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장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소중한 신부의 마음 (아 4:1-8) (The Cherished Heart: Equipped to Love Jesus) I. 아가서 2:8 - 3:11 복습 A. 예수님은 신부를 ‘안주의 지대’에서 불러내시면서, ‘산’으로 올라와 주님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게 초청 하신다. 하지만, 신부는 순종하지 않고, 예수님께 홀로 산으로 돌아가라고 대답했다. 8⋯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10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7나의 사랑하는 자야 ⋯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아 2:8-10, 17) B. 주님은 임재를 거둬가시고, 신부는 하나님의 사랑의 훈육을 경험하게 된다. 주님을 찾아도, 발견치 못하게 된다. 이것은 주님의 노하심이 아니라, 더 깊은 동역을 질투하시기 까지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 때문이다(히 12:6)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아3:1) C. 아가서 3:6-11에서, 신부는 장애물의 산들을 만났을 때, 100 퍼센트 순종하며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안전한 리더십’을 가지신 신랑이신 왕, 예수님에 대한 계시를 얻게 된다. 신부의 사랑을 사모하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신부는 깨닫게 된다.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께 사랑으로 면류관을 씌어 드릴 수 있다.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랑의 “혼인 면류관”은 예수님이 가장 간절히 바라시는 면류관이다.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아 3:11) II. 아가서 4:1-8 개요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 무리 염소 같구나 2 네 이는 ⋯ 털 깎인 암양 ⋯같구나 3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 4 네 목은 ⋯ 다윗의 망대 ⋯5 네 두 유방은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 6 ⋯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7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 8 나의 신부야 너는 .. 나와 ⋯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아 4:1-8) A. 예수님은 거룩한 훈육의 계절이 지나고, 순종과 믿음이 조금씩 성숙해 가는 신부를 보시면서 ‘어여쁘다, 아름답다’고 말하신다. 아 4:1-5 에서, 예수님은 어린 신부의 삶에서 “피어나는 미덕” 8 가지를 예언적으로 확신시켜 주신다. 우리가 연약할 때도 주님의 ‘사랑의 확신’으로 자라게 하사, 우리를 참소하고 정죄하는 사단을 이길 수 있게 하신다(계 2:10). B. 이 본문에는 하나님이 신부 안에 가꾸어지길 바라는 8 가지 성품이 요약되어 있으며, 여기서 사용된 상징은 아가서 전체에 걸쳐 개발된다. *1)비둘기의 눈: 일편단심의 마음과 계시, *2)염소와 같은 머리털: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 *3)털깍인 양과 같은 이: 고기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씹는 능력, *4)홍색실 같은 입술: 구속의 열매를 맺는 언어사용, *5)입맞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6)가려진 두 뺨 (뺨/얼굴): 하나님의 은혜에 영향 받은 감정들, *7)다윗의 망대와 같은 목: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 *8)쌍태 노루새끼와 같은 두 유방: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고, 그들을 양육시킬 수 있는 능력 III.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마음 A. 아 4:1-5 에서, 우리는 신부를 소중히 아끼는 신랑이요, 왕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보게 된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신부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을 주님께 드리게 된다(아 4:6-8). B. 예수님은 우리를 소중히 여기사 씻기시고, 자신의 영광을 교회에 풀어 주신다.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29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소중히 여기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엡 5:26-29) C. 연약한 자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주무기는,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 지를 우리로 알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주님은 우리의 얼룩진 죄와 수치심을 제거하신다. ‘나를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확신과 당당함으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가꾸어 나갈 수 있게 된다. 다윗 왕의 삶의 비결은, 자신이 ‘하나님께 사랑 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데 있었다. 아가서에서 가장 돋보이는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이다. 35⋯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 18:35) D. 연약하여 넘어질 때에도, 예수님은 우리 삶에 ‘피어나는 미덕’을 확신시켜 주시면서, 온유와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시고, 소중한 주님의 신부로 높여 주신다. E. 예수님은 우리가 겪는 내면의 싸움들을 보고 우리 인생을 정의 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실패를 넘어서 보시는 분이다. 승리한 영역들 뿐만 아니라, 심령에 심겨진 미덕의 씨앗들, 그리고 ‘심령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통해 우리를 정의하신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순종의 영을 보신다(마 26:41). 주님을 사랑하며 순종하고자 하는 갈망을 보고 우리를 정의하신다. F. 우리의 존재를 정의하시는 예수님의 정의에 따라,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결정하게 된다. 주님은 우리 안에 심겨진 성품의 ‘씨앗’을 보신다. 우리 여정의 미래와 앞을 정확히 내다 보시며 우리를 대하신다. G. 이스라엘이 막강한 미디안의 공격을 받았을 때, 기드온은 무서워 포도주 틀에 숨어 있었다(삿 6장). 그 때, 한 천사가 나타나 그에게 “큰 용사여”라고 말했다. 기드온 자신이 볼 수 없었던 면을 주님은 기드온 안에 이미 보고 계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기드온 안에 ‘믿음과 용기의 씨앗’이 심겨져 있는 것을 보셨다. 주님은 미래의 기드온의 모습을 보시고 ‘기드온’이라 이름 지으셨다. 결국, 그는 장차 이스라엘의 위대한 장군이 되었다. H. 베드로가 두려움으로 주님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아셨음에도, 예수님은 그를 ‘반석’이라 부르셨다(마 16:18). 겉으로 보기에 베드로는 타협한 자요, 비겁한 자로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안에 용기와 확신, 그리고 신실함의 씨앗을 보시고, 베드로를 ‘반석’이라 부르셨다. 11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떼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레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희의 외식(위선)에 유혹되었느니라 (갈 2:11-13) I. 주님은 아브라함을 ‘견고한 믿음을 가진 자’라 말하시며, 그의 삶을 “조금씩” 조정해 가셨다.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롬 4:20) J. 다윗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한 자라 간증하셨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 36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목적)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행13:22; 36) K. 주님은 진실한 자들을 ‘사랑하는 제자들’이라 부르신다(요 13:23; 19:26; 20:2; 21:7, 20).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 13:23) L. 마귀는 우리를 ‘위선자’라 참소한다. 원수는 많은 사람들을 참소하고 정죄하며 무너뜨린다. 스스로 ‘가망없는 위선자’로 느끼게 만들며, 미숙을 ‘반항(대적)’으로 혼동시켜 우리를 포기시키려 한다. M.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과 자책감이라는 ‘불’과 싸우며, 시간과 정력을 지나치게 낭비한다. 죄책감과 거절감을 가지고 살면 불필요하게 많은 정력을 낭비하게 된다. 그리고, 실패와 수치심에 사로잡혀 주님과의 효과적인 동행을 해치게 된다. N.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순종의 마음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성숙했는가에만 초점을 둔다. 성숙에만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두가지 영적 문제에 취약점을 노출시키게 된다. 1. 결과가 좋으면, 교만이 생겨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비판할 수 있게 된다. 2. 실패하면, 죄책감에 사로잡혀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O.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감정들(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고자 (믿음과 말씀의 순종에) 하는 데 마음을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주님은 주님의 때에 우리 안에 성숙한 승리를 가져다 주실 것이다.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P.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남자가 그 아내와 자녀들을 변화시킨다. 하나님이 훈육하시는 것은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보통, 부모들은 자녀들 안에 피어나는 미덕을 잘 못 해석한다. 자녀들 안에 피어나는 헌신과 위대함의 씨앗을 보지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실패만을 보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IV. 연약하지만, 하나님께 아름다운 우리의 모습 A. 훈육의 계절(아 3:1-2)이 끝나자 마자, 주님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선포하신다. 반복을 통해 ‘아름다운 신부’에 대한 계시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하신다. 성령님은 우리 앞에 ‘거룩한 나팔’을 불면서 말씀하신다, “보라! 나의 어여쁜 자야,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우리는 주님께 사랑받는 아름다운 존재라는 계시로 변화된다.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아름답)고도 어여쁘다 ⋯(아 4:1) B. ‘연약하지만, 하나님께 아름답다’라는 계시는 순수하고 진실한 자가 하나님 은혜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기본진리다. ‘어여쁘다’라는 단어는 대부분 성경에서 ‘아름답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도 아가서의 핵심 주제에 속한다 (아 1:8, 15, 16; 2:10, 13, 14; 4:1, 7, 10; 6: 4, 10; 7:1). C. 아가서에서, 우리가 소유한 아름다움에 관한 주제 전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D. 우리를 사랑하사 기쁨이 충만하신 왕(아 3:11)이시며, 우리를 아름다운 존재로 보시는 예수님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을 위해 모든 희생을 다 감수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아무리 힘든 ‘장애물의 산’을 직면해도 능히 이겨 낼 수 있는 권능을 갖게 될 것이다. E. 이제, 예수님은 신부의 삶에 “피어나는 미덕” 8 가지를 확신시켜 주신다(아 4:1-5). 각 성품은 아주 ‘작은 씨앗’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확증을 통한 권면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사랑과 순종의 씨앗을 확증시켜 주심으로, 사단의 고소에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F. 예수님은 신부의 삶을 8 가지 면에서 축복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사, 그 이름대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신다. 여기 본문에 나와있는 구절 하나 하나 모두가 우리의 심령을 겨냥한 하나님의 ‘시적인 거룩한 로맨스’다. 8 가지의 미덕은 우리에게 나눠주신 주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한다. 우리가 그 아름다움(아 3:11)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될 때, 예수님도 기뻐하시지만, 우리 자신도 기쁘게 된다 . G. 술람미 여인은 본래 염소를 치고, 포도원을 지키는 양치기 소녀이다. 그래서, 왕은 신부에게 친숙한 ‘농경 용어’를 사용한다. 본문에 나오는 상징들은 성경을 통해 해석한다. H. 왕은 여인에게 ‘산’으로 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인은 산이 아닌, 성(도시)으로 가겠다고 대답한다(아 3:2). 그러나, 아가서 4 장 끝부분 까지, 신부는 자신이 한 말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대답만 한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점차 성숙하게 될 신부의 모습을 잘 아시기에, 신부의 대답을 높이 평가하신다. I. 100 % 온전한 순종을 위해, 우리의 삶에 세가지가 협력한다(아 4:6). 거룩한 훈육(아 3:1-2)과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계시(아 3:6-11), 그리고, 예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자신에 대한 계시이다(아 4:1-5). V. 눈: 영적이해와 계시 (아 4:1) 1 ⋯ 네 눈이 비둘기 같고 ⋯ (아 4:1) A. 눈은 ‘영적 통찰력’을 말한다. 바울은 ‘마음의 눈’을 언급했다(엡 1:18). 눈으로 보는 것은 바울의 삶에 최우선 순위였다. ‘보는 것(깨달음)’은 영적 성장의 출입구가 되기 때문이다(빌 3:8-10; 고후 3:18). 순종은 깨달음을 통해 시작된다. 대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도 변하게 된다. B. 비둘기의 눈은 ‘순결’과 ‘충성’을 말한다. 성령님은 비둘기로 성경에서 그려진다. 비둘기는 짝이 죽으면 다른 짝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비둘기는 충실함으로 알려져 있다. 비둘기는 두 사물을 동시에 볼 수 없으며, ‘주변 시야’도 없다. 이것은 ‘일편단심’을 말한다. 잠간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안정을 누리다가, 타협과 죄책감으로 괴로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한 일편단심,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신부는 정욕과 실패, 또는 성공을 바라보지 않으며, 오직 주님만을 바라본다. C. 신부는 겸손한 자세로 이 계시를 받아들인다. 신부는 베일뒤에 “숨는다.” 즉, 신부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부분들이 남아 있다. 베일 뒤에 가려진 삶은, 하나님 안에서의 ‘은밀한 삶’으로, 개인적인 삶의 부분을 말한다. 풍부한 계시를 가지고 있던 바울도 교만의 유혹을 받았다(고후 12:7-9). 그는 지식이 종종 교만을 낳는다고 가르쳤다(고전 8:1). VI. 머리털: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아 4:1) A. 신부의 ‘머리털’은 하나님를 향한 신부의 ‘헌신’을 말한다. 나실인의 머리털은 그들의 거룩함, 또는 헌신을 나타내는 외적 표징이었다(민 6 장). 나실인의 맹세를 취한 자들은 머리털을 자를 수 없었다. 그러나, 삼손은 머리털을 잘라 맹세를 어겼으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잃게 되었다. 머리털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아름다움’을 말하기도 한다. 여인의 머리털은 영광을 나타낸다고 바울은 말하면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순복과 헌신을 비유로 말했다 (고전 11:5, 6, 15). 1⋯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아 4:1) B. 무리 염소와 같이 술람미 여인은 ‘위엄스럽게’, ‘위풍당당’하게 걷는다. 29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31 사냥개와 수염소와 및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 C. 우리는 당당하게, 존엄을 지닌 거룩한 지혜로 주님을 향한 헌신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헌신이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 시키려는 육적 열심으로 더렵혀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D. ‘위엄이 찬’ 신부의 머리털, 즉, 신부의 헌신은 성경말씀의 ‘양식’으로 잘 채워진 결과로 나타난다. 길르앗 산에 있던 염소들은 풍성한 먹이를 먹고 살았다. 그곳은 땅이 풍성하고, 비옥해서 염소들에게 풍성한 먹이를 제공하던 유명한 곳이었다. 신부는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배부르게’ 된다. VII. 이: 말씀에 뿌리를 둔 삶 (아 4:2) 2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아 4:2) A. ‘이’는 고기를 씹어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유아는 이가 없어 고기를 씹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유아들’은 고기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다(고전 3:1-2; 히 5:12-14). 여기서는, 고기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신부의 능력을 말한다. 농경 용어의 표현을 통해 신부의 이를 서술하고 있다. 신부의 이는 강하고, 풍성하며, 효과적이다. B. 털깎지 않은 양의 양모는 골고루 자라질 않는다(불균형). 길이가 다른 양모는 ‘육적 열심’을 말한다. 구약시대 사독의 제사장들은 가는 베옷을 입어야했다. 양모는 땀을 내기때문에 입는 것이 금지 되었다(겔 44:15-18). 육적 열심은 반드시 성령의 주권으로 다스려져야 한다. C. ‘목욕장에서 올라온다’는 것은 더러움에서 깨끗케 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우리의 이는 마치 목욕장에서 올라온 양과 같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씻기신다(엡 5:26). D. 말씀에 온전히 거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풍성한 영향력을 끼칠수 있게 된다. 신부의 이는 마치 털 깍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과 같다. 신부의 사역은 영적 불모가 아닌,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쌍태를 낳는다는 것은 ‘풍성한 열매’를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우리는 목욕장에서 바로 나온 양과 같이 ‘정결하고 순결한 삶’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깨끗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하는 신부의 ‘헌신’을 말한다 딤전 4:6-16). 아가서 4:1-2 은 신부의 눈과 머리털, 이, 그리고 두 뺨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 표현들은 아가서 6:5-6 에도 나오게 된다. VIII. 입술: 거룩과 기름부음의 언어사용(아 4:3) 3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아 4:3) A. ‘입술’은 ‘언어사용’을 말하며, ‘홍색’과 같은 말은 사람들에게 ‘구속(redemption)’을 주는 말을 의미한다. ‘홍색실’은 예수님의 보혈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상징한다. 정탐꾼들이 여리고에 도착했을 때, 라합은 구속함을 얻기위해 창문에 홍색줄을 달아 놓았다(여 2:21). 모세는 홍색 양모에 송아지의 피를 묻혀 사람들에게 뿌렸다(히 9:19). B. 덕을 세우는 말과 함께 이 ‘홍색실’은 우리 입술에 있어야 한다(골 4:6). 건전하면서도 덕을 세우는 언어사용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함께한다는 증거다(엡 4:29; 야 2:3). IX. 입: 하나님과의 친밀감 (아 4:3) 3⋯ 네 입은 어여쁘고 ⋯ (아 4:3) A. 아 1:2 에서, 입은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말하는 입맞춤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우리가 갖는 예수님과의 교제는 주님 보시기에 사랑스럽다. 아가서에서, 입술은 우리의 언어사용을, 입은 친밀감을 말한다. 신부에게 확증을 주는 왕은 고루하게 반복적인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B. 예수님께 우리의 사랑을 드릴 때, 그것은 마치 ‘연약한’ 사랑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사랑이 사랑스럽다고 공포하시면서, 우리와의 친교를 기뻐 하신다. X. 두 뺨: 감정의 메이크업(아 4:3) 3⋯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아 4:3) A. 두 뺨(뺨 또는 얼굴)은 사람의 ‘감정’을 드러낸다. 히브리어로 이 단어는 뺨 또는 얼굴, 용모로 번역될 수 있다. 대부분 번역본들은 ‘뺨’으로 해석한다. 사람의 감정은 표정, 또는 뺨을 통해 표현된다. 분노, 기쁨, 즐거움, 또는 슬픔의 감정은 표정을 통해, 두 뺨을 통해 나타난다. 그래서, 뺨은 사람의 감정을 비추는 창문이다. B. 신부의 거룩한 감정들은 하나님께 마치 달콤한 ‘석류 한쪽’과 같다. 석류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아주 달콤한 과일에 속했다. 이 거룩한 감정의 표현은 대제사장의 제의(의복), 또는 에봇에 잘 나타나 있었다. C. 석류를 반으로 쪼개 안을 보면 색깔이 붉은 홍색이다. ‘붉은 색’은 수치로운 행동 앞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힐 줄 아는 신부의 성향과 겸손을 말한다. D. 매춘부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에도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 홍색을 띈 얼굴(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부끄러움에 예민하다는 것을 말한다. ‘베일 뒤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은밀한 삶’을 말한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쇼’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 안에 겸손하고 온유하게 지내는 신부의 은밀한 삶을 말한다. XI. 목: 결단의 의지(아 4:4) 4 네 목은 군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같고 (아 4:4) A. 성경에서, 목은 보통 뻣뻣한(저항하는), 또는 복종을 의미하는 ‘의지’를 말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원수의 목을 발로 누르는 것은 원수의 굴복을 상징했다. B. 신부의 의지는 하나님앞에 확고부동한 마음을 지녔던 다윗과 같다(시 57:6). 신부는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 C. 다윗의 망대들은 예루살렘 성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높은 곳에 위치해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신부의 선택과 의지는 다윗의 망대처럼 강력하다. D. 병기고는 전쟁을 대비해 무기들을 저장하는 곳이다(느 3:19,25). 하나님께 순종 하고자 하는 ‘결단의 의지(뜻)’는 사단의 왕국을 대적하기 위해 준비해 놓는 병기고와 같다. ‘둥근 방패’는 작고 둥글며 팔에 부착하는 방패였다. 1000 개의 방패는 막강한 방어선을 구축해 원수로 부터 ‘안보’를 누리는 것을 말한다. 신부의 ‘의지’는 전투에 뛰어난 1000 명의 전사들이 지닌 방패와도 같다. 원수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제공한다. 이것은 우리를 보호하는 ‘믿음의 방패’다(엡 6:16). E. 예수님께 순종하려는 불굴의 결단은 영적 승리를 위해 우리가 꼭 지녀야 하는 필수요소다. 우리는 ‘순종의 의지’를 계속 연습해야 한다.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순종을 강요하시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의 경계선을 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XII. 두 유방: 타인을 양육할 수 있는 능력(아 4:5) 5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아 4:5) A. 두 유방은, 엄마가 아기를 양육하듯, 타인을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노루 새끼는 어린 동물이다. 신부의 두 유방은 ‘쌍태 노루 새끼’ 같다. 이것은 우유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먹이며 양육할 수 있는 ‘갑절의 기업과 능력’을 말한다. 노루 새끼와 같은 두 유방은 마르지 않는 엄마의 모유를 말한다. 나이가 들어 모유의 능력이 없어진 여인과 다르다는 뜻이다. B. 술람미 여인의 사역은 ‘순결’의 백합화 가운데 꼴을 먹는 노루새끼와도 같다. 주님은 신부에게 ‘은 장식’을, 즉, 사역을 위해 신부를 양육해 주시리라 약속하셨다(아 1:10). XIII. 영적 성숙의 기초가 되는 헌신 (아 4:6)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아 4:6) A. 신부의 아름다움을 확증시켜 주신 주님께, 신부는 ‘몰약산’으로 가겠다는, 즉, 십자가를 지겠다는 헌신으로 응답하게 된다. ‘산’은 신부의 순종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가리킨다(아 2:8-9). B. 몰약은 비싸지만, 뛰어난 향기를 지닌 장례용 향품이다. 몰약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한다. 육적으로는 장사용 향품이지만, 우리의 영혼에는 ‘향기’와도 같은 것이다. 이 산은 (편안한 곳이 아닌) 몰약의 산으로, 작은 언덕(산)과는 다르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가실 때, ‘몰약의 산’을 오르셨다. 이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인하며 십자가를 져야한다(눅 9:26). C. 성경에 나오는 유향, 또는 향은 ‘기도’를 말한다(시 141:2; 계 5:8). 우리는 ‘유향의 언덕’에 올라가 힘을 얻고, 그 힘으로 몰약의 산을 오를 수 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힘’을 얻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마 26:40-41). 유향의 언덕에 거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몰약의 산을 오르는 것이 벅찰 수 밖에 없다. 기도생활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수 있게 해주는 권능을 부여한다. ‘기도 언덕’의 높이에 따라,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능력의 한계에도 차이가 나게 된다. D. 유향의 언덕은 몰약의 산보다 낮다. 우리는 ‘작은’(미약한) 기도를 통해서, 높은 산을 올라갈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된다. 기도는 산을 오르려는 인간의 노력을 능가하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짧은 기도의 능력도 오래간다. 기도 생활을 통해, 우리는 기도한 것 이상의 권능을 받게 된다. E. 이제,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안락 지대를 떠나 산으로 간다. 즉,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며 살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일어나 가겠습니다!” 이 고백이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스러운 고백인지 아는가! F. 신부는 본문에서 “나의 길”이라 말한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정하신 각자의 길을 가야한다. 사람마다 다른 여정을 정하신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다른 여정으로 부르신다. 몰약의 산으로 가는 길에는 하나님의 목적에 따른 고난들도 따르게 된다. G. 신부는 날이 밝고 그림자가 도망갈 때까지, 즉, 모든 타협이 사라질 때까지 ‘몰약의 산’에 머물겠다고 헌신한다. ‘그림자’는 작은 여우들(아 2:15) 처럼, 연약한 부분, 또는 타협의 영역을 말한다. ‘아침햇살’은 힘겨웠던 밤의 싸움을 빛으로 승리하며 새날을 가져오는 ‘승리의 계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운데 살면서 누리게 될 ‘영원의 날(낮)’과, 이 땅에서 영광의 빛가운데 살게될 ‘승리의 날들’을 말한다. XIV. 새로운 확증의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 (아 4:7) 7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아름다와) 아무 흠이 없구나(아 4:7) A. 주님은 신부에게 “아름답다”라는 말을 아가서에서 13번 반복하신다. 지금까지, 주님은 신부에게 “아름답다, 또는 어여쁘다”라는 말을 8번 반복하셨다. “순전히 어여쁘다”라는 말은 “전체가 아름답다”라고 NAS역에 번역되어 있다. “전체가, 순전히”라는 단어를 주님이 여기서 처음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신부가 산으로 가겠다고 결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신부는 결단만 했을 뿐, 아직 산으로 올라가지는 않았다. 주님은 신부안에 흠이 없다고, 즉, 주님의 리더십을 의식적으로 저항하는 영역이 없다고 보신다. B. 결단은 했지만, 신부는 두 가지의 시험(아 5:2-8)이 오기 전까지 산으로 떠나지 않게된다. 그럼에도, 주님은 십자가를 지려는 신부의 의지를 보신다. 육신의 연약함이나 성숙함이 아니라, ‘자원하는 심령(순종의 마음)’을 보며 신부를 정의하신다. XV. 영적 전투로의 초청(아 4:8)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 (아 4:8) A. 여기서, 왕은 처음으로 술람미 여인을 ‘배우자,’ 또는 ‘신부’라고 부른다. 산으로 가고자 하는 신부의 헌신으로, 술람미 여인은 이제 신부와 같은 마음으로 살게 된다. 왕의 신부라는 마음으로 살게된다. 아가서 5-8 장에서, 우리는 성숙한 사랑을 개발해 나가는 신부를 보게된다. B. 예수님의 유업은, 사랑으로 주님과 함께 동일한 멍에를 지며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찬 영원한 동반자, 신부다. 십자가 그 자체가 신앙의 최종선은 아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에게 신부를, 하나님 아버지에게는 새로운 가족을 선사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랑으로 순종하는 ‘신부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게 될 것이다(계 22:17). C. 영적전투가 치열한 레바논 산, 즉, 주님은 그분이 가시는 곳은 어디든지 신부가 따라오도록 초청하신다. 주님은 신부를 ‘겟세마네’ 동산으로 초청하신다(아 5:2-7). D. 이제, 신부는 ‘산’으로 가야하는 도전(아 2:10,13)을 받아들이고 순종한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북쪽 레바논 산맥 숲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자신의 별장으로 신부를 초청한다. 레바논은 향기로운 꽃들이 가득했던 곳이었다(아 4:11; 호14:6). 레바논의 영광은 이사야35:2에 잘 언급되어 있다. E. 지리적으로 레바논은 산맥에 걸쳐있다. 특히, 스닐과 헤르몬은 레바논 산맥에 걸쳐있는 산봉우리다. 헤르몬 산은 요르단 강 동편에 있다. 아모리 족속은 그 산을 스닐산 이라고 불렀다(신 3:8-9). 아마나 산은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스닐산과 헤르몬 산(신 3:9;4:48; 대상 5:23) 옆에 있었다고 전해 내려 온다. F. 신부는 아마나, 스닐, 헤르몬 산 정상, 즉, 주님의 관점(하늘의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삶의 고난들을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낙심하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전투의 승리를 위해, 우리는 주님의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G. 이스라엘은 요단 강 동편에 있던 아모리 족속을 정복한 후, 동편 (헤르몬) 산 정상에 올라, 요단 강 서편에 있던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다. 이 산을 오르기 전에, 이스라엘은 두 아모리 왕들(오그와 시혼)을 정복해야 했다(신 2:1-11). 신부는 예수님과 더불어 천상에 앉혀진 자로, 영적 전투에 임하는 ‘전사적 신부’다. H. 산 정상에는 사자와 표범들이 살고 있다. 신부는,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들, 사자들과 표범들을 대적하며 싸워야한다. 사단은 우리를 삼키려 ‘우는 사자’와 같기 때문이다 (벧전 5:8). 이것은 ‘영적전투’를 말한다(엡 6:10-12). I. "사냥감의 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몰래 접근하는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하박국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레바논 산의 짐승들을 잔해하는 부분에 대해 기록한 바 있다(합 2:17) ===17장 빼앗긴 하나님의 마음 (아 4:9-5:1) (The Ravished Heart of God) I. 아가서 4:1-8 복습 A. 거룩한 훈육의 계절이 지나고, 신부의 순종과 믿음이 성숙해지는 과정 동안에도 예수님은 신부를 ‘어여쁘다(아름답다)’ 부르시면서 신부를 놀라게 하신다. 성품이 아직 다 자라나지는 않았지만, 순종하기 원하는 신부의 마음만을 보시고 예수님은 신부를 확증해 주신다. 아 4:1-5에서, 솔로몬은 농경 용어를 사용해 술람미 여인의 8 가지 성품을 칭찬해 주었다. 술람미 여인의 삶 속에 있는 8 가지 “싹트는 미덕”을 확증해 주었다. 성품이 아직 온전히 형성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은 신부의 소원을 보시고 미덕들을 확증시켜 주신 것이다. B. 어떤 영역에 아직 승리를 거두지 않았더라도, 순종하고자 결단할 때 우리의 순종은 시작된다.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결단한 후, 우리는 변화되어야 할 영역에 대해 ‘영적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성장과정 속에서도 주님의 인자한 자비와 기쁨을 당당히 받고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순종의 결단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C. 우리는 연약할 때에도 하나님께 아름다운 존재다. 훈육의 계절이 지나자 마자, 주님은 신부를 ‘아름답다’고 선포하신다. 연약할 때도 우리가 하나님께 아름답다라는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안에 성장하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계시이다. 이 계시를 통해 변화되게 되기 때문이다.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아름답고)도 어여쁘다 (아 4:1) D. 이제는 두려워 하지 않고 신부는 결단(아 4:6)을 내린다. 6 날이 기울고(터오고) .. 때에 내가 몰약 산⋯으로 가리라 (아 4:6) E. 신부는 ‘산으로 가자’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의 결단을 내리면서, 예수님의 사랑의 확증에 응답한다(아 2:8-13). ‘몰약의 산’으로 가며 자신의 십자가를 끌어 안게 된다.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신부는 자신의 ‘안락의 지대’를 벗어나 ‘산’으로 가겠다는 확고부동의 결단을 내린다. F. 그러나, 여기서 신부는 대답만 했을 뿐, 아직 산으로 가지는 않았다. 산으로 가기전에 신부는 두 가지 시험을 치르게 된다(아 5:2-8). 주님은 십자가를 기꺼이 지려는 신부의 의지를 보신다. 주님은 신부의 연약한 육신이나 성숙함이 아닌, ‘자원하는 심령’을 보고 정의 하신다. G. 예수님은 신부를 보며, “순전히 아름답다”라는 확언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주신다(아 4:7). 7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아 4:7) H. 여기서, 신부를 처음으로 ‘배우자(신부)’라고 부르시는 왕이신 예수님과 함께, 신부는 ‘영적 전투’에 동참하게 된다. 신부는 산으로 가고자 하는 헌신을 보이면서, ‘충성해 나가는 신부’의 마음으로 살게 된다. 아가서 5장 – 8장에서 우리는 성숙한 사랑을 성취해 나가는 신부의 모습을 보게된다.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다보아라 (아 4:8) I. 예수님은 신부에게 그분의 소원을 나타 내시면서(아 4:9-10), 활짝 번창하는 ‘정원(동산),’즉, 신부의 ‘거룩한 삶과 열매맺는 사역’을 확증해 주신다(아 4:11-15). 신부는 주님의 온전한 개입하심을 위해 기도한다(아 4:16). II. 주의 백성들에게 마음이 뺏기신 예수님 9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아 4:9) A. 이 구절은 아가서를 짧게 요약하는 구절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극히도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빼앗긴 (하나님의) 마음’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특별히 매력적인 대상으로 인해 기쁨, 또는 즐거움이 충만한 마음 (Webster의 Collegiate 사전). B. 빼앗긴 예수님의 마음에 대한 계시는 100% 순종을 위한 과정을 도와준다. 헌신적인 순종(아 4:6)을 결심했던 신부는 아 5:2-8 에서 그 순종을 실천해 나아가게 된다. C.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라는 ‘법적 위치’를 소유하게 되는 것 이상을 말한다(고후 5:21).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애정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정을 아는 만큼만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일4:19). 하나님의 마음은 그분의 백성들을 향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다. 10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아 7:10) III.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패러다임 A.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패러다임은, 하나님께서 깊은 사랑의 감정을 가지신 분이라는 계시에서 찾아야 한다. 전통적으로, 교회사에서 ‘인자하신 아버지’, ‘열정적인 신랑’이신 하나님에 대한 계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히 4 장에 관한 William Barclay 주석 참고). B. 유대인 전통에서는, 죄와는 완전히 분리된 ‘거룩한 분’이신 하나님만 가장 강조되어 왔다.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말해, 그들은 하나님을 인간의 딜레마나 문제를 나누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계신 분으로 정의해 버린 것이다. C. 그리스(헬라인, 희랍)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인간의 감정과는 거리가 먼 하나님으로 보았다. 당시, 가장 뛰어난 그리스 철학자들은 스토아파 철학자들 (Stoics)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 속성을 ‘냉담한 감정의 소유자’, 즉,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는 하나님으로 정의해 버렸다. 그들의 추론은 하나님께서 만약 감정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 감정에 좌지우지 되거나, 심지어는 조정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슬픔이나 기쁨을 느끼는 자들은 상처받기 쉬운 위치에 놓이게 되며, 감정을 가진 대상들에게 조정된다는 논지를 내세웠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감정에 영향을 끼친 자는 그 순간만큼은 그가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자가 된다고 믿었다. 에피쿠로스 학파 (Epicureans; 희랍 철학 학교)들은 신들이 영원한 세계의 환희가운데 ‘인간과는 분리된 삶’을 산다고 믿었으며, 신들은 ‘중간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신들은 인간사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더없는 환희와 행복속에 산다고 믿었다. D.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인간과는 ‘분리된’ 거룩한 하나님으로, 스토아 학파들은 ‘감정이 메마른’ 신으로, 에피쿠로스 학파는 ‘인간과는 분리되어 있는’ 신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종교적 생각이 만연한 가운데,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기독교의 하나님, 인간의 감정과 고통, 연약함에 의도적으로 동참하시는 하나님이 나오게 된 것이다. E. 예수님은 인간의 경험과 삶을 직접 끌어 안고 오신 분으로, 긍휼(체휼)함을 가지신 분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 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8) F. 거룩한 하나님께서, 인자함, 긍휼, 그리고 애정을 소유한 분으로 심지어 인간의 형상을 입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셨다는 것은 1세기 종교, 철학자들의 사고 방식에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패러다임이 얼마나 극적인 결과를 낳게 되었을지 생각해보라. G.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이 진리는 심지어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천사장과도 우리를 구별시키는 역할을 한다.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사랑의 능력을 가진 천사들을 기술한 본문은 없다. 기쁨의 감정은 있지만, 애정을 가진 존재로 언급되지는 않았다. ‘ 사랑의 능력’은 상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영광의 위치로 우리를 상승시켜 준다. 하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게 되면, 우리는 해로운 악의 꼴짜기 ‘밑바닥’을 경험하게 되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게 된다. IV.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 예수님의 계시 (5장 복습) A.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 아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애정)만큼,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이 진리는 우리의 ‘고귀함’을 나타내는 궁극적 성명문이며, 이 진리를 통해, 모든 신자는 자신을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자”로 바라볼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게 된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살라) (요 15:9) B. “애정에 근거한 순종”은 그 어떤 종류의 순종보다도 강력한 순종이다. 예수님의 애정을 경험하면서 흘러나오는 순종이기 때문이다. 애정에 근거한 순종은 가장 일관된 순종의 결과를 낳는다. ‘사랑앓이’를 하는 사람은 사랑을 위해 모든 고난을 감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순종은 “의무에 근거한 순종”(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순종)이나 “두려움에 근거한 순종” (불순종의 대가가 두려워 하는 순종)보다 더욱 강력하다. C. 아낌없는 애정과 열정을 지니신 하나님의 인격을 이해하게 될 때, 복음은 가장 번창하게 된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다가오는 부흥이나 영원의 시대에 무엇을 하실 지를 우리가 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과, 그분의 일하심의 동기를 바로 알아야한다. D. 하나님의 애정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생명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 12:11) E. 바울은 하나님을 위한 자신의 희생을 돌아보면서, 예수님을 아는 영광의 상급에 비교하면 그가 포기한 것은 쓰레기(배설물)에 불과하다고 간증했다. 사랑에 빠진 자에게 그렇게 큰 희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F. 여기서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도 있다, “왜, 또는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빼앗겨 있는가?” 우리 주님은 ‘사랑의 열망’으로 가득찬 인격체 이시다. 주님이 인자함으로 우리의 삶을 평가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소유하신 놀라운 인격 때문이다. 예수님의 인격과 마음,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우리와는 다르게 평가하시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사랑스럽게 보신다. V. 신부를 향한 예수님의 열정과 애정 9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10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 (아 4:9-10) A. 나의 누이 – ‘누이’라 부르신 것은 우리와 같은 인간의 형상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말한다(히 2:11-17). 주님은 모든 것에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기 위해 형용할 수 없는 굴욕과 고통을 이겨내신 분이시다(히 2:17). 주님은 너무도 미천하고, 낮은 곳으로 내려 오셨고, 우리는 너무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 주님의 ‘누이’로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마12:49-50). B. 나의 신부 – ‘예수님의 신부’로 불린다는 것은, 우리와 사랑의 동역을 원하시는 주님의 소원을 말한다. C. 주님의 누이와 신부. 이 정체성은 아가서에 7 번 강조되어 나온다 (아 4:8,9,10,11,12; 5:1,2). D.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 – 예수님은 우리가 드리는 헌신 하나 하나에 감동하신다. 주님을 사랑하려는 마음의 요동이 주님을 감동시킨다. 특정 영역에서 승리했을 때만이 아니라, 순종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순간부터 우리의 순종은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애정이 가득하신 주의 자비를 받고 성장하면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쁨을 느끼며 살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시선은 ‘사랑스런 순종의 시선’이다. 순종의 시선은 고귀한 결단에 뿌리를 둔다. 신부의 패러다임(영성)은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라는 메세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E. 네 목의 구슬 한 꿰미 – 성경에서, 목은 ‘의지’를 말하는데, 복종의 의지를 의미한다. 솔로몬 왕은 여인의 목을 표현하면서, 일찌기 원수를 효과적으로 패배시킬 수 있었던 다윗의 망대(아 4:4), 여인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금 목걸이(아 1:10)에 비유했다. 목걸이 한 꿰미 한꿰미는, 신부가 주님께 드린 순종 하나 하나를 대표한다. ‘사랑의 결단’ 하나 하나에 예수님은 감동하시며,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모두 기억하신다. 10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 6:10)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10:42) F.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을 아름답게 보신다. 사랑에 근거한 순종은 우리 자신을 아름답게 하며, 예수님께 커다란 기쁨을 안겨 준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아름다움)으로 하라 이 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베전 3:3-4) G.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 여기서 예수님은 신부가 일찌기 고백했던 “네 (주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아 1:2)를 반대로 그녀에게 고백하신다. 포도주는 기분을 들뜨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상징한다. 혼인에 사용되는 포도주는 ‘축하주’를 뜻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축복을 말하는 “좋은 포도주”와, 죄악을 뜻하는 “악한 포도주”를 분리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어떤 특권이나 경험보다도 월등한 영광이다. H. 예수님은 “그분이 창조한 우주만물의 장관보다도 우리의 사랑이 더 아름답다”고 말씀하시며, 주님의 권세아래 있는 모든 만물보다 우리의 사랑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 주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단순히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서가 아니다. 순종하려는 신부의 결단을 보시는 예수님에게는 기쁨이 가득차 있다(아 4:6). VI. 신부의 마음(생각, 말, 행실)을 보며 즐거워 하시는 예수님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아 4:10-11) A. 네 기름의 향기 –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진 ‘신부의 마음’을 가리킨다. 보이지 않는 향기가 식물의 내적 품질을 표현하듯, 우리의 생각은 ‘내면의 삶의 향기’를 나타낸다.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의도와, 말씀의 묵상은 향기가 되어 하나님께 올라간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향기)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 2:14-15) B. 각양 향품보다 – 귀한 향품들은 값비싼 선물로 사용되었다. 시바 여왕은 값비싼 향품들을 솔로몬 왕에게 선물로 주었다 (왕하 10:2). 동방박사들은 예수님께 다양한 향품들을 드렸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마 2:11). 향품들은 제사장들이 드리는 희생 번제물에도 사용되었다(출 30:23-24). C.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 하나님께 경배와 기도를 드리면서(아 2:14), 또, 다른 이들을 먹이고 목양하며 축복하면서 나타나는 신부의 ‘고백과 말’이 하나님께 꿀과 같이 달다는 것을 뜻한다. 신부의 ‘구속적’ 입술과 말은 ‘홍색 실’ 같다고 앞에서 기술되었다(아 4:3). 꿀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달콤한 맛을 낸다. 그러나, 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꿀벌들의 엄청난 시간 투자와 고된 수고가 요구된다. 1. 내 신부야 – 예수님은 신부가 주님께 말하는 사랑의 고백을 다 아신다. 2.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 ‘약속의 땅’의 번성(꿀)과, 또 유아를 위해 사용되었던 양식(젖)(베전 2:1)으로,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주제로 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엡 4:29; 골 4:6). “혀 밑에는”이라는 구는 ‘마음과 생각’을 말한다. 거짓이 가득찬 입은 “혀 밑에”(즉, 마음에) 문제가 있다(시10:7). 그러나, 신부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면서 “혀 밑에” (마음에) 진리를 품고 산다. 생각과 말이 일치하기 때문에, 정직하고 진실하다. D.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 이것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신부의 ‘행실’을 가리킨다. 의복은 신부의 ‘순종적 행실’을 말한다(계 19:7-8). 예수님은 우리가 “의복을 보전”할 것을 경고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우리가 삶을 마감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계 16:15).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님으로부터 “흰 의복”을 사서 입고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릴 것을 권고하셨다(계 3:18). 레바논 산은 향기로운 백향목과 꽃들로 유명한 곳이었다. 다시말해, 우리 자신만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물질과 시간을 투자하는 삶과는 대조 되는 삶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재정적 후원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달콤한 향기’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빌 4:18). VII. 예수님께 아낌없이 드리는 신부의 헌신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아 4:12) A. 잠근 동산 – 이 동산은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사적 소유의 동산(정원)이다. 이 동산은 야생 동물들이 와서 오염시키지 않도록 울타리가 쳐있는 ‘잠근동산’이다. 왕의 정원은 곡물을 키우는 일반 정원과는 다르게, 왕에게 쉼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정원을 가꾸는 데에는 엄청난 돈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교회는 하나님의 정원(동산)이다(고전 3:6-9; 아 6:2; 2:16). B. “잠근 동산,” 또는 “덮은 우물, 봉한 샘”으로 산다는 것은, 죄악과 타협의 더럽힘으로 부터 자신을 차단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협에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 왕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처소’가 된다. 고대에, 두껑이 없던 우물은 부정한(더러운) 물로 간주되었다(민 19:15). 15 무릇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도 부정하니라 (민19:15) C. 덮은 우물과 봉한 샘 – 이것은 (동물들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전한 물의 공급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우물이 귀했으며, 우물은 식물들이 풍성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정원에 귀한 수자원을 제공했다. 우리가 ‘덮은 우물’로 사는 것은 하나님께 귀하고 소중하다. D. 욥은 거룩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쳐다보지 않겠다는 언약을 세웠다(욥 31:1). 이렇게 함으로, 욥은 “잠근 동산”으로 마음을 보전하며 살았다. VIII. 젊은 신부의 열매에 대한 그림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아 4:13-14) A. 신부는, 각종 즐거움을 주는 과일, 향기로운 식물, 나무와 귀한 향품으로 가득찬 ‘과수원’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신부의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삶과 사역’을 말한다. ‘과일’은 하나님 안에 거룩함을 품는 살아있는 심령(롬 6:22;7:4-5; 갈 5:22; 엡 5:9; 히 12:11; 13:15;야 3:18)과 타인을 위한 사역 (요 4:36; 롬 1:13; 15:28; 빌 1:22; 골 1:5-6)을 가리킨다. B. 석류(13절)와 아름다운 과일(13절)은 달콤하며, 다른 이들에게 끼치는 아름다운 ‘영향력’을 말한다. 향기로운 고벨화와 나도초(13절)는 우리 삶에 일하시는 성령님의 귀하고도 풍성한 ‘역사’를 말한다. 나도와 번홍화, 창포와 계수(14절)는 신부의 사역에 다양하게 나타나는 주님의 ‘은혜’를 말한다. 각종 유향목(14절)은 ‘기도’ 사역을 말한다. 몰약과 침향(14절)은 십자가와 자신을 부인하는 ‘죽음’을 말한다. 모든 귀한 향품(14절)은 신부의 사역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는 은혜’를 말한다(고후 2:14-16). IX. 신부의 삶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세가지 그림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아 4:15) A.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신부는 삶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다. 이 경로들을 말하는 ‘물의 원천’에는 세가지가 있다. 믿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다(시 1:3). 굳어진 마음은 ‘메마름’을 말한다(사 1:30). 예수님은 우리가 ‘생수의 우물’ 같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 4:14; 7:38). ‘샘(분수)’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말한다. ‘우물’은 하나님 안에 살아온 우리의 역사를 말한다. ‘시내’는 높은 곳에서부터 우리에게 흘러 내려오는 성령님과 같다. B. 샘(분수)은 땅속 밑에 감춰져 있는 수자원이다. 이것은 내적 공급원, 즉,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말한다(골 1:27). 여기 동산들은 ‘복수형’(12절 잠근 동산이 단수형인 것과는 대조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말한다. C. 우물은 물을 저장하여 필요할 때마다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물은 건조기에 사람들에게 물을 제공할 수 있는 원천으로 저장된 물이다. 이것은 우리 과거의 경험에서 끌어내 공급할 수 있는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 역사’로, 공급원을 저장한 ‘과거의 은혜’를 말한다. D. 시내는 외부로 흐르는 물이다. 시내는 땅 위에 있으며, 샘은 땅 밑에 있다. 시내는 활력적으로 흐르는 물이다. 이 시내물은 산위에서, 또는 레바논의 고지대에서 흘러 내려온다. 그래서, 높은 곳(하늘)에서 내려오는 공급원인 성령님의 “물”로, 외적 공급원을 말한다(행 8:18). X. 갑절의 기름부음을 소망하는 신부의 절규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아 4:16). A. 신부는 이제 하나님의 선하심에 확신을 가지고, 두가지 기도를 드리게 된다. 신부는 ‘역경과 고난’의 북풍과 ‘축복’의 남풍이 함께 자신에게 불게 되기를 기도한다. 신부는 자신이 하나님께 즐거움을 선사하는 ‘향기로운 동산’이 되기 위해서는, 북풍과 남풍 모두가 전략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B. 북풍아 일어나라 – 북풍은 살을 애는 듯한 찬바람으로, ‘연단과 고난’의 바람을 말한다. 이 기도는 나중에 아 5:3-7 에 나오는 “2 가지의 궁극적 시험”으로 응답되게 된다. C. 남풍아 오라 – 신부의 두번째 기도는 성숙케 하는 상쾌한 ‘축복’의 바람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분의 지혜로 우리 삶의 각 계절에 필요한 북풍과 남풍의 조화를 잘 알고 계시며, 우리의 구조와 부르심을 알고 계신다. D. 나의 동산에 불어서 – 신부는 자신의 ‘마음과 사역의 동산’이 더 깊이 영향받게 되기를 바란다. 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우리의 교만과 야망, 분노 등이 고난를 거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향기를 날리라 – 신부는 하나님의 향기로운 임재로 채워지기를 소원한다. 다시말해, 신부는 주님의 사랑안에 자라고 싶어한다. E.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 여기서 ‘신부의 동산’이 ‘주님의 동산’이 되는 ‘대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이제 신부는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기를 소원하며, 거룩한 헌신을 위한 ‘기름부음’을 바란다. 신부는 ‘자신의 삶과 사역’을 자신의 것이 아닌 “주님의” 동산으로 본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누리시는 기업을 갖고 계신다(엡 1:18). 이 구절이 아가서의 전환점이다. 아가서 1장부터 4 장까지는 ‘신부의 기업’을 말했지만, 이제부터는 ‘주님의 기업’을 말하게 된다.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 신부 안에 하신 성령의 역사를 예수님이 즐기시게 되기를 바란다. XI. 주님의 기업인 신부를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예수님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 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 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아 5:1) A. 신부는 이제 예수님의 온전한 리더십과 주권아래 살게 된다. 신부의 삶과 사역의 주권을 묘사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나의”라는 소유격을 9 번(영어역)이나 사용하셨다: 내 동산, 나의 누이, 나의 신부, 나의 몰약, 나의 향, 나의 꿀송이, 나의 꿀, 내 포도주, 내 젖. B. 내 동산에 들어와서 – 신부가 아 4:16 에서, 주님께 들어와 드시라고 드렸던 기도에 예수님은 응답하신다. 예수님은 누이와 신부의 두가지 관계를 통해, ‘자신의 기업’으로 신부의 삶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 신부의 마음안에 들어 오신다. C. 나의 몰약과 향재료를 거두고 – 예수님은 성령이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 것을 거두어 들이신다. ‘나의 몰약’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시간을 말한다. ‘나의 향재료’는 신부의 삶에 거하는 ‘은혜의 나눔’을 말한다. D.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 예수님은 성숙한 교회의 열매를 잔치하신다. 신부는 아 4:16 에서 ‘오셔서 드세요’라고 주님께 간청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교회에 풀어주신 것을 즐기신다. ‘꿀’은 예수님이 신부의 삶을 잔치 하시는 ‘즐거운 양식’을 말한다. E.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 예수님을 향한 신부의 사랑을 주님은 축하 하신다. 포도주는 축하주이며, 젖은 강건함을 위한 양식이다. 예수님은 신부의 사랑을 축하 하시며, 그 사랑으로 기뻐하신다. F.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 예수님은 교회가 ‘성숙한 자들의 열매’를 즐기게 되기를 원하신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성도들을 말한다. 바울은 자신을 부인하는 죽음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이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을 기술한 바 있다(고후 4:10-12). 주어진 고난을 받아 들였기에,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향기’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게 되었다. 신부는 주님이 잔치를 벌이고 교회를 먹이는 ‘산제사’와도 같다(롬 12:1). 우리는 주의 은혜로 타인들을 강건케하고 양육시킬 수 있다. G. 요약: 아가서 5:1 에 나오는 예수님의 활동 5 가지. 주님은 몰약을 거두고, 꿀송이를 먹고, 마시며, 신부를 다른 이들이 동참하여 즐길 수 있는 ‘잔치’로 제공하신다. 주님은 ‘자신의’ 동산에 오신다, 즉, 신부에게 가까이 임하신다. 주님은 몰약과 향재료를 거두신다, 즉, 주님은 성령이 신부 안에 하신 역사의 열매를 사용하신다. 주님은 주의 꿀송이와 꿀을 드신다, 즉, 신부의 성숙의 열매를 잔치하신다. 주님은 주의 포도주와 젖을 마신다, 즉, 성숙한 신부를 축하하시고 기뻐하신다. 주님은 친구들을 잔치로 초대하신다, 즉, 주님은 교회가 성숙한 자의 열매를 보며 기뻐하고 즐기게 되기를 바라신다. ===18장 성숙을 위한 궁극적 시험 2가지 (아 5:2-9) (The Ultimate 2-Fold Test Of Maturity) I. 복습: 삶에 더 깊은 하나님의 임재를 소원하는 신부의 절규 A. 신부는 ‘역경’의 북풍과 ‘축복’의 남풍이 ‘마음’의 동산에 임하기를, 그래서 은혜의 향기가 삶에 날리게 되기를 기도했다. 신부는 확신으로 차가운 북풍의 시험을 기도했는 데, 이것은 아 5:3-7에 나오는 시험 2 가지 중에 하나로 응답된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아 4:16) B. 이제는 신부의 마음의 동산이 ‘주님의 동산’이 되는 시간이다. 신부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동산이 아니라 ‘주님의’ 동산으로 보게 된다. 예수님은 주의 백성들을 통해 누리시는 기업을 소유하고 계신다(엡 1:18). 아가서의 전환이 일어나는 부분이다. 1장부터 4장까지 신부의 초점은 ‘자신의 기업’에 있었다. 5장부터는 신부의 초점이 ‘주님의 기업’이 되는 데 맞추어져 있다. 신부가 주님의 주권아래 살게 되면서, 예수님은 신부를 통해 당신의 기업을 즐기시게 된다. 주님은 그분의 주권을 묘사하기 위해 “나의”라는 소유격을 아 5:1에서는 9번, 아 5:2에서는 6번 사용하신다. 1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나의)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나의)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아 5:1) II. 고난의 참예로 신부를 초청하시는 예수님 (아 5:2) 2 내가 잘찌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아 5:2) A.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의 ‘고난’을 겪는 모습으로 신부에게 나타나신다. 예수님은 주님과 더불어 고난에 참예하도록 우리를 초청하신다(빌 3:10). 신부는 순종으로 응답하며(아 5:3-5), 두 가지 시험을 치르게 된다. 먼저, 예수님은 신부에게서 자신의 임재를 거둬가신다(아 5:6). 두번째로, 영적 권위자들이 신부를 학대하는 것을 그대로 놔두신다(아 5:7). 이 두가지 시험에 신부는 사랑으로 응답하게 된다(아 5:8). 내가 그리스도와 …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빌 3:10) B.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나긴 밤을 지새어 밤이슬이 머리털에 가득한 “겟세마네의 예수”의 모습으로 신부에게 다가와, ‘고난의 주님’을 친밀하게 알 수 있도록 신부를 초청하신다. C. 예수님은 신부가 “주님께” 마음을 열어, 하나님 안에 새로운 깊이를 경험하도록 초청하신다. 주님은 아 5:1에서 공포하신 것처럼, 주권으로 이제 신부의 마음전체를 소유하게 되신다. 아 4:16에, ‘북풍’을 기도한 신부의 기도응답으로 예수님은 신부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신다.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을 더 깊이 경험하며 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시도요, 갈망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 더 깊이 하나님과의 교통(교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20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D. 북풍이 불어올 때, 신부는 하나님 사랑 안에 확신을 가지고 안식하게 된다. 폭풍이 휘몰아 칠 때 예수님이 잠잠히 주무시고 계셨던 것처럼(마 8:23-27), 이미 주님은 “믿음의 안식”을 잘 알고 계신다. 순종의 삶을 사는 신부는 이제 영적인 것들에 예민한 심령으로 깨어 살게 된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살전 5:6; 롬 3:11; 엡 5:14). E. 곧, 신부는 아 2:8에서 처럼,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듣게된다. 예수님은 ‘신부의 사랑하는 자’로 모습을 다시 드러 내신다. ‘신랑의 음성’은 세례요한이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을 때 들었던 음성이다. …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 (요 3:29). F.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신부의 모습들을 묘사하고, 신부에게 주 사랑으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예수님은 4 가지 이름으로 신부를 부르신다. 이것을 통해, 신부는 주님께 마음을 여는 권능을 받게 된다.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오 (아 5:2) . 1. 나의 누이 – 신부와 같은 예수님의 ‘인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기 위해 형용할 수도 없는 고난을 이겨내셨다 (히 2:11-17). 2. 나의 사랑 – 이것은 신부를 향한 주님의 인자한 사랑을 상기시켜 준다. ‘은혜의 동기’는 두려움이나 심판이 아닌, 사랑과 감사로 동기부여 된 것이다. “애정에 근거한 순종”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형태의 순종이다. 예수님의 애정을 경험함으로 흘러나오는 순종이기 때문이다. ‘사랑앓이’를 하는 사람은 그 사랑을 위해 모든 역경을 참아낸다. 그래서, 이 순종은 가장 ‘일관된’ 순종이라 할 수 있다. 3. 나의 비둘기 – 이것은 신부의 ‘일편단심’과 ‘충성’을 말한다. 성령님은 비둘기로 비유된다. 비둘기는 짝이 죽으면 다른 짝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비둘기들은 충실함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둘기는 한 번에 두 사물을 볼 수 없으며, 주변 시야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이것은 타협하지 않는 ‘일편단심’의 마음을 말한다. 신부의 눈은 주님께 고정되어 있다. 4. 나의 완전한 자 – 신부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것은 성숙하게 되는 모습을 가리킨다. 신부의 순종은 성숙하게 된다. 이 시험을 치르기 전(아 5:2)과 후(아 6:9)에서, 예수님은 모든 타협을 거부하는 신부를 ‘완전한 자’라고 칭찬하신다. III. 100% 온전한 순종으로 예수님께 응답하는 신부 (아 5:3-5) 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4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5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아 5:3-5) A.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신부는 순종하며 일어난다. 시험이 지난 후, 신부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첫 마디는 신부가 순종으로 응답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아 6:4-5). 우리는 ‘예수님의 의’의 의복으로 덮혀져 있다(사 61:10; 슥 3:1-5). 우리 자신의 의나 의복은 ‘더러운 옷’과 같다(사 64:6). 신부는 자신의 더러운 옷을 벗고 주님의 의의 의복을 입었다. 신부는 자신의 옷을 다시 입고 싶어하지 않는다. 타협하며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신부는 선포한다, “어찌 다시 (나의 옷)을 입겠으며.” 10 …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 (사 61:10)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 (사 64:6) B. 신부는 발을 씻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발이 깨끗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 13:6-14). 이것은 매일의 삶에 필요한 ‘영적 정화’를 뜻한 것이다. 신부는 타협으로 다시 발이 더럽혀지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아 5:3). 미국 NIV역은 이것을 마치 신부가 침대에서 나오기를 거부하는 타협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본문을 잘 살펴보면, 신부가 순종으로 예수님께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C. 하나님의 ‘손’은 신부의 마음의 ‘걸쇠와 문빗장’에 은혜를 풀어주신다(행 11:21-23). 신부는 ‘사랑하는 자, 사랑하는 분’으로 예수님을 부르고 있다. 신부는 ‘겟세마네의 예수님’께 문을 열기 위해 일어나면서 예수님을 향한 사랑으로 마음이 갈급해진다. 예전에 이와 비슷한 초대가 있었을 때, 신부는 예수님께 올바로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아 2:13, 17). 4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걸쇠)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5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아 5:4-5) D. 예수님이 ‘걸쇠’에 손을 들이미시는 것은, 신부가 마음의 문을 열도록 도와 주시기 위해서다. 신부의 ‘마음의 문빗장’은 결단에 영향을 주는 ‘생각들과 감정들’을 말한다. E. ‘몰약의 즙’이 손과 손가락 사이에 흐르며, 신부의 마음의 문빗장에 액체처럼 흐른다. 이것은 다가오는 두가지 시험의 고난을 이겨내도록 도와주는 ‘풍성한 은혜’를 말한다. 몰약은 장사를 지내는 데 사용되는 향품이었다. 이것은 자신을 부인하는 죽음과 십자가를 지는 헌신을 말한다. 몰약의 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몰약이 손가락 사이에 흐른다는 것은, 신부가 몰약의 산으로 가려고 헌신할 때 역사하는 ‘믿음의 행위’을 말한다(아 4:6). IV. 첫번째 시험: 신부에게서 임재를 거둬가시는 예수님 (아 5:6)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아 5:6) A. 주님은 아가서에서 두번에 걸쳐 신부에게서 모습을 감추신다(아 3:1-2; 5:6). 이 본문에서, 주님은 신부가 100% 온전히 순종하며 주님을 따르려 할 때 임재를 거둬가신다. 이 계절은 신부가 불순종의 결과로 받았던 아 3:1-2의 훈육과는 다르다. B. 아가서 5 장에서, 예수님은 신부를 “나의 완전한 자”라고 부르시는 데(2절), 이것은 사랑으로 병이난 (사랑앓이를 하는) 신부가(8절) 주를 갈급하고(4절), 사모하며(5절) 주께 마음을 여는 ‘순종’을 보시고 말씀하신 것이다. C. 신부의 가장 큰 소원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다(아 1:2-4; 2:3-6). 하나님에게 사랑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 중 가장 크고 강력한 즐거움이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 나는 …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D. 예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거나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히 13:5). 그러나, 신부가 아 4:16 에서 기도한 것처럼, 주님은 우리가 성숙한 사랑을 지니게 하기 위해, 때때로 임재를 거둬 가시는 시험을 주신다. 이것은 죄로 인함도 아니요, 마귀의 공격도 아니다. 때때로, 주님을 향한 더 큰 갈급함을 유도해 내기 위해,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얼굴을 감추기도 하신다. …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E. 중세 카톨릭 신자들 중에서, 임재(관상)기도 했던 사람들은 “영혼의 깊고 어둔 밤”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 데,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자들에게 오는 ‘거룩한(신적) 시험의 계절’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성경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시기를 가리켜 사용된 용어였다. 이 구절은 16세기에 살았던 성 크로스 요한(St. John of the Cross)이란 사람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 구절의 뜻에 대한 신학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F. 욥은 고난을 겪고 다시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확립했을 때, 의로운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 1:8)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G. 본문에서, 신부는 더욱 열심히 주를 찾지만, 만나지 못한다. 이 ‘거룩한(신적) 침묵의 계절’은 주를 향한 사랑을 자라게 하기 위해 받는 훈련이다. 시험의 계절에서도, 우리 믿음의 고백은 한결 같아야 한다. “내 삶을 향한 주님의 깃발은 사랑입니다”(아 2:4). V. 두번째 시험: 핍박박고 거절당하는 신부 (아 5:7) 7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아 5:7) A.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들(행순 하는 자들)’은, 주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의 성벽을 지키는 ‘리더들,’ 즉, ‘영적 권위자’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신부를 치고 상처를 준다. 그들이 신부를 거절하고 핍박하고 상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신부와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자가 당신을 정죄하고 참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을 상하게 하는 사람은 정작 당신과 가까운 친구들이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집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예수님도 겪으셨던 경험이다. 이것 또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훈련의 일부다(시 55:12-21). B. 리더들이 신부의 ‘옷’을 취해간다는 것은, 신부의 영적 커버링, 즉, 지체를 섬기는 신부의 역할과 기능을 거둬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전 11:10). VI. 겸손과 사랑으로 반응하는 신부 (아 5:8) A. 신부의 겸손은 미숙한 예루살렘 여자들을 겸허한 마음으로 대하는 데서 나타난다. 8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아 5:8) B. 신부는 두 가지의 시험을 주신 주님께 실족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사랑하여 병이 나게 된다. 6 누구든지 나(예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 11:6) C. 신부의 삶의 비전 두 가지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사역에 주님과 함께 매진하는 것이었다(아 1:4). 하나님께 받은 수많은 약속들도 이 비전과 연관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신부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여기서, 이슈는 신부가 주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님께 순종할 수 있겠는가? 이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하나님을 찾았는가? 아니면, 주님을 위해 순종할 것인가? 주님은 삶의 고난이나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께 순종할 사람들을 찾으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기업’이 되는 데 있어 나타나는 주된 이슈가 바로 이것이다. 주님은 ‘사랑으로 주님과 동일한 멍에를 지는 신부’를 바라신다. D. 아가서에 나오는 신부의 위기 7 가지: 죄의 위기(아 1:5-6); 두려움의 위기(아 2:8-9); 거룩한(신적) 훈육의 위기(아 3:1); 온전한 순종의 위기(아 4:6, 16); 주님의 부재로 인한 위기(아 5:6); 교회 안에서 겪는 거절감의 위기(아 5:7); 그리고, 핍박과 분열의 위기(아6:13) ===19장 두 가지 시험에 대한 신부의 반응 (아 5:8 - 6:5) (The Bride's Response To The 2-fold Test) I. 복습: 삶에 더 깊은 하나님의 임재를 소원하는 신부의 절규 A. 신부는 역경의 북풍과 축복의 남풍이 모두 심령의 동산에 불어 ‘은혜의 향기’와 ‘하나님의 임재’가 삶에서 날리게 되기를 기도했다.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아 4:16). B. 이 기도는 성경에 나온 성숙한 사랑과 헌신을 위한 기도 중 가장 위대한 기도이다. 우리의 삶에 향기가 날리도록, 즉,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타인을 향한 사랑이 성숙해 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다 동원해 달라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C. 아가서의 전환이 일어나는 부분이다. 아가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아 1-4장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아 5-8장은 우리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풍을 위한 기도의 응답은 아 5:3-7에 나오게 된다. D.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의 모습으로 신부에게 찾아오면서, 더 깊은 차원의 친밀감을 경험하도록 “주님께” 마음의 문을 열으라고 신부를 초청하신다. 1. 신부는 순종으로 응답하며(아 5:3-5), 두가지의 시험을 치르게 된다. 먼저, 예수님은 신부에게서 임재를 거둬가신다(아 5:6). 그리고, 주님은 신부가 영적 권위자들(종교적인 지도자들)로 부터 학대받는 것을 그대로 놔두신다(아 5:7). 2. 이에 대해, 신부는 예수님을 향한 깊은 사랑으로 응답한다(아 5:8). 사랑의 성장(아5:9-6:13)과 열매맺는 사역(아 7:1-8:4)을 위해, 우리는 아 5:2-9의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