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6.0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잠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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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겸손, 의, 신중, 구제

1-5절, 정직, 겸손, 온전함

[1절]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공평한 추는 율법에 명령된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9:35-36에서 “[너희는]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고 명하셨고, 모세는 신명기 25:13-15에서,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속이는 저울을 사용하였다. 선지자 아모스는 그들이 “에바를 작게 하여[하고]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자”라고 말한다고 지적했다(암 8:5). 선지자 미가는 악인의 집에 있는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와 ‘부정한 저울’ ‘거짓 저울추’에 대해 언급하였다(미 6:10-11). 오늘날도 세상에는 불량 재료 사용, 원산지 속임, 가짜 상표, 허위 과장 광고 등 속여서 돈을 버는 죄악된 행위가 많다.

하나님께서는 속이는 저울을 미워하시고 공평한 추를 기뻐하신다. 잠언 20:10,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와 말(measures)(KJV, NASB)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저울을 버리고 공평한 추를 사용해야 한다. 공평한 추는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소득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면 복이 되지 못하지만, 적은 소득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복이 된다. 그러므로 잠언 16:8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

[2절]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교만이 오면 욕도 온다. 교만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피조물이요 죄인임을 잊었거나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자기 위치를 벗어난 것이다. 교만은 마귀의 죄이며(딤전 3:6)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6, 7가지 죄악 중 첫째이다(잠 6:16-17). 그것은 사람의 대표적인 큰 죄악이다. ‘욕’은 치욕을 가리킨다. 사람이 교만하면 치욕이 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기 때문이며 사람들도 그를 버리거나 따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영광보다는 수치를, 칭찬보다는 욕을 당한다.

마귀는 교만한 천사이었다(딤전 3:6). 그는 하나님의 원수이며 성도의 대적자이다(마 13:25, 39; 눅 22:31; 벧전 5:8). 그는 ‘마귀’ ‘사탄’ ‘온 천하를 꾀는 자’ 등의 이름을 가졌고 마침내 지옥불에 던지울 것이다(계 12:9; 20:10).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할 때에, 교만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 등은 당을 짓고 모세를 대적하였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땅이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들을 다 삼키게 하셨다. 그들은 산 채로 땅 속에 묻히었다(민 16:1-3, 32-35). 본문은 그러나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며 높이며 자기 자신이 피조물이요 부족과 죄성을 가진 자임을 알고 자신을 낮추는 자이다. 그는 자기 위치를 지키는 자이다. 겸손한 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칭찬과 높임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언 15:33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하고, 잠언 18:12도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한다. 겸손한 자는 지혜자이다. 그는 결코 실패치 않고 언제나 승리할 것이다.

[3절] 정직한 자의 성실(툼마 )[온전함]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보그딤 )[배신자]의 패역(셀렙 )[비뚤어짐]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

정직한 자의 온전함은 자기를 인도한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사는 자이다. 인도한다는 말은 평안의 길로, 생명의 길로,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뜻이라고 본다. 정직과 의는 복된 길이다. 그것은 평안과 생명과 천국의 길이다. 시편 119: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이사야 48:17-1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로마서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옛날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승천하였고(창 5:24) 또 노아는 의롭고 온전한 삶을 살다가 홍수 심판 전에 방주를 지었고 그 안에 들어가 구원을 얻었다(창 6:8-9; 7:1).

그러나 배신자의 비뚤어짐은 자기를 망케 한다. 배신자는 양심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난 일을 행하는 자이다. 그는 결국 자신을 망케 하고 만다. 예컨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를 배신하고 일시적으로 왕권을 탈취하였으나 결국 아버지와의 전쟁에서 죽었고 (삼하 15장, 18장), 그의 최측근 참모로 그를 도왔던 아히도벨도 결국목매어 죽었다(삼하 17:23). 주님의 열두 제자들 중 하나인 가룟 유다는 주를 배신한 후 자살하여 창자가 터져 죽었다(마 27:5; 행 1:18).

[4절]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체다카 )[의(義)]는 죽음을 면케 하느니라.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다. 돈이 평소에 유익이 많기는 하다. 돈이 있어야 좋은 옷도 사고 좋은 집도 사고 좋은 차도 사고 문화적인 혜택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돈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날 곧 재앙의 날에 무익하다. 돈은,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에 걸렸거나 전쟁, 지진, 기근 등이 발생했을 때,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주지 못하고 또 우리를 지옥 형벌로부터도 건져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에스겔 7:19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베푸는 날에 그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에 빠치는 것이 됨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의는 죽음을 면케 한다. 의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며 그것은 죽음을 면하게 한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며 사람에게 가장 큰 불행이다. 사람은 질병이나 기근이나 전쟁으로 죽는다. 그러나 의는 사람에게 영육의 죽음과 둘째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을 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를 죽음과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였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의에 근거한 것이다. 로마서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5절] 완전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그 길이 곧게 되려니와 악한 자는 그 악을 인하여 넘어지리라.

완전한 자의 의는 그의 길을 곧게 한다. ‘완전한 자’(타밈 )라는 말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를 가리킨다. 이 세상에서 절대 완전한 사람은 없지만, 우리의 성화의 일차적 목표는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와 완전함, 즉 책망할 것이 없는 삶을 요구하신다.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이었다. 창세기 6:9,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욥도 그러했다. 욥기 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완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감독 혹은 장로의 자격자는 책망할 것이 없는 자이어야 한다. 디모데전서 3:2,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디도서 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우리는 재림하시는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나타나기를 힘써야 한다. 베드로후서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그의 길을) 곧게 한다’는 원어(테얏쉐르 )는 ‘곧게 한다’는 뜻(NIV) 외에 ‘평탄케 한다’는 뜻이 있다(BDB, NASB). 그것은 장애물이 없이 평안한 방향으로 인도한다는 뜻이라고 본다. 완전한 자, 의로운 자는 그의 앞길이 평탄하며 평안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악한 자는 그 악을 인해 넘어질 것이다. 악한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거스르는 자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거스르는 모든 말과 행동이 악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의 근본 내용인 사랑에 반대되는 것이다.

악한 자는 그의 악을 인해 결국 넘어지고 만다. 넘어진다는 말은 실패하고 재앙과 불행을 당하고 마침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과 지옥 형벌이 그를 기다린다(히 9:27).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특히 장사나 상거래를 할 때 정직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남을 속이거나 불법한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려 하지 말고, 적은 소득이라도 정당하게 벌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된다.

둘째로, 교만이 오면 욕도 오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다. 교만은 마귀의 죄이며 하나님께서 매우 미워하시는 죄악이다. 사람이 교만하면 멸망한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지혜가 있고 승리할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이 있다면 그것은 겸손이다.

셋째로, 정직한 자의 온전함은 그를 평안과 영생으로 인도하나 배신자의 비뚤어짐은 자기를 망케 한다.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지만 의는 죽음을 면케 한다. 또 완전한 자는 그 의로 인해 길이 평안케 되지만, 악인은 그 악을 인해 넘어진다. 우리는 예수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오직 정직하고 의롭게 살고 흠과 점이 없이 온전한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의롭고 완전한 길은 평안과 안전과 영생의 길이다.

6-10절, 의인은 구원을 얻음

[6절]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보그딤)[배신자](BDB, NASB)는 자기의 악(하우와 )[(악한) 욕망](BDB, NASB,NIV)에 잡히리라.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해 구원을 얻는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사는 자이다. ‘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실제로 의롭게 살아야 한다. 구원은 이 세상의 각가지 어려움들, 즉 마귀의 시험과 죄, 몸의 병과 죽음, 그리고 내세의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을 다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의롭게 사는 의인들을 보호하시고 영혼과 몸의 불행과, 현세와 내세의 불행에서 건져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의롭게 행하려 했던 다윗을 사울의 칼로부터 구원해주셨다(사무엘상). 의인은 그의 하는 일들이 다 형통할 것이다(시 1:3). 성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를 안위하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시 23:4). 하나님께서는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이다(롬 2:7). 그러나 배신자는 자기의 악한 욕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배신자는 돈이나 세상 권세나 명예 등 세상 것에 대한 탐욕 때문에 배신한다. 그는 그의 악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예수님의 택함을 받고 3년 동안이나 그를 따라다니며 재정 관리의 책임까지 맡았던 제자 가룟 유다는 은 30개에 주님을 배신하고 악한 무리에게 그를 넘겨주었다. 그는 돈 욕심에 사로잡혔다. 배신자들은 자신의 욕심에 사로잡히며 마침내 영육의 멸망과 현세와 내세의 멸망에 이를 것이다.

[7절]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진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계명을 어기며 사는 악한 자는 아무리 좋은 소망을 품어도 그 소망이 헛되게 된다. 사실상, 악인의 소망이란 물질적인 것, 육신적인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부요, 세상적 권세와 영광, 육신적 쾌락 등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헛되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지나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전도서에서 교훈하셨다. 사도 요한도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치 말라고 교훈하면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간다고 증거하였다(요일 2:15-17). 우리는 악인들이 죽을 때 그들의 소망이 끊어진다는 것을 안다. 인생은 짧고 유한하다. 사람은 죽을 때 그의 세상적 소망도 함께 끝난다. 더욱이, 악인이 하나님의 징벌로 갑자기 죽을 때 우리는 그의 소망이 끊어짐을 실감한다. 또 불의의 소망은 없어진다. ‘불의’라는 원어(오님 )는 ‘사악한 자들’ 혹은 ‘힘’(BDB)이라는 뜻 같다. 그것이 ‘힘’이라는 뜻이라면, 그것은 악인이 육신의 힘이나 세상 권세를 의지하고 소망한다는 뜻일 것이다. 사악한 자들의 소망, 혹은 그들이 의지하는 육신의 힘과 세상 권세는 없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시면 그렇게 건강하던 그들은 병상에 눕게 될 것이며 그들이 누리던 세상의 부귀와 권세는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다. 악인의 소망은 참으로 헛되다. 그러나 의인의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의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부활, 천국, 영생을 소망하며, 또 땅 위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한 일들을 소원한다. 의인의 그 소원들은 다 이루어질 것이다(잠 10:24).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8절]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 곧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 교훈에 순종하는 자를 가리킨다. 의인이 환난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의인도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함을 전제한 말이다. 이 세상에는 환난이 많고 의인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환난을 당한다. 그는 때때로 병에 걸리고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며 사람들의 미움과 핍박을 당하고 죽음의 위험도 당한다. 이 모든 일 배후에는 마귀의 활동도 있다(욥 1, 2장). 그러나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고 건지시기 때문이다. 잠언 11:6,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시편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욥기 5:18-20,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救贖)하실 터인즉.”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심한 고생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건지셨음을 간증했었다(고후 1:8-10).

본문은 악인이 와서 그를 대신한다고 말한다. 악인은 의인을 해치려고 음모를 꾸미지만,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그 음모로부터 건져내시고 도리어 악인이 그 함정에 빠지게 하시는 것이다. 시편 7:15,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죽이려 계획했던 악한 하만은 도리어 자신이 그 나무에 달려 죽었고(에 7:9-10), 다니엘을 참소하여 사자굴에 던져 넣게 했던 자들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지워 죽임을 당하였다(단 6:24).

[9절] 사특한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사특한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한다. ‘사특한 자’라는 원어(카네프 )는 3절과 6절의 ‘사특한 자’라는 말(보그딤 )(배신자)과는 다른 말로서 ‘불경건한 자’라는 뜻이다(BDB, KB, NASB, NIV). 

불경건한 자는 입으로 이웃을 망하게 하고 파괴시킨다. 그는 악하고 거짓되게 이웃을 비난하고 중상모략함으로 이웃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신임성을 떨어뜨리고 그를 사회에서 매장시키며 파괴시킨다. 오늘날 인터넷 ‘악플들’(악하고 거짓된 댓글들)은 이런 유의 것이다.

출애굽기 23:1,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모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 잠언 20: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디도서 1:10-11,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사람의 모든 말은 심판날에 보응을 받는다(마 12:36). 그러나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에 순종하여 의롭게 사는 자이다. 

의인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구원과 내세에 대해 바른 지식을 가진다. 믿음은 지식을 포함한다. 의인은 그 믿음의 지식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그를 비난하며 느헤미야가 왕을 배반하고자 한다는 헛소문을 냈지만, 그들에게 대꾸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자기의 할 일에 힘썼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원수들의 음모로부터 구원해주셨다.

[10절]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한다. 형통하다는 말은 몸의 건강, 사업의 번영, 직장에서의 승진 등 일이 잘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올바르게 사는 자들이 잘되면 성읍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사람의 양심이 공의와 선과 진실을 다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의인들이 잘되면 양심적인 무리들은 동감하여 기뻐하는 것이다. 또 의인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면 그 사회는 공의와 공평이 시행되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니 사람들은 더욱 기뻐할 것이다.

열왕기하 11:20에 보면, 유다 왕국에서 왕자들을 죽이고 불법하게 왕권을 취한 악한 여자 아달랴가 6년간 통치하던 중 경건한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충성된 주선으로 정통 왕자 요아스가 왕위에 올랐을 때, 온 국민은 즐거워하였고 예루살렘 성이 평온했다. 또 에스더 8:15에 보면, 에스더 시대에 악한 신하 하만이 죽임을 당하고 모르드개가 왕 앞에 높임을 받았을 때도 수산성은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였다. 또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친다. 

악인들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남을 해롭게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의인들을 핍박한다. 패망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벌을 내려 무서운 병에 걸리든지, 세상에서 지위나 신분상에 큰 어려움을 당하고 마침내 죽는 것을 말할 것이다. 사람들은 악인들의 패망을 기뻐한다. 그들은 약자들이 무시당함과 핍박당함에서 놓여나고 억울한 일들이 갚음을 받고 사회에서 공의가 시행됨을 인해 기뻐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양심은 악인의 패망을 기뻐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가 되고 배신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로서 과거의 모든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 즉 성경의 교훈대로 순종하여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그것이 현세에서도 환난으로부터의 구원과 평안을 얻는 길이며 영생의 길이다.

둘째로, 우리는 악인의 소망, 곧 물질적, 육신적, 세상적 소망을 버려야 하고 오직 의인의 소망, 영적, 천적 소망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소망하며 그가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의인의 몸의 영광스런 부활과, 복되고 영광스런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을 소망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세상에서 환난이나 악인들의 비방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받은 의 안에서 의롭고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만 살아야 한다. 우리가 바르고 선하게만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과 형통의 복을 주시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기쁨을 나누게 하실 것이다.

11-15절, 말, 조언, 빚 보증

[11절]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해 진흥한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대로 정직하게 사는 자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은 사랑이므로 정직한 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읍을 위해 올리는 정직한 자의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 마음 속에 악을 품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시지만(사 9:1-3), 정직한 자의 기도는 잘 들어주신다. 의인들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약 5:16).

성읍이 진흥한다는 말은 여러 방면에서 발전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 나라에는 각종 범죄가 있고 각 분야에 불법한 일들이 많이 있고 때때로 전쟁의 위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나라가 범죄가 없고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이 없고 전쟁이 없는 평안한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는 우리나라와 사회의 개선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성읍은 악한 자의 입을 인해 무너진다. 

악한 자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불경건한 자이며 도덕성이 없는 자이다. 그의 말들은 성읍을 파괴시킨다. 불경건한 자의 입은 이웃을 망케 한다(잠 11:9). 예컨대, 북한의 거짓 선전이 남한의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견해를 심어주었고 우리 사회를 혼란케 했다.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켜 약 330만명의 동족을 죽게 했고 수많은 테러를 행했고 300만명의 인민을 굶어죽게 했고 자유와 인권 존중이 없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가 이상적이며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요 미국이 남북통일을 막는 자라고 선전해, 많은 사람들을 혼란시키고 남한을 공산주의화시키려 하고 있다.

[12절] 그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지혜가 없거니와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지혜가 없다’(카사르 레브 )는 원어는 ‘마음이 없다,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겸손한 마음, 사랑의 마음, 지혜의 마음이 없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오래 참으시며 용서하신다.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하는데,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그런 마음이 없는 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죄성이 있고 지식이나 의지력이 제한적이어서 부족한 언행이 많다. 그러므로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자신의 부족은 보지 못하고 남의 부족만 보는 자이며, 실상 교만하고 지혜가 없는 자이다.

주께서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을 위해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하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바리새인은 서서 자신을 세리와 구별하며 자신의 경건과 도덕성을 감사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눅 18:9-14).

본문은 그러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이웃의 부족을 부족으로 알지 못해서가 아니고 사람이 누구나 다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며, 또는 자신에게도 비슷한 부족이 있거나 더 큰 부족이 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또 현재 그에게 그런 부족이 없다 할지라도, 자신도 언젠가 그런 부족과 연약에 떨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며, 또 시간이 지나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그 이웃도 그 자신의 부족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 명철한 자는 그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고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13절]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한담한다’는 원어(라키일 )는 ‘중상(中傷)하는 자’라는 뜻이다 (BDB). ‘중상’(中傷)은 사실이 아닌 말로 남을 비방하는 것이다. 두루 다니며 남을 중상하고 헐뜯는 말을 하는 자는 악한 자이며 정직하지 못한 자이다. 남을 헐뜯는 말 하는 것 자체가 악한 일이다. 자기의 일에 충실한 사람은 남의 집에 두루 다닐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두루 다니며 쓸데없는 말, 거짓말, 더러운 말, 부덕한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해야 한다(약 1:19). 또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이다(약 3:2).

본문은, 두루 다니며 남을 중상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한다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종종 비밀이 있다. 그것은 그의 실수와 죄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그의 약점일 수도 있다. 그것은 그에게 슬프고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일 수 있고, 또 그의 명예에 관계되는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은 대체로 남에게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남을 중상하는 자는 그가 아는 남의 비밀을 감추어 두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남을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본문은 그러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것을 숨긴다고 말한다. 마음이 신실한 자는 믿을 만한 자, 진실한 자를 가리킨다. 마음이 신실한 자는 남의 비밀, 곧 남의 약점과 실수, 혹은 그의 개인적 은밀한 일을 숨긴다.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사랑은 허다한 허물까지도 덮는데, 하물며 남의 은밀한 일이랴. 사람이 알 권리를 주장하지만, 남의 비밀까지 다 알 권리를 가지지는 않는다.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숨긴다.

[14절] 도략(鞱略)(타크불로스 )[조언](counsel)(BDB)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도략은 좋은 조언을 뜻한다. 좋은 조언은 하나님의 진리에 부합하는 조언,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조언을 가리킨다. 나라가 어려울 때 좋은 조언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지만, 좋은 조언자가 많으면 나라가 평안을 누릴 것이다. 우리나라의 평안을 위해서는 좋은 조언들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도덕적 사회가 되어야 한다. 불법과 폭력, 음란과 거짓은 엄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그것은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 폭력은 근절되어야 하고 사회에서도 폭력이 용납되지 않아야 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부정과 비리는 제거되어야 한다. 불량식품이 근절되어야 한다. 사회에 만연한 음란 풍조, 인터넷 음란물들, 공공연한 성매매업이 단속되어야 한다. 도덕성이 없는 사회는 망한다. 

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가 바르게 인식되고 강조되어야 한다. 또 자유와 인권 존중은 그 어떤 가치보다 귀한 가치이다. 우리는 북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의 적화(赤化)통일 계략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6.25전쟁의 원인과 그 처참함을 자녀들에게 바르게 가르쳐 야 한다. 우리는 북한을 긍휼히 여기지만, 그 독재정권의 종교의 자유 탄압과 인권 탄압을 규탄해야 한다. 또 우리는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도왔던 미국과 자유 우방에 대해 참으로 감사해야 한다. 또 우리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종교의 자유와 경제 발전에 대해 이전 세대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15절]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타인을 위해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한다. ‘타인’이라는 원어(자르 )는 ‘낯선 자, 타인’이라는 뜻이다. 친구를 위한 재정 보증은 물어줄 만큼 가깝거나 물어줄 만큼 돈의 여유가 있다면 모르나 그렇지 않다면 낭패를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가족들 간의 보증도 물질적 손해와 정신적 고통을 얻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하물며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보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잠언 22:26-27은,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고 말하였고, 잠언 6:1-5는,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스스로 구원하라”고 교훈하였다.

본문은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다고 말한다. 평안하다는 말은 안전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신 물어줄 만큼 가까운 사이이거나 돈의 여유가 있다면 보증을 서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않다면 재정 보증은 안 하는 것이 좋다. 재정 보증은 사랑의 행위일지는 몰라도 어리석은 행위이다. 교회 안에서는 성도들 간에는 순수한 신앙적 교제를 하고 돈 거래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성도는 자기의 경제 형편에 맞게 검소하게, 절약적이게 살아야 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정직하게 살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한다. 성읍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성도들의 축원을 인해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우리나라를 허무는 악한 자들의 말들을 분별하고 배격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이웃의 실수나 부족을 볼 때 그를 멸시하지 말고 잠잠하며 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하고, 더욱이 두루 다니며 거짓말로 남을 비방하지 말고 특히 남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가 되지 말고 도리어 그것을 숨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경건하고 도덕적인 좋은 조언은 우리나라를 평안의 길로 이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가 속한 단체를 위해 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잘못된 말을 하지 말고 바르고 선한 조언을 해야 한다. 우리는 특히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틀 안에서 경건하고 도덕적인 나라가 되도록 전도하며 권하며 노력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위한 구제가 선한 일이며 해야 할 일이지만, 남을 위해 재정 보증을 서거나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일을 하는 일은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성도의 교제는 순수해야 한다.

16-20절, 덕 있음, 인자, 의, 악, 온전함

[16절]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는다. ‘유덕한’이라는 원어(켄 )는 ‘은혜, 덕,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적, 인격적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유덕한 여자 즉 덕 있는 여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잠언은 이런 여자를 현숙하고 덕행 있는 여자라고 부른다(잠 31:28-30). 여성도는 외모나 돈이나 옷과 집 등에 가치를 두지 말고 경건과 도덕성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디모데전서 2:9-10,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단정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그의 인격성, 도덕성)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덕 있는 여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곧 남편과 그 자녀들에게나 주위 사람들에게 존중히 여김과 칭찬과 좋은 평판을 얻을 것이다.

본문은 또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는다고 말한다. ‘근면한’이라는 원어(아리침 )는 ‘난폭한’(NASB), ‘무정한, 잔인한’(BDB, NIV)이라고 번역된다. 이것은 남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때때로 무정하고 난폭한 자같이 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남자가 돈은 많이 벌겠지만, 그것이 큰 가치가 되지는 못한다. 재물은 결코 마음의 평안, 몸의 건강, 삶의 행복, 특히 죄사함과 영생을 주지 못한다.

[17절] 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인자한 자는 자기 영혼을 이롭게 한다. 인자함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도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누가복음 6:27,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 로마서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인자한 자는 원수까지도 불쌍히 여긴다.

인자한 자가 자기 영혼을 이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받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힘을 얻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자한 자에게 복을 주신다. 시편 18:25,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인자한 삶은 복되다. 

그러나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한다. 잔인함은 무정하고 무자비함이다(롬 1:31). 잔인한 자는 양심의 가책으로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며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잃어버린다.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나 악한 감정은 몸에도 해가 된다. 또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 있을 것이다. 야고보서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아합과 이세벨은 순진한 백성인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 증거하는 거짓 증인 둘을 세워 그를 돌에 맞아 죽게 하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으나 그들은 마침내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다(왕상 21-22장).

[18절]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악인의 삯은 허무하다. ‘삯이 허무하다’는 원어(오세 페울랏 솨케르)는 ‘거짓된 일을 한다’(KJV), ‘거짓된 삯을 얻는다’ (NASB, NIV)는 뜻이다. 거짓된 일이란, 경건한 듯하지만 불경건하고, 기도하지만 형식적이고, 남을 축복하지만 속으로는 저주하고, 선을 행하는 듯하지만 실상 악을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악인의 수고는 현세적이며 육신적이며 쾌락적이며 이기적이다. 그것은 죄악되다. 그것은 의롭고 선한 일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고 결국 자신을 속이는 일이며 헛된 일이다. 요한일서 2:16-17,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의를 뿌린 자, 즉 의를 행하는 자에게 확실한 보상이 있다. 성도의 의롭고 선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시고 그것에 대해 갚아주시며 상을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3-4,“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주신다. 주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 6:33). 심판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19절] 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른다. ‘의를 굳게 지키는 자’라는 원어(켄 체다카 )는 ‘참된 의’라는 뜻이다(BDB). 본문은 “참된 의는 생명에 이른다”는 말이다. 참된 의는 거짓된 의, 외식적 의와 구별된다. 의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고 그의 계명대로 순종하며 행하는 것이다. 신명기 6:25,“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하나님의 계명의 요점은 사랑이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선을 베풀 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그것이 의이다. 의는 생명에 이른다. 율법의 원리가 그러하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리라”고 말했다(롬 2:6-7).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근거해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신 의(義), 곧 믿음의 의는 신자를 영생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순종으로 표현된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계명 즉 성경 교훈에 순종하여 거룩의 열매를 맺다가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다(롬 6:22).

반면에,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른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모든 행위 즉 타인의 생명과 정조와 재산과 명예를 해치는 모든 행위가 악이다. 악인은 망하고 죽고 죽은 후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요한계시록 21: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러므로 죄인에게 참된 회개와 믿음과 순종이 필요하다.

[20절] 마음이 패려한 자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마음이 패려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 ‘패려하다’는 원어(익케쉬 )는 ‘패역하다’는 뜻이다. 그것은 성경의 교훈과 양심에 따라 바르고 선하게 행하지 않고 반항적이게 악하고 거짓되게 행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패역한 자, 곧 반항적이며 거짓된 마음을 가진 자를 미워하신다. 잠언 6:16-19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대표적 죄악 6, 7가지로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등을 들었다. 또 잠언 8:13은,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반항적이고 악하고 거짓된 마음을 미워하신다. 그러나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는다. 

사람의 행위는 그의 마음의 표현이다. 온전함이라는 말은 흠과 점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것을 말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이다. 구원의 목표인 완전 성화(完全聖化)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가 온전하기를 원하신다. 그는 우리가 모든 죄악에서 구원을 얻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행위의 열매로 그 구원을 증거하기를 원하신다. 경건과 도덕성, 즉 경건하고 거룩하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함은 사람의 사람다움의 중요한 내용이며 사람의 가치이다. 시편 119:1은 행위 완전하여 하나님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는다. 특히 여자들은 외모의 단장보다 자신의 인격성, 즉 자신의 경건과 의와 선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지혜롭고 능력 있고 덕 있는 자의 모습이다. 여성도는 그런 여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인자한 자는 자기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 몸을 해롭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인자한 자에게 복과 평안을 주시지만, 잔인한 자를 미워하시고 벌주신다. 우리는 인자한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악인의 삯은 허무하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를 것이지만 참된 의는 생명에 이르고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다. 우리는 악인처럼 현세적, 육신적, 물질적 유익을 구하며 살지 말고 또 거기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다 거짓되고 헛되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교훈된 대로 의와 선만 행하고 생명의 길을 붙들고 사망의 길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만 소망해야 하며 그의 계명, 곧 성경 교훈대로 정직하고 의롭고 선하게만 살아야 한다.

넷째로, 마음이 패역한 자는 하나님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는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계명에 대해 반항적 이지 말고 그의 계명을 순종함으로 행위 온전한 자가 되어야 한다.

21-26절, 의인, 아름다움, 구제, 이웃 사랑

[21절]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라는 원문(야드 레야드 )은 ‘확실히’ 라는 뜻이라고 한다(KB, NASB, NIV). 악인은 확실히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악인은 남을 해치는 자, 즉 말로나 물질로나 폭력으로 남을 해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며 공의로운 하나님이시며 악인의 악행을 다 보시고 아시고 판단하시고 노하셔서 악인의 악에 대해 보응하시고 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을 용납지 않으신다.

출애굽기 20:5,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시편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러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바로 살고자 하는 자이다. 의인에게도 때때로 어려운 일이 생긴다. 그것은 자신의 부족 때문에 오기도 하고 단순히 신앙 인격의 훈련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에서 항상 그를 건져주신다. 시편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또한 그 고난은 그를 더욱 믿음 있게, 거룩하게, 겸손케 만든다. 의인은 자신 뿐만 아니라 그 자손들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千代)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하셨다(출 20:6). 다윗은 시편 37:25에서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고 말했다.

[22절]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 같으니라.

이것은 외적인 아름다움의 가치와 내면적 아름다움의 가치를 대조해 말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외적인 아름다움에 큰 가치를 둔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외모, 즉 아름다운 얼굴, 고운 피부, 균형잡힌 몸매 등 외적인 아름다움을 크게 여기고 원한다. 그래서 여인들은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먹는 것도 절제하며 다이어트를 하고 비싼 화장품을 쓰고 피부 관리를 하고 성형 수술까지 한다.

물론 외적 아름다움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다. 사람의 본래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의 나이 65세 때에 그에게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창 12:11),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름다웠다. 야곱이 사랑하였던 아내 라헬도 곱고 아름다웠다(창 29:17). 경건한 욥의 딸들도 아름다웠고(욥 42:15), 믿음 있는 에스더도 용모가 곱고 아름다운 처녀이었다(에 2:7).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참 가치를 외적인 데 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 같으니라”는 말은 사려 깊게 행동치 않는 여인의 외적인 아름다움이 돼지코에 단 금고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사람에게 내면적, 인격적 아름다움은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훨씬 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잠언 31:30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도 여자들이 외모 단장보다 염치와 정절과 선행으로 그리고 온유하고 조용함으로 자신을 단장하라고 교훈하였다(딤전 2:9; 벧전 3:3-4).

[23절]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여 의롭고 선하게 사는 자를 가리킨다. 의(義)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이며 그의 계명의 내용은 사랑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의인의 소원이 오직 선하다”는 말은 의인의 소원하는 내용이 선할 뿐 아니라, 또한 그 결과도 선하다는 뜻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의인들의 소원은 선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소원을 가진다. 또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소원을 가진다. 즉 그들은 부모를 섬기며 가족들을 돌아보기를 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기를 원하는 것이다.

의인의 소원은 이처럼 그 내용이 선할 뿐 아니라, 그 결과도 선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소원을 기쁘게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기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하게 사는 것이다. 선행은 신앙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하게 살기를 소원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기쁘게 받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이다. 의인의 소원은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것은 선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룬다. 

이 말씀은 앞부분과 대조를 이룬다. 소망은 소원과 비슷한 뜻이다. 악인의 소망은 그 내용이 악할 뿐 아니라 그 결과도 나쁘다. 악인은 이기적이고 남에게 해를 끼친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아합의 욕심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것이었다. 가룟 유다의 소원은 돈이었다. 헤롯의 소망은 세상 권력과 명예, 또 물질적 부귀와 영광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었다.

[24-25절]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본문은 구제를 교훈하며 권장한다. 율법은 구제를 교훈한다. 신명기15:10-11,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신약성경도 구제를 강조한다. 주께서는 구제를 교훈하셨다. 누가복음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고린도후서 8: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구제 헌금]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신약 성경이 말하는 헌금은 전도와 구제를 위한 것이다. 요한일서 3:17-18,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구제에 대해 풍성한 복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성도는 구제를 많이 한다고 해서 가난해지지 않는다. 신명기 15:10,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마태복음 6: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드러나게](전통본문) 갚으시리라.”

[26절] 곡식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곡식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다. 곡식을 내지 않으면 이웃이 굶게 되고 죽게 된다. 그것은 자기 배만 위하는, 즉 자기 생명, 자기 건강, 자기 행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일이다. 그것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랑 없는 행동이다. 먹을 것이 없는 이웃에게 구제하기는커녕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파는 행위도 거부하는 이기적인 사람에 대하여 사람들은 “혼자 실컷 먹고 배가 터져 죽어라”고 저주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저장한 곡식을 파는 자는 그 머리에 복이 임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기뻐하며 축복하고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사는 사회적 존재이다. 만일 사람들이 남을 위하는 물건을 만들지 않거나 그것을 시장에 팔려고 내놓지 않으면, 우리는 당장 매우 불편한 생활을 할 것이다. 오늘날 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이 함께 사는 존재임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남을 배려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구제의 정신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기가 넉넉히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살아야 하고 또 어려운 이웃에게 구제하며 살아야 한다. 율법은 반드시 구제하라고 가르쳤다. 세례 요한은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눅 3:11). 사도시대의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행 2:44-45; 4:32).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악인은 반드시 벌을 받으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는다. 말로나 물질로나 폭력으로 남을 해치는 악한 자는 하나님의 벌을 받으나, 의로운 자의 자손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는다.

둘째로,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않는 것은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 같다(22절). 여성도들은 외적 단장에 마음을 쓰지 말고 내면적 인격성, 즉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인격이 되기 위해 마음을 써야 한다.

셋째로,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룬다. 우리는 악인처럼 이기적인 세상적, 물질적 소원을 버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남에게 유익을 주고 자신에게도 복된 선한 소원을 가져야 한다.

넷째로,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으며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지고 남을 윤택케 하는 자는 윤택해질 것이다. 우리는 구제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구제에 힘쓰고 이기적이게 살지 말고 서로 돌아보며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

27-31절, 선한 자, 의인, 지혜자

[27절]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는다. 선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 즉 말로나 물질로나 힘으로 남을 돕는 것을 가리킨다. 선을 간절히 구하는 것은 선을 행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돈을 쓰고 손으로 수고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와 사람들에게 은총과 사랑을 받을 것이다. 잠언 3:3,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그러나 악을 좇는 자에게는 악이 임할 것이다. 

악이라는 원어(라아)는 도덕적 악과 물질적, 환경적 악 곧 재난을 다 의미한다. 도덕적 악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남에게 해를 주는 일을 가리킨다. 이런 자에게는 물질적, 환경적 악 곧 재난이 임할 것이다. 잠언 13:21, “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잠언 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로마서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라.”

[28절]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한다. 돈은 사람의 삶에 필요하고 유용한 수단이지만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 돈이 있으면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이나 차나 집을 살 수 있지만, 돈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돈은 사람의 죽음을 막고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 돈은 사람에게 죄사함과 의를 줄 수 없다. 죄인들은 돈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한다.

돈은 성도에게 큰 시험거리와 유혹물이 된다. 돈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사람을 해이하고 방탕하게 만든다. 디모데전서 6:9-10,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 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그러므로 돈을 의지하거나 거기에 소망을 두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디모데전서 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게 하라.”

그러나 의인, 곧 돈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푸른 잎사귀같이 번성할 것이다.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복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시편 1:3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말했고, 또 잠언 4:18은,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29절]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자기 집 곧 자기의 가정과 가족들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다. ‘해롭게 한다’는 원어(아카르 )는 ‘소란하게 한다, 괴롭힌다, 근심과 고통을 준다’는 뜻이다. 자기 집을 소란하게 하고 괴롭힌다는 말은 가족들에게 거칠게 대하고 가족들을 미워하고 비인격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고 구타하고 경제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등을 말할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로서의 기본적 의무, 즉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과 사랑을 가지고 가족들을 평안케 하고 즐겁게 하고 행복하게 해야 하는 기본적 의무를 저버린 행동이다.

자기 집을 괴롭히는 자의 소득이 바람이라는 것은 남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것은 열심히 일하고 수고하여 얻은 소득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가정의 행복의 요소는 부부가 사랑하면서 함께 늙고 자녀들이 효도하고 몸의 건강, 물질적 여유를 가지는 것 등이다. 그러나 가족들을 괴롭히는 자는 가정의 파탄, 곧 가족관계의 파탄을 경험할 것이며, 부부의 이혼이나 가족들의 뿔뿔이 흩어짐, 또 자녀들의 방탕과 부모거역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주로 남편들에게 해당하는 교훈이지만, 아내들에게나 자녀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그의 계명들에 순종함이 없고 교만하고 강포하고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며 그런 미련한 자는 일시적으로 성공할지 몰라도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지 못하고 사람들, 특히 지혜자들,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며 겸손과 온유, 사랑과 의, 선과 진실을 행하는 자들의 종이 될 것이다(신 28:43-44).

[30절]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이다. 생명나무는 생명을 주고 생명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상징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의지하며 그의 계명대로 의와 선을 행하는 의인이 맺는 열매나 받는 보상은 생명이다. 본인이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의 강건함 즉 심령의 평안과 몸의 건강을 얻고 영생에 이를 것이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으나 의인에게 는 강물 같은 평안이 있다. 

또 의인에게는 몸의 건강도 보장된다. 잠언3:7-8,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죄의 값은 죽음이다. 그것은 근심 걱정과 질병과 가난을 포함할 것이다. 그러나 의의 결과는 생명이다. 그것은 평안과 건강과 영생을 포함한다. 로마서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또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는다. ‘사람을 얻는다’는 원어는 ‘영혼들을 얻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롭게 사는 의인이 지혜자이며, 그는 영혼들을 얻을 것이다. 물론, 지혜로운 자는 그를 사랑하고 아끼고 협력할 진실한 친구들과 동료들을 얻을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디모데(빌 2:20-22)나 자기 목이라도 내어놓으려 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롬 16:3-4)나 그를 위로한 오네시보로(딤후 1:16) 같은 동료들이 있었다. 그러나 ‘영혼들을 얻는다’는 말은 영혼들을 구원한다는 뜻을 가진다고 본다. 지혜자는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만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영생의 길로 이끌 것이다(단 12:3). 의인은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들도 살리는 자가 될 것이다.

[31절]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공의로 보응하신다. 즉 선한 자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는 벌을 주신다. 사람은 도덕적 존재이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도덕적 혹은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한 순간도 놓침이 없이 진실하시다. 욥기 7:17-18,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의 이치인 동시에 도덕 세계의 이치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 백성의 죄를 묵과하지 않으신다. 베드로전서 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 하며.” 하나님을 경외했던 다윗이 간음과 살인의 큰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는 벌을 내리셨다. 그의 아들 암논은 이복여동생 다말을 강간하였고 그의 오빠 압살롬은 그 형 암논을 죽였고 또 후에 아버지 다윗에게 반기(叛旗)를 들었다.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이며 또한 하나님의 자녀된 표이기도 하다. 히브리서 12:6, 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의인에게도 이 런 징벌이 있다면, 하물며 악인들이 하나님께 받을 보응은 얼마나 더 엄한 것이랴! 악인의 결국은 멸망 곧 지옥 불못이다(계 21:8).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결코 악을 계획하는 자가 되지 말고,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섭리자와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믿어야 한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악을 계획하고 행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그 악에 합당한 벌을 내리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멸망케 하는 허무한 돈을 의지하거나 사랑하지 말고 오직 섭리자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여 의를 행해야 한다. 돈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자는 돈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이다.

셋째로, 자기의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며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얻고 온유와 겸손, 의와 선과 진실함으로 우리 자신의 집을 평안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해야 한다. 평안과 즐거움의 복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다.

넷째로,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이며 지혜자는 사람을 얻는다. 예수님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의를 행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는 지혜자이며 그는 죄 가운데서 멸망할 자들을 구원해 내어 영생에 이르게 한다.

다섯째로, 의인이라도 세상에서 보응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짓지 말고 바르게만 살아야 한다. 그것이 평안의 길이며 영생의 길이다.

===12장: 어진 여인, 지혜자의 혀, 근면

1-4절, 훈계, 선인, 의인, 어진 여인

[1절] 훈계(무사르 )[혹은 ‘징계’(discipline](BDB, NASB, NIV)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토카카스 )[책망](BDB, NASB)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한다. 훈계는 하나님의 뜻 곧 의(義)를 알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죄악을 지적하고 책망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권면하고 인도하는 것이다. 훈계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지혜와 지식과 영혼 사랑과 용기가 있는 자이며, 훈계받기를 좋아하는 자도 훈계의 목적과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훈계를 겸손히 받고 참는 마음이 있는 자이다. 잠언 3:11-12,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훈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그러나 책망을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 그는 지혜가 없고 어리석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는 데 관심이 없고 죄를 버리고 멀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시며, 죄는 불행의 원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죄를 버리지 못한 자는 현세에서 평안을 얻지 못하고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피할 수 없다.

[2절] 선인(善人)은 여호와께 은총(라촌 )[은총, 기쁨, 호의, 사랑]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선인(善人)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다. 선은 도덕적 이상에 맞는 것이다. 선과 의는 내용이 같다. 또 선은 다른 이에게 유익을 주며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더욱 사랑하시고 호의를 베푸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하고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마태복음 5:14-16,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 . . . .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救贖)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천국은 선한 사람들, 착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롬 2:7; 14:17). 그러나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을 것이다. 로마서 1:28-32에 보면, 추악, 악의가 가득한 자, 악독이 가득한 자, 악을 도모하는 자등이 하나님께 정죄받을 죄악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과 불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뿐 아니라, 또한 마지막날에도 노와 분으로 심판하실 것이다(롬 2:8).

[3절]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사람은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한다. 무엇이 악인가? 불경건과 부도덕이 악이다. 무신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는 것, 안식일 없이 사는 것, 우상숭배 등이 악이며, 또 부모 거역,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말 등이 악이다. ‘굳게 서지 못한다’는 말은 안정을 얻지 못한다, 평안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악인은 평안하지 못하다. 시편 1:4-5,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은 건강도, 경제도, 가정도, 사회도 평안치 못하다. 악인은 병에 걸리고 경제적 궁핍을 당하며 그 사회는 전쟁을 경험할 것이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이사야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이사야 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레위기 26장이나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경고하셨고, 이스라엘 역사는 그것을 증거하였다.

그러나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며 의와 선을 행하는 자,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자를 말한다. 뿌리가 움직인다는 말은 뿌리가 뽑혀 나무가 죽는다는 뜻이고, 뿌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은 뿌리가 깊이 박혀 있어 안전하다는 뜻이다. 의인에게는 평안이 있고 안정이 있다. 평안이라는 말 속에는 건강도, 경제적 안정과 번영도, 사회적 평안도 포함된다. 의인은 건강하고 물질적 여유도 있으며 가정적 평안과 사회적 평안도 있다.

[4절]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남편]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남편]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어진 여인은 남편의 면류관이다. ‘어질다’는 원어(카일 )는 ‘힘, 능력, 덕’이라는 뜻이다. 잠언 31:10에서는 ‘현숙한 [여인]’이라고 번역했다. 영어 성경들은 ‘덕 있는 아내’(KJV), ‘휼륭한 아내’(NASB) 등으로 번역했다. ‘어진 여인’은 덕과 능력을 가진 여인, 즉 지혜, 사리판단력, 실천 능력을 가진 여인이다. 그는 돕는 자로서 아내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자 즉 좋은 아내, 훌륭한 아내이다. 그는 집안일뿐 아니라, 또한 자녀 관리도 잘한다. 어진 여인은 그 남편의 면류관, 즉 그는 그 남편의 자랑과 기쁨이다. 잠언 31:10에는 현숙한 여인은 진주보다 귀하다고 표현하였다. 또 현숙한 여인은 온 동네에 알려지기도 한다. 룻기에 보면, 보아스는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 현숙한 여자인 줄을 유다 베들레헴 성읍 백성이 다 안다고 증거하였다(룻 3:11).

그러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남편으로 뼈가 썩음 같게 한다. 욕을 끼친다는 말은 남편을 부끄럽게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남편을 무시하고 그에 대해 불만하고 불평하며 남편과 다툼을 가리킬 것이다. 성경은 남편이 자기 아내의 머리라고 말하며 아내는 자기의 남편을 주님처럼 존중하라고 가르친다. 고린도전서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에베소서 5:22-2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남편으로 뼈가 썩음 같게 한다. 남편의 마음의 고통이 매우 클 것이다. 그러므로 잠언은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했다(잠 21:9; 25:24).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지만, 책망을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 훈계와 책망을 좋아하는 자가 지혜와 지식이 있는 자이다. 훈계와 책망은 당장에는 슬픔과 낙망을 주지만 우리를 바른 길로 가게 하며 우리에게 결국 복과 유익이 된다.

둘째로,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기쁨과 호의를 받으나 악을 꾀하는 자는 그의 정죄하심을 받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은 우리는 악을 꾀하는 자가 되지 말고 선한 일을 하는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고 선한 일을 힘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셋째로, 사람은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의 성공 여부는 그가 의롭게 사는가, 악하게 사는가에 달려 있다. 거기에 하나님의 복과 재앙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하게 살지 말고 경건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넷째로, 덕스럽고 현숙한 여인은 그 남편의 면류관이나 부끄러움을 끼치는 여인은 그로 뼈가 썩음 같게 한다. 여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현숙한 여인, 즉 덕스럽고 사리판단력이 있는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한다. 또 그는 자기 남편이 그의 머리임을 깨닫고 그를 존중하고 순종해야 한다.

5-8절, 의인의 생각, 입, 집, 칭찬

[5절] 의인의 생각(마카솨바 )[생각, 판단, 계획]은 공직하여도[올바르지만] 악인의 도모(타크불라 )[계획, 조언]는 궤휼[거짓]이니라.

의인의 생각은 올바르다.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대로 사는 자인데, 그의 생각은 올바르다. 그것은 불의하거나 악하지 않고 또 거짓되지도 않다. 그것은 십계명이나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고 성경 교훈에 어긋나지 않고 양심이나 이성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악인의 계획은 거짓이다. 악인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의 법을 거스르는 자이며 그는 거짓으로 악을 계획하고 악을 행한다.

사람의 생각하는 바는 그의 사람 됨됨이를 나타낸다. 잠언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사람의 됨됨이]도 그러한즉.” 사도 바울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성령]을 좇는 자는 영[성령]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했고(롬 8:5-6), 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했다(롬 12:2). 성도는 바르고 진실한 생각과 계획을 가져야 한다.

[6절]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어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며 남을 미워하는 악인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고 말한다. 사람의 말은 생각과 마음의 표현이다. 악한 말은 악한 생각과 악한 마음에서 나온다. 의인은 사람을 그의 앞에서 책망할지언정 뒤에서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악인은 은밀히 남을 해치며 그를 죽이려 한다. 그것은 자기의 행동이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일임을 자기 양심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피를 흘리는 일은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악이다. 창세기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고, 출애굽기 21장에서는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다(12, 14절).

그러나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한다.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양심대로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며 사는 자이다. 그가 누구를 구원한다는 뜻인가? 그는 악인에게 위험을 당한 순진한 자에게 그 위험성을 알려줌으로써 그를 구원하고 또 악인 자신에게도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고 그의 죄를 지적하여 깨닫게 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 얻는 길을 제시함으로써 그를 구원할 것이다.

[7절]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된다. 악인들의 형통은 잠시뿐이며 길어도 이 세상에서뿐이다. 악인들은 이 세상에서 엎드러질 때도 있다. 악인들은 언제, 어떻게 엎드러지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환난과 재앙으로 치실 때 그렇게 된다. 그들은 원수들의 갑작스런 공격을 받거나 강도나 도적을 만나든지, 전쟁이나 기근을 당하든지, 화재 같은 대형사고나 부도를 당하거나 무서운 질병의 침입을 당하여 엎드러진다. 악인들은 엎드러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망한다. 그러나 의인의 집은 든든히 서 있을 것이다. 의인들에게도 고난은 있다. 고난은 죄와 실수에 대한 징벌 때문에 오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높으신 뜻 가운데서 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고난은 유익이 많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더욱 겸손하고 성결하게 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게 된다. 고난은 성도로 온전한 인격이 되게 한다.

의인들은 그 고난을 다 이겨내며 거기에서 구원을 얻는다. 시편 34:19,“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잠언 10: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잠언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특히 ‘의인의 집’ 즉 의인의 자녀들은 든든히 세움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적 복을 약속하셨다. 출애굽기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의 자손들은 자자손손 복을 받을 것이다. 다윗은 시편 37:25에서 말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다윗의 자손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린 것은 그 증거이다.

[8절] 사람이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패려[패역]한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을 것이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정하고 거역하는 것,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러 부도덕하게 행하는 것, 남을 미워하고 이기적이고 음란한 것, 또 세상의 것, 육신의 것만 구하는 것, 그리고 게으른 것 등이 미련함이다. 예레미야 8:9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고 말씀하셨다. 지혜는 사물을 바르게 보고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과 이성에 맞게 바르게 판단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바르게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다. 야고보서 1:5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하였다. 

사람이 지혜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 사람은 다양심과 이성이 있기 때문에 이성적이게, 양심적이게 행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비록 자신이 그렇게 온전하게 살지는 못해도 양심적이게, 이성적이게 행하는 자를 다 칭찬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패역한 자는 멸시를 받는다. 패역한 것은 사물을 바르게 보고 판단하지 못하고 생각과 판단력이 비뚤어진 것을 말한다. 그것은 교만한 마음에서 생긴다. 마음이 패역한 자는 잘못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며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

마음이 패역하면 말과 행동도 악하고 비뚤어지게 된다. 그것은 지혜가 없는 미련한 마음이다. 이러한 사람은 사람들의 멸시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그의 말과 행동이 양심에 맞지 않고 이성에도 어긋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의인의 생각은 올바르지만, 악인의 계획은 거짓되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 교훈과 양심과 이성에 어긋나지 않게 항상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올바르게 행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정로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복과 평안을 얻는 길이다.

둘째로,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지만,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한다. 우리는 악한 마음을 품고 악한 말을 하며 남을 해치고 죽이는 악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남을 해치고 죽이는 일은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악이다. 우리는 오직 사람들을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는 정직한 자가 되어야 한다. 남을 구원하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다.

셋째로,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지만, 의인의 집은 서 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악에 대해 재앙으로 치실 때 그들은 엎드러질 것이다. 우리는 악인의 일시적, 세상적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오직 의롭고 정직하게 살아 우리의 집과 자손들이 영원하게 든든히 세워지게 해야 한다.

넷째로,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나 마음이 패역한 자는 멸시를 받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지혜로운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도 기뻐 받으시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패역한 자는 사람들도 그를 멸시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과 판단과 말과 행동이 양심과 이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9-12절, 실속, 잔인, 근면, 불의의 이

[9절]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 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가 있다. 그는 왜 사람들에게 비천히 여김을 받는 것인가? 그것은 그가 아마 자신을 높이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직접하고 겸손하며 근면하고 그래서 사람들 보기에는 종들과 똑같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종을 소유하고 있고 그에게 할 일을 지시하고 감독하고 일을 하게 하는 자이다. 그러면 그는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고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는 농사를 짓거나 과수원을 하거나 기타 무슨 일을 하든지 소득을 얻을 것이다. 윗사람은 적절히 일을 시키는 자가 잘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스스로 높은 체하지만 음식이 핍절한 자가 있다. 그는 자신을 고상한 자라고 생각하고 궂은 일이나 땀 흘리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부릴 종이 없거나 종이 있어도 부리지 않고 그에게 일을 제대로 시키거나 감독하지 않는다. 그는 아랫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 보기에 고상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그의 일에 아무 진전이 없고 좋은 결과가 없고 열매나 소득이 없다.

오늘날같이 어려운 시대에는 100만원도 못 버는 사장보다 100만원이라도 버는 직원이 낫고, 취직도 못하는 대학졸업자보다 취직이라도 하는 고등학교 졸업자가 낫다. 또 손에 기름때 묻히며 일하지만 돈을 좀 버는 기술자가,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지만 일거리가 없어서 봉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무직보다 낫다. 겉치레나 체면을 중시하지 말고 내면과 실속을 중시하는 것이 지혜이다.

[10절]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의인은 그 가축의 생명을 돌아본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의 인격, 생명, 정조, 재산, 명예를 존중할 뿐만 아니라, 가축들의 생명까지도 돌아본다. 그들은 가축들에게 때를 따라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고 추위와 더위나 전염병이나 화재 등을 염려하고 아프면 치료해주고 그것들을 결코 학대하지 않는다.

성경은 가축을 죽이는 것을 금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본래 채소와 과일을 음식으로 주셨으나 홍수 심판 후 생물도 먹도록 허락하셨다(창 9:3). 단지, 짐승들 중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것만 먹고 물고기들 중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만 먹고, 또 생물을 피째 먹지 말라고 하셨다(레 11장; 17장). 물론, 신약시대에는 이런 의식법을 그대로 지키지 않고, 그것의 도덕적 의미만 교훈으로 삼는다.

가축이나 새와 짐승의 생명을 돌아보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심정이다. 율법에는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고 말했다 (신 25:4). 욥기 38:41은 하나님께서 까마귀 새끼가 그를 향해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 그것을 위해 먹을 것을 예비하신 다고 말했다. 시편 104:21, 27은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하나님께 구하며 바다 생물들이 주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공중의 새들과 들의 백합화를 먹이시고 입히신다고 말씀하셨다(마 6:26, 30).

본문은 그러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라”고 말한다. 악인은 가축들을 학대하고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아플 때 치료도 해주지 않는다. 하나 님께서는 노부모 학대, 여성이나 아동 학대, 고아와 과부 학대, 외국인 노동자나 가난한 자 학대뿐 아니라, 또한 동물 학대도 미워하신다.

[11절]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자’란 직장이든지 가정이든지 자기 일터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자를 가리킨다. 열심히 일하며 수고하는 자는 소득이 많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면 그러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다.

시편 128:1-2,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지을 때, 열심히 일하고 하나님께서 적절한 비를 주시고 병충해를 막아주시면 많은 수확을 거둘 것이다. 또 사업을 할 때, 열심히 일하고 사회적, 경제적 여건에 갑작스런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상당한 소득이 있을 것이다.

사람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범죄 후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게 되었다(창 3:19).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셨다(출 20:9). 그러므로 잠언 10:4는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고 말했고, 사도 바울도, “종용하여[조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교훈하였다(살전 4:11; 살후 3:10).

그러나 방탕한 것을 따르는 사람은 지혜가 없다. ‘방탕한 것’이라는 원어(레킴 )는 ‘헛된 것들’(BDB, NASB)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놀기를 좋아하고 사치나 하고 시간과 돈과 힘을 낭비하며 절제치 못하는 것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런 것들을 따르는 자들은 소득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지혜가 없는 자들이다.

[12절] 악인은 불의의 이(利)(메초드 라임 )[악한 자들의 탈취물](NASB, NIV)를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악인은 악한 자들의 탈취물을 탐한다. 악한 자들의 탈취물을 취한다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악한 일을 해 쉽게 돈을 벌려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남에게 사기를 쳐서 돈을 벌거나 도적이나 강도짓을 하여 돈을 버는 것이 그러하다. 악한 자들은 불의의 이익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원하며 그런 일을 행한다.

그러나 우리는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장로나 집사 같은 교회의 직분자들은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딛잠언 12장: 어진 여인, 지혜자의 혀, 근면1:7; 딤전 3:8). 우리는 땀 흘려 일함으로 얻는 정당한 이익을 구해야 한다. 시편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잠언 31:27, “[현숙한 여인은]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에베소서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를 의지하고 순종하며 그의 계명대로 살려고 애쓰는 의인들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할 것이다. ‘의인의 뿌리’란 그의 경건과 의를 가리킬 것이다. 경건과 의는 성도들의 생명이다.

성도들이 경건과 의 가운데서 일하며 수고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수고의 대가를 누리게 하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비록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낫다. 우리는 겉치레나 체면을 중시하지 말고 내면과 실속을 중시해야 한다. 우리는 겸손히, 부지런히, 실속 있게 우리의 할 일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의인은 그 가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격과 생명을 존중하고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배려할 줄 알며 짐승까지도 돌보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목표인 하나님의 형상이며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

셋째로,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나 헛되고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다. 우리는 사치하고 낭비하지 말고 절제있고 부지런하게 살며 자기 토지를 경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죄짓지 말고 일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수고의 대가의 복을 누려야 한다.

넷째로, 악인은 악한 자들의 탈취물을 탐하지만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한다. 악한 자들의 탈취물은 당장 유익하게 보여도 복이 되지 못하고 결국 화가 된다. 우리는 정당하게 일함으로써 수고의 대가를 누려야 한다. 적은 소득이라도 정당하게 번 것이 성도에게 복이 된다.

13-16절, 언행, 조언, 분노

[13절]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들을 입으로 말하며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낸다”(마12:34-35). 악인은 말로 범죄한다. 그에게서는 독한 비난, 미움의 말, 거짓말, 이간질 등이 나온다. 악인은 그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린다. 그는 자기의 말 때문에 곤란을 당하고 멸망을 자초한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고 말했고(약 1:19),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다(약 3:2).

그러나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난다. 의인의 의로움은 그의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말로 나타난다. 의인에게도 환난은 있지만 그는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을 받는다. 시편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잠언 10:25,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잠언 11:8,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 잠언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4절]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福祿)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복록(福祿)에 족하다는 말은 복으로 만족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말과 행위는 마음과 인격의 표현이다. 마태복음 12:34-35,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선한 말은 남에게 유익을 주고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온다. 시편 35:13, “나는 저희가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마태복음 10:12-13,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사람은 손이 행한 대로 받는다. 선한 행위는 타인에게 유익을 주고 자신에게도 복이 된다. 잠언 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갈라디아서 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마태복음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드러나게] 갚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선악간의 행위에 대해 공의로 보응하신다. 전도서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15절]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권면, 조언]를 듣느니라.

미련한 자는 자신의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옳다고 생각한다. 그의 행위가 바르지 않지만, 그가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하고 교만하고 고집스럽기 때문이다. 완고함과 확신은 다르다. 완고함은 인간적, 주관적 생각에 근거한 무지하고 교만한 고집이다. 그러나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에 근거한 확고한 신념이다. 우리는 완고함 곧 무지하고 교만한 고집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주관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 곧 성경 진리에 대한 확신은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애매모호하지 않고 분명하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그 뜻을 따르는 길은 좁은 길이며 외로운 길이며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길이다. 그러나 노아나 선지자 엘리야와 미가야는 그 외로운 길을 갔고 다니엘과 사도 바울도 그 고난의 길을 갔다. 옛날부터 세상은 넓은 길을 좋아했으며 오늘날 교회들 안에도 교리적, 윤리적 오류를 포용하는 무분별한 포용주의와 연합주의의 세력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확신하며 좁은 길을 가야 한다. 미련한 자는 남의 말을 듣지 않지만, 지혜로운 자는 조언을 듣는다.

조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즉 성경적 조언과 인간적 조언이다. 성경적조언은 유익하고 건설적이다. 그것은 의와 선을 이룬다. 그러나 인간적 조언은 사람 보기에 그럴 듯할지 모르나, 하나님의 뜻과 달리 악한 경우가 많다. 지혜로운 자가 조언을 듣는다는 것은 성경적인 조언을 듣는다는 뜻이다. 겸손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성경적 조언을 잘 듣고 의와 선을 이루며 영육의 유익을 얻을 것이다.

[16절]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사람이 분노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은 불의한 일을 볼 때 정당한 분노가 생긴다. 또 사람은 자신이 물질적 손실이든지 부당한 비난이나 명예훼손이든지 남에게 손해를 당했을 때나 또는 자존심이 몹시 상할 때 보통 분노한다.

사람이 분노를 당장 나타내는 것은 왜 잘못인가? 그것은 상대방의 비난이 옳은 데도 자신이 잘못 판단하여 급하게 화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분노가 지나쳐 입에서 욕이나 저주 같은 말의 실수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성급한 분노나 말의 실수는 죄를 짓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화가 날 때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것이 지혜이며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 야고보서 1:19-20,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는다. ‘참는다’는 원어(카사 )는 ‘감춘다’는 뜻이다. ‘수욕을 참는다’는 것은 상대방이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상황에서도 금방 그것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좀더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후에 화를 내어도 늦지 않을 것이며 그런 후에 화를 내는 것이 실수 방지를 위해 더 안전할 것이다. 또 생각해보니 자신이 잘못해서 당한 수욕이라면 달게 받고 반성하고 고치면 될 것이고,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데 당한 수욕이라면 조금 후에 가라앉은 감정과 마음으로 상대에게 해명하고 반박하면 될 것이다. 또 우리가 다 부족과 실수가 많으므로 상대를 불쌍히 여길 수도 있다. 여하튼 그는 지나치게 반응하여 실수하거나 범죄하지 않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해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난다. 우리는 악한 말을 버리고 바르고 선한 말을 해야 하며 환난을 당해도 염려치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해 얻는 복으로 만족하고 그 손의 행하는 대로 받는다. 우리는 바르고 선한 말과 행위를 해야 하며 선한 말과 행위는 남에게 유익할 뿐 아니라 또한 우리 자신에게도 복이 된다.

셋째로,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지만 지혜로운 자는 조언을 듣는다. 우리는 교만과 고집을 버리고 바른 조언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지혜와 평안과 생명의 길이다.

넷째로,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지만,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는다. 우리는 미련한 자처럼 분노를 당장 내지 말고 수욕을 참고 좀더 생각하고 판단한 후에 적절하게, 지혜롭고 덕스럽게 처신해야 한다.

17-20절, 진실, 지혜, 화평

[17절]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궤휼[거짓]을 말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하나님, 진실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진실을 말하는 자이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주 안에서 한 몸의 지체가 되었으므로 서로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에베소서 4: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낸다. 그는 옳은 것을 말한다. 진실과 의는 함께 간다. 옳은 것은 참된 것이며 불의한 것은 거짓된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다 옳다. 사람이 진리를 말하면, 하나님의 법과 그것이 옳다는 것과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과 죄인들에게 의가 필요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의가 되심을 증거할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말하면, 옳은 것을 증거할 것이며, 또 그뿐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법을 실천함으로 의를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거짓 증인은 거짓을 말한다.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거짓은 마귀의 죄악이다. 예수께서는 마귀가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다(요 8:44). 성경은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했다(계 21:8, 27; 22:15). 거짓 증인은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증거하며 사실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증거한다.

그는 의를 불의라고 말하며 불의를 의라고 말하고, 선을 악이라고 말하며 악을 선이라고 말한다. 진실과 의는 하나님의 속성이며 하나님의 세계의 덕목이지만, 거짓과 불의는 마귀의 속성이며 특징이다. 거짓말은 큰 죄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합당치 않다.

[18절]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말은 사람의 생각과 인격의 표현이다. 주께서는 사람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2:34-35).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이다(약 3:2).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다윗은 자주 악인의 말을 칼에 비유하였다. 시편 55:21,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시편 57:4,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시편 64:3, “저희가 칼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사람은 잘못된 판단이나 성급함 때문에 또 사랑 없음이나 미움 때문에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분노케 하는 말을 하기 쉽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교훈했고(엡 4:31), 골로새서에서도 분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을 벗어버리라고 했다(골 3:8). 사도 베드로도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말했다(벧전 2:1).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다. ‘양약’(마르페 )이라는 원어는 ‘치료’라는 뜻이다(BDB, NASB, NIV). 지혜로운 자는 남에게 유익을 주는 말을 한다. 잠언 10:20-21,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물론 지혜자도 때로는 책망의 말을 한다. 그러나 참된 충고는 파괴적이지 않고 건설적이며, 사랑에서 나온 책망은 상대방에게 유익을 줄 것이다. 잠언 27:5-6은,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고 말한다.

[19절]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된다. 사람들은 때때로 진리를 말하는 자, 진실을 말하는 자를 인정치 않는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450인이로다”라고 말했었고(왕상 18:22), 또 하나님께 아뢰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부르짖었었다(왕상 19:10). 또 미가야의 경우도 그러했다. 그는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다르게 홀로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말하였다(왕상 22:13-14). 사도 바울도 외로운 싸움을 하였었다. 그는 말하기를,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다”고 했고(딤후 1:15), 또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다”고 말했다(딤후 4:16).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엘리야, 미가야, 바울의 말들이 진실했고 그들의 말들이 남아 있음을 알고 그들의 말들과 행위들을 본받으려 한다.

그러나 거짓 혀는 눈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다. 거짓 혀는 속이는 혀, 사실을 왜곡시키는 말을 하는 혀이다. 말쟁이, 아첨꾼의 혀가 그런 혀이다. 그런 혀는 눈깜짝일 동안만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속아넘어가는 동안뿐이다. 그 동안만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체가 드러나면, 즉 그의 거짓과 허풍, 속임수와 위선이 드러나면, 그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사기꾼이라고 말하며 다 그를 떠나갈 것이다.

[20절]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궤휼[거짓]이 있고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거짓이 있다. 사람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악을 꾀할 때 거짓말과 속임을 사용한다. 그는 악하지 않은 듯하게 악을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범죄케 했던 뱀의 모습이다. 그는 하와에게 “너희가 [선악과 열매를 따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었다(창 3:4). 아합과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으려 했을 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말하는 거짓 증인을 세웠었다(왕상 21:10). 로마서 3:13-14는 “저희[악인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다. 진실과 선과 화평은 같이 간다. 또 거기에는 기쁨과 평안이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했고(롬 14:17), 또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말했다(갈 5:22-23).

그러나 남을 속이고 해치는 자에게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 이사야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잠언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거짓을 말한다. 우리는 진리를 말하고 의를 나타내는 자가 되고 결코 거짓을 말하는 거짓 증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불의와 거짓은 구원 얻지 자들의 표요 의와 진실은 구원 얻은 성도의 표이다.

둘째로,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의 혀는 양약과 같다. 우리는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지 말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덕스러운 말을 해야 한다. 인격의 온전함은 말의 온전함으로 나타난다. 온전한 말과 온전한 인격은 구원의 목표이며 성화의 목표이다.

셋째로,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지만, 거짓 혀는 눈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말쟁이나 아첨꾼처럼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또 우리는 거짓말을 듣지도 말고 현혹되지도 말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과 진실한 말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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