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생명 호흡의 영 내쉼으로써, 말씀 공급의 일하시는 하나님, 생명 호흡-부활생명의 영으로 하시는 말씀, 바로 그것이 복음이라.. Q의 말씀-아드님-사람, 곧 원판 엘로힘이신 예수께서 성육신하여 오사 말씀 공급의 가르침 베푸시는바, 그분의 갈망은 오로지 영이신 Q-사람, 곧 엘로힘들인바 Q의 아들들을 산출, 그 참된 성숙 이룬자들의 나타남에 있으니 곧 갈망 그대로 생명-인격에서 온전한 변화 이룬바 Q 아들들의 나타남에 두심이라. 이로 인해, 하나님 말씀을 이르시며 모든 오해-착각-장애물들을 십자가 죽음-부활 통해 제거하시나니 .. 그 요약은"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리라"이다.."회개하라" 이르심 따라 주께 나아와 하나됨 이루라.."그것이 영생 안으로 들어감, 바로 천국의 일이다"..(Q부으신 모든것 하나하나마다 Q의 참생명-인격의 참된 변화 이룬 거처됨을, 상호간에 마음문 열어, 동심 합의/일치 통해 교통/청종/동행함으로써 이루도록 하라).. 두손에 받아 수용/적용한 말씀으로, 곧 수용/적용/조성-새겨질바, 그 말씀마다 저절로 자연스레 그영 Q 살아냄 되리니.. Q부으신 모든 말씀 하나하나마다 Q의 참생명-인격에로의 참된 변화 온전히 이룬 Q 거처, 마음 그릇/지성소를 동심 합의의 일치 통해 되게 하고자 함이라.. 진리말씀마다마다 선순환의, 상승하는, 친히 공급해 주시는, 그분을 제한하지 않는 전적인 신뢰의, 참 믿음으로 반응하여 다함-한량 없는 사랑-생명 충만케 된 영의 감동 받음으로써 그 마음판에 다바르로 새겨짐 이루며, 동심합치로 살아감을 온전히 이룸, 곧 그 새겨지고 분배되고 부어진 말씀으로 행하는바 말씀그릇 됨이야말로 천국의 일이니, 그 완전함 추구하는자마다.. . 그 말씀=불이요 물인바= 말씀-길-진리-생명의 거처/본향/집/바다/하늘, 곧 무궁하신 하나님을 소유하는바, 그분의 생명-인격 나타남 보게 되리라.
--- 민-하에트 하히 헤헬 야후슈아 리케로 카로 베-아모르, 슈부 키 말쿠트 하-샤마임 코르바 라브
==@민-하에트<멤-눈, 헤이-아인-타브>..진리말씀의 생명 .. @하히<헤이-헤이-요드-알렙> ..생명 호흡의 영 내쉼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헤헬<헤이-헤이트-라멛>.. 생명 호흡-부활생명의 영의 말씀 = 복음 @야후슈아<요드-헤이-바브(중)-쉰-아인>..예수께서.. @리케로<라멛-코프-레이시-알렙>..가르침 베푸시는바, 그갈망은 영이신 Q 나타남에 있으니.. @카로<코프-레이시-바브(상)-알렙>.. 곧 갈망 그대로 생명-인격에소 온전한 변화 이룬바 Q 나타남에 두심이라.. @베-아모르<바브, 알렙-멤-바브(상)-레이시>.. 이로 인해, [근본 하나님의 진리말씀, 그 안의 생명-인격화 이룬 그영에 도달함 이루는] 하나님 말씀을 이르고 계시니.. @슈부<쉰-바브(중)-베이트-바브(중)>.. Q 부으신 모든 말씀 하나하나마다 오직 주님 이름 부름 통해 공급하여 받게 하시는바, 그 받는바 그분의 참 믿음을 발휘함 통해서만 생명-인격의 참된 변화 이루게 되는바, 그 거처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동심 합치 발휘함으로써 그리 되게 하라..곧 주님의 집에 돌아와 회복됨 이루라 @키<카프-요드>..두손에 맏는 말씀으로 수용/적용/조성-새겨질바, 저절로 자연스레 살아냄 되리니.. @말쿠트<멤-라멛-카프-바브(중)-타브> @하-샤마임<헤이, 쉰-멤-요드-멤> 진리말씀 새겨지고 시종일관 발휘되는 믿음의 동심합치로 살아감을 온전히 이룸, 곧 그 부어진 말씀으로 행하는바 말씀그릇 삶이야말로 천국의 일이니, 그 완전함 추구하는자마다.. @코르바<코프-레이시-바브(상)-헤이>.. 그분의 갈망 그대로 그 생명-인격에 도달한 실존 나타남 되리니.. @라브<라멛-베이트-바브(상)-알렙>.. 공급하신바 그 말씀의 거처/본향/집에 거하는바, 곧 하나님의 생명-인격 그대로 이룬 Q 아들들 나타남을 보게 되리라.
##@이브리(עברי...강을 건너다..분배/전달/전이해 주신 곳은 그 영이시자, 영생하심으로써 친히 행하시는 하나님) ... 이스라엘 (יִשְׂרָאֵל) :: Q이 이기셨다!!..= 이스라(יִשְׂרָ...겨루어 이기다..'사라'(שָׂרָה)) +엘(אֵל...하나님)
##행1:8, 9의 [히브리어 성경 따른, 내재적/생명-영의, 주님 임재 그 앞에 서는 단독자로서의 수직적 해석]##
...[행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결국 복음 지경의 끝은 그분을 믿는 "거듭난, 나 자신"임을 참되게 알아야 한다>
---아발 티-셰우, 게부라 베보 알레이켐, 루하(루아흐) 하-코데쉬 비-헤이템(베-하이이탐) 에다이(아디), 비루샬라임(베-예루살렘) 우-베콜 야후다, 우-베-쇼메론 베-아드-케체 하-아레츠
[아드/에드 = 증인(그분의 뜻 이루심에 대해 완전히 동심합의로, 그 마음 문 열어드림의 청종/동행-동거-동주 통해서만 사랑-지혜-생명의, 전존재로 연합한 하나인바 새 사람, 곧 참제자/신부/아내/지체, 엘로힘 판박이 삶을 사는 증인이 됨] [신6: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셰마(쉰-멤-아인) 이스라엘, 에호와 엘로힘, 예호와 에하드(알렙-헤이트-달렛), שמע ישראל יהוה אלהינו יהוה אחד׃]
---거하시는 아버지는 Q 말씀이시요, 그분 형상 완성은 전적으로 마음의 뜻-의지의 일치, 곧 절대 신뢰-절대긍정-절대 기쁨-절대 청종-절대 감사의 참 믿음 발휘함의!!, 동심 합의/동심합일의 일치 언약 맺고 실지로 그 삶을 사는 그 때에라야만 친히 이루어 가시는바, 거하시는 Q의 영이신 성령께서 현존하는 인격으로서, 일하심 통해 이루신다..,
---TUQ그분은 생명이자 상호내재하심의 관계적 인격으로 계심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니,...바로 이 동심합의를 통해서 Q의 성령은 말씀을 수용/적용-<영과 혼, 전 존재에 이르기까지>거룩함의 변화를 완성하시며 동시에 깨닫게 하시고 찬송케 하시는 바 감동-감화된 거룩한 영의 말씀 통해 그 말씀을 마음판에 새겨 가심으로써, 그분의 거듭되는,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 호흡으로 거룩하게 조성-완성된 마음그릇/지성소요 동시에 물고기들을 살게 하는 바다로 비유되는 바!!, 바로 생명 산출하고 목양/양육하는 그 참 증인, 곧 날마다 주님 자신인 Q 진리말씀으로 새롭게 하시는 바 새 영-새 혼-새 몸 가진 엘로힘 판박이-그리스도의 참제자/신부-어린양의 아내인, 머리 되신 그분을 사는 증인 되게 하려 하심이다...
---@아발<알렙-베이트-라멛>:: 거하시는 아버지Q=말씀 @타-셰우<타브, 쉰-알렙-바브(중) > : Q의 그 형상 완성은 동심합의/합일의 일치로.. @게부라<김멜-베이트-바브(중)-레이시-헤이>.. 거하시는 성령은 Q-사람 사이에 동심합의의 일치에 근거하여 왕래-전달하며 Q뜻 이루시는바 발현케 하시는 그 영의 실제 현존.. @베보<베이트, 베이트-바브(상)-알렙 > : 생명-인격으로서 상호내재-왕래의 하나님 @알레이켐<아인-라멛(번제), 요드-카프-멤>..Q의 만족인 번제, 곧 일하시며 그 마음그릇마다 수용/적용-조성/새김 이루심 @루아흐<레이시-바브(중)-헤이트> 하-코데쉬,<헤이, 코프-달렛-쉰> @베-헤이템<바브, 헤이-요드(생명의 사역), 요드-타브(완성), 멤(그릇)>.이제 머리시요 친히 낳고 군림하신 성령이심.@에다이<아인-달렛(증인), 요드> ...성령의 거듭된 생명호흡으로 완성하신 마음 그릇, 곧 증인 @비루샬라임(베-예루실렘) <베이트, 요드-레이시-바브(중)-쉰-라멛-요드-멤>...((창1:1의베!!, 1:2끝의 요드-멤 :: = 예루살렘)) "베레시"의 말씀 담겼으며 그 담긴 말씀으로 살아가며, 이룬바 그 말씀의 거처-마음그릇-지성소-바다인 예루살렘...**여기서!!, 예루살렘을 이루는 히브리 글자들을 보라...레이시-바브(중...뜻 일치)-쉰 = 루쉬. 곧, 그중에서도 특히 바브(중)의 그 의미를 묵상해 보라..그 나타난 결과는 성육신((하-아레츠 끝까지=죽을 육체까지도 포함하여!! 오직 구주 예슈아의 참생명!! Q성분으로만 가득채워짐, 그 순전한 참생명의 선순환-충만 공급하심을 의미)) @우-베콜<바브(중)-베이트-카프-라멛>..그와 동시에 동의어로서 말하여지는 바, 거하실바 동심합의/합일로 말씀 새겨진바이니.. @야후다<요드-헤이-바브(상)-달렛-헤이>..말씀이신 여호와 그분의 실재, 곧 영원생명이신 분의 구별된 임재가 거함...즉, 그 말씀 행함으로써 머리이신 구주와 생명-사랑의 한영됨의 <무의식-잠재의식, 근본동기까지 완전히 하나된>연합으로 구별된 유다 사람 @우-베-쇼메론<바브(중)-베이트, 쉰-바브(상)-멤-레이시-바브(상)-눈>..동십합의/합일로 생명-인격의 빼어닮음에까지 완전히 이룬바 그분의 실재, 곧 영원생명이신 분의 임재가 있는 영<샤마임>에서 더 확장된 생명-인격의 거처인 혼<아레츠>로서 사마리아 사람 @바-아드-케체<바브, 아인-달렛-코프-체데-헤이>..그리고, 열망대로 이루신바, Q말씀 그대로 동일하게 된 자(실존) 거두심, 곧 어린양 JC를 유일한 번제로 받으심 인해 만족하심 그대로!! 기뻐 받으시는 바 @하-아레츠<헤이-알렙-레이시-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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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9..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바-예히 케칼로토 레다베르 조트, 호알라 베헴 로임, 바이샤에후 아난 미네게드 에이네이헴
---감동-감화-호소력 충만한 말씀의 영으로 사역하사 그 말씀이 듣는이의 .그 생명과 인격에 생생하게 새겨지도록 하신 바 영과 생명의 말씀 그 안에 .Q의 모든속성이 그대로 담아 빚어지고 조성되게 하시고, 흠향하실바 번제로서 올라가셨으니 Q의 참생명으로 호흡하는 Q 담지자마다 그의 마음은 일하시는 아버지의 영의 거처이기에, 비록 육안으로는 보지 못하나 아버지의 부으신 모든 것마다 영에 속한것이기에 마음의 눈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생생함은, 곧 진리말씀의 참생명은 성령과 연합한 하나이기 때문이요..하여, 생명의 영의 거처 된 자마다에게 있는바 마음의 눈에는 여전히 보이는 것이다..((주님은 참제자, 곧 참되게 믿는 우리의 영안으로 승천하심도 된다!!))
=== @바-예히<바브, 요드-헤이-요드>.감동-감화-호소력 충만한 말씀의 영으로 사역하사 .@케칼로토<카프-카프-라멛-바브(상)-타브-바브(상)>.그 말씀이 듣는이의 .그 생명과 인격에 생생하게 새겨지도록 하신 바.. @레-다베르<라멛-달렛-레이시-바브>.. 영과 생명의 말씀 그 안에 @조트<자인-알렙-타브>..Q의 모든속성이 그대로 담아 빚어지고 조성되게 하시고..@호-알라<헤이-아인-라멛-헤이 **알라 = 번제>..흠향하실바 번제로서 올라가셨으니.. @베-헴<바브. 헤이-멤>..Q의 참생명으로 호흡하는 담지자마다 @로임<레이시-알렙-요드-멤>..그의 마음은 일하시는 아버지의 영의 거처이니.. @바이-샤에후<바브-요드, 쉰-알렙-헤이-바브(상)>..비록 육안으로는 보지 못하나 아버지의 부으신 모든 것마다 영에 속한것이기에 @ 아난<아인-눈-눈>..마음의 눈에는 여전히 생생하며...@미-네게드<멤-눈-김멜-달렛>..곧 진리말씀의 참생명은 성령과 연합한 하나이기에 ...@에이네이헴<아인-요드-눈-요드-헤이-멤>..생명의 영의 거처 된 자마다에게 있는바 마음의 눈에는 여전히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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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8:18-20..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8...바이-가쉬 야후슈아 비예다바르 알레이헴/엘로힘 레오메르 나탐 리 콜-쉴탄 베-샤마임 우-베-아레츠 ] ...[마28:19...베-아탐 레쿠 엘-콜-하고임 바-아쇼 탈미딤 우-테발르템 오탐 레솀-하-아브 베-하-벤 우-루아흐 하-코데쉬] ... [마28:20...베-라마드템 오탐 리-쉐모르 에트-콜-아쉬르 체비티 에트켐 베-힌네 아노키 이트켐 콜-하야밈 야드-케츠 하-올람 아멘]
----18. 성령 감동하심따라 예수께서.. 깨달아 알게 하신 그대로, 열린 영의 감동으로 마음판에 새겨진바 된 말씀(다바르)으로 말씀하시는바,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이르시는 그대로 이르시되, 완전한 생명 삶의 그 말씀으로 행하라 수용/적용/조성됨 이루는 말씀, 곧 부어주시는 그 말씀 안에 있는 권세, 참 생명 지혜를 살도록 하라, 영/하늘 영역 안에 거하며 그리고 동시에 혼/땅 영역에서도 그리하라
@바이-가쉬<바브-요드, 김멜-쉰>..성령 감동하심따라.. @야후슈아<요드-헤이-바브(중)-쉰-아인>..예수께서.. @비-예다바르<바브-요드, 달렛-베이트-레이시>..깨닫게 하신 그대로, 열린 영의 감동으로 마음판에 새겨진바 된 말씀(다바르)으로 말씀하시는바, @알레이헴(엘로힘)<알렙-라멛-요드-헤이-멤>..하나님께서.. @레오메르<라멛, 알렙-멤-레이시>..친히 가르쳐 이르시되.. @나탄-리<눈-타브-눈, 라멛-요드>..완전한 생명 삶의 그 말씀으로 행하라 @콜-쉴탄<카프-라멛, 쉰-라멛-테이트-눈>..수용/적용/조성됨 이루는 말씀, 곧 부어주시는 그 말씀 안에 있는 권세, 참 생명 지혜를 살도록 하라 @ 베-샤마임<베이트, 쉰-멤-요드-멤>..영/하늘 영역 안에 거하며..@우-베-아레츠<바브, 베이트, 알렙-레이시-체데>..그리고 동시에 혼/땅 영역에서도 그리하라
---19. Q의 모든 속성 담긴 그릇으로서 가르침 그대로 수용/적용되고 영적 변화 이루고 Q의 말씀. 곧 조성하시며 가르치실바 그 말씀, 성령의 생명 호흡따라, 그분의 생명-인격에로의 변화 입고 행하는 그분의 거처로 사는, 엘로힘이라 --Q의 영분배/부으심 받고 그분의 생명-인격으로 새롭게 된 거룩한 존재요 가르침 받은 그대로, 완전한 복사판 이룬바, 구별됨의 사역 받아 완전케 된 참제자요 또한, 참지혜의 샘이요 보고인 말씀으로 완성된 그릇 곧 Q속성 그대로 담겨진 그릇 Q의 인도따라 부어주신 말씀 그대로 변화되고 담아내는 말씀 충만한 그릇인바, 그 안에는 아버지 아드님 동심합의/합일/일치 이루시는 분 거룩한 부활생명의 성령이 계시도다
##베-아탐<바브, 알렙-타브-멤>--Q의 모든 속성 담긴 그릇으로서 ##레쿠<라멛-카프-바브(중)>--가르침 그대로 수용/적용되고 영적 변화 이루고, ##엘-콜-하고임<알렙-라멛, 카프-라멛, 헤이-김멜-바브(상)-요드-멤> = Q의 말씀. 곧 조성하시며 가르치실바 그 말씀, 성령의 생명 호흡따라, 그분의 생명-인격에로의 변화 입고 행하는 그분의 거처로 사는, 엘로힘이라 ##바-아쇼<바브, 아인-쉰-바브(상)> --Q의 영분배/부으심 받고 그분의 생명-인격으로 새롭게 된 거룩한 존재요 ##탈미딤<타브-라멛-멤-요드-달렛-요드-멤>--가르침 받은 그대로, 완전한 복사판 이룬바, 구별됨의 사역 받아 완전케 된 참제자요 ##우-테발르템<바브(중), 테이트-베이트-라멛-타브-멤>--또한, 참지혜의 샘이요 보고인 말씀으로 완성된 그릇 ##오탐<알렙-타브-멤>--곧 Q속성 그대로 담겨진 그릇 ##레솀-하-아브<라멛-쉰-멤, 헤이, 알렙-베이트>--Q의 인도따라 부어주신 말씀 그대로 변화되고 담아내는 말씀 충만한 그릇인바, 그 안에는 아버지 ##베-하-벤<바브, 베이트-눈>--아드님 ##우-루아흐 하-코데쉬<바브, 레이시-바브(중)-헤이트, 헤이, 코프-달렛-쉰> --동심합의/합일/일치 이루시는 분 거룩한 부활생명의 성령이 계시도다
----20. 가르침의 말씀따라 마음 문 열어 연합한 하나의 완성 이룬 거처라, 그 말씀은 곧 Q의 모든 속성 담긴 말씀이니 참되게 배워 준행하도록 하라, 그분의 모든 속성으로 조성되고 새겨진 바 진복의 참 제자 되라. 동심합의/합일/일치의 언약 그 안에살면서 Q의 모든 속성으로 조성/변화 이룬 그릇, 영의 참생명의 그릇일지니.. 내가 행하는바 그대로 행할바 그분의 속성으로 조성된 거처 그렇게 조성되고 새겨진 말씀의 참제자요 그 증인-Q열망 그대로 살아가는 증인으로서 그 영생의 삶을 살라!!
@베-라마드템<바브, 라멛-멤-달렛-타브-멤>..가르침의 말씀따라 마음 문 열어 연합한 하나의 완성 이룬 거처라 @오탐<알렙-타브-멤>..그 말씀은 곧 Q의 모든 속성 담긴 말씀이니 @리쉐모르<라멛-쉰-멤-레이시 *샤마르-준행하다> 참되게 배워 준행하도록 하라 @에트-콜-아쉬르<알렙-타브, 카프-라멛, 이쉬르>..그분의 모든 속성으로 조성되고 새겨진 바 진복의 참 제자 되라..@치비티<체데-바브(중)-요드-타브-요드>..동심합의/합일/일치의 언약 그 안에살면서 @에트켐<알렙-타브-카프-멤>..Q의 모든 속성으로 조성/변화 이룬 그릇이라 @베-힌네<바브, 헤이-눈-헤이>..영의 참생명의 그릇일지니 @아노키<알렙-눈, 카프-요드>..내가 행하는바 그대로 행할바 @이트켐<알렙-타브-카프-멤>..그분의 속성으로 조성된 거처라 @콜-하야밈<카프-라멛, 헤이-요드-멤-요드-멤>..그렇게 조성되고 새겨진 말씀의 참제자요 @아드-케츠<아인-달렛, 코프-체데>..그 증인-Q열망 그대로 살아가는 증인으로서 @하-올람<헤이, 아인-바브(상)-라멛-멤>..그 영생의 삶을 살라!! @아멘<알렙-멤-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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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6:15-18.....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5. 바이-오메르 알레리헴 레쿠 엘-콜-하올람 베키르우 에트-하베쇼라 레콜-하베리아 16.하마아민 베니트발 후 이바셰아 바-아쉬르 로-야아민 예에셈 17.베-엘레 하-오토트 아쉬르 일라부 엘-하마아미님 예가라슈 셰딤 비세미 우비르쇼노트 하다쇼트 예다베루 18. 네하쉼 이세우 비데이헴 베이쉬투 쌈-하마베트 베로 야지켐 알-홀림 야쉬무 에트-예데이헴 베이타브 라헴]
===15
----창1:1,2절로, 적용하여 이르시기를... ..(엘로힘된) 그들 하나하나마다에게 ..말씀마다 참되게 받을바 수용/적용함으로써 조성-성화되고 진정한 깨달음, 곧 영의 감동-감화 받음 통해 마음판에 새기도록 하라.. 마음판에 새겨질바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분배/전달해주신 그 말씀의 생명-인격 변화를 온전히 이룬 거처로 삶, 곧 그 영생을 취하라 이로써 머리되시는 그영의 교통-열망하시는 그대로 하나님과 동심합의/합일/일치 이룸의 삶 살게 되리니.. Q의 모든 속성 담긴 생명 호흡으로, 부어주신 모든것이 거하는 바 그 마음의 생명-인격 변화 통해 그영의 성숙에 도달하기까지 호흡하며 살라.. 새겨지는 그 말씀으로 이루실바 참제자, 곧 생명 호흡으로 거하시는 그영, 그영께서 이룰바 하나님, 그분을 호흡함으로써 살라
---바이-오메르 알레리헴 레쿠 엘-콜-하올람 베키르우 에트-하베쇼라 레콜-하베리아
==@바이-오메르<바브-요드, 알렙-멤-레이시>.창1:1,2절로, 적용하여 이르시기를... @알레이헴(엘로힘)<알렙-라멛-요드-헤이-멤>..(엘로힘된) 그들 하나하나마다에게 @레쿠<라멛--카프-멤> 말씀마다 참되게 받을바 수용/적용함으로써 조성-성화되고 진정한 깨달음, 곧 영의 감동-감화 받음 통해 마음판에 새기도록 하라.. @엘-콜-하올람<알렙-라멛, 카프-라멛, 헤이-아인-바브(상)-라멛-멤>..마음판에 새겨질바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분배/전달해주신 그 말씀의 생명-인격 변화를 온전히 이룬 거처로 삶, 곧 그 영생을 취하라 @베키르우<바브, 코프-레이시-알렙-바브(중)>..이로써 머리되시는 그영의 교통-열망하시는 그대로 하나님과 동심합의/합일/일치 이룸의 삶 살게 되리니.. @에트-하베쇼라<알렙-타브, 헤이-베이트-쉰-바브(상)-레이시-헤이>..Q의 모든 속성 담긴 생명 호흡으로, 부어주신 모든것이 거하는 바 그 마음의 생명-인격 변화 통해 그영의 성숙에 도달하기까지 호흡하며 살라.. @레콜-하베리아<라멛-카프-라멛, 헤이-베이트-레이시-요드-알렙-헤이>..새겨지는 그 말씀으로 이루실바 참제자, 곧 생명 호흡으로 거하시는 그영, 그영께서 이룰바 하나님, 그분을 호흡함으로써 살라..
===16.
---- 생명 진리, 곧 하나님 말씀마다 진정으로 준행하는 삶을 살지니, 참생명 충만의 참지혜의 거처인, 참제자됨 살라..그 마음의 의지가 Q과 하나된바 동심합의/합일/일치의 일편단심으로써 하나님을 살라.. 그 하나된 마음 안에서 일하시는 분께서 부어주시며 분배하심 이루시리니..그야말로 지고지선의 진복이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니, 그분의 진리 말씀으로 행하는바 그분이 생생하게 나타나는 삶을 살라.. .친히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 부어주신 바 말씀의 그 거처로 살라..
---하마아민 베니트발 후 이바셰아 바-아쉬르 로-야아민 예에셈
==@하마아민<헤이-멤-알렙-멤-요드-눈>..생명 진리, 곧 하나님 말씀마다 진정으로 준행하는 삶을 살지니 @베니트발<바브, 눈-테이트-베이트-라멛>..참생명 충만의 참지혜의 거처인, 참제자됨 살라.. @후<헤이-바브(중)-알렙>..그 마음의 의지가 Q과 하나된바 동심합의/합일/일치의 일편단심으로써 하나님을 살라.. @이바셰아<요드-바브(중)-쉰-아인>..그 하나된 마음 안에서 일하시는 분께서 부어주시며 분배하심 이루시리니.. @바-아쉬르<바브, 아쉬르>..그야말로 지고지선의 진복이라.. @로-야아민<라멛-알렙, 요드-알렙-멤-요드-눈>..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니, 그분의 진리 말씀으로 행하는바 그분이 생생하게 나타나는 삶을 살라.. @예에셈<요드-알렙-쉰-멤>..친히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 부어주신 바 말씀의 그 거처로 살라..
===17.
----하나님 말씀은 생명 호흡이 되나니, 그분의 모든 속성이 생명-인격으로서 거하실바 그 완성 이루라..지고지선의 진복이라..친히 행하시는 바 그 말씀으로 변화되고, 특히 동심합치에 이르도록 하라..하나님의 참제자, 곧 말씀 하나님의 거처로서 그분의 생생한 살아계심을 살아내도록 하라 친히 행하시는 분 곧 성령의 머리되심과 합치 이룸으로써 청종하라 Q의 모든 것 부으시는 그영으로 행하는 마음그릇되라..부어주신 모든 것 다 받고 수용한 바 그 거처로서 살라.. 그리하여, 부어주신 말씀의 모든 것 하나하나마다 생생하게 거하며 생명-인격의 거룩한 변화 이룸을 온전하게 하라.. 주님께서 (마음판에) 새겨주신 말씀, 그 다바르의 말씀따라 하나되어 사는 삶 이루라..
---베-엘레 하-오토트 아쉬르 일라부 엘-하마아미님 예가라슈 셰딤 비세미 우비르쇼노트 하다바로트 예다베루
==@베-엘레<바브, 알렙-라멛-헤이>..하나님 말씀은 생명 호흡이 되나니.. @하-오토트<헤이-알렙-타브-바브(상)-타브>..그분의 모든 속성이 생명-인격으로서 거하실바 그 완성 이루라.. @아쉬르 @일라부<요드-라멛-바브-바브(중)>..친히 행하시는 바 그 말씀으로 변화되고, 특히 동심합치에 이르도록 하라.. @엘-하마아미님<알렙-라멛,헤이-멤-알렙-멤-요드-눈-요드-멤>..하나님의 참제자, 곧 말씀 하나님의 거처로서 그분의 생생한 살아계심을 살아내도록 하라.. @예가라슈<요드-김멜-레이시-쉰-바브(중)>..친히 행하시는 분 곧 성령의 머리되심과 합치 이룸으로써 청종하라 @셰딤<쉰-레이시-요드-멤>..Q의 모든 것 부으시는 그영으로 행하는 마음그릇되라.. @비세미<베이트-쉰-멤-요드>..부어주신 모든 것 다 받고 수용한 바 그 거처로서 살라.. @우비르쇼노트<바브(중), 베이트-라멛-쉰-눈-바브(상)-타브>그리하여, 부어주신 말씀의 모든 것 하나하나마다 생생하게 거하며 생명-인격의 거룩한 변화 이룸을 온전하게 하라.. @하다바로트<헤이-달렛-베이트-레이시-바브(중)>..주님께서 (마음판에) 새겨주신 말씀 @예다베루<요드-달렛-베이트-레이시-바브(중)>..그 다바르의 말씀따라 하나되어 사는 삶 이루라..
===18.
---살아계신분 부활생명의 영께서 부어주심으로써 행하는 마음그릇 되라.. 그 모든 부으심으로 일하심의 사역마다 하나님 삶 이루게 되나니, 동심 합치 이루라.. 친히 일하며 이루시는 교통하며 머리로서 일하실 바 그 영의 거처요 마음 그릇으로 살라.. 이로써, 부으신바 모든 것 하나하나 작동되며 완전케 되나니, 오직 동심합치 이루라.. 주님 보좌가 그대 마음 안에 있나니, 성령께서 그 생명 호흡으로 변화시켜가실바 온전히 따르라.. 이로써 변화된 참제자마다 하나님 삶 이룰지니.. 그분께서 만족하시기까지 친히 빚어가시며 다루심을 열망하는 마음그릇 되라.. 부활생명의 영, 그분의 생명-인격으로 온전케 된 참제자, 바로 온전히 그분 뜻따라 행하는 마음 그릇이니.. 부으심의 모든것 하나하나마다 그대로 생생하게 작동되는 마음그릇, 곧 동심합치의 거처일지니.. 그분의 모든 속성마다, 상호 열린 문의 교통 이루며 그 뿌리(무의식-잠재의식)에서부터 머리이신 그분에 이르기까지 오직 사랑-지혜-생명의 동심합치로 연합한 하나의 영 이뤄 구별하신바이니.. 이로써. 행할바, 그 행함마다 참지혜의 거함의 실제 나타나리니.. 말씀 생명의 참거처로다
---네하쉼 이셰우 비데이헴 베이쉬투 쌈-하마베트 베로 야지켐 알-홀림 야쉬무 에트-예데이헴 베이타브 라헴
== @네하쉼<눈-헤이트-쉰-요드-멤>..살아계신분 부활생명의 영께서 부어주심으로써 행하는 마음그릇 되라 @이셰우<요드-쉰-알렙-바브(중)>..그 모든 부으심으로 일하심의 사역마다 하나님 삶 이루게 되나니, 동심 합치 이루라.. @비데이헴<베이트-요드-레이시-요드-헤이-멤> 친히 일하며 이루시는 교통하며 머리로서 일하실 바 그 영의 거처요 마음 그릇으로 살라.. @베이쉬투<바브-요드-쉰-타브-바브(중)>.. 이로써, 부으신바 모든 것 하나하나 작동되며 완전케 되나니, 오직 동심합치 이루라.. @쌈-하마베트<싸멕-멤, 헤이-멤-바브-타브>.. 주님 보좌가 그대 마음 안에 있나니, 성령께서 그 생명 호흡으로 변화시켜가실바 온전히 따르라.. @베로<바브-라멛-알렙>.. 이로써 변화된 참제자마다 하나님 삶 이룰지니.. @야지켐<요드-자인-요드-코프-멤>.. 그분께서 만족하시기까지 친히 빚어가시며 다루심을 열망하는 마음그릇 되라.. @알-홀림<아인-라멛, 헤이트-바브(상)-라멛-요드-멤>.. 부활생명의 영, 그분의 생명-인격으로 온전케 된 참제자, 바로 온전히 그분 뜻따라 행하는 마음 그릇이니 @야쉬무<요드-쉰-요드-멤-바브(중)>..부으심의 모든것 하나하나마다 그대로 생생하게 작동되는 마음그릇, 곧 동심합치의 거처일지니.. @에트-예데이헴<알렙-타브, 요드-달렛-요드-헤이-멤>.. 그분의 모든 속성마다, 상호 열린 문의 교통 이루며 그 뿌리(무의식-잠재의식)에서부터 머리이신 그분에 이르기까지 오직 사랑-지혜-생명의 동심합치로 연합한 하나의 영 이뤄 구별하신바이니.. @베이타브<바브-요드-요드-테이트-베이트> 이로써. 행할바, 그 행함마다 참지혜의 거함의 실제 나타나리니.. @라헴<라멛-헤이-멤>.. 말씀 생명의 참거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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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자, 참되게 CJ 믿는/추구하는 이, CJ의 반쪽(신부/아내/그몸의 지체) 그대여, 그대는 성령의 담지자(엑수시아의 자격, 곧 권위/권세 받은자) 됨에 대해 진정 참되게 알고 있는가...한 걸음 더 나아가 -날마다 준행해야할 바 최우선 원칙따라-주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말고) (아버지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을, 그 성령 (바로 그렇게 날마다)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기도하며 그대 자신을 -십자가 보혈로 피뿌림/씻김 받아- 성령 받을 준비하고 있는가....부활주님이 승천하시면서 그리 말씀하셨던 바 그날부터 (10) 일간, 전심으로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에 전혀 힘쓰며 (금식의 소원 생긴다면 금식도 고려하라) 기다리던바, 바로 그들에게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고 있는 그들에게) 성령이 과연 임하셨고(다가와 도달하심 = 풍어주심 = 만져 적셔주심/점유충만하여 넘치심 = 변화시키심) JC이름의 권능 하나님 그 자체이신 보혜사 성령을 부어주고 계셨으며, 그분으로 인해 (신진대사적으로) 변화된 그들마다 땅끝까지 나아가 (성육신-대속의 십자가죽음-장사지냄-부활승천-성령으로 오셔서 내주하심)의 CJ 증인(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는), 살아있는 순교자 만들고 계신다.(=이른비 성령)..이 원칙은 오늘도 동일하다!!...주 성령님을 갈망하라..모든 자행자지함 유도하며 미혹/훤화하는 그 어떤 것들, 평강 잃게 만들고 참 생명길 벗어나서 곁길로 이끌 수 있는바, 속상함-모멸/무시/거절/냉대-의 왜곡된 옛 자아의 느낌=악하고 더러운영들과 죄성=을 JC이름으로 묶고 대적하라...짐짓 추정하여 섣부르게 행하지말라..언제/무엇을/어떻게 하시기 원하시는지!! 여쭈고 주도권 맡겨드리고 그분을 기다리라... 다시 경청하기를 연습하라...그분의 친히 임하심-말씀하심-지시하심을 기다리라
---------[바울..폴로스]..페이-바브(상)-라멛-바브(상)-싸멕//[사울]..쉰(우상)-알렙-바브(중)-라멛
■여호와를 앙망하는 영혼에게 주시는 능력! <코아흐 כוח <또는 오즈 r< ...
권능, 하나님의 능력 =***헬>뒤나미스:: 히>게브라 = 오즈, 코아흐 (완성된 진리, 곧 Q의 참생명 말씀 넘겨줌-전할 수 있는, 거기에 수반되는 모든 능력 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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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시81:1...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찌어다] [고후13: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하나님의 능력의 히브리어는 <코아흐כוח <와, 또는 <오즈ז< ....<코아흐כוח<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한바, 그 하나님을 앙망하는 영혼에게 주시는 TUQ의 전능하신 능력을 의미...수동적인 인생에서 능동적으로 [오똑이처럼 새로이] 일어서는 참생명 능력의 그 힘이요 동시에 초월적인 힘- 권세- 능력, 권능의 의미 ....<오즈ז<에는 힘과 보호라는 뜻이 더불어 있는데, 피난처를 의미..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의 피난처 --하나님의 강력한 힘으로 보호 하시기 때문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주시는 능력이기에!!,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언제라도 오똑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날마다 새로이 인생의 길을 열고 돌파케 하는 힘... 그 어떠한 위험과 위협에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보호 하시는 그 힘을 경험하게 하시리니 ....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영혼에게 오늘도 일하고 계시나니, 여호와를 앙망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그 능력을 보여 주실 것...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니, 구할지어다, 주 이름을 앙망하며 전심으로 구할지어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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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권세(LORD JC's Authority)와 권력(world a.) = 엑수시아(담지자/그릇 됨) ::: 권능 (power) = 두나미스(그 담긴 바 내용, JC)]]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예루살렘((지성소)) :: JC와 연합, 하나인 영("야라"야웨께서 세워-가르쳐-흘려보내심 + "샬라임"실로/평강 JC) ==>온 유대 : 혼((성소)) ==>사마리아/땅끝 :: 몸((성전뜰))***--
##부활생명/능력이신 성령 [임함..에펠코마이(다가와 도달하심)::구하고-찾고-두드림의 기도/기대/기다림 필요] ==> 권능dynamis(발출/표현되어 나타나는 시공차원 초월하는 힘과 능력이신 전능 Q = Q의 힘과 능력) = 제한 받지 않으시는 이분은 바로 부활 승천 JC [받음(람바노--받아 얻음), 내재/운행/지도하시는 JC의 심장과 피, 경험/체득-자람/성숙--날마다 새로이] ==>예루살렘-유대-사마리아-땅끝까지(안에서), JC의 증인(마르튀스=(경험/체득/새김-확신/고백으로 목숨걸고 복음전도하며 말하는자)/담지자exousia [자격, 신분/직역, 권위] 삶 준행##
---'권능'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두나미스'는 '할 수 있다. 가능하다, 힘이 있다'는 뜻의 '두나마이'에서 파생된 명사형.. '강한 힘/이지적인 능력, 즉 전능의 일/역사'이란 의미.
......히브리어 [게부라 = 헬>두나미스 = 권능/전능/역사하는 위력 mightiness] ---코아흐는(이룸/성취/진취) “힘” 또는 “능력”(power) + 오즈는(버팀/견딤/보호) “힘”(strength)
......보통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능력'(두나미스...power)을 얻기 위해 기도하곤 하지만, 이 단어가 쓰인 용례를 보면 숨겨진 속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성령(말씀 자체이신 분의 영)이 임하면 권능(두나미스)을 받아 말씀의 증인이 되며 (행1:8)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그러한 권능(두나미스)이 어디서 났는지 사람들이 놀라고 (마13:54, 막6:2)...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두나미스)이 충만하여 성령으로 말하며 (행6:10)
......'권세/권위'(엑수시아, real- true, faithful Authority of JC)가 하나님의 말씀을 품을 수 있는 부여받은 직역/자격으로서의(그리스도로 거듭난, 그분의 담지자/그릇 됨으로서의 합당한 자격) 능력'이라고 말한다면, '권능'(두나미스)은 '하나님의 말씀[=곧 하나님 자신, 하나님 이름 = 그분 존재 자신 = 전지전능 창조주 하나님, 인격이신 그분 자신 -진리 생명 빛이신 분-부활 승천하사 아버지 보좌 우편에 좌정하여 계시며 동시에 하늘 성전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인자 JC 그분 자체]을 전해주고 넘겨주는 실제적 힘과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헬라어 '두나미스'가 히브리어로는 '코아흐'라고 하는데 이를 파자하면 '완성된 진리로서의 생명zoe을 넘겨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데서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을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9:1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말씀)을 온 천하에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 모세를 세우면서 '능력'(두나미스)을 보여주시고 그 능력을 주셨는데, 모세가 받은 능력은 다름 아닌 말씀을 전하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된 모든 세계와 그 안에 두신 모든 인간 존재 한 사람 사람마다 그 자체로 [(완전히 꿰뚫어 봐 아시는 주님, 창조주이시다!!) 보시기에 좋았더라]토브!!, 곧 (장애가 있는 없든) 진-선-미(참되고 선하고 아름답다..)라 보고 계셨다...볼 수 있는 눈, 들을 귀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 마음-심정-생각, 관점따라) 보기를 거부하고 듣기를 거부하는 자마다 거역하는/반역하는 자일 수도 있다.
@@부활생명 권능의 성령, 중생+새창조사역 이루심 = 임하다[라바쉬] + 운행하다[라하프](시종일관 임마누엘로서, 친히 그리스도의 증인 됨을 위한, 곧 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까지 그리스도화를 온전히 이룸 위한, 권능 사역 = 제자삼음- 세례베품-가르쳐 지키게함)...부활하신 그리스도는 40일간 이땅에 함께 게시는 동안 ((제자들의 눈에)) 보이는 임재와 보이지 않는 ((차원-영역 초월한 임재)) 그 임재로 제자들에게 그분의 임마누엘이심을 연습하도록 하셨었음을, 그 후에 승천하셨음을 기억하라...((엘리야도 ..)) ...주님 친히 이루실 바, 제자 한사람 한 사람마다 완전한 그리스도화=영화(영혼몸 전존재가 완전히 그리스도께서 이루신데까지 변화됨)에 이르러서야, 마땅한 휴거 준비가 됨 잊지말라..
@@@[임하다].라바쉬.come upon..성령이 임하시면, 성령께서 능력으로 옷 입혀주신다면--<라바쉬-לָבַשׁ>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 ...라바쉬) 옷을 입다....구별된, 특별한 신분/자격 나타냄의 표식 부여--임명--권능/효과 발현----<임하시다 = 옷 입히시다 + 능력 베푸시다/변화시키시다><(뚜렷한 목적 성취 위해) 능력을 베푸사) 영광으로 완전히 덮어/적셔-침투/주입하여-점유/충만-운행/전존재의 신진대사적 변화(그리스도화) 이룸 사역>의 히브리어는 <라바쉬> 옷 입다의 뜻에서 왔다 -- 하나님의 영으로 옷 입혀 주시다의 의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의 범죄 이후에 가죽 옷을 입혀 주시는 데서 <라바쉬>가 유래가 되었다
[행19: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눅4: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죄로 인해서 타락한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살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의 옷을 입혀주셨다 이것이 <라바쉬>이다---사람이란 그 자신의 힘만으로는 살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인데, 스 덧입음이 <라바쉬>... 연약할수록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덮어 주시는 은혜가 강하게 임하실 것... 낙심하며 두려울 때 성령의 능력으로 옷 입혀 주실 것 --- 사람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두 손들고 하늘을 바라 볼 때 하나님의 영으로 감싸 안아 주실 것이니, 이것이 <라바쉬>의 은혜이다. ---구약에서 <라바쉬>는 특별한 경우에 임할 때가 많았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강권적으로 임하시거나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을 때에 <라바쉬>의 은혜를 주셨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고 승천 하신 후 성령께서 예수 이름으로 이 땅에 강림하셨다 <라바쉬>!! ... 예수 이름을 부르짖는 자에게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혀 주셨다... 거듭남을 참되게 경험한자마다..!!..<내>힘으로 살 수 없는법이니... 성령께서 은혜를 부어 주셔야 한다 ..인생의 모든 영역에 특별하게 함께 해 주셔야 한다 ..성령의 능력의 옷을 입혀 주셔야 하는데, 그 은혜가 <라바쉬>이다
@@@ [운행하다]라하프 move/hover upon, :: ~ 위에 운행하다, (자기와 새끼를 위해 손수 지은 보금자리를 스스로) 어지럽게 하며, stir up 새끼들 위에 너풀거리며 hover over (떨어지는 새끼를) 날개 펴서 spread 받아 catch (자기 날개에) 업으며carry on, (임마누엘로서) 인도하다guide
[창1:2..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move upon]
[신32:11.12...*11.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위에 운행하다...move upon"의 히브리어 [라하프]는 [(어미 독수리가 자기 자신이 낳은바 산출한 생명인바, 갓태어난 새끼들에게 튼튼하게 성장성숙완숙하게 잘 자라서 어드든지 어미와 동행하기에 이르도록까지, 둥지에 함께 거함 통해 성장성숙에 이르기까지 함께하며 떠나지 않는 임마누엘로서 필요-충분한 그 역할 수행의 모든 것 통칭..., 곧 먹이 공급--비상/배회/보호하다--엄위/소중하게 협력-관계-질서를, 그리고 성숙한 홀로서기를 가르치다--보호/훈련하다]는 구약성경에서 이 의미로 창 1:2과 신 32:11에서만 나온다.
[신32:11.12...*11.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 32:11에서...~위에 너풀거리며 = hover"는 한 마리의 어미새(독수리)가 새끼들이 완전히 날 수 있을 때까지 새끼들 위를 맴돌며, 지키고 보호하고 양육(훈련)하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어미새는 새끼들 위에 배회하며, 새끼들이 날 때 비틀거리며 아래로 떨어질 때 그들 밑으로 급강하하여 그를 잡아채어 추락으로부터 지킨다. ... 즉, 라하프는 (여타의 창조 신화들에서 볼 수 있는것처럼) 알을 품고 까는 행위를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자신이 산출한 생명인 바 어미새가 새끼들 위를 배회하며, 엄위하며, 소중하게 기르며, 훈련시키는 모습을 묘사한다.
창 1:2에서도 라하프는 신명기 기사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피엘 분사가 사용되어 인격체에 의한 강력하고도 반복적인 행동을 나타내는데, 이는 성령이 창조 활동을 계속 수행하고 계시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단어에는 알을 품고 까는 것과 같은 사상은 없으며, 그러한 어떤 신화적 의미도 없다. 일부 페니키아의 우주론에서 발견되는 개념, 곧 세계-알(world-egg)을 까는 영(靈)에 대한 묘사는 여기에 합당치 않다(G.J. wenham:Genesis).
...(올바른 묵상이 중요하다!!)....하나님의 영이 '혼돈의 물덩어리' 위로 배회하고 있었다. 그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의 단순한 임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활동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한층 더한 창조 활동을 위해, 하나님의 최초의 창조 행위로 이미 태동한 혼돈의 덩어리, 곧 창조된 재료를 감싸 보존하고 준비(정리)하며, 또한 생명과 질서의 원리로서 그것에 형태와 생명과 질서를 부여하시는 창조 활동을 수행 하신 것이다. 이 구절과 창 1:26이하에서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의 창조 사역을 수행하셨음을 분명히 한다. 다음과 같은 구절은 성령이 창조 사역에 관여하였음을 암시하여 준다(참조: 욥 26:l3; 욥33:4; 시101:30). 하나님의 영은 모든 신적 창조 조성에서 그 자체를 인격적 속성들과 함께 끊임없이 나타내어 역사하시는 유일한 형성 원리이니, 지구에 대하여, 자연계에 대하여, 신권정치에 대하여, 성막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새 생명이나 새 사람에 대해서든지 그러하다(Lang's C.K.S: GENESIS, P.164). 특별히 우리는 창 1:2과 관련하여, 지구의 창조와 조성과, 자연인의 잉태와 성장, 영적 출생과 성장을 비교연구하면, 본 절(창 1:2)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태초의 혼돈의 물 덩어리 위로 배회하고 있었던 성령의 활동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그 상징적인 의미를 잠시동안 명상해 보자. 그 모두 중요한 교훈을 전해줄 것이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현존하는 질서있는 우주가 형성되기 전의 그 원초적 혼돈과 같다. 그러나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새롭게 될 수 있다.
그 하나님의 성령께서 형체 없는 공포와 죽은 괴물이 가득한 인간의 소용돌이 치는 어둠 위로, 무질서한 의지, 반역적인 욕망, 괴로운 양심, 어두워진 지각 등의 온갖 혼돈 위로, 온유하게 임하셔서 우리를 소생시키며 혼란을 질서로 환원시키고, 구름 덮인 우리 인간의 흑암에 광명이 몰려들게 할 것이다. 태초에 혼돈의 덩어리들 위를 배회하며 그것을 코스모스(질서, 우주)를 만들었던 그 성령은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당신의 본성을 품어 감싸 그 전체를 재창조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 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했다. '창조주 성령이시여 내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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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나의 말(율법과 세상, 옛나, 타락한 사람인 육체, 죄성)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품을 수 있는 권세/권위(엑수시아...주님 나라에 속한 하나님 자신이신 진리 생명 말씀을 전파/전도하여 그대로 넘겨주는 증인이자 전권대사의 고유 자격이자 능력) 발휘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전령=증인= 전권대사로서 하나님 말씀인 복음을 전함에 전혀 지장 없도록 필요충분한 정도로..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더 이상 제한받지 않으시며 자유로우시며 막힘없는] 능력(두나미스....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 그분의 영, 주님 그분 자신이심)을 끊임없이 받아 가진 바, 먼저 그 자신 안에 가지고 살고 누리는 참 생명삶을 살며 공급하는 통로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능력(두나미스) 행함이란, 눈에 보이고 육신을 만족케하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의미에서의 행함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의 말씀, 생명 말씀을 참되게 경험-체득하고, 산 경험자로서 그대로 전해준다는 의미에서의 행함을 말하는 것이며 그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진정한 '능력'(두나미스)행함의 삶을 사는 것이다.
>>권위는 헬라어로 ‘exousia’인데 이 단어는 ‘ex(나오다)’과 ‘ousia(존재)’의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권위는 유일무이한 참 근원자 만왕의 왕 참 지존-주재-주권자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와 피조된 존재로 하여금 그분께 합당케 변화시키고 권능의 주님 자신을 담아내며 공급하는 그릇됨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서 흘러나온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를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주셨고,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그 엑수시아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흑암에서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포로됨의 속박과 압제에서 진리 안의 참 자유 누림의 나라로 옮겨주심의 구속을 완전히 이루어 주셨고, 이와 더불어 이 땅에 계실 때 가지셨던(아버지로부터 받으신바) 그 엑수시아를 그분에게만 있던 고유한 부활생명의 성령을 자유로이 아낌없이 [거듭난 믿는이들에게] 분배해 주심으로써 나누어주셔서 전권대사요 참 증인 삼으셨다)) 거듭난 참 믿는이, 부활생명 원천이신 그분의 성령이 내주하시며 또한 위로부터 증언자로서 합당한 권능의 영을 부어주신 바 된 우리에게 주셨다(마 28:18). 영적 권위, 위치상의 권위, 통치상의 권위 등 이 모든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권위-권세-자격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로 그 권위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라는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나와 예수님이 받으셔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좋은 선물이다. 선물은 늘 좋은 것이므로 권위는 좋은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는 창세기 1장에 나타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 말씀대로 그대로 되었다(창 1:7, 9, 11, 15, 24, 30)고 성경은 말한다. 이것이 권위이다. 그 권위를 받은 우리 또한 “(다바르=로고스이신바!! 주님 말씀 그대로) 그렇게 될지어다. = 아멘 아멘 아멘”라고 [참되게...이미 진실로 참되게 경험한 바요, 앞으로도 진실로 참되게 경험할 바이기에] 말할 수 있게 하신다. 이것이 권위의 기도이다.
바로 그러한 창조행위의 모습은 그렇게 되라는 권위를 부여받은 세상 피조물들이 씨를 만들고 열매를 맺고 낮과 밤을 주관하고 공중을 날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기어 다니고 땅을 충만하게 채우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피조 세계에 수고스럽게 직접 개입하신다. 왜냐하면 피조 세계의 창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말에 궁극적인 생명의 완성이 일어날 때까지 하나님의 창조는 말씀의 권위로 계속된다.
이 말씀의 권위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에게 주어졌다(창 1:26).
하나님은 멀리 떨어진 하늘에서 주권자의 칙령으로 이 세상의 창조를 완성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지닌 존재들을 지으심으로써 하늘을 바라보는 존재인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세계를 세상에서 친히 완성시키시려고 하신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매우 인격적인 결정이시다.
사람의 창조에 관하여 신격의 세분 사이에 회의가 있었다(창 1:26). 삼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겠다고 결정하신 일은 영원 과거에 있었다.
이것은 사람이 삼일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엡 3:9-11).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의도는 그분 자신의 권위를 사람에게 주어 이 세상의 창조를 종말에 궁극적으로 완성하시려는 신성한 경륜을 수행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에서 주신 그 권위도 인간들은 잘못된 판단으로 사람의 권력으로 변질되었다. 우상숭배가 바로 그러한 경우의 예인데, 우상은 인간을 취약함에서 건져내고 견고한 황홀경의 맛을 보여주어 도취시키면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권위를 왜곡된 파워(power)의 모습으로 변질시켰다. 우상 숭배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바벨론 제국이다. 바벨론 제국은 니므롯으로부터 시작하여 바벨론 제국이 되었다가 로마가 되었다가 말세에 큰 바벨론이 되어 나타나 주님께 대적한다(창 10:8-10, 계 17-18장). 이 세상은 지금 바벨론이 추구하는 것을 추종하고 있다. 물질적인 세상뿐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세상도 바벨론을 추종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종교적인 바벨론(계 17장)과 물질적인 바벨론(계 18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들이 아름답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야 할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인 권위를 마치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 듯이 휘두르는 권력으로 쓰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수단으로 제대로, 정당하게, 개인과 공동체를 살리는 방식으로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권력으로 쓰면 그로 인하여 이 세상은 지옥이 되지만, 권위로 쓰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 즉 다스림이 있는 사랑의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물질적인 나라가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화평과 기쁨과 사랑이기 때문이다(롬 14:17).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더 알아가며 더 누려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하나님께 받아 우리에게 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다는 것의 의미와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사랑과 빛과 거룩과 의라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위가 있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과 빛과 거룩과 의라는 하나님의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창 1:26).
.........모든 사람에게 어떤 권력이 있다. 권력은 권위의 변질이다. 높은 자리든 낮은 자리든 어떤 자리에 있든지 권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면 권력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의 변질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회개함으로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받았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권위는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지만, 권위의 변질인 권력은 세상을 자기 왕국으로 만든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한 왕국을 만드는 것을 죄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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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자에게 부여된 불가침의 자격/신분-권위/권한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통제/침범 불가능한 그의 행동의 자유'를 의미하는 헬라어 '엑수시아'(exousia)]]...이는 성경에서 "특별히 특별한 권위를 받아 지닌 사람이 "그가 속한 바 그 나라 권한으로 그 나라 밖애서도 자유로이" 행동할 개인적인 자유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다른 나라와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그 나라의 권리 또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엑수시아ἐξουσία와 뒤나미스δύναμις...– 개역(개정)에서의 번역문제 –0.
[개역(개정)]판 신약에서 ‘권위’, ‘권세’, ‘권능’ 등의 원어를 살펴보면 ‘엑수시아ἐξουσία’이거나 ‘뒤나미스δύναμις’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엑수시아ἐξουσία’는 자격이나 권리 등의 뜻이고, ‘뒤나미스δύναμις’는 실제적인 힘이므로 이 두 낱말은 잘 구분하는 것이 필요한데 [개역(개정)]은 ‘권위’, ‘권능’, ‘권세’ 등을 일관성없이 사용하여 번역하였기 때문에 읽을 때 어려움이 있다. ......일차적인 원인은 번역자가 두 낱말의 의미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데 있겠지만(신학적인 이유), 그 한자어들이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불분명성도 그 못지 않은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어휘 자체의 문제)
.....한자 ‘權(권)’은 ‘자격’, ‘판단/판정’ 등의 뜻을 갖고 있어서 이 한 음절만으로 ‘엑수시아ἐξουσία’를 나타낼 수 있다. [개역개정]에서는 달라졌지만 [개역]에서는 그 예들을 볼 수 있다.
//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 9:21; 개역개정은 ‘권한’) //
//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고전 9:4-6; 개역개정은 ‘권리’) //
//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히 13:11; 개역개정은 ‘권한’) //
.......여기에 ‘힘’의 뜻을 갖는 ‘威(위)’, ‘勢(세)’, ‘能(능)’ 등이 붙어서 ‘권위’, ‘권세’, ‘권능’이 되었으니 이 낱말들은 출생부터 구별되어야 할 두 개념이 붙어 있는 말이다. 이런 낱말들을 사용하여서 구분하여 나타내야 할 말들의 대응어로 삼는 것은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미리 요약하면, ‘엑수시아ἐξουσία’의 번역에는 ‘권위’나 ‘권세’보다는 차라리 ‘권리’나 ‘권한’이 나아 보이고 아예 ‘자격/신분’으로 옮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정]역에서는 ‘권리’나 ‘권한’을 비교적 더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미흡하다.
====‘뒤나미스δύναμις’의 주된 의미로 ‘권능’이나 ‘권세’로 볼 수 있는데 어감상 오해의 소지가 좀 줄어들겠지만 이 역시 (dynamic, dynamite로 용례가 확장되고 있지만, 집중적-폭발적-기적적 능력)으로서의 공급 받는바 ‘능력’이나 ‘힘’으로 번역하면 좋을 것 같다.
>>1. ‘엑수시아ἐξουσία’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공급-부여해 주신바] 자격, 영역, 소속, 원천 등의 뜻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어떤 일/말을 할 수 있는 자격/신분이 있을 때 엑수시아가 있는 것이다. ......위에 보인 것처럼 ‘권리’나 ‘권한’으로 옮기는 것이 좋고 영어로는 authority, right, capacity 등이 적당하다. ‘권능’으로 번역하는 것은 거의 오역이라고 본다. 몇 본문들을 살펴본다. 본문은 모두 [개정개역]이다.
(본문1)//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마 9:6) //.....여기 ‘권능’은 오역으로 볼 수밖에 없다. ‘힘’이나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중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병행본문은 ‘권세’로 옮겨서 좀 낫지만 두 경우 다 권리나 자격으로 번역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막 2:10) //
(본문2)//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 9:8) //......본문1에서 마태복음의 이어지는 이 본문의 ‘권능’ 역시 마찬가지다. 죄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이 사람에게 주어진 것을 말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본문3)//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이 본문도 마찬가지다. 얼른 생각하면 뒤나미스δύναμις가 어울릴 것 같은 자리인데 엑수시아ἐξουσία가 사용되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축사와 신유의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주신다.
===아래는 [엑수시아]를 ‘권위’ 또는 ‘권세’로 번역한 예들로, 다행히 문맥의 뜻을 붙들고 있다.
//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마 21:23) //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
//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
//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계 2:26) //
>>2.‘뒤나미스δύναμις’는 실제로 나타난/나타나는 [하나님의 일하심인 동력으로서] 공급하시는 바 근원적 힘이며, 그래서 어떤 상태나 위치를 변경시킬 수 있는, 표현하고 드러나게 하는, 크고 작은 실제 능력이다. 그런 뜻으로 사용되지 않을 때에는 힘이나 능력을 실제로 소유하거나 발휘할 수 있는 존재나 인격을 가리킨다.
===‘권능’으로 자주 번역되지만 다른 낱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능력’이나 ‘힘’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역은 (그 근원이시며 공급하시는 분의) power, might, strength, ability 등으로 옮기는데 복음서에서는 자주 (결과로서) miracle로 번역한다. .....뒤나미스의 유사/유의어로는 크라토스(개인 아니라 모여진, 대중-집단적 힘/세력/통치력/인권-...데모크라시가 유래됨) κράτος, ::: 이스퀴스(힘>능력...타고난 신체적 힘이나 전인적-개인적 힘/능력의 의미로 주로 사용) ἰσχύς, ::: 에네르기아(운동력, 활동력) ἐνέργεια 등이 있다.
(본문1)//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13) //........이 ‘권세’는 애매한 번역이다. ‘능력’ 또는 ‘힘’으로 옮기는 것이 낫다. 가이사가 갖고 있는 힘이 실제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 갖고 계신 힘이 실제적이고 진짜 힘이라고 교회가 고백하는 것이 이 송영의 의미이다.
(본문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이 본문의 ‘능력’은 뒤나미스δύναμις의 뜻을 잘 드러낸 번역이다. 뒤나미스는 실제로 작용하거나 작용할 수 있는 힘이다. 사두개인이 믿든 믿지 않든 부활의 능력이 아버지께 있다. 아버지께 있는 부활의 능력이 실제적인 능력이므로 부활도 실재다.
(본문3)//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 25:15) //......이 ‘재능’ 역시 뒤나미스δύναμις의 번역어이다. 대부분의 영역은 ability로 번역하였고 SLT는 power로 번역하였다. 주인이 종에게 달란트를 맡길 때는 그 달란트를 다룰 수 있는 ‘능력’따라 맡긴다.
(본문4)//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 ‘권능’은 증인이 될 수 있는 ‘자격/권위’가 아니라 증인이 되는 ‘힘’이다. 제자가 될 자격/권위 – 엑수시아ἐξουσία – 는 주께로부터 받고 (그렇게 그리스도로 실제 살아 가는, 살아계신 그분의 삶 그대로 사는바 반사-반영-달구어진 담지자인 제자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실지로 사는자이자, 동시에 그리스도의 담지자이기에, 늘 새오리 그 안에 담아주시며 전하라 하시는 그 복음 = 생명 말씀그리스도를 전파하여 넘겨줌, 그 능력이야말로 뒤나미스임] 증인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은 성령으로부터 받는다. 성령께서 주시는 증인 능력은 실제적인 능력이다.
......아래는 다소 다른 낱말이 사용된 경우들이다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퓔레 = 대문/문. πύλη’)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
//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카텍수시아조=카타+엑수시아조..압제하다, 권세 부리다) κατεξουσιάζω’)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마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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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앙망하는(사40: 영혼에게 주시는 ((부활/회복/창조/성취 + 보호/방어/지킴))의 능력!! = <코아흐-כוח + <오즈עזֹ<
[창15: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엘 마겐 + 마시아....)) 너의 지극히 큰 상급((= 보수/대가..은혜))이니라]
[사40:28-31...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시81:1...우리 능력 되신 하나님께 높이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할찌어다]....
[마3:17...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후13: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능력의 히브리어는 <코아흐כוח <또는 <오즈עזֹ<.....*1) 코아흐כוח<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영혼에게 주시는, 주님 그분 자신이신 능력, 곧 권능=뒤나미스을 의미....수동적인 인생에서 (오똑이처럼!!) 능동적으로 일어서는 그 힘, 힘 권세 능력 권능의 의미로 사용 *2) <오즈עזֹ<에는 힘과 보호라는 뜻이 있다....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전지전능 하나님께서 친히 그늘이되사 보호하시는바 불의 방어벽/방패-피난처/안식처-요새/산성/반석 되심 의미 ---하나님을 앙망 하는 자에게 주시는 능력이 <코아흐כוח<와 <오즈עזֹ<입니다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인생의 길을 열 수 있는 힘입니다 그 어떠한 위험과 위협에서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보호 하시는 그 힘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영혼에게 오늘도 일하고 계십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그 능력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기에..
##JC께서 찾으시는 그 사람이여!!...성육신하여 오신, 대속의 십자가 죽음-부활-승천을 통해 <신성과 함께 참 인성을 얻으신> 만인의 구주-Q-대제사장이시요 차원의 제약 받지 않으시는 그영이 되사, 영접하는 이 곧, JC를 개인적인 구주와 Q로 진정 영접하여 하나됨으로 붙좇는 믿음과 그의 주님-주인-왕-머리로 삼고 친밀한 영적 교통과 직관으로 주님의 움직임과 운행하신-행하심따라 한걸음씩 동행하는 참되게 믿는 거듭난 단독자인 지체, 단체적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여금 그분을 "주는 나의 도드, 우리의 도드"라 부름을 기뻐하시는 분 JC...구주의 부활 승천 후에도 (하늘에서 하나님 곁에서, <몸소 사람으로서 이 땅을 사시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겪어 아시고 모든 시험 받고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이기셨기에> 그토록 많은 눈물과 부르짖음으로 여전히 유일무이한 중보,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중보하고 계시는 분을 바라볼지니.. <오직 모든 세대의 그 어느 한 사람도 멸망당하지 않도록, 회개하고 돌이켜 주 이름 불러 영접하여 믿어들어감으로써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Q이 사람을 지으신 이후로 그토록 오래 참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병듦, 곧 무지무각-연약함에처해 있어서 그들이 스스로 무엇 하고 있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자각이 없어 전혀 모르고 있음에 대해 긍휼히 여기사 모든 자비하심으로써] 더 참아주시도록 간구하고 계심>으로 인해(공의의 Q, 그분의 쌓여진 진노 쏟아냄을 아드님의 십자가 대속의 보혈 흘림의 공로를 보사 보류하시고 Q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더 오래참아주시도록..그리고 땅끝까지 모든 이들이 주님의 복음 듣도록 전파되기까지 기다려주시도록...이것이 주의 재림 지연의 유일한 이유일지니 ), 바로 그분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어린양의 아내-반쪽으로서 JC의 마음=곧 생각과 심정을 알아드리며 날마다 눈물 범벅이 되어 계신 사랑하는 분 구주 JC의 마음을 찢는 애통의 중보에 전존재 기울여 동참하는자, 바로 그분의 사랑하심과 포기할 수 없는 열정을 그 자신이 경험하였고, 그분의 모든 것을 그 자체로 사랑하기에, 모든 것 내려놓고 내어 비워드려 그분으로 채워지기를 갈망하며, 막힘없이 교통하며 순종하며, 그분의 은혜에 동참함의 친밀한, 다함없는 기쁨으로 넘치며, 상황-환경-형편-처지에 괘념치 않고 일편단심 주와 하나됨으로 붙좇는자...주예수님은 그대와 하나되시려 하나님과 동등됨 내려놓으시고 피조된 첫사람의, 티락이전의 참 인성 얻으사 거듭난 그대를 당신의 반쪽, 신부로 삼으셨으니, 이제 주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내주하여 그대로부터 타락한 인성, 곧 죄성/육신/옛자아를 처리하시려 고난/역경 모든 어려음 가운데서 영원한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 곧 사랑-기쁨-평강 근원이 되고 계신다
.....[마16: 24-28...*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이 때 바로 그 주님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바대로...그분의 긍휼어린 마음으로 한반도, 대한민국과 북한의 영적 실상과 [악이 악을 대하여 서로 권력투쟁하는 가운데 공멸에 빠져들기를 꾀하는] 사탄마귀의 궤계로 인한 영적 착시와 혼돈-염증을 불러 일으키는 현 실상에 대한 참된 이해를 가지고 중보/중재하도록 분별하며 합당하게 부르짖도록 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기도는 결코 사라지지않음..
■ 팬데오..임마누엘 성령께서 (그 성령 받은 사람 자신의 자의적인 불순종-거스름-만홀히여김-거역함에 대해) 극도로 세심하게 살피시며 근심하며 슬퍼하시는 바,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조차도 그스스로도 [삶의 가장 크고 유일한 의미가 되시는] 성령 임재가 떠남 인해 버려질 수 있음에 대해서 감지하고서 "애통함으로 목놓아 통곡하며 전존재를 기울여 회개하며 절대적으로 간청하고 있는바"...선 줄로 아는 자, 넘어질까 조심할지니.....이 땅을 걷는 거듭난 참 제자중 그 누구라 해도...그 어떤 영적 부담감이 찾아올때면, 지체말고 주께 나아가 조명받고] <내>모습때문에 애통<펜데오-πενθεω>함으로써, 하늘 문이 늘 열려있도록 함이 중요하다!
[마5:4-5...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욜2:12...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요16:20....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애통하다의 헬라어가 <펜데오πενθεω>, 슬퍼하다 아파하다의 뜻... --<유월절>의 넘어 간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페사흐פסח<에 그 뜻이 숨겨져 있다
---<펜데오πενθεω>의 뜻에는 <절뚝 거리다>의 의미가 또한 담겨 있다... 얍복강에서 야곱이 하나님의 사람과 영적 씨름 했을 때의 그 모습, 고난 당하는 영혼이 하나님 앞에 와서 절뚝거리며 영적인 씨름을 하는 모습이야말로, 처절한 애통의 마음일 것
..--<펜데오πενθεω>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통곡하는 모습. 그러한 고통스러운 절규가 애통... 진정한 <애통>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주님 없이는 단지 지옥의 불쏘시개 감일 뿐,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보면서 마음을 찢는 것일지니... 구주와 단절된 채 아무런 소망 없는 <내> 죄의 모습을 보면서 <애통>하며 <절뚝거리며> 마음 아파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것이요, <애통>을 통해서 <유월절>의 은혜를 경험케 되며, 극한 고통과 고난의 시간에 어린 양의 피를 믿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니....<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 그리스도, <내>죄로 인해서 죽었음을 진정으로 애통하며 슬퍼할 때 보이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애통하는 영혼이 깊이 만나는 그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다른 어떤 위로보다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니...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다.
■<바카- כהָ֖בָּ<통곡.... 헬>클라이오
[눅22:61-62...“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바카- כהָ֖בָּ<통곡.... 히브리어로 <바카- כהָ֖בָּ<..... “통곡을 하다, 눈물 흘리다, 울다”의 의미...다. “매우 큰 소리로 울면서 통곡하는 것”이 <바카>....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것... 하나님의 존 전에서 마음을 찢는 것.... 하나님 앞에서 가장 마음이 낮은 상태(=심령이 가난함))....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절대 시간.... 이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는 것뿐....그 통곡이 하늘 문을 열 것이니,.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감동하시게 할 것인데.... 통곡 속에 깊은 회개가 있기 때문이요, 겸손과 자기 부인이 통곡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면 하늘의 기적의 문을 여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겟세마네에서의 심한 통곡<크라조-κράζω>!!
[마26:37-39...*37.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히5: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크라조, 크라우게)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계 21: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크라우게)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크라우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는 사라지고 없는 염려의 부르짖음을 나타낸다: "(참조: 히 5:7; 고난의 길에 대한 예수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통곡 겟세마네 동산에서…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밤이 늦도록 기도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물로 간구하시며 심히 통곡하셨던 그 모습을 헬라어로 <크라조κράζω>...영어의 cry가 헬라어 <크라조κράζω>에서 왔다 ...심한 통곡의 울음 영혼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의 고백.
.......<크라조κράζω>는 외치다, 부르다, 부르짖다, 소리높여/소리질러 외치다 고함치다, 함성 지르다, 심히 통곡하며 울다의 뜻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로 인해서 타락한 세상을 향해서 진리를 심히 크게 외쳤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그 간절한 마음이 그 외침 속에 흘러 넘쳤다 이 세상을 향한 <크라조κράζω>였다
.......공생애의 시간동안 오직 진리만을 외치며 천국 복음만을 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올라 가시는 그 길 앞에서 심히 통곡하셨다 이 세상에 타락한 죄악을 바라 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식과 절규가 그 간절한 통곡의 기도 속에 있었다 영혼 구원을 위한 <크라조κράζω>였다....예수 그리스도의 <크라조κράζω>의 외침과 통곡 그 간절한 마음이 그를 십자가로 이끄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으로 충만하셨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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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26:3-6...*3.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기억하라...그리스도의 통치영역을 의미하는 좋은 땅 가나안,으로 들어와 누리는 거듭난 참 믿는이마다, 가나안의 서쪽과 동쪽 경계로서 대해와 요단강, 북쪽 경계 이루는 유브라데 강들은[=흑암과 사망-혼돈-공허 그 자체] 이제 주님과 하나 그 안에서!! 곧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 안에서 이미 영원히 이겼음을 의미한다...그러나, 대해 = 무저갱이요 해안가 블레셋은 여전히 함께 공멸 유도 위한 사탄마귀로부터 유래한 그에게 속한 세상 정신이요[영원유일무이 참생명 누림 떠나도록 오해-착각 유발하는 미혹/유혹/탐욕/자랑/교만 추종케 만들며, 구주의 참생명에 대해 무관심-냉냉함-대적-조롱함의, 잠들게 마취-중독되게 함의 휩쓸려가는 바람이요 거품과 같은 유행과 풍조 =사상 가치]..남쪽 경계를 이루는 지역들인 애굽-에돔-염해는 인본주의(사탄체계인 세상을 의미하는 애굽)-물질주의(육신의 정욕을 의미하는 에돔/아말렉)-쾌락주의(소돔과 고모라)를 의미하며 가나안 땅 안에조차도 멸절되어야 할 온갖 중독과 사로잡힘의 영적 질병이 만연한 상태임... 이교숭배(우상숭배)-사신숭배(초혼-영매-무당)-기복신앙(몰렉숭배-점쟁이-복술사-주술사)으로 물들어 있는 바, 이제는 주님의 기도 안에서 깨어나서 기도와 금식으로 영적 무장을 강화해야 한다...지금 모든 나라 족속 백성 방언, 곧 열방의 영적 상황이 그러하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통곡하시는분!!, 주님의 눈물]]
[시147..비 준비하시니.]
우리 주는 위대하며 능력이 많으시도다 그의 지혜 무궁하며 인자는 영원하도다
//상한 자들 고치시며 상처를 싸매시도다 별들의 수를 세시며 이름을 붙이셨도다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 준비하시니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네 하나님을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가며 주 임재 앞에 경배해
((눅 19:40-44...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주께서 만들어가고 계시는바 요즘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네눈이 감았고 네귀를 막았기에) 숨겨졌도다 43. (그러하였기에 심판의 그날)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흘리는 눈물, 그리고 받은바 은혜를 깨닫고 감격해서 흘리는 눈물이 [통곡 = 바카 = 클라이오...심령의 가난함, 곧 오직 주님만 바라기 그 자체인 낮은 마음의 통곡, 반드시 주님 자신을 부어주심으로 응답 받는-또한 거듭난 믿는이에게 이웃과 세상 위한 중재의 권세 부여해 주심 됨]그것입니다 . ......그런데 세상 사람은 당연히 모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알기 힘든 아주 특별한 눈물이 있습니다. 바로 (구원받을 수 있는 때와 기회에 대해 스스로 마음을 완고하게 함으로써 영적 눈과 귀를 감고 막아 그 기회를 잃어버림을 너무나도 안타까워 하시며!!) 주님께서 흘리신 눈물[= 크라조, 크라우게, 이 통곡은 에로타오의, 하나님으로서 아버지께 친밀한 하나이기에 말씀드리는 중보이기도 함]입니다.
사랑하시기에 흘리신 통곡의 눈물이고, 안타까워 흘리신 목놓아 통곡하며 흘리는 눈물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이 아주 특별한 눈물, 바로 주님의 눈물을 보게 됩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정에서 있었던 한 장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계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지금 입성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이제 당장 그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출해내고 지상의 메시아왕국을 도래케 할 다윗의 자손이어야만 한다"는 사탄적 기만으로 인해 오해와 착각 가운데 빠져 있던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길에 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흔들면서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서는 영광이로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우신 것입니다. 본문 4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여기서 “우시며”라는 말은, "통곡하시며"를 뜻합니다... 성경원어 헬라어 ‘클라이오’(κλαίω) = 히브리어 "바카-<כהָ֖בָּ<"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감정을 절제하며 소리 없이 우는 내적인 슬픔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슬픈 감정을 격렬하게 밖으로 드러내어 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리 내어 통곡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우신 것일까요? 4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예수님께서 통곡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우선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누구 때문에 우신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너’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너는 바로 예루살렘 성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으로 대표되는 예루살렘 사람들, 나아가 당시 (사탄 마귀의 계략에 자기를 내어주어 하나되어버린채 성육신하여 임하신 초림의 주께 대해 눈과 귀를 감고 막은 결과 주님이 행하고 계시는 일에[대속의 십자가 지시려 예루살렘 입성하고 계심에] 대해서도 오해와 착각 가운데 빠져 있어서!!, 주님의 초림 의미를 곡해하여 그들 의견만 완고하게 내세우는 결과, 조금 있으면 그 결과로 인해 구원받음의 기회를 상실하고 완전한 폐허에 이르는 뼈아픈 종말을 맞게 될 [(AD.70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멸망케 됨]게 되는!!)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성의 황폐해질 것과 그 화려한 헤롯성전이 완전히 무너질 것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고....그러나, 더 나아가 부활 승천 가운데서 믿는이 안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부활 생명의 생명샘-- 바로 그 생명수시요, 또한 위로부터 부어지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갈망(이 땅에 건축되고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로서의 주님의 교회)야말로 진정한 영적 예루살렘이요, 더 나아가 재림하실 주님은 천년왕국을 통해 친히 왕으로서 예루살렘보좌를 여실 것을 염두에 두고 계심에 대해서도 알지못함입니다...((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통해 TUQ안으로 들어가서 삶의 하나", 그 신비로운, 경이의 생명 삶 누림 모르는 이들을 위해 울고 계심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신 것일까요? 본문 4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사람들과 유대인들이 평화에 관한 일을 [무관심하기에...전혀. 아니 하나도!!] 알지 못한 것을 보시고 통곡하며 우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이란 성의 이름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이 세우시다.”라는 뜻의 ‘여루엘’(ירוא)과 “평화”라는 뜻의 ‘샬렘’(שלם)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의 이름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평화의 성’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주시려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예루살렘 성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을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전파되는(영원한 터를 잡고 기초를 다지시고 세우신 도성...곧 참 평강을 가르치고 보내심으로써) 중심지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보실 때 이 예루살렘에 평화가 깨져 사라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평화의 성에 평화를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평화를 전파해야 할 중심지에 전파할 평화가, [대속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려친히 자원하여 나아가고 계시는, 주님이 현재 진행하고 계시며 그것에 대해 자기 영혼을 각성시켜 주께 고침 받은 그대로 참되게 보고 알아듣고 (주님이 열어주시고 넣어 공급해주신) 참 믿음으로 반응하며 전파함으로써 참회개를 통해 영생구원에에 이르도록 전파하는, 진정한 평화의 전파자들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다른 성에 평화가 깨졌다면 이렇게 우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평화의 성에 정작 평화가 깨져버린 것을 보시자 우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에 평화가 깨졌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평화가 깨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 예루살렘에는 그냥 겉만 보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전쟁이 벌어지고 있거나 특별한 분쟁이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유월절 명절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큰 문제없이 평화스러운 일상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강력한 힘으로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은 평화가 깨졌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평화가 깨졌다고 우신 것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모르는 참된 평화를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4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평화”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이 말은 신약의 헬라어로 ‘에이레네’(είρήγη)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구약의 히브리어로는 ‘샬롬’(שלם)과 같은 뜻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 말은 하나님과의 평화에서 비롯된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이룬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로 이 세상에서 이루고 또 누리게 되는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지금 예루살렘을 보실 때 이 에이레네가 깨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평화가 깨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분을 침되게 믿는 제자들 외에는(물론 당시까지는 비록 JC를 참되게 알며-사랑하며-신뢰하며-동행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가진 바 참 믿음은 아직은 설익은 상태라.. 그분을 위해 목숨까지는 내어놓을 정도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태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전체가 진정한 왕이신 그분께 등을 돌리고 사탄마귀의 오도하는 그 오류에 미혹-현혹되고 유혹에 빠져 자진하여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사탄마귀와 하나되어서 반역함(+오해/착각 가운데 머물러 있어서 영적 사망의 깊은 잠에 취해, 마취-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이가 없음) 인해....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에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예 스스로 자격 박탈당함을 자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이 깨져버린 평화를 회복하시려고 [대속의 죽음 죽어주시려!!]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신 것입니다. 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회복시키시려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신 것입니다. 이 땅에 깨져버린 평화를 바로 저 하나님께서 세우신 평화의 성 예루살렘에서 다시 세우시려고 가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란 단어의 진정한 참 뜻은 바로 이것입니다. 당연히 총칼로 싸우는 열전도 없는 상태는 물론이고, 서로 대립하고 다투는 냉전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서로 형제요 이웃으로, 협력하고 존중하고 하나를 이루어 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평화 에이레네는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사람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해를 통해 죄를 사함 받고, 용납 받은 사람들 그들만이 이웃을 용납하며 이웃과 화해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열전을 벌이지 않더라도 냉전을 벌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냉전까지 그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화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해를 체험하며 얻은 그 능력으로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화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주님의 눈물))..
앞에서 왜 예수님께서 우셨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예루살렘 입성 , 바로 그 시점에, 그 길에서] 이 때 우셨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주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메시아의 등극을 기대하며 열렬하게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통곡하신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이 때 통곡하셨을까요? 혼자서 남몰래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실 수 있으셨을 텐데, 왜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분위기 파악도 못하시고 우셔야 했을까요?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시려고 우신 것이 아닙니다. 복받쳐 오르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주체하실 수 없었기 때문에 우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울음, 이 눈물 때문에[즉, 성육신하신 참 사람-참 하나님의 클라이오(애통/중보/중재)-크라조(중보/긍휼)]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 화해가 깨진 저 불쌍한 예루살렘 백성들 때문에 우신 그 눈물이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면 안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해가 깨진 채 이 세상에서 평화를 잃어버리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저 불쌍한 유대인들 때문에 우신 그 울음이 십자가를 지시게 한 것입니다.[ 탕자 비유의 아버지는 많이 아팠다.... 그는 실망, 반발, 욕구불만이 가득 찬 얼굴로 떠나는 작은 아들을 보았다. 또한 화가 잔뜩 나서 자기를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큰 아들을 보았다.... 그의 생애 대부분이 기다림으로 채워졌다. 작은 아들을 강제로 데려올 수도 없었고, 큰 아들의 불만을 채워줄 수도 없었다. 오직, 그들이 스스로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 있었을 뿐.... 이 오랜 기다림의 세월 동안, 아버지는 많이 울었고, 여러 번 죽었다. 그는 고통으로 인하여 텅 빈 몸이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비어있음이, 때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들을 환영하는 장소가 되었다.] ...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이 탕자가 된 작은 아들을 기다릴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이 그 아들을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이 그 아들을 다시 아들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여기에 눈물의 힘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이 둘째 아들을 용서하고 환영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이 아드님이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원하여!! 십자가에 달릴 수 있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처럼 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처럼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랍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햇빛만 쏟아지는 곳은 사막이 된다.” 비가 오지 않는 햇빛만 쏟아지는 곳, 그곳은 사막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물이 없는 인생은 마치 사막처럼 삭막합니다. 감동도 없고 감격도 없고 안타까움도 없습니다. 열정도 없고, 충성도 없고, 헌신도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명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른 눈으로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눈물로 회개하는 사람이 죄사함을 받고,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한 말일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 사람들 그들이 차원 다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뜨거운 눈물로 회개한 사람들이 진정한 용서를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을 들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뜨거운 눈물로 기도한 사람들이 생생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 34:18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눈물에 반응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눈물이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시 6:6-8.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띠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도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단비가 대지를 적시고 생기를 주듯이, 믿음의 눈물이 우리의 믿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기 때문입니다. 눈물이 마르면 우리 믿음이 화석처럼 굳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눅 23:28. “(십자가에 달리시려 골고다 언덕 오르실 때)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여인들이 따라오며 우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딱한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 하신 것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지고, 그 결과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큰 화를 겪게 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 하신 것입니다. 이 울음이 하나님께 기도하게 해 줄 것이고, 이 울음이 더욱 뜨겁게 주를 믿게 해 줄 것이고, 이 울음이 결국 구원 길을 열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아직 다 사함 받지 못한 죄를 생각하며 울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평화를 이루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울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 우리 가족들, 우리 가까운 이웃들을 위해 울어야 하겠습니다. 아직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지 못한 그들을 보고 울어야 하겠습니다.
@@영적 예루살렘의 회복이 최우선임.. 성령을 받으라(=람바노)...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요20:21-23..*21.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생명 샘물/본질적 부활생명이신 성령 충만으로 삶))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행1:8...*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생명 강수=경륜적 권능의 영, 곧 의의 옷이신 그리스도를 옷입음)) 너희가 권능을 받고(=람바노)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15:1...*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다바르, 로고스) 환상 중에(=in a vision)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아마르)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shield...엘 마겐, 보호/지킴/불의 방어벽이신 분)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exceeding great reward = GRACE..은혜/은총/누림이신 분.)]
[창17 :1-8...*1.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코림데오) 완전하라(=타밈) *2.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아브람이 엎드렸더니(=아멘-이멘-아멘!!)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임마누엘 = 하나 됨의 교통, 충분한 모든 것 되심)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좋은 땅 JC)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예루살렘:::: 여호수아서에 처음 언급... 히브리어로는 ‘예루샬라임’ =. Yarah(보내다, 가르치다 = 터전, 기초..여루엘=하나님이 세우시다)와 shalem(평화 = 실로.JC)가 합쳐져 ‘평화가 거하는 곳’ 즉 평화의 도시......하나님의 성전이 있기에 성경은 ‘거룩한 성’ ‘시온’(성전이 있는 언덕/산 이름), 다윗왕의 점령이후 왕도로 삼았기에 ‘다윗성’이라 불림......“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 52:9∼10)@@@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Behold, how good and how pleasant it is For brothers to dwell in unity!
-שׁיר המעלות לדוד הנה מה־טוב ומה־נעים שׁבת אחים גם־יחד
예루살렘의 히브리어 יְרוּשָׁלַםִ [yerûshâlaim ; 예루샬라임]은 '흐르다, 쏘다, 가리키다, 가르치다' (=[기초/터전/근원]가르치다+가리켜 쏘아/흘려 보내다)라는 뜻의 יָרָה [yârâh ; 야라]와 '안전하다, 평화롭다, 완결되다, 끝내다, 회복하다, 성취하다'(=평화/안전 + 완성/완결/성취/회복) 라는 뜻의 שָׁלַם [shâlam ; 샬람]이 합성된 단어이다.
선하고(good)로 번역된 히브리어 טוב [ṭôb ; 토브]는 '좋은, 훌륭한, 더 나은, 즐거운, 부유한, 뛰어난, 가치있는, 적합한, 즐거운, 기쁜, 행복한..' 등 긍정적인 거의 모든 표현으로 번역될 수 있는 형용사형 단어이며 동일한 뜻의 명사로도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아름다운고(pleasant)로 번역된 נעים [nâ‛ı̂ym ; 나이임] 역시 '사랑스러운, 달콤한, 기분 좋은, 쾌적한, 꼭 맞는, 아름다운, 예쁜..' 등의 수많은 긍정적인 표현으로 번역될 수 있는 형용사형 단어이다.
연합(unity)으로 번역된 יחד [yachad ; 야카드..야하드]는 '연합'이라는 뜻의 남성 명사와 '함께'라는 뜻의 부사로 함께 사용되는 단어이다.
야카드는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가진 유대인들이나 구별할 수 있는 발음의 차이를 가진, '묶다, 묶이다, 연결하다, 연결되다'의 뜻을 가진 동사형 단어 יחד [yâchad ; 야카드]에서 유래되었다.
====마라의 토라와 야라(가르치다)====
구약성경을 히브리말로 '토라'라고 부른다. '토라'라고 말하면 또한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다섯 권을 가리키기도 한다.
히브리어 성경책은 삼부작으로 편성되어 있는데 그중 제1부를 '오경'이라 부르며 이것이 히브리어로는 '토라'이다.
==='토라'는 '가르치다/가리키다'를 뜻하는 '야라'란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이다.
이처럼 동사 '야라'나 명사 '토라'는 무엇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행위를 함의하고 있다. 성경을 '토라'라고 부를 때 성경은 일종의 교육서라는 뜻을 전제한다.
....'야라'라는 동사가 쓰인 성경 구절들 중에 교육의 뜻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곳은 출애굽기 15장 25절이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 구절에서 '가리키시니'라고 번역한 동사의 원어가 바로 '야라'이다. 이것은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변하게 한 기적 이야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I. 출애굽 : 탈출로서의 구원
토라에서 출애굽기는 창세기 다음에 나온다. 창세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일대기를 차례차례 보여 주면서 야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교육시키시는 과정을 소상하게 보여 주고 있다.
믿음의 조상들은 세상 속에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산다. 우여곡절 끝에 그 자손인 이스라엘은 마침내 애굽 제국으로 이주해 와서 고센 땅에 정착하게 된다.
출애굽기는 애굽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이 어떻게 노예로 전락하여 히브리인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해 준다.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매우 번성하고 그 인구가 크게 불어났다. 그러자 애굽의 지배자 파라오는 매우 불안해진다. 적군이 쳐들어올 경우에 히브리인들이 배신하고 적국의 편으로 돌변하면 국가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염려가 파라오에게 생긴 것이다(출 1:10). 급기야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을 박해하기로 결심하고 그들에게 심한 노역을 시킨다. 애굽 땅에 살던 이스라엘, 곧 히브리인들은 마침내 노예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역이 심하여지자 히브리인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쳤다. 이에 야훼 하나님께서 이들을 파라오의 압제로부터 구출하여 내시기로 작정하신다. 히브리인들 가운데 모세를 택하여 그를 광야에서 교육하시고 그를 애굽 파라오에게 보내어 히브리인들을 애굽 땅에서 탈출하게 하신다.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완강하게 거절하는 파라오를 꺾으시고 히브리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신다. 파라오는 뒤늦게 탈출하는 히브리인들을 추격하였지만, 홍해를 건너던 이스라엘을 추격하다가 애굽의 군대는 홍해의 물속에 다 수장되어 몰살당하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야훼 하나님의 구원하신 은총을 크게 찬양하며 즐거워하였다. 이상이 출 15:22~27 문단의 앞에 펼쳐진 이야기의 줄거리이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이 맨 처음 인도되어 들어간 곳이 수르 광야이다. 광야는 사막과 같이 물이 없이 건조하여 초지나 수림도 없으며 더구나 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매우 위험한 곳이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후 이처럼 척박하고 위험한 땅 광야로 그들을 이끌고 가신 것이다.
II. 광야의 교육 현장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광야로 이끌고 가셨는가? 애굽이라는 제국 안에서 혁명을 일으켜서 파라오와 같은 독재자가 이끄는 전제군주제를 타파하시고 히브리인들로 하여금 정권을 잡게 하지 않으셨는가?.....애굽은 당시에 고대 근동에서 가장 강력하고 문명이 발달한 국가였다. 소위 최고의 선진국이요 강국으로서 오늘의 미국과 같은 위상을 누리던 나라가 애굽이었다. 이처럼 살기 좋은 국가였지만 그 국가의 번영을 위하여 히브리인들은 차별당하고 강제 노동에 종사하였다. 억압당하던 히브리인들이 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잡는다면 이야기는 더욱 극적인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악한 전제군주제를 철폐하고 애굽을 평등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시지 않았다. 그 대신 애굽에서 히브리인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셨다......애굽의 백성은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이었다. 히브리인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다. 애굽의 폭력성은 창세기에도 나온다. 아브람이 하란 도성을 떠났을 때 가나안 땅을 거쳐서 애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애굽에 들어갈 때 아브람은 몹시 두려웠다.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아내 사래의 미모를 보고 애굽인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까 봐 아브람은 두려워했다. 아브람은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여야 했다. 애굽 도성에 들어갔을 때 과연 파라오는 사래의 미모를 보고 자신의 후궁으로 데리고 가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애굽의 폭력을 보고 파라오의 궁을 내리쳐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본 남편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하셨다. 이에 아브람은 애굽을 탈출하여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갔다.........애굽으로 팔려 간 요셉의 이야기에서도 애굽의 폭력성은 드러나 있다. 미디안의 약대 상인들이 요셉을 사서 애굽으로 팔아넘긴다. 애굽은 노예를 매매하는 집단이었다. 근위대장 보디발의 아내도 요셉에게 성폭행을 가하였다. 그녀는 권력을 이용하여 요셉을 모함함으로써 요셉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기근을 이용하여 애굽 농민이 소유한 토지를 모조리 매점하여 절대군주 파라오의 소유로 넘겼다. 요셉조차도 애굽의 폭력성의 논리에 파묻혀서 권력을 이용한 폭력을 농민들에게 행사하였던 것이다. ..... 애굽 땅에서 히브리인들은 억압을 당하다가 너무나 힘겨운 나머지 스스로 폭력을 행사하는 자로 둔갑하고 말았다. 애굽의 궁전에서 자라난 모세가 히브리인을 폭행하는 한 애굽 사람을 보고 그를 쳐서 죽여 땅에 암매장하였다. 모세조차도 애굽의 궁전에서 자란 나머지 폭력성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모세가 다음날 저잣거리에 나가 보니 이번에는 히브리인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출 2:13). 모세가 그 잘못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애굽에 살던 히브리인들도 모세와 마찬가지로 폭력성에 물들어 있어 날마다 서로 싸우는 생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 만약 이러한 폭력자 히브리인들이 폭력으로 혁명을 일으켜서 애굽의 권력을 잡았다면, 이들도 기존의 애굽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자들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노예들을 폭력의 현장에서 탈출시켜 광야로 인도하신 것이다. 광야에 나온 히브리인들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회복되고 평화의 인물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III. 하나님의 교육 목적
하나님의 교육하시는 목적은 폭력과 죄로 물들어 일그러진 사람의 형상을 그의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데 있다.
창세기 1~2장에서 사람의 창조를 무척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디 창조된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회복하려고 성령님은 창세기에 창조의 이야기를 수록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했다는 말은 사람이 본디 하나님처럼 생겼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목적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게 땅의 모든 생물을 잘 관리하고 다스리라는 사명을 주셨다.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모든 생물에게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은혜를 끼치며 하나님처럼 사랑을 퍼부어 주어야 한다. 모든 생물을 잘 다스리려면 모든 생물을 잘 먹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생육시키고 먹이시고 살리시는 것처럼 사람도 그렇게 하여야 한다.
그러나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는 모든 생물을 폭력으로 억압하는 존재로 타락한 존재이다. 가인이 자신의 존재가 인정을 받지 못하자 분노하여 동생 아벨을 때려서 죽였다. 죄는 폭력의 형태로 나타는 것이다. 애굽인들도 죄에 물들어 폭력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다. 폭력의 땅 애굽에서 폭력의 죄악에 물든 히브인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폭행에 물든 사람들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할 수 있을까? 걸핏하면 분쟁하고 싸우는 자들을 어떻게 사랑과 평화의 일꾼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평화의 일꾼을 이 땅에 재창조하기 위하여 히브리인들을 불러 내셨다. 폭력의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피해자들을 야훼 하나님은 택하신 것이다. 야훼는 어떤 분이신가? 창조주로서 애굽에서 노예살이로 고생하는 히브리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시다(출 20:2). 야훼는 세상에서 고생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택하여서 평화의 사도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목적이 여기에 있으니 기독교 교육의 목적도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이다.
IV.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백성 만들기
하나님께서는 교육의 현장을 광야로 잡으셨다. 택하신 백성 히브리인들의 인격을 변화시키고 인생관을 바꾸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아 바른 삶을 살도록 지도할 수 있는 적합한 장소는 광야였다. 히브리인들이 구원을 받고 복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리라 기대하였겠지만 히브리인들은 우선 광야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광야는 시험의 장소이다. 예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시험을 당하셨다. 하나님의 시험은 백성을 넘어뜨리고 낙오시키려고 주시는 것이 아니다.
히브리인들을 훈련시키고 연단하여 하나님나라에 걸맞는 새로운 백성으로 재창조하시려고 시험하신다. 하나님의 시험은 하나님의 백성을 선발하는 과정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교육하는 교과과정이다. 세상의 죄로 물들었던 인간을 씻겨서 정결하게 만들고(출 19:10) 성결하게 변화시키기 위해(레 19:2) 필요한 교육과정이 하나님의 시험이다. 광야에서 백성은 시험을 치루고 통과해야 한다.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 16:4).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광야를 여러 군데 거쳐서 하나님의 산, 시내 산으로 나아간다. 먼저 수르 광야를 건너고 신 광야와 르비딤 광야를 거쳐서 시내 광야에 이르렀다.
.........히브리인들이 홍해의 구원 사건 이후에 맨 처음 맞닥뜨린 삶의 현장은 수르 광야였다(출 15:22). 이 광야에서 백성이 보인 최초의 반응은 원망이었다. 사흘 길을 걸어 사막 같은 광야를 행진하게 되었을 때 백성은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출 15:24). 광야에서 처음 당하는 시험은 하나님과 그가 세우신 지도자를 원망하고픈 유혹이다. 이 유혹은 생활고에서 비롯된다. 마실 물이 없을 때 원망하는 마음이 솟구친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고픈 유혹을 이겨내야 폭력으로 가는 모든 길목을 차단할 수 있다. 원망의 저열한 영성을 버려야 비로소 지극한 평화의 법열에 이를 수 있다.
........신 광야로 들어갔을 때에는 먹을 양식이 없었다. 굶주린 백성은 이번에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출 16:2). 과거에 물질이 풍요했던 애굽의 종살이 시절을 기억하여 현재의 빈궁한 삶과 비교한다. 과거의 애굽이 더 좋았다는 것이다. 지금의 삶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불평하였다.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출 16:3).
......히브리인들이 르비딤 광야로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도 마실 물이 없었다. 백성은 모세와 다투면서 원망하였다(출 17:2~3). 가데스 므리바에서 백성은 도리어 여호와를 시험하였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출 17:7). 하나님께서 시험하신 목적은 백성을 연단하는 데 있지만,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은 불신앙과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심하는 백성에게 야훼께서는 아말렉 군대를 물리치시는 권능을 보여 주셨다. 아말렉을 물리치신 하나님께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다. '야훼는 깃대이시다'라는 뜻이다. 야훼께서 놋뱀을 높이 달아 올린 장대가 되셔서 이스라엘 가운데 우뚝 서서 계심을 보여 주신 것이다. 야훼 하나님은 백성 가운데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임마누엘로서 백성은 모든 원수를 물리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먼저 식의주의 문제로 시험하셨다. 먹고 사는 문제로 당하는 시험을 이겨내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취임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임마누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원수를 이겨 낼 수 있다. 폭력이 아니라 믿음으로 원수를 물리치고 이겨 낼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여야 한다.
V. 교육자 하나님 : '치료하는 여호와'
수르 광야에서 죄로 물든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쓴 물을 마실 수 없었다. 만일 백성이 순종하고 쓴 물을 참고 마셨더라면 쓴 물이 속에 들어가서 모든 노폐물과 숙변을 다 배설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쓴 물을 마셔야 했다. 그러나 백성은 쓴 물을 마실 수 없었다. 죄로 물든 백성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능력이 없다. 마치 쓴 물과 같은 존재가 백성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마실 수 없는 쓴 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모세를 원망하였다. 야훼께서는 쓴 물과 같은 히브리인들을 단물로 만들어 가신다.
먼저 모세가 기도하였을 때 가르침의 역사가 일어났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출 15:25). 이어서 야훼의 교육과정이 발생하였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에 대해서 알려 주셨다.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출 15:25). 여기에 동사 '야라'가 쓰였다. 이 동사의 기본되는 의미는 '가르치다'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쓴 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는 어떤 나무에 대해서 알려주신 것이다. 그 나무의 효능과 용법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 나무를 쓴 물에 던지니 그 물이 단물이 되었다.
이 신통한 나무는 '토라'를 상징한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법도('호크')와 율례('미쉬파트')와 계명('미츠와')과 규례('호크')를 정해 주셨다. 하나님은 '토라'를 가지고 백성을 시험하고 연단하며 애굽의 질병에 걸리지 않는 새로운 존재를 재창조하시려고 하신다. 그래서 야훼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라고 알려 주셨다(출 15:26).
===나가는 말
성경은 하나님의 페다고지[=어린 자녀 참생명 교육 교과서]이다. 성경을 통해서 배우는 하나님의 페다고지는 광야의 시험 과정이다. 하나님의 교육 현장은 광야이다.
식의주에 위협을 당하는 고난의 현장이 바로 광야이다. 하나님의 페다고지를 위한 교과서는 '토라' 곧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꾼을 양성하기 위한 교과서이다.
성경은 신주 단지와 같이 액을 막는 성물이 아니라 부적과 같이 액 막음을 하는 귀물도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공부하고 익히고 배우고 실천하기 위한 교과서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게 교육하신다. 기독교 교육은 하나님의 페다고지인 성경에 기초하여 그 체계를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사람을 바꾸려고 세상의 심리학이나 상담학에 근거한 세속의 교육학이 기독교 교육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주면 안 된다. 기독교 교육학자들이 심리학에 열중하기 보다는 성서의 본문을 더 깊이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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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카...헬>클라이오.
..(크게 소리내어 통곡함으로 목놓아 엉엉 ) 울다, 비탄(애통)하다,...바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울다, 비탄하다, 애통하다'를 의미한다.
히브리어에서 이 어근은 '기쁨이나 슬픔의 이유로 울다'를 의미하며, 슬픔으로 인하여 우는 경우에 이 어근이 사용될 때는 애도, 불평, 후회나 회개를 포함한다.
그러나 눈물이 눈과 관련되는데 반해, 울음은 소리와 관련된다; 셈인들은 조용히 울지 않고 큰 소리로 울었다. 동의어로는 다마크(눈물을 흘리다), 사파드(슬퍼하다), 그리고 죽은 자를 위한 형식적 애도를 강조하는 아발이 있다.
(a) 바카는 다섯 가지의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비록 울음이 일반적으로 고난이나 슬픔과 관련되긴 하지만, 그것은 기쁨의 표시이기도 하다.
흥미있는 것은, 이 용법의 모든 용례들이 야곱의 기사에 나온다는 것이다. 야곱은 가나안에서부터 여행하고 난후, 라헬을 만나 기쁨의 울음을 울었다(창 29:11). 야곱과 에서가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났을 때 울었다(창 33:4). 요셉과 야곱은 애굽에서 만나 서로 울었다(창 49:29) 등.
(b) 바카는 고난 가운데서 우는 것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아기 모세는 바로의 딸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출 2:6). 마찬가지로, 에서는 야곱의 사기 행위가 밝혀졌을 때 비탄과 좌절 가운데서 울었다(창 27:38).
욥은 자기가 "밭이랑"을 오용하여 그것으로 하여금 울게 만든 죄를 포함하여, 많은 죄들 중에서 하나라도 범했다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욥 31:38).
이스라엘은 적의 위협 때문에 울었다(삼상 11:4, 삼상 30:4 등); 그들은 포로지에서 울었다(시 137:1, 참조: 렘 31:15); 그리고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하는 자들을 위해 울었다(시 119:136).
울음은 다른 사람의 고난에 대한 동정적 반응일 수도 있으므로, 고난이 반드시 그 사람 자신의 것 만은 아니다(참조: 욥 2:12, 욥 30:25, 사 16:9, 렘 48:5, 겔 27:31).
(c) 바카는 죽음에 대한 비탄을 나타낸다.
이런 형태의 애도는 사무엘하 1장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데, 여기 12절을 보면, 다윗은 살해된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서 울고 있다.
사울을 위해서 우는 다윗의 울음에 보여진 그의 도량은 그가 적의 장군인 아브넬을 위해 우는 데에서도 다시 나타난다(삼하 3:32).
애곡의 시기가 신중하게 규정되었다는 것은 몇 가지 점에서 입증된다(창 50:4, 신 34:8, 등). 이를 위해서...[어떤 형태이든지] 임종의 애사를 당한 자의 지나친 애곡으로 야기될 수 있는 탈진과 기력 소진을 막기 위해서 전문적인 애도자가 임종 때에 울도록 초청되기도 했었다(삼하 1:24, 렘 49:3, 시 78:64, 욥 27:15). 이것은 사자(死者)가 충분히 애도 되었다 여겨질 때까지만 애도하며 또 이 애도가 끝없이 계속되지는 않음을 보증하는 이 두 가지 목적에 이용되었다.
죽은 자를 위한 이런 애도는 ((그 유래를 따져본다면...어찌보면 다신교적 이방신앙의 잔재라 할 수 있었는데)) 풍요 제의의 특별한 부분을 이루었으며, 그때에 죽은 초목 신은 그 해 가을에 애도 되었다. 우가릿 문헌에는 이 의식에 관한 언급들이 많이 있다(예: 본문 62; 67: Ⅵ, 그리고 참조: 왕상 18:26-29, 여기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식이 분명히 실행되었다). 에스겔은 이런 관습이 성전 안에서도 실행되고 있음을 보고 [유일무이하신, 살아계시는 주님을 모독하는 일이기에!! 전존재가 산산조각나는 듯] 전율을 느꼈다(겔 8:14).
(d) 바카는 간구나 불평과 관련된 울음에 대해 사용되었다.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삼상 1:7-10).
이와 마찬가지로 에스더도 바사의 황제 앞에서 자기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면서 울었다(에 8:3).
히스기야도 참조하라(왕하 20:3).
..물론, 이런 유형의 울음은 쉽사리 푸념으로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면 수수께끼를 풀어달라고 삼손을 졸라대는 그의 아내(삿 14:16)와 고기를 달라고 외치는 이스라엘인들의 부르짖음(민 11:4-20)이 이에 대한 증거이다.
(e) 바카는 회개의 울음에 대해 두가지 형태로 사용되었다.
후회하거나 죄에대한 징벌 시행을 슬퍼하여 우는 울음은 고대 근대의 다른 문화권에서도 알려져 있었지만, 순전히 하나님께 범죄한 것에 대해 슬퍼하는 것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구약성경에는 이 두 가지 모두 나온다.
전자의 한 예는 삿 21:2에서 발견될 것인데, 여기에서 이스라엘인들은 베냐민인들을 많이 죽인 자기네의 자행자지함-섣부름-어리석음 때문에 울었다.
다른 한편, 요시야는 율법을 낭독하다가 울었고(왕하 22:19),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서면서 울었다(렘 31:9, 렘 50:4).
귀환한 포로들이 율법을 읽고서, 자신들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달았을 때, 그들에게 거룩한 날이 애곡의 날이 아님을 일러주어야 했다(느 8:9, 참조: 스 10:1, 호 12:4, H5).
((종려주일에 주님이 예루살렘 입성 당시,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시고 종려가지를 들고 군중들의 환호가운데 입성하시다가 도중에 예루살렘을 보시고 극한 슬픔때문에 목놓아 엉엉 우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눅19:14-44...*41.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였음을 깨닫고 운 것도 이런 울음이었다(마 26:75). 아마도 자신의 죄에 대한 비통한 슬픔 없이는, 참된 회개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슬픔은 너무나 깊기 때문에, 울음을 유발시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종말에 하나님은 모든 울음을 종식시키실 것이다(사 65:19, 참조: 사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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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4:1-10....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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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5:1-12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믿는 이의 완전, 온전, 순전의 선순환, 그 시너지에 대한 느낌]]..주 안에 거함(요15:4-17)은 접붙임/붙좇음의 교통 살기..곧 주 이름 불러 앙망하며 먼저 Q, 말씀 청종, 주님 순종-동행함, 주님이 행함으로 보여주신 사랑 같이 (자기를 내어줌에 이르기까지) 서로 형제 사랑함 이룸, 이것이 JC 사랑함이니, 이로써 아버지께 사랑 받고, 주님 사랑 받음 되며, (아버지-아들-성령이 함께 오사) 그분의 형상의 실제 나타내심(요14:21,24-26) 이룸
살아 생동하는, 발휘하는 산 믿음<진리를 믿고 붙들어 하나되고, 이제 주 이름 불러 주께 여쭈어 그 다음 행보를 인도받아 그분 임재 안에서 그대로 따라가기>을 실행함으로 그리스도를 경험함의 선순환 안으로 들어감 -->순전<보혈로 씻김>에서 <주님 알고 사랑함으로 부어주신 사랑 통해 역사하는 믿음으로 사랑하며 반응함의>온전으로, 이제 더 나아가 <무시로 하나님 임재 앞에서 행함의> 완전의 선순환 시너지 이룸.
...CORAM DEO SOLA FIDE, SOLA SCRIPTURA, SOLA Christos, SOLI DEO GLORIA
....완전 = 주님 말씀 전적 순복(청종...몸의 활동 돕게 하신 섬김이 역할 기능, 직분자의 구비 조건과 태도 완비 : 나는 죽고 구주 사심으로 살기..주가 준비하신 바로 그것을, 복음과 그분의 풍성을 그대로 살아내며 공급함)-
---온전 = (친히 내주하사 도우시며 위로-격려-세우시는 HS따라) 고난의 섭리 통해 연단된 JC 인격 그대로 닮는 성화---
---순전 = 날마다 회개/보혈에 씻긴, 자기 십자가 감당하며 주와 동행 이룸의 필수 요건
***인간의 연약함 = 영적 무지무각 + 미혹/오도됨 --> 인간의 절대무력함으로 인해 그 연약함의 당연한 귀결은 영적 사망(하나님으로부터 전존재적 단절...사탄의 손쉬운 먹이감으로 전락...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수단으로 전락함) -->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화해를 위해 하나님이 인정-지명하여 세운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우신 성품을 그대로 반영하면서(즉, 중보의 제사장은 하나님의 임재-현존 동시에 죄를 속하기에 합당한 희생과 예물을 하나님께 드려 중재하는 제사장이 필요함..
***우리 주 하나님, 말씀속에 계시며 말씀하시며 구원의 말씀을 부탁하신 아버지,
모든 인생과 피조세계의 창조주-주권자-통치자-모든 공급근원, 유일무이한 절대 필요충분-모든 풍성부요충만과 참 능력근원<절체절명에서조차> 그 자체이신 아버지여
...사모하며 앙망하오니, 더이상 제 마음으로 주님을 제한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소서 ((무한하신, 본래 제한 받지 않는 분이지만 우리의 무지함과 주관적 제한 안예서 제한 받으시는, 기꺼이 갈망하여 기다리면서 마음 문 열어 달라 노크하고 계시는, gentle하신 분이심))
참되게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기도의 영>을, <고난 통해 순종함 배우시고 온전케 되신 순종의 영을> 부어주소서...
<하나님 경외함>이루신 그리스도의 <일향 미쁘신, 일편단심, 경건의 영을> 부어 주소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말씀하시는 주 임재 앞에서 <완전한 경외함을 끝까지 견지하심으로> 경건함의 모본 보이신 JC 주님이시여,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아버지께 드리신 바 열정적인, 전존재 쏟아붓는 통곡과 눈물, 부르짖는 간구와 소원 기도(결코 포기함 없이 구하고 찾고 두드림의 열정 공급하사)의 영, 바로 그 영을 오늘이라는 (각자에게 허락하신) 시간동안 주님 얼굴 구하며 주 이름 부르는 나와 모든 형제자매 성도들에게 부어주사 참되게 회복시켜 주소서,
하여, 그 안에 머무름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뜻 온전히 이루게 하여 주소서.
주 이름 부르는 모든 성도마다에게, 고난통해 순종함 배우셔서 온전케 되시고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며, 얻고, [단체적 그리스도] 그 가운데에서 발견되도록 도우소서.
오 주여, [진정한 참된 영광, 그리스도 빼어닮음, 그리스도의 형상 온전히 이룸, 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리스도께 자원하여 구하는> 성도 각자의 몸에 채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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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생애 - 요약]]
◑바울의 간략한 연대기 및 성경기록
주후 5년 경, 길리기아 다소 출생
①28세 -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성도들 잡으러 가다. 바울이 회심한 것은 아마도 주후 33년경으로 생각된다.
②28~31세 -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을 지낸다. 갈 1:17~18
③31세 - 아라비아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을 방문,..15일 동안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난다. 갈 1:18~19...처음에 바나바 외에는 그를 믿지 않았다. 행 9:26~27
④31~39세 - 그 후 고향 다소로 돌아간다. 거기서 8년 정도 지낸다. 갈 1:21... 8년 후, 바나바가 바울의 고향 다소까지 찾아가서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려온다. 행11:25~26,
⑤39~40세 -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사역 행 11:26...바울이 회심 후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공식적 사역까지 약 11년이 걸렸다.
⑥41세 - 부조를 걷어 바나바와 예루살렘 방문. 행 11:30... 이 때 갈 2:1에, 14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러니까 28세 때 방문 후, 부조 들고 다시 방문하기까지 14년 걸렸다고 했으니, 성경에는 다소에서 지낸 기간이 정확하게 8년이라고 나와 있지 않지만, 그의 궤적을 전체적으로 조사해 보니까, 다소에서 8년 지낸 결과가 나온다.
⑦41세 -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에 ... 마가를 데리고 옴. 행 12:25
⑧41~43세 - 제1차 전도여행(약 2년5개월, 행13~14장).. 이방인의 회심문제로 예루살렘 공회 참가, 3번째 예루살렘 방문. (44~45세) 안디옥에서 약 2년간 체류한다. 행 14:28
⑨45~48세 - 제 2차 전도여행(약 3년, 행15:36~18:22)... 데살로니가 전후서 기록..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의 서두에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들은 바울의 2차전도여행의 멤버들이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바울의 2차전도여행 때 쓰여졌다고 본다.
⑩48~52세 - 제3차 전도여행(약 5년, 행 18:23~).. *에베소에서 (행19:1~19:끝) 갈라디아서 기록.. 고린도전서 일부를 써서 보냄 고전 16:8 .. 고린도전서 나머지 써서 보냄.. 고린도를 두 번째 다녀 옴(에베소에서) .. 고린도후서 일부를 써서 보냄 ...*빌립보에서(행20:3~6, 또는 마게도냐) 고린도후서 나머지 써서 보냄(아마도 빌립보에서) *고린도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로마서 기록함 (고전16:5~6) ... *예루살렘 4번째 올라감(행21:17~)
⑪52~54세 - 가이사랴로 호송되어 2년 보냄. 행 24:27
⑫54세 - 로마로 떠남(호송됨) 주후 59년8월 .... 주후 60년 봄, 로마 도착
⑬55~56세 - 2년간 로마에 가택연금 (1차 투옥) 옥중서신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기록
⑭57~61세 - 로마에서 석방 후 (주후 62년경). ... 약 4년간 전도여행 (그레데, 밀레도, 에베소, 드로아, 마게도냐, 니고볼리) 마게도냐에서 디도서, 디모데전서 기록
⑮61~62세 - 드로아에서 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호송됨, 주후 66년 늦은 봄.... 디모데후서 기록 (로마 감옥에서, 2차투옥) ... 로마에서 순교함 주후 67년 6월경
◑인간적 바울 이해
▲바울의 외모
바울의 외모에 대해 남아있는 유일한 기록은 ‘바울과 테크라 행전’ (Acts of Paul and Thecla) 이라는 외경이다. 거기 3장에, 바울과 초면인 오네시포루스가 길에 서서 디도가 알려준 설명에 따라, 행인들 중에 바울을 찾고 있었다.
그(오네시포루스)가 바울이 오는 것을 보니, 키는 작고, 머리는 대머리이며, 다리는 안창 다리이며, 풍채는 고상하고, 눈썹은 양쪽이 서로 붙었고 매부리코에, 은혜가 충만하고, 어떻게 보면 사람 같고, 어떻게 보면 천사의 얼굴을 가졌다.
▲바울의 이름
이 책의 저자는 사울과 바울의 이름 변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인데, 바울은 사울의 ‘로마식 발음’이라는 것이다. 로마세계에서 전도할 때, 로마식 이름을 쓰는 것이 더 편리했을 것이다.
▲바울은 훌륭한 사업가, 경영인?
현재 비시디아 안디옥의 박물관장으로 있는 고고학자 위날 데미르 는 바울을 훌륭한 ‘사업가’라고 평했다. 그 이유는, 바울은 남달리 여행을 많이 하고 자기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경비까지 자기가 부담한 것은 당시에 엄청난 경비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당시 바울의 고향 길리기아 지방은, 흑염소 털로 만든 ‘길리기움’ 이라는 유명한 천막의 원산지였으며, 유대인은 생계를 위해 자식에게 한 가지씩 기술을 가르쳐주는 전통을 볼 때, 바울은 어려서부터 이 천막 만드는 기술을 배웠던 것 같다. 이 천막은 당시 고가품이었고, 동시에 상당한 수입을 가져다주는 사업이었다.
성격상 누구에게 신세를 지기 싫어하는 바울을 볼 때, 자기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여행경비를 부담한 것을 보면, 바울은 사업적으로도 성공한 사업가이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이다.
또한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로마 총독 벨릭스도 돈 받을 것을 기대해서 그를 자주 불러 얘기했고 행24:26 로마에 호송된 후에도, 가택연금 상태였지만 2년 동안 세를 주고 집을 얻을 수 있는 돈이 있었다. 행28:30
또한 바울은 경영인이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전도 여행을 통해 수많은 개척교회를 설립하고 적임자를 선택해서 세우고 자신이 직접 못 갈 때는 특사를 보내어 돌보았다.(관리했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은 인사관리에도 능숙한 경영인이었다. ...선교 전략적으로 가야할 곳, 만나야 할 사람 등은 빼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로마로 갔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된다.
▲가말리엘 문하 시절
원래 바울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로 주후 5년경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했다. 예수님이 주전 4년경 출생했다고 보면, 거의 10살 차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가 헬라어에 능통한 이유는 다소(외국)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는 부잣집 아들이었는지, 유대교에 열심이 있었는지 예루살렘에 유학 가서, 가말리엘 문하생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이 공생애 활동을 하던 기간(주후 26~29년)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직접 뵙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의 글에 언급이 없는 것을 보니...그래서 사울이 맨 처음 등장하는 곳이 행 7장의 스데반 순교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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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서론) https://blog.daum.net/hks301/14655663 ...지도
우리는 지금까지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거룩한 기독교회가 설립자이신 복되신 구세주의 역사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고찰했다.
이 역사는 네 명의 다른 영감을 지닌 저자들에 의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이 거룩한 진리에 일치하고 있으며 그 명백한 증거는 “예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 반석 위에 기독교회는 세워졌다. 이 교회가 이 반석 위에 어떻게 세워지기 시작했는가를 우리가 지금 이 책에서 논하게 될 것이다.
교회의 역사에 대해서는 오직 한 사람만이 증언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이 더욱 상세히 논의될 필요가 있으며, 사도들에 관한 것 이상으로 그것은 입증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지혜를 지닌 하나님께서 합당히 여기셨다면 우리가 여러 복음서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많은 사도들의 활동을 기록한 책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세상이 이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요21:25). ...우리는 본서만으로도 언제나 충분히 우리의 목적을 이룰 수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의 역사는(그것은 언제나 거룩한 정경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것인데) 아래와 같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1. 먼저 씌어진 복음서들을 돌이켜 살펴보고 새로운 이해를 제공하며 복음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돕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앞서 행하신 약속, 특별히 성령을 보내 주신다는 약속이 성취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성령의 놀라우신 역사가 제자들에게 임했고 우리는 복음서에서 보았던 것과는 며칠 사이에 전혀 다르게 된 사도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나약하게 생각하고 연약한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과거에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었던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요 16:12) 전에는 생각해 보기만 해도 양 같이 겁에 질려 두려워 떨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곤경에 직면하게 되어도 사자처럼 담대히 마주서게 된다.
이제 !! 제자들의 말은 능력 있는 말이 되어 “사탄의 강한 요새를 무너뜨렸다.” .....이 사탄의 요새야말로 모든 설교를 헛되게 했던 요소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사도들에게 허락된 직권이 이곳에서 집행되고 있고 그들 안에 있는 능력은 사람의 몸에 접할 때 기적으로 나타남을 보게 된다.
그 기적은 병든 몸에 건강을 주고 죽은 몸에 생명을 부여하는 자비의 기적이었다. 또한 항거하는 자들을 눈멀게 하고 죽이는 심판의 기적이기도 했다.
더욱 커다란 기적이 사람들의 마음에 임했다. 즉 성령의 은사가 그들에게 주어짐으로써 그들은 주의 모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고 전할 수 있었다.
이것은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의 목적을 이행하는 것이며, 또한 그의 약속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복음서에서 끝으로 다루고 있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타내신 부활의 증거는 결정적으로 그분의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갈릴리에서 만나자"하셨던 대로, 그 :갈릴리"는 어떤 의미가 있었던가..
.....[갈릴리산에서 하나님나라의 헌장인 산상수훈이 베풀어 졌었다, 또한 전도의 주된 무대가 갈릴리였으며, 갈릴리는 소외된 자들, 곧 스불론과 납달리, 이른 바 어둠의 자식들이 사는 달동네요 이방지역으로 취급되었으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공의회, 헤롯당의 박해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었기에 주님의 회복된 제자들이 새로 시작하기에 적합하였다],
.....갈릴리에서의 회동은 부름받은 바 첫사랑의 감격과 그 열심을 다시 새로이 불러 일으켜 새로이 시작하도록 분발시켰다.
또한, JC의 감람산 부활승천후 10여일동안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120문도들이 함께 나날이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쓰던 중에, 오순절날 임하신 권능의 성령 부으심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바로 구주요 하나님이시라 증언함에 있어서] 그 어떤 박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와 담대함으로 무장한 제자들로 변화시키게 하였었다.
도대체 부활하신 날부터 시작헤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기에 그들이 그렇게 갑자기 백전불굴의 용사가 되게 하였던가.
보라,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바로 그날, 제자들은 모두 주님을 버려 흩어졌었고 그들 중 하나는 그를 부인했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바로 그 사실이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첫날새벽미명에 무덤을 찾아갔던 막달라마리아,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 작은 야고보의 모친(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바로 이들 네 여인들이 무덤입구의 돌이 굴려진 상태에서 천사들을 만났고 , 이어서 그리스도를 만나서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그분의 부탁하신 말씀을 들었던 바, 그 여인들이 그간의 사정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해주었다, [게다가 그리스도께서 따로 막달라마리아를 만나주사 동일한 말씀으로 부탁하신 그 말씀을 재확인 하셨음], 엠마오로 내려가던 사람들이 주를 만나뵙고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복귀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소식을 전해 주었으며, [또한, 따로 베드로를 친히 만나 주셨으며], 결정적으로 그날 저녁 의심과 불안가운데 떨고 있는 제자들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변형된 몸으로 오사, 친히 십자가 상흔을 보이시며] 함께 식사하셨으며, 두번째 주일에는 제자들의 모임에 빠졌었던 도마에게도 상흔을 보이셨다.
이제 미리 약속하신 그대로 [요21장에서 목양의 사명 주심을 보듯] 갈릴리에서 다시 제자들을 만나사 사도들에게 소명을 새롭게 하여 주심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회복시키셨고, 오늘도 회복시키신다].
또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 총40여일간 가시적 임재와 비가시적 임재로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보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지않고도 믿는 비가시적 임재의 복된 믿음을 훈련시키시고] 하나님나라에 관한 일을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승천 하신 후 보내주실 성령으로 입혀질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하셨던 바, 성령이 오시면 모든 믿는이들안에 내주하시면서 권능 충만한 JC의 증인으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실 것을 말씀하신 후에, [베다니 근처 감람산에서] 파송의 대사명을 주신 후 구름을 타고 승천하신다.
그토록 유약하였던 제자들이 옥에 갇힘과 죽음에도 과감히 맞서서 이전보다 더 단호히 그리스도에게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이런 과정을 지났기 때문이었다.
여기 사도행전에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사도들의 그 모든 초기 사역들이 여기 사고행전에 풍부하게 진술되어 있다.
이 증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분의 말씀에 따라 많은 무리를 그리스도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이요 선지자 요나의 표적대로 마지막으로 보류되었던 그의 부활은 그의 거룩한 사명을 확신케 하는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그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으며 이 책은 그에 대한 그들의 증언을 수록하고 있다.
즉 그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복음이란 그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으며 “세상의 빛으로” 그들에 의해 세계가 밝게 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그것이 더욱 밝게 비치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땅에 떨어진 “밀알”이 이 책에서 싹이 나고 많은 열매를 맺는다, “겨자씨”가 이 책에서 “큰 나무”로 나타나고 있다. 그때 임박했던 “하늘 나라”가 이 책에서 세워져 있다.
복음 전도자들이 당하게 되리라던 극악한 박해에 대한 그리스도의 예언이(누구나 다 모두 받아들일 만큼 가치 있는 말씀이 이같이 수많은 반대에 직면하리라고 상상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동시에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 그리스도께서 특별한 지지와 위로를 주시겠다던 확증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 역사의 뒷부분이 첫 부분에 조상들에게 행한 약속을 확실히 입증해 주듯이(열왕기상 8장 56절에서 솔로몬이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도다”라고 승인한 유명하고 엄숙한 선언에서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신약 성서의 뒷부분인 이 말씀은 신약 역사의 전편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정확히 응답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후가 서로를 확인시켜 주고 설명해 준다.
2. 또한 본서는 뒤에 있는 서신들을 미리 이해할 수 있게 하는데, 이 서신들은 복음을 해명해 주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와 복음서에서의 그리스도의 역사를 알게 해주고 있다.
본서는 그 서신들을 소개해 주고 다윗의 역사가 다윗의 시편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듯 그 서신의 뜻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인간 가운에 있는 하나님의 장막”인 기독 교회의 일원이며 우리가 그 일원이 된 것은 우리의 명예요 특권이다.
본서는 이 장막(교회)의 형성과 배경을 우리에게 설명해 준다. 네 복음서는 이 교회의 기초가 어떻게 놓여졌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본서는 이 건축물이 어떻게 세워지기 시작했는가를 보여준다.
(1) 본서 앞부분에서는 유대와 사마리아에서의 교회의 설립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2) 이방세계에서의 교회 설립에 대해서는 본서 뒷부분에서 설명된다.
그때부터 우리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독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계의 구세주로서 그리스도에 대해 신앙을 고백함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준 제자들에 의해 세워졌고, 종교적인 사회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이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집회를 가지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경청하며 그들 자신이 기도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란내와 통솔 아래 기도와 떡을 나누는 일에 참여하고 모든 것에서 마찬가지로 행해지는 영적인 교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금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은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몸에 속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본서에서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인류의 정체성-민족과 긍지를 가지고 그 몸의 발생과 유래를 발견하게 된다.
이 교회는 유대 교회와는 크게 다르며 바로 유대교의 폐허 위에 설립되었다. 그리고 이 교회는 하나님께 속해 있지 사람에게 속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신앙을 이 신앙의 효시를 이루는 사도행전의 말씀과 일치시키면서 확신과 위로를 가지고 우리의 신앙고백을 계속 밀고 나가야 되지 않겠는가!
이 말씀에 우리는 순응하며 우리를 거기에 제한시켜야 하는 것이다.
본서에 관해 두 가지 사실을 더 고찰해야 한다.
① 저자 본서는 누가에 의해 씌어졌다.
누가는 그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네 갱 복음 중 셋째 복음을 기록했다.
^^그는 휘트비(Dr Whitby)가 보여주는 바처럼 아마도 70인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며, 그의 사명 위임은(눅 10:1) 12사도보다 결코 열등한 것은 아니었다.
이 누가야말로 바울의 고통과 수고에 참여한 동료였던 것이다. “오직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딤후 4:11).
우리는 본서 후편의 그 문체로 보아서 그가 언제 어디서 바울과 함께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6장 10절, 20장 6절처럼 우리가 이러이러하게 행했다는 말씀을 기록한 것을 미루어보아 본서 끝까지 그는 바울과 같이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는 로마로 가는 위험한 여행에 바울과 같이 했고 그가 감옥에 끌려갈 때 그와 같이 갔고 거기서 바울이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를 썼는데 거기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미루어 갇힐 때부터 바울과 함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누가는 바울이 갇혀 있는 동안 함께 로마에 있었을 때 이 역사서가 바울이 거기서 “집을 빌려서” 말씀을 전했다는 사실을 결론으로 맺고 있기 때문이다.
② 명칭 희랍어 사본대로 읽는다면 “거룩한 사람들인 사도들의 행전”이 된다.
그러므로 그들을 가리켜 요한계시록 18장 20절에서는 “너희 거룩한 사도들아 그로 인하여 즐거워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 사본만이 “전도자 누가에 의해 기록된 사도행전”이라 명명하고 있다.
a. 본서는 사도들의 역사를 전해 준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12사도는 아니지만 똑같은 성령이 임해 같은 역사를 이루었던 스데반이나 바나바나 다른 사도적 인물들의 역사도 기록하고 있다.
사도들 가운데서 여기 기록된 것은 베드로와 바울의 역사뿐이다(바울도 이제 12 중에 하나다),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요,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다(갈 2:7).
그러나 본서는 다은 사도들도 각각 다른 장소에서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본이다. 그 이유는 그들 중 아무도 게으른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의 예수에 관한 말씀을 충분히 생각해 봄으로 사도들과 그들의 수고도 그리스도의 수고와 같은 것을 짐작할 도리밖에 없다.
사도들의 수고와 고난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이 세운 교회들에 대한 전승을 우리가 더 이상 말하려 함은 불확실하고 정확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만족하리만큼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서가 반석 위에 세워진 금이요 은이요 보석이라면 사도들에 대한 역사의 다른 책들은 나무요 풀이요 짚에 불과한 것이다.
b. 본서는 행전이라고 불리고 있다.
(행함)-즉 그들의 스승이 그들에게 가르친 교훈의 행함이다.
사도들은 활동적 인물들이었고 그들이 말슴에 의지하여 놀라운 일들을 행했지만 그들이 행전이라고 부름도 합당하리라고 그들은 말했다.
아니 그보다 그들을 통해 성령께서 말씀하셨고 그것은 이루어졌다.
이 역사서는 그들의 교훈과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 그들이 복음 전파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그로 인해 담대히 자진해 고통까지 감당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업적이었으므로 본서를 사도들의 행전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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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장]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기다리다 wait. perimevnw(4037, 페리메노)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
동사 페리메노는 페리(periv, 4012: 에 대하여, 둘레에)와 메노(mevnw, 3306: 머무르다)에서 유래했으며,
(a) 인격의 대격과 함께, '기대하다'(Hdt., Xenoph.), (b) 사건들에 대하여, 누군가를 '기다리다'(Soph. Ant), (c) 단순히 메노(mevnw, 3306)와 같이, '기다리다, 그대로 서있다'(Hdt., Plat.)를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페리메노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창 49:8에서 히브리어 카와(기다리다)의 역사로 사용되었다. 지혜서 8:12에서는 침묵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동사 페리메노는 신약성경에서 행 1:4에 한번 '기다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제자들은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아야 하였다(참조: 눅 24:49). (참조: F.Hauck; C.Brown).
......[시40:1...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사30:18...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행1:4...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기다리다의 헬라어는 <페리메노περιμένω>... <페리 ::: 초월하여 한계를 넘어서>+<메노 ::: 머물다 거하다 참다 계속하다 남아있다>의 합성어로서, 단순한 기다림이 아님 지금 현재의 상황을 뛰어 넘어설 정도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을 의미.... 그 기다림이 결코 쉬운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한계를 뛰어 넘는 기다림인 것 ..왜 <페리메노περιμένω>의 기다림으로 기다려야 하는지 갈등할 수 있지만...그래도 그런 기다림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니... 그 기다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이요. 기다리는 영혼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유 없이 기다리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페리메노περιμένω>의 기다림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게 하실 것이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미증유의 역사를 보게 하시기 위한 것임을 기대하라... 구원의 역사가 함께 하실 것이요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이 동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까지 기다리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기다리는 것만은 아닌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내> 안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요, 그러기에 참고 견딜 수 있다는 것!! ...그렇게 깨달을 때, <페리메노περιμένω>를 통해서 <내> 자아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게 될 것이요, 정금보다 더 귀한 모습으로 다듬어지게 될 것이다. <페리메노περιμένω>는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깊이 살게 되는 과정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나는 시간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위로부터 부으시는 그 성령님,((시내산 꼭대기에서 모세가 경험했고 , 구주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면서 입으셨던)) 바로 그분의 그 영광으로 적셔지고 감싸여지고 잠겨져 주입되고 점유-충만-변화-변형에 이르도록, 그분은 항상 충만-내주-활동하사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바, 부활-승천하신 그리스도 예수, 그분의 그 영이시요, 바로 그분이심]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께서 하늘로 올려지시다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계1:4..보좌 앞의 일곱영으로 묘사되어있지만 오직 하나의 영이시며 일곱배나 강화된 TUQ의 최종 완성이신 부활 생명 능력(권능)의 그 영, 곧 그리스도 예수의 영)) 너희에게 임하시면(에펠코마이..오셔서 내주하여 하나되다) 너희가 권능(뒤나미스...힘/능력/역량, 세력)을 받고(람바노..받고-얻고-획득/체득하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마르튀스....전존재로, 목숨걸고 (상호 사랑/믿음/소망 안에서!!, 자기가 보고 듣고 경험/체득한 그리스도를 바로 그대로) 참되게 증언함]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께서 임하실<에펠코마이ἔρχομαι> 때
[눅4: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마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행2:23..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임하다를 뜻하는 헬라어는 <에펠코마이ἔρχομαι>... 오다, 나타나다, 접근하여 들어와 하나 되다를 뜻한다 ... 위에를 의미하는 <에피έπί> + 오다, 함께 가다, 들어 오다를 뜻하는 <엘코마이ἔρχομαι>가 합성된 형태... 사도행전에서는 <에펠코마이ἔρχομαι>가 두 번 사용되는바, 하나님께서 죄인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서 오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께 간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요엘서에서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실 것이라는 언약이 사도행전에서 <에펠코마이ἔρχομαι>를 통해서 응답되었다... <에펠코마이ἔρχομαι>는 성령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것이니, 성령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격적으로 받아 들일 때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 성령 하나님께서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뻐 하시는대로 이끌어 주실 것이요,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될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려고 할 것, 하나님과 영적인 깊은 교제를 사모하게 될 것이다. ...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영혼들에게 함께 하시는 축복이다,
...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다 <나>같은 죄인을 찾아 주시고 만나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어 주시는 은혜일뿐 아니라, 믿음으로 마음을 열고 사모하는 영혼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놀라울 것인데,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 가게 될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발견하게 될 것이요, 하나님과 친밀한 깊은 교제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사11:1-5...*1.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세우다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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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4:18, 19...*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사61 : 1-11((1.2))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8.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9.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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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1 Amplified Bible
===Introduction
1 The first [a]account I made, Theophilus, was [a continuous report] about all the things that Jesus began to do and to [b]teach
2 until the day when He ascended to heaven, after He had by the Holy Spirit given instruction to the apostles (special messengers) whom He had chosen.
3 To these [men] He also showed Himself alive after His suffering [in Gethsemane and on the cross], by [a series of] many infallible proofs and unquestionable demonstrations, appearing to them over a period of forty days and talking to them about the things concerning the kingdom of God.
4 While being together and eating with them, He commanded them not to leave Jerusalem, but to wait for what the Father had promised, “Of which,” He said, “you have heard Me speak.
5 For John baptized with water, but you will be baptized and empowered and united with the Holy Spirit, not long from now.”
6 So when they had come together, they asked Him repeatedly, “Lord, are You at this time reestablishing the kingdom and restoring it to Israel?”
7 He said to them, “It is not for you to know the times or epochs which the Father has fixed by His own authority.
8 But you will receive power and ability when the Holy Spirit comes up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to tell people about Me] both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even to the ends of the earth.”
===The Ascension
9 And after He said these things, He was caught up as they looked on, and a cloud took Him up out of their sight.
10 While they were looking intently into the sky as He was going, two men in white clothing suddenly stood beside them,
11 who said, “Men of Galilee, why do you stand looking into the sky? This [same] Jesus, who has been taken up from you into heaven, will return in just the same way as you have watched Him go into heaven.”
===The Upper Room
12 Then the disciples returned to Jerusalem from the mount called Olivet (Olive Grove), which is near Jerusalem, [only] a Sabbath day’s journey (less than one mile) away.
13 When they had entered the city, they went upstairs to the upper room where they were staying [indefinitely]; that is, Peter, and John and [his brother] James, and Andrew, Philip and Thomas, Bartholomew (Nathanael) and Matthew, [c]James the son of Alphaeus, and Simon the Zealot, and Judas (Thaddaeus) the son of James.
14 All these with one mind and one purpose were continually devoting themselves to prayer, [waiting together] along with the women, and Mary the mother of Jesus, and with His brothers.
15 Now on one of these days Peter stood up among the brothers and sisters (a gathering of about a hundred and twenty believers was there) and he said,
16 “Brothers and sisters, it was necessary that the Scripture be fulfilled, which the Holy Spirit foretold by the lips of David [king of Israel] about Judas [Iscariot], who acted as guide to those who arrested Jesus.
17 For he (Judas) was counted among us and received his share [by divine allotment] in this ministry.”
18 (Now Judas Iscariot [d]acquired a piece of land [indirectly] with the [money paid him as a] reward for his treachery, and falling headlong, his body burst open in the middle and all his intestines poured out.
19 All the people in Jerusalem learned about this, so in their own dialect—Aramaic—they called the piece of land Hakeldama, that is, Field of Blood.)
20 “For in the book of Psalms it is written, ‘Let his place of residence become desolate, And let there be no one to live in it’; and [again], ‘Let another take his position as overseer.’
21 So of the men who have accompanied us during all the time that the Lord Jesus spent with us,
22 beginning with the baptism by John [at the outset of Jesus’ ministry] until the day when He was taken up from us—one of these men must become a witness with us [to testify] of His resurrection.”
23 And they put forward two men, Joseph, the one called Barsabbas (who was surnamed Justus), and Matthias.
24 They prayed and said, “You, Lord, who know all hearts [their thoughts, motives, desires], show us which one of these two You have chosen
25 to occupy this ministry and apostleship which Judas left to go to his own place [of evil].” 26 And they [e]cast lots for them, and the lot fell to Matthias; and he was added to the eleven apostles.
===Footnotes
Acts 1:1 Luke is referring to his gospel.
Acts 1:1 As the gospel tells us what Jesus began to do and teach, so Acts tells what He continued to do and teach by His Holy Spirit (F. F. Bruce).
Acts 1:13 Also known as James the Less or James the Younger. His mother, Mary (Gr Maria), may have been either a sister or sister-in-law of Mary (Gr Mariam), the mother of Jesus.
Acts 1:18 Peter means that the chief priests purchased the field in Judas’ name. He had returned to them with the money, and when they refused to accept it, he threw it into the temple sanctuary (Matt 27:3 ff). Afterwards they decided to buy the field for use as a burial ground for strangers. Peter goes on to say that Judas was disemboweled in a fall, while Matthew reports that Judas hanged himself (Matt 27:5). One explanation for the apparent discrepancy is that the rope or line that Judas was using broke, and the body fell in such a way as to be disemboweled (Matt 27:3 ff).
Acts 1:26 The custom of the Jews was to write the names on stones, place them in a container and shake it until one stone fell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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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개요)
사도행전은 역사가의 영감에 의해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Ⅰ. 그가 전에 쓴 복음을 요약하면서 먼저 쓴 글에서 그의 친구 데오빌로에게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역사를 전하였다고 언급한다(1, 2).
Ⅱ. 예수의 부활의 증거를 요약하고 부활 후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과 지상에서 계시던 40일 동안 그들에게 교훈하신 사실에 대하여(3-5).
Ⅲ. 그리스도의 승천 사실과 승천 전에 제자들이 예수님과 나눈 담화. 그리고 승천하신 후 천사들이 제자들과 나눈 담화에 대하여(6-11).
Ⅳ. 초대 교회의 시작에 대하여, 그리고 승천하신 후 성령을 부어 주시기까지의 교회의 모습(12-14).
Ⅴ. 유다의 죽음으로 인하여 생긴 제자직의 공석을 메꾸기 위한 사건 전말에 대한 설명과 유다 대신 맛디아를 선택함(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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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리스도 부활의 증거(행 1:1-5)
Ⅰ. 우리가 이 책에 대한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데오빌로를 마음에 상기하고 우리가 그의 입장이 되어보며 그리고 누가복음을 연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실은 어떻게 그의 말씀이 끊겨진 곳에서 계속될 뿐 아니라 사도들의 활동이 그들의 스승의 활도 즉 그리스도의 활동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게 해 준다.
1. 데오빌로, 데오빌로는 그의 은인으로서 그를 위해 이 책은 쓰여진 것이다(나는 오히려 데오빌로가 누가의 제자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이 책이야말로 그에게 증정하기 위해 또한 그를 교훈하고 지시하기 위해 계획되었고 그의 지시나 보호를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절).
그의 복음서 앞의 증정하는 글에서 저자는 그를 "데오빌로 각하"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저자는 "데오빌로여!"라고 호칭한다. 그렇다고 이 말이 그가 존엄성을 잃었다거나 지위가 낮아져 명성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직책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러나 칭호가 주어진 위치를 물러났거나 그의 덕이 높아져서 그에게 주어진 이름 외의 존칭을 경멸했거나 누가가 그와 더욱 친숙해져 그들보다 자유롭게 불렀든지 이런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기독교인이거나 비기독교 저술가이거나 고대인들은 그들의 작품을 어떤 특정한 인물에게 증정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성서 중의 한 권을 특별히 우리의 이름을 부름으로 지적한다는 것은 우리 각자가 개별적으로 성서를 받아들여야 함을 암시해 준다.
왜냐하면 "앞서 기록된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해 쓰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의 복음.
그는 그의 복음을 그가 "먼저 기록한 작품"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먼저 쓴 글"(톤 프로톤 로곤)을 계속하고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쓴다고 하였다.
복음서가 기록한 것은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내용과 틀림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기록하지 않고 전하여진 말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기록된 말씀만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앞의 글을 썼고 영감으로 이 책을 쓰고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학자들은 "완전을 향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히 6:1).
그들의 안내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하며 "사람들에게 지식을 가르쳐야만" 한다(전 12:9).
그리고 먼저의 노력의 결과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더 노력하지 말아야 할 변명이 되지 않는다.
저자 누가가 전의 작품에서 기초를 놓고 그 위에 사도행전을 세웠던 것처럼 오히려 그로 말미암아 생기를 얻고 힘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설교, 새로운 작품 때문에 옛 것을 잊을 수 없다. 오히려 그것들을 마음에 두고 그것들을 보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3. 그의 복음의 내용.
그의 복음의 내용은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기 시작하심부터 모든 것으로" 다른 세 복음서 기자들의 주제도 이와 같은 것이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그리스도는 행하시고 가르치셨다.
그가 가르치신 말씀은 그가 행하신 놀라운 기적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 기적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임을 증명해 주었다"(요 3:2).
그가 가르치신 우리의 행할 바 의무는 그가 행하셨던 거룩하고 자비한 행위 속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그가 우리에게 "한 모범이 되셨으므로 스스로 하나님에게서 오신 스승"임을 나타내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행하고 가르치는 자 즉 그의 삶이 곧 연속적인 설교인자야말로 제일 훌륭한 목사인 것이다.
(2) "그리스도는 행하시고 가르치시기 시작하셨다."
그는 그가 가르치셨고 행하셨던 모든 것을 교회의 기초로 삼으셨다.
그의 사도들은 그가 시작하신 것을 계속하여 수행하였고 오늘날도 같은 것을 행하고 가르쳐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시키시고 계속하게 하도록 하시며 성령을 보내시어 그들이 행하고 가르치도록 능력을 주신다.
성령은 그리스도 자신이 시작하셨던 복음 사업을 전력껏 수행하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신다. "이 큰 구원은 주님에 의해 말씀됨으로 시작되었다"(히 2:3).
(3) 네 명의 복음서 기자들 중 특히 누가는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기 시작하신 모든 사실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었다."
물론 작은 일까지 모두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이 다양한 말씀들 중 사표가 되는 주제들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도 판단할 수가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그의 말씀이 선포되고(마 4:17) 그의 기적이 처음 행하여지셨는지(요 2:2) 알고 있다.
누가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하신 일을 비록 모두 기록하지 않았지만 대강의 전반적인 모습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
4. 복음서 기록의 시대 범위는 "그가 승천하신 날까지"로 한정되고 있다(2절).
그가 세상을 떠나신 후 그가 몸으로 나타나신 일은 복음서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마가복음은 "주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기록으로 끝을 맺고 있으며(막 16:19) 누가복음도 마찬가지다(눅 24:51).
그리스도는 그가 "승천하시어" 숨어서 하실 다른 사업을 시작하실 때까지 끝까지 계속 행하시고 가르치셨다.
Ⅱ.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이 3절에서 입증되고 옹호되고 있다.
누가 복음에서 기록된 부분이 너무 구체적이므로 모든 경우에 있어서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가 부활하신 가장 큰 증거는 "그가 사도들에게 살아서 자신을 보이셨다는 것이다."
살으셔서 자신을 나타냈을 뿐 아니라 "그들은 그를 보았다."
그들은 정직한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증언을 믿어도 좋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선의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믿도록 강요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니다. 그들은 결코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1. 증거가 절대 확실했기 때문이다.
- 즉 그가 살으셨다,(그들과 같이 거니시고 말씀을 나누었으며 먹고 마시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분이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되풀이하여 그들에게 그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 있는 상흔"을 보이셨고 그 사실은 의문시되던 사실에 가장 확실한 증거이었다.
2. 그의 보이심은 자주 있었고 또 계속 반복되었다.
그가 그들과 항상 같이 계신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에게 자주 나타나시며 그들의 의문과 의심을 점차로 만족하게 해소시켜 주시며 "40일 동안이나 그들에게 보이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인했던 모든 슬픔은 다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지상에 오래 계셔서 제자들의 믿음을 강건하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셨듯이 그가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으신 사실은 우리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연약하심을 체휼하시는 대제사장을 우리가 모시고 있다"는 것을 겸손과 연민의 정을 가지고 확신하게 해 주는 것이다.
Ⅲ.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은 이제 그가 그들을 떠나시나 그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나시므로 "그들의 마음 문을 여시어" 그의 교훈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으리란 말씀이 지시되고 있다.
1. 그는 그들이 행해야할 사업에 대해 교훈하셨다.
"그는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명령하셨다."
그리스도가 선택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임무도 따른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가 "사도로 택한 사람들에게 계명이 주어지듯" 특권도 주어졌다.
"가령 그가 집을 떠나 여행할 때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길 때"(막 13:34) 그 권한과 함께 "성령을 통하여 계명도 그들에게 주시었다."
그는 대속자로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하였고 그 성령을 그들에게 부어 주셨다.
그들에게 성령을 주심은 곧 계명을 주심을 뜻하였다.
위로자로서의 성령은 명령자이기도 하시며 그는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여 준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도된 그들에게 의무도 부과하신다." 그러므로 말씀하기를 그들로 하여금 사명을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의 성령을 받으라 "한다(요 20:22).
그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고 그의 사업을 이루신 후에야 승천하시었다.
2. 그는 그들이 가르칠 말씀에 대해 교훈하신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다. "
그는 그 나라가 어떤 곳이며 앞으로 예정한 사기에 그 나라가 세상에 세워지리라 가르치신다(막 13: 비유).
그는 특히 본서에서 그 나라가 이 세상에서는 은총의 나라로써 저 세상에서는 영광의 나라로써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자세히 말씀하셨고 그것대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법이 될 계약을 알려 주셨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위해서였다.
(1) 그들이 성령과 그 권능을 받도록 준비시키시고 그 성령의 인도대로 그들이 가도록 예정된 그 길을 따르게 하는 데 있었다.
그는 은밀하게 그들이 세상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며 성령이 오시면 이 진리의 성령이 그들이 말해야할 것을 자세히 알게 해 주시리라 말씀하셨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을 입증하는 여러 가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즉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그가 다시 사셔서 자신을 보여 주신," 제자들은 그가 그들에게 보이셨을 뿐 아니라 말씀하셨다는 사실로 그가 그리스도인 줄 알았다.
그 외에 아무도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대해" 그렇게 명쾌하고 완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그들을 보시고 정치나 모든 세상 나라, 철학이나 자연계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순전히 신적인 내용과 은총의 나라에 대해서 또한 그들 자신에 관한 일들과 그들이 보냄을 받을 사랑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Ⅳ. 그들이 곧 성령을 받으리라는 특별한 보장과 그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있다(4,5절).
"그가 사도와 같이 모이사"라고 했는데 그가 죽으시기 전 지정한 곳인 갈릴리 산에서의 면담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이 승천을 보기 위해 "다시 모이었다"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보아서 그렇다(6절). 예수께서 지금은 그들에게 갈릴리로 지정하셨지만 거기서 계속 머물으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했고 거기를 떠나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그들에게 기다릴 것을 명하신다.
이 말씀은 그들에게 보다 큰 것에 대한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어떤 것보다 위대한 것을 그들의 높임 받으신 구세주에게서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 그들은 약속된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제 그 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약속된 긍휼이 임할 것을 믿음으로 바라는 사람들은 "지정된 때"가 이르러 그 긍휼이 나타날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만 한다.
그 때처럼 "때가 가까이 이르를 때"는 우리도 다니엘처럼 간절히 그 날을 바라야만 한다(단 9:3).
(2) 그들은 지정된 장소인 예루살렘에서 기다려야만 한다.
거기서 처음으로 성령이 부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거룩한 산 시온의 왕이기 때문이요, 주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사방으로 퍼지겠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이 세상의 모교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는 거기서 치욕을 당하셨고 그러기에 거기서 또한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을 그가 사랑하심은 우리에게 우리도 우리의 원수와 박해자들을 용서해 주라는 가르치심으로 받아야 한다.
사도들은 갈릴리에 있었을 때보다 예루살렘에서 더욱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 편안히 기쁨으로 하나님을 믿고 꾸준히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제 사도들은 공적인 입장에 서게 되었고 그러므로 공회에서는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예루살렘은 많은 등불이 세워져야할 제일 적절한 등경이었다.
2. 그는 그들이 헛되이 기다리지 않을 것을 보증하신다.
(1) 그들에게 예정된 축복이 임할 것이며 그 축복은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될 것이다"라고 말씀되고 있다. 즉 다음 같은 뜻이다.
① "너희에게 성령이 어느 때보다 풍족하게 부어질 것이다"라고 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날 저녁에 그들가운데 오셔서 친히 불어넣어주신 바, 제자들에게 이미 성령은 부어졌고(요 20:22) 그 유익함 또한 알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욱 측량할 수 없는 은사와 은총과 위로를 받을 것이고 이 온갖 선물로 세례받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던 구약의 약속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요엘 2:28; 사 44:3; 37:15).
② 제사장들이 성직을 맡게 될 때 세례를 받고 물로 씻어야 했듯이 "너희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정하고 순결하게 될 것이라 한다."
"제사장들이 성별의 징표를 지니었듯이 너희도 같은 의미의 징표를 지닐 것이다. 성령께서 너희를 진리 안으로 더욱 이끌어 주심으로 너희는 진리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될 것이다. 너희의 양심은 성령의 증거하심으로 정하게 되겠고 너희는 사도로써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리라"라고 말씀하신다.
③ "그렇게 되면 전에 너희가 주님을 섬겼던 때보다 더 잘 섬기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인도되어 구름바다 가운데서 세례를 받은 것처럼 성령께서 인도하실 것이며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견고히 연결되므로 전에 하였던 것처럼 고통이 두려워 그를 다시는 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2) 이제 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씀한다.
① 그들은 주님에게서 성령은 아버지의 약속이며 그들은 성령을 의지하게 되리라는 말씀을 들었다.
첫째, 성령은 약속에 따라 오시는데 이 약속은 전에 메시야를 보내시므로 영원한 생명이 이제 임하게 되리라는 약속처럼 위대한 것이라 한다(눅 1:72; 요 1, 2:25).
일시적인 행운이 섭리에 따라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과 영적인 축복은 약속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갈 3:18).
하나님의 성령은 인간의 영이 자연과정을 거쳐 우리 안에 주어지고 또 형성되는 것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슥 12:1)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① 이 선물이 더욱 가치있는 것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성령의 약속을 교회에 유산으로 물려 주리라 생각하셨다.
② 이 선물이 더욱 확실해지기 위하여서는 이 약속의 유업을 하나님의 변함없는 뜻으로 믿어야 되리라고 한다.
③ 이 선물이 진정한 은사가 되려면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약속을 굳게 잡고 그 약속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와 같이 성령도 믿음으로써만 받아들여진다.
둘째, 성령은 "아버지의 약속이었다."
① 그것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약속이었다.
중재자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그의 아버지로 보았고 그의 예정만을 따르시고 그의 뜻만을 간직하셨다.
② 또한 성령은 우리들의 아버지의 약속이다.
그가 우리를 "양자로 택하셨다면" 또한 "양자의 성령"을 주실 것이다(갈 4:5, 6).
그는 "빛의 아버지로서, 모든 영의 아버지로서 자비하신 아버지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약속이다."
셋째, 그들은 아버지의 이 약속에 대해 그리스도에게 여러 번 들었다.
특히 운명하시기 직전 고별 설교에서 "보혜사"가 오실 것을 되풀이하여 확증해 주셨다.
보혜사는 아버지의 약속의 확인으로 우리로 그 약속에 의지하도록 격려하신다.
이 약속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들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예'와 아멘이다."
"너희는 내게서 그것을 들었고 나는 그것을 이루겠노라" 말씀하신다.
② 그것은 세례 요한이 예언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이 예언을 상기시키신다(5절).
"너희는 내게서 뿐만 아니라 요한으로부터 그 약속에 대하여 들었도다."
요한이 말하기를(마 3:11)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본문에서 그리스도가 요한의 말을 인용하고 성령의 은사를 그의 예언의 성취로 보심으로 요한에게 명예를 안겨 주셨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그의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한다"는 말씀을 이루셨다(사 44:26).
그러나 그리스도는 어떤 그의 사자들보다 위대한 일을 이루셨다.
그들이 은총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음은 그들의 명예이다.
그러나 "은총의 성령"을 주신 것은 그의 절대적 "권한인" 것이다.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요" 성령으로 가르칠 것이며 성령으로 중재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성령을 통한 역사는 가장 뛰어난 사자의 역사보다 더 귀한 것이다.
(3) 이제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같이 약속되었고 예언되었고 기다려졌던 성령의 은사를 사도들이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그 약속은 완전히 성취된다.
이분이 바로 "오시리라던 분"이요, 그러기에 "다른 사람은 바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성령은 "며칠 안 되어" 주어지리라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이 매일 성령을 받기에 합당한 마음을 보존하도록 며칠이 걸린다고 말씀하지는 않았다.
다른 성경 말씀을 보면 이 성령의 선물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리라 한다.
이 말씀은 특별한 권능에 대해 말해 주는데 이것은 성령에 의해 첫 번 전도자들과 교회 설립자들에게 주어졌고 그러므로 그 능력에 의해, 떨지 않고 그 시대에게 말할 수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교리와 그 가르침의 증거를 후손들에게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약속에 의해, 또 약속을 수행함으로, 우리는 신약을 영감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영혼을 의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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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하늘로 올려지시다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부탁(행 1:6-11)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는 그의 천사들을 통하여 그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제 거기서는 다시 몇 날 후 예루셀렘에서 그들을 만나시리라 약속하신다.
이렇게 함으로 그는 제자들의 복종을 시험하셨고 그 결과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승천의 "증인"이 되기 위하여 그가 그들에게 약속한 대로 "함께 모였다."
이 사실에 대해 본문은 설명해 준다.
Ⅰ. 그들이 예수를 만나서 한 질문.
그들은 사전에 의견의 일치를 본 것처럼 그에게 함께 와서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그들은 떼를 짓고 들어와 한 가족과 같은 기분으로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질문한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생각될 수 있다.
1. "그래 주님께서는 이 나라를 당신을 죽으시게 한 현재의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인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또한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긴 로마 황제에게 순순히 넘기시고 이스라엘을 그의 속국으로 삼으시려 하나이까? 도대체 주님과 우리를 증오하고 박해한 자들에게 권력을 맡기시다니 이는 불가하나이다." 그렇지 앍으면 이러한 뜻도 될 수 있다.
2. "그래 주님은 유대 나라를 그 민족에게 회복시켜 주시고 그들의 왕으로 당신은 섬김을 받으실 것입니까?"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두 잘못된 질문이었다.
(1) 그 나라에 대한 그들의 기대가 잘못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리라"고 생각하였다.
즉 그가 유대 민족을 "다윗왕이나 솔로몬왕 때처럼 아사왕이나 여호사밧왕 때의 국가처럼" 세계에서 위대하고 뛰어난 국가로 일으켜 줄 것을 바랬다.
그는 실로(shilo)가 되시어 "유대이게 왕홀을 회복해 주시고 율법을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나라를 세우려고 오신 것은 사실이나 "이스라엘에게 회복시켜 주실 나라는" 지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늘 나라였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① 선한 사람들까지도 교회의 부흥을 외적인 허영과 권력에서 찾으려하기 얼마나 쉬운가.
이스라엘 나라가 그들에게 회복되지 않는 한 영광은 없는 것처럼 생각한 것이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들에게 세력이 주어지지 않는 한 불만스러워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그 까닭에 이 세상에서 바랄 것은 십자가뿐이요, 그 나라는 저 세상에서 기다리라고 말씀되고 있는 것이다.
②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고집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교육의 편견을 극복하기도 몹시 어려운 것이다.
어릴 때부터 메시야는 이 세상의 한 왕과 같다는 개념에 젖어 있었던 제자들은 그의 나라를 영적인 것으로 믿기에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③ 우리가 자기 민족에게 호감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이다.
제자들은 하나님이 그 나라를 "이스라엘에게 회복시켜" 주시지 않는 한 세상에서 그의 나라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것이며 그렇기에 이스라엘이 흥하든 망하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④ 우리는 성서를 오해하기 쉬운 경향을 지니고 있다.
즉 상징적으로 말씀한 것은 문자적으로 이해하거나 자신의 생각 정도에 따라 성서를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성서에 의해 규제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이 위로부터 임할 때" 사도들이 곧 잘못이 교정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잘못도 교정될 것이다.
(2) 그 나라의 때에 관한 질문이 잘못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주여 이 일을 이루심이 이 때니이까? 이 목적을 위해 당신은 우리를 함께 부르셨고 그 나라를 이스라엘에게 회복시키시기 위한 적절한 계획도 세워진 것인지요? 확실히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지요"라 한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 그들은 그들의 입장을 망각하였다.
① 실상 그들은 주님이 질문하도록 명하거나 권유하지도 않은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② 그들은 그들 스스로 그 나라에서 큰 몫이 약속되었다고 믿은 바로 그 나라가 세워지기를 조급하게 기다렸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이 "왕좌에 앉을 것"을 말씀하셨으므로(눅 22:30) 이제 곧 왕위를 차지하는 일밖에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조급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때가 제일 적절한 때라는 사실로 만족해야 한다.
Ⅱ.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물음을 막으심.
전에 베드로가 요한에 관하여 여쭈었을 때 주께서 " 내가올 때까지 그를 이세상에 머무르게 둘지라도 그것이 노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답변하시던 것처럼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질문을 막으셨다(7절).
그리스도께서는 그 나라가 이스라엘에게 회복될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을 반박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성령이 임함으로 그들의 실수는 곧 수정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그들은 더 이상 현실적인 나라를 바라지 않았다.
또 하나 반박하지 않으신 이유는 세상에 복음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란 점에서 그들의 기대는 참된 면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약속에 대한 착각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시간에 대한 그들의 질문을 제지하신다.
1. 때와 기한에 대해서는 그들이 알도록 허용된 것은 아니었다.
즉 "너희의 알바 아니므로" 너희가 물을 일도 아니라 한다.
(1) 이제 그리스도는 그들을 떠나시며 사랑을 베푸신다.
반면에 그는 그들을 경고도 하신다.
이 말씀은 모든 시대의 그의 교회에게 주시는 주의로써 우리 신앙의 조상들에게는 생명이시며 동행하는 반석이신 그리스도, 바로 그 위에 선 교회가 분열하지 않도록, 또한 금지된 지식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과 하나님이 나타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사실들을 침범하지 말라고 주의하신다.
기록된 말씀을 분수에 넘도록 알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더 이상 알 수 없는 것은 그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지혜이다.
(2)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지식을 주셨으며("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알리어졌나니")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제 그들이 계시를 많이 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하도록 본문에서는 그들에게 알 수 없는 것도 있음을 이해시키신다.
우리도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지내는가를 돌이켜 봄으로 우리의 지식에 대해 교만할 수 없음을 배워야 할 것이다.
(3)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감당하기에 충분한 교훈을 가르치셨다.
운명하시기 전에는 전에대로 부활 후는 또한 그대로 필요한 것을 주신다.
그들이 이 지식으로 만족하기를 그는 바라셨다. 그것은 기독교인에게 충분한 것이었다.
그에게 헛된 호기심은 타락한 기질로써 극복되어야 하며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4)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셨고 또한 성령이 그 나라에 관하여 "장차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 보여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 16:13).
마찬가지로 그는 "때의 징조"를 그들에게 나타내셨는데 이 시대의 징조를 관찰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요, 무관심한 것은 죄이다(마 24:33; 16:3).
그러나 그들은 미래의 사건을 자세히 알려고 하거나 정확한 시기를 알려고 바라지도 말고 기대하지도 말아야 한다.
유한자로서 우리가 모르고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미래의 사건의 "때와 시기에 관하여"(Dr. Hammond가 해석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시대와 마찬가지로 전 시간의 흐름과 마지막 때에 대해서도 불확실한 채로 남겨두자.
우리는 한 해의 계절과 시간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여름과 겨울이 교차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여름이건 겨울이건 특별히 어느 날이 많고 흐린지 알 수 없다.
인생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름철과 같은 생의 번영을 누린다고 그것이 계속 보장되리란 법은 없다. 겨울과 같은 고통이 닥쳐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의 겨울에도 우리가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것은 생의 여름철이 돌아올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닥쳐올 운명의 날이" 이 날일지 저 날이 될 지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날에 대비하여 최선을 다 할 뿐인 것이다.
2. 그날은 하나님의 특권에 속한 것으로 그만이 아신다.
그날이야말로 "아버지께서 자신의 능력 안에 두신 날"인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과 함께 감추어져 있다. 그 외에는 아무도 닥쳐올 때와 시기에 대해 알 사람은 없다.
"하나님에 대해 알려 주시는 것"은 그의 "일이지" 우리의 소관은 아닌 것이다(15:18).
"종말을 처음부터 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능력 안에서만 가능하며 또한 이것으로 그는 자신이 하나됨을 나타내신다(사 46:10).
"비록 그가 때로는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때와 시기를 알게 하시기도 하셨지만(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400년 간 종노릇할 것과 바벨론에서 70년 포로로 있을 것) 그가 때와 시기를 너희에게 알리는 것을 합당히 여기시지는 않으신 것이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파멸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는 있었지만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까지 얼마나 결릴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너희로 하여금 지금 확신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알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후 그는 그의 종 요한에게 말씀하기를 "그가 합당히 여기시는 대로 그 일을 행하시든 안하시든 그것을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나니"라 하셨고 신약에서 발견되는 때와 시기에 관한 예언은 불분명하고 이해하기 어려움으로 그 때를 알아보려고 이 예언을 적용해보려 할 때는 때와 시기를 결정하는 일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다는 이 말씀을 관심을 갖고 기억해야 한다. Buxtorf는 메시야 재림에 관한 랍비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시간을 헤아리는 사람은 멸하리라".
Ⅲ.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할 일을 지시하시고 또한 권위있는 말씀으로 그들에게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성취를 약속하셨다.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바 아니다 (= 이런 일은 너희에게 아무 유익도 없는 것이다). 오직 이것을 알지니(8절)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심으로 너희가 성령의 능력을 받을 것이요, 또한 헛되이 받지 않으리니 이는 너희가 나와 나의 영광에 증인이 되어야하겠기 때문이라. 또한 너희의 증언도 헛되지 않으리니 그 증언이 이곳 예루살렘에서 받아들여질 것이요, 인근 지방과 나아가 전 세계에 퍼질 것이기 때문이다"(8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대 속에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쓸기를 원하신다면 우리가 이 증인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장차 올 때와 시기에 관해 스스로 혼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자.
본문에서 그리스도는 다음 사실을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1. 그들이 하는 일이 명예롭고 영광스럽게 되리라는 것이다.
즉 "저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다.
(1) 그들은 그를 왕으로 선포한 것이며 이 진리를 세상에 알림으로 그의 나라가 세워지고 또한 그가 다스리게 된다. 그들은 만민에게 엄숙히 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
(2) 그들은 이 사실을 증거할 것이며 이 증언을 확고히 할 것인데 세상의 증인들처럼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과 초자연적 은사란 신의 특권을 갖고서 [순교자가 되기까지] 수행할 것이다.
"너희는 나를 위해 순교자가 되리라." 또 어떤 사본에는 "나의 순교자"가 되리라 하신다.
그들은 때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당하면서 복음의 진리를 입증했던 것이다.
2. 그들의 능력으로 이 일을 감당하고도 남으리라 하신다.
그들은 이 일을 위해 자신의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혜와 용기가 충분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본래 "세상에서 약하고 어리석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재판받으실 때 담대히 증인으로 나타나지 못했고 아직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너희가 너희에게 임할 성령의 능력을 받으리니"(아마 말씀이 이렇게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 영혼보다 능력있는 영에 의해 생기와 힘을 얻게 될 것이요 너희가 권능으로 복음을 전할 것이며 구약 성서를 통해 그것을 입증하리라"(이 말대로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였을 때 그들은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 18:8).
"그리고 복음을 기적과 수난으로 확고히 세우리라."
그리스도의 증인은 그가 그들을 부르심에 응할 때 일할 능력을 받으며 그의 사업에 채용한 일군들에게 자격을 주시고 그들이 감당하도록 도와 주심을 기억하자.
3. 그들의 영향력은 크고 광범위하였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위해 증인이 될 것이며 그를 위해 끌려다닐 것이다."
(1) "예루살렘으로 끌려갈 것이다. 거기서 너희는 시작해야만 하며 많은 사람들이 너희의 증언을 받으리라. 듣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2) "너희의 빛이 전에는 헛수고하였던 유다 전역에 비치게 될 것이다."
(3) "그 다음 너희는 첫 전도 여행 때는 너희가 어떤 사마리아인의 성에서도 전파하는 것을 금하였지만 이제 사마리아로 가게 될 것이다."
(4) "너희 행적은 땅 끝까지 이르게 될 것이며 너희는 전세계에 축복이 될 것이다."
Ⅳ. 그들에게 이 교훈을 남기신 후 그는 그들을 떠나신다(9절).
이 "말씀을 마치시고" 즉 하신 말씀을 모두 다하신 후 "그는 그들을 축복하셨다"(눅 24:50).
"그들은 그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 즉 축복을 받은 후 열심히 그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 "그는 점점 올라가시어" 드디어는 "구름이 그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되었다."
본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천기사를 보게 된다.
엘리야처럼 "불병과 불말"로 이끌리어 가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실 때처럼 자신의 능력으로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이와 같이 성도들의 몸도 영체로써 권능 속에서 부활하여 썩지 않게 될 것이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그는 "제자들이 쳐다보고 있는 동안" 제자들 앞에서 승천하셨다.
그들은 그가 무덤에서 부활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가 부활하신 후에야 그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또한 그들을 흡족케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도 주의깊고 정성껏 보았기 때문에 결코 착각일 수는 없었다.
그는 번개처럼 재빨리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서서히 위로 올라가신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더욱 만족할 수 있었다.
2. 그는 "그들의 앞에서 구름에 가리워 사라지셨다."
아주 두터운 구름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두터운 구름 속에 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찬란한 구름이었다. 이는 그의 영광을 입으신 몸의 광채를 의미하였다.
그리스도가 변형되셨을 때 그를 덮은 것이 밝은 구름이었고 이 구름도 바로 그 구름이었다(마 17:5).
그가 지상에서 차츰 올라가 일반적으로 구름이 덮인 곳까지 가셨을 때 이 "구름이 그를 영접"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구름은 우리가 흔히 보는 구름이 아니라 특별히 그를 영접하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이제 그는 구름으로 그의 병거를 삼으신다(시 104:3).
흔히 하나님께서는 구름을 타고 강림하셨는데 이제 그는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다.
^^하몬드 박사(Dr. Hammond)는 본문에서 그를 영접한 구름이 그를 영접한 천사들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흔히 천사들의 모습은 구름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5장 22절과 레위기 16장 2절을 비교해 보라.
구름은 천상의 세계와 지상 세계 사이의 일종의 통신 수단으로 여겨진 것 같다. 구름을 매개로 수증기가 땅에서 올라가고 이슬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그러므로 이와 꼭 같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이신 그리스도는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고 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에게 임하며 우리의 기도는 그에게 상달된다.
이것이 그의 최후의 모습이었다. 수 많은 증인들의 눈이 구름 속으로 사라진 그를 지켜 보았다.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되셨는지를 다음 성경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단 7:13).
"인자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가니" 그들이 구름 속에서 "그를 영접하더라."
Ⅴ.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는데도 제자들은 계속해서 "물끄럼히 하늘을 바라보았다"(10절). 더 이상 쳐다볼 필요가 없는데도 왜 그들은 쳐다보았을까?
1. 아마도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그들에게 즉시 오시어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돌려 주시고 그들도 그와 함께 모든 좋은 지위를 나누어 갖게 되리라고 믿었다.
"그가 그들에게 당신이 그들을 떠나는 것이 그들을 위하여 유익하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이 그의 육체적인" 출연을 아직도 갈망하고 있었다. 아니면 그들은 "엘리야의 생도"들이 엘리야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처럼 그가 올라가시다 떨어지지나 않을까? 의심하면서 쳐다보았던 것 같다(왕하 2:16). 그렇다면 그들은 그를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가 승천하셨으므로 하늘에 무슨 변화가 있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그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사 24:23)란 말씀을 기억, 그의 후광의 빛으로 변화가 있을 것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들이 어떤 기쁨과 승리의 표시를 보기 원했든지 또는 칠층천이 열리어 그를 영접함으로 칠층천의 영광을 볼 수 있으리라고 다짐하고 있었던 것과도 같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에게 이후에 그들이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으니 이제 그들이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요 1:51).
Ⅵ. 두 천사들이 그들에게 나타나서 시기적절하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하였다.
천사들의 세계가 있어서 구세주의 영접을 준비하였고 이제 그는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당당히 입성하셨다. 그가 입성할 때 이 두 천사는 참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는 지상의 그의 교회를 얼마나 열렬히 사랑하시는가를 보여 주시기 위해 그는 그를 영접하러 나온 천사들 중 두 천사를 제자들에게 보내셨고 그들은 밝고 빛나는 "새마포를 입은 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에 따라서 지상의 그리스도의 종들을 다스림으로써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천사들이 그들에게 전한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1. 그들의 호기심을 제지하셨다.
"갈릴리 사람들이여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그는 "그들이 버리고 흩어진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상기시키기 위해 그들을 갈릴리 사람이라 부른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그의 특권 대사로 삼으심으로 대단히 명예를 부여하셨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낙담하여 쳐다보기만 하는 질그릇에 불과한 무식한 갈릴리 사람이란 것을 기억해야만 했다.
이제 천사들은 말한다. "왜 너희들은 거칠고 교양없는 갈릴리 사람들처럼 여기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가? 너희가 무엇을 보았는가? 당신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부른 모든 것을 보았오. 무엇을 쳐다보며 서 있는거요?"
이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마땅히 가야할 곳과 그 위에 건축할 반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었다.
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을 확고히 해 주고 있다.
주님께서도 가끔 이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에 천사들이 보냄을 받고 그들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즉 너희가 다시 보기를 원하여 그렇게 보고 있는 그분은 영원히 가신 것이 아니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약속한 날에 다시 오실 것이라. 그러므로 정하신 날이 이를 때까지 그를 기다리지 말라" 하신다.
(1) "바로 이 예수는 영광스러운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계시던 모습대로 다시 오실 것이요, 바로 이 예수는 자신을 속죄물로 드리사 죄를 도맡으셨으며 재림 때에 죄없이 나타나실 것이다(히 9:26, 28).
전에는 오시어서 치욕을 받으사 심판을 받으셨으나 앞으로는 영광 중에 다시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너희에게 사명을 부여하신 이 예수는 다시 너희를 불러 맡기어진 것을 얼마나 잘 행하였는지 물으실 것이며 다른 사람 아닌 그가 오시리라"고 한다(욥 19:27).
(2) 그는 똑 같은 방법으로 오실 것이다.
"그는 구름을 타고" 승천하시고 "천사들이 그를 수행하였다." 그런데 "보라, 이제 또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요, 수 없는 천사의 무리들이 그와 함께 오리라."
그는 "고함소리와 나팔소리 가운데 올라가셨고"(시 47:5) 이제는 하나님의 호령과 나팔소리와 함께 오실 것이다"(살전 4:16).
너희가 이제는 공중에서 구름으로 가리우신 그를 볼 수 없지만 그리고 그가 가시는 곳을 "너희는 따라갈 수는 없으나 그때에는 너희가 구름을 타고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서서 한가로이 지켜보고 있으나 번개처럼 주의 재림이 임하여 우리를 깨울 것이며 지금은 우리가 서서 떨며 보고 있으나 재림에 대한 기대는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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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세우다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예루살렘에 다시 모인 사도들(행 1:12-14)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장소 - "올리브산(감람산)"이었다.
그 곁에 베다니가 있다(눅 24:50). 그의 고통이 바로 여기 감람산에서 시작되었다(눅 22:39).
그러므로 거기서 영광스럽게 승천하시므로 그들로 인한 수치를 벗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수난과 승천이 상관성이 있음을 보여 주셨다.
그는 예루살렘이 내려다 보이는 데서 그의 나라로 들어가셨고 그 곳의 무책임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그의 백성들은 이제 그의 다스림을 바랄 수 없게 되었다.
그에 대하여 예언되기를(슥 14:4)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감람산에 마지막으로 서실 것인데 이 감람산은 둘로 갈라질 것이다. 이 감람산에서 참 감람나무이신" 그리스도는 승천하실 것이요, 거기서 우리는 "기름부음을"받게 된다(슥 4:12; 롬 9:24).
이 산은 예루살렘 가까이 있다고 하는데 "안식일에 허용된 하루 여행길" 정도다. 즉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 거리는 열심있는 신자들이 공중 예배가 끝난 후 명상을 하기 위해 안식일 저녁에 걸어갈 만한 정도에 불과했다. 어떤 이는 일천보의 거리라 주장하고 다른 이는 이천 규빗 또는 1500m라고도 하며 1 마일이라고도 주정한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2 마일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승리의 입성을 하신 예루살렘에 접해있고 감람산의 일부인 베다니는 약 1 마일 정도밖에 안 되었다.
갈대아판(版) 룻기 일장 평해서는 다음같이 말해 준다. "안식일과 거룩한 날을 지키어 이천 규빗 이상 걷지 말지니라." 이 말씀의 유래는 여호수아 3잘 4절을 근거한 것으로 행군하여 요단강을 건널 때 백성과 법궤 사이의 간격이 "이천 규빗"이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이런 제한을 규정하시지는 않았으나 그들 스스로 이러한 규칙을 제정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 규정 이상 여행하지 말라는 법칙은 우리와 관계가 먼 것이다. 우리에게 여행은 허용되었을 뿐 아니라 즐겨도 되는 것이다(왕하 4:23).
Ⅱ. 제자들이 돌아온 곳.
주님께서 지정한 데로 그들은 비록 적들의 소굴이긴 했으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후 그들은 요시찰 인물이었고 또한 그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였지만" 그들이 갈릴리로 내려간 사실이 알려진 후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무도 몰랐으며 더 이상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적의 소굴 가운데서도 은신처를 마련해 주신다.
그러므로 사울이 다윗을 아무리 찾아다녀도 결코 찾지 못하였던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그들은 "다락방으로 가서 거기 머물렀다."
그들이 한 방에서 함께 먹고 잔 것이 아니라 거기서 그들은 매일 모였다. 그리고 함께 성령의 강림을 고대하며 신앙 생활에 열중하였다.
성서 연구자들은 이 다락방에 관해 여러 추측을 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다락방이 성전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방들을 관리하고 있던 제사장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 성전의 다락방에 거하도록 허용하리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한편, 저자 누가는 "제자들이 계속 성전에서 있었다"고 전해 준다(눅 24:53). 그러나 그곳도 "성전 뜰 안에 있는 기도하는 집"을 뜻하였다. 거기서 그들은 예배하는 데 방해받지 않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 다락방은 개인집의 다락방이었던 것 같다.
^^옥스퍼드 대학의 그레고리씨도(Mr. Gregory)이 견해를 따르고 있는데, 그는 이 장소에 대해서 시리아의 주석 학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 주석 학자는 이 "다락방이 그들이 유월절 만찬을 들었던 같은 곳이었다"한다. 그곳이 유오디우스가 전해 주듯이 복음서 기록자인 요한의 집에 있었는지 또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처럼 요한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3절을 참조하라.
Ⅲ. 모인 제자들.
11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주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도 나오는데 신약 성서에서는 이들의 이름이 여기서 마지막으로 언급되고 있다(13, 14절).
"혈연적인 주님의 형제들"도 있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이렇게 하여 모두 12명이 되는데(15절) 대부분의 "70명의 제자들"도 사도들과 함께 복음 전파자로 채택되었던 것 같다.
Ⅳ. 그들이 모여서 한 일.
"그들은 모두 마음을 합하여 기도와 간구에 힘썼다."
1. "그들은 기도하였고 간절히 간구하였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하는 백성이며, 또한 "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고통과 위험의 시기였다.
그들은 마치 이리 틈에 양과 같은 처지였다.
"괴로운 일이 있는가? 기도하라." 이것이야말로 모든 염려와 불안을 물리치는 비결이다.
이제 그들은 그들 앞에 놓인 위대한 사업에 직면하여 그 일을 착수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해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보냄을 받기 전 그들은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바치었다. 그들은 성령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기를 기다렸으며, 그러므로 기도에 인색하지 않았다.
주님도 기도하실 때 성령이 그에게 임하셨다(눅 3:21). 영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곧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렇다고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열심히 기도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한 긍휼을 베풀기 위해 먼저 요구하시며, 그러므로 약속 실현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2. "그들은 계속하여 기도했고" 기도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규칙적인 정도, 자주하는 정도가 아니라 계속 기도한 것이다. 그들은 한 시간이라도 더욱 기도하려고 애썼다.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는 약속에 따라 성령이 오실 때까지 이곳에 머물기로 그들은 굳게 결심하였다.
그들이 "늘 하나님을 찬송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눅 24:53). 지금 그들은 "기도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약속에 대하여 찬양하는 태도는 그 실현을 바라는 예의바른 간구 방법이며 이전의 긍휼을 찬송하므로 더 큰 긍휼을 바라는 것이다. [[기도는 찬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구할 때는 그 자비를 찬양하고 우리가 그 안에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3. 그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그들은 거룩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고 말다툼이나 불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평화로운 가운데 성령의 일체성"을 보존하는 것은 "성령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 된다. 즉 합심하여 간구하는 태도가 가치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한다 해도 그들은 한 마음으로 같이 기도하였다.
"두 사람이 합심하여 간구하면 이루어질 것이며" 여럿이 합심하여 간구할 때 더욱 이루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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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유다의 죽음, 맛디아가 사도로 선택됨(행 1:15-26)
유다의 범죄는 그의 수치와 파멸을 초래하였을 뿐 아니라 사도직의 공백을 초래하였다.
그들은 12조상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본따" 12명으로 임명되었다. 그들은 교회의 면류관을 결정할 12별이었다(계 12:1). 또한 그들에게는 "12보좌"가 마련되었다(마 19:28).
주님께 배울 때는 12명이었으나 이제 선생이 되어야하는 이 때 11명밖에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다시 12명 그대로 보존하려는 욕망을 일으켰고 다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생각하게 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기 전 빈 자리를 채우고자 연구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본문은 그 방법을 설명해 주고 있다. 주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하시던 가운데 이 일에 대하여 이미 지시하였던 것은 아닐까. 고찰하여 보자.
Ⅰ. 이 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1. 약 "120 명"이 한 집에 모여 있었다.
어떤 사람은 모인 수가 남녀 합하여 120이라 생각하는가 하면 또 여자는 제외하고 남자만 120이라는 사람도 있다.
^^라이트푸트(Dr. Lightfoot) 박사는 이 "120을 11명의 사도와 70명의 제자"와 나머지는 그리스도의 친척, 같은 마을 사람 등으로 39명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또한 이 모임을 일종의 회의의 성격을 띈 것으로 목회자들의 모임으로 한 감독의 관할 지역을 뜻한다고 보았다(4:23). "그 외의 사람들로 믿는 자가 있었으나 감히 참석하지 못한 것이라"한다(5:13).
그들은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한 박해 때까지 계속 함께 있었고 그후 사도 이외에는 모두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한다(8:1).
^^그러나 라이트푸트 박사(Dr. Lightfoot)는 예루살렘에 몇 천 명은 안 되는 수백 명의 믿는 사람들이 이때에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는 그를 믿었으나 감히 이를 고백하는 사람은 없었더라는 말씀을 많이 본다.
(그러나 나는 라이트푸트 박사(Dr. Lightfoot)처럼 모인 사람들이 설교와 예배를 위해 선택된 대표자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령을 받기까지 그들은 이 일을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 회심은 다음 장에 기록되고 있다. 여기서 기독교 교회가 시작된다.
120문도는 나무로 성장하게 될 계자씨들이었고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할 누룩이었다.
2.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의 대표격이었던 베드로였다.
그의 열심과 나와서 말할 수 있는 위치로 보아 주님을 배반함으로써 잃었든 그의 위치가 온전히 회복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사건이 유대인들에게만 알려졌을 때 그는 유대인의 사도로 여겨졌으나 그 후 이방인에게도 설교하기도 하는데 이는 바울의 활동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Ⅱ. 베드로가 제시한 사도 선택 계획. 그는 "제자들 가운에서 섰다"(15절).
그는 재판관이나 또는 여러 사람의 우두머리인양 앉아서 말하지 않고 그의 형제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뜻에서 일어섰고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의 연설을 생각해 보자.
1. 그는 유다의 죽음으로 인한 사도직의 공백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께서 하셨듯이 특이한 방법으로 그 일이 성경 말씀의 성취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1) 유다가 가졌던 직무(17절).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세상에서는 성도들과 함께 하였던 많은 무리들이 보석을 구별해내는 그날에 성도들 가운데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여하지 못하고 다만 수만 채운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언하고도 불법의 아들"의 운명에 처해질 자가 있듯이 유다는 이 직무에 참여하였어도 오히려 자신의 죄와 파멸을 조장하였을 뿐이었다.
(2) 유다의 죄.
그는 그리스도의 박해자들에게 어디서 그를 찾을 수 있는지 정보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유다 자신이 나타나지 않았어도 그의 체포는 용이하였을 터인데도) 그는 뻔뻔스럽게 그를 잡으려는 무리 앞에서 공공연히 나타나 "예수 잡으려는 자들을 안내하였다."
그는 그 장소까지 그들을 데리고 가서 아주 자랑스러운 일을 행하듯이 "이 자가 바로 그 자니 꼭 붙드시요"라는 묵계된 암호를 보냈던 것이다.
죄의 주모자는 제일 큰 죄인이다. 특히 그들의 직분이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인데 그리스도를 적에게 인도하는 자는 두말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3) 죄로 인한 유다의 파멸.
대제사장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죽이려한다는 것을 알아챈 그는 그들에게 밀고함으로 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물론 그들 밑에서 벼슬도 얻고 그러므로 이번 거사로 얻은 대가는 계약금 정도에 불과하는 큰 결과를 기대하였다.
① 그는 부끄러운 꼴을 당하고 돈도 잃어버렸다(18절).
그는 그의 불의의 대가인 "은 30개로 밭을 샀다."
그가 밭을 산 것이 아니라 불의의 삯이 밭을 산 것이었다. 이 이익으로 부자가 되려는 것이 그의 졸렬한 계획이었다. 그는 게하시가 거짓말로 나아만에게서 재물을 취하였듯이(왕하 5:26) 자기를 위하여 밭을 사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구입한 밭은 나그네들이 묻히는 밭이 되었고 이 일로 자신에게나 그의 가족에게 유익한 것은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불의한 맘몬(황금의 신)이었고 그를 현혹하였으며 그의 불의의 보수는 "그의 불의로 인한 멸망이었다."
② 그는 치욕적인 모습으로 죽었다.
마태복음 27장 5절에서는 그가 낙심하여 "나가서" 목매달아 죽었다고 전해 주고 있다(거기서는 그 이상의 것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는 마태의 기록에 더 부연하여 이르기를 그가 목 졸라 또는 슬픔과 고통으로 질식하여 "곤두박질하여 얼굴"을 처박고 죽었다고 전해 준다(하몬드 Hamamond 박사에 의하면).
넘어지면서 숨이 차고 또 심히 곤두박질한 연유로 "배가 터지고 창자가 터져나왔던 것이다." 귀신이 어린이에게서 나갈 때 그를 "괴롭히고 쓰러뜨리고 경련을 일으켜" 거의 죽게 하였음을 우리는 안다(막 9:26; 눅 9:42).
귀신이 유다를 사로잡았을 때 머리를 처박고 배가 터지게 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마태가 전해 준대로 목을 매달자 숨이 막혀 베드로가 말하는대로 배가 터지게까지 된 것이다. 그의 배는 인근에서 들릴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터졌고(애드와드 박사 Dr. Edward에 의하면) "그의 창자가 흩러나온 것은 누구나 다 알게 되었다"(19절).
누가는 의사답게 복부의 내장을 잘 알고서 쓰고 있다. 배가 터져 죽는 것은 반역자에 대한 처형법이었다. 주 예수를 반역하였으므로 배속의 창자가 흘러 나온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악한 종에 대해 말씀하기를 "엄히 때리고"(마 24:51)라고 하셨는데 이미 이때 그리스도는 유다의 운명을 아셨던 것 같다.
(4) 모든 사람에게 유다의 저주받음이 알려짐.
"이 일을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
마치 신문에나 실린 것처럼 모든 사람들은 주님을 배반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대하여 얘기하였다(19절).
제자들만 얘기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화제거리가 되었고 그 사실의 진리를 논박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사건은 명백한 사실로 "알려졌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공모하였던 첫 사람이 죽었으므로 그와 같이 그리스도를 죽게 한 자들이 회개하였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굳어져 그것은 기대할 수 없었다.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에게는 말씀과 역사하시는 성령만으로 회개가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여기 유다의 돈으로 구입된 밭이 Aceldama - 즉 피밭이라 불리워진, 물건에 악명이 붙은 실례를 보게 된다. 그것이 피값으로 사진 것임으로 그 이름이 붙게 되었고 흠없는 귀한 피를 판 사람뿐 아니라 그 피를 산 사람에게로 영원한 치욕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이 피에 대하여 물으실 때 그들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5) 이 일은 성서의 말씀의 성취였다.
이 사건에 대하여 성서는 명백히 말해 주고 있고 그러므로 "이 일이 성취된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16절). 12 중의 한 사람의 제거되었다는 것으로 놀라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윗은 그의 죄를 이미 예고하였고(시 44:9)에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이 말씀은 요 13 : 18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알고 계셨다.) 더 나아가 다음 사실을 예고하였다.
① 그가 받을 형벌(시 69:25).
"저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이 시편은 메시야에 대하여 말해 준다. 바로 몇 절 전에 그에게 담즙과 초(醋)를 주었다는 내용이 언급된 것을 미루어 보아 다음에 뒤따르는 다윗의 적들에 대한 파멸 예언은 그리스도의 적에게 특히 유다에게 적용되야만 하는 것이다.
이 예언은 욥의 친구 빌닷이 적에 대하여 예언한 것과도 같은 의미를 지난다. "그가 그 의뢰하던 장막에서 뽑혀서 무서움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그에게 속하지 않는 자가 그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욥 18:14, 15).
②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됨.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란 말씀은 시편 109장 8절의 인용문이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인용한 뒤 적절하게 다음의 계획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악한 직분을 설정하여 그 직에 종사할 어떤 악한 자를 수치스럽게 처형하신다고 생각지는 말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목적이 좌절됨으로 고통받으시지도 않으시며 그가 맡긴 사명이 자리가 빈다고 해서 또는 그가 하실 일이 수행되지 않았다고 해서 고통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효력이 상실되지 않는다."
유다는 목매달아 죽었으나, 그의 사도직은 계승되었다.
그가 "살던 곳에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다."고 말씀되고 있고 그에게는 상속자도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도직이 끊어지겠다는 성서의 예언은 없다.
유다 자신은 사도직의 계승자가 생겨지길 원치 않았을 것이다. 나무에 있어서도 "한 가지가 잘려져 나간다면" 다른 가지들이 "움트게 되듯이" 교회의 평신도나 직분 맡은 자가 떠난다해도 다른 사람에 의해 자리는 채워지게 마련인 것이다(롬 11:17).
증인이 없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2. 베드로가 다른 사도 선택을 위해 취한 행위(21, 22절).
이곳에서 다음 서신을 배우도록 하자.
(1) 빈 자리를 채울 인물이 갖추어야 할 자격.
그는 "70명의 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다니었으며 즉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계속 수행하였던 사람 중에 하나이어야 했다.
즉, 그는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하여"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확장되고 "그가 우리로부터 승천하신 바로 그날까지" 3년 반 동안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행하신 이적을 목격한 자라야 했다.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주어진 임무에 끊임없이 근면 성실한 사람들이라야 높은 자리에도 합당한 것이다. 즉 적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만 더 큰 일도 맡기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행하심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복음의 전파자로 또한 그의 교회의 지도자로 임명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사도들과 동행하였던 사람들 외에는 사도가 될 수 없었다. 이 말은 이따금 사도들을 만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계속 친숙하게 사귀었던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2) 그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불리움을 받은 그의 임무.
그는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해야만 했다."
이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11사도들과 함께 다른 제자들도 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제자들이 사도들과 함께 그의 부활에 대하여 사도들이 행한 것처럼 만족한 증인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도들이 세계에 증거하였던 가장 위대한 사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이 부활이야말로 예수의 메시야됨의 가장 명백한 증거였으며 예수에 대한 우리의 희망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사도들이 세속적인 권위와 지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그의 부활의 능력을 전파하기 위하여 어떤 일을 준비하였는가를 살펴 보자.
Ⅲ. 유다의 사도직을 계승할 사람의 추천.
1. 그리스도를 계속 따라다녔던 성실한 두 사람이 후보로 추천되었다(23절).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즉 누가 추천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데 11사도가 아니라 "120문도"가 함께 참여하여 결정하였다.
이 사실은 베드로가 11사도를 대상으로 말하지 않고 그들 모두에게 말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이 추천한 이들은 "요셉과 맛디아"였다.
만일 요셉이 "유스도라 하는 예수와"(골 4:11) 동일 인물이 아니라면 이 두 사람에 대한 기록을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유스도라 하는 예수에 대해서는 바울이 말하고 있는데 그는 "할례당"이며 유다 본토인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바울과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었고" 이들만 바울에게 위로가 되었다. 이 사람이 요셉과 동일 인물이라면 그는 사도로 택함받지 못하였지만 그렇다고 주의 일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 낮은 지위에서도 많은 유익한 일을 행하였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다 "사도이며 예언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요셉이야말로 "작은 야고보(막 15:40)의 형제인 요세(막 6:3)"라고 본다.
^^어떤 사람은 이 요셉을 사도행전 4장 36절에 언급된 요셉으로 보기로 한다. 그러나 후자는 구브로 출신이요 전자는 갈릴리 출신이며 또한 전자의 다른 이름은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 이란 뜻이요, 후자의 다른 이름은 "바사바"로서 "맹세의 아들"이란 뜻이다. 요
셉과 맛디아 둘 다 귀한 인물로 직분에 합당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누가 적격인지 결정할 수 없었고 다만 둘 중에 하나이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이 두 명이 자기를 내세우거나 이 직분을 위하여 다투지도 않았다. 오직 임명될 때까지 겸손히 앉아만 있었다.
2. 그들은 기도로 하나님께서 지시해 주실 것을 간구하였다.
70명의 제자 중에 택해 주시기를 간구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중에 누구냐"하는 문제였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들 중 아무도 이 둘과는 비교될 수 없음을 잘 알았다(24,25절).
(1) 그들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에게 간구하였다.
"사람들이 자기를 아는 것보다 더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사도로 선택될 때는 그의 마음과 그의 기질과 성벽에 의해 택하여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께서는 그의 거룩하신 목적을 위하여 유다로 12중 하나가 되게 하셨었다.
우리가 교회와 교역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며" 그의 눈으로 바라보실 뿐 아니라 그의 장중에 두사 그가 뜻하시는 대로 그들을 지휘하시고 그들이 합당치 않을 때는 다른 영을 그들에게 주심으로 그들을 목적에 합당하게 하여 쓰신다.
(2) 그들은 이 둘 중 하나님이 누구를 선택하셨는가를 알기 원하였다.
"주여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그러면 족하다는 것이 그들의 심정이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일군을 택하시는 것이 당연하다. 그가 자신의 계획된 섭리로 또는 성령의 은사로써 누구를 택하시며 무엇을 택하셨는가를 보여 주실 때 우리는 그것에 따라야 한다.
(3) 그들은 맛디아를 하나님이 선택하신 형제로 받아들일 준비가 갖추어 있었다.
그들은 "봉사와 및 사도직에 참여하여" 동역자가 되며 영광의 동참자가 될 사람을 뽑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은 제거하고 자기가 바라는 사람을 고집함으로 자신들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았다.
"유다는" 이 영광스러운 일에 "범죄함으로 참여치 못하게 되었고" 그의 주님을 배신하여 죽이므로 그에게는 합당치 않은 사도의 "자리에서" 쫓겨나 범죄자의 당연한 운명으로써 목매달아 죽어 그가 갈 곳인 지옥으로 가야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배신한 사람들은 그와의 고귀한 관계를 끊어버림으로 온갖 비참을 겪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어떤 랍비는 발람이 "자기 갈 곳으로 갔다"는 말씀을 그가 "지옥으로 갔다"는 뜻이라고 말하고 있다.
^^휘트비 박사는 이그나시우스를 인용하여 말하기를 모든 사람에게는 그에게 합당한 장소가 지정되어 있는데 이 장소는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의 행위를 따라 정하신 곳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주님께서는 유다가 받을 운명에 대하여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의 불행을 생각할 때 그가 차라리 세상에 나지 않는 것이 좋았던 것이라는 의미다.
유다는 위선자였고 그가 가야할 곳은 지옥이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죄인도 그들의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마 24:51).
(4) 추첨에 의해 선출하였다(26절).
이 방법은 하나님에게 호소하는 것으로 다른 방법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를 결정하는 데 유익한 해결책이었고 엄숙한 종교적인 규범 즉 믿음의 기도와 함께 행하여졌다.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성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장로가 추첨으로 결정될 때 그 추첨이 하나님의 행위로 간주되는 것처럼 맛디아도 인간의 수단에 의해 성직에 임명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세례받을 때 성령에 의해 세례받은 것처럼 머지않아 그들 모두가 받게 될 성령에 의해 성직에 임명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빈 사도직이 채워졌고 (하지만 맛디아의 행적은 전해져 남겨진 바 없고) 후에 12 중의 다른 하나인 야고보가 순교했을 때 바울이 사도가 되었던 것이다.
===호크마==
=====1:1
데오빌로여(* , 오 데오필레) -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 또는 `하나님의 친구'(`데오스'<* >와 `필로스'<* >의 합성어)라는 뜻이 있다.
누가는 이미 그의 첫번째 저서에서도 수신자가 데오빌로라는 것을 밝힌 바 있다(눅 1:3). 다만 차이가 있다면 누가복음에서는 `각하'라는 존칭이 그에게 붙여져 있다는 것이다. 데오빌로의 신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說)이 있다.
(1) 데오빌로라는 이름의 의미가 시사하는 바대로 그는 어떤 특정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독자를 가르킨다는 추측이다(Bruce).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각하'(눅 1:3)라는 존칭을 사용한 것을 볼 때 그 신빙성이 적어진다. 왜냐하면 실재의 인물이 아닌 사람에게 그러한 존칭을 사용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2) 데오빌로가 실재했던 인물이라면 그는 `각하'라고 불릴 만큼 높은 관직에 있던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따라서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는 적어도 총독 이상의 직위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유대 지방의 총독들인 벧릭스(23:26;24:3)나 베스도(25:1;26:25)가 바로 데오빌로였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B. H. Streeter). 그러나 `각하'라는 존칭이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전문 용어였는지 아니면 단순히 예의를 위한 존칭이었는지 분명히 알 수가 없다. (3) 또 다른 추측은 도미티안(Domitian) 황제의 조카인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Titus Flavius Clemens)가 신자가 된 후에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고쳐 부른 이름이 데오빌로였을 것이라는 추측이다(B. H. Streeter). (4) 어떤 사람은 37-41년 사이에 유대인 제사장 가운데 데오빌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데오빌로가 그 사람일거라고 추측한다(R. Eisler). 그러나 데로빌로가 위에 언급된 사람 중에 누구라고 확실하게 꼬집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당시에 책을 저술하여 누구에게 증정하는 관례가 유행되고 있었던 점으로 볼 때 `데오빌로'라는 수신자는 분명히 역사적인 한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누가복음 서두의 내용(눅 1:3, 4)을 볼 때 그는 상당한 지식 수준에 있는 사람으로 이미 기독교에 대해서 이해와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먼저 쓴 글에는(* , 톤 프로톤 로곤) - 정관사 `톤'(* )은 선행(先行)된 어떤 기록을 지적하는데 그것은 누가복음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형용사를 문자적으로 취하여(`첫째'라는 의미임) 누가가 누가복음과 본서에 이어 또 한권의 책을 쓰고자 했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있다(Zahn, Ramsay). 그러나 이 말이 두 종류만을 비교하는 데 쓰였던 예들(요 1:15;20:4)을 볼 때 오히려 `먼저'(* , 프로테로스)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유력하다.
=====1: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 `택하신'(* , 여셀려사토)은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맨 처음 택하실 때 사용된 것과 같은 동사이다(눅 6:13). `사도들'은 때로 넓은 의미에서 사도들을 도와주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예수의 최후의 명령을 받은 열 한 사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성령으로 명하시고 -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마 28:18-20; 막 16:15-18;눅 24:44-49)에 성령으로 명하셨다는 내용은 없다...그러나 예수는 그의 생애에서 줄곧 성령의 인도를 받으셨다(10:38;눅 4:1, 18). 세례를 받을 때부터(눅3:21) 부활(1:4)승천하실 때까지 그의 모든 사역이 성령의 인도에 의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명하신 것도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아울러 성령으로 명하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요 20:22) 복음 증인으로 삼으실 것을 약속하신 사실을 말하기도 한다.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 `시작하심부터'(1절)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은 예수의 모든 지상 사역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승천하다'는 원래 `어떤 것을 들어 올리다'(* , 아날람바노)는 뜻을 지닌 동사인데 본 구절에서는 하늘로 올라가신 것 즉 `승천'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 동사가 비록 `하늘로'라는 어구가 없이 사용됐다 할지라도 여러 곳에서 예수께서 하늘로 올리우신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어졌기 때문에(1:11, 21;막 16:19;딤전 3:16) 여기에서도 자연스럽게 `승천'(昇天)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이 70인역에서는 엘리야의 승천을 묘사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왕하 2:11).
=====1:3
해 받으신 후에 - `해'(害)란 그리스도의 고난을 의미하며(3:18;26:23)이 `고난'에는 그의 죽음까지 포함된다(히 2:9은 `죽음의 고난'이라고 말하고 있다).
확실한 많은 증거 - 눅 24:13이하의 사건들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요 20:16-18;21:1).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까지 40일 동안 세상에 계셨다. 그 사이에 제자들에게 열 번 나타나셔서 그의 육체적 부활을 증거하셨다(마 28:1-19;막 16:9-18;눅 24:13-50;요 20:11-23,26-29;21:1-23;고전 15:5-8).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 `하나님 나라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부활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당신의 공생애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으리라 짐작된다(눅 24:45-47).
한편 `하나님 나라'(* ,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중심 주제일 뿐 아니라 신 구약 성경의 주제이기도 하다. 신 구약 성경의 내용을 살펴볼 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하나님 나라는 구약의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되었다(사 9:1-7;11:6-8;29:17-24;35:5-10;단 2:44 등). (2) 하나님 나라는 예수께서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었다(마 12:28;눅 17:20,21 등).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아니하였다.(3)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재림때에 절정에 이르러 완성(完成)을 보게 될 것이다(마 25:34;요 18:36). (4)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이다(시 103:19). 하나님 나라에서 `나라'는 영역(realm)을 가리키기도 하나 일차적으로는 통치, 주권, 왕권과 관련된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으로서 주권을 행하시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막 1:14-20 주제 강해 `하나님 나라의 개념'참조).
=====1:4
같이 모이사(* , 쉬날리조메노스) - 이 동사를 헬라어 `쉰'(* , `함께')과 `할레스'(* , `붐비는')에서 온 합성어로 추정하여 지금까지 `함께 모이사'로 번역해 왔다(Calvin, Bruce, NASB). 이에 반하여 이 동사가 `쉰'(* )과 `할스'(* , `소금')에서 온 합성어로 보고 `함께 절인 것을 나누는 동안' 혹은 `함께 식사하는 동안'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Chrysostom, Jerome, Meyer, Vulgate, RSV, NIV). 이러한 번역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그들 앞에서 음식을 잡수신 사실(눅 24:42, 43;행 10:41)을 고려할 때 그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 동사의 어원에 있어서 이렇다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 역시 하나의 추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위의 두 견해 중 어느 것을 택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 예루살렘은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한 장소였다(대하 3:1). 그는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에다 성전을 건축했는데 그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갔던 산이다(창 22:2,14). 이처럼 예루살렘은 구속사적(救贖史的)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곳이다. 이삭의 번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미리 보여주신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친 그곳에다 성전을 짓도록 섭리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말씀이 나올 곳으로 예언된 것이며(사 2:3;미 4:2)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곳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진리의 중심지로서, 신약의 터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주님께서는 바로 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분부하신 것이다. 그곳으로부터 진리 운동이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 `아버지의 약속'은 요 14:16,17,26;15:26;16:7-14에 나타난 것같이 주님께서 마지막 날 밤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곧 보혜사 성령에 관한 약속인 바(5절;욜 2:28-32;눅 24:49) 약속된 성령께서 하실 일은 무엇보다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는 것이요 또한 능력있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이다.
=====1:5
본절은 세례 요한이 이미 예언한 것으로(마 3:11;막 1:8;눅 3:16) 요한의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승천 후에 부어주실 성령 강림의 예표였다. 상세한 내용은 눅 3:1-20 주제 강해 `세례 요한의 세례'를 보라.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 분명한 시일이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날은 그때부터 약 열흘 후 였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 구약의 예언에 의하면 성취의 날에는 하나님의 영이 모든 육체에 부어질 것이라고 하였다(욜 2:28). 이제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이루시고 승천하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한 모든 신약의 백성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의 세례와 앞서 말한 요한의 물세례와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1:1-5 주제 강해 `성령 세례'를 참조하라.
=====1:6
저희가 모였을 때 - 원문에는 `멘 운'(* ,`그래서')이라는 일종의 연결어(連結語)가 있으나 한글 개역 성경에는 빠져 있다. 여기에서 `저희'는 사도들을 말하고(2절) 그들이 모인 곳은 예루살렘에서 동편에 있는 감람원(the Mount of Olives, NIV)이라 하는 산이었다(12절).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 `묻자와'(* , 에로톤)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제자들이 반복하여 질문했음을 암시한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 사도들이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4절)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예수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 줄곧 그들은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독립과 회복을 통하여 실현되어질 하나님 나라를 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라가 회복되면 자신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막 10:35-45;눅 22:24-32).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더불어 그들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지만, 이제 부활하신 주를 보고서 다시금 정치적 회복에 관한 기대가 되살아나게 된 것이다.
=====1:7
때와 기한은(* , 크로누스 에 카이루스) - 이 두 단어는 각각 보다 긴 시간과 보다 짧은 시간을 가리킨다(G. Miligan). 그러나 더 엄밀하게 말하면 전자는 시간의 지속(duration)을 가리키고 후자는 정해진 한 순간을 의미한다(살전 5:1).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 예수는 `때'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6절) 직접적으로 `아니다'라고 답하시지 않았다. 대신 그는 제자들의 관심을 장차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에로 돌리셨다(8절). 이미 예수는 자신도 그의 재림의 날과 시를 알지 못하며 오직 하나님만 그것을 알고 계신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마 24:36;막 13:32;살전 5:1, 2;벧후 3:10).
=====1:8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그들이 하늘의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시키셨다.
권능- 그 능력(* , 뒤나민)이란 그들의 증인으로서의 사역을 수행하는데 필요로 하는 모든 능력을 말한다.
예수 자신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처럼(10:38;마 3:16;막 1:10;눅 3:21, 22) 이제 제자들도 그와 똑같이 기름부음을 받아 사역을 수행할 수 있어야 했다. 증인(證人)으로서의 사역은 본서 전체에 걸쳐 두루 나타나는 주요 주제이다(2:32;3:15;5:32;10:39;13:31;22:15).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제사장 나라로서의 증인의 사역에 이어 제자들의 사역을 통해 완수해 나가야 될 과제로 남겨졌다.
여기에서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5절에서 언급된 성령의 세례를 의미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사역의 영역을 요약하고 있다.
이 지리적인 명칭들은 마치 본서의 목차와 같은 구실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F.F. Bruce). 즉, 본서의 기록에 의하면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1-7장)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8:1-11:18) 온 세계에로 확장되어 갔던 것이다(11:19-28:31).
누가복음에서는 복음 사역의 지리적 이동 상황이 갈릴리로부터 베레아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이어져 가는데 본서의 경우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까지 퍼져 나간다.
내 증인이 되리라 - 영어의 순교자(martyr)라는 말이 `증인'(* , 마르튀스)이라는 헬라어에서 유래했다.
이는 증인은 순교적(殉敎的) 자세를 가지고(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보고 들은 것을(요일 1:1) 증거해야 함을 암시한다.
`내 증인'이란 `나(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나를 위해서,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R.C.H.Lenski).
그리고 `내 증인이 되리라'는 미래 시제는 성령 강림의 약속의 실현과 더불어 제자들이 본격적으로 증인의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1:9
보는 데서 - `보는 데서'(* , 블레폰톤)는 현재 분사로 그들이 예수를 직접 계속 보고 있었음을 강조한다.
올리워 가시니 - 이는 2절과 눅 24:51에서 승천에 관해사용된 두 동사(* , 에파이로)와 같은 말이다.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광을 가시적(可視的)인 형태로 표현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볼 수 있다. 광야에서 구름이 장막에 충만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시적인 증표로서 이스라엘 백성위에 임한 것이었다(출 40:34). 또한 그러한 구름은 변화산상에서도 예수와 제자들을 에워쌌었는데(마 17:5;눅 9:34, 35)그것 역시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가시적인 표시였다. 뿐만아니라 감람산에서 예수께서 그의 재림을 묘사할 때에도(마 24:30;막 13:26;눅 21:27)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하였다.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 `자세히 보다'(* 아테니조)는 `긴장한채 열중하여 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는 미완료형이 사용되어 행동의 계속성을 암시한다.
=====1:11
갈릴리 사람들아 - 제자들은 주님께서 부르시기 이전에는 한갓 갈릴리 사람, 즉 어부, 세리에 불과했다. 또한 그곳 갈릴리는 요 7:52에 의하면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도외시되던 곳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보잘것없는 곳 출신의 그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담대한 복음의 증인들이 되었던 것이다.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 이 말은 어정쩡한 태도로 계속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에 대한 일종의 책망이라 할 수 있다(I. Howard Marshall). 제자들은 과거 변화산상에서의 경험을 상기하면서(마 17:1-8) 구름이 걷히고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게 되리라는 기대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예수의 승천에 관한 말씀을 들었으며(요 6:62;20:17) 또한 향후에 감당해야 할 사명을 명령받은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8절) 이 상황에서는 그것을 잊어버린채 단지 예수와 함께 있으려는 데에만 집착하였다.
너희 가운데서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예수의 재림 사실에 대해서 그 방법까지도 강조하여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사실은 당신의 재림을 확신시키는 보증(保證)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재림의 약속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증거하는 사역에 매진할 수 있게 하는 동력과 근거의 역할을 한다.
=====1:12
감람원이라 하는 산 - 감람산(마 21:1;24:3;26:30)은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길게 뻗은 산이다. 이 산에는 감람나무가 많이 있어서 이 이름을 가진 듯하다. 이 산 서편의 감람나무 숲이 우거진 기슭에 예수께서 최후의 기도를 드린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 미쉬나(Mishnaah)에 의하면 안식일의 여행거리는 최대한 2천 규빗으로 제한되었다. 이 거리는 NIV의 난외주에도 나타나듯이 약 1.1Km정도에 해당될 것이다.
한편 본문은 예수의 승천이 안식일에 있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강조점은 그 사건이 예루살렘 근방에서 일어났다는 데에 있다. 눅 24:50에 의하면, 예수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까지 가신 것으로 되어 있다.
=====1:13
들어가 -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간 것을 뜻한다.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 원문에서 `다락'(* , 토 휘페로온)에 정관사를 사용하여 `그 다락' 혹은 `그 방'이라고 한 것을 볼 때 이 다락은 이미 잘 알려진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다락방은 비록 뚜렷하게 입증되지는 않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그의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먼찬을 드셨던 방인 것 같으며(막 14:12-16;Zahn, Bruce)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 중 몇 사람에게 나타나셨던 적이 있는 바로 그 방이었을 것이다(눅 24:33-43;요 20:19-26). 다락방은 초대교회의 터전이기도 했던 마가의 다락방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베드로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 공관복음서에 제자들의 명단이 제시되었으나(마 10:2-4;막 3:16-19;눅 6:13-16) 본서에서도 그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이 목록에서 누가가 의도하는 바는 사도의 무리가 그 수에 있어서 불완전하며 따라서 맛디아를 선택함으로써 그 결원(缺員)을 보충하는 기사에 대한 준비 단계를 마련하고자 함이다. 본서와 공관복음에 기록된 열 두 사도의 명단의 비교는 마 10:1-4 주제 강해 도표를 참조하고, 열 두 사도의 행적에 관해서는 막 6:7-13 주제 강해의 도표를 참조하라.
=====1:14
여자들과 - 예수의 사역 기간 동안 그리고 심지어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낼 때까지 계속 따라 다니던 여인들을 가리킨다(눅 23:49;24:10;요 19:25). 베자 본문(Codex Bezae)에는 `그리고 어린이들'이란 문장이 첨가되어 있다.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 누가는 복음서에서부터(눅 1장) 마리아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는데 여기서는 여자들 중 유일하게 그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이것은 그녀가 초대 교회내에서 어떤 지도적 위치에 있었음을 짐작케 해주는 구절이다. 그러나 그녀를 숭배의 대상으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 예수의 아우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마 13:55;막 6:3)인데 그들은 한때 예수를 믿지 않았다(요 7:2-10).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부활 이후에 예수의 제자들이 되었다. 그 중에 야고보는 이들 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서(12:17;15:13 이하)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방문했던 사람 중 하나였고(고전 15:7) 야고보의 저자로 믿어진다.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 그들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위하여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에 전념하였다. 예수께서는 교회를 인도하고 강화시킬 하나님의 선물로서 성령을 약속하셨거니와, 이 약속에 대한 성도들의 반응은 기도로 나타나야 했다. 다시 말해서 초대 교회가 성령을 받은 것은 기도할 때였다. 따라서 누가가 본서 시작부분에서 지속적이고 합심(合心)된 기도로써 성령 강림을 기다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1:15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 고전 15:6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500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나타나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본문의 120명 외에도 더 많은 제자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여기서 특별히 120이라는 숫자는, 자체 내에 공회(council)를 갖춘 한 공동체를 설립하는데 필요한 최소 인원수를 120으로 규정한 유대법의 규례를 염두에 둔 것으로 추측된다(I.H.Marshall). 곧 유대교적 견지에서도 제자들의 수는 새로운 한 공동체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 복음서에서도 베드로는 열두 제자들 중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었다(마 16:17-19). 여기서도 그는 대표자의 자격으로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베자 사본(Codex Bezae)에는 베드로가 `그 제자들' 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편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라 지칭한 경우를 여기서 처음 보게 된다. 한슨(Hanson)에 의하면 이 말은 교회의 구성원들을 가리키는 최초의 명칭이었다고 한다(6:3;7:2;13:15,26,38;15:7,13;22:1;23:1,6; 28:17).
=====1:16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 이 말은 성경의 영감에 있어서 `성령'은 배후의 역사자요 `다윗의 입'은 도구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따라서 베드로는 모든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음을 믿었다 하겠다(딤후 3:16). 한편 베드로는 가룟 유다와 관련된 성경 말씀이 성취되었고 또 성취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자신의 연설을 시작하고 있다. 원래 가룟 유다는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그에게 할당되어진 사역 혹은 봉사의 몫을 담당했었다.이제 그가 없어졌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에 의해 그 공백이 메워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20절).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 `指路(지로)한' 이란 `안내자(* , 호데구)가 된'(guide, KJV) 것을 말한다(마 26:47,48;막 14:43,44;눅 22:47,48;요 18:2, 3).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 여기서 `성경'이란 20절에 인용된 시 69:25;109:8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마땅하도다 - `반드시 될 일'을 가리키는데 이는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는 말씀과 상통한다(요 10:35).
=====1:17
이 직무의 한 부분 - 가룟 유다는 예수 일행의 회계일을 맡았다(요 12:6). 이 직무는 그가 대단한 신임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렇듯 중요한 위치에서 큰 신임을 얻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을 따라 결국 예수를 배신하는 중죄(重罪)를 범하고 말았다. `직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 )는 일반적으로 `섬김', `봉사'를 뜻하며(고전 12:5;엡 4:12;히 1:14) 특별히 사도의 직분을 지칭하기도 한다(롬 11:13;고후 4:1;딤전 1:12).
=====1: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 원문에는 아무런 구분이 없지만 우리 성경에는 본절과 다음 절을 괄호 안에 두고 있다. 이 부분을 베드로의 계속된 설교의 일부라고 보눈 견해도 있다(Meyer). 하지만 19절에서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라는 3인칭이 사용된 점으로 볼 때 베드로의 설교라고 보기는 힘들다(I.H.Marshall). 따라서 이 부분은 베드로가 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당시 예루살렘에서 들리던 이야기를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봄이 무난하다. 한편 이 괄호 부분의 내용은 마 27:5-7과 차이가 있다. (1) 마태복음에는 대제사장이 밭을 산 것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유다가 밭을 샀다고 한다. 아마 실제로 밭을 산 사람은 대제사장이었지만 이것은 결국 유다가 산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2) 마태는 `아겔다마' 곧 `피밭'이라는 말의 기원(起原)이 예수의 `무죄한 피'를 판 것(마 27:4)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는 반면 누가는 이 말이 유다의 피에서 유래한다고 밝힌다(Lenski).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서로 모순된다기보다는 두 의미 모두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예로, `브엘세바'라는 지명의 기원에 대해서도 창 21:31과 창 26:32,33에서 각기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 마태는 유다가 홀로 목매어 죽었다고 말한다(마 27:5). 그러나 여기에서는 더 세밀하게 말하고 있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그가 나무에 목을 매고 달려 죽은 뒤에 노끈이 끊어져서 몸이 땅에 떨어져 배가 터졌다는 이야기, 흰놈의 골짜기 절벽의 나무에 목을 매었으나 그 줄이 끊어져서 바위에 부딪혀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 나왔다는 이야기 등이 있다. 또 파피아스(Papias)의 글에 의하면 유다는 병에 걸려 몸이 엄청나게 부었으며 결국 수레에 치어 죽었다고 한다.
=====1:19
본방언 - `본방언'이란 아람어를 말한다. 이 아람어의 뜻을 풀어 설명한 것은 본절이 베드로의 설교의 일부가 아님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람어는 당시 유대인에게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1:20
시편에 기롯하였으되 - 헬라어 `게르라프타이'(* , `기록하였으되')는 성경을 인용할 때 관용어적으로 사용되는 완료 수동태로서 `기록된 상태에 있다'는 의미이다.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 이 구절은 시 69:25의 인용인데 시편 기자의 원수들이 거하는 거처를 황폐케 해 달라는 간구이다. 시편에서 이 구절은 경건한 자들을 박해하는 무리의 말로(末路)를 가리켰으나 베드로는 이를 유다에게 적용시킨다.
시 69편은 초대 교회 성도들간에 고난당하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C.H.Dodd). 따라서 본 구절이 예수를 배신한 자의 말로에 관한 예언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I.Howard Marshall). 시 69:25에서의 `저희'가 여기서는 `그의'라는 표현으로 바뀌어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거처'란 유다가 산 밭을 가리키는 듯아다. 마태가 전하듯이(마 27:7) 이곳은 공동묘지로 사용되어 시편의 예언대로 `거하는 자가 없게'되었다.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 이 구절은 시 109:8의 인용으로 원수가 제 명(命)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죽어 그 원수가 맡았던 막중한 임무를 타인이 취하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베드로는 이를 유다에게 적용시켜서 유다의 계승자를 임명하는데 대한 보증으로 삼는다. 예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의 12지파에 맞게 12사도를 임명하신 바 있다(마 19:28;눅 22:30 참조).
=====1:21,22
가룟 유다 대신 사도로 선출될 자의 자격을 명시한 구절이다.
이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가룟 유다의 자리를 메울 인물을 뽑고자 했던 이유는 단지 구약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사도들에세 맡겨진 직무의 성격상 증거 사역이 효과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 반드시 충원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사도의 자격은 (1)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보고 (2) 예수의 증거자로서의 사명을 받는 것이었다(고전 9:1,2;15:8-10;갈 1:16,17). 그런데 특별히 여기서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 함께 생활했던 자라고 국한시킨 것은 (1) 열 두 사도 중 한 명을 선택하고자 했기 때문이며 또한 (2) 열 두 사도의 사역 범위가 주로 유대인들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 예수는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마 3:13-17;막 1:1-11). 따라서 이 말은 예수의 공생애 시초부터라는 말이다.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 이는 극히 친밀하고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아니하는 관계를 나타내는 일종의 셈어적 관용구이다(9:28;신 31:2;삼하 3:25;시 121:8).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도들의 메시지의 초점이었고 본서에서도 핵심되는 주제이다(2:24,31,32;3:15;4:2,10;10:40,41; 13:30,34; 17:3, 18;23:6;24:15).
=====1:23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 바사바와 요셉은 히브리식 이름으로 바사바는 `안식일의 아들'이란 뜻이며 요셉은 유대인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다. 또 유스도는 `정의'를 뜻하는 로마식 이름이다.
하나는 맛디아라 - `맡다디아스'(* )의 약칭으로 `여호와의 선물' 이란 뜻이다. 유세비우스(Eusebius)의 추측에 의하면 그는 눅 10:1에 나오는 70인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Ecclesiastical History).
=====1:24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 그들은 먼저 사도의 자격 요건에 합당한 두 사람을 선택하였다. 히브리적인 사고 방식에 의하면 이러한 경우에는 제비를 뽑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였다. 똑같은 둘 중에서 하나를 결정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그 투표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를 기도한 것이다(잠 16:33).
믓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 이 기도 가운데 나오는 `주'(* , 퀴리에)라는 호격어가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키는지(Meyer) 아니면 예수를 가리키는지(Bengel, Alford) 분명하지 않으나 본분의 문맥상 이 명칭은 21절의 `주 예수'와 동일하게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본 구절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며(대상 28:9;시 7:9;44:21;렘 17:10;23:24;암 9:3;습 1:12;롬 8:27)모든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롬 9:22,23) 보여준다.
주의 택하신 바 되어 - `택하다'(* , 에클레고마이)는 말은 2절에서 사용된 동사와 같은 말이다. 이것은 지금 선택될 사도의 후계자(後繼者)가 자신들처럼 동등한 사도권을 주님으로부터 부여받게 됨을 암시한다.
=====1:25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 `제 곳'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어떤 장소를 지칭하기보다는 직무를 뜻한다고 보고, 가룟 유다가 예수를 믿고 따르던 것을 버리고 과거에 자신이 행하던 길로 돌아섰음을 나타낸다고 해석하는 경해(Alexander, Meyer, Vincent). 이 중 우리는 문맥의 흐름이나 가룟 유다의 비참한 종국(18절)등을 고려하건대 후자의 견해를 취함이 더 나을 것 같다(시 9:17;마 25:41).
=====1:26
제비 뽑아 - 제비를 뽑는 방법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 많이 사용되었다(레 16:7-10;수 18:10). 사도들도 당시까지 사용되던 제비뽑기 방식에 따라 결원된 한 명의 사도를 선출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성경에는 이러한 방식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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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에서 저자는 예수의 지상 사역을 증거하였거니와 본서에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 시작된 초대 교회의 성장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본장은 본서의 서론 부분으로서 앞으로 복음 사역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암시해 주고 있다. 본장의 의미를 상고하기 위하여 다음 세 가지 사항을 주의깊게 살펴보기로 하자.
(1) 누가복음과의 연관성. 본서는 누가복음의 후속(後續)으로서 예수의 승천 이후부터 복음을 전파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즉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탄생하신 장면부터 시작하여 그의 공생의 죽음, 부활, 그리고 성령께서 통치하시는 새 시대의 예고(豫告)로서 일단락되었다. 이어서 본서는 성령의 강림에 대한 예수의 약속이 성취되고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로마에 도달하는 성령의 역사(役事)를 묘사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구원사(救援史)를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누가복음과 본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예컨데, 저자 누가는 여행을 주제로 하여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표현하였던 바, 누가복음에서는 팔레스틴을 중심으로 한 예수의 전도 여행, 본서에서는 로마를 목표로 한 바울의 전도여행을 그리고 있다. 또한 예수와 제자들이 복음 사역을 수행함에 있어서 성령이 함께 하셨다는 사실(2:1-4;눅 3:21,22)을 통하여 성령의 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누가복음과 본서의 연관성 및 연속성에 관하여는 앞으로 계속될 장 강해와 문단 강해에서 깊이 다루어질 것이다.
(2) 본장의 위치. 본장은 본서 전체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즉 본장은 본서의 주제(主題)라고 할 수 있는 예수의 최후의 지상 명령(The Great Commandment)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명령에 따라 본서의 내용은 전개된다. 본서를 누가복음의 속편(續篇)으로 이해할 때에 본장은 새로운 전환점(轉換點)을 이루고 있는 바, 본장을 기점으로 하여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겠다. 예수의 승천으로 인하여 그의 지상 사역은 막을 내리고 본장에서는 성령을 통한 제자들의 사역이 예비되고 있으며 복음이 예루살렘을 떠나 세계 전역(全域)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약속이 명시(明示)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장은 본서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복음이 이방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은 예수의 약속과 명령에 의한 것임을 본장은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본서는 본장에 예시(豫示)되어 있는 예수의 약속과 명령에 의거하여 전개되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성취되어가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3) 저자의 기록 의도. 예수의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면서 환난을 참고 이겨 나가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결국 유대 나라의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그리고 재림의 지연(遲延) 등으로 인하여 낙심하는 자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복음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고 점점 왕성하여져서 이방 지역에 널리 확산되어 갔으니 이는 분명히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었다. 누가는 교회가 예루살렘에 머물지 않고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이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 아래 본서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본서에 나타난 바람직한 교회상(敎會像)은 예수와 베드로, 스데반, 바울, 그리고 예루살렘 초대 교회와 안디옥 교회를 본받아 선교하는 교회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 가운데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제 본서에서는 그 후반부가 시작되고 있는 바, 예수의 재림 때까지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우주적 사업에 동참하여야 하는가를 교훈하고 있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순종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고찰해 볼 수 있다. 본서의 머리말로서 첫째 단락에서는 예수의 부활 현현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1-5절), 둘째 단락에서는 예수의 승천과 최후의 지상 명령을 다루고 있고(6-11절), 마지막 단락에서는 가룟 유다의 최후(最後) 및 제비를 뽑아 사도를 보충하는 장면이 언급되어 있다(12-26절).
1. 머리말(1:1-5)
본문은 본장의 서두로서 누가복음의 핵심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고 있으며 예수의 부활 현현(顯現) 40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본문의 기록은 사복음서에는 없는 누가만의 독특한 기록이다. 다음 항목들을 통하여 본문을 상고해 보기로 하자.
(1) 사복음서와의 차이점.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간 지상(地上)에 계셨다는 이야기는 본서에만 기록되어 있는 누가의 자료이며, 이 기간 동안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가르치신 것으로 나타난다. 요한복음에서는 현현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을 주시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요 20:22) 누가복음과 본서에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야 비로서 성령이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이 언급되고 있다(4,5절;눅 24:49).
이러한 사실들을 통하여 누가는 하나의 일관된 관점(觀點)을 가지고 누가복음과 본서를 기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누가는 예수의 사역이 그의 승천으로 인하여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를 통하여 예수의 사역이 계속됨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2) 부활 후의 예수의 사역.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지상에서의 마지막 사역에 관하여는 사복음서가 모두 언급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무덤에 찾아온 여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셨으며(마 28:9;막 16:9)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막 16:12;눅 24:13-35) 예수의 죽음으로 인하여 낙심하던 열 한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시며 용기를 주셨다(막 16:14;요 20:19;21:1-13). 또한 예수께서는 천국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도록 명령하심으로 당신의 사역을 제자들에게 계승(繼承)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의 삶은 시종 일관(始終一貫)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었으며 부활하신 후 승천하기까지 40일간을 줄곧 구원을 선포하셨다. 이러한 예수의 사역을 종합하여 표현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3절)라는 한 마디로 압축될 수 있다. 예수의 이 지상 사역 당시에는 제자들조차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였으나 부활 후에야 비로서 진리를 깨닫게 되었으니 부활 후 40일간의 예수의 사역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이 기간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는 기간이 된 것이다.
(3) 성령에 대한 약속. 본문에는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는 예수의 약속이 명시(明示)되어 있는 바, 이 약속은 누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다. 먼저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당부하셨으나(눅 24:49) 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진리의 운동이 일어나야 하므로 제자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지 말 것을 당부하신 말씀이다.
또한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말씀, 즉 예루살렘으로부터 복된 소식이 나올 것이라는 예언(사 2:3;미 4:2)을 이루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그 예언은 성취되어 예루살렘에 성령의 강림이 이루어졌으며 최초의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또한 예수께서는 성령의 세례를 받을 것을 약속하심으로 요한의 물 세례와 구분하여 말씀하셨다. 요한의 물 세례는 죄를 씻는 외적인 의식(儀式)인 반면(마 3:11;막 1:8)
예수의 성령 세례는 내적으로 회개하고 구원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역사(役事)로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 장에 나타날 성림 강림의 현장에서 증명될 것이다. 성령 세례를 통해서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요(요 3:5) 예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성령 세례를 통하여 완전히 변화되어 완악한 심령들을 회개시키는 담대한 복음의 사역자들이 되었다.
* 성령 세례. '성령 세례'는 이미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거니와(겔 36:26;욜 2:28-32) 그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하여 완벽하게 성취되었다(2:1-13). 이를 누가복음 3:16에서는 '불 세례'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 때 '불'은 죄악을 태워 없앤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한편 세례 요한은 자신이 베푼 '물 세례'와 '성령 세례'를 뚜렷이 대조시킨 바 있다(마 3:11). 이런 점에서 '성령 세례'에 관해 구체적으로 살펴 보기로 하자.
(1) 시기와 의미. 성령 세례는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시인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따라서 회개 없는 성령 세례는 있을 수 없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령 세례를 통해 성도들의 심령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고전 3:16) 구원에 대한 보증으로서 그리고 영원하신 보혜사로서 늘 성도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요 14:6;고후 1:22). 따라서 중생한 성도는 누구나 성령 세례를 체험하였다고 하겠다.
한편 성령 세례를 극적인 감정적 황홀경 또는 방언, 신체의 진동 등과 같은 특별한 외적 체험과 동일시하려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이런 특수 체험 등은 물론 오늘날에도 가능하기는 하나 주로 성령에 대한 계시가 확실히 주어지지 않았던 초대 교회 시대에 성령의 강림과 사역의 증거로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성령 자체보다는 표적과 기적을 요구하는 심정으로 이런 특수 체험들을 요구하는 것은 건전하지못하다. 예수를 주(主)로 시인하는 자는 이미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도 말하고 있는 바, 성령의 도움 없이 타락한 우리의 본성만으로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마 16:16,17;고전 12:3;요일 4:15).
(2) 시행자. 성령 세례는 삼위 일체의 협력하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시행되며(고전6:11), 여타의 어떤 인위적 의식에 의해서도 대치될 수 없다.
(3) 대상. 성령 세례는 구원을 위한 필수적 요소로서 모든 성도들에게 약속되어 있다(10:44;15:7-9;요 7:37-39). 한편 성령 세례가 모든 성도에게 있어서 단회적 사건으로 국한되는 것인 반면, 성령 충만은 영적 진보를 위해서 늘 간구되어야 할 기도 제목이다.
(4) 결과. 물 세례가 상징적 의식에 해당하는 것인 반면, 성령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신비적 연합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롬 6:3,4;골 2:12). 따라서 성령 세례를 받은 자는 구원의 인침을 받은 자이며(고후 1:22;엡4:30) 동시에 그리스도 교회의 자체가 된 자들이다(고전 12:26,27).
2. 최후의 지상 명령과 승천 이후(1:6-14)
본문에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하신 위임(委任) 명령과 승천의 상황 및 승천 후 제자들의 행동이 묘사되어 있다. 본문의 내용을 고찰함에 있어서 다음 항목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최후의 명령. 예루살렘에서 성령을 받은 후 예수의 증인이 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명령이다. 당시 제자들 중에는 예수를 정치적인 메시야로 착각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혹시 로마 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누누이 강조하셨거니와 지상 천국을 건설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시러 오셨다는 사실을 밝히셨다.
본문에서도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어긋난 질문에 대하여 오직 한 가지만을 명령하셨으니 곧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구원의 복된 소식은 예수의 재림 때까지 세계 만방으로 퍼져나가야 할 것이며 예수의 제자들이 구원사역의 주역(主役)들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주신 말씀이었다.
이로써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신비로운 비밀로 남게 되었으며 성도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오로지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제자들은 성령 강림 후 예수의 지상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을 넘고 사마리아를 거쳐 소아시아, 유럽, 그리고 로마에까지 복음을 증거하였다.
(2) 예수의 승천. 예수의 승천에 관한 기록은 마가복음 16:19에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을 뿐 누가복음과 본서에만 나오는데(9-11절;눅 24:50-53), 누가복음과 본서의 두 승천 기록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점들이 나타난다.
첫째, 누가복음에는 예수께서 부활절 저녁에 승천하신 것으로 되어 있으나 본서에는 부활 후 40일만에 승천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둘째, 누가복음에는 베다니에서 승천하신 것으로 되어 있으나 본서에는 감람산으로 되어 있다. 세째,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두 사람이 등장하지 않으나 본서에서는 등장한다. 이 두 사람은 빈 무덤에서의 두 사람(눅 24:4)과 변화산에서의 두 사람(눅 9:30) 즉 모세와 엘리야를 상기시킨다.
아무튼 이러한 차이점들은 단순히 승천 상황에 있어서 그 강조점을 달리 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는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구름에 가리워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묘사하고 있거니와 구약성경에서 구름은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출13:21;16:10;왕상 8:10;단 7:13).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실 때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으나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실 때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가셨으며, 재림시 심판주로 오실 때에도 그와 같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실 것으로 예고하셨다.
예수의 승천이 가지는 의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는 바, 그의 수난과 죽음으로 인하여 예수께서는 성육신(incarnation) 이전보다 더 큰 영광을 지니게 되었다.
(3) 제자들의 합심 기도.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수의 승천을 목격한 후 예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함께 기도하였다. 본문의 기록은 누가복음과 약안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 바,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승천 후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으로 되어 있다(눅 24:52,53). 그러나 이 두 기록 모두 제자들이 흩어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에는 공통점을 지닌다.
제자들과 더불어 함께 기도한 자들은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여인들, 그리고 예수의 아우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썼으니 그 결과 예수의 승천 후 10여일이 못되어 성령 세례를 체험하였다. 제자들의 합심 기도가 성령의 역사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마음을 같이 한(2:46;4:24) 뜨거운 합심는 초대 교회 건설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교회 성장의 주춧돌이 되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모여서 기도하는 일에 열심이었거니와(2:42;6:4) 그러한 기도가 밑거름이 되어 환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세계 곳곳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유다의 최후와 사도의 보충(1:15-26)
본문에는 예수를 배신한 가룟 유다의 최후(最後)에 관한 기록과 결원(缺員)된 사도를 보충하기 위하여 제비뽑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사도직(使徒職)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거니와 사도의 보결(補缺)은 앞으로 진행될 복음 사역을 위한 만반의 준비 태세였다. 다음 사항들을 통하여 본문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1) 배신자의 운명. 신약성경에는 가룟 유다의 죽음에 관한 기록이 두 군데에만 나타나며(18-20절;마 27:3-10), 두 기록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유다가 목매달아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본문에는 배가 터져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며, 밭을 산 사람과 피 밭이라고 부른 이유가 다르게 기록되 있다. 또한 마태복음에서는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본문은 그러한 언급이 없으며, 마태는 배반한 돈의 용도와 관련하여 스가랴서의 말씀(슥 11:12)을 인용하고 있는 반면 누가는 맛디아의 선택과 관련된 시편의 말씀(시 109:8)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마태와 누가의 공통점은 유다의 배신과 죽음을 예언과 성취의 관점에서 이해하였다는 점이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유다의 행실이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성경을 응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으니 이는 유다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게 한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표명(表明)하고 있는 바, 앞으로 본서 전체를 통하여 예언과 성취의 맥락 속에서 모든 구원 사건이 이해되어질 것이다. 가룟 유다의 죽음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본문 주제 강해를 참조하기로 하자.
(2) 사도의 자격과 본분. 본문에는 초대 교회에서 말하는 사도의 자격과 본분이 명시되어 있다. 사도란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의 승천하신 날까지 예수와 함께 다니며 예수의 모든 사역을 목격한 자를 의미한다. 즉 사도의 자격은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직접 그의 가르침을 받은 자여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본문에 나타나 있는 사도의 본분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며(22절) 봉사(奉仕)하는 일이다(25절). 이로써 초대 교회 사도들의 중심 메시지는 예수의 부활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본서에 수록되어 있는 사도들의 설교들을 통하여 증명된다.
한편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자만이 참 사도라 불리웠으나 예외의 경우도 있었다. 바울의 경우에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사도라 할 수 없으나 예수의 직접적 부르심을 받고 소명을 받았으니 넓은 의미에서 사도가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예수께로부터 이방 선교의 소명을 받은 사도임을 본서와 서신들을 통하여 수차례 강조하였다. 오늘날도 예수의 부활을 확신하고 증거하는 모든 자들은 광의(廣義)의 의미에서 사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사도의 보결(補缺). 예수의 열 두 제자는 열 지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한 명의 결원(缺員)은 반드시 보결을 필요로 하였다. 가룟 유다 대신 사도의 후보에 오른 두 사람은 요셉과 맛디아였으니 이들은 예수의 공생애 동안 제자들과 더불어 예수를 따라다니던 신실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사도들은 이 두 사람을 추천한 뒤 하나님께 기도하며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정(選定)하였다. 항아리 속에 이름을 적은 돌멩이 둘을 넣어 먼저 뽑히는 사람이 선택되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제비뽑기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계시적인 방법으로 생각하여 많이 사용하였다(수 18:10;잠 16:33;욘 1:7). 제비를 뽑은 방식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역사로 자신의 섭리를 펴고 계심을 믿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며 인간적인 판단을 포기하고 모두 선택권을 하나님께 의뢰하는 행위였다. 이러한 제비뽑기의 방식은 성령 강림 이후에는 성경에 나타나고 있지 않거니와 그 후에는 성령의 인도 하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가룟 유다의 죽음에 관하여. 가룟 유다의 죽음에 관하여는 다소 상이한 두 개의 기사(18-20절;마 27:3-10)가 있으며 이 두 이야기를 조화시키려는 노력들도 있거니와 본 주제 강해에서는 이 두 기록을 근거로 하여 유다의 죽음을 조명해 보기로 하자.
유다의 비참한 최후에 관하여 혹자는 예루살렘 성벽 남동쪽 아겔다마 근처에 있는 기드론 계곡을 뻗어 있는 나무가지를 찾아 이것이 바로 유다가 목매달은 나무가지인데 밧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몸이 계곡으로 떨어져 몸이 곤두박질치면서 창자가 터져 나와 죽은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창자'가 히브리어 용법에서 '감정의 자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유다는 심령이 상하여 죽은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유다의 죽음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그는 자살로서 자신의 최후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유다가 아겔다마라는 밭을 샀느냐 대제사장의 샀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밭의 값이 배반자에게 지불된 은 30이었다는 점과 그 밭의 한 모퉁이에서 유다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점만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겔다마, 즉 '피밭'은 유다의 배반과 비참한 최후를 계속 상기시켜 줄 것이다.
본문에서 사도들은 유다를 가리켜 '사도직을 버리고 제 곳으로 간 자'(25절)로 표현하였다. 유다는 초대 교회에서 진리를 저버린 자의 이름으로 기억되었고 지금까지도 배신자의 대명사로 불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요10: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뒤라 --히>페타흐[출입구], 델레트[방-성-성전/교회의..문.....때로는 사람의 입을 지칭하기도 함] 7 So Jesus said again,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I am [b]the Door for the sheep [leading to life]. ) [마16: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필레...육적 죽음) 그것을[반석-그리스도-교회] 이기지 못할 것이다...18 And I say to you that you are [d]Peter, and on this [e]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f]gates of Hades (death) will not overpower it [by preventing the resurrection of the Christ]. ]
.....[빌3:7-17...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람바노)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텔레이오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카타람바노=사로잡히다)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카타람바노) 달려가노라(디오코)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7○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 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오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가지려는 것입니다.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12. ○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16. 어찌했든지, 우리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든지, 같은 길로 계속 나아갑시다. 17.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십시오.///7 But whatever former things were gains to me [as I thought then], these things [once regarded as advancements in merit] I have come to consider as loss [absolutely worthless] for the sake of Christ [and the purpose which He has given my life]. 8 But more than that, I count everything as loss compared to the priceless privilege and supreme advantage of knowing Christ Jesus my Lord [and of growing more deeply and thoroughly acquainted with Him—a joy unequaled]. For His sake I have lost everything, and I consider it all garbage, so that I may gain Christ, 9 and may be found in Him [believing and relying on Him], not having any righteousness of my own derived from [my obedience to] the Law and its rituals, but [possessing] that [genuine righteousness] which comes through faith in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comes from God on the basis of faith. 10 And this, so that I may know Him [experientially, becoming more thoroughly acquainted with Him, understanding the remarkable wonders of His Person more completely] and [in that same way experience]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which overflows and is active in believers], and [that I may share] the fellowship of His sufferings, by being continually conformed [inwardly into His likeness even] to His death [dying as He did]; 11 [d]so that I may attain to the resurrection [that will raise me] from the dead. 12 Not that I have already obtained it [this goal of being Christlike] or have already been made perfect, but I actively press on [e]so that I may take hold of that [perfection] for which Christ Jesus took hold of me and made me His own. 13 [f]Brothers and sisters, I do not consider that I have made it my own yet; but one thing I do: forgetting what lies behind and reaching forward to what lies ahead, 14 I press on toward the goal to win the [heavenly] prize of the upward call of God in Christ Jesus. 15 All of us who are mature [pursuing spiritual perfection] should have this attitude. And if in any respect you have a different attitude, that too God will make clear to you. 16 Only let us stay true to what we have already attained. 17 Brothers and sisters, together follow my example and observe those who live by the pattern we gave you. ]
---여기서 잠깐 좀 더 곰곰이 HS께 들으며 묵상해 보라,, JC를 참되게 만난 기억이 있는지 돌이켜 보라,, 말씀안에 있는 참생명을 믿음 통해 참살이를 위해 말씀에 올인하는 이들은 그 누구나, 성도마다,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며 영혼구원하는 복음 전파에로의 사명을 받아 보내심 받는 사도들로 준비되고 있음에 유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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