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6.0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잠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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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주 예수 그리스도(마 5:18; 요 10:35)와 사도 바울(갈 3:6; 딤후 3:16)의 증거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라는 고백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진술된 대로(1:8), 우리는 성경의 원본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오류가 없이 기록되었고 그 본문이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로 모든 시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 전통적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야곱 벤 카임에 의해 편집한 제2랍비 성경(봄버그판)을 표준적 본문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본다.

성경은 성도 개개인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활동들에도 유일한 규범이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풍조와 운동이 많은 영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묵상하기를 원하며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기를 원한다.

성경책을 가지고 설교할지라도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올 것이다(암 8:11).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오고 있다. 많은 설교들과 성경강해들이 있지만, 순수 한 기독교 신앙 지식과 입장은 더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요구되는 성경 해석과 강해는 복잡하고 화려한 말 잔치보다 성경 본문의 바른 뜻을 간단 명료히 해석하고 적절히 적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성경책 한 권으로 충분하다. 성경주석이나 강해는 성경 본문의 바른 이해를 위한 작은 참고서에 불과하다.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서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내용 목차 ===

서론································································································5

1장: 미련한 자는 지혜를 멸시함···················································7

2장: 지혜가 우리를 악에서 지킴·················································16

3장: 지혜가 복됨·········································································21

4장: 지혜를 얻으라·····································································33

5장: 음녀를 피하라·····································································39

6장: 근면, 교만, 거짓, 간음에 대해···········································43

7장: 음녀의 길은 사망임·····························································50

8장: 지혜가 부른다·····································································54

9장: 참된 지혜············································································59

10장: 지혜, 근면, 사랑, 입술 제어··············································62

11장: 겸손, 의, 신중, 구제··························································92

12장: 어진 여인, 지혜자의 혀, 근면········································· 122

13장: 교만, 친구, 자녀 징계·····················································150

14장: 지혜로운 여인, 분노, 구제, 의········································175

15장: 유순한 대답, 사랑, 분노··················································210

16장: 하나님 의지, 의, 교만, 노 억제······································ 242

17장: 화목, 용서, 말 절제·························································274

18장: 게으름, 겸손, 신중함, 아내·············································302

19장: 노, 아내, 구제, 인자(仁慈) ·············································326

20장: 술, 잠, 말········································································355

21장: 의, 별거, 구제·································································385

22장: 자녀 교육, 징계, 게으름, 빚 보증···································416

23장: 물질, 자녀 징계, 술·························································439

24장: 의인, 결혼 준비, 게으름··················································456

25장: 말, 충성, 온유, 원수 사랑, 별거·····································472

26장: 미련한 자, 게으른 자·······················································494

27장: 면책, 충고, 목양······························································518

28장: 의인, 악인 칭찬, 경책, 구제··········································· 542

29장: 의인, 왕, 자녀징계··························································570

30장: 아굴의 잠언······································································597

31장: 르무엘 왕의 잠언·····························································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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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잠언의 히브리어 명칭(미슐레 쉘로모 )은 ‘솔로몬의 잠언들’이다. ‘잠언’이라는 원어(마솰 )는 ‘비교, 비유’라는 뜻으로 ‘진리의 간결한 교훈’을 가리킨다.

잠언의 대부분의 저자는 솔로몬이다. 잠언 1:1-9:18과 10:1-22:16과 25:1-29:27은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솔로몬은 잠언을 3천개 이상 썼으나(왕상 4:32), 이 책에는 800절만 나온다. 솔로몬이 썼으나 후에 히스기야 시대에 편집된 것들도 있다(잠 25-29장). 그 외에 는, 야게의 아들 아굴이 쓴 것(30장)과 르무엘 왕이 쓴 것(31장)이 있고, 24:23-34의 내용은 “지혜로운 자들(하카밈 )”에게 돌려지는 것 같다. 아굴이나 르무엘이 누구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잠언의 정경성(正經性)은 그것이 구약성경에 포함되었다는 사실 자체에서 증거되고, 디모데후서 3:16 같은 말씀에서 증거되지만,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암시하거나 증거 혹은 인용하신 데서도 확증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마 6:11(잠 30:8), 눅 7:35(잠 8장), 눅 14:7-9(잠 25:6-7), 롬 12:20(잠 25:21-22), 히 12:5-6(잠 3:11-12), 약4:6(잠 3:34), 벧전 2:17(잠 24:21), 벧전 4:8(잠 10:12), 벧전 4:18(잠11:31), 벧후 2:22(잠 26:11).1)

잠언의 특징적 주제는 지혜이다. 지혜는 진주나 은이나 금보다 더 귀하다(3, 8장).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과 근본이다(1, 9장).

의로움, 거룩함, 겸손함, 자비함, 구제, 화목함, 근면, 말의 절제, 자녀 징계, 좋은 아내 등이 지혜의 예들이다. 지혜의 결과는 생명이다(3장).

잠언의 교훈들은 주로 이 세상에서의 실제적 지혜에 관한 것들이지만, 내세와 영생에 대한 진리도 있다. 예를 들면, 잠언 12:28,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잠언 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잠언15:24,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 있는 음부[지옥]를 떠나게 되느니라.”2)

===잠언 1장: 미련한 자는 지혜를 멸시함

1장: 미련한 자는 지혜를 멸시함

1-9절, 여호와를 경외함

[1절]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잠언의 저자는 솔로몬이다. 그러나 잠언을 포함하여 모든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며(딤후 3:16) “다 한 목자의 주신 바”(전 12:11)이다. 신약성경도 동일한 권위로 인쳐진 말씀이다(살후 2:15; 계 22:19-20). 모든 성경의 참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2-6절] 이는 지혜와 훈계(무사르 )[교훈, 훈계, 징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공정]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메짐마 사려 깊음, 분별력)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 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잠언은 사람들에게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정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해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분별력을 주기 위한 것이다. 잠언의 지혜는 우리의 실생활의 지혜이다. 그 특징은 경건과 도덕성이다. 지혜와 경건과 도덕성은 함께 간다. 지혜로운 자는 경건하고 의롭게 살며, 경건하고 의롭게 사는 자는 지혜자이다.

지혜롭고 경건하고 의롭게 사는 자는 이 세상에서 평안과 건강과 물질적 여유의 복을 받고 장차 영생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불경건하고 불의하며, 불경건하고 불의한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어리석고 불경건하고 불의한 자는 이 세상에서도 평안이 없고 몸의 질병과 경제적 궁핍의 불행을 경험하고 장차 영원한 멸망에 이를 것이다.

[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무사르 )[교훈, 훈계, 징계]를 멸시하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근본’이라는 원어(레쉬스 )는 ‘시작, 첫 번째의 것’이라는 뜻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사람이 첫 번째로 가져야 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식이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영원히 스스로 계신 참 하나님이시며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섭리자이심을 알고 그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위엄 앞에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엎드려 경배하는 태도를 말한다. 하나님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시작이며 근본, 즉 가장 첫째로 알아야 할 지식이며 가장 중요한 지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홀로 창조하셨고 또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또 “[그러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참된 지혜를 존중하고 그 지혜를 사모하지만, 미련한 사람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할 리가 없고 또 부도덕한 데에 떨어질 것이다. 지혜는 사람으로 의와 선을 행하게 하고 이 세상에서 복을 얻고 장차 영생에 이르게 하지만, 미련함은 사람으로 죄를 범하게 만들고 이 세상에서의 불행과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한다.

[8-9절]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교훈, 징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그것들이]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본문은 바른 자녀 교육에 대해 말한다. 첫째로, 자녀 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 자녀 교육의 주체는 부모이다. ‘네 아비의 훈계’ ‘네 어미의 법’이라는 말씀은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녀들을 바르게 교훈하고 교육해야 함을 보인다. 신명기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에베소서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 . .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 교육은 국가에게 맡겨진 일이 아니고 심지어 교회에 맡겨진 일도 아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부모에게 맡겨진 일이다.

둘째로, 자녀 교육의 내용은 무엇인가? ‘네 아비의 징계’와 ‘네 어미의 법’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앞절에 말한 ‘여호와를 경외함’을 가리킨다. 그것은 넓게는 잠언의 모든 내용과 성경 전체를 가리킨다. 성경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은 자녀 교육의 바른 내용이다.

셋째로, 자녀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게 하는 것이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부모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그것을 지키도록 교훈하고 징계해야 한다. 물론 부모가 먼저 경건하고 의롭게 살면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 그대로 믿고 그대로 행하기를 원하신다.

넷째로, 자녀 교육의 가치는 무엇인가? 솔로몬은,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은 지킨 자의 머리에 아름다운 관과 같고 그의 목의 금사슬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화이다. 그것은 천천 금은보다 더 낫다(시 119:72). 그러므로 그 말씀을 지키는 자는 가장 큰 복과 영광을 누릴 것이다. 경건 교육의 가치는 참으로 크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잠언을 통해 또 성경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한다. 모든 성경이 그렇지만, 잠언은 지혜를 주는 책이다. 사람은 죄로 인해 무지해졌으나, 성경말씀을 통해 참 지혜를 얻는다.

둘째로, 참된 지혜는 경건과 도덕성에 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지만, 미련한 자들은 하나님과 그 계명들을 멸시한다.

셋째로, 부모들은 이 지혜를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자녀 교육은 부모 책임이며 그 내용은 성경이다. 그 목표는 하나님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그 가치는 매우 크다. 하나님 경외하고 그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와 내세에서 큰 복과 영광을 누릴 것이다.

10-23절, 불의의 이익을 취하지 말라

[10-19절] 내 아들아, 악한 자(캇타임 )[죄인들]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알 토베 )[찬동하지 말라](NASB).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음부[무덤]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 그들의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무릇 이(利)를 탐하는 자(보체아 바차 )[폭력으로 이익을 얻는 자(BDB), 불의의 이익을 취하는 자(Langenscheidt)]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우리는 죄인들이 우리를 꾈지라도 찬동하지 말아야 한다. 시편 1:1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말하였다. 본문은 죄인들의 특징을 묘사한다. 그들은 은밀히 남을 해치는 자이다(11-12절). 또 그들은 남의 피를 흘리며 남을 죽이는 자이다(16절). 또 그들은 불의의 재물을 취하는 자들이다(13-14, 19절). 그들은 정정당당히 돈을 벌려 하지 않고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 하고, 폭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한다. 또 본문은 죄인들의 마지막도 증거한다(18-19절). 죄인들은 결국 생명을 잃고 죽고 만다. 그것은 공의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그가 죄인들을 공의로 심판하시고 벌하시기 때문이다. 시편 1:6의 말씀대로, 악인들의 길은 망할 것이다.

[20-23절]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나님께서는 지혜의 하나님이시며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혜의 주님이시다. 골로새서 2:2-3,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은 오늘날 신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또 그 지혜의 말씀은 모든 시대에 전도와 바른 설교를 통해 증거되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은 공개적이다. 악인들은 비밀이 많고 그들은 이웃을 속이고 거짓되고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말을 잘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되거나 이중적이지 않고 솔직하고 진실하며 공개적이다.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고 말씀하셨고(마 10:27), 또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셨다(요 18:20).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2:3에서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不淨)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속임]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였다.

본문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고 한다.

‘어리석다’는 원어(페시 )는 본래 ‘단순하다’는 뜻이다. 단순한 자들이 어리석어서 악한 꾀임에 잘 빠진다. 어리석은 자들, 거만한 자들, 미련한 자들은 다 돌이켜야 한다. 모든 죄인들은 다 회개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죄악에서 온전히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신’은 ‘하나님의 영’ 성령을 가리키든지, 혹은 ‘지혜의 영’ 곧 지혜의 정신(NASB) 또는 지혜의 심령(NIV)을 가리키는 것 같다. 

지혜의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에게 성령과 지혜의 정신을 주시며 또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에베소서 1:17-19에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도하였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악한 자가 되지 말고 죄인들을 좇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생각에 찬동하지도 말며 그들에게 굴복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악한 것을 생각하지 말고 불의를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고전 13:5-6).

둘째로, 우리는 불의의 이익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속여서 취한 이익은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할 뿐이다. 우리는 자기의 수고의 대가인 정당한 이익만 취해야 한다. 우리는 범사에 깨끗해야 하며 특히 돈에 대해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죄 짓는 일이며 결국 자기 생명을 잃게 한다. 돈을 사랑하며 부하려 하는 자들은 침륜과 멸망에 빠진다(딤전 6:9). 우리는 불의의 이익을 구하는 모든 탐심을 버려야 한다(약 1:14-15).

셋째로, 우리는 신구약 66권의 성경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거절하지 말고 사모하고 규칙적으로 읽고 듣고 믿고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거만함과 미련함을 버리고 지혜의 교훈과 책망을 듣고 깨달아지는 죄가 있으면 겸손히,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과 지혜의 정신을 주시고 지혜의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지혜자가 되게 하실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고(딤후 3:15), 또 모든 경건한 성도는 원수보다, 스승보다, 또 노인보다 더 지혜롭고 명철하게 할 것이다(시 119:98-100).

24-33절, 나를 듣는 자

[24-28절]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어리석은 자들은 평소에, 평안할 때에 지혜의 말 듣기를 거절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떠나고 의롭고 선하게 살라’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말하지만, 그들은 그런 말을 듣기 싫어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무관심하였고 그것을 무시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였고 하나님의 책망받기를 거절했다. 그것은 그들의 어리석음이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에게 재앙의 때, 심각한 재앙의 때가 올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질병이나 경제적 재난일 수 있고 화재 등의 사고일 수 있고 홍수나 지진 등의 자연재해나 전쟁 등일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 즉 공의의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의 행위에 대해 공의로 보응하시며 그들에게 두려운 재앙을 광풍같이, 폭풍같이 내리실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그가 대답지 않으시고 부지런히 그를 찾아도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그를 찾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사 55:6).

[29-33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메슈바 )[변절]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솰와 )[안이함]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안전하게]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 까닭은 그들이 그의 말씀을 무시하고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신앙의 변절자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려움이나 진지함이 없는 안이한 자들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불경건하고 인본주의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세상 중심적이고 물질적 유여함과 육신의 쾌락만 구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말은 장망성 같은 세상과 함께 허무하게 불타고 멸망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 자신을 죽이고 자신을 멸망시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밝히 경고하셨었다. 신명기 28:15-2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 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공구(恐懼)[소요, 혼란]와 견책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케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얻을 땅에서 필경 너를 멸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상한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케 할 것이라.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

그러나 반대로 지혜로운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들이다. 지혜와 어리석음의 경계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여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지혜로운 자들은 안전하게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할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안전함이 없지만, 지혜자들에게는 안전함이 있다. 또 지혜자들은 재앙의 두려움 없이 평안할 것이다. 왜냐하면 재앙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내리시는 것이요 의인들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리도 율법에서 이미 밝히 증거하신 바이다. 신명기 28:1-7,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이사야 48:18,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이 있을 것이며 그 날에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 앞에는 죽음과 멸망만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절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할 것이며 그들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성경말씀을 진지하게 읽고 듣고 하나님의 교훈을 잘 받고 책망을 달게 받고 그 말씀을 지키며 힘써 순종해야 한다.

===2장: 지혜가 우리를 악에서 지킴

[1-5절]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본문은 지혜를 얻는 길을 증거한다. 우리가 참된 지혜를 얻으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가 지혜를 얻을 것이다. 또 사람은 지혜와 지식을 간절히 사모하며 원해야 그것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부지런하고 열심을 낸다.

만일 그런 부지런함과 열심으로 지혜를 구한다면 그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는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마 7:7). 하나님께서는 구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본문은 사람이 하나님께 간절히 지혜를 구하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곧 지혜이시며, 그를 아는 것이 지혜요 그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이다.

[6-7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투쉬야 )[건전하고 유능한 지혜, 영속적 성공](BDB)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시는 자이시다. 그는 그의 충만한 지혜와 능력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는 지혜를 구하는 죄인들에게 지혜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주실 것이다. 의로운 자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를 얻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행실이 온전한 자들에게 방패가 되실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 사는 동안 사탄과 악령들이 주는 재앙들이나 원수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함을 얻을 것이다.

[8-9절]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보전하심이니라]. 그런즉(아즈 )[그때에]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성도들은 의와 공평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침으로 행실의 의를 지켰다. 비록 그가 감옥에 얼마 동안 갇혔으나,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었고 그의 기이한 섭리로 말미암아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성도들은 정직하게 행하여 완전한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할 때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닫는다. ‘모든 선한 길’이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남에게 유익을 주고 자신에게 복이 되는 길을 말한다. 본문의 요점은, 사람이 정직하게 살면 지혜를 얻으며 또 그는 의와 선을 더욱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3:12).

[10-12절]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근신(메짐마 )[분별력]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

사람이 의롭게 살려 힘쓰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완전한 지혜를 얻고 그럴 때 의와 선을 더욱 깨달으며 지혜가 그의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그의 영혼에 즐거움이 된다. 여기에 지혜의 유익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와 지식의 말씀이며 우리가 그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그 말씀은 우리의 영혼에 기쁨과 즐거움이 되며 생활에 힘이 된다. 또 지혜와 명철은 우리를 보호해 우리를 악한 자들의 길로부터 지키며 구원한다. 사람이 지혜와 명철과 분별력을 얻으면 악한 자들의 길로부터 보호와 구원을 얻는다. 그는 악한 자들의 길에 떨어지지 않고 악한 자가 되지 않고 악하게 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도 지혜의 유익이다.

[13-15절]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악한 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바른 길이며 복된 길이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길을 저버리고 무지와 거짓, 양심의 거리낌과 불행의 길로 행한다. 또 그들은 악을 행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 한다. 

성도는 자신의 악을 통회함과 동시에 다른 이들의 악을 탄식한다(사 66:2; 겔 9:4). 참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전 13:6). 그러나 악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길은 구부러지고 그들의 행위는 패역하다. 즉 그들은 불순종적이며 반항적이다.

[16-19절] 지혜가 또 너를 음녀(잇솨 자라 )[이상한 여자, 낯선 여자](NASB)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그는 소시(少時)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陰府)(레파임 )로[죽은 자들에게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지혜는 또 우리를 이상한 여자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한다. 정상적인 여자는 단정하고 순결을 지키며 남편과 자기 자녀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만, 이상한 여자는 단정치 않고 다른 이에게 마음과 눈길을 두며 가정에 대한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그는 젊은 때의 배우자를 버리며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이다. 남편과 결혼할 때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결혼 서약을 하였을 것이지만, 그는 그 언약을 잊어버리고 그것을 저버렸다. 그는 이제 남자들의 마음을 말로 유혹하는 이상한 여자가 되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이 세상의 음란 풍조를 멀리해야 한다.

음란 풍조는 보는 것과 듣는 것을 통해 퍼져나간다. 텔레비젼의 드라마들은 불륜의 주제로 넘쳐나고 젊은 가수들의 노래들과 춤들까지도 음란성이 많다.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인터넷은 음란의 바다이다. 성경은 음란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가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고전 6:9-10). 성도는 음행을 피해야 한다(고전 6:18).  이상한 여자의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죽은 자들에게로 기울어졌다. 이상한 여자의 집은 잠시 동안 육신적 즐거움이 있겠지만, 사망과 멸망으로 향한다.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길을 얻지 못한다. 음행은 마약같이 중독성을 가져서, 남녀 노소, 초신자, 직분자 할 것 없이 누구든지 거기에 빠지면 돌아오지 못하며 생명길을 잃고 말 것이다. 행음자들은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계 21:8). 그러므로 성도는 음행을 극히 조심하고 멀리해야 한다.

[20절]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선한 자의 길은 남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베풀며 유익을 주는 길이다. 지혜는 선한 길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선한 길을 걷게 한다. 또 지혜는 의인의 길 즉 인생의 정로를 지키게 한다. 지킨다는 말은 보수(保守)한다는 뜻이다. 신앙적, 신학적 보수주의라는 말은 좋은 말이다. 배교와 타협의 시대에 시대의 풍조에 따라 속화되지 않고 옛 길, 바른 길, 의의 길을 지키는 입장은 바른 입장이며 좋은 입장이다.

[21-22절]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본문은 지혜가 선한 길, 의로운 길을 지키게 하는 이유를 보인다. 그 이유는, 의롭고 정직한 자가 땅에 거하고 악인이 땅에서 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는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직하고 완전한 자들은 땅에 거하고 땅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의인들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땅에서 끊어질 것이다. 땅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곳이다.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땅은 본래 죄 없는 자들이 살도록 창조된 곳이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함으로 악인들이 땅에 가득하게 거주하게 되었다. 그들은 땅에서 일시적 평안과 번영을 누리고 의인들은 일시적으로 고난을 당한다. 그러나 악인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땅에서 제거될 것이다. 악인들의 일시적 평안과 번영은 결국 갑작스런 멸망으로 끝날 것이다. 이 땅은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으로 이어질 것이다. 천국에는 악인들이 전혀 없고 의인들만 영원히 거할 것이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금은보화를 구하듯이 지혜를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2-4절,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를 경외하게 되며 그가 주시는 지혜를 풍성하게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의 말씀인 성경을 사모함으로 읽고 듣고 묵상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의롭고 정직하게 살면 더욱 지혜로운 자가 되며 더욱 의와 선을 깨닫고 의롭고 선한 자가 될 것이다. 7절,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마태복음 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말씀의 순종은 우리로 더욱 지혜롭게 하며 더욱 의롭고 선한 자가 되게 할 것이다.

셋째로, 지혜는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준다. 지혜는 우리로 정직하고 선하고 완전한 길을 걷게 하며(8-9절) 우리 영혼에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10절). 또 지혜는 우리를 악한 자들의 길로부터 건져주며 특히 음란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며 건져준다(11-12, 16절). 또 지혜는 우리로 하나님의 주신 땅에 영원히 거하게 한다. 즉 우리로 세상의 삶도 복되게 하고 천국을 영원한 기업으로 받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3장: 지혜가 복됨

1-6절, 명령 지킴, 인자와 진실, 의뢰하고 인정함

[1-2절]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키 )[왜냐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함이니라].

자녀들은 경건한 부모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그들의 명령을 진심으로 지켜야 한다. 이 교훈은 성령의 감동으로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다. ‘나의 법’과 ‘나의 명령’은 결국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사람이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면 육신의 본성의 죄악성을 따라, 욕심을 따라, 세상의 풍조에 따라 행하기 쉽고 마귀의 시험에 떨어져 범죄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법을 지킴으로 장수(長壽)를 누린다. 장수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바이다. 사람들은 단명(短命)을 재앙이라고 보고 그것을 다 싫어한다. 사람들은 장수를 위해 보약을 먹고 운동을 하며 병원을 찾는다. 그런데 사람의 건강과 장수의 비결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데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장수뿐 아니라, 영생에 이르게 한다.

성도는 또 하나님의 법을 지킴으로 평안을 누린다. 평안이라는 말 속에는 마음의 평안뿐 아니라, 몸의 건강과 경제적, 환경적 평안까지 들어 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문안 인사 속에는 이런 포괄적 의미가 들어 있다. 그 ‘안녕’의 비결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데 있다.

[3-4절] 인자(仁慈)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인자(仁慈)’는 선한 마음을 가리킨다. 악은 마귀의 속성이다. 마귀는 살인자이다(요 8:4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자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시다. 인자는 실상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이다. 

‘진리’(에메스 )는 진실을 가리킨다. 진실은 하나님의 속성이며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다(요 8:44). 우리는 인자와 진실을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하고 그것들을 우리의 목에 매고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자(仁慈)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미가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에베소서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에베소서 4:25,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우리가 인자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면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귀중히 여김’이라는 원어(세켈 토브 )는 ‘좋은 이해’라는 뜻으로 ‘좋은 평판, 좋은 인정’을 가리키는 것 같다(NASB, NIV). 

사람이 악하고 거짓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물리치시고 사람들도 그를 멀리하고 배척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인자하고 진실하면, 그는 하나님께 더욱 더 사랑을 받고 사람들에게도 좋은 이해와 좋은 평판과 좋은 인정을 받을 것이다.

[5-6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되 반쪽 마음으로가 아니고 전심(全心)으로 해야 한다. 반쪽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사실상 그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혜와 명철, 지식과 실력, 건강과 재산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능하신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기를 원하신다.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주권적 섭리자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우리는 범사에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영적인 일이나 육적인 일이나, 개인적 일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의 일이나,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다. 이런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우리가 범사에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지도하실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선한 지도하심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그를 믿고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길 앞의 장애물을 피하게 하시고 선하고 유익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16:3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말하였고, 로마서 8:28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했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몸의 장수와 평안의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장수와 평안을 원한다면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인자와 진실을 간직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과 인정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선과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범사에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하며 범사에 하나님께서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선하게 인도하심을 경험할 것이다.

7-12절, 건강, 물질적 복, 징계

[7-8절]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리프우스 )[치료(BDB, KB, NASB), 건강(KJV, NIV)]이 되어 네 골수로[뼈속까지] 윤택하게 하리라.

우리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잠언 26:12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나야 한다. 사람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이 참 지혜이다. 실상 이것이 성경의 요점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떠날 수 있다. 잠언 16:6,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나면, 이것은 우리의 몸에 양약, 치료, 건강이 되어 우리 뼈속까지 윤택하게 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고 그의 계명대로 의와 선을 행하면 건강을 누릴 것이다. 그들은 뼈속까지도 건강할 것이다. 출애굽기 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예호와 로프에카 )임이니라.”

사람의 건강은 단지 영양식을 하고 보약을 먹고 충분한 잠을 자고 규칙적 운동을 함으로써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원치 않는 질병과 사고가 생길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자이시다. 사람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죄를 지으면 건강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건강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이다.

[9-10절] 네 재물과 네 [모든] 소산물(테부아 )[소산(product), 수입(income)]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우리는 우리의 재물로 또 우리의 소득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는 우리 몸과 우리 마음뿐 아니라, 우리의 재물, 즉 우리의 돈과 재산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것이 실상 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주신 모든 좋은 것들을 관리하며 누리며 살고 있다. 

우리는 소득과 수입의 첫열매, 즉 가장 좋은 부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정성으로 구별한 십일조와 감사헌금이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가 모든 수입의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면 우리의 창고는 가득히 차고 우리의 즙틀에는 새 포도즙이 넘칠 것이다. 물질로 하나님을 공경치 않는 것은 죄 짓는 일이며 그럴 때 궁핍이 찾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건축에 무관심하고 자기들의 호화로운 집에 거주하는 것을 정죄하시며 그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주셨다고 말씀하셨다(학 1:4-6). 또 그는 선지자 말라기를 통해 십일조와 헌물이 하나님의 것이며 이스라엘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저주를 받았다고 말씀하셨다(말 3:8-9). 그러나 우리가 물질로 하나님을 섬길 때, 즉 전도와 구제를 위해 헌금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적 유여함, 즉 양식의 풍족함과 은행 잔고의 넉넉함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에 대해 풍성한 복을 약속하셨다(말 3:10). 하나님의 종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드린 사르밧 과부는 기근 동안에도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다(왕상 17:12-16).

[11-12절]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징계와 꾸지람은 때때로 성경말씀을 읽을 때 오고(딤후 3:16) 하나님의 종들이 전하는 성경적 설교를 들을 때 온다(딤후 4:2). 또 그것은 때때로 몸의 병으로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또는 환경적 어려움으로 온다. ‘경히 여기고 싫어한다’는 말은 그것을 무시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을 말한다. 애굽에서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을 때마다 불평하고 원망했었다.

징계와 저주는 다르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의 표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그의 사랑하시는 자녀를 징계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죄를 미워하시지만 그들의 영혼들을 사랑하신다. 히브리서 1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자녀는 부모의 징계를 잘 받으면 좋은 인격자가 되며 학생은 선생의 징계를 잘 받으면 좋은 학생이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징계를 잘 받는 사람은 좋은 성도가 되고 더욱 거룩해지고 온전케 될 것이다. 히브리서 12:10-11,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평안한] 열매를 맺나니.”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나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건강과 병의 치료를 경험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이 건강의 길이다.

둘째로, 우리는 소득의 첫열매와 십일조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제적 안정과 여유를 경험할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싫어하지 말고 달게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 달게 받고 즉시 회개하고 고쳐야 한다.

13-20절, 지혜의 유익, 하나님의 지혜

[13-15절]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자는 행복자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그의 일생이 결국 불행으로 끝날 것이다. 지혜를 얻은 자가 복된 이유는 지혜가 금이나 은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금이나 은, 즉 돈과 물질적 여유가 행복의 한 요소이기는 하다. 돈이 없으면 먹고 싶은 것을 살 수 없고 입고 싶은 옷도 을 살 수 없고 가지고 싶은 것들도 살 수 없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돈이 필요하고 중요한 요소인 것은 맞다. 그러나 지혜는 돈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다. 세상에는 돈만 가지고는 살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것이 많이 있다. 사람은 돈만 가지고는 사고의 예방이나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를 얻지 못한다. 더욱이, 사람은 돈만 가지고는 우주의 근본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고, 또 죄씻음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평안을 얻지 못하고, 경건과 도덕성 즉 의와 선과 사랑과 진실을 얻지 못하고, 영생과 부활과 천국을 알지 못하고 얻지 못한다. 그러나 지혜는 이 모든 것들을 알게 하고 얻게 한다. 그것들이 다 구원의 복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혜는 금은보다, 진주보다, 아니 우리의 사모하는 모든 것들보다 낫다. 그 이유는 16절 이하에 나온다. 여인들은 금은패물과 진주목걸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은 여성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장식품이다. 또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가장 좋아하고 사모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지혜는 그 모든 것들보다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16-18절] 그 우편 손에는 장수(長壽)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富貴)[부요와 존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행로]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지혜가 금은과 진주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고 복된 이유는 그 오른손에 장수(長壽)가 있기 때문이다. 잠언 3:2는 우리가 하나님 계명에 순종하면 장수한다고 말하였다. 본문 18절은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지혜이며 지혜는 장수의 길이며 영생의 길이다.

또 지혜의 왼손에는 부귀(富貴) 즉 부요와 존귀가 있다. 지혜는 물질적 부요를 준다. 가난과 궁핍은 복이 아니다. 잠언 3:9-10도 이미 우리가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면 우리의 창고가 가득 찰 것이라고 말했다.

의인 욥은 부자였다(욥 1:3). 경건한 이삭도 하나님의 복을 받아 창대하고 왕성하여 부자가 되었다(창 26:12-13). 율법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토지 소산과 우양과 떡 반죽 그릇의 복을 받으며 다른 이들에게 꾸어주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신 28:2-6, 11-12).

지혜는 또 존귀함도 준다. 지혜자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얻을 것이다. 다니엘은 고난의 위기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잘 극복했고 더욱 높임과 존귀함을 얻었다(단 2:48; 3:30; 5:29). 또 지혜는 즐거움과 평안을 준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자들은 기쁨과 평안을 얻을 것이다(사 48:18).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가운데 항상 기쁨과 평안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참된 기쁨과 평안이 없을 것이다(사 48:22).

[19-20절]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땅[지구]을 세우셨다. 지구는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공이며 그 무게는 약 6섹스틸리온 톤이다(1섹스틸리온은 10의21제곱이다). 이 공이 하루에 한 번씩 자기 스스로 돌며 1년에 한 번씩 태양 주위를 돈다. 

지구에는 그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중력]이 있고, 지구의 중심에는 약 5,000도의 불이 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또 지구 표면에는 35만종 이상의 식물들이 있고 약 4,000종의 동물들과 약 6,000종의 파충류(기는 짐승들), 약 80만종의 벌레들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신기한 땅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신 지혜로 땅을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다. 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의 세계이다. 그것들은 규칙적이게 하늘에서 움직인다. 지구가 속한 은하수는 약 1,000억개 이상의 별들로 구성되었고 우주에는 이런 은하수들이 약 1,000억개 있다고 한다. 또 창공에는 약 8,600가지의 새들이 있다고 한다. 하늘은 참으로 광대하고 신기하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다. 지구가 가진 물의 총량은 약 1억 3,600만 입방킬로미터이며 그것은 지구 전체를 약 2.7킬로미터 깊이로 덮을 수 있는 양이며, 이런 물들은 5대양 6대주, 및 작은 바다들과 호수들을 이룬다. 또 바다 속에는 약 21,700가지의 바다생물들과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다. 그는 공기 중의 수증기들과 바람의 이동을 주관하신다. 기상대는 우리나라의 고기압과 저기압 전선의 이동을 예측해 알려주지만, 그것의 원인을 다 알지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와 지식으로 비와 눈, 구름의 이동, 기압과 바람을 주관하신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지혜는 참으로 복되다. 지혜는 금은과 진주보다 귀하다. 그것은 장수와 부귀[부요와 존귀], 즐거움과 평안의 길이며 또 영생의 길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복된 지혜를 사모해야 하며 소유해야 한다. 그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모든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얻을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지혜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고 하늘을 펴셨고 해양을 나누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순종함으로써 지혜를 얻어 현세와 내세에 복된 삶을 누려야 한다.

21-35절, 지혜자의 삶

[21-26절]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투쉬야 )[건전하고 효력 있는 지혜]와 근신[분별력]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네가 네 길을 안연히(라베타크 )[안전하게]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너는 창졸간의[갑작스런]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우리는 완전한 지혜 즉 건전하고 효력 있는 지혜와 분별력을 항상 소유하기를 원한다. 지혜는 유익이 많다. 지혜는 우리의 영혼에 생명이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의지하며 그의 계명대로 의를 행하는 자마다 영생에 이를 것이다. 또 지혜는 우리의 목에 장식이 된다. 그것은 사람의 인격을 아름답고 고상하게 만든다. 우리가 지혜를 소유하고 산다면 아무리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 많은 세상일지라도 안전하게 살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고 또 누워 잘 때 단잠을 잘 수 있다. 그것은 귀한 복이다. 성도는 갑작스런 두려운 일들과 악인이 당하는 재앙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섭리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을 지켜 넘어지지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7-28절]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우리는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 이웃 사랑은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다. 선을 베푸는 것은 주로 구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베풀 힘이 있거든’이라는 말은 ‘경제적 여유가 있거든’이라는 뜻이다. ‘마땅히 받을 자’는 의식주에 어려움을 당한 가난한 자들을 가리킨다. 구제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또 우리는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소유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 하기 때문에, ‘마땅히 받을 자’라는 표현을 썼다고 본다. 구제할 여유가 있고 구제해야 할 대상이 있으면, 우리는 구제하기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갔다가 다시 와라. 내일 주겠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잠언 19:17은 구제를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손을 움켜쥐고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고 손을 펴서 가난한 자들에게 넉넉히 구제해야 한다(신 15:7-11).

[29-31절] 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연히[편안히] 살거든 그를 모해(謀害)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

우리는 이웃에게 악을 행치 말아야 하고 특히 모해하지 말아야 한다. ‘모해(謀害)’는 은밀히 계획하여 남을 해치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함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또 사람이 내게 악을 행하지 않았으면 까닭 없이 그와 다투지 말아야 한다. 나에게 악을 행한 자를 책망할 수는 있으나 나에게 악을 행하지 않은 자와 정당한 이유 없이 다투는 것은 좋지 않다. 그것은 이웃 사랑과 반대된다. 우리는 또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그의 행위를 좇지 말아야 한다.

[32-35절]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소드 )[함께 앉아 이야기함, 친밀한 교제]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미련한 자는 수치를 일으키느니라](NASB).

우리가 의롭고 선해야 하며 악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미워하시고 복 대신에 저주를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의인과 악인은 분명하게 대조된다.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으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제하심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비뚤어진 자를 미워하시지만, 정직한 자와는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다.

악인의 집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이나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을 것이다. 악인의 가정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의인의 가정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가정과 자기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악을 버리고 의롭고 바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는 교만함과 거만함을 미워하신다. 피조물인 인생, 특히 범죄의 경험이 있고 죄성을 가진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부족을 깨닫고 겸손히 처신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우리는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된다.

또 지혜로운 자들은 영광을 기업으로 받지만, 미련한 자들은 수치를 일으킬 것이다. 의인은 지혜로운 자로 표현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의인이며 지혜자이다. 그는 영광의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악인이며 미련한 자이고 마침내 수치를 당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완전한 지혜[건전하고 효력있는 지혜]와 분별력을 늘 소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 생명이 되고 우리의 목에 장식이 되고 우리의 길을 안전하게 걷게 하고 우리로 범죄치 않게 하고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게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이웃에게 선을 베풀 힘이 있으면 마땅히 받을 자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야 한다. 우리는 구제하고 선을 베풀기를 힘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 곁에서 편안히 사는 이웃을 은밀히 해치려 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에게 악을 행하지 않은 자와 까닭 없이 다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이웃 사랑과 반대되는 갑절로 악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자, 악인, 거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물리치시며 그의 가족들에게 저주를 내리실 것이나, 정직한 자, 의인, 겸손한 자에게 더욱 은혜를 주시며 그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며 그의 가족들에게 복을 주시고 영광의 기업인 천국을 그와 그 가족들에게 주실 것이다.

===4장: 지혜를 얻으라

1-13절, 경건한 교훈, 지혜의 가치와 유익

[1-5절]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이는] 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전함이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본문은 솔로몬이 자기 아들들에게 말하는 내용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다(딤후 3:16). 자녀 교육의 일차적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모세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말했고(신 6:6-7), 또 사도 바울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했다(엡 6:4).

경건한 부모의 교훈은 유익한 가르침이며 지혜와 명철을 주는 말씀이다. 솔로몬은 자신도 그의 아버지에게 아들이었고 그의 어머니 보기에는 유약한 외아들이었다고 말한다. 역대상 3:5는 솔로몬이 밧세바가 낳은 네 아들 중 네 번째 아들이었다고 증거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셋은 밧세바가 데리고 들어와 다윗의 아들로 입양된 아들들이고 솔로몬은 그가 다윗에게서 낳은 외아들이라는 뜻일 것이다.

솔로몬은 그 부친 다윗의 가르침을 소개한다. 그는 그에게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며 살라(원문, KJV, NASB).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피하지 말라(원문)”고 말했었다. 자녀의 의무는 경건한 부모의 교훈을 듣고 그것을 마음에 두고 그 명령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그 명령이 지혜와 명철이다. 그 지혜와 명철을 얻어야 한다. 그 입의 말을 잊지 말고 피하지 말아야 한다.

[6-9절]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지혜가 중요하다. 우리는 지혜를 버리지 말고 사랑하고 얻고 높이고 품어야 한다. 지혜가 제일이다. 지혜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고 그의 뜻과 계명대로 사는 것인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지혜가 없으면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헛되지만, 지혜가 있으면 그 외의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다(잠 3:13-18).

우리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얻은 모든 것, 곧 건강과 시간과 돈 등을 가지고 지혜를 얻어야 한다. 지혜가 가장 귀한 것임을 안다면, 우리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힘과 시간을 쓰고 돈과 물질을 아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지혜는 유익하다. 지혜는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준다. 무엇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주는가? 그것은 죄로부터, 위험으로부터,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준다. 만일 우리가 지혜를 높이면 지혜는 우리를 높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지혜를 품으면 지혜는 우리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지혜는 내세의 천국 영광을 줄 뿐 아니라, 또한 현세에서 부요와 존귀와 영광도 줄 것이다. 그것은 솔로몬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10-13절]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내가 지혜로운 길로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첩경으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란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경건한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주는 교훈은 지혜로운 길이며 정직한 길이다. 길은 삶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지혜의 길이다. 우리는 지혜의 교훈을 받으며 붙잡아야 한다. 그것은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명기 11:2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부종(附從)하면[그를 꼭 붙잡으면].”

지혜의 길은 복되다. 거기에는 장수(長壽)가 있다. 병이나 자연재해나 사고로 인해 단명(短命)한 것은 재앙이지만, 장수(長壽)는 복이다.

또 거기에는 다닐 때에 걸음이 곤란치 않고 달려갈 때에 실족지 않음이 있다. 지혜는 우리가 여러 문제들로 믿음을 잃고 방황하고 곁길로 가 범죄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할 것이다. 안전과 평안의 약속이다.

또 지혜의 결과는 영생이다. 영생은 복 중에 가장 귀한 복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도록 교훈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라면 우리는 가정에서 자녀들에 대한 경건 교육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경건 교육이 우리가 자녀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일이다.

둘째로, 우리는 지혜가 가장 가치 있는 덕임을 알고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얻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는 지혜를 얻기 위해 힘과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특히 지혜를 주는 성경말씀을 사랑하고 이 책을 주야로 읽고 듣고 묵상하고 그 모든 말씀을 믿고 지켜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지혜의 유익을 깨달아야 한다. 지혜는 우리에게 현세와 내세에 복이 된다. 지혜는 우리를 죄와 재앙으로부터 지키며 보호하고 우리에게 장수와 평안, 그리고 부귀와 영광을 주며, 또 영생의 복을 준다.

14-27절, 악인의 길, 의인의 길, 마음, 입, 눈, 발을 지킴

[14-17절] 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이는]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우리는 악인의 길에 들어가지 말고 그 길로 다니지 말고 그 길을 피하고 그 길로 지나가지도 말고 그 길로부터 돌이키고 그 길을 떠나야 한다. 악인들은 항상, 날마다 악을 행하며 불의와 강포를 밥먹듯이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악인의 길을 멀리해야 한다. 성도가 악인들과 함께 있으면 악에 물들기 쉽고 악의 영향을 받기 쉽고 또 악에 동참하기 쉽다. 사람은 약하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을 받기 쉽다. 그러므로 시편 1:1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말했다.

[18-19절]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른다.

길은 삶을 가리킨다. 돋는 햇볕은 새벽빛을 말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밝지 않다. 그것은 서서히 밝아져 마침내 정오의 밝은 빛이 된다. 성경에서 빛은 지식, 의, 진실, 기쁨, 행복 등을 상징한다. 의인의 빛은 이 모든 상징들에 다 적용될 수 있다. 의인의 지식과 의와 진실, 또 의인의 기쁨과 행복은 비록 처음에는 작은 것일지라도 점차 커지고 마침내 충만해질 것이다. 그는 책망할 것이 없는 온전함에 이를 것이며 그의 기쁨과 행복은 마침내 천국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어둠은 무지, 불의, 거짓, 슬픔, 불행 등을 상징한다.

어두운 길은 걸려 넘어지기 쉽다. 그래서 빛이 필요한 것이다. 밤길에 가로등이 없다면, 밤길에 자동차에 전조등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위험할까? 악인의 길이 바로 그러하다. 악인은 실제로 그들의 길에서 걸려 넘어진다. 그들은 여러 가지 죄와 재앙에 떨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어둡기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또 그 죄의 결과로 어떤 재앙이 그에게 임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의 이성과 양심은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노하신 얼굴을 느끼지 못한다.

[20-23절]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토츠오스 )[나오는 것들]이 이에서 남이니라.

솔로몬의 교훈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말씀을 주의하고 귀를 기울이고 주목하고 마음에 지켜야 한다.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영생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말씀은 영생의 말씀이며 또 그것을 얻는 자에게 몸의 건강이 되고 영생이 된다.

우리는 생명, 건강, 가정, 자녀들, 재산 등 세상에서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한다. 그 까닭은 생명의 ‘나오는 것들’이 거기에서 나기 때문이다. ‘나오는 것들’은 ‘행위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Poole). 사람의 행위는 마음에서 나온다. 악한 마음에서 악한 행위들이 나오고 선한 마음에서 선한 행위들이 나온다.

우리가 중생한 새 생명을 가진 자라면 우리는 거룩하고 선한 마음을 지켜서 거룩하고 선한 행실의 열매들을 맺어야 할 것이다.

[24-27절]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주목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본문은 우리가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고 교훈한다. 

첫째로, 우리는 입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성도는 거짓된 말이나 잘못된 말을 매우 조심하고 진실하고 바른 말만 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눈을 조심해야 한다. 눈을 조심하라는 말은 생각과 행동의 목표와 방향을 바르게 가지도록 조심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죄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즉 실수하거나 실족하지 않도록, 잘못된 길에 한눈 팔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의 진리만 생각해야 한다. 히브리서 12:1-2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시작자]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완성자]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했다.

셋째로, 우리는 발을 조심해야 한다. ‘평탄케 한다’는 원어(팔라스)는 ‘주목한다’(KB, NASB), ‘(길을) 평평케 한다’(BDB, NIV)는 뜻을 가진다. 발을 조심하라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경솔하거나 조급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하며 또 좌우로 치우쳐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하고 또 악에서 떠나야 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악인의 길을 멀리해야 한다. 성도가 악인들과 함께 있으면 악에 물들고 악의 영향을 받기 쉽고 또 악에 동참하기 쉽다. 우리는 악인과 멀리하고 교제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의인의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는 구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어 빛의 길, 곧 지식과 의와 진실, 기쁨과 행복의 길에 들어왔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몸에 건강과 평안이 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된다.

넷째로, 우리는 입과 눈과 발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바른 말만 하고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과 진리만 바라보고 우리의 발로 바른 길만 걷고 바른 행동만 해야 한다. 그것이 지혜와 복이 될 것이다.

===5장: 음녀를 피하라

[1-6절]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死地)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陰府)[무덤,지옥]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이는 너로 생명의 길을 주목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의 길은 안정이 없어서 네가 그것을 알지 못하느니라](KJV).

‘내 지혜’와 ‘내 명철’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은혜로 전하는 하나님의 교훈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의 말씀이며 분

별력과 지식을 주는 말씀이다. 우리는 그 말씀에 주목하고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 교훈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지혜이다.

솔로몬은 그의 아들이 그의 지혜의 교훈을 지킴으로 음녀의 미혹에 빠지지 않게 하라고 가르친다. 잠언 6:23-24에서도 그는 훈계가 사람을 음녀의 호리는 말에서 지킨다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그리고 특별히 남자들과 청년들이 유념해야 할 교훈이다. 음녀의 미혹은 처음에는 즐거워 보인다. 음녀의 말들은 꿀처럼 달콤하게 들리고 기름보다 부드러워 보인다. 그러나 그 결말은 불행과 비극이다. 음녀에게 미혹된 사람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잠언 7:25-27에서도 그는 음녀가 많은 사람을 죽게 하였고 그의 집은 지옥의 길이라고 말한다.

[7-14절] 그런즉 아들들아, 나를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壽限)이 잔포자(殘暴者)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모든 악에 거의 빠지게 되었었노라 하게 될까 하노라.

솔로몬은 아들들에게 음녀를 멀리하라고 교훈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음녀를 멀리해야 한다. 음란한 환경에서는 음행에 떨어지기 쉬우므로 성도는 보는 것이나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는 음녀를 멀리하며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

솔로몬은 음녀를 멀리해야 할 이유 네 가지를 말한다. 

첫째로, 존영을 빼앗기게 되므로 멀리해야 한다. 사람의 가치는 경건과 도덕성에 있고 사람은 도덕성을 잃으면 존영을 잃고 수치를 당하게 된다.

둘째로, 수명을 빼앗기게 되므로 멀리해야 한다. 장수(長壽)도 복이다. 그러나 사람이 음녀에게 빠지면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다.

셋째로, 재물을 빼앗기게 되므로 멀리해야 한다. 사람이 자기 손으로 수고한 대가를 받아 누리는 것이 복이다(시 128:2). 그러나 사람이 음행에 빠지면 그가 젊을 때 수고하여 얻은 재물을 다 탕진하며 저축도 못하고 도리어 빚만 지게 될 것이다.

넷째로, 몸이 쇠패할 때 후회하게 될 것이므로 멀리해야 한다. 이 말은 사람이 몸에 병이 들거나 늙어 쇠약해지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은 건강할 때는 잘 모르나 병들어 몸이 심히 쇠약해지면 자신의 지난 날 들의 부도덕한 행위들에 대해 후회하게 될 것이다.

[15-17절]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물이 귀한 시대나 지역에서는 우물을 파서 물을 쓴다. ‘네 우물’이나 ‘네 샘’은 ‘네 아내’를 가리킨다.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라’는 말은 외도하지 말고 정당한 부부관계를 지키라는 교훈이다.

16절에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는 말씀은 두 가지로 번역되고 해석된다. 원문을 의문문으로 보면, 고대 헬라어역과 한글개역이나 대부분의 영어성경(NASB, NIV)처럼 번역되지만, ‘네 샘물들’과 ‘네 물들의 도랑들’(원문)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 대략적인 의미는 외도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문을 보통 문장으로 보면, 옛날 영어성경(KJV)처럼, “네 샘물들을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물들의 도랑들을 거리에 흘러가게 하라”고 번역되며, 이 경우에 ‘네 샘물들’과 ‘네 물들의 도랑들’은 주석가들의 해석대로 ‘네 자녀들’을 가리킬 것이다(Poole, JFB). 부모는 샘의 근원이며 그 자녀들은 작은 샘물들과 여러 줄기의 도랑물들과 같다. 그들은 장차 부모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이 구절은 정상적인 결혼생활에서는 많은 자녀들이 출산되며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많은 자녀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것은 확실히 큰 복이다.

또 17절,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는 말씀도, “그것들[네 자녀들]로 오직 네 것이 되게 하고 타인들이 너와 함께 소유하지 못하게 하라”고 고쳐 번역할 수 있다. 그러면 이 구절은, 우리의 많은 자녀들로 하여금 여러 명의 아버지들을 가지게 하지 말고 한 부모의 자녀들이 되게 하라는 뜻일 것이다.

[18-23절]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팔라스 )[주목하시느니라, 살피시느니라](KB, KJV, NASB).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

솔로몬은 우리에게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고 교훈한다. ‘샘’(마코르 )이라는 말은 15절의 ‘우물’(보르 )과 ‘샘’(베에르 )과 함께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아내를 우물과 샘으로 표현한 것은 자녀 출산의 근원이 됨을 뜻할 것이다. 남편은 아내를 복되게 해야 한다. 그것은 그를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함으로써이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스러운 암사슴, 아름다운 암노루같이 여기고 그를 즐거워하고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해야 한다. ‘연모한다’는 원어(솨가 )는 ‘취하여 비틀거리다’는 뜻이다(BDB, KB). 남편은 아내의 사랑에 취한 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본다. 그는 아내를 학대하지 말고 그에 대한 관심과 존중하는 고운 말씨와 물질적 공급과 함께 다정한 사랑을 나눠야 한다.

솔로몬은 또 남편들에게 음녀를 사랑하지 말라고 말한다. ‘연모한다’는 말은 역시 ‘취해 비틀거리다’는 뜻이다. 성도가 음녀를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시고 판단하시고 징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린다. 그는 미련함이 많고 마음이 어둡고 바른 훈계를 받지 않다가 결국 그의 악으로 인해 패망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성도는 음녀의 미혹을 주의해야 한다. 음녀와의 잘못된 교제는 처음에는 즐거워 보이나 끝에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음녀와 교제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잃고 결국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음란을 멀리해야 한다. 우리는 보는 것과 듣는 것을 조심하고, 오직 지혜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결혼과 부부의 관계를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결혼의 순결함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부부의 관계와 부부의 사랑을 만족하게 여겨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결혼한 자에게 선물로 주신 자녀들의 출산과 건강한 양육과 사회의 진출을 복으로 누려야 한다. 우리는 부부의 관계를 귀히 여기고 결코 음녀를 사랑하지 말아야 하고 육신의 정욕에 이끌려 더러운 음행의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6장: 근면, 교만, 거짓, 간음에 대해

1-19절, 재정 보증, 게으름, 악함, 교만과 거짓

[1-5절]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우리는 이웃을 위하여 재정 보증을 서지 말아야 한다. 이웃을 위해 재정 보증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우리의 재산을 빌려주는 것과 같다. 그것은 큰 위험을 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적 능력을 점검함이 없이 신용카드를 발급함으로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던 일을 기억하며,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때문에 세계적 경제 위기가 발생한 것도 보았다. 성경은 우리가 남을 위해 재정 보증을 서지 말라고 가르친다.

잠언 11:15, “타인을 위해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잠언 17:18,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잠언 20:16,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잡힐지니라.” 잠언 22:26, “[너는]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또 우리는 남을 위해 보증했을 때 빨리 가서 겸손히 간구하여 자신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최선의 대책이다.

[6-11절]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우두머리]도 없고 간역자[감독]도 없고 주권자[왕]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배워야 한다. 개미는 우두머리나 감독이나 왕이 없이도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며시간표를 짜고 계획을 세워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 또 개미는 여름동안에 양식을 모은다. 여름은 덥고 일하기 싫은, 어려운 계절이지만 땀 흘려 일하면 양식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계절이다.

단잠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지만(시 127:2), 너무 많이 자는 것은 게으름이다. 사람은 하루 보통 7~8시간 자는 것이 정상적이며 건강에 좋다고 한다.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이상 자는 것은 게으름일 것이다. 게으름의 결과는 궁핍이다. 사람이 부지런하면 돈도 벌 수 있으나 게으르면 가난해질 것이다.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언 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부지런한 자는 물질적 유여함을 얻을 것이다. 

신약성경도 우리에게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고 교훈한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종용[조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교훈하였고(살전 4:11), 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하였다(살후 3:10).

[12-15절] 불량하고(벨리야알 )[무가치하고] 악한 자는 그 행동에 궤휼한 입을 벌리며[입의 사곡(邪曲)함으로 행하며]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로 알게 하며 그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그러므로 그 재앙이 갑자기 임한즉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당장에 패망하리라.

본문은 ‘무가치하고 악한 자’에 대해 증거한다. 악한 것은 무가치한 것이다. 본문은 무가치하고 악한 자의 특징을 몇 가지 말한다. 

첫째, 그는 입의 사곡함을 가지고 행하는 자이다. 사람의 말은 그 인격을 나타내는데, 악인은 말이 바르지 못하고 비뚤어져 있고 남의 말을 오해하고 곡해하기를 잘한다. 

둘째, 그는 악한 표정과 몸짓을 한다. 그는 눈짓을 한다. 아마 불쾌한 눈짓을 말할 것이다. 또 그는 발로 뜻을 보인다. 그것은 발로 물건을 차거나 땅바닥을 세게 밟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또 그는 손가락질로 알게 한다. 그것은 손가락으로 남을 멸시하거나 대적하는 행위를 가리킬 것이다. 이와 같이, 악인은 표정과 몸짓에서 자신의 악함을 나타낸다. 

셋째, 그는 마음에 악을 품는다. 악인은 항상 마음에 악하고 패역한 일을 계획한다. 

넷째, 그는 다툼을 일으킨다. 사람이 선하고 겸손하면, 그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의 허물을 용서하고 자기의 마음도 평안하고 다른 사람들과 화목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교만하고 악하면, 그는 형제간이라도 다투고 분열할 것이다.

본문은 악인의 결말에 대해서도 증거한다. 악인은 일시적으로 번영할지 모르지만, 재앙이 갑자기 그에게 임할 것이며 그때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즉시 패망할 것이다.

[16-19절]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본문은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 6,7가지를 증거한다. 

첫째는 교만한 눈이다. 교만은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남을 낮게 여기는 것이다. 교만한 눈이라는 말은 교만이 눈빛에서 나타남을 보인다. 교만은 마귀의 죄이다. 우리에게 있는 좋은 것들이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자는 결코 교만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는 거짓된 혀와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이다. 거짓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다(요 8:44).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며(계 21:27; 22:15)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계 21:8).

셋째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이다. 무죄한 자를 미워하고 죽이는 것은 큰 악이다.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악한 계획을 꾸미는 것도 큰 악이다. 그것은 요셉의 형들이나 다니엘의 동료들이나 예수님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죄악이었다.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도 큰 악이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밤중에도 모였고 새벽에도 모였었다.

넷째는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 즉 형제들 간에 불화(不和)를 심고 싸움을 일으키는 자이다. 분쟁은 오해와 거짓말, 미움과 시기와 욕심때문에 생긴다. 야고보는 교인들 간의 다툼이 욕심에서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약 4:1). 성도의 특징은 그것들과 정반대이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마 5:9). 예수님의 제자들의 특징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다(고전 13:5). 성령의 열매는 화평을 포함한다(갈 5:22).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그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다(약 3:17).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남의 재정 보증을 서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각자 자기 능력과 신용 정도로 살고 자기 분수를 넘지말고, 수입에 비해 과도하게 돈을 씀으로 빚을 져서는 안 되며, 또 상대를 위해 손해를 보아도 될 경우 외에는 재정 보증을 서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지혜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시간표를 짜고 생활 계획을 세워서 게으르게 살지 말고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롬 12:11).

셋째로, 우리는 악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입, 눈, 발, 손가락, 마음이 악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서로 화목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진리의 선한 싸움은 힘써 싸워야 한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6, 7가지는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 등이다.

20-35절, 음란과 간음

[20-24절]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켈캇 라숀)[아첨하는 말(KJV), 부드러운 말(NASB, NIV)](BDB)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네 아비의 명령’과 ‘네 어미의 법’은 성경말씀을 가리킨다. 우리는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다니듯이, 열쇠나 스마트폰을 주머니에나 손에 가지고 다니듯이, 성경을 가까이하고 성경말씀을 규칙적으로, 시간 나는 대로, 또 시간을 내어 읽고 듣고 배우고 복습하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하며, 그 말씀을 잊지 말고 기억하고 떠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되다(시 1:2-3). 하나님의 말씀은 유익하다. 그것은 우리가 길 갈 때 우리를 바른 길, 의의 길, 복된 길, 평안의 길, 영생의 길로 인도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잘 때 우리를 보호한다. 그것은 도둑이나 위험한 사고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또 그것은 우리가 자고 깰 때 우리 속에 기억이 나게 하여 우리를 교훈한다. 우리는 새벽예배 때에 성경말씀이 더 잘 깨달아지고 기억됨을 경험한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특히 음녀의 호리는 말 즉 아첨하는 말이나 부드러운 말에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붙듦으로써 음란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거룩함을 지킨다.

[25-29절]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이는]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없게 되지 아니하리라.

성도는 음녀의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아야 한다. ‘그 아름다운 색’이란 여자의 외적 아름다움을 가리키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는 말씀은 그의 눈웃음과 눈짓에 홀리지 말라는 뜻이다. 성도는 사람의 외적, 육체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최고 가치로 여기겠지만, 실상 사람의 외적인 아름다움의 가치는 그렇게 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잠언 31:30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음녀를 조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그것은 경제적 궁핍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한 조각 떡만 남는다는 말은 궁핍을 의미한다. 음녀가 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돈이며, 음녀를 가까이 하면 결국 돈을 탕진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귀한 생명의 상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음녀를 가까이 하면 병을 얻고 건강을 상실하며 육신의 생명을 잃고 영적 생명 즉 구원과 영생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본문은 간음죄를 불에다 비유한다. 그것은 불을 품는 것과 같고 불을 밟는 것과 같다. 남의 아내를 만지기만 해도 죄가 없지 않을 것이다. 간음은 순간적 열정과 쾌락이 있을지 모르나 그 불은 큰 화상을 입을 불, 즉 건강의 상실, 가정의 파탄, 경제의 파탄, 영혼의 파멸을 가져올 불과 같다.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정죄를 받을 것이다.

[30-35절] 도적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적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치는 아니하려니와 들키면 7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어 주게 되리라. [그러나](KJV)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카사르 레브 )[생각이 없는 자]3)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3) ‘지혜 없는 자’로 8번(7:7; 9:4, 16; 10:13; 11:12; 12:11; 17:18; 24:30), ‘무지한 자’로 2번(6:32; 15:21),> ‘지식이 없으므로’라고 1회(10:21) 번역되었다.)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이는] 그 남편이 투기함으로 분노하여 원수를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아무 벌금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 

도둑은 잡힐 것이며 그가 훔친 것을 갚아야 할 것이다. 도둑이 너무 배가 고파서 무엇을 도둑질하면 사람들은 그를 멸시하지 못하고 그의 사정을 동정할 것이다. 그러나 도둑도 그의 도둑질이 드러나면 훔친 것을 충분히 배상해야 한다. 만일 그가 갚을 것이 없다면, 그는 자기몸을 종으로 팔아야 한다. 

그러나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도둑보다 더 큰 해를 받을 것이다. 그는 ‘무지한 자’ 곧 마음이 없는 자, 생각과 지혜가 없는 자이다.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큰 해를 받으니 과연 무지하고 생각이 없고 지혜 없는 자이다. 음행의 대가는 크고 무섭다. 우리는 그것을 피하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는 그의 남편이 투기함으로 분노하여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날에 그 남편은 아무도 용서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 벌금도 돌아보지 않고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않을 것이다. 부부의 관계에서 자기 배우자의 외도보다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등불과 빛이며 생명의 길이다. 23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우리는 성경말씀을 떠나지 말고 가까이하며 그 교훈을 힘써 지켜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음란의 죄를 피하며 의를 행하고 평안을 얻을 것이며 영생에 이를 것이다.

둘째로, 성도는 사람의 외모의 아름다움에 끌리지 말고 그의 인격성과 도덕성을 중시해야 한다. 우리는 특히 음녀를 조심해야 한다. 간음의 죄는 사람의 경제의 파탄, 건강의 상실, 영혼의 파멸을 가져온다. 간음죄를 짓는 자는 무지하다. 그 대가는 매우 크다. 그것은 가정과 부부관계에 큰 파탄을 가져올 것이다. 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7장: 음녀의 길은 사망임

[1-5절]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솔로몬은 자신의 말과 명령과 법을 지혜나 명철과 동일시한다. 그가 말한 ‘내 말’ ‘내 명령’ ‘내 법’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과 법, 곧 성경말씀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와 명철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조심스럽게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지혜와 명철이다(신 5:32).

솔로몬은 그의 아들이 그의 말과 명령과 법을 친근히 하라고 교훈한다. 그는 아들에게 그의 말을 지키며 그의 명령을 간직하라고 말한다.

또 그는 그의 명령을 지켜 살며 그의 법을 그의 눈동자처럼 지키라고 말하며 그것을 기념 반지처럼 그의 손가락에 매며 그의 마음판에 새기라고 말한다. 또 그는 지혜와 명철을 ‘내 누이’ ‘내 친족’이라고 부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친근히 해야 한다.

본문은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고 말한다. 잠언 2:16도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라고 말했고, 또 6:24도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범죄치 않게 지켜준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 저자는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라고 고백했다(119:11).

사람이 죄 짓지 않는 것이 지혜요 복인데, 죄 짓지 않는 길은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는 것이다.

[6-23절]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어다보다가 어리석은 자 중에, 소년 중에 한 지혜[생각](mind) 없는 자를 보았노라.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하여 그 집으로 들어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그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계집이 그를 맞으니 이 계집은 떠들며 완패하며[억세며] 그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모퉁이, 모퉁이에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그 계집이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내 침상에는 화문[꽃무늬] 요와 애굽의 문채[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솔로몬은 그의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어다보다가 어리석은 자들중에, 소년들 중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다. 그 소년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하여 그 집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이었다. 부부관계 외의 남녀관계는 가까이하면 사고가 나기 쉽다. 특히 음녀의 집은 멀리하는 것이 지혜인데, 그 소년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때 창녀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자가 그를 맞았다. 음녀는 단정치 못한 옷을 입고 간교하다. 그는 수다스럽고 억세다. 또 그의 발은 집에 머물지 아니한다. 그는 가정에 충실한 주부가 아니다. 그는 때마다 거리나 광장 모퉁이, 모퉁이에 서서 사람을 기다렸다. 그는 그 소년을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했다. 그 여자는 육신적 쾌락과 사랑을 사모했고 그 상대를 찾았다. 그는 부드럽고 아첨하는 말로 그 어리석은 소년을 유혹했고, 그 소년은 곧 그를 따라 갔다. 그 소년이 그를 따라간 것은 마치 소가 도살장에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기 위해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 같았다. 음녀를 따르는 자는 결국 죽게 되고 멸망케 될 것이다.

[24-27절]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지옥]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솔로몬은 우리에게 지혜의 말에 주의하고 우리의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고 그 길에 미혹지 말라고 말한다. 이것은 잠언에 여러번 나온 교훈이다. 잠언 5:8,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잠언 5:20,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잠언 6:25,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솔로몬은 많은 사람들이 음녀로 인하여 상하여 엎드러졌고 죽음을 맛보았다고 말한다. 옛날 삼손의 실패는 대표적인 한 예이다. 삼손이 블레셋 가사의 한 여자에게 들어가고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여자에게 들어간 것이 실패와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삿 16장).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때때로 성도들도, 심지어 목사들도 음녀로 인하여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하고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음행의 죄는 항상 조심하고 피하고 멀리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솔로몬은 음행의 결과가 죽음이요 지옥 형벌이라고 말한다.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구약성경에서 ‘음부’라는 말(쉐올 )은 ‘무덤’ 혹은 ‘지옥’을 가리킨다. 본문은 ‘지옥’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KJV). 잠언 2:18도 “그[음녀의]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레파임 ‘죽은 자들’)로 기울어졌다”고 말하고, 또 잠언 5:3-5도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死地)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지옥]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음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1-5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눈동자같이, 우리의 손가락의 반지같이 여기고 우리의 마음판에 새기고 우리의 누나같이 친근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한다. 성경말씀을 친근히 하고 마음에 두는 것이 거룩의 길이다. 시편 119:9, 11,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둘째로, 우리는 음녀를 조심해야 한다. 25절,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 

본문은 음녀의 특징들을 열거한다. 

첫째, 음녀는 특유의 옷을 입는다. 그것은 단정하지 못하고 음란한 옷이 분명하다. 

둘째, 음녀는 수다스럽다. 

셋째, 음녀는 억세고 반항적이다. 

넷째, 음녀는 집안 살림에 충실하지 않다. 

다섯째, 음녀는 염치가 없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여섯째, 음녀는 부드럽고 아첨하는 말을 잘한다.

일곱째 음녀는 육체적 사랑을 구한다. 

성도는 이러한 음녀를 조심해야 한다. 그는 음녀에게 미혹된 어리석은 자같이 되지 말아야 한다. 또 성도는 마음과 말과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한다. 여성도는 단정한 옷을 입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2:9에서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단정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라”고 교훈하였다.

셋째로, 우리는 음녀에게 미혹되는 것이 곧 지옥에 들어가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음란은 사람의 죄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9에서 음란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했고,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2:15에서 행음자들이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 밖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요한계시록 21:8에서는 행음자들이 지옥불에 던지운다고 말했다.

성도는 모든 죄를 멀리하되 특히 음행의 죄를 조심하고 멀리해야 한다.

===8장: 지혜가 부른다

[1-11절]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그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가로되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어리석은 자들(페사임 )[단순한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네기딤 )[고상한 것들, 귀한 것들]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이는 다 총명 있는 자의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의 정직히 여기는 바니라.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페니님 )[산호들(BDB), 홍보석(KJV, NIV), 보석(NASB)]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솔로몬은 지혜를 사람처럼 표현한다. 지혜는 길가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사람들을 소리 높여 부르며 단순하여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에게 외친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은 지혜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의 내용은 고상하고 선한 것이며 정직하고 의롭고 진실한 것이다. 지혜의 훈계와 지식은 은이나 정금보다, 진주보다 낫고 사람이 원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낫다.

[12-13절] 나 지혜는 명철(오르마 )[사려 깊음, 신중함](KJV, NASB, NIV)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메짐마 )[분별력](NASB, NIV)을 찾아 얻나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지혜와 지식과 분별력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지혜는 사려 깊음 속에 있다. 지혜는 사려 깊게,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불의와 악과 거짓을 분별하고 의와 선과 진실을 택하는 것이다.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이 악이다.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그것은 또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교만은 대표적 악이다. 잠언 6:16-17은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악 중 첫째가 ‘교만한 눈’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과 계명의 내용은 선과 사랑이며, 그것을 거슬러 행하는 것이 죄와 악이다. 또 패역한 입의 말도 악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의와 선을 거절하며 자기 고집대로 말하는 것이다.

[14-17절] 내게는 도략(에차 )[계획]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비나 )[이해력]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참 지식’이라는 원어(투쉬야 )는 ‘완전한 지혜’라고도 번역된 말로서(잠 2:7; 3:21) ‘건전하고 유능한 지혜’라는 뜻이다. 그것은 어떤 일의 배경과 건전한 진로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리킨다. 지혜 안에는 도략 즉 계획하는 머리와 참 지식이 있고, 또 명철이 있다. 지혜에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 힘이 있다. 왕들은 지혜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며 방백들은 공의를 세우며 재상(宰相)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도 지혜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특히 지혜는 의와 선을 분별하게 하고 그것을 택할 힘과 용기를 준다.

사람은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지혜는 그것을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무시하거나 미워하는 자들은 지혜를 알지 못하며, 그것을 간절히 찾는 자가 만나지만, 그것을 간절히 찾지 않는 자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의(義)와 영생을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만나며 의(義)와 영생을 얻듯이, 우리가 지혜를 간절히 찾으면, 지혜를 만나며 지혜를 얻을 것이다.

[18-21절] 부귀[부와 영광]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순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순은]보다 나으니라.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지혜의 유익과 가치는 크다. 

첫째로, 지혜는 부요를 준다. 지혜는 물질적 부요를 가져오고, ‘장구한 재물’(KJV, NASB, NIV) 혹은 ‘물려줄 재물’(KB)을 가져온다. 

둘째로, 지혜는 영예를 가져온다. ‘부귀’는 부(富)와 존귀 혹은 영예라는 말이다. 다니엘은 지혜로웠고(단 1:17, 20) 존귀와 영예를 얻었다(단 2:48; 5:29). 

셋째로, 지혜는 의(義)를 가져온다. 지혜는 사람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며(딤후 3:15), 또 의로운 인격으로 자라게 한다. 그러므로 지혜는 정금[순금]과 천은[순은]보다 낫다. 잠언 3:14-15,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22-31절]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아몬 )[기술자, 명인, 장인]4)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솔로몬은 지혜를 사람처럼 묘사하며 하나님께서 태초에 지혜를 가지셨고, 창세 전에 지혜가 세움을 입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지혜는 그리스도를 가리켰다고 보인다.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해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고 말씀하셨다(눅 7:35). 4) artificer(기술자, 장인)(BDB), master workman(명인)(NASB, LXX, Syr,Vg), craftsman(장인)(NIV).

창세 전, 즉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않았고 큰 샘들이 있기 전, 산이 세움을 입기 전, 언덕이 생기기 전, 땅도, 들도, 세상의 흙의 근원도 아직 지어지지 않았을 때, 지혜가 이미 났었고 또 하나님께서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 지혜가 거기에 있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 후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었다(요 17:5).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하였다(골 1:1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세 전부터 계셨다.

솔로몬은 또 하나님께서 구름 하늘을 견고케 하시고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고 바다의 한계와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 지혜가 하나님 곁에 있어 명인과 장인이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고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고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골로새서1:16, “만물이 그에게[그에 의해]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 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32-36절]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코트이 )[나를 잃는 자(BDB, NIV), 내게 범죄하는 자(KJV, NASB)]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솔로몬은 자녀들에게 날마다 지혜를 듣고 지키고 기다리라고 교훈하며 또 지혜를 얻는 자가 복되며 지혜를 버린 자가 화가 있다고 말한다. 36절,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 믿기를 거절하면, 그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범죄하는 자요 지혜를 잃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을 얻지 못한 죄인 그대로이며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한 것이다. 지혜는 가장 선한 것이며 정직한 것이며 의이며 진실 혹은 진리이다. 또 지혜는 곧 명철이며 지식이고 근신 곧 분별력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이며 가장 중요한 내용인데, 그것은 곧 악을 미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악 중에 첫 번째 악은 교만이다. 그러므로 지혜는 악을 미워하는 것이며 교만과 패역을 버리는 것이다.

둘째로, 지혜의 가치는 지극히 크다. 지혜는 은이나 정금보다 더 가치있고 진주나 산호보다 더 가치 있다. 지혜는 왕들과 재상들이 그것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많은 일들을 처리한다. 또 지혜는 물질적 부요와 존귀와 영광을 가져오고, 우리에게 의를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고 또 구원 얻은 자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통해 거룩해지고 의로운 인격자가 되게 한다. 실상, 지혜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가지고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자이셨다. 그는 태초에 계셨던 말씀이시며 그로 말미암아 천지만물이 창조되었다(요 1:1, 3). 이 지혜는 우리에게 영생이 된다.

셋째로, 우리는 지혜를 사랑하고 간절히 찾아야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좋은 것 중에 좋은 것은 바로 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적 부요를 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해야 하며, 모든 교만과 악을 버리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고 정직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것을 사모하고 구하여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고 그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믿고 행함으로써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한다.

===9장: 참된 지혜

[1-6절]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그 여종[여종들]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지혜가 집을 짓는 것은 교회의 건립을 상징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고전 3:9). 일곱 기둥을 다듬는 것은 견고하게 집을 짓는 것을 가리킨다.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시는 견고한 집이다

(마 16:18). 지혜는 또 잔치를 준비한다. 바른 교회는 풍성한 잔칫상을 준비한다. 소나 양을 잡아 고기를 굽고 맛있는 포도주를 음료로 준비하듯이, 바른 교회는 하나님의 풍성한 말씀을 준비한다. 이사야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지혜는 여종들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사람들, 특히 어리석은 사람들을 부른다. 여종들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들, 곧 전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구원의 복음을 전한다. 그들이 전하는 내용은, “이리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그것은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또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라”고 한다. 지혜의 말씀을 먹고 마신다는 것(요 6:54-56)은 그 말씀을 믿는 것을 말한다. 또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고 말한다. 지혜의 말씀을 믿는 것이 곧 영생의 길이다. 또 “명철의 길을 행하라”고 말한다. 참된 믿음은 지혜의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7-12절]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테킬라)[시작]이요 거룩하신 자(케도쉼 --강조의 복수형)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우리는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미워함과 모욕을 받고 흠을 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거만한 자는 자신을 높이고 남을 무시하고 멸시한다. 그는 마음이 높기 때문에 남의 교훈이나 충고와 조언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면, 그는 우리를 사랑할 것이다. 지혜 있는 자는 책망을 들으면 잘 받고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고치기 때문에 자기를 책망한 자를 사랑하게 된다. 또 우리가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면, 그가 더욱 지혜로워져서 의로운 사람을 가르칠 것이며 또 그의 학식도 더할 것이다. 지혜 있는 자나 의로운 자는 교훈을 받아 더 지혜로워지고 더 지식이 있는 자가 될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시작이며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데서 시작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데서 자라간다. 경건과 도덕성이 없는 곳에는 참 지혜가 없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와 불경건, 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죄와 부도덕이 가장 큰 어리석음이다. 또 지혜는 유익하다. 지혜는 장수(長壽)의 복을 주며 영생의 복을 준다. 지혜는 지혜자에게 유익을 줄 것이나 거만한 자는 홀로 해를 당할 것이다.

[13-18절] 미련한 계집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객을 불러 이르되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가 그의 곳에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음부[지옥]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지혜가 사거리에서 어리석은 자들을 부르듯이(잠 8:1-5), 그 여종들을 보내어 그들을 생명의 길로 초청하듯이(잠 9:1-6), 미련한 여자도 사람들을 부른다. 미련한 여자는 떠들며 말이 많다. 빈수레가 요란하듯이 어리석은 자는 말이 많다. 그러나 여성의 아름다움은 온유함과 조용함에 있다(벧전 3:3-4). 어리석은 여자는 진리의 지식이 없고 참으로 의롭고 선한 것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미련한 여자는 사람들을 부른다. 마귀의 시험과 죄의 유혹은 자기 길을 바르게 가는 자들에게도 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고전 10:12).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마 6:13). 그 여자는 어리석고 지혜 없는 자를 부르며 유혹한다. 누구든지 지혜를 소유하여 깨어 있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과 죄의 유혹에 넘어갈 것이다.

그 여자는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은밀한 음행을 권유하는 말이다. 은밀한 음행은 순간적으로는 즐거움이 있을지 모르나, 심히 죄악되며 양심에도 거리끼는 것이다. 성도는 은밀한 악을 버리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살아야 한다. 미혹받은 자의 결말은 불행이다. 음행의 죄의 결과는 죽음이요 지옥 형벌이다. 행음자들은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계 21:8).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종들과 성도들을 통해 전해지는 지혜의 말씀을 믿고 생명을 얻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거만함을 버려야 한다. 거만한 자는 지혜가 없다.

셋째로,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 지혜의 시작이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 믿고 구원 얻고 계명 순종하는 것이 참 지혜이다.

넷째로, 지혜자는 특히 음행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행음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의 불못에 던지움을 알아야 한다.

===10장: 지혜, 근면, 사랑, 입술 제어

1-5절, 효도, 의, 근면

[1절]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로 기쁘게 한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 곧 의와 선을 행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계명대로 부모를 공경하며 그들의 교훈에 순종하는 자이다. 그는 아버지를 기쁘게 한다. 아버지를 기쁘게 한다는 말은 어머니를 기쁘게 한다는 말도 포함할 것이다. 자녀가 경건하고 도덕적이게 바르게 살 때 부모에게는 기쁨이 된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실상 참된 효도이다.

물론, 진리의 싸움이 있는 경우가 있다. 부모가 불경건과 부도덕한 일을 요구할 때 자녀와 부모의 싸움과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0:36). 그런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고, 부모에게 순종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진리의 싸움 외에는, 자녀들은 골로새서 3:20의 말씀대로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미련한 아들은 어머니의 근심이다. 물론 아버지의 근심이기도 할 것이다. 미련한 아들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자이다. 자녀가 범죄하면 부모에게 슬픔과 근심이 된다. 그것은 불효이다. 자녀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효도요 부모를 근심시키는 것이 불효이다. 자녀가 범죄하면 그 부모에게 슬픔과 근심이 되는 까닭은, 죄악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징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죄악은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자기 자신과 가정을 망친다.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시는 징벌은 큰 불행이 된다.

[2절]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의리[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다. 불의의 재물이란 불의하게 번 돈을 가리킨다. 불의의 재물은 불의의 결과이며 돈에만 가치를 두고 의에 가치를 두지 않은 결과이다. 불의의 재물이 무익하다는 말은 그 재물이 얼마간 기쁨과 유익을 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마음의 참 평안과 기쁨이나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해가 된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그런 예가 많다. 아간은 여리고 성 점령 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시날 산 외투 한 벌, 은 200세겔, 50세겔 중 금덩이 한 개를 취하였다가 온 가족과 더불어 죽임을 당하였다. 유다 왕 아합은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으나 자신도 결국 죽고 말았다. 엘리사의 시종 게핫시는 거짓말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취하였다가 나병에 걸렸다. 가룟 유다는 은 30개를 위해 주님을 배신했다가 자살하여 창자가 터져 죽었다. 이와 같이,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며 그것을 취한 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며 그 마지막이 비참할 것이다.

그러나 의는 죽음에서 건진다. ‘의리’라는 원어(체다카 )는 ‘의’라는 뜻이다. 의(義)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의는 선하고 진실한 것이다. 그것은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간에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으며 돈을 버는 것을 말한다. ‘죽음에서 건진다’는 말은 의롭게 돈을 벌므로 굶는 일이 없고 또 남을 구제하는 의로운 행위로 가난한 자들과 굶주린 자들을 살린다는 뜻도 될 수 있겠지만, 더 깊고 완전한 의미에서 의는 구원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의는 우리를 사망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였다. 로마서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3절]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며 공의의 판단자이시며 보응자이시다. 그는 의인의 영혼을 주리지 않게 하신다.

그는 의인에게 육신의 양식을 주신다. 다윗은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 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증거했다(시 37:25). 하나님께서는 기근의 때에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어 먹을 것을 공급해주셨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6:33).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심령도 주리지 않게 하신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과 기갈의 때가 있을 것이지만(암 8:11),

의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악인에게는 말씀의 기근과 기갈이 올지라도 의인에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참 양식이며 참 음료이시다(요 6:55).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영원한 생수의 샘물이 되는 성령을 부어주셨다(요 4:14; 7:38-3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신다. 악인에게는 물욕, 정욕, 명예욕, 권세욕 등 세상적인 욕심이 가득하다. 욕심은 죄의 원인이 된다(약 1:15). 악인들은 여러 가지 욕심을 마음에 품지만, 그것들은 그들에게 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화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미워하시고 징벌하시고 물리치시기 때문이다.

[4절]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된다. 사람의 게으름 여부는 그의 손의 움직임 정도에서 나타난다. 게으른 자는 손놀림이 느리다.

잠언 26:15는,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고 말했다. 손이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된다. 가난은 일차적으로 게으름에서 온다. 그러므로 잠언 24:30-34는, “내가 증왕에 [이전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 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교훈하였다.

그러나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된다. 근면한 자는 손이 부지런하다. 우리는 손이 부지런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할 일이 있으면 뒤로 미루지 말고 빨리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잠언 31장에 묘사된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한 여자다. 13절,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5절,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22절,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24절,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고에게 맡기며.” 27절,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손이 부지런한 자는 지혜로운 자이며 부지런함의 열매는 물질적 유여함이다. 잠언 13: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잠언 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5절]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유대 땅에서 봄에는 보리 추수가 있다. 그것은 무교절 기간이다. 또 여름이 시작될 때에는 밀 추수를 한다. 그것은 맥추절 때이다. 여름은 곡식 추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절이다. 그때는 포도와 올리브 등 ‘여름 실과’(삼하 16:1; 암 8:1; 미 7:1; 렘 40:10)도 수확한다. 물론 산지지역은 곡식 추수가 늦가을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여름에 거두는 자 즉 추수하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다. 여름에 일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여름은 덥고 땀나는 계절이다. 그러나 여름은 일해야 할 때이다. 그것은 추수할 때이다. 이 말씀은 비유적인 의미도 가질 것이다. 어린 때와 청소년 때가 심는 때라면 청년의 때는 일하는 때이며 장년의 때는 거두는 때이다. 또 사람이 몸이 건강할 때는 부지런히 일할 때이다. 몸이 쇠약해지고 아플 때가 올 것이다. 시력이 떨어지고 청력도 떨어지고 손발의 근력도 떨어지는 때가 올 것이다. 사람이 연로해지고 체력이 쇠해지면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할 만한 때에, 더운 여름에라도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문자적으로도, 비유적으로도 그러하다.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부모를 기쁘게 할 것이지만, 추수 때에 잠이나 자는 자는 어리석은 아들이요 부모의 근심거리이며 수치이다. 여름에 일하며 추수하는 자는 물질적 유여함도 누리고 부모님을 물질적으로 잘 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추수 때에도 일하지 않고 잠이나 자는 아들은 물질적으로 궁핍할 것이며 부모님을 물질적으로 섬길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부지런하게 자기 일을 하며 사는 것은 미덕이지만, 자기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른 것은 수치스런 악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지혜로운 자녀는 부모를 기쁘시게 하지만, 미련한 자녀는 부모에게 근심이 된다.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효도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효도하도록 지혜롭게 키워야 한다.

둘째로, 의는 사람을 죽음에서 건지고 그 영혼을 주리지 않게 한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과 영생의 구원을 얻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해 죄악된 몸의 원하는 바를 버리고(갈 5:16) 성경말씀에 순종함으로 실제로도 의롭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한 자가 되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11, “조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또 우리는 일할 만한 때에 힘써 일해야 한다. 우리는 건강이 있을 때, 시력, 청력이 있고 손과 발에 힘이 있을 때, 성경도 부지런히 읽고 기도와 전도와 봉사도 많이 하고 가정의 일과 자기 직업의 일에도 근면해야 한다.

6-11절, 의인과 악인

[6절]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거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한다. 의인은 의로운 생각을 하는 자이며 거기에서 의로운 말과 행위가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머리에 복을 주시고 사람들도 그를 축복할 것이다. 그는 영적인 구원의 복을 받을 것이며 또 육적인 복, 곧 건강과 물질과 자녀들의 복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28장에서 그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의인들에게 모든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1-6절).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다. ‘독’이라는 원어(카마스 )는 ‘난폭함, 폭력’(KJV, NASB, NIV)이라는 뜻이며, ‘머금다’라는 원어(카사)는 ‘감추다, 뒤덮다’는 뜻을 가진다. 악인은 항상 거칠고 난폭한 말을 잘 한다는 뜻일 것이다. 말은 사람의 인품을 나타낸다. 악인의 악함은 그의 악한 말에서 드러난다. 주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2:34-35). 사도 바울은 사람의 악함을 증거하기를,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했다(롬 3:13-14).

[7절]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한다”는 원어(제케르 찻디크 리베라카 )는 “의인에 대한 기억은 복되다”는 뜻이다(KJV, NASB). 의인은 죽은 후에도 그에 대한 기억이 복되다.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나라로 올린 에녹,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았던 노아,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린 아브라함,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형통했던 요셉, 하나님의 사람 모세, 믿음과 순종의 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 후대의 모든 왕들의 모범이었던 다윗, 불의 선지자 엘리야, 모범적이었던 유다 왕 히스기야, 죽음의 위험을 무릅썼던 경건한 다니엘과 세 친구들,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사도인 바울,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 등, 그들에 대한 기억은 성도들에게 교훈과 본과 위로가 된다.

그러나 악인의 이름은 썩을 것이다. 처음 살인자 가인, 불신앙적인 보고를 했던 열 정탐꾼, 모세를 대적했던 고라와 250명 족장들, 의로운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 바알 숭배자 아합 왕, 많은 우상숭배를 했고 의인들의 피를 많이 흘렸던 므낫세 왕,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주님을 배신했던 가룟 유다 등, 그들의 이름은 기억하기도 싫은 부끄러운 이름으로 기억될 뿐이다.

[8절]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리라.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을 받는다. ‘마음’은 영혼의 활동과 표현이며 지정의 곧 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총체이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다. ‘명령들’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명령들과 교훈들을 가리킨다. ‘명령들을 받는다’는 말은 명령들을 즐거이 듣고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순종한다. 즉 그들은 의와 선을 실천하는 것이다.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다(창 6:22).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창 22:3).

그러나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한다. ‘입이 미련한 자’라는 원어(에윌세파사임 )는 ‘수다스러운 미련한 자’(KJV, NASB)라는 뜻이다. 미련한 자는 말들로 자신의 미련함을 나타낸다. 미련한 자는 말이 많은 편이다. 또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묵묵히 순종치 않고 입으로 그것을 부정하고 반대하고 대적하고 비판하고 심지어 조롱한다. 그러나 이렇게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할 것이다.

[9절]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라는 원어(홀레크 밧톰 )는 ‘온전하게 행하는 자’라는 뜻이다 (NASB). ‘온전하게 행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바르고 정직하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도덕적 온전함이다. ‘걸음이 평안하다’ 는 원어(옐레크 베타크 )는 ‘안전하게 행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죄와 마귀의 시험과 재앙이 많고 장차 어떤 어려움을 당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온전하게 행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안전함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의 악과 사탄의 시험과 질병과 재난으로부터 건지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날 것이다. ‘굽은 길’은 하나님의 말씀의 정로를 이탈하여 사람의 죄성을 따라가는 길이다. 그러면서도 악인은 그 길을 숨긴다. 그는 소박하거나 솔직하지 못하고 거짓되이 자기 행위를 숨긴다. 그러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날 것이다. 우선, 그의 죄가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얼마나 죄악된지 그 자신에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 알게 하실 것이다. 또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징벌도 드러날 것이다. 굽은 길로 행하는 악인은 패망할 것이다.

그는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것이며 경제적 파탄을 경험할 것이다.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일들이 드러나 수치를 당할 것이며 마침내 불행하게 죽을 것이다.

[10절] 눈짓하는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느니라.

‘눈짓하는 자’라는 원어(코레츠 아인 )는 ‘눈을 찡그리는 자’라는 뜻이다. ‘눈을 찡그리는 것’은 남에 대한 미움과 멸시의 마음을 나타낼 것이다. 사람의 눈은 마음의 거울이다. 사랑과 동정의 마음은 그 눈빛에 반영되며, 교만한 마음과 남을 미워하고 멸시하는 마음도 그 눈에 나타날 것이다. 악한 자는 남을 향해 눈을 찡그린다. 그것은 이웃을 멸시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그의 눈을 찡그리는 사람은 근심을 끼친다. ‘근심’이라는 원어(앗체벳 )는 ‘상함, 고통’이라는 뜻이다(BDB). 이웃을 향해 눈을 찡그리는 것은 이웃의 마음에 상함과 고통을 준다. 개도 주인이나 주인집 손님이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안다.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우리의 눈빛이나 표정은 상대방에게 상함과 고통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시편 35:19에 보면, 다윗은 기도하기를, “무리하게 나의 원수된 자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로 눈짓하지[눈을 찡그리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말하였다.

또 입이[수다스러운] 미련한 자는 패망한다. 같은 말씀이 8절에도 있다. 말은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말에 온전한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약 3:2). 미련한 자의 미련함은 그의 말로 나타난다. 미련한 자는 대체로 듣기보다 말이 빠르고, 미움의 말, 남에 대한 비난의 말, 조롱과 멸시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그 입의 미련함으로 패망할 것이다. 사람이 남을 향해 눈을 찡그리는 것은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정도이지만, 악한 말은 자신을 패망케 한다.

[11절]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고 표현된다. 성경에서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를 가리킨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그의 교훈대로 행하는 자들은 의인이라 불린다. ‘의인의 입’ 곧 의인들의 말하는 입은 하나님을 증거하고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구원을 증거한다. 그의 입은 회개와 믿음을 전하며 의를 전하고 순종과 선행을 권한다. ‘생명의 샘’이라는 말은 생명수를 내는 샘, 곧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는 샘이라는 뜻이다. 주 예수께서 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4:14). 의인의 말은 사람을 살리는 말 곧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말이다. 그러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다고 표현된다. 이것은 이미 6절에 서도 나온 말씀이다. ‘머금다’는 원어(카사 )는 ‘감추다, 뒤덮다’는 뜻을 가진다. ‘독’이라는 원어(카마스 )는 ‘난폭함, 폭력’이라는 뜻이다. 악인은 독하고 난폭한 말을 마구 내뱉는다는 뜻일 것이다. 악인의 악함은 그의 입의 말에서 드러난다. 그는 남을 상하게 하고 해치고 죽이는 독한 말, 곧 욕설과 독설과 비방의 말을 마구 내뱉는다. 그는 사람을 살리기는커녕 산 사람을 죽이는 자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결코 악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본문은 악인에 대하여 증거한다. 악인의 입은 거칠고 강포한 말로 가득하다. 또 그는 수다스럽고 미련한 자이다. 그는 성경말씀을 묵묵히 순종하는 대신 말만 많다. 또 그는 이웃을 향해 눈을 찡그리는 자이다. 그것은 남을 미워하고 멸시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악인들은 패망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악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이름은 사람들이 기억하기도 싫은 이름이며 단지 부끄러운 이름으로 기억될 뿐이다.

둘째로, 우리는 의인이 되고 의인으로 살다가 가야 한다. 의인은 마음이 지혜로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다 믿고 받아들이고 지키고 행하려는 자이며 비록 완전하지는 않아도 상당히 바른 길을 걷는 자이다. 또 그의 입은 생명의 샘과 같아서 그는 말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도 한다. 오늘날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의인이다. 의인은 복되다. 여러 가지 어려운 일과 각종 재앙과 마귀의 시험이 많은 이 세상에서 의인의 삶은 안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이 세상 사는 동안 필요한 영육의 필요들을 채워주시고 또 각양의 위험한 일들로부터 그를 보호해주실 것이다. 믿음으로 산 의인들은 죽은 후에도 사람들에게 복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12-16절, 사랑, 지혜, 의

[12절]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미움은 다툼을 일으킨다. 미움은 교만과 시기와 욕심에서 나온다. 사람은 교만할 때, 시기할 때, 욕심 부릴 때 남을 미워하고 또 다툰다. 잠언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고린도교회의 시기와 분쟁과 다툼은 교인들이 죄성을 따라 행하였기 때문에 생겼었다(고전 3:3). 야고보는 교인들 중에 있었던 다툼은 그들 속에 있는 욕심에서 난 것이라고 지적하였었다(약 4:1-2). 사람의 교만과 시기와 욕심에서 상대에 대한 미움이 나오고 미움이 있는 곳에 다툼이 일어난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 사도 베드로도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했다(벧전 4:8). 하나님의 은혜로 성품이 비교적 착한 자도 있지만, 사람은 구원 얻을 때 겸손과 착한 마음과 긍휼의 마음과 사랑을 가지게 된다.

사도 바울이 증거한 대로, 사랑은 온유하고 투기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전 13:4-7).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이며(마22:37-40; 요 13:34), 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모범이다(요일 4:10).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의 크고 많은 죄들을 용서하셨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1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것과 같다 (마 18:21-35). 흠과 부족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사람이 사랑이 있으면 다툴 것이 없고 미움이 있을 때 싸우며 다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단합해야 한다(엡 4:32).

[13절]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명철한 자의 입술에 지혜가 있다. 지혜는 심령과 인격의 문제이며 그것은 말로 표현된다. 어리석은 자는 입이 미련하고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지혜의 말, 곧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말을 한다. 잠언 10:11,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잠언 10:21,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본문은 지혜 없는 자에 대해 말한다. ‘지혜 없는’이라는 원어(카사르레브 )는 ‘마음이 없는’이라는 말로서 ‘생각이 없는, 깨달음이 없는, 양심이 없는, 지혜가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다(BDB). 한글개역에서는 주로 ‘지혜 없는’이라고 번역하였다. 바른 생각이 없고 선한 양심이 없고 바른 깨달음이 없는 자가 지혜 없는 자이다.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다. 채찍은 하나님의 징계와 징벌을 가리킨다. 그것은 질병이나 경제적 손실과 궁핍이나 환경적 어려움 등을 가리킨다. 성경은 어린아이를 채찍으로 징계함으로 교육하라고 가르친다. 잠언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지혜없는 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통하여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고치고 징계의 연약에서 회복된다. 욥기 5:18-20, “하나님은 아프게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救贖)하실 터인즉.” 시편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14절]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한다. 지식은 하나님과 사람과 사물들에 대한 바른 생각을 말한다. 지식은 경건과 의와 선의 길을 보이며 사람이 그 길로 가면 영생에 이른다. 지혜와 지식은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그것들은 세상의 금이나 은이나 그 어떤 보석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

(잠 3:13-18).

‘간직한다’는 원어(차판 )는 ‘쌓는다, 저장한다, 저축한다’는 뜻이다.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마음 속에 저축하였다가 필요한 때 사용한다. 예수께서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2:35). 사람들은 세상에서 돈을 저축하는 것을 크게 여기지만, 실상 지혜와 지식을 저축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잠언 8:10-11,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본문은 미련한 자의 입과 말에 대해 말한다. 미련한 자는 무지하고 불경건한 말,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 순종치 않는 말, 덕스럽지 않은 말, 파괴적인 말을 잘 한다. 잠언 12:18은,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고 말한다. 미련한 자의 말은 한마디로 죄악된 말이며, 그 자체가 죄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말은 멸망에 가깝다. 미련한 자의 말은 죄악되며, 만일 그가 그 죄를 회개치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악한 말을 지적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셨다(마 12:36-37). 우리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15절]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패망이니라.

본문은 부자의 재물이 그의 견고한 성이라고 말한다. 견고한 성은 원수들이 공격하기 어렵고 상당히 안전한 곳이다. 부자는 돈이 많기 때문에, 오늘날 말로 하면, 집에 경비장치를 설치하고 경호원과 경비견까지 두므로 상당히 안전한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나 부자는 자기나 돈을 의지하고 교만하고 방탕하기 쉽다. 주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9:24). 사도 바울도,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했다(딤전 6:9-10).

본문은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패망이라고 말한다. 원문을 다시 번역하면, “가난한 자들의 멸망은 그들의 궁핍이니라”이다(BDB, KJV,NASB). 사람이 궁핍하면 남에게 구걸하게 되고 남의 종이 되고 심하면 굶어죽고 낭패를 당한다. 가난을 참는 것은 미덕이지만, 가난 자체가 복은 아니다. 재물이 넉넉함은 확실히 복이며 궁핍은 화이다.

그러나 복과 화는 다 하나님께 달려 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토지 소산의 복, 짐승 새끼의 복,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의 복, 자녀의 복, 건강의 복, 사회적 평안의 복을 주기도 하시고 거두시도 하신다. 오늘날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직장과 사업의 복, 은행 잔고의 복, 시장 바구니와 냉장고의 복, 자녀의 사회 진출과 행복의 복, 건강의 복, 사회적 평안의 복을 주기도 하시고 거두기도 하신다.

[16절]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본문은 의인의 수고가 생명에 이른다고 말한다. 구약시대에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고 제사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이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을 예표한다. ‘수고’라는 원어(페울라 )는 ‘행위, 수고, 품삯’이라는 뜻이다.

의인의 수고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 순종으로 행하는 것,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행하는 것, 정당하게 수고하여 받은 품삯 등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보응]하신다”고 말했고(롬 2:7), 또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말했다(롬 6:33). 또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말했다(고전 15:58). 주께서는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다(계 2:10).

본문은 또 악인의 소득이 죄에 이른다고 말한다. ‘소득’이라는 원어(테부아 )는 ‘열매, 소산, 소득’이라는 뜻이다. 악인의 소득이란 불경건하게 번 돈, 불의하게 번 돈, 거짓되게 번 돈을 가리킨다고 본다. ‘죄에 이른다’는 말은, 그렇게 번 돈이 죄악되며 자신에게 복이 되지 않고 도리어 화가 된다는 뜻이다. 잠언 16:8,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20:17,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자갈]가 가득하게 되리라.”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미움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만, 시기, 욕심, 미움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며 상대의 허물을 덮어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와 지식과 명철을 간직하고 저축하여 필요한 때에 지혜롭고 지식 있는 말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탐심을 가지고 부자 되기를 원해서는 안 되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적 여유의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가난과 궁핍은 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물질적 여유를 주실 것이다.

넷째로,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른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그의 계명대로 사는 자들은 영생에 이를 것이다.

17-21절, 의인의 입

[17절]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가느니라.

‘훈계’라는 원어(무사르 )는 ‘훈계’라는 뜻과 함께 ‘징계’라는 뜻도 가진다(BDB).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교리 뿐만 아니라, 또한 생활 교훈도 포함한다. ‘훈계를 지킨다’는 말은 훈계와 징계를 달게 받아서 인격과 삶이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해지는 것을 말한다.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한다. 훈계를 지키는 것은 의(義)이며 의(義)의 결과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들은 의롭게 살다가 영생에 이를 것이다. 로마서 6:13,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22,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그러나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다. ‘징계’라는 원어(토카캇 )는 ‘책망, 징계’라는 뜻이다(BDB). 이 단어는 ‘훈계’라는 말(무사르 )과 거의 동의어이다. 책망과 징계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나 어려운 환경, 곧 질병이나 궁핍이나 사회적 곤란 등을 통해서 온다.

‘버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책망이나 징계를 달게 받지 않고 무시하고 싫어하고 거절하는 것을 말한다. 책망과 징계를 버리는 자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한다. 그러나 책망과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고 있다. 그는 인생의 정로(正路)를 벗어나 패역의 길로 가고 있고 마침내 실패와 멸망에 이를 것이다.

[18절] 미워함을 감추는 자는 거짓의 입술을 가진 자요 참소하는 자는 미련한 자니라.

정당한 미움이 있다.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악을 미워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고 그의 허물을 용서하고 모든 일을 다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러나 정당하지 않은 미움이 있다. 가인이 아벨을 미워한 것이나,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것이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한 것 등은 부당하고 악한 미움이다. 형제에 대한 미움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다. 형제에 대한 미움은 살인이며 그것은 아직도 그가 어둠과 사망에 있다는 증거이다(요일 2:9; 3:14-15).

미워함을 감추는 자는 거짓의 입술을 가진 자이다. 속으로 미워하면서 겉으로 사랑하는 척하거나 아첨하는 것은 거짓일 뿐이다. 그것은 미움에 거짓의 악을 더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진실한 말을 해야 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마음에 없는 아첨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참소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다. 참소(讒訴)는 거짓말로 남을 비방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웃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악한 행위이다. 그것은 악하고 미련한 일이다. 왜 그런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웃에 대한 비방을 금하셨기 때문이다. 레위기 19:16,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라.” 우리는 이웃보다 더 큰 결함을 가진 자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눈의 들보를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의 띠를 빼려 해서는 안 된다(마 7:1-5). 선한 인격은 남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다.

둘째로, 거짓된 비방은 거짓말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거짓말하는 것은 지옥 갈 큰 죄악이다(계 21:8). 그러므로 참소하는 것은 거짓말로 남을 해치는 이중적인 큰 죄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자는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를 피할 수 없다.

[19절]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사람의 마음의 생각은 그 인격을 나타낸다. 잠언 23:7,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사람의 됨됨이]도 그러한즉.” 또 사람의 말은 그의 마음과 인격의 표현이다.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하셨다(마 12:34-35). 사람의 인격적 성숙의 정도는 그의 말로 알 수 있다. 야고보서 3:2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온전한 사람은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한 말을 한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렵고 실수하기 쉽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정확하지 않은 말, 경솔한 말, 감정적인 말, 덕스럽지 못한 말을 하기 쉽다. 말의 실수는 죄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입술을 크게 벌린 자에게 멸망이 온다고 말하며 또 그런 자를 사귀지 말라고 말한다(잠 13:3;20:19). 주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36-37).

그러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다. 생각이 말로 표현되기 때문에 마음을 지키고 입술을 제어하면 말 실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4:23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했고, 잠언 17:27은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고 했다. 또 야고보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말했다(약 1:19). 우리는 말을 아끼는 자가 되어야 한다.

[20절] 의인의 혀는 천은(天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자를 가리킨다. ‘천은’(天銀)은 품질이 가장 좋은 은을 말한다. 의인의 혀는 천은(天銀)과 같다. 의인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말을 할 것이다. 그의 말은 가치 있는 말이다. 의롭고 선한 말이 가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다.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부도덕하게 사는 자이다. 그에게서는 악하고 강포한 말, 자신을 높이며 자랑하는 말, 남을 비방하는 말, 또 거짓된 말이 나올 것이다. 그의 마음은 가치가 적다. 사람의 가치는 경건과 도덕성에 있다. 경건하고 정직하고 선한 사람이 가치 있고 훌륭한 사람이다.

[21절]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한다. ‘교육한다’는 원어(라아 )는 ‘[양을] 먹인다, 인도한다’는 뜻이다.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사람은 여러 사람들 곧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가르치고 그들을 진리의 지식으로 먹이고 선한 길로 인도한다. 그가 주일학교 교사가 되면,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치고 잘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는다. 미련한 사람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자이며 지식이 없다. ‘지식이 없다’는 원어(카사르 레브)는 ‘마음이 없다,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미련한 자는 세상적 지혜와 지식은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없는 자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는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언행(言行)이 나온다. 그런 언행은 죄악되며 그들은 마침내 죽음과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다. 미련한 자는 다른 사람을 살리고 유익케 하기커녕 자기 자신 하나도 살리지 못한다. 그는 영생의 길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훈계와 징계를 잘 받고 지켜야 하고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바른 길이며 생명 길이다.

둘째로, 우리는 거짓으로 남을 사랑하거나 아첨하지 말고 또 거짓으로 남을 비방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참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입술을 제어하고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말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가급적 말수를 줄여야 한다. 그것이 지혜이다.

넷째로,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고 여러 사람을 교육한다. 우리는 남에게 유익을 끼치고 선한 길로 인도하는 말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2-26절, 하나님의 복, 의인의 삶, 게으름

[22절]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께서는 복을 주신다. 그의 복은 일차적으로 영적인 복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구원과 영생의 큰 복을 주셨다. 에베소서 1:3-4,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러나 하나님의 복은 또한 물질적 부요도 포함한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셔서 창성케 하셨고 우양과 은금과 가축떼를 많이 주셨다(창 24:35). 그는 이삭에게도 복을 주셔서 창대하고 왕성하고 거부가 되게 하셨고 양과 소가 많은 떼를 이루게 하셨다(창 26:12-14). 그는 모세를 통해 신명기 28장에서 토지소산의 복, 우양의 새끼의 복, 떡반죽 그릇의 복 등을 약속하셨다. 잠언 3장도, 지혜를 얻는 자가 복되며 그 오른편에 장수(長壽)가, 그 왼편에는 부귀 즉 부요와 존귀가 있다고 말했다(16절). 물질적 복도 하나님의 복이다.

또 하나님의 복은 근심이 없는 복이다. 근심은 죄 때문에 왔다. 그러므로 죄사함 받고 의롭게 사는 자에게는 근심이 사라지고 평안이 넘친다. 시편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요한복음 14:27,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3절]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다. ‘낙을 삼는 것’(세코크 )이라는 원어는 ‘웃음, 조롱거리, 장난’ 등의 뜻이다(BDB). 

미련한 자는 악을 행하는 것을 장난으로 여긴다. 그는 악한 일을 심각한 잘못으로 여 기지 않고 장난거리로 생각하며 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미련한 일이다. 왜냐하면 악행은 하나님 앞에서 죄이며 하나님께서 악행을 미워하시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시고 징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철한 자는 지혜로 기쁨을 삼는다. 지혜자는 자신의 악이나 남의 악까지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고 멀리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리라[돌아보리라]”고 말씀하셨고(사 66:2),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서는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고 말씀하셨다(겔 9:4).

지혜자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의와 선을 즐거워하고 내세를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일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즐거워한다. 시편 119편 저자는,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라고 말했다(시 119:24).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붓는 제물]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라”고 말했다(빌 2:17). 사도 요한은,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라고 말했다(요삼 3-4).

[24절]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한다. 악인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질병과 궁핍과 사고 등으로 나타난다. 왜 두려워하는가? 양심 때문에 그렇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악한 하만은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의 제안대로 집뜰에 50규빗(약 25미터) 되는 높은 나무를 세우고 다음날 왕에게 유대인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기를 구하려 계획하였다. 그러나 그는 왕의 명으로 오히려 모르드개에게 왕복을 입히고 왕관을 씌우고 그를 왕의 말에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에게 이렇게 할 것이라고 외치게 되었다. 그는 마음이 상하여 집으로 급히 돌아와 친구들에게 그 일을 고했다. 그때 그들 중에 지혜로운 자와 아내 세레스는,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복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고 말했다(에 5:14-6:13). 그런데 그들이 두려워한 그 일이 그대로 하만에게 닥쳐왔다.

그러나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의인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의롭고 선한 것을 원할 것이며 그의 소원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 시편 103:5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신다고 말한다. 또 잠언 16:3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말하였다. 주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7).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2:13에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했다.

[25절]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진다. 회리바람은 세상에서 만나는 큰 환난을 가리킨다. 토네이도 같은 회리바람은 한 마을을 황폐케 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때때로 전쟁이 있고 지진과 기근이 있고 전염병이 있다. 그것이 회리바람처럼 한 지역을 지나가면 많은 인명피해가 생긴다. 세계적 전염병이나 경제 파탄은 회리바람이다. 그런 것들은 악인을 징책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악인은 그 회리바람으로 멸망한다. 시편 1:5는 악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인은 영원한 기초와 같다. 사람은 집을 지을 때 먼저 기초를 튼튼히 만든다. ‘영원한 기초’라는 표현은 ‘흔들리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기초’라는 뜻이다. 시편 125:1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라고 말하였다. 의인에게도 고난은 있으나 그는 낙망치 않고 요동치 않고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실 것이다. 시편 91:3, 5-7,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

이로다,”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 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피할 길을 주신다(고전 10:13).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극심한 고난 중에도 구원을 체험했고(고후 1:8-10) 낙심치 않는다고 고백했다(고후 4:8-9). 또 고난은 성도에게 유익이 된다. 그것은 거룩하고 믿음 있는 인격으로 단련시킨다(롬 5:3-4).

[26절]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식초가 이에 닿으면 이가 시리고 아플 것이며, 연기가 눈에 들어가면 눈이 따갑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게으른 자는 그를 부리는 사람, 즉 그를 보내고 그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에게 그러할 것이다. 그를 보낸 사람은 그 게으른 자로 인해 몹시 불편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고 싶지 않고 보기도 싫을 것이다. 그는 그 게으른 자에게 칭찬이나 위로 격려의 좋은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 남자는 남자로서 자기의 일, 자기의 직장, 자기의 사업에 충실하고 근면해야 한다. 여자는 여자로서 집안의 일, 가족들의 건강을 생각한 식사 준비, 위생적 청결을 위한 청소와 빨래, 자녀 출산과 양육 등을 포함하여 자기의 일에 충실하고 근면해야 한다. 자녀들은 공부할 때 열심히 공부하고 몸의 건강을 위해서 적절히 운동도 해야 한다.

또 성도는 성경 읽기, 기도, 성수 주일과 기타 집회참석, 사랑, 전도, 봉사 등의 일에도 부지런해야 한다. 또 직분자는 각자 맡은 직무를 따라 하나님 앞에서 부지런하게 살고 또 충성해야 한다. 로마서 12:11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교훈한다.

물론, 정서적 존재인 사람에게 어느 정도 휴식과 기분 전환이 필요하며, 음악, 독서, 운동, 원예 등의 취미생활도 가능하다고 본다. 마가복음 6:31에 보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람의 휴식이나 기분 전환 또는 취미생활이 너무 지나치면 게으른 일이 될 것이다. 성경은 게으른 생활을 책망하고 부지런한 생활을 교훈하고 권장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만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의 복을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영적인 복뿐 아니라, 육신적인 복, 물질적인 복, 환경적인 복도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육의 복을 항상 감사하고 사모하며 그 복과 평안 가운데 살기를 원한다.

둘째로, 우리는 악하게 살지 말고 의인으로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악을 행하는 것을 장난으로 여기지 말고 그것을 두려워하고 멀리해야 한다. 우리는 의인으로만 살고 지혜로 즐거움을 삼는 명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섬기며, 또 그의 계명대로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한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며 우리는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게으른 자가 되지 말고 범사에 부지런한 자가 되어야 한다. 게으른 자는 일을 시키는 사람에게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다. 근면은 하나님의 뜻이다. 에베소서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로마서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27-32절, 의인의 복된 삶, 의인의 입

[27절]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長壽)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연세는 짧아지느니라.

사람이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한다. 사람들은 젊을 때 죽는 것보다 오래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한다. 생에 대한 애착은 본능적인 것 같다. 사람들은 장수의 비결로 맑은 공기, 소식(小食), 적당한 노동, 평안한 마음 등을 꼽는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장수의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 하고 그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다. 성경은 율법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장수를 약속한다.

신명기 4:40,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신명기 5: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신명기 11:8-9,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장수는 심령의 평안, 몸의 건강, 경제적 안정, 또한 환경적 평안을 포함한다. 장수의 복은 결국 영생을 포함한다.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진다. 악인은 병으로 일찍 죽거나 전쟁, 기근, 사고 등의 재앙으로 일찍 죽는다. 에스더서의 하만은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을 죽이려 하다가 자기가 죽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개에 팔았다가 자살해서 죽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의 땅을 팔아 그 값의 일부를 감추고 거짓말했다가 즉사(卽死)하였다.

[28절]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룬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계명을 순종하는 자이다. 의인의 소망은 이루어지며 그것은 즐거움이 된다. 잠언 10:24는,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12에서 사도 바울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말하였다.

성도의 소망은 주의 재림과 몸의 부활, 천국과 영생이다. 베드로전서 1:3-4,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 중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기뻐한다. 로마서 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러나 악인의 소망은 끊어진다. 악인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계명을 어기며 악하게 사는 자이다. 악인의 소망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이루어지지 않을 헛된 꿈이다.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어리석은 부자의 헛된 소망과 같다. 그 부자는 큰 풍년을 맞아 그의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그의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고 계획했고 또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스스로 말하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다(눅 12:16-21). 그의 소망은 헛된 꿈에 불과했다.

[29절]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온전한] 자에게는 산성[요새]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여호와의 도는 정직한 자에게 산성이다. ‘여호와의 도’는 하나님께서 교훈하신 생활 규범을 가리킨다. ‘정직한 자’라는 원어(톰 )는 ‘온전한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며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산성’(마오즈 )은 ‘요새, 피난처’라는 뜻이다. 그것은 환난으로부터, 원수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지키는 요새와 피난처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지키며 순종하는 정직한 자에게는 요새와 피난처 같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안전의 비결이다.

주께서는 산상설교의 결론에서도 주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라고 하셨다(마 7:24-25). 홍수와 같은 환난이 닥쳐와도,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호와의 도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다. 악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그것은 남을 해치는 것이다.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행동이 악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활 규범은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 된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악을 정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지키는 자에게는 안전을 보장하지만, 그 말씀을 어기는 자에게는 멸망의 신호인 것이다. 행악자는 결국 망할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도 질병이나 기근이나 전쟁 같은 재앙으로 인해 망할 것이지만, 죽은 후에 지옥의 고통을 당할 것이며, 마지막 심판 날에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30절]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무트 )[요동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않는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대로 사는 자를 가리킨다. 신약 성도는 주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의인이다. ‘이동하다’는 원어(무트 )는 ‘요동하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있지만, 의인은 영영히 요동하지 않는다.

본장 25절도,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고 말하였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의인의 요동치 않음을 증거했다. 시편 125편의 저자는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라고 고백했다(시 125:1).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 말했다(고전 1:8). 또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말했다(빌 1:6). 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했다(요일 5:4).

그러나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된다. 땅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이며 원래 의인들의 거주지로 창조되었다. 악인들이 현재 살고 있지만 그들은 땅에 거주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며 어느 날 땅에서 제거될 자들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편 37편에서 성령의 감동 가운데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고 말했다(시 37:22). 솔로몬도 잠언 2:21-22에서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고 말했다.

[31절]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낸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의롭게 사는 자의 입에서는 지혜의 말이 나온다. 그것은 그 영혼이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신약 성도는 거룩하게 변화된 새 성향을 가진 자이다. 에스겔 36:26에서, 하나님께서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과연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신약시대에 성취되었다. 디도서 3:4-6,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마 12:34). 샘은 한 구멍으로 단물과 쓴물을 낼 수 없다(약 3:11). 성도의 변화된 마음은 지혜의 말, 곧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말을 말한다.

그러나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다. 패역한 혀는 창조주 하나님을 거스르는 혀, 하나님의 계명을 대적하고 그의 교훈을 비방하는 혀, 이웃을 욕하고 비방하는 혀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혀이며 사람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혀이다. 주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5:22). 그는 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마 12:36-37). 패역한 혀는 정죄를 당할 것이다.

[32절]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안다. ‘기쁘게 할 것’이라는 원어(라촌 )는 ‘선의(善意), 호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의인은 다른 사람에게 선하고 호의적이고 기쁨을 주는 말을 할 줄 안다는 뜻이다. 선하고 호의적인 말은 아첨의 말이 아니고 온유하고 겸손함에서 나오는 선한 말, 너그럽고 관용하는 말,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는 말, 또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가리킨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교훈하였다(엡 4:29). 우리는 남에게 선하고 호의적인 말을 하는 입술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한다. 악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무시하고 불순종하고 교만한 자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감사하지 않으며 불평 원망하고 반항적인 말을 한다. 또 그는 다른 사람을 향해서도 거칠고 난폭한 말을 한다. 그는 다른 사람을 미워하며 시기하고 욕하며 비방하고 정죄하며 저주하기까지 한다. 로마서 3:13-14,“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의인은 장수하며 소망을 이룬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면 장수하지만 악인은 단명(短命)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의인들은 마침내 영생에 이른다. 또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진다. 의인들은 주의 재림과 천국과 영생을 소망하며 현세와 내세에서 즐거움을 누린다.

둘째로, 온전한 자는 요동치 않는다. 하나님의 도가 온전한 자에게는 산성이지만,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다. 온전하게 사는 것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을 피하는 길이다. 그런 의인은 영원히 요동하지 않지만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한다. 천국은 의인들의 영원한 거주처이다.

셋째로, 우리는 의인의 입을 가져야 한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정죄를 당할 것이며 의인의 입술은 남을 기쁘게 할 것을 알아도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한다. 우리는 지혜롭고 선하고 덕스러운 말만 하고 또 형제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할 줄 아는 의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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