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28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MB아16-24_4: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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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소중한 신부의 마음 (아 4:1-8)  (The Cherished Heart: Equipped to Love Jesus)

I. 아가서 2:8 - 3:11 복습

A. 예수님은 신부를 ‘안주의 지대’에서 불러내시면서, ‘산’으로 올라와 주님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게 초청 하신다. 

하지만, 신부는 순종하지 않고, 예수님께 홀로 산으로 돌아가라고 대답했다.

8⋯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10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7나의 사랑하는 자야 ⋯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아 2:8-10, 17)

B. 주님은 임재를 거둬가시고, 신부는 하나님의 사랑의 훈육을 경험하게 된다. 

주님을 찾아도, 발견치 못하게 된다. 이것은 주님의 노하심이 아니라, 더 깊은 동역을 질투하시기 까지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 때문이다(히 12:6)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아3:1)

C. 아가서 3:6-11에서, 신부는 장애물의 산들을 만났을 때, 100 퍼센트 순종하며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안전한 리더십’을 가지신 신랑이신 왕, 예수님에 대한 계시를 얻게 된다.

신부의 사랑을 사모하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신부는 깨닫게 된다.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께 사랑으로 면류관을 씌어 드릴 수 있다.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랑의 “혼인 면류관”은 예수님이 가장 간절히 바라시는 면류관이다.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아 3:11)

II. 아가서 4:1-8 개요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 무리 염소 같구나 2 네 이는 ⋯ 털 깎인 암양 ⋯같구나 3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 4 네 목은 ⋯ 다윗의 망대 ⋯5 네 두 유방은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 6 ⋯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7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8 나의 신부야 너는 .. 나와 ⋯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아 4:1-8)

A. 예수님은 거룩한 훈육의 계절이 지나고, 순종과 믿음이 조금씩 성숙해 가는 신부를 보시면서 ‘어여쁘다, 아름답다’고 말하신다. 

아 4:1-5 에서, 예수님은 어린 신부의 삶에서 “피어나는 미덕” 8 가지를 예언적으로 확신시켜 주신다. 우리가 연약할 때도 주님의 ‘사랑의 확신’으로 자라게 하사, 우리를 참소하고 정죄하는 사단을 이길 수 있게 하신다(계 2:10).

B. 이 본문에는 하나님이 신부 안에 가꾸어지길 바라는 8 가지 성품이 요약되어 있으며, 여기서 사용된 상징은 아가서 전체에 걸쳐 개발된다.

*1)비둘기의 눈: 일편단심의 마음과 계시,

*2)염소와 같은 머리털: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

*3)털깍인 양과 같은 이: 고기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씹는 능력,

*4)홍색실 같은 입술: 구속의 열매를 맺는 언어사용,

*5)입맞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6)가려진 두 뺨 (뺨/얼굴): 하나님의 은혜에 영향 받은 감정들,

*7)다윗의 망대와 같은 목: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

*8)쌍태 노루새끼와 같은 두 유방: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고, 그들을 양육시킬 수 있는 능력

III.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마음

A. 아 4:1-5 에서, 우리는 신부를 소중히 아끼는 신랑이요, 왕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보게 된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신부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을 주님께 드리게 된다(아 4:6-8).

B. 예수님은 우리를 소중히 여기사 씻기시고, 자신의 영광을 교회에 풀어 주신다.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29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소중히 여기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엡 5:26-29)

C. 연약한 자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주무기는,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 지를 우리로 알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주님은 우리의 얼룩진 죄와 수치심을 제거하신다. ‘나를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확신과 당당함으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가꾸어 나갈 수 있게 된다. 다윗 왕의 삶의 비결은, 자신이 ‘하나님께 사랑 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데 있었다. 아가서에서 가장 돋보이는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이다.

35⋯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 18:35) 

D. 연약하여 넘어질 때에도, 예수님은 우리 삶에 ‘피어나는 미덕’을 확신시켜 주시면서, 온유와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시고, 소중한 주님의 신부로 높여 주신다.

E. 예수님은 우리가 겪는 내면의 싸움들을 보고 우리 인생을 정의 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실패를 넘어서 보시는 분이다. 승리한 영역들 뿐만 아니라, 심령에 심겨진 미덕의 씨앗들, 그리고 ‘심령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통해 우리를 정의하신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순종의 영을 보신다(마 26:41). 주님을 사랑하며 순종하고자 하는 갈망을 보고 우리를 정의하신다.

F. 우리의 존재를 정의하시는 예수님의 정의에 따라,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결정하게 된다. 

주님은 우리 안에 심겨진 성품의 ‘씨앗’을 보신다. 우리 여정의 미래와 앞을 정확히 내다 보시며 우리를 대하신다.

G. 이스라엘이 막강한 미디안의 공격을 받았을 때, 기드온은 무서워 포도주 틀에 숨어 있었다(삿 6장). 

그 때, 한 천사가 나타나 그에게 “큰 용사여”라고 말했다. 기드온 자신이 볼 수 없었던 면을 주님은 기드온 안에 이미 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기드온 안에 ‘믿음과 용기의 씨앗’이 심겨져 있는 것을 보셨다. 주님은 미래의 기드온의 모습을 보시고 ‘기드온’이라 이름 지으셨다. 결국, 그는 장차 이스라엘의 위대한 장군이 되었다.

H. 베드로가 두려움으로 주님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아셨음에도, 예수님은 그를 ‘반석’이라 부르셨다(마 16:18). 

겉으로 보기에 베드로는 타협한 자요, 비겁한 자로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안에 용기와 확신, 그리고 신실함의 씨앗을 보시고, 베드로를 ‘반석’이라 부르셨다.

11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떼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레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희의 외식(위선)에 유혹되었느니라 (갈 2:11-13)

I. 주님은 아브라함을 ‘견고한 믿음을 가진 자’라 말하시며, 그의 삶을 “조금씩” 조정해 가셨다.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롬 4:20) 

J. 다윗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한 자라 간증하셨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 36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목적)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행13:22; 36)

K. 주님은 진실한 자들을 ‘사랑하는 제자들’이라 부르신다(요 13:23; 19:26; 20:2; 21:7, 20).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 13:23)

L. 마귀는 우리를 ‘위선자’라 참소한다. 원수는 많은 사람들을 참소하고 정죄하며 무너뜨린다. 스스로 ‘가망없는 위선자’로 느끼게 만들며, 미숙을 ‘반항(대적)’으로 혼동시켜 우리를 포기시키려 한다.

M.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과 자책감이라는 ‘불’과 싸우며, 시간과 정력을 지나치게 낭비한다.

죄책감과 거절감을 가지고 살면 불필요하게 많은 정력을 낭비하게 된다. 그리고, 실패와 수치심에 사로잡혀 주님과의 효과적인 동행을 해치게 된다.

N.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순종의 마음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성숙했는가에만 초점을 둔다. 

성숙에만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두가지 영적 문제에 취약점을 노출시키게 된다.

1. 결과가 좋으면, 교만이 생겨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비판할 수 있게 된다.

2. 실패하면, 죄책감에 사로잡혀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O.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감정들(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고자 (믿음과 말씀의 순종에) 하는 데 마음을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주님은 주님의 때에 우리 안에 성숙한 승리를 가져다 주실 것이다.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P.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남자가 그 아내와 자녀들을 변화시킨다. 

하나님이 훈육하시는 것은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보통, 부모들은 자녀들 안에 피어나는 미덕을 잘 못 해석한다. 자녀들 안에 피어나는 헌신과 위대함의 씨앗을 보지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실패만을 보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IV. 연약하지만, 하나님께 아름다운 우리의 모습

A. 훈육의 계절(아 3:1-2)이 끝나자 마자, 주님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선포하신다. 

반복을 통해 ‘아름다운 신부’에 대한 계시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하신다. 성령님은 우리 앞에 ‘거룩한 나팔’을 불면서 말씀하신다, “보라! 나의 어여쁜 자야,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우리는 주님께 사랑받는 아름다운 존재라는 계시로 변화된다.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아름답)고도 어여쁘다 ⋯(아 4:1)

B. ‘연약하지만, 하나님께 아름답다’라는 계시는 순수하고 진실한 자가 하나님 은혜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기본진리다. 

‘어여쁘다’라는 단어는 대부분 성경에서 ‘아름답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도 아가서의 핵심 주제에 속한다 (아 1:8, 15, 16; 2:10, 13, 14; 4:1, 7, 10; 6: 4, 10; 7:1).

C. 아가서에서, 우리가 소유한 아름다움에 관한 주제 전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D. 우리를 사랑하사 기쁨이 충만하신 왕(아 3:11)이시며, 우리를 아름다운 존재로 보시는 예수님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을 위해 모든 희생을 다 감수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아무리 힘든 ‘장애물의 산’을 직면해도 능히 이겨 낼 수 있는 권능을 갖게 될 것이다.

E. 이제, 예수님은 신부의 삶에 “피어나는 미덕” 8 가지를 확신시켜 주신다(아 4:1-5). 

각 성품은 아주 ‘작은 씨앗’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확증을 통한 권면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사랑과 순종의 씨앗을 확증시켜 주심으로, 사단의 고소에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F. 예수님은 신부의 삶을 8 가지 면에서 축복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사, 그 이름대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신다. 여기 본문에 나와있는 구절 하나 하나 모두가 우리의 심령을 겨냥한 하나님의 ‘시적인 거룩한 로맨스’다. 8 가지의 미덕은 우리에게 나눠주신 주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한다. 우리가 그 아름다움(아 3:11)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될 때, 예수님도 기뻐하시지만, 우리 자신도 기쁘게 된다 .

G. 술람미 여인은 본래 염소를 치고, 포도원을 지키는 양치기 소녀이다. 

그래서, 왕은 신부에게 친숙한 ‘농경 용어’를 사용한다. 본문에 나오는 상징들은 성경을 통해 해석한다.

H. 왕은 여인에게 ‘산’으로 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인은 산이 아닌, 성(도시)으로 가겠다고 대답한다(아 3:2). 그러나, 아가서 4 장 끝부분 까지, 신부는 자신이 한 말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대답만 한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점차 성숙하게 될 신부의 모습을 잘 아시기에, 신부의 대답을 높이 평가하신다.

I. 100 % 온전한 순종을 위해, 우리의 삶에 세가지가 협력한다(아 4:6). 

거룩한 훈육(아 3:1-2)과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계시(아 3:6-11), 그리고, 예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자신에 대한 계시이다(아 4:1-5).

V. 눈: 영적이해와 계시 (아 4:1)

1 ⋯ 네 눈이 비둘기 같고 ⋯ (아 4:1)

A. 눈은 ‘영적 통찰력’을 말한다. 

바울은 ‘마음의 눈’을 언급했다(엡 1:18). 눈으로 보는 것은 바울의 삶에 최우선 순위였다. ‘보는 것(깨달음)’은 영적 성장의 출입구가 되기 때문이다(빌 3:8-10; 고후 3:18). 

순종은 깨달음을 통해 시작된다. 대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도 변하게 된다.

B. 비둘기의 눈은 ‘순결’과 ‘충성’을 말한다. 

성령님은 비둘기로 성경에서 그려진다. 비둘기는 짝이 죽으면 다른 짝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비둘기는 충실함으로 알려져 있다. 

비둘기는 두 사물을 동시에 볼 수 없으며, ‘주변 시야’도 없다. 이것은 ‘일편단심’을 말한다. 잠간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안정을 누리다가, 타협과 죄책감으로 괴로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한 일편단심,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신부는 정욕과 실패, 또는 성공을 바라보지 않으며, 오직 주님만을 바라본다.

C. 신부는 겸손한 자세로 이 계시를 받아들인다. 

신부는 베일뒤에 “숨는다.” 즉, 신부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부분들이 남아 있다. 베일 뒤에 가려진 삶은, 하나님 안에서의 ‘은밀한 삶’으로, 개인적인 삶의 부분을 말한다. 풍부한 계시를 가지고 있던 바울도 교만의 유혹을 받았다(고후 12:7-9). 그는 지식이 종종 교만을 낳는다고 가르쳤다(고전 8:1).

VI. 머리털: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아 4:1)

A. 신부의 ‘머리털’은 하나님를 향한 신부의 ‘헌신’을 말한다. 

나실인의 머리털은 그들의 거룩함, 또는 헌신을 나타내는 외적 표징이었다(민 6 장). 나실인의 맹세를 취한 자들은 머리털을 자를 수 없었다. 그러나, 삼손은 머리털을 잘라 맹세를 어겼으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잃게 되었다. 

머리털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아름다움’을 말하기도 한다. 

여인의 머리털은 영광을 나타낸다고 바울은 말하면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순복과 헌신을 비유로 말했다 (고전 11:5, 6, 15).

1⋯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아 4:1)

B. 무리 염소와 같이 술람미 여인은 ‘위엄스럽게’, ‘위풍당당’하게 걷는다.

29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31 사냥개와 수염소와 및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

C. 우리는 당당하게, 존엄을 지닌 거룩한 지혜로 주님을 향한 헌신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헌신이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 시키려는 육적 열심으로 더렵혀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D. ‘위엄이 찬’ 신부의 머리털, 즉, 신부의 헌신은 성경말씀의 ‘양식’으로 잘 채워진 결과로 나타난다. 

길르앗 산에 있던 염소들은 풍성한 먹이를 먹고 살았다. 그곳은 땅이 풍성하고, 비옥해서 염소들에게 풍성한 먹이를 제공하던 유명한 곳이었다. 신부는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배부르게’ 된다.

VII. 이: 말씀에 뿌리를 둔 삶 (아 4:2)

2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아 4:2)

A. ‘이’는 고기를 씹어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유아는 이가 없어 고기를 씹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유아들’은 고기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다(고전 3:1-2; 히 5:12-14). 여기서는, 고기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신부의 능력을 말한다. 농경 용어의 표현을 통해 신부의 이를 서술하고 있다. 신부의 이는 강하고, 풍성하며, 효과적이다.

B. 털깎지 않은 양의 양모는 골고루 자라질 않는다(불균형). 

길이가 다른 양모는 ‘육적 열심’을 말한다. 구약시대 사독의 제사장들은 가는 베옷을 입어야했다. 양모는 땀을 내기때문에 입는 것이 금지 되었다(겔 44:15-18). 육적 열심은 반드시 성령의 주권으로 다스려져야 한다.

C. ‘목욕장에서 올라온다’는 것은 더러움에서 깨끗케 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우리의 이는 마치 목욕장에서 올라온 양과 같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씻기신다(엡 5:26).

D. 말씀에 온전히 거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풍성한 영향력을 끼칠수 있게 된다. 

신부의 이는 마치 털 깍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과 같다. 신부의 사역은 영적 불모가 아닌,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쌍태를 낳는다는 것은 ‘풍성한 열매’를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우리는 목욕장에서 바로 나온 양과 같이 ‘정결하고 순결한 삶’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깨끗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하는 신부의 ‘헌신’을 말한다 딤전 4:6-16). 아가서 4:1-2 은 신부의 눈과 머리털, 이, 그리고 두 뺨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 표현들은 아가서 6:5-6 에도 나오게 된다.

VIII. 입술: 거룩과 기름부음의 언어사용(아 4:3)

3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아 4:3)

A. ‘입술’은 ‘언어사용’을 말하며, ‘홍색’과 같은 말은 사람들에게 ‘구속(redemption)’을 주는 말을 의미한다. ‘홍색실’은 예수님의 보혈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상징한다.

정탐꾼들이 여리고에 도착했을 때, 라합은 구속함을 얻기위해 창문에 홍색줄을 달아 놓았다(여 2:21). 모세는 홍색 양모에 송아지의 피를 묻혀 사람들에게 뿌렸다(히 9:19).

B. 덕을 세우는 말과 함께 이 ‘홍색실’은 우리 입술에 있어야 한다(골 4:6). 

건전하면서도 덕을 세우는 언어사용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함께한다는 증거다(엡 4:29; 야 2:3).

IX. 입: 하나님과의 친밀감 (아 4:3)

3⋯ 네 입은 어여쁘고 ⋯ (아 4:3)

A. 아 1:2 에서, 입은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말하는 입맞춤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우리가 갖는 예수님과의 교제는 주님 보시기에 사랑스럽다. 아가서에서, 입술은 우리의 언어사용을, 입은 친밀감을 말한다. 신부에게 확증을 주는 왕은 고루하게 반복적인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B. 예수님께 우리의 사랑을 드릴 때, 그것은 마치 ‘연약한’ 사랑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사랑이 사랑스럽다고 공포하시면서, 우리와의 친교를 기뻐 하신다.

X. 두 뺨: 감정의 메이크업(아 4:3)

3⋯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아 4:3)

A. 두 뺨(뺨 또는 얼굴)은 사람의 ‘감정’을 드러낸다. 

히브리어로 이 단어는 뺨 또는 얼굴, 용모로 번역될 수 있다. 대부분 번역본들은 ‘뺨’으로 해석한다. 사람의 감정은 표정, 또는 뺨을 통해 표현된다. 분노, 기쁨, 즐거움, 또는 슬픔의 감정은 표정을 통해, 두 뺨을 통해 나타난다. 그래서, 뺨은 사람의 감정을 비추는 창문이다.

B. 신부의 거룩한 감정들은 하나님께 마치 달콤한 ‘석류 한쪽’과 같다. 

석류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아주 달콤한 과일에 속했다. 이 거룩한 감정의 표현은 대제사장의 제의(의복), 또는 에봇에 잘 나타나 있었다.

C. 석류를 반으로 쪼개 안을 보면 색깔이 붉은 홍색이다. 

‘붉은 색’은 수치로운 행동 앞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힐 줄 아는 신부의 성향과 겸손을 말한다.

D. 매춘부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에도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 

홍색을 띈 얼굴(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부끄러움에 예민하다는 것을 말한다. ‘베일 뒤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은밀한 삶’을 말한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쇼’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 안에 겸손하고 온유하게 지내는 신부의 은밀한 삶을 말한다.

XI. 목: 결단의 의지(아 4:4)

4 네 목은 군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같고 (아 4:4)

A. 성경에서, 목은 보통 뻣뻣한(저항하는), 또는 복종을 의미하는 ‘의지’를 말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원수의 목을 발로 누르는 것은 원수의 굴복을 상징했다.

B. 신부의 의지는 하나님앞에 확고부동한 마음을 지녔던 다윗과 같다(시 57:6). 

신부는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

C. 다윗의 망대들은 예루살렘 성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높은 곳에 위치해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신부의 선택과 의지는 다윗의 망대처럼 강력하다.

D. 병기고는 전쟁을 대비해 무기들을 저장하는 곳이다(느 3:19,25). 

하나님께 순종 하고자 하는 ‘결단의 의지(뜻)’는 사단의 왕국을 대적하기 위해 준비해 놓는 병기고와 같다. ‘둥근 방패’는 작고 둥글며 팔에 부착하는 방패였다. 1000 개의 방패는 막강한 방어선을 구축해 원수로 부터 ‘안보’를 누리는 것을 말한다. 신부의 ‘의지’는 전투에 뛰어난 1000 명의 전사들이 지닌 방패와도 같다. 원수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제공한다. 이것은 우리를 보호하는 ‘믿음의 방패’다(엡 6:16).

E. 예수님께 순종하려는 불굴의 결단은 영적 승리를 위해 우리가 꼭 지녀야 하는 필수요소다.

우리는 ‘순종의 의지’를 계속 연습해야 한다.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순종을 강요하시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의 경계선을 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XII. 두 유방: 타인을 양육할 수 있는 능력(아 4:5)

5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아 4:5)

A. 두 유방은, 엄마가 아기를 양육하듯, 타인을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노루 새끼는 어린 동물이다. 신부의 두 유방은 ‘쌍태 노루 새끼’ 같다. 이것은 우유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먹이며 양육할 수 있는 ‘갑절의 기업과 능력’을 말한다. 노루 새끼와 같은 두 유방은 마르지 않는 엄마의 모유를 말한다. 나이가 들어 모유의 능력이 없어진 여인과 다르다는 뜻이다.

B. 술람미 여인의 사역은 ‘순결’의 백합화 가운데 꼴을 먹는 노루새끼와도 같다. 

주님은 신부에게 ‘은 장식’을, 즉, 사역을 위해 신부를 양육해 주시리라 약속하셨다(아 1:10).

XIII. 영적 성숙의 기초가 되는 헌신 (아 4:6)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아 4:6)

A. 신부의 아름다움을 확증시켜 주신 주님께, 신부는 ‘몰약산’으로 가겠다는, 즉, 십자가를 지겠다는 헌신으로 응답하게 된다. 

‘산’은 신부의 순종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가리킨다(아 2:8-9).

B. 몰약은 비싸지만, 뛰어난 향기를 지닌 장례용 향품이다. 

몰약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한다. 육적으로는 장사용 향품이지만, 우리의 영혼에는 ‘향기’와도 같은 것이다. 이 산은 (편안한 곳이 아닌) 몰약의 산으로, 작은 언덕(산)과는 다르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가실 때, ‘몰약의 산’을 오르셨다. 이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인하며 십자가를 져야한다(눅 9:26).

C. 성경에 나오는 유향, 또는 향은 ‘기도’를 말한다(시 141:2; 계 5:8). 

우리는 ‘유향의 언덕’에 올라가 힘을 얻고, 그 힘으로 몰약의 산을 오를 수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힘’을 얻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마 26:40-41). 유향의 언덕에 거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몰약의 산을 오르는 것이 벅찰 수 밖에 없다. 기도생활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수 있게 해주는 권능을 부여한다. ‘기도 언덕’의 높이에 따라,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능력의 한계에도 차이가 나게 된다.

D. 유향의 언덕은 몰약의 산보다 낮다. 

우리는 ‘작은’(미약한) 기도를 통해서, 높은 산을 올라갈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된다. 기도는 산을 오르려는 인간의 노력을 능가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짧은 기도의 능력도 오래간다. 기도 생활을 통해, 우리는 기도한 것 이상의 권능을 받게 된다.

E. 이제,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안락 지대를 떠나 산으로 간다. 

즉,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며 살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일어나 가겠습니다!” 이 고백이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스러운 고백인지 아는가!

F. 신부는 본문에서 “나의 길”이라 말한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정하신 각자의 길을 가야한다. 사람마다 다른 여정을 정하신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다른 여정으로 부르신다. 몰약의 산으로 가는 길에는 하나님의 목적에 따른 고난들도 따르게 된다.

G. 신부는 날이 밝고 그림자가 도망갈 때까지, 즉, 모든 타협이 사라질 때까지 ‘몰약의 산’에 머물겠다고 헌신한다. 

‘그림자’는 작은 여우들(아 2:15) 처럼, 연약한 부분, 또는 타협의 영역을 말한다. ‘아침햇살’은 힘겨웠던 밤의 싸움을 빛으로 승리하며 새날을 가져오는 ‘승리의 계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운데 살면서 누리게 될 ‘영원의 날(낮)’과, 이 땅에서 영광의 빛가운데 살게될 ‘승리의 날들’을 말한다.

XIV. 새로운 확증의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 (아 4:7)

7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아름다와) 아무 흠이 없구나(아 4:7)

A. 주님은 신부에게 “아름답다”라는 말을 아가서에서 13번 반복하신다. 

지금까지, 주님은 신부에게 “아름답다, 또는 어여쁘다”라는 말을 8번 반복하셨다. 

“순전히 어여쁘다”라는 말은 “전체가 아름답다”라고 NAS역에 번역되어 있다. “전체가, 순전히”라는 단어를 주님이 여기서 처음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신부가 산으로 가겠다고 결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신부는 결단만 했을 뿐, 아직 산으로 올라가지는 않았다. 주님은 신부안에 흠이 없다고, 즉, 주님의 리더십을 의식적으로 저항하는 영역이 없다고 보신다.

B. 결단은 했지만, 신부는 두 가지의 시험(아 5:2-8)이 오기 전까지 산으로 떠나지 않게된다.

그럼에도, 주님은 십자가를 지려는 신부의 의지를 보신다. 육신의 연약함이나 성숙함이 아니라, ‘자원하는 심령(순종의 마음)’을 보며 신부를 정의하신다.

XV. 영적 전투로의 초청(아 4:8)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 (아 4:8)

A. 여기서, 왕은 처음으로 술람미 여인을 ‘배우자,’ 또는 ‘신부’라고 부른다. 

산으로 가고자 하는 신부의 헌신으로, 술람미 여인은 이제 신부와 같은 마음으로 살게 된다. 왕의  신부라는 마음으로 살게된다. 아가서 5-8 장에서, 우리는 성숙한 사랑을 개발해 나가는 신부를 보게된다.

B. 예수님의 유업은, 사랑으로 주님과 함께 동일한 멍에를 지며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찬 영원한 동반자, 신부다. 십자가 그 자체가 신앙의 최종선은 아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에게 신부를, 하나님 아버지에게는 새로운 가족을 선사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랑으로 순종하는 ‘신부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게 될 것이다(계 22:17).

C. 영적전투가 치열한 레바논 산, 즉, 주님은 그분이 가시는 곳은 어디든지 신부가 따라오도록 초청하신다. 주님은 신부를 ‘겟세마네’ 동산으로 초청하신다(아 5:2-7).

D. 이제, 신부는 ‘산’으로 가야하는 도전(아 2:10,13)을 받아들이고 순종한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북쪽 레바논 산맥 숲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자신의 별장으로 신부를 초청한다.

레바논은 향기로운 꽃들이 가득했던 곳이었다(아 4:11; 호14:6). 레바논의 영광은 이사야35:2에 잘 언급되어 있다.

E. 지리적으로 레바논은 산맥에 걸쳐있다. 특히, 스닐과 헤르몬은 레바논 산맥에 걸쳐있는 산봉우리다. 헤르몬 산은 요르단 강 동편에 있다. 아모리 족속은 그 산을 스닐산 이라고 불렀다(신 3:8-9). 아마나 산은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스닐산과 헤르몬 산(신 3:9;4:48; 대상 5:23) 옆에 있었다고 전해 내려 온다.

F. 신부는 아마나, 스닐, 헤르몬 산 정상, 즉, 주님의 관점(하늘의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삶의 고난들을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낙심하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전투의 승리를 위해, 우리는 주님의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G. 이스라엘은 요단 강 동편에 있던 아모리 족속을 정복한 후, 동편 (헤르몬) 산 정상에 올라, 요단 강 서편에 있던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다. 

이 산을 오르기 전에, 이스라엘은 두 아모리 왕들(오그와 시혼)을 정복해야 했다(신 2:1-11). 신부는 예수님과 더불어 천상에 앉혀진 자로, 영적 전투에 임하는 ‘전사적 신부’다.

H. 산 정상에는 사자와 표범들이 살고 있다. 

신부는,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들, 사자들과 표범들을 대적하며 싸워야한다. 사단은 우리를 삼키려 ‘우는 사자’와 같기 때문이다 (벧전 5:8). 이것은 ‘영적전투’를 말한다(엡 6:10-12).

I. "사냥감의 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몰래 접근하는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하박국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레바논 산의 짐승들을 잔해하는 부분에 대해 기록한 바 있다(합 2:17)

===17장 빼앗긴 하나님의 마음 (아 4:9-5:1) (The Ravished Heart of God)

I. 아가서 4:1-8 복습

A. 거룩한 훈육의 계절이 지나고, 신부의 순종과 믿음이 성숙해지는 과정 동안에도 예수님은 신부를 ‘어여쁘다(아름답다)’ 부르시면서 신부를 놀라게 하신다. 

성품이 아직 다 자라나지는 않았지만, 순종하기 원하는 신부의 마음만을 보시고 예수님은 신부를 확증해 주신다. 아 4:1-5에서, 솔로몬은 농경 용어를 사용해 술람미 여인의 8 가지 성품을 칭찬해 주었다. 술람미 여인의 삶 속에 있는 8 가지 “싹트는 미덕”을 확증해 주었다. 성품이 아직 온전히 형성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은 신부의 소원을 보시고 미덕들을 확증시켜 주신 것이다.

B. 어떤 영역에 아직 승리를 거두지 않았더라도, 순종하고자 결단할 때 우리의 순종은 시작된다.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결단한 후, 우리는 변화되어야 할 영역에 대해 ‘영적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성장과정 속에서도 주님의 인자한 자비와 기쁨을 당당히 받고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순종의 결단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C. 우리는 연약할 때에도 하나님께 아름다운 존재다. 

훈육의 계절이 지나자 마자, 주님은 신부를 ‘아름답다’고 선포하신다. 연약할 때도 우리가 하나님께 아름답다라는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안에 성장하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계시이다. 이 계시를 통해 변화되게 되기 때문이다.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아름답고)도 어여쁘다 (아 4:1)

D. 이제는 두려워 하지 않고 신부는 결단(아 4:6)을 내린다.

6 날이 기울고(터오고) .. 때에 내가 몰약 산⋯으로 가리라 (아 4:6)

E. 신부는 ‘산으로 가자’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의 결단을 내리면서, 예수님의 사랑의 확증에 응답한다(아 2:8-13). ‘몰약의 산’으로 가며 자신의 십자가를 끌어 안게 된다.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신부는 자신의 ‘안락의 지대’를 벗어나 ‘산’으로 가겠다는 확고부동의 결단을 내린다.

F. 그러나, 여기서 신부는 대답만 했을 뿐, 아직 산으로 가지는 않았다. 

산으로 가기전에 신부는 두 가지 시험을 치르게 된다(아 5:2-8). 주님은 십자가를 기꺼이 지려는 신부의 의지를 보신다. 주님은 신부의 연약한 육신이나 성숙함이 아닌, ‘자원하는 심령’을 보고 정의 하신다.

G. 예수님은 신부를 보며, “순전히 아름답다”라는 확언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주신다(아 4:7).

7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아 4:7)

H. 여기서, 신부를 처음으로 ‘배우자(신부)’라고 부르시는 왕이신 예수님과 함께, 신부는 ‘영적 전투’에 동참하게 된다. 

신부는 산으로 가고자 하는 헌신을 보이면서, ‘충성해 나가는 신부’의 마음으로 살게 된다. 아가서 5장 – 8장에서 우리는 성숙한 사랑을 성취해 나가는 신부의 모습을 보게된다.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 (아 4:8)

I. 예수님은 신부에게 그분의 소원을 나타 내시면서(아 4:9-10), 활짝 번창하는 ‘정원(동산),’즉, 신부의 ‘거룩한 삶과 열매맺는 사역’을 확증해 주신다(아 4:11-15). 

신부는 주님의 온전한 개입하심을 위해 기도한다(아 4:16).

II. 주의 백성들에게 마음이 뺏기신 예수님

9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아 4:9)

A. 이 구절은 아가서를 짧게 요약하는 구절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극히도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빼앗긴 (하나님의) 마음’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매력적인 대상으로 인해 기쁨, 또는 즐거움이 충만한 마음 (Webster의 Collegiate 사전).

B. 빼앗긴 예수님의 마음에 대한 계시는 100% 순종을 위한 과정을 도와준다. 

헌신적인 순종(아 4:6)을 결심했던 신부는 아 5:2-8 에서 그 순종을 실천해 나아가게 된다.

C.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라는 ‘법적 위치’를 소유하게 되는 것 이상을 말한다(고후 5:21).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애정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정을 아는 만큼만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일4:19). 하나님의 마음은 그분의 백성들을 향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다.

10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아 7:10)

III.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패러다임

A.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패러다임은, 하나님께서 깊은 사랑의 감정을 가지신 분이라는 계시에서 찾아야 한다. 

전통적으로, 교회사에서 ‘인자하신 아버지’, ‘열정적인 신랑’이신 하나님에 대한 계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히 4 장에 관한 William Barclay 주석 참고).

B. 유대인 전통에서는, 죄와는 완전히 분리된 ‘거룩한 분’이신 하나님만 가장 강조되어 왔다.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말해, 그들은 하나님을 인간의 딜레마나 문제를 나누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계신 분으로 정의해 버린 것이다.

C. 그리스(헬라인, 희랍)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인간의 감정과는 거리가 먼 하나님으로 보았다. 

당시, 가장 뛰어난 그리스 철학자들은 스토아파 철학자들 (Stoics)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 속성을 ‘냉담한 감정의 소유자’, 즉,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는 하나님으로 정의해 버렸다. 그들의 추론은 하나님께서 만약 감정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 감정에 좌지우지 되거나, 심지어는 조정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슬픔이나 기쁨을 느끼는 자들은 상처받기 쉬운 위치에 놓이게 되며, 감정을 가진 대상들에게 조정된다는 논지를 내세웠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감정에 영향을 끼친 자는 그 순간만큼은 그가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자가 된다고 믿었다. 

에피쿠로스 학파 (Epicureans; 희랍 철학 학교)들은 신들이 영원한 세계의 환희가운데 ‘인간과는 분리된 삶’을 산다고 믿었으며, 신들은 ‘중간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신들은 인간사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더없는 환희와 행복속에 산다고 믿었다.

D.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인간과는 ‘분리된’ 거룩한 하나님으로, 스토아 학파들은 ‘감정이 메마른’ 신으로, 에피쿠로스 학파는 ‘인간과는 분리되어 있는’ 신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종교적 생각이 만연한 가운데,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기독교의 하나님, 인간의 감정과 고통, 연약함에 의도적으로 동참하시는 하나님이 나오게 된 것이다.

E. 예수님은 인간의 경험과 삶을 직접 끌어 안고 오신 분으로, 긍휼(체휼)함을 가지신 분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8)

F. 거룩한 하나님께서, 인자함, 긍휼, 그리고 애정을 소유한 분으로 심지어 인간의 형상을 입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셨다는 것은 1세기 종교, 철학자들의 사고 방식에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패러다임이 얼마나 극적인 결과를 낳게 되었을지 생각해보라.

G.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이 진리는 심지어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천사장과도 우리를 구별시키는 역할을 한다.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사랑의 능력을 가진 천사들을 기술한 본문은 없다. 기쁨의 감정은 있지만, 애정을 가진 존재로 언급되지는 않았다. ‘

사랑의 능력’은 상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영광의 위치로 우리를 상승시켜 준다. 하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게 되면, 우리는 해로운 악의 꼴짜기 ‘밑바닥’을 경험하게 되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게 된다.

IV.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 예수님의 계시 (5장 복습)

A.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 

아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애정)만큼,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이 진리는 우리의 ‘고귀함’을 나타내는 궁극적 성명문이며, 이 진리를 통해, 모든 신자는 자신을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자”로 바라볼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게 된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살라) (요 15:9)

B. “애정에 근거한 순종”은 그 어떤 종류의 순종보다도 강력한 순종이다. 

예수님의 애정을 경험하면서 흘러나오는 순종이기 때문이다. 애정에 근거한 순종은 가장 일관된 순종의 결과를 낳는다. ‘사랑앓이’를 하는 사람은 사랑을 위해 모든 고난을 감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순종은 “의무에 근거한 순종”(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순종)이나 “두려움에 근거한 순종” (불순종의 대가가 두려워 하는 순종)보다 더욱 강력하다.

C. 아낌없는 애정과 열정을 지니신 하나님의 인격을 이해하게 될 때, 복음은 가장 번창하게 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다가오는 부흥이나 영원의 시대에 무엇을 하실 지를 우리가 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과, 그분의 일하심의 동기를 바로 알아야한다.

D. 하나님의 애정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생명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 12:11)

E. 바울은 하나님을 위한 자신의 희생을 돌아보면서, 예수님을 아는 영광의 상급에 비교하면 그가 포기한 것은 쓰레기(배설물)에 불과하다고 간증했다. 사랑에 빠진 자에게 그렇게 큰 희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F. 여기서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도 있다, “왜, 또는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빼앗겨 있는가?” 

우리 주님은 ‘사랑의 열망’으로 가득찬 인격체 이시다. 주님이 인자함으로 우리의 삶을 평가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소유하신 놀라운 인격 때문이다.

예수님의 인격과 마음,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우리와는 다르게 평가하시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사랑스럽게 보신다.

V. 신부를 향한 예수님의 열정과 애정

9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10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 (아 4:9-10)

A. 나의 누이 –

 ‘누이’라 부르신 것은 우리와 같은 인간의 형상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말한다(히 2:11-17). 주님은 모든 것에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기 위해 형용할 수 없는 굴욕과 고통을 이겨내신 분이시다(히 2:17). 주님은 너무도 미천하고, 낮은 곳으로 내려 오셨고, 우리는 너무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 주님의 ‘누이’로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마12:49-50).

B. 나의 신부 – 

‘예수님의 신부’로 불린다는 것은, 우리와 사랑의 동역을 원하시는 주님의 소원을 말한다.

C. 주님의 누이와 신부. 이 정체성은 아가서에 7 번 강조되어 나온다 (아 4:8,9,10,11,12; 5:1,2).

D.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 – 

예수님은 우리가 드리는 헌신 하나 하나에 감동하신다. 주님을 사랑하려는 마음의 요동이 주님을 감동시킨다. 특정 영역에서 승리했을 때만이 아니라, 순종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순간부터 우리의 순종은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애정이 가득하신 주의 자비를 받고 성장하면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쁨을 느끼며 살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시선은 ‘사랑스런 순종의 시선’이다. 순종의 시선은 고귀한 결단에 뿌리를 둔다. 신부의 패러다임(영성)은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라는 메세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E. 네 목의 구슬 한 꿰미 – 

성경에서, 목은 ‘의지’를 말하는데, 복종의 의지를 의미한다. 솔로몬 왕은 여인의 목을 표현하면서, 일찌기 원수를 효과적으로 패배시킬 수 있었던 다윗의 망대(아 4:4), 여인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금 목걸이(아 1:10)에 비유했다. 목걸이 한 꿰미 한꿰미는, 신부가 주님께 드린 순종 하나 하나를 대표한다. ‘사랑의 결단’ 하나 하나에 예수님은 감동하시며,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모두 기억하신다.

10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 6:10)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10:42)

F.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을 아름답게 보신다. 사랑에 근거한 순종은 우리 자신을 아름답게 하며, 예수님께 커다란 기쁨을 안겨 준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아름다움)으로 하라 이 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베전 3:3-4)

G.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 

여기서 예수님은 신부가 일찌기 고백했던 “네 (주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아 1:2)를 반대로 그녀에게 고백하신다. 포도주는 기분을 들뜨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상징한다. 혼인에 사용되는 포도주는 ‘축하주’를 뜻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축복을 말하는 “좋은 포도주”와, 죄악을 뜻하는 “악한 포도주”를 분리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어떤 특권이나 경험보다도 월등한 영광이다.

H. 예수님은 “그분이 창조한 우주만물의 장관보다도 우리의 사랑이 더 아름답다”고 말씀하시며, 주님의 권세아래 있는 모든 만물보다 우리의 사랑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

주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단순히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서가 아니다. 순종하려는 신부의 결단을 보시는 예수님에게는 기쁨이 가득차 있다(아 4:6).

VI. 신부의 마음(생각, 말, 행실)을 보며 즐거워 하시는 예수님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아 4:10-11)

A. 네 기름의 향기 –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진 ‘신부의 마음’을 가리킨다. 보이지 않는 향기가 식물의 내적 품질을 표현하듯, 우리의 생각은 ‘내면의 삶의 향기’를 나타낸다.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의도와, 말씀의 묵상은 향기가 되어 하나님께 올라간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향기)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 2:14-15)

B. 각양 향품보다 – 

귀한 향품들은 값비싼 선물로 사용되었다. 

시바 여왕은 값비싼 향품들을 솔로몬 왕에게 선물로 주었다 (왕하 10:2). 동방박사들은 예수님께 다양한 향품들을 드렸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마 2:11). 향품들은 제사장들이 드리는 희생 번제물에도 사용되었다(출 30:23-24).

C.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 

하나님께 경배와 기도를 드리면서(아 2:14), 또, 다른 이들을 먹이고 목양하며 축복하면서 나타나는 신부의 ‘고백과 말’이 하나님께 꿀과 같이 달다는 것을 뜻한다. 신부의 ‘구속적’ 입술과 말은 ‘홍색 실’ 같다고 앞에서 기술되었다(아 4:3). 꿀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달콤한 맛을 낸다. 그러나, 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꿀벌들의 엄청난 시간 투자와 고된 수고가 요구된다.

1. 내 신부야 – 

예수님은 신부가 주님께 말하는 사랑의 고백을 다 아신다.

2.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 

‘약속의 땅’의 번성(꿀)과, 또 유아를 위해 사용되었던 양식(젖)(베전 2:1)으로,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주제로 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엡 4:29; 골 4:6). “혀 밑에는”이라는 구는 ‘마음과 생각’을 말한다. 거짓이 가득찬 입은 “혀 밑에”(즉, 마음에) 문제가 있다(시10:7). 그러나, 신부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면서 “혀 밑에” (마음에) 진리를 품고 산다. 생각과 말이 일치하기 때문에, 정직하고 진실하다.

D.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 

이것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신부의 ‘행실’을 가리킨다. 의복은 신부의 ‘순종적 행실’을 말한다(계 19:7-8). 

예수님은 우리가 “의복을 보전”할 것을 경고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우리가 삶을 마감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계 16:15).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님으로부터 “흰 의복”을 사서 입고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릴 것을 권고하셨다(계 3:18). 

레바논 산은 향기로운 백향목과 꽃들로 유명한 곳이었다. 다시말해, 우리 자신만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물질과 시간을 투자하는 삶과는 대조 되는 삶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재정적 후원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달콤한 향기’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빌 4:18).

VII. 예수님께 아낌없이 드리는 신부의 헌신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아 4:12)

A. 잠근 동산 – 

이 동산은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사적 소유의 동산(정원)이다. 이 동산은 야생 동물들이 와서 오염시키지 않도록 울타리가 쳐있는 ‘잠근동산’이다. 왕의 정원은 곡물을 키우는 일반 정원과는 다르게, 왕에게 쉼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정원을 가꾸는 데에는 엄청난 돈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교회는 하나님의 정원(동산)이다(고전 3:6-9; 아 6:2; 2:16).

B. “잠근 동산,” 또는 “덮은 우물, 봉한 샘”으로 산다는 것은, 

죄악과 타협의 더럽힘으로 부터 자신을 차단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협에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 왕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처소’가 된다. 고대에, 두껑이 없던 우물은 부정한(더러운) 물로 간주되었다(민 19:15).

15 무릇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도 부정하니라 (민19:15)

C. 덮은 우물과 봉한 샘 – 

이것은 (동물들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전한 물의 공급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우물이 귀했으며, 우물은 식물들이 풍성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정원에 귀한 수자원을 제공했다. 우리가 ‘덮은 우물’로 사는 것은 하나님께 귀하고 소중하다.

D. 욥은 거룩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쳐다보지 않겠다는 언약을 세웠다(욥 31:1). 

이렇게 함으로, 욥은 “잠근 동산”으로 마음을 보전하며 살았다.

VIII. 젊은 신부의 열매에 대한 그림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아 4:13-14)

A. 신부는, 각종 즐거움을 주는 과일, 향기로운 식물, 나무와 귀한 향품으로 가득찬 ‘과수원’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신부의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삶과 사역’을 말한다.

‘과일’은 하나님 안에 거룩함을 품는 살아있는 심령(롬 6:22;7:4-5; 갈 5:22; 엡 5:9; 히 12:11; 13:15;야 3:18)과 타인을 위한 사역 (요 4:36; 롬 1:13; 15:28; 빌 1:22; 골 1:5-6)을 가리킨다.

B. 석류(13절)와 아름다운 과일(13절)은 달콤하며, 다른 이들에게 끼치는 아름다운 ‘영향력’을 말한다. 

향기로운 고벨화와 나도초(13절)는 우리 삶에 일하시는 성령님의 귀하고도 풍성한 ‘역사’를 말한다. 

나도와 번홍화, 창포와 계수(14절)는 신부의 사역에 다양하게 나타나는 주님의 ‘은혜’를 말한다. 

각종 유향목(14절)은 ‘기도’ 사역을 말한다.

몰약과 침향(14절)은 십자가와 자신을 부인하는 ‘죽음’을 말한다. 모든 귀한 향품(14절)은 신부의 사역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는 은혜’를 말한다(고후 2:14-16).

IX. 신부의 삶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세가지 그림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아 4:15)

A.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신부는 삶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다. 

이 경로들을 말하는 ‘물의 원천’에는 세가지가 있다. 

믿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다(시 1:3). 굳어진 마음은 ‘메마름’을 말한다(사 1:30). 예수님은 우리가 ‘생수의 우물’ 같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 4:14; 7:38). ‘샘(분수)’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말한다. ‘우물’은 하나님 안에 살아온 우리의 역사를 말한다. ‘시내’는 높은 곳에서부터 우리에게 흘러 내려오는 성령님과 같다.

B. 샘(분수)은 땅속 밑에 감춰져 있는 수자원이다. 

이것은 내적 공급원, 즉,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말한다(골 1:27). 여기 동산들은 ‘복수형’(12절 잠근 동산이 단수형인 것과는 대조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말한다.

C. 우물은 물을 저장하여 필요할 때마다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물은 건조기에 사람들에게 물을 제공할 수 있는 원천으로 저장된 물이다. 이것은 우리 과거의 경험에서 끌어내 공급할 수 있는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 역사’로, 공급원을 저장한 ‘과거의 은혜’를 말한다.

D. 시내는 외부로 흐르는 물이다. 

시내는 땅 위에 있으며, 샘은 땅 밑에 있다. 시내는 활력적으로 흐르는 물이다. 이 시내물은 산위에서, 또는 레바논의 고지대에서 흘러 내려온다. 그래서, 높은 곳(하늘)에서 내려오는 공급원인 성령님의 “물”로, 외적 공급원을 말한다(행 8:18).

X. 갑절의 기름부음을 소망하는 신부의 절규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아 4:16).

A. 신부는 이제 하나님의 선하심에 확신을 가지고, 두가지 기도를 드리게 된다. 

신부는 ‘역경과 고난’의 북풍과 ‘축복’의 남풍이 함께 자신에게 불게 되기를 기도한다. 신부는 자신이 하나님께 즐거움을 선사하는 ‘향기로운 동산’이 되기 위해서는, 북풍과 남풍 모두가 전략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B. 북풍아 일어나라 – 

북풍은 살을 애는 듯한 찬바람으로, ‘연단과 고난’의 바람을 말한다. 이 기도는 나중에 아 5:3-7 에 나오는 “2 가지의 궁극적 시험”으로 응답되게 된다.

C. 남풍아 오라 – 

신부의 두번째 기도는 성숙케 하는 상쾌한 ‘축복’의 바람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분의 지혜로 우리 삶의 각 계절에 필요한 북풍과 남풍의 조화를 잘 알고 계시며, 우리의 구조와 부르심을 알고 계신다.

D. 나의 동산에 불어서 – 

신부는 자신의 ‘마음과 사역의 동산’이 더 깊이 영향받게 되기를 바란다. 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우리의 교만과 야망, 분노 등이 고난를 거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향기를 날리라 – 신부는 하나님의 향기로운 임재로 채워지기를 소원한다. 다시말해, 신부는 주님의 사랑안에 자라고 싶어한다.

E.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 

여기서 ‘신부의 동산’이 ‘주님의 동산’이 되는 ‘대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이제 신부는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기를 소원하며, 거룩한 헌신을 위한 ‘기름부음’을 바란다. 신부는 ‘자신의 삶과 사역’을 자신의 것이 아닌 “주님의” 동산으로 본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누리시는 기업을 갖고 계신다(엡 1:18). 

이 구절이 아가서의 전환점이다. 아가서 1장부터 4 장까지는 ‘신부의 기업’을 말했지만, 이제부터는 ‘주님의 기업’을 말하게 된다.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 

신부 안에 하신 성령의 역사를 예수님이 즐기시게 되기를 바란다.

XI. 주님의 기업인 신부를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예수님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 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 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아 5:1)

A. 신부는 이제 예수님의 온전한 리더십과 주권아래 살게 된다. 

신부의 삶과 사역의 주권을 묘사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나의”라는 소유격을 9 번(영어역)이나 사용하셨다: 내 동산, 나의 누이, 나의 신부, 나의 몰약, 나의 향, 나의 꿀송이, 나의 꿀, 내 포도주, 내 젖.

B. 내 동산에 들어와서 – 

신부가 아 4:16 에서, 주님께 들어와 드시라고 드렸던 기도에 예수님은 응답하신다. 예수님은 누이와 신부의 두가지 관계를 통해, ‘자신의 기업’으로 신부의 삶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 신부의 마음안에 들어 오신다.

C. 나의 몰약과 향재료를 거두고 – 

예수님은 성령이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 것을 거두어 들이신다. ‘나의 몰약’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시간을 말한다. ‘나의 향재료’는 신부의 삶에 거하는 ‘은혜의 나눔’을 말한다.

D.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 

예수님은 성숙한 교회의 열매를 잔치하신다. 신부는 아 4:16 에서 ‘오셔서 드세요’라고 주님께 간청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교회에 풀어주신 것을 즐기신다. ‘꿀’은 예수님이 신부의 삶을 잔치 하시는 ‘즐거운 양식’을 말한다.

E.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 

예수님을 향한 신부의 사랑을 주님은 축하 하신다. 포도주는 축하주이며, 젖은 강건함을 위한 양식이다. 예수님은 신부의 사랑을 축하 하시며, 그 사랑으로 기뻐하신다.

F.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 

예수님은 교회가 ‘성숙한 자들의 열매’를 즐기게 되기를 원하신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성도들을 말한다. 바울은 자신을 부인하는 죽음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이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을 기술한 바 있다(고후 4:10-12). 주어진 고난을 받아 들였기에,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향기’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게 되었다. 신부는 주님이 잔치를 벌이고 교회를 먹이는 ‘산제사’와도 같다(롬 12:1). 우리는 주의 은혜로 타인들을 강건케하고 양육시킬 수 있다.

G. 요약: 아가서 5:1 에 나오는 예수님의 활동 5 가지. 

주님은 몰약을 거두고, 꿀송이를 먹고, 마시며, 신부를 다른 이들이 동참하여 즐길 수 있는 ‘잔치’로 제공하신다. 

주님은 ‘자신의’ 동산에 오신다, 즉, 신부에게 가까이 임하신다. 

주님은 몰약과 향재료를 거두신다, 즉, 주님은 성령이 신부 안에 하신 역사의 열매를 사용하신다. 

주님은 주의 꿀송이와 꿀을 드신다, 즉, 신부의 성숙의 열매를 잔치하신다. 

주님은 주의 포도주와 젖을 마신다, 즉, 성숙한 신부를 축하하시고 기뻐하신다. 

주님은 친구들을 잔치로 초대하신다, 즉, 주님은 교회가 성숙한 자의 열매를 보며 기뻐하고 즐기게 되기를 바라신다.

===18장 성숙을 위한 궁극적 시험 2가지 (아 5:2-9) (The Ultimate 2-Fold Test Of Maturity)

I. 복습: 삶에 더 깊은 하나님의 임재를 소원하는 신부의 절규

A. 신부는 ‘역경’의 북풍과 ‘축복’의 남풍이 ‘마음’의 동산에 임하기를, 그래서 은혜의 향기가  삶에 날리게 되기를 기도했다. 

신부는 확신으로 차가운 북풍의 시험을 기도했는 데, 이것은 아 5:3-7에 나오는 시험 2 가지 중에 하나로 응답된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아 4:16)

B. 이제는 신부의 마음의 동산이 ‘주님의 동산’이 되는 시간이다. 

신부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동산이 아니라 ‘주님의’ 동산으로 보게 된다. 예수님은 주의 백성들을 통해 누리시는 기업을 소유하고 계신다(엡 1:18). 

아가서의 전환이 일어나는 부분이다. 1장부터 4장까지 신부의 초점은 ‘자신의 기업’에 있었다. 5장부터는 신부의 초점이 ‘주님의 기업’이 되는 데 맞추어져 있다. 신부가 주님의 주권아래 살게 되면서, 예수님은 신부를 통해 당신의 기업을 즐기시게 된다. 주님은 그분의 주권을 묘사하기 위해 “나의”라는 소유격을 아 5:1에서는 9번, 아 5:2에서는 6번 사용하신다.

1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나의)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나의)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아 5:1)

II. 고난의 참예로 신부를 초청하시는 예수님 (아 5:2)

2 내가 잘찌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아 5:2)

A.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의 ‘고난’을 겪는 모습으로 신부에게 나타나신다. 

예수님은 주님과 더불어 고난에 참예하도록 우리를 초청하신다(빌 3:10). 신부는 순종으로 응답하며(아 5:3-5), 두 가지 시험을 치르게 된다. 

먼저, 예수님은 신부에게서 자신의 임재를 거둬가신다(아 5:6). 두번째로, 영적 권위자들이 신부를 학대하는 것을 그대로 놔두신다(아 5:7). 이 두가지 시험에 신부는 사랑으로 응답하게 된다(아 5:8).

내가 그리스도와 …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빌 3:10)

B.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나긴 밤을 지새어 밤이슬이 머리털에 가득한 “겟세마네의 예수”의 모습으로 신부에게 다가와, ‘고난의 주님’을 친밀하게 알 수 있도록 신부를 초청하신다.

C. 예수님은 신부가 “주님께” 마음을 열어, 하나님 안에 새로운 깊이를 경험하도록 초청하신다. 

주님은 아 5:1에서 공포하신 것처럼, 주권으로 이제 신부의 마음전체를 소유하게 되신다. 아 4:16에, ‘북풍’을 기도한 신부의 기도응답으로 예수님은 신부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을 더 깊이 경험하며 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시도요, 갈망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 더 깊이 하나님과의 교통(교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20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D. 북풍이 불어올 때, 신부는 하나님 사랑 안에 확신을 가지고 안식하게 된다. 

폭풍이 휘몰아 칠 때 예수님이 잠잠히 주무시고 계셨던 것처럼(마 8:23-27), 이미 주님은 “믿음의 안식”을 잘 알고 계신다. 순종의 삶을 사는 신부는 이제 영적인 것들에 예민한 심령으로 깨어 살게 된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살전 5:6; 롬 3:11; 엡 5:14).

E. 곧, 신부는 아 2:8에서 처럼,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듣게된다. 

예수님은 ‘신부의 사랑하는 자’로 모습을 다시 드러 내신다. ‘신랑의 음성’은 세례요한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을 때 들었던 음성이다.

…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 (요 3:29).

F.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신부의 모습들을 묘사하고, 신부에게 주 사랑으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예수님은 4 가지 이름으로 신부를 부르신다. 이것을 통해, 신부는 주님께 마음을 여는 권능을 받게 된다.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오 (아 5:2) .

1. 나의 누이 – 

신부와 같은 예수님의 ‘인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기 위해 형용할 수도 없는 고난을 이겨내셨다 (히 2:11-17).

2. 나의 사랑 – 

이것은 신부를 향한 주님의 인자한 사랑을 상기시켜 준다. ‘은혜의 동기’는 두려움이나 심판이 아닌, 사랑과 감사로 동기부여 된 것이다. “애정에 근거한 순종”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형태의 순종이다. 예수님의 애정을 경험함으로 흘러나오는 순종이기 때문이다. ‘사랑앓이’를 하는 사람은 그 사랑을 위해 모든 역경을 참아낸다. 그래서, 이 순종은 가장 ‘일관된’ 순종이라 할 수 있다.

3. 나의 비둘기 – 

이것은 신부의 ‘일편단심’과 ‘충성’을 말한다. 성령님은 비둘기로 비유된다. 비둘기는 짝이 죽으면 다른 짝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비둘기들은 충실함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둘기는 한 번에 두 사물을 볼 수 없으며, 주변 시야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이것은 타협하지 않는 ‘일편단심’의 마음을 말한다. 신부의 눈은 주님께 고정되어 있다.

4. 나의 완전한 자 – 

신부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것은 성숙하게 되는 모습을 가리킨다. 신부의 순종은 성숙하게 된다. 이 시험을 치르기 전(아 5:2)과 후(아 6:9)에서, 예수님은 모든 타협을 거부하는 신부를 ‘완전한 자’라고 칭찬하신다.

III. 100% 온전한 순종으로 예수님께 응답하는 신부 (아 5:3-5)

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4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5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아 5:3-5)

A.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신부는 순종하며 일어난다. 

시험이 지난 후, 신부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첫 마디는 신부가 순종으로 응답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아 6:4-5).

우리는 ‘예수님의 의’의 의복으로 덮혀져 있다(사 61:10; 슥 3:1-5). 우리 자신의 의나 의복은 ‘더러운 옷’과 같다(사 64:6). 신부는 자신의 더러운 옷을 벗고 주님의 의의 의복을 입었다. 신부는 자신의 옷을 다시 입고 싶어하지 않는다. 타협하며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신부는 선포한다, “어찌 다시 (나의 옷)을 입겠으며.”

10 …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 (사 61:10)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 (사 64:6)

B. 신부는 발을 씻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발이 깨끗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 13:6-14). 이것은 매일의 삶에 필요한 ‘영적 정화’를 뜻한 것이다. 신부는 타협으로 다시 발이 더럽혀지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아 5:3). 

미국 NIV역은 이것을 마치 신부가 침대에서 나오기를 거부하는 타협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본문을 잘 살펴보면, 신부가 순종으로 예수님께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C. 하나님의 ‘손’은 신부의 마음의 ‘걸쇠와 문빗장’에 은혜를 풀어주신다(행 11:21-23).

신부는 ‘사랑하는 자, 사랑하는 분’으로 예수님을 부르고 있다. 신부는 ‘겟세마네의 예수님’께 문을 열기 위해 일어나면서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마음이 갈급해진다. 예전에 이와 비슷한 초대가 있었을 때, 신부는 예수님께 올바로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아 2:13, 17).

4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걸쇠)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5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아 5:4-5)

D. 예수님이 ‘걸쇠’에 손을 들이미시는 것은, 신부가 마음의 문을 열도록 도와 주시기 위해서다. 

신부의 ‘마음의 문빗장’은 결단에 영향을 주는 ‘생각들과 감정들’을 말한다.

E. ‘몰약의 즙’이 손과 손가락 사이에 흐르며, 신부의 마음의 문빗장에 액체처럼 흐른다.

이것은 다가오는 두가지 시험의 고난을 이겨내도록 도와주는 ‘풍성한 은혜’를 말한다. 몰약은 장사를 지내는 데 사용되는 향품이었다. 이것은 자신을 부인하는 죽음과 십자가를 지는 헌신을 말한다. 몰약의 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몰약이 손가락 사이에 흐른다는 것은, 신부가 몰약의 산으로 가려고 헌신할 때 역사하는 ‘믿음의 행위’을 말한다(아 4:6).

IV. 첫번째 시험: 신부에게서 임재를 거둬가시는 예수님 (아 5:6)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아 5:6)

A. 주님은 아가서에서 두번에 걸쳐 신부에게서 모습을 감추신다(아 3:1-2; 5:6). 

이 본문에서, 주님은 신부가 100% 온전히 순종하며 주님을 따르려 할 때 임재를 거둬가신다. 이 계절은 신부가 불순종의 결과로 받았던 아 3:1-2의 훈육과는 다르다.

B. 아가서 5 장에서, 예수님은 신부를 “나의 완전한 자”라고 부르시는 데(2절), 이것은 사랑으로 병이난 (사랑앓이를 하는) 신부가(8절) 주를 갈급하고(4절), 사모하며(5절) 주께 마음을 여는 ‘순종’을 보시고 말씀하신 것이다.

C. 신부의 가장 큰 소원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다(아 1:2-4; 2:3-6). 

하나님에게 사랑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 중 가장 크고 강력한 즐거움이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 나는 …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D. 예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거나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히 13:5). 

그러나, 신부가 아 4:16 에서 기도한 것처럼, 주님은 우리가 성숙한 사랑을 지니게 하기 위해, 때때로 임재를 거둬 가시는 시험을 주신다. 이것은 죄로 인함도 아니요, 마귀의 공격도 아니다. 때때로, 주님을 향한 더 큰 갈급함을 유도해 내기 위해,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얼굴을 감추기도 하신다.

…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E. 중세 카톨릭 신자들 중에서, 임재(관상)기도 했던 사람들은 “영혼의 깊고 어둔 밤”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 데,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자들에게 오는 ‘거룩한(신적) 시험의 계절’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성경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시기를 가리켜 사용된 용어였다. 이 구절은 16세기에 살았던 성 크로스 요한(St. John of the Cross)이란 사람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 구절의 뜻에 대한 신학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F. 욥은 고난을 겪고 다시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확립했을 때, 의로운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 1:8)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G. 본문에서, 신부는 더욱 열심히 주를 찾지만, 만나지 못한다. 

이 ‘거룩한(신적) 침묵의 계절’은 주를 향한 사랑을 자라게 하기 위해 받는 훈련이다. 시험의 계절에서도, 우리 믿음의 고백은 한결 같아야 한다. “내 삶을 향한 주님의 깃발은 사랑입니다”(아 2:4).

V. 두번째 시험: 핍박박고 거절당하는 신부 (아 5:7)

7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아 5:7)

A.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들(행순 하는 자들)’은, 주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의 성벽을 지키는 ‘리더들,’ 즉, ‘영적 권위자’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신부를 치고 상처를 준다. 그들이 신부를 거절하고 핍박하고 상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신부와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자가 당신을 정죄하고 참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을 상하게 하는 사람은 정작 당신과 가까운 친구들이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집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예수님도 겪으셨던 경험이다. 이것 또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훈련의 일부다(시 55:12-21).

B. 리더들이 신부의 ‘옷’을 취해간다는 것은, 신부의 영적 커버링, 즉, 지체를 섬기는 신부의 역할과 기능을 거둬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전 11:10).

VI. 겸손과 사랑으로 반응하는 신부 (아 5:8)

A. 신부의 겸손은 미숙한 예루살렘 여자들을 겸허한 마음으로 대하는 데서 나타난다.

8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아 5:8)

B. 신부는 두 가지의 시험을 주신 주님께 실족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사랑하여 병이 나게 된다.

6 누구든지 나(예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 11:6)

C. 신부의 삶의 비전 두 가지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사역에 주님과 함께 매진하는 것이었다(아 1:4). 하나님께 받은 수많은 약속들도 이 비전과 연관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신부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여기서, 이슈는 신부가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님께 순종할 수 있겠는가? 이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하나님을 찾았는가? 아니면, 주님을 위해 순종할 것인가? 

주님은 삶의 고난이나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께 순종할 사람들을 찾으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기업’이 되는 데 있어 나타나는 주된 이슈가 바로 이것이다. 주님은 ‘사랑으로 주님과 동일한 멍에를 지는 신부’를 바라신다.

D. 아가서에 나오는 신부의 위기 7 가지: 

죄의 위기(아 1:5-6); 두려움의 위기(아 2:8-9); 거룩한(신적) 훈육의 위기(아 3:1); 온전한 순종의 위기(아 4:6, 16); 주님의 부재로 인한 위기(아 5:6); 교회 안에서 겪는 거절감의 위기(아 5:7); 그리고, 핍박과 분열의 위기(아6:13)

===19장 두 가지 시험에 대한 신부의 반응 (아 5:8 - 6:5) (The Bride's Response To The 2-fold Test)

I. 복습: 삶에 더 깊은 하나님의 임재를 소원하는 신부의 절규

A. 신부는 역경의 북풍과 축복의 남풍이 모두 심령의 동산에 불어 ‘은혜의 향기’와 ‘하나님의 임재’가 삶에서 날리게 되기를 기도했다.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아 4:16).

B. 이 기도는 성경에 나온 성숙한 사랑과 헌신을 위한 기도 중 가장 위대한 기도이다. 

우리의 삶에 향기가 날리도록, 즉,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타인을 향한 사랑이 성숙해 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다 동원해 달라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C. 아가서의 전환이 일어나는 부분이다. 

아가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아 1-4장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아 5-8장은 우리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풍을 위한 기도의 응답은 아 5:3-7에 나오게 된다.

D.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의 모습으로 신부에게 찾아오면서, 더 깊은 차원의 친밀감을 경험하도록 “주님께” 마음의 문을 열으라고 신부를 초청하신다.

1. 신부는 순종으로 응답하며(아 5:3-5), 두가지의 시험을 치르게 된다. 

먼저, 예수님은 신부에게서 임재를 거둬가신다(아 5:6). 그리고, 주님은 신부가 영적 권위자들(종교적인 지도자들)로 부터 학대받는 것을 그대로 놔두신다(아 5:7).

2. 이에 대해, 신부는 예수님을 향한 깊은 사랑으로 응답한다(아 5:8). 

사랑의 성장(아5:9-6:13)과 열매맺는 사역(아 7:1-8:4)을 위해, 우리는 아 5:2-9의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E. 우리가 간절히 소원하는 것들을 하나님이 거둬 가신다면, 그 가운데서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는가?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에도, 내가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는가? 주위 환경으로 낙심할 때도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믿음의 근육”을 길러, 고난 가운데서도 심령을 주님께 다시 맞추며, 사랑의 성장을 거듭해야 한다.

F.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 또는 주위환경이 어려울 때, 제일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며 우울해지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면서, “왜 이런 감정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기업’이기 때문에, 사랑의 성장을 위해 이러한 ‘성장통’을 겪는다는 진리를 심령에 거듭 새겨야 한다.

II. 아가서 5:8-6:5 개관

A. 고난 가운데서도, 신부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한다(아 5:8-16). 

하나님으로 인해 실족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을 향해 ‘사랑앓이’를 하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예수님, 제가 처한 고난은 사랑의 성장을 위한 것임을 압니다. 주님은 아름다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 5:8-10).

예루살렘 여자들아 …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아 5:8)

B. 신부는 영적으로 아직 더 미숙한 예루살렘의 여자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겸손을 보이며, 하나님께 사랑으로 응답한다 (신부는 자신에게 상처 준 교회를 경멸하지 않는다).

C. 미숙한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그가 누구이길래 그렇게 사랑하는가?(아 5:9). 그는 네게서 임재를 거둬갔고(6절), 리더들이 너를 상처주게 그냥 놔두지 않았는가(7절)”. 

그러나, 그들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을 신부로부터 듣고, 두번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너처럼 우리도 그를 만날 수 있겠는가?”(아 6:1).

D. 시험이 끝난후, 예수님은 고난의 씨름(시험)을 치르는 신부를 바라보며 느낀 마음과 생각을 아낌없는 사랑의 말로 신부에게 표현하신다(아 6:4-10).

III. 첫번째 질문: 그가 누구이길래 그를 그렇게 사랑하는가 (아 5:9)

9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가장 아름다운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아 5:9)

A. 영적으로 미숙한 예루살렘 여자들은 아가서 전체에 걸쳐 신부에게 여러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그들은 고난 가운데 불평과 우울함으로 가득찬 신부가 아닌,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병난 신부를 지켜보고 있다. 예수님을 향한 신부의 깊은 사랑이 신부의 지혜나 은사보다도 그들을 더욱 자극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혜나 능력보다는, ‘사랑’을 통해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들어 졌다(베전 3:3-4).

B. ‘행순하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논쟁” (아 5:7)은 신부를 바라보는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들은 신부를 “극히 어여쁜,” 또는 “가장 아름다운” 자라 부르게 된다(아 5:9). 그들은 신부의 헌신과 순결을 보고, 신부를 깊이 존경하게 된다. 이것은 ‘사울형’의 리더들(행순하는 자들)이 신부를 판단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사울은 다윗의 영적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다.

C. “너의 사랑하는 자가 다른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신부가 처한 극한 시련가운데서도, 신부 안에 있는 사랑을 깨워주는 특별한 능력이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왜 그렇게 그에게 충성하는가? 그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알려달라!”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의 극단적인 헌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D. 예루살렘 여자들에게는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다른 연인”이 존재한다. 

믿는 자들의 삶에 있는 다른 연인이란, 사람, 친구, 사역, 물질, 여가, 쾌락, 권력, 유명세, 안위 등과 같은 것이다. 많은 거듭난 자들이 예수님보다 이런 것들을 더 사랑한다.

E. 영적 성숙은 예수님이 우리 영혼의 ‘첫 사랑’이 될 때 정의된다. 

성령님은 지금 전 세계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 안에 ‘첫계명’을 ‘최우선 순위’로 회복하고 계신다.

F. 같은 질문이 반복 되면서 강조되고 있다. 

질문을 반복한다는 것은 답을 듣고자 하는 그들의 간절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들이 심각하게 질문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 질문인 아 6:1을 통해서 알 수 있다.

G. 그러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예수님의 질문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5).

바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출5:2).

H. 모든 사역의 가장 강력한 차원은 ‘예수님을 향한 열정’이다(고후 2:14-17). 

사람들이 당신 안에 있는 ‘주를 향한 헌신’을 보고 도와 달라고 하는가? 그렇다면,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향한 헌신을 지키며 그 고난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사람들이 당신의 삶가운데 보며 배울 수 있도록 비전을 세워 봐라.

IV. 신부의 응답: 위엄한 광채의 예수님 (아 5:10-16)

A. 신부는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선포하면서 사람들의 질문에 답한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소유하신 인격의 속성 10 가지를 전달하기 위해, 인체 각 부분들을 비유로 사용하신다. 각각의 속성은 두 가지로 기술된다.

B. 아 5:10-16 은, 성경에 나온 예수님에 대한 계시들 중 가장 강력한 계시를 보여주는 본문에 속한다. 

신부는 먼저, 주님의 아름다움을 한 문장으로 진술하고 나서 10 가지 속성을 전개한다. 그리고 나서, 마무리 요약문을 다시 진술한다.

10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눈부신, NAS역)… 만 사람에 뛰어난다 11 머리는 정금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 12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 13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 입술은 백합화 같고 … 14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 15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형상은 레바논 같고 … 16 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아 5:10-16)

1. 그의 머리 – 만물위에 계신 주의 주권적 리더십

2. 그의 머리털 – 하나님 아버지와 교회에 대한 헌신

3. 그의 눈 – 주의 무한한 지식과 지혜, 통찰력과 분별력

4. 그의 뺨 – 주의 다양한 감정들

5. 그의 입술 – 주의 말씀

6. 그의 손 – 주의 거룩한(신적) 활동

7. 그의 몸 – 주의 인자한 긍휼의 마음

8. 그의 다리 – 주의 목적을 위한 걸음과 운영

9. 그의 형상 – 주의 백성들에게 나눠주심

10. 그의 입 – 주의 친밀함

11.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 주의 종합적 아름다움

12. 그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친구다

C. 신부가 ‘사랑앓이’를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두가지 시험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부는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찾는데 초점을 둠으로, 자신에게 또는 문제에 초점맞추는 것을 극복한다. 우리가 주님의 속성들에 대한 계시를 얻게될 때, 인생의 ‘폭풍우’를 지나면서도 심령에 평안과 안정을 누릴 수 있게 된다.

D. 삶이 혼란스러워 질 때, 나는 하나님의 속성들을 다루는 책들을 읽곤 하는데, 그 중에는 ‘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들(The Existence & Attributes of God, Steven Charnock),’ ‘거룩한 분을 아는 지식(Knowledge of the Holy, AW Tozer)’,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 JI Packer),’ 그리고, ‘하나님의 즐거움(The Pleasuer of God, John Piper)’등이 있다.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에 대한 주제로 내가 저술한 책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예수님을 향한 열정, 

하나님을 연인을 사랑하는 즐거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V. 광대한 아름다움을 지니신 예수님 (아 5:10-16)

A. 신부는 예수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일반적 진술을 내놓으며 시작한다(아 5:10). 

고난 가운데서도, 신부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로, 자신이 사랑하는 분으로 언급하고 있다. NIV 역은 “희고도”를 “빛나는”으로 번역한다. 그분은 ‘붉으시다’. 이것은 인성을 지니신 주님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만 사람위에 뛰어나다’는 것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보다 비교도 안될만큼 ‘탁월한 분’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10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 (아 5:10)

B. 예수님의 ‘머리’는 모든 창조물 위해 계신 주님의 ‘주권적 권위’를 말한다(엡 1:21). 

그것은 신부에게 정금과 같다. 금은 ‘거룩한(신적) 성품’을 말한다. ‘정(금)’이란 품질과 수준에 있어 최고를 말한다.

머리는 정금같고 (아 5:11)

C. 예수님의 ‘머리털’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의 백성들에 대한 예수님의 ‘헌신’을 말한다.

나실인의 맹세를 한 자들은 자신들의 머리털을 자를 수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께 외적 표징으로 보이는 헌신을 뜻했기 때문이다(민 6장).

11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구나 (아 5:11)

1. 주님의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즉, 주님의 헌신은 청춘의 열정과 열심을 지닌 자만큼 왕성하다. 인생의 황금시기에 있는 청년의 고불고불하고 검은 머리는, 활력과 그 숯을 잃어버리고, 가늘고 흰머리카락을 지닌 노인과 대조된다. 다시말해, 하나님 아버지와 그 백성들을 향한 예수님의 거룩한 헌신은, 꺼지지 않고 영원토록 불타는 ‘활력적인 열정의’ 헌신이다.

2. 머리털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아름다움’을 말하기도 한다. 

바울은 여인의 머리털을 영광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하는 아름다움으로 말한 바 있다 (고전 11:5, 6, 15).

D. 예수님의 ‘눈’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능력, 즉, 주님의 전지(全知) (무한한 지식, 지혜, 그리고 분별력)를 말한다. 비둘기와 같은 주님의 눈은 ‘일관된 비전’을 말한다 (아 1:15; 4:1).

12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젖으로 씻은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아 5:12)

E. 예수님의 ‘뺨’은 주님의 열정과 즐거움을 포함한 ‘주님의 감정들’을 말한다. 

우리의 감정은 뺨에 노출된다. 뺨은 우리 감정의 창문과도 같아서 그 사람이 기뻐하는 지, 슬퍼하는지, 화가 났는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해준다. 예수님의 감정은 ‘향기로운 꽃밭’ 같다. 향기로운 풀 언덕은, 풍성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향기를 지니신 주님의 ‘애정’을 말한다.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언덕과도 같고 (아 5:13)

F. 예수님의 ‘입술’은 달콤하면서도 백합화 같이 순전한 주님의 ‘말씀’들을 말한다. 

입술은 ‘몰약’을 담고 있는 데, 이것은 자아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권고를 말한다.

13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진다 (아 5:13)

G. 예수님의 ‘손’은(또는, 팔, NIV 역) 주님의 ‘역사와 활동들’을 말한다. 

주님은 전능하사, 원하시는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다. 황금 노리개는 ‘거룩한(신적) 성품’을 말한다.

14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아 5:14)

H. 예수님의 ‘몸’ (또는, 배, KJV 역)은 주님의 인자한, ‘긍휼의 마음’을 말한다. 

아 5:4에서, 신부는 “내 마음이 동하여서(열망하여)”라고 말하는 데, 여기서는 ‘몸’이라고 번역되었다. 이것은 깊은 감정, 또는 인자한 긍휼의 마음을 말한다. 예수님의 긍휼한 마음은 상아와 같이 귀한 것이다 (아로 새긴 상아처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14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듯하구나 (아 5:14)

I. 예수님의 ‘다리’는 주님의 목적을 위한 주님의 ‘걸음과 운영 ’을 가리킨다. 

다리를 통해 몸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예수님이 주님의 목적들을 성취하고, 계획들을 운영하는 방법은 마치 화반석(대리석) 기둥같다. 기둥은 힘, 질서, 아름다움을 말한다.

화반석(대리석)은 건물을 지을 때 단단하고 영구적인 재료로써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방법은 강하고, 사랑스러우며, 영구적이요, 세우는 것이며, 질서 정연한 것이다.

15 다리는 정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아 5:15)

J. 예수님의 ‘형상’은 주 백성들에게 나눠 주시는 주님의 ‘영광’을 말한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형상)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하나님의 형상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나타나기를 바라는 기도였다. 레바논은 ‘장엄함과 고귀함’을 상징한다.

15 형상은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아 5:15)

K. 예수님의 ‘입’은 아가서 전체를 통해, 그분의 백성과 친밀감을 누리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아 1:2 에서, 입은 아가서 처음으로 주님의 입맞춤으로 나오는 데, 이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가리킨다. 주님의 입은, 말씀을 나타내는 주님의 입술과는 구별된다(아 5:13).

하나님과의 친밀감은 가장 달콤한 것이다. 이것보다 신부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16 입은 심히 다니 (아 5:16)

L. 예수님은 그 전체가 사랑스럽다. 

이것은 전체 요약문이다. 신부가 사랑하는 분은 신부가 ‘친구’라고 부르는 분이다. 주님은 광대함으로 광명하게 빛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친구가 되기 위해 자신을 낮추신 분이시다.

16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 (아 5:16)

VI. 두번째 질문: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아 6:1)

1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이켰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아 6:1)

A. 아 5:8 에서 시작된 신부와 예루살렘 여자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여기서, 예루살렘 여자들은 예수님과의 친밀감을 누리는 신부를 보고, 예수님에 대해 그들이 알지 못하는 특별한 무언가를 신부가 알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그들은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너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즉, 우리도 너와 같이 주님을 알게 되길 원한다. 네가 가진 것을 우리도 갖게 되길 바란다.

B. 아 5:10-16 에서 준 신부의 대답을 듣고, 예루살렘 여자들은 “그가 누구이길래?”라는 질문에서 “그가 어디있는가 우리도 찾으리라”라는 질문으로 바꾸게 된다. 

그들은 더이상 멀리서 예수님을 섬기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부가 아 1:7 “예수님께서 그의 양떼를 어디서 먹이시는가?”라고 했던 질문을 신부에게 하게된다.

C.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에게 예수님을 “너의 사랑하는 자”라고 언급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아직 ‘그들의 사랑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신부를 볼 때,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거룩한 자’로 본다. “여자 중 극히 어여쁜 자야” 라고 부른다.

D.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와 더불어 예수님을 찾고 싶어한다(아 6:1). 

예수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신부의 고백이 이들을 감동시켜, 열정을 지닌 예수님을 찾아 나서게 만든다. 이제 그들은 “다른 연인들”을 기꺼이 내려 놓으려 한다. 찬란한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보기 전까지, 우리 모두는 “다른 연인들”을 지니고 살게 된다.

E. 결국, 신부의 시험을 통해, 다른 이들의 삶이 극적으로 변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한결같이 사랑할 때, 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성령님은 전 세계에 기독교의 표현을 바꾸고, 마지막 때 다가 올 ‘압력’ 속에서도 사랑이 충만한 신부들을 예비시킬 ‘메신저(주의 사자들)’, 예수님을 깊이 ‘사랑앓이’ 하는 메신저들을 일으키고 계신다(계 15:2-4).

VII. 두번째 질문에 대한 신부의 대답 (아 6:2-3)

나의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모으는)구나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그 양떼를 먹이는구나 (아 6:2-3)

A. 예수님은 교회 안에 계셔서 교회를 계속 세우신다. 

신부는 어디서 예수님을 친밀하게 만날 수 있는지를 그들에게 가르쳐 준다. 예수님은 ‘그분의 동산(교회)’에서 그분의 백성들을 모으고 먹이신다. 주의 동산(단수형)은 ‘지역 교회들,’ 또는 동산들(복수형)로 이루어진 전세계의 모든 ‘교회’를 말한다.

18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

B. 신부는 “나의 사랑하는 자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라고 선포한다(아 6:2).

‘꽃밭’(복수형)은 주님의 동산(교회) 안에 있다. 이 땅에 주님의 교회는 하나지만, 다양하고 향기로운 꽃밭들(지역 교회들과 사역들)이 존재한다. 향기(향품)는 나타나는 주님의 ‘은혜’를 말한다. 사역 하나 하나 독특한 향기를 지닌다. 동산에 있는 “향기로운 밭” 하나 하나 모두 그리스도의 풍성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모든 교회를 사랑하신다.

C. 예수님의 뺨은 ‘향기로운 꽃밭’과 같다(아 5:13). 

교회에서 다양하게 반영하는 예수님의 성품들은 ‘새 예루살렘’에서, 또는 ‘향기로운 산’(아 8:14)에서 모두 합쳐지게 될 것이다.

D. 아가서 1:7-8 와 아 6:2-3을 비교해 보면, 신부가 예수님과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 1:8에서, 신부는 “말해다오, 어디서 당신의 양떼를 먹이는가?” 질문 했고, 예수님은 양떼를 먹이시는 곳을 세가지로 응답해 주셨다.

7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 8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찌니라 (아 1:7-8)

1.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에 헌신함 (8절): 부정(不淨)한 고립을 거부

2. 섬김의 사역에 헌신(8절): 부정한 나태를 거부

3. 영적 권위에 헌신 (8절): 부정한 독립을 거부

E. 다음 장에서: 예수님은 신부를 향한 사랑을 쏟아 부으시면서 침묵을 깨뜨리신다. 

주님은 깃발을 높이 든 ‘승리의 군대’와 같이 신부가 위대하다고 선포하신다. 예수님은 넘치는 신부의 사랑에 “정복”되신다. 주님께 드리는 깊은 ‘헌신의 눈’이 주님을 감동시킨다. 지옥에 있는 모든 군대도 예수님을 정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시험가운데서도,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는 신부의 눈은 주님의 마음을 “정복”하게 된다.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 같고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네 눈이 나를 놀래니(정복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아 6:4-5)

===20장 시험의 계절 후 신부를 칭찬하시는 예수님(아 6:4-10) (Jesus Praises Her After Her Season of Testing)

I. 복습: 삶에 더 깊은 하나님의 임재를 소원하는 신부의 절규

A. 신부는 역경의 북풍과 축복의 남풍이 모두 ‘심령의 동산’에 불어 은혜의 향기, 즉,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가 타인들에게 날리기를 기도했다.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아 4:16).

B. 아가서의 전환 부분이다. 아가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아1-4장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아 5-8장은 우리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풍을 위한 기도의 응답은 아 5:3-7에 나오게

된다.

C.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의 모습 (아 5:2) 으로 신부에게 찾아오시면서, 더 깊은 차원의 친밀감을 신부가 경험하도록 “주님께” 마음의 문을 열으라고 초청하신다.

2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 나의 사랑 … 문열어 다고 (아 5:2)

D. 신부는 순종으로 응답하며(아 5:3-5) 두가지의 시험을 치르게 된다. 

먼저, 예수님은 신부로 부터 임재를 거둬 가신다(아 5:6). 그리고, 주님은 신부가 영적 권위자들(종교적 지도자들)로 부터 학대받는 것을 그대로 놔두신다(아 5:7). 그러나, 신부는 하나님께 사랑으로 응답한다(아 5:8).

E.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에게 두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그가 누구이길래 그렇게 사랑하는가?” (아 5:9). 신부는 ‘예수님의 아름다움’ 열가지를 선포하면서 질문에 답한다(아 5:10-16). 신부의 대답을 듣고 그들은 두번째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너와 같이 그를 알수 있는가?” (아 6:1).

10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눈부신, NAS역)… 만 사람에 뛰어난다… 16입은 심히 다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여자들아 이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일다(아 5:10-16)

II. 아가서 6:4-10 개관

A. 아가서 6:4-10 에서, 예수님은 아가서 5:6에서 시작된 침묵을 마침내 깨뜨리신다. 

주님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시고, 시험의 계절동안 신부를 어떤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셨는지를 드러 내신다(주님은 아 5:3 에서 불순종했던 신부를 꾸짖지 않으신다).

주님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해 세가지 비유를 사용하신다(4절). 

또한, 아 5:10-16 에서 신부가 주님에 대해 선포한 것처럼, 신부를 향한 주님의 열정(5절)을 아낌없이 드러내신다.

B. 주님을 섬기는 스랍과 그룹, 셀 수도 없이 많은 천군천사들이 있는 주님의 왕정에서 예수님은 신부의 성숙함(아 6:5-7)과 훌륭함을 칭찬하신다(아 6:8-9).

8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 뿐이로구나 그는 그 어미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의 귀중히 여기는 자로구나 …(아 6:8-9)

C. 성령님은 ‘신부의 영광’을 기술하신다(아 6:10).

10 아침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 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 6:10)

III. 시험의 계절에 있던 신부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시는 예수님 (아 6:4)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 같고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아 6:4)

A. 신부가 “그는 빛나고, 전체가 아름다움으로 내가 그를 사랑하며 병이 났나이다”라고 고백한 후(아 5:8-16), 예수님은 오랜 침묵을 깨시고, 신부의 아름다움을 세가지로 비유하며 칭찬하신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에서 발견되는 신부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신다.

우리가 갈망해야 할 칭찬은 ‘하나님의 칭찬’이라고 성 어거스틴은 말했다. 예수님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아 7:6-9 에서 더 완벽하게 칭찬하신다. 심령안의 성령의 역사로 더욱 아름다와지는 신부를 예수님은 기뻐하신다. 아가서 전체를 통해, 예수님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9 번 확증시켜 주신다(아 1:15(2번); 2:10,13; 4:1(2번); 4:7; 6:4; 7:7).

B. 신부를 향한 마음을 전달하시기 위해, 주님은, “오 내 사랑”이라고 신부를 부르신다.

C. 예수님은 신부를 디르사 성(도시)처럼 아름답다고 칭찬하신다. 

이 도시는 고대에 가장 매력적인 도시중의 하나였다. 디르사는 “아름답다”라는 뜻이다. 여호수아의 리더십아래 이스라엘이 이 땅을 정복하기 전에, 이 도시는 가나안의 수도였다(여 12:24; 왕상 15:33; 16:61). 주석학자들 중에는 이 가나안 도시를, 믿지 않는 ‘이방인의 나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말해, 신부는 불신자들에게도 아름다와 불신자들을 효과적으로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

D. 솔로몬이 죽은 후, 내전이 일어난 이스라엘은 둘로 나눠지게 된다(931 BC). 

북왕국의 왕이었던 여로보암은 디르사를 수도로 삼았는데 (왕상 14:17; 15:21; 16:6), 그 이유는 북왕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디르사였기 때문이었다. 디르사는 본래 므낫세 족의 영토였다.

E. 예수님은 신부를 예루살렘 만큼이나 사랑스럽다고 칭찬하신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영적’ 수도였다. 이 도시는 하나님이 택하사 ‘솔로몬의 성전’을 지은 곳으로, 지구상에서는 유일하게 하나님의 임재(지성소의 쉐카이나 영광이 나타남)가 계속 나타나는 축복이 임했던 장소였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전 세계의 예배 센터’로 위임하셨다(사 2:1-4; 슥 14:16-19).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함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F. 디르사는 불신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자연적 아름다움’을 말하며, 예루살렘은 믿는자들이 귀하게 여기는 ‘영적 아름다움’을 가리킨다. 

신부가 디르사와 예루살렘처럼 아름답다는 것은, 믿는 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끼칠 수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말한다.

신부의 아름다움은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불신자들은 희생적인 신부의 사랑과 순수한 동기를 보게된다. 그들은 신부를 볼 때,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 주는 자로 보게된다.

G. 고대 군대들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행렬하면서 기를 높이 들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패배군은 기를 빼앗겼다. 

신부는 가장 큰 적인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신부가 기치를 벌인 승리의 군대처럼, 시험의 계절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죄와 불신에 승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모든 것이 불투명하게 보일 때에도, 헌신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우리를 주님은 기뻐하시며,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벅차시게 된다. 신부에게 타협과 두려움의 ‘그림자들’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아 2:17; 4:6). 주님의 은혜로 정복했기 때문이다.

4 내 사랑아 …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아 6:4-10)

IV. 주님의 마음에 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신부를 칭찬하시는 예수님 (아 6:5)

5 네 눈이 나를 놀래니(정복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아 6:5)

A. 이 구절은 성경의 본문 중 가장 위대한 성명문 중의 하나다. 신부의 눈을 통해, 주님을 향한 신부의 사랑을 알 수 있다.

B. 문자 그대로 주님으로 부터 눈을 돌리라는 말이 아니다. 

주님은 시적인 언어를 통해, ‘신부의 아낌없는 사랑’을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은 아 5:10-16에서 표현된 것처럼, 시험 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해 요동치 않는 우리의 사랑에 깊이 감동받으사 마음이 정복되신 것이다. 예루살렘 여자들이 “그를 그렇게 사랑하는 이유가 뭔가?”라고 질문했을 때, 신부는 주님이 ‘전체가 사랑스럽고 빛나는 분’이라고 대답했다.

C. 헌신의 눈은 예수님을 감동시킨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영광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D. 누가 주님의 마음을 정복하는가? 

산과 바다, 별들의 위대함도 주님의 마음을 정복하지 못한다. 인간이나 마귀의 강력한 군대라도 주님께는 적이 되지 못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용사’이신 예수님은, 시험 가운데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신부의 사랑에 “정복”되신다. 그렇다, 주님을 바라보는 신부의 사랑의 눈이 주님을 감동시킨다. 아 6:5 에 나오는 신부의 한결같은 ‘주 바라기’는 ‘한번 보는 것’(아 4:9)보다 더 강력하다.

E. 주님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알고 싶은가? 

주님은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연약한 자, 상한 자들에 의해 정복되신다. 시험가운데 신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주님은 너무나 많은 것을 느끼고 계셨다. 시험가운데 드리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주님께 더 값지고 소중한 것이다. 물론, 신부는 자신의 사랑이 주님께 끼치는 영향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험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F.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의 마음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 지 다 알지는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를 거절한 것처럼 보였을 때, 그 여자의 대답을 듣고 예수님이 놀랐다는 사실을 그 여자는 알지 못했다(마 15:21-2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마 15:28).

V. 신부의 영적 성숙함을 칭찬하시는 예수님(아 6:5-7)

5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떼 같고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암양떼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고 너울 속의 너의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 (아 6:5-7)

A. 신부의 성숙함을 묘사하기 위해, 예수님은 머리털, 이, 그리고, 뺨을 통해 신부의 세가지 성품을 강조하신다. 

머리털은 신부의 ‘헌신’을, 이는 ‘주 말씀안의 생활’을, 그리고 뺨은 ‘거룩한 감정’들을 가리킨다. 예전에, 이러한 미덕들이 신부안에 피어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예언 하셨던 바로 그 성품들이다(아 4:1-3). 이제 이 미덕들이 신부의 삶에 ‘꽃이 피듯’ 성숙하게 되었다. 아 4:1-2 은 신부의 눈, 머리털, 이, 그리고 뺨을 아 6:5-6 와 같이 기술한다. 아 4:2 에는 “털 깍인”이라는 단어가 추가 되어 있다.

B. 거의 비슷한 단어들을 사용하시며, 주님은 확증들을 반복하시는데, 이것은 아 5:6-7 의 시험이, 신부의 삶에서 열매를 맺기 위해 꼭 필요했던 과정이라는 것을 증명하시기 위함이다. 주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다(롬 8:28).

C. 신부의 머리털은 하나님을 향한 신부의 ‘헌신’을 말한다. 나실인의 머리털은 그들의 거룩한 헌신을 뜻하는 외적 표징이었다(민 6 장).

5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떼 같고 (아 6:5)

D. 신부의 머리털, 즉, 헌신은 ‘영적 공급’을 잘 받은 결과다. 

길르앗 산은 염소들이 풍부하게 먹을 것을 공급받는 비옥한 땅이었다. 신부의 헌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공급받은 결과다.

아 4:1에는 길르앗을 가리키기 위해 “산”이라는 단어가 첨가되어 있다.

E. 염소들은 위풍당당하면서도 질서를 지키며 걷는다(잠 30:29-31). 

신부의 헌신은 육적 열심과는 대조되는 ‘거룩한 질서(지혜)’가 나타나는 면에서 염소떼와 같다.

29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와 사냥개와 수염소와 (잠 30:29-31)

F. ‘이’는 딱딱한 음식을 씹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데, 고기와 같은 주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히 5:12-14). 유아는 이가 없어, 우유나 젖을 통해서만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다(고전 3:1-3).

6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암양떼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고 (아 6:6)

1. 우리는 ‘고기’와 같은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묵상 하면서, 청결하고 건강한 이를 관리해야 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목자가 진흙을 씻어 주고 그 목욕장에서 나오는 양처럼, ‘영적 순결함’을 지킬 수 있게 된다(엡 5:26-27; 요13:10; 17:17).

2. 사역의 열매는 ‘말씀안에 거하는 신부의 삶’에서 나온다. 

쌍태를 낳는다는 것은 ‘갑절의 열매’를 말한다. 신부는 새끼를 잘 낳는 양에 비교되고 있다. 말씀안에 신실하게 거하는 삶은 ‘열매’를 보장해 준다(딤전 4:6-16). 여기에 나와있는 양은 순결하고 열매를 맺는 양으로, 열매는 말씀안에 거하는 삶에서 비롯된다(요 15:7-8).

G. ‘석류’같은 신부의 뺨은 신부의 ‘거룩한 감정’들을 말한다. 

뺨은 사람의 감정을 드러낸다. 우리의 감정은 뺨을 통해 전달된다. 사람의 뺨을 보면, 그 사람이 기쁜 지, 슬픈 지, 즐거운 지를 알 수 있다. 뺨은 ‘감정의 창문’이다.

7 너울 속의 너의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 (아 6:7)

1. 석류는 상당히 단 과일이다. 신부의 마음은 거룩하며, 하나님께 ‘달콤’하다.

2. 석류를 쪼개보면 안이 빨갛다. 빨강은 신부의 정숙함, 그리고, 부끄러운 일에 얼굴을 붉히는 성향을 말한다. 매춘부는 자신의 부끄러운 일에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 빨개진 얼굴은 부끄러운 일에 대한 민감성을 말한다.

H. 너울 속(베일 속)은 하나님 안에서 갖는 신부의 ‘은밀한 삶’을 말한다. 

하나님을 향한 신부의 마음과 정숙함은 누가 보지 않더라도 진정하다는 뜻이다. 아가서 4:3 처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지 않는다.

VI. 하늘의 신랑인 예수님의 궁정 (아 6:8)

8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 (아 6:8)

A. 신부는 천국 궁정에서 예수님을 섬기는 무수한 영광의 천군 천사들보다 더 큰 최고의 영광을 누린다. 

고대 왕의 궁정에는 다양한 계급의 여자들로 구성된 규방들이 있었다. 솔로몬 왕의 궁정은, 왕이신 예수님의 ‘하늘 궁정’을 상징한다. 솔로몬 궁정에는 각각 다른 영광을 나타내는 지위들이 있었다(왕후, 비빈, 시녀등).

B. 아가서가 씌어졌을 당시, 솔로몬에게는 왕후라고 불린 자들이 60명 이었다. 

나중에 솔로몬은 700 명의 부인을 두게 되었다(왕상11:3). 하지만, 이 왕후들은 솔로몬의 총애를 받았던 술람미 여인만큼의 신망과 영광을 얻지 못했다. 모든 왕후들 가운데서도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여인은 ‘왕의 신부’였다.

C. 60명, 80명, ‘무수한’ 이 숫자들은 솔로몬 궁정에서 누리는 ‘영광의 차이’를 말한다. 

60명의 왕후들은 솔로몬 궁정에서 최고의 계급을 가진 자들이었다. “왕후의 영광”을 가질 수 있는 숫자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그 다음 계급은 비빈으로 80명이 있었다. 왕의 궁정에 있던 비빈들은 왕후보다는 영광이 적었지만, 시녀보다는 더 영예로운 지위를 가졌다. 그들은 법적으로 왕의 가족에 속하며, 자산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녀들은 왕의 궁정의 “일원”에 불과했으며, 법적으로 왕의 가족에 속하지도, 자산을 소유할 수도 없었다.

D.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의 신부가 주님의 궁정에서 그 어떤 천군 천사들보다 더 큰 영광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계급들을 가진 수많은 영광의 천군천사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지만, 주님의 신부는 이들을 훨씬 능가한다.

E. 우리의 목적은, 왕후, 비빈, 시녀들에 상응하는 천상의 특정 무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왕의 궁정에 계급에 따른 영광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궁정에는 다양한 계급과 지위가 존재하며, 스랍, 그룹, 천사장, 24장로들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F. 그러나, 하나님 보좌 주위에 60 와 80 과 같은 특정 숫자로 계급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숫자들은 단지 왕의 궁정의 지위에 따라 영광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전달해 줄 뿐이다. 아 6:8에 나오는 세 종류의 무리를 사용, 천상의 궁정의 계급을 똑같이 분류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면, 솔로몬 궁정에 있는 무수한 시녀들을 천상의 무수한 천사들에 비교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VII. 하나님의 가족 안에 누리는 신부의 영광 (아 6:9)

9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 뿐이로구나 그는 그 어미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의 귀중히(총애를 받는)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후와 비빈들 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아 6:9)

A. 술람미 여인은 주님의 ‘비둘기’, 주님의 ‘완전한 자’로 불린다. 

주님의 비둘기는 신부의 ‘일편단심’을 말한다. 신부는 하나님의 비둘기로서, ‘신부’의 정체성을 가지고 성령안에 살아간다.

B. 주님의 ‘완전한 자’라는 것은, 신부가 ‘영적으로 성숙해졌다’는 뜻이다. 

마지막 때 예수님의 교회는 ‘주름이나 흠없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며, 성숙한 사랑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엡 5:26-27).

C. ‘영원의 성’에 자리잡은 예수님의 궁정의 영광의 무리들 가운데, 주님의 신부는 오직 하나다. “외딸”은 NAS/NIV 역에 “특별한”으로 번역되어 있다. 신부에게는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부는 다른 무리와 경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내 궁정에 있는 모든 무리들 가운데, 내가 원하는 자는 나의 신부이며, 내가 누구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면, 그것도 신부뿐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신부가 주님께 고백했던 말(아5:10, 16)을 그대로 신부에게 고백하고 계신데, 그것은 신부가 ‘특별한 자’, 또는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일한 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신부에게 예수님이 ‘만 사람위에 뛰어난 자’인 것처럼, 예수님께 신부는 ‘만 사람위에 뛰어난 자’이다. 예수님이 원하는 자는 오직 신부뿐이다.

D. ‘어미’는 역사적으로 ‘교회’를 뜻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교회는 ‘어머니’로 여겨진다. 바울은 새 예루살렘을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비유적으로 말한 적이 있다(갈 4:26). 역사적으로 구속받은 자들은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낳은 “어미”로, 또, 그 어미후에 나온 믿는자들을 대표한다(계 12;5, 17). 하나님은 우리의 육적, 영적 탄생을 주관하시는 분이다. 육의 탄생을 위해 주님이 사용하는 도구는 우리의 육의 어머니이다. 영적 탄생을 위해 주님이 사용하는 도구는 우리의 영적 어머니인 ‘교회의 증거’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은 주님의 어미다(마 12:46-50). 주님은 교회를 사용하사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시며, 이들을 주님의 교회의 일부가 되게 하신다. 어미인 교회는 주님의 혼인 날에 사랑으로 예수님께 면류관을 씌워 드리게 될 것이다(아 3 :11).

E. 나는 ‘주님의 (성숙한) 신부’를,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성숙해 진 교회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사도행전에 나온 교회도 온전히 성숙한 교회는 아니었다. 물론, 여러 도시에 영광의 순간들은 있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전 세계의 교회는 ‘티도, 흠도 없는 교회’로, 즉, 성숙한 교회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엡 5:26-27). 마지막 때, ‘대환란’을 통과하며 승리하는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 전에 역사상 유일하게 흠없이 온전히 살아온 세대가 되는 ‘특별한 영광’을 누리게 된다.

F. 정의에 따르면, 신부는 성숙한 사랑을 가지고 사는 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신부’같이 사는 방법은 성숙한 사랑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하게 흥미로운 점은, 신부가 그녀를 낳은 자들 중, 총애를 받는 (귀중한) 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구속받은 자들을 말하는 ‘어미’의 총애를 받는 자들이다. 마지막 때, 전 세계에 퍼져있는 성숙한 신부들은 역사상 특별한 자들로, 그 신부를 낳은 ‘어미’의 총애를 받는 자들이 된다.

G. 역사적으로,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이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마지막 때의 영혼의 대추수며, 온전한 성숙이다(계 14:14-16; 엡 5:27).

H. 마지막 때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속하는 ‘온전한 성숙’을 이루게 될 것이다(엡4:13). 하나님은 시작하신 일을 마치실 것이며, 지옥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 16:18; 빌 1:6). 모든 역사를 통틀어 지금까지 교회는 온전한 성숙함을 이루지 못해 왔으며, 거의 ‘예루살렘의 여자들’처럼 살아왔다. 하늘의 관점에서 볼 때, 지난 역사의 모든 교회는 마지막 때의 교회를 보며 ‘축복받은 자’라 부르게 될 것이다.

I. 성숙한 신부의 영광은, 예루살렘 여자들이 그녀를 보고 ‘축복받은 자’라고 부르는 구에서 나타난다(아 6:9).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여자들은 영적으로 ‘미숙한 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아 6:1에서 그랬던 것 처럼, 신부를 ‘축복받은 자’라 부르게 될 것이다. 지난 역사상의 모든 구속받은 자들은, 마지막 때의 교회가 땅에서 사랑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신부가 영광의 지위를 받게 되는 것을 기뻐하는 ‘천상의 무리’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성숙하게 되는 성도들을 전세계적으로 일으키실 것이다.

VIII. 신부의 4 가지 영광의 면류관을 묘사하시는 성령님

10 아침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 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 6:10)

A. 이 본문에서, 신부는 영원의 성에 계신 예수님과 더불어 ‘공동 상속자’로 4가지의 영광을 소유한다. 

성령님은 4가지의 비유를 사용하여 신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시는 데, 아 6:4 에서 신부를 땅에 도시들(예루살렘과 디르사)에 비교 했듯이, 이번에는 신부를 ‘하늘의 피조물들’에 비교하신다.

B. 성령님은 반어적(수사적) 질문을 하신다, “그녀는 누군가?” 

예수님은 방금 전, 주님의 궁정에서 갖는 신부의 영광과 지위를 선포하셨었다. 성령님은 이제 그 신부의 영광의 자리를 확증시켜 주신다. 성령님은 똑같은 질문을 아가서에서 3번 반복하신다, “이는 누군가…?” (아 3:6; 6:10; 8:5).

C. 이 세상에서의 신부의 사역은 “아침빛같이 뚜렷하고 빛나는” 사역이다. 

기나긴 밤이 지난 후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은 희망을 가져다 주는 빛을 발한다. 이 땅의 교회는 마 5:13-16에 나온 것처럼, 빛(방향, 생명)과 소금(맛, 보존)의 역할을 한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또, 사회의 각 분야(정치, 경제, 군사, 교육, 가정, 방송, 미술, 과학, 사회 기관등등)에 미치게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D. 이 땅의 신부의 사역은 “달과 같이 아름답게 빛나는” 사역이다. 

성숙한 교회는 달과 같이 아름답다. 달은 하나님이 세우신 피조물로 밤에 빛을 제공한다(창 1:14-19). 달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 빛을 반사한다. 성숙한 교회는 어둡고 타락한 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반영한다.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해)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달)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창 1:16)

E. 이 땅의 교회는 어둔 곳을 비취는 달과 같이, ‘전도와 문화의 변혁’을 위해 일해야 한다 (마5:16; 빌 2:15). 

이 시대는 어두움에 휩싸여 있지만, 다가올 천년왕국에는 전세계가 늘 낮과 같이 밝게 될 것이다.

F. 다가오는 시대에 신부의 사역은 “해같이 맑고 환하게 빛나는”사역이다. 

신부의 온전한 영광은 찬란하게 빛나는 예수님의 ‘영광의 빛’을 반영한다. 교회는 새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영광의 빛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영원한 성에서 “해”로서 빛을 제공하실 것이다 (계 21:23).

23 그 성(새 예루살렘)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계 21:23)

G. 영원한 성의 ‘공동 상속자’로, 교회는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빛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교회)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계 21:11)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 (눅 11:36)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 (단 12:3)

H. 교회는 이 땅에서, 또, 영원토록 예수님과 더불어 통치하며, 하나님의 빛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계 21:23-24, 11; 계1:16; 사 60:1-3, 19-20; 24:23; 59:19; 62:1; 겔 43:2; 시 50:2; 말 4:2; 고후 4:6; 요 8:12; 요일 1:5; 마 5:14-16; 빌 2:15; 단 12:3; 고전 15:41-42; 아 6:10).

I. 신부의 정부는 “기치를 벌인 강력한 군대 같이 위엄있는” 정부다.

기치를 벌인 군대 같이 엄위한(광대한, NIV역) 여자 (아 6:10)

J. 신부는 예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정부적 운영’을 이끌어 가는 권세를 가지게 될 것이다(단 7:27).

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단 7:27)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1)

K. 아 6:4 에서, 예수님은 이 땅의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 신부를 강조하셨다. 

성령님은 여기서 모든 권세를 물리친 ‘승리의 신부’를 강조하신다.

L. 요약: 신부의 4 가지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점진적 단계 3 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신부는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사회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떠오르는 빛을 반영한다(마 5:13-16). 

두번째, 신부는 이 시대에 영적 전투와 전도를 통해 아름다운 달과 같이 빛나게 된다. 

세번째, 신부는 다가오는 시대에 해와 같이 빛나게 된다. 

이 모든 단계에서, 신부는 하나님의 ‘무기’로 주님과 함께 주님의 정부를 영원히 다스리게 된다.

M. 우리가 장래에 어떻게 될 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2 …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

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일 3:2)

N. 성령안에 사는 승리의 신부에 대한 7 가지 비유

1. 신부는 불신자들에게 비추는 아름다움을 말하는 ‘디르사’에 비유된다.

2. 신부는 믿는자들에게 비추는 아름다움을 말하는 ‘예루살렘’에 비유된다.

3. 신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를 말하는 ‘땅의 군대’에 비유된다.

4. 신부는 이 시대 땅에 하나님의 질서를 지탱하는 ‘떠오르는 아침’에 비유된다.

5. 신부는 전도와 영적 변혁의 성취를 말하는 ‘달’과 같다.

6. 신부는 영원의 성의 공동 상속자로 누리는 승리의 영광을 말하는 ‘해’와 같다.

7. 신부는 모든 것을 주님과 더불어 다스리는 ‘하나님의 군대’와 같다.

===21장 핍박받는 신부를 변호하다 (아 6:11-7:9) (Vindication of the Persecuted Bride)

I. 아가서 6:4-10 복습

A. 아가서 6:4-10 에서 예수님은 아가서 5:6 에서 시작된 침묵을 마침내 깨뜨리신다. 

주님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시고, 시험의 계절동안 신부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셨는지를 드러내신다. 주님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해 세가지 비유를 사용하시면서(4절),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신부의 강력한 영향력을 설명하신다(5절).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 같고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네 눈이 나를 놀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 (아 6:4-5)

B. 고대 군대들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행렬하면서 그들의 기를 높이 들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였다. 패배군은 기를 빼앗겼다. 신부는 가장 큰 적,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신부가 ‘기치를 벌인 승리의 군대’처럼, 시험의 계절을 승리로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신부가 죄와 불신에 승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헌신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의 마음은 우리를 향한 기쁨과 사랑으로 넘치신다. 신부의 타협과 두려움의 그림자들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아 2:17; 4:6). 신부는 ‘주님의 은혜’로 이것들을 정복한 것이다.

C. 예수님은 신부의 성숙함(아 6:5-7)을 묘사하시고, 스랍, 그룹, 무수한 천사들을 포함한 천상의 무리들이 모여있는 하늘의 궁정에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는 신부를 묘사하신다 (아6:8-9).

8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 뿐이로구나 그는 그 어미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의 귀중히(총애를 받는) 여기는 자로구나 (아 6:8-9)

D. 성령님은 ‘영원의 성’에 계신 예수님의 공동 상속자인 신부가 갖게 되는 4가지 영광을 묘사하신다 (아 6:10).

10 아침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 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 6:10)

E. 첫번째, 사회적으로 신부의 사역은 “아침빛같이 뚜렷하고 빛나는” 사역이다. 

두번째, 이 시대의 신부의 사역은 어둔 곳을 아름답게 비취는 달과 같이, 전도와 문화의 변혁을 위해 일하는 사역이다(마 5:16; 빌 2:15). 

세번째, 다가오는 시대에 신부의 사역은 “해같이 맑고 환하게 빛나는”사역이다. 

우리는 새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영광의 빛을 반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계 21:11). 

네번째, 주님과 함께 다스릴 신부의 정부는 기치를 벌인 강력한 군대와 같이 ‘장엄한 정부’이다.

II. 아가서 6:11-7:9 개관

A. 신부는 아 6:4-10의 계시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주님의 교회 전체를 향한 사랑에 사로 잡히게 된다. 

신부는 하나님의 동산에 있는 연약하고 미숙한 자들을 섬기는데 헌신하게 된다(아 6:11-12). 아가서의 가장 큰 주제중의 하나는, 신부가 주님과 성숙한 동역을 할 수 있도록 예수님이 신부를 양육시킨다는 것이다.

B. ‘섬김의 계절’이 지난 후, 신부는 핍박받게 된다. 

이 때 교회안에는 두가지의 반응이 나타나게 된다. 

먼저, 일부의 사람들은 신부를 지지한다(아 6:13). 두번째, 다른 일부는 신부에게 야유를 보낸다(아 6:13). 

신부의 삶의 10가지 영역을 보며, 신부를 존경하게 된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를 변호해 주게 된다(아 7:1-5). 

예수님도 신부에게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사 ‘동역자’로 인정하시면서, 신부를 직접 변호해 주신다 (아 7:6-9).

III. 교회 전체를 섬기고자 헌신하는 신부 (아 6:11)

11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아 6:11)

A. 아가서에 ‘하나님의 동산’은 총 9번 등장한다. 

처음에 등장하는 세개의 동산은 신부의 동산을 가리키며(아 4:12, 15, 16), 나머지 여섯개의 동산은 하나님의 동산을 말한다(아4:16; 5:1; 6:2, 11; 7:12; 8:13).

B. 신부는 하나님의 동산에 내려가, 이제 막 순이 나고 피어나는 식물들을 돕게 된다. 

신부는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예수님이 주님의 동산에서 그의 백성들을 먹이신다는 것을 가르쳐 준 바 있다(아 6:2-3). 그래서, 신부는 주님의 동산에 내려가 주님과 함께 동역하게 된다. 신부는 ‘주님이 계신 곳’에 있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C. 그 동산에는 영적 진리의 그림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호도나무도 있다. 

호도 나무는 두터운 그늘을 가지고 있어 한 여름의 열기를 막아주고, 열매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높여준다. 호도에서 생산되는 기름은 비누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이것은 ‘정화’를 뜻한다. 호도 나뭇잎은 몸을 치료하는 약으로도 사용되었다.

D. 호도 씨의 생명은 안에 있다. 

그러나, 그 씨앗은 반드시 죽고 깨져야만 다른 이들에게 열매와 기름, 치유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자아의 죽음’을 거쳐야만 우리는 타인들에게 열매와, (영적) 정화(비누), 그리고 치유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내면의 삶’은 숨겨져 있기에 겉으로 쉽게 관찰되지 않는다.

E. 신부는 하나님의 동산에 내려가 싱그러움, 또는 활력적인 푸르름을 보았다. 

어떤 사전은, ‘싱그러움’을 한창 무성한 식물에 나타나는 신선하고 활력적인 푸르름으로 정의한다.

F. 신부는 자신의 친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 있는 하나님의 동산에 “뛰어드는” 모험을 감행한다. 

신부는 골짜기와 같은 ‘타락한 세상’ 가운데서 번창하는 하나님의 동산을 본다. 신부는 ‘포도나무에 순이 났는지,’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는 지를 보기위해 하나님의 동산에 내려간다.

G. 성경에서, 포도 나무와 포도원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분의 역사를 말한다(사 5장; 요 15장).

순이 피어나는 포도원은 아직 열매가 나지 않은 포도 나무를 말한다. 다시 말해, ‘미성숙한 교회’를 말한다. 신부는 하나님의 포도원에 아직 열매가 없는 것을 보지만, 주님은 이미 ‘순’과 피어나는 ‘꽃’을 보신다. 아 2:11-13 에서, 순이 난 포도원은 하나님의 ‘방문’이 곧 임하게 된다는 예언적 표징이었다.

H. 개화하는 ‘석류’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말한다. 

신부는 사랑의 인내로 사람들을 대하면서 아직 성숙하지 않은 포도나무의 순을 섬기게 된다.

11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아 6:11)

I. 주님이 ‘씨앗’과 같았던 신부의 미덕(성품)들을 보셨던 것 처럼(아 4:1-5), 신부는 다른 이들 안에 ‘피어나는 미덕들’을 보게 된다. 

이들을 향한 신부의 열의는, 자신이 미숙한 자였을 때, 자신을 향해 가지고 계셨던 주님의 열의에서 나온 것이다.

J. 신부는 예수님의 지상 최대 명령에 순종하며 대답 한다. 

가깝게는 우리가 이웃에 “찾아가” 미숙한 자들을 도울 수도 있다. 하나님의 동산을 섬기기 위해 멀리 비행기 타고 갈 필요는 없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나의 ‘안락의 지대’를 벗어나, 타인들을 돌보고 돕는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IV. 신부의 마음을 사로잡는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사랑 (아 6:12)

12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로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이르게 하였구나 (아 6:12)

A. 신부가 골짜기에서 막 순이 나는 포도원에서 일하는 동안, 순간적으로 신부의 심령이 ‘귀한 백성의 수레’같이 되는데, 이것은 사람들을 섬기고자 하는 신부의 ‘열심’을 뜻한다. 신부의 심령이 수레처럼 요동한 것이다. 

고대에 수레 (2륜 마차)는, 장거리를 짐을 싫고 가장 신속하고 수월하게 이동하는 교통수단이었다. 최고의 마차들은 귀족이나 왕족이 소유했다. (KJV 역은 “귀한 백성”을 왕자의 이름인 “아미나딥”이라 번역했다).

B. 내 마음이 나로… 하였구나 (내 소원이 나를 …에 넣었구, NIV 역). 

신부의 심령은  신속하게 움직이는 ‘왕의 병거’ 같이 되었다. 다시말해, 순식간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고자 하는 ‘강력한 소원’이 생긴 것이다.

C. 신부는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지켜보러 내려갔다가, 순간적으로 다른 이들을 돕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신부가 ‘정신이 나갔거나,’ 아니면, ‘사랑’이 신부를 강권한 것이다(고후 5:11, 14). 이제 “순이 나는 포도나무들”의 미숙함과, 교만, 말씀의 오류 적용, 부족한 분별력에 불쾌해 하기 보다는, 신부는 오히려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향해 느끼는 온유하고 긍휼한 마음에 자신도 놀라게 된다.

D. 신부의 마음은 신속하게 이동하는 수레 마차처럼, ‘거룩한 부담’을 마차에 싫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앞으로 전진해 나가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마음의 동요에 신부 자신도 놀라게 된다. 자신이 깨닫기도 전에, 신부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돕고자 하는 열망과 거룩한 부담을 새롭게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은 성령님의 역사다.

E. 하나님은 우리가 소속된 교회뿐만 아니라, 주님의 교회 전체를 다 사랑하신다. 

주님은 소속된 교회나 지체뿐만 아니라, 주님의 교회 전체에 대해 우리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모든 교회를 향한 열심’은 마지막 때 교회의 연합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다(요 17:21).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가 소속된 기관만을 지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F. 주님은 현재, 더 큰 주님의 목적과 비전들에 관심을 두는 목자들, 그리고 모든 교회를 사랑하도록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킬 목자들을 세우고 계신다. 

요셉이 형들에게 쓴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신부는 과거에 학대받은 것에 대한 쓴뿌리, 쓴마음을 지니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리스도 지체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차게 된다(창50:15-21).

G. 신부는 이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계속 신실하게 살아간다.

12 우리가 일찌기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 (아 7:12)

V. 신부에 대한 교회의 반응 2 가지 (아 6:13)

13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로 너를 보게 하라 (아 6:13)

A. 첫번째 반응은 존경과 칭찬이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아 6:1 에서 신부와 함께 주님을 찾고자 했다. 

여기서, 그들은 신부에게 배우려는 절박한 소원을 표현하기 위해 “돌아오라”라는 외침을 네번이나 반복한다. 그들은 아 6:11-12 에 나오는 것처럼, 골짜기의 동산에서 열심히 수고하고 있는 신부가 자신들에게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B. 에베소 장로들은 다른 ‘포도원’으로 떠나는 바울을 보내며 함께 울었다.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 (행 20:37-38)

C. 신부는 ‘술람미’ 여인으로 불린다. 

그것은 그녀가 이스라엘 수넴 지방이란 곳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신부가 술람미 여인으로 불리는 구절은 아가서에서 이곳에 딱 한 번 나온다. 솔로몬과 수넴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둘다 ‘평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과 신부는 같은 이름을 소유한 것이다.

D. 두 번째 반응은, 아 5:7 에서 신부를 치고 상처 주며, 질투하고 시기하는 ‘행순자’들로 부터 오는 야유다. 

여기서 그들은 신부를 존경하는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비꼬는 투로 도전의 말을 던진다, “술람미 여인에게 뭐 특별한 게 있어?,” “왜 기다리는데?” 이들은 신부에게 ‘영적 조언’을 받고자 하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갈망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E. ‘마하나임의(양쪽 진영의) 춤추는 것’은, 신부에 대한 예루살렘 여자들과 행순하는 자들 사이의 대립을 뜻한다. 

KJV역은 이것을 “두 군대의 춤”으로 번역했으며, NAS 역은 두 진영의 춤”으로, NIV역은 “마하나임의 진영”으로 번역했다. 히브리어로 마하나임은 “두 진영, 두 군대,” 또는, 도시 이름으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마하나임은 야곱과 에서의 쟁쟁한 대립이 벌어졌던 도시로 유명하기 때문에, 어떤 번역을 사용하든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3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아 6:14)

F. 마하나임은 야곱과 에서의 대립이 있던 도시로 유명하다. 

창 32 장에서, 에서는 장자권을 도둑질한 야곱을 죽이기 위해 그를 쫓아간다. 마하나임에서, 야곱은 그의 백성들을 두 진영으로 나눠, 만약 에서가 한 쪽 진영을 발견하면 그 진영만 충돌을 감당할 있게 만들었다. 이 엄청난 대립가운데, 야곱은 마하나임에서 ‘도움’의 천사를 만나게 된다.

1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천사)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 32:1-2)

G. 여기서 ‘춤추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지체) 안에 있는 ‘두 진영(사람들)’ 사이의 대립을 뜻한다. 

또한, 이것은 ‘영적 전투의 춤’으로 두 영계(거룩한 것과 악한 것) 사이의 전투를 의미 하기도 한다.

H. 그리스도의 몸안에는 언제나 양극단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뜨거운 열정으로 주님을 좇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그래서, ‘전심(마음을 다하는 것)’이 대부분 분열을 일으키는 핵심 이슈가 되곤한다.

I. 예수님은 미숙한 자와 성숙한 자 사이에 분열을 가져오신 것이 아니라, 진실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이에 분열을 가져 오셨다(마 10:34-36). 

주님은 ‘타협’하는 교회를 정화하시고 나서, 주님의 교회를 연합하실 것이다.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4-35)

J. ‘두 진영’은 다윗을 공격하는 사울에게도 나타난다. 바울의 사역에서는, 그가 세상을 뒤집어 놓았을 때,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을 직면하면서 ‘분열’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행 17:6).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세상을 뒤집어 놓은)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행17:6)

VI. 분별력 있는 신자들에게 변호받는 신부 (아 7:1-5)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아 7:1-5)

A. 이 본문은 “그 술람미 여인에게 뭐 특별한 게 있는가?”라고 비꼬았던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먼저, 진실한 신자들이 신부를 변호해 주게 된다(아 7:1-5).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 직접 신부를 변호하시고, 신부에게 갑절의 성령의 기름부음을 부어주실 거라는 약속을 주신다(아 7:6-9). 

성령님은, 항상 진실한 자들을 세우사, 주님을 헌신적으로 좇는 주의 신부들을 변호하게 하신다.

B. 진실한 자들은, 예수님이 신부에게 주신 많은 확증들을 잘 분별하는 자들이다(아 4:1-5).

신부가 예수님의 10 가지 미덕(성품)을 찬양했던 것처럼(아 5:10-16), 이들은 신부 안에 있는 10 가지 미덕(성품)을 칭찬하게 된다.

C. 아 7:1-5 에서는 신부의 10 가지 미덕을 확증해 주는데, 이것을 아 4:1-5에 나오는 8 가지 신부의 미덕과 비교해도 좋다. 비교해 보면, 명확하게 차이나는 부분이 약 4 군데가 나온다.

아 4:1-5 에서, 예수님은 신부의 머리부분(8 가지 중, 6 가지의 미덕이 머리를 포함한 얼굴부분임)에서 시작하여 몸을 묘사해 나가셨다. 그와는 반대로 이 본문에서는, 예루살렘 여자들이 신부의 발부터 시작, 머리부분(4 가지 미덕)으로 올라가며 설명한다.

여기에 나오는 미덕들은 ‘신부의 사역’에 관계된 미덕들로, ‘신부의 성품’에 초점을 맞춘 아 4 장의 미덕들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D. 열 가지 성품을 보면서, 우리는 주님이 어떤 것을 기뻐하시고, 또 우리를 성숙케 하기 위해 어떤 것을 바라시는 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본문은 ‘거룩함과 열매를 위한 실제적 정의’들을 보여준다.

E. 아 7:1-5 은 예루살렘 여자들의<또는 긎들 안에 계신 성령의> 고백이며, 아 7:6 은 예수님의 고백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를 “귀한 자(왕)의 딸”이라 부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가서 전체에 걸쳐 신부를 “내 사랑,” “나의 신부”라 부르신다. 

아 7:5 에서, 예수님은 (1인칭이 아닌 3인칭) “왕”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아 7:8 에서 예수님은 1-5 절과는 다르게 주격의 변화를 주어 “내가”라는 1인칭을 사용하신다.

F.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를 “아름답다”라고 선포하면서, 신부의 고귀한 품성, 또는 왕족에 걸맞는 성품을 지적하는 ‘귀한자의 딸’이라고 부르며 신부를 변호한다. 

거듭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왕족의 혈통’을 갖게 된다.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아 7:1)

G. 신발을 신은 신부의 다리는 ‘전도’를 말한다. 

전도의 성공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표징중의 하나다. 우리의 발은 복음을 예비하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엡 6:15). 

‘좋은 소식(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사 52:7). 우리의 발이 밟는 곳은 우리의 ‘기업’이 된다(여1:3). 

신발은 ‘부와 명예’를 말한다(눅 15:22). 고대에 가난한 자들은 신발이 없었다. 맨발은 수치와 가난, 굴욕을 상징했다.

H. 신부의 ‘넙적다리,’ 또는, 다리는,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신부의 삶을 받쳐주는 ‘힘’을 말한다. 

예수님의 다리는 ‘화반석 기둥’같다고 했다(아 5:15). 넙적다리가 ‘둥글다’는 것은 신부에게 힘을 전달해 주는 ‘강인한 근육’을 말한다. 

운동선수와 같은 강인한 근육은 수많은 단련을 통해 발달된다. 

그렇기에, 신부의 강건한 신앙의 발걸음은, ‘공교한 장색(장인)이 만든 구슬꿰미(보석들)’처럼 귀한 것으로 존경받는다.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아 7:1)

I. ‘배꼽’은 태아가 엄마의 자궁에서 자양분을 공급받는 생명줄이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내면의 삶’이 자라나는 시간, 즉, 주님 안에 우리의 모습을 형성해 나가는 세월을 가리킨다. 

‘둥근 잔같은 배꼽’은 건강한 배꼽으로, ‘영양실조’와는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다.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은 풍족한 영양상태를 말한다. 

신부는 균형잡힌 ‘영적’ 식단을 통해 건강한 삶을 위한 영양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좋은 영적 기반’을 말한다.

2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아 7:2)

J.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를 ‘다가오는 추수에 예비된 자’로 본다. 

‘밀단’은 추수시기에만 생기는 ‘풍성한 밀’이다. 신부는 ‘풍성한 수확’을 ‘임신한(커다란 허리)’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신부는 백합화로 두른 추수의 밀단을 ‘임신’했다. 신부에게 나올 추수(아기)는 ‘정결함과 거룩함’으로 세워지게 될 것이다.

2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아 7:2)

K. 유방은 ‘다른 이들을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유아는 엄마의 젖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신부는 자신이 낳은 ‘추수’를 양육할 준비가 되어있다. 

늙어서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젖과는 대조되는, 신부의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한 살도 안된 어린 사슴) 같다고 묘사되었다. 

사슴이 ‘쌍태’라는 것은, 신부에게 타인들을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이 ‘갑절’이나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다른 이들을 양육할 능력이 아직 없는 ‘어린 누이(미숙한 자)’ (아 8:8)와도 대조된다.

3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아 7:3)

L. 목은 성경적으로 승복하거나, 또는 반대로, 버티려는 ‘의지’를 말한다. 

버티며 저항(대적)하는 목은 ‘교만’을 의미한다(사 3:16). 신부는 ‘귀하고 비싼 상아 망대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신부의 결단은 상아 망대와 같이 귀하며, 자신을 영적으로 보호하는 결단이다.

4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아 7:4)

M. 눈은 ‘주님의 계시를 받는 능력’을 말한다(엡 1:18). 

신부는 날카로운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아 1:15; 4:2, 9; 6:5). 

아 4:1 에서, 예수님은 신부의 눈을 ‘비둘기의 눈’으로 비유하시면서 신부의 ‘순결함과 충성심’을 말하셨다. 

여기서, 신부의 눈은 ‘헤스본의 연못’과 같다. 이 연못은 진흑탕이 아닌, 맑고 투명한 연못이었다. 

주님의 계시를 뚜렷하게 보고 깨닫는 것이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영적 성장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빌 3:8-10). 

대상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우리는 다른 해석과 감정을 가지게 된다. 한 때 귀족의 성이었던 헤스본에서, 바드랍빔 문은 맑은 물을 가진 휴양지였다(민21:25-26).

4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고 (아 7:4)

N. 코는 ‘분별력’을 말한다. 

망대는 방위를 제공한다. 신부의 코는 시리아(이스라엘의 최대 강적)의 수도인 다메섹을 향한 방위용 망대와 같다. 

레바논은 유다왕국 북쪽에 위치해 시리아를 접하고 있었다. 신부는 자신의 최대의 적이 누구인지를 잘 분별한다.

4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아 7:4)

O. 신부의 머리는 ‘생각의 삶’으로, 아름다운 갈멜산과 같이 강력하다. 

신부의 머리는 ‘고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갈멜산과 같이 아름답다(사 35:2). 

우리의 생각은 영적 전투와, 특별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5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아 7:5)

P. 머리털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말한다. 

나실인들의 머리털은 그들의 헌신을 보여주는 외적 표징이었다(민 6 장). 그래서, 나실인들은 머리털을 자르지 않았다. 

자주 빛같은 신부의 머리털은 ‘왕족(귀한 자)’을 말한다. 신부의 헌신은 ‘왕의 결단’과 같다(NAS 역은 “그 왕(되신 예수님)”라고 번역함).

Q. 신부의 헌신은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주님의 사랑은 너무도 강력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연약한 백성들에게 자신을 매이게 만든다. 

그러나, 백성들을 향한 사랑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 주님께는 (연약함이 아니라) 영광이다. 

주님의 놀라운 능력은, 주님보다 훨씬 미천한 자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은 우리에게 “매어”있다. 

모든 권세를 다 소유한 분이시지만, 그분의 신부에게는 아낌없이 자신의 마음을 다 내어 주시는 분이다.

R. 주님의 사랑이 하나님을 그분의 백성들에게 매이게 만든다. 

예를 들면,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대표적인 중보기도자 다섯 명을 보라: 다니엘, 노아, 욥, 모세, 그리고 사무엘 (겔 14:14; 렘 15:1; 출 32:7-14).

VII. 신부를 변호하시는 예수님 (아 7:6-9)

6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쾌락하게 하는구나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 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 (아 7:6-9)

A. 예수님이 신부를 직접 변호하신다 (주격이 아 7:6 에서 바뀌었다). 

‘행순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었다, “술람미 여인이 도대체 누구길래 모두다 그 여인한테만 관심을 쏟는가?”

B. 예수님의 마음은 신부에게 빼앗겨 있으시다(아 7:5).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쾌락하게 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면 잘 알 수 있다(6절).

예수님은 그 분의 백성들을 ‘아름답고 기쁨을 주는 존재’로 바라보신다. 주님의 열매는 신부에게 달고도 즐겁다(아 1:16; 2:3). 

그와 같이, 신부의 열매도 주님께 즐겁다(아 4:16-5:1).

C. "사랑아"는 신부를 향한 하나님의 열정을 표현한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것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요 15:9; 17:23).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만큼의 사랑이다(엡 3:18).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사랑은 주님께 ‘포도주’보다 더 위대하다(아 4:10). 

다시말해, 주님을 향한 백성들의 사랑, 이보다 예수님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우리가 연약할 때에도, 죄와 씨름 할 때에도, 우리의 음성은 주님께 달콤하며, 우리의 얼굴은 주님께 사랑스럽다(아 2:14).

D. 아 7:1-5 에서 예루살렘 여자들이 선포한 것 처럼, 예수님도 여기서 신부의 영적 성숙을 확증해 주신다. 

‘종려나무’는 ‘승리와 정복’의 표징이요(계 7:4), ‘성숙함’을 보여주는 그림이다(렘 10:5). 

종려나무는 가뭄속에서도 번창하는 데, 그 이유는 뿌리가 수분을 찾기 위해 지면아래 매우 깊숙한 곳까지 뚫고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려나무는 예외적으로 곧고 높이 자란다. 매우 강력한 강풍이 불어도 종려나무는 쓰러지지 않는다.

신부의 유방, 즉, 양육하는 능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하는 ‘종려나무 열매 송이’ 같다.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 (아 7:7)

E. 예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사로 잡으리라,” 즉, 백성들을 통해 주님의 임재를 크게 나타내시리라 약속하신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풀어내는’ ‘가지’라고 말씀하셨다(요 14:12). 

예수님은, 주의 종들을 사로잡기 위해 종려나무 위로 “올라 간”다고 약속하신다.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아 7:8)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요 15:5)

G. 주님은 백성들을 “사로 잡으실” 때, 신부에게 세가지 중요한 위임을 부여하신다.

8 네 유방은 포도 송이 같고 네 콧김(호흡)은 사과 냄새 같고 네 입은 좋은 (최고의)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아 7:8-9)

F. 첫번째 위임: 생명의 성령으로 양육하라.

‘성령님의 권능’으로 다른 이들을 양육하라. 신부(유방)는, 더 충만하게, 더 깊이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양육해야 한다.

G. 두번째 위임: 사과처럼 생명 활력을 , 그 호흡을 불어 넣어 새롭게 하여 주라.

신부의 향기로운 콧김(호흡)은, ‘사과’같이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 주어야 한다. 신부의 호흡은 ‘내면의 삶’을 말한다. 

사과는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새롭게 해주는) 것을 뜻한다(아 2:3). 이것은, 성령으로 다른 이들을 ‘새롭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22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 20:22)

H. 세번째 위임: 주 예수님과 극락의 친밀감을 유지하며 하나됨 안에서 더욱 더 고양하라

신부의 입, 즉,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하나님께 ‘최고의 포도주’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가서에 걸쳐서 입은 ‘입맞춤’을 말한다(아 1:2, 4:3, 5:16). 예수님과의 친밀감은,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위해 일하시는 성령님의 ‘최고의 역사’다.

I. 주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최고의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 

어떤 이유로도,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깊은 교제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J. 예수님은 신부의 입(천장)이 성령님의 ‘최고의 포도주’라고 말씀하셨다. 

입천장은 입 구개, 또는, 입맛을 가리킨다. 히브리어로 천장, 또는 구개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이것은 신부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을 뜻한다. 

이것은 최고의 포도주, 즉, 예수님께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아 4:10).

10 …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아 4:10)

K. 포도주는 성령님의 ‘영향력’을 말한다(엡 5:18). 

하나님께, 최고의 포도주는 우리와의 ‘친밀감’의 포도주다. 삼위일체의 교제 다음으로, 하나님께 최고의 기쁨을 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L. 하나님 나라의 모든 역사가운데, 최고의 포도주, 즉, 성령의 최대 역사, 또는 예수님이 가장 즐기시는 포도주는 ‘성숙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교회다(요 17:26).

이는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그 사랑의 인침이] 저희 안에 있고 … (요 17:26)

37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7)

===22장 예수님과 성숙한 동역을 이루는 신부 (아 7:9-8:4) (The Bride's Mature Partnership With Jesus)

I. 아 6:11-7:9 복습

A. 아 6:11-12 에서, 신부는 영적으로 미숙한 자들을 섬기기로 헌신한다. 

‘주님과 동역하며 살아갈 신부를 양육하시는 예수님’은 아가서의 핵심 주제중의 하나다.

B. 아 7:8-9 에서, 예수님은 신부의 사역을 세가지로 위임하셨다: 

다른 이들을 양육함, 성령의 임재를 풀어놓음, 예수님과의 친밀감을 유지함.

II. 아 7:9-8:4 개관

A. 아 7:9-8:4 에서, 신부는 아 7:8-9 에서 위임받은 3 가지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사역에 대한 신부의 열성을 엿볼 수 있는데, 신부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 내려서”.

B. 아 7:9-8:4 에서, 신부는 예수님과의 동역을 이루어가는 측면을 4가지로 설명한다. 

신부는 즉각적인 순종으로(아 7:9-10), 더 큰 권능을 위해 중보하며(아 7:11-13), 회중사역에 담대함과 겸손함으로(아 8:1-2), 깨지지않은 주님과의 연합(아 8:3-4)을 유지하며 동역을 이루게 된다.

III. 즉각적인 순종으로 나타나는 신부의 동역 (아 7:9-10)

9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 내려서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7:9-10)

A. 아 7:9 중간에서 신부의 생각의 흐름이 크게 바뀌게 된다. 아 7:6-9 에서 예수님이 주신 확증에 보답하기 위해, 신부는 아 7:8-9 에서 예수님이 위임하신 세가지에 대한 동의를 열렬하게 선포한다.

B. 시적인 사랑의 언어로 표현된 “포도주가 미끄럽게 흘러 내려”는, 성령님의 리더십에 ‘즉각 순종’하며 사는 신부의 모습을 말한다. 성령의 포도주는 미끄럽게 흘러 내려가게 되는데, 이것은 신부가 거부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성령의 포도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계속 성령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계속해서 성령님의 ‘리더십’ 아래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엡 5:18).

C. 신부는 성령님의 리더십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뜻이 담긴 잔’을 주저하지 않고 받아마신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시 40:8)

22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20:22)

D. 신부는 예수님을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언급하는 데, 이것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성령님께 순종하는 신부의 모습을 나타낸다. 

성령님께 더욱 순종하며 살 때, 주님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더 부어주신다(롬 5:5; 요 16:14). 순종이 쉽지 않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해야 한다, “포도주가 미끄럽게 흘러내려갑니다. 주님은 나의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E. 성령님은 영적으로 자고 있는 육적인 신자들을 깨우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14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하셨느니라 (엡 5:14)

F. 우리가 삶에서 성령님께 순종할 때, 성령님은 우리를 통해 ‘잠자는 자들’을 깨우고 그들에게 역사하실 것이다.

9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 내려서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 (아 7:9)

1. 성령님이 자는 자들을 깨우셨다는 증거는, 주님의 리더십 아래 사는 그들에게 흘러나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2. 성령은 미묘한 감동으로 주님에 대한 계시를 주시면서, 우리에게 잔잔히 구애 하신다. 주님은 우리를 자원적 사랑으로 부르셨기에, 우리의 자유의지를 침범하지 않으시면서 잔잔히 우리를 감동시키신다.

G. 구약 선지자들은 성령님의 축복과 임재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언급했다(엘 3:18; 암 9:13;호 2:22; 슥 9:17; 행 2:15-16).

15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행 2:15-16)

H. 아 7:9 이 두 구절로 나눠져 있었으면, 이해하기가 더 쉬웠을 수도 있다. 

주님께서 9 절 첫부분을 말씀하시고, 신부가 나머지 부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가서 전체에 걸쳐, 신부는 예수님을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며, 예수님은 신부를 “내 사랑,” 또는 “나의 어여쁜 자야”라고 부르신다.

IV. 하나님의 사랑안에 갖는 신부의 영적 정체성 2 가지 (아 7:10)

10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7:10)

A. 아 7:9 에 나타나는 신부의 순종은 두가지의 영적 정체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부의 영적 정체성 #1: “예수님은 나를 사모하신다.” 

신부의 영적 정체성 #2: “나는 사랑하는 자인 예수님께 완전히 속했다”. 

신부가 예수님께 속한 것은, 주님이 신부를 ‘사모’하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모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B. 영적 정체성 #1: “예수님은 나를 사모하신다”. 

아가서의 가장 큰 주제중의 하나는, ‘우리를 사모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계시다. 신부는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애정과 기쁨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이 계시는 우리를 강력하게 변화시키며, 우리의 순종과 신실함의 주 동기가 된다(아 4:9; 6:4-5; 7:6-10). 

하나님의 소원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될 때, 사람들의 의견이나 눈치를 보지 않는 힘을 얻게 된며, 결국 정서적인 안정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원수를 주의 말씀으로 대적해야 한다. “말씀에 씌여진 바: 사람들이 나를 거절한다 할 지라도 주님은 나를 사모하신다”.

C. 영적 정체성 #2: ‘신부는 하나님의 연인’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의 것입니다,” 즉, “나는 예수님께 속했고, 주님의 리더십 아래 있으며,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소원이 나의 최우선 순위입니다” 라고 고백한다. 신부는 ‘주인’ 되신 예수님에 대한 계시를 가지고 있다(고전 6:20). 궂이 일일히 생각하지 않아도, 신부는 자신이 주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계 14:4). 자신에게 일어나게 될 일들을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 이제 신부의 초점은 자신의 관심사와는 전혀 거리가 멀며, 온전히 주님께 맞춰지게 된다. ‘주님이 바라시는 것,’ 이것이 신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요 주제이며, 가장 귀한 것이요 최우선 순위이다.

D. ‘하나님은 우리를 사모하시며, 우리는 주님을 사모(사랑)한다’는 사실에서 우리의 가장 위대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연인입니다.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E. 우리가 희생적 순종의 삶을 사는 이유는 (주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이미 우리를 사모하시기 때문이다. 

‘포도주가 미끄럽게 흘러 내려가는’ 이유는, 예수님이 신부를 사모하시고, 신부가 주님께 속했기 때문이다(아 7:9-10).

V. 주의 백성들을 깊이 사모하시는 예수님 (아 7:10)

A. 우리의 가장 큰 영광은,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분을 향한 우리의 한결같은 사랑에 주님은 깊이 감동받으신다. 주님을 향한 우리 마음의 작은 ‘동요’들은 그분의 책에 기록될 만큼, 하나님께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 56:8)

B. 주님을 어떻게 감동시키는 지 알고 싶은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약한’ 백성들에게 주님은 정복당하신다. 받은 사랑에 보답하여 주님께 드리는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주님께 더 크고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신부는 자신의 사랑이 예수님께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미치는 지 잘 알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신부가 ‘시험의 계절’을 지나는 동안 주님의 임재를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험의 계절’을 지날 때, 그 분을 향해 일관된 사랑을 보인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감동시켰는 지를 주님은 나중에 드러내신다.

5 네 눈이 나를 놀래니(정복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아 6:5)

C.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너무도 강력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연약한 백성들에게 자신이 매이게 되신다. 주의 백성들을 향한 사랑에 사로 잡히는 것은 (주님의 연약함이 아니요), 주님이 누리시는 영광이기 때문이다. 주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자, 미천한 자들을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의 능력은 매우 특별한 것이다. 예수님은 신부를 향한 사랑에 깊이 빠지셨다(아 7:5).

D.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요 15:9; 17:23). 

이 진리를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엡 3:18). 주님을 향한 백성들의 사랑보다 예수님을 더 기쁘고 즐겁게 하는 일은 없다. 연약함과 죄와 씨름하는 가운데서도, 우리의 목소리는 주님께 달콤하며, 우리의 얼굴은 주님께 사랑스럽다(아 2:14)는 것을 기억하라.

E. 우리는 정기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한다, 

“주님, 제게 이 진리의 말씀에 대한 계시를 더 깊이 풀어 주시고, 주의 사랑을 제 심령에 더 깊이 부어 주세요.”

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 (살후 3:5)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롬5:5)

VI. 권능을 위한 중보기도를 통한 동역 (아 7:11-12)

11 (오라)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우리가)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찌기 일어나서 (우리가)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아 7:11-12).

A. 예수님과의 동역은 주님의 권능이 더욱 풀어지기를 기도하는 중보기도를 통해서도 표현된다. 아 7:8 에서, 예수님은 신부의 삶에 성령을 풀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신부는 이 약속을 붙잡고 중보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사역에 매진하고자 하는(아 6:11) 신부의 헌신을 엿볼 수 있다.

B. 앞서서, 신부는 ‘동산’에 내려가 예수님과 동역하며 미숙한 자들을 주님의 축복과 리더십 아래로 데리고 왔다. 

이제, 신부는 자신의 수고를 통해 주님의 임재를 풀어달라는 의미에서 ‘오시옵소서’라고 중보하게 된다. 신부는 아 6:11의 “내가 내려가” 에서 말을 바꾸어, 이제는 “우리가 가자”라고 말하게 된다. 신부는 주님과의 동역을 나타내기 위해 “우리가”라는 단어를 4 번 이나 사용하게 된다(아 7:11-12).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아 6:11)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막16:20 )

C. 아 7:11 에서, 신부는 ‘마을’과 ‘추수의 밭’에 가기로 헌신한다(요 4:35).

11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아 7:11).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 (고전 3:9)

35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 4:35)

D. ‘섬김의 밭’은 우리 가정, 직장, 교회, 그리고 이웃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곳으로, 사람들이 있는 모든 장소를 포함한다. 꼭 비행기를 타고 멀리 선교지로 떠나야만 섬길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E. ‘마을(동네)’은 예수님의 ‘기업’이 있는 곳으로,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원하시는 지역들의 ‘작은 단위’를 말한다. 

신부는, 큰 도시뿐만 아니라, 작은 시골 마을의 무명의 사람들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신부는 ‘한 계절’동안은 기꺼이 외딴 마을에도 머물며 섬길 준비가 되어 있다(아 7:11).

F. ‘일찌기 일어난다’는 것은 신부의 ‘신실함’과, 맡은 사명에 대한 ‘긴박한 마음’을 말한다.

G. 아직 열매를 맺지는 못했지만, 움이 돋아나 있는 ‘포도나무’를 섬기기 위해 신부는 내려간다. 신부는 순이 피어나는 포도나무를 “보기”위해 내려가는 데, 이것은 신부가 그들을 ‘예수님의 기업,’ ‘주님의 동산’으로 보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신부는 그들을 귀히 여기고, 인내로 대하게 된다. 움이 돋아나는 포도나무, 피어나는 꽃술, 그리고 피어나는 석류꽃은 ‘성숙’이 필요한 사람들과 사역들을 말한다(아 4:12, 13; 6:11).

H. 모래비안 선교사들은 희생의 삶을 살면서, “고난받은 어린 양께서 그 상급을 받으시기를” 바랐다. 이 본문에서 신부는 성령의 영향력아래 주님과 함께 달린다.

VII.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아 7:12)

11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찌기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아 7:11-12).

A. 바쁜 사역가운데서도, 신부는 잊지않고 예수님과의 친밀감을 누리게 된다. 

‘거기서’는 자기를 돌보지 않는 희생과, 믿음의 위기, 실망과 학대가 존재하는 장소다. 그러나, 신부는 주님과 깊은 친밀감을 누리며, 주님과의 동역에 달음질한다(아 1:4). 자신을 혹사해 가면서까지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주님과의 친밀감을 잃치 않고 주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신부는 ‘들’과 ‘동네’에서도 예수님과 효과적으로 사역하면서, 주님이 그 사람들을 통해 ‘주님의 기업’을 누리시게 한다.

B. 나무 그늘 아래 주님의 잔치 상에 편하게 앉아 예수님께 사랑을 드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아 2:3-4). ‘미숙한 자’는 혼자서 예수님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남을 섬기면서 그 사랑을 유지하지는 못한다.

C. 고난과 박해, 실망가운에서도 예수님을 순전하게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신부는 빌 3:10 의 고난을 지고 친밀감을 누리며 사역을 감당하는 삶, ‘사도적 기독교인의 삶’을 산다.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것처럼, 바울은 학대와 투옥, 그리고, 간수에게 사역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사랑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사역)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하나님과의 친밀함)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0)

D. 주님을 섬기기 위해, 바울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은 수고와 고난을 감당한 자다.

10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 11: 23-28)

VIII. 수고하여 거둔 열매를 예수님이 즐기시기를 바라는 신부 (아 7:12-13)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우리의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새것, 묵은 것이 구비하였구나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둔 것이로구나 (아 7:12-13)

A. 주님과 신부가 함께 수고하며 추수를 거둘 때, ‘합환채’의 향기가 발하게 된다. 

합환채 열매는 자주색 꽃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발한다. 합환채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상징한다. 고대에는 불임 여성들이 임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합환채 열매를 사용하였다. 불임으로 고민하던 라헬이 누이 레아의 말을 듣고 합환채를 사용하게 된 전례를 통해, 합환채는 사랑과 가임에 연관된 열매로 알려지게 되었다. 전해내려 오는 민담에 따르면, 합환채를 통해 라헬이 가임의 가능성을 높였을 거라는 말도 있다(창 30:1, 14-16). 아가서 외에 합환채를 언급한 곳은, 성경에서 딱 이 한 곳 밖에 없다. 오늘날 까지도, 유대인 전통에서는 합환채 열매가 ‘사랑의 열매’로 알려져 있다.

B. 신부의 사역은 ‘즐거운’ 열매를 맺게 된다. 

사역의 열매를 보고 예수님이 즐거워하실 거라는 사실(아 4:16)을 알게 될 때, 신부의 기쁨은 배가 된다. ‘내 문앞에 실과가 있다’는 것은, ‘(사역의) 열매’가 내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한다.

C. 성령님은 우리에게 기름부으사 각종 즐거운 열매, 옛 것과 새 것을 다 거두게 하신다.

예수님은 옛 것과 새 것을 ‘곳간’에서 끌어 내는 것을 말씀하신 바 있는 데, 이것은 신부가 예전에, 그리고 이제 새롭게 거둔 승리의 경험들로, 신부의 과거에서 검증된 진리들도 포함한다.

52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 (마 13:52)

D. 그동안 ‘하늘의 보고’에 쌓여진 우리의 사랑의 순종과 믿음의 삶, 이 보고에서 나오는 보물들을 성령님은 우리에게 나눠 주신다.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는 목적은 예수님께 드리기 위해서다. 신부는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해 즐거운 열매를 쌓는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마 6:20)

E.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는 주님 발 앞에 우리가 거둔 ‘보화’를 던지게 될 것이다(계 4:10).

이 보물은 그 날에 우리의 면류관이 된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그 날에 예수님 발 앞에 다 내어 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수고와 희생을 가능케 하는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며, 이 사랑이 바로 우리를 강권하여 ‘섬김의 밭’으로 가게 만든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계4:10)

IX. 겸손한 마음으로 동역하는 신부 (아 8:1-2)

네가 내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었더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 (아 8:1-2)

A. 아가서에 걸쳐 나오는 ‘어미’는, 역사적으로 교회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며, 교회는 주로 우리의 어미로 언급된다. 역사에 걸쳐 구속받은 자들은,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예수님과, 그 후에 나온 믿는 자들은 낳은 ‘어미’로 대표된다 (계 12:5, 17).

B. 대중 앞에서 신부는 예수님께 충성과 사랑을 담대히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신부는 이렇게 기도한다, “네가 오라비 같았더라면.” 당시, 가족이 아닌 다른 이성에게 공개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공중예절이 아니었다. 신부는 단지 ‘오라비와 같이’ 편하게 공개적으로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기를 바랄 뿐이다. 그 당시의 문화를 고려해 볼 때, 여성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약혼자보다는 오라비와 더 “친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C. 사도들의 기도에서 나타나는 것 처럼(행 4:29; 엡 6:19), 신부는 삶에서 계속 담대함을 지니며 살고 싶어한다. 담대함은 사람의 성격을 넘어서는 ‘성령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D. ‘어미의 젖을 먹은 오라비’는 이복형제가 아닌 ‘친형제’를 말한다. 

같은 엄마를 둔 형제들은, 엄마가 다른 형제들과 비교된다. 고대에 남자들은 여러 아내를 두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형제들은 엄마가 다른 이복 형제들이었으며, 그들은 압살롬과 암논의 경우 처럼(삼하 13장), 서로 라이벌인 경우가 많았다.

E.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만나더라도 사람들에게 멸시받지 않고 주님께 ‘입맞출’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부는 기도한다. ‘조롱받지 않고 공개적으로 예수님께 입맞춘다’는 것은, 오해와 멸시를 받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주님께 자신의 온전한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을 말한다.

F. 신부는 ‘예수님과의 사생활’에 있어, 사람들 앞에서 절제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표현들은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서만 사용해야 할 표현들이 있다. 친밀감을 표현하는 기도와 찬양가운데에는 회중사역에 적합하지 않은 표현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고전14:12,19-20, 23)

G. 사람들 앞에서 부적절한 담대함을 보인다면, 신부는 멸시를 당하거나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곧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하나님에게 받은 모든 것들을 아무 모임에서나 다 표현할 필요는 없다.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자제와 절제를 하는 사랑을 보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롬14:14 - 15:2; 고전 14:20, 23-33, 6-19).

H. 신부의 동역은 ‘기름부음’의 사역으로 표현된다 (아 8:2).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 집에 (너를)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 (아 8:2)

I. 예수님은, ‘주를 높이는 장소에 주님을 모셔올 수 있는 특권’을 신부에게 주신다. 

신부는 기름부음의 사역을 통해, 예수님이 그곳에 임하시기를 기도한다. 신부는 자신의 이름이나 사역을 알리기를 원치 않으며, 오직 “주님을 그곳에 모셔오기”만을 열망한다.

J. 신부는 기도한다, “제가 주님을 인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주님 나라의 어떤 부분에 관한 결정권을 신부에게 맡기기도 하신다. 주님의 목적을 위해 우리가 직접 참여하여 결정하는 부분을 축복하신다. 이것은, 주님이 공동 상속자인 우리를 존중하신다 것을 말한다(롬8:17). ‘성숙한 자’는 존귀한 길로만 예수님을 인도하게 되기를 사모한다.

K. 신부는 ‘어미의 집’으로, 즉, 자신을 목양을 해 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모셔오고 싶어한다.

이들은 장기간 신부와 친분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로, 처음으로 신부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친숙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역하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선지자는 보통 자신의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13:57).

사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놔두는 것이 차라리 더 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는 믿음 생활의 시작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진리를 가르치며 섬기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L. 신부는 ‘어미의 집,’ 즉, 교회 사람들에게 하나님에게 받은 깊은 계시들을 간절히 소개하고 싶어한다.

M. 하나님의 깊은 계시들을 소개해서 오랜 친구들의 심령을 흔들기를 원하는 이유는? 

믿음의 초창기에 자신을 가르쳐 준 이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 때문이다. 영적인 축복의 삶을 살면서도 신부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다. 초신자 때 자신을 양육해 준 이들을 존중하기에 그들을 섬기고 싶어한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의 축복에 보답하고 싶은 것이다. 주님께서 주권적으로 우리에게 주셨던 유산을 우리는 존중해야 한다. 그 사람들에게 영적 성숙함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N. 주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신부는 이렇게 기도한다, 

“나는 향기로운 술(포도주)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웠겠고” (아 8:2). 당시,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사람들은 향(신)과 포도주를 섞어 대접했는데, 이것은 향이 더 풍부해 져 포도주가 더 큰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O. 물론, 이렇게 대접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데에 적합한 관습이었다. 

신부는 대가에 상관없이 예수님께 최선을 것을 드리기를 열망한다. “나는 네게(주님께) 마시우겠고” 라고 말하면서, 신부는 귀한 손님으로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소원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한다.

P. ‘나의 석류즙’은 신부의 내면의 삶에서 경험하는 달콤한 ‘은혜’들을 말한다. 

신부의 사역 토대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삶’에 있다.

X. 예수님과의 연합을 통한 동역 (아 8:3-4)

너는 왼손으론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론 나를 안았었으리라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찌니라 (아 8:3-4)

A. 예수님은 가까이 임하길 기도하는 신부의 기도에 응답하시고(아 8:1), 신부의 마음을 사로잡으리라는 약속을 성취하신다(아 7:8).

B. 하나님의 왼손은 자연적인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활동을 말한다. 왼손은 신부 머리밑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직접 보지는 못해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신다. 축복과 공급, 보호를 위해 많은 것들을 풀기도, 또 묶기도 하신다. 우리가 사는 동안 전혀 알 수도 없는 문제들로 부터 우리를 보호하신다.

C. 하나님의 오른손은 눈에 보이거나 식별할 수 있는 하나님의 활동을 말한다. 

이 장면은 솔로몬이 서서 신부를 안는 장면이다. 신부는 직접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다. 이것은 느낄 수도, 또, 분별할 수도 있는 “달콤한” 하나님의 임재를 말한다. 때로는, 하나님의 오른손의 역사로 우리의 심령이 온유해 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안는다’는 것은, 직접 느낄 수 있어 쉽게 분별할 수 있는 하나님의 활동을 말한다. 신부가 금방 찾을 수 있게 주님은 나타나셔서(아 8:1) 신부를 안아주신다. 하나님께서 신부를 안아 주실 때, 신부의 마음은 온유해 지게 된다.

D. 성령님은 전략적으로 ‘영적 계절들’을 통해 우리를 보호하신다(아 8:4). 

여기서 말씀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주님은 각 사람의 영적 삶에 ‘전략적 계절들’을 위임 하셨다. 주님의 마음에 대한 새롭고 깊은 계시를 우리 심령에 확립하고자 하는 심정으로 이런 계절들을 허락하신다. 특별히, 이 본문에 나오는 계절에서 성령님의 계획은, 신부에게 담대함과 겸손을 나눠주시는 것이다(아 8:1-2).

E. ‘예루살렘 여자들’은 성령님의 다양한 역사와 영적 계절들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을 대표한다. 주님은 분별없는 자들에게 부탁하신다. 전략적으로 주어진 계절에 ‘신부의 마음’으로 헌신된 자들을 분별없이 자신들의 의견이나 판단으로 방해하지 말라고. 

F. “나의 사랑하는 자(it)가 원하기 전에는”라는 구에서 ‘it’ 은 히브리어로, 그것, 그, 그녀로 해석될 수 있다. 

NAS 역은 정확하게 “그녀(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깨우지 말라”라고 번역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그”가 되었다면, 예루살렘 여자들이 주님을 깨우는 것이 되는 데, 주님은 누가 깨울 필요가 없는 분이며, 쉽게 놀라는 노루와 같이 보호받을 필요가 없는 분이다. 방해받지 말아야 하는 자는 신부이기 때문이다.

G. “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깨우지 말라” 라는 구절을 예수님은 아가서에 걸쳐 3 번 말씀하신다(아 2:7; 3:5; 8:4).  

아 2:7에서, 주님은 “신부를 방해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노루와 들사슴으로”라는 구를 첨가하셨다. 그 때는, 신부가 미숙했고, 불안정하여 쉽게 산만해지고 요동될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엡 4:14).

===23장 성숙한 사랑의 인치심을 받는 신부 (아 8:5-7) (The Bridal Seal Of Mature Love)

I. 소개

A. 아 8:5-7의 주제: 우리의 마음을 불 같은 주의 사랑으로 인치시려는 하나님의 헌신.

너는 나(예수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사랑은… 불 같이 일어나니 (아 8:6)

B. 이 구절은 아가서와 새 언약의 ‘절정’을 보여준다(히 10:16). 

신부의 여정은 ‘하나님의 말씀의 입맞춤을 위한 절규’로 시작해서(아 1:2), 신부의 마음에 ‘불같은 인치심’을 통해 절정에 이른다.

2 (예수님이) 내게 (말씀으로) 입맞추기를 원하니 … (아 1:2)

C. 1 장 복습: 아가서는 8 장으로 구성된 사랑의 노래다. 해석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1. 자연적 해석: 솔로몬왕과 그의 신부, 술람미 여인의 러브 스토리다. 

이것은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을 존중하는 성경 원칙을 강조한다.

2. 영적 해석: 솔로몬왕과 그의 신부의 러브스토리는, 왕이신 예수님과 그의 신부인 교회의 관계를 보여주는 영적 진리로, 이 책이 씌여진 후부터 지난 3000년동안 가장 많이 사용되어온 해석방법이다.

D.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자기에 관한 모든 성경(아가서 포함)을 다 인용하셨다.

27 이에 …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E. 모든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씌어졌다(딤후 3:16). 

성령님은 성경 66권의 책 하나마다 예수님을 높이려는 헌신을 갖고 계신다.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 16:14)

F. 결혼은 멈춰도, ‘주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우리의 심령을 울리며 예수님을 사랑하게 만들 것이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 22:30)

G. 하나님의 ‘불같은 인치심’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영원한 동반자, 즉, 자원적 사랑으로 주님과 동일한 멍에를 지는 신부를 아들에게 주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헌신’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 드리는 순종은 의무지만, 사랑은 자원적인 것이다(빌 2:9-11).

H.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도 예수님을 그 만큼 사랑하게 되기를 주님은 기도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였고…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요 17:26)

I.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 

다시말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능력(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기름부음’이야말로, 성령님이 우리에게 나눠주시는 선물들 중 가장 큰 선물이다. ‘주님의 불타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세례를 베푸시는 성령님은 “모든 것을 소멸하는 불”이요, “살아 계신 사랑의 불꽃”이시다.

…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롬 5:5)

16 그(예수님)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눅 3:16)

J.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120명의 성도들은 불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세례’의 증표를 받았다.

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행2:3)

K. ‘하나님 사랑의 인’이란, 첫 계명, 그리고 하나님 마음에 합하는 진리를 말한다. 

하나님이 마음과 힘을 다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끔 주님은 도와주실 것이다.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 12:30)

L.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듯, 우리가 서로 한 마음이 되기를 기도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초자연적(영광)으로 주님의 마음과 같이 되는 영광을 말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이것을 부분적으로 목도할 것이지만, 영원의 시대에는 이것이 우리안에 충만해 지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 (요 17:21-22)

M. 가장 큰 두 계명,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사는 것이 이 시대 교회에 주어진 기업이요, 부르심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한다. 

이 시대에 부어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헌신을 보며, 우리는 속사람 안에 ‘사랑의 기름부음’이 채워지도록, ‘믿음’의 원칙들을 적용해야 한다.

23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 11:23)

N. 우리는 “주님을 더욱 갈급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우리의 갈급함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응답하신다, “내가 너를 더 갈급한단다.” 갈급함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적인 ‘사랑의 침노’로,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침노하여 쟁취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2)

II. 질투의 신랑의 모습을 보여주기 원하시는 예수님

너는 나(예수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하나님의)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고된 것)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이 사랑은 많은 물(죄, 압력)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찌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 8:6-7)

A. 1988년 7월, 주님은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무실에서 아 8:6 을 읽으며, “예수님, 사랑의 인으로 제 마음에 인쳐 주세요.” 라고 기도했을 때, 주님은 전세계 그리스도의 몸에 아 8:6-7 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풀으시겠다고, 그렇기에 사역을 하는 동안 내가 이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아이합의 기도 운동을 위한 약속이기도 하다).

B.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 

그 사랑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광범위한 것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피조물들은 죽음을 절대 피해갈 수 없다.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 마찬가지로, 강력한 흑암의 영역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질투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이 사랑은 “음부같이 잔혹하며,” 즉, 죽음같이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C. ‘질투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원하신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빛에 따라 하나님을 따르며 산다. 우리가 그 빛에 순종하며 살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더 기름부어 주셔서 더 성숙한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 주신다.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야 4:5)

D. 우리는, 모든 것을 요구하는 ‘질투의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임하시기를 정직하게 간구해야 한다.

14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출 34:14)

E. 예수님은 구원자(용서의 주), 치료자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원하신다. 

우리의 마음을 정복하실 때까지 쉬지 않고 우리를 좇으시는 ‘질투의 신랑’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하신다.

III. 꺼지지 않는 거룩한 불꽃: 하나님의 인

너는 나(예수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이 사랑은 많은 물(죄, 압력)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아 8:6-7)

A. 고대에는, 왕이 중요한 문서에 ‘밀랍을 이용한 인’을 찍었다. 문서 사이에 밀랍을 넣고 그위에 왕의 반지 도장을 찍었다. 왕의 인을 통해 문서들은 보호받았고, 원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왕의 인은 왕의 소유권과 보호, 권위와 보증을 말했다. 왕국의 모든 힘이 그것을 뒷받침 해주었다.

B.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불이 아니라면) 물은 항상 불을 끄게 마련이다. 

원수는 이 불을 끄기 위해 유혹과 무관심, 실망과 고통 등을 우리에게 보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심령안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랑이 계속 흘러나갈 때) 어둔 죄와 유혹의 홍수보다 더 강력하다.

C. ‘하나님의 불의 인(印)’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심령에 부으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말한다(롬 5:5). ‘인’은 성령님과의 교제에 있어 ‘현재 진행형의 경험’을 말한다.

13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 1:13)

IV. 주의 임재를 초청하며 예수님을 인같이 마음에 품자.

A. 예수님은 신부에게 “나를 인같이 네 마음에 품으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것을 소멸하는 사랑의 하나님’을 알도록 부르짖으라고 권고하신다. ‘예수님을 인같이 마음에 품으라’는 것은, 주님의 불같은 임재를 초청하여 우리의 심령을 만지시고 인쳐주시기를 바라는 갈급함을 소유하라는 의미다. 이 사랑을 위해 우리는 주님을 초청해야 한다. 주님은 자원적 사랑의 관계를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시며, 우리가 심령안에 주님을 초청할 때까지 기다리신다.

B. 학문중심적 주석들 중에는 이 본문에 나오는 히브리어 명사들의 불확실성을 지적하는 책들도 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신부를 인같이 주님의 마음에 품어 불같은 사랑으로 신부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하는 해석은 사실 신빙성이 떨어진다. 예수님은 이미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탁한다고 해서 주의 사랑이 향상되는 게 아니다).

3 나 여호와가 …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렘31:3)

C.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동역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와 친밀한 동역을 바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역할을 하지 않으실 것이며, 우리는 주님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주 예수님’을 또는, ‘새 사람’을 입음으로 예수님을 인같이 우리 마음에 품을 수 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13:14)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 3:10)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4)

V.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는 것이 사랑의 상급

A. 인간만이 하나님께 사랑을 드릴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사랑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삶에서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며 주님께 자원적으로 드리는 사랑, 이것이 주님께는 귀한 선물이다. 이것 또한, 신부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일어난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하기 때문이다.

B. 진실한 사랑의 최고 상급은 바로 ‘더 깊이 사랑하는 능력’을 소유하는 것이다. 

‘사랑의 부자들’은 (희생의) 가격표를 보지 않는다. 누구나 다 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 포기의 길을 가로 막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백성들을 세우고 계신다.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찌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8:7)

C. 바울은 모든 대가를 치르는 사랑을 말한 바 있다. 

그는 자신에게 열려있던 ‘세상적 성공의 문들’을 모두 내려 놓았었다.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D. 성령님은 현재, 신부의 정체성을 가지고 ‘신랑 예수님’과 ‘첫계명’에 헌신된 교회를 세우는 데에 초점을 둔 사역들을 온 땅에 세우고 계신다. 이들은 “신랑(예수)의 친구들”의 역할을 하면서 주님의 ‘신부’(교회)를 준비시키는 사역을 하게 된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요 3:29)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계 19:7)

VI. 사랑으로 승리하는 마지막 때 교회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시험)에서 올라 오는(승리의) 여자가 누구인고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아 8:5)

신부는 ‘사랑’과 ‘감사’로 권능을 입고, ‘사랑하는 자’인 예수님을 의지하게 된다. 교회는 사랑으로 승리하면서, 주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인류역사를 마감하게 될 것이다. 교회가 ‘광야’같은 이 타락한 세상에서 시험과, 유혹, 고난을 이겨내며 승리하게 될 거라고 성령님은 마지막 때 ‘신부의 승리’를 선포하고 예언하신다.

짐승(적그리스도)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사랑으로)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계 15:2)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5:27)

===24장 신부의 마지막 중보기도와 계시 (아 8:8-14) (The Bride’s Final Intercession and Revelation)

I. 아가서 8:8-14 개관

A. 아가서는 ‘어린 소녀’가 하나님의 불로 충만한 ‘신부’가 되는 성장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제 신부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실히 드러낸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신부와 같은 계시와 확신, 그리고 헌신적인 순종으로 살 때만이 영적으로 ‘살아 있게’ 된다. 이제, 신부는 마지막으로 두 가지 중보기도를 드리게 되는데,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아 8:8-9)와, ‘예수님의 재림’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게 된다(아 8:14).

B. 아 8:8-9에서,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향한 신부의 ‘열정’과 ‘중보’를 보게 된다.

C. 아 8:10 에서, 우리는 신부의 확신, 즉, 하나님이 신부를 어떻게 보시는 지에 대한 계시를 볼 수 있다(아 8:10). 

신부의 확신 3 가지는 성벽(희생적 동기), 망대 (타인들을 양육할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 화평을 얻은 자(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짐)와 같다. 

신부는 주님 앞에 사는 것을 기뻐한다. ‘신부의 정체성’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확신을 갖고, 우리에게 주어진 지위를 누리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D. 아 8:11 에서, 신부는 하나님 앞에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감’에 대한 계시를 갖게 된다.

E. 아 8:12 에서, 신부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마음’의 확신을 갖게 된다.

F. 아 8:13 에서, 예수님은 신부에게 ‘마지막 위임’을 부여하신다.

G. 아 8:14 에서, 신부는 예수님의 재림을 ‘긴박함’으로 중보한다.

II. 교회를 향한 신부의 열정과 중보 (아 8:8-9)

8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 그가 성벽일찐대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찐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아 8:8-9)

A. ‘사랑의 인’으로 갱신되고 흘러 넘치는 사랑의 심령을 소유하게 된 신부는(아 8:6-7), 그리스도 안에 아직 ‘유아’로 남아있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인지하고, 그들을 위해 중보하게 된다.

B. 신부는 예수님께 “ ‘우리’에게 작은 누이가 있어요”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신부가 예수님과 밀접하게 동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부는 “ ‘내가’ 내 누이를 위해 무엇을 할꼬”라는 단수형을 사용하지 않고,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바로, 효과적인 예수님과의 동역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아 1:4 에 나오는 첫번째 신부의 기도는 “우리가 함께 달려가리라”라는 복수형을 취하고 있다. ‘우리’가 달려가는 모든 사역은 복수형인 것이다. 잃어버린 자들과 미숙한 자들을 돕기위해, 우리는 주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동역해야 한다.

C. 작은 누이에게 도움이 필요함을 신부가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성령님이 신부안에 역사하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제, 신부는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작은 누이’를 바라본다. 주님은 ‘작은 누이’들에게도 마음이 빼앗기셨으며(아 4:9), 이들의 얼굴을 보고, 음성을 듣기를 간절히 바라신다(아 2:14). 이제 신부는 예수님과 함께 ‘성숙한 동역’을 하며 살게 된다.

D. 스스로는 더 깊은 영성을 좇으면서도, 작은 누이를 잊지 않는다. 

신부에게는 ‘미숙한 자들’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작은’ 누이는 ‘작은’ 믿음을 지니고 있기에 고난이 오면, 쉽게 낙망하는 자들이다. 작은 누이는 ‘압력’을 받으면 견디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 버린다. 예루살렘의 여자들도 작은 누이와 같은 영적 상태에 있던 자들이다.

E. 작은 누이에게는 아직 유방이 없다. 

작은 누이에게 주님의 말씀의 젖(고전 3:1-2)으로 다른 이들을 먹이고,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없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교제하지만, 자신의 문제와 필요가 너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을 돌 볼 여유가 없다. 그래서, 자신에게만 초점을 두는 ‘영적 유아’로 남아 있게 된다. 신부는 작은 누이를 보며 비난하거나 실족하지 않고 작은 누이의 성장을 도와준다.

F. 신부는 작은 누이에 관하여 주님께 상담과 도움을 요청한다. 신부는 이렇게 중보한다,“우리가 그(우리의 누이)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요? 누이가 성숙하게 되도록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G. 신부는 미숙한 자들을 보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아 6:11; 7:11). 

이것은 ‘아버지의 마음’과도 같다(살전 2:11). 신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따르도록 그들을 돕지 않고서는 주님 안에 만족하지 못한다.

H. 1983년 여름에, 난 삶이 180도 뒤바뀌게 되는 ‘주님과의 만남’을 체험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내 자신의 영적 성장에만 초점을 두며 살고 있었다. 나만을 위한 기도와 말씀의 계시의 성장을 구했으며, 사람들이 나를 의지하려는 부담을 내게 주거나 방해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나는 주님께 불평을 늘어 놓기 시작한 적이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당시 500명의 교인)을 돌보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다. 순간, 주님은 여1:2 을 통해 내게 강력하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2 …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여 1:2)

I.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백성들을 유업의 땅으로 인도하라고 명하셨다. 성령님은 내게 강한 어조로 물으셨다, “이 땅에 거룩한 성도 한명 보다 주님께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이 질문에 난 고민하는 가운데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주님은 내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주의 백성 전체이다”라고. 그리고 나서, 성령님은 내게 여1:2 말씀을 주시면서, “나는 너뿐만 아니라, 유업의 땅을 물려받을 내 백성 모두를 원한단다.” 이 구절은 내 심령에 화살 같이 꽃혀 버리게 되었다.

J. 미숙한 자였던 나는 나 혼자만 거룩하게 되는 것에 신경썼던 것이다. 하지만, 성숙해 지면서, 주님은 내게, “네 형제들은 어디 있느냐? 네 작은 누이들은 어디 있느냐?”라고 묻기 시작하셨다. 사람의 영적 성숙을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징표중의 하나는, 성숙한 자는 타인들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돌본다는 것이다. 신부의 마음에는 “우리의 작은 누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

K. 신부는 “청혼함을 받는 날에” 모두가 주님앞에 서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청혼함을 받는 날’은 혼인 날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신부가 예수님과의 동역에 ‘성숙해진 시기’를 말한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좇는자들에게는, 깊고 성숙한 동역으로 나타나는 예수님의 ‘청혼’의 날이 이 땅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서는 날 ‘청혼’이 일어난다.

L. 예수님과 동역하는 신부는 어떻게 하면 작은 누이를 성숙해 지도록 도울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그러나, 사실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은혜로 예수님과 동역하면서, 다른 이들을 돌보는 책임감을 놓쳐 버린다.

M. 신부는 주님 앞에서 두 종류의 부르심을 붙들고, 작은 누이를 위해 중보한다.

9 그가 성벽일찐대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찐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아 8:9)

N. 만일, 작은 누이가 영적 ‘성벽’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신부와 주님은 그 위에 ‘은 망대’를 세울 것이다. 

성벽은 도시의 방어벽이며, 분계선의 역할을 한다. “성벽 사역”은 원수로 부터 주의 백성을 보호하는 ‘목회적’ 사역, 또는, 하나님의 ‘영적 표준(기준)을 높이는’ 사역으로, 백성들이 ‘유업의 땅’을 물려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 기준의 ‘거룩함의 분계선 (경계선)’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

O. 아 8:10 에서, 신부는 자신의 사역을 ‘성벽 사역’이라 말한다. 

이 사역은 사람들을 원수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영적 표준’을 제시해 준다. 물론, 여기에는 부담감과 외부의 압력이 작용한다. 원수가 영적으로 어린 자들을 겨냥하여 화살을 쏘며 공격할 때, 성벽이 그 화살들을 가로막아 주기 때문이다.

P. 만일, 작은 누이가 영적 ‘문’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신부와 주님은 누이를 ‘감싸게’ 될 것이다. 문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입구다.

‘문의 사역’은 중보자, 전도자, 교사, 또는, 사도로서, 사람들에게 ‘은혜’와 ‘구원’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중보자들은 사람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준다. 전도자들은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교사들은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 더 깊이 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사도들은 그 지역에 문을 열어 하나님 안에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 (골 4:3)

Q. 작은 누이는 하나님이 주신 부르심에 따라 성벽이든, 문이든 하나를 고르게 될 것이며, 주님과 신부는 누이의 부르심에 맞게 효과적으로 도와주게 될 것이다. 다시말해, 하나님이주시는 작은 누이 삶의 부르심에 따라, 주님과 신부는 누이가 효과적으로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누이를 돕게 될 것이다.

R. 신부는 예수님께 말한다,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요새의 망대는 탑 꼭대기에 세워져 활사수가 돌사이의 빈 공간을 이용해 활을 쏘던 곳이다. 그는 화살을 쏘고나서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망대벽 뒤에 몸을 감춘다. 망대는, 파수꾼이 적을 감시하고 화살을 쏘는 장소로 그 성(도시)을 방어하고 사수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9 그가 성벽일찐대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찐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아 8:9)

S. ‘망대’는 적으로 부터의 안보를 제공해 주는 사역을 말한다. ‘은’은 ‘구속’을 말한다. 은망대은 존재하지 않았다. 망대들은 보통 돌로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은 망대’는 사람들이 구속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역을 말한다.

T. 작은 누이의 삶에 중보자, 전도자, 교사와 같은 부르심의 은혜가 있다면,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그를 두르리라”라고 신부가 기도한다.

U. 백향목 판자는 믿을 만하고, 강도가 뛰어나면서도 향기를 가진 값비싼 목재였다. 

성막에서, 나무는 ‘인류’를 상징했다. 광대한 레바논의 백향목은 가장 향기롭고, 강도와 내구성이 뛰어난, 값비싼 건축 자재였다. 

예수님은 레바논의 백향목이시다(아 3:9). ‘복음의 병거(마차)’는 레바논의 백향목, 즉, 인간의 형상을 입고 오신 예수님으로 지어졌다.

백향목 판자는, 레바논의 백향목이 향기롭듯, 그리스도의 향기를 말한다. 주의 임재가 거한 처소였던 솔로몬의 성전은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지어졌다(왕상 4:33; 5:6).

V. ‘레바논의 백향목 판자로 두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과 임재를 입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 부터 보내심을 받은 ‘백향목’이신 예수님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13:14)

W. 신부는, “우리는 … 그(누이)를 두르리라”라고 기도했다. 

작은 누이가 하나님의 성품과 임재로 덮혀질 때까지 예수님과 신부는 누이를 도울 것이다.

III. 신부의 확신: 신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계시 (아 8:10)

10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아 8:10)

A. 온전한 신부의 정체성에는 확신을 주는 세가지 계시가 포함되어 있다. 

신부는 자신의 ‘영성의 깊이’에 대한 계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드물지만, 교회안에 강력한 실재다.

B. 신부는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 보호 성벽’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신부는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으며, 사람들을 보호하는 도구로 살게 된다. 

신부의 시간과 정력, 물질과 꿈은 하나님 안에 이 ‘고귀한 목적’을 섬기는 데 매여 있다.

바울도 사람들을 보호하는 ‘성벽’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살전 2:7-12; 갈 2:11-14).

C. 아가서에 나오는 ‘유방’은 영적으로 어린 자들을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망대같은 유방’은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영적 능력을 말한다. 신부의 사역은 풍성하다. 그래서,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젖의 망대’와 같다. 

아가서에 신부가 ‘망대’로 비유된 본문은 모두 세번 나온다(아 4:4; 7:4; 8:10).

D. 신부는 자신의 ‘효과적인’ 사역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신부의 유방이 ‘포도송이’와 같을 것을 위임하셨다(아 7:8). 

신부는 사람들을 돕기위해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교만이 아니다.

바울, 세례요한, 다윗, 사무엘, 모세도 이와 같은 확신을 갖고 살았다.

E. 바울은 자신에 대해 기술하면서, 신약 성경에서 가장 담대한 고백 하나를 남겼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 (고전 11:1; 고후1:12, 15).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하면서, 바울은 자신이 겸손함과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님을 섬겼기에,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자신이 깨끗하다고 말한 바 있다(행 20:18-37).

F. 하늘로 올리우기 전에, 에녹은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았다고 간증한 바 있다(히 11:5).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눅 3:16)라고 고백했으며, 모세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자신이 더 ‘겸손한 자’라고 자랑했다(민 12:3). 

사무엘은 사역의 종지부를 찍으면서 ‘어려서 부터 그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으며, 열방에게 선하고 의로운 길을 가르치겠다’고 선포했다(삼상 12:1-5, 23).

G. 신부의 이러한 확신은 (교만이 아닌) 오직 계시를 통해 오며, 자신의 마음을 깊은 감사로 채우게 된다. 

신부는 사역과 성숙함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신부에게 직접 확증해 주셨기 때문이다. 

신부는 “주님의 백성들을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주님이 그렇게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다고 증거해 주는 분이 신부안에 거하고 계신다(히 11:5).

H. 신부는 삶에 화평(평강)을 누리며, ‘하나님이 지켜 보는 앞에서 사는,’ 즉, ‘한 분의 청중(Audience of One)’ 앞에 사는 부르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살 때, 신부의 삶에 많은 ‘감정의 방해물’들은 사라지게 된다.

I. 주님이 보는 앞에 사는 것을 신부는 기뻐한다.

‘신부’의 정체성은, 주님의 사랑 안에 확신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지위를 누리고 살 수 있게 도와준다.

J. 이 확신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우리에게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 주는 강력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죄책감과 두려움, 자기 불신과 혼동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감정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라. 

신부의 심령 안에 있는 ‘불같은 사랑의 인’은 이러한 확신과 순수한 동기들을 창출해 낸다(아 8:6).

K.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비난했어도 바울은 평강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고전 4:3-5). 

50년 간의 사역을 다 마친 후,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을 섬겼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얼마나 감격스러울지 한 번 생각해 보라!

L. 신부는 자신이 예수님과 동역하며 살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평강을 누리게 된다. 

우리의 삶을 바로 이해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계시는 심오한 것이다.

IV. 하나님 앞에 갖게 된 책임감에 대한 계시 (아 8:11)

11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들로 각기 그 실과를 인하여서 은 일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아 8:11)

A. 주님 앞에 살게 될 때, 우리는 맡겨진 책임과 동시에 영원한 상급을 알게 된다(고전 3:11-15; 고후 5:10; 롬 14:12-14). 

마지막 날에,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에서 거둔 ‘모든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게 될 것이다. 

‘영원한 상급’의 계시를 얻은 신부는, 매일의 삶 가운데 가장 작은 순종도 존귀하게, 또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게 된다.

B. 솔로몬 왕은 ‘지키는 자’에게 자신의 포도원을 맡긴다. 

아가서에서, 솔로몬 왕은 왕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며, 예수님의 포도원은 ‘주님의 백성들’을 말한다(사 5:1-7).

C. ‘바알하몬’에 있는 예수님의 포도원은 지난 역사동안 역동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다.

성경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바알하몬’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데, 그 단어의 뜻은 “인구가 많은 곳”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이 단어의 히브리 어원의 문자적 의미는 “무리의 아버지”다. 어떤 성경 번역본들은 그 단어를 도시로 번역하지 않고, 문자적 의미로 해석했다. 

왕이신 예수님은 ‘바알하몬’에 모든 열방과 족속까지 미칠 수 있는 거대한 ‘포도원’(하나님의 백성들)을 갖고 계신다(마 24:14; 계 7:9).

D. 왕이신 예수님은 포도원을 신부에게 맡기(위임하)셨다. 

신부가 주님을 위해 그 포도원을 지키리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포도원을 맡기신다는 것은, 이 시대에 사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위임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

E. 아 8:11-12 은, 마 21:33-44 에 포도원을 심고, 망대를 세워, 그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맡기고” 먼 나라로 간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인용한 것이다(마 21:33). 

우리는 현재 주님이 “먼 나라”에 가 계신 시기에 살고 있다.

F. 주님은 포도원을 가꾸는 책임을 ‘지키는 자들’에게 위임하셨다.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주님의 포도원을 지키는 ‘청지기의 역할’이 주어져 있다. 

충성스런 청지기가 되기 위해, 교회나 사역단체의 공식적인 업무나 지위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먼저, 주위 사람들을 섬기면서 출발하라.

G. 신부는, “모든 사람”이 맡겨진 부르심에 대한 열매를 그 날에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눅 12:31- 48).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 포도원을 잘 가꾸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주님은, 특별한 은사나 (성공의) 기회가 아닌, 우리의 ‘신실함’의 정도에 따라 상급을 주신다.

H. 주님은 ‘지키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부터 ‘충만한(온전한) 열매’를 기대하신다. 

각 사람은 ‘은 일천’을 가져와야 한다. “일천”은 충만함을 말하는 완전한 숫자로, 각 사람에게 위임된 만큼 하나님이 구하시는 충만함을 말한다. 

이사야에 언급된 은 일천은 포도원의 충만한 가치를 의미한다.

23 그 날에는 천 주에 은 일천 개의 가치 되는 포도나무 있던 곳마다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라 (사 7:23)

V.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에 확신을 갖게되는 신부 (아 8:12)

12 솔로몬 너는 일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아 8:12)

A. 신부의 포도원은 앞에 있다. 

다시 말해, 신부는 예수님이 맡기신 책임에 대해 열매를 거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신부의 ‘은밀한 삶’과, ‘사역의 부르심’ 모두를 포함한다. 

신부는 여정 초반에 자신의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지만, 이제는 잘 지키게 된다(아 1:6).

B. 신부는 아 8:11에서, 예수님이 요구하신 ‘은 일천’을 소유하실 수 있다고 선포하면서, 주님이 기대하신 모든 열매를 예수님께 드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에녹은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증거를 받았다.

이와 같은 확신으로, 신부는 하나님께 고백한다, “나는 주님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양육하며 살았습니다” (아 8:10).

에녹은 …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11:5)

C. “열매를 지키는” 자들, 즉, 신부의 동역자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 신부가 거둔 열매의 기업의 일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신부는 인정한다. 

신부는 사람들과 팀 사역을 하며 사명을 감당했다. 팀 동료들은 영원토록 신부의 상급을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은 이백’은 신부의 동역자들이 마지막 날에 받게 될 ‘상급의 몫’을 말한다.

D. 바울을 재정적으로 후원해 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는 열매가 그들의 몫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빌 4:17)

E. 요약: 신부는 하나님 앞에 고백한다, 

“나는 성벽이며, 망대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립니다. 이제 주님께 제가 거둔 열매를 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요청하신 ‘은 일천’을 드려왔기 때문입니다.”

VI. 신부에게 맡겨지는 최종적 위임 (아 8:13)

너 동산에 거한 자야 동무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나로 듣게 하려무나 (8:13)

A. 신부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교회를 훌륭하게 섬기는 신부를 칭찬하신다. 

예수님은 “너 동산에 거한 자야”라고 신부를 부르시는 데, 이것은, 이기적으로 자신을 고립하지 않고, ‘하나님의 동산’에 거하며 주의 백성을 잘 섬기는 신부의 모습을 확증해 주시는 것이다. 신부는 포기하지 않는다. 

‘동산들’(복수형)은, 아 6:2 에 나오는 ‘향기로운 풀밭’처럼, 주님의 교회의 ‘많은 지체들’을 가리킨다.

B. 신부의 계속되인 신임과 영향력은 끝까지 나타난다. 

신부의 섬김을 받는 동무들이 여전히 신부에게 귀기울여 열심히 듣는 것을 예수님이 확증해 주시고, 그들이 신부의 삶에 있는 ‘성숙의 깊이’를 명백히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신부안에 있는 하나님의 실재를 보고 느끼며, 신부로부터 공급받는다. 

예루살렘 여자들이 아 5:9; 6:1, 13 에서 신부의 ‘목소리’를 듣기 원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신부의 말에 여전히 귀를 기울인다.

C. 예수님도 신부의 음성을 여전히 듣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다시한번 뜨거운 예배와 중보로 신부를 초청하신다. 

미숙할 때에도 신부의 음성은 주님께 달콤했다(아 2:14). 이제 주님이 사랑하는 동역자로 주님과 성숙한 연합을 이루며 사는 신부의 음성은 얼마나 더 달콤할까!

D. 주님은 계속해서 우리의 음성을 다음의 네가지를 통해 듣기 원하신다.

1. 예배 – 주님께 드리는 사랑의 고백을 영원토록 듣기 원하신다.

2. 중보 –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중보한다(히 7:25).

3. 가르침 – 서로에게 주님의 말씀을 나누며 격려한다(마 28:19-20; 골 1:28).

4. 전도 –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E. 그러나, 원수는 우리의 음성를 소멸하려 한다.

VII. “예수님, 속히 오시옵소서”라고 긴박하게 중보하는 신부 (아 8:14)

14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 (8:14 )

A. 신부의 음성을 듣기 원하시는 예수님의 권고에 즉시 순종하는 신부는 예수님께 ‘속히 오시옵소서’라고 중보한다. 

예수님과 속히 함께 있기를 바라는 신부의 열망이다. 

여기서 신부는 예수님을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 끝까지 신부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B. 아 2:8, 17에서 예수님은 산들을 정복하며 넘어오는 ‘노루와 어린 사슴’으로 나오셨다.

장애물의 산들을 모두 정복하며 넘어오는 재빠른 노루와 어린 사슴과 같이, 예수님이 이 시대의 모든 장애물들을 신속히 정복하는 ‘승리의 왕’으로 오시기를 신부는 간구한다.

C. 신부는 3 가지 기도를 드린다. 

‘친밀감’을 위해 예수님이 자신에게 가까이 임하시기를, 자신의 도시에 ‘부흥’을 위해 임하시기를,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재림’하시기를 기도한다. 

마지막 때 교회는 이 세가지의 중보기도를 하게된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계 22:17, 20)

1. 친밀감을 위해 우리에게 가까이 오소서 (하나님 안에서의 개인적인 돌파구)

2. 부흥을 위해 우리에게 오소서 (지역이나 나라의 부흥을 통한 영적인 돌파구)

3. 우리를 위해 재림하소서(오소서)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역사적인 돌파구)

D. 역사상 처음으로, 전세계의 교회는 성령님과 역동적인 연합을 통해, 놀라운 성령의 권능과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E. 예수님의 임재를 중보하는 신부의 두가지 기도 (돌파구)

1. 예배 –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며, 예배합니다. 주를 향한 사랑으로 간구합니다. 주님, 오시옵소서.”

2. 중보기도 – “우리에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오셔서 부흥의 권능을 풀어주소서.”

F. 이차원적 중보기도: 위로는 하나님께, 바깥으로는 사람들에게 (10억의 새 영혼 추수)

1. 수직적 – 예수님께서 돌파구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오시옵소서라고 부름 (우리 가까이/우리에게/우리를 위해)

2. 수평적 – 신랑이요, 왕이신 예수님께 나아오라고 사람들을 부름

G. 우리는 믿는 자들(부흥, 제자훈련)과 불신자들(전도) 모두를 불러, 그들이 ‘신랑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초청해야 한다. 

주님의 교회는 수직과 수평 방향으로 “부르게 될” 것이다. 

먼저, 예수님을 부르며 “우리에게 임하시옵소서”라고 중보할 것이며, 둘째로, 목마른 자들을 불러 “예수님께 나아오라”고 할 것이다.

H. 하나님의 보좌와 신부가 거할 처소는 ‘거룩한 향기’를 발산하는 ‘광활한 산’과 같다.

14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아 8:14)

I. 신부는 ‘새 예루살렘’을 ‘향기로운 산들’로 묘사한다.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뛰어난 향기” (아 1:12; 4:10, 14)를 지닌 백합화(아 2:1)며, 주님의 교회 전체는 “향기로운 동산”이다(아 4:16, 5:1,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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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호와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2-23....*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2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여호와의 손이 짦으냐]....민 11 :23-32.... *2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24. 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알리고 백성의 장로 칠십 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2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26. 그 기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영에서 예언한지라 *27.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  *28.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0.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진중으로 돌아왔더라  *31.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32.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네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1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무궁한 하나님이라]...출34"5-7...*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나를 알라 잠잠한 중에, 네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46...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5.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6.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여호외를 기뻐함이 너희의 힘이라]...느8:10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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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11:1-7] ==지혜[슬기]로운 삶

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 너는 이윤을 남길 것이다.....Cast your bread on the surface of the waters, for you will find it after many days.///Cast your bread on the surface of the waters, [be diligently active, make thoughtful decisions], for you will [a]find it after many days. 

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이 세상에서 네가 무슨 재난을 만날지 모르니, 투자할 때에는 일곱이나 여덟로 나누어 하여라....Divide your portion to seven, or even to eight, for you do not know what misfortune may occur on the earth./// Give a portion to seven, or even [divide it] to eight, for you do not know what misfortune may occur on the earth.

3.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구름에 물이 가득 차면, 비가 되어서 땅 위로 쏟아지는 법. 나무가 남쪽으로나 북쪽으로 쓰러지면, 어느 쪽으로 쓰러지든지, 쓰러진 그 곳에 그대로 있는 법....If the clouds are full, they pour out rain upon the earth; and whether a tree falls toward the south or toward the north, wherever the tree falls, there it lies.///If the clouds are full [of rain], they empty themselves on the earth; and if a tree falls toward the south or toward the north, in the place where the tree falls, there it lies.

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He who watches the wind will not sow and he who looks at the clouds will not reap.///He who watches the wind [waiting for all conditions to be perfect] will not sow [seed], and he who looks at the clouds will not reap [a harvest].

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바람이 다니는 길을 네가 모르듯이 임신한 여인의 태에서 아이의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네가 알 수 없듯이, 만물의 창조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너는 알지 못한다....Just as you do not know the path of the wind and how bones [are formed] in the womb of the pregnant woman, so you do not know the activity of God who makes all things.///Just as you do not know the way and path of the wind or how the bones are formed in the womb of a pregnant woman, even so you do not know the activity of God who makes all things.

6.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부지런히 일하여라. 어떤 것이 잘 될지, 이것이 잘 될지 저것이 잘 될지, 아니면 둘 다 잘 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Sow your seed in the morning, and do not be idle in the evening, for you do not know whether morning or evening sowing will succeed, or whether both of them alike will be good.///Sow your seed in the morning and do not be idle with your hands in the evening, for you do not know whether morning or evening planting will succeed, whether this or that, or whether both alike will be good.

7.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빛을 보고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해를 보고 산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The light is pleasant, and [it is] good for the eyes to see the sun.

8.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오래 사는 사람은 그 모든 날을 즐겁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두운 날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다가올 모든 것은 다 헛되다....Indeed, if a man should live many years, let him rejoice in them all, and let him remember the days of darkness, for they shall be many. Everything that is to come [will be] futility.///The light is sweet and pleasant, and it is good for the eyes to see the sun. 8 Yes, if a man should live many years, let him rejoice in them all; yet let him remember the days of darkness, for they will be many. All that is to come will be futility.

===젊은이에게 주는 교훈

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젊은이여,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네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라라. 다만, 네가 하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만은 알아라....Rejoice, young man, during your childhood, and let your heart be pleasant during the days of young manhood. And follow the impulses of your heart and the desires of your eyes. Yet know that God will bring you to judgment for all these things.///Rejoice, young man, in your childhood, and let your heart be pleasant in the days of your young manhood. And walk in the ways of your heart and in the desires of your eyes, but know that God will bring you into judgment for all these things. 

10.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네 마음의 걱정과 육체의 고통을 없애라. 혈기왕성한 청춘은 덧없이 지나가기 때문이다....So, remove vexation from your heart and put away pain from your body, because childhood and the prime of life are fleeting.///Therefore, remove sorrow and anger from your heart and put away pain from your body, for childhood and the prime of life are fle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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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함에 대한 의무(전 11:1-6)

솔로몬은 본서에서 부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재물이 주는 위로를 누리라고 이따금씩 강조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부자들에게 저희 부로써 타인들에게 선을 베풀며, 가난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주도록 하라고 강조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그것이 그들의 유익을 풍부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Ⅰ. 의무 그 자체가 우리에게 어떤 모양으로 권장되고 있는지 살펴보자(1절).

1. "너는 네 식물(떡)을 물 위에 던지라." 이것을 "너는 너의 떡  만드는 데 쓸 곡식을 낮은 장소에 던지라"고 해석하는 자들도 있다. 

이때 "너"는 농부를 암시한다. 즉 농부는 "나가서 귀중한 씨앗을 거두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자기 식구들이 먹을 곡식을 절약하여 파종할 종자도 남긴다. 이것은 그가 다음 해에 종자가 없으면 결실을 얻지 못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자비심 많은 사람은 곡식 종자를 위해 자기 식용 곡식에서 얼마를 떼는 것과 같이 자신의 허리를 줄여서 가난한 자에게 공급해 준다. 

이는 그가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기"위함이니(사 32:20), 그는 심는 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갈 6:7). 

우리는 "강의 수확"에 대해 알고 있다(사 23:3). 성서에서는 하수가 다수를 표현하며(계 16:5) 그와 같이 세상에는 가난한 자들이 무수하게 있다(자비를 베풀 대상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아니다).

물은 또한 슬퍼하는 자들을 상징한다. 가난한 자들은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식물”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좋은 말씀뿐만 아니라 “좋은 물건”도 주어야 한다(사 58:7). 

그러나 "네" 식물(떡)은 정직하게 얻은 것이라야 한다. 우리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것을 주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해를 입히는 것이다. 

먼저 "의롭게 행하라." 그리고 나서 "자비를 사랑하라." "

네가 자신을 위해 예정했던 너의 빵"을 욥이 그러했던 것처럼(욥 31:17),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어 먹도록 하여라. 

설사 네 빵이 물 위에 던진 것이 없어지듯, 없어지는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가난한 자에게 거저 주라. 

해로로 무역하는 상인들과 같이 모험 삼아 네 빵을 물에 던저 항해 시켜 보아라. 투기(모험)로 그것을 떠내려 보내라. “물에게” 그것을 맡겨라. 그것은 절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한 몫을 나눠 주라. 즉 자선하는 일에 관대하고 아끼지 말아라."

(1) "줄 것이 많거든 많이 주어라. 소량이 아닌 한 몫을 주며, 한 입이나 두 모금이 아닌 한 그릇, 일 인분의 식사를 주라. 쥐꼬리만큼 주지 말고 큰 덩이를 떼 주라. 말을 후히 되어 주라(눅 6:38). 잔칫날에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 자들에게 몫을, 가치 있는 몫을 나누어 준 자와 같이(느 8:10) 주는 데 아끼지 말아라."

(2) "많은 자들에게 즉 일곱, 또한 여덟에게 주라." 

네가 만약 자비의 대상을 일곱 사람 만나거든 그들 모두에게 나눠 주라. 그리고 나서 네가 여덟 번째 사람을 만나더라도 또 그에게 주라. 그리고 또 여덟 사람을 더 만나더라도 그 여덟 명 모두에게도 주어라. 

네가 이제까지 행한 선행을 앞으로 행해야 할 더 많은 선에 대한 변명과 구실로 삼지 말고, 계속 선을 행하여라. 가난한 자의 수효가 증가하는 곤란한 때에는 네 자비심도 그에 비례하여 확대시켜라." 

우리 모두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나 우리 모두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는 풍부하시다. 그는 "마음껏 주시며" 이전에 주신 선물을 가지고 "꾸짖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천부께서 그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와야 한다.

Ⅱ. 이것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이유.

1. 선행에 대해 우리가 받을 보상은 매우 확실하다.

"네가 그것을 물 위에 던질 때 그것은 없어지는 것같다. 너는 네가 그것을 던지면서 좋은 말을 보내지만, 다시는 그것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많은 날이 지난 후에 그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는 농부가 그 풍요로운 수확에서 씨앗을 발견하게 되며, 상인이 풍부한 재물을 싣고 귀항하는 배에서 자기 모험을 찾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망실된 것이 아니라 잘 투자되어 있고 잘 저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에는 풍부한 이자를 덧붙여서 돌아 오는데, 이는 하나님의 섭리가 베푸시는 현재의 선물과 은혜와 그의 성령이 주시는 위로인 것이다. 원금은 더욱 떼일 염려가 없으니 그것이 천국에 저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호와께 빌려준 것이 된다.

이방인 세네카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즉 내가 주어 버린 것 만큼 완전하게 소유하는 것은 없다...즉 나는 내가 나누어 준 것은 무엇이든지 다 소유하고 있다. 

"이 부요한 재물은 인생의 모든 영고성쇠를 통해 항상 나와 함께 남아 있다." 

"너는 그것을 찾으리라. 아마 신속히 찾지는 못할 터이나 여러 날 후에는 찾을 것이다. 보상은 더디게 올 것이지만 그것은 확실히 오며, 그 보상은 더 더욱 풍성할 것이다." 

가장 가치있는 곡식이라고 하는 밀은 땅 속에 가장 오래 묻혀 있다. 오랜 항해는 가장 훌륭한 귀항을 가져오는 것이다.

2. 우리가 선행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불확실하다. 

"너는 어떤 재앙이 땅 위에 임할지 알지 못한다. 이 재앙은 네게서 재산을 박탈해 갈지도 모르며, 선을 행할 수 있는 너의 능력을 박탈해 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네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에 마음껏 선을 행하며 현재의 시기를 활용하여라. 농부는 서리가 오기 전에 그의 땅에 씨를 뿌리는 법이다."

우리는 "재앙이 땅 위에 임할 것"이라고 예상할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고난을 당하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무슨 재앙이 있을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그 재앙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가 그것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형통한 날이 선한 중에 있으며, 선을 행하고 있음은 우리의 지혜이다. 이 말씀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는 일에 대한 반론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는 그들이 스스로 궁핍하게 되는 어려운 시기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어려운 시기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자선심을 가져야 한다. 즉 "재앙의 날이 오더라도" 능력이 있을 때 선을 행했었다는 데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에게서 자비를 구할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긍휼을 보여야 한다. 우리가 자비심에 의해 우리의 소유물을 하나님께 신탁해 둔다면, 그것은 어떤 악화된 시기에 대하여 그 소유를 믿을 만한 손에 두는 것이다.

Ⅲ. 이 의무에 대해 야기되는 반대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자의 변명을 그가 어떻게 제거하는지 살펴보자.

1. 어떤 자는 그들이 가진 것은 그들 자신의 소유이며, 그들 자신에게 소용되는 일을 위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왜 우리가 그것을 이 처럼 물 위에 던져야 한단 말인가?" 어째서 "내 떡과 고기를 취하여 내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 하는 자에게 주어야 한단 말인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나발도 그렇게 항변하였다(삼상 25:11). "인간이여 위를 보아라. 그리고 생각하라. 만약 네 머리 위의 구름이 물을 자기들의 소유물이라고 주장한다면, 너는 불모의 대지 위에서 금방 굶어 죽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네가 보듯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그들은 대지로 하여금 열매 맺게 하기 위하여, 물 뿌리는 것으로 지치고 다 소모될 때까지 땅에 쏟아지는 것이다"(욥 37:11). 

이와 같이 하늘은 그토록 까마득한 아래에 있는 땅에게도 풍성하게 혜택을 내리는데, 너는 "네 뼈중의 뼈"인 너의 가난한 형제에게 혜택주는 일을 아까와 하려느냐?

혹은 이렇게 말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비록 가난한 자에게 조금밖에 주지 못할망정, 우리는 감사하게도 어느 누구 못지 않은 자비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만일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그들은 스스로를 비운다"고 말한다. 만일 심중에 자비심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약 2:15, 16). "자기 영혼을 배고픈 이에게 빼내어 주는 자"는 능력이 있는데도, 굶주린 자들에게 자기 손을 내어 밀 것이다.

2. 어떤이는 자기들의 유용성의 한계가 낮고도 좁다고 말할 것이다.

타인들이 선을 행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공적인 입장에 있으므로 선을 행할 수 있으나 자기와 같은 신분은 선을 행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앉아서 보기만 할 뿐 아무 것도 행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솔로몬은 "나무가 쓰러진 곳에(우연히 쓰러졌다고 해도) 그대로 있는 것은" 그 나무 임자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즉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가 자기를 던져 준 곳이면 그곳이 어디가 되든 그 장소가 복되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행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행할 만한 좋은 일을 언제든지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자는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신이 자선을 받아야 할 변변찮은 자라고 자처하는 이가 너무 많아서, 나는 누구에게 자선을 베풀어야 마땅한지 알지 못한다." 

이에 대해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이른다. "그 일에 대해서는 곤란해 할 것 없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분별해서 주어라. 그리고 나서는 비록 그 사람이 네 자선을 받을 만큼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판명되더라도 네가 정직한 마음으로 자선을 베푼다면 결코 그 보상을 잃지 않으리라는 것에 만족하여라. 네 자선이 "남이든 북이든" 어느 쪽을 향해 행해지든 간에 너는 그 자선이 가져오는 이익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흔히 죽음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고, 좋은 나무와 같이 "의로움의 열매를 맺자." 이는 죽음이 곧 임해서 우리를 찍어 넘어뜨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육신이 행한 것을 따라 행, 불행이 결정되어 변하지 않는 상태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나무가 죽으면 쓰러지듯이, 몸도 죽으면 영원토록 누워있게 될 것이다.

3. 혹자는 자선을 행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실망을 들어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그들은 자선을 행함으로 해서 교만하다거나 바리새적이란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줄 것이 거의 없어서 타인들과 같이 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없신여김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궁핍하게 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자녀들을 위해 저축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납부해야 할 세금이 있고 구입해야 할 물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자비심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알지 못하며 자선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변명들과 그외 수백 가지의 유사한 반대에 대해 솔로몬은 단 한 마디로 대답하고 있다(4절). "풍세를 살펴 보는 자는 파종하지 않을 것이요(이 말은 선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름을 바라 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이것은 선한 것을 얻음을 뜻한다).

우리가 모든 사소한 어려움을 크게 받아 들이고, 하찮은 문제를 큰 일이나 난 듯 떠들어대면서 이의를 달기 시작하고,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곤란과 위험을 상상하려 든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결코 우리 일을 추진할 수 없을 것이며, 더우기 우리 일을 완성 시킨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고 그 일에서 아무 것도 이루어낼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농부가 떠다니는 구름에 일일이 얽매어 파종하기를 거절하거나 그만두어 버리며 세차게 부는 모든 바람 때문에 거두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 해에 흉작밖에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신앙 생활에서 우리가 해야할 의무는 씨 뿌리는 일이나 거두는 일처럼 필수적인 것이며, 그 농사 행위 만치 우리에게 유익한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의무들을 수행하면서 부딪치게 되는 방해하는 바람이나 구름과 같아서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도 못할 것이며, 조그만 용기와 결심만 가진 자라면 이를 개의하지 않고 쉽사리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작은 어려움 때문에 크고도 실질적인 의무를 포기하거나 그 의무에서 물러서는 자들은 신앙 생활상의 어떤 일도 결코 성사시키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최소한 우리의 상상 속에서라도 우리를 낙심케 하는 바람이 언제나 일어날 것이며 이런 저런 구름이 항상 피어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과 구름도 하나님의 수중에 들어 있으며, 그들은 우리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어려움을 참는 것이 우리 의무라고 한다.

4. 혹자는 이렇게도 말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자선에서 소비한 비용이 어떤 모습으로든지 보상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점점 더 부자가 되지도 못한다. 만약 우리가 자선의 효험을 기대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어째서 우리는 자비로운 자에게 축복이 내릴 것이라고 하는 일반적인 약속에 의존해야 하는가?" 

이런 반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 하며 네가 그것을 안다는 것도 합당치가 못하다. 너는 비록 그가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약속을 지킬실지 네게 일러 주시지 않고, 꿰뚫어 볼 수 없는 지혜의 계획대로 역사하시며 자기 혼자만의 방법으로 일하신다고 하더라도, 그가 자기의 약속 말씀은 실행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일하실 것이고,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축복은 서서히 올 것이지만 꼭 올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그것을 알든 모르든 간에 틀림없이 그의 말씀대로 행해질 것이다." 그는 두 가지 사례로 하나님의 일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지적하고 있다.

(1) 우리는 "성령의 길이 어떠한지(어떤 사본은 "바람의 길이 어떠한지"로 되어 있다)알지 못하며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며, 어디로 가는지," 언제 그것이 돌아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뱃 사람은 바람이 순풍으로 바뀔 때까지 준비하고 기다린다. 그와 같이 우리도 축복이 예정된 그 시간을 기대하면서 우리 의무를 행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혹은 이 말씀을 인간의 영혼에 대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으며 우리의 영혼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영혼들이 어떻게 육체 속으로 들어가서 몸과 연합하고, 그 몸에 어떤 방법으로 활기를 부여하며 작용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영혼 그 자체는 신비이다. 즉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 보다 더 경이로운 것은 없는 것이다.

(2) 우리는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신체가 형성되는 모습이나, 신체에 영혼이 불어 넣어진 방법을 기술할 수가 없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이 두 가지는 다 "하나님의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일에 묵묵히 따르기는 하나 양자 중 어느 것도 그 작용 과정을 추적할 수는 없다. 우리는 비록 태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는 알지 못하나 밴 아이가 태어난다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비록 여러 가지 일들이 약속의 성취를 향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약속이 이행된다는 사실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걱정과 불안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편한 것을 제공해 주시며, 우리의 자선에 대해 보상해 주시리라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이는 우리 몸이 신비스럽도록 기묘하게 작용하며 우리 영혼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어떤 지식이나 예고가 없이도 가능한 까닭이다. 

그래서 논증은 동일한 데로 귀결되며 우리의 구주가 말씀하신 의도와 동일하게 주장한다(마 6:25).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산 영혼, 곧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작은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보다 큰 일을 행하신 자에게 즐거이 의존해야 한다.

5.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지껏 자비심을 발휘해 왔고, 가난한 자들에게 아주 많은 것을 주어왔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어떤 보답도 받아 보지 못했다. 많은 시일이 경과했으나 우리는 그것을 다시는 찾지 못 하였다."

이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6절). "그렇더라도 너희는 계속하여 자선을 베풀며 꿋꿋하고 꾸준하게 선행을 하여라. 어떤 기회도 빠뜨리지 말고 착한 일을 행하여라." 

"아침에" 즉 일찍이 눈에 띄는 자선의 대상들에게 "너는 네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네가 피로하다는 구실로 "네 손을 거두지 말아라," 

기회가 있는 대로 많은 선을 계속 행하며, 농부가 아침부터 밤까지 밭고랑을 일듯 하루 온종일 자선을 베풀어라.

청춘의 "아침 나절에는" 선을 행하는 데 자신을 바쳐라. 이 세상에 첫 발을 딛고 출발할 때, 너는 네가 가진 것이 적을지라도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노년의 "저녁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 곧 인색의 유혹에 지지 말아라. 

인생의 황혼기에라도 "네 손을 거두지 말며," 유언서에서 자선을 베풀 것이라는 작정 아래 지금은 자선 행위를 안해도 된다고 생각지 말고 끝까지 선을 행하여라.

"왜냐하면 너는" 타인들과 네자신에게 자선과 경건의 일 중 어느 것이 "잘 될지 알지 못할뿐더러, 둘 다가 같이 잘 되기를" 바랄 만한 이유도 가지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기에 피곤해 하지 말라. 이는 때가 이르면 너희가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는 하나님의 때인 동시에 가장 좋은 때이다"(갈 6:9). 이것은 영적 자선을 말한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타인들의 영혼에 유익을 주기 위해 기울이는 경건한 노력을 의미한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행을 계속해야 한다. 

비록 오랫동안 헛수고를 하였어도 결국은 성공을 보고야 말 것이다. 사역자들은 저희 씨뿌림의 날에 아침 저녁으로 씨를 뿌려야 할 것이다. "어느 것이 잘 될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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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에 대한 경고(전 11:7-10)

여기에는 늙은이들과 청년들 모두는 죽을 것을 생각하고 그에 대비하도록 하라는 훈계의 말씀이 나온다. 

전도자는 이제까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많은 훌륭한 교훈으로써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는데, 이제 자기 담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우리에게 잘 죽을 수 있는 방법과 우리의 종국을 염두에 둘 것을 가르치게 된다.

Ⅰ. 그는 부로(父老)격인 노년층에게 눈길을 돌리고, 그들에게 이글을 써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깨우쳐 주고 있다(7, 8).

1. 인생의 감미로움에 대한 합리적 양보. 노인들은 경험에 의해서 인생에 즐거운 단면이 있음을 아는데 그는 이에 수긍하고 있다.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태양" 광선이 그러하며,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로다." 빛은 이 큰 세계의 창조시 제일 먼저 만들어진 것이며, 눈은 소 세계인 육신의 창조에서 맨먼저 만들어진 것 중 하나다.

빛을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이방인들은 그 즐거움에 너무나 매혹되어서 태양을 숭배하기까지 했다. 또한 그 빛으로 말미암아 딴 사물을 보게 되고, 이 세계가 우리에게 주는 무수한 유쾌한 광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생명의 빛도 그러하다. 빛은 생명을 상징한다(욥 3:20, 23). 생명이 즐거운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악인들에게 있어서 조차 생명이 감미로운 것이니, 그들도 "이 생에서 저희 몫"을 가지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들에게 생명이 즐거운 것은 그들이 보다 나은 생명에 대한 준비 기간으로써 이 생명을 소유하는 까닭이다. 생명은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것이다. 자연도 그렇게 말하며 여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 죽음이 현세의 악에 대한 종지부나 미래의 선에 대한 관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죽음 그 자체를 바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죽음은 공포의 대상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즐거운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생을 너무 사랑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자신에 대한 경비를 배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인생의 한창 시절에 조차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보며, 생이 매우 감미롭고 우리가 죽음을 아주 망각하기 쉬운 때에도 생명에 대한 생각을 하라는 경고. "설령 사람이 많은 해를 산다고 하더라도 그는" 다가오고 있는 "어두움의 날을 생각할지어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여름 낮은 즐길 수 있는 날로 생각된다. 즉 인생은 오래 오래 계속되며 많은 해를 살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생은 안락한 것이 될 수 있고 사람은 "그 모든 해를 기뻐"할 수도 있다. 

이 세상에는 "많은 해를 사는"자들이 있다. 그들은 많은 위기를 모면하고 구사일생의 많은 자비로운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낙도 자기들에게 부족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해도 자기들에게는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한다. 그래서 그들은 꼬리가 길어도 밟히지 않을 것이며, 그토록 빈번하게 우물에 가도 하나도 상하지 않고 안전하던 쪽박은 결코 깨지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 올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많은 해를 살면서 그 모든 세월을 하나같이 기뻐할 자"가 그 누구이냐? 슬프게도 그런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단 몇 시간의 기쁨을 가질 뿐이지만 슬픔의 시간은 달포가 넘는다. 그러나 어떤 자는 자기들이 누리는 세월 즉 많은 해를 딴 사람들보다 더 기뻐하는 것이다. 만약 순풍에 돛을 단 것같이 형통하는 상태와 즐거워하는 심령, 이 두가지가 구비된다면, 한 인간이 그 모든 세월을 능히 즐거워하도록 하는 데에 참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형통하는 상태라 하더라도 그 안에 불순물이 섞여 있기 마련이고, 가장 쾌활한 마음에도 실망의 그림자는 끼여 있다. 희희낙낙하는 죄인들에게도 우울하면서 꺼림직한 가책이 있고, 명랑한 성도들에게도 은혜로운 슬픔이 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여러 해를 살고 그 모든 세월을 늘 즐거워한다는" 것은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며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2) 이 여름낮이 지나면 겨울 밤이 오리라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이 건장한 노인은 "캄캄한 날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날들은 많은 것이기 때문이다."

1) 캄캄한 날들이 오고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무덤에 눕는 날들이다. 거기에서는 우리 몸이 어두움 속에 누워있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는 눈이 보지 못하며 태양이 빛나지 않는다. 죽음의 암흑은 생명의 빛에 대적(對敵)된다. 음부는 "흑암의 땅"이다(욥 10:21).

2) 그 "캄캄한 날들은 많을" 것이다.

우리가 지하에 누워 있는 날들은 우리가 지상에서 살아 있는 날들보다 많을 것이다. 그 어둠의 날들은 많기는 하나 무한하지는 않다. 

비록 그 캄캄한 날들은 많을지라도 그 날은 헤아린 바 되었으며, "하늘이 더 이상 있지 아니 하는" 때면 끝이 날 것이다(욥 14:12). 가장 긴 낮도 밤이 있는 법이며, 가장 긴 밤이라도 그 새벽은 오는 법이다.

3) 우리가 자만으로 우쭐대고 세상의 안전 속에서 잠자거나, 헛된 환락으로 인해 방탕 생활에 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종종 그 "캄캄한 날들을" 기억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

4) 생이 오래 계속되고 많은 위안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캄캄한 날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날들은 반드시 올 것이며, 만약 우리가 미리 그 날을 생각해 본다면 그 날이 올 때에 우리의 두려움은 훨씬 덜 할 것이기 때문이다.

Ⅱ. 그는 또한 자녀와 같은 청년층에게 눈을 돌리고, 그들에게 이 글을 써서 죽음을 생각해 보도록 깨우쳐 준다(9, 10).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아이러니칼하게도 청춘의 허영과 쾌락을 용인하고 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 하라." 혹자는 이것을 무신론자와 쾌락주의자가 청년에게 주는 권고요 독약과 같은 제안이며, 솔로몬은 이 절의 끝부분에서 이 맹독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를 처방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흔히 이해되는 바와 같이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에게 한 말이나("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임이니라"), 미가야가 아합 왕에게 한 말이나("라못 길르앗으로 올라 가소서. 그리하면 승리하리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처럼("이제는 자라") 이 부분을 반어법으로 해석한다면, 이 말은 더욱 강조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이들아! 네 청춘을 기뻐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라. 네 유희를 쫓고 네 쾌락을 취하라.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고, 청춘의 공상과 헛된 희망으로 네 가슴을 부풀케 하라. 너의 즐거운 꿈으로 자신을 흥겹게 하라. 네 마음이 원하는 길로 행하라. 네가 할 마음이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다 해봐라. 그리고 육욕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일이면 서슴치 말고 해보아라. t━즉 네 의지를 네 법으로 삼아라. 네 마음의 길로 행하라. 그리고 네 마음으로 하여금 네 눈을 따라 걷게 하라. 산만하고 한가한 마음은 배회하는 눈을 좇아간다. 네 눈에 즐거운 것이면 그것이 하나님의 눈에 드는 것이든 들지 않는 것이든 간에 행하여라."

솔로몬이 청년들에게 이처럼 반어적으로 말하는 것은 다음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1) 이와 같은 일은 그가 과거에는 행하고 싶어하던 일이었고 행해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으면 하고 무척이나 탐내던 일이었으며, 자기 행복의 기준을 두었고 자기 마음을 두었던 일이었다.

(2) 그는 자기 주변의 모든 자가 이런 권고를 해 주고, 이와같이 멋있는 일들을 예언해 주었으면 하고 바랬었다. 그는 이에 상반되는 어떤 충고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며, 자기더러 건실하고 진실하라는 권고를 하는 자는 원수로 간주했을 것이다.

(3) 이런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었으며, 육욕에 빠진 그릇된 인생 여정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본문에 나온 이야기는 만약 사리를 전체적으로 보고 공평하게 판단한다면, 그런 삶을 영위하는 것이 이성에 얼마나 배치된 행위인가 하는 것을 단 번에 알 수 있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쾌락주의적 주장의 벽두부터 이런 결론은 충분히 나오는 것이며 이론의 여지가 없다.

(4) 만약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인생 향락에 탐닉한다면, 설사 하나님께서 그들을 육욕대로 살게 내버려 두시며, 그들의 마음의 욕망에 그들을 송두리째 내어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의사대로 행하도록"(호 4:7) 하신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것을 말해 준다.

2. 이런 헛된 일들과 쾌락에 대해 강력히 견제하고 있다. "너는 이 모든 일로 인하여 하나님이 너를 심판하실 줄로 알라. 이 사실을 충분히 참작하라. 그러고도 만일 네가 할 수 있다면, 감히 할수만 있다면 그런 호사스런 생활을 영위하여라."

이것은 앞에서 양보하고 용인하는 것처럼 말했던 것에 대한 콜라스테리온(kolasthrion), 즉 교정물(矯正物)이며, 청년의 욕망의 목에 걸어둔 고삐를 세차게 잡아 당기는 말씀이다. "그러나 만일 네가 이와 같은 자유, 아니 방종을 취한다면, 그것은 너의 영원한 파멸이 되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라. 하나님께서는 그런 행위를 벌하지 않고 지나치시지는 않으시며 너는 그런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것에 주목해야 한다.

(1) 장차 심판이 올 것이다.

(2) 지금은 우리가 아무리 그 혹독한 날을 우리로부터 멀리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누구든지 모두 심판에 회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

(3) 그 날에는 우리의 모든 육체적 환락과 감각적 쾌락에 대해 우리는 추궁받게 될 것이다.

(4) 이 점을 알고 명심하는 것이 모든 자에게 유익하며 특히 청년들에게 유익하다. 이는 그들이 청춘의 욕망에 방종함으로써 어린 양에 대한 진노, 곧 "저 진노하심의 날에 대비해서 자신들에게 노를 쌓아두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3. 이 모든 사실에서 경고와 훈계의 말씀이 유도된다(10절). 젊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서 자기 영혼과 육체, 마음과 신체를 모두 잘 관리해야 한다.

(1) 청춘 남녀는 그들의 마음이 자만심으로 우쭐대거나, 노여움이나 어떤 죄스러운 격정으로 동요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네 마음으로부터 근심"이나 분노를 "떠나게 하라." 이 말(슬픔, 혹은 근심, 분노)은 마음의 혼란과 동요를 의미한다. 젊은 사람들은 억제와 단속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기들의 자존심을 꺾거나 굴욕을 주는 일이라면 화를 내고 초조해 하기 쉽다. 청년의 도도한 마음은 자기들을 방해하고 반박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딛고 올라 서려 한다. 그들은 감각을 유쾌하게 하는 것에는 너무나 애착심을 갖기 때문에 불쾌하게 하는 것은 참지 못하며,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 근심을 동반해 오기까지 한다. 저들의 자존심은 흔히 그들을 동요시키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 점을 떼내어 버리고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제거해 버려라. 그리고 피조물에 대한 네 기대를 낮게 두라. 그러면 너를 실망시키는 일들 때문에 슬픔(근심)을 느끼거나 분노를 경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근심이란 말을 9절에 나오는 육체적 환락과 동일하게 해석하는데, 환락의 끝은 쓰라린 괴로움과 슬픔이기 때문이다. 슬픔을 반사할 모든 일로부터 청년은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2) 그들은 무절제와 불결, 혹은 그 외의 어떤 육체적 욕망에 의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이 네 몸에서 떠나게 하며, 네 몸의 지체들로 하여금 불의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라.

죄의 폐해는 형벌을 수반하는 폐해이다.

육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육체에 유익한 것이라고 좋아하는 것도 폐해로 판명될 것이며 해로운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네게서 그것을 멀리 하여라. 그 악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좋은 것이다.

Ⅲ. 전도자는 노년층에게나 청년층에게 자기의 훈계를 역설하기 위한 효과적인 논거(論據)로써 자기 담화 중 대전제가 되는 것을 등장시키는데, 그것은 곧 현존하는 모든 것은 헛되다고 하는 것과 불확실하고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1. 그는 노인층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8절).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 "사람이 많은 해를 살며 그 모든 해를 항상 즐거워할"지라도 "장래 일은 다 헛되다." 

사람들이 그 마지막 장면에서 무엇을 학수고대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지난 모든 일과 장차 올 모든 것은 전부가 "헛되다." 이미 있었던 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차 되어질 일도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헛된 것" 이다. 그것들은 최상의 상태에 있을 때일지라도 전혀 "헛된" 것이다.

2. 그는 젊은층에게도 이 사실에 대해 상기시켜 주고 있다.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어린 아이의 기질과 청년의 행동에는 아주 많은 주제넘음과 비행과 죄스런 허영이 깃들이 있는데, 젊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경계하고 이를 교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소년기와 청년기의 즐거움이나 잇점도 결국 어떤 확실성이나 만족도 갖지 못하며 영속성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즐거움은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꽃들은 꼭 시들게 되고 꽃송이는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꽃들은 좋은 열매를 맺어서 그것이 오래 계속되고 중요한 가치를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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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28:23-29]==여호와의 모략(=경략)과 지혜

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너희는 귀를 기울여서,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주의 깊게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Give ear and hear my voice, Listen and hear my words.///Listen and hear my voice; Listen carefully and hear my words.

24.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씨를 뿌리려고 밭을 가는 농부가, 날마다 밭만 갈고 있겠느냐? 흙을 뒤집고 써레질만 하겠느냐?....Does the farmer plow continually to plant seed? Does he [continually] turn and harrow the ground?///Does the farmer plow all day to plant seed? Does he continually dig furrows and harrow his ground [after it is prepared]?

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밭을 고르고 나면, 소회향 씨를 뿌리거나 대회향 씨를 뿌리지 않겠느냐? 밀을 줄줄이 심고, 적당한 자리에 보리를 심지 않겠느냐? 밭 가장자리에는 귀리도 심지 않겠느냐?...Does he not level its surface, And sow dill and scatter cummin, And plant wheat in rows, Barley in its place, and rye within its area?///When he has leveled its surface, Does he not sow [the seed of] dill and scatter cumin, And plant wheat in rows, And barley in its [intended] place and [c]rye within its border?

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농부에게 밭농사를 이렇게 짓도록 일러주시고 가르쳐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For his God instructs and teaches him properly.///For his God instructs [him correctly] and teaches him properly.

27.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소회향을 도리깨로 쳐서 떨지 않는다. 대회향 위로는 수레바퀴를 굴리지 않는다. 소회향은 작대기로 가볍게 두드려서 떨고, 대회향도 막대기로 가볍게 두드려서 떤다....For dill is not threshed with a threshing sledge, Nor is the cartwheel driven over cummin; But dill is beaten out with a rod, and cummin with a club.///For dill is not threshed with a sharp threshing sledge, Nor is a cartwheel rolled over cumin; But dill is beaten out with a staff, and cumin with a rod.

28.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 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사람이 곡식을 떨지만, 낟알이 바스러지도록 떨지는 않는다. 수레바퀴를 곡식 위에 굴릴 때에도, 말발굽이 그것을 으깨지는 않는다....[Grain for] bread is crushed, Indeed, he does not continue to thresh it forever. Because the wheel of [his] cart and his horses [eventually] damage [it,] He does not thresh it longer.///Bread grain is crushed fine, Indeed, the farmer does not continue to thresh it forever. Because the wheel of his cart and his horses eventually damage it, He does not thresh it longer.

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이것도 만군의 주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주님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끝없이 넓다....This also comes from the LORD of hosts, [Who] has made [His] counsel wonderful and [His] wisdom great. ///This also comes from the Lord of hosts, Who has made His counsel wonderful and His wisdom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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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작 솜씨(사 28:23-29)
이 비유는 (우리 구주의 여러 가지 비유와 마찬가지로) 농부의 천직에서 빌어온 것으로서, 그 앞에는 "들을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듣고 깨달을지어다라는 주의 집중을 요하는 엄숙한 서언이 제시되고 있다(23절).
Ⅰ. 여기에 나오는 비유 자체는 매우 평이하다. 즉 농부는 secundumartem - 즉 규정대로 매우 수고하면서 신중하게 그의 천직에 전념하며, 자기 판단이 지시하는 대로 일의 방법과 순서를 따르게 된다.
1. 밭 갈고 씨뿌리는 일에 있어서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끊이지 않고 갈겠느냐?" 
그렇다 그는 그렇게 한다. 그는 "소망을 가지고 밭을 갈며 소망을 가지고 파종한다" (고전 9:10). 
그가 "그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 하겠느냐? 그렇다. 그는 그 땅이 씨 뿌리기에 알맞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 
그리고 그가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씨를, 토질에 알맞는 씨를 뿌리지 않겠느냐? 왜냐하면 농부는 진흙 땅에는 어떤 곡식이 알맞고, 모래 땅에는 어떤 곡식이 알맞는 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각 씨를 제 장소에 - (난외에 있는 것처럼) "소맥을 주요한 장소에 심으며" (왜냐하면 그것은 주요 곡물이었고, 가나안의 주요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겔 27:17) "대맥을 정한 곳에 심는다." 자연의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은, 이 속에서 즉 그의 피조물에게 다양한 선물을 은혜롭게 주시려고 그 산물들이 각기 다양한 토양에 잘 적응하도록 하신 일 속에서 관찰할 수 있다.
2. 타작하는 일에서(27, 28절), 
농부는 곡식을 타작하는 일도 할당해 놓는다. "소회향과 대회향" 은 그 껍질이나 이삭에게 쉽게 빠져 나오기 때문에 "작대기와 막대기" 로 떨어버리기만 해도 된다. 
그러나 "곡식" 에는 더 큰 힘이 요구되기 때문에, 그것을 "도리깨" 로 떨어낸다. 그 위를 왔다갔다 하는 쇠를 단 망치가 그 곡식을 떨어낸다. 
그러나 그는 곡식의 겨를 흩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기간보다 이상으로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 땅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거나" 으깨지는 "아니한다." 그것을 가는 일은 또 다른 작용에 의한다.
그런데, 돈을 벌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도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썩는 양식" 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을 위해 더욱 더 수고하기를 마다하겠는가? 
"곡식은 부수어진다." 그리스도도 그러하셨다. "여호와께서는" 그가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 "그가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셨다" (53:10).
Ⅱ. 그러나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대부분의 해설자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심판에 도전하는 자들이 앞으로 받을 보응으로 보고 있다. 
"농부가 항상 밭을 갈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는 씨를 뿌리는 것처럼, 하나님도 항상 경고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는 그 경고를 실행에 옮기시고, 죄인들에게 온당한 심판을 내리시리라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알게 하라. 
그러나 그는 그들이 멸망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에 의해 개심하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지혜를 가지고 그들의 힘에 알맞게 행하실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이 비유를 해설하는 데 있어서 그 범위를 더욱 확대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1.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 농부에게 이러한 지혜를 주신 하나님 자신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무한히 지혜로우시다. 
"농부에게 적당한 방법(분발력)을 가르치신" 분은 바로 그의 하나님이시다(26절). 
농부들에게는 자기의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지각이 필요하다. 그들이 어느 정도 자기들의 행사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들은 관찰과 경험에 의해 농사에 대한 지식을 증진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왕 자신도 밭의 소산을 먹고 살기" 때문에, 농사의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은 대부분의 다른 기술을 함양시키는 것보다 더욱 인류 공통에게 도움을 준다. 
농부의 기술은, 훌륭하고 온전한 각 은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벌을 내리사 사람으로 하여금 땅을 경작하게 하시면서, 인간에게 땅을 아주 잘 경작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는 사실은 그 언도된 형에 대한 무게와 두려움을 어느 정도 경감시켜 준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은 매우 어리석은 가운데 영원히 "바다의 모래를 갈고 있을지" 모르나, 그 수고는 헛되이 돌아갔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과 그 일을 할 마음, 그리고 그 속에 즐거움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들이(농부의 지파, 잇사갈처럼) 섭리에 의해서 농업을 위해 구별되고, 그러면서 비록 수고하고 근심하나 그들이 자기들의 장막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 없었다면, 우리들에게는 생명을 부지할 것이 부족되었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이 일이나 다른 일들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더욱 지각이 있고 현명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농부들은 하나님께서 일을 위해 지시해 주실 것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섭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곡식을 타작하는 농부의 일에 대한 다른 사례에 관해서는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고 적혀 있다(29절). 
판단력과 이성의 가장 명료한 지시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을 지혜롭고 사려 깊게 행하는 것이 그로서 난것이라면 우리는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다" 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행사는 자신의 뜻에 의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한 것처럼 결코 자기의 생각과 반대로 행하시지 않으며, 그의 전체 뜻 속에는 모략이 있다. 따라서 그의 모략이 기묘하기 때문에 그의 행사는 놀랍다.
2. 하나님의 교회는 그의 밭이다(고전 3:9). 
그리스도께서 참포도나무라면, 그의 아버지는 그 농부이시며(요 15:1) 그는 끊임없이 그의 말씀과 규례로써 그 밭(교회)을 경작하신다.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끊이지 않고 갈고" 그 땅을 "고르게 하여," 그것이 씨를 받을 수 있게 하시며, 하나님은 그의 사역자들을 통해 휴경지를 개간하시지 않겠는가? 파종하는 자가 씨뿌리기에 알맞도록 땅을 만들고 나면, 그 적합한 토양에 씨를 뿌리지 않겠는가? 과연 그렇게 한다. 
마찬가지로 위대하신 그의 사역자들의 손을 통해 그의 말씀의 씨를 뿌리신다(마 13:19). 사역자들은 진리의 말씀을 분배하고 각 사람에게 그 몫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의 토양이 어떠하든지 간에, 말씀 속에서 그것에 적합한 어떤 씨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징계도 이처럼 지혜롭게 사용된다. 
고통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떠나게 하고, 우리와 우리의 겨를 분리하고, 우리가 쓰임 받도록 해 놓으려는 하나님의 도리깨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의 기회가 생길 때 사용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우리 힘에 맞게 할당하실 것이다. 그것은 필요 이상으로 무겁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 막대기가 그 목적을 이룬다면, 그는 그의 수레바퀴와 말굽(더 큰 심판)을 사용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곡식을 부술 필요가 있을지라도(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것이 그 겨에서 깨끗이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그것을 떨지 아니하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땅의 갇힌 자들을 그의 발 아래 부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우리는 그의 "모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다" 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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