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6.29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하가4.SO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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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 실전....정의와 실행]]

WEEK 1 – SOAR란 무엇인가? ...HAGAH OF THE LESSON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shaken. (ESV)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ㅇ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사40:31)....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KEY QUESTION

*상황을 해석하는 힘이 관점(觀點)에 달렸고 관점이 고도(高度)에 달렸다면 이 고도를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하나님이 알려주신 묵상 방법인 ‘하가’에 관해, 이 ‘하가’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하가’의 축복이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가’를 권면하신 이유는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觀點)을 하늘의 관점으로 바꾸기 원하셨기 때문인데요. 

지금부터는 요셉과 마리아와 다윗의 사례를 통해 관점의 고도(高度)를 높이는 것이 왜 중요한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셉

요셉과 다윗 모두 주님이 높여 주시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혹독한 시련을 거쳤습니다. 

형들에게 배신당한 요셉.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매일 매일 죽음의 위기에서 주님 한 분만을 붙들고 살아가던 때문이었습니다.

#요셉. 세상은 그를 노예로 믿었지만 주님은 요셉을 성공한 자로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한 분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던 요셉에게 주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는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창 39:2, NASB 번역)..The LORD was with Joseph, so he became a successful man. (NASB)”

자신이 밟고 있는 땅에서 자기를 바라보면 실패한 노예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신 보좌 위로 올라가 바라보면 그는 성공한 자였습니다. 

현실에서 총리라고 하는 성공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주님은 언제나 앞서 보시는(여호와 이레) 분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가나안 정복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을 메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객관적인 자료로 분석하면 이스라엘 백성의 고백이 합리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실 때 거인을 삼키는 자로 믿으셨습니다. 유일하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이 믿고 계신 것을 믿음으로 취한 자들입니다. 

한 편은 자신이 밟고 있는 땅에서 자기를 바라봤지만, 또 다른 한 편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신 그대로 자신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갈렙은 가나안 땅 거인들을 향해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믿음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나라에서 태어나고,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많은 일이 내 통제 밖에서 벌어집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게 일어난 사건이나 현재 상황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이 해석을 좌우하는 것은 관점(觀點)이며 그 관점은 현재 내가 밟고 있는 고도(高度)가 좌우합니다. 문제와 함께 서 있으면 문제가 커 보입니다. 

하지만 하늘 보좌 위로 오르기만 한다면 주님이 커 보일 뿐 그 문제는 아무 영향도 못 미칠 정도로 작게 보입니다. 사건을 바라보는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간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 그런 사건이 발생했죠. 어떤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평생 형들을 원망하며 우울증 가운데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건과 상황에만 초점을 맞추면 그렇게 됩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과 함께 하는 하나님을 항상 의식했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임재 가운데 있으려 했습니다. 

여러 시련을 겪는 가운데 요셉은 날마다 자신의 고도를 높입니다. 그런 어느 날 자신을 배반했던 형들이 눈앞에 섰습니다. 

벌어진 사건과 상황에 매몰되어 있었다면 형들을 원망하며 앙갚음을 하려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위치에 있기도 했고요. 하지만 요셉은 문제와 함께 서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석을 달리합니다.

"창 45:4~5, 7~8..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게 벌어진 사건이나 상황이 아닙니다.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온전한 해석은 관점에 달려 있고, 이 관점은 자신이 밟고 있는 고도에 달렸습니다. 요셉은 주님 한 분을 앙망(仰望)하며 바라봤던 자입니다. 

성경은 주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SOAR) 같을 것이라 말합니다. 

주님을 앙망할 때 상황을 해석하는 고도가 올라갑니다. 이렇게 고도가 올라간 자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의 상황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사 40:31) 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e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 (NIV)”

#마리아..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처녀 상태에서 잉태하여 아이를 낳을 것이란 소식을 듣습니다. 벌어진 사건에 초점을 맞추면 염려하며 좌절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관점이 다른 마리아는 벌어진 사건 해석을 달리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마리아는 주님 한 분만을 앙망하며 찬양합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눅 1:46~47) And Mary said, My soul does magnify the Lord, And my spirit has rejoiced in God my Savior. (KJV)”

‘찬양하다’에 해당하는 KJV 번역은 ‘확대하다’를 의미하는 ‘magnify‘를 사용했습니다. 문제를 확대하면 좌절이 오지만, 주님을 확대할수록 찬양과 기쁨이 넘칩니다. 

내가 ‘무엇을 확대하는가’는 고도의 문제입니다. 벌어진 사건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무엇을 확대할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윗.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이방 땅 가드로 피신합니다. 

사람들이 다윗을 알아보자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가드 왕 아비멜렉 앞에서 침 흘리며 미친 척을 합니다. 

다윗 인생에 있어 얼마나 수치스러운 장면이었을까요? 다윗이 그런 모욕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와 ‘과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 다윗이 돌아와서는 주님 한 분만을 앙망하며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시34:1)"

시편 34편 부제를 찾아보면,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나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상황과 문제를 확대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확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시편에서 연이어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시 34:3) O magnify the LORD with me, and let us exalt his name together. (KJV)”

‘광대하시다’에 해당하는 KJV 번역은 마리아의 고백과 마찬가지로 ‘확대하다’를 의미하는 ‘magnify‘ 입니다. 다윗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의 상당수가 이런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주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신 이유는 다윗이 언제나 상황을 보지 않고 찬양을 통해 고도를 높여 주님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하가와 SOAR(순서)

사건을 일으킨 문제가 커 보이는 이유는 그 문제와 눈높이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와 눈높이가 같으면 그 문제의 영향을 받습니다. 

고도를 높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 에너지를 자기 자신에게서 취하려면 실패합니다. 언제나 이 자원은 하늘로부터 와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들어 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하가’를 강조하신 이유는 ‘하가’를 통해 고도를 높일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이 밟고 있는 땅에서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의 관점에서 상황을 해석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S]STILL&SYNC(기도)..WHO..누구에게 초점을 맞출 것인가?

[O]OUTLI&OBSER(관찰/해석)..WHAT..무엇을 말씀하시는가?

[A]ALIGN&AUTHO(적용)..HOW...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R]REFLE&RESPO(계시)...WHY..왜 나는 이 땅에 존재하는가?

#방법도 중요하지만

데일리하가는 하가를 통해 관점의 고도가 비상(飛上)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SOAR 관점(觀點)을 제시합니다.

‘하가’를 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하가를 어떻게 하면 잘할까?,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삶에 잘 적용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의 정답을 찾는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깨달음을, 때로는 지식을, 때로는 문제 해결을 얻고 싶어 하죠. 너무나 정상적입니다. 주님도 우리가 이렇게 누리길 원하실 겁니다. 

하지만 말씀이 단순히 읽는 대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이요 인격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아, 말씀이신 주님과의 교감과 교제는 빠진 채 뭔가를 일방적으로 얻고만 싶어했구나…’란 생각에 가슴 철렁할 때가 있습니다. 

사귐의 대상이 분명히 있는데 일방적으로 나만 생각하는 접근이 었던 거죠. 이런 경향이 남아 있어 우리는 계속 말씀을 읽으려고만 합니다. 

그런 활동을 통해 뭔가를 얻고만 싶어하죠. 하지만 이 아름다운 사귐의 균형을 위해서는 말씀이 우리를 읽을 기회도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진짜 사랑하면요,.... 요구하기 전에 먼저 듣고 싶어합니다. 더 가까워지고, 더 알고 싶고, 더 교제하고 싶은 마음. 

바로 이 마음으로 말씀이신 주님에게서 들으려 할 때 그 과정에서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깨달음을, 때로는 지식을, 때로는 문제 해결을 부산물처럼 얻는 거죠.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이게 자연스럽습니다. 방법론을 적용해가며 사랑하는 것은 어색합니다. 사랑은 방법을 이깁니다. 진짜 사랑하면 창의적인 방법까지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하가를 하는 말씀은 분석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입니다. 내가 말씀을 소중히 여길수록 그 말씀이 나를 또한 존중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삼상 2:30) …Those who honor me I will honor… (NIV)

....결혼 후 태어난 첫째 아이와 처음 마주하는 순간은 얼마나 소중할까요? 모두에게 시간은 다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이렇듯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도 존재합니다. 

이 시간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마음의 태도입니다. 결국, 태도가 경험의 질을 좌우하죠.

....하가를 하는데 있어서도 하가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방법론이 아닌 말씀을 향한 마음 중심의 태도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매개로 우리와 친밀하게 교감하고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사랑은 생산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결과를 생각하기 이전 사랑하기 때문에 그냥 말씀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먼저입니다. 사랑은 모든 제약을 극복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어떤 관점이나 방법론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첫 단추의 문제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온 편지의 행간 마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도구와 방법론이 그 사랑을 더 넓고 풍요롭게 해줍니다. 이미 마음 중심에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죠. 이런 태도를 갖춘 사람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도구와 방법론을 (선결요건으로서, 선제적으로!!) 사용하려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더 알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어 도구와 방법론에 관심을 두는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어떤 방법론이 결코 그 사람을 틀에 가두지 못합니다.

하가를 좀 더 잘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나 도구에 몰입하다 보면 정작 관계의 대상을 잊고 맙니다. 본말(本末)을 전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면 안 되겠습니다. 

정상(頂上)에 오르는 길은 아주 다양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길도 다양합니다. SOAR는 데일리하가가 정상을 오르며 개척했던 길 중 하나일 뿐입니다. 길이 익숙해질 때까지 참고하되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과감히 버리시고 언제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시길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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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 실전] WEEK 1 – HOW SOAR(1) – STILL & SYNC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shaken. (ESV)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ㅇ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사40:31)....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방법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대상을 향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도구와 방법을 이깁니다. 

주님의 생명을 접촉하려는 갈망만 있다면 서툴러도 은혜가 넘칩니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야 비로소 도구와 방법은 유용합니다. 

방법에 몰입하다 보면 정작 대상을 잊고 맙니다. 본말(本末)을 전도하는 거죠. 이점을 꼭 명심한 가운데 방법이 주님을 향한 사랑을 가리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정상(頂上)에 오르는 길은 다양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길도 다양합니다. SOAR는 데일리하가가 정상을 오르며 개척했던 길 중 하나를 제시할 뿐입니다. 익숙해지면 언제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시길 권장합니다.

@1.KEY QUESTION

*WHO | 누구를 볼 것인가? 누구에게 초점을 맞출 것인가?

존재의 중심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코기토 에르고 숨, Cogito, ergo sum)’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이 생각을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으로 나눕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6)”

나의 존재가 애굽이 아닌 가나안 땅에 서 있으려면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하가’를 강조하신 겁니다. 하가를 통해 영의 생각을 활성화하기 위함이죠.

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묵상하려는 그 순간에도 어느새 내 생각은 말씀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영의 생각을 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님을 봅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내가 말씀을 관찰하고, 내가 말씀을 해석하고, 내가 말씀을 취사선택하고 있습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말씀을 읽으면서 ‘나’의 깨달음, ‘나’의 감정, ‘나’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말씀이 나를 읽을 기회를 주지 않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나의 이성(理性)은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신 보혜사 성령님의 존재를 쉽게 인식하지 못하고 알아도 쉽게 자리를 내드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가의 첫 단계는 내가 말씀을 읽으려는 태도를 내려놓는 겁니다.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Still). 

영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지(Sync)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주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나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가의 첫 단계는 내 이성을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고 그 자리에 ‘영(靈)’을 모시는 겁니다. 그때야 비로소 영의 영향을 받는 영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신 모든 감각과 재능은 오직 성령님의 통제 아래 있을 때만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靈, spirit)은 자아(自我,ego) 즉 지정의(知情意)로 대표되는 혼(魂, soul)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아는 데 필요한 것은 탁월한 지성(知)과 뛰어난 감각(情)과 불굴의 노력(意)이 아닙니다. .

...영계(靈界)는 우리가 속한 물질계(物質界)와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저차원(低次元)의 지정의(知情意)로 고차원(高次元)의 영을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입니다. 인간에 속한 그 어떤 것으로 주님을 알려 하는 것의 끝은 결국 탁월한 종교에 불과할 뿐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영을 통하는 것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0~11)”

이 하나님의 영과 연결(Sync)되려면 무엇인가 깨달으려 하고, 무엇인가 노력하려는 나의 자아를 가만히 있게(Still) 해야 합니다.

Still & Sync (스틸 & 씽크) 단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10)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KJV) Cease striving and know that I am God… (NASB)”

Still & Sync (스틸 & 씽크) 단계 때 아래 예와 같은 기도가 도움됩니다.

**믿습니다! – 요청하기만 하면 기꺼이 도와주실 하나님의 영 보혜사(保惠師) 성령님이 바로 내 안에 실재(實在)하심을 믿고 확신합니다.

**존중합니다! – 내 안에 실재하시는 성령님은 친밀한 교제가 가능한 인격입니다. 그분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 비례하여 그 존재는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인격과의 사귐은 서로에게 귀 기울이려는 존중에서 시작합니다.

**바라봅니다! – 예수님은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시며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내 안에 영원(永遠)과 맞닿은 바로 그 지점을 바라보며 ‘주님~’을 길게 부릅니다.

**확인합니다! – 내 마음 중심으로 주님의 영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갈망이 있는지 수시로 확인합니다. 나의 자원(資源 – 경험, 지식, 노력…) 사용하던 것을 멈추고 오직 주님의 자원(資源 – 오직 성령님의 기름부음)만 사용할 것을 수시로 결단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8~39)"

#STILL & SYNC 기도

영이신 하나님. 이 시간 제가 주님께 연결되기를 소망합니다. 당신과의 연결을 가로막는 나의 모든 자아적 속성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나를 돕기 위해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 내 마음의 문을 엽니다.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도와주세요. 내 모든 이성과 감정과 의지가 주의 영에 굴복되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말씀이 나를 주장하옵소서. 말씀이 승리하옵소서. 육신의 열매가 아닌 영의 열매를 거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와 같은 기도가 익숙해지면 길을 가다가도 ‘주님~’이라고 길게 부르면서 이 기도에 담긴 마음을 ‘주님’이란 단어에 모두 압축하여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영과의 연결은 한 순간입니다.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을 인식하고, 존귀히 여기고, 그 성령님께 모든 것을 통제받으려는 마음이 진심일 때 영과의 연결은 ‘주님~’이라고 부르는 고백 하나로 족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영과의 연결은 한 순간입니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도 이 단계가 쉽지 않은 반면 매 순간 자기 자신을 내려놓으려 하는 사람에게는 이 단계는 잠깐의 고백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STILL & SYNC - 하가를 위한 구별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때

하가의 핵심은 일상에서 말씀을 입에 올려 중얼거리는 것을 통해 말씀의 영향을 받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풍성한 하가 시간을 위해서는 하가 재료를 준비하는 별도의 시간을 갖는 것도 유익합니다. 

구별된 주님과의 교제 시간을 하루 15분~30분 가질 수 있는 분들은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러포즈하러 가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특별할까요?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마음의 태도는 시간의 질(質)을 좌우합니다. 하가는 말씀을 매개로 주님과 만나며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인격이요 실재(實在)입니다. 주님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태도가 경험의 질을 결정합니다. 

내 삶의 가장 소중한 그분과의 만남을 위해 어떤 시간, 어떤 공간, 어떤 마음을 준비해야 할까요?

때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특별한 만남을 위해 향초를 켜고 배경 음악을 준비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과 교제를 시작하는 Still & Sync 시간을 특별하게 해줄 나만의 의식(儀式, ritual)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그 시간만의 배경 음악, 그 시간만의 장소, 그 시간만의 노트와 필기구를 준비하는 것과 같은 거죠. 이런 시간과 의식을 통해 주님과의 추억이 쌓이는 겁니다.

Still & Sync 단계의 초점은 주님과의 거리를 좁히는 겁니다. 내 합리적 사고와 고정 관념이 성령님의 활동을 막아선 안 되겠습니다. 

내 천연적 기질은 줄어들고 내 안에 살아계신 성령님은 늘어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내가 줄어든다는 것은 내 안에 실존(實存)하시는 성령님께 모든 것을 사로잡히려는 열망이 확산하는 것입니다.

#STILL & SYNC -바쁜 일상에서

길을 걷고 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거나, 잠깐의 휴식 시간이거나,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일상에서 Still & Sync를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구별된 주님과의 교제 시간을 통해 Still & Sync 단계를 훈련한 사람은 바쁜 일상에서 Still & Sync를 갖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Still & Sync는 결국 ‘나’에게 맞춰진 초점을 ‘주님’께로 돌려 주님의 영과 연결되려는 시도입니다. 

이것은 흩어졌던 마음을 주님께로 돌리려는 순간 즉시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단계로 나눠 설명해서 그렇지 Still & Sync는 결코 복잡한 과정이 아닙니다. 

내 안에 실재하시는 성령님의 영향을 받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순간 Still & Sync는 쉽게 이뤄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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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 실전] WEEK 1 – HOW SOAR(2) – OUTLINE & OBSERVE

STEP2. OUTLINE & OBSERVE :: 전체를 조망하고 집중할 것에 주목하라 –관찰/해석

@2. KEY QUESTION

*WHAT |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하가’를 하기 위한 말씀 분량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일상생활에서 언제, 어디서나 보지 않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려면 한 절(節)에서 많아야 두 세절 정도가 적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 절만 떼서 보다 보면 전체 맥락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가를 할 때는 항상 그 절(節)을 포함하고 있는 전체 맥락을 미리 파악하여 윤곽을 그리고 있는 것(Outline)이 좋습니다. 

전체 윤곽을 파악했다면 하가할 구절을 보지 않고 중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소리 내 반복합니다. 

이때 중간중간 멈춰주는 것이 좋습니다. 기계적으로 암송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멈춤(pause) 버튼을 누른 후 ‘성령님~’을 찾으십시오.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기 바라는 마음을 항상 유지하십시오. 

성령님이 도와주실 것이란 믿음을 갖고 해당 구절의 단어와 구(句)를 깊이 주목하며 관찰합니다(Observe).

관찰 중에 특별히 감동을 주신 단어나 구가 있다면 그것을 반복하며 음미(吟味)합니다. 

마치 입안에서 사탕을 데구루루 굴리듯 그 단어나 구를 입에서 반복하여 읊조리며 그 맛을 감상하는 겁니다. 단어나 구를 반복할 때도 중간중간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편 23편 전체를 파악한 후(Outline) 1절 말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분을 하가하기로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1절 말씀 중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분에 감동이 있어 이 부분을 반복하며 읊조립니다. 이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입안에 한 번 올려 중얼거린 후 영의 흐름을 의식하며 기다립니다. 이런 식으로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영의 흐름을 의식하며 기다리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입은 중얼거려도 마음은 영원에 맞닿기를 바라며…) 여호와는 나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목자시니… (말씀과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의식하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렇게 단어와 구절을 반복하는 사이사이 성령님을 의식하며 기다리는 겁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연이어 반복하지 않고 잠시 머무는 이유는 성령님이 개입하실 시간을 갖기 위함입니다...이 부분이 익숙해지면 기계처럼 한번 중얼거리고 한번 기다리는 방식이 아닌, 내 중얼거리는 소리 위에 성령님이 운행하신다는 임재의식과 함께 하가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내 입은 그 구절을 계속 반복하여 중얼거리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성령님의 개입을 갈망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말씀은 영의 소리입니다. 태초에 수면 위에 운행하셨던 하나님의 영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는 소리를 타고 일하셨죠. 

믿음으로 말씀 속 영의 소리를 중얼거리며 생수를 퍼 올릴 때 성령님이 그 위를 운행하시며 영의 소리를 타고 일하시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계시(啓示, Revelation)는 운행하시는 성령님이 말씀을 타고 빛을 창조하시는 순간입니다

암송이 목적이 아니기에 입에서만 말씀을 기계적으로 중얼거리는 것으로 끝내선 안 됩니다. 입은 중얼거리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말씀과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소중히 여기며 갈망하는 마음을 유지할 때 구절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구절을 반복하며 중얼거리는 이유는 주님의 주권 아래 한순간 임하는 성령님의 계시를 받기 위함입니다. 이 계시가 바로 하늘의 믿음을 산출합니다.

Outline & Observe 단계의 초점은 하가를 하면서 전체 맥락(숲)을 파악한 후 집중하여 반복할 특정 단어나 구절(나무)을 찾는 데 있습니다. 

하가를 하는 이유는 말씀을 매개(媒介, medium)로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주님과 함께 관심 깊게 주목할 특정 단어나 구절을 찾는다면 이 재료들은 하가를 하는데 있어 훌륭한 매개체(媒介體) 역할을 합니다. 

성령님은 어떤 질문도 환영하시는 인격입니다. 이때 이런 매개체는 상호 교제의 훌륭한 거점(據點, base)역할을 합니다.

#OUTLINE & OBSERVE - 하가를 위한 구별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밤낮으로 묵상(하가)하라’고 하셨습니다. 

시간, 장소,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가를 최우선 순위로 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15~30분 정도의 구별된 주님과의 교제 시간을 통해 하가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 도움됩니다. 

어떤 과목을 공부할 때도 아예 모르면 재미가 없지만, 공부를 어느 정도 해서 그 과목과 관련한 재료가 충분히 쌓이면 그 과목 수업이 기다려지고 그 공부가 재밌어지지요? 

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구별된 시간을 통해 하가할 말씀을 기록한 사람은 누구인지, 기록할 때의 상황은 어땠는지, 그때 저자의 마음은 어땠는지, 이 구절은 전체 어떤 맥락 가운데 나온 것인지, 또 다른 성경 번역본은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각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 구절과 연관 있는 또 다른 구절은 없는지 등의 재료를 준비한 사람과 이런 재료가 없는 사람은 일상에서 하가를 할 때 경험의 질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은 그 자체로 진리이지만 그 안에 감춰진 생명을 경험하려면 미련하게 보이는 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계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칼륍시스’는 껍질을 벗겨 속에 있는 생명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껍질을 벗기려면 재료와 도구가 필요합니다. 요리는 성령님이 하시지만, 재료와 도구 준비는 우리 몫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라도 도구와 요리할 재료가 빈약하면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걸어 다니는 일상의 어느 한순간 마치 우연처럼 깨닫는 놀라운 감동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한 재료로 성령님이 요리한 결과입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 재료를 준비할 때 이런 연구가 지식과 깨달음을 얻는 하나의 활동으로 변질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가의 목적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이 첫 번째 목적도 아닙니다. 지식이나 깨달음이나 감동 같은 것은 하가를 진행하며 얻는 부산물일 뿐입니다. 

이런 사전 연구를 권장하는 유일한 이유는 주님과의 교제를 풍성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활동은 주님과의 교제와 주님의 영향을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OUTLINE & OBSERVE - 바쁜 일상에서 

구별된 시간을 통해 준비한 재료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운전 중에, 걸어 다니면서, 설거지하면서, 회의하는 중간중간 등 일상의 모든 순간에 시간과 장소와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가를 시도할 때입니다. 언제나 인생의 획을 긋는 것과 같은 특별한 감동과 계시는 이 일상의 어느 순간 우연처럼 찾아옵니다.

이런 재료가 있는 가운데 바쁜 일상 중 하가 말씀을 반복 중얼거리다 보면 이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도드라지게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잘 메모하거나 기억해뒀다가 구별된 시간을 통해 재료로 연구하고 다듬습니다. 

요리에 있어 재료가 중요한데 일상에서의 Outline & Observe는 마치 길을 가다 생각지도 못했던 귀중한 재료를 발견하는 기쁨과도 같은 시간입니다. 

다른 단계도 마찬가지지만 Outline & Observe 단계 역시 구별된 시간과 일상의 교차 실행을 통해 훌륭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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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 실전] WEEK 1 – HOW SOAR(3) – ALIGN & AUTHOR...말씀에 내 모든 삶을 정렬시키고 믿음을 표현하라 – 적용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shaken. (ESV)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ㅇ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사40:31)....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방법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대상을 향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도구와 방법을 이깁니다. 

주님의 생명을 접촉하려는 갈망만 있다면 서툴러도 은혜가 넘칩니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야 비로소 도구와 방법은 유용합니다. 

방법에 몰입하다 보면 정작 대상을 잊고 맙니다. 본말(本末)을 전도하는 거죠. 이점을 꼭 명심한 가운데 방법이 주님을 향한 사랑을 가리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정상(頂上)에 오르는 길은 다양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길도 다양합니다. SOAR는 데일리하가가 정상을 오르며 개척했던 길 중 하나를 제시할 뿐입니다. 익숙해지면 언제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시길 권장합니다.

@3.KEY QUESTION

*HOW | 어떻게 말씀을 살아낼 것인가? 어떻게 믿음을 표현할 것인가?

말씀은 능력 그 자체입니다. 말씀은 만물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히 1:3) and upholds all things by the word of His power… (NASB)”

AMP 번역은 이 ‘만물’을 ‘물리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포함하는 모든 것 (all things – the entire physical and spiritual universe)’으로 번역합니다. 

헬라어 원문은 이 부분을 ‘타 판타(ta panta)‘로 적고 있는데요. 사전은 이 부분을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 그 어떤 것도 예외일 수 없는 완전한 전체(to include everything and exclude nothing)‘로 정의합니다. 

즉, 주님이 말씀으로 모든 것을 붙들고 계시는데 이 모든 것은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이전의 것, 앞으로 생길 것을 포함한 그 어떤 것도 빠져나갈 수 없는 전체를 뜻합니다. 당연히 내 삶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 상황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음을 뜻합니다.

삶과 신앙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신앙 따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 따로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새 세상을 따라갑니다. 심정은 말씀을 삶의 중심에 놓고 싶지만, 현실은 세상이 삶의 모든 기준이 돼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이 모든 것을 붙들고 있다고 명확히 얘기합니다. 즉, 내가 그렇게 살든 살지 못하든 상관없이 모든 것의 기준(다림줄, plumb line)은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하가를 하는 이유는 말씀을 매개(媒介)로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모든 영역이(타 판타, 그 어떤 것도 예외 없이…) 말씀을 기준으로 정렬(整列, Alignment)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하가를 강조하신 이유도 일상의 모든 삶이 말씀에 붙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내 생각, 태도, 행동까지 지금 ‘하가’ 하고 있는 말씀에 정렬시키는(Align) 훈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가를 하다보면 그 말씀이 지금 내 문제, 내 상황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당연히 자주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꼭 기억하고 믿음으로 붙드십시오.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말씀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장 사소하다고 느껴지는 말씀조차 나의 가장 큰 문제를 능가합니다.

그 어떤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말씀조차 성령님이 빛을 비추시면 현재 상황을 돌파(突破, breakthrough)하게 하는 놀라운 물맷돌이 됩니다.

상황에 맞는 말씀을 찾는 것은 내 이성(理性)도 할 수 있습니다.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말씀에서 빛을 얻어 놀라운 반전을 일으키는 것은 내 이성(理性)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내 모든 상황을 정렬시키려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말씀이 삶에 영향을 못 미치는 것은 말씀의 문제가 아니라 내 태도와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 어떤 말씀도 내 삶에 놀라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하가를 하며 삶을 말씀에 정렬해 나갈 때 내 상황에 맞는 계시가 풀립니다. 

내 상황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던 말씀이 내 믿음을 타고 역사한 성령의 빛 비추심으로 연관성을 찾게 될 경우 그 말씀은 내 삶을 변화시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살아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가’의 관점에서 보면 일상의 모든 삶을 지금 하가하고 있는 말씀에 정렬시키는 겁니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말씀이 없으리란 믿음을 붙들고 말씀을 중얼거리며 그 말씀으로 내 삶을 조명할 때 보이지 않게 안에서 내 삶을 붙들던 말씀이 실재가 되어 드러납니다. 말씀이 내 삶에 영향을 미쳐 그 말씀 앞에 정렬되는 삶. 말씀이 내 삶에 실재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말씀을 살아내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셨습니다. 그 기록이 바로 말씀이죠. 말씀은 하나님의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표현하시고 기록하시는 것을 즐기셨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첫 아이를 낳고 그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음 담아 일기를 쓰던 부모처럼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보배로운 생각을 다 기록해오신 분입니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시 139:16~17)”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하가하는 말씀에 모든 상황을 정렬시키다(Align) 보면 의외의 말씀이 내 상황과 결합하여 놀라운 계시를 풀어낼 때가 있습니다. 이때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이 함께 옵니다. 이런 특별한 감동이 있을 때 놓치지 말고 기록하십시오(Author). 

아무리 뜨거운 계시와 감동도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맙니다. 믿음은 표현될 때 그 기름부음이 배가(倍加)됩니다. 기록 역시 표현의 한 부분입니다. 

이런 감동과 말씀을 살아낸 과정을 기록하는 것을 저널링(Journaling)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기록이 어느 한 곳에 쌓이다 보면 인생의 궤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인생을 향한 주님의 계획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물론 나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Calling)을 찾아가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후 가장 먼저 주신 미션(Mission)은 이름을 짓는 것(Author)입니다.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고도의 창조적, 영적 활동입니다(원어적으로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후 생기를 불어넣은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 땅의 권위(Authority)를 주신 것의 첫 번째 활동이 이름을 짓는 것(Author) 이었습니다(Author에게 Authority가 있으니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기대하는 것은 이 땅에서 이름 짓는 자(Author)의 사명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고도의 영적, 창조적 활동을 통하여 하늘의 권위(Authority)를 회복하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에 권위(Authority)가 있음을 믿고 그 말씀의 저자(Author)에게 내 모든 생각, 태도, 행동, 관점, 상황, 환경, 문제 등 모든 것을 정렬하고자(Align) 할 때 내 삶에 맞는 계시가 풀리고 상황을 이겨낼 믿음이 들어 오기 시작합니다. 이 계시와 이 믿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Author) 훈련을 해야 합니다. 

때로 기록으로, 때로 순종으로, 때로 도전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을 살아내는 과정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내 인생을 향한 권위(Authority)가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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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 실전] WEEK 1 – HOW SOAR(4) – REFLECT & RESPOND

STEP4. REFLECT & RESPOND ...살아낸 말씀으로 나는 누구인가 묻고 CALLING에 반응하라 – 계시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shaken. (ESV)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ㅇ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사40:31)....Those who hope in the Lord will renew their strngth. They will SOAR on wings like eagles;"

@4. KEY QUESTION....

*WHY | 나를 향한 주님의 믿음은 무엇인가? 나는 이 땅에 왜 존재하는가?

가장 많이 알려진 묵상 방법은 ‘①기도, ②관찰, ③해석, ④적용’입니다. ‘①기도’는 ‘STEP 1의 Still & Sync’와, ‘②관찰 & ③해석’은 ‘STEP 2의 Outline &Observe’와, ‘④적용’은 ‘STEP 3의 Align & Author’와 관련 있습니다. 

개인의 삶에 포커스를 맞춰 일상에서 하가를 진행할 때는 Still & Sync(기도) → Outline &Observe(관찰 & 해석) → Align & Author(적용) 순서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진행하면 크게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삶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내 인생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거울을 통해 나를 비추고(Reflect) 나를 향한 하나님의 믿음을 회복하여 주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려는(Respond) 삶의 여백이 필요합니다.

말씀은 소리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자신을 비추며(Reflect) 내면의 소리(calling)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려(respond) 할 때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에 반응하는(Respond)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부르심의 자각은 나의 노력에 달렸지 않습니다. 이 부르심은 마치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처럼 인생의 어느 한순간 알게 되는 주님의 주권에 속한 영역입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하가는 STEP 1 ~ STEP 3까지 만으로도 충분하나 인생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하가는 STEP 4가 필요합니다. 

STEP 4는 STEP 3 이후 진행하는 단계라기보다는 언제 어느 순간 찾아올지 모르는 주님의 부르심에 열린 자세로 귀 기울이려는 단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STEP 4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래 질문에 관한 건강한 답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나의 믿음이 아닌 말씀에 비춰(Reflect) 떠오르는 내면의 반응(Respond)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가?

**나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향해 어떤 믿음을 갖고 계시는가?

**내 인생을 향한 주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어부였던 시몬을 향해 베드로라고 부르셨던 주님은 나를 향해 뭐라 부르실까?

**모든 생명이 존재 이유가 있다면 이 땅에서의 내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향한 주님의 믿음

‘십자가’는 하늘의 비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밀을 처음부터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비밀을 얘기할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죽음을 제자들에게 처음 알린 것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진 후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였습니다. 이 질문에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에 해당하는 답을 갖고 살아가는 시기죠. 부모님이 믿고 있는 주님, 목사님이 얘기하는 주님, 책이나 다른 간증자가 고백하는 주님을 지식적으로 알고 믿으려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이때 주님은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란 두 번째 질문을 던지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믿고 있는 나 말고 너 자신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란 질문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지식만 있으면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은 깨달음과 확신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이 곁에서 지켜보며 깨닫고 확신한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란 자신만의 고백을 합니다. 

이 고백은 베드로의 마음 중심에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 중심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알게 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다’라고요. 다른 말로 하면 계시(啓示, revelation)를 통해 베드로가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하늘의 비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신 주님은 아주 중요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란 고백입니다. 

이것은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믿음입니다.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신앙 고백이죠. 천박한 어부 시몬(Simon, 베드로의 본명)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신앙 고백은 ‘너는 어부라. 배우지 못하고 아주 천한 시몬이다!’였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주님을 향한 자신만의 신앙 고백을 계시적으로 했을 때, 주님은 베드로를 향한 자신의 신앙 고백을 이렇게 하신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너를 뭐라 부를지 모르지만, 너는 베드로다. 너는 반석이다.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울 것이다. 계시로 믿음을 표현한 바로 그 자리에 나의 교회를 세울 것이다! 이것이 너를 향한 나의 믿음이다!’라고요. 

세상 사람들은 베드로의 현재 모습을 보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베드로의 존재 이유를 보셨고 그 믿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이 누구인지 눈을 뜬 순간입니다. 

이때 두 번째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처음으로 ‘십자가’의 비밀을 말씀하신 겁니다

베드로가 자신이 누구인지에 관한 주님의 믿음을 알게 됐을 때 하늘의 비밀을 비로소 알려주신 거죠. 

베드로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십자가의 비밀을 처음 알게 된 근간에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믿고 있는 주님이 아닌 말씀을 통해 들어온 계시를 통해 알게 된 나만의 주님을 신앙 고백하기 시작할 때 나를 향한 주님의 믿음과 감추셨던 하늘의 비밀을 풀어주기 시작하십니다. 

세상은 자신의 노력으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 때 비로소 거기에 비친 자기 자신을 알게 됨을 암시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땅에서 자신을 찾지만, 땅은 하늘의 투영일 뿐입니다. 하늘에 비친(Reflect) 나를 볼 때 비로소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 때 하늘의 부르심에 반응할 수(Respond)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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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 기초] WEEK 1/DAY 5 –일반 묵상과는 이렇게 다릅니다 

DailyHagah는 일반 묵상과 어떤 부분이 비슷하고 어떤 부분이 다를까요? 

가장 다른 부분은 역시 암송을 전제로 중얼거려야 하는 데 있습니다.

1. 중얼거려야 합니다

‘하가’가 일반 묵상과 가장 다른 부분은 소리를 내 중얼거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하기그 from 하가)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시편 39:3) My heart grew hot within me, and as I meditated, the fire burned; then I spoke with my tongue: (NIV)”

마음 속에 불이 붙은 뜨거운 감동으로 중얼거리며 말씀을 읊조릴 때 자아를 붙드는 고집센 나의 이성이 잠잠해집니다. 

그 중얼거리는 말씀을 재료삼아 성령님의 계시가 임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2.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가’는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QT 시간, 기도 시간, 성경을 펴 놓는 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하가’를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가)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 1:8)”

감동 받은 말씀을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받은 감동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감동을 유지하고 더 큰 계시를 사모한다면 그 구절을 ‘하가’하여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걸어 다니면서, 회의 전에, 설거지하면서, 버스 안에서, 신호 대기 중에, 잠자기 전에, 일어나자마자와 같은 일상의 모든 순간이 ‘하가’할 만한 순간입니다. 

심지어 상대방과 대화를 하다 발생하는 아주 짧은 몇 초의 공백 마저도 ‘하가’를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늘 의식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순간이 하가의 대상입니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주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고 하신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마음이 간절한 사람에게는 ‘시간’과 ‘장소’가 ‘하가’의 장벽이 될 수 없습니다.

3. 암송해야 합니다

일반 묵상은 암송이 필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하가’는 암송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시간’과 ‘장소’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하가’하려면 말씀을 암송하고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운전하면서 성경책을 펴고 묵상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말씀을 암송하고 있다면 그 말씀을 운전하면서 중얼거리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있으면 화장실에서도 잠깐 ‘하가’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건널목 건너기 전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말씀을 ‘하가’할 수 있습니다. 

암송하고 있는 구절의 한 단어만 갖고도 중얼거리며 훌륭한 ‘하가’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암송이 ‘하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암송이 ‘하가’의 시작은 맞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암송을 통해 토라 말씀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했습니다. 암송은 ‘하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작 지점입니다.

예수님은 ‘하가’란 단어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일상 속에서 혼자 말씀을 중얼거리고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말씀과 함께 사셨던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 전 마귀의 시험을 받습니다. 이 때 세 번 모두 신명기 말씀을 끄찝어 올려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마귀의 공격이 있을 때 성경책을 펴가며 말씀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평소 하가하던, 암송한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있다면 어떤 특정 상황에서 성령님이 적절하게 꺼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음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4. 말씀을 기도로 연결해야 합니다

‘하가’의 목적은 깨닫고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가’를 통해 감춰져 있던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내게 나타나 주님의 마음을 알고 내 마음이 뜨거워져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것. 모든 시작이 주로부터 말미암기를 갈망하는 마음. 이것이 하가를 하는 이유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말씀을 수시로 중얼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하가’하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훅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기도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기도는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있으면 암송한 말씀을 기도로 풀어내기가 훨씬 쉽습니다. 

말씀을 기도로 풀어내며 중얼거리는 것. 이 자체가 훌륭한 ‘하가’입니다. 내 생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녹여 그것을 기도로 올릴 때 계시가 풀어집니다. 

이렇듯 ‘하가’는 말씀과 기도와 계시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5. 깊이 사색해야 합니다

‘하가’를 피상적으로 하다 보면 암송하는 것으로 끝날 때가 있습니다. 중얼거리다 말고 어느새 끝납니다. 

영의 깊은 영역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길어 올리려면 ‘하가’의 깊이도 더 깊어져야 합니다. 이전 ‘하가’에서 누리던 만족으로 하나님의 깊이를 제한하면 안됩니다. 

‘하가’의 끝은 어디일까요? 하나님 마음의 거리만큼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느 정도 깊이일까요? 영원 만큼이나 깊습니다. 

‘하가’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영원 앞에,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조금 아는 자라고 생각했지만 영원을 머금은 말씀의 계층적 깊이를 경험할 때 그 어떤 것도 모르는 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가’의 삶이 깊어질 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말씀 조차도 ‘하가’를 하다보면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말씀도 이미 안다고 생각하며 ‘하가’를 해선 안됩니다. 이미 알고 있는 말씀 조차도 마치 처음 보는 말씀처럼 대해야 합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낡아지지만 성령님은 늘 새롭습니다. 그 성령님이 날마다 말씀으로 나를 새롭게 하기 원하십니다. 

익숙한 말씀을 하가할 때 조차 이 말씀에 무엇인가 더 깊은 것이 있다는 믿음으로 깊이 사색해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의 한 단어 혹은 짧은 한 문장만으로 하루 종일 ‘하가’하며 사색할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어떤 것도 그냥 기록된 말씀은 없습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한 것에 더 깊은 보물이 숨어있을 수 있음을 의식해야 합니다.

 ‘하가’를 통해 이런 보물을 길어 올리려면 계란 프라이 요리같이 빨리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몇날 몇 일을 푹 고아야 깊은 맛이 우러나는 곰국같이 한 말씀을 갖고 오랜 시간을 붙들고 있어야 할 때도 있음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6. 감동을 기록합니다

소리는 사라집니다. 생각도 쉽게 사라집니다. ‘하가’하며 받은 감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가’를 하며 받은 감동이 있다면 꼭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받은 계시와 감동을 한 곳에 기록하고, 모아놓은 기록을 정기적으로 살펴보다 보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던 점과 같은 기록들이 어느새 서로 연결되어 내 인생을 이끌고 계신 하나님의 궤적을 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만일 기록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기 어려웠을 내용들입니다. 

또한 하가하는 구절과 그 감동을 기록하다 보면 중얼거릴 때와는 또 다른 계시가 풀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런 기록을 데일리하가에서는 ‘저널링(Journaling)’이라고 부릅니다.

7. 감동을 나눕니다

‘하가’는 말씀에서 생명을 길어 올리는 과정입니다. 생명의 영역은 나눌 때 고갈되지 않고 늘어납니다. 

하가를 하며 받은 감동을 겸손과 온유와 절제 아래 다른 사람과 나눌 때 그 감동은 배가 됩니다. 

특별히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끼리 동일한 구절로 한 주간 ‘하가’를 한 후 서로 만나 일상에서 경험한 은혜를 나눌 때 그 말씀이 더 풍성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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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묵상하는 것을 아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 묵상하는 것을 모르는 많이 배운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압니다. ...An unschooled man who knows how to meditate upon the Lord has learned far more than the man with the highest education who does not know how to meditate. – Charles Stanley –

시하 sihah (깊이)숙고하다 ---->하가 hagah (먹을 거리 얻고 그 것을 기뻐하며  그 맛 상상하며 즐거운 생각으로) 으르렁거리다 구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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