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6.0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잠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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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겸손, 의, 신중, 구제

1-5절, 정직, 겸손, 온전함

[1절]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공평한 추는 율법에 명령된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9:35-36에서 “[너희는]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고 명하셨고, 모세는 신명기 25:13-15에서,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속이는 저울을 사용하였다. 선지자 아모스는 그들이 “에바를 작게 하여[하고]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자”라고 말한다고 지적했다(암 8:5). 선지자 미가는 악인의 집에 있는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와 ‘부정한 저울’ ‘거짓 저울추’에 대해 언급하였다(미 6:10-11). 오늘날도 세상에는 불량 재료 사용, 원산지 속임, 가짜 상표, 허위 과장 광고 등 속여서 돈을 버는 죄악된 행위가 많다.

하나님께서는 속이는 저울을 미워하시고 공평한 추를 기뻐하신다. 잠언 20:10,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와 말(measures)(KJV, NASB)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저울을 버리고 공평한 추를 사용해야 한다. 공평한 추는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소득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면 복이 되지 못하지만, 적은 소득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복이 된다. 그러므로 잠언 16:8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

[2절]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교만이 오면 욕도 온다. 교만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피조물이요 죄인임을 잊었거나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자기 위치를 벗어난 것이다. 교만은 마귀의 죄이며(딤전 3:6)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6, 7가지 죄악 중 첫째이다(잠 6:16-17). 그것은 사람의 대표적인 큰 죄악이다. ‘욕’은 치욕을 가리킨다. 사람이 교만하면 치욕이 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기 때문이며 사람들도 그를 버리거나 따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영광보다는 수치를, 칭찬보다는 욕을 당한다.

마귀는 교만한 천사이었다(딤전 3:6). 그는 하나님의 원수이며 성도의 대적자이다(마 13:25, 39; 눅 22:31; 벧전 5:8). 그는 ‘마귀’ ‘사탄’ ‘온 천하를 꾀는 자’ 등의 이름을 가졌고 마침내 지옥불에 던지울 것이다(계 12:9; 20:10).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할 때에, 교만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 등은 당을 짓고 모세를 대적하였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땅이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들을 다 삼키게 하셨다. 그들은 산 채로 땅 속에 묻히었다(민 16:1-3, 32-35). 본문은 그러나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며 높이며 자기 자신이 피조물이요 부족과 죄성을 가진 자임을 알고 자신을 낮추는 자이다. 그는 자기 위치를 지키는 자이다. 겸손한 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칭찬과 높임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언 15:33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하고, 잠언 18:12도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한다. 겸손한 자는 지혜자이다. 그는 결코 실패치 않고 언제나 승리할 것이다.

[3절] 정직한 자의 성실(툼마 )[온전함]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보그딤 )[배신자]의 패역(셀렙 )[비뚤어짐]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

정직한 자의 온전함은 자기를 인도한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사는 자이다. 인도한다는 말은 평안의 길로, 생명의 길로,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뜻이라고 본다. 정직과 의는 복된 길이다. 그것은 평안과 생명과 천국의 길이다. 시편 119: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이사야 48:17-1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로마서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옛날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승천하였고(창 5:24) 또 노아는 의롭고 온전한 삶을 살다가 홍수 심판 전에 방주를 지었고 그 안에 들어가 구원을 얻었다(창 6:8-9; 7:1).

그러나 배신자의 비뚤어짐은 자기를 망케 한다. 배신자는 양심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난 일을 행하는 자이다. 그는 결국 자신을 망케 하고 만다. 예컨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를 배신하고 일시적으로 왕권을 탈취하였으나 결국 아버지와의 전쟁에서 죽었고 (삼하 15장, 18장), 그의 최측근 참모로 그를 도왔던 아히도벨도 결국목매어 죽었다(삼하 17:23). 주님의 열두 제자들 중 하나인 가룟 유다는 주를 배신한 후 자살하여 창자가 터져 죽었다(마 27:5; 행 1:18).

[4절]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체다카 )[의(義)]는 죽음을 면케 하느니라.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다. 돈이 평소에 유익이 많기는 하다. 돈이 있어야 좋은 옷도 사고 좋은 집도 사고 좋은 차도 사고 문화적인 혜택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돈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날 곧 재앙의 날에 무익하다. 돈은,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에 걸렸거나 전쟁, 지진, 기근 등이 발생했을 때,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주지 못하고 또 우리를 지옥 형벌로부터도 건져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에스겔 7:19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의는 죽음을 면케 한다. 의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며 그것은 죽음을 면하게 한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며 사람에게 가장 큰 불행이다. 사람은 질병이나 기근이나 전쟁으로 죽는다. 그러나 의는 사람에게 영육의 죽음과 둘째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을 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를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였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의에 근거한 것이다. 로마서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5절] 완전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그 길이 곧게 되려니와 악한 자는 그 악을 인하여 넘어지리라.

완전한 자의 의는 그의 길을 곧게 한다. ‘완전한 자’(타밈 )라는 말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를 가리킨다. 이 세상에서 절대 완전한 사람은 없지만, 우리의 성화의 일차적 목표는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와 완전함, 즉 책망할 것이 없는 삶을 요구하신다.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이었다. 창세기 6:9,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욥도 그러했다. 욥기 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완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감독 혹은 장로의 자격자는 책망할 것이 없는 자이어야 한다. 디모데전서 3:2,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디도서 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우리는 재림하시는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나타나기를 힘써야 한다. 베드로후서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그의 길을) 곧게 한다’는 원어(테얏쉐르 )는 ‘곧게 한다’는 뜻(NIV) 외에 ‘평탄케 한다’는 뜻이 있다(BDB, NASB). 그것은 장애물이 없이 평안한 방향으로 인도한다는 뜻이라고 본다. 완전한 자, 의로운 자는 그의 앞길이 평탄하며 평안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악한 자는 그 악을 인해 넘어질 것이다. 악한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거스르는 자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거스르는 모든 말과 행동이 악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의 근본 내용인 사랑에 반대되는 것이다.

악한 자는 그의 악을 인해 결국 넘어지고 만다. 넘어진다는 말은 실패하고 재앙과 불행을 당하고 마침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과 지옥 형벌이 그를 기다린다(히 9:27).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특히 장사나 상거래를 할 때 정직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남을 속이거나 불법한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려 하지 말고, 적은 소득이라도 정당하게 벌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된다.

둘째로, 교만이 오면 욕도 오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다. 교만은 마귀의 죄이며 하나님께서 매우 미워하시는 죄악이다. 사람이 교만하면 멸망한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지혜가 있고 승리할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이 있다면 그것은 겸손이다.

셋째로, 정직한 자의 온전함은 그를 평안과 영생으로 인도하나 배신자의 비뚤어짐은 자기를 망케 한다.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지만 의는 죽음을 면케 한다. 또 완전한 자는 그 의로 인해 길이 평안케 되지만, 악인은 그 악을 인해 넘어진다. 우리는 예수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오직 정직하고 의롭게 살고 흠과 점이 없이 온전한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의롭고 완전한 길은 평안과 안전과 영생의 길이다.

6-10절, 의인은 구원을 얻음

[6절]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보그딤)[배신자](BDB, NASB)는 자기의 악(하우와 )[(악한) 욕망](BDB, NASB,NIV)에 잡히리라.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해 구원을 얻는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사는 자이다. ‘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실제로 의롭게 살아야 한다. 구원은 이 세상의 각가지 어려움들, 즉 마귀의 시험과 죄, 몸의 병과 죽음, 그리고 내세의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을 다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의롭게 사는 의인들을 보호하시고 영혼과 몸의 불행과, 현세와 내세의 불행에서 건져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의롭게 행하려 했던 다윗을 사울의 칼로부터 구원해주셨다(사무엘상). 의인은 그의 하는 일들이 다 형통할 것이다(시 1:3). 성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를 안위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시 23:4). 하나님께서는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이다(롬 2:7). 그러나 배신자는 자기의 악한 욕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배신자는 돈이나 세상 권세나 명예 등 세상 것에 대한 탐욕 때문에 배신한다. 그는 그의 악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예수님의 택함을 받고 3년 동안이나 그를 따라다니며 재정 관리의 책임까지 맡았던 제자 가룟 유다는 은 30개에 주님을 배신하고 악한 무리에게 그를 넘겨주었다. 그는 돈 욕심에 사로잡혔다. 배신자들은 자신의 욕심에 사로잡히며 마침내 영육의 멸망과 현세와 내세의 멸망에 이를 것이다.

[7절]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진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계명을 어기며 사는 악한 자는 아무리 좋은 소망을 품어도 그 소망이 헛되게 된다. 사실상, 악인의 소망이란 물질적인 것, 육신적인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부요, 세상적 권세와 영광, 육신적 쾌락 등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헛되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지나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전도서에서 교훈하셨다. 사도 요한도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치 말라고 교훈하면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간다고 증거하였다(요일 2:15-17). 우리는 악인들이 죽을 때 그들의 소망이 끊어진다는 것을 안다. 인생은 짧고 유한하다. 사람은 죽을 때 그의 세상적 소망도 함께 끝난다. 더욱이, 악인이 하나님의 징벌로 갑자기 죽을 때 우리는 그의 소망이 끊어짐을 실감한다. 또 불의의 소망은 없어진다. ‘불의’라는 원어(오님 )는 ‘사악한 자들’ 혹은 ‘힘’(BDB)이라는 뜻 같다. 그것이 ‘힘’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 악인이 육신의 힘이나 세상 권세를 의지하고 소망한다는 뜻일 것이다. 사악한 자들의 소망, 혹은 그들이 의지하는 육신의 힘과 세상 권세는 없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시면 그렇게 건강하던 그들은 병상에 눕게 될 것이며 그들이 누리던 세상의 부귀와 권세는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다. 악인의 소망은 참으로 헛되다. 그러나 의인의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의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부활, 천국, 영생을 소망하며, 또 땅 위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한 일들을 소원한다. 의인의 그 소원들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잠 10:24).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8절]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 곧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 교훈에 순종하는 자를 가리킨다. 의인이 환난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의인도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함을 전제한 말이다. 이 세상에는 환난이 많고 의인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환난을 당한다. 그는 때때로 병에 걸리고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며 사람들의 미움과 핍박을 당하고 죽음의 위험도 당한다. 이 모든 일 배후에는 마귀의 활동도 있다(욥 1, 2장). 그러나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고 건지시기 때문이다. 잠언 11:6,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시편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욥기 5:18-20,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救贖)하실 터인즉.”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심한 고생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건지셨음을 간증했었다(고후 1:8-10).

본문은 악인이 와서 그를 대신한다고 말한다. 악인은 의인을 해치려고 음모를 꾸미지만,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그 음모로부터 건져내시고 도리어 악인이 그 함정에 빠지게 하시는 것이다. 시편 7:15,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죽이려 계획했던 악한 하만은 도리어 자신이 그 나무에 달려 죽었고(에 7:9-10), 다니엘을 참소하여 사자굴에 던져 넣게 했던 자들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지워 죽임을 당하였다(단 6:24).

[9절] 사특한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사특한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한다. ‘사특한 자’라는 원어(카네프 )는 3절과 6절의 ‘사특한 자’라는 말(보그딤 )(배신자)과는 다른 말로서 ‘불경건한 자’라는 뜻이다(BDB, KB, NASB, NIV). 

불경건한 자는 입으로 이웃을 망하게 하고 파괴시킨다. 그는 악하고 거짓되게 이웃을 비난하고 중상모략함으로 이웃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신임성을 떨어뜨리고 그를 사회에서 매장시키며 파괴시킨다. 오늘날 인터넷 ‘악플들’(악하고 거짓된 댓글들)은 이런 유의 것이다.

출애굽기 23:1,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 잠언 20: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디도서 1:10-11,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사람의 모든 말은 심판날에 보응을 받는다(마 12:36). 그러나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에 순종하여 의롭게 사는 자이다. 

의인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구원과 내세에 대해 바른 지식을 가진다. 믿음은 지식을 포함한다. 의인은 그 믿음의 지식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그를 비난하며 느헤미야가 왕을 배반하고자 한다는 헛소문을 냈지만, 그들에게 대꾸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자기의 할 일에 힘썼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원수들의 음모로부터 구원해주셨다.

[10절]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한다. 형통하다는 말은 몸의 건강, 사업의 번영, 직장에서의 승진 등 일이 잘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올바르게 사는 자들이 잘되면 성읍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사람의 양심이 공의와 선과 진실을 다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인들이 잘되면 양심적인 무리들은 동감하여 기뻐하는 것이다. 또 의인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면 그 사회는 공의와 공평이 시행되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니 사람들은 더욱 기뻐할 것이다.

열왕기하 11:20에 보면, 유다 왕국에서 왕자들을 죽이고 불법하게 왕권을 취한 악한 여자 아달랴가 6년간 통치하던 중 경건한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충성된 주선으로 정통 왕자 요아스가 왕위에 올랐을 때, 온 국민은 즐거워하였고 예루살렘 성이 평온했다. 또 에스더 8:15에 보면, 에스더 시대에 악한 신하 하만이 죽임을 당하고 모르드개가 왕 앞에 높임을 받았을 때도 수산성은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였다. 또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친다. 

악인들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남을 해롭게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의인들을 핍박한다. 패망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벌을 내려 무서운 병에 걸리든지, 세상에서 지위나 신분상에 큰 어려움을 당하고 마침내 죽는 것을 말할 것이다. 사람들은 악인들의 패망을 기뻐한다. 그들은 약자들이 무시당함과 핍박당함에서 놓여나고 억울한 일들이 갚음을 받고 사회에서 공의가 시행됨을 인해 기뻐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양심은 악인의 패망을 기뻐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가 되고 배신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로서 과거의 모든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 즉 성경의 교훈대로 순종하여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그것이 현세에서도 환난으로부터의 구원과 평안을 얻는 길이며 영생의 길이다.

둘째로, 우리는 악인의 소망, 곧 물질적, 육신적, 세상적 소망을 버려야 하고 오직 의인의 소망, 영적, 천적 소망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소망하며 그가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의인의 몸의 영광스런 부활과, 복되고 영광스런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을 소망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세상에서 환난이나 악인들의 비방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받은 의 안에서 의롭고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우리가 바르고 선하게만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과 형통의 복을 주시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기쁨을 나누게 하실 것이다.

11-15절, 말, 조언, 빚 보증

[11절]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해 진흥한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대로 정직하게 사는 자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은 사랑이므로 정직한 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읍을 위해 올리는 정직한 자의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 마음 속에 악을 품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시지만(사 9:1-3), 정직한 자의 기도는 잘 들어주신다. 의인들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약 5:16).

성읍이 진흥한다는 말은 여러 방면에서 발전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 나라에는 각종 범죄가 있고 각 분야에 불법한 일들이 많이 있고 때때로 전쟁의 위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나라가 범죄가 없고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이 없고 전쟁이 없는 평안한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는 우리나라와 사회의 개선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성읍은 악한 자의 입을 인해 무너진다. 

악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불경건한 자이며 도덕성이 없는 자이다. 그의 말들은 성읍을 파괴시킨다. 불경건한 자의 입은 이웃을 망케 한다(잠 11:9). 예컨대, 북한의 거짓 선전이 남한의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견해를 심어주었고 우리 사회를 혼란케 했다.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켜 약 330만명의 동족을 죽게 했고 수많은 테러를 행했고 300만명의 인민을 굶어죽게 했고 자유와 인권 존중이 없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가 이상적이며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요 미국이 남북통일을 막는 자라고 선전해, 많은 사람들을 혼란시키고 남한을 공산주의화시키려 하고 있다.

[12절] 그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지혜가 없거니와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지혜가 없다’(카사르 레브 )는 원어는 ‘마음이 없다,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겸손한 마음, 사랑의 마음, 지혜의 마음이 없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오래 참으시며 용서하신다.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하는데,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그런 마음이 없는 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죄성이 있고 지식이나 의지력이 제한적이어서 부족한 언행이 많다. 그러므로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자신의 부족은 보지 못하고 남의 부족만 보는 자이며, 실상 교만하고 지혜가 없는 자이다.

주께서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을 위해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하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바리새인은 서서 자신을 세리와 구별하며 자신의 경건과 도덕성을 감사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눅 18:9-14).

본문은 그러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이웃의 부족을 부족으로 알지 못해서가 아니고 사람이 누구나 다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며, 또는 자신에게도 비슷한 부족이 있거나 더 큰 부족이 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또 현재 그에게 그런 부족이 없다 할지라도, 자신도 언젠가 그런 부족과 연약에 떨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며, 또 시간이 지나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그 이웃도 그 자신의 부족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 명철한 자는 그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고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13절]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한담한다’는 원어(라키일 )는 ‘중상(中傷)하는 자’라는 뜻이다 (BDB). ‘중상’(中傷)은 사실이 아닌 말로 남을 비방하는 것이다. 두루 다니며 남을 중상하고 헐뜯는 말을 하는 자는 악한 자이며 정직하지 못한 자이다. 남을 헐뜯는 말 하는 것 자체가 악한 일이다. 자기의 일에 충실한 사람은 남의 집에 두루 다닐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두루 다니며 쓸데없는 말, 거짓말, 더러운 말, 부덕한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해야 한다(약 1:19). 또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이다(약 3:2).

본문은, 두루 다니며 남을 중상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한다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종종 비밀이 있다. 그것은 그의 실수와 죄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의 약점일 수도 있다. 그것은 그에게 슬프고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일 수 있고, 또 그의 명예에 관계되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은 대체로 남에게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남을 중상하는 자는 그가 아는 남의 비밀을 감추어 두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남을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본문은 그러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것을 숨긴다고 말한다. 마음이 신실한 자는 믿을 만한 자, 진실한 자를 가리킨다. 마음이 신실한 자는 남의 비밀, 곧 남의 약점과 실수, 혹은 그의 개인적 은밀한 일을 숨긴다.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사랑은 허다한 허물까지도 덮는데, 하물며 남의 은밀한 일이랴. 사람이 알 권리를 주장하지만, 남의 비밀까지 다 알 권리를 가지지는 않는다.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숨긴다.

[14절] 도략(鞱略)(타크불로스 )[조언](counsel)(BDB)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도략은 좋은 조언을 뜻한다. 좋은 조언은 하나님의 진리에 부합하는 조언,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조언을 가리킨다. 나라가 어려울 때 좋은 조언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지만, 좋은 조언자가 많으면 나라가 평안을 누릴 것이다. 우리나라의 평안을 위해서는 좋은 조언들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도덕적 사회가 되어야 한다. 불법과 폭력, 음란과 거짓은 엄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그것은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 폭력은 근절되어야 하고 사회에서도 폭력이 용납되지 않아야 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부정과 비리는 제거되어야 한다. 불량식품이 근절되어야 한다. 사회에 만연한 음란 풍조, 인터넷 음란물들, 공공연한 성매매업이 단속되어야 한다. 도덕성이 없는 사회는 망한다. 

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가 바르게 인식되고 강조되어야 한다. 또 자유와 인권 존중은 그 어떤 가치보다 귀한 가치이다. 우리는 북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의 적화(赤化)통일 계략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6.25전쟁의 원인과 그 처참함을 자녀들에게 바르게 가르쳐 야 한다. 우리는 북한을 긍휼히 여기지만, 그 독재정권의 종교의 자유 탄압과 인권 탄압을 규탄해야 한다. 또 우리는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도왔던 미국과 자유 우방에 대해 참으로 감사해야 한다. 또 우리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종교의 자유와 경제 발전에 대해 이전 세대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15절]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타인을 위해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한다. ‘타인’이라는 원어(자르 )는 ‘낯선 자, 타인’이라는 뜻이다. 친구를 위한 재정 보증은 물어줄 만큼 가깝거나 물어줄 만큼 돈의 여유가 있다면 모르나 그렇지 않다면 낭패를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가족들 간의 보증도 물질적 손해와 정신적 고통을 얻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하물며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보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잠언 22:26-27은,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고 말하였고, 잠언 6:1-5는,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스스로 구원하라”고 교훈하였다.

본문은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다고 말한다. 평안하다는 말은 안전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신 물어줄 만큼 가까운 사이이거나 돈의 여유가 있다면 보증을 서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않다면 재정 보증은 안 하는 것이 좋다. 재정 보증은 사랑의 행위일지는 몰라도 어리석은 행위이다. 교회 안에서는 성도들 간에는 순수한 신앙적 교제를 하고 돈 거래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성도는 자기의 경제 형편에 맞게 검소하게, 절약적이게 살아야 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정직하게 살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한다. 성읍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성도들의 축원을 인해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우리나라를 허무는 악한 자들의 말들을 분별하고 배격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이웃의 실수나 부족을 볼 때 그를 멸시하지 말고 잠잠하며 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하고, 더욱이 두루 다니며 거짓말로 남을 비방하지 말고 특히 남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가 되지 말고 도리어 그것을 숨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경건하고 도덕적인 좋은 조언은 우리나라를 평안의 길로 이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가 속한 단체를 위해 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잘못된 말을 하지 말고 바르고 선한 조언을 해야 한다. 우리는 특히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틀 안에서 경건하고 도덕적인 나라가 되도록 전도하며 권하며 노력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위한 구제가 선한 일이며 해야 할 일이지만, 남을 위해 재정 보증을 서거나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일을 하는 일은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성도의 교제는 순수해야 한다.

16-20절, 덕 있음, 인자, 의, 악, 온전함

[16절]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는다. ‘유덕한’이라는 원어(켄 )는 ‘은혜, 덕,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적, 인격적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유덕한 여자 즉 덕 있는 여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잠언은 이런 여자를 현숙하고 덕행 있는 여자라고 부른다(잠 31:28-30). 여성도는 외모나 돈이나 옷과 집 등에 가치를 두지 말고 경건과 도덕성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디모데전서 2:9-10,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단정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그의 인격성, 도덕성)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덕 있는 여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곧 남편과 그 자녀들에게나 주위 사람들에게 존중히 여김과 칭찬과 좋은 평판을 얻을 것이다.

본문은 또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는다고 말한다. ‘근면한’이라는 원어(아리침 )는 ‘난폭한’(NASB), ‘무정한, 잔인한’(BDB, NIV)이라고 번역된다. 이것은 남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때때로 무정하고 난폭한 자같이 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남자가 돈은 많이 벌겠지만, 그것이 큰 가치가 되지는 못한다. 재물은 결코 마음의 평안, 몸의 건강, 삶의 행복, 특히 죄사함과 영생을 주지 못한다.

[17절]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인자한 자는 자기 영혼을 이롭게 한다. 인자함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도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누가복음 6:27,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 로마서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인자한 자는 원수까지도 불쌍히 여긴다.

인자한 자가 자기 영혼을 이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받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힘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자한 자에게 복을 주신다. 시편 18:25,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인자한 삶은 복되다. 

그러나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한다. 잔인함은 무정하고 무자비함이다(롬 1:31). 잔인한 자는 양심의 가책으로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며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잃어버린다.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나 악한 감정은 몸에도 해가 된다. 또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 있을 것이다. 야고보서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아합과 이세벨은 순진한 백성인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 증거하는 거짓 증인 둘을 세워 그를 돌에 맞아 죽게 하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으나 그들은 마침내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다(왕상 21-22장).

[18절]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악인의 삯은 허무하다. ‘삯이 허무하다’는 원어(오세 페울랏 솨케르)는 ‘거짓된 일을 한다’(KJV), ‘거짓된 삯을 얻는다’ (NASB, NIV)는 뜻이다. 거짓된 일이란, 경건한 듯하지만 불경건하고, 기도하지만 형식적이고, 남을 축복하지만 속으로는 저주하고, 선을 행하는 듯하지만 실상 악을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악인의 수고는 현세적이며 육신적이며 쾌락적이며 이기적이다. 그것은 죄악되다. 그것은 의롭고 선한 일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고 결국 자신을 속이는 일이며 헛된 일이다. 요한일서 2:16-17,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의를 뿌린 자, 즉 의를 행하는 자에게 확실한 보상이 있다. 성도의 의롭고 선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시고 그것에 대해 갚아주시며 상을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3-4,“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주신다. 주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 6:33). 심판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19절] 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른다. ‘의를 굳게 지키는 자’라는 원어(켄 체다카 )는 ‘참된 의’라는 뜻이다(BDB). 본문은 “참된 의는 생명에 이른다”는 말이다. 참된 의는 거짓된 의, 외식적 의와 구별된다. 의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고 그의 계명대로 순종하며 행하는 것이다. 신명기 6:25,“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하나님의 계명의 요점은 사랑이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선을 베풀 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그것이 의이다. 의는 생명에 이른다. 율법의 원리가 그러하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리라”고 말했다(롬 2:6-7).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해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신 의(義), 곧 믿음의 의는 신자를 영생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순종으로 표현된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계명 즉 성경 교훈에 순종하여 거룩의 열매를 맺다가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다(롬 6:22).

반면에,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른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모든 행위 즉 타인의 생명과 정조와 재산과 명예를 해치는 모든 행위가 악이다. 악인은 망하고 죽고 죽은 후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요한계시록 21: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러므로 죄인에게 참된 회개와 믿음과 순종이 필요하다.

[20절] 마음이 패려한 자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마음이 패려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 ‘패려하다’는 원어(익케쉬 )는 ‘패역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성경의 교훈과 양심에 따라 바르고 선하게 행하지 않고 반항적이게 악하고 거짓되게 행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패역한 자, 곧 반항적이며 거짓된 마음을 가진 자를 미워하신다. 잠언 6:16-19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대표적 죄악 6, 7가지로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등을 들었다. 또 잠언 8:13은,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반항적이고 악하고 거짓된 마음을 미워하신다. 그러나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는다. 

사람의 행위는 그의 마음의 표현이다. 온전함이라는 말은 흠과 점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것을 말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이다. 구원의 목표인 완전 성화(完全聖化)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가 온전하기를 원하신다. 그는 우리가 모든 죄악에서 구원을 얻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행위의 열매로 그 구원을 증거하기를 원하신다. 경건과 도덕성, 즉 경건하고 거룩하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함은 사람의 사람다움의 중요한 내용이며 사람의 가치이다. 시편 119:1은 행위 완전하여 하나님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는다. 특히 여자들은 외모의 단장보다 자신의 인격성, 즉 자신의 경건과 의와 선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지혜롭고 능력 있고 덕 있는 자의 모습이다. 여성도는 그런 여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인자한 자는 자기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 몸을 해롭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인자한 자에게 복과 평안을 주시지만, 잔인한 자를 미워하시고 벌주신다. 우리는 인자한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악인의 삯은 허무하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를 것이지만 참된 의는 생명에 이르고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다. 우리는 악인처럼 현세적, 육신적, 물질적 유익을 구하며 살지 말고 또 거기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다 거짓되고 헛되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교훈된 대로 의와 선만 행하고 생명의 길을 붙들고 사망의 길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만 소망해야 하며 그의 계명, 곧 성경 교훈대로 정직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넷째로, 마음이 패역한 자는 하나님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는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계명에 대해 반항적 이지 말고 그의 계명을 순종함으로 행위 온전한 자가 되어야 한다.

21-26절, 의인, 아름다움, 구제, 이웃 사랑

[21절]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라는 원문(야드 레야드 )은 ‘확실히’ 라는 뜻이라고 한다(KB, NASB, NIV). 악인은 확실히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악인은 남을 해치는 자, 즉 말로나 물질로나 폭력으로 남을 해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며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며 악인의 악행을 다 보시고 아시고 판단하시고 노하셔서 악인의 악에 대해 보응하시고 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을 용납지 않으신다.

출애굽기 20:5,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시편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러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바로 살고자 하는 자이다. 의인에게도 때때로 어려운 일이 생긴다. 그것은 자신의 부족 때문에 오기도 하고 단순히 신앙 인격의 훈련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에서 항상 그를 건져주신다. 시편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또한 그 고난은 그를 더욱 믿음 있게, 거룩하게, 겸손케 만든다. 의인은 자신 뿐만 아니라 그 자손들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千代)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하셨다(출 20:6). 다윗은 시편 37:25에서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고 말했다.

[22절]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 같으니라.

이것은 외적인 아름다움의 가치와 내면적 아름다움의 가치를 대조해 말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외적인 아름다움에 큰 가치를 둔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외모, 즉 아름다운 얼굴, 고운 피부, 균형잡힌 몸매 등 외적인 아름다움을 크게 여기고 원한다. 그래서 여인들은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먹는 것도 절제하며 다이어트를 하고 비싼 화장품을 쓰고 피부 관리를 하고 성형 수술까지 한다.

물론 외적 아름다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사람의 본래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의 나이 65세 때에 그에게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창 12:11),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름다웠다. 야곱이 사랑하였던 아내 라헬도 곱고 아름다웠다(창 29:17). 경건한 욥의 딸들도 아름다웠고(욥 42:15), 믿음 있는 에스더도 용모가 곱고 아름다운 처녀이었다(에 2:7).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참 가치를 외적인 데 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 같으니라”는 말은 사려 깊게 행동치 않는 여인의 외적인 아름다움이 돼지코에 단 금고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사람에게 내면적, 인격적 아름다움은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훨씬 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잠언 31:30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도 여자들이 외모 단장보다 염치와 정절과 선행으로 그리고 온유하고 조용함으로 자신을 단장하라고 교훈하였다(딤전 2:9; 벧전 3:3-4).

[23절]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여 의롭고 선하게 사는 자를 가리킨다. 의(義)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이며 그의 계명의 내용은 사랑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의인의 소원이 오직 선하다”는 말은 의인의 소원하는 내용이 선할 뿐 아니라, 또한 그 결과도 선하다는 뜻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의인들의 소원은 선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소원을 가진다. 또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소원을 가진다. 즉 그들은 부모를 섬기며 가족들을 돌아보기를 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기를 원하는 것이다.

의인의 소원은 이처럼 그 내용이 선할 뿐 아니라, 그 결과도 선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소원을 기쁘게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기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하게 사는 것이다. 선행은 신앙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하게 살기를 소원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기쁘게 받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이다. 의인의 소원은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것은 선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룬다. 

이 말씀은 앞부분과 대조를 이룬다. 소망은 소원과 비슷한 뜻이다. 악인의 소망은 그 내용이 악할 뿐 아니라 그 결과도 나쁘다. 악인은 이기적이고 남에게 해를 끼친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아합의 욕심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것이었다. 가룟 유다의 소원은 돈이었다. 헤롯의 소망은 세상 권력과 명예, 또 물질적 부귀와 영광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었다.

[24-25절]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본문은 구제를 교훈하며 권장한다. 율법은 구제를 교훈한다. 신명기15:10-11,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신약성경도 구제를 강조한다. 주께서는 구제를 교훈하셨다. 누가복음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고린도후서 8: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구제 헌금]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신약 성경이 말하는 헌금은 전도와 구제를 위한 것이다. 요한일서 3:17-18,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구제에 대해 풍성한 복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성도는 구제를 많이 한다고 해서 가난해지지 않는다. 신명기 15:10,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마태복음 6: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드러나게](전통본문) 갚으시리라.”

[26절] 곡식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곡식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다. 곡식을 내지 않으면 이웃이 굶게 되고 죽게 된다. 그것은 자기 배만 위하는, 즉 자기 생명, 자기 건강, 자기 행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일이다. 그것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랑 없는 행동이다. 먹을 것이 없는 이웃에게 구제하기는커녕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파는 행위도 거부하는 이기적인 사람에 대하여 사람들은 “혼자 실컷 먹고 배가 터져 죽어라”고 저주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저장한 곡식을 파는 자는 그 머리에 복이 임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기뻐하며 축복하고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사는 사회적 존재이다. 만일 사람들이 남을 위하는 물건을 만들지 않거나 그것을 시장에 팔려고 내놓지 않으면, 우리는 당장 매우 불편한 생활을 할 것이다. 오늘날 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이 함께 사는 존재임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남을 배려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구제의 정신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기가 넉넉히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살아야 하고 또 어려운 이웃에게 구제하며 살아야 한다. 율법은 반드시 구제하라고 가르쳤다. 세례 요한은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눅 3:11). 사도시대의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행 2:44-45; 4:32).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악인은 반드시 벌을 받으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는다. 말로나 물질로나 폭력으로 남을 해치는 악한 자는 하나님의 벌을 받으나, 의로운 자의 자손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는다.

둘째로,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않는 것은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 같다(22절). 여성도들은 외적 단장에 마음을 쓰지 말고 내면적 인격성, 즉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인격이 되기 위해 마음을 써야 한다.

셋째로,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룬다. 우리는 악인처럼 이기적인 세상적, 물질적 소원을 버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남에게 유익을 주고 자신에게도 복된 선한 소원을 가져야 한다.

넷째로,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으며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지고 남을 윤택케 하는 자는 윤택해질 것이다. 우리는 구제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구제에 힘쓰고 이기적이게 살지 말고 서로 돌아보며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

27-31절, 선한 자, 의인, 지혜자

[27절]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는다. 선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 즉 말로나 물질로나 힘으로 남을 돕는 것을 가리킨다. 선을 간절히 구하는 것은 선을 행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돈을 쓰고 손으로 수고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와 사람들에게 은총과 사랑을 받을 것이다. 잠언 3:3,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그러나 악을 좇는 자에게는 악이 임할 것이다. 

악이라는 원어(라아)는 도덕적 악과 물질적, 환경적 악 곧 재난을 다 의미한다. 도덕적 악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남에게 해를 주는 일을 가리킨다. 이런 자에게는 물질적, 환경적 악 곧 재난이 임할 것이다. 잠언 13: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잠언 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로마서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라.”

[28절]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한다. 돈은 사람의 삶에 필요하고 유용한 수단이지만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돈이 있으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이나 차나 집을 살 수 있지만, 돈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돈은 사람의 죽음을 막고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 돈은 사람에게 죄사함과 의를 줄 수 없다. 죄인들은 돈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한다.

돈은 성도에게 큰 시험거리와 유혹물이 된다. 돈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사람을 해이하고 방탕하게 만든다. 디모데전서 6:9-10,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 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그러므로 돈을 의지하거나 거기에 소망을 두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디모데전서 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게 하라.”

그러나 의인, 곧 돈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푸른 잎사귀같이 번성할 것이다.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복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시편 1:3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말했고, 또 잠언 4:18은,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29절]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자기 집 곧 자기의 가정과 가족들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다. ‘해롭게 한다’는 원어(아카르 )는 ‘소란하게 한다, 괴롭힌다, 근심과 고통을 준다’는 뜻이다. 자기 집을 소란하게 하고 괴롭힌다는 말은 가족들에게 거칠게 대하고 가족들을 미워하고 비인격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고 구타하고 경제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등을 말할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로서의 기본적 의무, 즉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과 사랑을 가지고 가족들을 평안케 하고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해야 하는 기본적 의무를 저버린 행동이다.

자기 집을 괴롭히는 자의 소득이 바람이라는 것은 남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열심히 일하고 수고하여 얻은 소득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가정의 행복의 요소는 부부가 사랑하면서 함께 늙고 자녀들이 효도하고 몸의 건강, 물질적 여유를 가지는 것 등이다. 그러나 가족들을 괴롭히는 자는 가정의 파탄, 곧 가족관계의 파탄을 경험할 것이며, 부부의 이혼이나 가족들의 뿔뿔이 흩어짐, 또 자녀들의 방탕과 부모거역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주로 남편들에게 해당하는 교훈이지만, 아내들에게나 자녀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그의 계명들에 순종함이 없고 교만하고 강포하고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며 그런 미련한 자는 일시적으로 성공할지 몰라도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지 못하고 사람들, 특히 지혜자들,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겸손과 온유, 사랑과 의, 선과 진실을 행하는 자들의 종이 될 것이다(신 28:43-44).

[30절]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이다. 생명나무는 생명을 주고 생명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상징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의지하며 그의 계명대로 의와 선을 행하는 의인이 맺는 열매나 받는 보상은 생명이다. 본인이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의 강건함 즉 심령의 평안과 몸의 건강을 얻고 영생에 이를 것이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으나 의인에게 는 강물 같은 평안이 있다. 

또 의인에게는 몸의 건강도 보장된다. 잠언3:7-8,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죄의 값은 죽음이다. 그것은 근심 걱정과 질병과 가난을 포함할 것이다. 그러나 의의 결과는 생명이다. 그것은 평안과 건강과 영생을 포함한다. 로마서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또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는다. ‘사람을 얻는다’는 원어는 ‘영혼들을 얻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롭게 사는 의인이 지혜자이며, 그는 영혼들을 얻을 것이다. 물론, 지혜로운 자는 그를 사랑하고 아끼고 협력할 진실한 친구들과 동료들을 얻을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디모데(빌 2:20-22)나 자기 목이라도 내어놓으려 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롬 16:3-4)나 그를 위로한 오네시보로(딤후 1:16) 같은 동료들이 있었다. 그러나 ‘영혼들을 얻는다’는 말은 영혼들을 구원한다는 뜻을 가진다고 본다. 지혜자는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만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영생의 길로 이끌 것이다(단 12:3). 의인은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들도 살리는 자가 될 것이다.

[31절]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공의로 보응하신다. 즉 선한 자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는 벌을 주신다. 사람은 도덕적 존재이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도덕적 혹은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한 순간도 놓침이 없이 진실하시다. 욥기 7:17-18,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의 이치인 동시에 도덕 세계의 이치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 백성의 죄를 묵과하지 않으신다. 베드로전서 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 하며.” 하나님을 경외했던 다윗이 간음과 살인의 큰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는 벌을 내리셨다. 그의 아들 암논은 이복여동생 다말을 강간하였고 그의 오빠 압살롬은 그 형 암논을 죽였고 또 후에 아버지 다윗에게 반기(叛旗)를 들었다.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이며 또한 하나님의 자녀된 표이기도 하다. 히브리서 12:6, 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의인에게도 이 런 징벌이 있다면, 하물며 악인들이 하나님께 받을 보응은 얼마나 더 엄한 것이랴! 악인의 결국은 멸망 곧 지옥 불못이다(계 21:8).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결코 악을 계획하는 자가 되지 말고,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섭리자와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믿어야 한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악을 계획하고 행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그 악에 합당한 벌을 내리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멸망케 하는 허무한 돈을 의지하거나 사랑하지 말고 오직 섭리자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여 의를 행해야 한다. 돈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자는 돈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이다.

셋째로, 자기의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며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고 온유와 겸손, 의와 선과 진실함으로 우리 자신의 집을 평안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해야 한다. 평안과 즐거움의 복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다.

넷째로,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이며 지혜자는 사람을 얻는다. 예수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의를 행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는 지혜자이며 그는 죄 가운데서 멸망할 자들을 구원해 내어 영생에 이르게 한다.

다섯째로, 의인이라도 세상에서 보응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짓지 말고 바르게만 살아야 한다. 그것이 평안의 길이며 영생의 길이다.

===12장: 어진 여인, 지혜자의 혀, 근면

1-4절, 훈계, 선인, 의인, 어진 여인

[1절] 훈계(무사르 )[혹은 ‘징계’(discipline](BDB, NASB, NIV)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토카카스 )[책망](BDB, NASB)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한다. 훈계는 하나님의 뜻 곧 의(義)를 알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죄악을 지적하고 책망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권면하고 인도하는 것이다. 훈계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지혜와 지식과 영혼 사랑과 용기가 있는 자이며, 훈계받기를 좋아하는 자도 훈계의 목적과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훈계를 겸손히 받고 참는 마음이 있는 자이다. 잠언 3:11-12,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훈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그러나 책망을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 그는 지혜가 없고 어리석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는 데 관심이 없고 죄를 버리고 멀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시며, 죄는 불행의 원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죄를 버리지 못한 자는 현세에서 평안을 얻지 못하고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피할 수 없다.

[2절] 선인(善人)은 여호와께 은총(라촌 )[은총, 기쁨, 호의, 사랑]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선인(善人)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다. 선은 도덕적 이상에 맞는 것이다. 선과 의는 내용이 같다. 또 선은 다른 이에게 유익을 주며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더욱 사랑하시고 호의를 베푸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하고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마태복음 5:14-16,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 . . . .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救贖)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천국은 선한 사람들, 착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롬 2:7; 14:17). 그러나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을 것이다. 로마서 1:28-32에 보면, 추악, 악의가 가득한 자, 악독이 가득한 자, 악을 도모하는 자등이 하나님께 정죄받을 죄악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과 불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뿐 아니라, 또한 마지막날에도 노와 분으로 심판하실 것이다(롬 2:8).

[3절]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사람은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한다. 무엇이 악인가? 불경건과 부도덕이 악이다. 무신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는 것, 안식일 없이 사는 것, 우상숭배 등이 악이며, 또 부모 거역,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말 등이 악이다. ‘굳게 서지 못한다’는 말은 안정을 얻지 못한다, 평안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악인은 평안하지 못하다. 시편 1:4-5,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은 건강도, 경제도, 가정도, 사회도 평안치 못하다. 악인은 병에 걸리고 경제적 궁핍을 당하며 그 사회는 전쟁을 경험할 것이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이사야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이사야 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레위기 26장이나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경고하셨고, 이스라엘 역사는 그것을 증거하였다.

그러나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며 의와 선을 행하는 자,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자를 말한다. 뿌리가 움직인다는 말은 뿌리가 뽑혀 나무가 죽는다는 뜻이고, 뿌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은 뿌리가 깊이 박혀 있어 안전하다는 뜻이다. 의인에게는 평안이 있고 안정이 있다. 평안이라는 말 속에는 건강도, 경제적 안정과 번영도, 사회적 평안도 포함된다. 의인은 건강하고 물질적 여유도 있으며 가정적 평안과 사회적 평안도 있다.

[4절]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남편]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남편]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어진 여인은 남편의 면류관이다. ‘어질다’는 원어(카일 )는 ‘힘, 능력, 덕’이라는 뜻이다. 잠언 31:10에서는 ‘현숙한 [여인]’이라고 번역했다. 영어 성경들은 ‘덕 있는 아내’(KJV), ‘휼륭한 아내’(NASB) 등으로 번역했다. ‘어진 여인’은 덕과 능력을 가진 여인, 즉 지혜, 사리판단력, 실천 능력을 가진 여인이다. 그는 돕는 자로서 아내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자 즉 좋은 아내, 훌륭한 아내이다. 그는 집안일뿐 아니라, 또한 자녀 관리도 잘한다. 어진 여인은 그 남편의 면류관, 즉 그는 그 남편의 자랑과 기쁨이다. 잠언 31:10에는 현숙한 여인은 진주보다 귀하다고 표현하였다. 또 현숙한 여인은 온 동네에 알려지기도 한다. 룻기에 보면, 보아스는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 현숙한 여자인 줄을 유다 베들레헴 성읍 백성이 다 안다고 증거하였다(룻 3:11).

그러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남편으로 뼈가 썩음 같게 한다. 욕을 끼친다는 말은 남편을 부끄럽게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남편을 무시하고 그에 대해 불만하고 불평하며 남편과 다툼을 가리킬 것이다. 성경은 남편이 자기 아내의 머리라고 말하며 아내는 자기의 남편을 주님처럼 존중하라고 가르친다. 고린도전서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에베소서 5:22-2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남편으로 뼈가 썩음 같게 한다. 남편의 마음의 고통이 매우 클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은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했다(잠 21:9; 25:24).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지만, 책망을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 훈계와 책망을 좋아하는 자가 지혜와 지식이 있는 자이다. 훈계와 책망은 당장에는 슬픔과 낙망을 주지만 우리를 바른 길로 가게 하며 우리에게 결국 복과 유익이 된다.

둘째로,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기쁨과 호의를 받으나 악을 꾀하는 자는 그의 정죄하심을 받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은 우리는 악을 꾀하는 자가 되지 말고 선한 일을 하는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고 선한 일을 힘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셋째로, 사람은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의 성공 여부는 그가 의롭게 사는가, 악하게 사는가에 달려 있다. 거기에 하나님의 복과 재앙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하게 살지 말고 경건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넷째로, 덕스럽고 현숙한 여인은 그 남편의 면류관이나 부끄러움을 끼치는 여인은 그로 뼈가 썩음 같게 한다. 여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현숙한 여인, 즉 덕스럽고 사리판단력이 있는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한다. 또 그는 자기 남편이 그의 머리임을 깨닫고 그를 존중하고 순종해야 한다.

5-8절, 의인의 생각, 입, 집, 칭찬

[5절] 의인의 생각(마카솨바 )[생각, 판단, 계획]은 공직하여도[올바르지만] 악인의 도모(타크불라 )[계획, 조언]는 궤휼[거짓]이니라.

의인의 생각은 올바르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자인데, 그의 생각은 올바르다. 그것은 불의하거나 악하지 않고 또 거짓되지도 않다. 그것은 십계명이나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고 성경 교훈에 어긋나지 않고 양심이나 이성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악인의 계획은 거짓이다.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법을 거스르는 자이며 그는 거짓으로 악을 계획하고 악을 행한다.

사람의 생각하는 바는 그의 사람 됨됨이를 나타낸다. 잠언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사람의 됨됨이]도 그러한즉.” 사도 바울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성령]을 좇는 자는 영[성령]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했고(롬 8:5-6), 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했다(롬 12:2). 성도는 바르고 진실한 생각과 계획을 가져야 한다.

[6절]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어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며 남을 미워하는 악인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고 말한다. 사람의 말은 생각과 마음의 표현이다. 악한 말은 악한 생각과 악한 마음에서 나온다. 의인은 사람을 그의 앞에서 책망할지언정 뒤에서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악인은 은밀히 남을 해치며 그를 죽이려 한다. 그것은 자기의 행동이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일임을 자기 양심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피를 흘리는 일은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악이다. 창세기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고, 출애굽기 21장에서는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다(12, 14절).

그러나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한다.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양심대로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며 사는 자이다. 그가 누구를 구원한다는 뜻인가? 그는 악인에게 위험을 당한 순진한 자에게 그 위험성을 알려줌으로써 그를 구원하고 또 악인 자신에게도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고 그의 죄를 지적하여 깨닫게 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 얻는 길을 제시함으로써 그를 구원할 것이다.

[7절]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된다. 악인들의 형통은 잠시뿐이며 길어도 이 세상에서뿐이다. 악인들은 이 세상에서 엎드러질 때도 있다. 악인들은 언제, 어떻게 엎드러지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환난과 재앙으로 치실 때 그렇게 된다. 그들은 원수들의 갑작스런 공격을 받거나 강도나 도적을 만나든지, 전쟁이나 기근을 당하든지, 화재 같은 대형사고나 부도를 당하거나 무서운 질병의 침입을 당하여 엎드러진다. 악인들은 엎드러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망한다. 그러나 의인의 집은 든든히 서 있을 것이다. 의인들에게도 고난은 있다. 고난은 죄와 실수에 대한 징벌 때문에 오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높으신 뜻 가운데서 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고난은 유익이 많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더욱 겸손하고 성결하게 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게 된다. 고난은 성도로 온전한 인격이 되게 한다.

의인들은 그 고난을 다 이겨내며 거기에서 구원을 얻는다. 시편 34:19,“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잠언 10: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잠언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특히 ‘의인의 집’ 즉 의인의 자녀들은 든든히 세움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적 복을 약속하셨다. 출애굽기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의 자손들은 자자손손 복을 받을 것이다. 다윗은 시편 37:25에서 말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다윗의 자손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린 것은 그 증거이다.

[8절] 사람이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패려[패역]한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을 것이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정하고 거역하는 것,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러 부도덕하게 행하는 것, 남을 미워하고 이기적이고 음란한 것, 또 세상의 것, 육신의 것만 구하는 것, 그리고 게으른 것 등이 미련함이다. 예레미야 8:9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고 말씀하셨다. 지혜는 사물을 바르게 보고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과 이성에 맞게 바르게 판단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바르게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다. 야고보서 1:5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하였다. 

사람이 지혜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 사람은 다양심과 이성이 있기 때문에 이성적이게, 양심적이게 행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비록 자신이 그렇게 온전하게 살지는 못해도 양심적이게, 이성적이게 행하는 자를 다 칭찬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패역한 자는 멸시를 받는다. 패역한 것은 사물을 바르게 보고 판단하지 못하고 생각과 판단력이 비뚤어진 것을 말한다. 그것은 교만한 마음에서 생긴다. 마음이 패역한 자는 잘못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며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

마음이 패역하면 말과 행동도 악하고 비뚤어지게 된다. 그것은 지혜가 없는 미련한 마음이다. 이러한 사람은 사람들의 멸시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그의 말과 행동이 양심에 맞지 않고 이성에도 어긋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의인의 생각은 올바르지만, 악인의 계획은 거짓되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 교훈과 양심과 이성에 어긋나지 않게 항상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올바르게 행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정로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복과 평안을 얻는 길이다.

둘째로,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지만,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한다. 우리는 악한 마음을 품고 악한 말을 하며 남을 해치고 죽이는 악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남을 해치고 죽이는 일은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악이다. 우리는 오직 사람들을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는 정직한 자가 되어야 한다. 남을 구원하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다.

셋째로,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지만, 의인의 집은 서 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악에 대해 재앙으로 치실 때 그들은 엎드러질 것이다. 우리는 악인의 일시적, 세상적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오직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 우리의 집과 자손들이 영원하게 든든히 세워지게 해야 한다.

넷째로,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나 마음이 패역한 자는 멸시를 받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지혜로운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도 기뻐 받으시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패역한 자는 사람들도 그를 멸시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과 판단과 말과 행동이 양심과 이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9-12절, 실속, 잔인, 근면, 불의의 이

[9절]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 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가 있다. 그는 왜 사람들에게 비천히 여김을 받는 것인가? 그것은 그가 아마 자신을 높이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직접하고 겸손하며 근면하고 그래서 사람들 보기에는 종들과 똑같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종을 소유하고 있고 그에게 할 일을 지시하고 감독하고 일을 하게 하는 자이다. 그러면 그는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고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는 농사를 짓거나 과수원을 하거나 기타 무슨 일을 하든지 소득을 얻을 것이다. 윗사람은 적절히 일을 시키는 자가 잘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스스로 높은 체하지만 음식이 핍절한 자가 있다. 그는 자신을 고상한 자라고 생각하고 궂은 일이나 땀 흘리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부릴 종이 없거나 종이 있어도 부리지 않고 그에게 일을 제대로 시키거나 감독하지 않는다. 그는 아랫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 보기에 고상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그의 일에 아무 진전이 없고 좋은 결과가 없고 열매나 소득이 없다.

오늘날같이 어려운 시대에는 100만원도 못 버는 사장보다 100만원이라도 버는 직원이 낫고, 취직도 못하는 대학졸업자보다 취직이라도 하는 고등학교 졸업자가 낫다. 또 손에 기름때 묻히며 일하지만 돈을 좀 버는 기술자가,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지만 일거리가 없어서 봉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무직보다 낫다. 겉치레나 체면을 중시하지 말고 내면과 실속을 중시하는 것이 지혜이다.

[10절]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의인은 그 가축의 생명을 돌아본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의 인격, 생명, 정조, 재산, 명예를 존중할 뿐만 아니라, 가축들의 생명까지도 돌아본다. 그들은 가축들에게 때를 따라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고 추위와 더위나 전염병이나 화재 등을 염려하고 아프면 치료해주고 그것들을 결코 학대하지 않는다.

성경은 가축을 죽이는 것을 금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본래 채소와 과일을 음식으로 주셨으나 홍수 심판 후 생물도 먹도록 허락하셨다(창 9:3). 단지, 짐승들 중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것만 먹고 물고기들 중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만 먹고, 또 생물을 피째 먹지 말라고 하셨다(레 11장; 17장). 물론, 신약시대에는 이런 의식법을 그대로 지키지 않고, 그것의 도덕적 의미만 교훈으로 삼는다.

가축이나 새와 짐승의 생명을 돌아보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심정이다. 율법에는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고 말했다 (신 25:4). 욥기 38:41은 하나님께서 까마귀 새끼가 그를 향해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 그것을 위해 먹을 것을 예비하신 다고 말했다. 시편 104:21, 27은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하나님께 구하며 바다 생물들이 주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공중의 새들과 들의 백합화를 먹이시고 입히신다고 말씀하셨다(마 6:26, 30).

본문은 그러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라”고 말한다. 악인은 가축들을 학대하고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아플 때 치료도 해주지 않는다. 하나 님께서는 노부모 학대, 여성이나 아동 학대, 고아와 과부 학대, 외국인 노동자나 가난한 자 학대뿐 아니라, 또한 동물 학대도 미워하신다.

[11절]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자’란 직장이든지 가정이든지 자기 일터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자를 가리킨다. 열심히 일하며 수고하는 자는 소득이 많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면 그러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다.

시편 128:1-2,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지을 때, 열심히 일하고 하나님께서 적절한 비를 주시고 병충해를 막아주시면 많은 수확을 거둘 것이다. 또 사업을 할 때, 열심히 일하고 사회적, 경제적 여건에 갑작스런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상당한 소득이 있을 것이다.

사람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범죄 후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게 되었다(창 3:19).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셨다(출 20:9). 그러므로 잠언 10:4는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고 말했고, 사도 바울도, “종용하여[조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교훈하였다(살전 4:11; 살후 3:10).

그러나 방탕한 것을 따르는 사람은 지혜가 없다. ‘방탕한 것’이라는 원어(레킴 )는 ‘헛된 것들’(BDB, NASB)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놀기를 좋아하고 사치나 하고 시간과 돈과 힘을 낭비하며 절제치 못하는 것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런 것들을 따르는 자들은 소득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지혜가 없는 자들이다.

[12절] 악인은 불의의 이(利)(메초드 라임 )[악한 자들의 탈취물](NASB, NIV)를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악인은 악한 자들의 탈취물을 탐한다. 악한 자들의 탈취물을 취한다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악한 일을 해 쉽게 돈을 벌려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남에게 사기를 쳐서 돈을 벌거나 도적이나 강도짓을 하여 돈을 버는 것이 그러하다. 악한 자들은 불의의 이익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원하며 그런 일을 행한다.

그러나 우리는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장로나 집사 같은 교회의 직분자들은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딛잠언 12장: 어진 여인, 지혜자의 혀, 근면1:7; 딤전 3:8). 우리는 땀 흘려 일함으로 얻는 정당한 이익을 구해야 한다. 시편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잠언 31:27, “[현숙한 여인은]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에베소서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를 의지하고 순종하며 그의 계명대로 살려고 애쓰는 의인들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할 것이다. ‘의인의 뿌리’란 그의 경건과 의를 가리킬 것이다. 경건과 의는 성도들의 생명이다.

성도들이 경건과 의 가운데서 일하며 수고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수고의 대가를 누리게 하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비록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낫다. 우리는 겉치레나 체면을 중시하지 말고 내면과 실속을 중시해야 한다. 우리는 겸손히, 부지런히, 실속 있게 우리의 할 일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의인은 그 가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격과 생명을 존중하고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배려할 줄 알며 짐승까지도 돌보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목표인 하나님의 형상이며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

셋째로,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나 헛되고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다. 우리는 사치하고 낭비하지 말고 절제있고 부지런하게 살며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죄짓지 말고 일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수고의 대가의 복을 누려야 한다.

넷째로, 악인은 악한 자들의 탈취물을 탐하지만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한다. 악한 자들의 탈취물은 당장 유익하게 보여도 복이 되지 못하고 결국 화가 된다. 우리는 정당하게 일함으로써 수고의 대가를 누려야 한다. 적은 소득이라도 정당하게 번 것이 성도에게 복이 된다.

13-16절, 언행, 조언, 분노

[13절]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들을 입으로 말하며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낸다”(마12:34-35). 악인은 말로 범죄한다. 그에게서는 독한 비난, 미움의 말, 거짓말, 이간질 등이 나온다. 악인은 그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린다. 그는 자기의 말 때문에 곤란을 당하고 멸망을 자초한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말했고(약 1:19),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다(약 3:2).

그러나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난다. 의인의 의로움은 그의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말로 나타난다. 의인에게도 환난은 있지만 그는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을 받는다. 시편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잠언 10: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잠언 11:8,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 잠언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4절]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福祿)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복록(福祿)에 족하다는 말은 복으로 만족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말과 행위는 마음과 인격의 표현이다. 마태복음 12:34-35,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선한 말은 남에게 유익을 주고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온다. 시편 35:13, “나는 저희가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마태복음 10:12-13,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사람은 손이 행한 대로 받는다. 선한 행위는 타인에게 유익을 주고 자신에게도 복이 된다. 잠언 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갈라디아서 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마태복음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드러나게] 갚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악간의 행위에 대해 공의로 보응하신다. 전도서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15절]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권면, 조언]를 듣느니라.

미련한 자는 자신의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옳다고 생각한다. 그의 행위가 바르지 않지만, 그가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하고 교만하고 고집스럽기 때문이다. 완고함과 확신은 다르다. 완고함은 인간적, 주관적 생각에 근거한 무지하고 교만한 고집이다. 그러나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에 근거한 확고한 신념이다. 우리는 완고함 곧 무지하고 교만한 고집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주관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 곧 성경 진리에 대한 확신은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애매모호하지 않고 분명하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그 뜻을 따르는 길은 좁은 길이며 외로운 길이며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길이다. 그러나 노아나 선지자 엘리야와 미가야는 그 외로운 길을 갔고 다니엘과 사도 바울도 그 고난의 길을 갔다. 옛날부터 세상은 넓은 길을 좋아했으며 오늘날 교회들 안에도 교리적, 윤리적 오류를 포용하는 무분별한 포용주의와 연합주의의 세력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확신하며 좁은 길을 가야 한다. 미련한 자는 남의 말을 듣지 않지만, 지혜로운 자는 조언을 듣는다.

조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즉 성경적 조언과 인간적 조언이다. 성경적조언은 유익하고 건설적이다. 그것은 의와 선을 이룬다. 그러나 인간적 조언은 사람 보기에 그럴 듯할지 모르나, 하나님의 뜻과 달리 악한 경우가 많다. 지혜로운 자가 조언을 듣는다는 것은 성경적인 조언을 듣는다는 뜻이다. 겸손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성경적 조언을 잘 듣고 의와 선을 이루며 영육의 유익을 얻을 것이다.

[16절]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사람이 분노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은 불의한 일을 볼 때 정당한 분노가 생긴다. 또 사람은 자신이 물질적 손실이든지 부당한 비난이나 명예훼손이든지 남에게 손해를 당했을 때나 또는 자존심이 몹시 상할 때 보통 분노한다.

사람이 분노를 당장 나타내는 것은 왜 잘못인가? 그것은 상대방의 비난이 옳은 데도 자신이 잘못 판단하여 급하게 화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분노가 지나쳐 입에서 욕이나 저주 같은 말의 실수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성급한 분노나 말의 실수는 죄를 짓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화가 날 때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것이 지혜이며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 야고보서 1:19-20,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는다. ‘참는다’는 원어(카사 )는 ‘감춘다’는 뜻이다. ‘수욕을 참는다’는 것은 상대방이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상황에서도 금방 그것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좀더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후에 화를 내어도 늦지 않을 것이며 그런 후에 화를 내는 것이 실수 방지를 위해 더 안전할 것이다. 또 생각해보니 자신이 잘못해서 당한 수욕이라면 달게 받고 반성하고 고치면 될 것이고,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데 당한 수욕이라면 조금 후에 가라앉은 감정과 마음으로 상대에게 해명하고 반박하면 될 것이다. 또 우리가 다 부족과 실수가 많으므로 상대를 불쌍히 여길 수도 있다. 여하튼 그는 지나치게 반응하여 실수하거나 범죄하지 않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해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난다. 우리는 악한 말을 버리고 바르고 선한 말을 해야 하며 환난을 당해도 염려치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해 얻는 복으로 만족하고 그 손의 행하는 대로 받는다. 우리는 바르고 선한 말과 행위를 해야 하며 선한 말과 행위는 남에게 유익할 뿐 아니라 또한 우리 자신에게도 복이 된다.

셋째로,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지만 지혜로운 자는 조언을 듣는다. 우리는 교만과 고집을 버리고 바른 조언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지혜와 평안과 생명의 길이다.

넷째로,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지만,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는다. 우리는 미련한 자처럼 분노를 당장 내지 말고 수욕을 참고 좀더 생각하고 판단한 후에 적절하게, 지혜롭고 덕스럽게 처신해야 한다.

17-20절, 진실, 지혜, 화평

[17절]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궤휼[거짓]을 말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하나님, 진실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진실을 말하는 자이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주 안에서 한 몸의 지체가 되었으므로 서로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에베소서 4: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낸다. 그는 옳은 것을 말한다. 진실과 의는 함께 간다. 옳은 것은 참된 것이며 불의한 것은 거짓된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다 옳다. 사람이 진리를 말하면, 하나님의 법과 그것이 옳다는 것과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과 죄인들에게 의가 필요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의가 되심을 증거할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말하면, 옳은 것을 증거할 것이며, 또 그뿐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법을 실천함으로 의를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거짓 증인은 거짓을 말한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거짓은 마귀의 죄악이다. 예수께서는 마귀가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다(요 8:44). 성경은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했다(계 21:8, 27; 22:15). 거짓 증인은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증거하며 사실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증거한다.

그는 의를 불의라고 말하며 불의를 의라고 말하고, 선을 악이라고 말하며 악을 선이라고 말한다. 진실과 의는 하나님의 속성이며 하나님의 세계의 덕목이지만, 거짓과 불의는 마귀의 속성이며 특징이다. 거짓말은 큰 죄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합당치 않다.

[18절]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말은 사람의 생각과 인격의 표현이다. 주께서는 사람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2:34-35).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이다(약 3:2).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다윗은 자주 악인의 말을 칼에 비유하였다. 시편 55:21,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시편 57:4,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시편 64:3, “저희가 칼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사람은 잘못된 판단이나 성급함 때문에 또 사랑 없음이나 미움 때문에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분노케 하는 말을 하기 쉽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교훈했고(엡 4:31), 골로새서에서도 분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을 벗어버리라고 했다(골 3:8). 사도 베드로도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말했다(벧전 2:1).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다. ‘양약’(마르페 )이라는 원어는 ‘치료’라는 뜻이다(BDB, NASB, NIV). 지혜로운 자는 남에게 유익을 주는 말을 한다. 잠언 10:20-21,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물론 지혜자도 때로는 책망의 말을 한다. 그러나 참된 충고는 파괴적이지 않고 건설적이며, 사랑에서 나온 책망은 상대방에게 유익을 줄 것이다. 잠언 27:5-6은,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고 말한다.

[19절]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된다. 사람들은 때때로 진리를 말하는 자, 진실을 말하는 자를 인정치 않는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450인이로다”라고 말했었고(왕상 18:22), 또 하나님께 아뢰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부르짖었었다(왕상 19:10). 또 미가야의 경우도 그러했다. 그는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다르게 홀로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말하였다(왕상 22:13-14). 사도 바울도 외로운 싸움을 하였었다. 그는 말하기를,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고 했고(딤후 1:15), 또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다”고 말했다(딤후 4:16).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엘리야, 미가야, 바울의 말들이 진실했고 그들의 말들이 남아 있음을 알고 그들의 말들과 행위들을 본받으려 한다.

그러나 거짓 혀는 눈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다. 거짓 혀는 속이는 혀, 사실을 왜곡시키는 말을 하는 혀이다. 말쟁이, 아첨꾼의 혀가 그런 혀이다. 그런 혀는 눈깜짝일 동안만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속아넘어가는 동안뿐이다. 그 동안만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체가 드러나면, 즉 그의 거짓과 허풍, 속임수와 위선이 드러나면, 그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사기꾼이라고 말하며 다 그를 떠나갈 것이다.

[20절]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궤휼[거짓]이 있고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거짓이 있다. 사람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악을 꾀할 때 거짓말과 속임을 사용한다. 그는 악하지 않은 듯하게 악을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범죄케 했던 뱀의 모습이다. 그는 하와에게 “너희가 [선악과 열매를 따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었다(창 3:4). 아합과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으려 했을 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말하는 거짓 증인을 세웠었다(왕상 21:10). 로마서 3:13-14는 “저희[악인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다. 진실과 선과 화평은 같이 간다. 또 거기에는 기쁨과 평안이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했고(롬 14:17), 또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말했다(갈 5:22-23).

그러나 남을 속이고 해치는 자에게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이사야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거짓을 말한다. 우리는 진리를 말하고 의를 나타내는 자가 되고 결코 거짓을 말하는 거짓 증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불의와 거짓은 구원 얻지 자들의 표요 의와 진실은 구원 얻은 성도의 표이다.

둘째로,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의 혀는 양약과 같다. 우리는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지 말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덕스러운 말을 해야 한다. 인격의 온전함은 말의 온전함으로 나타난다. 온전한 말과 온전한 인격은 구원의 목표이며 성화의 목표이다.

셋째로,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지만, 거짓 혀는 눈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말쟁이나 아첨꾼처럼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또 우리는 거짓말을 듣지도 말고 현혹되지도 말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과 진실한 말만 해야 한다.

넷째로,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거짓이 있고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다. 우리는 악과 거짓을 버리고 선과 화평을 구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이다. 또 거기에 평안과 기쁨도 있다.

21-24절, 의, 진실, 지혜, 근면

[21절] 의인에게는 아무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재앙]가 가득하리라.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 곧 오늘날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자이다. 그런 의인에게는 아무 재앙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의인에게도 고난은 있다. 그가 실수하면 징계의 고난이 있다. 다윗은 범죄한 이후 여러 가지 징계의 고난을 겪었다. 히브리서 12:8은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말했다. 또 욥의 고난 같은 신앙인격 훈련의 고난도 있다. 의인은 고난이 많다(시 34:19).

그러나 의인의 고난은 재앙이 아니다. 의인의 고난은 멸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에서 그를 건져주신다. 시편 34:19,“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편 91: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디모데후서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라.” 또 성도가 겪는 고난을 포함한 모든 일들은 합력하여 유익을 준다(롬 8:28).

순교는 가장 높은 차원의 고난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재앙이나 징벌이 아니다. 그것은 무의미한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다가 그 진리 때문에 죽는 영광스런 죽음이다. 주께서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0:39).

그러나 악인에게는 재앙이 가득할 것이다.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은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는 악인들에게 기근과 가난, 전쟁과 열방으로의 흩어짐, 여러 가지 질병들 등의 재앙이 있을 것을 증거했다. 신약 성경은 내세의 지옥 형벌을 밝히 증거한다(막 9:43-48; 계 21:8).

[22절]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거짓말하는 것은 마귀의 죄이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다(요 8:44).마귀는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속여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고 하였었다. 이단들과 이방 종교의 지도자들은 결국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열왕기상 22:23,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마태복음 24:11, (말세의 징조들 중하나)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데살로니가후서 2:9-10,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단들과 이방 종교들은 다 거짓말이다.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자들을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잠언 6장은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6, 7가지를 증거하면서 그 중에 거짓된 혀와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을 들었다(잠 6:16-19). 또 성경은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지옥불에 던지울 것이며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증거하였다(계 21:8, 27; 22:15). 거짓말은 큰 죄악이다.

그러나 진실히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하나님, 진실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모든 말씀은 진리 곧 진실한 말씀이다. 사람이 진리 안에서 행하면, 즉 진리를 믿고 진리대로 또 진실하게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뻐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뜻과 그의 계명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스가랴를 통하여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라”고 말씀하셨고(슥 8:16), 사도 바울도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교훈하였다(엡 4:25).

[23절]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 두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춘다. 슬기로운 자는 많이 알아도 아는 척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겸손하고 선하며 지식의 참 용도를 알고 있고, 또 사람의 지식이란 보잘것없는 것이며 작은 지식도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어떤 경우는 상대가 자기보다 더 잘 알 수 있거나 또는 자기 때문에 열등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르치는 경우에는 지식을 가르쳐야 하지만, 아무 때나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지 않고 꼭 필요할 때 쓴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많이 알아도 아는 척 하지 않고 그 지식을 감추어 두는 것이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나, 사랑은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다(고전 8:1; 13:4).

그러나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한다. 미련한 것이란 잘못된 지식이나 잘못된 생각과 판단을 가리킬 것이다. 미련한 자는 미련한 것을 전파한다. 잠언의 다른 구절들도 이와 비슷한 것을 말한다. 잠언 13:16,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여도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잠언 15:2,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미련한 자는 왜 미련한 것을 전파하는가? 왜냐하면 그는 무지하고 교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련한 자는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는 자기 자신만 미련할 뿐 아니라, 미련한 것을 전파함으로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미련하게 만든다.

또 그는 교만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자신을 자랑하고 뽐내려 한다. 그러나 그가 드러내는 것은 미련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24절]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된다. 일은 보통 손으로 한다. 농사도 목축도 건축도 가사도 사무 일도 다 손으로 한다. 사람은 자기의 하는 일에 근면하고 충실해야 한다. 손이 부지런한 자는 많은 소득을 얻는다. 한 시간에 물건을 열 개 만드는 사람보다 열세 개 만드는 사람은 여덟 시간이면 스물네 개나 더 만들며 그러면 수입도 그만큼 늘 것이다. 부지런한 학생은 성적이 올라 좋은 학교에 진학할 것이며, 부지런한 직장인은 점점 승진하여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는 책임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될 것이다. 신앙인격도 비슷하다. 더 많은 성경 읽기와 배우기, 기도, 성도들 간의 교제, 전도와 봉사 등을 통해 부지런히 자신을 단련시킨 자는 지식과 인격이 많이 성장하여 교회의 중요한 책임을 맡을 직분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는다. 자기 일에 게으른 자는 그 일에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한다. 성경은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잠언 6:9-11,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언 18:9는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敗家)하는 자의 형제니라”고 말한다. 게으른 사람은 남의 밑에서 부림을 받을 것이다. 또 잠언10:26은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자에게 기쁨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에 초같이 눈에 연기같이 괴로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의인에게는 아무 재앙도 임하지 않을 것이지만, 악인에게는 재앙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의롭게 살며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을 믿어야 한다.

둘째로,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는다. 우리는 모든 거짓과 거짓말을 버리고 항상 진실하게 살고 진실한 말만 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아야 한다.

셋째로, 슬기로운 자는 지식을 감추어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한다. 우리는 꼭 필요한 때 지식을 쓰는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로,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에도 세상일에도 부지런해야 한다.

25-28절, 선한 말, 의인, 근면, 생명

[25절]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마음으로 번뇌케 한다. ‘번뇌케 한다’는 원어(솨카 의 사역형)는 ‘침체시킨다. 풀이 죽게 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마음이 침체되고 풀이 죽고 우울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모세도 불평하는 백성때문에 하나님께 자신의 곤고함을 아뢴 적이 있었고(민 11:12-15), 또 하나님의 종 엘리야도 낙심하여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취하기를 소원한 적이 있었다(왕상 19:4). 사람의 마음은 매우 연약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염려와 생활의 염려를 조심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교훈하셨고(마6:31) 씨 뿌리는 비유에서는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를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로 비유하셨다(마 13:22). 또 그는 우리가 깨어 그의 재림의 날을 기다려야 할 것을 교훈하시면서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져서 그 날이 덫과 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눅 21:34). 그러나 선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선한 말, 좋은 말은 믿음으로 하는 권면과 위로와 격려의 말이다. 그것은 열두 정탐꾼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과 같은 믿음의 말이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말했다(민 14:8).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하며(잠 3:6), 또 우리에게 주신 모든 현실이 결국 선한 결과를 이룰 것을 믿어야 한다(롬 8:28).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의 태도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교훈하였다(빌 4:6). 참 믿음에서 좋은 권면과 위로와 격려의 말도 나온다.

[26절]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길]은 자기를[그들을](KJV, NASB, NIV) 미혹하게 하느니라.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자, 신약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의 교훈대로 선하게 사는 자이다.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된다.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된다’는 원문(야세르 메레에후 )은 영어성경에서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그 이웃보다 낫다’(Targum, KJV),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된다’(NASB,Langenscheidt), ‘그 이웃을 살핀다’(BDB, KB, NIV). 의인은 그 덕성이나 평안의 복에 있어서 이웃보다 낫다. 또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될 것이다. 또 의인은 아무 친구나 사귀지 않고 그의 이웃을 살피며 조심할 것이다. 어느 번역도 뜻은 다 좋지만, 전통본문의 읽기나 언어적으로는 두 번째나 세 번째 번역과 해석이 타당한 것 같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은 그들을 미혹케 한다. 악인들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대로 행치 않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성경 교훈대로 살지 않고 자기 욕심과 악한 세상 풍조를 따라 사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을 미혹케 한다’는 말은 문맥적으로 이웃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악인들의 길은 자신들을 곁길로 가게 할 뿐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을 곁길로 가게 만들 것이다. 악한 사람들의 악행은 다른 많은 사람들을 악한 길로 인도할 것이다.

[27절]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않는다. ‘사냥하다’는 원어(카라크 )는 ① ‘(사냥감을 잡기) 시작하다,’ 혹은 ② 유대인의 전통이나 아람어역에 의하면, ‘(음식을) 굽는다’는 뜻이라고 한다(BDB). 영어성경들은 “게으른 자는 그 사냥한 것도 굽지 않는다”라고 번역했다(KJV,NASB, NIV). 게으른 자는 사냥하는 것도 힘들어하고 귀찮아하며, 또 사냥하여 잡은 짐승, 즉 이미 가지고 있는 음식 재료도 구워 먹는 일을 힘들어하고 귀찮아할 것이다. 잠언 26:15,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성도는 게으른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용감히 나아가 사냥도 하고 사냥한 것을 굽기도 해야 한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부지런해야 한다.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다. 손이 부지런한 자는 물질적 유여함을 누릴 것이다. 그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바이며 우리가 경험적으로 아는 바이다.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부지런함은 물질적인 유여함보다 더 귀한 재산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재산을 모을 것이다.

또 부지런한 사람은 남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잠언 12:24는,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고 말한다. 성도는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부지런해야 한다. 

[28절]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다. 본래, 죽음은 죄 때문에 왔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죄를 범함으로 죽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대로이었다(창 2:16-17). 죄의 값은 사망이다(롬 6:23).

영원자존(永遠自存)하신 의로우신 하나님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의를 이루셨다. 로마서 10: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에 근거하여 그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되셨다. 로마서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定罪)에 이른 것같이 의(義)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의의 결과는 영생이다. 요한일서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다. 의의 길에는 사망이 없다. 죄는 죽음을 가져왔으나 의는 생명이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구원을 얻었다.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고(요 5:24), 또 그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요 11:25-26). 사도 바울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하였다(고전 15:55-57).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근심이 사람의 마음을 우울케 하나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가지고 선한 말로 남을 권면하고 위로하여 그로 즐겁게 해야 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둘째로,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길은 그들을 미혹하게 한다. 우리는 이웃을 미혹케 하지 말고 인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니엘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셋째로, 게으른 자는 그 사냥한 것도 굽지 않으나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다.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사도 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했다(롬 12:11). 우리는 근면해야 한다.

넷째로,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고 그 길에 사망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의를 이루셨고 그 안에 영생이 있다. 그를 믿고 성경 교훈대로 바르게 사는 자는 확실히 영생에 이를 것이다.

===13장: 교만, 친구, 자녀 징계

1-4절, 지혜자, 바른 말, 근면

[1절]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다. ‘훈계’라는 원어(무사르)는 ‘교훈, 책망, 징계’라는 뜻을 가진다. ‘아버지의 훈계’라는 말은 우선 자녀 교육의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음을 보인다. 자녀 교육의 책임은 국가나 학교에 있지 않고 심지어 교회에 있지도 않고 부모에

게, 그것도 특히 아버지에게 있다. 지혜로운 아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겸손히 순종하는 아들은 그의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다. 사람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인격의 성숙이 필요하다(잠 22:6). 특히 경험 많은 경건한 어른들의 교훈은 아이에게 유익이 많다. 어른들은 인생의 여정에서 실패와 승리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교훈을 줄 수 있다. 또 잠언 22:15는 아이의 마음에 미련한 것들이 얽혀 있고 부모의 징계의 매가 이를 멀리 쫓아낸다고 말한다. 부모의 교훈과 징계는 자녀에게 매우 유익하다.

그러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한다. ‘거만한 자’라는 원어(레츠 )는 ‘비웃는 자, 조롱하는 자’라는 뜻이다. 교만한 자는 남을 비웃고 조롱한다. 거만한 아들은 아버지의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높은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자기 생각을 옳다고 생각하고 부모의 교훈과 책망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리석은 자이다. 물론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이성적으로, 성경적으로 잘 확증한 후에 책망해야 자녀를 노엽게 하거나 자녀의 반발을 가져오지 않는 유익을 줄 것이다.

[2절]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네페쉬 보게딤 )[배신자들의 영혼]는 강포를 당하느니라[강포를행하느니라].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을 누린다. 입의 말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인격의 표현이다. 우선,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그의 입술의 고백으로 표현되며 그것은 구원 얻은 표가 된다. 로마서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또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12:36-37). 선한 마음과 생각을 가진 선한 사람은 선한 말, 이웃을 배려하는 덕스러운 말을 할 것이며 이런 선한 말은 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선한 말을 하는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그를 인정하시고 더욱 사랑하실 것이다.

그러나 배신자들의 영혼은 강포를 품고 강포를 행한다. 선한 사람은 평소에 쌓은 선한 마음에서 선한 말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하지만, 악한 사람은 악한 마음에서 악한 말을 하고 악한 행동을 한다. 배신자들은 악한 자들이며 강포한 일을 품고 강포를 행한다.

[3절]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입을 지키는 자는 자신의 생명을 보전한다. 사람의 인격은 그의 말로 표현되기 때문에 입을 지키고 말을 조심하는 것은 죄를 안 짓는 길이다. 야고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말하였다(약 3:2).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입을 지켜야 악하고 죄악된 말, 거짓된 말을 하지 않고 선한 말, 깨끗한 말, 덕스러운 말, 진실한 말만 할 수 있고 선하고 거룩하고 온전한 인격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입을 지키면 자기의 생명을 보전한다는 말은 사람이 입을 지키면 죄를 안 짓게 될 것이므로 자기의 생명도 보전된다는 뜻이라고 본다. 혀의 역할은 크고 그 열매의 중요성도 크다. 그러므로 잠언 18:21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하였다. 또 잠언 21:23은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온다.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는 말이 헤픈 자, 말이 많은 자, 생각 없이, 조심 없이 말하는 자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런 자는 말로 실수하게 되고 범죄하게 되며 그 결과 그는 결국 멸망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10:19는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말하였고, 또 잠언 12:13은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해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고 말하였다.

[4절]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해도 얻지 못하지만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는다. 소원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누구나 좋은 것을 갖고 싶어하고 지금의 처지보다 좀더 나아지기 원하고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원한다. 육신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그러하다. 육신적으로,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고 경제적 안정과 여유를 누리기를 원하며 몸의 건강과, 자녀들의 평안과 건강과 출세, 또 사회적 안정을 소원한다. 영적으로도, 우리는 믿음의 성장, 성화(聖化), 성령의 충만을 원하며, 또 바르고 좋은 교회와, 바른 말씀의 교훈과, 성도들의 교제를 원한다.

그런데 게으른 자들은 이 모든 것들 중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오직 부지런한 자들만 그것들을 얻을 것이다. 물질적 여유도 게으른 자는 얻지 못할 것이다. 잠언 6:9-11,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 . .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몸의 건강도 게으르지 말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마음을 써서 부지런히 영양가 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섭취해야 얻는다.

또 신앙의 성장도 게으른 자들에게는 기대하기 어렵고 매일 기도하고 성경 읽고 예배드리기를 힘쓰고 교제하며 봉사할 때 기대할 수 있다. 디모데전서 4:8, “육체의 연습[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디모데전서4: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우리는 영적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벧후 1:5-11).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아들은 그의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않는다. 자녀는 부모의 바른 교훈과 책망과 징계를 겸손한 마음으로 듣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잠언 1:8,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둘째로,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해 복을 누리지만 배신자들은 강포함을 품고 강포함을 행한다. 우리는 선한 말을 하며 복을 누리고 강포를 멀리 해야 한다. 에베소서 4: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셋째로,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온다. 우리는 말할 때 조심해야 한다. 에베소서 4: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넷째로,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해도 얻지 못하나 근면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는다. 우리는 일상생활에도 신앙생활에도 부지런해야 한다. 로마서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5-8절, 의, 완전함, 자족

[5절]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 이르느니라.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의인이다.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의 모든 교훈에 순종하는 자가 의인이다. 의인이 거짓말을 미워하는 까닭은 거짓말이 하나님 앞에 큰 악이며 사람들의 좋은 관계를 하루아침에 깨뜨리는 참으로 나쁜 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하나님, 진실의 하나님이시며(출 34:6), 마귀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다(요 8:44).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미워하신다(잠 6:16-19). 거짓말은 십계명의 제9계명을 어기는 죄악이다.

주께서는 요한계시록에서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계 22:15) 지옥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계 21:8).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계명대로 살기를 원하는 의인들은 거짓말하지 말아야 하고 거짓말을 미워해야 한다.

그러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 이른다.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순종치 않는 자이다. ‘행위가 흉악하다’는 원어(바아쉬 )는 ‘악취를 풍긴다’는 뜻이다(BDB). 악인의 악행은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악취와 같다. 악인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다(롬 3:13). 그에게서는 불쾌한 말이 나온다. 또 악인은 부끄러운 데 이른다. 악인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성경은 사람이 당하는 수치에 대해 많이 말한다(보쉬 110회, 보쉣 29회, 켈림마 30회, 칼론 17회). 사람은 이 세상 사는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아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과 조롱과 수치를 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6절] 의(義)는 행실이 정직한(탐 )[온전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케 하느니라.

의(義)는 행실이 온전한 자를 보호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이다. 의(義)는 온전한 자를 무엇으로부터 보호하는가? 그것은 세상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 즉 질병이나 경제적 파탄이나 그 외의 불행한 일들로부터 보호한다. 의가 보호한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께서 의인을 보호하신다는 뜻이다. 시편 91:3, 10은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도 환난과 어려운 일들이 오나 그는 그 환난에 서 실패치 않는다. 잠언 10: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그는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다. 마태복음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또 그러한 사람은 환난 중에도 결코 낙심하거나 변절치 않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극심한 고난 중에 고백하기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억눌림]을 당하여도 싸이지[눌리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고후 4:8-9).

그러나 악은 죄인을 패망케 한다. 악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그의 계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죄인은 이런 악을 행하는 자들이다. 죄인이 멸망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행하는 악 때문이다. 죄악이 그를 패망케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다.

[7절]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 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본문은 두 가지 뜻으로 번역된다. 하나는 “자신을 부하게 만들어도 아무것도 없는 자가 있고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어도 크게 부요한 자가 있느니라”고 번역한다(KJV, BDB, JFB주석). 그러면 이것은 이기적이지 말고 구제에 힘쓰라는 교훈이라고 보인다. 잠언 11:24-25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사람이 이기적이게 살면 가난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난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구제와 선행을 힘쓰면 물질적 여유를 가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영적으로도 그러하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외적으로 부유했으나 실상 영적으로 가난했고 서머나 교회는 반대로 외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했으나 영적으로는 부유하였다(계 2-3장).다른 하나는 한글개역과 같이 번역한다(NASB, NIV).5) 그러면 이것은 허영과 외식을 경계한 말씀일 것이다. 사람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부한 체하는 사람은 허영심과 명예심이 있는 자이다. 그러나 재물이 많이 있으면서 가난한 체하는 자는 겸손한 자일 것이다. 우리는 외식과 허영을 경계해야 한다. 주께서는 우리가 구제나 기도할 때 외식하지 말라고 교훈하셨다(마 6:1-2, 5). 사도 바울은 헛된 영광을 추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고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교훈하였다(갈 5:26; 빌 2:3).

[8절] 사람의 재물이 그 생명을 속(贖)할 수는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게아라 )[비난](BDB, KB, KJV, NASB)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사람의 재물이 그의 생명을 속(贖)할 수는 있다. 재물은 유익한 점이 많다. 돈이 있으면 필요한 좋은 것들을 살 수 있고, 또 생명의 위협을 당할 때 재물을 속전(贖錢) 즉 몸값으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해적들에게 납치된 자들이 몸값을 주고 풀려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재물은 위험성도 있다. 재물이 있으면 사람은 교만하고 방탕하기 쉽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고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셨다(마 19:23-24). 또 사도 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했다(딤전 6:9-10).

그러나 가난한 자는 비난받을 일이 없다. 사람이 돈의 여유가 없으면 꼭 필요할 때 쓸 돈이 없어 마음의 고통을 느끼거나 환경적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지만, 가난의 유익도 있다. 사람이 가난하면 교만하거나 방탕에 떨어질 가능성이 적고 도적의 위험이나 강도의 협박을 받을 일이 없고, 또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악취를 풍기며 부끄러운 데 이른다. 우리는 악행으로 악취를 풍기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악인이 되지 말고 선하고 진실한 의인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의는 행실이 온전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케 한다. 행실이 온전한 자도 환난을 당하나 그는 그 환난에서 실패치 않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 교훈대로 온전히 행함으로써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실패치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이기적이게 살지 말고 구제에 힘쓰고 또 남에게 보이려는 외식으로나, 세상 영광을 구하는 허영으로 살지 말고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선하고 진실하고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로, 사람의 재물이 그 생명을 속할 수는 있으나 가난한 자는 비난을 받을 일이 없다. 탐심은 큰 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이심을 믿고 내일 일을 염려치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만 구하며 믿음과 순종으로만 살아야 한다(마 6:31-33).

9-12절, 의인, 교만, 재산, 소망

[9절]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성경에서 빛 혹은 등불은, 지식과 도덕성 즉 의, 선, 진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또한 기쁨, 평안, 형통을 가리키기도 한다. 본문은 후자의 뜻에 적절해 보이지만, 전자의 뜻에도 맞다. 의인은 지식과 도덕성에 있어서 점점 더 환하게 빛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의인은 돋는 해이신(눅 1:78-79) 그리스도의 진리와 의를 받은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빛이시며 예수님 믿고 구원 얻은 자들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온 자들이다(요일 1:5-7; 2:9-10). 에베소서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그러나 악인은 어두움에 사는 자이며 자신이 가진 양심의 등불조차도 꺼져가는 자이다.

의인은 또한 기쁨과 평안과 형통에 있어서도 환하게 빛난다. 그러나 악인은 자신이 현재 누리는 기쁨과 평안과 형통도 조만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슬픔과 불안과 낭패를 당할 것이다. 잠언 4:18-19,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욥기 11:17,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욥기 18:5-6,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잠언 20:20,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 잠언 24:20,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의인은 점점 더 기쁨과 평안을 누릴 것이나 악인은 그것을 점점 더 잃을 것이다.

[10절]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오직 교만으로 말미암아 다툼이 생기나](KJV).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교만’이라는 원어(자돈 )는 ‘오만함, 거만함, 건방짐’이라는 뜻이다. 교만은 자신을 높이는 마음이며, 칭찬과 높임을 받으려는 욕심이다. 오직 교만에서 다툼이 일어난다. 잠언 28:25,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탐한다’는 원어(레카브 )도 ‘교만하다’는 뜻이다. 사람이 교만하고 명예에 대한 욕심이 있으면 다툼이 일어난다.

잠언 18:1,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각종 욕심이 싸움의 원인이다. 야고보서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겸손한 자는 자신의 부족을 알고 상대방의 부족도 이해하려 한다. 또 그는 자신의 명예에 대한 욕심, 즉 칭찬과 높임을 받으려는 욕심을 버린다. 겸손한 자들 사이에는 다툼이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하였다(빌 2:2-3).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다. 교만한 자는 바른 권면을 듣지 않지만, 겸손한 자는 바른 권면을 듣는다. 권면을 듣는 자 곧 권면을 듣고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고치려는 자는 지혜가 있다. 만일 그 권면이 자신에게 해당하면 고치면 된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으면 앞으로 참고하면 될 것이며, 또 필요하고 기회가 된다면, 정중하고 겸손하게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해명하면 될 것이다. 여하튼 바른 권면을 듣는 자가 지혜가 있는 자이다.

[11절]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망령되이’라는 원어(메헤벨 )는 ‘헛되이’라는 뜻이다(KJV). 헛되이 얻은 재물이라는 말은 정직하게 수고하여 번 돈이 아니고 게으르게 혹은 부도덕하게 번 돈을 가리킬 것이다. 불법적으로나 사기나 강탈로나 땅 투기, 집 투기로 얻은 소득 등이 그런 돈이다.

헛되이 얻은 돈은 줄어간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돈은 그에게 복이 되지 못한다. 그런 소득은 예상치 못하는 지출이 많다.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다. 불의의 소득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된다”고 하셨고(학 1:6) 또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셨다(학 1:9). 또 쉽게 돈을 얻은 자는 돈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손으로 모은 것 즉 수고하여 번 돈은 늘어간다. 정직하게 일하며 노동하며 수고하여 버는 돈이 복된 돈이다. 농사를 짓든지, 장사를 하든지, 공장에서 일하든지, 사무실에서 일하든지, 어떤 일을 하여 돈을 벌든지 이치는 똑같다.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며 부지런한 자는 풍족함을 얻는다(잠 10:4; 13:4; 21:5).

손으로 모은 것이 늘어가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수고하며 살고 또 조금씩 저축하여 여유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또 그런 사람은 돈이 귀한 줄 알아 절약하며 살 것이다. 근검절약하는 자만 저축하며 살 수 있다.

[12절]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부족할 때 그것을 바라며 소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더디 이루게 되면 마음이 상한다. 청년들이 고시 준비나 취직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마음이 힘들고 지친다. 한 여자를 사랑하고 결혼하기를 원하며 기다리는 젊은이의 마음도 그러하다. 우리가 이런 저런 일들을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까지는 마음을 조린다. 시편 42편 저자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고백했다(시42:1-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마음도 비슷하다.

그러나 소원을 이루는 것은 곧 생명나무다. 취직을 소원하는 자가 취직하면 ‘살 것 같다’고 말할 것이며, 결혼을 소원하는 자가 결혼하면 기뻐하고 행복해 할 것이다. 성도가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 기쁨과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가 고대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고 우리가 사모하던 천국에 들어가면, 우리는 큰 기쁨과 위로를 얻을 것이다. 성도의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반드시 다 이루어 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진다. 우리는 진리의 지식이 더하고 믿음이 견고해지고 의와 선과 진실의 인격과 삶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고 이 세상 사는 동안에도 기쁨과 평안과 형통의 복을 점점 많이 누리는 의인으로 살기를 원한다.

둘째로,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나 지혜자는 남의 권면을 듣는 다. 우리는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다툼을 일으키는 교만한 자가 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경건하고 도덕적인 권면을 서로 주고 서로 듣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간다. 우리는 쉽게 돈을 벌려는 헛된 생각을 버리고 적게 벌어도 정직하게 우리 손으로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벌고 또 근검 절약하며 저축도 해야 한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낫다.

넷째로,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나소원을 이루는 것은 곧 생명나무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바를 지키시고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 보기를 원하며 또 장차 천국과 영생의 소망 성취를 보고 기뻐하기를 원한다.

13-16절, 말씀, 지혜, 생명, 지식

[13절]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가 불경건의 죄악이며 다른 죄악들의 뿌리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적 설교를 진지하게 듣지 않고 받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 대신에 자기 자신이나 이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할 것이다.

‘패망을 이룬다’는 원어(예카벨 )는 (1) ‘패망한다’고 번역되기도 하지만(KJV, RV, Gesenius), (2) ‘[그것을 지킬] 빚(의무)이 있다’고 번역되기도 한다(BDB, KB, NASB, NIV).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멸시한다고 멸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그 도덕적 의무는 항상 그를 따라 다닌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은 죄이며 죄의 값은 죽음이다. 그것은 불행과 멸망을 포함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들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다가 마침내 멸망하였다.

그러나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계명, 곧 십계명은 삶의 지침과 기준이다. 계명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자신을 피조물로 인정하고, 계명 지키는 것이 사람의 의무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두려워하는 증거는 성경 읽기와 설교 듣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들은 말씀을 힘써 순종하는 것이다.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을 것이다. 잠언 16: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순종은 사람의 당연한 의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를 더욱 사랑하시고 상을 주신다. 그는 평안, 건강, 물질적 여유, 존귀, 마침내 영생 등 모든 좋은 것을 상으로 주신다. 경건했던 요셉과 다니엘은 세상에서 존귀의 상을 받았다.

[14절]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다.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여 의롭고 선하게 사는 자이다. ‘지혜 있는 자의 교훈’ 곧 지혜 있는 자가 가진 바른 지혜와 지식에서 나오는 교훈은 생명의 샘이다. ‘생명의 샘’은 생명수를 길을 수 있는 샘물, 곧 사람을 살리는 교훈이라는 뜻이다.

불경건하고 악하고 거짓된 말은 어리석은 말이며 사람을 죽이는 말이다. 에덴 동산에서 뱀의 말이 그러했다. 그것은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역케 만들고 죽게 하였다. 그러나 지혜자의 교훈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교훈이며 그것은 듣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고 죄를 버리며 의를 행케 함으로써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지혜자의 교훈을 붙들어 생명을 얻는다. 잠언 4:13,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잠언 4:20-22,“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잠언 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생명은 건강과 평안을 포함한다. 지혜자의 교훈은 사람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한다. 죄는 사망의 그물 곧 사람이 거기에 걸려 죽게 되는 그물이다.

죄를 짓는 자마다 사망의 그물에 걸린 자이며 회개치 않으면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혜자의 교훈은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교훈이므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15절]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지혜’라는 원어(세켈 )는 ‘깨달음’(understanding)이라는 뜻이다(KJV, NASB, NIV). 선한 깨달음은 남을 이해하고 남을 유익케 하는 마음이다. 뱀의 말과 같이 악하고 간교한 지혜는 남을 해치는 지혜이지만, 선한 지혜와 깨달음은 남에게 은혜와 호의와 사랑을 베푼다.

그러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다. ‘궤사한 자’(보게딤 )라는 원어는 ‘배신자들, 속이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배신자들은 남을 해치고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그런 자의 길은 험하다. 그 길은 거칠고 평탄치 않고 형통치 않다. 의인에게도 고난은 있으나, 의인의 심령에는 평안이 있고 그의 길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좋은 결과가 있다.

또 그는 많은 고난 중에도 믿음과 거룩한 인격의 단련을 받는다. 그러나 악인들의 길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만 있을 것이다.

레위기 2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폐병과 열병으로 치셔서 그들의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하시며, 곡식을 거두나 대적들이 와서 빼앗아 가게 하시고 대적에게 패하게 하시고, 하늘로 철과 같게 하며 땅으로 놋과 같게 하셔서 흉년이 들게 하시며, 또 들짐승이 어린 자녀들을 움켜 가게 하시고, 전쟁을 보내시고 무서운 전염병을 보내시고 그들이 의지하는 양식을 끊으셔서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줄 것이며 먹어도 배부르지 않게 하실 것이며, 그들을 온 세계에 흩으시며 전쟁으로 그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성읍들을 황폐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레 26:16-17, 19, 22, 25-26, 33). 참으로, 악인들의 길은 험할 것이다.

[16절]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여도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슬기로운 자들은 지식으로 행한다. 지혜와 지식은 같이 간다. 지혜와 지식이 같은 말은 아니지만, 그 둘은 같이 간다. 지혜 있는 자들은 참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을 잘 사용한다. 참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식의 시작이요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참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과 그 구원의 열매인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운 삶이다.

사람이 참 지식을 가지고 행할 때 그것이 그에게 의의 열매가 되고 평안이 된다. 그것이 사람의 행복이며 생명의 길이다. 그것이 사람의 지혜이다. 모든 지혜 있는 자는 그 길, 즉 그 지식으로 행한다. 호세아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영생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 17:3).

그러나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낸다. 미련한 것이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그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중심적이고 세상 중심적이고 물질 중심적, 육신 중심적인 것이다. 그것은 무지와 불경건, 또 불결과 악과 거짓의 부도덕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고 그런 자는 영원한 멸망에 이른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자신의 미련한 것을 말과 행위로 나타내는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죄의 빚을 지는 자이며 결국 멸망하지만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는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두려워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평안과 영생의 길이다.

둘째로,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며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한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의 말을 듣지 말고 지혜자의 교훈을 받고 나누어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선한 깨달음은 남에게 은혜를 베푸나 배신자의 길은 험하다. 우리는 남에게 유익을 주는 자가 되고 배신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넷째로, 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여도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며 그의 뜻대로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그것이 복된 길이다.

17-20절, 충성, 훈계, 미련, 동행

[17절]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사자’(使者)는 ‘임무를 받아 파송된 자’이다. ‘악한 사자’는 자기 임무를 저버리거나 그 임무에 불충실한 자이다. 그는 그를 보낸 자에게 악을 행하는 자이다. 선지자 엘리사의 수종자인 게하시는 선지자 엘리사의 이름을 팔아 악을 행했다(왕하 5:20-24). 가룟 유다는 사도의 본분을 저버리고 주님을 배신하였다(마 26:14-16).

그러나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질 것이다. 그를 파송한 주인은 그를 벌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도 그의 악에 대해 재앙으로 벌하실 것이다. 게하시는 몸에 나병이 들었고(왕하 5:27), 가룟 유다는 자신의 목을 매었고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죽었다(마 27:3-5; 행 1:18).

‘충성된 사신’은 자기 임무를 완수하는 자이다.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보냄을 받았던 아브라함의 나이든 종은 충성된 사신의 좋은 예이었다. 그는 긴 여행으로 인해 배도 고팠겠지만,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다”고 말하였다(창 24:33). 사도 바울도 충성된 사신이었다. 그는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고난도 견디었고 죽을 각오도 하였다(고전 4:9-13; 고후 6:4-10; 11:23-27).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다. ‘양약’이라는 원어(마르페 )는 ‘치료’라는 뜻이다(BDB, NASB, NIV). 충성된 사신은 그를 보낸 자의 마음에 기쁨과 시원함을 줄 것이며(잠 25:13), 또 많은 사람에게 치료와 위로와 유익을 줄 것이다. 또 그 자신도 칭찬과 상을 얻을 것이다.

[18절] 훈계[교훈, 징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책망, 징계]를 지키는[주의하는](KJV, NASB) 자는 존영을 얻느니라.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온다. 사람은 무지와 죄성때문에 교훈과 징계를 저버린다. 사람은 하나님과 의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또 자신의 죄악성과 세상의 악한 풍조와 마귀의 시험때문에 교훈과 징계를 저버리는 것이다. 땅의 모든 풍부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천지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신 10:14; 시 24:1), 하나님께서는 교훈과 징계를 저버리는 자에게 그 모든 좋은 것을 거두실 권리도 있고 그렇게 하실 것이다. 훈계를 저버리는 자는 가뭄이 오거나 전쟁이 오거나 경기 침체가 올 때, 그는 궁핍을 경험하며 수치와 욕도 경험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누릴 때는 존귀해 보이지만, 병에 걸렸거나 기근으로 굶주림이 심할 때나 전쟁이 나서 헐벗고 방황할 때에는, 부끄러운 일들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징계에 주의하고 그것을 달게 받으면, 존영을 얻을 것이다. 그는 참된 회개에 이르고 의(義)에 이를 것이다. 그가 아무리 비천해졌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존영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엘리에게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셨다(삼상 2:30).

[19절]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

사람의 소원의 성취는 마음에 달다. 소원의 성취 즉 기도의 응답은 의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신다. 시편 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잠언 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인의 기도는 들어주신다. 잠언 10:24,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시편 145:19,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요한일서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가진 선한 소원이 이루어지면, 그의 마음은 기쁨이 넘칠 것이다. 잠언 13:12,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 요한복음 16:23-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러나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한다. 미련한 자의 악행은 그의 기도의 응답을 가로막고 도리어 하나님의 미워하심과 노하심과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미련한 자는 그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니 그것이 그의 미련함인 것이다. 악인은 미련하다.

[20절]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누구와 교제하는가는 중요하다. 일생의 반려자를 삼는 결혼도, 친구관계도, 또 교회 소속도 그러하다. 본문은 교제와 동행의 대상을 지혜자와 미련한 자로 구분한다. 잠언이 증거하는 대로, 지혜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여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자이며,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의 계명들을 거슬러 우상 숭배하고 불의와 악과 거짓을 행하는 자이다.

사람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사람은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사람은 그의 친구를 보면 그의 인품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지혜는 경건과 도덕성이며 그 결과는 평안과 형통과 행복과 영생이다. 그러나 죄는 미련함이며 그 결과는 질병과 기근과 불행과 죽음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악한 교제를 경계한다. 고린도전서 15:33은,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가장 귀한 교제의 대상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해야 한다. 신명기 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라.” 옛날에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고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창 5:21-24).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한 의인이었다. 창세기 6:9,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욥은 고난 중에 전에 하나님의 우정 즉 그의 친밀한 교제가 그의 장막 위에 있었던 날들을 회상했다. 욥기 29:4, “나의 강장하던 날과 같이 지내었으면―그때는 하나님의 우정(소드 )[친밀함, 친밀한 대화]이 내 장막 위에 있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들에게는 그의 친밀한 교통이 있다. 시편 25:14, “여호와의 친밀함(소드 )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잠언 3:32,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소드 )[친밀함]이 있으며.”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다. 우리는 성도와 교회 직분자로서 악한 사자가 되지 말고 충성된 사신이 되어 말과 행실로써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주어야 한다.

둘째로, 교훈과 징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나, 책망에 주의하는 자는 존영을 얻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과 책망과 징계에 주의하고 그것들을 존중하고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실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이 지혜와 평안과 존영의 길이다.

셋째로,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한다.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는 악을 버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선한 소원을 품고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로,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20절).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고, 또 경건하고 선한 지혜자들과 교제하고 동행해야 하고, 성경이 교훈하는 대로 결코 미련하고 악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아야 한다(고후 6:14-16; 살후 3:14; 딛 3:10).

21-25절, 보응, 자녀 징계, 의인

[21절]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재앙은 죄인을 따른다. 그것은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에 증거된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그들은 폐병, 전염병, 열병, 종기 등 각종 질병을 얻을 것이며, 극심한 흉년과 굶주림을 경험할 것이며, 들짐승들이 내려와 농작물을 해칠 것이며, 또 이웃 나라들의 침략을 당할 것이다.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은 한 대표적인 예이었다(창 6:17; 7:21-23). 소돔 고모라 성의 유황불 심판도 그러했다(창 19:24-25). 또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고 심히 음란했던 가나안 족속들은 남김 없이 다 멸망을 당해야 했다(신 7:1-2). 하나님께서는 악한 유다 왕 여호람을 치셔서 고칠 수 없는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고 2년 만에 창자가 빠져나와 죽게 하셨다(대하 21:18-19). 또 교만했던 웃시야 왕은 성전에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즉시 나병 환자가 되었고 죽는 날까지 쓸쓸히 별궁에 거하다가 죽었다(대하 26:19, 21).

그러나 의인에게는 선한 보응이 따른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계명대로 순종하며 사는 의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선한 보응, 즉 평안과 형통의 복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 짓는 일을 가장 두려워한 요셉과 함께하셨고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고(창 39:23) 그의 부모와 형제들을 구원케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했던 다윗과 함께하셔서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고(삼하 8:6), 경건했던 히스기야와 함께하셔서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하셨다(왕하 18:7).

[22절] 선인(善人)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선인(善人)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친다. 선인(善人) 곧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선과 의와 사랑으로 사는 자이다. 그는 이웃을 사랑하며 배려하는 자이다.

선한 사람은 갑자기 재산을 모으지는 못해도 서서히 조금씩 정당하게 재산을 모을 것이다. 잠언 13: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성도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면서 돈을 벌고 하나님께 십일조 이상을 드리고 나라의 세금도 정당하게 내고 남는 것을 쓴다. 그것이 그의 정당하고 복된 소득이다. 성도의 사업에는 소위 이중장부(분식회계)나 비자금 같은 것이 없어야 한다. 성도가 이렇게 경건하고 의롭게 사업을 하면 견실한 기업을 이룰 것이다. 또 성도는 이렇게 번 돈과 가꾼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칠 것이다.

그러나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일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뜻을 거역하며 행하는 자이다. 그는 재물을 벌지만 불의하고 불법한 방식으로 또 탐욕적이게 벌 것이다. 그의 모든 소득은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물질적 이득을 위해 뇌물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는 은밀하게 탈세도 할 것이다. 물론 그는 주일성수나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죄인이 이렇게 모은 재물은 자신에게나 자신의 자녀들에게 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의인을 위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의 집과 땅, 그의 회사와 사업은 어느 날 의인의 것이 될 것이다. 또 그는 상속할 자녀가 없어서 자신의 후계자를 세울 때 양심상 악인보다는 의인에게 자신의 사업이나 유산을 맡기게 될 것이다.

[23절]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하므로 양식이 많아지거늘 혹 불의로 인하여 가산을 탕패[탕진]하는 자가 있느니라[가난한 자들의 경작할 밭에서 많은 양식이 나오나 불의 때문에 그것을 빼앗기는 일이 있느니라].

가난한 자들의 경작할 밭에서는 많은 양식이 나온다. 사람이 가난할 지라도 밭을 경작하면 많은 양식을 얻을 것이다. 밭을 경작한다는 말은 자기의 직장과 사업에서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부지런히 자기의 일을 하면 소득이 늘어나고 물질적 여유를 얻을 것이다.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언 13: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그러나 불의 때문에 그것을 빼앗기는 일이 있다. 사람이 열심히 일하여 양식이 많아진다 할지라도, 그가 불의하면 즉 죄를 지으면 모은 물질적 유여함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의 재물을 가져가 버리실 것이다. 의는 평안의 길이며 물질적인 여유를 얻는 길이지만, 죄는 불행의 길이며 물질적인 여유를 잃어버리는 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지런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 돈을 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의는 물질적 여유를 유지하는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존중하거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며 또 그들이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그들이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불어버리셨다고 말씀하셨다(학 1:4-6, 9).

[24절] 초달을 차마[매를 들지]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때가 늦지 않게, 부지런히] 징계하느니라.

자녀에게 매를 들지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다. 어떤 부모는 매를 때리면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매를 때리지 못하고 그것을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으나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미워하는 일이며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자녀의 잘못과 악행을 책망하고 징벌하지 않고 그의 인격의 결함과 부도덕함을 내버려두는 것은 장차 부모의 매보다 훨씬 더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한다. ‘근실히 징계한다’는 원문(쉬카로 무사르 )은 ‘때가 늦지 않게, 부지런히 그를 징계한다’는 뜻이다. 참된 자식 사랑은 단지 그의 몸을 사랑함이 아니고 그의 영혼을 사랑함이어야 한다. 그의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영혼이 잘 되도록, 즉 그의 인격이 바른 인격, 경건하고 선한 인격이 되도록 교훈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식이 잘못 행할 때 그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적당한 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를 징계하되 근실히, 부지런히, 때가 늦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녀가 그 잘못을 회개하고 고쳐 좋은 인격이 되면, 그것은 자신에게 복일 뿐만 아니라, 또한 부모에게도 기쁨이 될 것이다.

잠언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언 23:13-1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지옥]에서 구원하리라.” 잠언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자녀에게 매를 드는 것이 하나님의 교육 방법이다.

[25절] 의인은 포식(飽食)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이며,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믿지도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이다. 배부르게 먹는 것과 주리는 것은 육신의 양식에 관한 말씀이라고 보인다. 영혼의 양식, 곧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은 물론이고, 육신의 양식도 그러하다.

의인은 배부르게 먹을 것이다. 시편 34:9-10,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음식을 구걸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양식을 주실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양식을 주셔서 누리게도 하시고 또 그것을 거두기도 하신다.

잠언 10:3,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 6:33). 또 사람이 양식을 배부르게 먹으려면 하나님의 은혜로 음식 살 돈도 넉넉하고 음식도 넉넉해야 하고 몸도 건강하여 식욕이 있고 소화기능도 좋아야 한다. 사람이 아프면 식욕도 떨어지고 소화기능도 약해져 양식이 풍부해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인의 배는 주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 악인에게는 음식이 부족할 것이며 그의 경제 여건도 매우 나쁠 것이다. 또 그의 몸에 병이 있고 식욕도 소화기능도 떨어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른다. 우리는 죄를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말씀을 힘써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복을 누려야 한다.

둘째로, 선인(善人)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해 쌓인다. 우리는 선한 자로 살고 돈도 정직하게 벌어야 자신에게나 자녀들에게 복이 되지만 불의한 재물은 결코 복이 되지 않는다.

셋째로,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하므로 양식이 많아지지만, 불의로 인해 그것을 빼앗기는 일이 있다. 우리는 손으로 수고하고 부지런함으로 물질적 여유의 복을 누리며 또 의를 행함으로 그것을 잘 유지해야 한다.

넷째로, 체벌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며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한다. 자녀는 매 없이 키우지 말고 근실히 징계하며 키워야 좋은 인격이 되며 복을 받는다. 그것이 참 자식 사랑이다.

다섯째로, 의인은 포식해도 악인의 배는 주린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 즉 경건하며 의로운 자들은 일용할 양식의 궁핍함이 없고 물질적 여유를 누릴 것이다. 그러나 악인들은 궁핍할 것이다.

===14장: 지혜로운 여인, 분노, 구제, 의

1-4절, 지혜, 정직, 미련, 소

[1절]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지혜로운 여자들은 자기의 집을 세운다. 지혜로운 여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여 사랑하며 선하며 인내하는 자이다.

‘세운다’는 말은 가정은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부모가 힘써 세워야 함을 보인다. 부부 관계의 문제, 부모 자식 관계의 문제, 자녀의 교육과 생활지도, 건강 문제, 경제 문제 등 인생의 삶의 어려운 문제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여자는 그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지혜롭게 처리하고 자기의 가정을 잘 세워나갈 것이다.

물론,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워 주셔야 세워진다.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그러나 인간편에서 가정의 바른 건립에 남편과 아내의 노력도 필요하다. 본문은 가정이 남편의 수고만으로 잘 세워지지 않고 아내의 역할이 큰 것을 보인다. 비록 남편이 좀 부족해도 아내가 지혜롭게 행하여 남편의 부족을 보충하면 가정을 잘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여자는 자기의 손으로 가정을 헌다. 미련한 여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의 교훈대로 행치 않는 자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심과 너그러움이 부족하고 사랑과 선을 행하지 않고 마음에 자제력이 부족하고 성급하다. 그는 겸손치 않고 교만하고 고집스럽다. 그는 게으르고 사치하고 낭비하고 절제치 않는다. 그의 언어생활도 덕스럽지 못하다. 그런 여자는 자기 손으로 자기 가정을 허물며 자기에게 오는 복을 막으며 그 복을 물리친다.

[2절]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정직하게 행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또 양심대로 올바르게 행한다는 뜻이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다.

정직하게 행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증거이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입법자이시고 심판자이신 하나님, 죄악에 대해 심판하시고 징벌하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두려워하는 자이다. 그것은 이기적인 생각이나 편의적 생각, 기회주의적인 생각과 타협적 생각 등을 버리는 것이다.

경건과 믿음은 의롭고 선한 행위와 진실한 행위로 나타난다. 그것은 노아의 생활에서 잘 나타났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했고 의롭고 정직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이 살았다. 창세기 6:9,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러나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긴다. 패역하게 행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불평하고 그의 뜻을 거역하고 그의 계명을 불순종하고 완악하고 고집스럽게 행한다는 뜻이다. 패역하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입법자요 심판자이시며 사람에게 상과 벌을 주시는 자이신데,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그를 인정치 않고 존중히 여기지 않고 그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다 나라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두루마리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것을 듣는 대로 작은 칼로 그 책을 베어 화롯불에 던져서 그 모든 두루마리를 태웠다(렘 36:22-23).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3절]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한다. ‘교만하여 매’(코테르가아와 )라는 원어는 ‘교만의 매’라는 뜻이다(KJV, BDB).6)

미련한 자는 하나님과 그의 뜻을 거역한다. 미련한 자의 특징은 교만함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겸손하지만,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과 판단을 앞세운다. 사람의 인품은 말로 표현된다.

미련한 자는 미련한 말, 교만한 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말을 한다. 그는 그의 말로 매를 자청한다. 그 매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과 재앙을 가리킨다. 그것은 질병이나 물질적 궁핍을 포함한다. 미련한 자는 자기가 행한 일을 자기가 받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자기 자신을 보전한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을 따라 사는 자이다. 지혜로운 자의 특징은 겸손한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 밖에 없다. 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겸손한 자는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할 것이다. 지혜로운 자의 겸손한 인품은 그의 겸손한 말로 나타날 것이며, 그의 겸손한 말은 그를 죄로부터 또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보전할 것이다. 말의 의롭고 온전함이 의롭고 온전함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의인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4절]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소가 없으면 구유가 깨끗하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사실이지만, 비유적인 뜻을 가질 것이다. 구유는 소의 먹이통인데, 거기에는 음식 찌꺼기가 조금은 남아 있을 것이며 냄새도 좀 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소에게 관심이 있으시다기보다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시다. 고린도전서9:9-10에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6) ‘등에 매’(NASB, NIV, KB)라는 번역은 가아와 (교만)라는 원문을 임의로 게오 (등)라고 고쳐 읽은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추측일 뿐이다.>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소는 목사와 교회의 여러 봉사자들을 가리킨다. 교회에 여러 봉사자들이 있으면 거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필요한 일들도 있다. 그 중에는 그들이 거주할 주택과 생활비 등 적지 않은 재정지출도 필요할 것이다. 어떤 봉사자들은 인격적 결함도 있어 마음 쓰이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다. 소가 하는 일은 참으로 많다. 소는 논과 밭을 가는 것과 추수하기 등 농사일에는 필수적이며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에도 유용하다. 소는 참으로 충직한 가축이다. 교회에 충성된 목사들과 직원들과 봉사자들이 많은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각인에게 주신 은사와 직분을 따라 설교와 전도와 심방의 일을 하고, 주일학교 교사들로서 또 찬양대 지휘, 반주, 대원들로서, 또 교회 직원들로서 충성함으로써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고 또 복음 사역에 많은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지혜로운 여인들은 집을 세우지만, 미련한 여인들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문다. 남자든지 여자든지 사람은 경건과 도덕성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지혜로 가정을 잘 세워야 한다.

둘째로,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긴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므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을 멸시치 말아야 한다.

셋째로,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자신을 보전한다. 우리는 교만하고 미련한 말을 해 징벌을 자청하지 말고 겸손하고 지혜로운 말을 해 자신을 보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로,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겠지만,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봉사자들의 필요성과 유익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좋은 봉사자들을 주시기를 구하고 또 그들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5-8절, 신실, 거만, 미련, 슬기

[5절]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증인은 보거나 들은 것을 증거하는 자이다.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는 믿을 만한 증인이다. 우리는 왜 진실한 것만 말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9계명에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또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또 그것은 교회와 사회에도 유익이 된다. 거짓말은 인간 관계를 파괴시키고 사회를 어지럽히지만, 진실한 증거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사람을 구원하고 세상에 의와 사랑을 세운다. 잠언 14: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예수님의 사도들은 핍박 중에도 하나님과 구원의 복음을 증거했고 사람들을 구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신실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는다. 거짓 증인은 거짓말하는 자이다.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잠 8:13). 또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하고 상대방을 해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여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말하는 거짓 증인을 세워 그를 죽게 했다(왕상 21:1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기 위해 거짓 증인들을 동원했었다(마 26:59). 그러나 거짓 증거는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이다.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큰 악이다(잠 6:16-19).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계 22:15; 21:8).

[6절]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거만한 자’라는 원어(레츠 )는 ‘경멸하는 자, 조롱하는 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을 크게 여기고 남을 경멸하고 조롱하는 자이다. 그런 사람도 남들이 지혜를 구하니까 자기도 지혜를 구하며 또 때때로 지혜의 가치를 느끼기도 할 것이지만,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지만(약 1:5), 거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그에게 지혜를 주지 않으신다. 잠언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베드로전서 5:5,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나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쉽다. 명철한 자는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사모하는 자이다. 명철한 자가 얻는 지식은 세상적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 사람에 대한 지식, 삶에 대한 지식, 즉 영적 도덕적 지식을 가리킨다.

세상 지식도 유익이 있지만, 영적 지식은 근원적 지식이며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지식이다. 인생의 참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시작된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9:10, “여 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참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온다.

[7절]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에 순종치 않는 자이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지혜 있는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무시하는 미련한 자들이다. 우리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미련한 자의 입술에는 지식이 없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여기서 지식이란 하나님을 알고 그의 뜻을 아는 영적 도덕적 지식을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함, 예배와 찬송과 기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함, 사람의 행위의 법칙인 의와 거룩과 선과 진실,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 등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세상 지식은 있을지 몰라도 영적 도덕적 지식이 없다. 또 그의 지식 없음은 그의 미련한 말로 드러난다 

미련한 자의 입술에 지식이 없으므로, 우리는 그 앞을 떠나야 한다. 우리가 왜 떠나야 하는가? 그것은 무지 때문에 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이다. 잠언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알지 못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는 자는 불경건과 죄악에 빠지며 그와 교제하는 자도 죄악된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곧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8절]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슬기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교훈대로 사는 자를 말한다.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 길을 아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길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자기의 길’이란 사람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죽어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성경에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작정과 창조로부터 그 존재가 시작되어 세상에 출생하고 그의 영광을 위하고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다가 장차 그에게로 가서 선악간에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특히 생활의 규칙을 주셨다. 그것이 십계명이다. 그 내용은 경건과 도덕성이다. 십계명에 계시된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예배드리는 것과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은 사람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며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또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했고(롬 12:1) 또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고백했고(고후 5:9),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다(딛 2:14).

그러나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교훈대로 살지 않는 미련한 자는, 자신이 의미와 가치를 두고 한 일들, 곧 돈과 명예와 권세와 육신의 쾌락 등이 실상 허무한 일이기 때문에(전 1:2, 14; 요일 2:15-17), 결국 속은 것과 같다. 그의 어리석음이 그를 속였다. 그의 불경건과 부도덕, 그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세상사랑은 결국 그를 속인 헛된 것들이었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는다. 우리는 거짓말하는 죄를 범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진실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해도 얻지 못하지만 명철한 자는 지식얻기가 쉽다. 우리는 남을 경멸치 말고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과 인생에 대한 풍성한 지식을 얻어 바르고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입술에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식이 없는 미련한 자, 즉 교만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돈과 쾌락을 사랑하는 자를 멀리해야 한다(딤후 3:1-5).

넷째로,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지만,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받아 인생의 길 즉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바로 알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9-12절, 죄, 마음, 집, 길

[9절]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尋常)히[대수롭지 않게, 예사로]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라촌 )[혹은 ‘선한 의지’(NASB, NIV)]가 있느니라.

‘심상히 여긴다’는 원어(리츠 )는 ‘경멸하다, 조소하다, 무시하다’ 는 뜻이다(BDB, KJV, NASB, NIV). 미련한 자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는 죄를 무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는 하나님 섬기지 않는 것을 큰 죄로 여기지 않는다. 사사 시대 말의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그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였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므로 사무엘상 2:17은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컸다고 말한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징벌로 다 불행하게 죽고 말았다. 미련한 자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또한 부모를 거역하고 이웃을 미워하고 음란하고 거짓말하고 탐심을 품는 것도 큰 죄악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정직한 자 중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이웃에 대한 선한 의지도 있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올바르게 사는 자를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 어기는 것을 큰 죄로 여기고 그 죄를 미워하고 그것을 멀리한다. 사람이 정직하게 살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는다(잠 12:2). 또 정직한 자는 선한 의지, 즉 이웃에 대해 사랑을 가지고 선을 베푼다. 하나님의 계명은 이웃에게 사랑과 선을 베풀라는 것이며 정직한 자는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10절]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사람이 마음에 가진 고통은 자신만 안다. 실상, 친구도, 가족도 잘 모른다.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 친구나 가족에게 그의 마음의 고통을 잘 표현하지 않고, 어떤 때는 자신의 마음의 고통을 털어놓을 친구나 가족이나 이웃이 없기도 하다. 또 그가 그것을 말하여 알게 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느끼는 고통과 이웃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는 많이 다를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느끼는 즐거움도 마찬가지다. 그가 느끼는 즐거움을 누가 다 알겠는가? 그가 너무 기뻐서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알려주지만 그들은 그의 즐거움을 다 느끼지 못하며 조금 알고 나눌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은 이처럼 상대방을 다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기쁨을 다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좋은 친구이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리었다(사 41:8).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다(요 15:15).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상대방의 기쁨과 슬픔을 이해하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참 사랑이다. 성경은 우리가 서로 생각과 마음을 같이하라고 말한다. 로마서 12:15-16,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생각]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베드로전서 3:8, “너희가 다 마음[생각]을 같이하여 체휼(體恤)하며[같은 감정을 가지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라.”

[11절]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경건한 자이다.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며 감사하고 의지하며 섬기며 예배드린다. 다른 하나는 불경건한 자이다.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경외치 않고 감사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섬기거나 예배드리지 않는다. 또 사람의 경건과 불경건은 그의 도덕성을 좌우한다. 불경건한 자는 부도덕한 데로 나아간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난다(잠 16:6). 악한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여 부모를 공경치 않고 이웃을 미워하며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적질하고 거짓말하고 남의 것을 탐낸다. 그러나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며 도덕성이 있다. 그는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

개인의 경건과 도덕성은 그의 흥망과 생사(生死)를 결정할 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의 흥망도 결정한다. 하나님께서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성경 전체의 기본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그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시며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셨다(출 20:5-6). 또 신명기 28장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건강, 자녀, 재물의 복과 사회적인 복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한다(2-6절).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그 말씀을 거역하면 온갖 재앙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15-19절). 시편 1:6,“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12절]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사람의 생각은 도덕 기준이 되지 못한다. 사람의 도덕 기준은 매우낮고 또 주위 환경이나 자신의 기분이나 이해 관계에 따라 변화한다.

사람의 도덕 판단은 주관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기 쉽고 선입견과 편견에 영향을 받기도 쉽다. 그러므로 사람의 보기에 바른 것이 항상 바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당시에 그의 생각하는 기준에 맞을 뿐이다.

구약의 사사 시대에는 사람들이 각기 자기 소견대로 살았다. 사사기17:6,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그러므로 사사 시대에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숭배가 많았고 음란 풍조도 많았고 심지어 동성애도 있었다. 오늘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유일한 길이 아니며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가 교회들 안에 깊이 들어와 있고, 세속사회에 음란 풍조가 가득하며 심지어 교회들 안에도 동성애를 인정하는 목사들이 있다. 교회는 사회의 양심이며 도덕성의 최후 보루이어야 하는데, 교회까지 부패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의 보기에 바르게 보여도 필경 사망의 길인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 보기에 바르게 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에 죄니까 그렇다. 결혼한 부부가 다른 이성 친구를 사귀는 음란 풍조, 거짓말을 허용하는 풍조, 육신적 향락을 즐기는 풍조 등이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의와 도덕의 기준이시며 또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주예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13-14).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미련한 자는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이웃에 대한 선한 의지도 있다. 하나님 앞에서 죄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한 문제이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망한다. 우리는 죄를 심각한 문제로 알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둘째로,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여하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의 고통도 마음의 즐거움도 다른 사람은 잘 모르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웃의 마음의 기쁨과 슬픔을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고 애써야 한다.

셋째로, 악한 자의 집은 망할 것이나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할 것이다. 사람들의 경건과 도덕성은 그 자신의 흥망과 생사(生死)뿐 아니라, 그의 가정과 그의 사회의 흥망을 결정한다. 우리 개인도 가정도 경건하고 정직하고 선하게 살아서 세상에서도 망하지 않고 복을 누리기를 원한다.

넷째로, 어떤 길은 사람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의 길과 영생의 길을 분별하고 멸망으로 가는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영생으로 가는 좁은 길로 가야 한다. 영생의 길은 성경으로만 분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책을 열심히 읽어야 하고 세상의 가치관과 풍조를 따르지 말고 오직 성경에 교훈하신 대로 살아야 한다.

13-16절, 슬픔, 보응, 어리석음, 지혜

[13절]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사람은 웃고 즐거워할 때가 있다. 사람들이 웃고 즐거워하는 것은 세상의 여러 가지 좋은 일 때문에 그러하며, 그것들은 주로 육신적인, 물질적인 일들이다. 사람은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집, 좋은 차, 직장에서의 승진, 세상 권세와 명예 등을 기뻐한다. 또 사람은 남녀의 사랑이나 친구간의 우정을 기뻐하고, 또 가족이나 친구가 잘된 때나 자기가 행하거나 이룬 좋은 일 때문에 기뻐한다.

그러나 본문은 사람이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람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공허함, 고독, 불만족, 불안 등이 있기 때문이며 또 사람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에, 근심과 걱정거리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하기 전까지는 마음의 참 평안과 안정을 얻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기쁨과 평안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는 참된 기쁨과 평안이 있다. 우리는 천국에서 그것을 충만히 맛보며 누릴 것이다. 이사야 35:10은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올 때 시온에서 영영한 희락을 누리리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21:4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즉 천국에서는 모든 눈물과 애통하는 것과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에서도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린다. 주께서는 참된 평안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고(요 14:27) 또 성령의 열매는 기쁨과 평안을 포함한다(갈 5:22).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교훈하였다(빌 4:4; 살전 5:16).

[14절] 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패려하다’는 원어(수그 )는 ‘뒤로 물러나다, 타락하다, 배교하다’는 뜻이다. 마음이 패려한 자라는 말은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물러나 경건과 도덕성을 잃어버린 배교자라는 뜻이다. ‘행위로 보응이 만족하다’는 말은 ‘행위의 보응을 충분히 받는다’는 뜻이다. 마음이 패려하면 행위도 불경건하고 부도덕하게 될 것이다. 마음은 말과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음이 패려한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자는 자기 행위의 보응을 충분히 받을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이와 같이,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평안과 형통의 복을 받을 것이지만, 악한 사람은 하나님의 징벌과 재앙을 당할 것이다. 성경은 악인에게 평안이 없다고 말한다(사 48:22; 57:21).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의 보응을 받을 것이다. 선한 자는 그 선한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을 받는다는 뜻이다. 잠언 12:14,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이사야 3:10-11,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

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갈라디아서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썩는]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15절]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 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아무 말이나 다 믿는다. 사람이 아무 말이나 믿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거짓되고 나쁜 말이 많고 특히 마귀의 속이는 말, 곧 이단들과 잘못된 사상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와는 뱀의 말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범죄하였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고 말하였다(요일 4:1-3).

물론, 참된 말을 안 믿어도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와 진실한 증언들은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는 말을 믿지 않고,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 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여드레 후 주께서는 다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그의 손을 내밀어 자신의 상처를 만져보라고 하시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요20:25-27). 우리는 믿어야 할 것들은 다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자는 바른 말을 분별하여 믿을 것을 믿고 자신의 행동을 조심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바르게 해석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권면하였다(딤후 2:15).

[16절]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밋압베르 )[거만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난다. 두려워한다는 말은 사람이 나 죽음이나 환경여건을 두려워한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뜻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악을 떠난다(잠 16:6). 지혜로운 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떠나는 것은 악행이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옴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벌하신다. 잠언 13:21,“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거만하여 스스로 믿는다. ‘스스로 믿는다’는 원어(보테아크 )는 ‘자신만만하다,’ ‘부주의하다’(NASB), ‘무모하다’(NIV)는 뜻이다. 어리석은 자는 거만하며 자신만만하게 살고 무모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의 계명을 무시하고 죄를 짓되 자신만만하게 짓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사는 것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며 결국 멸망에 이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성경은 인생을 그림자 같고 허사뿐이라고 말하며(시 39:5-6) 또 안개와 같다고 말한다(약 4:14). 성경은 또, 그러므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한다(사 2:22). 그러므로 주께서는 우리에게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라고 교훈하셨다(마 16:24).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다. 우리는 세상의 일시적 기쁨을 추구하지 말고 주께서 주시는 천적, 영적 기쁨을 바라고 소망하며 누려야 한다.

둘째로, 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의 보응을 충분히 받고 선한 자도 자기 행위의 보응을 받는다.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둔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자가 되지 말고 의롭고 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간다. 우리는 아무 말이나 다 믿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바른 말씀을 분별하여 믿고 그 말씀대로 행동을 조심하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거만하며 자신만만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며 악을 떠나고 거만한 마음과 자신만만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17-20절, 분노, 어리석음, 악인, 가난

[17절]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사람은 불의한 일을 보거나 고의적인 큰 악을 볼 때 또 상대가 그 악을 뉘우치지 않고 변명하고 합리화시킬 때 노하기도 하지만, 자기의 자존심이 상하게 되었다든지 자신에게 큰 손해가 되는 일이 있을 때에도 노한다. 그러나 노하기를 속히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일을 행한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의 생각과 이해와 판단의 부족 때문에 실수하여 상대방에 대한 잘못된 감정, 특히 미움의 감정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람이 전혀 노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하더라도 신중히 판단해서 천천히 노할 수 있어야 한다. 잠언 14:29,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야고보서 1:19,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노하기는 더디해야 한다.

또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는다. 악한 계교를 꾀하는 것은 속히 노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다. 그것은 실수나 연약이 아니고 고의적인 악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런 고의적인 악을 행한다면 그는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것이며 또 참된 성도들이나 일반 사람들의 미움도 받을 것이다. 악한 계교를 꾀하는 것은 자신에게 복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고의적인 악을 매우 미워하시고 반드시 공의로 징벌하실 것이다.

[18절]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는다.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는다’는 표현은 ‘어리석음을 이어받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부모나 선배에게서 어리석음을 물려받는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무시하며 자기의 생각대로 사는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음은 아마 그가 부모나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그의 어리석음은 그의 재산이 되었다. 어리석은 자는 앞선 자로부터 어리석음의 유산을 받아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는다. 세상에서도 지식은 사람의 면류관과 같다. 학자나 기술자의 그의 전문분야 혹은 전공 분야에서의 전문 지식은 그의 영광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슬기로운 자도 그렇다. 그의 참된 지식 곧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계명과 뜻을 알고 인생의 정로를 알고 죄의 심각성을 알고 구원과 영생과 천국을 아는 것은 그의 면류관이다. 잠언 1:7-9,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잠언 4:6-9,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참 지혜와 지식은 성도의 영광이며 아름다운 면류관이다. [19절]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언제 그렇게 되는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그렇다. 의인과 선인이 고통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악인은 의인 앞에 굴복될 것이다. 어디에서 그렇게 되는가? 마지막 심판 때뿐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가?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드러내실 것이다.

그는 의인을 변호하시고 악인의 악을 징벌하실 것이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예들이 나온다. 요셉과 그 형들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죽이려 하다가 애굽으로 가는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아 넘겼다. 그것은 사형 받을 만한 큰 죄악이었다. 출애굽기 21:16, “사람을 후린[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러나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 그의 형들은 애굽에 와서 양식을 얻기 위하여 총리 요셉 앞에 꿇어 엎드렸다(창 42:6). 다윗과 블레셋 장수 골리앗의 경우도 그러했다. 골리앗은 이방신을 믿는 장수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과 그 백성을 모욕하였었다. 그러나 경건한 소년 다윗은 믿음으로 나아가 그를 이겼다. 악한 이방인장수 골리앗은 경건한 다윗 앞에 거꾸러져 죽임을 당했다(삼상 17:49).

모르드개와 악한 신하 하만의 경우도 그러했다. 파사 왕 아하수에로의 가장 높은 신하 하만은 모르드개와 그 민족인 유다 민족을 미워하여 죽이려 했다. 그러나 경건한 왕후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一死覺悟)는 정신으로 왕께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하만과 그 가족들과 동료들은 다 모르드개 앞에 굴복되고 죽임을 당하였다(에 7:10; 9:24-25).

[20절]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된다. 사람이 가난해지는 것은 게을렀거나 낭비가 많았거나 하나님께서 복을 거두셨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가난한 자를 미워하고 무시하고 학대한다.

그러나 성경은,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말하고(잠 14:31), 또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고 말한다(잠 17:5).

성도는 가난한 자를 미워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과 존귀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셨다고 말했다(고전 1:26-29). 또 야고보는,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고 말했다(약 2:5).

본문은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다”고 말한다. 원문은 “부요한 자를 사랑하는 자들은 많으니라”(NASB)는 뜻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복 주심과 근면함과 검소함으로 물질적 소득을 얻고 저축하게 되고 부요케 된다.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은 자신에게 복이 되지 않는다(잠16:8). 사람은 부유하면 보통 친구가 많다. 왜냐하면 그가 남을 대접하며 선행과 구제를 위해 돈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믿음 안의 형제들과 이웃들을 대접하는 것은 성도가 힘써야 할 일이다. 디모데전서 3:2,“[장로의 자격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디모데전서 6:18, “선한 일을 하며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자가 되라.”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는다. 우리는 무슨 일이나 깊이 생각한 후 하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악한 계교를 버려야 한다.

둘째로,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지혜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지혜와 지식을 가진 자가 되고, 또 그런 자로서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셋째로, 악인은 선인 앞에 굴복하고 불의자는 의인의 문에 굴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의를 버리고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넷째로,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물질적 복을 받아 가난한 자에게 선행과 구제를 힘쓰고 이웃에게 미움 대신 사랑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21-24절, 긍휼, 선, 말, 재물

[21절]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교만한 자이며 단지 사람의 외적 조건만 보았다. 그러나 사람의 가치는 그가 가진 돈이나 그의 외모나 그의 직업, 그의 신분 등 외적인 조건에 있지 않고, 그의 인격, 즉 그의 경건성과 도덕성에 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남을 존중해야 한다. 로마서 12:10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그들 중의 다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셔서 피 흘려 사신 자들이다. 또 무엇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의 정신이다.

또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이다. 세상 사람들이 무시하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사랑하고 동정하고 배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본받는 일이다. 시편 10:14,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시편 68:5,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위를 기뻐하시고 복 주실 것이다. 시편 41:1도,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고 말했다.

[22절]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에메스 )[신실하심]가 있으리라.

‘악을 도모하는 것’은 순간적 실수로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악을 계획하고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하신 인생의 정로(正路)를 벗어나서 그릇 가는 것, 즉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이며 사망과 멸망의 길이다. 그것은 결코 복된 길이 아니고 평안과 형통의 길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명령,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표는 우리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레위기 19:18,“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아모스 5:14,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주께서도 율법 중에 큰 두 계명은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며 둘째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2:36-40).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신실하심이 있다. ‘선을 도모하는 것’은 즉흥적 선행이 아니고 선을 행하려고 계획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인자(仁慈)’는 긍휼, 자비, 은혜와 거의 같은 뜻으로 ‘하나님의 인자, 자비, 은혜’를 가리킬 것이다. 또 ‘신실하심’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가리킬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고 율법 안에서 주신 모든 약속을 이행하실 것이다. 그 약속 안에는 기도의 응답과 몸의 건강과 물질적 필요의 공급이 포함된다.

[23절]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모든 수고에 이익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늘 경험하는 바이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면 상도 받고 졸업하여 원하는 직장에 취직도 잘할 수 있을 것이고, 농부가 땀 흘려 수고하면 추수 때에 풍성한 수확을 얻을 것이다. 노동자가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일하면 돈을 많이 벌고 물질적으로 유여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다. 영어성경들은 “말만 하는 것(mere talk)은 궁핍을 이룰 뿐이라”고 번역하였다(NASB, NIV). 말은 힘과 시간을 소모하고 또 사람이 말만 많이 하면 자기의 생활, 즉 자기의 일에 충실치 못할 것이다. 그런 자는 물질적으로도 궁핍할 것이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자는 말을 많이 할 틈이 없고 그럴 이유도, 그럴 시간도 없을 것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과 일 잘하는 직장인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자기 일에 전심전력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달인이 된다.

성경은 성도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잠언 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언 13:3,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야고보서 1:19,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또 성경은 성도가 말만 하지 말고 선한 일을 실천하라고 교훈한다. 실행이 없는 말은 허풍이요 위선이다. 주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말만 하고 행치 않는다고 지적하셨다(마 23:3).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했고(약 2:17),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교훈하였다(요일 3:18).

[24절]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지혜로운 자의 면류관은 그의 재물이요](원문, KJV, NASB)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그 미련한 것이니라[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어리석음을 내느니라](NIV).

지혜로운 자에게 재물은 하나님의 복의 증거이다. 잠언 3:16, “그[지혜자의] 우편 손에는 장수(長壽)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富貴)가 있나니.” 경건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욥은 물질적 부요를 누렸다. 창세기 24:35.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아브라함]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牛羊)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창세기 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巨富)가 되어.” 욥기 1:3, “그[욥의] 소유물은 양이 7천이요 약대가 3천이요 소가 5백 겨리[천 마리]요 암나귀가 5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지혜로운 자는 그 재물로 하나님의 일을 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는 전도와 구제를 위해 자기의 돈을 쓸 것이다. 누가복음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구제는 하늘나라에 저축하는 일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항상 어리석음만 드러낸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치료되지 않는 어리석음이며 시간이 갈수록 더 악화되는 어리석음이다. 잠언 27:22는,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이다. 우리는 이웃을 업신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남을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며 가난하고 어려움 당한 자들을 돌아보고 동정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둘째로,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 가는 것이나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 는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신실하심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이며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인자와 신실하심이 있다.

셋째로,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다. 우리는 각자 자기 일에 전념하여 물질적 여유를 누리고, 또 실수하지 않도록 가급적 말수를 줄이고, 말보다 사랑과 선행을 힘써야 한다.

넷째로, 지혜로운 자의 면류관은 그의 재물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그 미련한 것뿐이다. 우리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자가 되고 또 주께서 주신 돈은 전도와 구제를 위해 써야 한다.

25-28절, 진실한 증인, 여호와를 경외함

[25절]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명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다 진실한 증인들이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 . .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매맞음과 고난과 핍박을 받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였다. 주의 사도들의 진실한 증거를 통해 구원의 복음이 온 땅에 전파되었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얻었다. 요한복음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들을 전했고 사람들은 그들의 증거의 말씀을 믿었고 구원을 얻었다. 그들이 거짓말을 전했다면 영혼들을 구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교의 피로 인쳐진 사도들의 진실한 증언들은 많은 영혼들이 예수님 믿고 구원을 얻게 하였다.

그러나 거짓말을 내뱉는 사람들은 속인다. 거짓말은 진리의 세계에 합당치 않다. 거짓말은 에덴 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범죄케 할 때 사용한 방법이며 사탄의 주특기이다(요 8:44). 거짓말은 그 자체가 죄악이며 인류를 멸망의 구덩이에 빠뜨린 죄악이다. 사람들은 결코 거짓말로 죄사함의 구원과 영생과 기쁨과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다.

[26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 미베타크- 오즈)[강한 확신]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강한 확신이 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고 그를 두려워하고 그를 섬기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확실히 안전함과 보호, 힘과 위로, 도우심과 공급하심과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확실히 안전과 보호, 힘과 위로, 도우심과 공급하심과 구원이 되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강한 확신을 주실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할 수 있다. 시편 33:18-19,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시편 34:7-10,“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그 자녀들에게도 피난처가 있다. ‘피난처’는 환난 날에 피할 곳과 의지할 대상을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그 자신이 복될 뿐 아니라, 그의 자녀들도 복되다. 사람들은 의료보험, 교육보험, 생명보험 등 여러 가지 보험을 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보증이시며 보호자시요 공급자이시며 또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러하시다. 시편 37:25-26,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양식을 구걸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2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즉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고 두려워하고 그를 의지하고 섬기며 순종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시다. 바다의 물고기들, 공중의 새들, 땅 위의 생물들은 다 하나님의 창조물들이다. 시편 36:9,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생명이 있다. 요한복음 1: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시므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생명의 샘과 같다. 사람이 그 물을 마시면 살고 생명의 강건함을 얻을 것이다.

또 하나님 안에는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이 있다. 인생은 지금 사망의 그물에 걸린 자들과 같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그를 경외하고 그의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며(요 3:16) 모든 불경건과 부도덕을 떠나게 된다.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악을 떠나고 의를 행하게 된다(잠 16:6). 여호와를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악을 떠나고 의를 행하는 자는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고 영생을 얻게 된다.

[28절]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백성이 많고 적은 것은 여러 여건에 관계될 것이다. 영토가 넓든지, 경제적 여건이 좋든지, 사회 제도나 통치자들의 인격과 덕이 좋아야 할 것이다. 또, 사회질서가 안정된 가운데 자녀 출산도 많고 들어오는 이민자들도 많아야 할 것이다. 특히 사회 제도는 사람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고 도덕성과 질서가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강제성이 많은 사회는 그렇게 평안치 못할 것이다. 경제나 교육이나 사회생활 전반에 있어서 자유로운 경쟁은 성경적이며 사회 발전을 가져온다. 지난 세기에 소련이나 중국에서 시험되었던 중앙통제적 사회주의는 많은 사람들을 죽인 독재 제도이었고 경제적으로도 실패한 제도이었다.

미국 같은 나라는 1753년에 인구 130만명이었지만, 2019년 즉 266년 만에 인구 약 3억 3천만명의 큰 나라가 되었는데, 그것은 여러 여건들과 더불어 특히 자유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소련은 연방이 해체되고 축소되었고 지금도 일부는 분리독립을 원하고 있고중국의 티베트도 독립을 원하고 있다. 또 한반도의 북한도 많은 사람들이 살기 싫어 탈출하기를 원하는 참으로 불행한 곳이 되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속 국가와 다르다. 주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13-14). 

진리 운동은 좁은 길 가는 운동이며 참 교회는 단순히 교인수로 판단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참 교회에 구원 얻는 자들의 수가 날마다 늘어나기를 기도해야 하며, 그것이 주님께 영광이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인다. 우리는 거짓말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는 진실한 증인이 되어 죽을 영혼들을 구원해야 한다.

둘째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강한 확신이 있으며 그 자녀들에게도 피난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와 그의 자녀들에게 확실히 안전과 보호, 힘과 위로, 도우심과 공급하심을 주실 것이다.

셋째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며 사망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나님만 경외하고 믿음과 순종으로 사는 것이 영생의 길이다.

넷째로,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다. 우리는 우리 교회와 나라의 발전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29-31절, 분노, 건강한 마음, 자비

[29절]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노하기를 더디하는 사람은 화를 낼 만한 상황에서도 좀더 생각하고 참고 지나친 감정을 가지지 않으려 애쓰는 자이다. 그런 사람은 과격한 말과 행동을 피하며 실수하거나 범죄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지혜롭고 명철한 자이다.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9:11,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지혜이다.

그러나 마음이 조급한 사람은 어리석음을 나타낸다. 마음이 조급한 사람은 인내심이 없고 성질이 급해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쉽게 나타낸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낼 뿐이며 정당한 이유가 없이 성급히 화를 내는 실수를 하기 쉽다.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었지만, 가데스 므리바에서 물이 없어 그를 공박하는 무리 앞에서 지나친 말과 행동으로 실수하며 범죄하였다(민 20:10-11). 그는 그 일 때문에 그렇게도 기다리며 사모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잠언 12: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잠언 14: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잠언 15:18,“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조급하게 분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30절]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다. ‘마음의 화평’이라는 원어(레브 마르페 )는 ‘건강한 마음’(BDB, KJV)이라는 뜻이며 ‘평온한 마음’(NASB, NIV)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몸의 건강에는 심리적 요인도 중요하다. 잠언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잠언 18:14,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본문은 시기(猜忌)가 뼈의 썩음이라고 말한다. ‘시기’라는 원어(키느아 )는 ‘시기, 질투’(KJV, NIV)라는 의미뿐 아니라, 또한 ‘격노’(passion)(NASB)라는 뜻을 가진다. 시기, 질투나 격노의 감정은 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정도의 건강 상식은 가지고 있다. 특히 시기와 질투는 겉보기에는 큰 문제처럼 안 보일지 모르나, 거기에서 미움과 살인의 감정이 나온다. 그런 감정들은 ‘뼈의 썩음’같이 건강에 큰 해가 되는 것이다.

야고보서 3:13-17은, 세상에 두 가지 종류의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위로부터 난 지혜요 다른 하나는 세상적인 지혜이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위로부터 난 지혜는 건강에 유익하나 세상적 지혜는 해가 된다.

[31절]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이다. 잠언 17: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들은 사람의 영혼의 가치, 즉 그의 인격성과 도덕성의 가치를 모르고 단지 그의 재산의 많고 적음에 의해 사람을 평가하고 가난한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 가난한 자와 부자가 섞여 살고 있으나 그들을 다 창조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며(잠 22:2)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된다. 사람의 영혼의 가치는 돈보다 심히 크다. 사람의 가치가 100이라면 돈이나 집이나 차나 옷의 가치는 1이나 2도 되지 못할 것이다.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이다.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사람의 가치, 즉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적, 인격적, 도덕적 존재임을 아는 자이다. 그는 결국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을 존경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존중하는 자이다. 그는 사람의 가치와 돈의 가치가 어느 것이 큰지를 바로 아는 자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욥은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고 소경의 눈이 되었고 절뚝발이의 발이 되었으며(욥 29:12, 15) 고아를 먹였고 헐벗은 자를 입혔고 나그네로 거리에서 자지 않게 하였었다(욥 31:17, 19-20, 32).

잠언 30:20에는 현숙한 여인은 가난한 자들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해 손을 내민다고 말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2:10에서 자신도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일을 본래 힘썼다고 증거하였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사람은 어리석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조급한 마음으로 성내지 말고 자기 감정을 다스려 노하기를 더디해야 한다.

둘째로, 건강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지만 시기는 뼈의 썩음이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나 격노하는 감정을 품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선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셋째로,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32-35절, 의와 지혜

[32절]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악인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역하며 그의 계명들을 어기고 죄만 짓고 회개할 줄 모르는 자이며, 그가 당하는 환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공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사람들로 그를 경외케 하시기 위해 악인에게 환난을 주신다. 시편 11: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잠언 13: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악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환난으로 인해 엎드러질 것이다. 잠언 10:24-25,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악인은 엎드러진다. 그러나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의인은 이 세상에서 환난도 잘 통과하지만, 죽을 때도 소망이 있다. 그것은 천국과 영생의 소망이다. 시편 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또 죽음은 성도에게 많은 유익도 준다. 성도는 죽음 때문에 항상 깨어 있을 수 있고, 또 죽음을 알 때 세상이 허무하고 일시적임을 깨닫고 세상을 사랑치 않을 수 있고, 또 하나님과 천국만 더욱 바라며 살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망이시며 그가 약속하신 천국과 영생도 그러하다. 고린도후서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린도후서 5:1,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몸]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우리는 천국과 부활을 소망한다.

[33절]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함 즉 경건과 의와 거룩의 길에서 얻으며, 그것은 사람을 평안의 길로 이끈다. 이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문다. 그것은 평소에 명철한 자의 마음 속에 있고 드러나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는 꼭 필요한 경우에 말하고 행하지만, 평소에는 말이 많지 않다. 성령께서는 지혜의 영으로서 신자 속에 계신다.

그는 우리나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우리 속에서 감화감동하시고 일하신다. 그는 우리에게 교훈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범죄할 때 근심하시며 책망하신다. 또 그는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과, 위로와 격려를 주신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위로자이시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난다(KJV).7)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의 뜻과 계명을 거스르는 자이며,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미련함을 가리킬 것이다. 본문은 지혜가 명철한 자의 마음 속에 있어서 평소에 보이지 않지만, 미련한 자의 미련함은 시시때때로 말과 행위로 나타난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은 조만간 밖으로 드러난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마 12:34). 지혜자의 지혜도, 미련한 자의 미련함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는 미련함을 나타내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34절]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의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대로 사는 것이며, 곧 경건과 도덕성이다. 즉 다른 신이나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며 부모를 공경하며 사람의 생명과 순결성과 재산과 명예를 존중하는 것이다. 세속사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도덕성이 존중되는 사회,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고7) 고대 헬라어 70인역과 수리아역은 “미련한 자의 마음에는 그것이 알려지지 아니하니라”고 번역했으나 그것은 전통적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과 다르다. 근래의 한 영어성경은 “미련한 자의 속에서는 그것이 알려지느니라”(NASB)고 번역하지만, 문맥적으로는 옛날 영어번역(KJV)이 나은 것 같다.

신앙과 경제생활과 교육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즉 평안하고 부강하게 만들 것이다. 레위기26:7-9, “너희가 [의로우면] 대적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내가 너희를 권고하여 [돌아보아] 나의 너희와 세운 언약을 이행하여 너희로 번성케 하고 너희로 창대케 할 것이며.” 잠언 29:4,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천국은 의의 나라이다. 베드로후서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우리는 그 의의 나라를 사모하며 고대한다. 또 우리는 우리나라도 경건과 의가 있는 나라가 되도록 나라와 위정자들과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고 모범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신 뜻이다(마 5:16).

그러나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한다. 백성을 욕되게 하는 것은 사회적 소요, 전염병, 흉년, 경제 공황, 대형 사고들, 전쟁 등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26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계명을 거역하면 흉년이 들고 전쟁이 일어나 패하고 전염병이 일어나고 기근이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하셨고, 모세는 신명기 28장에서 그 재앙들 가운데 폐병, 열병, 학질, 종기, 옴 등 각종 질병들을 말하였다.

[35절]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는다. 슬기롭게 행하는 것은 또한 정직하게, 진실하게, 충성되게 행하는 것이다. 그런 신하는 왕의 사랑을 더욱 받는다. 잠언 16:13, “의로운 입술은 왕들의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히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잠언 22: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시편 101:6,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그러나 욕을 끼치는 신하는 왕의 진노를 당한다. 욕[수치]을 끼치는 것은 교만하고 권력을 남용 혹은 악용하고 뇌물을 받거나 불의의 이익을 구하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등의 불법을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윗 왕은 시편 101편에서 “나는 비루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 . . .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고 말했다(3-5절).

본문의 말씀은 어떤 단체나 직장에서도 적용된다. 슬기롭게 행하는 사람은 윗사람의 총애를 받을 것이나, 어리석고 부덕하게 행하는 자는 그의 노를 당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다.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야 할 것을 교훈하셨고(마24:45-47),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에서도 그것을 강조하셨다(마25장). 지혜롭고 충성된 종들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것이나, 악하고 게으른 종들은 그의 진노와 징벌을 받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 우리는 환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영생의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하고 바르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둘째로,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함으로 지혜를 얻어서 꼭 필요할 때 지혜의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의(義)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한다. 사회의 평안은 백성의 경건과 도덕성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나라가 경건하고 도덕적인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고 선한 본을 보여야 한다.

넷째로,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고 수치를 끼치는 자는 그의 진노를 당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좋은 국민, 좋은 공무원, 좋은 직장인이 되어야 하고, 특히 좋은 성도와 직분자가 되어야 한다.

===15장: 유순한 대답, 사랑, 분노

1-4절, 유순한 대답, 건전한 혀

[1절]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유순한 대답은 온유와 겸손의 심령에서 나오며, 윗사람이나 상대방에 대한 존중심을 가진 자에게서 나온다. 온유와 겸손의 덕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며(마 11:29) 성령께서 성도들 속에서 역사하셔서 맺는 열매이다(갈 5:23).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 본인에게 어떤 잘못이 있어서 책망을 듣는 경우에라도, 자존심이 상해 불쾌한 감정으로 대답지 않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유순하게 대답하면 상대방의 분노를 쉬게 할 것이다.

미디안 전쟁에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격노한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사사 기드온은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라고 겸손히 말함으로써 그들의 노를 가라앉혔었다(삿 8:1-3).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범죄한 자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으라고 말하였고(갈 6:1), 그는 또 디모데에게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라고 말하였다(딤후 2:25).

그러나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시킨다. 과격한 말은 대체로 교만한 마음과 상대방을 무시함에서 나온다. 다윗의 요청을 거절하고 그의 종들을 모욕했던 나발의 과격한 말은 다윗을 격노케 만들었었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겸손한 사과의 말이 아니었다면 나발은 아마 그 날즉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삼상 25:10-11; 23-41). 또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포학한 말은 백성들을 매우 노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 왕국은 둘로 분열되었다(왕상 12:13-14).

[2절]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을 따라 의와 선을 행하는 자이다. 그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푼다. 말은 사람의 인격의 표현이다. 지혜자가 가진 지식은 바르고 선한 지식, 곧 하나님께서 성경에 주신 지식을 가리킨다. ‘선히 베푼다’는 말은 적당한 때와 장소에서 적절히 사용한다는 뜻이다. 지혜는 지식의 활용 능력이다. 지혜 없는 지식은 유익이 없다. 잠언 10:20-21, “의인의 혀는 천은(天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그러나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는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의 뜻을 무시하고 이웃을 무시하고 죄를 버리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미련한 자가 쏟는 미련한 것은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것, 잘못된 생각과 판단, 선입견과 편견, 오해, 정당치 못한 혹은 과격한 감정, 건설적이지 못하고 덕스럽지 못한 말과 행동 등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주께서는 사람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며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지만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낸다고 말씀하셨다(마 12:34-35).

[3절]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여호와의 눈’이라는 표현은 신인동형론적(神人同形論的) 표현, 즉 하나님을 사람과 같은 모양을 가진 존재로 표현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사람의 눈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사물을 보실 수 있는 분이시다.

시편 94:9,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그는 생명 없는 우상과 다르시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감찰하신다. 천지에 충만하신(렘 23:24)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에서나, 정확하고 완전하게 사물을 보실 수 있다. 시편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잠언 15:11, “음부[무덤 혹은 지옥]와 유명(幽冥)[멸망의 깊은 웅덩이]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 하나님의 눈은 정밀하고 완전한 감시용 카메라(CCTV)와 같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신다.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인생의 종교적, 도덕적 행위이다. 그는 사람들에 대해 종교적, 도덕적 판단을 하시고 공의로 보응하신다. 그는 악인들의 불경건과 악행도 아시고, 의인들의 경건과 선행이나 심지어 억울함도 아시고 판단하며 보응하신다. 그는 선한 자들에게 적당한 상을 주시고 악한 자들에게 적당한 벌을 주신다. 전도서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마태복음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4절] 온량한(마르페 )[건전한(KJV), 치료하는(NIV), 부드러운]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사람의 혀 곧 말은 인격의 표현이며 성화의 정도를 나타낸다. 말의 온전함이 온전함이다(약 3:2). 건전한 말은 다른 이에게 평안과 유익을 주고 상한 마음을 치료해 줄 수 있는 혀를 말한다. 에베소서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골로새서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온량한 혀, 곧 건전하고 부드럽고 선한 말은 생명나무이다. 그런 말은 다른 사람에게 생기와 활기를 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활기를 주는 말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로마서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고린도전서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권면, 경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그러나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한다. ‘패려하다’는 말은 악하고 비뚤어진 것을 말한다. 악하고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악하고 비뚤어진 말을 하는 자, 남을 함부로, 파괴적이게 비난하는 자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잠언 12:18,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마르페 ) 같으니라.”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시킨다. 우리는 자신에게 불쾌한 일이 있을 때 화를 내거나 과격한 말을 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유순한 대답을 하는 자가 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둘째로, 지혜 있는 사람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사람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는다. 우리는 바른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적절히 사용하는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성경말씀을 항상 묵상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항상 구해야 할 것이다. 야고보서 1:5,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셋째로,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신다. 우리는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 앞에서 항상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눈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악을 버리고 의와 선만 행해야 한다.

넷째로, 건전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한다. 건전한 말은 낙망한 자의 마음을 살리지만, 악한 말은 그의 마음을 죽인다. 우리는 다른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악하고 부덕한 말을 하지 말고 기쁨과 힘을 주는 건전한 말, 곧 선하고 덕스러운 말을 해야 한다.

5-8절, 훈계, 의, 지혜, 정직

[5절] 아비의 훈계(무사르 )[훈계, 징계, discipline, chastisement]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책망]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미련한 자는 아버지의 훈계와 징계를 업신여긴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낳고 기른 자일 뿐 아니라, 또한 나이가 많고 인생 경륜이 있는 자, 지식과 경험이 많은 자이다. 아버지의 훈계와 징계는 자녀들에게 바른 길을 지시하고 잘못된 길을 지적하고 책망하며 고치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는 사랑과 본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자녀가 아버지의 훈계와 징계를 업신여기는 것은 교만하고 미련하기 때문이다. 잠언 13: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아버지의 훈계와 징계를 업신여기는 것이 미련한 까닭은 경건한 아버지가 주는 지혜와 지식과 경험의 말씀, 곧 바르고 선한 길을 거부하고 잘못된 길로 가서 마침내 그 자신이 불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망을 받는 자는 슬기가 있다. 부모나 윗사람을 공경하는 자는 순종할 것이며 무시하는 자는 거역할 것이다. 에베소서 6:1-3,“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잠언 1: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부모의 훈계와 징계를 받는 것은 바른 길을 가고 잘못된 길을 피하며 또 부모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의와 평안과 형통의 길을 가는 것이니까 지혜롭고 슬기로운 일이다.

[6절]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악인의 소득에는 고통이 있느니라].

의인은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를 가리킨다.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다. 그에게는 영적인 보물이 있다. 그에게는 경건함, 말씀의 지식, 의와 선과 진실의 덕이 있다. 그것들은 귀한 보화들이다. 그에게는 육적인 보물도 있다. 신명기 28장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자녀의 복, 물질의 복, 건강의 복을 약속했다. 의인은 건강과 물질적 여유를 가질 것이다. 잠언 3:16, “그[지혜의] 우편 손에는 장수(長壽)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富貴)[부요와 존귀]가 있나니.” 디모데전서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今生)과 내생(來生)에 약속이 있느니라.” 금생(今生)의 약속 속에는 몸의 건강과 물질의 복이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악인의 소득에는 고통이 있다. 악인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행하는 자이다. 악인의 소득에는 어려운 일이 있다. 정당한 소득이라도 그러할 것이며 불의한 방식으로 얻은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이다. 잠언 20:17,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아간은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 무게의 금덩이 하나를 탐내어 취했는데, 그 결과 그는 그 자녀들과 함께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죽임과 불사름을 당했다(수 7장). 사도 바울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썩는] 것을 거둔다”고 말했다(갈 6:8).

[7절]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로 켄 )[그렇지 아니하니라](KJV, NASB, NIV).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한다. 잠언 15:2,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인격은 말로 표현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행하는 지혜자의 인격은 경건하고 도덕적인 말로 나타난다. 잠언 10:20-21,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베드로전서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 지혜로운 자의 입술이 전파하는 지식은 진리의 지식 곧 참된 지식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 사람에 대한 지식, 죄와 구원에 대한 지식, 의와 선과 평안에 대한 지식, 형통과 행복과 영생에 대한 지식이 참된 지식이다. 그는 이 지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한다. 그것이 전도요 간증이다. 그는 그것을 자녀들에게는 물론이고 이웃 사람들에게도 전한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마음은 그렇지 아니하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그의 계명을 순종치 않는 자이다. 미련한 자는 세상적인 지식은 있을지 몰라도, 전파할 지식, 곧 하나님에 대한 지식, 사람과 죄에 대한 지식, 구원에 대한 지식, 의와 선에 대한 지식, 평안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런 지식을 전하지 못하고, 오직 미련한 것을 말할 뿐이다. 잠언 12:23,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 잠언 13:16,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잠언 15:2,“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8절]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 제사는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다. 그것은 신약 교인들의 예배와 같다. 악인도 때때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자기 양심의 평안과 위안을 위해 드리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종교의식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무시하고 그의 계명들을 거역하는 악인의 제사를 미워하신다. 잠언 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이사야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그러므로 악인들의 제사는 헛되다. 이사야 1: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악인의 제사는 외식의 악을 더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나 정직한 자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잠언 15:29,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셨고(삼상15:22), 또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셨다(호 6:6).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말했다(요일 3:21-22).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아버지의 훈계와 징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책망을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이다. 우리는 지식과 사랑과 모범을 가지고 자녀들을 교훈하고 사랑하고 징계해야 하고, 또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와 어른들의 책망을 듣는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에는 고통이 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영육의 많은 보물을 가진 의인의 집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수고하여 얻는 소득은 결코 고통이 있는 악인의 소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로,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과 구원과 의와 내세에 대한 하나님의 바른 지식을 전파하는 지혜로운 자의 입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결코 올바른 지식이 없고 미련한 것만 말하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넷째로, 악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종교의식만 행하는 위선자가 되지 말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진실한 자가 되고 그런 자들로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헌금해야 한다.

9-12절, 의, 견책, 마음, 거만

[9절]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악인의 길은 악을 행하는 것이다. 악은 선과 반대되는 것이다. 선은 하나님을 섬기며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고, 악은 하나님과 사람을 모욕하고 해(害)를 끼치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 물질적 해를 다 포함한다.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는 것,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는 것, 남을 욕하고 비방하고 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 등은 정신적 해이고, 구타, 살인, 성폭력, 도적질, 남의 돈 떼어먹는 것 등은 물질적 해이다. 이런 해들은 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에 반대되는 악한 행위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길을 미워하시고 악인에게 그악에 상응하는 징벌과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그러나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신다. 의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핵심은 사랑,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경건하게 살 것이다.

또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거짓 증거하지 않고 탐심을 품고 행하지 않을 것이다. 의인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 하나님께서는 의를 따라가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복과 평안이 임할 것이다. 그들은 참된 평안과 행복을 얻을 것이다.

[10절] 도(道)(오라크 )[길(way, path)]를 배반하는[저버리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징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도(道)는 사람의 생활규범을 가리킨다. 사람의 삶은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사람의 생활규범은 좁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열 가지 계명(십계명)이요 넓게는 신구약성경 전체이다. 신명기 5:32-33,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데살로니가후서 2: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遺傳)을 지키라.”

도(道)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다. ‘배반하는 자’라는 원어(오제브 )는 ‘저버리는 자’라는 뜻이다. 도를 배반하는 자는 십계명을 경시하고 거역하고 저버리는 자를 가리킨다. 십계명을 경시하고 거역하고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경시하고 거역하고 저버리는 것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다. ‘엄한 징계’라는 말은 징계의 엄중함을 말한다. 그러나 징계가 하나님의 사랑의 표이며 사람을 거룩과 의로 인도하는 경우도 있다(히 12:6, 8, 10). 그러나 징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견책’이라는 원어(소카캇 )는 ‘징계’라는 단어(무사르 )와 비슷한 뜻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징계와 견책을 받을 때에 그것을 싫어하지 말고 겸손히 달게 받아야 한다(잠 3:11). 그러나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는 회개와 회복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결국 죽음과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11절] 음부(陰府)(쉐올 )[무덤, 지옥]와 유명(幽冥)(아밧돈 )[멸망의 웅덩이]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

무덤 깊은 곳도, 멸망의 웅덩이인 지옥도, 하나님 앞에는 다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전지(全知)하시므로 땅의 깊은 곳도 보시고 지옥의 깊은 곳까지도 아신다. 물질세계의 어느 곳이라도 하나님의 눈을 떠나있지 않다. 높은 하늘도, 깊은 바다도, 땅 깊은 곳도 다 하나님 앞에 드러난다. 욥기 26:6, “하나님 앞에는 음부[무덤, 지옥]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아밧돈 )[지옥]도 가리움이 없음이니라.” 시편 139:8,

12,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무덤, 지옥]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랴.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마음을 다 아신다. 히브리서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 . .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선함과 악함, 진실함과 거짓됨을 아시고 또 우리의 기쁨과 슬픔도 아신다. 그는 사람의 은밀한 것을 아시고 공의로 보응하신다. 전도서 12:14, “하나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요한계시록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12절] 거만한 자(레츠 )[경멸하는 자(BDB, KJV), 조롱하는 자(NASB)]는 견책받기(호케아크 로 )[그를 책망하는 것]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거만하여 남을 조롱하는 자는 그를 책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잠언 13: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훈계, 징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경멸하는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남을 경멸하는 자가 그를 책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그가 미련하고 거만하며 자기의 행위를 바른 줄로 잘못 알기 때문이다. 잠언 1:7,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징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12:1,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잠언 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또 그는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않는다.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히 그의 뜻에 순종하는 자이다. 남을 경멸하는 자가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않는 까닭은 자기가 남보다 더 지혜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지적과 충고 혹은 책망을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며 또 그와 비교되어 자신의 미련함과 부족과 악함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는 책망 듣기를 좋아하며 자신의 부족을 지적받고 그것을 고치기를 좋아할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 3: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잠언12:15,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충고]를 듣느니라.” 잠언 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훈계, 징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의 길은 그것을 지키고 행하는 자에게 평안과 형통과 행복을 준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악인의 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모든 악을 버리고 오직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사랑하시고 평안의 복을 더하실 것이다.

둘째로,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며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 곧 인생의 정로(正路)인 성경의 교훈을 저버리지 말고 그대로 잘 지켜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는 그 징계를 싫어하지 말고 달게 받아야 죽지 않고 살며 평안을 얻을 것이다.

셋째로, 지옥과 멸망의 구덩이도 여호와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랴. 우리는 온 세상의 모든 일들을 아시는 하나님, 모든 인생의 마음 깊은 곳을 다 아시는 하나님, 그리고 공의로 보응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솔직해야 하고 오직 바르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넷째로, 거만하고 경멸하는 자는 책망받기를 좋아하지 않고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않는다. 우리는 거만한 마음으로 남을 경멸하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책망, 하나님의 말씀의 책망을 달게 듣고 받고 고치고 지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한다.

13-16절, 마음의 즐거움, 지식 추구, 여호와 경외함

[13절]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사람의 마음과 영과 몸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사람의 마음은 영(혹은 영혼)의 활동 작용 혹은 활동 영역이라고 본다. 그것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나타난다. 몸은 단독으로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작용이 없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 영육의 결합체로서 활동한다. 마음은 몸에 영향을 준다. 마음이 기쁘면 몸도 힘이 나고 마음이 슬프면 몸도 약해지기 쉽다. 그러므로 사람의 심령은 병을 이길 수 있게 한다. 잠언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잠언 18:14,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또 반대로 마음은 몸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사람은 몸이 아프면 그의 마음도 약해지기 쉽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기쁘게 하지만,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 얼굴에 어느 정도 나타난다. 기쁜 마음은 기쁜 얼굴로, 슬픈 마음은 슬픈 얼굴로, 평안한 마음은 평안한 얼굴로, 고통하는 마음은 고통스런 얼굴로, 미움과 사랑의 마음은 미움과 사랑의 얼굴 표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셨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 도 말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을 지키시리라고 말했다(빌 4:6-7). 성도의 얼굴에는 그 평안이 나타날 것이다.

[14절]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구한다. 사람의 마음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연합체이며 거기에서 말과 행동이 나온다.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의 마음은 지식을 추구한다. 그 지식은 참 지식, 곧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의 책인 성경의 지식을 가리킨다. 그는 그 지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성경을 듣고 성경을 배우고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얻는다.

시편 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19:14-16,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시편 119:147-148,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긴다. ‘미련한 것’은 경건치 않음, 우상숭배, 미움, 음란, 비방, 게으름, 사치, 낭비, 육신적 쾌락 등을 포함한다. ‘즐긴다’는 원어(라아 )는 ‘먹고산다’는 뜻이다(KJV,NASB, NIV). 미련한 자들은 미련한 것들을 먹고살며 미련한 것들을 나타낸다. 잠언 12:23, “미련한 자의 마음은 미련한 것을 전파하느니라.” 잠언 13:16,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15절] 고난 받는 자(아니 )[고난 받는 자, 비천한 자, 가난한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고난 받는 자는 그의 날이 다 험악하다. ‘그 날이 다 험악하다’는 말은 그의 날들이 굶주림이나 헐벗음, 멸시나 천대 등의 어려움을 당한 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한다. ‘마음이 즐거운 자’라는 원어(토브 레브 )는 ‘마음이 좋고 기쁜 자’라는 뜻이다. 마음이 좋고 기쁜 자는 잔칫날이 따로 없고 항상 잔치할 것이다.

성경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교훈한다. 성도의 마음의 즐거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람이 마음의 즐거움을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는 것은 약간의 도움이 될 뿐이다. 성도가 마음으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며 성령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4:4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하고, 데살로니가전서 5:16-18은 “항상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한다. 또 갈라디아서5:22-23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가 기쁨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쁨은 그의 환경 여건이나 신체적 조건을 초월한다. 성도는 심지어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고 또한 기뻐한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했으나 기뻐하며 계속 복음을 전파했다(행 5:40-41). 또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많은 매를 맞았고 옥에 갇혔으나 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행 16:25). 또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교인들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을 누렸다고 증거하였다(고후 8:1).

[16절] 가산(家産)[재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소란한] 것보다 나으니라.

이 말씀은 사람의 행복이 재산의 많음에 있지 않음을 말한다. ‘가산이 적다,’ ‘크게 부하다’는 원어(메아트, 라브 , )는 단지 ‘적다,’ ‘많다’는 단어이다. 그것은 돈이나 재산이 적거나 많다는 뜻이다. 사람이 돈이 많아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물론 돈이 없어야 행복하다거나 돈이 행복에 불필요하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가진 돈이 적어도 행복할 수 있고 가진 돈이 많아도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행복은 돈이나 소득이나 재산의 많음에 달려 있지 않다.

본문은 사람의 행복이 평안에 있음을 암시한다. ‘번뇌’라는 원어(메후마 )는 ‘혼란, 소란, 불안’이라는 뜻이다(BDB). 영어성경들은 ‘걱정거리’(trouble)(KJV), ‘소란’(turmoil)(NASB, NIV) 등으로 번역하였다. 그것은 심리적 불안, 건강상 걱정거리, 물질적, 환경적 걱정거리 등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거리들이 있으면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돈이 좀 부족해도 평안하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평안과 행복을 주신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함에 대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평안을 주시는 분이시다(레 25:18-19; 레 26:5-6; 시 4:8; 마 11:28; 요 14:27).

그것은 몸의 건강과 물질적 여유와 환경적 평안을 포함한다. 성경에서 두 구절만 보자. 민수기 6:26, (아론의 축도)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 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 우리는 마음의 근심을 물리치고 주 안에서 마음의 즐거움을 가지며 그것이 얼굴에도 나타나야 할 것이다.

둘째로,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먹고산다. 우리는 미련한 것을 먹고사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명철한 마음을 가지고 성경의 바른 지식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한다. 고난 많은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항상 기뻐하며 살아야 한다.

넷째로, 재산이 적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낫다. 우리는 행복이 돈의 많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에 있음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평안을 사모해야 한다.

17-20절, 사랑, 분노, 게으름, 효도

[17절] 여간[보통]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본문은 가정의 행복에 대해 말한다. 채소를 먹는다는 말은 부잣집이 아닌 보통 가정을 가리킨다. 경제 형편이 좋지 않아 채소만 먹는 가정이라도 가족들이 서로 사랑한다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라는 뜻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행복한 가정의 필수적 요소이다.

그러나 물질적 부요가 있어 살진 소를 먹는 부잣집이라도 가족들 간에 서로 미워함이 있다면 그 가정은 행복하지 못하다. 물질적 부요가 행복한 가정의 충분한 조건은 아니다. 물론, 물질적 여유는 사람의 삶이나 가정의 삶에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사람의 행복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그것이 사랑과 평안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이 그렇게 말한 것이고, 16절에서도 재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 것이다.

미움은 갈등과 다툼을 일으키고 평안과 행복을 빼앗아간다. 가족들은 언제 서로 미워하게 되는가? 그것은 가족들 중 누가 이기적(利己的)이게 행동하거나 가인처럼 형제를 시기하거나 남을 욕하고 구타하여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해를 끼칠 때일 것이다. 그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움이 있는 곳에는 갈등과 다툼이 있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방의 부족과 허물을 감싸고 용서하고 상대방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며 또 그때 우리의 마음도 평안과 기쁨을 얻을 것이다.

[18절]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 사람이 정당하게 분을 낼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도 공의로 노하실 때가 있다. 그러나 정당치 않은 분노도 있다. 잘못된 선입견과 추측 혹은 오해로 인해 분노하는 경우가 있다. 또 정당한 분노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 지나치고 과격한 감정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미움은 지나친 분노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전도서 7:9는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고 말하였다. 노하는 자는 실수하기 쉽다. 그러나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한다. 분노는 때때로 의견 대립에서 생긴다. 무슨 일에든지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다. 또 그 의견들이 다 좋은 것들이며 각각 상당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사랑과 겸손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후에 회의의 절차를 따라 일을 처리하면 될 것이다. 이상적으로 말한다면, 건전한 성도들의 모임에서는 어떤 다툼도 피할 수 있다.

성도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세상을 살 때 필요한 덕목들 중에는 사랑과 겸손이 있고 또 특히 자기 통제력 즉 자제심이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우리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 대해 우리 자신의 지나친 감정을 통제하고 냉철한 이성으로 그의 의견을 듣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겸손과 사랑과 관용의 덕으로 상대를 대하고 모든 일을 순리대로 처리해야 한다.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지혜라고 가르친다(잠 14:29; 19:11). 또 야고보는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말한다(약 1:19).

[19절]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大路)니라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다. 게으른 자는 자기 일에 충실치 않고 자기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이다. 게으름은 악이다. 가시울타리는 가시가 찔러 가기 어려운 길을 가리킨다. 게으른 자의 길은 왜 가시울타리 같은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게으른 자는 해야 할 일이 밀려 있고 또 의지가 약해서 난관을 잘 극복하지 못한다. 잠언 10:4는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된다고 말하고, 잠언 12:27은 게으른 자가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잠언 19:15는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며 주리게 만든다고 말하며, 잠언 19:24와 잠언 26:15는 게으른 자가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大路)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사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자이다. 그는 물론 부지런하다. 부지런하게 땀흘려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하신 뜻이기 때문이다. 정직한 자의 길이 대로(大路)인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시고 그와 함께하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이며, 그가 자기의 할 일을 그때그때 다 처리하기 때문이며, 또 그의 의지가 강해져서 웬만한 난관은 잘 극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편 1편은 의인의 형통함을 증거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20절]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한다. 잠언 10: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의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교훈을 잘 듣고 순종하여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고 또 범사에 부지런하게 살고 또 효도함으로써 그를 즐겁게 할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며 즐겁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일이요 자신에게 복이 되는 지혜로운 일이다. 출애굽기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에베소서 6:1-3,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러나 미련한 자는 어머니를 업신여긴다. 그는 그를 낳으시고 기르신 어머니의 은혜를 저버리고 그의 경건하고 바르고 선한 교훈을 버리고 무시하고 멸시하고 거역한다. 부모에 대한 불순종은 부모에 대한 멸시이다. 그런 사람은 그 아버지의 근심이고 그 어머니의 고통이다(잠 17:25). 부모를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제5계명에서 약속하신 복, 즉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얻을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의 정죄를 받고 그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 잠언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참으로 미련한 일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낫다. 사람의 행복은 돈의 많음에 있지 않고 서로 사랑함과 평안함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함으로 서로 사랑함과 평안함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한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분노를 쉽게 내지 말고 더디내어야 하며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서로 화목해야 한다. 또 우리는 모든 일들을 사랑과 겸손과 관용과 자제심을 가지고 처리해야 한다.

셋째로,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 (大路)이다. 우리는 게으르지 말고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선하게 행함으로 형통함을 누려야 한다.

넷째로,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머니를 업신여긴다. 자녀들은 부모를 업신여기지 말고 공경하고 순종함으로 그들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한다.

21-24절, 명철, 의논, 말, 지혜

[21절] 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하여도[미련한 것은 무지한 자에게 즐거움이어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

‘미련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나며 사람의 좁은 소견을 따라 행하며 사람의 양심에 비추어 바르지 못하고 악하게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무지한 자’라는 원어(카사르 레브 )8)는 ‘마음이 없는 자’라는 말로서 ‘생각이 없는 자, 지혜가 없는 자’라는 뜻이다. 미련한 것, 죄악된 것은 무지한 자에게 즐거움이 된다. 사람이 생각이 있다면 미련한 일에 대해 슬퍼하고 미워하고 멀리해야 하는데, 무지한 자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죄악된 일의 결과는 불행과 죽음과 멸망이기 때문에, 미련하고 죄악된 것을 즐거워 하는 것은 무지하고 생각이 없고 지혜가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명철한 자는 자기의 길을 바르게 한다. ‘명철한 자’는 지혜와 깨달음이 있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이다. 그는 자신의 길을 바르게 한다. 길은 행위와 삶을 말한다. 바르게 한다는 것은 미련하고 죄악된 것을 즐거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성경말씀의 교훈대로 경건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사람이 가야 할 바른 길이며 평안의 길이고 복된 길이다.

[22절] 의논(소드 )[회의, 토의, 조언]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謀士)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잠언 11:14는 비슷하게, “도략[조언]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고 말한다. 무슨 일을 하려 할 때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할 것이다. 한 사람의 생각보다 두 사람 이상의 의논과 조언이 낫다. 의논이 없으면 계획이 좌절되는 까닭은, 개인의 생각8) <이 말은 주로 ‘지혜 없는 자’라고 번역되었는데, 잠언에서 11번 사용되었다(잠 6:32; 7:7; 9:4, 16; 10:13, 21; 11:12; 12:11; 15:21; 17:18; 24:30).>의 제한성, 독단적 생각과 고집으로 인한 실수, 경험 미숙으로 인한 예상치 않은 일 등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할 때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그 문제를 진지하게 의논하는 것이 좋다.

본문은 모사(謀士)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한다고 말한다. 모사(謀士)는 조언자를 가리킨다. 조언은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잠언 20:18,“무릇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모략[조언]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잠언 24:6, “너는 모략[조언]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 회의는 필요하고 유익하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려 할 때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성경 교훈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또 각자 자기 생각과 의견을 말하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여 인내하며 듣고 다함께 그 일을 숙고하고 또 필요한 경우 그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또 의견이 나뉠 경우에는, 충분히 토의한 후 다수의 의견을 따라 행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이때 모든 참여자들은 믿음과 겸손함과 포용력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23절]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기쁨을 얻는다. 입의 대답에는 좋은 대답도 있고 나쁜 대답도 있다. 좋은 대답은 지혜로운 대답이요 선하고 덕스러운 대답이요 진실한 대답이다. 그러나 나쁜 대답은 어리석은 대답이요 남을 해치는 대답, 악하고 파괴적인 대답, 미움에서 나온 대답이다. 좋은 대답은 듣는 이에게 유익도 주지만 말하는 자신에게도 기쁨이 된다. 아람 군대장관 나아만은 나병의 고침을 받으려고 유다 땅에 왔으나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어 깨끗함을 받으라는 엘리사의 말에 노하여 고국으로 되돌아가려 했으나, 그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느냐는 그의 지혜로운 종들의 충고는 주인에게 깨달음과 좋은 결과를 주었다(왕하 5장). 그러나 나쁜 대답은 듣는 이에게 상함과 불쾌함과 불안과 낙심을 줄 뿐 아니라 말하는 자신에게도 불안을 준다.

본문은 또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경우에 맞지 않는 엉뚱한 대답을 한다. 그것을 동문서답이라고 한다. 또 상대에 대한 오해나 이기적 욕심 때문에 잘못된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바른 말, 때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 때에 맞는 말이란, 이해가 필요할 때 상대방의 말을 오해하거나 곡해하지 않고 이해하는 말이며, 상대에게 위로나 격려가 필요할 때 그를 낙심시키지 않고 위로 격려하며 또 잘한 일에 대해서는 칭찬하는 말이다.

또 그것은 상대방에게 무조건 아첨하지 않고 권면이나 책망이 필요할 때 권면하고 책망하는 말이다. 잠언 10:21은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고 말한다. 때에 맞는 말은 매우 아름답고 선하다. 잠언 25:11은,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말한다.

[24절]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길로 말미암음으로[생명의 길은 지혜로운 자들을 위해 위로 향하며](KJV, NASB, NIV) 그 아래 있는 음부(陰府)(쉐올 )[무덤 혹은 지옥]를 떠나게 되느니라.

생명의 길은 지혜로운 자들을 위해 위로 향한다. ‘생명의 길’은 모든 사람이 다 원하는 길이다. 생명은 귀하다. 그래서 우리는 생일을 축하하고 생명의 건강을 위해 영양 있는 음식과 보약을 먹고 적절한 운동을 하고 병원 치료를 받고 약을 복용한다. 영생의 가치는 더 크다.

그런데 생명의 길은 지혜로운 자들,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그의 뜻을 알고 그의 계명을 행하는 경건하고 의로운 자들에게 주어진다. 죄는 인생에게 불행과 죽음을 가져왔으나, 지혜는 의를 얻고 의를 행케 하고 그 의는 생명 곧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생명의 길이 ‘위로 향한다’는 말은 천국과 영생의 나라가 현재 하늘에 있음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땅 아래 어두움 속에 계시지 않고 하늘에 계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다고 증거한다. 그가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피조 세계를 초월해 계시지만 하늘에 그 영광의 처소를 두셨다. 하늘은 그 처소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말이다.

지혜로운 자는 그 아래 있는 음부(陰府) 즉 무덤과 지옥을 떠나게 된다. 무덤과 지옥은 사람이 죽은 후에 가는 처소로서 공통점이 있다. 모든 사람은 죽고 죽은 몸은 땅에 묻힌다. 산 자는 땅에 묻히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악인들은 죽은 후 그 영혼들이 지옥 곧 형벌의 어둠 속에 던지운다. 죄의 형벌은 죽음이요 그 후에는 지옥 형벌이 있다. 그것이 어리석은 악인들의 길이다. 그러나 의의 보응은 영원한 생명이요 의인들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의 길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미련한 것은 무지한 자에게 즐거움이어도 명철한 자는 그의 길을 바르게 한다. 우리는 미련한 것, 죄악된 것을 즐거워하는 미련한 자, 생각 없는 자, 지혜가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교훈대로 인생의 바른 길을 가는 자가 되어 경건하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조언자들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한다. 우리는 무슨 일이나 자기 혼자의 독단적 생각으로 계획하거나 행하지 말고, 먼저 성경말씀의 교훈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지혜와 인도하심을 구하고 또 경건한 경험자들의 의견을 참조하면 잘될 것이다. 또 교회에서도 기도 중에 토의한 후에 다수결의 의해 결정하면 잘될 것이다.

셋째로,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기쁨을 얻으며 때에 맞는 말은 참으로 아름답다. 우리는 상대방의 형편과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동문서답하는 자가 되지 말고 때에 맞는 바르고 적절한 말, 상대에게 꼭 필요하고 유익한 말을 함으로써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로, 생명의 길은 지혜로운 자들을 위해 위로 향하며 그 아래 있는 무덤과 지옥을 떠나게 된다. 우리는 지혜자가 되어 생명의 길을 감으로써 무덤과 지옥에서 떠나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 오직 지혜자만 복되고 영광스런 영생의 나라 천국에 들어간다.

25-28절, 교만, 악한 꾀, 불의한 이익, 말

[25절]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地界)[땅의 경계]를 정하시느니라.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무시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죄인임을 모르며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그를 거역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의 집, 즉 그의 가정과 그 가족들을 허무신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이다. 사람이 교만하면 그와 그의 가정이 망한다. 잠언 16:18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한다. 교만한 자의 집은 망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부의 땅의 경계를 정하신다. ‘정한다’는 원어(얏체브 [ ])는 ‘세운다, 견고케 한다’는 뜻이다. 과부는 세상에서 무시와 부당한 취급과 억울한 일을 당하곤 한다. 교만하고 악한 자들은 심지어 과부의 땅과 재산을 빼앗으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외로운 과부들을 돌보아 주시며 도우시며 그의 땅과 재산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같이 세상에서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어려움 당하는 자들을 돌보시며 도우신다. 신명기 10:18,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원통한 일을 갚으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시편 10: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시편 68:5,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시편 146:9,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26절] 악한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라도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악한 꾀[악인들의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다. ‘꾀’라는 원어(마카솨보스 )는 ‘생각들’(KJV, NIV), ‘계획들’(NASB)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생각들과 계획들을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시편 5:4-5도,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선한 말은 정결하다. ‘선한’이라는 원어(노암 )는 ‘기쁨’이라는 뜻이다. 본절 후반절은 한글개역성경처럼 “선한[기쁨의] 말들은 순결하니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NASB), “순결한 자들의 말들은 [하나님께] 기쁨의 말들이니라”고 번역되기도 한다(KJV).

두 번역의 뜻이 다 좋고 가능하다고 보인다. 악한 생각은 독한 말로 표현될 것이나, 선한 생각은 기쁨의 말로 표현되며 깨끗하다. 또 순결한 자들은 악하지 않고 선한 자들을 가리킨다. 악은 더럽고 불결한 것이며 선은 깨끗하고 순결한 것이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일으킬 것이지만, 순결한 자들의 말은 하나님께 기쁨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선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을 생각하고 말하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아모스 5:14,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를 깨끗케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딛 2:14).

[27절] 이(利)를 탐하는 자(보체아 베차 )[불의한 이익을 얻는 자](BDB)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아카르 )[소란케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사느니라.

불의한 이익을 얻는 자는 자기 집을 소란케 한다. 그는 자기 가정과 가족들에게 건강상, 경제상 어려운 일들을 만들며 결국 자기의 가정을 소란케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징벌이다.

그러나 뇌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산다. 악한 사람은 뇌물을 구하며 받는다. 잠언 17:23은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의롭고 선한 사람은 뇌물을 싫어한다. 그는 정당한 이익만 구하고 부당한 이익을 싫어한다. 그는 돈을 사랑하지 않고 탐심을 버린 자이다. 뇌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산다는 말은 그가 곤란한 일이나 해를 당하지 않고 평안하고 형통하게, 즉 몸의 건강과 물질적 유여함을 가지고 산다는 뜻일 것이다.

성경은 뇌물을 받지 말고 불의한 이익을 구하지 말라고 교훈한다. 출애굽기 23: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디도서 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 . .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베드로전서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디모데전서 3:8,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지 아니하고 . . .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28절]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한다. ‘깊이 생각하다’는 원어(하가 )는 ‘신음하다, 심사숙고하다, 묵상하다’는 뜻이다(BDB). 야고보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말했고(약 1:19), 잠언의 다른 곳에는,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0:19), 또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잠 17:29)고 말하였다.

왜 우리는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은 말로 범죄하거나 실수하지 않고 바르고 선하고 덕스러운 말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고 말했다.

잠언 12:18은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해 심문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2:36).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29에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는다. 미련한 자는 미련한 것을 전파하고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며 미련한 것을 쏟으며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한다(잠 12:23; 13:16; 15:2; 18:2).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며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낸다(마12:34-35). 악인의 입은 미련하고 악한 말들을 쏟아낸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여호와께서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땅의 경계를 지켜주신다.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의 보호하심을 믿고 바르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둘째로, 악한 꾀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것이지만 정결한 생각은 그의 기쁨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한 생각과 계획을 버리고 깨끗하고 선한 생각과 언행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기쁨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 불의한 이익을 얻는 자는 자기 집을 소란케 하고 해롭게 하지 만, 뇌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산다. 우리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할 불의한 이익을 탐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야 한다.

넷째로,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는다. 우리는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 바르고 선하고 덕스러운 말을 하는 의인이 되고 결코 악한 말을 내뱉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29-33절, 의인의 기도, 밝은 눈, 책망, 겸손

[29절]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여호와께서는 악인을 멀리하신다. 악인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자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서 얼굴을 돌리시며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시편 5: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시편 66:18, “내가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는 행악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못했으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시고(마 7:23), 또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실 것이다(마 25:41). 요한계시록 22:15에서 주께서는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기도를 들으신다. 의인은 하나님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이다. 시편 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 야고보서 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요한일서 3:21-22,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30절] 눈의 밝은 것[밝은 눈](NASB)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밝은 눈은 내면적 깨달음을 가리킨다고 본다. 예수께서는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말씀하셨다(마 6:22-23). 이 말씀에서 빛은 내면적 깨달음 즉 영적 지식을 가리켰다.

밝은 눈은 마음을 기쁘게 한다. 어둠은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지만, 빛은 마음을 평안케 하고 기쁘게 한다. 방의 조명도 밝은 것이 마음을 평안하고 기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내면적 깨달음은 마음을 기쁘게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죄씻음의 구원을 얻으면 마음에 큰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다. 또 영적으로 밝은 눈을 가진 자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기쁨을 줄 수 있다.

또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한다. 나쁜 소식은 사람에게 근심과 걱정, 불안과 낙망을 주어 몸에 병이 나게도 한다. 그러나 기쁘고 좋은 소식은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 평안과 소망을 주며 몸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잠언 25:25는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고 말한다. 좋은 소식은 시원함과 기쁨을 주는 것이며, 그런 소식은 몸의 건강에도 유익하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31절] 생명의 경계(토카카스 )[책망, 꾸지람]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느니라.

‘생명의 책망’이라는 말은 ‘생명을 주는(NASB, NIV) 혹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책망’이라는 뜻이라고 본다. ‘듣는 귀’라는 말은 생명을 주는 책망을 건성으로 받지 않고 마음으로 달게 받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교훈과 책망과 징계를 그러한 태도로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이 생명을 주는 책망을 진심으로 달게 받는 자는 지혜로운 자들 가운데 있다. 그는 지혜자이다. 죄를 짓고 그 결과로 불행과 죽음을 당하는 자는 결국 어리석은 자이지만, 의를 소유하고 의를 행함으로 평안과 생명을 누리는 자는 지혜로운 자인 것이다.

잠언의 여러 말씀이 비슷하게 교훈한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징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4:13, “훈계[징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잠언 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징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잠언 10:17, “훈계[징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하여도 징계[책망]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32절] 훈계(무사르 )[훈계, 징계]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토카카스 )[책망]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사람은 훈계받을 때 자기 잘못을 깨닫고 고치게 된다. 그러나 훈계를 싫어하는 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지 못하고 잘못된 생각과 말과 행위를 그대로 가지고 있고 결국 자신의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사람의 불행이 죄 때문에 오는 것이므로 그런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멸시하는 자이다. 그런 사람은 인간의 삶의 외적, 육신적, 물질적, 환경적 요소만 중시하고, 영적, 도덕적 요소를 멸시하는 자이다. 잠언 1:7은미련한 자는 훈계와 징계를 멸시한다고 말한다. 잠언 8:35-36은, “대저 나[지혜]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책망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는다. 책망의 말씀과 징계의 고난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을 것이다. 그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 사람에 대한 지식, 구원과 영생의 지식, 인생의 정로(正路)와 평안의 길에 대한 지식이다. 하나님의 교훈과 징계와 책망을 달게 받고 모든 악을 버리고 모든 의와 선을 구하며 실천하는 자는 지혜와 형통과 승리를 얻을 것이다. 잠언 1:33은 “나[지혜]를 듣는 자는 안연히[안전하게]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고 말한다.

[33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무사르 )[훈계, 징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이다. ‘지혜의 훈계’라는 말은 ‘지혜를 주는 훈계’라는 뜻일 것이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훈계, 징계]를 멸시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교훈을 잘 받을 것이며 죄악된 일을 버리고 의의 길로 갈 것이다.

본문은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함과 겸손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 겸손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무한하시고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바로 알 때, 또 자신을, 유한하고 죄악된 피조물임을 바로 알 때, 겸손할 수 있다. 또 사람은 겸손할 때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게 된다.

사람이 겸손하면 존귀한 자리에 오른다. 잠언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을 거슬러 범죄하고 그의 진노를 받아 수치와 불행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겸손하면 하나님께 순종하고 의와 선을 행하고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영광과 존귀를 누리게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멀리하시고 의인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이제 의롭게 살면서 기도의 응답을 받아야 한다.

둘째로, 밝은 눈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깨달음으로 마음에 기쁨을 얻었고 이제 복음을 전함으로 듣는 자들에게 심신의 건강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생명의 책망을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다. 생명을 주는 책망은 성경 안에 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을 달게 받고 모든 죄를 버리고 영생에 이르는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로, 훈계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나, 책망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는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를 달게 받음으로써 영생과 행복에 이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혜를 주는 훈계이며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이다.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교훈과 징계에 순종하는 것이 지혜의 길이요 존귀함에 이르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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