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5장 [433.귀하신주여 날 붙드사]..
...(영생의) 주여 (깨어 있어..하나님과 사람 앞에..신실함과 참됨으로) 진실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하루 순간을 주가 주신 힘으로 승리하기 원하네(임마누엘!!) 주여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소극적 장면(야심/명예욕-부러워함은 영적 사망과 더불어 징벌로서 육체적 죽음을 가져왔다!!..준엄한 경고이다 )...그대는 누구를 따라 살려는가.. [예수께서 (이미 구원 받은) 베드로에게 분명히 일깨워 주셨었다..마16:17, 23]..성령과 사탄(=죄성=육신...야심따라,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추구하도록, 속임-기만 당해 자행자지함 + 때때로 성령께조차 거짓말함의, 자행자지하도록 부추김따라 행함이 특징인. 세상에 속한 영임), 두 인격체가 거듭난 믿는이 안에서 거하여 살고 있는바..이는 성령따라 행할 때 사탄은 신진대사적으로 소멸되도록 예정해 놓으셨음..
1. 아나니아(=하난, Q는 은혜로우시다)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아름다운, 사파이어처럼 영롱한)와 더불어 소유(중 일부)를 팔아
.....코람데오!! 참되게 믿는이 그대여. 행하려 하는 모든일에 있어서 근본동기를 전지전능하신 분, 모든 마음의 생각마다 꿰뚫어 아시는 분 앞에서 돌아보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지고지선의 진복, 극락의 기쁨 그 자체이신 분의 거처인]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가장 소중한 분 TUQ의 내주-운행-일하며 행하심과 생명 원천의 공급 생명샘물-강수!!]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결코 [사람, 특히 거듭난 자마다에 대해서는 더욱더!!] 차별함 전혀 없으신 주께서 그대의 영적 참실상 = 숨겨진 죄악과 그 의도=을 드러내실 때는 그 언제라도 !! ...솔직히 인정하고 참 회개하고 돌이킴이 그토록 중요하다..그 나머지 처분은 오로지 주님의 주권에 맡겨드리라..(아간은 나중에라도 자기가 범인임을 솔직히 자백했다!!).
....무시로 돌아볼 바는 (주님 앞에 가기까지..아는 주님으로 충만케 됨에 비례하여 신진대사적으로 처리될 것인데..) 여전히 그대 안에 남아있는바 세상가치 그대로 따름으로 살고있는 것 아닌가...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완전히 옛사람으로 살고 있거나, 사탄의 독 쏘임에 마취-중독 상태로 잠들어 있는 영적 무감각이나 매너리즘으로 행하고 있거나... 겉보기에 그럴듯한 세상 영광-인정만 바라도록 꼬드기는 사탄/죄성에게 미혹되어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
... ((극락의 기쁨 그 자체인 주님의 영원 갈망 이룸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분, 바로 그 주님을 참되게 알며, 정말 사랑과 감사뿐이기에!! 그분의 갈망 이룸에 자원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자!!, 주님 아심으로 인한, 참 믿음으로 거듭남과 참 구원 베푸심을 누림 안에서 넘쳐나는 사랑 알며 감사 찬양--자발적 나눔과 섬김, 더불어 주님 마음과 이웃 돌봄의 레위기 말씀의 권함에 순종하고자 함 .그 결과로... [바나바에게 주어졌던] (비록, 일시적이고도 변화무쌍한 것이로되!!) 세상과 형제들의 칭송-명성과 인정을 부러워하고 시샘함인가...., 타락한 세상가치 따르는 부러음을 따름인가
.., 아나니아-삽비라의 공모는 ((주께서 알게 하신 바!!)) 사도와 하나 되어 계신 주 영을 만홀히 여김의 모독/속임이자!! 시험하는 시도..그 결과는 결국 죽음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살아계시는 거룩하신 Q을 경외함으로) 두려워하니라
.....***동일한 죽음의 대표적인 선례들 :: 주님의 시대적 경륜 의 새로운 출발선 상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 존중히 여김이 무엇조다 중요함을 나타내시기 위해..*1) [주님의 명령하신바] 제단불이 아니라!! 자의적으로 부정한 불을 담아 향로를 피운 나답과 아비후 *2) 여리고성의 모든 것에 대한 헤렘 명령 어기고 물건을 탐하여 숨김으로써 아이성의 패배의 한 원인을 제공한 아간 *3)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언약궤 옯기는 도중에 (소가 날뜀 인해 수레 위에서 흔들리게 된) 언약궤에 손을 댐 인해 사망에 이른 웃사
.....처음 나타난 지방/지역교회로서 "에클레시아 = 에크(out)-칼레오9=called),부르심 받고 나아온 사람들(회중) 곧 모임으로서의 local church.(마18:17)..한편, 마16:18에 계시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몸인 universal church 우주적(보편적)교회임..local church는 이 땅에서 어떤 지방이나 지역에서 그리스도의 유일한 몸이. 그리스도의 <사랑-생명-경건, 어떠하심>인 영광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 성화되어가면서 가시적으로 표현되어 나타남인 것..
===사도들이 표적을 일으키다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히2:3, 4...*3.우리가 이같이 (전파된 십자가 복음 듣고 참으로 회개하고 참되게 믿는 바 주 이름 불러 개인의 구주 하나님으로 영접함 인해 얻는 참 생명으로 거듭남과 영생 얻음의 구원, 즉 그 핵심은 바로 신약과 복음인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십자가복음 믿고 얻는바 큰 구원의 참됨을)증언하셨느니라...3. how shall we escape if we neglect so great a salvation? After it was at the first spoken through the Lord, it was confirmed to us by those who heard, 4. God also bearing witness with them, both by signs and wonders and by various miracles and by gifts of the Holy Spirit according to His own will.]
[요6장...*3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14:12...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마16:24...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 이니라]
[요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고후5:14~1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갈2:20...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분명히 주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께 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 너희와 함께 있게 하사(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 오시면) 내가 하는 일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큰 일도 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심따라...Q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사도들과 함께 증거하심으로써 일어나는 바, 표적과 기사, 이적과 성령의 분배-내주하심의 증거로되......표적과 기사를 일어나게 하시는 분을 찾아 구하며, 그분의 바라시는 바 근본적인 의도, 곧 하나님의 뜻하신 바, 그 누구라도!! JC의 대속의 십자가 복음....사도와 전도자들의 전파하는 복음, 구주 Q의 십자가 복음을 믿고 순종함, 곧 마음 중심으로 회개하여 구주를 죽인 죄인됨을 인정하고 부활승천하사 성령을 보내 증거하시는 구주 JC 이름 불러 "바로 나 자신"의 구주와 하나님으로 참되게 믿고 영접함으로써, 그분 자신이신 성령의 분배-내주 이루고 계심을 믿고 기도함으로써 구주와 하나되어 하나님 자녀로서 TUQ 누림 안으로까지는 믿어들어가지는 않고, 곧 구주 영접 통한 그 자신의 영혼 구원은 거절하고 그것만 찾아다니는 구경꾼으로 남아 (사탄에게 이용당해) 부화뇌동하는 불신자 무리나 기적 조사꾼으로 전락해버리게 된 서기관과 바리새인, 당국자들과 산헤드린 공회 당국자들로, 에수 믿음의 박해자로 남아있어서는 곤란하다.
......또한 그 구원의 올바른 길이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 시작일뿐 앞에 더 남아 있는바, 더 나아가 그렇게 올바르게 믿는이들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까지 그분의 교회의 지체됨 안에서 함께 자라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말자.
.......다만, 표적-기사-이적은 이를 일으키시는 Q의 주권적 역사이기에, 시대와 상황적 필요에 따라 시간과 장소마다 각각 달리 일으키고 계시는 바((주를 앙망하는 자마다에게 주님의 성령으로 충만케하시고, 주님의 대사로 보냄 받고 그 자각 안에서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바를 주님의 마음과 갈망따라 대언하며, 주님의 구원 안으로 들어가가를 진심으로 갈망하는자마다에게 주님의 살아계심과 부탁하신 바를 전파하고 주께서 친히 일하시며 나타나시기를 구함으로써)) 초대교회 시대에서는 주님의 교회의 급속한 확장-증대-뿌리내림, 곧 부흥의 필요로 인해, 갈급한 심령들을 위해 그만큼 많이 일으키고 계셨고, ....원하시면 오늘날도 얼마든지 그리 하실 수 있으니, 오직 주께, 24시간 주 앙망-바라봄-주목-응시하는 바, 일편단심 일심으로 부드럽고 반응하는 탄력성 있는 단 마음, 그 한마음으로 하나됨으로 순종하여, 주님 자신의 소유된 그리스도의 몸에 더하실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먼저 그대 자신이 항기쉬기범감으로 성령충만 안에서 그분과 함께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를 살며, 생생한 레마의 말씀을 채워주심따라 그리스도를 말해냄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부요케하기를 힘씀이 합당하리라..
.....한가지 더, 분명히 깨달아 명심하고 알아두어야 하리라...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일어난 표적과 기사, 이적과 은사들은, 주께서 지금도 일으키고 계시는바 ((주로 교회 형성 초기에 집중되고 일어나고 있었던바, 전적으로 참생명-사랑의 주님 영광 나타내심의 주권적 영역이기에...주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기에 오늘날을 사는, 참되게 믿는 자로서 거듭남의 성령 패러다임따라 사는 우리는 표적과 기사, 이적과 은사 나타남을 적극적으로 감사해야 하지, 무조건 제한하려 하거나 부정해서도 결코 안되리라...물론 진위와 근원 분별의 문제가 분명히 뒤따르게 되리라....즉, "열매로 나무를 안다" "그러나, 섣부르게 뽑으려 말고, 주님 신뢰함으로써..인내로 추수때까지는 기다리라"는 명제를 주셨다))... "그러나, (양의 탈 쓴 이리인) 대적이 간교하게 거짓으로 (마치 참인것처럼) 위조하는 경우가 있음을 명심하여야 할지니...또한 그 자체가 성육신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승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Q의 중심적 간증이기에 반드시 누구나 경험되어야 하고 고백해야만 한다"라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며, 동시에 이를 경험했다 해서 Q의 완전한 구원 받았다는 최종 증거도 아니요, 단순히 Q께서 부활 생명 주시는 구주의 복음 전파 위해 인증하신 수단 중 하나일뿐이었음을 반드시 깨달아 알아두어야 함....더 가야할 길이 남아 있음이다!! [하나님의 사랑하심 입은 증거임은 분명하지만!!] 이를 경험한 자라도 반드시 주 예수님 믿고 따름 안으로 들어와 주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 됨 통해서 완전한 구원 영생 얻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히려 더 중요한 핵심은, 사도들이 무엇을 전하고 사역했는지(=성령 충만을 입고 주 성령께서 입에 채워 넣어주시는 레마의 말씀으로 전하는 바) 구주 jC,하나님 나라 복음을 권하여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게 하며>, 그리고 얼마나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 Q 성령으로 말미암아 절대적으로 주를 섬기며 동행하고 있는지 지지해주시는 (가변성-유한성 가진) 증거에 지나지 않을뿐임을, 알아야 한다.(히2:3-4)..즉, 표적과 기사 자체는 Q의 중심 간증의 일부도 아니고 Q의 구원의 일부도 아니라는 뜻이다, 기사와 표적들은 사도들의 전파와 사역이 Q으로 인한 것임을 입증하시기 위해 Q이 사용하신 수단들일뿐이었으니, 사도들의 시대에는 표적과 기사가 그들을 통해 행해져야 될 필요가 있었으나, 이미 믿는이로서 우리는 오늘날 기사와 표적-기적-은사에 대한 이해-태도-자세를 주 앞에서 바로 하고 ((복음 살아냄 통해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와 구원보다)) 더 강조하며 주목함으로써 치우쳐서는 안됨을 알아두어야 한다.
===사도들이 능욕을 받다...[390.예수가거느리시니]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생생한 주관적 체험 통해 그의 내면에 형성시켜주신 현재적인 생명 말씀, rhema레마!!...늘 있는, 항상 있는 기록된 말씀 Logos가 참된 근본과 바탕이로되 그 안에 계신 전지전능하신 부활생명의 구주 JC!!, 그리스도께서 그 영혼에 기름부음 충만케 하심따라, 감동 주심따라 순종하여 그분의 입이 되어 채워주심대로 발화-신언함prophecy, 곧 전존재 통해 현재적으로 지금 주께서 친히 생생하게 말씀하심, 거듭난 생명을 더욱 자라고 고양시키는 참 생명 말씀을 뜻함이다....참되게 순종하는 자, 사도 (베드로)에 의해 생생하게 새롭게 살아내어지고 전파되고 사역되어진 신성한 참생명이신 말씀...이 말씀은 결코 교리적이지 않고 믿는 우리 각자의 매일의 생활 동력이자 역동하는, 더 확장 증대되는 생생하게 살아 숨쉬며 작동되어!! 그리스도를 살며 전파함 그 자체, 생명을 살리는 새롭고 확장 증대되는 생명 말씀 그 자체가 되어야 함을 주의하라]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21. 그들이 듣고 (지시하심 받은 그대로 순종하여)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22.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23.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25.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영원유일무이한 자격자이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상천하지의, 존재하는 모든 것의, 만유의 영원유일무이한 지도자)과 (생명의 근원이신 영원한 참생명)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임금 ::: 생명의 주(Prince 행3:15....헬>아르케고스 유일무이한 주권자 ..(창시자Auther = 기원자 = 통치자/인도자=최고 지도자=머리=임금=왕중 왕/만주의 주/만유의 주재) = 택하신 자들의 구원을 위해 (주님의 정하신 그 때에 그들을 사로잡으시고) 다스리시는 분...이로 인해 하나님의 정죄로부터, 지옥의 불못으로부터, 많은 악한것들로부터 구원하여 우리를 TUQ라는 사랑의 올가미 안에 넣으사 지켜 보호하고 계심...믿는이마다 주 예수께서 먼저 사로잡으셨기에, 그래서 사로잡혔기에 어쩔수없이, 별도리없이 순순히 기쁨과 순종, 사랑과 자원함으로!! 그분을 믿게 되었다...이것이 그분을 찬양함의 큰 기쁨의 이유가 된다.
32. (구주로부터 보냄받은 사명자로서) 우리는 이 일에(= 역사적으로 생생하게 일어난 사실을 참되게 영적 실상을 깨닫게 하사, 성령의 말하게 하시는 바 그들의 입에 채우시는 성령의 즉각적인 말씀인 레마를 그대로 받아 동시에 목숨걸고 증거하는 일) 증인(마르튀스..martus.목숨다할 그때까지 그 보고 듣고 참되게 깨닫게 하심따라 그 진리와 진실-사실을 일편단심으로 말하고 목숨걸고 말하는자)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참되게 확증하시는 참 증인이시라) 하더라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디아프리오.., 제정신을 완전히 잃어버린, 날카롭게 톱질 당해 산산조각조각나고/갈기갈기 찢겨 터져 멸절당한 듯, 제정신이 나간, 극한의 주체못할 격노로 미친듯 비명지르고 악쓰며)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34. 바리새인 가말리엘(Q은 나의 상급/보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그는 주 보시기에 진정 거듭난자인가??...아쉽도다!!...겉으로만 판단하며 무슨 말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그러나 주님의 도구로 쓰고 계셨다)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가말리엘은 (비록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신앙이 깊고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구주에 대해 , Q의 경륜과 구원에 대한 갈망은 아직 없었기에 무지했고, 경건하고 신앙이 깊으며 지혜롭고 중립적이었지만 Q의 구원 경륜과 그분의 운행하심-움직이고 계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하여 당시 Q의 경륜 안에 있지는 못했다....이처럼 단순히 경건하고 영적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오늘 지금 Q이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계시는지를 반드시 발견해내고 확신해야 한다!!..그리할 때 그분 안에 거함의 내적 확신과 내적 만족으로 넘치는 바, 그분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우리는 공회원들이나, 가말리엘이 아니라 오늘날의 베드로와 요한들이다!!...사도들은 성전에서 그리고 믿는이들의 집에서 복음을 전한 것처럼, 주님의 움직이심따라, 이집 저집에서 전하고 가르치며 기도하는 이런 실행을 이어가야 한다.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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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5 Amplified Bible, Classic Edition))
1 But a certain man named Ananias with his wife Sapphira sold a piece of property,
2 And with his wife’s knowledge and connivance he kept back and wrongfully appropriated some of the proceeds, bringing only a part and putting it at the feet of the apostles.
3 But Peter said, Ananias, why has Satan filled your heart that you should lie to and attempt to deceive the Holy Spirit, and should [in violation of your promise] withdraw secretly and appropriate to your own use part of the price from the sale of the land?
4 As long as it remained unsold, was it not still your own? And [even] after it was sold, was not [the money] at your disposal and under your control? Why then, is it that you have proposed and purposed in your heart to do this thing? [How could you have the heart to do such a deed?] You have not [simply] lied to men [playing false and showing yourself utterly deceitful] but to God.
5 Upon hearing these words, Ananias fell down and died. And great dread and terror took possession of all who heard of it.
6 And the young men arose and wrapped up [the body] and carried it out and buried it.
7 Now after an interval of about three hours his wife came in, not having learned of what had happened.
8 And Peter said to her, Tell me, did you sell the land for so much? Yes, she said, for so much.
9 Then Peter said to her, How could you two have agreed and conspired together to try to deceive the Spirit of the Lord? Listen! The feet of those who have buried your husband are at the door, and they will carry you out [also].
10 And instantly she fell down at his feet and died; and the young men entering found her dead, and they carried her out and buried her beside her husband.
11 And the whole church and all others who heard of these things were appalled [great awe and strange terror and dread seized them].
12 Now by the hands of the apostles (special messengers) numerous and startling signs and wonders were being performed among the people. And by common consent they all met together [at the temple] in the covered porch (walk) called Solomon’s.
13 And none of those who were not of their number dared to join and associate with them, but the people held them in high regard and praised and made much of them.
14 More and more there were being added to the Lord those who believed [those who acknowledged Jesus as their Savior and devoted themselves to Him joined and gathered with them], crowds both of men and of women,
15 So that they [even] kept carrying out the sick into the streets and placing them on couches and sleeping pads, [in the hope] that as Peter passed by, at least his shadow might fall on some of them.
16 And the people gathered also from the towns and hamlets around Jerusalem, bringing the sick and those troubled with foul spirits, and they were all cured.
17 But the high priest rose up and all who were his supporters, that is, the party of the Sadducees, and being filled with [a]jealousy and indignation and rage,
18 They seized and arrested the apostles (special messengers) and put them in the public jail.
19 But during the night an angel of the Lord opened the prison doors and, leading them out, said,
20 Go, take your stand in the temple courts and declare to the people the whole doctrine concerning this Life (the eternal life which Christ revealed).
21 And when they heard this, they accordingly went into the temple about daybreak and began to teach. Now the high priest and his supporters who were with him arrived and called together the council (Sanhedrin), even all the senate of the sons of Israel, and they sent to the prison to have [the apostles] brought.
22 But when the attendants arrived there, they failed to find them in the jail; so they came back and reported,
23 We found the prison quite safely locked up and the guards were on duty outside the doors, but when we opened [it], we found no one on the inside.
24 Now when the military leader of the temple area and the chief priests heard these facts, they were much perplexed and thoroughly at a loss about them, wondering into what this might grow.
25 But some man came and reported to them, saying, Listen! The men whom you put in jail are standing [right here] in the temple and teaching the people!
26 Then the military leader went with the attendants and brought [the prisoners], but without violence, for they dreaded the people lest they be stoned by them.
27 So they brought them and set them before the council (Sanhedrin). And the high priest examined them by questioning,
28 Saying, We definitely commanded and strictly charged you not to teach in or about this Name; yet here you have flooded Jerusalem with your doctrine and you intend to bring this [b]Man’s blood upon us.
29 Then Peter and the apostles replied, We must obey God rather than men.
30 The God of our forefathers raised up Jesus, Whom you killed by hanging Him on a tree (cross).
31 God exalted Him to His right hand to be Prince and Leader and Savior and Deliverer and Preserver, in order to grant repentance to Israel and to bestow forgiveness and release from sins.
32 And we are witnesses of these things, and the Holy Spirit is also, Whom God has bestowed on those who obey Him.
33 Now when they heard this, they were cut to the heart and infuriated and wanted to kill the disciples.
34 But a certain Pharisee in the council (Sanhedrin) named Gamaliel, a teacher of the Law, highly esteemed by all the people, standing up, ordered that the apostles be taken outside for a little while.
35 Then he addressed them [the council, saying]: Men of Israel, take care in regard to what you propose to do concerning these men.
36 For before our time there arose Theudas, asserting himself to be a person of importance, with whom a number of men allied themselves, about 400; but he was killed and all who had listened to and adhered to him were scattered and brought to nothing.
37 And after this one rose up Judas the Galilean, [who led an uprising] during the time of the census, and drew away a popular following after him; he also perished and all his adherents were scattered.
38 Now in the present case let me say to you, stand off (withdraw) from these men and let them alone. For if this doctrine or purpose or undertaking or movement is of human origin, it will fail (be overthrown and come to nothing);
39 But if it is of God, you will not be able to stop or overthrow or destroy them; you might even be found fighting against God!
40 So, convinced by him, they took his advice; and summoning the apostles, they flogged them and sternly forbade them to speak in or about the name of Jesus, and allowed them to go.
41 So they went out from the presence of the council (Sanhedrin), rejoicing that they were being counted worthy [dignified by the indignity] to suffer shame and be exposed to disgrace for [the sake of] His name.
42 Yet [in spite of the threats] they never ceased for a single day, both in the temple area and at home, to teach and to proclaim the good news (Gospel) of Jesus [as] the Christ (the Messiah).
===Footnotes
Acts 5:17 G. Abbott-Smith, Manual Greek Lexicon.
Acts 5:28 Capitalized because of what He is, the spotless Son of God, not what the speakers may have thought H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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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5 장
b. 부정적인 장면 ― 5:1-11
1.그러나 아나니아라는 어떤 사람은 자기 아내 삽비라와 함께 소유지를 팔아, 2그 돈의 일부를 자기를 위해 떼어 두었는데, 그의 아내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그 일부를 가져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3베드로가 말하였다. “아나니아여, 어찌하여 사탄이 그대의 마음에 가득하여, 그대가 성령을 속이고 자신을 위하여 땅 판 돈의 일부를 떼어 두었습니까? 4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도 그대의 것이 아니었습니까? 또 팔린 후에도 그대의 마음대로 할 수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어찌하여 이런 일을 그대 마음에 품었습니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입니다.” 5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쓰러져 숨을 거두었으며, 이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6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그 시체를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였다. 7세 시간쯤 지나서 아나니아의 아내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베드로가 그 여인에게 “나에게 말해 보십시오. 그대들이 땅을 판 돈이 이것뿐입니까?”라고 하니, 그녀가 “예, 이것뿐입니다.”라고 하였다. 9베드로가 그 여인에게 “어찌하여 그대들이 공모하여 주님의 영을 시험하였습니까? 보십시오, 그대의 남편을 장사한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그대를 메고 나갈 것입니다.”라고 하자, 10그 여인이 즉시 베드로의 발 앞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그 여인이 죽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그녀를 메고 나가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온 교회와 이 일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
==7. 사도들을 통해 행해진 표적들과 기이한 일들 ― 5:12-16
12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많은 표적들과 기이한 일들이 백성 가운데서 일어났다. 믿는 이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솔로몬 주랑에 모이곤 하였다. 13그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그들 가운데 끼어들지 못하였으나, 백성은 그들을 칭찬하였다. 14 믿는 이들이 더욱더 주님께 더해져 남자들과 여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었다. 15 사람들은 심지어 병든 사람들을 메고 길거리에 나가 침상과 자리 위에 뉘어 놓았는데, 이것은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의 그림자라도 그들 중 몇 사람에게 덮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16 예루살렘 주변에 있는 여러 도시에서 많은 사람이 병든 사람들과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던 사람들을 데리고 몰려들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모두 낫게 되었다.
==8. 유대 종교인들이 박해를 계속함 ― 5:17-42
a. 공회는 사도들을 체포하였고, 주님은 사도들을 구출해 주심 ― 5:17-28
17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 곧 그 지방 사두개파 사람들이 모두 시기가 가득하여 들고일어나, 18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다. 19그러나 밤중에 주님의 천사가 감옥 문을 열고 그들을 이끌어 내며 20“여러분은 가십시오. 그리고 성전 안에 서시어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십시오.”라고 하니, 21사도들이 그 말을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다. 한편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심지어 이스라엘 자손의 전체 장로 회의를 소집하고, 사람을 감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성전 경비원들이 가서 보니, 감옥에 사도들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23 “우리가 보니, 감옥은 단단히 잠겨 있었고, 지키는 사람들도 문마다 서 있었으나, 문을 열었을 때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 대장과 대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이 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의 일로 몹시 당황하였는데, 25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보십시오, 여러분이 감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 안에 서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경비 대장이 경비원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려왔으나 폭력은 쓰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백성이 돌로 칠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27그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공회 앞에 세우자, 대제사장이 물었다.28 “우리가 그대들에게 이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하게 명령하였는데도, 보시오, 그대들은 그대들의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여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려 하고 있소.”
b. 사도들의 증언 ― 5:29-32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30 여러분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31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높이 올리시어 영도자와 구주가 되게 하셨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들이 용서받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들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도 그 증인이십니다.”
c. 공회의 금지와 석방 ― 5:33-40
33 그들이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34 그런데 온 백성에게 존경받는 율법 교사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인이 공회 가운데 일어나서,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내보내라고 명령하고서 35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다루려고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들 조심하십시오. 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자기를 대단한 인물이라고 말하자, 약 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에게 동조하였는데, 그가 살해된 후에는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으며, 37 그 뒤에 호적 등록을 할 때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자기를 따르게 하였는데, 그도 목숨을 빼앗겼고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 역시 다 흩어졌습니다. 38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그들을 내버려 두십시오. 이 모의나 일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39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여러분이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며,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자들로 드러날까 두렵습니다.” 40 그러자 그들이 가말리엘의 말을 받아들이고, 사도들을 불러들여 때린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한 후에 석방해 주었다.
d. 사도들은 기뻐하였으며 신실하였음 ― 5:41-42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모욕당하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여겨진 것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다. 42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이 집 저 집에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복음을 쉬지 않고 가르치며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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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5장
1. But a certain man named Ananias, with Sapphira his wife, sold a possession,
2. And kept back part of the price, his wife also being privy to it, and brought a certain part, and laid it at the apostles' feet.
3. But Peter said, Ananias, why hath Satan filled thine heart to lie to the Holy Ghost, and to keep back part of the price of the land?...사탄(세상의 영)따라살 때, (사탄과 하나되어 사탄으로 가득하게 되고, 성령을 기만/시험하기에 이르게 됨)
4. Whiles it remained, was it not thine own? and after it was sold, was it not in thine own power? why hast thou conceived this thing in thine heart? thou hast not lied unto men, but unto God.
5. And Ananias hearing these words fell down, and gave up the ghost: and great fear came on all them that heard these things.
6. And the young men arose, wound him up, and carried him out, and buried him.
7. And it was about the space of three hours after, when his wife, not knowing what was done, came in.
8. And Peter answered unto her, Tell me whether ye sold the land for so much? And she said, Yea, for so much.
9. Then Peter said unto her, How is it that ye have agreed together to tempt the Spirit of the Lord? behold, the feet of them which have buried thy husband are at the door, and shall carry thee out.
10. Then fell she down straightway at his feet, and yielded up the ghost: and the young men came in, and found her dead, and, carrying her forth, buried her by her husband.
11. And great fear came upon all the church, and upon as many as heard these things.
12. And by the hands of the apostles were many signs and wonders wrought among the people; (and they were all with one accord in Solomon's porch.
13. And of the rest durst no man join himself to them: but the people magnified them.
14. And believers were the more added to the Lord, multitudes both of men and women.)
15. Insomuch that they brought forth the sick into the streets, and laid them on beds and couches, that at the least the shadow of Peter passing by might overshadow some of them.
16. There came also a multitude out of the cities round about unto Jerusalem, bringing sick folks, and them which were vexed with unclean spirits: and they were healed every one.
17. Then the high priest rose up, and all they that were with him, (which is the sect of the Sadducees,) and were filled with indignation,
18. And laid their hands on the apostles, and put them in the common prison.
19. But the angel of the Lord by night opened the prison doors, and brought them forth, and said,
20. Go, stand and speak in the temple to the people all the words of this life.
21. And when they heard that, they entered into the temple early in the morning, and taught. But the high priest came, and they that were with him, and called the council together, and all the senate of the children of Israel, and sent to the prison to have them brought.
22. But when the officers came, and found them not in the prison, they returned and told,
23. Saying, The prison truly found we shut with all safety, and the keepers standing without before the doors: but when we had opened, we found no man within.
24. Now when the high priest and the captain of the temple and the chief priests heard these things, they doubted of them whereunto this would grow.
25. Then came one and told them, saying, Behold, the men whom ye put in prison are standing in the temple, and teaching the people.
26. Then went the captain with the officers, and brought them without violence: for they feared the people, lest they should have been stoned.
27. And when they had brought them, they set them before the council: and the high priest asked them,
28. Saying, Did not we straitly command you that ye should not teach in this name? and, behold, ye have filled Jerusalem with your doctrine, and intend to bring this man's blood upon us.
29. Then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answered and said, We ought to obey God rather than men.
30. The God of our fathers raised up Jesus, whom ye slew and hanged on a tree.
31. Him hath God exalted with his right hand to be a Prince and a Saviour, for to give repentance to Israel, and forgiveness of sins.
32. And we are his witnesses of these things; and so is also the Holy Ghost, whom God hath given to them that obey him.
33. When they heard that, they were cut to the heart, and took counsel to slay them.
34. Then stood there up one in the council, a Pharisee, named Gamaliel, a doctor of the law, had in reputation among all the people, and commanded to put the apostles forth a little space;
35. And said unto them, Ye men of Israel, take heed to yourselves what ye intend to do as touching these men.
36. For before these days rose up Theudas, boasting himself to be somebody; to whom a number of men, about four hundred, joined themselves: who was slain; and all, as many as obeyed him, were scattered, and brought to nought.
37. After this man rose up Judas of Galilee in the days of the taxing, and drew away much people after him: he also perished; and all, even as many as obeyed him, were dispersed.
38. And now I say unto you, Refrain from these men, and let them alone: for if this counsel or this work be of men, it will come to nought:
39. But if it be of God, ye cannot overthrow it; lest haply ye be found even to fight against God.
40. And to him they agreed: and when they had called the apostles, and beaten them, they commanded that they should not speak in the name of Jesus, and let them go.
41. And they departed from the presence of the council, rejoicing that they were counted worthy to suffer shame for his name.
42. And daily in the temple, and in every house, they ceased not to teach and preach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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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5 Amplified Bible
===Fate of Ananias and Sapphira
1 Now a man named Ananias, with his wife Sapphira, sold a piece of property,
2 and with his wife’s full knowledge [and complicity] he kept back some of the proceeds, bringing only a [a]portion of it, and set it at the apostles’ feet.
3 But Peter said, “Ananias, why has Satan filled your heart to lie to the Holy Spirit and [secretly] keep back for yourself some of the proceeds [from the sale] of the land?
4 As long as it remained [unsold], did it not remain your own [to do with as you pleased]? And after it was sold, was the money not under your control? Why is it that you have conceived this act [of hypocrisy and deceit] in your heart? You have not [simply] lied to people, but to God.”
5 And hearing these words, Ananias fell down suddenly and died; and great fear and awe gripped those who heard of it.
6 And the young men [in the congregation] got up and wrapped up the body, and carried it out and buried it.
7 Now after an interval of about three hours his wife came in, not knowing what had happened.
8 Peter asked her, “Tell me whether you sold your land for so much?” And she said, “Yes, for so much.”
9 Then Peter said to her, “How could you two have agreed together to put the Spirit of the Lord to the test? Look! The feet of those who have buried your husband are at the door, and they will carry you out also.”
10 And at once she fell down at his feet and died; and the young men came in and found her dead, and they carried her out and buried her beside her husband.
11 And great fear and awe gripped the whole church, and all who heard about these things.
12 At the hands of the apostles many signs and wonders (attesting miracles) were continually taking place among the people. And by common consent they all met together [at the temple] in [the covered porch called] Solomon’s portico.
13 But none of the rest [of the people, the non-believers] dared to associate with them; however, the people were holding them in high esteem and were speaking highly of them.
14 More and more believers in the Lord, crowds of men and women, were constantly being added to their number,
15 to such an extent that they even carried their sick out into the streets and put them on cots and sleeping pads, so that when Peter came by at least his shadow might fall on one of them [with healing power].
16 And the people from the towns in the vicinity of Jerusalem were coming together, bringing the sick and those who were tormented by unclean spirits, and they were all being healed.
===Imprisonment and Release
17 But the [b]high priest stood up, along with all his associates (that is, the sect of the Sadducees), and they were filled with jealousy and resentment.
18 They arrested the apostles and put them in a public jail.
19 But during the night an angel of the Lord opened the prison doors, and leading them out, he said,
20 “Go, stand and continue to tell the people in the temple [courtyards] the whole message of this Life [the eternal life revealed by Christ and found through faith in Him].”
21 When they heard this, they went into the temple [courtyards] about daybreak and began teaching. Now when the high priest and his associates arrived, they called together the Council (Sanhedrin, Jewish High Court), even all the council of elders of the sons of Israel, and sent word to the prison for the apostles to be brought [before them].
22 But when the officers arrived, they did not find them in the prison; and they came back and reported,
23 “We found the prison securely locked and the guards standing at the doors, but when we opened [the doors], we found no one inside.”
24 Now when the captain of the temple guard and the chief priests heard these things, they were greatly perplexed, wondering what would come of this.
25 But someone came and told them, “The men whom you put in prison are standing [right here] in the temple [area], teaching the people!”
26 Then the captain went with the officers and brought them back, without hurting them (because they were afraid of the people, worried that they might be stoned).
27 So they brought them and presented them before the Council (Sanhedrin, Jewish High Court). The high priest questioned them,
28 saying, “We gave you strict orders not to continue teaching in this name, and yet you have filled Jerusalem with your teaching and you intend to bring this [c]Man’s blood on us [by accusing us as His murderers].”
29 Then Peter and the apostles replied, “We must obey God rather than men [we have no other choice].
30 The God of our fathers raised up Jesus, whom you had put to death by hanging Him on a [d]cross [and you are responsible].
31 God exalted Him to His right hand as Prince and Savior and Deliverer, in order to grant repentance to Israel, and [to grant] forgiveness of sins.
32 And we are witnesses of these things; and so is the Holy Spirit, whom God has bestowed on those who obey Him.”
===Gamaliel’s Counsel
33 Now when they heard this, they were infuriated and they intended to kill the apostles.
34 But a Pharisee named [e]Gamaliel, a teacher of the Law [of Moses], highly esteemed by all the people, stood up in the Council (Sanhedrin, Jewish High Court) and ordered that the men be taken outside for a little while.
35 Then he said to the Council, “Men of Israel, be careful in regard to what you propose to do to these men.
36 For some time ago Theudas rose up, claiming to be somebody [of importance], and a group of about four hundred men allied themselves with him. But he was killed, and all who followed him were scattered and came to nothing.
37 After this man, Judas the Galilean rose up, [and led an uprising] during the time of the census, and drew people after him; he was also killed, and all his followers were scattered.
38 So in the present case, I say to you, stay away from these men and let them alone, for if this plan or action is of men [merely human in origin], it will fail and be destroyed;
39 but if it is of God [and it appears that it is], you will not be able to stop them; or else you may even be found fighting against God!”
40 The Council (Sanhedrin, Jewish High Court) took his advice; and after summoning the apostles, they flogged them and ordered them not to speak in the name of Jesus, and released them.
41 So they left the Council, rejoicing that they had been considered worthy [dignified by indignity] to suffer shame for [the sake of] His name.
42 And every single day, in the temple [area] and in homes, they did not stop teaching and telling the good news of Jesus as the Christ (the Messiah, the Anointed).
===Footnotes
Acts 5:2 Ananias wanted everyone to think that he had turned over all the money from the sale, so secretly holding some back was essentially embezzling. If he had been honest and told Peter that he had kept some of the money, he would have done nothing wrong.
Acts 5:17 This may refer to either Caiaphas (the official high priest) or his father-in-law, Annas (the de facto high priest). See note 4:6.
Acts 5:28 The reason the Council members refused to refer to Jesus by name is unclear, but may indicate contempt, guilt, or perhaps fear.
Acts 5:30 Lit wood.
Acts 5:34 Saul of Tarsus, later known as the apostle Paul, was among Gamaliel’s students. See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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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개요)
본장의 내용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Ⅰ. 성령을 속이고 베드로의 저주로 즉시 죽어버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와 형벌(1-11).
Ⅱ. 복음 전파와 함께 나타나는 많은 능력으로 날로 교회가 부흥함(12-16).
Ⅲ. 사도들의 갇힘과 극적인 석방. 그들이 전한 복음을 전하라는 새로운 명령과 박해자들이 품은 의혹(17-26).
Ⅳ. 산헤드린 회의에서 그들이 당한 비난과 그들이 행한 바에 대한 사도들의 변명(27-33).
Ⅴ. 그들에 대해 가말리엘이 자기 입장을 밝힘. 즉 그들을 박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 어떤 결과가 오나 보자고 함. 이 충고에 순응하여 사도들을 채찍질만 하고 석방함(34-40).
Ⅵ. 사도들에 대한 방해와 모욕에도 불구하고 계속 즐겁게 복음을 전함(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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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행 5:1-11)
본장은 여러 좋지 않은 일로 시작된다.
선한 일로서 처음 시작이 순조로웠기에 앞으로도 순조로울 것으로 전망되었던 일에 뜻밖의 장애가 부딪침을 보게 된다.
개인에게 있어서나 교회에 있어 순조로운 가운데서도 예외는 있게 마련이다.
1. 제자들은 성별되고 세속에 물들지 않아 모두 아무 흠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도 그 심령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위선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례받을 때 "경건의 모양"은 취하였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정하는 자들이었고 그것은 곧 나타나고 말게 된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사회라도 좋은 사람들 가운데 악인도 끼이게 마련이다. 추수 때까지는 가라지도 밀 가운데서 자라는 것이다.
2.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부자 청년에게 [영생에 들어가기위해] 권고하셨던, 바로 그 완전에 이르게 됨을 기뻐하였다.
"그들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매우 선하다고 누구나 여기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섞여 있을 수 있는 바 내부에는 위선이 감추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3. 사도들이 행한 표적과 기사는 [진정] 자비의 기적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심판의 기적이 일어난다.
본문 기사를 통해서 선행으로 섬기려 하는 이들 중에 교묘히 섞여들 수 있는 [각 사람의 행위와 그 마음의 모든 동기을 통찰하여 아시는, 성령님의 마음의 통찰 능력을 멸시하여 <자행자제함>, 곧 위선적 거짓말로 범하게 되는 바, 하나님을 시험함의 유혹을 따른 극악한 불경건의 행위를 심판하심]을 보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성령을 무시함으로써 [= 성령을 시험함] 행하는 바,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겉치레의 교만, 곧 그것을 드러내사 제해버리심으로써 모든 기독자들에게 내리시는 준엄한 경고, 주님의 심판하시는 손의 가혹함을 보게 되고 이는 진정,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또한 두려운 존재임을 깨닫게 해 준다. [[오로지 참되고 진정한 경건과 경외함따라 겸손-단순-순전-온전을 이루도록 하자!!]]
Ⅰ.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의 죄.
남편과 아내가 연합하여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합동하여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담과 이브의 행위와 같은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 살아계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행자제함으로써] 일치하여 금지된 과실을 따 먹음으로 한 가지로 불순종하였었다. 그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1.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보자면 전심으로 단순-순전-경외함으로 복음진리말씀과 성령님을 따르는 제자라 할 수 없었기에...오직 주님만 아신다!!...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알게 된다!!] 제자가 될 수 없었는데도 제일 뛰어난 제자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야망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사건의 근본적 의도를 은폐한 채 그리스도의 포도원에 가장 열매를 풍성히 맺는 나무로 인정받고 싶어하였다.
그들은(바나바가 했던 것처럼) "재산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의 발 아래 가져왔다."
그들 신실한 신자들 속에서 묻혀 지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교회에서 멋있게 발탁되어 칭송을 받고 싶어하였고 그럼으로써 세속적인 허영과 자만심을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던 것 같다.
위선자들이란 보통 어떤 한 가지 일에서는 자신을 부인할지 모르나 다른 일에서 그 대가를 찾아내어 결국 자기에게 유익하도록 만들려 애쓰는 법이란 것을 기억하자. 그들은 그리스도에 합당한 제자의 요건, 곧 자기부인-자기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함이 아니라 무언가 이익을 얻기를 바라서 세속적인 이익이 있을 일에 앞장 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였고 "겉으로는 훌륭히 이를 입증하였으나,"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조롱하고 다른 사람들을 속였던 것이다.
그런 마음자세로는 결코 기독교 신앙에서 요구하는 바 전심의 순전-단순-온전- 철저한 순복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결국 그들은 알게 된다.
보라, 사실상 [겉으로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척 하려 해서는 결코 안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하라]는 것이 부자 청년에게 주어진 충고였다.
이 사실을 지적받자 그 청년은 그리스도의 말대로 할 수 없음을 알고 "슬픈 표정으로 떠나갔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됨의 조건]을 따를 수 있는 척하였고 그러므로 제자됨의 명예를 얻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참으로 그들은 제자이지 못하였고 그러기에 제자로서의 자격을 잃고 말았다.
마음 속으로는 믿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는 장중하게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흔히 그 사람에게 치명적인 것임을 기억하자.
2. 그들은 세상의 부를 탐하였고 하나님과 그의 섭리는 불신하였던 것이 둘째 죄였다.
"그들은 그들의 땅을 팔아"
당시에는 솟아오르는 열심 때문에 판 돈 전부를 경건한 용도에 봉헌하리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할 것을 서원하였다.
그러나 돈이 수중에 들어오게 되자 그들이 마음은 변하였다. 그들은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2절).
그들은 [정녕 세상 염려와 근심조차 주께 맡겨드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돈을 너무 사랑하였고 단번에 내놓아 사도들의 손에 맡기기에는 너무나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도 쓸 돈이 [따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같이 쓰고 있지만 얼마 오래가지 않을거다. 그리고 한 푼도 없이 떠나게 된다면 그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걱정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쓸 것을 준비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에, 그들은 남들보다 현명하게 불상사를 당할 경우를 생각하여 저축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 맘몬을 다 같이 섬기려했다.
돈의 일부를 사도들의 발아래 가져다 놓음으로써 하나님을, 다른 돈의 일부는 그들의 주머니에 넣음으로 맘몬을 섬겼던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모든 일에 풍족하신 분이 아닌 것처럼 신원보증금의 얼마를 그들의 손아귀에 쥐고 있으려 했다.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므로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호 10:2).
그들은 두 틈에서 방황하였다. 만일 그들이 철저히 세상적이었다면 그들의 소유를 팔지 않았을 것이며, 그들이 철저한 기독교인이었다면 판값의 일부를 착복하지 않았으리라.
3. 그들이 사도들을 속이고, 실은 일부에 불과했는데도 그들이 판돈 전부를 가져 왔다고 믿게 하려던 것이 세째 죄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확신있게 경건하고 열성있는 모습으로 다가와 그 돈이 전부인 것처럼 "돈을 사도들이 발 아래 놓았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성령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 사역자들을 우롱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죄였다.
Ⅱ. 아나니아에 대한 정죄.
이것은 죄에 대한 저주와 형의 집행이기도 하다.
그가 돈을 가져와서 다른 사람들처럼 추천받고 칭찬받기를 기대하였을 때 베드로는 그 일에 대해 그를 책망하였다.
그는 이 일에 관한 증거를 조회하거나 검증하지도 않고 단호히 범죄에 대하여 문책하였고 그의 본성을 드러내 보여 줌으로 죄를 더욱 가중시켰고 그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하였다(3, 4절).
베드로의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은 누구의 정보 없이도 사실을 밝혀냈을 뿐 아니라(아마도 세상에서는 그와 그의 아내 외에 아무도 알 사람이 없었는데도) 아나니아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불신앙의 본질로 규정하고 명료하게 드러내어 지적하였다.
이 불신앙은 마음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갑자기 아나니아를 거스려 나타났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불시의 유혹에 의한 연약함의 죄였다면 베드로는 아나니아를 따로 가까이 오게 하여, 집에 가서 나머지 돈을 가져오고 그들을 속이려는 어리석은 계획을 회개하라고 명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마음이 악으로 가득찬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에게 회개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본문에서 아나니아에게 다음 사실을 지적하였다.
1. 그의 죄의 근원을 지적했다.
그것은 "사탄이 그의 마음에 가득하였기"때문이었다. 성령으로부터 나지 아니한 것은 무엇이나 악령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사탄이 그에게 죄를 암시하였을 뿐 아니라 그의 머리 속에 주입시켰고 그로 하여금 그것을 행할 결심을 내리도록 촉구하였다.
이들의 마음은 사탄으로 가득차 그의 마음을 세속적인 생각이 지배하고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아나니아도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은사로 충만했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령을 노하시게 하므로 그에게서 떠나셨고 이제는 "사탄이 그의 마음에 가득 찼던 것이라"한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을 떠나자 하나님이 보내신 악령이 그를 괴롭혔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거짓말하는 영이다.
이 영이 아함의 예언자들의 입술을 지배하였고 마찬가지로 아나니아의 입술을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에 가득찬 것이 이로 인하여 나타난 것이다.
2. 죄 자체를 지적하였다.
"그는 성령을 속였다."
이것은 극악한 성질의 죄로써 만일 사탄이 그의 마음에 가득차지 아니하였더라면 이러한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1) "성령을 속이다"는 말의 원문은‘프슈사스다이 세 토 프뉴마 토 하기온’(5:3)으로써 어떤 이는 "성령을 실망사키다"라고 번역한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다.
① 그는 자기 안에 계시는 성령을 실망시켰다.
그러므로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아나니아가 평신도가 아니라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120문도와 함께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일 거라고 가정한다(왜냐하면 바나바 다음에 즉시 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감히 속이는 짓을 함으로 성령을 실망케 하고 그 은사를 욕되게 하였다. 아니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그들의 재산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의 발아래 갖다 놓은 사람들은 특별한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 일을 행하였고 성령이 그들로 위대하고도 관대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그가 행한 일이 다른 사람들처럼 성령의 감회로 된 것처럼 가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비열함을 미루어 보아 결코 그는 성령의 지배 하에 있지 아니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령의 역사였다면 완전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② 그는 사도들에게 돈을 가져옴으로 사도들 안에 계시는 성령을 실망시켰다.
그는 사도들을 주장하시는 성령을 잘못 판단하였다.
즉 그들이 소유하였다는 능력을 정말로 지녔을까 의심하였든가(이것은 아주 비열한 생각으로 마치 그들이 그들 안에 깃들인 진실에 대해 거짓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그들이 거짓말을 발견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가 성령을 실망케 하는 그러한 일을 행한 것은 성령의 은사를 받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처럼 쉽사리 속여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게하시가 그의 스승에게 "내 심령이 네게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그의 잘못을 문책받을 때와 같은 경우였다(왕하 5:26).
본문의 아나니아처럼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도 패역하여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 즉"(렘 5:11, 12)이라 말함으로 주님을 실망케 하였다.
아나니아는 다른 사도들도 자기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같이 그들 안에 계신 성령이 영들을 분별하시는 분이 아닌 것으로 여겨서 그들 안에 계신 성령을 속이려는 결과를 자초하였다.
사도들은 모두 그들 안에 성령의 은사를 지녔고 이것은 각 사람에게 여러 가지로 나누어 주신 은사이다(고전 12:8-11).
성령의 능력을 받은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들은 말로써 또는 행동으로써 그들이 경험한 환상을 교회에 강요하고자 한다.
그들은 위로부터 감화를 받았다고 말하므로 그들의 프라이드를 살리고 탐욕을 채우며 지배욕을 충족시키므로 성령을 실망케 하는 것이다.
(2) 그러나 "성령을 속이었다"라는 말씀은 4절에서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함으로써 한층 강조되고 있다.
① 아나니아는 신중하게 거짓말을 하였다.
그는 고의로 속이려 했던 것이다. 그는 베드로에게 그가 재산을(집 또는 토지) 팔았고 이것이 그 판돈이라고 말하였다.
어쩌면 그는 애매모호한 말을 하여서 그의 말을 이중적인 뜻을 띠게 함으로 노골적인 거짓말한 죄를 피하고 사태를 조금 무마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무 말도 없이 돈을 앞에다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죄는 동일하였다.
그는 판돈을 전부 가지고 온 사람들처럼 행동하였고 그렇게 한다고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그렇게 행한 데 대해 칭찬해 줄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누리는 것과 같이 고동재산 관리에 같은 특권을 얻고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판돈 전부를 가져 왔다고 명백히 단언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 일부를 감추었기 때문에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일에 있어서 교만이 앞서고 사람의 칭찬을 더 사랑하여 거짓말하는 조잡한 짓을 행함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우리는 조작한 거짓 은사에 대해 허풍을 떨지 말아야하며(잠 25:14) 참된 은사일지라도 자랑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것이 구세주께서 구제에 대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주의하신 말씀의 의미이다.
그들이 결코 하지도 않은 선행을 한 것처럼 자랑하거나 하지도 않으면서 공연히 약속만 하거나 그들이 한 것 이상으로 선행을 과장하는 자들은 아나니아와 같이 거짓말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② 그가 거짓말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성령"이었다.
그 돈은 사도들 못지않게 그들 안에 계신 성령에게 가져간 것이었다.
그러므로 4절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사도들도 사람에 불과하였지만 그렇다고 사람에게만이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께로다"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에서 성령이 곧 하나님이란 것이 암시되고 있다. 즉 성령에게 거짓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생활하며 활동하는 자를 속인 자들은 곧 하나님에게 거짓말한 것이 되는데 그 이유는 사도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에 의해 활동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휘트비(Whitby) 박사가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성령의 권능과 권위는 곧 하나님의 권능과 권위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더욱 논리를 발전시킨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에게 거짓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도들로 하여금 사람의 마음과 행위의 비밀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시는 그들 안의 성령에게 거짓말하였기 때문이다. 이 분별력은 홀로 한 분 하나님의 권한이시며 그러므로 성령에게 거짓말하는 자는 하나님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로 할 수 없는 특권을 지닌 분에게 거짓말하였기 때문이요 이는 필연적으로 신적인 본질을 속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3. 죄에 대한 문책(4절).
다음 같이 힐문하고 있다.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 없었더냐?"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겠다.
(1) "네가 값의 일부를 감출 유혹을 자초할 필요가 없었도다. 그것을 팔기 전에도 너의 것이었다. 저당잡혔거나 채무를 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팔았을 때도 그 돈을 너의 뜻대로 처분할 권한이 네게 있었도다. 그러므로 전체에서 일부만 가져오는 것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네게 치루어야 할 빛이 있는 것도 아니요 부양할 어린 자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돈의 일부를 감출 특별한 이유도 없었도다. 그런데 네가 이유없이 범죄하였노라"는 뜻이다. 또 다음 같은 뜻도 된다.
(2) "네가 땅을 팔아야 될 이유가 없었도다. 또한 사도들의 발 아래 돈을 가져올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원한다면 돈으로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고 땅으로 지니고 있어도 되었다. 결코 이같이 완전을 가장하지 말았어야 했도다."
사도가 제시하고 있는 구제의 법칙은 사람들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쁘게 내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고후 9:7).
바울도 빌레몬이 선행을 하는 데 있어서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기를, 바랐다(몬 14).
맹세하고 이행치 않는 것보다 맹세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처럼 그에게는 값의 일부를 감추는 것보다 차라리 땅을 팔지 않는 것이 좋을 뻔하였다.
반만큼 선행을 하는 것보다 선행을 하는 척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말이다.
"팔았을 때도 임의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선서된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주께 입을 열어 약속한 것은 철회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림에 있어 일부만 드린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어린애의 가짜 어미가 자식을 짤라 주기를 바랐던 것처럼 사탄은 반이라도 취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체를 받으시든지 아니면 안 받으신다."
4. 이같이 문책된 모든 죄는 그에게 부과되었다.
그리하여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고 묻는다.
비록 사탄이 그의 마음에 가득차 그 일을 행하였지만 그가 자신의 마음 속에 죄를 생각하였다고 기소되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우리 죄의 책임을 악마에게 전가시킨다고 그 죄가 경감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악마는 유혹할 뿐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가 이리 저리 끌려 다니며 유혹을 당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 때문이다."
악한 일은 그것이 말로써이거나 행위로써거나 무엇이든지 죄인이 자신의 심중에 생각한 것이요 그러므로 "네가 남을 경멸한다면 그 대가로 네가 홀로 받을 것이니라" 기록되었다.
고소의 마지막 부분은 매우 고조된 상태이나 또한 정당한 것이었다. 즉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였다."
아하스의 죄에 대하여 선지자 아사야가 강조한 것도 이러한 것이었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하느냐"(사 7:13).
모세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문책도 같은 내용이었다.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출 16:8).
이와 같이 본문도 "네가 너와 같은 인간인 우리를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속지도 않으시고 조롱당하지도 아니하신다"고 말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속이려 한다면 종국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속인데 불과하다는 것이 들어나게 될 것이다.
Ⅲ. 아나니아의 죽음과 장례(5,6절).
1. 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유구무언이더라"(한글 개역과는 다소 다름:역주).
혼인예식에 예복없이 참여한 자의 경우와 같은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아무 말도 변명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죽었기 때문에 변명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가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베드로가 그에게 말한 즉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계획하고 또 바랐는가 하는 사실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계획한 것같이 보이는데 그것은 베드로가 그의 아내 삽비라에게 특별히 죽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천사가 그를 쳤으므로 헤롯과 같이 그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12:23).
또는 죄책감에 대한 공포와 놀람으로 양심의 가책이 커서 그 중압감에 눌려 죽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어쩌면 그가 성령을 속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성령을 거스리는 죄"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였고 이 사실이 비수처럼 그의 마음을 찔렀는지도 모른다.
사도들의 입에서 역사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기억하자.
어떤 이에게 그것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향기"요, 어떤 이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저주"가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인정받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주를 받는 사람도 있다.
아나니아의 처벌이 가혹하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그것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확신해야 한다.
(1) 아나니아의 처벌은 복음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최근에 사도들에게 임한 성령의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시도된 일이었다.
아나니아가 성령에게 가한 모욕은 대단한 것으로 그는 성령을 속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것은 또한 사도들의 증언을 무효화시킬 위험을 내포하였다.
만일 그들이 성령에 의해 이 거짓말을 발견할 수 없었다면 어찌 성령으로 또한 하나님의 오묘한 사실들을 발견하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사도들의 은사와 능력은 보장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2) 이 처벌은 또한 애초에 다른 이들도 이 같은 외람된 짓을 못하도록 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 후 마술사 시몬(8:9 절 이하)이나 박수 엘루마(13:8 절 이하)도 이같이 처벌당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제 아나니아는 그 첫 본보기였다.
성령을 영접하는 것이 얼마나 고무적인가 하는 뚜렷한 증거가 주어진 것과 같이 성령을 거스리고 그를 모멸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나타내 주는 뚜렷한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금송아지에 예배함으로, 또한 안식일에 나무를 함으로 그 처벌이 얼마나 혹독하였었는가! 이제 그 새로운 계명이 주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림으로, 또 고라와 그의 무리가 반역함으로 불이 그들을 삼키었던 것같이 이제 하늘로부터 심판의 불이 새롭게 임하였으며 모세와 아론에게 주어졌던 위엄이 새롭게 전하여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처벌은 베드로에 의하여 다스려졌다. 얼마 전에 베드로 자신도 거짓으로 주님을 부인하였다는 사실을 베드로가 그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원한으로 아나니아를 벌한 것이 아님을 지시해 준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결점을 지니고 있다면 같은 범죄를 저지른 자를 불쌍히 여겼을 것이며 자신이 회개하고 그러므로 용서를 받았다면 이 모욕도 용서하고 이 범죄자가 회개하도록 종용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베드로 안에 계신 성령이 하신 일이었다. 그에게 모욕이 가해졌고 그러기에 그에 가하여 처벌도 행하여진 것이다.
2. 그는 즉시 장사되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관습이었다(6절). 교회에서도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일을 맡은 "젊은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사도들의 시중을 들며 뒷바라지를 해 주던 젊은 이들이 있어서 비록 아나니아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즉시 죽었지만 이들 젊은 이들이 그 시신을 관보로 싸서 친절히 "장사"하였던 것 같다.
Ⅳ.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의 응보.
아마도 이 여자가 먼저 범죄할 마음을 품고 금단의 실과를 자기 남편에게 먹으라고 유혹했던 것 같다.
그의 아내가 이제 사도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솔로몬의 행각인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그곳에 모인 내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12절).
이곳은 성전의 일부로써 그리스도께서 자주 출입하시던 곳이었다(요 10:23).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들어왔다."
그녀는 그녀의 유산이라 랄 수 있는 땅을 팔도록 허용한 데 대해서 그녀가 들어갈 때 경의가 표해질 것을 바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만은 피할 수 있도록 누군가 그녀에게 달려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아마 누군가 알리기 위해 갔지만 그녀가 집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녀가 사도들 앞에 나아왔을 때 기금을 기증한 자로서 축복을 받은 대신에 저주에 직면하게 된다.
1. 그녀가 남편의 죄에 동참한 범죄 사실이 있음이 베드로가 그녀에게 묵은 질문에 의해 밝혀졌다(8절).
"그 땅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는 말씀은 아나니아가 가져다 사도들의 발 아래 놓은 돈의 총액을 말하는 것이었다.
"너희가 땅을 팔아 받은 돈이 이것이 전부인가 아니면 더 이상 받은 것인가"라고 묻는다.
"예 한푼도 숨김 없이 받은 돈을 다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그녀는 답한다.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는 미리 무슨 얘기를 할지 의논을 하였을 것이다.
이익을 취한 것은 둘만 아는 것으로 그들끼리 비밀을 지키면 아무도 알 수 없을거라고 의논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안심하고 거짓말할 수 있을 줄 알았고 또 신임도 얻으리라고 믿었다. 친분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마음을 굳게 하여 경쟁하듯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을 대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2. 그녀도 그녀의 남편과 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이라는 선고가 내려졌다(9절).
(1) 그녀의 죄가 폭로되었다.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그는 선고하기 이전에 그녀에게 그녀의 추행을 알려 주고 그녀의 죄의 악함을 보여 주었다. 그럼 그들이 행한 죄는 무엇이었나 살펴 보자.
① 그들은 주의 성령을 시험하였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수 많은 Q의 기적적인 능력을 체험하고서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지 아니 계신지" 의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뿐 아니라 그의 통치하심도 의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실 수 있나 보자"라고 말하였다.
본문의 이들 부부도 같은 생각을 하였다. "사도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거짓말도 알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그들에게 이것이 판돈 전부라고 하면 이것이 그 일부에 불과한 것인 줄 분별할 수 있을까?" "그가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욥 12:13).
그들은 사도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설마 그들이 영분별의 은사도 받았겠는가라고 생각하였던 것 아닐까..
죄를 짓고도 무사히 벌을 받지 않을 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시험하는 셈이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여기고 그를 시험한다.
② 그들은 그것을 행할 것을 공모하였다.
그들은(거룩한 제도에 의해 결합되어) 부부로 결속된 관계를 불법 이행에도 이용한다.
부부 간에 또는 친척들 사이에서 선한 일에 의견이 대립되고 악한 일에 협조가 잘되는 경우, 부부간에, 또는 친척간에 악을 도모하는 일이 더 나쁜지 규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이미 그들 부부는 이 일을 행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봄으로써 더 나아가 그들은 성령을 시험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이 문제를 놓고 서로 의견을 나눌 때 그들은 주의 성령이 그들을 주의 성령이 그들을 발견해 낼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 아닐까.
그들이 그들의 뜻을 여호와께 숨기려고 아무리 피하였지만 헛되게도 그것은 알려지고야 만다.
"어찌 너희가 미혹되었는가? 어찌하여 너희가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가. 이미 지나간 시험에 다시 걸려들다니!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너희가 보다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단 말인가! 어찌 너희가 그같이 엄청난 모험을 하였는가"라고 꾸짖는다.
(2) 그녀가 당할 운명이 예고된다.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아마도 그는 그들이 오는 소리를 들었거나 또는 오래지 않아 올 것을 알았던 것 같다)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공모하여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함께 낙원에서 쫓겨났듯이 공모하여 주의 성령을 시험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함께 이 세상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3. 선고가 곧 형 집행을 의미하였다.
무슨 형리가 필요 없었다. 때로 베드로의 말이 떨어지자 곧 병고치는 능력이 일어났듯이 파멸하는 능력이 그의 말과 함께 일어났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말하기만 하여도 사람을 죽이시기도 하고 살리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입에서(이제는 베드로의 입에서) 선과 악이 나오느니라." 말씀되었다. 그녀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져 혼이 떠났다"(10절).
어떤 죄인에 대해서 하나님은 단번에 결판을 내리시는가 하면 또 다른 죄인에게는 오래 참기도 하신다.
이같이 차별하여 대하심에는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으시리라.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는 않는다.
그녀는 그때까지 그녀의 남편이 죽은 것을 듣지 못하였다. 그녀의 죄가 드러나면서 그 사실도 알려졌다.
그리고 죽음의 선고가 내려지자 그것이 벼락처럼 그녀를 내리쳤고 회오리바람처럼 그녀를 휩쓸어갔다.
그렇다고 갑작스럽게 죽는 모든 경우를 이와 같이 끔찍한 죄에 대한 처벌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갑자기 죽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이상 가는 죄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좋은 일이다. 어쨌든 누구나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항상 준비해야 된다는 경고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것이 심판인 것은 분명하다.
^^어떤 이는 아나니아와 삽바리의 저 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육을 멸하심은 "주 예수의 날에 영혼이 구원받게 하심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만약 이들 부부에게 근친상간한 고린도인의 경우처럼 회개할 만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나로서도) 다소 너그러운 이런 견해에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 어떤]비의는 주어지지 아니하였다. [단지] 그녀가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 이 떠났다" 말씀되고 있다.
그녀가 판 값 전부를 그곳에 갖다 놓았다면 스스로가 자신의 몸으로 부족량을 메꾸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장례를 돌보는 "젊은이들이" 들어와 그녀가 "죽은 것을 보고,"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아나니아의 경우처럼 "시신을 싸서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였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무덤에 묘비를 세워 성령을 속인 죄로 신의 진노를 받아 죽었다는 것을 기념하였으리라.
^^어떤 이는 그들이 가져온 돈, 그들의 거짓에 관련된 돈을 어떻게 하였을까 묻는다. 어떤 자들이 [대제사장들이] 미신에 사로잡혀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둠이 옳지 않다"(마 27:6)라 한 것처럼 [동일하게] 그들이 미신을 따르지는 않았으리라. 순결한 자에게는 모든 것이 순결하기 때문이다.
악인들이 가져온 재물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가져온 것을 받는 그 사람까지 더럽히는 것은 아니다.
[재물이란 그 자체로 중립적이다]. 그들이 감추었으므로 감춘 사람만이 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고라 일당의 반역자들이 사용했던 향로를 버리지 않고 다른 것을 만들어서 다시 사용하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민 16:36-40).
4. 이 일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이야기 중간에 이 문제에 대해 언급되고 있다(5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즉 베드로가 말한 것을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본 사람들 또는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두려워하였다.
의심없이 이 일은 온 시내의 화제거리가 되었다.
다시 11절에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기록하여 파급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1. 먼저 교회에 참석하고 있는 무리들에게 하나님과 그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주를 경외함이 증가하였다.
성령의 역사 아래서 생활한다는 경외감이 일어났다.
그 일 자체가 그들의 신앙에서 우러나는 기쁨을 막거나 저지하지는 않았으나 이 일은 그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서 결코 경솔히 행해서는 안되고 떨림으로 기뻐해야 함을 가르쳐 주었다.
이 일 후에 구제와 자선 목적으로 재물을 가져오는 사람들마다 먼저 자기들의 근본동기를 살펴보고 주앞에 정직하게 행함, 곧 판 값의 일부라도 감추는 것을 당연히 두려워하게 되었으리라..
2. 이 사실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몹시도 당황하여 말하기를 사무엘 상 6장 20절 말씀과 같이 그런즉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과" 사도들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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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전파되는 복음(행 5:12-16)
두 위선자에 대한 무서운 심판이 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더욱 널리 전파되는 모습이 설명되고 있다.
Ⅰ. 본문에는 사도들이 행한 기적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있다(12절).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즉 심판의 기적 대신에 많은 자비의 기적이 일어났다. 이제 복음의 능력이 그 본 궤도로 돌아오는데 그것은 자비와 은총의 능력이었다.
하나님께서 벌하시려 그의 자리를 떠나셨으나 이제 그의 자리 즉 자비로우심으로 돌아가신다.
그 기적들은 곧 그들의 사명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임이 입증되었다.
이따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가끔 되풀이되며 많이 일어났다.
이러한 표적과 기사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 능력의 구체적인 표시가 되었다.
이 기적들은 모퉁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마음대로 질문을 퍼붓는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여졌다.
만약 그들 가운데 거짓이나 책략이 있었다면 곧 발견되고 말았을 것이다.
Ⅱ. 본문에는 또한 사도들이 행한 기적의 결과가 어떠하였는가를 전해 주고 있다.
1. 교회가 긴밀히 연합되었고 사도들을 따르며 또 서로 신뢰하였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 그들은 성전 즉 솔로몬 행각이라 불리우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보였다.
성전을 관할하는 자들이 그들이 거기서 모이도록 묵인한 것이 이상스럽게 생각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한동안 그들이 그곳에 모이는 것을 관대히 대하게 하셨다.
그 이유는 복음이 더욱 손쉽게 확장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또한 물건 매매를 묵인한 그들이 거기서 말씀을 전하고 병을 고치는 일을 금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공중 예배에서 만났다.
성전에서 행하여진 신앙적인 집회제도는 아주 일찍부터 행하여졌으므로 결코 포기되거나 폐기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신앙은 직업처럼 지켜졌다.
(2) 그들은 거기서 한 마음으로 가르침과 예배와 훈련에 참여하였다.
고라와 그의 무리가 죽었을 때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했던 것처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에 대해서 불만이나 불평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이스라엘은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라고 불평하였었다(민 16:41).
심판으로 위선자들을 가려내셨기에, 남은 자들은 더욱 단합하여 복음 전파에 힘을 다하였다.
2. 이 일로 그리스도의 나라의 첫 번 사역자들인 사도들은 대단한 존경을 받게 되었다.
(1) 다른 사역자들과 사도들 간에 거리가 유지되었다.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니"
즉 아무도 사도들과 대등하게 대우 받으려 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성령을 받았고 방언으로 말하였으나 사도들과 같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사도들의 직위를 존중하였고 무슨 일에서나 그들에게 복종하였다.
(2) "백성이 칭송하였다."
대단히 그들을 존경하였고 경외감으로 그들에 대해 말했으며 그들을 하늘이 돕는 자들 또는 이 땅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받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비록 제사장들이 그들을 모략하고 할 수 있는 온갖 중상을 행하였지만 참 빛 가운데서 모든 것을 본 백성들이 그들을 칭송하는 것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사도들이 스스로 영광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주의깊고 성실하게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에게 돌리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그들을 칭송하였다.
스스로 겸손한 자는 오히려 높임을 받는 바, 주께서 높여주사 명예를 누리는 사람들은 오직 마땅히 하나님에게만 그 명예를 돌려야 됨을 기억하자.
3. 교회가 더욱 부흥하였다(14절).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물론 그들은 하나님이 사실로 그 안에 거하시는 것을 보았을 때 스스로 자원하여 교회에 참여하였다.
"남녀의 큰 무리였다."
그들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를 보고 이같이 엄격한 규례가 지켜지는 집단에 들어오기를 단념한 것이 아니라 자진하여 참여하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주 예수를 믿는 자들이 증가하였다. 즉 그와 연합하여 그의 신비스러운 몸에 참여한 것이었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많은 사람이 주님 앞으로 나왔으나 아직도 그는 오라고 하신다.
교인이 되는 자는 주님과 연합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비의가 완성될 때까지, 선택된 자의 수가 지워질 때까지 이 부름을 계속될 것이다.
(2)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회개하였음을 기억하자.
이 현상은 유대인의 교회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과거에 그들은 할례의 표시도 받을 수 없었고 절기 행사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부인들의 집회소는 성전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계셨을 때 그를 따르던 자들 가운데와 그가 승천하신 후 믿는 무리들 가운데는 훌륭한 여인들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4. 많은 병자들이 사도들에게 나아왔고 그들 모두가 나음을 얻으므로 사도들과 그들의 가르침이 더욱 널리 알려졌다(15, 16절).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도시인이나 농촌 사람이거나 모든 계층이 사람들이 도움을 받으러 나와 이를 경험하였다.
(1) 기적은 시내에서 일어났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그것은 제사장들이 환자를 성전인 솔로몬 행각으로 데려오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사도들은 또한 한가롭게 그들의 집을 하나 하나 방문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환자들을 "침대와 요 위에 뉘었다"(그들이 걷고 서기에는 너무 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베드로가 지난 때에 혹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랐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 모두에게 미칠 수 있지는 못하였다.
본문을 보아 한 여인이 그리스도의 옷가를 만진 것과 같이 바라기만 하여도 병이 난 것같이 보여진다.
이로써 그리스도께서 "이보다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느니라" 하신 말씀이 다른 말씀과 마찬가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돌보시겠다 말씀하신다. 그가 함께 계시며 그들의 오른팔을 붙들어 주신다.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부드러운 도우심은 "바위의 그림자"와 비교된다(나무가 희귀한 지역이었으므로 광야에서 큰 바위 그늘은 나그네에게 도움이 된 것 같고 이를 비유한 말이다:역주).
베드로는 그들과 태양 사이를 막아서서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 위하여:역주) 그들을 치료하고 그들로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피조물을 의존하지 말게 하고 오직 은혜의 성령의 도우심만 바라라고 한다. 이 성령으로 그는 충만하여 있었다.
베드로의 그림자에 의하여 기적이 임하였다면 바울의 손수건에 의해서도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19:21) 다른 사도들에게로 베드로에게와 같은 기적이 있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베드로나 바울의 경우 모두 양자에게는 병을 고쳐 주고자하는 의향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미 죽어서 사라진 성자의 유물이 병 고치는 힘이 있다고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
실상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 그리스도 자신의 어떤 유물이 병을 고쳤다는 기사를 볼 수 없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였으리라.
(2) 농촌에서도 일어났다.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병든 몸과 마음이 다 온전하여졌다. 사도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백성들은 자기 나름대로 기적에 대하여 판단하고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하늘에서 주어진 것임을 확신하였고 그리하여 더욱 사도들도 그들의 가르침을 신봉하였다. 이 가르침은 이 천한 세상의 안녕을 위해 큰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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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도움으로 사도들이 석방되다(행 5:17-25)
선한 사업을 하면서 성공을 바라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많은 반대와 고난에 직면하게 된다.
마음이 왜곡되어 악행만 일삼는 사람들이 선한 사업을 힘써 하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룰 수는 없다.
인류의 파괴자인 사탄은 인류에게 유익을 안겨 주는 사람들에게는 과거-현재-미래에 공히 극악한 적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가르치고 병 고치는 일을 행함에 있어서 저지당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들을 둘러싸고 지옥의 악한 세력과 하늘의 은사의 힘이 겨루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전자는 이 선한 사업을 막으려하며, 후자는 이 일을 행하도록 더욱 그들을 고무해 준다.
Ⅰ. 제사장들이 그들을 시기하여 그들을 옥에 가둔다(17, 18절).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1. 사도들의 적과 박해자들은 누구였는가,
그 주모자는 대제사장들이었다.
안나스와 가야바는 만약 그리스도의 영적이고 신비한 가르침이 자리잡고 백성들 가운데서 세력이 커져가게 된다면 그들의 부와 위엄과 권력과 독재적인 행사가 위태롭게 되고 불가피하게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을 예감하였다.
여기서 가장 솔선하여 대제사장과 합세한 무리들은 "사두개인의 당파"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저 세상의 교리와 죽은 자의 부활, 미래 등 그들이 부정하는 것을 믿고 가르치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특별한 원한을 품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참되고 순수한 신앙을 반대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2. 그들은 사도들에게 악랄한 태도를 취하고 극도로 격분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많은 무리가 따르며 그들이 큰 관심거리가 되는 것을 보고 듣게 되자,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사람과 같이 격렬히 "일어나" 이 일을 앞장 서서 막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도리를 전하고 병자를 고치는 사도들과 이를 듣고 병고침을 받기 위하여 사도들에게 환자를 데려오는 백성들과 이 일이 널리 퍼지는데도 처음에 그것을 제압하지 못하고 묵인한 자신들과 자기 당에 대하여 분노가 충일하였다.
그리스도와 복음의 원수들은 고통을 자초한다. "질투는 어리석은 자를 죽이나니"라는 말씀과 같다.
3. 사도들을 대적한 절차는 어떠했는가(18절).
그들은 "사도들을 잡았다." 아마 직접 체포하였거나(하수인들이 의기소침하여 직접 손을 댔는지 모른다) 하수인들을 시켜서 체포하여 흉악범을 가두는 "공동감옥"(한글 개역과는 다소 다름:역주)에 감금하였다. 그들이 획책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사도들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그들에게서 사형시키거나 구속시킬 범죄를 뒤집어 씌울 수는 없었으나 그들을 옥에 가두어 두는 동안만은 그들의 일을 계속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고 바로 이 점을 그들이 노린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일찍이 구속당하게 된다.
(2) 그들에게 공포감을 주어서 일에서 손을 떼게 하고자 하였다.
지난번에는 다만 그들을 앞에 불러 위협하는 것으로 끝냈었다(4:21). 그러나 이제 그것이 소용없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두려움을 맛보이려고 하였다.
(3) 그들에게 치욕을 맛보게 하려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을 공동 감옥에 가두었고 그들을 중상함으로써 백성들이 전처럼 그들을 칭송하지 못하게 하려했다.
사탄은 복음을 고백하고 전하는 사람들로 모욕을 당하게 함으로써 계획적으로 복음을 대적한다.
Ⅱ. 그런데, 보라,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시어 그들을 옥에서 석방하시고 복음 전파하는 그들의 사명을 새롭게 하신다.
어둠의 세력들이 그들을 대항하여 싸웠으나 빛들의 아버지가 그들의 편이 되셔서 그들을 돕기 위하여 빛의 천사들을 보내신다.
주님은 그의 증인들과 성도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고 그들 곁에 계시며 지지하여 주신다.
1. 사도들이 석방된다. 그들의 석방은 정당한 것이었다(19절).
"주의 사자가 밤에"
그들을 막고 있는 빗장과 자물통에도 불구하고 "옥문을 열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서" 단단히 경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은 죄수들을 감옥에서 내어 놓는 바, 부정한 방법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초월적 권위를 그들에게 주어 모든 장애를 뚫고 그들을 인도해 내었다(23절).
본문으로 보아 이러한 석방은 베드로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12:7) 여기서도 이와 같은 기적이 있음을 믿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그 옥이 어둡고 강하게 세워졌다 해도 그 속으로 그의 백성을 찾아가시며 원하신다면 그들을 이끌어 내실 수도 있으시다.
천사들에 의한 사도들의 석방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유사하다.
그는 무덤이라는 감옥에서 나오시어 사도들이 복음전하는 것을 굳게 하여 주셨으리라.
2. 그들에게 책임이 주어졌다.
즉, 대제사장들이 그들에게 가한 방해에서 그들을 석방하고 그들의 일을 계속하도록 격려의 말씀과 함께 당당히 수행할 책임이 주어졌다.
천사들이 그들에게 명하기를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한다(20절).
그들이 기적적으로 방면되고 나서 그들의 힘으로 적들의 수중에서 벗어나 생명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니 오히려 기적적인 도움으로 회복, 고통에서 놓여남은 우리로 삶의 기쁨을 맛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을 드리어 하나님을 섬김으로 영광을 돌리고자 주어진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내 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119:175)라 하였고(본문의 사도들처럼)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케 하소서(시 142:7)"라 하였다. 이사야 38장 22절을 보라. 그러면 그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무엇이었는가.
(1) 성전에서 전하라고 하신다.
"성전에서 말하라.",,당당하게!!
사도들, 그들의 일을 중단할 수는 없지만 보다 한적한 곳에 가서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이 성전에서 보다는 제사장들의 감정을 덜 상하게 할 것이요 그들에게 자주 보이지도 않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성전에서 전하라. 이곳이 집회처이기 때문이요 너희의 아버지의 집이며 아직은 버림받아 황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자들은 많은 군중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한 한 구석으로 물러가 있어서는 안 된다.
(2) 그들이 전할 대상은 백성이었다.
"백성에게 말하라. 군왕이나 관헌들이 아니다. 그들은 듣기를 싫어한다. 백성들에게 전하라. 그들은 가르침을 기뻐하며 사모한다. 이들의 영혼을 그리스도께서 귀하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너희도 이들을 가장 큰 자의 영혼처럼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말하라. 모든 평민에게 전하라. 이들 모두가 귀중한 때문인 것이다."
(3) 그들이 전하는 방법은 "가서 서서 말하라"였다.
이 말은 그들이 공개적으로 말해야 할 뿐 아니라 서서 말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듣게 하라는 의미이다.
또한 그들은 담대하고 결단력있게 말해야 했다.
"서서 말하라"는 말은 굳게 결심이 되어 그것에 의해 살고 죽는 사람처럼 말하라는 뜻이다.
(4) 그들이 말할 내용은 "이 모든 생명의 말씀"이었다.
이 생명은 너희가 너희 가운데서 말하던 것이다.
아마 그들은 옥에서 자신을 격려하고 서로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하늘 나라의 생명에 관하여 말했던 것 같다.
"그 같은 말씀을 가서 세상에 전하라. 그 말씀으로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위로를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같은 위로를 받게 하라." 또는 이러한 말이다.
"너희를 핍박하고 이 생명에 대해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에게 이것을 전하라. 비록 그들이 분을 품는 것이 이 때문임을 너희가 안다해도 말이다." 또는
"이 생명에 대해 강조하라. 이 세상의 생명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늘의 신적인 생명에 대해 말하라." 또는
"이 생명의 말씀 즉 너희가 전한 바요 성령이 너희 입술에 부어 주신 이 말씀을 전하라"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복음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요 생동하는 말씀임을 기억하자. 이 말씀은 곧 영이요 생명이며 "구원받을 만한 말씀"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본문이 말해 주는 말씀이다(11:14).
복음은 이 세상 삶을 위한 말씀이기도 하다.
이 말씀이 우리의 가정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 노정을 특별히 보호하여 주며 장래의 삶을 약속해 줄 뿐 아니라 현재의 생도 보장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생명"이라 부른 것은 복음서에서 비쳐 주는 생명은 영적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 말씀이 너에게 이미 가까이 이르러 있다.
복음은 생과 사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이를 전해야 하며 따라서 백성들은 청종해야 한다.
그들은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해야 한다. 감정을 상하게 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조금도 감추어서는 안 된다.
또는 관헌들의 비위를 맞추려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모든 진리를 다 전할 것을 서원해야만 한다.
Ⅲ. 그들은 계속 사명을 수행하였다(21절).
"저희가 듣고,"즉 그들이 계속해서 성전에서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그들은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12절).
1. 그들은 새롭게 주어진명령에 대해 아주 만족하였다.
그들 마음대로 하도록 하였다면 그들은 아마도 전과 같이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전해야 할 것인지 망서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에 그리스도로부터 "이 도시에서 너희를 핍박하면 다른 도시로 피하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의 사자가 성전에 가서 전할 것을 명하였으므로 이제 그들의 거취는 분명해졌다.
그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성전에 들어갔고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 않았다.
우리가 주어진 임무에 만족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할 일은 이 임무에 전력하는 것이요, 그런 다음 기쁨으로 안심하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그들은 지체하거나 서로 격론을 벌이지 않고 즉시 이 명령을 수행하였다.
그들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즉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그 곳으로 모이기를 시작하자마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쳤다.
그리고 누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할 것인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본문의 경우는 아주 비상한 것이었다.
복음의 모든 보화가 그들의 수중에 있었고 그러기에 만일 그들이 잠잠하면 복음의 근원이 막혀버리고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 끝나고 말 것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역자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번 일로 사자의 아가리에 먹히울 수는 없었다.
주께서 선한 사업을 할 기회를 주실 때는 비록 우리가 인간들의 권력의 위협과 제제 아래 있다고 해도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야 한다.
Ⅳ. 대제사장과 그의 일당은 계속 그들을 박해하였다(21절).
그들은 사도들이 옥에 갇혔으려니 생각하고 공회를 소집하였는데, 그것은 대규모의 긴급회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를 다 모았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전도자들을 박멸하기 위하여 그들은 많은 준비를 하였고 기대도 컸다.
그들은 공회에 관련된 사람을 모두 모았다.
지난 번에는 사도들을 구금하고 대제사장의 문중이 모인 위원회에서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있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모든 장로들을 다 모았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가 말한 것처럼]예루살렘에 있는 3부의 관리들이 다 모였다.
구태여 그 규모를 말하자면, 70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와 다른 두 재판기관 즉 하나는 성전 외곽 문 안에 세워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내부 즉 미문 안에 세워져 있었다. 이 두 재판 기구는 각각 23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들 모두가 참여하였다면 116명의 재판관들이 모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적들이 일어나고 사도들이 그들을 대적하여 증거하므로 더욱 널리 퍼지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이 재판정 앞에 서지 않고는 복음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들려지게 될 것이라 하셨다.
대제사장은 물론 이렇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고 마음에 생각조차 품지 않았다.
다만 실력으로 사도들을 저지하고 일반의 승인을 얻어 그들을 단번에 제거하려는 것이 그의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뜻을 이루신다.
2. 그들은 실망하고 그들의 얼굴은 수치로 일그러졌다.
"하늘에 앉으신 이가 비웃으심이여,"
우리는 재판정의 분위기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상상할 수 있다. 또한 대제사장이 엄숙한 어조로 그들에게 모인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도 그려 볼 수 있다.
"최근에 아주 위험스러운 분파가 예루살렘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예수의 교리를 전하는데(지금과 같은 위험이 전에는 결코 없었는데) 교회의 보전을 위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제압해야 하겠다. 이제 일을 처리하기는 용이하다. 그 일당의 주모자들을 옥에 가두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이 동의만 하면 가장 가혹하게 다스리겠다"는 뜻을 말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관리를 불러 즉시 죄수들을 재판정에 데려오라고 보냈다. 그러나 뜻밖의 결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 관헌들이 돌아와서 죄수들이 감옥에 없다고 보고한다(22,23절).
지난번에는 그들이 부르는 즉시 왔었다(4:7). 그러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관리들이 보고하는 바에 의하면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아무것으로도 문을 열 수는 없었다) "지킨 사람들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우리가 가보니 지킨 사람들도 문에 섰더이다. 도대체 죄수들이 없어질 만한 이유가 없었는데, 우리가 들어가 보니 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한 사람도 잡아오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보고하였다.
그들은 거기서 일반 죄수들은 보았을 것이다. 주의 사자가 그들을 어떤 방법으로 데려갔는지 그들만이 아는 방법을 이용했는지 아니면 문을 열고(간수들이 졸고 있는 동안) 다시 그것을 단단히 잠궜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어찌하였든 그들은 없었다. 우리는 모르지만 주님은 아시리라.
그 경건한 사람들을 위험에서 어떻게 건지셨는지 그의 이름으로 인하여 갇힌 자들을 어떻게 석방하셨는지 그만이 아신다.
본문에서와 같이 그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 그는 이와 같은 일을 하신다.
이 관리들이 그들의 상관에게 돌아왔을 때 재판정이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하여 보자(24절).
"대제사장과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서"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될까"라고 말했다. 그들은 극도로 당황하여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결코 전에는 여러 가지 생의 문제에서 이렇게 낙심해본 적은 없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터져나왔으리라...
어떤 이는 그들이 마술로 옥에서 탈출했을 것이라 했고 다른 이들은 간수들 중에 이 죄수들의 많은 친구가 있으며 백성들의 신뢰를 받는 줄 알고 농간을 부린 것이라고도 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놀라운 방법으로 탈출하였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따를 것이라고 염려하였다.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이 이들을 예루살렘에서는 위협할 수 있으나 그러면 이들이 다른 지방으로 가서 활동하게 될 것이고 거기서는 이들이 더 악한 짓을 한다 해도 이 나쁜 영향이 확장되어 나가는 것을 저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악질을 고치는 대신 더 악화시키지나 않는지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입을 막고 방해하려던 사람들은 스스로 어려움을 당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자.
(2)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의혹에 결론이 주어졌다.
그렇지만 그들의 고뇌는 다른 전달자에 의해 더욱 더 증대될 수 밖애 없었다. 그는 죄수들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25절).
"보소서 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재판정으로 끌려와야 할 그들이, 참을 수 없게, 당신들이 왈가왈부하는데도 당신들을 무시하고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탈출한 죄수들이란 으례히 다시 체포될 것을 두려워하여 피신하는 법인데, 지금 탈출한 이 죄수들은 그들의 박해자들의 영향이 대단한 곳에서 감히 얼굴을 나타낸 것이다. 이 일은 무엇보다 그들을 당황케 하였다.
일반 범인들도 옥을 탈출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이 행한 짓을 공언할 용기까지 지닌 이상한 죄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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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에 대한 심문(행 5:26-42)
사도들이 무엇을 전하였는지는 기록되지 않고 있으나 분명 천사의 지시에 따라 "이 생명의 말씀"를 전하였을 것이다.
그들과 공회 사이에 일어난 일을 본문은 설명해 준다.
왜냐하면 말씀을 전하는 순간보다 그들이 고통을 받을 때 신적인 능력과 힘이 더욱 나타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볼 수 있다.
Ⅰ. 두 번째 사도들의 체포.
하나님께서 이 일을 계획하셨다면 "어째서 그들을 구금당하였을 때 구하셨는가"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은 그들의 박해자들의 교만을 꺾고 광분을 저지하고자 계획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들이 석방된 것은 재판을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님을 보여 주려 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돼 있었고 가장 큰 그들의 원수 앞에 나타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1. 그들은 사도들을 폭력을 쓰지 않고서 오히려 존경감과 부드러운 태도로 데려왔다.
단에서 그들을 끌어 내리거나 결박하고 질질 끌고 가지도 않고 그들을 존중하며 데려갔다.
그들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은 거룩한 곳인 성전을 존중하고 또 사도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였다.
사도들이 아나니아에게 행한 것처럼 그들은 저주하거나 또는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멸할 하늘로부터 불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이 폭력을 쓰지 않은 것은 백성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도들을 존경하였으므로 관리들이 어떤 모욕을 그들에게 가한다면 돌에 맞아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2. 그렇지만 이들 관리들은 그들이 알고서도 사도들을 박해하고 난폭한 짓을 획책하고 있는 자들에게 데려왔다(27절).
그들은 그들을 범죄자처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웠다" 이리하여 악행을 하는 자와 악행을 저지하기 위해 있는 권력이 선한 행위도 막는 것을 보게 된다.
Ⅱ. 그들의 심문.
이 엄숙한 공회에 끌려오자 그 회의의 대변자로서 대제사장이 그들이 체포된 데 대해서 사도들에게 말하였다(28절).
1. 그들이 관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명령과 금지 조항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28절).
"우리의 직권에 의해서 우리가 가장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도 엄히 문책하고 또 너희에게 명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너희가 우리의 명령을 어기고 허락도 없이 계속 가르칠 뿐 아니라 우리의 특별 명령까지 거스리는도다."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자들이 흔히 엄하게 자신들의 법령은 강조하고 자신의 권력을 주장한다.
"우리가 너희에게 명하지 않았느냐?" 물론 그들이 명령하였었다.
그러나 그 때 동시에 베드로가 하나님의 권위가 그들의 권위보다 우위에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2. 그들이 백성들 가운데 거짓 도리를 전한다고 하였다.
적어도 한 가지 교리, 즉 그것은 유대 교회에서 금지되었고 또 모세의 가르침과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여 공중의 안녕을 깨뜨리고 백성들을 공중 질서에서 떠나게 하는도다."
어떤 이는 이 말씀을 무례하고 조소적인 것으로 여긴다.
"너희의 교리는 어리석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로다. 이것으로 너희가 이 거룩하고 큰 도시를 시끄럽게 하고 그 교리로 가득차게 하여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구나"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들이 경멸해오던 사람들이 이와 같이 논의의 대상이 된다는 데 노여웠던 것이다.
3. 그들이 정부에 악의를 품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획책한다고 하였다.
그들이 정부를 악하고 전제적이며 하나님과 사람앞에 추악한 것으로 말한다고 하였다.
"너희가 이 사람의 피를, 하나님 앞에는 불경스럽고 인간들에게는 수치스러운 그 피를 우리에게 돌리려 하는도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사도들에게 관여 하거나 법정에 대한 모독죄 뿐만 아니라 분열획책, 선동 사람들로 그들에게 반란을 일으키게 음모하였다고 죄를 씌웠다. 사도들이 예수와 같이 흠없고 선하시고도 위대한 분을 박해하여 죽게 한 죄를 자기들에게 씌우고 로마인들까지 끌어들여 죄인을 만들었다고 힐난하였다.
본문에서 우리는 무엄하게 악한 일을 행한 그들이 그렇게 행하였다고 지적하는 것을 참고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를 열광적으로 박해할 때 그들은 대담하게 외치기를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영원히 우리가 그 치욕을 당하리이다"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자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대단한 모욕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하였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양심에 의하여 죄를 깨닫고 스스로를 정죄하였으며 전에는 그들이 관련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 죄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무서워하였다.
Ⅲ. 문책에 대하여 사도들은 그들에게 항거하는 답변을 하였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다 같은 취지로 말하였다.
따로 따로 심문을 받든지 같은 내용의 답변이 요구되든지 그들은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한 사람같이 같은 내용을 말하였다.
그들은 공회 앞에 설 때에 "그들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려 주시겠다는" 그들의 주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용감히 증거하였다.
1. 그들은 자신들이 산헤드린 회의가 아무리 존엄하다 하여도 산헤드린의 명령에 불복종한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밝혔다(29절).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기적을 행하는 능력에 호소하지 않았다(그들을 위해서 충분히 이것을 말할 수 있었으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겸손하게 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들은 오직 인간이 지켜야 할 최고의 명령에 호소하였다.
이 명령에 모든 자연 양심도 속해 있는 것이고 그들이 이 명령에 따라서 행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칠 것을 명하셨다.
그러므로 비록 제사장들이 금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 일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상 하나님에게 불복종하는 자를 처벌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인데 그러기는커녕 자기들에게 불복종한다고 인간을 처벌하는 집권자들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들이요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함을 기억하자.
2. 그들은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의 도리를 전하는 일에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비록 그를 전하면서 악한 생각으로 그를 죽인 자들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그들이 피를 흘리게 한다면 자기들은 감사한 심정으로 그 길을 따르리라 말하였다.
그들에게 범죄 사실로 기소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었다.
사도들은 말한다. "자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이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그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말하겠도다.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전해야 할지를 당신들이 판단해 보라. 너희가 듣든지 안듣든지, 참든지 참지 못하든지 우리는 이 기회에 너희에게 이 도리를 전하리라."
(1) 사도들은 제사장들이 예수에게 행한 불의를 정면에서 공격한다.
"너희가 그를 나무에 달아 죽인 것을 부인할 수 없도다."
사도들은 이 사람의 피를 흘린 죄를 그들에게 전가시킨 데 대해 변명하고 용서를 비는 대신에 되풀이하여 그들의 잘못을 말함으로 맞선다.
"그를 죽인 것이 바로 너희라. 그것이 너희가 행한 것이라."
백성들이 그들의 결점을 말해 주는 것을 듣기 싫어한다고 그들에게 그 결점을 성실하게 말해 주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죄를 공박하지 않고자 하는 일반적인 변명은 시대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를 공박하는 것이 그의 사명인 사람들은 이 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시대가 그 공박을 허용해야만 하며 또 허용해야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리 높이 외치라. 그리고 묵인하지 말라." 소리 높이 외치라. 그리고 두려워말라.
(2)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예수에게 어떤 영광을 입게 하셨는지를 제사장들에게 말하였고 그들에게 그의 교리를 박해하는 자들과 그 교리를 전하는 자들 중 누가 옳은지 판단해 보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 우리뿐 아니라 너희의 하나님이라고 부름으로 그들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어떤 새로운 신을 전하는 것도 아니요 백성들을 모아 다른 신들을 예배하도록 유혹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하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예명과 반대되는 법령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조상의 하나님을 따른다고 하였다.
그들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이름은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대한 응답이요 계약의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하심을 뜻하는 것이요, 그가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율법의 원형이요 모형이라고 말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요 아버지"이시다. 그럼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주신 명예는 무엇인지 살펴 보자.
① 하나님이 그를 "일으키셨다."
그는 예수에게 그의 크신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주셨고 그 일을 위하여 부르시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행하신 약속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인다. "주 너희 하나님께서 한 예언자를 너희에게 일으키시리니,"
하나님께서 그를 어두움 속에서 일으키사 위대하게 하시었다. 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를 무덤에서 살리셨다는 의미도 된다.
"너희가 그를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과 너희가 이 예수에 관하여 다투고 있는 것이 명백하도다. 그렇다 하면 우리가 어느 편에 서는 것이 마땅하뇨?"
② 그가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셨다". 즉 그들 높이 드셨다는 말이다.
"너희는 그에게 치욕을 가했으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명예로 관씌우셨으니 하나님이 명예롭게 한 그분을 우리가 존귀히 여겨야 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셨다. 그 말은 그가 그의 권능으로 높이셨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셨다.
또는 오른손으로 높이셨다는 말은 오른편에 앉히시고 거기서 쉬게 하시며 다스리게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장 높은 위엄을 주시고 또한 가장 높은 권능을 맡기셨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가르쳐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기 때문이다."
③ "하나님께서 그를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전하는 것이요 그가 임금이므로 그의 나라의 법령을 선포하는 것이요 그가 구세주이시므로 우리가 그의 은사의 공급자가 되는도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를 우리의 임금으로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로 되실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예전에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자로서 이제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지배하심은 구원하시기 위함이요 믿음은 이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신뢰인 것이다.
그는 우리를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다.
④ 그를 임금과 구주로 삼으신 것은 "이스라엘로 회개하게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택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국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 가르침을 거스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관헌과 장로들은 어찌하여 결코 적은 축복이 아닌 회개와 용서를 이스라엘에게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을 반대하는가?
만일 그가 높임을 받으시어 이스라엘을 로마의 속박에서 구하시고 이웃 국가들을 지배하게 하셨다면 제사장들은 그를 진심으로 환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개와 죄 사유는 그의 가치도 인정하지 아니하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축복이었고, 그래서 결코 그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첫째, 회개와 죄사유는 병행한다.
회개가 있는 곳에 예외 없이 죄 사우는 따른다. 그의 가호하심은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회개없는 죄 사유는 없다. 죄의 세력과 그 지배로부터 자유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죄책감과 죄에 대한 형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회개는 죄로부터 돌아섬이요 그것과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회개와 죄사유를 주시며 그것을 주시도록 권한이 부여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새 계약인 복음서에 약속된 것은 무엇이든지 죄를 회개하여 사유함 받은 바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는 이마다 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에게 회개가 주어졌는가? 그리스도는 회개를 주시는 분으로 임명되어지셨으며 말씀과 함께 역사하는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양심을 일깨우시며 죄에 대한 뉘우침을 불러 일으키며 마음과 생활에 효과적인 변화를 주시는 것이다.
그의 역사하심으로 새 마음이 지어지고 그가 제공하신 희생으로 상한 심령이 고침을 받는다.
그가 회개는 허락하시고 죄 사유는 주시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손으로 역사를 포기하는 것이 되고 만다.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를 회개케 하는 그의 은총에 대해 믿음을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의탁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기억하자.
⑤ 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졌다.
첫째, 사도들에 의해 성취되었다.
그들은 누가 요구하든지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사 부활하신 후 사십여일간 친히 살아 계신 것을 보았고 또 그가 하늘로 승천하시는 것을 보았다고 엄숙히 증언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마음 속에 은총의 능력을 경험하였다는 것과 그들의 천연적 성품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우리는 세상에 이 사실을 선포하기 위해 그에게 임명받은 그의 증인이라. 만약 너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로 우리가 침묵을 지킨다면 배신자가 되며 위선자가 되는도다."
한 운동이 시작될 때는 모든 사람에 대한 증인들은 침묵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운동의 성패는 그들의 증언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성취되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유력한 증인들로서 우리의 증언은 인간의 법정 앞에서도 유효하도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닌 것이다. "성령이 친히 증인이시라."
그런데 성령하나님, 그는 하늘로부터의 증인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물과 은사를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이름을 전한다. 왜냐하면 이 목적을 위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요 우리가 그의 역사를 억누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순종하는 신자들에게 성령을 주심은, 즉 그들에게 순종의 믿음을 주실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 뛰어난 역사를 하게 하심은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훌륭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에 의하여 그의 이름으로(요 14:26)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요 14:16) 성령을 주시었다.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보내도록 하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인 것이다(요 15:26; 16:7). 그리고 이것은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신 영광을 입증해 준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옳다 증거하실 뿐 아니라(딤전 3:16) 그를 영화롭게 하시며 또 성령께서 베푸는 모든 은사는 그의 이름을 높이시기 위한 것인데 이 모든 사실은 예수의 가르침이 신성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거기서 신적인 능력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끝으로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은 그들이 복종을 돕고 그들의 복종에 대해 보상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를 반대하여 너희에게 복종해야 될지 판단해 보라."
Ⅳ. 사도들의 자기 변호가 법정에 미친 영향.
그들의 말은 분별력있고 진지하며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확실히 이같이 정당한 변론은 죄수들의 결백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며 판사들의 마음을 돌이킬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은 그 변론을 인정하기는커녕 분노로 충만하였다.
1. 그들은 사도들의 말에 대해서 분해 분개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가 바로 그들 앞에서 논리정연하게 진술되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와 같이 변증할 수 있다는 것과 따라서 그만치 기반이 확고해진 것을 보고 그들은 광분하였다.
이 같은 취지의 설교를 백성들에게 전하였다면 "마음에 찔림을 받아" 자책과 슬픔에 잠겼으리라(2:27).
그런데 이 사람들은 분노로 "마음에 사무쳤다"(한글 개역과는 다소 다름:역주).
그러므로 똑같은 복음이 어떤 이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향기요, 다른 사람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취가 된다.
복음을 적대시하는 자들은 스스로 그 위로를 거부할 뿐 아니라 공포로 가득 차 스스로 고통에 몸부림친다.
2. 그들은 바로 사도들에게도 악의를 품었다.
사도들을 죽이는 것 외에 그들의 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모의를 하였고 그러므로 복음이 확장되는 것을 막기를 바랐다.
사도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마음의 평온이 완전히 조화를 이루며 스스로 내적인 기쁨을 만끽함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동안 그들의 박해자들은 끊임없는 혼란과 마음의 동요 속에서 스스로 괴로워하며 계속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있었다.
Ⅴ. 이 회의의 주도적인 인물, 가말리엘이 이 사건에 대하여 제시한 진중한 충고는 어느 정도 이들 무뢰한들의 광란을 제어하였고 폭력 수행을 저지하였다.
이 가말리엘은 바리새파에 속해 있으며 직책은 "교법사"로서 구약 성서를 연구하고 성서 기자들에 대해 강의를 하며 성서를 가르침으로 생도들을 육성하는 사람이었다. 바울이 그의 문하에서 배웠고(12:3) 스데반과 바나바도 그에게 배웠다고 전승은 전해 준다.
^^어떤 이는 그가 그리스도께서 성전에 드려졌을 때 그를 팔에 안은 시몬의 아들이요 유명한 힐렐의 손자라고 한다.
본문에 그는 지혜와 행동에 있어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는 온건한 사람이었던 것 같으며 극단적인 분위기에 말려들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온건하고 자애로운 성품의 사람들은 세계를 불지를 듯이 날뛰는 선동자들을 제지하므로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는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그는 전에 있었던 사례를 들어 공회에 필요한 주의를 준다.
그는 보다 자유롭게 말하고 또 자유로운 답변을 듣기 위하여 "사도들은 잠깐 밖에 나가게 한다"(죄수들 당사자의 문제가 논의될 때 그들이 자리를 떠나는 일은 합당한 처사다).
그렇게 하고 그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그들의 가열된 머리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냉철히 판단할 수 없음을 말해 주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고 그는 말한다(35절).
이것은 평범한 문제가 아니므로 조급하게 결정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그들에게 경고심을 강조하는 뜻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여러분들이여 이성을 찾으라. 지각이 없는 말이나 나귀처럼 행동하지 말지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자들이여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나그네나 이방인처럼 행하지 말라. 너희가 스스로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이 사람들에게 분내는 것을 조심하라."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자들은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기억하자.
우리도 혹시 의인의 마음에 슬픔을 주지 않도록 우리가 괴로움을 끼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그는 그의 의견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그런 사례를 인용한다.
그는 당을 지어 선동하던 사람들에 대해 두 사례를 든다(그들은 사도들도 이 같은 무리로 취급하였다).
그들의 선동 시도는 결국 수포로 돌아갔었다. 만약 이들도(사도들) 그와 같은 무리라면 제풀에 꺾이고 말 것이요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을 혼미케 하여 패하게 할 것이니 그들이 직접 박해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1) 드다라는 자기 있었는데 그는 한동안 대단한 소요를 일으키고 교회와 국가에 대 개혁을 일으키기 위해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라 또는 교사나 임금 같은 위대한 자라고(본문에 의하면) "스스로 자랑하였다." 본문에서 가말리엘은 그에 관해 다음 같이 말한다.
① 그가 얼마나 득세하였는가를 말한다.
"약 사백이나 되는 무리가 그를 따랐으나 무엇을 해야 할 지 무엇을 바라는 것이 좋은지를 몰랐도다. 그러나 당시에는 무시할 수 없는 집단처럼 보였도다."
② 그의 자만이 얼마나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는가를 말한다.
"그가 살해당하자"(아마 전쟁에서)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흩어졌고 그러므로 더 이상 근심할 필요가 없었도다. 그들은 태양 앞에 눈 녹듯이 쓰러지고 말았으니 그때의 경우를 지금과 비교해 보라. 너희가 이 당파의 주모자인 예수를 죽여 없이 하였도다. 만약 그가 너희가 말하는 것처럼 사기꾼이요 위선자라면 드다의 경우와 같이 그가 죽으므로 그가 시작한 운동도 끝날 것이요 결국 그의 추종자들도 흩어지고 말 것 아닌가,"
과거의 일을 살펴 봄으로 우리는 그와 같은 경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말할 수 있다. 목자가 흩어지면 양도 흩어지게 될 것이다.
만일 평강의 하나님이 위대한 목자의 죽음에서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 없다면 그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2) 이 사건은 "갈릴리 유다"의 사건과도 같았다(37절).
① 갈릴리 유다의 시도.
"그 후"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이는 "이 일 외에"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견해로는 "그 후에"로 보고 싶다) 이는 드다의 폭동이 있은지 오래지 않아 유다의 폭동이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리라.
"호적할 때"라 하였으니 주로 주님께서 탄생하시던 때를 말함이요(눅 2:1)드다의 폭동은 요세푸스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스피우스 파도스(Cuspius Fadus) 통치 시대였고 유다의 사건을 콜라우디우스 씨이저 당시의 일로써 여러 해가 지난 후 가말리엘이 이에 대해 말하였던 것으로 같은 연대의 사건 일 수는 없다.
이 사건들이 언제 일어났는지 정확히 결정짓기는 쉬운 일이 아니며 본문의 호적하던 때가 주님 탄생시의 그것과 같은 것인지 그 후의 것인지도 결정짓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는 갈릴리 유다가 요셉푸스가 말하는 유다 갈로나이트(Judas Gaulonites)와 동일 인물이라고도 하고 다른 사람은 아니라고도 한다.
이 사건들은 그 당시의 최근에 일어났던 사건들로서 기억에 생생하였던 것 같다. "이 유다도 백성을 꾀어 쫓게 하였다."
② 그러나 본문을 보면 그의 기도도 실패하고 말았다.
산헤드린 회의가 간섭하지도 않았으며 그를 정죄하지도 않았지만(그렇게 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그 또한 망하였고 그를 쫓던 모든 사람도" 즉 그에게 설득되었던 사람들도 흩어지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그들의 생명을 버렸고 다른 사람들도 같은 함정에 빠지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바벨론의 왕을 섬기도록 결정하였음에도 그들은 주어진 섭리에 만족하지도 않고 세금도 징수하는 때에 보다 큰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봉기하였던 것이다.
3.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그의 결론.
(1) 그들이 사도들을 박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38절).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은 충고는 "이 사람들을 상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이 행한 일을 처벌하려 하지도 말고 앞으로 금하려 하지도 말라. 그들을 묵인하라.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라. 우리가 손을 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가 백성들과 로마인에게 원한을 사므로 일을 더 악화시킬까 두려워하여 이렇게 겸손히 말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여하튼 사도들은 외적인 무력으로 무슨 일을 기도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전쟁 무기는 육적인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을 대적하여 어찌 외적인 무력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또는 그가 적어도 기독교 가르침의 진리에 대해 그 가능성을 인정함으로 회심 과정 아래 있었기에 그들이 보다 낫게 대우를 받도록, 즉 적어도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분명치 않다.
또는 그의 말은 양심의 문제에 대해 박해하는 데 대한 항변으로서 온유하고 사려깊은 정신에서 우러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또는 하나님께서 이 때에 사도들을 놓아 주시기 위해 가말리엘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말하도록 이 말을 그의 입에 두셨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사건 속에 초월적인 섭리가 있음을 확신한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석방될 뿐만 아니라 명예롭게 석방되는 것이다.
(2) 그는 그들로 하여금 이 문제를 섭리에 맡기라고 말한다.
"사건의 추이를 기다리라.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두고 봅시다."
"만일 사람에게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 났으면 너희의 권력과 책략에도 불구하고 무너뜨릴 수 없으리라."
명백히 악하고 부도덕적인 것은 제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치안관에게 주어진 권력은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은 그것이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의심스러운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그대로 묵인해 두는 것이 최선책이며 그것을 제압하려 외적인 무력을 행사하지 말고 되어 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 최선책이다.
그리스도는 검으로써가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다스리신다.
JC께서 요한의 세례에 관해 "그것이 사람으로부터냐 하늘로부터냐" 물으신 것처럼 사도들의 가르침과 세례에 대해서도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에 앞서 활동한 것처럼 사도들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활동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질문에 대해 그들이 그것이 사람에게서인지 하늘로부터인지 말할 수 없었던 것처럼 사도들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희가 어떤 길을 택하든지 박해하여서는 안 된다는 이유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① "만일 이 모임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고 한 공동체까지 이룬 이 일이 사람에게서라면 무너질 것이다. 만일 이 모임과 역사가 무엇을 해야할지 알지도 못하는 어리석고 우매한 자들의 소행이라면 잠시 동안 내버려두면 스스로 기진할 것이요 그들의 어리석음이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날 것이요 스스로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만약 이 모임과 역사가 간사하고 술책을 부리는 자들이 종교라는 미명 아래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한다면 내버려두라. 그러면 가면이 벗겨질 날이 올 것이요 그들의 협잡이 모든 사람들 앞에 드러날 것이요 추한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이 결코 그것을 장려하지 않으리라. 시간이 지나면 무너질 것이요 그렇다면 너희가 박해하고 그것을 반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스스로 고통을 사서 하며 증오를 받으며 시간만 지나면 제품에 죽을 것을 없애려 할 필요가 없도다. 권력을 불필요한 곳에 쓰는 것은 남용에 불과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② "그러나(지혜있는 너희들의 착각으로) 이 사상과 이 소행이 하나님께로 났으면 또한 이 전도자들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과 지도를 받고 있고 구약 예언자들처럼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의 참된 사자라고 한다면 그들을 핍박하고 그들을 살해하려는 너희의 이 기도가 어떠할지 생각해 보라(33절). 만일 그렇다면 너희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째, "그들을 적대하는 것이 소용없는 것이란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으리니 여호와를 대적할 만한 지혜도 사상도 세상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에 앉으신 이가 너희를 비웃으시리라."
이 사실은 성실히 하나님 편에 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이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그들의 목적은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아무리 거세게 반대한다 해도 결코 모든 것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것이 짓밟힌다 해도 다시 일어난다.
둘째, "자신에게 위험스런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간청하노니 혹시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내버려 두라. 이 싸움에서 누가 악한 자로 판명될지 결과를 보도록 하자." "그의 창조주에게 대적하는 자가 화있을진저,"
왜냐하면 그는 무력한 대적자로서 그 앞에서 정복될 뿐 아니라 그의 의로우신 임금을 대적한 반역자요 사기꾼으로 가혹하게 취급되겠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증오하고 학대하며 그의 신실한 사역자들을 막으며 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려 싸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대적하는 일을 자기에게 대한 적대 행위로 보시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들을 건드리는 것은 곧 그의 눈동자를 다침이라."
이러한 내용이 가말리엘의 충고였다.
우리는 이 말이 양심의 거리낌 때문에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온당하게 숙고되어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가말리엘이 어떤 사람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이 견해는 좋은 사상이요 타당성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 저술가들의 전승에 의하면 그는 철저하게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증오하는 자로서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적어도 지금은).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을 핍박하는 것을 만류했지만 여전히 그는 오늘날도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과 기독교를 박멸해 달라고 기도할 때 사용하는 기도문을 지은 사람이다.
이와는 반대로 교부들의 전승에 의하면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전에도 그가 가르치던 바울의 추종자로 저명한 기독교 수호자로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이 말이 옳다면 우리가 사도행전이나 서신들 가운데서 그에 대하여 어느 정도 소식을 들을 수 있어야 했으리라..
Ⅵ. 전반 문제에 대한 회의의 결정(40절).
1. 그들이 가말리엘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으나 사도들을 죽이려하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 속에서 상당한 타당성이 있음을 알았고 당시로써는 그것으로 그들의 광분을 제지할 수 있었고 여분의 분노도 막을 수 있었다.
2.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의 양심과 판단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분노를 분출시키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그들의 분노는 굉장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을 그대로 놔두자고 충고를 받았지만
(1) "그들을 채찍질하였다."
그들이 회당에서 흔히 하였듯이 그들을 악인처럼 형을 가하였으니 그들의 옷을 벗기고 매질하였다.
그들이 받은 능욕에 대해 언급되고 있다(41절).
그러므로 그들은 사도들이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히 여기며 백성들도 듣는 것을 부끄러워하리라 생각하였다.
그들은 빌라도가 예수에게서 아무 결점도 발견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도 자기를 들어내기 위하여 우리의 구세주를 채찍질하듯 하였던 것이다.
(2) 그들은 더 이상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아무런 결점도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이제는 이 근거를 가지고 그들을 책잡을 수 있게 해 놓았다.
즉 복음을 가르치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고 금지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상급 관리들의 특별 명령을 어겼다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Ⅶ. 사도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모욕과 무례 속에서도 놀라운 용기와 지조를 보였다.
그들은 석방되자 "공회 앞을 떠났다."
그들은 공회와 그들에게 가한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 한 마디의 비방도 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이 모함을 당하여도 다시 모함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고통을 당하여도 협박하지 않고" 가말리엘이 말하였던 의로써 판단하시는 그 하나님에게 "그들의 사정을 의탁하였다."
그들의 모든 관심사는 자신의 영혼을 보존하고 그들에 대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었다. 이 두 가지를 그들은 훌륭히 하였다.
1. 그들은 그들의 고통을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견디었다(41절).
그들이 떠날 때에 그들의 팔과 손에 채찍 흔적이 나타났었으리라.
그리고 종들이나 하층민들에게 조소를 받았고 사람들은 그들이 불명예스러운 처벌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와 관련된 것을 부끄러워하는 대신에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
그들은 덕망있는 사람들로서 스스로 악행을 저지른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통당한 것을 수치로 여길 수밖에 없었고 흔히 소박한 심정을 지닌 자들에게 그러하듯 분하다기 보다는 더욱 침통한 기분이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능욕받는 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것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에게 속하였고 그의 관심사를 위해 섬기며 또 그들의 당하는 고통은 그의 이름을 더욱 널리 펴는 데 공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1) 그들은 그것을 명예로 여겼다.
즉 "그들이 능욕받는 것을 합당하게 여겼다"
즉 그리스도를 위해 수치 당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다.
그리스도를 위해 수치를 받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형상을 닮게 해 주며 그의 일을 위해 봉사하게 함으로 오히려 참다운 의미의 승진이다.
(2) 그들은 첫 전도 여행을 떠날 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마 5:11-12) 수치당함을 기뻐하였다.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할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들은 그들이 고통을 당하였음에도 오히려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기뻐하였다(그들이 받는 고통이 기쁨을 감소시키지 않았다).
그들이 당한 고통은 그들의 기쁨을 증가시켰고 더욱 크게 하였다.
만일 우리가 선행을 하고도 치욕을 받고 또 그것을 잘 견딜 수 있다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시는 은사에 대하여 기뻐해야 한다.
2. 그들은 끈질기게 부지런히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였다(42절).
그들은 복음 전한다하여 처벌을 당하였고 또 전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쉬지 않았다." 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열심이나 솔선하는데 결코 꾀를 부리지 않았다.
(1) 그들은 "매일" 복음을 전했다.
안식일이나 주일뿐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던 것처럼 매일 매일 어김없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하였다(마 26:55; 눅 19:47).
그들은 죽지나 않을까 또 듣는 사람들이 싫증내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았다.
(2) 그들은 공개적으로 성전에서 또는 사적으로 각 개인의 집에서 복음을 전했다.
전자는 모든 사람이 모이는 혼잡한 집회였고 후자는 특별한 의식으로 선별된 기독교인의 집회였다.
그들을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하여 핑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말씀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그들은 자주 눈에 뜨이고 따라서 적들의 감시를 받아야 했지만 그렇다고 설교를 자기들의 집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위험을 무릎쓰고 성전을 사용했다. 그들은 성별된 곳인 성전을 이용할 자유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비록 가난한 오두막집일지라도 모든 사람의 집에서 전하는 것을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가 책임맡은 가족을 방문하였고 어린이나 하인에게까지 그들의 형편에 따라서 개별적인 교훈을 전하여 주었다.
(3) 그들이 가르친 주제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그들은 그에 관해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그를 높여 전하였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그가 그들의 임금과 구주라고 계시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 전한 것이 아니라 신랑의 신실한 친구로서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그들이 한 일은 오로지 그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제사장들의 설교에서 가장 큰 실수는 그들이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전하는 것으로써 그들은 자기의 원대로 설교 주제를 바꿀 수 없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복음의 사역자들의 계속적인 의무이다.
그리스도 그가 못박히셨다는 것과 그리스도 그가 영광을 입으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요약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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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사도행전 5장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ㅇ누가가 여기까지 우리가 알아듣도록 설명해 온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진 그 단체가 사람들의 단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천사들의 단체와 같았다는 사실이다.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원조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자기들의 돈뿐 아니라 그들의 토지까지도 내던졌다는 것은 견줄데 없는 덕행이었다. 이제 그는 실제로 다음의 사실을 보여준다. 즉 사단은 이 거룩한 고단(holy community)에 자입할 계략을 고안해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고상한 미덕으로 감싸여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교묘하게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놀라운 위선의 방편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단은 공공연한 싸움에서 승산이 별로 없을 때 그런 위선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는 방법을 삼는 것은 물론이다.
ㅇ그러나 이 점에서 우리는 성령의 의도하시는 바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에서 그는 첫째로 마음의 정절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또는 사악하고 위선적인 것을 얼마나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인가 그리고 둘째로는 교회에서의 순결하고 거룩한 정치형태를 얼마나 크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가를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요점은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에게 과하신 형벌인 것이다. 그 당시에 그 중한 형벌이 모든 사람들을 두렵게 한 것처럼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도, 우리가 성도의 겉치레를 하면서도 하나님을 경멸하는 태도로 농락한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불성실을 용납하실 수가 없다는 훌륭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든 사정을 고려하면서 전체면의 진실을 알려고 한다면 누가는 거짓된 헌금으로써 하나님과 교회를 기만하려고한 단 한 가지 죄 때문에 아나니아를 비난한 사실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만의 배후에는 많은 악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첫째 하나님은 그의 비뚤어진 마음을 알고 계셨지만 그는 두려워하는 마음없이 하나님을 멸시한 일, 둘째 그는 하나님에게 바쳐지기로 스스로 표명한 것의 일부를 절취함으로써 신성을 모독하는 부정을 자행한 일, 세째 그릇된 허영심과 야심, 그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이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스스로 사람들 앞에서 환심을 사고자 한 일, 네째 불신앙, 그에게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러한 범행의 길에 발길을 내딛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신앙적이고 거룩한 계획을 망쳐놓은 일, 여섯째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실제적인 위선이 그 자체 안에 있는 큰 죄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다 그의 계획적이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이 첨가될 수밖에 없다.
ㅇ아나니아가 자기의 토지의 값의 절반을 바쳤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위가 표면상으로는 훌륭하고 가치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의 재산을 고르게 분배해 주는 일은 실상 큰 미덕이다. 그러나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잠15:8) 그리고 마음의 지실함이 동반되지 않는 곳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과부가 드린 동전 두 푼을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의 저대한 재산에서 끄집어낸 큰 액수보다 더 많이 드린 것이라고 그리스도께서는 생각하시는 것이다(눅21:2) 이것이 바로 아나니아에게서 매우 강렬한 징벌을 예로 만드신 이유이다. 이제 개개의 요점을 상세히 검토해 보기로 한다.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ㅇ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 야심이라는 것이 무슨 짓을 하는지 보라. 아나니아는 자기가 사람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돈에 욕심이 있는 자이지만 그러면서도 사람들 가운데서 스스로 좋은 명망()을 얻어내기 위하여 자기 재산의 일부분을 내놓았다. 동시에 그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고 속이는 일에 대하여, 또는 하나님께서 그 거짓으로 인하여 자기를 형벌하실 것이라는 일에 대하여 전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실제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의 눈보다도 사도들의 발을 더 존경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옳은 일을 하려고 할 때 세인의 눈길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가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theatri plausum)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진정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충고해 주셨다. 즉 우리가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거시 온당한 일이라는 것이다(마6:3)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ㅇ베드로가 가로되 - 베드로는 어떻게 아나니아의 사기행위를 알게 되었던가? 의심없이 그것은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누가는 사도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하나님을 대표하였고(sustinuisse Dei personam) 또 그의 대리로 행동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제 만일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죽어야 할 사람의 입을 이용하셔서, 비록 사람이 거짓된 미덕의 외관 속에 숨어있다고 하더라도 그 위선자를 그처럼 즉석에서 타격을 가한다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출두하게 될 때에 그 나팔의 날카로운 음향을 동반한 하나님 자신의 음성 앞에 어떻게 위선된 인간들이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베드로는 사단이 아나니아의 마음에 가득 찼다고 말함으로써 그 범죄의 가공할 만한 것임을 지적해 준다. 왜냐하면 사단의 독아에 마음이 찔림을 받지 않은 자는 한 사람도 없으며 또 많은 유혹이 이들 개개인에게 몰래 스며와서 그들의 마음속까지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단이 그 마음을 잡게 될 때에 마치 하나님은 거기서 추방되는 것처럼 되기 때문에 사단이 그 사람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머물만한 자리가 없을 정도로 그가 사단에게 넘겨졌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의 표지인 것이다. 거짓말한 일에 뒤따르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즉 그가 성령을 소유한 것 같은 거짓 겉모양을 지은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가 성령을 거스려 거짓말한 것이거나 어느 것일 것이다. 그런데 실은(헬라어에) 문자적으로는 '성령을 속인 것'이다(Spiritum mentiri) 그러나 헬라어의 * (프슈-데스다이)라는 말은 이중의 대격에 연결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본문에 더 적합하므로 나는 차라리 아나니아가 자기의 불신행위로 성령을 조롱하였기 때문에 책망을 받은 것이라는 견해에 동조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조금후에 아나니아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라고 비난함으로써 이를 확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선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대단히 자신을 수호하는 일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위선의 본질은 하나님을 기만하려는 악이요, 또 이를테면 속담에 있듯이 생 눈을 빼가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수치스러운 조롱으로써만 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이 생겨난 것은 그 마음이 사단에게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라고 베드로가 말한 것은 자못 지당한 말이다. 왜냐하면 그가 모든 식별력과 이성을 잃지 않고서야 감히 그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모욕적인 행위를 가질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것이 마치 하나의 괴물에 관한 일인양 그를 심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종류의 무분별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ㅇ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 그에게는 아무런 필요 요건이 없었는데도 죄를 범하였다는 그 사실이 그의 죄과를 더욱 크게 만들어 준다. 왜냐하면 그 범죄가 어떤 외부적인 영향으로 인하여 자극되어졌다는 적당한 구실이 전혀 없는 까닭에 어디까지나 자기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악으로 달려가 이를테면 일부러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였다는 사실은 얼마나 나쁜 일인가? 그러나 이 사실에서 우리는 거기에 누구한 사람이라도 법으로써 그 재산을 양도하도록 강제된 일은 없었다는 사실을 추측한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자기 돈을 남겨두거나 자기의 토지를 팔지 않고 소유하거나 할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의 나중 부분에서 팔린 밭에 관하여 말할 때 그것이 실제의 값을 대신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자신의 소유재산이었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는 불신앙의 사람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리하여 신자들은 자기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도록 허용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못 정신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ㅇ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 이 문귀는 다르게 구성되었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이 앞의 글을 확인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선자란 많은 덮개로 가려져서 자신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은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나니아는 교회를 속였기 때문에 베드로는 참으로 분명하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두 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그도 그 가운데 계셔서 주재하신다"(마18:20)는 사실을 그는 고려할 필요가 있었으며, 또 그 모임에서는 마치 자기가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 지배권을 잡기 원하시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어떤 존경을 바친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으로써 행사하시는 그 통치권을 우리는 철저하게 존경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분명히 인간이었다. 그러나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직책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의 사사로운 일은(privati) 행동하지 않았다. 한편 우리는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즉 성령을 속이는 자는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말의 표현으로 성령의 신성이 확실히 주장하기 때문이다. 바울도 동일한 생각으로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3:16)고 말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ㅇ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 아나니아의 죽음은 참으로 말씀의 능력이 어떠한 것임을 확증해 준다. 바울은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고후2:16)라고 말함으로써 이 말씀의 능력을 장엄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실상 혼의 영적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만 아나니아의 몸에서는 인간의 눈에는 숨겨져 있는 그 형벌의 가견적인 상징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칼로나 세력으로나 어떤 사람의 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의 음성을 들음으로써 생명을 빼았긴 것이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들을 때 복음을 박해하는 일의 두려움을 알아야 하며 또한 우리도 동일한 운명을 경험할 것에 대비하여 재빨리 스스로 겸손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대해서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다"(사11:4)라고 선언된 사항은 악인의 우두머리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요 또한 각자 개인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씀의 고유의 본질은 구원하는 것이었으므로 말씀이 제공해 주는 구원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만일에 누구에게라도 사도가 육체적 형벌을 준 것이 부조리하게 여겨진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첫째로 그것은 나의 비상()한 일이었으며 둘째로 그것은 고린도전서 12장 10절에서 밝혀진 대로 성령의 여러 은사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나중에 보게 될 바와 같이 이것이 바로 마술사 엘루마(Elymas)가, 바울에 의하여 소경이 된 까닭인 것이다(행13:11) 그러므로 베드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주어진 화살을 적당한 때에 쏘았는데 그것은 그의 직책에 벗어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이 그형벌은 너무도 잔혹한 것이라는 의견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그들이 아니니아의 죄과를 하나님의 저울로 달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들의 것으로 달기 때문이요, 떠 따라서 우리가 그처럼 많은 죄악으로 가득찬 것으로 이미 나타난 중대한 범죄를 아주 하찮은 허물 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그것은 신빙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날마다 그들은 대단히 많은 위선자들이 아나니아 못지 않게 하나님을 조롱해도 처벌이 면제되고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실상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할만 하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지독한 하나님 모독자들이지만 자기들의 불경 때문에 형벌의 고통을 받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그의 교회 위에 눈에 보이는 은혜를 부어주셔서, 그로 인하여 우리가 그의 성령의 신비한 능력으로써 그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신앙 경험에 의하여 내적으로 실감한 바를 외적인 표적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보여주셨던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교회를 조롱하는 모든 위선자들에게 얼마나 무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가를 두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형벌에 의하여 명시하신 것이다.
ㅇ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 한 사람의 형벌로써 다른 사람들을 두려웁게 위협하는 일이 하나님의 의도였다. 그로써 그들이 의식적으로 모든 허위를 단념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가가 그들이 두려워한 일에 대해서 말한바는 우리에게도 또한 적용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와의 관계에서 성실할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하여 모든 세대에 대해서 일반적인 경고를 주시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가련한 사람의 형벌은 그 후에 신도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재산을 하나님과 가난한 자들에게 바치는 일을 더욱 풍성하게 하도록 장려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자선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귀한 일이며, 그 일을 더럽히는 일은 그처럼 엄하게 형벌을 받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달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 오니
ㅇ하나님께서 삽비라에게 과하신 형벌에 대해서는 그것이 본보기를 위한 보다 큰 효력을 더해준 것 이외에는 더 할 말이 없다. 더구나 그들 갖가의 배신적인 의향과 그 완강한 악의를 따로따로 교회 전체가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어떠한 섭리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다. 그들은 똑같이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 관한 정보를 동시에 접하게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각자가 자기 자신의 불신앙을 매우 분명히 나타냈다고 하는 것이 교회의 선도를 위해서 더욱 적절하고 유효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그런 식으로 가끔 생겨나기는 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남편의 목전에 있는 일이 삽비라의 위장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녀의 범죄는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서 주어진 어떤 압력이 그녀에게 가해짐이 없이 자신의 자유의사에 의하여 행동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남편보다 나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베드로의 심문에서 자기들의 사기행위가 폭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악의의 거짓말을 하는 데 있어서 동일한 수준에 있었던 것이다.
8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 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ㅇ내게 말하라 - 하나님은 고질적인 자들과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자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복수하는 일이 되지 않기 위하여 돌발적인 충동으로 형벌을 주지 아니하시고 먼저 적당한 조사를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된다. 그것은 삽비라가 그 사건이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은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의 그런 심문은 마치 자기가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 앞에 소환된 것과 같이 간담이 서늘해지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제 정신에 돌아올 만한 시간이 주어졌다. 실상 그것은 회개할 수 있는 조용한 초대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없이 행동함으로써 자신이 치료될 수 없는 인간이며, 또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ㅇ그러나 이 일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운 것이다. 즉 우리가 죄인들을 정상적인 길로 데려오는 데는 큰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은 이러한 절제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고집스럽고 완강한 모욕이 그 범죄에 첨가될 때에는 그것은 이미 형벌해야 할 시기가 무르익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과도한 엄격을 좋아하지 않는 자들은 자기 자신들이 지나치게 거만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차라리 어떻게 우리가 장래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인가를 우리에게 반영시켜 주는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만일 형벌받는 일이 없이 하나님을 기만하기를 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너무도 지나치게 그의 거룩하신 존엄을 무시하는 일인 것이다.
ㅇ한 걸은 더 나아가서 내가 위에서 서술한 그 모든 상황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의 죽음에 해당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충분하게 증명해 준다. 왜냐하면 첫째로 위선이란 그 자체가 하나님을 지극히 싫어하기 때문이요,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을 속이려는 그들의 의도는 최고의 경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소속되어 있는 그 모임을 지배하시는 그리스도를 존경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불신앙에 파렴치함이 첨가된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자신들의 선량한 모습을 과시해 보여 주려고 했던 그 사람들 앞에서 수치와 불명예를 면해 보려는 마음만을 가지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명백한 악을 부인한 일이 그들에게 아무 의미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기들의 죄상에 대한 완강한 부정이 모든 것의 극치점이다(veluti summus cumulus) ..그런데 무수한 위선자들이 날마다 이 두 사람 못지 않게 하나님과 교회를 속이지만 그러면서도 죽음의 형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왜 부조리로 여겨지지 않는가 하는 것은 내가 이미 설명한 바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유일한 심판자이시기 때문에 그가 원하시는 시기와 방법에 의하여 그분 자신의 결정대로 각 개인을 형벌하시는 일은 그분에게 달려 있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서 형벌의 어떤 특정한 방법을 규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의 신체적 형벌에는 아직도 숨겨져 있는 영적 심판의 중대성이 거울 속에 비치는 것처럼 우리 앞에 보여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일 영원한 불 속에 던져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사람들의 눈 앞에서 넘어져 죽었다는 것이 재앙중의 최악의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고린도전서 10장 5절을 보라. ((특히!! 시대적 경륜 전환 시점에서 주님은 그분의 거룩함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계심으로써 후세에게 분명히 경계를 삼도록 하심이었다!!..시내산 언약 체결후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율법을 받고 십계명 돌판을 받는 40일 동안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절하고 축제벌이는 범죄 때 3천명이 죽었고, 제사장제도 세우시고 아론과 나답-아비후가 기름부음 받은 그 다음날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서 향단에 드림 인해 탸워죽임을 당했고, 요단 도하후 여리고성 점령때 아간의 범죄와 주님을 경홀히 여김 인헤 아이성에서 참패를 당했고,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하는 도중 언약궤를 만진 웃사가 죽임을 당하는 등,,,))
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ㅇ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 그는 자기가 조금 전에 한 말, 즉 그들이 불신앙적으로 또는 경멸하는 태도로 하나님을 조롱한 일을 분명하게 지적하기 위하여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마치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분(cognitor)이 아닌 것처럼, 조심없이 자기들의 사기행위를 고안해 냈기 때문에 그는 그들이 성령을 시험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기들이 범죄에서 서로 공범자가 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이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가리워지신 것처럼, 서로 자기들의 계획을 자기들만이 알고 있는 것같이 생각한 것은 너무도 경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제거되거나 그의 전지()가 무시될 때에 하나님은 시험을 받으시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나아가서 그는 성령을 말할 때에 그분은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를 지배하시는 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성령이 오시면 그가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요16:8)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의 마음에 생각하신 지배권은 그가 교회의 선교를 통하여 행사하신다는 바로 그것 뿐이라고 여기셨기 때문이다.
10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ㅇ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 한 사람의 형벌은 모든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종이었다고 그는 다시 반복해 말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분명히 두 종류의 두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신도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경고를 받음으로써 그 이상의 이익을 얻을것이 없을 정도로 그처럼 완전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한 적이 일찌기 없었기 때문에 그는 교회가 두려워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악한 자들에게 가하셨던 그 모든 형벌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일고, 또 오늘도 날마다 실제로 악인들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볼 때에,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으로 인하여 범죄의 유혹과 방종에서 돌아서도록 자주 경고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란 그처럼 계속적으로 점검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굴레만으로는 그 목적을 이루기에 불충분하기 때문인 것이다.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기까지는 하지 못했으나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는 안되도록 강요한 것이다.
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ㅇ그는 복음과 보다 일치하는 다른 종류의 기적 이야기로 돌아온다. 이를테면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능력만이 아니라 그의 자애까지도 그것으로써 입증하신 것인데, 그래서 자신의 은혜의 즐거움에 의하여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시려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을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이다(요3:17) 그러므로 벙자들이 고침을 받고 또 다른 사람들이 마귀에게서 놓임을 받을 때에 그들의 육체에 주어진 그러한 축복은 그리스도의 영적 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표현이 타당하다면 그것은 그의 본래적인 기능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ex genuino officio)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에서 수행된 그 무서운 기적은 이를테면 뜻밖의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누가는 그러한 기적들로 인하여 신도들의 수가 증가되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기적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확신을 줌으로써 신앙에 대한 시녀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fidei subserviunt) 그러므로 내가 다른 곳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기적이란 결코 말씀에서 분리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이 일로서 입증되는 것이다.
ㅇ누가는 병자들이 사방에서 고침을 받으려고 거리의 광장으로 데려와졌다고 보도함으로써 많은 기적이 행해졌음을 지적해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특히 그 초기에서 그의 아들의 복음을 이로써 실증하려고 하신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그처럼 자주 약속되어온 만물의 갱신이 이제 도래하였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명확하게 해 주시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그들은 자기들 자신의 고백을 따라 자기들의 전체 희망을 걸어왔던 것이다. '요'(couches;15절)라고 번역된 말은 옛 사람들이 그 위에서 낮잠을 즐기는 버릇이 있던 작은 침대를 가리킨 말이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일이다. 그것은 가지고 다니기가 용이했으므로 사람들은 병자를 그위에 눕혔다.
ㅇ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 이 말은 그들이 어떤 특정한 시간에 함께 모이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기도하는 일이나 가르치는 일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기회가 주어재는 대로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물론 사람들은 각각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 특정한 장소에서 늘 모임을 가졌던 것이다. 그것은 실상 교회의 단체가 다른 방식으로는 존속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일에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가르치기를 원하고 각각 따로따로 기도하기를 원하였다면, 그래서 공동집회라는 것이 없었다면 교회가 아무리 잘 조직되었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쇠약해져서 얼마 안되어 소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그들이다 한 마음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즉 그들은 모두 그러한 결정을 존중하였고 또 누구 한 사람도 그 공중집회를 경시하여 자기 집에 머물러 있으려고 할 만큼 다루기 힘든 개인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예의범절만이 아니라 결단력의 시범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장소가 사람들이 잘 모이는 곳임을 알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모였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의 이러한 위험을 무릅쓴 이의없는 일치는 더욱 크게 찬양할 만한 일이었다.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ㅇ그 나머지는 감히 - 그 기적의 둘째 결과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즉 믿지 않는이들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에 너무도 충격을 받아서 감히 사도들을 얕잡아보지못하였고, 그와는 반대로 그들은 교회를 높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기적으로 인하여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회피하려고 한 것은 우습게 보일 수도 있었다. 거기 대하여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은 기적을 통하여 우리를 자기에게로 나아오도록 초청하시는 것이 틀림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 자신의 죄책감으로 인하여 접근하는 일이 방해를 받은 것이었다고(culpa) 그러므로 그 기적 안에 빛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뜨거운 마음으로 끌어 안는데까지 나아오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모두 나빠진 양심으로 인하여 뒤로 물러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ㅇ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뽑아 내 주시기 때문에 이 경우에 약간의 효과가 있기는 하다. 누가는 비록 그것을 기적 때문만으로는 생각하지 않았고, 차라리 교회의 존엄을 증대시켜 줄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시켜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들 가운데는 어떠한 하나님의 존엄성이 빛나도록 모든 것들이 잘 정돈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사가 사람과 다르듯이 신도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성한 규율과 진지한 신앙수련에는 악한자들의 의사를 거스려서까지라도 그들을 제한하는 어떤 비밀한 존엄(* ;셈노테-스)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실상 우리는 제 맘대로요, 그래서 우리와 함께 교회도 우리의 세속적인 방종과 나쁜 생활로 인하여 멸시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의 형벌이 불신앙의 인간들에게 겁을 주어 하나님께서 그처럼 엄격한 형벌을 주신 그 사람들과 무모하게도 짝패가 되려고 덤벼드는 일을 억제하게 하는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그는 여기서 극악한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요, 우유부단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유의할 필요가 있다. 확실히 당시에 예루살렘에는 기적이라든지 혹은 성도들의 천사같은 고결함이라든지에 아무도 접촉도 가져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누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어떤 씨가 그 안에 숨겨져 있었던 온건한 사람들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는 그와 비슷한 일을 본다. 즉 이 세상의 허영에 사로잡혀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는 일에 방해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가르침 가운데서 어떤 신성한 것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볍게 다루는 일을 꺼려하였다. 그렇다고 해도 동시에 사단은 어떻게 치명적인 쇠사슬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모두 제지하는가가 분명히 나타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하여 그것을 추구하기를 두려워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제시된 구원을 위한 치료법을 고의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거룩하고 유익한 그런 것들을 보고 동의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훨씬 더 나쁜 상태에 밀려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불결 가운데 여전히 누워있거나 하는 것이다.
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ㅇ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 교황제도주의자들은 순교자의 무덤에서 행해진다고 자기들이 말하고 있는 그 거짓된 기적을 지지하고 찬양할 뿐 아니라 순교자들의 유골을 우리에게 자랑해 보이기 위하여 이 대목을 잘못되게 이용함으로써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베드로의 무덤이나 옷이나 혹은 그의 뼈를 만지는 일까지라도, 어찌하여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의 그림자에 덮이는 일보다 치료의 능력이 없다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라고. 거기 대해서 나는 대답한다. 즉 순수한 신앙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누가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모두 사건의 진상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즉각적으로 단언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보다 확실한 반증이 따로 있다. 그것은 사도들이 바로 복음의 사신들이었던 까닭에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복음의 신앙을 촉진함에 있어서 효과를 나타내는 한도 안에서 그 은사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힘을 사도들의 입에 두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그림자에도 두셨던 것이다. 교황제도주의자들이 수다스럽게 지껄이고 있는 기적들 가운데는 그와 비슷한 아무 것도 없다기 보다는 차라리 정반대 쪽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적의 목적은 세상으로 하여금 성자들에게 보호를 구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데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ㅇ누가는 이미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즉 교회에는 신도들의 수효가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 각종의 은사가 훌륭하게 갖추어졌다는 사실, 기적에도 탁월해졌다는 사실 등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거기에 모든 면으로 번창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제 다음과 같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즉 그러한 일들때문에 악한 자들의 분노가 다시 불붙어서 그 잔인성은 전보다 더욱 격화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단이 어떻게 그들을 구사하여 맹목적인 격노를 일으켰는가를 알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의 분명한 능력이 그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고 그래서 그들이 더욱 더 뻔뻔스러워지고 격렬하게 덤벼들어 마치 자기들이 하는 자체를 뒤집어엎을 듯이 날뛰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대단한 무분별을 일종의 하나님의 두려원 형벌이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을 드리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모두에게 하나의 경고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들도 역시 단지 자기들이 대항하여 밀어 붙이려고 하는 바로 그 하나님의 손길에 의하여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게 되도록 현기증으로 휩쓸릴 것이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영적 은혜로써 채워주시기를 원하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자들에 의하여 교회가 괴롭혀지는 일도 허용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싸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오늘의 상태가 그들의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증거할 만한 하나님의 은사를 자인하는 일은 악한 자들의 열광과 완강으로 인하여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용기를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일은 적지 않은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16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ㅇ그와 함께 있는 사람 - 그는 대제사장과 더욱 가까이 관련되어 있던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다. 대제사장은 그들의 충고를 따르는 습관이 있었고 또 이를테면 전체 성직자계급 가운데서 그가 선발한 사람들이었다. 실상 재판의 목적 때문에서가 아니요 그 파당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열광 때문에 뽑힌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그들은 자기들 자체 안에서 서로 지독한 원수들처럼 부끄러움도 없이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누가는 당시에 모든 것을 지배하는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 사두개파 사람들이었다고 다시 반복해서 말해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러한 하나의 분파가 지배권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교회의 전체 정치가 무서운 황페로 인하여 일그러져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회당으로부터 분리시키신 이후로 그회당을 그처럼 극단적인 치욕 속에 잠겨져 있도록 분명히 허용하셨다. 그것은 복음을 업신여기고 또는 그처럼 쓰레기가운데 머물러 있는 자들이 핑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더우기 또 장차 올 생명의 일은 조금도 엽려하지 아니하는 그들 욕심장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그들이 탈취한 그 지배권에 대한 노출된 야심과 거기 매달리려는 욕망 이외에 무엇이 있을 것인가?
ㅇ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 나는 이 헬라어 * (젤-루-;시기-특히 그 말이 다른 방식으로 너무 흔하게 사용되기 때문에)를 '경쟁'(emulation)으로 번역하는 대신에 차라리 원어대로 두는 것을 좋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위선자들이 자기네들의 미신을 방위하기 위하여 정신이 없고 가슴을 태운 그 괴퍅하고 폭력적인 세력에 대해 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인간의 열심(라는 말을 '열심'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음-역자 주)이라는 것이 이성과 신중성으로 조종되지 않을 때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으로써 지도를 받지 않게 될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이며 무슨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인가가 분명해진다.
ㅇ사람들이 자기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그들보다 신앙적이라고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면서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려는 잔인한 정열을 가지고 악마적인 광포로 흥분하고 있는 자들을 우리가 오늘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바울이 말한 것같이, 많은 유대인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무분별한 열심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유의하여야 한다. 다만 우리는 차라리 열렬하고 난폭한 공세로 이해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악한 자들이 고의적으로 참된 신앙을 박해하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아무리 많이 자각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신기할 일은 반대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잘못된 종류의 열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거의 모든 교황제도주의자들이 자기들은 역시 자기들의 배를 위한 열광자이면서도 단순히 그 열심에 근거해서(solo zeli momine) 자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진실하다고 허용하더라도 그 무분별이 그들을 몰아서 마치 그것이 자기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것은 무엇이나 복수를 감행하도록 놓아주는 것이 최고의 미덕인 것처럼 여기는 그 불타는 잔인성을 어떻게 용서할 수가 있는가? 그러나 겸손한 행동을 취하려는 순간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아무것도 없게 하기 위하여 무엇이 선이고 악인가를 구별하는 일이야말로 해야할 첫째의 일이다.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ㅇ주의 사자가 - 주께서는 사도들이 적의 손아귀로부터 영원히 구원 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감옥에서 데려 내오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얼마 후에 주는 그들이 다시 감옥으로 끌려 가는 것을 허용하셨고 또 채찍으로 맞게도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적으로 인하여 주께서는 그들이 주의 복음에 대한 신앙을 수호하게 하기 위하여 그의 수중에 두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논증하려고 하신 것이다. 한 편으로는 교회가 그 사건을 통하여 생기있는 용기를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요, 또 한 편으로는 악한자들에게는 아무런 핑계거리도 남겨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건져주실 것을 바라지도 말고 기대하지도 말아야하며 다만 우리들의 생명이 그의 손에 의하여 그럴 필요가 있는데도 보호를 받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적절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의 목적을 위하여 주께서 천사를 사용하신 일에 관해서 는 그의 관용적인 관례대로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성서의 여러 곳을 통하여 천사는 주의 은혜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자라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허한 이론이 아닌 것이다. 그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계신다는 것뿐이 아니요 또한 하늘의 영들이 우리의 안전을 위하여 유의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에 대한 유리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피조물이 우리의 안전을 돌보아 주도록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보통 언약이 아니다. 더구나 그 천사는 밤에 감옥 문을 열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적이 행해진 뒤에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도록 하시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불신자들이 그 기적이 행해지는 것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ㅇ가서 성전에 서서......말하라 - 그들을 석방시킨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불굴의 노력을 계속하게 하려 함이요, 또는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용감하게 그들의 적에게 도전하는 일을 계속하게 하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달려갈 길을 다고 하나님의 손이 활동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은 마침내 죽음으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특정한 시기에 주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옥문을 여시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임무를 자유롭게 수행하도록 하셨다. 그 사실은 크게 유의할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어떤 박해로부터 모면하게 되면 자기들은 마치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의 의무를 지고 있지 않은 양, 그 후로는 자기들의 입을 다물고 마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써 스스로 도망칠 길을 찾는다. 그러나 주께서는 자기 백성을 자유케 해 주시는데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시작한 진로를 포기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차라리 장래를 향하여 더욱 큰 열정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실상 사도들은 다음과 같이 반대이유를 들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우리가 위험이 따르지 않고는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을것임을 알기 때문에 잠시동안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우리는 만일 우리가 고집스럽게 나오는 것을 안다면 이 후에 적의 격노가 얼마나 더 크게 불타오를 것인가?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할것을(롬14:8)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과하신 의무를 관심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단순한 계명으로 만족하고 일의 결과를 그에게 맡기면서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용기를 약화시키는 많은 일들을 가끔 만나게 될 것이다.
ㅇ이 생명의 말씀을 - 복음이 여기서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생명 부여의 교리로 훌륭하게 설명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 있으며"(롬1:17) 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죽음의 희생으로, 부활의 영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양자로 하시는 보증으로, 그 복음에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도들에게 분명히 이야기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영원한 구원의 사자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복음 때문에 발생되는 모든 싸움에 더욱 더 대담하게 참여하게 된 것이다. 지시 형용사인 '이'라는 글자가 모든 것을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첨가되었다. 마치 천사가 자기의 손가락으로 그 생명을 지적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가 그 말씀을 우리의 입에 또는 우리의 마음에 소유할 때에 우리가 그것을 찾으려고 분명히 멀리 가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과도 같다. 혹시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이라고 하는 대신에 환치법이 사용된 것처럼 '이 생명의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러한 견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후자의 경우가 내게는 더 좋게 보인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시가 있으며 그 안에는 생명이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1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ㅇ그것은 만일에 그가 자기의 일파만의 명예에만 사로잡혀 다른 파를 무시한다면 자기가 그러한 책임을 다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두려움이 그로 하여금 전체 의회를 소집하게 한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용의주도하게 또는 정확하게 법의 형식을 유지하였다. 감독권을 손에 쥐고 있었던 장로들이 소집되었는데 그것은 의회의 결정과 권위에 의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행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회의에서 누가 온건한 결말을 희망하지 않았을 것인가? 그런데 그들은 분명히 폭력이나 횡포로써 지니리를 탄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대로 구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사도들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은 사도들이 인간적인 어떤 기만행위로 감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기적에 의해서 나온 것임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기들의 목적을 수행하려는 뜻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만 그들의 사악한 행동이나 하나님을 경멸하는 것만 이 아니요, 역시 무서운 광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선자들은 아무리 공정한 것 같은 외관을 그럴싸하게 꾸밀지라도 결국에 가서는 자기들 자신의 악함을 드러내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그들은 모든 정황으로 보아 감옥 문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써 열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려면서도 그들은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대항하여 날뛰기를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ㅇ이러한 사실은 역시 오늘 우리에게도 들어 맞는다. 교황제도주의자들이 합법적인 교회의회는 교회를 대표하기 때문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는 자기들의 금언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주장하고 있는지를 우리가 알고 있다. 더구나 그들이 합법적이라고 부르는 것, 또는 합법적으로 받아 들여지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란 모든 외적인 형식이 완전하게 되어 있는 그러한 모든 의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누가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의회란 우리가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을 멸절시키기 위하여 모인 그런 모임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제사장들이 제 아무리 부정수단에 의하여, 혹은 운동을 해서, 은밀히 직책(honorem)에 나아가서 다른 나쁜 계략이나 뇌물수여 또는 피차의 살인행위 등 폭력수단에 의해서까지 자기들의 직권을 행사한다해도, 그러면서도 제사장직의 직책(dignitatem)이란 그리스도께서 아직 나타나시기 전이기 때문에 여전히 계속 존재했던 것이다. 장로들의 회의에 교회가 대표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진리는 추구되지 않았으며 전체의 외양은 단순한 하나의 가면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교황제도주의자들이 이 방패의 그늘 아래서 자기들의 추행을 은혜하려고 시도한다 해도 헛수고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면 교회의 지배권을 가진 자들이 회의를 소집하는 것만으로는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마가 자신을 '빛의 천사'(고후11:14)로 위장하는 것이 그의 전형적인 술책이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의 칭호 밑에 악마가 바랄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숨을 곳을 그에게 제공해 주는 일이 될 것이다.
22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23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25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ㅇ성전 맡은 자가...저희를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 우리가 앞서 성전맡은 자에 대한 이야기를 좀 말해왔다(4:1에서)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성전맡은 자를 자기들 마음에 드는 대로 임명할 수가 없었고 그것은 소속된 지방의 총독이 결정한 것으로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강제로 잡혀온 것이 아니고 연행되어 왔다고 그는 말한다. 즉 민중의 폭동이 발생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을 폭력으로 끌어온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존경하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을 두려워한 것이다. 사도들의 행동의 분별력이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드러난다. 즉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소란의 원인이 되지 않기 위하여 관속들이 끌어가는 대로 자신들을 맡겨 두었다.
27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ㅇ대제사장은 사도들에게 두 가지의 죄를 씌웠다. 그것은 그들이 의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들에게 관명항거의 죄를 물은 것이다. 그의 선언의 둘째 부분에서 그는 그의 악의를 보여준다. 혹은 적어도 하나의 법정에서 그는 공적 사항을 다루기 보다는 차라리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속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오명을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전가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괴롭혀 주는 것은 사악한 살해의 복수와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그들의 가르침을 핑계삼아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결론을 보면 그가 그처럼 염려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가르침의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그는 사도들을 폭동 교사죄로 비난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정당하게 사형을 받은 것이라는 점을 자명한 것으로 그는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고소의 주요점은 그들이 제사장들의 명령에 불복종하였다는 것이다. 대제사장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다. 그런데 전체의 명령을 일축하는 일은 얼마나 더 큰 죄일 것인가? 그러나 다른 면으로 볼 때 이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자기의 걸머진 책임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자기의 권력을 마치 그것이 모든 법의 구속을 받지 않은 권력인 것처럼 생각하고 폭군처럼 그 권력을 남용하였다. 오늘의 교황이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를 다루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구속받지 않는 최고의 권력을 가로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명령이 우리로 인하여 거부당하는 것을 보자마자 우리를 종파분리자로 정죄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다"(눅10:16)고 하는 말씀을 갖고 그 말씀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있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일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사람들의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지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ex Christi ore) 이제 그가 공개적으로 사단의 사자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부끄러움도 없이 또는 허락도 없이 그리스도의 이름에서 권위를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대제사장이 사용하는 말의 형식까지 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는 제한없는 권력을 강탈해서 어떻게 영적 폭군이 되어 있는가를 증거해 준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나 자유롭게 기탄없이 감행하는 것이다. "우리가...엄금하였으되"라고 그는 말한다. 자기들이 명하는 바는 무엇이나 이의 없이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 아니라면 어디에 그러한 결정적인 단호함이 생겨났을 것인가?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ㅇ이것이 바로 변호의 요점이다. 즉 사람은 인간보다도 하나님 편을 택하도록 되어 있다. 실상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우리를 잠잠하도록 명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차라리 하나님께 복종하여야 한다"는 말이 타당하다는 이 선언에 관해서는 4장 19절에서 내가 설명한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범위 안에서 인간에게 권력을 주어 우리를 지배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가 침해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뜻을 이행해야 한다. 권력의 행사가 정당할 때에는 하나님과 사람과를 비교하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 어느 성실한 복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무엇을 명하거나 혹은 금하거나 한다면 고집스러운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종 하여야 한다고 반대하고 나서도 소용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통해서 말씀이 들려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은 하나님의 도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만일에 어떤 행정장관이 충실하게 그 직무를 수행할 때에는 누가 그를 하나님과 대립시키려고 조작한다 해도 그 행정장관은 하나님과의 불일치가 없기 때문에 그것은 반대의 결과가 될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법이 행해질 것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순종하기 위해 서 그의 대행인 교직자에게 순종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마치 부모나 주인의 경우에서 생겨나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ㅇ그러나 통치자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복종하는 일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그 즉시로 그들은 불경하고 완강하게 하나님과 충돌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들은 제 위치를 지켜서 하나님과 그의 권위가 최고의 자리에 있게 하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직무의 모든 영향력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흐리게 하기 위해서 영예로운 관직을 그들에게 주시려고는 생각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아버지되는 자가 자기의 신분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아버지로서의 최고의 영예를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으려고 한다 해도 그는 여전히 인간이요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만일에 어떤 왕이나 군주나 행정장관이 하나님의 영예와 권위를 약화시켜서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려고 한다 해도 그도 역시 하나의 인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똑같은 생각이 역시 목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아무라도 자기의 직무의 한계를 넘어서는 자는 하나님과 대립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직책에 해당한 칭호는 벗겨져야 하는 것이다. 그가 겉치레와 속임수를 쓰게 될 것에 대비해서이다. 목사의 직책은 영예롭고 교회의 권위는 위대하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감소시켜서는 안되며 그리스도의 지배를 손상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쉽게 교황의 거만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추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동시에 그는 그리스도의 전체 주권을 자기 발 밑에 유린하고 있으며 또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대항하여 자신을 높이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의 이름 밑에 숨어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ㅇ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 - 이 귀절에서 사도들은 교회의 수호자들로 자부하면서 최고의 영예를 원하고 있던 자들이 분명히 하나님의 적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이로써 그들에게는 최소의 권위조차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들은 저 사람들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바로 그 일을 자발적으로 또는 자유롭게 찬양할 때에 하나의 확신의 증표인 어떤 장애를 말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치욕적인 죽음의 고통을 당하심으로 인해서 그의 영광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감소된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음과 같이 말해질 수 있는 사실이다. 즉 "실상 당신들이 예수를 죽인 것이요, 그리고 당신들의 잔인성은 단순한, 혹은 평범한 죽임으로써 만족하지 못하여 그를 나무에 달아 죽인 것이요, 그러나 죽음이 그의 능력을 소멸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요, 또는 당신들이 그에게 가했던 불공정한 치욕도 그의 영예를 파괴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견고하게 확실하게 존속되는 것이요"라고, 그러므로 사도들은 제사장들이 범한 그들의 죄과, 그리고 그들의 사악함을 인하여 그들을 책망할 때, 그들은 역시 그 범죄의 장본인들이 마치 자기들이 승리나 얻은 것처럼 날뛰게 될 것에 대비하여, 그리스도에게 가해진 수치스러운 죽음의 방식을 언급하면서 하나의 양보하는 방식으로 미리 처리하는 것이다.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ㅇ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 그들은 자기들이 제사장들의 명한 일들에 중요성이 별로 없는 것처럼 경솔하게 생각하고 이를 폐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자기들의 해명hypothesis)으로 나아간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어떤 종류의 대립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님과 사람과를 비교할 만한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써 제사장들이 금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명령하시기 때문에 그들의 명령을 거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선 첫째로 성경이 언제나 그렇게 말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용구는 성경의 곳곳에 보여진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위대한 일을 이루시려고 하면서 그들을 사용하려고 결심하셨던 예언자들이라든지 사사들이라든지 혹은 그밖의 교직자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내셨다는 그러한 논법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어떤 비범한 또는 훌륭한 일을 맡기시려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사로써 무장시켜 주는 일이 없이는 제아무리 뛰어난 재질을 가진 자라도 여전히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ㅇ베드로가 자기의 첫 설교에서 인용한(신18:15,행3:22) 저 모세의 유명한 말을 아마 그들도 역시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새로운 종류의 종교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요, 또는 어떠한 새로운 하나님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그 창시자로(as the Author) 명백하게 내세운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거짓된 비난을 받고 있음을 자기들도 잘 알고 있는 대로 자기들이 백성들을 율법과 신자들에게서 떠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책임 지우려 한다는 그 거짓된 비난을 그만두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화되지 못한 사람들이(profani) 조상들이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가르쳐 준 하나의 주제를 계속 되풀이하고 그래서 자기들의 조상들의 습관이나 의식을 따르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 것처럼 사도들은 자기들의 선조들에게서 받은 예배의식을 무엇이나 승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여기서 의미하는 조상들이란 하나님께서 그들과 더불어 계약을 맺은 사람들, 옳고 순수한 가르침을 따른 사람들, 참된신앙과 함께 구원의 약속을 믿은 사람들, 이를테면 자기들의 기원이 하늘 아버지께 있다고 믿고 또는 그 독생자를 통해서 그들의 모든 자손들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ㅇ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 여기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주장하신 그 방식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그가 그의 백성들을 회개하게 하시고 죄의 용서를 통하여 그들을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시는 것이다. 더구나 복음의 전체 내용이 이 두 선언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사도들은 여기서 자기 자신들을 변명하기 위해서만 역설하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직무를 훌륭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에 가능하다면 그들은 그 신앙의 위험한 적들 가운데서라도 몇몇 사람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ㅇ그런데 우리는 이미 '회개'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한 바 있다(2:38에서) 이를테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내적 전향이요 나중에 그것은 외적인 행동으로 자체를 나타내주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내적으로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또는 그 마음과 생각의 갱신이 새로운 생명을 일으켜 주게 하기 위하여, 또는 그 마음과 생각의 갱신이 새로운 생명을 일으켜 주게 하기 위하여 중생케 하시는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기 때문이다. 회개하는 마음을 주는 기능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며 우리로 하여금 죄의 종으로부터 의에 복종하는 자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놀라운 개혁을 일으켜 주는 그 무엇이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개심할 수도 없고 스스로를 창조할 수도 없는 것이 되는 일이다.
ㅇ회개란 자발적인 회심인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정을 변화시키셔서 돌과 같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키고 단단하고 뻣뻣한 것을 부드러운 것으로 만드시며 그래서 마침내 꾸부러진 것으로부터 올바른 것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 없다면 도대체 그러한 자발성의 의욕을 일으켜 주는 근원이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그런 일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중생시키시는 때에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일시적인 은사가 아니오 우리의 전생애를 통하여 우리가 완전하게 하나님께 이끌려지기까지 날마다 더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육체를 벗어버릴 때에만 달성될 것이다.
ㅇ일찌기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사람이 자기자신과 세상을 포기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때 그것은 확실히 회개의 시초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출발했을뿐 아직 목적지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정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다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획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안에서 회개를 시작하신 바와 같이 또한 우리에게 인내심도 주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로 하나의 헤아릴 수 없는 은혜이지만 그것이 죄의 용서와 연결되지 않았을 때에는 우리에게 별로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적이라는 것을 발견하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분열시키는 원인이 되는 결함이 언제나 붙엉 있다. 따라서 그는 우리에게 대하여 은혜로우시기보다는 적대시해도 좋을 권한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시지 안흔 놋에 의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후자의 은혜는 결코 전자의 은혜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그 반면에 복음이 이 두 부분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인간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값없이 주어지는 의로써 하나님과 화해된다는 사실, 그리고 중싱케 하시는 성령에 의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은 사람으로 다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그들이 터득하지 않고는 그것은 불완전하게 될 것이요, 또는 부패하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얻어지는가를 간단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ㅇ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 불신앙의 사람들이 무슨일을 고안해 내거나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부터 위탁받으신 직책을 성취하는 일에 방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사도들은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의 '하나님의 오른손'이란 그의 능력을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가 앞서 2장에서 본 바와 같이 또는 다른 곳에서 가끔 보게 되는 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으로 올리워지셨다고 말해졌을 경우와 같은 그런 동일한 은유가 여기에는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그리스도는 천사들과 인간들 위에 군림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권능으로 높이 올리워지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단과 세상의 모든 음모에 대하여 조용히 대립되어 있는것으로 보여진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독생자 안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셨고 또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으실 그 하나님의 손길을 그들이 훼방할 만큼 그렇게는 결코 높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계략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그가 말하는 것과 같다. 어쨌든 동시에 그 목적이 첨가되었는데 그가 임금과 '구주(saviour)'가 되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셨을 때마다 군주나 왕을 약속하신 것이 언제나 있는 일이었는데 그들의 손에 의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회복하시는 것이다. 사도들은 그 주권이 그리스도에게 주어졌다고 증언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그의 역할을 다른 말로써 좀더 분명하게 설명한다. 요점은 바로 다음과 같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시기 위하여, 또 그것 뿐이 아니요 자신이 구원을 가져오는 주님으로서의 혹은 구원의 창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최고의 영예의 자리를 차지하셨다는 것이다.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ㅇ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 그들은 자기들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부터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한 다음에 이제 다른 논점으로 옮겨간다. 즉 저들이 사태를 성급하게 단언하는 방향으로 갈 것에 대비해서 자기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자기들에게 명령하시기 때문에 말하는 것 뿐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만을 공중 앞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또 다음으로는 자기들이 그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을 거스려 반역하지 않고는 가르침의 필요성을 회피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였는데 그것은 모든 복음의 일군들에게 필요한 것이니 만큼 그들에게도 역시 자기들의 변호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사항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ㅇ누가는 여기서 히브리인의 어법을 따라서 '사물들'(rebus) 대신에 '말들'( verba)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누구라도 만일 그것을 말 자체(speech itself)로 해석하기를 원한다 해도 나는 반대할 생각이 없다. 요점은 그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증인으로 세워졌을 때에 그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옳지 않은 처사요, 오직 그가 명령하시는 바를 알려주도록 말해야 하는 것이다.
ㅇ성령도 그러하니라 - 그들은 자기들의 소명을 그 따르는 결과로써 확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셨을 때에 그들의 가르침을 승인하는 하나의 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상 복음의 신앙이 하나님께 시인을 받고 또 그를 기쁘시게까지 한 것이라는 점을 이로써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때 그것을 나는 그리스도에게 해당되는 말로 생각한다. 그 말은 이렇게 되었어야 할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들의 순종의 대가로 하나님으로부터 후하게 보상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교직까지도 그 점에서 그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어쨌든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즉 "우리가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아 믿음을 얻는 것인데 어찌하여 여기서는 신앙 이후에 성령이 주어진다고 말해지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즉 성령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 당시에 자신의 교회를 풍부하게 하신 방언, 예언, 통변, 병고침, 또는 그와 유사한 은사를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마치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3:2)라고 물었을 때에도 같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성령의 조명은 신앙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볼 때 그것은 신앙을 앞선다. 그러나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된다"(마13:12)는 말씀대로 볼 때 나중에 그밖의 은혜가 우리를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계속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만일 계속 성령의 새로운 은사로 풍성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 대하여 믿음의 가슴(the bosom of faith)을 비워 놓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불신안은 우리에게 훨씬 다른 대가를 받게 한다. 그것은 대부분의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이 결핍되어 있어서 아무것도 보지도 못하며 이해하지도 못하기때문이다.
33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쌔
ㅇ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 제사장들은 비록 철판 같은 마음을 가졌다 해도 깊이 감동을 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슨 이론을 전개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을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데는 조그마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께서 속에서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외적인 가르침은 귀를 때리는 일일 뿐 다른 것일 수는 없기때문이다. 사도들은 적들을 꺾어서 잠잠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거친 성품이 굴복되거나 교정되기는커녕 그들은 더욱 더 미친 사람들처럼 날뛰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그 말씀의 효과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을 나아지도록 변화시키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그들의 양심을 움직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심판자로 인하여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그 사실에서 그들의 분노가 솟아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마치 무슨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복음의 전부를 기꺼이 비웃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간주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경솔한 행동을 맹렬하게 쓸어버리는 어떠한 숨은 존엄이 복음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나아오도록 나팔소리가 그들을 소환할 때에 그들의 광기가 분명해 질 것은 사실이다.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간 밖에 나가게 하고
ㅇ이제 누가는 주께서 어떻게 그 악한 자들의 광기를 씻어버리셨는가를 이야기해 준다. 그들은 사도들을 죽여 버리려고 생각하였을 때에 가말리엘이 양자 사이에 끼어들어서 그 무모한 의논을 저지시켰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누가는 어떻게 단 한 사람이 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는가를 우리가 이해하게 하기 위하여 그의 신상을 기록해 놓았다. 그는 한 바리새인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 파는 우리가아는 대로 가장 존경을 받고 있었던 파였다. 그는 국민 전체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고 누가는 전해준다. 그러나 또한 당국자들은 백성들을 두려워하였다고도 전해준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그의 의견을 감히 반대하지 못한 이유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가끔 그들 앞에 돌발적인, 또 예기하지 않은 공포의 원인을 성정함으로써 원수들의 폭행을 저지하시는 일 등을 행하시는 것이다. 게다가 가말리엘은 자기 말이 사도들을 한층 더 대담하게 하지나 않을까 해서 그들을 밖에 나가 있도록 명령한다. 왜냐하면 가말리엘은 자기가 복음의 가르침을 시인했거나 혹은 복음을 수호하는 일에 변호하기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격분에 불타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점잖고 온건한 인품을 지닌 그는 그들의 지나침을 온건한 말로써 누구러뜨리는 것이다.
ㅇ어쨌든 만일 아무라도 그 모든일을 적절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의 견해는 우리가 신중성있는 사람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실상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다음의 사실로도 충분히 밝혀진다. 즉 만일 그렇게 된다면 사람은 아무도 형벌하지 말아야 하며 더 나아가서 모든 범죄는 처벌되지 말도록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우리의 생명을 한 순간이라도 연장하는 일이 우리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는 모든 것도 거부되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가말리엘이 말한 두 가지가 다 분명히 옳다. 즉 인간들의 모든 노력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을 깨뜨릴 수가 없다는 사실, 그러나 한편 '사람에게서 나온'것은 무엇이든지 언제까지나 존속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는 사실, 이 둘은 다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서 끌어 낸 결론으로서 대체로 그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태라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차라리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바를 찾아내야만 한다. 왜냐하면 물론 하나님은 악행이 벌을 받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목적 때문에 그는 행정장관들을 세우셔서 그들에게 검으로 무장시키신 것이다. 그러한 목적 때문에 교회에 장로들을 세우셔서 다루기 힘든 사람들에게 질서를 강요한다. 그래서 그들은 제 멋대로 빠져들거나 제한받지 않고 날뛰는 죄가 허영되지 않는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악을 제거하시기 위해서 자신 혼자서 넉넉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추론하는 것은 잘못이다. 어쨌든 그의 전체 권고는 그와 같은 것이다. 가말리엘은 율법학자들이나 장로들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전쟁을 수행하지 않도록 경고한다. 그러면서도 마치 그일에 대해서 의심이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로써 다음의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그는 그 사건의 진가에 관해서 이미 근본적으로 불확실하여 계속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감히 그의 마음을 확정짓지 못하고 그 상황이 자연히 좀더 잘 밝혀지기까지 얼마동안 시간이 연기되어야 한다는 저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ㅇ요약한다면 가말리엘은 올바른 전제에서 잘못된 결론을 끌어낸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신앙에만 적용해야 할 것을 외적 행사나 행동방식에 잘못 응용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이것을 우리의 논리가 되게 하도록 하자. '하나님에게서 나온'것은 비록 전 세계가 그를 대항한다고 할지라도 확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로써 확증되고 있는 신앙은 사단이나 인간의 어떠한 공격에 대해서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존속될 수밖에 없다. 비록 하늘이 무너져내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창조자요 수호자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안전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왕국을 지켜주시기 때문에 어떠한 세력도 그것을 전복시킬 수가 없을 것이다. 복음의 가르침은 하나님에게 그 기초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 아무리 이를 대항하여 싸우며 흔들지라도 여전히 안전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더구나 악한 자들이 아무리 교회를 파괴하기 위하여 전력을 기울이며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대적하여 제 아무리 치열한 싸움을 도발한다 하더라도 역시 그들은 승리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도를 타격주는 것이 하나님의 특성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요, 또 그런 방식으로 그들의 무모함에 형벌을 가하시기 때문이다. 그 두 선언이 다 신앙에 잘 적용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종들이 진리를 수호하는 일에 덜 열심이어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자기들의 게으름 때문에 교회를 파멸에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어도 좋다는 이유도 성립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뒤집어 엎으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의 악행을 못본 체하고 등을 돌리고 앉아 있어야 할 이유가 그들에게 있을 수 없다.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36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ㅇ드다가 일어나 - 만일 우리가 요세푸스(Josephus)를 신빙할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면 가말리엘은 여기서 역사의 참된 진로를 거꾸로 만든것이 된다. 왜냐하면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해 준다. 즉 가말라(Gamala) 성에서 태어난 유다 가울라니테스(Judas Gaulanites)는 퀴리니우스(Quirinius) 혹은 싸이레니우스(Cyrenius)가 총독으로 있을 때에 인구 조사의 실시를 막기 위하여 추종자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드다(Theudas)는 쿠스피우스 파더스(Cuspius Fadus)가 총독이었을 때에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예언자라고 자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더스는 글라우디우스 가이사(Claudius Caesar)에 의하여 유대로 파견되었던 것이다. 전자의 이야기는 고대사18권에 수록되어 있고 후자는 20권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가"그 후...유다가 일어나"라고 말할 때에 유다가 나중에 나온 사람인 듯이 연대적인 순서를 지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말리엘이 유사한 두 실예를 내세웠기 때문에 그는 시기를 생각하지 않고 그는 이 쪽을 저쪽 과 바꿀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후'(post)라는 말은 '그 위에'(above) 혹은 '한편'(besides)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인것이다.
ㅇ더구나 가말리엘이 자기의 견해를 입증하는 그 실예들까지도 현재의 주제에 적절하게 해당되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다에 대해서 즉각적인 저항을 하지 않았기때문에 그가 선동했던 폭동은 많은 재난을 가져오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군대의 세력에 의하여 진압되었기 때문이다. 드다는 쿠스피우스 파더스의 분투로써 재빨리 타도되지 않았다면 훨씬 더 큰 해를 입혔을 것이다. 그러나 가말리엘은 단지 사람들이 결과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있을 추진 할 때 모든 일이 좋지 못하게 뒤집힌다는 사실만을 염두에 두고 있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공정하신 형벌에 의하여 행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 불신아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충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어리석은 당황으로 인하여 이리저리 갈팡질팡함으로써 무가치한 이론과 함께 자기들의 이지를 박탈당하는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도들이 매를 맞은 시기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후에 적어도 12년은 경과한 때였다는 사실을 우리가 그 시간을 계산해 봄으로써 추론하게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티베리우스(Tiberius) 치세의 남은 5년에 칼리굴라(Caligula)가 지배한 3년 반이 가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파더스(Fadus)가 클라우디우스(Claudius)에 의하여 유대로 파견된 것은 그의 재위 2년이나 3년 이내에는 아니었다. 가말리엘은 그 사건이 마치 어제나 그저께 생겨난 일처럼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지적한 그 시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도들의 끈기가 그만큼 더 훌륭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이유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처럼 오랜 동안 잃지 않았으며 또는 자기들이 가야 할 그 길을 쉬지 않고 계속하였기 때문이다.
ㅇ스스로 자랑하매 - 어떤 사본에는 "자기가 상당한 인물이라고 말했다"고 되었다. 그러나 의미는 같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요단강을 마르게 해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로 하여금 통과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자랑하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가말리엘이 얼마나 올바른 이해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던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나중에 자기의 말을 누그러뜨리고 또 좀더 호의적인 견해로 기울어지면서 이 사건이 하나님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단언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짓지 못한 채 나겨두기는 하였지가 그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직자들을 협잡군들과 약탈자들과 비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의아한 생각을 가지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좀더 사건을 조사하도록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에서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은 그가 악한 자들로 하여금 불신앙적인 무모함에서 기가꺾어지게 한 일이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일보다 더 두려워할 만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너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ㅇ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 가말리엘의 충고가 받아들여졌다고 누가는 말한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채찍에 맞고 또 가르치는 일을 금지당했다.
이로써 우리는 그들의 적이 얼마나 크게 격분하고 있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이 이제는 가라앉혀졌거나 혹은 적어도 누그러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이처럼 과격한 방법으로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거기에는 또한 하나님의 진리는 무시되고 인간에게만 관심을 기울였던 그러한 불명확한 권고가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는가가 분명하다. 가말리엘은 확실히 사도들의 생명을 아끼는 일을 생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일한 사람들의 수중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수치를 당한 것이다. 복음의 진리는 그들의 원수들에 관한 한 영원한 침묵 속에 매장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이처럼 그의 말씀을 기적 적으로 선포하시는데 그러나 그 복음이 끊임없이 의곡당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이 일에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가르침 때문에 위험 속에 빠진 사람들의 생명을 아껴주기만 한다면, 혹은 그렇지 않으면 피를 흘릴 수 있는 형편에서 약간 부드러운 방식으로 돌아선 적이 된다면 자기들이 적지않게 하나님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 그들은 불명예스럽게도 그리스도를 저버리는 일을 두려움없이 행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든 사람의 생명보다 훨씬 귀한 일이다. 그러나 참된 신아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인간적인 선행의 의무로써 하나님 앞에서 죄 속함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ㅇ사도들은...기뻐하면서 - 사도들은 자기들이 부당하게 다루어졌을 때에 그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느끼지도 않고 고통조차도 느끼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무감각하였다고 생각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성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원인을 생각했을 때에 기쁨이 우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도들은 자기들이 복음을 인하여 핍박을 받게 될 때마다 언제나 두가지 방면으로 영향을 받아야만 한다. 비록 그들이 확실히 형벌의 아픔으로 인하여 시달림을 받는다하더라도 영적 기쁨으로 인하여 그 슬픔을 타고 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기쁨에서 생겨나는 열정이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성급한 후회를 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에 있어서 죽음이 쓴 것이 될 것이라고 주께서 선언하셨지만 역시 죽음이 왔을 때에 그가 단 마음으로 기쁘게 맞이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등에 십자가가 지워질 때에 기쁨으로 그것을 받아서(ad obeundam crucem) 계속 지고 가도록 고난과 불안과 더불어 싸워야만 할 것을 배워야 한다.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이라는 말은 누가가 불명예스러웠던 것을 영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말은 얼른 보아서 불합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 세상 사이의 상이성으로 인하여 인간들 사이에서 는 최고의 치욕으로 생각되는 사항이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는 큰 존엄과 영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견뎌 내신 그런 종류의 죽음은 무엇보다도 가장 불명예스러운 것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는 십자가 위에서 가장 고상한 승리를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에게 순응하게 될 때에(참고;빌3:10, 롬8:29)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는 치욕의 대상이 된다 해도 실상은 우리가 뛰어남의 표시가 되고 있음을 훌륭하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공공연하게 그 그리스도의 흔적을 이야기하였다(갈6:17)
ㅇ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연합하는 일의 근거에 대하여 우리의 관심을 기울여 보아야 한다. 그는 이 세상의 치욕을 자기의 영광으로 흡수할 뿐 아니요, 모욕과 불명예와 조소를 최고의 영예로 바꾸어 놓으시는 분이다. 이리하여 비록 십자가를 지는 일에 용감하고 민첩한 사람이 그처럼 소수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거의 모두 육체의 감각에 희하여 압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실을 그다지 이상스럽게 생각할 것은 없다. 실상 백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될까 말까 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수치가 이 세상의 모든 승리보다 훨씬 뒤어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리고 이것이 유일한 위로의 기초가 됨을 이해한다. 그러나 이유 때문에 우리가 그의 영광의 동참자 또는 동반자가 되기 위하여 현재 그리스도의 고난에 순응하게 된다는 이 문구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참고; 롬8:17, 벧전4:13)
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ㅇ저희가 날마다...쉬지 아니하니라 - 그들의 기쁨과 함께 또한 번함없는 견지성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 제 승리의 결과를 앞질러 자기 마음에 가지려고 또 지구력을 야기시키기 위하여 아무도 자신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러 올리지 않는다는 그 사실이 우리를 약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교란시켜 주는 박해의 원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자기가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에 스스로 축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괴로운 싸움을 싸워야만 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이탈자가 되지는 않을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죽음을 향해 용감히 진군하기 위하여 채찍맞는 일로 무장을 한 것이다. 정말 우리의 길이란 미묘한 길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극히 사소한 박해를 통과해 욍으면서 우리는 마치 이미 퇴역군인이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즉시 그 횃불을 넘겨 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