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12.20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히13
첨부파일 :

개역개정]제13장    [135어저께나오늘이나] 450내평생소원이것뿐. 28복의근원강림하사. 9하늘에가득한영광의주하나님.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돈을 사랑하고 우상 삼음의 탐욕따라 스스로 모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열어주신 대로, 기업을 복되게 하심 따라, 부지런히 힘씀으로>주님 주셔서 소유케 하신 바)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I will never desert)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nor never forsake)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19.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
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23.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24.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
표준새번역]제13장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
1.  계속하여 서로 사랑하십시오.
2.  나그네 대접하기를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들은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하였습니다.
3.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되, 여러분도 함께 갇혀 있는 심정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도 몸이 있으니, 학대받는 사람들을 생각하십시오.
4.  모두 혼인을 귀하게 여겨야 하고, 잠자리를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음란한 자와 간음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5.  돈을 사랑하는 것에 얽매어 살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주께서는 "내가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6.  그래서 우리는 담대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니, 내게 두려움이 없다. 누가 감히 내게 손을 대랴?"
7.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를 살펴보고, 그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으신 분이십니다.
9.  여러 가지 이상한 교훈에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음식 규정을 지키는 것으로 튼튼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마음이 튼튼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 규정에 매여 사는 사람들은 유익함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10.  우리에게는 제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 제단 위에 놓인 제물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
11.  유대교의 제사의식에서, 대제사장은 속죄제물로 바치려고 짐승의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는데, 그 몸은 진 밖에서 태워 버립니다.
12.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13.  그러므로 우리도 진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
14.  실상 우리에게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도시가 없고, 우리는 장차 올 도시를 찾고 있습니다.
15.  그러니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립시다. 곧, 그분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를 드립시다.
16.  선행과 친교를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17.  ○여러분은 지도자들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요, 이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이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게 하고, 탄식하면서 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유익하게 되지 못합니다.
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는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바르게 처신하려고 합니다.
19.  내가 여러분에게 더 속히 돌아가게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더욱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축복과 작별 인사
20.  ○영원한 언약의 피를 흘려서, 양들의 위대한 목자가 되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화의 하나님께서,
21.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는 바를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22.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이 권면의 말을 받아들이기를 권유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짤막하게 썼습니다.
23.  우리의 형제 디모데가 풀려 나온 것을 알려 드립니다.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여러분을 만나 보게 될 것입니다.
24.  ○여러분의 모든 지도자와 성도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25.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
-------

Hebrews 13  Amplified Bible

==The Changeless Christ

1 Let love of your fellow believers continue. 

2 Do not neglect to extend hospitality to strangers [especially among the family of believers—being friendly, cordial, and gracious, sharing the comforts of your home and doing your part generously], for by this some have entertained angels without knowing it. 

3 Remember those who are in prison, as if you were their fellow prisoner, and those who are mistreated, since you also are in the body [and subject to physical suffering]. 

4 Marriage is to be held in honor among all [that is, regarded as something of great value], and the marriage bed undefiled [by immorality or by any sexual sin]; for God will judge the sexually immoral and adulterous. 

5 Let your character [your moral essence, your inner nature] be free from the love of money [shun greed—be financially ethical], being content with what you have; for He has said, “I will never [under any circumstances] desert you [nor give you up nor leave you without support, nor will I in any degree leave you helpless], nor will I forsake or let you down or relax My hold on you [assuredly not]!” 

6 So we take comfort and are encouraged and confidently say,  “The Lord is my Helper [in time of need], I will not be afraid.  What will man do to me?”

7 Remember your leaders [for it was they] who brought you the word of God; and consider the result of their conduct [the outcome of their godly lives], and imitate their faith [their conviction that God exists and is the Creator and Ruler of all things, the Provider of eternal salvation through Christ, and imitate their reliance on God with absolute trust and confidence in His power, wisdom, and goodness]. 

8 Jesus Christ is [eternally changeless, alway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and forever. 

9 Do not be carried away by diverse and strange teachings; for it is good for the heart to be established and strengthened by grace and not by foods [rules of diet and ritualistic meals], which bring no benefit or spiritual growth to those who observe them. 

10 We have an altar from which those who serve the tabernacle (sacred tent) have no right to eat. 

11 For the bodies of those animals whose blood is brought into the sanctuary by the high priest as an offering for sin, are burned outside the camp. 

12 Therefore Jesus also suffered and died outside the [city] gate so that He might sanctify and set apart for God as holy the people [who believe] through [the shedding of] His own blood. 

13 So, let us go out to Him outside the [a]camp, bearing His contempt [the disgrace and shame that He had to suffer]. 

14 For here we have no lasting city, but we are seeking the city which is to come.

==God-pleasing Sacrifices

15 Through Him, therefore, let us at all times offer up to God a sacrifice of praise, which is the fruit of lips that thankfully acknowledge and confess and glorify His name. 

16 Do not neglect to do good, to contribute [to the needy of the church as an expression of fellowship], for such sacrifices are always pleasing to God.

17 Obey your [spiritual] leaders and submit to them [recognizing their authority over you], for they are keeping watch over your souls and continually guarding your spiritual welfare as those who will give an account [of their stewardship of you]. Let them do this with joy and not with grief and groans, for this would be of no benefit to you.

18 Keep praying for us, for we are convinced that we have a good conscience, seeking to conduct ourselves honorably [that is, with moral courage and personal integrity] in all things. 

19 And I urge all of you to pray earnestly, so that I may be restored to you soon.

==Benediction

20 Now may the God of peace [the source of serenity and spiritual well-being] who brought up from the dead our Lord Jesus, the great Shepherd of the sheep, through the blood that sealed and ratified the eternal covenant, 

21 equip you with every good thing to carry out His will and strengthen you [making you complete and perfect as you ought to be], accomplishing in us that which is pleasing in His sight, through Jesus Christ, to whom be the glory forever and ever. Amen.

22 I call on you, brothers and sisters, listen [patiently] to this message of exhortation and encouragement, for I have written to you briefly. 

23 Notice that our brother Timothy has been released [from prison]. If he comes soon, I will see you [along with him]. 

24 Give our greetings to all of your [spiritual] leaders and to all of the saints (God’s people). Those [Christians] from Italy send you their greetings.

25 Grace be with you all.

==Footnotes

Hebrews 13:13 I.e. leaving the ways and traditions of Judaism (the Levitical system, the old covenant) and adhering to the teaching (new covenant) of the Christ.

------------

Hebrews 13  New King James Version

==Concluding Moral Directions

1 Let brotherly love continue. 

2 Do not forget to entertain strangers, for by so doing some have unwittingly entertained angels. 

3 Remember the prisoners as if chained with them—those who are mistreated—since you yourselves are in the body also.

4 Marriage is honorable among all, and the bed undefiled; but fornicators and adulterers God will judge.

5 Let your conduct be without covetousness; be content with such things as you have. For He Himself has said, “I will never leave you nor forsake you.” 

6 So we may boldly say:  “The Lord is my helper;  I will not fear. What can man do to me?”

==Concluding Religious Directions

7 Remember those who [a]rule over you, who have spoken the word of God to you, whose faith follow, considering the outcome of their conduct. 

8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today, and forever. 

9 Do not be carried [b]about with various and strange doctrines. For it is good that the heart be established by grace, not with foods which have not profited those who have been occupied with them.

10 We have an altar from which those who serve the tabernacle have no right to eat. 

11 For the bodies of those animals, whose blood is brought into the sanctuary by the high priest for sin, are burned outside the camp. 

12 Therefore Jesus also, that He might [c]sanctify the people with His own blood, suffered outside the gate. 

13 Therefore let us go forth to Him, outside the camp, bearing His reproach. 

14 For here we have no continuing city, but we seek the one to come. 

15 Therefore by Him let us continually offer the sacrifice of praise to God, that is, the fruit of our lips, [d]giving thanks to His name. 

16 But do not forget to do good and to share, for with such sacrifices God is well pleased.

17 Obey those who [e]rule over you, and be submissive, for they watch out for your souls, as those who must give account. Let them do so with joy and not with grief, for that would be unprofitable for you.

==Prayer Requested

18 Pray for us; for we are confident that we have a good conscience, in all things desiring to live honorably. 19 But I especially urge you to do this, that I may be restored to you the sooner.

==Benediction, Final Exhortation, Farewell

20 Now may the God of peace who brought up our Lord Jesus from the dead, that great Shepherd of the sheep, through the blood of the everlasting covenant, 

21 make you [f]complete in every good work to do His will, working in [g]you what is well pleasing in His sight, through Jesus Christ, to whom be glory forever and ever. Amen.

22 And I appeal to you, brethren, bear with the word of exhortation, for I have written to you in few words. 

23 Know that our brother Timothy has been set free, with whom I shall see you if he comes shortly.

24 Greet all those who [h]rule over you, and all the saints. Those from Italy greet you.

25 Grace be with you all. Amen.

==Footnotes

Hebrews 13:7 lead

Hebrews 13:9 NU, M away

Hebrews 13:12 set apart

Hebrews 13:15 Lit. confessing

Hebrews 13:17 lead

Hebrews 13:21 perfect

Hebrews 13:21 NU, M us

Hebrews 13:24 lead

--------

NASB]제13장
1.  Let love of the brethren continue.
2.  Do not neglect to show hospitality to strangers, for by this some have entertained angels without knowing it.
3.  Remember the prisoners, as though in prison with them, and those who are ill-treated, since you yourselves also are in the body.
4.  [Let] marriage [be held] in honor among all, and let the [marriage] bed [be] undefiled; for fornicators and adulterers God will judge.
5.  Let your character be free from the love of money, being content with what you have; for He Himself has said, "I WILL NEVER DESERT YOU, NOR WILL I EVER FORSAKE YOU,"
6.  so that we confidently say, "THE LORD IS MY HELPER, I WILL NOT BE AFRAID. WHAT SHALL MAN DO TO ME?"
7.  Remember those who led you, who spoke the word of God to you; and considering the result of their conduct, imitate their faith.
8.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yes] and forever.
9.  Do not be carried away by varied and strange teachings; for it is good for the heart to be strengthened by grace, not by foods, through which those who were thus occupied were not benefited.
10.  We have an altar, from which those who serve the tabernacle have no right to eat.
11.  For the bodies of those animals whose blood is brought into the holy place by the high priest [as an offering] for sin, are burned outside the camp.
12.  Therefore Jesus also, that He might sanctify the people through His own blood, suffered outside the gate.
13.  Hence, let us go out to Him outside the camp, bearing His reproach.
14.  For here we do not have a lasting city, but we are seeking [the city] which is to come.
15.  Through Him then, let us continually offer up a sacrifice of praise to God, that is, the fruit of lips that give thanks to His name.
16.  And do not neglect doing good and sharing; for with such sacrifices God is pleased.
17.  Obey your leaders, and submit [to them]; for they keep watch over your souls, as those who will give an account. Let them do this with joy and not with grief, for this would be unprofitable for you.
18.  Pray for us, for we are sure that we have a good conscience, desiring to conduct ourselves honorably in all things.
19.  And I urge [you] all the more to do this, that I may be restored to you the sooner.
20.  Now the God of peace, who brought up from the dead the great Shepherd of the sheep through the blood of the eternal covenant, [even] Jesus our Lord,
21.  equip you in every good thing to do His will, working in us that which is pleasing in His sight, through Jesus Christ, to whom [be] the glory forever and ever. Amen.
22.  But I urge you, brethren, bear with this word of exhortation, for I have written to you briefly.
23.  Take notice that our brother Timothy has been released, with whom, if he comes soon, I shall see you.
24.  Greet all of your leaders and all the saints. Those from Italy greet you.
25.  Grace be with you all.
=======
히브리서 13장 (개요)
바울은 그리스도와 믿음과 자유로이 주시는 은혜. 복음의 특권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다루고 또 유대인들에게 배교에 대해서 경고를 주고 나서 이제 마지막으로 믿음의 결실로써 마땅히 있어야 할 유대인들의 몇 가지 의무를 그들에게 제시하였다(1-17). 

그런 다음 자신을 위해서 유대인들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자신이 디모데와 함께 그들에게 갈 것을 말하고 일반적인 인사와 축도로써 본서를 끝맺고 있다(18-25).
=========
그리스도인의 제반 의무(히 13:1-17)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주신 것은 "선택된 사람들을 그의 것으로 삼으시고 그들로 열심히 선을 행하게 하시기 위해서 였다."  

이제 바울은 믿는 히브리인들에게 여러 가지 선한 의무를 행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행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훌륭해질 수 있음을 말하였다.
Ⅰ. 형제 사랑의 의무를 행하려고 권고하였다(1절).  

이 말은 모든 사람을 같이 태어난 형제처럼 또 같은 동족들처럼 사랑하고 그들의 사랑을 친형제들에게만 베풀지 말라는 뜻을 지닌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말에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마땅히 있어야 하는 특별하고 영적인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함이 마땅하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1. 이 말씀은 이 편지를 받는 히브리인들이 이미 이러한 형제 사랑을 지니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비록 히브리인들은 당시 종교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혼란되고 분열된 상태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진정한 형제 사랑이 살아 있었다.  

이러한 사랑은 성령의 임하신 후 즉시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게 되었다.  

성령이 임하자 그들은 모든 제물을 유무상통하였고 또 사유 재산을 팔아 형제들의 생계 유지를 위한 기금으로 내놓았다.  

기독교의 정신은 사랑의 정신이다.  또한 믿음은 사랑을 통하여 역사 한다.  만일 믿음이 사랑에 의해 역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유명무실한 것이다.
2. 이러한 형제 사랑은 늘 상실될 위험 가운데 존재한다.  

특히 그 사랑이 가장 필요한 시대적 박해의 때에 유실될 위험이 있다.  

또한 그들 가운데는 모세의 율법이 정해 준 제의를 아직도 지킬 것이냐 하는 문제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논쟁조차도 사랑을 없애는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신앙의 관한 지나친 논쟁은 그리스도인 사이의 사랑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이 상호 사랑은 반드시 수호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형제 사랑은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형제처럼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헌신적인 애정이 자라날수록 동시에 형제간의 사랑도 더욱 증대되어야 할 것이다.
Ⅱ. 나그네 접대의 의무를 행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그네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2절)고 하였다.  우리들은 접대하기를 게을리 말아야 한다.  여기서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요구된 의무로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이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 우리와는 낯선 그런 사람들조차 접대하라는 말씀이다.  

또한 이 말은 이 세상에서는 스스로 나그네로 여기고 저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접대하라는 말씀이다.  

특별히 당시의 믿는 유대인들은 절망적이고 곤고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즉 본문은 이런 자들을 대접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 따라서, 쉴 곳을 얻지 못하여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 비록 우리가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힘이 미치는 한 그들을 진심으로 우리 가정에 영접해 들여야 할 것이다.
2. 손님을 대접해야 하는 동기로서,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창 18장)과 롯(창 19장)이 그랬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대접한 손님 중의 한 분은 아들이기까지 하였다.  

우리가 늘 이러한 입장에 처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여 나그네를 접대하는 것을 그리스도는 자신이 대접받으신 것으로 여기시고 보상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마 25:3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복음서에서 "너희가 [내가]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덕한 종들에게 그들이 "부지 중"에 행한 선까지 기억하시고 은혜와 존귀를 그들에게 부어 주셨다.
Ⅲ. 서로 동정한 것을 권함으로써, 본문에 "갇힌 자를 생각하라"(3절)고 하였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 보자.
1. 요구된 의무.  그것은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은 흔히 어떤 교인과 교회는 고난받는 한편 다른 교회를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신다.  

그는 모든 교인이 동시에 피로써 투쟁하도록 부르시지는 않는다.
(2) 자유로운 사람들을 역경과 어려움과 처한 사람들을 마치 자신이 같은 쇠사슬에 얽매인 심정으로 동정해 주어야 한다.  

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이 고통을 겪을 때 그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2. 의무를 행해야 하는 이유.  이에 대하여 본문에 "너희 자신도 [육체를] 가졌은즉"이라고 하였다.  

즉 그들도 고난받는 자들과 동일한 육신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신비한 몸인 교회에 속한 지체들이기 때문에 그리하라는 말씀이다.  

우리의 육체도 언제 고난에 처하게 될는지 모른다. 시련을 겪을 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동정하듯이 우리들도 고난 당하지 않을 때는 다른 고난 당하는 사람을 동정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동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속한 지체들임으로 "만일 한 지체가 고통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받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전 12:26).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짐을 나누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독교 본래의 정신에서 이탈된 태도인 것이다.
Ⅳ. 순결함과 정숙함의 의무를 권하였다(4절).  다음을 살펴 보자.
1. 혼인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한 것으로 여기고" 신중하게 취급해야 한다.  또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인정하신 혼인을 부정한 것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혼인은 신성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아시고 낙원에 거하는 아담을 위해 혼인을 관습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조상이 되는 처음 두사람을 혼인시키고 축복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는 모든 인간으로 혼인에 관심을 가지고 주 안에서 결혼하게 하시었다.  

그리스도께서도 혼인 잔치에 참석하셔서 첫 기적을 행하심으로 결혼을 존귀스럽게 여기고 계심을 나타내셨다.  

또한 혼인은 순결치 못한 것과 침소를 더럽히는 행위를 저지한다는 점에서도 귀한 것이다.  

결혼은 그 배우자들이 서로 순수하며, 정결함을 지키고, 침소를 더럽히지 아니할 때에 즉 불법적이고 부정한 사랑에 의해 침소를 더럽히지 아니할 때에 귀하고도 복된 것이 된다.
2. 부정함과 음행에 대한 두려웁고도 공정한 질책.  

본문에 보면 "음행 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고 하였다.
(1) 하나님께서 누가 음행한 죄를 지은 자인지 알고 계신다.  

어떠한 어둠으로써도 음행한 자를 하나님께로부터 숨길 수는 없다.
(2)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를 사랑이나 연모로 보시지 않고 음행과 간음으로 간주하시고 책벌하실 것이다.  

음행이라는 함은 독신 때에 행한 음란한 행위를 말하는 것이요, 간음은 결혼한 후 행한 음란한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음행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먼저 그는 그들을 이 세상에서 그들 양심에 의해서 심판 받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양심으로 그러한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깊은 수치를 느끼게 하실 것이다(양심이 일깨움을 받을 때 죄인들은 무서운 가책에 시달림을 받게 된다).  

또한 그는 그들을 그들이 죽은 후 마지막 심판 때에 심판대 위에 세우시고 그들의 죄를 깨우치시고 저주하사 영벌을 내리실 것이다.
Ⅴ. 자족의 의무를 권고하였다(5,6절).  여기에서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하나님은 은혜와 우리의 의무에 반대되는 죄가 바로 "탐욕"이다.  

탐욕이란 우리보다 더 많이 가진 자를 시기하여 세상의 부를 모으려 하는 지나친 욕망을 말한다.  

우리는 이 탐욕의 죄를 우리의 생활 속에 허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탐욕의 죄를 제압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서 완전히 뿌리를 뽑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비록 이러한 탐욕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은밀하게 작용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만일 그것이 제압되지 않으면 우리의 생활 속에 그것이 침투해 들어와 우리의 말과 행위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2. 탐욕의 죄를 근절하기 위해 우리의 행할 바 의무.  

그것은 탐욕과 상반되는 것으로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안에서] 현재 누리는 것으로 [주안에서] 만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과거의 것은 결코 다시 오지 않고 또 미래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장중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매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비록 [어찌보면] 현재 누리고자 하는 것보다 작아 보이고, 장래에 대해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만족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처한 환경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주께서 친히 돌보고 계심 인해]우리는 현재의 형편이나 처지에 자신을 적응시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만족할 수 있는 길이다.  

현재에 만족할 수 없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환경을 좀 더 좋게 해 주셔도 역시 만족해하지 않을 것이다.  환경이 나아지면 욕망도 역시 비레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보라, 하만은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위치에 있었으나 만족해하지 않았고, 아합은 왕좌에 있었으나 만족해 하지 않았고, 아담 역시 낙원에 있었지만 만족해 하지 않았다.  

또한 하늘에 있던 천사들까지도 만족해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경외하올 주님의 지혜와 총명, 지모, 지식안에 하나됨으로] 비록 낮은 지위에 있었고 가진 것이 없었지만, "어떠한 상태에 처해서도 자족하는 것을 배웠노라"고 하였다.
3. 그리스도인이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하는 이유.
(1)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않으리라"(5,6절)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은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었다(수 1:5).  이 말은 하나님의 모든 신실한 종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구약의 약속은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본문의 약속, 즉 "내가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희를 버리지 아니할 것이다"(5,6절)는 것은 모든 약속의 본체요 중심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 말씀을 강조어법을 사용하여 말씀하였다.  진심으로 믿는 자들은 그들이 살아 있을 때나, 죽을 때나 또는 영원히 하나님이 은혜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

(2)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믿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겠는가?"(6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그의 백성들을 해하려고 행한 모든 행위를 오히려 그의 백성에게 유익되게 하실 수 있다.
Ⅵ. 그들이 그들의 사역자들을 보고 행해야 하는 의무에 대해서 바울은 권고한다.
1. 이미 죽은 사역자들에 대한 의무.  

이에 대하여 본문은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기억하라"(7절)고 하였다.  여기에서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죽은 사역자들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가?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치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회중에게 가르쳤던 자들을 말한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 인도자이며 치리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백성들의 치리자와 지도자가 된 것은 그들 자신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의해서임을 알아야 한다. 사역자들은 그들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였었다.  

그들을 멀리 있으면서 교인들을 치리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을 세워 치리를 시켜도 안 되며 그들이 직접 교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훈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2) 사역자들이 죽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해야 하는 의무.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되고 있다.
① "그들을 기억하자.  즉 그들의 설교와 기도와 사적으로 나눈 대화.  그들이 보인 본을 기억하라."
② "저희의 믿음을 본받으라.  그들이 너희에게 전해 준 신앙에 든든히 서있고 그들이 그것에 의해 살다가 죽어간 그 신앙의 은혜를 본받도록 노력하라.  또한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자.  즉 그들이 얼마나 빨리, 안락하게, 즐겁게, 그들의 생애를 마쳤는가를 기억하라."  

교인들이 가르침을 받은 그 진실한 믿음의 본을 따라야 하는 의무를 말하면서 바울은 이 의무를 확대하여 진지하게 강조하였다.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그들이 먼저 간 신실한 사역자들을 기억하고 의무를 지켜야 할 뿐 아니라 다음의 여러 동기에서도 그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다.  

첫째, 그들이 사역자들의 신앙을 본받아야 하는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서 불멸하시고 또한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역자들은 어떤 이는 죽었고 또 어떤 이들은 죽어가고 있지만, 교회의 대제사장이 되시고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시는 "그들의 영혼의 감독"은 늘 살아계시며 늘 불변하신다.  

교인들은 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굳게 서 있어야 하고 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는 늘 살아계셔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고수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지켜 보시며 또 보상해 주시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는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교인들을 벌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구약 시대에나 복음시대에나 불변하시는 분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영원히 한결 같으신 분이다.  

둘째, 그들이 사역자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을 늘 위협하는 잘못된 교훈이 교묘하여 자칫 잘못하면 거기에 빠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a. 잘못된 교훈은 여러 가지이며 다양하다(9절).  

이러한 교훈은 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실한 선생님께로부터 받은 것과 아주 다르며 그 자체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b. 이러한 교훈은 이상한 교리이다.  

그것은 복음 교회가 들어보지 못한 것으로 복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c. 이러한 교훈들은 산만하고 늘 유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교훈은 배를 요동하게 하고 또 배를 닻에서 떨어지게 하여 멀리 이동시켜서 바위에 산산조각이 나도록 하는 바람과 같다.  

이 교훈들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착시키게 하는 아주 탁월한 하나님의 은혜와는 정반대의 것이다.  이러한 이상한 교훈은 인간의 마음을 항상 흔들리게 하며 불안정하게 만든다.
d. 잘못된 교훈들은 그 내용이 조잡스럽고 속되다.  

그 교훈들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같은" 외적이며 사소하고 없어질 것들에 관하여 다룬다.
e. 잘못된 교훈들은 이익이 되지 못한다.  

잘못된 교훈을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는 자들은 그 교훈을 통해 자신의 영혼에 어떠한 이익도 얻지 못한다.  

잘못된 교훈들은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은 신성하게도 할 수 없으며, 겸손하게 하거나, 감사하게 만들 수도 없고 하늘나라에 이르지도 못하게 한다.
f. 이러한 잘못된 교훈을 지닌 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예배(제단)에 참석할 특권을 잃게 된다.  

본문에 보면 "우리에게도 제단이 있다"고 하였다.  이 사실은 매우 중대한 것이므로 사도는 이 문제를 좀 더 길게 취급하였다.  이제 다음을 관찰해 보자.
(a) 기독교회에도 제단이 있다.  

어떤 이들은 "초대 교회의 집회 때에는 제단이 없었다"는 주장을 내세워 제단 무용성을 말한다. 그러나 사도는 초대 교회에 제단이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더더욱 강조한다. 

본문에 보면 "우리에게 제단이 있다"고 하였다.  물론 이 제단은 외형적인 제단이 아니라 인격적인 제단 곧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단이 되시며 희생제물도 되신다. 주의만찬과 성례[곧 성찬]의 형태로 대속의 구주로 믿는 이마다의 누림 되시는 그는, 또한 제물을 거룩케 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제단 위에 자신을 전제로 부어드림 되기를 원했다]  

율법 시대의 제단은 그리스도의 유형이다.  구약 시대에 구리로 희생 제단은 금으로 된 그리스도의 중제의 제단의 유형일 뿐이다.

(b) 이 제단은 진정으로 믿는 자들을 위해서 만찬을 제공해 준 이 음식은 드려진 희생 제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아주 풍요한 만찬이다.  즉 만찬은 우리에게 영적인 힘과 성장,  거룩한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  

주의 식탁은 우리의 제단은 아니지만, 제단에서 나온 음식물이 주의 식탁에 놓여진다.  "우리의 유월절 양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이 되셨다."(고전 5:7).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만찬을 즐겨야 한다." 주의 성만찬은 복음 시대에 유월절 잔이다.
(c) 장막과 레위의 율법을 고집하고 다시 그리로 돌아가는 자들은 이 제단의 특권에서 제외되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유익함을 받지 못한다.  

장막을 고집하는 자들을 종속시키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제단에 대한 권리를 배격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고 그 다음 그것을 활용하였다.
[a] 바울은 유대의 의식을 집요하게 고집하는 것이 복음의 제단에서 받을 특권에 대한 장애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은 논법으로 주장하였다.  

유대의 율법 아래서는 속죄 제물로 드려진 것은 [금지명령 준수따라]먹을 수 없고, 장막 생활을 할 때는 야영지 밖에서 또 그들이 성에 거할때는 성문 밖에서 속죄물을 다 태워야만 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들어 그들이 여전히 율법의 지배 아래 [머물러] 있고자 한다면 복음의 제단에서도 [여전히, 그리스도를 누림 곧 ]먹을 수 없음을 말하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제물은 큰 속죄물이신 그리스도께서 제공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역주: 율법에 의해서는 속죄 제물을 먹을 수 없으므로 따라서 그것을 따르는 자들은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도 먹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복음 잔치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결실로써 이 희생물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이 잔치에 참여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속죄물의 원형이 되시며 그 자신의 피로써 그의 백성들을 신성하게 하시며 순결하게 해 주시기 위하여 그는 자신을 유형과 일치하게 나타내 보이시려고 영문 밖에서 죽음을 당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겸손하심을 나타내는 충격적인 표본이다.  

그는 인간의 속죄를 위해 하나님께 대하여 또 인간 사회에 대하여 불결한 존재나 되는 것처럼 영문 밖에서 처형되셨던 것이다.  

그리고 죄(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귀중한 대가를 치루셨다)는 모든 하늘의 시민권과 이 세상의 시민권까지 박탈하는 것임을, 죄인은 모든 사회에 문제거리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바울은 지금까지 레위 율법을 따르는 것이(율법자체의 규례에 의해) 인간들로 기독교의 제단에 참여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을 논한 후 다음과 같이 이 논리를 활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논하였다.

[b] 바울은 위의 논증을 활용하여 히브리인들에게 적절한 충고를 하였다(13-15).  

첫째, 바울은 "그런즉 우리는……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하였다.  즉 그가 부르실 때 율법의 의식과 죄와 세속, 우리 자신의 육체를 떠나서 그에게 나아가자는 말이다.  

둘째, 바울은 기꺼이 "그리스도의 능욕을 지도록"하자고 하였다.  

즉 우리 자신을 만물의 찌꺼기로써 곧 살 가치도 없고 평범한 죽음을 죽을 가치도 없는 존재로 기꺼이 생각하자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러한 능욕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러한 능욕께서 바로 이러한 능욕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러한 능욕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같이 능욕을 감수해야 하는 더 큰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든지 또는 죽음을 당하므로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끌려 나오게 되든지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며 또 이 세상은 "우리가 거할 영구한 도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와 죄인들과 죽음이 우리를 이 세상에 오래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라도 믿음으로써 주께 나아가서, 이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없는 안식과 안정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해야 할 것이다.  

셋째, 바울은 이 복음의 제단을 바르게 사용하자고 하였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 제단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이에 부끄러웁지 않게 이 제단의 특권에 참여할 뿐 아니라 이 제단의 의무도 바르게 이행하자는 말이다.  

우리는 이 제단에 희생 제물을 가져와야 한다.  또한 우리의 대제사장 앞에 가져와 그를 통하여 제물을 하나님께 봉헌해야 한다(15,16절).  

우리가 이 제단에 가져와 드려야 하는 제물은 무엇인가?  물론 이제 다른 속죄 제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큰 속죄의 제물로 드려지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물을 승인하는 승인의 제사만 드리면 된다.  승인의 제사란 어떤 것인가?
a.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사이다.  

우리는 이 제사를 하나님께 끊임없이 드려야 한다.  찬미의 제사 속에는 감사와 찬미와 기도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제사는 "우리 입술의 열매"이다.  

우리는 거짓 없는 입술로 하나님께 찬미를 드려야 한다.  찬미는 오직 하나님께로 만들어져야 하며 천사나 성도나 그 밖의 피조물에게 행하여 져서는 안된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찬미 받으실 수가 있으시다.  찬미의 제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희생과 중재의 공로를 의지하여 드려져야 한다.

b. 그것은 그리스도인다운 사랑과 자선을 베푸는 제사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16절)고 하였다.  

우리는 우리 능력대로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의 필요한 것을 공급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입술과 말로써 제사 드리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선행의 제사를 드리도록 해야 한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제사를 제단 위에 드릴 때에, 우리 자신의 선한 행위의 공로에 의지하지 말고 우리 대제사장 예수의 공로에 의지하여 드려야 한다.  

우리가 이와 같은 제사를 드릴 때에 즉 찬미와 자선의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주 기뻐하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제사를 받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사 드리는 자들을 열납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다.
2. 이같이 세상을 하직한 사역자들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의무를 말한 후(그 의무는 그들의 믿음을 따르고 그 믿음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바울은 우리에게 생존해 있는 사역자들에게 행해야 하는 의무를 말해 준다.  그리고 그러한 의무를 행하여 하는 이유를 말하였다(17절).
(1) 요구된 의무란, 그것은 우리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요구된 것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복종이나 순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사역자의 명령이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일치하는 한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만 아니라 목회자들의 직분의 권위에도 순종해야 됨을 말한다.  마치 양친이나 정부의 통치자들의 권위가 그렇듯이 분명히 목회자들의 권위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목회자들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하며, 스스로가 매우 현명하며, 훌륭하고 위대하므로 목회자들에게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들의 가르침이 기록된 말씀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2) 이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이유들.
① 사역자들은 사람들을 다스릴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성직이란 정부의 권력과 같은 것은 아니라도 역시 권위가 있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사람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권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풀이해 주고 여러 가지 실질적인 문제에 부딪칠 때 필요한 말씀을 적용해 줌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법도 안으로 인도할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자신의 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다만 하나님의 계율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목회자들의 성경 해석은 어떠한 검토도 없이 즉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성경을 찾아보고 그리고 목회자들의 성경 해석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남이 없을 때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되 "사람의 말로서가 아니라 믿는 자에게 능력 있게 작용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받아들여야 한다."
② 목회자는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역자들은 교우들이 함정에 빠지지 말고 구원받도록 한다.  또한 성직자들은 이러한 일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유익을 위해서 한다.  

성직자들은 영혼에 해가 되는 것들에 항상 주의하며, 그들이 위험스러운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경고해 주며, 사탄의 유혹을 경계하도록 해 주고, 다가오는 심판에 대해 경고해 준다.  

또한 성직자들은 인간의 영혼이 하늘나라로 들어가는데 도움이 되는 모든 기회를 포착하여 선용한다.
③ 성직자들은 사람들이 그들의 의무를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설명해 주고 또 자기들에게 맡겨진 영혼들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관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태만으로 한 영혼이나 잃어버리지 않을까하여 또 그들의 사역 밑에 있는 사람들이 올바로 세워졌는가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
④ 성직자들은 교인들의 잘됨을 자기의 기쁨으로 삼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은 교우들의 충성과 믿음의 성취를 얘기할 수 있을 때 그것이 그들의 가장 큰 기쁨이 된다.  

그들의 사역 아래서 회개하고 믿음을 지니게 한 영혼들은 "주 예수의 날에 그들의 기쁨과 면류관이 될 것이다."
⑤ 성직자들이 사역이 실패로 끝나면 그것은 그들의 실패일 뿐 아니라 교우들 모두의 실패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의 교인들에 대한 평가가 슬픔어린 것이 아니라 기쁨에 가득 찬 것일 때 그것은 교인들에게도 유익이 된다.  

그러나 만약 충실한 성직자가 성공하지 못하면, 고통을 겪는 것은 성직자 자신이겠지만 손실은 교인들에게 들어갈 것이다.  

충실한 성직자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것이나 결실이 없고 믿음이 부족한 교인들은 자신의 파멸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
결론(히 13:18-25)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여기에서 바울은 유대의 믿는 자들이 기도할 때 바울 자신과 또 자기와 함께 고통당하는 동료들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우리를 위하여 즉 나와 디모데를 위하여(23절)기도하라.  그리고 복음의 사역을 위해 수고하는 모두를 위하여 기도하라"(18,23절)고 하였다.
1.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는 교인들이 성직자들에게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의무이다.  

성직자들은 교인들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  교인들이 성직자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할수록 교인들은 그들의 사역에서 얻는 유익이 많아질 것이다.  

교인들은 자신들을 가르치는 사역자들을 하나님께서 [친히]가르쳐 주시며 저들로 용기있고 현명하며 열성적이고 사역에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또한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역자들의 사역을 도우시며 무거운 짐을 지고 갈 때에 그들을 부축-위로-격려해 주시고, 유혹 받을 때에 물리칠 수 있는 강한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2. 교인들이 성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다.  바울은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1) 그들이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하였다(18절).  

유대인들 대다수가 바울이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면서도, 레위의 율법을 버리고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한다는 이유로 바울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제 바울은 본문에서 정중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 확신하노니"(18절)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선함을 안다"고 거만하게 말하지 않고 겸손하게 "우리가 확신한다"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에게 너무 자신을 과신하므로 자신에 대한 경건한 경계심을 잃지 않도록 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의 말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우리에게 선한 양심 즉 잘 계발되고 여러 가지를 알며 깨끗하고 순수하며 온화하고 신실한 양심이 있는 줄 확신하노라.  우리는 양심에 비추어 거리낌이 없고 떳떳하다.  또한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선하게 행하려 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임무라든가 인간을 향한 의무에 있어서 특별히 우리의 사역에 연관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선하게 행하려 하였노라.  우리는 모든 일을 정직하고 신실하게 행하려 하노라."  이제 다음을 관찰해 보자.
선한 양심은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우리의 모든 의무를 중히 여긴다.
선한 양심은 소유한 자들도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
양심적인 사역자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며 또 사람들의 지도를 받을 가치가 있다.
(2)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기도를 원한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속히 돌아가기를 소망하였기 때문이었다(19절).  

이 말은 그가 전에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과 지금은 그들과 헤어져 있으면서 그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참으로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또한 바울이 그들에게 갈 수 있도록 촉진해 주는 최상의 방법과 그와 그들에게 자비가 베풀어질 수 있는 최상의 길은 오직 기도라 여기고 었음을 알게 된다.  

교인들의 기도의 결과로 사역자들이 교인들에게 돌아가게 될 때 사역자들 자신에게는 더 큰 만족을 주며 교인들에게는 더 큰 복음에의 성과가 안겨지게 된다.  

우리는 기도로써 여러 긍휼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Ⅱ.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바란 것만큼 자신도 기꺼이 유대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를 드리고 있다.  

그는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낸 평강의 하나님"(20절)이라는 서두로써 기도를 시작하였다.  

이 뛰어난 기도에 대해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하나님께 붙여진 칭호.  바울은 하나님을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을 자신과 죄인들 사이의 평강과 화해의 길을 제시해 주시고 또 이 세상 특히 그의 평화로웁기를 원하시는 분이라고 하였다.
2. 하나님이 하신 위대한 사업.  이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셨다"고 하였다.  

예수는 자신의 힘으로 부활하셨다.  그럼에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또 그의 부활을 통해 공의가 이루어지고 율법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입증하셨다.  

그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셨다.  예수께서 부활하실 수 있었던 그의 신적인 능력은 위를 위하여 우리에게 부족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신 것이다.
3. 그리스도께 붙여진 칭호.  바울은 그리스도를 "양의 큰 목자이시요 우리의 구세주며 통치자이신 주 예수"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이 같은 분으로 이사야서에 약속되어 있고(사 40:11) 또 그리스도도 자신을 그렇게 칭하셨다(요 10:14, 15).  

그리스도는 큰 목자라는 사실은 그가 그의 백성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뜻한다.  

믿는 자들은 그의 목장에서 거하는 양떼이며, 그리스도의 보살핌과 염려는 바로 그들을 위한 것이다.
4.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해를 가능하게 하고 그리스도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수 있게 한 수단과 방법.  

그것은 "영원한 언약의 피를 통하여"서였다.  그리스도의 피는 신의 공의를 만족케 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언약에 따라서 그의 피는 우리의 빛에 대한 지불금이 되었고 따라서 그의 피는 무덤의 사슬에서 그를 풀어내었다.  

이 피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서 이루어진 영원한 언약을 성별하고 봉인하는 표시인 것이다.

5. 바울이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  

그는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21절)라고 기도하였다.  이제 다음의 관찰해 보자.
(1) 모든 선한 일을 온전히 이룬다는 것은 성도들이 바라야할 일이요 또 그들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성도들은 성실의 완전함, 맑은 정신 청결한 마음과 생동력 있는 사랑, 또한 그들이 위하여 부름을 받은 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단호한 의지와 적절한 힘을 지니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고 드디어는 그들이 하늘나라의 축복과 잔치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정도의 완전에까지 이르기 위해 힘써야 한다.
(2)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완전케 하시는 방법.  

그 방법은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성도들 안에서 일으키심으로 또한 "영원히 영광 받은 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서이다.  이제 다음을 관찰해 보자.
① 하나님의 역사 없이 우리들 안에서 선한 일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하려고 작정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계신다.
②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으키시는 모든 선한 일은 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 선한 일을 우리 안에 일으키신다.
③ 그러므로 영원한 영광을 그리스도께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깃든 선한 생활 지침과 우리에 의해 행해지는 모든 선행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영광받으셔야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아멘"으로 회답해야 한다.
Ⅲ. 바울은 디모데가 놓였다는 것과 곧 그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하고 있다(23절).  

이로 보아 디모데는 복음 때문에 죄수가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자유롭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충실한 성직자들이 감옥에 갇히게 될 때 그 투옥된 사실은 그들 자신에게 영예가 된다.  그리고 더구나 갇혔다가 풀려나는 것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된다.  바울은 디모데를 보게 되었으므로 기뻐할 뿐 아니라, 히브리인들을 보게 되는 희망이므로 기뻐했다.  

그리스도 교회에 편지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충실한 성직자들은 원하고 또 그 일을 기쁘게 여겨야 한다.
Ⅳ. 이 서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그 내용에 그들이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청한 후(22절), 바울은 인사말과 비록 짧지만 엄숙한 축도로써 본 서신의 끝을 맺고 있다.
1. 작별인사.
(1) 이 인사는 바울이 유대의 믿는 자들에게 즉 성도들을 인도하는 성직자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한 것이다.
(2) 이탈리아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인사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마음속에 쓰여진 거룩한 사랑과 친절의 법도에 따라 서로 문안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신앙은 인간들에게 가장 진실한 예의와 훌륭한 교양을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신앙은 사회에 해로운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다.
2. 축도(25절).  바울은 "은혜가 너무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아멘"(25절)이라고 축도하였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있어질 것과 그의 은혜가 그들에게 계속 역사하여 그들에게 거룩함이 열매 맺게 되기를 비는 말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말이나 글로써 함께 사귈 때 기도로써 서로 작별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또한 그들이 서로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임재해 계심으로 그들이 영광된 세계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를 기원하며 헤어진다는 것은 복된 일인 것이다.  아멘.

===

==호크마==

=====13:1

>>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 '형제 사랑'은 이웃 사랑을 강조하는 성결 법전과 연결되는 것으로(레 19:18) 믿음의 공동체 내에서 형제와 자매를 연결하여 연대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22,23절; 2:11,12,17; 3:1,12; 10:19).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지속적으로 지녀야 할 독특한 특징이다(Lane). 저자는 당시의 수신자들 사이에 신앙이 약해진 자들을 결속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적으로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권면하고 있다(Bruce, Hewitt).

=====13:2

>>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 저자는 앞절에서 권면한 '형제 사랑'을 더 확대하여 '손님 대접'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손님 대접'에 관한 권면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을 반영한 것이다(마 25:35).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으로 인해서 복음 전도 여행과 그 여행을 위한 숙식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복음 전도 사역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었다(행 21:4,7,16,17,Thuren, Morris, Hewitt). 그러기에 손님 대접에 대한 권면은 초기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메시지였으며 그들이 지켜야 할 의무였다(딤전 3:2; 딛 1:8; 벧전 4:8,9, Bruce,Lane).

>>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 본문은 아브라함의 일을 암시한다.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세 사람의 손님을 영접하고 대접하였을 때 세 손님은 사라에게 이삭의 출생에 대해 예언하였다(창 18:1-21). 본문은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하는 덕목임을 시사한다.

=====13:3

>>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 본문에서 저자는 '형제 사랑'에서(1절) '손님 대접'으로(2절), '손님 대접'에서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에 대한 대접'으로 확대하고 있다. 당시 '갇힌 자들'은 심한 대우를 받아서 음식이나 의복에 대해 가족이나 친구들의 도음을 받아야만 했다. 만약 가족이나 친구들의 직접적인 도움이 없다면 그들은 감옥에서 굶주려 죽어야만 했다.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이 갇힌 자들을 도와주면 그들 역시 갇힌 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이 갇힌 것 처럼 생각하여 도와주라고 한다(고전 12:26, Morris, Bruce). 한편 '학대 받는 자'는 신앙 때문에 악한 대우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11:36,37, Lane).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신앙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소외된 자들과 연대감을 가지고 자신의 몸이 학대 받는 것처럼 생각하여 그들과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10:32-34; 11:36-38, Filson).

=====13:4

>>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 '모든 사람'의 헬라어 '엔 파신'(* )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있다(Morris, Hewitt). (1) 중성으로 이해하면 단순히 성적인 순결 뿐만 아니라 모든 형편 속에서 결혼을 중시하고 귀하게 여겨야 함을 시사한다. (2) 남성으로 이해하면 모든 남자들이 결혼을 귀하게 여겨야 함을 시사한다. 두 가지 해석 중 전자가 더 타당하다고 그리스도인들이 성적인 범죄를 행하지 아니하는 것은 단순히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며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결혼 생활 속에서 성적인 범죄를 행하지 아니하고 결혼을 귀하게 여겨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침소'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코이테'(* )는 성적인 정결(淨潔)과 함께 사용된 용어로 성생활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다(Morris, Lane). 성적인 범죄를 통해 침소를 더럽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결혼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신다(17절). 저자는 성적인 죄를 범하는 자에 대해 두 부류로 묘사한다.

 >>(1) 음행하는 자들 - 이것은 결혼 외에 다른 방법으로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포함하여 모든 성적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가리킨다.

 >>(2)간음하는 자들 - 이것은 결혼시에 표현한 서원에 불충실하여 이를 어기며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두 부류의 행위는 불법적인 성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Bruce, Lane, Hughes).

=====13:5,6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 돈을 사랑치 말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주 강조된 금지 명령이다. 돈에 대한 탐욕은 타인의 권리를 생각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게 할 뿐 아니라 마음에 두 주인을 섬기게 하여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범죄하게 만든다(마6:24; 눅 16:13; 딤전 6:10, Bruce, Thuren). 그 결과 우상 숭배의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저자는 본절에서 현재 주어진 여건과 물질에 대해 만족할 것을 권면한다. 저자는 현재 주어진 것에 대해 만족해야 할 이유 두 가지를 제시한다.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본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인용문은 없으며 단지 필로(Philo)가 동일한 인용문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On the Confusion of Tongues, p.166). 하지만 저자의 인용문과 필로의 인용문이 동일하다고 해서 저자가 필로의 것을인용했다고(Moffatt, Spicq) 생각할 이유는 없으며 도리어 다른 헬라어 역본에서 인용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Morris, Lane, Michel, Delitzsch, Riggenbach).그리스도인들이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현재 주어진 여건에 만족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켜주시고 함께 하시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창 28:15; 신31:6; 수 1:5; 사 41:17).

 모든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지켜주신다는 사실은 바울과 같이 현재에 주어진 환경에 자족하게 한다(빌 4:11-13)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 본문은 시 118:6의 인용으로 앞서 언급된 인용문과 연결되어 '약속과 응답'의 형태를 취한다(Michel). 하나님께서 돕는 자로서 그리스도인들과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시편 기자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돈과 죽음의 위협으로 부터 자유로와지며 담대해질 수 있다(2:14,15, Lane). 한편 '사람이내게 어찌하리요'는 부정을 유도하는 수사학적 질문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를 대항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롬 8:31, Hewitt, Morris).

=====13:7

>>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 '인도하는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헤구메논'(* )은 본장에서 본절을 제외하고 두 번 더 나온다(17,24절). 17절과 24절은 현재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반면에 본절의 '톤 해구메논'은 신앙을 지키다가 죽은 지도자들을 가리킨다(Hewitt,Bruce). '톤 헤구메논'이 가리키는 인물에 대해 혹자는 '장로'라고 추측하며(Morris)혹자는 '주의 제자'라고 주장하나(2:3, Hewitt) 명확하지 않다. 한편 '인도하는 자'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공동체 내에서나 선교 사역 때에 설교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행 4:29,31; 8:25; 13:46, 빌1:14, Michel, Riggenbach) 지도자들이 청중에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구원하시는 종말론적 메시지를 전달하였음을 나타낸다(1:1,2).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던 지도자들을 기억하고 더불어 그들의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

>>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 '종말'의 헬라어 '에크바신'(* )은 매일의 생활에 대한 결과를 나타내며(Hughes, Bruce)동시에 '죽음'에 대한 완곡한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Moffatt, Westcott). 그리스도인들은 지도자들이 수많은 고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신앙을 지키다가 심지어 죽기까지한 것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과거에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에 의지하며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굳게 잡은 사실을 주의하여 살펴보고 따라야 한다.

=====13:8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가지이다. (1) 혹자는 본문이 이 세상의 지도자들은 죽고 사라질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변함이 없으심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Bruce, Morris). 이 견해에 따르면 본문은 예수께서 '어제' 하나님께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5:7),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변호하시며, '영원토록'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간구하시고 계심을 나타낸다. (2) 혹자는 본절이 7절과 9절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Hewitt, Lane). 이 견해에 따르면 본절은 '어제' 과거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그를 전파하였으며 '오늘' 수신자 공동체가 '어제' 전함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상한 가르침과(9절) 바꾸려고 하는 상태에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진 구속이 '영원한' 것임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13: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 저자는 본문에서 수신자들에게 다른 교훈에 빠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식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마신'(* )은 9:10에서 사용된 '먹는 것'과 동일한 단어로 이상한 교훈을 전하는 자들은 이러한 식물을 통한 의식이나 규례에 의해서 온전하여지고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거짓된 여러 가지 다른 교훈은 엣세네파(Essenes)나 그와 비슷한 종파와 연관된 혼합주의적인 영지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Bruce, Hughes). 그러나 '식물'은 육체에 제한된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온전한 것을 이루실 때까지 허락된 예법에 블과한 것이었다(9:10). 그러기에 식물과 의식을 통해서는 전혀 어떠한 유익도 가져다 줄 수 없으며 온전히 깨끗게 할 수 없고 단지 외적인 것만을 정결케 할 뿐 양심을 정결케 할 수 없다(9:13,14).

>>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유익과 풍성함은 식물과 그에 따른 의식을 지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의 효능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2:9)과 기도를 통해서(4:16)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된다. 그리스도인들은오직 은혜에 의해서만 온전하여질 수 있으며 거짓 가르침이 말하는 것처럼 식물이나그 의식에 의해서 온전해질 수 없으니 그 식물과 그에 따른 규례는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도래할 때까지로 제한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13:10

>>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 혹자는 '제단'의 헬라어 '뒤시아스테리온'(*  )이 문자적인 희생 제단 자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나(Hewitt) 그것은'희생 제사'에 대한 환유(換喩)로(Bruce, Lane)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인 사역에 대해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8:1-5; 9:11-14,24-26; 10:11,12). 이것은 은유적으로 영문 밖에서 당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암시한다(12절; 12:2, Spicq, Montefiore,W. Manson, Andriessen).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의 죽음은 구원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은혜를 유지하는 원천이 된다(Bruce). 그러기에 새 언약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음식이나 그에 따른 규례에 의해서 거룩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의 희생 제사에 의해서 거룩해지며(12절; 9:14; 10:10,14) 그 제단은 레위기에 규정된 법을 따르는제사장들이나 유대인들은 전혀 참여할 수 없으며 맛볼 수 없는 것이었다(6:5, Kuss).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 제사는 구약에서 규정한 제사 규례나 정결 규례보다 훨씬우월한 것이며 온전케 하는 것이다. 한편 혹자는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를 문자적으로 신약 시대의 성만찬과 연결지어 제단을 성만찬 식탁으로 해석한다(Schroger).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본절 내에 성만찬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때 타당하지 않다.

=====13:11

>>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은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 갔으며(레 16:14,15) 희생 제물의 시체는 영문 밖에서 불살라 버렸다(레 16:27). 한편 '영문 밖에서'라 함은 다음 절에서 언급될 그리스도의 고난의 장소를 암시한다. 구약의 성소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예시하는 제단에서 먹을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하며 여전히 구약의 제의에 따라 사는 자들은 골고다에서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 성취된 속죄 사역의 결과인 그리스도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없다(Lane).

=====13:12

>>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으니라 - 저자는 본절에서 '영문 밖에서' 희생 제물을 불살라 버린 것과(11절) 성문 밖에서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의 고난을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Lane).(1) 성문 밖에서의 예수의 죽음은 속죄일의 속죄제를 나타내는 것으로(J. Jeremias).예수의 고난이 대제사장적인 속죄 사역을 성취하기 위한 새로운 조건임을 시사한다(10:12). (2) 예수께서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은 거룩한 영역으로부터 배제당하는 수치를 나타낸다. 그것은 산헤드린에 의해서 예수께서 정죄받으심은 물론 백성들에 의해 배척(排斥) 당하심과 급기야 처형 당하심을 시사한다. 한편 '거룩케 하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아세'(* )는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에 의해서 드려진 제사가 제시하지 못했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시사하는 것으로 오직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만 거룩해질 수 있음을 나타낸다.

=====13:13

>> 그런즉 우리는...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 '영문 밖'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그것이 지상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천상적인 영역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Thompson). (2) 혹자는 그것이 유대교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주장한다(Hewitt, Morris, Bruce, Hughes, Westcott, Filson).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유대인들은 '영문'을 거룩한 것으로, '영문 밖'을 더럽고 부정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 영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은(12절) 거룩한 영역에서 제외 되었으며 부정하고 부끄러운 것로 이해 되었다(레 13:46; 민5:2-4; 신 23:11; 눅 6:22). 그러나 전에 거룩하던 영문은 부정하여졌고, 전에 부정하던 영문 밖은 거룩하여졌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영문에서 쫓겨나 영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이다(Bruce). 따라서 저자는 아직도 옛 언약과 유대교의 범주인 영문 안에 머물러 있지 말고 이제 새 언약과 그리스도가 계신 영문 밖으로 나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다.

>> 그 능욕을 지고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영문 밖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조건을 나타낸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능욕을 지는 일' 즉 유대교를 떠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와 동일한 고난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 곧 십자가 상의 죽음은 이방인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며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있는 것으로 이해 되었다(신 21:22,23; 갈 3:13,Hewitt, Morris). 그fl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기 위해서 그와 동일하게 수치와 치욕으로 이해된 십자가를 짐으로 그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제자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는 복음서의 제자도와 동일하다(마10:37,38; 막 8:34-38).

=====13:14

>>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영문 밖에 나아가기 위해서 '능욕'을 기꺼이 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생활하는 이 세상이나 유대교 안에는 영구한 하늘의 도성은 없으며 단지 일시적인 도성만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장차 올 도성은 사라질 도성이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경영하시는 터가 있는 도성(11:10,16) 곧 하늘의 도성이다. 그들은 하늘에 기록된 천국 시민이기 때문에 오직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나그네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13:15,16

>>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맘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 '예수로 말미암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 아우투'(* )는 문자적으로 '그로 말미암아'라는 의미로 두 가지를 의미한다. (1)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찬미의 제사가 옛 언약의 제사장들에 의해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려지는 것임을 의미한다. (2)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제사는 더 이상 옛 언약의 제사장들이 드렸던 동물 희생 제사가 아님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의해 온전한 희생 제사가 단번에 드려졌으므로 더 이상 속죄를 위한 동물 희생 제사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리스도인들이 드려야 할 제사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미하는 제사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찬미의 제사를 드린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희생 제사가 하나님께 온전하게 열납되었음을 시사한다(Hewitt). 한편 '항상'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드려지는 찬미의 제사가 지속적이어야 함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끊이지 않고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계속적으로 경험할 때 가능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을 확신할 때 이루어진다(Lane).

>>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옅매니라 - 본문은 호 14:2(LXX)의 인용으로 '찬미의 제사'에 대한 설명이다. '입술의 열매'는 감사제와 감사 찬송시 사용하는 '말'에 대한 셈어적인 표현이다(잠 10:31; 12:14; 13:2; 18:20).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제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고 드러내는 찬양으로서(LXX 시 49:23)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와 선함에 대한 응답이며 하나님과의 계약을 진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다(Lane, Morris, Bruce).

>>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 저자는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이 '찬미의 제사'뿐 아니라 사랑의 행위도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역설한다. '선을 행함'의 헬라어 '유포이이아스'(* )는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모든 친절한 행위를 가리키며, '서로 나눠 주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스'(*  )는 돈이나 물건은 물론 타인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는 관용(寬容)을 가리킨다(Morris, Lane, J.Y.Campbell). 타인을 사랑하는 실제적인 행위가 없는 찬미의 제사는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랑의 행위가 동반되어야한다(Thuren).

>>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의 행위를 동반한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이유이다. 친절과 관용 그리고 찬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새 언약 하에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말'로는 물론 '행함'으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제사를 통해서 성취되며, 하나님은 이러한 제사를 기쁜 마음로 열납하신다(Lane).

=====13:17

>>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 본절의 '인도하는 자'는 7절의 '죽은 지도자'와는 달리 현재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인도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저자가 반복적으로 지도자들에 대해 복종할 것을 강조하는 것은(7,24절) 당시 배교의 위험과 이해 관계에 직면하여 지도자들을 잘 따르지 아니하고 대적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2:1-4; 3:7-12; 5:11-6:12; 10:23-29; 12:12-17,25-29, Hewitt,Lane, Riggenbach).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 본문은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존경을 받고 복종함을 받는 근거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부여하신 목회적 권위와 책임감이다. '경성하기를'의 헬라어 '아그뤼프누신'(* )은 양떼들을 돌보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목자상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단어로 신약성경에서 주로 종말론적인 '깨어 있음'을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막 13:33; 눅 21:36; 엡 6:18, Spicq, Bruce, Morris).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영혼 즉 그들의 영적 생활과 복리를 위해서(10:39, Morris,Bruce, Michel) 날마다 깨어 있어 돌보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존경과 순종을 받을 만한 권위가 있다. 한편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는 지도자들의 책임을 나타낸다. 참된 지도자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책임 이행에 대한 답을 요구하실 때 응답해야만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어서 거짓 교사들과 같이 이상한 다른 가르침을 전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파하며 그리스도인을 돌보고 양육한다.

>>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히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 본문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지도자들을 섬기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지도자들이 양떼들을 돌보기 위해서 경성(警醒)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의 불순종과 고집으로 인해서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근심스러운 일이 된다면 그 지도자의 인도함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전혀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Bruce, Hewitt, Morris).

=====13:18

>>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 1인칭 복수인 '우리'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우리'가 순수한 복수로 저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Westcott, Kent). (2) 혹자는 '우리'가 서간체 복수로 저자 자신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Hewitt, Bruce).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Morris).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1인칭 단수인 '내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도자로서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수신자들에게 부탁하고 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 개역성경에는 '가르'(*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문 즉 저자가 가지고 있는 '선한 양심'이 수신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할 수 있는 근거가 됨을 시사한다. '더럽혀진 양심'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므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져야 한다(9:14). 저자가 본절에서 자신의 '선한 양심'에 대해 확신하는 것은 자신을 향한 타인의 비방에 대한 방어책으로(Morris, Lane, Hewitt) 저자 자신이 지도자로서 선한 행동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의무를 잘 수행하였음을 시사한다(Bruce).

=====13:19

>>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 - 저자는 본절에서 수신자들이 속한 공동체에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한다. 재방문을 위한 기도 요청은 저자와 수신자들간에 개인적으로 상당한 친분 관계가 있었으며(Hewitt, Lane) 또한 저자가 수신자 공동체를 방문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방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저자의 투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Hewitt, Morris, Bruce). 왜냐하면 23절에서 디모데가 감옥에서 나오면 함께 방문할 것이라고 함으로써 자신이 감옥에 투옥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저자가 수신자 공동체에 방문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확실히 있으나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13:20,21

 본문은 송영이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 본문은 사 63:11의 '백성과 양 무리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를 인용한 것이다. 이사야 본문은 모세에 대한 진술이다. 저자는 모세에 대한 진술인 이사야 본문을 인용하여 미디안의 목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부터 이끌어 낸 모세를 유형론적으로 해석하여 '양의 큰 목자'이신 예수께 적용하고 있다(Lane, Bruce). '큰'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메간'(* )은 본서에서 예수의 우월성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으며(4:14; 10:21) 모세와 예수의 비교 또한 새 언약의 중재자인 예수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저자의 독특한 논증 방법이었다(1:1-4; 2:1-4; 3:1-6; 8:1-6; 10:26-31;12:18-29). 저자는 예수께 '큰 목자'라는 칭호를 부여함으로 사 63:11에서 모세에게 칭한 '양 무리의 목자'와 대조를 이루게 하며 옛 언약의 중재자인 모세보다 새 언약의 중재자인 예수께서 더 위대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 영원한 언약의 피로 - 본문은 슥 9:11(LXX)의 영향을 받았다. '언약의 피'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언약의 희생 제사임을 시사하며(9:20; 출 24:8) '영원한'은 예수의 속죄 사역이 영원한 효력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1:8; 5:6,9; 6:20; 9:12,14,15;10:12,14). 예수의 사역과 희생은 영원한 언약을 이루는 근거가 되었으며 이러한 영원한 언약은 새 언약과 동일한 것으로 옛 언약올 대신하였다. 본문은 다음에 언급될 예수의 부활과 연결된 것으로, 예수의 부활은 예수께서 자신의 희생으로 이루신 영원한 언약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셨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해서 영원히 살아계심을 나타낸다(9:20, Morris, Hewitt, Lane).

>>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 본문은 본서 내에서 부활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유일한 구절이다. 예수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정하고 비준(批准)하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을 통해서 이루어졌다(Michel, Cranfield, Thuren). 한편 '이끌어내신'의 헬라어 '아나가곤'(* )은 두 언약 즉 옛 언약과 새 언약하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나타낸다.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신 하나님의 간섭은(출 6:7; 20:1,2; 레 19:36; 25:38; 26:13; 신 5:6; 사63:11-14) 죽은자로부터 예수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행위를 예표한다(Lane).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끝어 내심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새로운 언약 즉 영원한 언약을 맺으시는 근거가 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근거가 된다(21절, Cranfield,Thuren).

>> 평강의 하나님이 - 이 칭호는 구약성경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인들이 만든 하나님의 칭호라고 볼 수 있으며(Lane) 하나님께서 평화의 근원이시며 수여자이심을 시사한다. 또한 이것은 수신자 공동체 가운데 배교의 위험과 지도자와의 불협화음이 있었음을 암시한다(Bruce, Morris, Hewitt). 그래서 저자는 송영에서 수신자 공동체에게 하나님께서 '평화의 하나님'이심을 상기시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위해 서로간의 불화를 억제하고 지도자에게 순복하여 평안을 이룰 것을 강조한다(17절, Spicq, Thuren, Morris, Bruce).

>> 모든 선한 일에 너희들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 '모든 선한 일에'의 헬라어 '엔 판티아가도'(* )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윤리적인 선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여 선한 윤리적인 행위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Spicq). (2) 혹자는 선한 일을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한다(살후 2:17, Michel). (3)혹자는 선한 일을 '하나님의 선한 선물'로 해석한다(마 7:11; 눅 1:53; 갈 6:6; 약1:17, Lane, Morris).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문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수신자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은혜로 공급하여 주셔서 온전하게 함으로 하나님 자신의 뜻을 행할수 있도륵 하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본문은 앞서 언급된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와 상호 보완적이다. '즐거운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며(12:2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도록(15,16절) 부름을 받은 존재임을 시사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중재자이시며 새 언약 공동체 내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중재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Lane,Morris).

>>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륵 있을지어다 아멘 - '그에게'에 대해서 혹자는 문법적으로 '하나님'이나 '예수'와 모두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둘 다를 가리킬 수 있다고 주장하나(Morris)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Bruce). 왜냐하면 본문의 송영은 죽은 자로부터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이기 때문이다(Lane).

=====13:22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 '형제들아'와 '용납하라'는 말은 저자가 앞서 기술한 배교나 비그리스도인에 대한 격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진술, 그리고 지도자와 수신자들 사이의 갈등에 대한 훈계와 비교되어 부드럽고 애정이 서려 있다. 본문에서 저자는 이제까지 진술한 내용을 '권면의 말'이라고 정의함으로 자신이 이제까지 진술한 것이 책망보다는 격려차 위로에 기인한 것이었음을 밝히고 다시 한번 본서의 내용에 주목해 줄 것을 암시하고 있다. '권면의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로구 테스 파라클레세오스'(* )는 행 13:15에 나오는 표현과 유사한 것으로 '설교를' 지칭한다(Bruce, Morris, Lane). 한편 '간단히...썼느니라'가 가리키는 부분에 대해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13:18-25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Knox).(2) 혹자는 13장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R. Anderson). (3) 혹자는 본서 전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rris, bruce, Hewitt, Lane).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썼느니라'의 헬라어 '에페스테일라'(* )는 '편지를 썼다'라는 의미로 본 서신 전체를 가리키며, '간단히 썼다'는 것은 유대 문서나 초기 그리스도인 문서에서 공손함을 나타내는 문학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Hewitt, Lane).

=====13:23

>>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저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 저자가 바울의 동역자였던 디모데를 '우리 형제'라고  것은 디모데가 수신자들에게 매우 잘 알려져 서로 교제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한편 '놓인 것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렐뤼메논'(* )은 완료 시상으로 이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사역의 임무를 부여받고 보냄을 받은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E.D. Jones). (2) 혹자는 감옥에서 풀려난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Hewitt, Lane, Morris).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아폴렐뤼메논'이 전자의 견해처럼 사용되었을 경우는 목적어를 동반하나 본절에서는 목적어를 동반하고 있지 않으며, 더욱이 '아폴렐뤼메논'이라는 단어는 흔히 감옥에서 풀려나는 경우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Brice, Morris). 그러나 디모데가 언제 어디에 있는 감옥에 갇혔었는지는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디모데가 감옥에서 풀려난 사실을 먼저 알고 전하면서 디모데가 속히 올 경우 함께 방문할 것을 밝히고 있다.

=====13:24

>> 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 저자는 본문에서 앞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도하는 자'와의 문안을 통해서 갈등 관계가 아니라 선한 관계를 형성하여 그들에게 순복(順服)할 것을 암시한다(7,17절). 한편 '모든 성도'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혹자는 본서의 수신자들이 속해 있는 도시 전체의 성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ne). (2) 혹자는 본서의 수신자들이 모이는 가정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uce).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여 화평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화평을 이름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암시적으로 권면하고 있다.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의 헬라어 '호이 아포테스 이탈리아스'(* )는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혹자는 당시 이탈리아에 흩어져 사는 자들이 이탈리아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안한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picq). (2)혹자는 이탈리아 밖에 있는 사람이 이탈리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안하거나 이탈리아가 고향인 자들이이탈리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문안한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uce). '호이 아포 테스 이탈리아스'는 이 두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렵다(Morris, Bruce, Hewitt).

=====13:25

>> 은혜가 너희 모든 사림에게 있을지어다 -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 )는 비록 흔히 사용되던 인사법이라 할지라도 본서를 마감하는 종결 인사로서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저자가 본서에서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구속하시고 인도하시며 도와주시는 은혜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9절; 2:9; 4:16;12:15). 저자는 마지막 인사로 수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킴으로 배교(背敎)의 위험에 처해 있는 수신자들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물론 지도자와 수신자들간의 갈등 관계를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Lane).

-----------

  11장과 12장이 믿음과 소망에 대해 다루었다면 본장은 사랑의 실천 면을 다루고  있다. 본장의 주제는 크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레  19:18;신6:4,5)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예배의 모습과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은  자로서 행해야 할 바른 실천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본장을 통해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불신앙과 인간성 상실의 위기에 직면한 이 시대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과 진정한 형제애에 대해 배울 수 있다.이제 본장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장에 나타난 신학적 논의와 구조적 특징 및 당시  성도들의  삶의 정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신학적 논의. 

본장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본장이 부록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요, 또 하나는 본장의 마지막 인사가 바울의  것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까) 전장까지의 문맥상의 연결을 볼 때, 본장이 부록의 성격을 띠고 있는 본문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본장은 논리상 앞장과의 명백한 연결어가 없이 갑작스럽게 돌입한다. 이로 인해 본장은 어조와 주제에 있어서 앞장들과 사뭇 다르다.

  둘째, 본장은 일반적인 훈계를 말하고 있을 뿐 본서에서 누누이 부각된 저자의 특별한 관심을 담고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본장은 논리의 일관성과 형식 및 내용에 있어서 부록의 성격을 띠고 있는 본문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본장은 전장의 28절 내용과 연결되고 있으며, 본서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모세 오경과 시편등의 구약적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6,11절).  그러므로 본장은 완전한 본 서신의 일부이다. 더욱이 본장은 교차 대칭 구조를 사용함으로써 문학적 양식으로 기록된 앞의 장들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다) 본서의 서두가 서신서의 형식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본 서신의  서두는 분실되었거나 삭제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주장은 본서를  억지로 바울 서신의 형식에 꿰맞추려는 태도이다. 마카비서, 바나바서, 클레멘트서,  요한일서에는 서신체 형식의 서두가 없다. 특히 본장은 앞장에서 볼 수 없는 저자와  독자의 개인적 관계를 수록하고 있다. 만약 본서가 12장이나 본장  17절에서  마감되었다면, 이것은 편지의 형식이 아닌 논설문이나 단순한 교훈을 실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장을 통해 저자는 주제 전개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의 적용에도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즉 독자들의 신앙의 유익과 실천을 위한 권면과 마지막 인사말로 보아  본서는 나름대로 서신서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장에는 바울의 서신체, 특히 빌립보서에서 두드러진 표현이 부분적으로 나타난다(16절; 빌 4:18/21절; 빌 4:20/23절; 빌 2:19,23,24). 이렇듯 본장이  전체적으로 바울의 문체 및 사상과 다르면서도 부분적으로 바울의 서신체와 유사한  사실이  결코 본서의 완전성을 의심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는 없다.

  (2) 구조적 특징. 본장에는 사랑의 주제를 언급하는 본문과 교차 대칭 구조를  갖는 본문이 나타나 있다.

    (까) 사랑의 주제를 언급하는 본문. 본장은 진정한 이웃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으로 시작한다(1-6절). 이 부분은 성도들에게 당시의 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알게 해 주며 성도들이 사랑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끊임없이 소유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도는 사랑의 삶을 살도록 부름받은 자이다. 사랑의 주제를 언급하고 있는 1-6절 내용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도표를 보면 설명하는 구절들이 교차 대칭을 이루는 권면의 구절들에게 '동기'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먼저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설명하고, 후에는 성도로서 짊어지고 나가야 할 고난을 제시하고 있다.

  (3) 당시 성도들의 삶의 정황. 본서에서 성도들의 삶은 유대교로 인한 배교와  로마로 인한 박해의 위험을 안고 있었음이 나타난다. 그러나 본장에서는 색다른 삶의 면모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공동체의 분열과 분쟁과 반목으로 일관된 '사랑의 결핍'이다.

1세기말에는 박해로 인해 갇힌 자가 많았으며,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는 유랑자들이  (strangers)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혼인을 순결하게 여기지 않는 사상들과 안락과 쾌락만을 일삼는 윤리가 난무했다. 그리고 박해로 인한 궁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돈을 사랑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를 참되게 알지  못함으로 인해 지도자와 성도간의 불일치가 존재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시종 일관 사랑의 회복과 실천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본장은 하나님 사랑의  회복과 이웃 사랑의 실천 및 지도자와의 관계 회복 등이 주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즉 1-19절은 사랑의  회복을  다루고 있으며, 20-25절은 마지막 인사와 축도를 다루고 있다.

  1. 사랑의 회복(13:1-19)

  본문은 나누는 공동체의 상황 아래서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본문은 12:28에서 예배에 대한 주제적 암시를 받았다.  진정한 예배란 삶의 전영역이 거룩해져야 한다는 확장된 개념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에 대한 기꺼운 받아들임을 전제한다. 이제 본문에 드러난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 및 지도자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해 면밀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1) 이웃 사랑. 

판넨베르크(Pannenberg)는 "인간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인간에게 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을 다루기에 앞서 인간 사랑을 다루는  것은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 하겠다. 저자는 본문을 통하여 우리의 이웃을 위한 열정과 사랑의 냉랭함으로 시작되는 성도간의 믿음의 붕괴를 경고하고 있다. 본문에 드러난 이웃 사랑의 대상은 누구인가 ?

    (까) 형제 사랑. 

성도가 실천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형제 사랑이다.  본문1절에는 '계속하라'라는 강한 어조의 명령형이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지속적인 사랑이다(요 13:1).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성도들이 각기 고난 속에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한다면 겹겹이 쌓인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 손님 대접. 

당시 사회에 있어서는 여행자들이 거처할 숙소가 비위생적이었으며 숙박 시설의 비용은 엄청나게 비쌌으므로 쉽게 이용할 수 없었다. 이들 중에는  복음 전파에 일익을 담당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따스한 손길을 요청하는 가난한  나그네들도 있었다. 우리의 삶에는 개방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집과  교회를  개방하여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을 맞아들여 기꺼운 마음으로 대접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집과 교회를 개방해 놓고 어떤 사람이든 사랑으로 맞이하는 자의 처소를  찾아가실 것이다(마 25:35-40).

    (따) 갇힌 자를 생각함. 

초대 교회 당시 감옥에 갇힌 자들은 매우 혹독한  대우를 받았으며, 그들의 음식과 필수품은 아주 형편 없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했다.  박해의 상황으로 볼 때 복음으로 갇힌 자들은 부지기수였다. 본문은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기본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는 수많은 양심수들의 모습을 기억하게 해준다. 아직도 이 땅에는 자신의 생애를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수많은 양심수들이 갇혀 있다. 우리는 부당하게 투옥된 모든 사람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다는 이유로 고난받는 우리의 형제들에 대하여 항상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그들의 자유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마) 순결과 자족. 

본문은 거룩의 속성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에게 비추어  볼  때 위배되는 비윤리성을 고발한다. 그것은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의  가치성의 몰락과 돈을 사랑하는 물질주의이다.

      (a) 결혼의 순결성. 

결혼이란 도덕적 순결과 서로에 대한 영원한 책임성을 전제로 한다. '혼인을 귀히 여기라'(4절)는 말은 '결혼을 값지게 하라'(RSV) 또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걸맞게 결혼 생활을 하라'는 의미이다. 당시에 금욕주의자들은 결혼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천시하였으며, 반면에 쾌락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성생활을 권장하였다. 이에 저자는 혼인을 귀히 여길 것과 아울러 결혼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음행'( ,포르노스)과 '간음'(  ,모이코스)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음행은 무절제한 성생활을 뜻함이요, 간음은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점차 프리 섹스(free sex)와 동성 연애, 미혼모, 에이즈(AIDS), 증가하는 이혼률 등 다양한 성범죄들이 쌓여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사회 질서뿐  아니라 가정의 파괴등으로 인간을 해롭게 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 질서를  역행하는 이 모든 것을 철저히 심판하실 것이다(창 19:4-28; 고전 6:9,10; 벧후 2:14).

      (b) 자족(自足).  

돈에  대한  탐욕과  성적  방종은  상호  연관이  있다(고전5:10ff.). 바울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고 한  점은  이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지나친 부(富)는 종종 육욕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한다. 여기서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소망을 둔다는 것을 뜻한다. 성도는 결코  자기 자신으로 인해 만족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바울은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라고 하였으며,  또한 그는 감옥 안에서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빌 4:11)라고  말하였다. 그는 결코 자기 자신으로 인해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육체의 가시'마저 감사하게 여겼다(고후 12:7).

  주는 어떤 분이신가 ?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히리요'(6절). 저자는 하나님께서 야곱(창 28:15)과 여호수아(수 1:5)에게  주신 신변 보장의 약속의 말씀뿐 아니라, 고민에 빠져 있던 시편 기자가 마침내 찾게 된 평안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상기하도록 서술하고 있다(시 118:6). 성도는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거할 때에 비로소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다(6절).

  (2) 하나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은 왜(Why), 어디에서(Where), 어떻게(How)  일어났는가 ?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도록 요청하고 있는가 ?

    (까) 거룩케 함. 

유대인의 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수송아지를 잡아 그 피는  지성소로 가지고 들어가고 제물은 영문 밖에서 불태웠다(레 16:14,15,27). 이 같은 제사를 통해 대제사장의 죄와 백성의 죄는 속죄받았다. 이와 같이 예수도 백성을 거룩케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당시의 유대인 성도들은 유대교적인 예배와 희생 제물을 바치는 제사, 이스라엘  백성만이 누리는 선민으로서의 특권, 율법적 요소 등을 여전히 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자기 백성이 진정한 성화를 얻는데 있다. 성도의 거룩케 됨은 죄로부터의 자유와 모든 얽매임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또한 성도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거룩의 참의미를 실현하시길 원하신다.

    (다) 진정한 예배.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것을 믿었으므로 성문 밖에서 죽으셨다. '장차 올 영구한 도성'(14절)이 없는 고난은 절망 그 자체이다. 이 도성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한 자에게 소유된다. 부활의 경험은 예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며(빌 3:10), 그와 더불어 고난을 나누는 것은 생활 가운데서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것이다(벧전 4:13,14).

  '영문 밖'(12절)의 개념은 무엇인가 ? 이것은 '구원의 새로운 장소'를 뜻한다. 구약시대에 성전은 예배의 장소로서만이 아니라 구원의 중심지로도 이해되었다.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 수양과 수염소의 피를 뿌리고 그 다음에 살아있는 염소를  취하여 그 위에 안수하고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게 해서 광야로 내보냈다(레 16:1 ff.).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장소는 중심에서 '주변으로' 이동되어졌다. 예수는 추방당하고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광야와 같은 곳에서 죽으셨다. 추하고  불결한 땅은 예수로 말미암아 거룩한 땅이 되었다. 구원이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실천적 면을 내포한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유대교의 선민 사상과 같은 사적 소유나 개인적 특권으로 해석해  왔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배타적 공동체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가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죽으신 그곳으로 따라 나서는 것을  포함한다. 즉 그것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가 있는 그곳에 나의 삶을 헌신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예배란 첫째는, 영문 밖에서 고난당하신 예수로 말미암은 감사의  찬미를 드리는 일이요(15절), 둘째는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다(13,16절).

  (3) 지도자와 성도의 관계. 

지도자와 성도의 관계의 깨어짐은 지도자와 성도간의 분리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분리를 초래하며, 이것은 공동체의 깨어짐을 초래한다.  이에 대해 통분히 여긴 저자는 본문에서 7,17-19절) 지도자와 성도의 관계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까) 모범적인 지도자상. 

본문은 모범적인 지도자상에 대해 네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교회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되 그 행실은  모범적이어야  한다(7절).

  둘째, 지도자는 성도들의 영혼을 '경성하여 지키는'(   ,아그뤼프네오) 사람들이다(17절). 이 '아그뤼프네오'라는 단어는 '잠'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의미는 타인의 생명을 구원하고 지키기 위해 늘 깨어 있음을 뜻한다.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도시에서 파수병으로 근무하는 병사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 안에 일어난 분열과 분쟁으로부터 성도들을 지키기 위해 경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내 양떼를 치라'(요 21:17)는 명령에 잠시도  졸지  않았던 성실한 지도자들이었다.

  셋째, 지도자는 즐거움으로 일해야 한다(17절). 이는 위로부터의  권위를  힘입었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즐거움은 현세의 만족에 근거하지 않는다.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소명(召命) 아래서 삶을 영위하므로 사람에게서 전적으로  자유하다.  그러나 그 자유에는 제한이 있다. 그 제한은 섬김이다. 비록 지도자는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하나, 그는 모든 사람들의 종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섬김 가운데서 다른 사람을  위한 자유를 생각해야 한다.

  넷째, 지도자는 성도들의 기도에 의지한다(18,19절). 지도자는 만능인으로서 행세하려고 완전을 보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성도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자이다.

    (다) 성도의 자세. 

위에서 제시된 모범적인 지도자상에 대한 성도의 자세는  기억하고(7절), 순종하며(17절), 문안하는 것이다(24절). 지도자는 그 자신을 위해 존재할 수 없다. 지도자는 성도들을 위하여 존재하며, 성도들은 그 지도자를 순종해야  한다.

또한 지도자는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는 경건의 훈련과 더불어 다양한 각도에서의 진지한 연구를 거듭하여 성도들을 일깨워야 한다. 성도들에 대한 제자 훈련과 양육이 온전하게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더 역동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실현하실 것이다. 성도는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하며 그들의 위로부터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

  * '영문 밖'에 대하여.  예수가 영문 밖에서 죽었다(12절)는 사실은 선교에 관한 보다 완전한 이해를 제공한다. 교회의 선교는 안으로 불러모으는 차원뿐만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흩어져야 한는 적극적 선교의 차원을 갖는다.

  교회는 '사도직'을 수행함으로써 자기의 존재를 확인한다. '사도직'은 하나님  나라와 세계를 연결하는 기본 개념이다. 따라서 선교는 그의 구속된 백성과 관계하며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어 일하게 하는 데 관계한다(눅 10:1). 본 주제강해에서는 '성문 밖'의 성경적 관점가 선교의 목표 및 선교의 방향과 대안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성문 밖'의 성경적 관점. 

이에 대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자.

    (까) 구약성경.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은 세계의 중심이었으며(겔 5:5),  어느 민족이든 구원을 위해서는 시온의 거룩한 산으로 와야 했다(시 6:2; 미 4:1 ff.).  북왕국과, 뭇 민족들의 포로가 된 후에도 유다는 이러한 자의식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거룩한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바벧론에서도 그들의 종말론적 비전을 생생하게 간직하였다. 때가 되자 몇몇 지도자들은 귀향하여 성전을 재건하였다. 포로가  되어  남아있는 사람들은 유배지에서 생활하면서도 해마다 예루살렘에로의  순례를  시도하였다. 따라서 구약 시대의 선교는 기본적으로 '변방에서 중심으로'이동하는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다) 신약성경. 

신약성경에서 예수의 죽음은 선교의 본질을 명백히 보여준다.  선교는 더 이상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다. 저자는 본장을 통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凌辱)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로 나아가자"(13절). 선교의 초점은 영원한 국외자(Outsider)로 자신을 동일화시킨 예수 위에 놓여져야 한다.

선교는 우리의 안락하고 화려한 성안의 장벽과 문을 뚫고 세상을 위해  '그가  당하신 능욕'을 어깨에 메고 그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교회의 건축과 성장은 '약속의 땅에서도 외방에 있는 것처럼'(11:9) 천막에 잠시 머물러 살았던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잠시 머물러 있는 공동체의 의미를 갖는다.  교회는 고립된 요새나 성곽이 아니라 잠정적 거주지요, 광야의 천막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성문 밖에' 현존하시는 예수께 나아가 임시 체류자로서의 삶을 살 때 비로소 하나님께 참된 찬양의 제사를 올릴 수 있다. 그 삶이란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신'(2:17)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과  신실함을 구현하는 삶이다. 이런 삶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는 '능욕을 지는'(13절) 삶의 자세가 요청된다. 이러한 삶이 바로 거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 선교의 목표. 

선교는 성문 밖으로 나아가 십자가에서 처형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바라보게 된 '장차 올 영구한 도성'(14절)을 목표로 한다. 죄와 악의  세계, 고난과 불의의 세계는 영원한 도성이 될 수 없다. 그 속에서 행하는 우리의 나눔과 섬김의 실천은 도성을 향해가는 통로에 불과하다.   

새 예루살렘에 대한 꿈이 없는 선교는 좌절에 이르고 만다. 그것은 순환성과 일회성에 끝나버리고 미래 앞에서 무능력하게 된다. 예수의 죽음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죄와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우리는  자유로운 세계를 바라보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와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일해야 한다.

  (3) 선교의 방향과 대안. 

성도는 편안하고 안락한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증언하는 사도적 대리인이  되어야  한다.

성도는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총을 개인적 소유로서만 간직하지 말고 주변의 이웃들에게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다른 사람을 위해 생명을 내줄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을 태세를 갖추고 있을 때에 참된 교회로서 존재할 수 있다.

  2. 마지막 인사와 축도(13:20-25)

  이제 저자는 본서의 독자들에게 간략한 몇 가지 사항을 권명함으로써 본서를 마무리 짓는다. 이 마지막 권면에는 앞에서 밝힌 모든 내용을 총괄한 뛰어난  목회적  교훈이 나온다.

  본문은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마지막으로 나타내면서 성도들을 축복  기도하고 있으며(20,21절), 다음은 성도들이 소중히 여겨야 할 성도간의 교제와 은혜를  언급함으로써 본서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22-25절).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과  형제들과의 교제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1) 하나님의 속성. 

마지막 권면 속에서 저자가 언급한 하나님의 속성은 무엇인가 ? 

    (까) 평강의 하나님. 

하나님만이 참된 평강의 원천이 되신다. 본서의 독자들은 하나님을 떠나 인간적인 차원에서 평강을 얻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  자신에게만 참된 평강이 있으며,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쾌락과 안일은 괴로움일뿐임을  교훈한다.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분리되었던 관계를 예수의 피흘리심을 통해 화해시키는 사랑의 행위자이시며 '평강의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은혜를 받은 성도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러한 평강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능욕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 

저자가 축도한 내용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기를 소원하는 기도문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선한 일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갖고 계서서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말한다(빌 1:6; 2:13).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혼자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온전케 된 자와 함께 일하신다. 그래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온전케 하시기를 기도하였다(21절). '온전케 하다'(  , 카타르티조)라는 말은 '충분하게 공급하다', '부서지고  찢어진  것을 수선하다', '조절하다', '구비하게 하다'등의 의미이다. 이는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부족함이 없게 되기를 기도한 내용이다. 결국 성도의 삶  전체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뜻이 이 땅 위에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방편이어야 한다.

  (2) 형제들과의 교제. 

저자는 이제까지 독자들에게 책망과 격렬한 어투로 충고한 것이 사사로운 감정이 아닌 그들의 신앙 성숙을 위한 권면이므로 시비없이 받아들여  주기를 바란다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한다. 이어서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디모데가 놓였다는 것과 이달리야에서 온 자의 문안 소식을 새롭게 전해주고 있다(23,24절). 디모데가 놓였다 함은 그가 옥살이에서 풀려났다고 해석함이 옳다. 이것으로 인해 그  당시에는 갇힌 자가 많았을 것을 추측케 해준다(3절).

  그밖에 본문에는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문안하라는 권면도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가 디모데와 자기 자신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 또 그들에게 문안하고 싶어하는 이달리야인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는 이유는 그만큼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에 대해 나타내주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은혜가 모두에게 있기를 바랐다(25절). 이러한 축도는  신약성경 서신서의 말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상례적인 문구이다(딛 3:15).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은 목회자로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호소할 수 있었던 뜨겁고도 간절한 축복의 기도였다.

이전글 : 히12
다음글 : 요1 : 1-18.무한풍성충만의Q말씀생명빛길진리은혜.아버지Q영광의 광채.창조주독생자JC.화육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