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7.2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창21이삭출생.100세.브엘세바..임마누엘=엘올람 부름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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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장...

[창세기에서 주께서 <지정해 주신>가나안땅의 경계]

....[북]유브라데 하수~[남]애굽시내[브엘라해로이(가데스바네아)-엘랏(에시온게벨)]...그러나, 영적 의미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성지 경계는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임....[약속의 땅(성지) 남단] 가사(지중해 연안)--그랄--브엘세바---[소금골짜기]---소알(사해남단)선  ~ [약속의 땅(성지) 북단] 단 = 갈릴리호수 북부(메롬호)에서 동북방 65km 위치//헬몬산의 남서방향에 위치한 도성  #레바논은 영토를 동서로 양분하는 남북에 걸친  레바논산맥, 바로 동쪽 옆에는  시리아영토와의 경계를 이루는 남북으로 안티레바논산맥이 달리고 있는데 남쪽 끝에 헤르몬산이 위치함..헬몬산 남부지역을 텔단이라 하며 요단강의 근원지이자 단지파 옛점령지였음, 헤르몬산 하부에서 갈릴리호수 동북부에 걸쳐 있는 지역이 골란고원인데 레바논--시리아--요르단--이스라엘과 모두 경계가 맞닿은 전략요충지임...갈릴리호수--요단강 --사해 인근은 지리학적 관점으로 볼 때 서남아시아 북부아프리카 지구대에 속하며 그나마 물공급이 상대적으로 원활하기에 요단 서쪽에 족장의 도로, 동쪽에는 왕의 대로가 펼쳐져 있음

@@@민34장 (겔47에도 대동소이한 기록이 있음):: 약속의 땅 경계((바다-산과 강-하수로 둘러싸여 있음))

 ::: 서) 대해...(블레셋까지 포함한 대해 해안 전 지경).....동)요단강....동북 경계) 호르산, 레바논 산맥 북단 경계(하맛)이하의 레바논 전역---헬몬산(안티레바논산맥 남부..골란고원으로 이어짐)--갈릴리 호수 동부해안 (원호 형태)선.... 남) 애굽시내<급류 하수>--가데스바네아--소알(사해 남단) (원호 형태)선


***[육적 선함이냐, 내적/영적 선함이냐]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구주룰 빼어닮아가는 자>인 믿는 우리.. [사람이 보기에 선한 행위, <자화자찬 즐기는 세상이 광고하기 좋아하는>, 의문의 율법에 따라 인정받고 구속 받는, 정형화되고 육적인 그 어떤 선한 행위를 하도록 부르심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시며 참 자유의 근원자,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는 영생 자존하시는 관계적 인격이신 여호와 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이미 그  원판대로 만들어 가시는 바) 그리스도(=씨=이삭)를 낳도록 (주님이 불러 일으키시는 근본동기, 곧 사랑 깊은 긍휼의 인도따라 행하도록..<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비밀한 섬김 되도록>) 부르셨음을 기억하라...하나님의 목표는 믿는 우리로 그리스도(개인적, 단체적), 곧 그리스도의 신부-아내를 산출하게 하는 것....[미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거듭난 믿는이들이란 각자 안에 오셔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살아내는 바)작은 그리스도들이요,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지체들임... (각자를 통해 하나님이 산출케 하셔서 자라나게 하신 바) 내주하시어 사시는 속생명 그리스도(이삭)는 <이미 창세 전에 예정하신  바 사람을 지으시기 전에 미리 그리스도의 원본사진을 찍으신 그대로, <구주 십자가 믿음 인해 거듭난 자로서>, 개인적 측면(그리스도 담지자)과 단체적 측면에서(단체적 그리스도 = 유기적 생명 공동체) 두 방면을 가지면서 동시에 모두 [엘 샤다이로부터 풍성한 생명]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나 원본에 합당하게 변화되어가는 바 , 생명활동 왕성한 강한 아이가 되어야 하고, 딱딱한 말씀조차 잘 씹어 먹고 [그 안의 영과 생명을 섭취함으로써]  이윽고 그리스도의 장성한분량에의 충만에 이르는 청년이 되어 주님의 일 감당하기에 부족함 없고, 마침내 하늘보좌로 휴거되어 마귀를 하늘에서 내어쫓는 이기는 자[ 사내아이] 가 되어야 함...이를 위해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 생활이 있어야 함..

...롬5:3-11환난(어려움-고난-고통) 중에도 즐거워 함, 그 이유)... 골1:1-29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영광의 소망...롬8:1-39


@@브엘라헤로이의 이스마엘인가, 브엘세바의 이삭인가..

===[이스마엘<애굽 여종 하갈로 묘사된, 시내산에서 주어진 의문의 율법, 그 속박따라 제한받는 양심 인해 산출되었고, 그들 자신을 위해 살며, 세상과 연합하여 생명을 죽이는 활 쏘는 사냥꾼으로 사는자>을 위한 우물은 부정적인 우물, 브엘라헤로이(=나를 살피시는 살아 계신 이의 우물..브엘라 헤로이 북쪽은 술 광야, 남쪽은 바란 광야, 서쪽은 애굽이다.)]

......브엘라헤로이는 <광야(=Q께 거절당한, 혼적 영역을 예표함....광야는 애굽<세상>에 인접해 있어서 쉽게 애굽으로 떠 내려 갈 수 있음...)에 살면서(=떠돌며 방황함)...결국 생명 사냥의 도살자 니므롯과 같은>활 쏘는 자를 산출함.....보라, 그의 생모 하갈은 이스마엘의 아내를 애굽에서 구해주고 있는 바, 이스마멜을 애굽의 것으로 인 치고 있다.

....그렇다면 영적 의미로 볼 때 이스마엘에 속한 것들이란....[영적 거듭남 없이 의문의 율법적 속박과 통제과 그에 따른 육적 노력을 따라 길들여짐 통해 형성된 바] 세상이 인정해 주는, 천연적  선함과 성공들....그리고 .타고난 모든 천연적 생명과 그 속성(선함, 솔직담백함, 겸손, 관대함, 포용력, 길들여진 속성/습관)을 따라 행하는 모든 선한 행위들마다 전부 다 영적 측면에서 이스마엘에 속한 것이라 할 것...주님이 보시는 선함, 또는 선이란 (세상이 환호하며 박수치며 기대하는 그런) 피상적 자의적 육적 기준에서의 선함이 아니라 오직 주 임재 앞에서 정결케 씻겨주신 양심에 비추인 바 말씀과 성령따라 행할 때 이루게 하시는 내적 선함이라 할 수 있는데, 그리할 때에야 비로소 완전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 참되심이 그분의 지고지선의 사랑과 함께 드러남 되기 때문.. 그러므로, (그대 안에 깊숙이 숨겨져 있을 수 있는!!) 타고난 선함, 이스마엘을 붙들어 자랑하지 말고!!> 오히려 떠나 보내야 함......오직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되어 죽고, 그분의 부활과 함께 거듭난 자, 그대 안에 태어난 그리스도, 곧  부활생명의 성령따름으로 가능.

===[이삭<하늘의 시온산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짝, 증거궤의 반쪽으로서, 영적 자유 누리는 사라에게서 산출된 바, 말씀의 영 안에서, 교회 안에서 Q을 위해 살며,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시온으로 올라가는 자들>을 위한 우물은 긍정적인 우물, 브엘 세바(맹세의 우물) =일곱 암양새끼로<당당하게> 온전히 그 값 치르고 맹세로 획득한 구속+영원한 언약의 생명 우물 ...요4;14, 시36:8 요7:37, 38 고전12:13, 계22:17...]....가나안의 좋은 땅에 인접한 블레셋 영토에 속했었으나, 댓가를 주고, 맹세로 얻은 샘물,  블레셋 땅과 가나안 성지 사이에 위치..

......여기에 심겨진 나무는 창2 :9의 [에덴 동산, 정원]의 생명나무를 뜻하는 <에셀 나무 = 영생 나무...물이 풍성한 곳에서만 생존 가능한 나무.( 버드나무 속에 속함) 가지가  가늘고 미세한, 늘 푸른 연한 잎으로 뒤덮여 있어서 생명의 풍성함을 의미..>

.......맹세의 우물인 바, 교회가 있어야 할 곳이요, 에셀나무의 충만도 당연히 함께 있기에, 교회 생활 누리는 우리 모두는 생명이 흘러 넘치는 에셀 나무여야 함....여기에 형통-번성의 심겨짐. 곧 교회 생활이 있어야 함은 당연.(이것이 지상에 두신 지역교회의 존재 의미일 것)

...... 여기에서 영원한 하나님(El Olam...엘 오람(올람), 전능자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오람(올람..Olam)은 영원, 혹은 영원함을 의미하며 히브리어 근원은 숨기다-감추다-(시야를)가리다-비밀하다=신비롭다(베일에 싸인 모든 것은 자연히 비밀이 된다....시작과 끝이 없고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존-영생-영원한, 내적인 참 생명이신 분, 비밀하고 신비로운, 그러나 실제이신 분)....요1:1-4의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의 그 영원한 생명이 바로 엘 오람인 것.. 

-----이 여호와 하나님 엘오람 부름의 체험을 통해서, <블레셋인의 땅(브엘세바)에서 "여러날"..적어도 20여년 그 이상 머물렀을 것으로 추측>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의 머무시는 영원 안식처, 그리고 그분의 영원목적의 이상을 보여주심 인해 그것을 보는....여호와 이레] 북쪽으로 55마일 떨어져 있는<이리하여 (천연적 영리함따라 삶을 의미하는) 블레셋의 영향력을 영원히 단절하는>, 모리아산의 희생제사[날마다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로 나아갈 수 있었다.....모리아 산에서 주께서 보이신 바,  부친 아브라함과 함께 경험한 번제, 곧 영적 할례를 거친,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 생활의 예배드림, 곧 신령과 진리의  참 예배드림으로써 주 임재 영광 안에 잠길 때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거듭난자로서 삶의 어떠함, 차원을 초월하여 영적 연합의 하나됨으로 <호흡보다 의식보다 더 가까이 전존재의 모든 영역, 곧 세포-조직-장부를 포함하여 우리 존재를 껴안아 하나되어 녹아계시며 살게 하시며 동행하시는> 여호와 삼마, 곧 임마누엘 하나님 이를 통해 이루실 바 하나님의 영원목적인 교회  곧 하늘의  새 예루살렘 새하늘과 새땅의 전망에 대한 분명-명료한 이상을 보고 그렇게 살기를 배우며 실행하는 삶에로의 진전 경험에로 나아갈 수 있게 됨....이는 지성소안의 증거궤는 <현재 완전체가 아니라  반쪽 상태로서 무한하신 하나님이 동사에 완전무결한 인성을 취하고 계심과 함께 나머지 반쪽을 이루는 것은 유한한 인간이 변화되어 점흠티주름 없는 JC 하나님 어린양의 거룩하심을 입어야 그리스도의 신부-어린양의 아내인 하늘의  새 예루살렘으로서 <새 하늘과 새 땅 이룬 땅에 내려와> 하나님의 원하시는 영원목적의 증거를 이루게 됨을 의미


@영적 거듭남[구주 십자가 믿고 죄를 회개함, 구주 이름 부름/의지함]이 최우선의 선결 요건--->고난 과정 거쳐 혼(지정의)조차 구속, 곧 영<구주 예수의 영이신, 내주하시는 성령과 연합한 영>에 순복하기를 배움--->생존/생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염려-본능적 두려움으로 인해 발동되는 천연적 영리함따라 영의 충만을 제한함의 경향조차 완전히 변화 시키실 것


===사라가 이삭을 낳다...아브라함의 본래 직무 복귀 후 브엘세바에서 출생한 것으로 보고 있음..(창20:15)  ::: <아비멜렉이>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브엘세바는 그랄에서 제일 가까운 샘터이다)


1.  [393 오신실하신주 274 나행한일죄뿐이라270변찮는주님의사랑과]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다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3-5세경]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이 때부터 시작하여서 출애굽 시점까지 (35+147)182년에 400년을 더한 기간 총582년 동안을 세상 이방인의 핍박 받은 기간의 그 시작 시점으로 계산함...  행13:16-19에서 상술하고 있는데 노예생활400년(요셉을 모르는 애굽왕 등장시점부터 출애굽까지), 광야생활40년+가나안정복전쟁10년, 총450년(가나안점령까지), 야곱의 애굽이주후부터 출애굽까지는 430년기간으로 계산한다.(갈3:17)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근심 있는 자 마땅히 주께 들으라....오직 지시하시는 레마의 말씀, 그 깨달음 그대로 따르라,  내게 맡겨두라 하시면 맡겨 드리라!..주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최선-최상 이루시리라...모든 것에 주님 신뢰하며 주님이 예정하신 때를 따라 순종하라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이 시점의 이삭은 그 생명이  아직 자라나는 중이라서 여호와 엘 오람 체험, 진정한 구속-부활생명 Q, 그분의 영원 목적에 대한 이상을 모리아 산의 숫양 희생 제사와 주께서 보이심 통해 보고 배워 알고 있지는 못했었으나 미리 [이삭에게서]라 하심으로써 누구나 십자가 대속의 영적 체험 통해 거듭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후손, 그리스도에게 속함을 말하고 계심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 구주 믿는 아브라함족속 통해 차후에는 주님 떠난 이방족속까지도 회복시키실 하나님의 의중 보이고 계심

14.  아브라함이 [어떻게 준비시켜서 보내야 할지조차 주의 지시하심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주목하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15.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브엘라해로이!!]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언약

...애굽은 타락 인해 사탄의 종노릇하는 혼적 세상을, 블레셋은 <식욕-성욕-수면욕-물욕-명예욕>의 5대 욕구를 기반으로 하는 생존-생계-종족 유지 자기보호 본능의 천연적 영리함을 의미, 현재는 타락과 오도됨 인해 통제불가능의 극악무도한 자해-자멸 위험 수준에 이르렀음...이 두 영역에 모두 구속하는 보혈의 능력이 전적으로 필요함,,,주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을 복으로서 명하셨음... 이 명하신 복은 <주님의 영원목적을 깨닫고 헌신하는> 영적 이스라엘을 기대하심인 바, 주님 친히 이루시겠으니 <믿는 너는. 오직 믿음으로 주 바라고 앙망하며 인도따라 동행, 교통하며  여쭘으로, 그 안에서 그분의 능하심따라 행하라> 하신 것임....삼상31장의 불행을 보라!!!


22.  [582 어둔밤마음에잠겨]○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임마누엘)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구속의 생명샘]에 에셀 나무[=영생의 나무, 지역교회]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엘 올람]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하나님을 경륜적으로(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믿음으로) 받아들인 Abr과 달리, 블레셋 사람들은 Q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인간의 영리함에 따라 (눈앞의 이익 위해) 천연적 방법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였음>...이 의미 차이를 늘 염두에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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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ac Is Born.21.

1 The Lord graciously remembered and visited Sarah as He had said, and the Lord did for her as He had promised. 

2 So Sarah conceived and gave birth to a son for Abraham in his old age, at the appointed time of which God had spoken to him. 

3 Abraham named his son Isaac (laughter), the son to whom Sarah gave birth. 

4 So Abraham circumcised his son Isaac when he was eight days old, just as God had commanded him. 

5 Abraham was a hundred years old when his son Isaac was born. 

6 Sarah said, “God has made me laugh; all who hear [about our good news] will laugh with me.” 

7 And she said, “Who would have said to Abraham that Sarah would nurse children? For I have given birth to a son by him in his old age.”

8 The child [Isaac] grew and was [a]weaned, and Abraham held a great feast on the day that Isaac was weaned.

===Sarah Turns against Hagar

9 Now [as time went on] Sarah saw [Ishmael] the son of Hagar the Egyptian, whom she had borne to Abraham, [b]mocking [Isaac]. 

10 Therefore she said to Abraham, “Drive out this maid and her son, for the son of this maid shall not be an heir with my son Isaac.” 

11 The situation [c]distressed Abraham greatly because of his son [Ishmael]. 

12 God said to Abraham, “Do not let it distress you because of Ishmael and your maid; whatever Sarah tells you, listen to her and do what she asks, for your descendants will be named through Isaac. 

13 And I will also make a nation of [Ishmael] the son of the maid, because he is your descendant.” 

14 So Abraham got up early in the morning and took bread and a skin of water and gave them to Hagar, putting them on her shoulder, and gave her the boy, and sent her [d]away. And she left [but lost her way] and wandered [aimlessly] in the Wilderness of Beersheba.

15 When the water in the skin was all gone, Hagar abandoned the boy under one of the bushes. 

16 Then she went and sat down opposite him, about a bowshot away, for she said, “Do not let me see the boy die.” And as she sat down opposite him, she raised her voice and wept. 

17 God heard the voice of the boy, and the angel of God called to Hagar from heaven and said to her, “What troubles you, Hagar? Do not be afraid, for God has heard the voice of the boy from where he is [resting]. 

18 Get up, help the boy up, and hold him by the hand, for I will make him a great nation.” 

19 Then God opened her eyes and she saw a well of water; and she went and filled the [empty] skin with water and gave the boy a drink.

20 God was with Ishmael, and he grew and developed; and he lived in the wilderness and became an [expert] archer. 

21 He lived in the wilderness of Paran; and his mother took a wife for him from the land of Egypt.

===Covenant with Abimelech

22 Now at that time Abimelech and Phicol, the commander of his army, said to Abraham, “God is with you in everything you do; 

23 so now, swear to me here by God that you will not deal unfairly with me [by breaking any agreements we have] or with my son or with my descendants, but as I have treated you with kindness, you shall do the same to me and to the land in which you have sojourned (temporarily lived).” 

24 And Abraham said, “I will swear.” 

25 Then Abraham complained to Abimelech about a well of water which the servants of Abimelech had [violently] seized [from him], 

26 Abimelech said, “I do not know who did this thing. Indeed, you did not tell me, and I did not hear of it until today.”

27 So Abraham took sheep and oxen and gave them to Abimelech, and the two men made a covenant (binding agreement). 

28 Then Abraham set apart seven ewe lambs of the flock, 

29 and Abimelech said to Abraham, “What is the meaning of these seven ewe lambs which you have set apart?” 

30 Abraham said, “You are to accept these seven ewe lambs from me as a witness for me, that I dug this well.” 

31 Therefore that place was called Beersheba (Well of the Oath or Well of the Seven), because there the two of them swore an oath. 

32 So they made a covenant at Beersheba; then Abimelech and Phicol, the commander of his army, got up and returned to the land of the Philistines. 

33 Abraham planted a tamarisk tree at Beersheba, and there he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in prayer], [e]the Eternal God. 

34 And Abraham lived [as a resident alien] in the land of the Philistines for [f]many days.

===Footnotes

Genesis 21:8 This was probably when the child was about three years of age. Samuel served in the sanctuary from the time that he was weaned (1 Sam 1:22-28), and a Hebrew mother is quoted in 2 Maccabees 7:27 as saying to her son that she nursed him for three years.

Genesis 21:9 Ishmael was old enough to know better than to ridicule or tease his much younger brother, and his behavior was inappropriate and thoughtless.

Genesis 21:11 Lit was very displeasing in the eyes of Abraham.

Genesis 21:14 Ishmael was born when Abraham was eighty-six years old (Gen 16:16), so Ishmael was about fourteen when Isaac was born, and about sixteen or seventeen years old when Isaac was weaned (Gen 21:8; 2 Chr 31:16).

Genesis 21:33 Heb El Olam. 

Genesis 21:34 I.e. an extended period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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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1장 (개요)

본 장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 이삭이 아브라함의 집에 태어난다(1-8).

2. 여종에게서 태어난 아들 이스마엘이 그 집에서 쫓겨난다(9-21).

3. 아브라함이 그 이웃 아비멜렉과 동맹을 맺는다(22-32).

4.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33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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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출생(창 21:1-8)

오랫동안 고대하던 일이 드디어 실현되었다. 약속하신 씨(자손)에 대한 비전이 예정된 시기가 되어, 이제 마침내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결코 거짓이 없다. 구약 인물 중에서 이삭처럼 그렇게 큰 기대 가운데 태어난 인물은 거의 없다. 그것은 이삭이 위대한 일을 성취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의 한 모형이 되어야 한다는 그 사실 때문이다. 이삭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약속하셨고, 경건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대망한 그 씨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삭의 탄생에 대한 서술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Ⅰ. 이삭을 잉태하고 출산하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1, 2절). 

하나님의 모든 섭리란,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비교할 때, 또 그 모든 섭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고 이르신 대로 역사하시는지 살펴볼 때, 가장 훌륭하고도 밝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1. 이삭은 약속에 따라서 태어났다.

여호와는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에 신실하시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의 버팀목이며 토대이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태어났다(2절). 하나님께서는 늘 시간을 지키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긍휼이 우리가 정한 때에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가장 좋은 때에 분명히 이루어진다.

2. 이삭은 약속에 의해 태어났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히 11:11). 

하나님께서 약속을 통해 사라에게 그 같은 힘을 주셨다. 이삭은 일반 섭리의 능력이 아니라, 특별 약속의 능력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는 말하자면 제2의(자연의) 원인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즉 아브라함도 늙었고 사라도 늙었으니, 이 두 사람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발생한 것이다. 참으로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힘입어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로써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기”(벧후 1:4) 때문이다.

Ⅱ. 이삭에 관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계율을 아브라함은 복종했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3절). 

하나님께서는 기념으로 이삭 곧 웃음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을 짓도록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셨다. 

자식에게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아브라함은, 뜻이 더 화려한 다른 이름을 미리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이름을 자식에게 주었다. 인간이 고안한 화려함은 언제나 하나님의 제도의 주권과 분명함을 따라가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나 그런 이름을 지어 준 이유가 있었다.

(1) 아브라함이 아들에 대한 약속을 들었을 때, 기쁨에 넘쳐 웃었기 때문이다(17:17). 

위로의 태양이 영혼 위에 떠올랐을 때, 그 새벽을 우리가 얼마나 반가이 맞이했으며, 그 약속에 접한 우리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회상해 보는 것이 좋다.

(2) 사라가 그 약속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는 그 말씀을 믿을 수 없어서 웃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단념해 버리기 시작한 자비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고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권능과 약속을 불신하는 죄를 범한 것을 기억하고 통회하며 부끄러워해야 한다.

(3) 이삭 자신도 후일에 이스라엘에게 웃음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9절). 

아마도 그 이름 자체가 그 같은 일을 각오하라고 말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흔하다.

(4) 이삭이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상속받을 약속은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들의 즐거움이며, 그 약속은 언제나 저들의 입에 웃음이 가득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할례를 행했다(4절). 

이삭에게는 언약이 주어져 있으므로, 이제 그에게 그 언약의 인(印)이 찍힌 것이다. 

그것이 비록 피를 흘리는 규례였고, 이삭은 지극히 사랑하는 자식이었지만, 그 규례는 생략할 수 없었다. 8일을 넘겨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정하신 때에 조금도 어김없이 약속을 실현하셨으므로 아브라함도 시간을 지켜서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했다.

Ⅲ. 하나님의 이런 자비는 사라에게 감명을 주었다.

1. 그 자비는 사라로 하여금 기쁨이 충만케 했다(6절).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내게 기뻐할 명분과 마음을 주셨다.” 

우리 주님의 어머니도 그러했다(눅 1:46, 47).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마음에 새기자.

(1)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사, 기쁨으로 하나님의 일과 사업을 할 용기를 주신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든지, 우리의 기쁨이 “우매자의 웃음소리”(전 7:6)가 아닌 한, 그 웃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2) 하나님의 자비가 오랫동안 지연되었다가 다시 베풀어지는 때에는 더욱 기쁨으로 맞아들이게 된다.

(3) 어떤 자비든, 우리와 함께 즐거워하는 우리의 친구들도 그 자비의 위로를 받게 된다.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6절). 

웃음은 전염되기 때문이다(눅 1:58 참조). 하나님의 권능과 인자하심이 나타나는 이런 실례를 통해 다른 모든 사람들도 함께 즐거워하게 되며,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다(시 119:74 참조).

2. 그 자비는 사라로 하여금 놀라움으로 가득 차게 했다(7절). 여기에서는 이런 사실을 관찰할 수가 있다.

(1) 사라가 그토록 놀라워한 것이 무엇인가?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는 것, 즉 사라가 아이를 낳을 뿐 아니라, 그 나이에 아이에게 젖을 줄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강건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머니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아이들에게 자기 젖을 먹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사라는 좋은 집안의 부인이었고, 나이도 많았다. 사라가 자식에게 젖을 먹인다는 것은 사라 자신에게나 아기에게, 또는 두 사람 모두에게 안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사라는 틀림없이 자기 집안에서 유모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라는 아기를 양육할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선을 행하는” 착한 부인들은 모두 사라의 딸이라고 불린다(벧전 3:5, 6; 애 4:3 참조).

(2) 사라는 자기의 놀라움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누가 말했으리요.” 

그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 외의 어느 누가 그런 말을 했더라면, 우리는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총은, 그 백성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기대를 초월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아무런 보상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들에게, 아니 오히려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처럼 많은 일을 해 주신다는 사실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엡 3:20; 삼하 7:18, 19 참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보내셔야 한다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그 분의 성령을 보내셔야 한다고, 우리를 섬기도록 그 분의 천사를 보내셔야 한다고 누가 감히 말하겠는가? 그처럼 엄청난 죄를 용서해야 한다고, 그처럼 초라한 예배를 용납하셔야 한다고, 그처럼 벌레와 같이 아무 가치 없는 자들이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친밀한 교제에 들어가게 해야 한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었겠는가?

Ⅳ. 이삭의 유년기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되었다. “아이가 자랐다”(8절).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약속의 자녀들도 성장하는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리기 위해, 이 곳에서는 특별히 주의를 환기시킨다(눅 1:80; 2:40 참조). 

하나님의 섭리로 태어난 사람들은 자라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점점 자라게 된다(골 2:19). 이삭이 젖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또 이제는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자, 사라는 이삭의 젖을 떼었다(히 5:13, 14 참조).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에게 베푸신 자비에 감사해 친구들과 이웃들을 초대해 큰 잔치를 열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태어난 날에는 잔치를 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더라면 사라에게는 큰 번거로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할례를 받은 날에 하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할례 의식이 너무 어수선해졌을 것이다. 젖을 떼는 날 잔치를 베푼 것은, 젖 먹는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고 유아기의 위험을 지나도록 보호해 주시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섭리가 보여 주신 보호와 사랑의 가장 뚜렷한 예증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찬양하여 감사해야 한다(시 22:9; 호 10: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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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이스마엘(창 21:9-13)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문제가 숙고되고 결행된다.

Ⅰ. 이스마엘이 자기의 어린 동생 이삭에게 행한 무례한 짓이 그 일의 원인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삭이 젖을 떼자 아브라함이 기뻐하며 잔치를 베푼 그 날에 이스마엘이 무례한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에 의하면 젖은 세 살 혹은 다섯 살에 떼었다고 한다

이삭이 모욕을 당하는 것을 사라 자신이 목격했다. “사라가 본즉 애굽 여인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9절). 

참조 구절을 보면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했다”고 했다(갈 4:29). 여기에서 이스마엘은 “애굽 여인의 소생”이라고 불린다.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아브라함 자손들에 대한 애굽인들의 400년간 박해는 이 때부터 시작된 것이며, 이 때부터 그 연한을 계산하기 때문이다(15:13). 

70인역에는 사라가 이스마엘이 이삭을 “갖고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놀면서 이스마엘은 “이삭을 희롱한” 것이다.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4세 위다. 어린아이들이 함께 놀 때면 나이 많은 아이가 나이가 적은 아이를 따뜻하게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어떤 면에서도 도저히 적수가 될 수 없는 어린아이를 괴롭힌 이스마엘의 비열하고 천박한 성품을 볼 수 있다. 다음 사실을 유념하자.

1. 하나님은 어린아이들이 놀면서 말하고 행하는 바를 일일이 주시하고 계신다. 

그리하여 부모들이 주시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어린아이들의 잘못된 언행을 모두 헤아리고 계신 것이다.

2. 조롱하는 것은 큰 죄며, 하나님을 매우 진노케 하는 일이다.

3. 뱀의 자손들과 여인의 자손들 사이에는 뿌리깊은 적의가 늘 있다. 

약속의 자녀들은 조롱받으리라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거룩하게 살려는 사람이 고려해야 하는 박해다.

4. 그럴 만하기 전에는 하나님은 아무도 거절하거나 쫓아내지 않으신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 집안의 불안이자 슬픔이자 걸림돌이 되기 전에는 줄곧 그 가정에 함께 있었다.

Ⅱ. 사라가 그 일을 추진했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10절). 

어떻게 보면 이 말은 사라가 화가 나서 한 말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후의 기록은, 사라가 예언의 영에 의해 말한 것처럼 인용한다(갈 4:30). 

이것은 눈에 보이는 교회에 자기의 자리와 이름을 두고 있지만 (제멋대로이고 육을 따라 행하며) 위선적이고 탐욕스런 모든 사람들에게 선언한 말씀이기도 하다. 

육을 따라 태어난 사람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 율법 아래 머물러 있으면서 복음의 약속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모두 반드시 쫓겨난다. 

이것은 특별히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도 복음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서 쫓겨나고, 특권을 빼앗긴 자들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저들을 쫓아내신 것은, 아직 어린 복음의 교회 곧 하나님의 이삭을 희롱하고 박해했기 때문이다(살전 2:16).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친밀하게 교제하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의 유업에는 참여하지 못할 자들이 많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스마엘도 이삭의 놀이 친구나 학교 친구는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상속의 친구는 아니었다.

Ⅲ. 아브라함은 사라의 제의에 반대했다. “아브라함이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다”(11절).

1. 그는 이스마엘이 그와 같은 분노를 유발했다는 사실이 슬펐다. 

자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자녀들의 과오와 특히 자녀들간의 다툼을 부모들이 더욱 깊이 슬퍼한다는 것을 자녀들은 알아야 한다.

2. 또한 사라가 그런 처벌을 주장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슬펐다. 

이스마엘을 바로잡아 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것보다 더 가벼운 징벌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인가? 

바로 잡히지 않는 악한 자녀들에게 최후로 어쩔 수 없이 내리는 벌이라고 해도, 어버이에게는 더할 수 없는 큰 슬픔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Ⅳ. 이스마엘의 추방을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12, 13절). 

사라를 불쾌하게 하기도 싫고, 이스마엘을 내쫓기도 싫은 아브라함에게 심한 마음의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밝히셨고, 결국 아브라함도 마음이 흡족하게 되었다. 

선한 사람은 사리가 분명하지 못한 경우에는, 자기의 의무, 곧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행하기를 바라시는 일을 알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가 할 일과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지면 그는 평안을 얻으며, 또 그것으로 평안을 얻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이와 같은 것을 분명히 깨닫도록,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의 참된 의미를 밝혀 주셨다.

1. 이삭이 언약의 권리와 특권을 누리게 하려면 이스마엘을 내쫓아야 했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12절). 

그리스도와 교회는 모두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야 한다. 이런 사실은 이삭에게 주신 약속의 상속이다. 

그래서 후에 바울 사도는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자손이라고 해서 모두 아브라함의 언약의 상속자는 아님을 보여 주는 데, 이 구절을 인용했다(롬 9:7). 

약속에 의해서 태어난 아들 이삭이 약속된 자손의 조상이 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을 쫓아내라. 이삭의 태도를 타락시키지 못하게 하고, 이삭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게 이스마엘을 아주 멀리 보내라”고 한 것이다.

경쟁자를 쫓아 보내는 것이 이삭에게 안전할 것이다. 아브라함의 언약의 씨는 처음부터 언약 밖에 있던 사람들과 섞이지 않은, 스스로 구별한 특별한 백성이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스마엘을 떼어놓아야 했다.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부름” 받았듯이, 이삭도 그러해야 했다(사 51:2 참조...십자가 고난/죽음-부활 경험이 반드시 필요!). 

사라는 이 사실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요 11:5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이야기한 것을 취하셔서 그것이 후일에 대한 예언이 되게 하셨다.

2. 이스마엘을 쫓아낸 일이 곧 이스마엘의 파멸은 아니었다(13절). 이스마엘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의 영원한 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장차 고난 거쳐 회개케 하신 후 회복시키시리라!!)

하나님의 언약의 외적 섭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비하심에서 제외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억측이다. 그런 영광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 

그의 파멸이 현세적 파멸(temporal ruin)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교회에서는 쫓겨났지만, “세상에서 쫓겨난”(욥 18:18)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다음 사실에 주목하자.

(1) 민족은 하나님께서 형성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세우고 형성하고 조정하신다.

(2) 하나님의 섭리가 주는 축복은 충만히 받으나, 그 분의 언약의 축복에 대해서는 이방인인 자들이 많다.

(3) 세상 자녀들은 현세적인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자녀들과의 관계 덕분에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더 잘 살아가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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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하갈과 이스마엘(창 21:14-21)

Ⅰ. 여종과 그의 아들이 아브라함의 가정으로부터 쫓겨났다(14절). 

이 문제에 관해 하나님이 내리신 명령에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했다. “아침에 일찍이” 실행했다. 아브라함이 밤에 환상 속에서 이 명령을 받고 나서 즉각 실행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유순한 복종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판단, 아니 적어도 아브라함이 하고 싶은 것과는 정반대인 것을 명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아브라함은 전혀 반대하지 않고, 마치 묵종의 훈련을 쌓은 사람처럼 명령하신 바를 묵묵히 그대로 행했다. 그들을 보낼 때 아무도 딸려 보내지 않았고, 걸어가게 하고, 음식도 충분히 마련해 주지 않은 것도 아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신 대로 순종한 것일 것이다. 만약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살면서 그 품행이 단정했다면, 계속 그 집에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과 무례 때문에 쫓겨난 것이기에 그 추방은 정당한 것이었다. 특권을 남용하면 그 특권을 빼앗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브라함의 집과 같은 이상적인 곳에서 살면서도 자기들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거기서 쫓겨나야 한다. 그 보금자리를 잃음으로써 비로소 그들은 자비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Ⅱ. 하갈과 이스마엘이 광야에서 방황했다.

1. 그 곳에서 그들은 심한 어려움에 빠졌다. 양식도 다 떨어지고 이스마엘은 병이 들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집에서는 늘 배불리 먹고 살이 쪘으나 이제 생활의 여유가 없어지자 곧 기진맥진하고 쇠약하게 되었다. 하갈은 슬프고, 괴로움에 지쳐 버렸다. 이제 하갈은 그가 늘 버렸고 또 가벼이 여기던,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아쉬워했다. 그녀는 노예정신의 힘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구제책이 없다고 절망하면서 “자식의 죽는 것”(15, 16절)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하갈에게 이스마엘이 장차 어른이 되어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바도 있는 터였다. 기분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의 현재 섭리가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약속과 모순된다고 느낄 때, 그 약속을 잊어버리기 쉽다.

2. 이 어려운 처지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구하시러 자비스럽게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17절). 성경에서는 이스마엘이 무엇을 말했는지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한숨과 탄식과 비참한 처지가 자비로우신 분의 귓전에 큰 부르짖음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갈을 위로하시려고 천사를 보내셨다. 하갈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와 비슷한 지난번 경우에 하나님께서 친절하게 찾아오신 일은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했었다(16:13).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가장 적절한 시기에 구원병을 보내시어 하갈을 찾아오신 것이다.

(1) 천사는 하나님께서 하갈의 어려움을 아신다는 것을 확신시켰다.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이스마엘이 광야에 있었는데도 그의 소리를 들으신 것이다(무릇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거기에는 하늘을 향해 열린 길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18절) 했다. 우리가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기다리시지만, 그 사실이 우리 자신을 구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촉구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2) 천사는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즉 그가 “큰 민족”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반복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하갈은 아들을 살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이나 젊은이들을 위해 계획하시고, 그들을 통해 이루려고 하시는 놀라운 섭리를 생각하면서 그들을 돌보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3) 하나님은 하갈에게 현재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신다(19절).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하갈의 눈은 슬픔 때문에 충혈되어 있었고, 눈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샘물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비탄 속에서 세월을 보내면서 위로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위로를 얻지 못해서가 아니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사유가 자기들 생활에 이미 깃들여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다. 그들 주변에는 이미 은총의 언약으로 주신 샘물이 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자기들의 눈을 밝히셔서 상처를 보게 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 다시 한 번 눈을 밝히셔서 그 상처가 완전히 치료된 모습을 보게 하실 때에야 비로소 그 샘물의 혜택을 받게 된다(요 16:6, 7). 바울 사도는 하갈과 이스마엘에 관한 일들은 비유(ajllhgorevw, 갈 4:24)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 이야기들은 비유로 설명해야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어리석음을 밝혀 낼 수 있다.

① 믿지 않는 유대인들처럼 의로움을 율법이나 그 율법의 육적인 규례에서 얻으려 할 뿐,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약속에 의해서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을 결핍과 절망이라는 광야로 몰아낸다. 그들의 즐거움은 곧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죄를 사하시어 그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눈을 밝히시는 자비의 기적을 베푸시며, 잘못을 깨우쳐 주지 않으시면, 그들은 멸망할 수밖에 없다.

② 이 세상과 세상적인 일에서 만족과 행복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이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과 교제에서 얻는 기쁨을 저버리고 이 세상에 있는 자기 몫을 취하면서 물 한 병, 넉넉지 않은 초라한 음식에 열중한다. 그나마도 얻고 나면 곧 바닥이 난다. 그리하여 그들은 만족을 찾아 끊임없이 방랑하게 되며, 마침내 아무것에도 만족하지 못한 채 주저앉게 되는 것이다.

Ⅲ. 이스마엘은 드디어 바란이라는 광야에 정착했다(20, 21절). 거친 장소였으니, 거친 사람에게는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 이스마엘은 정말로 그렇게 거친 사람이었다(6:12). 육을 따라 난 사람들은 이 세상이라는 광야에 집착한다. 그러나 약속의 자녀들은 하늘의 가나안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이 세상에서 안주할 수 없다. 몇 가지 사실에 주목하자.

1.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몇 가지 증거를 받았다.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셨다.” 이스마엘의 현세적인 번영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2. 이스마엘을 활 쏘는 사람이라고 한 것은, 그가 궁술이 뛰어났고 사냥으로 먹고 살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버림받은 에서도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3. 이스마엘은 어머니의 친척 중에서 아내를 택했다. 어머니 하갈은 애굽 사람 중에서 한 여인을 택해, 자기 아들이 아내로 삼게 했다. 활 쏘는 솜씨가 훌륭했던 이스마엘은 결혼에 있어서 어머니의 충고와 동의를 따르지 않는다면, 표적을 잘 겨냥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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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의 계약(창 21:22-32)

여기에는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사이에 체결한 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사실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유명하게)” 하시겠다는 약속(12:2)이 성취된 것을 알 수 있다. 가나안 사람이나 브리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비록 이방인이고 아무 땅에서나 자기 마음대로 거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의 우정만은 귀하게 인정하고 존중했다.

Ⅰ. 아비멜렉과 그의 국무총리이며 군대의 장관인 비골이 동맹을 제안했다.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편에 서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제안을 한 것이다(22절).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우리는 이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 분의 섭리 가운데 당신 백성들에게 선한 은총의 표징을 보여 주시어, 그 이웃들이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하신다(시 86:17).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는 모든 사업이 눈에 띄게 번창하고, 하는 일들이 현저히 성공함으로써,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계시다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다.

(2)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사람과 우호 관계에 있는 것, 하늘과 관계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선한 일이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슥 8:23). 하나님과 친교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사귐을 갖는 것은 자신에게도 유익한 일이다(요일 1:3).

2.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 동맹의 취지는 두 민족 간의 확고하고 변함없는 친교를 다짐하며 어떤 경우에도 그 계약은 침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친교의 동맹은 맹세라는 계약으로 더 굳건히 해야 한다. 이 때 맹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맹세의 진실함의 증인이면서 동시에 어느 한 편이 맹세를 어기는 경우 복수하시는 분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를 한다(23절).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1) 아비멜렉은 이 맹약의 효력이 모든 자기 후손과 백성에게 미치기를 바란다. 자기 아들과 손자와 그의 나라가 이 동맹의 혜택을 받기를 원한 것이다. 

선한 사람은 자기들 자신뿐 아니라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과 동맹과 교제를 늘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2) 아비멜렉은 자기가 아브라함에게 베푼 후대를 상기시킨다. “내가 너에게 후대한 대로”라고 했다. 친절을 받았으면 그것을 갚아야 한다. 

또한 남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이라야 남이 자기에게 베풀 친절을 기대할 수 있다.

Ⅱ. 아브라함은 우물에 대한 세부 조항을 첨가하면서 이 맹약에 동의했다. 이 맹약의 상호 관계 중에서 아브라함 편을 살펴보면 이런 사실들을 관찰할 수 있다.

1.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이 명예를 존중하고 양심을 지키는 사람임을 알았고, 또 자기가 보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맹약에 기꺼이 응했다. “내가 맹세하리라”(24절).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종교는 사람을 까다롭게 하거나 많은 사람과 사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며, 결코 그래서도 안 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나쁜 친구들을 피해야 한다는 구실로 모든 친구들을 싫어하거나 질시해서는 안 된다.

(2) 마음이 정직한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약속을 하기를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아비멜렉에게 약속을 충실히 지키겠다고 말했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가 말한 대로 맹세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맹세는 이미 마음으로 결정한 것을 확인하는 의식일 뿐이다.

2.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자기와 다툰 우물의 사건을 현명하게 해결했다. 우물은 그 지방에서 귀한 재산이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 우물이 그처럼 부족하지 않고 많은 것도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1) 아브라함은 퍽 부드럽게 이 사실을 아비멜렉에게 이야기했다(25절). 

우리의 형제가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부드럽고 지혜롭게 그의 잘못을 이야기해 주어, 그 문제가 잘 해결되고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마 18:15).

(2) 아브라함은 이 사건에 대한 아비멜렉의 변명을 잠자코 받아들였다.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26절).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부정하지나 않는지 혹은 불친절한 사람이나 아닌지 하고 의심을 받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이면 우리는 그들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종들의 잘못을 그 주인이 알고 있거나 옳다고 두둔하지 않는 이상 그 책임을 주인들에게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잘못을 알고 나서 즉시 돌이킨다면, 더는 바랄 게 없다. 그는 정직한 사람인 것이다.

(3) 아브라함은 장차 어떤 논쟁이나 다툼이 이 우물 때문에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우물의 소유권이 자기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확인했다(30절). 

그렇게 하여 전후 사정이 영원히 기억되게(in perpetuam) 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요, 또 정당한 일이다.

3. 아브라함은 아주 훌륭하고 적절한 선물을 아비멜렉에게 주었다(27절). 

그가 준 것은 진기하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라 가치 있고 유용한 것, 즉 “양과 소”였다. 그것은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베푼 친절에 대한 감사의 표요, 그들 사이의 두터운 우정을 증거한 것이었다. 서로 호의를 베풀면 사랑을 더해 가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내 것이 곧 내 친구의 것이라고 하는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4. 아브라함은 맹세를 함으로써 아비멜렉과 한 약속을 조인했다. 

그리고 그 장소를 브엘세바, 즉 맹세의 우물이라고 이름 붙임으로써 그 맹약을 증거하는 기록으로 삼았다. 이것은 저들의 계약을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또 그 우물은 일곱의 우물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이 우물을 자기가 판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일곱 마리의 양을 준 것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일단 맺은 약정은 꼭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그 약정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며, 우리가 실수로 약속을 파기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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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창 21:33-34)

Ⅰ. 아브라함은 좋은 이웃을 사귀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상당한 기간을 계속 머물렀다. 그러나 언제 헤어지는 것이 좋은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브엘세바에서 자기가 거하는 천막을 가리는 그늘을 만들 나무를 심었다. 어쩌면 열매가 열리는 나무들을 심어 과수원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평생 낯선 이방인으로 혹은 순례자로 살게 하고자 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정착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러 날을 머물렀다. 그 기간은 히브리인이나 나그네로서 아브라함의 특성에 맞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여러 의식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신앙을 공언하기도 했다.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아마 아브라함은 자기가 심은 나무들 밑, 즉 그의 기도처요 작은 예배 장소이던 그 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작은 산, 곧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1. 아브라함은 이웃들이 자주 가는 곳에서 언제나 공개적으로 예배했다. 그 이웃들도 그와 함께 예배했을 것이다. 

선한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네들의 선함을 늘 지닐 뿐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 선을 전파해서 다른 사람들도 착한 사람이 되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여호와를 부를 때, 우리는 언제나 그 분이 “영생하시는 하나님”, “이 세상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계약을 하심으로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셨으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만유의 주시라는 영광 돌리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영생하는 하나님”이신 그 분은 온 세상이 있기 이전에 이미 계셨고, 모든 시간과 날들이 더는 있지 않을 미래에도 계실 분이다(사 40:2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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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이삭과 이스마엘

===1-21절,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쫓겨남

본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주신 일과 여종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내보내게 된 일을 기록한다.

[1-2절]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眷顧)하셨고[돌아보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25년 전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가 살던 하란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해 복을 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창 12:2-3). 

또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께서는 오는 봄 정한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창 17:21; 18:10, 14).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고 택하신 자, 곧 그를 경외하는 아브라함에게 복된 약속을 주셨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가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아보셨고 그가 약속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 사라는 임신했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셨고 그 약속의 말씀도 신실했다.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인류에게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에 기록된 그의 모든 약속과 말씀은 신실한 말씀이다.

[3-5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8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100세라.

아브라함은 사라가 그에게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으라고 하신 이름이었다(창 17:19). 

이삭(이츠카크 )은 ‘그가 웃는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난지 8일째 되는 날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그에게 할례를 행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창 17:10, 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며 그의 뜻에 순종하는 자이었다. 

이삭이 출생했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이었다. 

2절은 아브라함을 ‘늙은 아브라함’으로 말하고, 7절은 이삭을 ‘아브라함 노경에’ 얻은 아들로 말한다. 원문은 같다. 100세된 노인이 아들을 얻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창세기 17:17은 사라의 나이가 90세라고 말하며 또 창세기 18:11은 사라의 경수(經水)[월경]가 끊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얻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능력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셨었다(창 18:14).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다.

[6-7절]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사라는 이삭을 출산 한 후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셨다’고 말했다. 그의 웃음은 기쁨과 행복이 넘친 웃음이었다. 

늙은 자신들을 통하여 아들이 출산된 것은 참으로 자신들 뿐만 아니라 그 소식을 듣는 모든 친지와 이웃도 함께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아브라함에게 감히 말할 자가 없었으나 그는 아브라함 노경에 아들을 낳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었다.

[8-9절]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大宴)[큰 잔치]을 배설하였더라.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아이는 잘 자랐고 젖을 떼는 때가 되었다. 그것은 보통 3살쯤이라고 추측된다.

<36) 마카비하 7:27에는 대개 한 여인이 자기 아들을  3년 동안 젖을 먹였다는 말이 나온다.>

어린아이가 병약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것은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려는 잔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사라가 보았다. 그때 이스마엘의 나이는 17살쯤이며 조심할 만한 나이이었다. 한 집에 배가 다른 두 형제가 사니 이런 일은 예상할 만한 일이었고, 하갈이 좀더 생각이 있었다면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엄히 교훈하고 단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것 같고, 사라는 그 일로 마음이 몹시 상하였다.

[10-11절]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그 아들 때문에]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고 말했다. 사라의 감정은 일반 여인들의 감정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의 요청을 들은 아브라함은 아들 이스마엘로 인해 심히 근심했다. 아들까지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큰 근심의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그것은 하갈을 첩으로 얻었을 때부터 예상된 문제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부족에서 왔고 한 집에 같이 살면서 해결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이었다. 

사라와 하갈은 서로 헤어지는 것이 지혜로워보였다. 이스마엘도, 하갈도, 사라도 완전한 인격은 못되었다.

[12-13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의 문제로 고민하는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입을 것이지만, 사라에게서 난 이삭만이 아브라함의 계보를 잇는 기업 상속자가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삭을 위해, 이삭을 위주로 섭리하실 것이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또 그를 믿는 자들의 예표이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자들이다(요 1:12). 또 로마서 8:28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증거하였다.

[14-16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가죽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였다. 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해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 그와 그 아들 이스마엘을 내보냈다(후에 재물을 주었다고 보임, 창 25:6). 그의 가정의 갈등을 해소하는 지혜로운 길은 그들을 내보내는 것이었다. 

여기에 인간의 연약함이 있다. 이것은 어느 한 사람의 부족 때문만이 아니었다. 하갈도, 이스마엘도, 사라도 다 부족하였다.

하갈은 아들과 함께 나가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였다. 브엘세바는 유다 땅의 맨 남쪽에 있고 남방(네게브) 지역에 속했다. 

가죽부대의 물이 다하자, 하갈은 그 아들을 한 떨기나무(관목; 줄기와 가지가 분명치 않은 나무) 아래 두고 살 한 바탕쯤 떨어져 아들 이스마엘을 마주 앉아 바라보며 크게 울었다. ‘살 한 바탕’의 거리는 몇 십 미터쯤 될 것이다. 하갈의 눈물은 자신과 아들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그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울음소리에 아들 이스마엘도 울었다.

[17-21절]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거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셨다. ‘아이’라는 원어(나아르 )는 ‘소년, 청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늘로부터 하갈을 불렀고 하나님께서 그 아이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또 그의 눈을 밝히시므로, 하갈은 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아들에게 마시웠다.

이스마엘은 비록 이삭과 함께 살 수 없는 처지이었지만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불안하고 두려운 광야에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아브라함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또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과도 함께하셨다. 

이스마엘은 커서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육신적으로 선택된 백성이 아닌 자들을 대표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자비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12만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고 말씀하셨다(욘 4:11). 주께서는 하나님께서 햇볕과 비를 모든 사람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 5:45).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으신다고 말했다(행 10:35).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세상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구원받을 자들이 있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신 약속대로 행하시는 자이시다. 

1절,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돌아보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얻게 하셨다. 구주 예수님을 믿은 우리는 구원의 복을 얻었다.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다. 그것은 주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천국과 영생이다. 우리는 요한과 함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부활과 천국과 영생을 사모하자.

둘째로, 아브라함의 깊은 근심은 자신과 사라의 부족 때문에 온 것이었다. 

그들은 좀더 참고 기다려야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 방법으로 이루어보려 하였다. 그 결과 그들의 가정에는 갈등이 생겼고 그것은 그의 깊은 근심이 되었다. 그 갈등과 근심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우리는 그런 부족을 조심하자.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에게도 너그러우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이스마엘을 통해 한 큰 민족을 이루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그의 손자 야곱의 자손들인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너그러우셨다. 그는 만세 전에 영생에 이르도록 구원하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영혼들을 택하셨다. 우리도 그들 중에 속했다. 

시편 22:27-28,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이사야 45:22,“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뜻을 감사하자.

===22-34절,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음

본문은 그랄 왕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이 서로 언약을 맺은 이야기이다. 이것은 평범한 사건처럼 보인다. 이 평범하게 보이는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을 살펴보자.

[22-24절]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낸 때 즈음에, 그랄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하였다.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계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경건한 아브라함에 대한 이방인의 놀라운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그랄 왕인 이방인 아비멜렉까지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계심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하심이 이방인들에게도 증거된 것이다!

또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고 말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서로 해치지 않기를 맹세하는 언약을 맺자고 제안한 것이다. 

환경적으로 불안하였을 아브라함에게 이런 언약은 더 나은 안정을 줄 수 있는 기회라고 보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아비멜렉의 요청에 응하였다.

역사상 신앙의 열조들은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체험하였고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증거하였다. 아브라함이 그러하였다. 그의 아들 이삭도 그러했다. 창세기 26:28에 보면, 그랄 왕 아비멜렉은 그에게 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고 말했다. 

요셉도 그러하였다. 창세기 39:3에 보면, 그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 생활하고 있었을 때, 그 주인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하나님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다. 

다니엘도 그러했다. 다니엘 4:8에 보면,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서도 느부갓네살 왕은 그의 안에 거룩한 신의 영이 있다고 증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하셨다.

[25-31절]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빼앗은]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비멜렉이 가로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그리고]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뇨?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아브라함은 그때 아비멜렉의 종들이 자기가 판 우물을 빼앗은 일에 대해 말하며 그를 책망하였고 아비멜렉은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고 해명했다. 아브라함은 양들과 소들을 취하여 그에게 주었고 서로 언약을 맺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양들과 소들을 준 것은 자기가 판 우물을 돌려줄 그의 호의에 대한 보상이었다고 보인다. 또 아브라함은 암양 새끼 일곱을 따로 구별하여 그에게 주었다. 아브라함은 그것이 자신이 그 우물을 팠다는 것을 증거하는 표라고 그에게 말했다. 아브라함은 그곳을 브엘세바( ) 곧 ‘맹세의 우물’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그 두 사람이 거기서 맹세하며 서로 언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범사에 정당하고 너그럽게 처신하려고 애썼다. 그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상대에게 지적하고 책망하기도 하였으나 양들과 소들, 그리고 일곱 암양 새끼들을 선물로 줌으로써 상대방이 베풀 호의와 우정에 대해 미리 감사를 표하기도 하였다. 의와 선과 진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필수적 덕목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하였다(엡 5:8-9).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벌려 해서는 안 된다. 

잠언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잠 16:8). 

또 집사의 자격에는 더러운 이(利)를 탐하지 않는 것이 포함된다(딤전 3:8).

성경은 우리에게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그에게 선을 베풀라고 교훈한다. 

주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고 하셨다(마 5:44-45). 

사도 바울도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했다(롬 12:17, 20-21). 

그러나 이런 말씀은 개인적으로 원수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함을 보이는 것이고 국가 간의 정당방위적 전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32-34절]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은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웠고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는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다.

‘에셀나무’라는 원어( )는 ‘타마리스크 나무’(또는 위성류)라고 하는데, 사막 지대에서 자라는, 분홍색 꽃이 피는 작은 나무라고 한다. 또 아브라함은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원어(엘 올람 )는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천지만물은 그가 창조하신 것이다. 그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셨다(창 1:1). 그러므로 모세는 시편 90:1-2에서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신 영원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된 경건이며, 그 하나님 안에 영생의 길이 있다. 천지만물은 인류 역사 6,000년을 지나면서 낡고 쇠하여지고 있다.

시편 102편에는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如常)하시고[언제나 동일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라고 말하였다(시 102:26-27). 성경은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다(전 1:2).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벧전 1:24-25). 그러므로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썩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요 6:27).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낡아지고 쇠해지고 썩지만, 오직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며 그의 말씀도 영원하고 불변하다(사 40:8; 벧전 1:25).

창세기 21장의 평범하게 보이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 귀한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영생하시는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전부터 계신 자이시다. 천지 창조 이전은 영원 세계이다. 주께서는 요한계시록에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하셨다(계 22:12).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라고 썼다(요일 2:13). 한분이신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구원이며 영생이다(요 17:3). 우리는 그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섬기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자가 되자. 

그랄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증거하였다. 후에 요셉이 그러했고 다윗도 그러했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그러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체험하며 살 뿐 아니라, 우리의 주위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느끼며 심지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도 증거가 되기를 원한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경건하게 살고 그의 계명대로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특히 선하고 너그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그랄 사람들이 우물을 빼앗았으나 그들과 다투지 않았다. 그는 양들과 소들과 일곱 암양 새끼를 아비멜렉에게 주었다. 그것은 그들의 감정을 부드럽게 하는 행동이었다고 보인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본래 선한 자로 창조되었으나 범죄한 후 악한 자가 되었다. 아모스 5:14,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깨끗하게 하신 것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딛 2:14). 천국과 영생의 구원을 받은 자는 세상에서도 선한 삶을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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