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6.04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잠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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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의, 별거, 구제

1-4절, 왕의 마음, 정직, 의, 교만

[1절]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洑)의 물(팔게-마임)[수로(水路), 물길]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 안에 있는 물길 같다. 세상에서 통치자인 왕의 마음, 곧 그의 계획, 소원, 의향, 의도, 판단은, 온 우주의 통치자인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섭리하셔서 그의 원하시는 바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지고지선의 뜻 이루시려 원하시는 바로 그때에 언제나  주권적으로 역사에 간섭하시는,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반드시 마음에 새기고 기대할 것!!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왕의 모든 일, 세상의 모든 사람의 모든 일, 즉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섭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여러 날 동안 놓아보내지 않게 하셨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고 9번 기록한다(4:21; 7:3; 9:12; 10:20, 27;11:10; 14:4, 8, 17). 

하나님께서는 파사 왕 고레스를 감동하셔서 유대인 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허락케 하셨고(스 1:1-3), 

또 아닥사스다 왕을 감동하셔서 느헤미야를 예루살렘 총독으로 보내어 그 성곽을 건축케 하셨다(느 2:5-6). 

시편 115:3,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편 135:6,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사도 바울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고 말했고(엡 1:11), 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했다(빌 2:13).

[2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달아보시느니라].

‘행위’는 ‘길’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걸음과 행위를 가리킨다. 

인생은 하루하루 길 가는 나그네와 같다. ‘심령’이라는 원어(립보스 )는 ‘마음들’이라는 말로서 ‘마음의 여러 활동들’을 가리킨다고 보인다. 

본문과 비슷하게, 잠언 16:2도,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말한다. 거기에서 ‘심령’이라는 원어(루코스 )는 ‘영들’이라는 말로서 ‘영의 여러 활동들’을 가리켰다고 보인다. ‘감찰한다’는 원어(타칸)는 ‘(길이나 무게를) 측량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자기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다 정직하고 깨끗한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영의 여러 활동들을 감찰하신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의 깊은 생각과 의향과 뜻을 다 드러내지 않지만, 전지(全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살피시고 재어보시고 달아보시고 판단하시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3에서 주 예수께서는,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즉 우리의 생각과 의향과 판단이 착한지 그렇지 못한지, 겸손한지 교만한지, 진실한지 거짓된지, 사랑의 마음인지 미움의 마음인지, 거룩한 마음인지 불결한 마음인지, 순수한 마음인지 아니면 불순하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마음인지, 하나님의 영광만 위하는 마음인지 혹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의 낯을 보거나 그의 비위나 맞추는 마음인지를 살피시고 우리의 마음을 재어보시고 달아보시고 판단하시고 선악간에 보응하시는 것이다.

[3절]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는 실제의 삶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지 지식이나 형식이 아니라 바르고 의로운 삶, 곧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마음과 실제의 삶이다.

제사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적 의식을 가리킨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그것은 상징적 행위이었다. 그 실체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 성도의 경건과 회개, 속죄 신앙, 헌신과 순종과 감사 등이다. 의로운 삶은 참된 경건의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종교 의식은 의로운 삶을 동반하지 않는 형식적, 위선적 행위로도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런 일에 대해 강하게 책망하셨다. 이사야 1:12-15,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말라기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종교 의식보다 의롭고 선한 삶을 원하신다.

[4절]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니르 )[경작하는 것(KJV), 등불(BDB, LXX, Vg, Syr, NASB, NIV)]은 다 죄니라.

높은 눈과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다. 

잠언 6:16-17은,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이라고 말한다. 잠언8:13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을 요구하신다. 주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 

시편 131편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라고 말하였다(시 131:1-2).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의 명하시는 바이다.

본문은 또 악인의 등불은 죄라고 말한다. 등불은 기쁨과 즐거움을 가리킨다. 물론, 악인의 기쁨과 즐거움은 일시적이며 후에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셨으나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먹고 마셨다고 책망하셨다(사 22:12-13). 예수께서도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라고 말씀하셨다(눅 6:25). 악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께 미워하시는 죄악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물길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계 역사를 주관하심을 알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또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 안에 있음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해야 한다.

둘째로,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달아보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정직하게만 살아야 한다.

셋째로,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신다. 우리는 단지 형식적 교인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경건과 속죄 신앙을 가지고 의와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넷째로,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기뻐하는 것은 다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교만한 마음과 악인의 즐거워함을 미워하신다. 우리는 늘 온유와 겸손으로 선을 행하기를 기뻐해야 한다.

5-8절, 근면, 속임, 강포, 범죄자의 길

[5절]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원문에는 ‘확실히’라는 말(아크 )이 두 번 사용되었다. 다시 번역하면,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확실히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확실히 궁핍함에 이르리라”(NASB).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확실히 풍부함에 이를 것이다. 

잠언 10:4는,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고 말한다. 무슨 일이든지 많이 기도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새로운 일에도 도전하고 개발하며,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철저히 준비하고 인내하며 시행하는 자는 성공할 것이다. 그러려면 부지런해야 하고 그런 자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부지런한 자의 계획한 일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조급한 자, 즉 마음이 조급하고 손과 발이 조급한 자는 확실히 궁핍함에 이를 것이다. 그런 자는 무슨 일을 할 때 많이 생각하거나 많이 연구하거나 많이 준비하지 못한다. 그런 자에게서는 도전 정신, 개발 정신, 그리고 인내와 끈기를 찾아보기 어렵고, 또 그런 자에게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시간이나 돈이나 힘만 낭비할 뿐이다. 그러므로 잠언 19:2는,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 하느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옷을 입을 때 급하다고 첫 단추를 잘못 끼어나가다가 다시 풀고 처음부터 바로 끼어 더 더디게 된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또 바쁠 때 서두르다가 크고 작은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 사고가 나면 일이 더 더디어지고 크게 낭패를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이나 급할수록 침착히 그러나 끈기 있게 행해야 함을 배운다.

[6절]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수증기]니라.

속이는 말은 거짓말, 불신실한 말, 일구이언, 약속을 지키지 않는 말, 과장된 말 등을 포함할 것이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불의하고 부정직하게 재물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행위는 탐심과 죄성(罪性)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자체가 죄이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다. 죄의 값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만 죄요 죽음에 이르는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모든 죄가 결국 다 죽음에 이른다.

또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불려 다니는 수증기와 같다. 수증기는 방금 전까지 있는 것 같다가 금방 사라지는 허무한 것이다. 

불의하고 거짓되게 번 돈은 쉽게 없어지고 만다. 잠언 13:11은,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고 말하고, 또 잠언 20:17은,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자갈]가 가득하게 되리라”고 말한다. 수천만원을 모으기는 힘들어도 날리기는 쉽다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종종 본다.

우리는 진실히 일하며 돈을 벌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며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가르쳤다(살전 4:11; 살후 3:12). 또 그는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증거하며(살후 3:8), 그 자신이 손으로 일하여 그의 필요를 해결하는 모본을 보였다(행 20:34-35).

[7절]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공의 행하기를 싫어함이니라[거절함이니라].

악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악인은 대체로 강포하다. 악인은 말이 거칠다. 그는 남을 쉽게 욕하며 부당하게 비난하고 남의 명예를 훼손하고 남을 중상모략한다.

악인은 행동도 거칠다. 그는 자기보다 약한 자들에 대해 강압적이며 또 자기의 뜻에 맞지 않으면 행패를 부리고 남을 해친다.

악인의 강포는 결국 자기를 소멸시킨다. ‘소멸한다’는 원어(가라르)는 ‘끌고 가버린다’(drag away)는 뜻이다(BDB). 어디로 끌고 가 버리는가? 더욱 잘못된 길로, 마침내 죽음과 멸망의 길로 끌고 가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울은 정당한 이유 없이 신하 다윗을 죽이려고 끈질기게 노력했지만, 죄만 자꾸 짓다가 마침내 자신이 죽고 말았다.

다니엘의 동료들은 충성된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 계획하고 마침내 그를 사자굴에 처형시키는 일에 성공한 듯하였으나, 도리어 자신들과 자신들의 처자들이 그 사자굴에 던지워 죽임을 당하였다. 아하수에로의 가장 높은 신하이었던 악한 하만은 모르드개와 그의 유다 민족을 다 죽이려고 계획하였으나, 결국 자신이 죽고 말았다.

악인이 멸망하는 까닭은 공의 행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공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은 악을 행하지 않는다.

사랑은 강포하지 않는다.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겸손하다. 그러나 악인은 평소에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그 계명 순종하기를 거절하였고, 그래서 그는 악하고 강포하게 되었다. 그는 점점 더 잘못된 길로 나아가며 마침내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8절]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죄를 크게 범한 자’라는 원어(와자르 )는 ‘죄를 범한 자’라는 뜻이며, ‘심히 구부러지다’는 원어(하파크파크 )는 ‘구부러지다’는 뜻이다. 

‘죄를 범한 자의 길’은 죄를 범한 자의 행실을 가리키며 또 그의 가는 길, 그의 삶의 과정도 포함한다. 죄를 범한 자의 길은 구부러져 있다. 

그 길은 우선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에서 떠나 있다. 물론 어떤 때에는 일치하게 보이기도 할지 모르나, 어떤 때에는 조금, 또 다른 때에는 매우 멀리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탈해 있는 것이다. 

악인의 삶은 매우 주관적이며 감정적이고 변태무쌍하여 종잡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악인의 삶의 과정은 구부러져 있다. 그 길은 평탄치 못하다. 그의 길에는 가시덤불과 재앙이 많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이사야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파멸과 고생이 죄인들의 길에 있고 그들이 평안의 길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다(롬 3:16-17).

그러나 깨끗한 자의 길은 곧다. 사람 중에 정말 깨끗한 자는 아무도 없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 받고 죄를 버리고 속죄신앙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자는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오는 자는 주홍 같은 죄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며 진홍같이 붉은 죄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사 1:18). 이제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행하며 악을 버릴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깨끗한 요셉에게 형통함을 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평안과 형통을 주실 것이다(창 39:2-3, 23).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른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조급한 마음으로 행하지 말고 많이 기도하고 부지런히 준비하고 계획해서 해야 한다.

둘째로,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며 불려다니는 수증기와 같다. 우리는 결코 더러운 이를 구하거나 탐하지 말고 범사에 진실하고 정직하고 정당하게, 부지런히 일하여 돈을 벌어야 한다.

셋째로,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한다. 왜냐하면 공의 행하기를 거절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의와 강포를 버리고, 혹시 실수하였다면, 즉시 회개하고 온유하며 겸손하고 정직하며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넷째로, 죄를 범한 자의 길은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바르다. 우리는 죄 짓지 말고 바르고 깨끗하게 살아야 평안과 형통을 누린다.

9-12절, 다투는 여인, 악인, 벌, 공의

[9절]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집에서(베스 카베르 )[집에 함께]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핀나스-가그 )[지붕의 한 구석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다투는 여인과 집에 함께 사는 것보다 지붕의 한 구석에서 사는 것이 낫다. 사람은 누구나 조용히 살고 싶어한다. 행복의 중요한 한 요소는 평안이다. 그것은 집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다. 다툼은 사람을 피곤케 만든다. 다툼은 오해, 미움, 욕심, 시기심 등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사랑과 긍휼, 관용과 이해심이 있을 때, 평안도 있을 것이다.

성도의 덕은 사랑과 화평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교만치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참는다(고전 13장).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하였다(엡 4:31-32). 그때 평안과 행복도 있을 것이다.

특히, 여성의 덕은 온유함과 조용함과 순복함이다. 디모데전서 2:11,“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베드로전서 3:1-4,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조용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가정의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 남편의 아내 사랑과, 아내의 남편 순종으로 인한 평안에 있다.

[10절]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악인의 영혼은 악을 사모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악인은 심히 악하다. 가인은 악을 고집하였고 동생 아벨을 죽였다(창 4:8).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심히 강포하였다(창 6:11, 13).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은 심히 악하여 롯의 집에 들어온 사람들을 성폭행하려 하였다(창 19:5). 

고라의 친구들과 이스라엘 백성의 족장들 250명은 하나님의 종 모세를 심히 대적하였다(민 16:1-2). 이스라엘의 열왕들은 악하였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신약시대의 유대 종교지도자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 주님을 3년이나 좇았던 가룟 유다는 은 30개를 받고 주님을 배신하고 그를 넘겨주었다.

사람은 심히 부패되고 악하여 선을 행할 수 없다. 

예레미야 13:23,“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로마서 3:10, 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레위기 19:18,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호세아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미가 6:8,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11절]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는 경성하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경성하다’는 원어(카캄 )는 ‘지혜롭다, 지혜로워지다’는 뜻이다.

잠언 19:25는,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경성하리라”고 말한다. 거만한 자는 자신을 높게 여기고 남을 멸시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자이다. 우리는 그런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런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 곧 순진해서 아무 말이나 믿고 따름으로 잘못된 길에 빠지기 쉬운 자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명기 1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형제나 친구가 다른 신을 섬기자고 권하면 그는 참된 종교를 부패시키는 큰 악을 범하는 것이니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따르지 말고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돌로 쳐죽이라고 엄하게 명하신 후,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고 첨가해 말씀하셨다(신 13:6-11).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은 확실히 사람들에게 지혜를 얻고 정신을 차리게 하는 데 유익하다.

또 지혜로운 사람이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할 것이다. 

잠언 1: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 9:9,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잠언19:25,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행하고자 하는 자인데,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교훈, 즉 성경말씀의 교훈을 받으면, 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 사람에 대한 지식, 구원과 내세에 대한 지식을 얻고 더 얻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12절]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라아 )[재앙]에 던지시느니라.

‘의로우신 자’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들을 환난에 던지신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행동은 그 가족 전체의 경건과 도덕성에 영향을 미치고 그 가정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인 아버지 한 사람뿐 아니라, 그의 집 전체를 주목하시며 그 집에 내릴 재앙을 준비하신다. 시편 34:16은,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재앙에 던지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응이다. 신명기 32:35는 “보수(報讐)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고 말한다. 

마지막 날의 심판도 있지만,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이 있다. 그것은 악인들에게 내려지는 무서운 질병, 경제적 파탄, 전쟁, 그리고 지진과 기근 등의 자연재해 등이다.

시편 7:11-12,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시편 11: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시편 58:10-11, “의인은 악인의 보복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다투는 여인과 함께 집에서 사는 것보다 지붕 한 구석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 

잠언 25:24에 같은 말씀이 있고, 잠언 21:19는,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한다. 사람은 조용한 생활을 좋아한다.

평안은 사람의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사랑, 긍휼, 관용, 인내를 가져야 하고, 특히 여인들은 조용함과 온유함과 순종함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악인의 영혼은 악을 사모하며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한다. 

사람은 심히 부패되어 선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를 믿을 수도 없었고 지금도 의와 선을 행할 수 없음을 알고 그의 은혜를 사모하고 의와 선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는 지혜를 얻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한다. 우리는 교만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와 겸손을 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징책으로 그것을 얻어야 한다.

넷째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재앙에 던지신다. 우리는 공의로우신 심판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모든 악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의의 길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한다.

13-16절, 구제, 선물, 공의, 명철

[13절]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가난한 자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고 입을 옷과 쉴 방이 없을 때, 또 몸이 아프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부르짖는다. 그러나 교만하여 남을 무시하고 사랑과 동정심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에 대해 귀를 막고 듣지 않는다. 

구제와 선행은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인데, 그는 자기에게 손해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다. 

신명기 15:7-8, 10,“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에베소서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자는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 즉 육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주시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들 중에도 돕는 자가 없을 것이다. 

신앙생활은 평소의 생활이다. 평소에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행해야 하고 평소에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그래야 환난 날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다.

[14절]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선물은 어떤 일의 대가로 주는 것이 아니고 단지 상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로 그냥 주는 것이며, 은밀한 선물은 자신을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과 존경의 진심을 은밀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은밀한 선물은 흔히 상대방에 대해 가졌던 오해나 감정을 풀게 하고 노여운 감정까지도 누그러뜨린다. 

잠언 18:16,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한다. 뇌물은 개인적 이해관계의 목적이 있는 선물이며 보통 그 정도가 좀 지나친 것이다. ‘품의 뇌물’ 곧 은밀한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한다. 이것은 뇌물을 권장하는 말이 아니고 뇌물의 효능을 말하는 것뿐이다. 

잠언 17:8, “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 같은즉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하느니라.” 물론, 뇌물은 좋지않은 것이다. 

출애굽기 23: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우리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물질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한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로 마서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디모데전서 6:18, “[부자들을 명하여]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히브리서 13:1-2,16,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15절] 공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패망(메키타 )[두려움, 당황함](BDB)이니라.

‘공의’라는 원어(미슈파트 )는 ‘심판’ 또는 ‘공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공의를 행한다’는 원어는 ‘심판을 행한다’(KJV)는 뜻도 되고, ‘공의를 행한다’(NASB)는 뜻도 된다. 그 두 뜻이 다 가능하다.

의인은 하나님의 긍휼로 죄씻음 받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사는 자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며 오히려 기뻐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의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잠언 28:1,“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또 의인에게는 의를 행하는 것이 즐거움이다.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쁨과 즐거움이며 그것을 행하는 것도 그러하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즐거움이 되었음을 반복해 간증하였다. 24절,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70절,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7절,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11절,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됨이니이다.” 143절,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62절,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174절,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그러나 심판을 행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과 당황함이 된다. 그것은 공의의 형벌이 자신들에게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 공의를 행하는 것도 그들에게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과 당황함을 줄 것이다. 악인들은 자신들과 의인들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삶이 의를 행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끼며 두려워할 것이다.

잠언 10:24,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악인들은 평소에도 그러하지만, 의인들의 행위를 볼 때 더욱 그러할 것이다.

[16절] 명철의 길을 떠난[떠나 방황하는](KJV, NASB) 사람은 사망(레파임)[죽은 자들](KJV, NASB, NIV)의 회중에 거하리라.

‘명철의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의지하며 그의 긍휼을 받으며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지혜의 삶이다. 그것은 생명의 길이다. 

잠언 9:10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말하며, 잠언 3:18은,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한다.

명철의 길을 떠나 방황하는 사람은 한때 명철의 길에 있었으나 어느 날 그 길을 떠난 자, 곧 변절자요 배교자를 가리킬 것이다. 가룟 유다가 한 예일 것이다. 

히브리서 6:4-6은 그런 변절에 대해 경고하였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죽은 자들의 회중에 거할 것이다. 성경에서 죽음은 영적인 죽음, 육신의 죽음, 영원한 죽음을 다 포함한다. 참 교회는 산 자들의 회중이다. 그러나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없이 살고 그를 경외함이 없고 그의 계명을 저버리는 자들이며 생명 없는 자들 곧 죽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원천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며 그의 계명을 거역하는 것은 죽음의 길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외면치 말고 구제에 힘써야 한다.

둘째로,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한다. 우리는 뇌물을 주고 받지 말아야 하지만, 선물은 좋은 것이다. 선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정당한 선물을 나누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셋째로, 공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다. 우리는 공의를 행하고 악을 행치 말아야 한다. 그러면 두려움과 당황함에 떨어지지 않고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넷째로, 명철의 길을 떠나 방황하는 사람은 죽은 자들의 회중에 거할 것이다. 우리는 명철의 길을 떠나 방황하지 말고 그 길을 붙들어야 한다.

신명기 1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라[붙들라].”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17-20절, 연락(宴樂), 악인, 다툼, 지혜

[17절] 연락(宴樂)(시므카 )[기쁨, 쾌락,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먹고 마시고 기쁘고 즐겁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며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한다. 기름은 기름진 음식과 고기 종류를 의미한다고 본다. 

잠언 23:20은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말한다. 

사람은 필요 이상의 것을 사지 않고 먹지 않고 쓰지 않고 절약하며 살아야 조금씩이라도 저축을 할 수 있지만, 먹고 싶은 것을 다 먹고 쓰고 싶은 것을 다 쓰고 살면 낭비하게 되고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성도의 생활 방식은 검소하고 절약적이게 사는 것이다.

성도는 육신적 쾌락을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주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고 지내는 중 이 세상의 염려와 돈과 일락(逸樂) 곧 육신적 쾌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를 가리킨다고 말씀하셨다(눅 8:14).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말한 후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요일 2:15-16). 성도는 특히 술취함과 방탕함을 조심해야 한다. 

로마서 13:12-13,“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자.”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8절] 악인은 의인의 대속(代贖)(코페르 )[대신 죽임을 당하는 것]이 되고 궤사한 자(보게드 )[배신자, 변절자]는 정직한 자의 대신(代身)이 되느니라.

본문은 악인이 의인을 해치려다가 도리어 자신이 해를 당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시편 7:15-16은, “저[악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바로와 그 마병들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아와 홍해에서 그들을 죽이려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홍해에 빠져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죽임을 당하게 하셨다(출 14:27-28). 또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괴롭혔던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징벌하실 때, 예루살렘 침공에 실패했던 앗수르 왕 산헤립으로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징벌케 하셨다(사 43:3). 또 파사 왕 아하수에로의 악한 신하 하만은 경건하고 의로운 유다인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고 자기 집 뜰에 약 25미터 되는 나무를 세웠으나 왕의 명령으로 그 자신이 거기에 달려 죽임을 당했다(에 7:9-10). 또 다니엘의 시대에는 악한 동료들이 그를 죽이기 위해 다리오 왕에게 한 명을 내리게 했고 다니엘이 그 명을 범했다고 고소하여 그를 사자굴에 던져 넣게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건져주셨고 그 대신 그를 모함하였던 자들과 그 처자들을 죽게 하셨다(단 6:24).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해치려는 악인에게 공의로운 보응을 내리셨다. 그는 의인의 원수를 갚으셨다.

[19절]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1:9도, “다투는 여인과 함께 집에서 사는 것보다 지붕 한 구석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하였다. 

부부는 사람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거기에서 가정이 시작된다. 사람이 가족 관계가 좋으면 사회에서도 대인 관계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만, 가족 관계가 나쁘면 사회에서도 대인 관계가 나쁠 것이다. 

가정은 인생의 기초 훈련소이다. 그것은 인격의 훈련과 인간 관계의 훈련을 시키는 곳이다. 

부부의 관계는 교제의 관계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 남녀가 짝이 되게 하셨다. 

물론 성도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와 교제하지만, 사람들 간의 대화와 교제도 필요하다. 

부부의 관계는 또한 협력의 관계이다. 여자는 남자를 돕는 자로 창조되었다. 부부는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며, 또 그래야 한다.

부부는 언제 성내며 다투는가? 그들은 상대를 오해했을 때, 또 상대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식어지고 불신과 미움이 생겼을 때, 또 마음이 교만하거나 참을성 없는 조급한 마음이나 이기적 욕심을 품을 때 성내며 다툴 것이다. 즉 다툼은 마음의 문제 즉 성격과 인격의 문제이며 가치관의 문제이다. 너무 예민하거나 이해심이 부족하거나 세상적, 물질적 욕심에 얽매여 있는 여인은 남편과 잘 다툴 것이다.

그러나 평안과 화목은 사람의 행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외모나 물질적 부요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잠언 17:1은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肉饍,고기)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하였다.

[20절]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대로 선하게 사는 자이다. 그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다.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영육의 복을 누리고 또 그는 물질도 절약해 쓰고 저축함으로 물질적 유여함을 누릴 것이다. ‘기름’은 식용과 약용과 미용에 쓰이는 올리브유나 기타 향유들과 기름진 고기들을 가리킬 것이다. 

잠언3:13-18,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부요와 존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평안]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그러나 미련한 자, 곧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명령에 순종치 않고 죄와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던 복들도 다 낭비하고 소모한다. 

누가복음 15:11-14,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미련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의 소득을 규모 없이, 절제 없이, 계획 없이 다 쓰고 낭비하고 저축하지 않는다. 그는 영육의 빈곤에 떨어진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케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한다. 성도는 먹고 마시고 기쁘고 즐겁게 노는 것이나 술과 기름과 고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언제나 검소하고 절약적이게 살아야 한다.

둘째로, 악인은 의인 대신에 죽고 배신자는 정직한 자의 대신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 배신자들을 공의로 징벌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믿어야 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할 일을 담대히 행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정직하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셋째로,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19절). 

9절, “다투는 여인과 함께 집에서 사는 것보다 지붕 한 구석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우리는 남자든지 여자든지 온유하고 겸손하며 자족하고 사랑하며 참고 관용하는 좋은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복된 가정이다.

넷째로,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린다. 우리는 사치하고 낭비하며 빈곤에 떨어지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대로 의롭고 선하게 살며 근검 절약하여 영육의 복을 누리는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

21-24절, 의와 인자, 지혜, 입, 교만

[21절] 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불의와 죄요 그의 법을 지키는 것이 의이다. 

‘인자(仁慈)’는 이웃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선한 마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

따라 구한다’는 말은 ‘따른다, 추구한다(pursue)’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의롭게 살고 인자함으로 사는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의롭게 살아야 한다. 

신명기5:32-33,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신명기 6:25,“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둘째로, 우리는 항상 선하고 인자하게 살아야 한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의와 인자를 따르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을 것이다. 죄의 값은 죽음이나, 의의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다. 

의를 사모하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얻으며 의의 길에 영광이 있다. 천국의 기쁨과 행복과 영광은 오직 의를 행하는 의인들의 소유이다.

[22절]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의 견고히 의뢰하는 것을 파하느니라.

용사들의 성에 올라가 그 성의 견고히 의뢰하는 것을 파하고 그 성과 그 성에 있는 자들을 굴복시킨다는 것은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참으로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행한다.

전쟁에서 지혜는 힘과 용기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잠언 20:18은, “무릇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모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고 말했고, 또 잠언 24:6은,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고 말하였다. 여호수아 8장에 기록된 아이 성 전투에서 하나님께서는 복병 전술을 쓰게 지혜를 주셨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거짓 패하여 적군들을 유인해낸 후 복병들로 그 성을 점령케 했다.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귀와 악령들의 세력이 강할지라도, 또 세상의 악의 풍조와 세력이 크고 강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싸우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기독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이며 그것은 사람 보기에 무지하고 무능하게 보여도,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다(고전 1:22-2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지혜이시다(고전 1:30).

기독교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확장되었고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를 원하는 영혼들은 이 복음으로 구원 얻을 것이다. 또, 진리의 띠, 의의 흉배, 평안의 신발, 믿음의 방패, 성령의 검은 성도들의 힘이다(엡6:13-17). 우리의 개인적 신앙생활도 교회 봉사생활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주 예수께서 주시는 지혜와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빌 4:13).

[23절]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입과 혀를 지키는 자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사람은 말의 실수와 범죄, 즉 거짓말이나,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욕하는 말이나, 남의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거친 말 등의 실수와 범죄로 하나님의 징책과 환난을 당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말수를 줄이고 말의 실수가 없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야고보는 야고보서 3:2에서,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말하였다.

성도는 우선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진실은 성도의 기본적인 덕목이다. 또 성도는 선한 말을 해야 한다. 잠언 15:4는,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말했고, 사도바울도 에베소서 4:29에서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했다. 또 성도는 신중한 말을 해야 한다. 잠언 15:28은,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고 말하였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한다. 

잠언 12:13,“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잠언 13:3,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시편81:10,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을 때, 주님 신뢰와 주님 사랑에 충만케 되어 주님 하실 일 미리 계시하심따라 그분의 지혜따라 말해내는 것을 의미함을 기억하라....즉, 입술은 구속되어야 함을, 오직 주님 지혜와 그 인도따라 구속의 말씀 간증하기를 힘쓰되, 육적 충동따라 함부로 말하는 것을 엄금하고 있음을 명심하라!!......* 하나님은 믿음의 기도를 기뻐하시며 믿음대로 채워주신다. 여기서 ‘채우다’(말레, 강조, 미완)는 ‘가득하게 하다’ 또는 ‘흡족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능력의 하나님은 얼마든지 채우실 수 있다.  *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채워주신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고(마8:13), 또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으며(마15:28), 그리고 혈루병을 앓고 있던 여인에게도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하셨다(막5:34).  * 하나님은 믿음의 분량대로 채워주신다. 선지자의 아내였던 과부와 그녀의 아들이 찾아와 곤경을 호소할 때 엘리사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라”고 하였다(왕하3:4). 그리고 그들은 빌린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채웠는데 빌려온 그릇에 모두 가득하게 채웠고 그것을 팔아 빚을 갚고 생활을 할 수 있었다(왕하3:1-7절)......

잠언 18:7,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마태복음12:36-37에 보면,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24절]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조소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거만한 분노로 행하는 자는 그의 이름이 거만하고 교만한 조소자이니라](KJV).

거만한 마음으로 화를 잘 내는 자는 거만하고 교만한 자이며 남을 조소하고 조롱하는 자이다. 거만하고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피조물 됨을 깨닫지 못하고 또 자신이 얼마나 죄악된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사람의 교만한 마음이다. 잠언 6:16-19,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하나님의 형상은 교만과 정반대이다. 그것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며 남을 조롱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 그는 하나님이시지만,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 2:5-8).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고 하였고(엡 4:31-32), 

또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무례히 행치 않고 성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전 13:4-5).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의와 인자(仁慈)를 구하여 사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하여 의롭게 살고 인자한 마음을 가지고 어려운 이웃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둘째로,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 그 성의 견고히 의뢰하는 것을 파한다. 우리는 악한 원수들의 견고한 성을 두려워 말고, 세상일에서나 개인의 신앙생활과 교회 봉사생활에서나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행해야 한다.

셋째로,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한다. 우리는 말로 실수치 않고 범죄치 않도록 조심하고, 항상 진실하고 선하게 말하고 또 무슨 말을 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말해야 한다.

넷째로, 거만한 분노로 행하는 자는 교만한 자이다. 우리는 거만한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온유와 겸손, 사랑과 오래 참음을 본받아야 한다.

25-28절, 게으름, 구제, 악인의 제물, 증인

[25절]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게으름은 미련함이며 근면함이 지혜이다. ‘정욕’이라는 원어(타아와)는 ‘소원, 욕심, 욕망, 정욕’이라는 뜻이다. 게으른 자는 놀기를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먹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오락을 좋아하고 잠자기를 좋아한다. 세상의 재미와 육신적 즐거움과 쾌락을 좋아하는 것이다. 게으른 자는 땀 흘리며 힘들게 일하기를 싫어한다.

그는 욕망에 따라 돈을 낭비하고 시간을 낭비하며 정력과 건강을 낭비한다. 그는 성도의 본분뿐 아니라, 인생의 본분에도 충실하지 못하다. 그는 가난해지고 몸의 건강도 잃어버리기 쉽다. 그것은 죄악된 삶이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골로새서 3:5-6,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不淨)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성도는 영적 생활뿐 아니라 육신 생활에도 부지런해야 한다. 

로마서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에베소서 5:15-16,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데살로니가전서 4:11,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데살로니가후서 3:10, 12,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26절]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시제[구제]하느니라.

‘어떤 자’라는 말은 원문에 단순히 ‘그’라고 되어 있다(KJV, NASB).

그것은 앞절의 ‘게으른 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게으른 자는 종일토록 무엇을 탐하며 가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그는 돈에 대한 욕심과 명예에 대한 욕심과 육신적인 쾌락에 대한 욕심이 있다. 그는 먹고 마시며 놀고 세상적 오락과 육신적 쾌락을 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을 죽이는 죄악된 낭비적인 삶이다.

그러나 의인은 아끼지 않고 구제한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데, 그의 계명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구제하라는 내용을 포함한다. 신명기 15:8, 10, “반드시 네 손을 그[가난한 이웃]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시편 37:25-26,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구걸]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시편 112:5, 9,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꾸어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마태복음 5: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에베소서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7절]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계명을 거역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이다. 

제물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으로 바치는 것이다. 오늘날, 찬송, 기도, 헌금을 가리킨다. 

악인들도 제물을 바친다. 그것은 그들의 종교적 만족을 위해서일 것이다. 그들도 천국에 가고 싶고 또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누그러뜨리고 싶은 것이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교회 안에도 악인들이 있다. 그들은 가라지들과 쭉정이들이라 불린다. 그들은 하나님께 형식적, 외식적 제물을 드린다.

그러나 악인의 제물, 즉 악인의 찬송과 기도와 헌금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도리어 미워하신다. 잠언 15:8도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하셨다(사 1:11-13).

하물며, 악인이 악한 뜻으로 드리는 제물은 얼마나 더 가증한 일이 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비록 교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과 사도 베드로를 속이며 드린 헌금을 심히 미워하셨고 그들에게 즉시 죽는 벌을 내리셨다(행 5:5, 10). 만일 악인이 남을 저주하기 위해, 혹은 악한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다면, 그것은 얼마나 악하고 가증한 일이 되겠는가!

[28절]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한 증인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진실을) 듣는 자는 계속 말하느니라](KJV, NASB).

‘듣는 자’는 진실을 듣는 자를 가리키며, ‘계속(라네차크 ) 말한다’는 말은 그가 들은 바를 들은 대로 계속, 끝까지 말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은 진실한 증인의 힘있는 증언의 모습이다.

거짓 증인은 진실이 아닌 것을 증거하는 자, 진실을 왜곡시켜 증거하는 자, 진실과 반대되게 증거하는 자를 가리킨다. 거짓 증인은 패망한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증거를 미워하신다. 거짓 증거는 십계명의 제9계명을 범하는 죄이다. 그것은 잠언 6:16-19에 언급된 대로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6, 7가지 죄악 중에 ‘거짓된 혀,’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으로 언급된 죄악이다. 죄인은 망한다. 모든 죄인은 멸망한다.

그러나 진실을 들은 자는 그 들은 진실을 솔직하게, 담대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참된 증인의 모습이며 의인의 모습이다. 

사도행전 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주님의 사도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고 순교의 피를 흘리기까지 그를 증거했다. 

헬라어의 ‘증인’이라는 말(마르튀스 mavrtu")은 ‘순교자’라는 뜻도 가진다. 

스데반 집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죽었다. 참된 증인은 어떤 사실을 듣고 그 들은 바를 들은 그대로 항상 말하는 자이다. 성도가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은 성도의 기본적인 덕목이다.

에베소서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게으른 자의 욕심은 그를 죽인다. 그것은 그가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게을러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하며 육신적 욕심만 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각자 성도와 직분자로서의 본분과, 세상의 일 즉 직업의 일에도 부지런해야 한다.

둘째로, 게으른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지만, 의인은 아끼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구제한다. 우리는 자기의 일에 게으르면서 돈이나 명예와 권세나 육신의 즐거움을 탐하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자기 일에 근면하여 소득을 얻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구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악인의 제물은 그 자체가 가증하지만,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모든 악을 회개하고 진심이 없거나 악한 의도를 가진 종교 행위를 미워하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예배하며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한다.

넷째로, 거짓 증인은 멸망할 것이나, 진실을 듣는 사람은 끝까지 그것을 말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에서든지 거짓을 증거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미워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항상 증거해야 한다.

29-31절, 악인의 얼굴, 하나님, 승리의 길

[29절] 악인은 그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그 행위를 삼가느니라.

얼굴은 사람의 마음과 인격의 표현이다. 기쁜 얼굴은 기쁜 마음의 표현이고 슬픈 얼굴은 슬픈 마음의 표현이다. 어린아이의 얼굴은 아직 때묻지 않은 그의 천진난만함을 나타낸다. 또 나이든 사람들의 얼굴은 그의 인생 여정과 그의 형성된 인격을 어느 정도 반영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의 계명을 거역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는 악인은 그 얼굴을 굳게 한다. ‘굳게 한다’는 원어(헤에즈 )는 ‘뻔뻔스럽게 한다’는 뜻이다. 악인은 교만할 뿐만 아니라, 또한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책할 줄을 모른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가지지 않으며 자신의 부족을 인정할 줄 모른다. 그는 남을 미워하고 악을 행하며 뻔뻔스럽게 행동한다. 그러나 반대로, 성도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며 자신의 부족을 항상 느끼며 그것을 부끄러워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정직한 자는 그 행위를 삼간다.

 ‘삼간다’는 원어(야킨 )는 ‘견고케 한다,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KJV, NASB). 이것이 성경에 쓰여진 본문이다(케팁). 마소라 학자들은 이 단어를 ‘살핀다, 분별한다’는 단어(야빈 )로읽으라고 제안하지만(케레 NIV), 그 제안은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의미는 비슷하다. 

정직한 자, 곧 의로운 성도는 그의 길, 그의 행위와 삶을 조심하여 바르게 하고 견고케 한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신이 범한 실수를 부끄러워하고 모든 악을 버리고 악을 행할까봐 조심하며 오직 의와 선을 택하고 그것을 행하려 힘쓴다.

[30절]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사람의 지혜와 명철과 모략은 세상에서는 필요하고 유용하고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는다. 머리가 좋고 아이큐(I.Q.)가 높은 사람은 공부도 잘하고 사회의 각 방면에서 지도적 인물이나 참모나 보좌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혜 있는 것이 지혜 없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사람의 지혜를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와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말씀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께서 그 지혜로 사람을 구원하신다고 증거하였다(고전 1:21, 25).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지혜와 총명이 바벨론 온 나라의 지혜자들보다 열 배나 더 뛰어나게 하셨다(단 1:17, 20). 인류의 역사상, 마귀는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무너뜨리려 모든 지혜를 총동원하며 모든 악한 자들을 사용했지만 결국 실패하였고 또 실패할 것이다.

참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며 그의 계명대로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욥기 28:28,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시편 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시편 119편의 저자는,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 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고 고백하였다(시 119:98-100).

[31절]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국가는 전쟁의 날을 위하여 군대와 무기들을 준비한다. 세상 나라에는 군대도 필요하고 무기들도 필요하다. 옛날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명을 거느리고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家臣)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부녀들과 사람들을 다 찾아왔었다(창 14:14-16). 성경은 정당방위를 인정한다. 도적이 밤에 침입해 들어올 때 그를 쳐죽여도 피흘린 죄가 없다(출 22:2). 

합법적 전쟁은 인정된다. 여호수아와 사사들과 다윗 등은 다 용사이었다. 한 선지자는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의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라고 말했다(왕상 20:22).

그러나 이김은 여호와께 있다. 구약 역사에 전쟁 사건들이 많았으나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 소년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에게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말했다(삼상 17:47). 다윗은 시편 20:7에서 “혹은 병거, 혹 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말했다. 

유다 왕 아사는 구스 사람 세라의 군사 100만과 병거 300승을 하나님의 은혜로 물리쳤다(대하 15:11-12). 히스기야 왕 때 하나님께서는 하룻밤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사 18만 5천명을 죽이셨다(왕하 19:35). 그러므로 우리는 전쟁에서 사람의 지혜나 군대와 무기들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악인은 그 얼굴을 뻔뻔스럽게 하나정직한 자는 그 행위를 바르게 한다. 우리는 악인처럼 얼굴을 뻔뻔스럽게 하지 말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우리의 행위를 바르게 해야 한다.

둘째로, 사람은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 하나님을 당치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감히 자신의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섭리자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일, 즉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와 세계의 모든 일을 홀로 섭리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지만, 이김은 여호와께 있다.

한 국가가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군대를 두고 무기 개발과 군사 훈련을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우리는 전쟁 때 군사력을 의지하지 말고 승리가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절대 주권적 섭리자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22장: 자녀 교육, 징계, 게으름, 빚 보증

1-4절, 명예, 빈부, 슬기, 겸손과 경외

[1절] 많은 재물보다 명예(쉠 )[좋은 이름](KJV, NASB, NIV)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은혜]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사람은 많은 재물보다 좋은 이름과 명예를 택해야 한다. 이름은 그 인격을 나타내며 좋은 이름은 좋은 인격을 나타낸다. 선한 삶을 사는 좋은 인격자는 좋은 이름을 가진다. 많은 재물보다 사람의 인격성, 곧 그의 경건과 도덕성이 더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재물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다(전 1:2-3; 12:8). 전도서12:13은 사람의 본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께서는 썩는 양식을 위해 살지 말라고 하셨다(요 6:27). 사람이 자기 육신을 위해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둘 뿐이다(갈 6:8).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의 것들은 다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요일 2:15-17).

또 은이나 금보다 은혜가 더욱 택할 만하다. 

‘은혜’(켄 )는 하나님의 덕성 즉 하나님의 은혜, 사랑, 긍휼, 선하심, 아름다우심을 가리키는 뜻이든지, 아니면 사람의 덕성 즉 이웃을 향한 선한 마음, 사랑, 긍휼,자비를 가리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과 구원을 얻었고(롬 3:24; 엡 2:8) 또 성화의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필요하다(고후 13:13). 

또 우리는 사랑, 화평, 자비, 양선, 온유의 덕으로 단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성령의 열매이며(갈 5:22-23) 또 위로부터 난 지혜이다(약 3:17). 은혜는 참으로 은이나 금보다 더 가치 있다.

[2절]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섞여 산다’는 원어(니푸가슈 )는 ‘서로 만난다’는 의미이다.

세상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다. 사람은 부모의 재산 정도에따라, 자신의 교육 정도에 따라, 직업이나 직장에 따라, 자신의 노력과 근면에 따라, 자신의 건강 상태와 질병 여부에 따라, 사회적 환경이나 시대적 상황에 따라 부자도 되고 가난한 자도 된다. 또 이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섭리와 복 주심 여부에 따라 이루어진다.

세상에는 빈번히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갈등이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주인과 하인,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또 부자는 가난한 자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가난한 자들 중에는 지나친 열등감이나 피해 의식을 가진 자들도 있다. 그런 것들이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그러나 부자도 가난한 자도 다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욥기 31:15,“나를 태 속에 만드신 자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자가 하나가 아니시냐?” 

온 인류는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의 가족이며 한 식구이다.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자손이다. 사도행전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그러므로 우리는 가난한 자를 멸시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잠언17: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

[3절]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다윗은 여러 번 사울 왕의 칼을 피해 도망했었다. 

엘리야도 이세벨의 칼날을 피해 호렙산으로 도피했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핍박을 피하라고 교훈하시며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0:23). 

사도 바울도 때때로 핍박을 피하였다. 사도행전 9:23-25,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제자들이 그를 밤에 광주리에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사도행전 14:5-6,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그들을]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그러나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하고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때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때이다. 그때는 순교의 정신과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그때 나서서 싸우지 않으면 비겁하고 비굴한 자임이 드러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고(마 10:28), 또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25). 

사도 바울은 그런 정신으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사도행전 20:23-24에 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것이 충성된 마음이다.

[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은 사람의 매우 중요한 덕이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또 하나님 앞에서 부족하고 흠과 실수가 많은 죄인임을 인정할 때 겸손할 수 있다. 사람은 겸손해야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적한다.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덕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경건이요 믿음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자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자, 전지 전능자이시고 우리는 유한자요 연약한 자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자이시며 우리는 죄가 많았고 또 죄성을 가진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엎드려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죄를 미워하고 죄를 멀리하게 된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에 순종하며 살면 이 세상에서도 복된 삶을 누릴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신명기 28장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가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자녀의 복, 사회적 평안의 복을 누릴 것이며 또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했다(딤전 4:8). 또 그것이 영생의 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이 의이며 그것이 생명의 길이다(신 5:33; 8:1; 잠 6:23). 

영생에 이르는 자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많은 재물보다 좋은 이름을 택하고, 은이나 금보다 은혜를 택하는 것이 낫다. 우리는 많은 재물과 은금을 크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와 경건과 도덕성을 크게 여겨야 한다.

둘째로,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섞여 살지만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서로 사랑하며 다른 사람의 생명과 정조와 재산과 명예를 해하지 말고 남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

셋째로,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해도 어리석은 자는 나아가다가 해를 받는다. 재앙을 피해야 할 때 피하는 것은 지혜이다. 그러나 진리와 의를 위한 싸움에는 비겁하게 물러나지 말고 힘써 싸워야 한다.

넷째로,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얻는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형태의 악을 버리며 그의 명령만 순종해야 한다. 그것은 현세와 내세에 복된 길이다.

5-8절, 패역, 자녀 교육, 부자, 악행

[5절]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하느니라.

‘패역한 자’는 고의로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 곧 인생의 정로를 벗어난 자를 가리킨다. ‘길’은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다 포함한다. 패역한 자의 삶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다.

‘가시’는 찌르는 고통스런 일들을 가리킨다. ‘올무’는 시험거리들, 위험한 일들, 재난들, 사고들을 가리킨다. 찌르는 가시와 발에 걸리는 올무는 정신적 고통, 육체적 고통, 물질적 고통을 다 포함할 것이다. 사람이 가시에 찔리고 올무에 걸리면, 큰 고생과 낭패를 당할 것이다.

그러나 영혼을 지키는 자는 그것들로부터 멀리 있다. ‘영혼을 지킨다’는 말은 영혼을 죄악과 불결로부터 지킨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영혼을 죄와 불결로부터 지킬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두고 깨어 기도하며 성령의 힘과 도우심을 구할 때 그렇게 할 수 있다. 

시편 119:9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라고 말했고, 갈라디아서 5:16은,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다. 자기 영혼을 지키는 자는 가시와 올무를 피할 것이다. 

잠언 12:13,“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잠언 21: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이사야 26:7, “의인의 길은 정직함[평탄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사48:22; 57:21). 그러나 의인에게는 큰 평안이 있다(사 48:18).

[6절]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바른 것을 가르쳐야 한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나쁜 것을 배울 수 있고 그것이 버릇이 될 수 있다. 무엇이 바른 길인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 그 ‘바른 길’을 가르쳐준다. 신구약성경은 사람에게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을 가르쳐준다.

성경의 첫 번째 중요한 내용은 십계명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자녀에게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경책을 읽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헌금을 드리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또 십계명은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탐내지 말라고 가르친다. 

성경의 두 번째 중요한 내용은 복음이다. 그것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얻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소식이다. 죄의 결과는 죽음과 지옥이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다.

‘마땅히 행할 길’이라는 원어(알-피 다르코 )는 ‘그의 길을 따라서’ 혹은 ‘그의 길의 분량을 따라서’라는 뜻이다(BDB, KJV,NASB). 

이 말씀은 아이의 연령의 정도, 이해의 정도에 따라 가르치라는 뜻도 될 것이다. 

우리는 자녀가 어릴 때는 성경을 단순하게, 쉽게 가르치고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더 자세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 

어릴 때 받은 교훈은 오래 간직된다. 그것은 늙을 때까지 간직된다. 어릴 때의 교육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치고 경건 훈련을 시키고 의와 선과 진실의 삶을 가르쳐야 한다.

[7절]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빌리는 자]는 채주(債主)[빌려주는 자]의 종이 되느니라.

이것이 세상의 현실이다. 주께서 하신 비유 중에, 어떤 임금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갚을 것이 없을 때에,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고 명했다(마 18:23-25). 또 그 종이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하나가 빚을 갚지 못하자 그가 조금 더 참아 달라고 엎드려 간구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마 18:28-30). 이것이 세상이다. 

야고보서 2:6은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성도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하며 구제해야 한다. 

잠언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의인 욥은, “남종이나 여종이 나로 더불어 쟁변할 때에 내가 언제그의 사정을 멸시하였던가?”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던가? 과부의 눈으로 실망케 하였던가? 나만 홀로 식물을 먹고 고아에게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를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다”라고 말했다(욥 31:13, 16-18). 

경건한 다윗은,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구걸]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말했다(시 37:25-26). 

잠언은, 현숙한 여인은 가난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해 손을 내미는 자라고 묘사하였다(잠 31:20). 또 주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양들은 굶주리고 헐벗는 가난한 형제를 돌아보았다고 말씀하셨다(마 25:40).

[8절]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氣勢, 쉐베트)[지팡이](rod)(KJV, NASB, NIV)가 쇠하리라.

‘악을 심는다 혹은 뿌린다(sow)’는 말은 악을 혼자 행하는 것뿐 아니라, 이곳 저곳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행하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 악을 퍼뜨리고 전염시킨다는 뜻도 가지는 것 같다. 악은 누룩과 같이 다른 사람을 부패시키는 성질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진다고 말했고(고전 5:6), 또 악한 친구들이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 말하였다(고전 15:33).

악을 심는 자는 재앙을 거둘 것이다. ‘재앙’이라는 원어(아웬 )는 ‘환난, 재난’이라는 뜻이다(BDB, NIV). 이 말은 어떤 영어성경들에서는 ‘헛된 것’(KJV, NASB)이라고 번역되었다. 

사람이 악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환난과 재난으로 벌하실 것이다. 

시편 1:6은,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말하였고, 시편 11:6은,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라고 말했다.

또 악인은 헛된 것, 곧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을 거둘 것이다. 악인의 삶은 결국 시간과 힘과 돈을 낭비한 것뿐일 것이다.

또 악인의 분노의 지팡이 즉 기세는 쇠할 것이다. 악한 자들이 악을 행할 때 나타내는 분노의 기세는 상당히 힘이 있어 보인다. 선을 행하는 자는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악을 행하는 자는 교만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그 분노의 기세는 꺾이고 쇠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환난과 재난을 주셔서 그의 교만을 꺾으실 것이며 그의 악한 행위들을 헛되게 만드시고 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으나 영혼을 지키는 자는 그런 것이 없다. 우리는 패역한 길로 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른 길로 감으로 생명과 평안을 누려야 한다.

둘째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유익한 말씀이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셋째로,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빌리는 자는 빌려주는 자의 종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부지런히 살아야 하고, 또 우리 주위의 가난한 자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구제하며 선을 베풀어야 한다.

넷째로, 악을 심으며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둘 것이며 그 분노의 기세는 쇠할 것이다. 우리는 악을 행하거나 악인과 친근히 하다가 함께 재앙을 당하지 말아야 하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악의 세력을 두려워 말고 성경의 교훈대로 선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한다.

9-12절, 선한 눈, 거만, 마음의 정결, 지식

[9절] 선한 눈(토브 아인 )[후한 눈](KJV)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눈은 마음을 드러낸다. 어떤 영어성경들은 ‘선한 눈을 가진 자’를 ‘후한 자’(NASB, NIV)라고 번역했다. 선한 눈 즉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가난한 자에게 양식을 나눠줄 것이다. 구제는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다. 

신명기 15:10, “너는 반드시 그[가난한 형제]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의인의 특징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며 그 선한 마음은 특히 구제로 나타난다.

시편 37:21,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시편 37:26, “저는[의인은]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잠언 21:26,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시제[구제]하느니라.”

본문은 의인이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주기 때문에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잠언 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13: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마태복음 6: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제와 선행을 갚아주신다.

[10절]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거만한 자’라는 원어(레츠 )는 ‘조롱하는 자, 비웃는 자’라는 뜻이다. 

조롱하고 비웃는 것은 교만하고 거만한 자의 모습이다. 그런 자는 다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잠언 13:10은,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말하였다. 잠언28:25는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고 말했는데, 거기에서 ‘탐한다’는 원어(레카브)도 ‘교만하다’는 뜻이다(BDB, KJV, NASB).

인간 관계에서 화평과 일치를 가지려면, 온유와 겸손, 오래 참음과 양보와 사랑의 덕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4:1-3에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했고, 또 빌립보서 2:3에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했다. 우리는 겸손과 사랑으로 단합해야 한다.

본문은 조롱하는 자를 쫓아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런 자와 교제를 끊고 교회에서 내어보내라는 뜻이다. 그것은 절교의 벌이다. 또 “그리하면 다툼이 쉬며 싸움과 수욕도 그치리라”고 말한다. 물론 시시비비도 가려야 하겠지만, 교만한 자는 끝까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분란을 일으키므로 성도의 교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회개치 않고 온유와 겸손의 덕을 사모하지도, 행하기를 힘쓰지도 않는 자는 실상 교회 안에 있는 것이 합당치 않다.

[11절]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본문은 우리에게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 입술에 덕이 있는 자가 되라고 교훈한다. 마음의 정결함은 생각과 감정과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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