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09.1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영의 느낌_2.영의 법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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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법칙들

영의 지각(=성령의 생각)을 아는 것이 영을 좇아 행하는 첫째 조건이다.. 믿는이는 연합한 영의 지각(=영적 직감과 느낌을 사용하여 알게되는 성령의 마음의 소원)을 알고 혼(여기에서는 아직 완전함에 이르지 못한, 옛자아를 말하고 있음)의 느낌과 분별하기를(이해하고 인식하는 총명의 기름부음을 통해) 배워야 한다. 만일 믿는이가 영의 지각과 혼의 느낌을 분별할 줄 모른다면 영의 요구를 따라 행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굶주림을 느낄 때에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춥다고 느낄 때에는 무언가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지각은 어떤 필요와 요구를 나타내 준다. 사람은 자신의 육신에 있는 지각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만 물질적인 것들로 그 필요를 채우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이는 반드시 영의 지각이 어떤 것인가와 영의 각종 지각의 의미와 그 지각들이 요구하는 것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 요구를 합당하게 채울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오직 믿는이가 이렇게 할 때만이 영을 좇아 행할 수 있다.


영의 법칙에 대하여 믿는이가 마땅히 알아야 할 몇 가지 사항/영적 법칙들이 있다. 

믿는이가 영의 법칙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영의 지각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영에서 나온 어떤 것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에서 나온 많은 것들을 영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결국 일상 생활에서 영이 가져야 할 위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영에 직감/직관과 교통과 양심의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안 후에 우리는 영을 좇아 행할 수 있기 위하여 또한 이 기능들의 활동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성령으로 충만한 믿는이의 영에는 많은 살아 있는 활동이 있는 법이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상관하지 않을 때에 우리는 그만큼 피해를 보고 손해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영의 활동의 정상성을 살피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믿는이는 두뇌의 활동보다 영의 활동을 더욱 알아야 한다.  ((아래에서 정상적 상태와 비정상적 상태를 함께 기술한다))


---영의 중압감(근심의 짐에 억눌려 자유를 제한받음..우겨쌈의 느낌) 이해하고 처리하기

우리의 영은 극히 자유스러운 상태로 보존되어야 한다. 

항상 짐이 없고 하늘을 나르는듯한 영을 가진 사람만이 생명을 자라게 하고 사역에 장애가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믿는이는 영의 중압감이 무엇인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많은 때에 사람은 천근(斤)의 중압감이 마음에 있는 듯이 자신의 영에 압박과 묶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압감의 유래를 연구해 보아도 어떤 이유를 찾아내지 못한다. 이러한 중압감은 대부분이 갑작스럽게 임한 것이고 부지불식 간에 돌연히 몰래 들어온 것이다. 이러한 압박감은 믿는이를 성령과 동역하지 못하고 영의 기능을 상실케 하도록 그의 기쁨과 경쾌함을 약탈하기 위하여 대적이 사용하는 수단이다. 

만일 믿는이가 이러한 압박감의 근원과 영에 압박을 느끼는 그 의미를 모른다면 그는 자기의 영이 즉각적으로 정상 상태로 회복할 수 있도록 이 중압감을 처리하지 못한다.

그런데 믿는이는 자신의 이러한 느낌의 유래를 이상히 여기거나, 그것을 천연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조금도 상관치 않고 영에 압박을 그냥 내버려 둔다. 많은 때에 믿는이들은 이러한 중압감을 상관치 않고 임의로 계속 사역하기 때문에 갈수록 점점 괴로움이 더하여 자주 대적이 사용하는 압박감에 의해 희롱을 당하게 된다.

결국은 많은 때에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고자 하지만 그는 그러한 중압감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지 못하게 되고 이러한 압박 하에 영의 직감은 아주 우둔하게 변해 버린다. 그러므로 사탄과 그의 악령들은 믿는이의 영에 압박을 가하고 자유하지 못하도록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나 많은 경우에 믿는이들은 이 중압감이 사탄으로부터 온 것임을 모르고 혹 안다 하더라도 그것을 거절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지....만일 믿는이에게 이러한 중압감이 있다면 결국 실패하고 만다. 만일 아침에 이러한 중압감이 있는데에도 즉시 제거하지 않는다면 온 종일 실패하고 만다. 

자유의 영이 승리의 근본이다. 우리에게 아무 근심이 없는 영을 가지고 있어야만이 대적과 싸울 수 있고 하나님의 생명을 살아 나타낼 수 있다. 만일 영 안에 압박이 있다면 믿는이는 분별력을 잃게 되고 하나님의 참된 인도도 잃게 된다. 일단 사람의 영이 압박을 받으면 생각은 이에 영향을 받게 된다. 생각이 작용하지 못할 때에 모든 것이 멈추게 되거나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영 안에 압박감이 있을 때에 혹은 무게를 느낄 때에 즉시 처리하는 것이다. 결코 내버려 두는 태도를 취하지 말라. 당신이 중압감을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 중압감은 당신에게 고통을 안겨다 줄 것이다. 또한 이 중압감은 점점 심해질 것이다.

만일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것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습관이 되어서 그것을 제거할 생각도 갖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될 때에 부지불식 간에 이러한 중압감은 당신의 생명의 일부가 된다. 이렇게 될 때 영적인 것들은 당신에게 골치 아픈 것들이 되고 영적 노정에서 진보하기가 어려워진다.

만일 당신이 한번 처리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중압감은 더 쉽게 당신에게 임할 것이다.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은 즉시 수중의 일을 멈추고 영의 지각의 요구를 멸시치 않는 것이다.(요구를 멸시하는자는 경멸당하게 된다) 즉시 의지로 중압감을 거절하고 영으로 거절하며 그것을 입으로 선포해야 한다. 어떤 때에는 목청을 높여 JC께서 이루신 승리로 인하여 민는이 모두는 이미이긴자임을, 이 중압감을 반대하는 말을 외쳐야 한다. 어떤 때는 영의 힘으로 하는 기도로 거절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이 우리 영 안에 압박감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압감의 근원을 또한 더불어 반드시 제거하는 것도 필수적인 수속(手續)/수순이다. 만일 그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중압감은 계속 남아 있게 된다. 그러므로 대적의 공작을 거절할 때에 대적이 공격하는 이유까지도 거절해야 한다. 이럴 때에 당신은 그가 강탈해간 위치를 되찾을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영적 분별력을 발휘해 본다면 당신은 당신이 실패한 이유가 어떤 때, 어떤 일에서 하나님과 동역하지 않기 때문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동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적이 중압감으로 당신을 압제할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이러한 지위는 필히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는 대적이 우리의 실패로 인해 일하는 그 근원을 거절해야 한다. 이것은 대적을 도망가게 할 것이다.


---영의 봉쇄감(넘치던 생명흐름이 막힌 느낌) 이해하고 처리하기

영은 자신을 표현할 기관으로서 혼과 몸이 필요하다. 영은 주부로서 그를 위해 일하고 그의 뜻을 성취해줄 하인과 종들이 필요하다. 영은 전류로서 필라멘트가 있어야 그 빛을 표현할 수 있다. 만일 혼과 몸이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고 악령의 공격을 받는다면 영은 봉쇄되어 출구를 얻지 못하게 된다.

원수는 영의 욕구를 알기 때문에 그는 자주 믿는이의 혼과 몸 안에 역사하여 혼과 몸의 본래 기능을 멈추게 한다. 이러므로 영이 필요로 하는 표현 기관을 갖지 못하게 하고 영이 승리하는 지위를 박탈해 간다. 이러한 때에 사람의 생각은 공격을 받아 분란하게 되고, 감정은 외로움과 괴로움을 느끼며, 의지는 살아 있지 못하고 피곤하게 느껴 능동적으로 온 존재를 다스릴 수 없게 된다. 몸은 어쩌면 아주 피곤을 느끼고 혹은 조금 게을러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만일 믿는이가 자기의 혼과 몸이 이러한 공격을 받은 후에 즉각적으로 그것을 대적하고 처리하지 않는다면 그의 영은 봉쇄되어 대적과 산 방식으로 싸울 수 없게 되고 또한 자신의 승리의 진지(陣地)를 보존할 수 없게 된다.


일단 영이 봉쇄되면 믿는이는 활발한 태도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는 조금 수줍어 하게 되고 자신을 감추며 대중 앞에서 무엇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그는 승리의 진지(陣地) 후방으로 물러나기를 좋아하고 「나타나기를 싫어하게」 된다. 혹 그는 이것을 자신의 깨달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지로는 그의 영이 봉쇄된 것임을 모른다.


성경을 읽을 때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기도할 때에는 할 말이 없어져 버린다. 그는 자신의 모든 영적인 일과 체험에 대해 아무런 흥미가 없어져 버린다. 어떤 때는 그것을 재미 있는 것이라고 느낀다. 전달하러 갈 때 그는 조금도 효력을 느끼지 못하고 공식대로 일을 하는 것같이 느낀다. 만일 이러한 봉쇄된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면(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해서 혹은 그 사람 자신의 기도로 그 중에서 구원받지 않은 한) 나중에 대적의 더 심한 공격을 받게 되고 숨이 막히고 불통함을 느낀다. 만일 믿는이에게 지식이 없다면 이것을 이상히 여길 것이다.


더 일반적인 상황은 사람들이 그 근원과 원인을 연구하지 않고 포기하고 방임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실제로 말하자면 모든 영성의 체험과 느낌은 다 원인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의깊게 살펴서 이러한 것들을 우리 안에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체험의 원인은 바로 영이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영 밖의 혼과 몸이 닫혀서 결국 영은 표현할 길이 없게 된다. 

사탄은 영을 봉쇄하여 암실(暗室)에 가두고 혼이 영의 인도를 받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영의 봉쇄가 제거될 때 믿는이는 공기가 통하듯 과거의 가벼운 상태를 회복하게 된다.

이러한 때에 믿는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의지를 사용하여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이다. 

사탄을 대적하는 말을 하는 것인데 큰 소리로 십자가의 승리와 대적의 실패를 선포함으로 자기의 혼과 몸 안에 있는 대적의 역사에 전일(전심으로, 일심으로)하게 대항해야 한다.

우리의 의지는 이러한 선포 뒤에서 모든 봉쇄를 강력하게 거절해야 한다. 부르짖는 기도가 그 중의 한 방법이다. 많은 때에 기도는 영을 열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럴 때에는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요한다. 이때의 기도는 대적의 모든 공격을 이기기 위해 주 예수의 승리한 이름을 부르는 것이 가장 좋다. 또한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힘껏 밖으로 뚫고 나올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영의 피해(과민반응/불안정감, 너그러움 상실과 숨겨진 교만)... 인지하고 처리하기

믿는이의 영은 악한 영의 독(毒)을 먹을 수 있다. 이것은 곧 대적의 화전(火箭)이다. 그는 직접적으로 그의 화전(火箭)을 믿는이의 영 안으로 쏘아 넣을 수 있다. 

사탄은 근심과 걱정, 슬픔과 괴로움과 마음 아픔을 믿는이의 영에 심고 믿는이로 하여금 『영 안에 슬프게 한다』(삼상 1:15). 그러나 『영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 18:14).


그러므로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믿는이가 슬픔을 느낄 때에 그는 그 슬픔이 자신으로 인한 것이고 그것은 아주 천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뿐 그 슬픔의 근원을 살피지 않고 조금도 대적하지 않고 아무 소리 없이 아무 의심도 없이 자기에게 임한 모든 것을 받아 들인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일임을 기억하자. 우리는 결코 어떤 사상이나 느낌을 함부로 우리 안으로 받아 들이지 말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영을 좇아 행하려 한다면 반드시 범사에 깨어서 우리의 사상과 느낌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


어떤 때에 사탄은 우리의 영을 강팍하고 온유하지도 않고 불순종하며 비좁고 이기적이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의 영이 성령과 동역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믿는이의 사랑(의 너그러움/관용/용납)을 잃게 한다. 또한 온유한 인품과 남을 동정하는 것과 남의 약함을 체휼하는 마음을 잃게 한다. 이럴 때 그는 성령이 그를 크게 쓰지 못하게 한다. 이는 그가 이미 주님의 관대하심을 잃어버리고 자기를 어떤 한계 안에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때에 대적은 믿는이에게 남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 영을 준다. 이것은 믿는이가 가장 해를 받기 쉬운 점이다. 거의 모든 영적인 믿는이가 타락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렇게 남의 흠만을 잡고 복수하려는 것은 영적인 생명을 가장 심하게 해치는 독소이다. 믿는이는 이러한 것에 의해 독을 먹었어도 그것에 대해 분명치 않고 다만 그것이 자신의 미움이므로 제거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사탄에게서 온 것임을 모른다.

어떤 때에 사탄은 믿는이의 영을 비좁게/분열되게 만든다. 그는 믿는이로 남과 선을 긋고 갈라지게 한다. 만일 믿는이가 교회가 한 몸이라는 관점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작은 단체」를 주로 삼는다면 이것은 그의 영이 이미 위축되고 비좁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난다.


영적인 믿는이는 곧 하나님의 일을 자기 일로 삼고 온 교회를 마음 속에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만일 그의 영이 열린다면 생명의 강수는 어디나 흐르게 될 것이다. 그 반면에 그의 영이 비좁아진다면 그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자신의 유용성을 감소시키게 된다. 만일 믿는이의 영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포용할 정도로 넓지 못한다면 그의 영은 이미 독을 먹은 것이다.


어떤 때 사탄은 믿는이의 영을 교만하게 만든다. 이럴 때 믿는이는 자기를 높이고 존귀하다고 생각한다. 대적은 믿는이로 자기 자신이 볼 품 없는 사람이 아닌 아주 중요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일에서 자기 자신은 적지 않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한다. 이러한 영 또한 믿는이가 넘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영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악한 영은 바로 이러한 것들 혹은 다른 독소를 믿는이의 영 안에 주입한다. 만일 믿는이가 즉각적으로 이것들을 대적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즉시 「육체의 일」이 될 것이다. 만일 믿는이가 영 안에 사는 법을 알았다면 그것들은 최초에 독이 있는 씨앗에 불과할 뿐 육체의 일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믿는이가 그것들을 대적하지 않고 받아 들였다면-혹 부지불식간에-얼마 안 되어서 그것들은 육체의 죄로 변해 버릴 것이다.

영 안의 독소를 제거하지 않을 때 그 독소는 즉시 영 안의 죄로 변한다. 영 안의 죄는 어떤 죄보다 더욱 심각하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가라사대 너희는 무슨 영으로 말하는지도 모르는구나』(눅 9:54-55). 우리가 어떤 영을 품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많은 때에 우리는 우리의 영이 사탄에 의해 선동(煽動)되었는데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영이 틀렸을 때에 모든 것이 틀린 것이다.

이 두 제자의 체험에서 우리는 잘못된 영이 말에서 제일 잘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말이 표현하는 것은 목소리보다 더 많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 성조(聲調)/어조가 잘못되었다. 만일 우리가 승리하려면 우리의 말의 성조를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영이 악한 영에 의해 만진 바 될 때 우리는 즉시 온유함을 잃게 된다. 강팍한 음성과 강포한 음성과 귀를 따갑게 하는 음성은 다 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음성은 그 소리를 말한 사람이 이미 사탄의 독소에 의해 선동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평상시 어떻게 말하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정죄의 뜻을 갖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의 말이 참되다 하더라도 그 말 뒤에 비평과 정죄와 분노와 시기하고 미워하는 영이 잠재되어 있을 수가 있다. 우리는 마땅히 사랑 안에서 참된 말을 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영이 청결하고 온유하다면 우리는 참된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말 속에 정죄하는 영이 있다면 우리는 죄를 범한 것이다. 죄는 어떤 행위만이 아닌 어떤 상태인 것이다. 모든 일 배후에 있는 영이 제일 중요하다. 많은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일하면서도 죄를 범할 수 있다. 일은 진행하더라도 그 배후에 불성실과 싫어하는 것과 원망하는 영이 숨어 있을 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영을 달콤하고 온유한 상태에 보존해 두어야 한다. 우리의 영은 순전하고 전일(일심전력기울임...일편단심)해야 한다. 우리는 잘못된 영을 죄로 여기는가? 우리는 원수가 우리의 영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영이 원수의 독을 먹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이러한 죄를 제할 정도로 겸손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의 어조가 높아질 때 우리는 영으로 말을 멈추고 계속 말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말하는 사람에게 즉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같은 말과 청결한 말을 하기 원합니다. 우리는 원수를 반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형제에게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에는 죄가 남아 있게 된다.


믿는이는 자기의 영이 원수에 의해 선동되지 않도록 자기 영을 보존하기를 배워야 한다. 또한 어떻게 자기의 영이 달콤하고 온화하게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평상시에 우리는 원수의 화전(火箭)을 멸하기 위해 일찍이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한다. 이 뜻은 원수의 공격에 대항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앙망하기 위해 살아 있는 믿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의 방패이지 축출기(逐出機)가 아니다. 믿음은 화전을 끄기 위한 것이지 화전을 빼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만일 믿는이가 화전을 맞았다면 즉시 화전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즉각적으로 대적하는 태도를 취해야 하고 대적에게서 온 모든 것을 거절해야 하며 하나님께 정결케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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