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파일로리(H. pylori)는 나선형의 그람음성균으로 세계 인구의 50%가 위장 안에 H. pylori를 보유하고 있다. H. pylori는 위점막의 만성 염증과 위궤양을 초래하며, 선암종(denocarcinoma)과 점막관련 림프조직(MALT: mucosa-associated lymphoid tissue)의 림프종을 초래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WHO 산하 국제 암연구소(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 )는 H. pylori를 1급 발암요인 중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H. pylori가 심장 및 뇌혈관 질환, 자가면역질환, 영양 및 대사질환, 혈액질환, 피부질환의 발병과정에도 관여한다는 보고서들이 발표된 바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H. pylori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H. pylori를 제거하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은 2~3개의 항생제(예: 아목시실린, 클래리스로마이신, 메트로니다졸 또는 테트라사이클린)을 수소펌프저해제(PPI)나 비스무스제제와 함께 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광범위한 항생제의 사용으로 인하여 내성균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H. pylori 제균요법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중국 베이징대학의 연구진은 World Journal of Gastroenterology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아스피린이 H. pylori의 항생제 감수성을 증가시키는 메커니즘을 밝혀냈다고 발표하였다.
선행연구에서는 살리실레이트(salicylate)가 일부 세균(Escherichia coli, Klebsiella pneumoniae, Pseudomonas aeruginosa, Staphylococcus epidermidis)의 증식을 억제하고, 섬모/편모의 활동과 바이오필름 및 점액의 생성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세균의 병원성을 변화시킨다고 보고된 바 있다. 살리실레이트가 일부 항생제에 대한 세균의 감수성을 변화시킨다는 in vitro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진은 선행연구에서, 아스피린이 H. pylori 의 증식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메트로니다졸, 클래리스로마이신, 아목시실린의 MIC(최소억제농도)를 감소시키며, 심지어 일부 저항성 세균을 감수성 세균으로 전환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따라서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는, 아스피린이 H. pylori의 메트로니다졸에 대한 감수성을 증가시키는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항생제에 대한 세균의 내성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은 네 가지가 있는데, 효소에 의한 불활성화(enzymatic inactivation), 세균막의 투과성 감소(decreased permeability of bacterial membranes), 항생제의 능동적 배출(active efflux of antimicrobial agents), 항생제 표적부위의 변화(alteration f target sites of antimicrobials to bacteria)가 바로 그것이다. 메트로니다졸, 클래리스로마이신, 아목시실린은 각자 다른 계열의 항생제이므로, 각각 H. pylori의 다른 표적부위에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H. pylori의 이들 항생제에 대한 내성은 각각 다른 메커니즘을 통하여 형성된다. 따라서 아스피린이 H. pylori의 다양한 항생제에 대해 감수성을 증가시킨다면, 논리적으로 볼 때 세균의 표적부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균세포 내부의 항생제 농도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연구진은 아스피린이 H. pylori의 세포 내부에 메트로니다졸의 농도를 증가시키는 과정을 추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메트로니다졸은 전구약물(prodrug)으로서, 세균세포의 니트로환원효소(nitroreductases)에 의해 활성화된다. 메트로니다졸의 내성은 니트로환원효소의 상실이나 불활성화에 의해 초래된다. H. pylori의 메트로니다졸에 대한 내성은 주로 rdxA 유전자가 상실되는 돌연변이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유전자는 산소비민감성 NADHP 니트로환원효소(oxygen-insensitive NADPH nitroreductase)를 코딩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rdxA 유전자이 돌연변이가 H. pylori의 내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아스피린이 존재하는 경우, 메트로니다졸 내성 H. pylor는 rdxA의 돌연변이를 유지한 상태에서 메트로니다졸 감수성 H. pylori로 전환되었다. 연구진은 심층분석을 통하여 아스피린이 H. pylori 세포 내이 메트로니다졸 농도를 증가시켰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고농도의 메트로니다졸은 세포 내부의 다른 니트로환원효소에 의해 환원되어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H. pylori의 메트로니다졸에 대한 MIC는 감소하였고, 일부 저항성 H. pylori는 감수성 H. pylori로 전환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세균의 세포 안에서 메트로니다졸의 농도가 증가한 것에는 두 가지의 경로가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세균의 통로(porin)를 통한 항생제의 수동적 진입(passive entering)이 강화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항생제를 능동적으로 배출하는 시스템이 손상된 것이다. 연구진은 정량적 PCR을 이용하여 5개의 포린(porin) 유전자(hopA, hopB, hopC, hopD, hopE)와 3개의 배출단백질 유전자(hefA, hefB, hefC)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아스피린은 이러한 유전자의 발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마지막으로, H. pylori의 외막의 투과성이 변화되었면 필시 일부 외막단백질(OMPs: outer membrane proteins)의 변화가 수반되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OMPs의 변화를 추적하였다. 그 결과 연구진은 55 kDa~72 KDa에 해당하는 두 개의 OMPs가 변화된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이 OMPs들의 정확한 기능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설사 이 OMPs들이 외막의 투과성을 증가시켰다고 할지라도, 아스피린이 이 단백질들을 단백질 번역 또는 수식단계에서 변화시켰는지, 또 다른 포린이나 배출시스템이 OMPs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후속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하여 H. pylori 제균요법의 효능을 증가시키기 위해 아스피린을 병용투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는 임상적으로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강북삼성병원의 연구진은 표준 OAC요법(omeprazole-amoxicillin-clarithromycin)과 OACA요법(OAC + 아스피린)의 효능을 비교하는 예비연구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연구진은 사후 위장내시경 검사에서 모든 환자의 궤양이 완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반적인 부작용은 두 그룹에서 비슷하게 나타났으며, OACA의 내약성은 양호했다. 그런데 OACA 그룹의 근치율은 86.7%, OAC 그룹의 근치율은 80.3%로서 두 그룹 간의 치료율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연구진은 OACA 요법을 H. pylori 제균(除菌)요법에 적용하는 것은 보다 면밀한 후속연구가 요망된다는 결론을 내렸다.(Dig Dis Sci 2005; 50: 626-629) 그럼에도 불구하고, H. pylori의 폐해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내성 H. pylori가 등장하고 있는 현실은 H. pylori 제균요법의 효능을 증가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가 아스피린이 H. pylori의 항생제 감수성을 증가시키는 분자적 메커니즘을 제시함으로, 보다 효과적인 H. pylori 제균요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
제 목 : 헬리코박타필로리박멸과 아스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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