켜 성경은 ‘무교절의 첫날, 양 잡는 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마 26:17, 막 14:12, 눅 22:7).

본래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칠일을 지키게 되는데 ‘무교절의 첫날’은 유월절을 포함하여 무교절 전(全) 기간의 첫날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런데 주후 29년의 ‘무교절의 첫날, 양 잡는 날’ 은 하루 앞당겨져야 했다. 주후 29년의 안식일은 ‘큰 날’이이기 때문이다(요 19:31).
여기 ‘큰 날’(μεγ?λη??μ?ρα?κε?νουτο?σαββ?το)은 안식일이면서 유월절이 겹치는 날으로, ‘큰 날’에는 유월절을 하루 앞당겨서 전 날 지키고 다음 날을 안식일로 지켰다.

즉 본래 유월절인 1월 14일은 토요일로 ‘큰 날인 안식일’로 지키고, 유월절을 하루 앞당겨 13일 금요일에 지킨 것이다.

따라서 12일 목요일은 유월절을 예비하기 위해 집에 누룩을 제거하고 유월절 만찬으로 무교병과 어린 양을 준비하는 날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날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셨다(눅 22:14-15).

그러나 마태복음 26:26, 누가복음 22:19를 볼 때 제자들은 무교병(헬라어:?ζυμο?아쥐모스)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식사 대신 유교병(헬라어:?ρτο?아르토스)을 드셔야 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식사 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요 13:1-11).

그리고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십자가의 수난이 있을 것을 가르치시면서, 서로 섬길 것을 종용하셨다(요 13:12-20).

이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은 심령에 민망하여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판다” 말씀하시며 “떡 한 조각을 찍어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자”라고 하셨다(요 13:21). 이것은 가룟 유다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다른 제자들은 무지하여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인지 깨닫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가룟 유다 자신만큼은 그 떡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만약 이때라도 가룟 유다가 그 떡을 받지 않고 눈물로 회개했다면 그는 예수님을 파는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 곧 사단이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갔고(요 13:27), 유다는 그 떡을 받고 예수님을 팔기 위해 나가고 말았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나머지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나누어지고 잔을 사례하고 주시면서 최후의 성만찬을 행하셨다(마 26:26-30, 막14:22-26, 눅 22:14-23, 요 13:21-30).
성만찬이 끝난 후,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최후의 고별설교를 하셨다.

이 설교는 요한복음 13:31-16:33에 걸쳐 길게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새 계명으로 주셨으며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셨을 때 ‘다른 보혜사’를 주셔서 영원토록 제자들과 함께 있게 하시고 전에 가르쳤던 모든 일을 기억하여 생각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유일하게 가룟 유다만이 예수를 팔러 떠나 이 마지막 설교의 자리에서 빠져있었다.
식사와 고별설교를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기도하기 위해 나아가셨다.

예수님 께서는 감람산으로 가시던 중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예고하셨다(마 26:31-35, 막 14:27-31, 눅 22-31-34).
특별히 누가복음 22:31-32을 볼 때,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제자들을 청구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예수님의 체포와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던 제자들이 다시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주님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약 오후 11시 정도에 겟세마네 동산에 도착하셨다.

감람산 중턱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께서 평소에 습관을 좇아 기도하시던 곳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여덟 제자에게는 산 아래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야고보,요한 세 제자만 데리고 동산으로 올라가셨다.

동산에 이르신 후 세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고는 돌 던질 만큼의 거리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겟세마네’는 ‘기름 짜는 틀’(‘기름을 짜는 기계’라는 뜻의 아람어 ‘가트셰마네’에서 유래)이라는 뜻이다.

이 지명의 의미처럼 예수님께서는 육체와 마음, 몸과 영혼까지 참기름 짜듯이 인류의 죄를 위해서 쥐어짜내며 ‘하나님께 바싹붙어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는 기도’(막 14:32-44, 눅 22:44)를 드리셨다. 누가복음 22:44에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4중으로 강조하면서, 그 결과 예수님의 땀이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26:39을 볼 때, 예수님께서는 얼굴을 땅에 비벼가면서 이마 가죽이 다 벗겨져 피가 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다.

그런 눈물 어린 기도 속에서, 주님과 함께 기도의 방벽을 세워야 할 세 제자는 잠들어 있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자정쯤 기도를 마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오셔서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느니 인자가 죄인의 팔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고 말씀하시고 사람들에게 붙잡히셨다.


==금요일: 수난의 날(마 26:36-27:61, 막 14:32-15:47, 눅 22:39- 23:56, 요 18:1-40)
고난주간 금요일은 영원한 우리의 구주이시며 창조자 되시는 영광의 주님께서 제자들뿐 아니라 만인간에게 외면당하시고 버림 당하시며 수난 당하신 날이다.
오전 1시경 예수님께서는 안나스의 집으로 결박당해 끌려가셨다.

안나스는 본래 주후 6년부터 9년 간 대제사장직을 맡았다가 주후 15년에 임기를 마쳤지만(59대)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사위 요셉 가야바(63대)의 임기 동안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제사장이라고 불리웠다.
이때 체포의 현장에서 도망갔다가 멀찌감치 뒤를 따라 온 베드로는 첫 번째로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했다(요 18:15-18).
약 한 시간 가량 지나 오전 2시경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셨다.

다시 멀찌감치 예수님을 따라간 베드로는 가야바의 집에서 두 번째로 욕하며 예수님을 부인하였고(눅 22:58, 요 18:25), 약 한 시간이 지나서는 세 번째로 욕하고 저주하며 예수님을 부인하였다(눅 22:59-62, 요18:26-27).

그런데 세 번째 부인할 때 닭이 두 번 우는 소리와 함께 예수님의 눈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경고에도 기도하지 않고 있다가 주님을 부인한 자신을 보고는 대성통곡했다(막 14:72, 눅 22:61).
베드로의 부인(否認)은 사단이 청구한 것이었다(참고-욥1:9-12).

그러나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있었기에 베드로는 지난 날을 회개하고 주 앞에 돌아올 수 있었다(눅 22:31-32).
오전 3시경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되었다.

누가복음 22:66에서는 산헤드린 공회가 시작된 상황을 ‘날이 새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시간개념으로 새벽이 시작되는 오전 3시를 가리킨다.
당시 유다는 로마의 속주였으나 산헤드린 공회는로마와 무관한 종교적 분쟁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라는 공회의 질문에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 대답하셨고(눅 22:66-71), 산헤드린 공회는 오전 4시 40분경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했다(마 27:1, 막15:1, 눅 22:66, 71).
오전 5시경,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끌려가서 1차 심문을 받으셨다(마 27:11-14 막 15:1-5, 눅 23:1-5, 요 18:28-38).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가 없음을 알고는 종교적인 문제에 휘말리지 않고자 오전 5시 30분경에 갈릴리를 관할하는 헤롯 왕에게 예수님을 보냈다.
헤롯 왕은 예수님의 이적을 마치 요술처럼 생각하며 보여주기를 바랐지만 예수님께서 거절하시자 오전 6시경 군병들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하고 빛나는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눅 23:8-11).
이때 로마 군병들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질하며 누가 때렸는지를 맞춰보라고 희롱하고는(눅 22:64), 수건을 벗겨 수염을 붙잡고 흔들어댔다(사 50:6-9).
새벽 6시 30분경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부과하지 않으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오!”라는 군중의 말에 가슴이 내려앉은 빌라도는 결국 유대인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선고했고(마 27:26, 막 15:15, 눅 23:24-25, 요 19:12-16), 로마 군인들은 십자가 선고 전에 쇠붙이가 붙어 있는 채찍으로 예수님의 온몸을 때렸다(마 27:26). 예수님의 등에는 골이 패여 이미 죽을 지경이 되셨다 (시 129:3).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신 곳부터 골고다 언덕까지는 약 800m 정도의 길이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골고다를 오르시면서 14번이나 넘어지셨다. 그 길은 ‘비아 돌로로사’(ViaDolorosa)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전 9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골고다 십자가 위에 달리셨다(마 27:33-38, 막 15:20-27, 눅 23:33, 요 19:17-29).

십자가 나무를 적신 피가 지구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골고다 언덕을 적셨다.

바로 그 순간 그 핏속에 들어 있는 참 생명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사망으로 사망을 삼키고 승리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세 말씀(눅 23:34, 43, 26-27) 을 하셨으며, 정오에 해가 빛을 잃어버린 뒤 오후 3시 직전에 다시 네 말씀을 하셨다(마 27:46, 15:34, 요 19:28, 30, 눅 23:46).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은 실로 예수님 전 생애의 압축이요, 인류 구속을 완성시키는 말씀이었다.
구약에 예언된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두 저녁의 사이’(출 12:6 ?‘해질 때’: 벤 하아르바임)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되셨다(마 27:57-61, 막 15:42-43, 눅 23:50-54, 요 19:38).

그러나 사망은 절대로 예수님을 잡아둘 수 없다. 3일 뒤 주일 새벽 미명 영광의 시간에 주님은 부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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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의 시신을 요구했다.

그리고 피범벅이 되어 있는 예수님의 시신을 정성스레 내리고 세마포로 감싸 자신을 위해 예비했던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다(마 27:57-61, 막 15:42-47, 눅23:50-54, 요 19:38-42, 참고-사 53:9).

니고데모 역시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와서 장사에 함께했다(요 19:39).
반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세 차례에 걸쳐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낙담한 채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빌라도를 찾아가 3일간 무덤을 굳게 지켜달라고 부탁했다(마 27:62-66).
예수님의 무덤에서의 3일은 결코 사람들처럼 쉬는 기간이 아니었다.

도리어 온전한 신성과 온전한 인성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무덤에 계셨던 3일 동안에도 쉬지 않으시고 노아때 수장되었던 영혼들에게 영으로 찾아가셔서 전도하시며 일하셨다(벧전 3:18-20).
1)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막 16:9, 요 20:11-18)
==주일 새벽, 예루살렘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 이른 시간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다른 한 여인은(눅 24:10)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
그런데 무덤의 돌문은 굴러 옮겨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이들이 근심하고 있을 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으며, 갈릴리에 계실 때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 만에 부활하심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일렀다(눅 24:5-7).

이에 여인들은 사도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다.
여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찾아가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요 20:1-2, 눅 24:9-10).
다른 제자들은 여자들의 말을 허탄하게 여겨서 믿지 않았지만(눅 24:11), 베드로와 요한은 달려가 무덤 문이 열리고 세마포가 개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기이한 일로 여길 뿐, 예수님의 부활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눅 24:12, 요 20:9).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으로 생각하여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찾아오셔서 “어찌하여 우느냐” 라고 물으셨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오해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마리아야”라며 그녀를 부르셨고, 그때서야 예수님인 줄 알아본 마리아는 “랍오니여”라고 대답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말씀하셨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그 말씀을 전했으나 제자들은 믿지 못했다.
‘랍오니’는 히브리어 ‘라부니’로 ‘나의 주인, 나의 선생님’을 의미한다.

마가복음 10:51에서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선생님이여’라고 부를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2) 세 여인들에게 나타나심(마 28:8-10)
==주일 아침, 예루살렘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그리고 다른 한 여인은 부활에 대한 말씀을 믿지 못했던 무서움과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큰 기쁨 가운데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 달려갔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평안하뇨” 인사하시자, 여자들은 그분이 바로 주님임을 깨닫고 그 발을 붙잡고 경배를 올렸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라고 전할 것을 말씀하셨다.
새벽 미명에 큰 지진과 함께 천사가 예수님의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굴리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갔던 파수꾼들은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다(마 28:11).

이에 종교지도자들은 회의를 열어 파수꾼들에게 큰 돈을 주면서 “예수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도적질한 것이다”라고 거짓말할 것을 가르쳤다(마 28:12-15).
3)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심(눅 24:34, 고전 15:5)
==주일 오전, 예루살렘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무덤까지 달려와 무덤 문이 열리고 세마포만 남아있는 것을 보았지만, 부활을 믿지 못하고 집에 돌아갔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친히 찾아가셔서 부활하심을 가르치시고 앞으로 될 일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4)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눅 24:13-35, 막 16:12-13)
==주일 오후 - 저녁, 엠마오 도상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중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는 예수 일당으로 몰려 체포될 것을 두려워하여 안식일이 지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 두 제자는 여인들의 증거를 받았지만 믿지 못하고 안식일이 끝나자 무교절을 지키지 않고 엠마오로 향했다.
이때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모세로부터 선지자의 모든 글로 시작하여 성경에 쓴 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자세히 밝혀주셨다.
두 제자는 처음에는 ‘저분이 말씀을 참 은혜롭게 하는구나’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 함께 음식 잡수시며 떡에 축사하여 주실 때 눈이 밝아져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음을 깨달았고 성경을 풀어주실 때 속에서 마음이 뜨거워졌음을 느꼈다.
이들은 그 시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다른 제자들에게 고하였지만, 나머지 제자들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
5) 도마를 제외한 열 사도와 따르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심(눅 24:36-49, 요 20:19-25)
==주일 저녁, 예루살렘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언들을 믿지 않고 공포에 사로잡혀 한 곳에 모여 숨어 있었다(요 20:19).
이에 예수님께서는 닫힌 문을 열고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여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금 나타나신 주님은 영으로 나타나신 것이라고 생각하자, 예수님께서는 친히못 자국 난 손과 발, 창에 찔린 옆구리를 여주시며 부활은 영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육간에 온전한 부활임을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큰 기쁨 앞에서 ‘이건 꿈이다’ 생각하며 오히려 믿지 못했다(눅 24:4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시면서 다시 한 번 주님의 부활이 영육간의 온전한 부활임을 보여주시고 구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가르치시며 성경을 깨닫게 하셨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주시며 죄 사함의 권세를 주셨다.
6) 도마를 포함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막 16:14-18, 요 20:26-29)
==부활 후 8일째, 예루살렘
열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았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요 20:24).

그는 다른 제자들의 증거를 믿지 않고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며 장담했다.
요한복음 20:26의 ‘여드레를 지나서’는 무교절 기간이 끝났음을 보여준다. 여전히 제자들이 모인 집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날 도마는 열 제자와 함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닫힌 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의심 많은 도마에게 손가락을 내밀어 손을 만져보고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고,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자들은 복되도다”라고 가르치셨다.
7)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일곱 제자들에게 보이심(요 21:1-14)
==새벽, 갈릴리 호수
부활하신 예수님은 만났지만 여전히 제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이들은 예수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셨던 갈릴리로 가라는 말씀을 기억하지도 못했다.

이에 금새 목표를 상실해버린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은 본업인 어부로 돌아갔고, 도마와 나다나엘, 다른 제자 둘이 동참했다.
이들은 다 같이 고기를 잡기 위해 밤에 배를 타고 나갔다.

당시 갈릴리의 어부들이 배를 타고 사용했던 그물은 세마포를 엮어 만들었기에, 물고기가 그물을 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워져야지만 어업 활동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날이 새어가기 시작하기까지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을 수 없었다.
이때 바닷가에 서 있던 한 분이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 말씀했고, 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자 그물이 찢어지기 직전까지 153마리나 되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예수님이심을 깨달은 요한은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 이야기했고, 베드로는 그 말을 듣자마자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제자들이 뭍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숯불을 피우시고 그 위에 생선과 떡을 두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생선과 떡을 먹으면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이적을 회상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가르치신 말씀을 기억하며 깨달았을 것이다.
여기 ‘153’이라는 숫자는 7번째소수인 17의 9배수이다. 17은 성경에서 ‘충만’을 의미하는 만수(滿數) ‘10’과 ‘완전함’을 의미하는 ‘7’이 더해진 수로서 완전한 최후 승리를 상징하는 수로 나타난다. 자세한 내용은 참평안 2014년 2월호 바이블 다큐 “성도의 승리의 수 17”을 참고.
8) 갈릴리에서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마 28:16-20, 막 16:15-17)
==갈릴리의 한 산
아마 예수님을 만난 일곱 제자는 나머지 네 제자를 찾아 불러모았을 것이다.
열한 제자는 드디어 이전에 명령하셨던 갈릴리의 한 산으로 모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경배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여전히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의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며 사명을 주셨다.
9)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심(고전 15:6)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여러 사람에게 보이시고 표적도 보이셨다.

그리고 오백여 형제가 모여있을 때 그 자리에 찾아가셨다.
사도 바울은 이들이 태반이나(공동번역, 바른번역, 표준새번역에서는 ‘대다수는’으로 번역) 살아 있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이 수많은 증인들 가운데 이루어진 역사적인 진실임을 논증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오순절에 끝까지 그 자리에 남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것은 120명이었다는 것이다(행 1:12-15).

아마도 나머지는 끝까지 믿음에 서지 못하고 의심하거나 박해가 두려워서 자리를 떠나고 말았을것이다.

그들은 부활 사건의 역사적인 증인은 되었지만, 그 역사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되지 못한 것이다.
10)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에게 보이심(고전 15:7)
예수님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예수님 생전에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유대주의자였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개종하여 제자가 되었고(행 1:14), 마침내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그 후 야고보는 율법에 충실한 생활, 행함 있는 믿음을 행하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가르쳤다.
11) 40일 후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승천(행 1:4-11, 눅 24:50)
==안식일, 베다니 앞(감람산)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따르는 무리에게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눅 24:46-49, 행 1:4-5).
사람들은 예수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 라고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가까운 베다니 앞까지 무리들을 데리고 나가셔서 손을 들어 축복하신 후, 무리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우셨다.
후에 예수님께서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믿는 성도들을 살기등등하게 잡아가던 사울에게 열두 번째로 보이셨다(행 9:1-9).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12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수많은 사람이 목격한 역사적인 진실이며 성경대로 죽으시고 살아나신 사건임을 선포한다. 주님의 부활은 거짓과 악은 지고 의롭고 선한 것이 이긴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사셨기에 오늘날 그를 믿는 성도들도 부활에 동참한다(요 14:19, 롬 8:11).
부활의 진리는 실로 명확하고 확실하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근거요, 교회의 근거로서 사망의 무덤을 철폐하고 무덤이 없는 생명의 세계를 여는 언약 성취의 순간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셨다(롬 14:9).
예수 믿고 무덤에서 잠자는 자들에게나, 오늘 살아 있는 우리에게나 예수님만이 오직 주가 되신다.

재림하시는 주님께서 천군 천사와 함께 이 땅에 오실 때, 죽은 자는 주 안에서 부활하고 산 자는 변화 승천하여 구속사가 완성되고 주와 재회하는 영광의 날이 올 것이다(살전 4:16-17, 고전 15: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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