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09.1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영의 느낌-2.영의 법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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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침체(무기력감), 그 뿌리를 인식하고 처리하기

이 「영의 침체」가 발생하는 이유는 대개가 믿는이가 (성령의 빛비췸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독자적으로) 자기 속을 들여다 보는데에서 기인한다(그것은 교만이다). 혹시나 혼 생명이 작용하여 아직 영적 생명으로 대치되지 않았기에 결국 모든 실망스런 결과는 자신 때문이고 외부 흑암의 세력의 침투나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경배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스스로 자책하여 넘어지게 된다.

(해결책은 당연히 있다. 믿는이의 영이 하늘보좌애 계신 그리스도를 향해 마음눈을 들어야 한다)... 밖으로 향하지 않고 속(자기내면)을 향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은 즉시 멈추게 되고 한 동안 지난 후에-만일 믿는이가 즉시 속을 들여다 보는 것을 처리하지 않으면-영은 혼에 의해 감싸지게(포위되게) 된다. 때로 이 영이 혼에 의해 침체되고 침잠케 되는 근본적 이유는 다름이 아닌 믿는이가 악한 영에 속았기 때문이다.


악한 영은 몸의 감각과 여러 가지 기이하고 즐거운 체험을 믿는이에게 준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 체험을 주께서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느끼시면 주께서 반기시는 때에 일시적으로 주님이 친히 주실 수도 있다...JC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셨듯이 그 기대를 포기하지는 말라..그러나 그것을 주시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다...떨기나무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영광에 대한 모세의 경험처럼...하지만 그것은 믿음으로 하늘보좌에 계신 JC를 바라보며 이 땅에서 성령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나라를 확장해 나가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임을 잊지말라!!...[여기가 좋사오니..라고 3제자들이 말할 때, 주님은 아니, 이제, 여기를 떠나자, 산을 내려가자] 말씀하신다.....모세는 믿음을 발휘하여 보자에 계신 하나님을 앙망하며 광야 장막안에서 기도로 나아가 친히 밝히 말씀하시는 영광으로 적셔져서 변화되어 갔다)  

만일 믿는이가 살펴보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감각 세계에서 생활하게 되고 이로 인해 영이 혼의 위치에 떨어지게 된다. 때로 믿는이는 그리스도가 계신 곳을 모르기 때문에 속아서 영을 하락시킨다. 성령이 믿는이의 영 안에 거하는 것은 곧 보좌에 앉은 그리스도를 믿는이에게 나타내시는 것이다.


사도행전과 에베소서와 히브리서는 현재 그리스도가 하늘의 위치에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믿는이의 영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 그러나 무지함으로 믿는이는 자기 속에서 그리스도를 찾으려고 한다. 그는 자기 속에 있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려 해보지만 이것은 그들의 영을 구름 위로 높이 치솟지 못하게 하며 침체되어 혼의 영역 안으로 떨어지게 한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작용들은 믿는이로 생활가운데서 영 안에 살기 보다 (혼의)느낌 안에 살게 한다. 


믿는이는 자신이 아직 영에 속하지 않았을 때에는 아직 실제적으로 영 안에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적은 가장(假裝)된 것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영 안에서 성령의 능력이 옮겨 부어짐을 체험한 후에 그의 앞에는 전에 몰랐던 별천지가 놓이게 된다. 위험은 바로 이 때이다. 사탄의 역사는 믿는이로 영 안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데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에게 크나큰 손실을 주기 때문이다. 사탄의 방법은 바로 혼과 몸의 감각/느낌을 이용하여 믿는이를 매혹하고 속이며 그것을 믿는이에게 누림이 되는 영적 체험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믿는이들이 비록 영적인 생명 안에 들어갔지만 영의 법칙들을 모르기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사탄은 여러 가지 몸의 느낌과 초자연적인 체험을 믿는이에게 준다. 만일 믿는이가 외부로부터 온 초자연적인 것들이나 감각상의 영적 체험을 의지한다면 이것은 믿는이의 영 안에 영적인 생명이 저지를 당하게 된다. 이것이 믿는이로 밖의 혼이나 몸 안에 살게 하고 이로 인해 (가장 깊은 곳에 있는)영의 하나님과의 동역을 잃게 한다. 이렇게 될 때 사람의 혼과 몸은 다시 새로이 높이 치솟고 세력을 얻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영이 완전히 침체하게 된다.


영이 침체될 때에 사람은 영의 지각을 감지 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많은 영적인 믿는이가 때때로 자신의 영이 없어진 것같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혼과 몸이 차지하는 위치가 너무 광범위하고 또 사람이 지각에 의해 살기 때문에 사람의 혼과 몸은 모든 압박과 고난과 싸움을 느끼게 된다. 이럴 때에 사람의 감각이 영의 역사를 대치하게 되고 영의 지각은 혼과 몸의 강력한 느낌 안에 매몰된다. 그 결과 영적인 생활과 일은 완전히 중단된다. 만일 이러한 상태를 오랫동안 내버려 둔다면 완전히 타락하여 악한 영에 들릴 것이다.


그러므로 영의 지각을 해치는 것은 모두 거절해야 한다. 광적인 웃음이나 슬픈 울음, 몸의 각종 열렬한 표현을 막론하고 이 모든 것을 거절해야 한다. 몸은 온전히 안정된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 초자연적인 것을 감지하는 것이나 지나치게 천연적인 사물을 감지하는 것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 영을 좇아 행하지 않고 육신을 좇아 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의 미세한 지각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한 가지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일단 영이 침체되면 혼은 영을 포위하고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에 믿는이는 자기의 영이 자신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밖으로 향하게 하기를 배워야 한다. 


믿는이는 자기의 영이 밖을 향하여 사탄을 공격하지 않을 때에 도리어 사탄의 공격을 받아 영이 침체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직 믿는이의 영이 밖으로 흘러 나갈 때만이 성령은 유출된 사람의 영을 통해 그분 자신의 생명을 흘러 보낼 수 있다.

믿는이가 자기 속을 들여다 볼 때 자기의 영은 침체하게 되고 성령의 「넘쳐 흐름」은 즉시 저지를 당하게 된다. 

성령이 하나님의 생명을 유출시키기 위해서는 믿는이의 영이 필요하다. 만일 믿는이가 자기 속을 들여다 봄으로 영을 침체하게 한다면 성령의 생명은 외부로 흘러나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이는 자기의 영이 무엇 때문에 침체되고, 어떻게 해야 자기 영을 원래 위치로 회복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믿는이는 자기 영의 능력이 새어나가는 것을 보는 자기의 영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고 즉시 회복할 길을 찾아야 한다.


--영의 부담((영적 부담감)) 이해하고 하나님께 순복하기

영의 부담은 영의 중압감과 차이가 있다. 영의 중압감은 사탄에게서 온 것으로서 믿는이를 괴롭게 하고 억압한다. 

영의 부담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서 그분의 뜻을 나타내고 믿는이의 (함께 기도함 통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시고 온전하신 뜻-참 뜻을 깨닫기 위한)동역을 얻어야 한다. 


영의 중압감은 압박을 주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쓸모가 없고 아무런 결과도 낳지 못한다. 

영 안의 부담은 하나님이 주신 짐으로서 그분으로 인해 (1) 일하거나 (2) 중보기도 하거나 (3) 메시지를 전하게 한다. 이러한 부담은 목적과 이유가 있고 이익이 있다. 믿는이는 영의 부담과 영의 중압감을 구분하기를 배워야 한다.


사탄은 믿는이에게 무엇을 짊어지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믿는이의 영을 포위하여 어떤 중량으로 믿는이를 억압한다. 사탄이 주는 중압감은 믿는이의 영에 속박을 주고 생각이 작용하지 못하게 한다. 짐을 지는 사람은 부담을 지기만 하는 반면에 사탄의 억압을 당하는 사람은 온 몸이 묶임을 당한다. 흑암의 권세가 임할 때에 믿는이의 몸은 즉시 자유함을 잃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부담은 이것과 다르다. 하나님의 짐이 아무리 「무겁다」하더라도 기도하지 못할 정도가 되지 않는다. 기도의 자유함은 결코 어떠한 부담 하에도 상실되지 않는다. 그러나 원수가 집어 넣어준 중압감은 믿는이로 기도 안의 자유함을 잃어버리게 한다. 또한 기도로 싸우고 대적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 중압감을 제거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부담은 우리가 기도하기만 하면 짐을 벗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원수의 중압감은 이렇지 않다.


또한 영의 중압감은 은밀히 기어 들어온 것이고 영의 부담은 영 안에서 성령이 역사한 결과이다. 영의 중압감은 아주 고통스러운 것으로 믿는이의 생명이 억압을 당하게 하나 영의 부담은 아주 즐거운 것-물론 육체는 아주 즐겁다고 여기지 않는다-이다. 그러나 만일 이 영의 부담을 거절하고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는 이것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마 11:30 참고).

모든 진실된 사역은 거의가 먼저 영 안에 부담으로 시작된다(따라서 영 안에서 부담감이 사라졌다면 주님 앞에서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고 그분을 위해 말하거나 누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게 하려고 우리 영 안에 어떤 부담을 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영의 법칙을 안다면 우리는 우리의 수중(手中)의 일을 임의로 계속함으로 영 안에 짐을 더욱 무겁게 하지 않을 것이다. 혹은 시일이 오래 됨으로 이 부담에 대한 느낌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이 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 보도록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할 것이다. 이 부담의 의미를 이해한 후에 우리는 우리가 아는 대로 행해야 한다. 일이 성사된 후에는 이 부담은 필경 우리를 떠날 것이다.


믿는이의 영은 평상시 늘 아무 압박이 없이 자유로워야만이 하나님에게서 부담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오직 자유한 영만이 성령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으로 가득한 영은 직감/영적직관의 예민도를 잃었기 때문에 좋은 그릇이 될 수 없다. 

많은 때 믿는이는 하나님에게서 부담을 받고서 그 부담의 요구대로 행하지 않으므로 그의 영은 그 부담으로 인해 수일 동안 고통을 느끼고 또한 하나님이 주신 부담을 줄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기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힘입으며 생각을 사용하여 이 부담의 의미를 살펴 아는 것이다.

많은 때에 영 안의 부담은 기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골 4:12). 사실상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부담(능력)을 넘어설 수 없다. 부담이 없이 계속 기도하는 것은 결코 효력을 볼 수 없다. 그런 기도는 자아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영 안의 기도의 부담은 오직 기도함으로 가볍게 할 수 있다. 모든 부담이 이와 같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에 어떤 일을 짊어지라고 했을 때 오직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일을 이행-기도, 그분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 등으로-해야만이 영 안에 부담이 덜어질 수 있다. 

영 안에 이러한 기도의 부담이 있기에 우리가 성령 안에서 기도하게 되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는 기도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영 안에 기도의 부담이 있을 때에 기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그러한 부담을 제하고 거기서 해방받을 길이 없다. 

그 일을 성사시켜야만이 즉시 부담이 제거된다.


적지 않는 때 믿는이들은 그들의 영 안에 쌓인 기도의 부담이 너무 무겁기에 기도를 시작할 때에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기도라고 느낀다. 그러나 기도하면 할수록 믿는이는 자기의 영 안에서 계속 아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영에 부담이 되는 것이 완전히 우리에게서 내려질 때까지 최선을 다해 기도 안에서 그것을 말해낼 필요가 있다. 생명과 우리의 모든 것을 기도 안에서 표현하면 할수록 우리는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 안에서도 늘 있는 한 가지 시험은 바로 부담이 다 털어지기도 전에 우리가 기도를 멈추는 것이다. 믿는이는 대개 영 안에 약간 상쾌함을 느낄 때 그의 기도를 이미 마쳤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영적인 일의 시작인줄이야!  만일 이 때에 다른 일로 돌이킨다면 영적인 일은 손상을 입게 된다.


믿는이는 결코 영적인 일은 다 기쁘고 상쾌한 것인 반면에 부담이 있는 것은 영적 체험을 잃게 된다고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영 안의 부담이 곧 참된 영적인 일이라는 점을 믿는이들이 모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사람이다. 소위 종일토록 감각에서의 쾌락과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짐을 지기를 두려워 하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사는 혼적인 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부담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우리는 이제 자신이 타락했다거나 무엇을 잘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탄은 믿는이들로부터 공격을 피하기 위해 믿는이들이 이러한 논조(論調)를 갖는 것을 가장 좋아 한다. 우리는 자신을 잘못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사탄의 말을 듣고 우리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잘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사탄(마귀)은 더욱 우리를 참소하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참된 영적인 일은 바로 사탄을 향해 공격하고 믿는이들을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다 즐거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자아에 대해 죽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혼적인 사람 중에 참된 영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종일토록 즐거움을 느낀다고 해서 이것이 곧 믿는이가 신령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도리어 자기의 느낌을 주의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전진하는 사람만이 신령한 사람이다.


믿는이가 영 안에 부담을 받아 원수와 싸울 때에 홀로 모든 인간 사회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한적한 곳에 가서 원수와 싸울 때가 얼마나 되는지! 또한 싸움의 끝에는 얼굴에 웃음까지 잃을 때가 있다. 그러므로 믿는이는 주님이 그에게 주신 부담을 기뻐해야 한다.

믿는이는 반드시 영의 법칙을 알고 하나님과 동역할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그는 이러한 부담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을 고통에 빠지게 하고 얼마 안 되서 그 부담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과 영광스러운 동역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 안에 부담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즉시 기도 안에서 그 부담이 무엇을 위한 부담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만일 싸우라는 부르심이라면 나가서 싸워야 한다. 만일 그것이 복음 전하라는 부르심이라면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기도하라는 부르심이라면 기도해야 한다. 낡은 부담이 지나가고 새 부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과 동역하기를 배워야 한다.


---영의 쇠퇴(메마름)...이해하고 처리하기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이 믿는이의 영 안에서 조수(潮水)처럼 쇠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알듯이 믿는이가 혼에 속할 때에 그들은 그들의 느낌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즐겁다고 느낄 때가 영성이 가장 높을 때라고 생각한다. 그 반면에 고갈되고 안식이 없다고 느낄 때가 영적 생명이 가장 낮을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들의 느낌일 뿐 영적 생명의 실제적인 상태가 아니다.


영적 생명도 가라앉을 때가 있다. 이것은 혼의 감각과 다르다. 믿는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나서 그는 어느 한순간에 전과(충만할 때) 똑같을 수 있으나 얼마 못되어 점점-돌연적인 것이 아님-쇠퇴해진다. 감각의 쇠퇴와 실제적인 쇠퇴의 차이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자는 대개가 돌연적인 것이고 후자는 대개가 점차적인 것-자기 영 안의 생명과 능력이 자기가 단번에 받은 것이었으나 이제는 점차적으로 쇠퇴했다고 느낀다-이다. 이것은 그의 영 안에 있어야 할 기쁨과 평강과 능력을 잃게 한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하루하루 그를 약화시킨다.


이럴 때에 믿는이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도 아무 맛이 없고 성경을 읽는 것도 흥미가 없으며 그의 마음에 감동을 줄만한 메시지나 구절도 없는 것같이 느끼고, 설사 그러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전과 같이 많지 않다. 기도도 고갈되고 무미건조하고 아무 의미가 없고 할 말이 없어진 것같이 되어 버렸다. 간증하기도 싫어지고 전과 같은 넘쳐 흐름이 없는 것 같이 되어 버린다. 생명도 전과 같이 강건하지 않고 그렇게 흥분되거나 가볍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게 되어 모든 것이 다 쇠퇴한 것 같이 되어 버렸다.


조수(潮水)에는 실지로 밀물과 썰물이 있다. 그런데 우리 영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도 이러한 오르락 내리락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생명은 쇠퇴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영원히 넘쳐 흐른다. 하나님의 생명은 바다의 조수같이 밀물 썰물의 구분이 없고 영원히 흐르는 생수의 강과 같이 항구적으로 흐른다(요 7:38).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은 조수와 같이 어떤 때 반드시 쇠퇴할 필요가 없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영영 변하지 않으신다. 그분에게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 영 안에 있는 생명은 쉬지 않고 흐르는 강수같이 넘쳐 흘러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믿는이가 자기 생명이 이미 쇠퇴해졌다고 느낀다면 이것은 자기의 생명이 쇠퇴한 것이 아니라 이 생명이 멈추고 흐르지 않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쇠퇴가 불필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결코 사탄에게 속아서 아직 육체 안에 사는 사람은 영원하고도 항구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은 생수의 강같아서 저지함이 없다면 영원하고도 항구적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믿는이가 항구적으로 넘쳐 흐르는 체험을 가질 수 있다면 쇠퇴함은 필수적인 것이 아닌 비정상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지금 문제는 영적 생명이 쇠퇴하는데 있지 않고 어떻게 그 생명이 넘쳐 흐르게 하느냐에 있다. 현재의 필요는 어떻게 해야 충만할 수 있느냐에 있지 않고 어떻게 해야 흐르게 하느냐에 있다. 생명의 근원이 아직 믿는이 안에 있기는 있지만 단지 현재 막혔을 뿐이다. 들어오는 입구는 문제가 없는데 나가는 출구가 막혀 있다. 바로 흐르지 않고 통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의 강수가 다시 흘러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출구가 뚫린다면 생명의 강수는 변함없이 흐르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생명이 아니라 더 많은 생명의 넘쳐 흐름이다. 믿는이가 자기 영 안에 있는 생명이 쇠퇴한 것같이 느껴질 때에는 어떤 부분이 막힌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사탄은 그것을 당신의 영성의 퇴보로 여기게 할 것이다. 주위의 사람들은 당신이 능력을 잃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당신 자신은 당신이 무슨 큰 죄라도 지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사실 같이 보이지만 실지로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일 때가 있으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때 그렇게 된 것은 끝없는 강수를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과 동역하는 법과 하나님의 조건을 이행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믿는이는 즉시 기도하고 묵상하며 시험하고 연구하고 조심하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쇠퇴」한 원인을 계시해 주시도록 그분께 간구해야 한다. 당신은 살아 있는 방식으로 영적 생명이 항상 흐르게 하는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부분이 어디인지 그 「쇠퇴」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참으로 쇠퇴했다는 것-이 단계는 또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인정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살아 있는 방식으로 쇠퇴하게 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사탄과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의 모든 가상(假想)이 믿을만하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때로는 참된 것일 수가 있기 때문에 역시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 원인을 안 후에는 즉시 그 근원을 처리해야 한다. 영적 생명은 자동적으로 흘러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만일 당신이 영적 생명의 흐름을 저지하는 원인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영적 생명은 흐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매번 영성의 「쇠퇴」가 있을 때마다 당신은 즉시 기도와 묵상 가운데서 그 원인을 연구해보고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생명이 흐르는 법칙을 이해하고 원수의 공격을 대적하는 것은 이 생명으로 다시 넘쳐 흐르게 한다. 이럴 때에 이 생명은 원수의 모든 견고한 진을 파하기 위해 다시 흥분되어 전보다 더 힘 있게 된다.


---영의 실직(내적인 생명빛 비췸의 상실감)...이해하고 처리하기

사람의 영은 전등과 같다. 영이 성령을 접할 때에 빛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성령을 떠나면 즉시 흑암으로 덮여진다. 본래 사람의 영은 여호와의 등이었다(잠 20:27). 하나님의 (사람의 영을 만드신)목적은 영이 빛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었다.(그럼으로써 항상 말씀과 성령의 빛비췸 가운데 주의 길로 주와 동행하시기를 원하셨다)그러나 많은 때에 믿는이의 영은 흑암에 덮여 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사람의 영이 성령과의 접촉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는이의 영이 성령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알아 보려면 이 영이 광명을 잃었는지를 보면 된다.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의 영 안에 거하시고 사람이 성령과 동역하는 것도 그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의 영이 비정상적이 되는 것은 마치 성령과의 연결을 잃고 빛 비춤을 잃은 것과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과 동역할 수 있도록 자기의 영을 건강하고 조용한 상태에 유지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영이 외부의 분란함에 영향을 받을 때에는 즉시 성령과 동역할 수 없고 흑암으로 변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이상에서 말한 여러 가지 상태는 모두 영을 실직하여 성령과 동역하지 못하게 한다. 영이 실직할 때에 승리는 불가능한 일로 변해 버린다. 만일 믿는이가 아침 일찍 일어날 때에 자기 영이 없어진 것같이 느낀다면 원수는 이것은 어제 그가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육신의 피로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믿는이가 살피지 않는다면 그의 영이 실직하여 하루의 시험을 대적하고 하루의 일과를 마칠 힘이 없게 된다.


그는 마땅히 즉각적으로 자기의 몸이 영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과 사람의 영이 마땅히 있고 강건하여 능히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한 후에 그는 자기의 영이 현재 원수의 공격을 받고 있고 이미 실직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는 즉각적으로 원래 상태대로 회복시켜 달라고 주께 간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에 그는 실패하고 만다. 아침 일찍부터 우리의 영이 실직했다면 결코 그런 상태가 정오까지 지속되도록 내 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길이다.


믿는이가 자기의 영이 실직하는 것을 알 때 즉각적으로 사탄의 모든 역사와 그렇게 역사한 원인을 거절해야 한다. 만일 이것이 원수의 공격에 지나지 않는다면 대적할 때 우리의 영은 자유함을 회복하게 된다. 만일 이 공격에 원인이 있다면(즉 믿는이가 그를 위해 여지를 남겨 두었기 때문이라는 뜻임) 마땅히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서 제거해야 한다. 이것은 믿는이의 과거 역사와 관련이 있다. 그는 사탄이 왜 자신의 영을 공격할 수 있는지,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환경과 가정과 친척과 친구와 자녀와 사업 등을 일일이 기도해 보아야 한다.


만일 그가 어떤 일에 대해 기도할 때에 영 안에 불편한 것이 느껴진다면 그는 자기의 영이 공격받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것을 제거해야 한다. 기도를 마친 후에 그는 자유함을 얻고 영도 그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 때로 영이 실직하는 이유는 믿는이가 자기의 영을 자유한 상태에 방임하고 통제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데서 기인한다. 결국 그는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된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는다』(고전 14:32)고 말한다. 「자기의 영을 좇는 사람」은 「우매한 선지자」(겔 13:3)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믿는이가 자기의 영이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못 미치지 않도록 의지를 사용해서 영을 통제하지 않고 성령과의 동역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영도 역시 실직하게 된다. 믿는이는 마땅히 사람의 영도 방종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잠언에 「거만한 영」(16:18)이라는 말씀이 있다.


사람의 영은 성령을 떠나서 단독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만일 믿는이가 성령께 순종하도록 자기의 영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그의 영은 자유로이 행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이는 자기의 영이 하나님의 궤도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안정됨 가운데에서의 하나님과의 교통을 잃으므로 하나님과 동역을 잃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때로 영의 실직은 믿는이의 영이 강팍하게 되는 데에서 기인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부드러운 영이 필요하다. 만일 영이 강팍하고 자신을 위하며 겸손히 순종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성령의 역사는 제재를 받게 된다. 성령을 의지하는 영만이 성령의 뜻을 성취할 수 있다.


믿는이는 반드시 제일 짧은 시간 내에 성령과 일치한 뜻을 따르려는 「자원하는 영」(출 35:21)을 가져야 한다. 믿는이의 영은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감지하여 즉각 반향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예민해야 한다. 만일 믿는이의 영이 약간 강팍해져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지 않을 수 없고 영 안에서 성령이 발한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이는 자신의 영을 부드러운 상태에 보존하고 항상 영 안의 세미한 지각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도가 말한 『영을 근심케 하지 말라』(살전 5:17)의 의미이다.


영의 모든 역사와 감동과 지각을 믿는이는 마땅히 조심스럽게 추종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그의 영 안의 지각이 갈수록 예민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하나님도 이 가운데서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실 수 있다.


영을 좇아 행하기 원한다면 믿는이는 마땅히 자기의 영이 언제 실직하여 성령과 동역하지 못하게 되는지와 무엇 때문에 실직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는 자기의 영이 항상 안정과 단순함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평안함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접촉을 잃게 하는 원수와 자신에게서 나온 모든 분란함을 대적하도록 깨어 자기 영을 지켜야 한다.


===영의 상태를 인식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최상의 진복가운데로 들어올리기

총괄적으로 말해서 믿는이가 영의 모든 법칙을 알아야만이 영을 좇아 행할 수 있다. 만일 그가 깨어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동역을 잃어버린다면 그는 타락/하락한 것이다.(그러나 주를 앙망하며 그 이름 부르고, 회개할 때 회복가능하다). 

영의 법칙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영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다. 영의 상태를 살피는 이것이 바로 이상에서 말한 것들의 주된 부분이다.


믿는이는 자신의 영의 상태를 인식해야 한다. 그는 영의 정상적인 상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정상성을 잃은, 비정상적 영의 상태가 어떤가를 알아야 한다. 본래 영은 사람의 혼과 몸을 다스리는 가장 높은 위치에 처해 있으며 가장 능력 있어야 한다. 믿는이는 마땅히 자기의 영이 이러한 상태에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그는 자기의 영이 싸움이나 환경 때문에 정상성을 잃고 손상 입은 상태가 아닌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영의 상태는 다음 네 가지이다.

1) 영이 안정되고 강건하여 정상적인 위치에 처함 [안정되고 균형-조화로운 강건함]....성령님의 통제따라 전적으로 순복할 때 부어지는 안식, 재충전, 넘치는 공급으로 늘 새로운, 넘쳐나는 영적 생명의 활기 충만

2) 영의 상함 즉 침체됨을 뜻한다. [영적 침체]....치열한 영적 공격에 대해 깨어 기도하지 못함으로 인한 영적 에너지 소진, 냉담, 답답함, 무력감, 영적 기쁨과 평강 소실된 느낌

3) 영이 재촉함과 강요당함으로 지나치게 활동함.[영적 과로]....성령님이 아니라 혼의 요구에 따라 자행자제하여 과로함으로써 야기된 영적 피로, 무기력, 균형-안정감 상실..영적 무장 해제상태.

4) 영에 더러움이 있음(고후7:1). 즉 영에 문제가 있고 죄를 용납함. [영적 더러움]...강퍅함/불손종의 태도, 숨겨진 교만과 질투 등 영적인 죄를 은연중 허용함, 천연적 사랑/감정/세상의 가치와 사상을 허용함


믿는이는 최소한 영의 이 네 가지 상태를 알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많은 때에 믿는이의 영은 깨어 있지 않거나 원수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일종의 「밀어댐」을 당하여 결국 그의 영은 가라앉게 된다. 이때에 믿는이는 하늘의 위치와 광명과 승리를 잃어버리고 냉담함과 답답함과 높이 치솟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다. 영은 슬픔이나 기타 수백 가지 원인 때문에 완전히 하락하여 날아갈듯한 기쁨을 잃어버리게 된다. 영이 이렇게 상처를 입으면 정상적인 수준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때때로 영도 재촉함을 당하여 정상적인 위치를 떠나 미친듯이 달릴 수가 있다. 믿는이는 혼의 자극으로 인해 뜨거워져서 결국은 영의 안정을 잃어버리게 된다. 때때로 믿는이는 「살아 있는 물체」를 좇으므로 「풀어진 영」을 갖게 된다. 지나친 웃음과 다른 종류의 원인도 다 영을 방임하고 수습하지 못하게 한다. 대적과의 오랜 싸움도 역시 영으로 지나치게 활동하게 한다. 사탄은 믿는이의 영이 그와 싸울 때에(혹은 그 후에) 그 싸움에 너무 시달려서 영의 냉철함을 잃고 쉬지 않고 활동하게 한다. 그는 기이한 기쁨이나 다른 것을 믿는이에게 줌으로써 믿는이의 영이 생각이나 의지의 통제를 떠나서 활동하게 한다. 이런 것에서 보호받지 못할 때에 믿는이는 실패하고 만다.

----때때로 우리의 영은 너무 낮거나 너무 높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더러움이 있다. 이러한 더러움은 때로 영의 강팍함과 불순종 등등의 영 안의 태도로 인한 것이다. 때로는 교만, 질투 등과 같은 영 안의 죄들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천연적인 사랑과 감정과 사상 등의 혼의 작용이 섞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이 더렵혀질 때 정결케 될 필요가 있다(고후 7:1, 요일 1:9).

만일 믿는이가 영을 좇아 행하기 원한다면 자기의 영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의 영이 정상적인 위치에 있는지, 아니면 너무 낮거나 너무 높거나 더럽혀진 위치에 있는지를 식별해야 한다. 믿는이는 어떻게 성령의 수준에 이르도록 자신의 억압당한 영을 들어올리고, 어떻게 자기의 의지를 사용하여 지나치게 활동한 영을 제재하여 정상으로 되돌아오게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또한 자신의 영이 하나님과 새로이 동역할 수 있도록 어떻게 더럽혀진 영을 정결케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원본 :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 영의 법칙들]--나름대로 부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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