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아2
첨부파일 :

아가 2장 ...[89.샤론의 꽃 예수][88.내진정사모하는] [85. 구주를 생각만 해도] [90.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91. 슬픈 마음 있는 사람] [92. 위에 계신 나의 친구] [93. 예수는 나의 힘이요] [94.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95.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354.주를앙모하는자]


1.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여기의  이들 수선화(또는 장미)와 백합화의 뛰어난 점은 특별히 그윽한 그 향기로 인해 <통속적 기준인 외양에서는 동종의 다른 꽃들과 차이가 없을지 모르나> 뚜렷이 구별되는 독특한 탁월성이기에, 그리스도에게도, 그녀에게도 동시 적용 가능함!!

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유대땅에서 하찮게 여김 받는, 통속 세상(샤론)의 야생 장미(또는 수선화)로서 일견해 보면 동종의 다른 꽃과 그다지 특별히 다르게 보이지 않으나, 그녀는 참된 그리스도의 <극진한> 향기로 가득하기에 <주 보시기에>실지로 정말 예쁨을 가지고 있으며, 별 볼 일 없는 (비천한) 자로 세상에서 여김 받으나, 가시나무들(세상가치 추종하는, 간음하는 여자들..약4:4)사이에 살되 그들과는 달리, <골짜기의 백합화로서(있게 하신 바로 그곳에서 겸손히!! 가시에 찔리면 더욱 진하게 참 생명 향기를 발하며) >  순수하고 전적으로 주님 의지하는 생명을 사는 (주님없이는 아무것도 아님) 연약-무력한 인생임을 깨닫고 겸손히 고백하며 인정하는 그녀...그렇기에 그는 그녀를 더욱 예쁘고 순전하며 겸손하며 아름답다고 칭송/인정하고 계심..

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울창한]수풀 가운데 [극히 찾아보기 드문]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그녀의 존재가 그렇게 희귀하게 발견되는 존귀한 자이듯, 그분 또한 삼림 속에서 찾아보기 극히 힘든 사과나무(그 자신을 풍성한 생명으로 공급하는 사과 산출)처럼 진실로 드물고 희귀하고도 존귀하심을 인정하며, 더 나아가 (낮의 피할 그늘이자 달콤한 열매를 주시는) 그의 달콤함과 유쾌하고 사랑스러우심을 그녀가 한없이 기뻐 누리며 만족하며 칭송함..

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연회장인 교회,그 생활 안으로]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사랑하는 그 연인의 인도따라 생명 공동체로, 열락의 연회가 베풀어지는 교회로 인도된 그녀, 그분이 쏟아 부어주시는 사랑은 그 어떤 것도 함께 이기는 <이미 이긴> 승리의 사랑이라, 그 사랑의 깃발은 그녀 위에 나부끼며, 그분을 생명의 떡(건포도 과자..죽음 안의 JC), 부활의 생명 열매(사과..계2:7, 22:2)로 누림 인해 그분을 향한 열망때문에 앓고 있었던 사랑의 병<적극적-긍정적 의미의 상사병>도 그분의 품에 안겨 씻은 듯 치유 받게 됨.

5.  너희는 건포도[=건포도 과자, 대속적 죽음 안의JC]로 내 힘[=영혼의 참 생명력]을 돕고 사과[=사랑과 부활 생명으로 충만한 상큼하고 신선한, 늘 새로운 생명나무 열매]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참된 의미의..적극적 의미의, 절대 긍정의>상사병이다!!...오직 주님이면 됩니다. 주님 사랑이면 충분합니다!! :;: 주 안에서 온전히<날마다, 자기를>죽음에 넘기고--<날마다>새 생명의 부활로 내주하시는 그 영으로 살아야 마땅함!!

6.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곤하고 기진한 내 영혼의 소생 위해 그의 죽음-부활 안에서 새롭게 하시려, 나를 도닥이며 내 눈을 들여다보시며 안으사, 알아주시며 위로하시며 당신의 모든 것, 당신의 평안을 주입-공급해 주심.

7.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연인의 품에 안겨 (그녀의 생애 중 난생처음 경험하는) 완전한 안식 가운데 회복 중인 그녀는, 극히 신경이 예민한 가젤이나 암 사슴과도 같음]

8.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그녀는 <참 생명, 사랑하는 연인, 활기로 가득찬, 부활생명의 그 능력으로 충만한, 거침없이 달려 오기에 자기 존재 침해 염려로 오히려 두렵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분을 발견함..[계6:2]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그분의 음성, 그 임재를 <모든 존재마다 고유의 독특한 파장의 진동 가지기에> 타인의 음성과 참되게 감별하고 있음

9.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오도되고 학대로 인해 상흔 생긴, 염려로 인해(상처 입을까 하는) 주님 제한하는, 상한 마음의 방어벽..아직은 ..여기까지만!!..]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1) : 사랑하기에 부드러이 불러내시되 (당신을 신뢰하도록, 당신이 회복력의 근원이자 모든 힘과 능력 근원이심을 받아들이며),  강제로가 아니라 상대방의 심사숙고의 더딘 결정조차 존중하며 <어느 시간까지는> 기다려 주심.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잡아 가두라..세상 가치 따라 상호 적대-분열 획책하고 말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의 합당한 생활, 곧 하나됨-열매 맺음 방해하는, 그 틈을 비집고 침입해 들어 와 훼방 놓는 (세상가치따른 모든 근심과 염려의 실체, 옛사람인) 작은 여우!!]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16.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그분의 음성에 화답하여 한 걸음 더 내어딛는 바로 그 순종/복종이 전적으로 필요함, 백합화들인 교회=등대=믿는이들 가운데서도, 함께 있어 당신을 공급해 주시는 그분을 보고 있으며 그것을 고백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는 그분과의 특별한 영적 하나됨의 개인적 체험, 그 감동 안으로 들어가서 연합한 하나됨의 누림을 <그 어디서든지, 상호 거함/거처/소유기업/누림 됨> 참되게 경험하며 그 안에 거하고 있지는 않음!!(=즉, 연합한 하나됨의 누림/거함이 아니라 불일치-분리 상태임을 뜻함...오로지 조심할지니!!...<최선의 시간-장소-때를 아시고 가장 적절한 시점에 오시기에!!> 그분의 임재(=영적 공명의 진동/감동의 일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오직 그분을 신뢰함으로 내어맡겨드려, 하나되어 묵묵히 따르라!!)

17.  내 사랑하는 자야 [내가 나를 돌아보니!!(이것은 엄청난 실수!! = 자격지심<침체..머뭇거림>의 자기성찰에 스스로 가둠이요 전지전능하신 그 영, 그분을 신뢰하며 완전히 복종하기를 거절함이다!--이로 인해 불필요한 분리를 경험하게 됨에 주의하라!!!) 지금은 <내가 아직 채 준비가 안되었으니>그냥 가고!!]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JC께서 약속하신 새하늘과 새 땅..여기에서는 분리의 의미]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 ...아직 <그분의 움직이심에 대해, 자신의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자기 부인-자기십자가 짐으로써> 완전한 영적 하나됨에 대한 그분의 갈망에 <그대로 자신을 맡겨드림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음(실패했음)을 봄> + 그러나, 동시에 이기는 자로서 휴거되기를 원함은 여전히 있음.

===

아가 2장 [현대인의성경]

1. 여자: 나는 사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화라네.

2. 남자: 내가 사랑하는 님을 다른 여자와 비교해 보니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화 같구나.

3. 여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남자와 비교해 보니 숲속의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의 그늘에 앉아서 기뻐하며 그의 열매를 맛있게 먹는구나.

4. 그가 나를 데리고 연회장으로 들어가서 나에게 사랑의 기를 치켜 올렸네.

5. 건포도로 내 힘을 회복시키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해다오. 내가 사랑 때문에 병이 들었단다.

6. 그가 왼손을 베게 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7.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제발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지 말아다오.

8. 여자: 사랑하는 님의 목소리가 들리는구나. 그가 산을 넘고 들을 지나 달려온다.

9. 내 사랑하는 님은 노루와 어린 사슴 같구나. 그가 벽 뒤에 서서 창틈으로 들여다 본다네.

10. 내 사랑하는 님이 말한다. 남자: 나의 사랑, 나의 님이여, 일어나 함께 갑시다.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으며

12.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때가 되어 비둘기 소리가 들리고 있소.

13. 무화과가 맺히기 시작하고 포도나무가 꽃이 피어 향기를 날립니다. 나의 사랑, 나의 님이여, 일어나 함께 갑시다.

14. 바위 틈에 숨은 비둘기 같은 님이여, 그대의 사랑스런 얼굴을 보이고 그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 주오.

15. 여우를 잡아라. 포도원을 해치는 작은 여우들을 잡아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다.

16. 여자: 님은 나의 사랑, 나는 님의 사랑,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 

17. 내 사랑하는 님이시여, 날이 새기 전, 어두움이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어린 사슴처럼 되어 주세요.

=====

The Bride’s Admiration

1 “I am the rose [of the plain] of Sharon, The lily of the valleys [that grows in deep places].”

(The Bridegroom)

2 “Like the lily among the thorns, So are you, my darling, among the maidens.”

(The Shulammite Bride)

3 “Like an apple tree [rare and welcome] among the trees of the forest,  So is my beloved among the young men!  In his shade I took great delight and sat down,  And his fruit was sweet and delicious to my palate.

4 “He has brought me to his banqueting place, And his banner over me is love [waving overhead to protect and comfort me].

5 “Sustain me with raisin cakes, Refresh me with apples, Because I am sick with love.

6 “Let his left hand be under my head And his right hand embrace me.”

(The Bridegroom)

7 “I command that you take an oath, O daughters of Jerusalem, By the gazelles or by the does of the field [which run free], That you do not rouse nor awaken my love Until she pleases.”

(The Shulammite Bride)

8 “Listen! My beloved! Behold, he comes, Climbing on the mountains, Leaping and running on the hills!

9 “My beloved is like a gazelle or a young stag. Behold, he is standing behind our wall,  He is looking through the windows, He is gazing through the lattice.

10  “My beloved speaks and says to me, ‘Arise, my love, my fair one, And come away.

11 ‘For behold, the winter is past, The rain is over and gone.

12 ‘The flowers appear on the earth once again;  The time for singing has come,  And the voice of the turtledove is heard in our land.

13 ‘The fig tree has budded and ripens her figs,  And the vines are in blossom and give forth their fragrance.  Arise, my love, my fair one,  And come away [to climb the rocky steps of the hillside].’”

(The Bridegroom)

14 “O my dove, [here] in the clefts in the rock,  In the sheltered and secret place of the steep pathway, Let me see your face,  Let me hear your voice;  For your voice is sweet,  And your face is lovely.”

(The Chorus)

15 “Catch the foxes for us,  The little foxes that spoil and ruin the vineyards [of love],  While our vineyards are in blossom.”

(The Shulammite Bride)

16 “My beloved is mine and I am his;  He pastures his flock among the lilies. 

17 “Until the cool of the day when the shadows flee away,  Return quickly, my beloved, and be like a gazelle  Or a young stag on the mountains of Bether [which separate us].”

======

아가 2장 (개요)

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 및 자신의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신다(1, 2).

2. 교회는 다음 사실을 말한다.

   (1)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얻은 즐거움과 만족을 기억함(3, 4).

   (2) 그리스도의 총애의 현재적 표징을 스스로 즐기고 그 어떤 것도 그것을 가로채지 못하도록 조심함(5-7).

   (3) 그리스도가 교회에 접근하심을 기뻐함(8, 9).

   (4) 돌아온 봄날의 즐거움에 이끌려, 자기와 함께 산책에 나가자고 교회를 향해 되풀이하여 부르는 그의 은혜로운 외침(10-13)과 교회의 미천한 은둔 생활에서 뛰쳐 나와 자기와 함께 가자는 은혜로운 부르심(14) 및 그의 포도원에 해를 끼치는 것을 없애라고 그의 종들에게 내리시는 명령(15).

   (5)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교회의 이득을 기뻐함(16).

   (6) 그가 돌아오기를 기대함(17). 자기 마음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하늘의 희망으로 가득찬 이들은 이런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장 잘 아는 것이다.

=====

사론의 수선화인 그리스도(아 2:1-2)

Ⅰ.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무엇에다 비유하고 싶어하시며 동시에 그가 이 비유에서 자신을 얼마나 겸손하게 낮추시는지 살펴 보라.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되시며 밝고 밝은 새벽별이신 그가 자신을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라고 부르시는데, 이것은 그가 이 세상에서 자기백성들과 함께 계시며 성도들이 자기께로 나아오기가 얼마나 용이한 일인가 하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또 이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과 감미로움을 표현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의해 몸단장하도록 하라고 가르치기 위함이다. 

남녀 양치기들은 즐거울 때면 수선화나 백합화로 장식하며 꽃다발과 화환으로 단장하였는데 성도들도 이처럼 그리스도로 단장하라는 것이다. 

"장미"는 (영어로는 사론의 장미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성서의 수선화가 덩쿨 장미의 일종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역주) 그 아름다움과 향기에 있어 꽃 중에 으뜸이며, "백합"은 우리의 구주께서 "솔로몬의 그 모든 영광"으로도 이 꽃만치 아름다운 의상을 입지 못하였다고 하신 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론의 수선화"(장미)이다. 아마 사론에는 가장 훌륭한 수선화가 자랐으며 또 가장 만발하였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들의 장미"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는 복음에 의한 구원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구원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아무라도 와서 은혜의 언약 안에 자라나는 특권과 위로의 장미꽃 봉오리를 따갈 수 있다. 

그는 정원 안에 갇혀 있는 장미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와서 그로 인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는 희기로는 "백합꽃"이요 향기롭기로는 "골짜기의 백합화"이니 그 향기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골짜기" 혹은 "저지(低地)의 백합화"로서 매우 겸손하며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 겸손한 영혼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큰 아름다움을 본다. 그가 딴 사람들에게는 무엇이되든지 간에 "골짜기"에 있는 자들에게는 "백합화"이다. 

그는 "수선화요 백합화이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리스도께 있는 훌륭함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그것은 오직 그에게만 있는 것이며, 더욱이 그것은 최고의 형태로 존재한다.

Ⅱ. 또한 그가 자기 교회를 무엇에다 비기고 싶어 하시는지 살펴보자(2절).

1. 그녀는 “백합화 같다.”그는 자신을 “백합화”라고 하면서(1절) 이 여인은 “백합화 같다”고 한다. 

신자들의 아름다움은 저들 자신이 그리스도와 일치되려고 따르며 그를 닮아가는 데 있다. 그들은 그의 사랑이며 따라서 백합화 같으니, 이는 그리스도와 같이 만들어진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뚝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2. 그녀는 “가시나무가운데 백합화” 같으니, 곧 “가시나무”와 비교되는 “백합화 같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장미 꽃밭이 가시덤불을 능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다른 사회 단체를 훨씬 능가한다. 

교회는 “가시”로 둘러 쌓인 “백합화 같다.” 이 세상의 “여인들” 곧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갖고 있지 않은 악인들은 “가시”와 같아서 가치도 없고 쓸모도 없으며, 틈만 메꾸는 이외에 아무 데도 소용없는 존재들이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유해하고 해롭기까지 하다. 그들은 죄와 함께 왔으며 저주의 열매이기도 하다. 그들은 좋은 씨앗이 움터나오지 못하게 막으며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나, 그들의 “말로는 불태움을 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백합화 같아서,” 가시로 인해 긁히고 찢어지며 그 그늘에 가리워져 빛을 못보게 되기 마련이다. 성도들은 그리스도께 소중한 존재들이면서도 이 세상의 어려움과 고통에 노출되어 있다. 그들은 이 어려움을 예상해야만 한다. 그들이 심기운 곳은 “가시나무 가운데”이기 때문이다(겔 2: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에게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리스도께시는 자기의 백합화 중 어느 하나라도 "가시나무 가운데"있다고 해서 간과해 버리거나 과소 평가하시는 법이 없다. 그들은 "가시 가운데" 있을 때에도 여전히 "백합화 같음"에 틀림없으며 그들의 순결과 순수성을 유지해야 한다. 

비록 그들이 "가시나무 가운데"에 있다고 하더라도 "가시"로 변해서는 안 되며, "울타리에 울타리를 내어서도 안 된다." 만약 그들이 이와 같이 자기 특성을 보존한다면 그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와 합치되는 자로 인정될 것이다.

영혼 속의 은혜는 "가시나무 가운에 있는 백합"이다. 부패케 하는 것은 "육체 속에 있는 가시"이며(고후 12:7),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속에 있는 가나안 인들과 같다(수 23:13). 

그러나 지금은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이 "백합"도 오래지 않아 이 광야에서 뽑혀, "찌르는 가시"도 없고 "아프게 하는 가시"도 없는(겔 28:24) 저 낙원으로 이식될 것이다.

---------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사랑과 찬양(아 2:3-7)

여기에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신부는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찬양하며 그를 딴 모든 자보다 우위에 둔다. "수풀 가운데 사과 나무 같구나."

이 나무는 딴 나무들 처럼 그렇게 높이 자라지도 않고 넓게 퍼지지도 않지만 사람한테는 유용하고 쓸모가 있다. 딴 나무들은 거의 쓸모가 없으며 백향목 같은 나무조차도 벌목되어 재목이 되기까지는 별반 소용이 없는 반면에 이 나무는 맛있고도 유익한 열매를 맺는다.

"남자들(혹은 "아들들")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이와 같구나." 이와 같이 그는 그 모든 자들보다 빼어나시니─즉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 즉 천사들보다 월등하시며(천사들에게는 예정되지 않는 존귀가 그에게는 베풀어졌다. 히 1:4), 인간의 모든 "아들들"보다 월등하시다. 

그는 모든 인간보다 "더 아름다우시며" 인간들 중에서 가장 빼어난 자보다 더 훌륭하시다(시 45:2). 너희가 너의 마음에 드는 어떤 피조물을 지적하든지 간에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든 것들보다 빼어난 분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영혼에 대하여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으나 그리스도는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이다.

Ⅱ. 이 여인은 자기가 그와 교제하는 중에 얻은 풍족한 위로를 기억하고 있다. 

이 여인은 목자들이 때로 나무 그늘 밑에 앉아 휴식하며 서로 담소하듯 그의 곁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다." 교회가 주 예수 가까이 앉음으로써 발견하는 혜택은 두 가지이다.

1.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그늘로서의 혜택이 있다. 

"내가 그의 그늘 밑에 앉음"은 그를 피난처로 삼아 찌는 듯한 태양의 열기로부터 보호받고 시원함을 얻으며 다소의 휴식을 취하고자 함이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큰 나무 "그늘 같으며" "곤비한 땅의 큰 바위 그늘 같다"(사 32:2; 25:4). 불쌍한 영혼이 죄의 확신과 율법의 공포로 인해 다윗처럼 바싹 타들어 갈 때(시 32:4), 또 기진맥진 하여 로뎀 나무 아래 앉았던 엘리야처럼(왕상 19:4) 이 세상 환란에 지칠 때 그들은 그리스도에게서 그 그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메마른 불쌍한 영혼은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의 은혜와 위로 속에서 또 불쌍한 죄인을 떠맡으시는 그의 사랑 안에서 이 그늘을 발견하게 되며, 이 그늘은 저들을 소생시켜 주고 그들이 약해지지 않도록 해 준다. 

"피곤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휴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그늘"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며 우리는 이 "그늘 아래 앉아야"만 한다(여기에 내가 거할 것은 내가 그것을 사모하였음이라). 

그리고 우리는 이 그늘이 요나의 박넝쿨처럼 곧 시들어버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더위를 입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나무와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생명의 나무의 잎사귀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만민들의 병치료에도 소용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기쁨으로 이 그늘 아래 앉지" 않으면 안 되며 그 보호를 전적으로 신뢰해야 하고(삿 9:15 처럼) 그 휴식에 매우 만족해야 한다.

2. 그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맛있고 자양분 있는 음식물이 있다. 

이 나무는 "그 그늘 밑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실과를 떨어뜨려 준다. 그들은 그 열매를 마음대로 먹으며, 그 실과가 타인들에게는 어떠하든지 간에 자기들의 "입에는 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신자들은 주 예수님의 "은혜로우심"을 맛보았다(벧전 2:3). 그의 "열매"는 모든 값진 새 언약의 특전이며 그의 피로써 얻으신 것이요 그의 성령으로 전달해 주시는 것이다. 약속은 신자들에게는 단것이며 교훈도 또한 그러하다.

"나는 속 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노라." 용서해 주시는 것도 달며 양심의 평안도 달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나 성령의 기쁨이나 영생에 대한 소망도 달며, 현재의 영생에 대한 전조도 달다. 영적인 감각을 활동시키는 이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다 단 것이다. 

만약 우리 입에서 죄악의 쾌락에 대한 미각을 제하여 버린다면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 입에 달 것"이며 "꿀과 꿀통보다 더 달 것"이다.

Ⅲ. 이 여인은 자기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얻은 은총과 위로를 감사하고 있다(4절). "내가 사과나무 아래 앉아 기뻐하였고 그는 나를 영접하셨다. 더욱이 그는 나에게 자기와 보다 친밀한 교제를 하도록 재촉하셨다." 

"주 여호와께 복받은 자여! 들어오라. 어찌하여 밖에 섰느냐?" "그는 나를 인도하여 잔치집(포도주의 집이라고도 해석됨)에 들어갔다."

즉 이 잔치집은 그가 자기의 특별한 손들을 접대하는 곳으로, 그는 그들을 낮은 정도의 안락에서 고급의 안락으로 "사과나무"의 열매에서 보다 풍부한 포도나무 열매로 이끄는 것이다. 

자기가 "가진" 신적 기쁨을 귀하게 여기는 "자에게는 더욱 많은 것이 주어질 것이다." 

랍비 중 한 사람은 "잔치집"이란 말을 "율법의 해석이 행해진 회중의 장막"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확실하게 이 말씀을 기독교의 집회에다 적용할 수 있다. 

크리스찬의 집회에서는 복음이 선포되며 복음의 의식이 거행되는데 바로 저 "포도주의 잔치"인 주의 성찬만은 특히 그러하다. 특별히 이 잔치가 복음 교회의 성례와 부합되는 것은 이 의식에서 내면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점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음 사항을 살펴보자.

1. 이 여인은 어떻게 인도되었는가. 

"그가 나를 인도하여, 즉 그가 내 안에 역사하사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시고, 나를 도와 나의 낙심을 극복하게 하시며 내 손을 붙잡고 안내하고 인도하셨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담대히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다"(엡 2:18).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시고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의 원천을 열어 주심으로써 우리를 인도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잔치집에 들어갈 수도 신령한 즐거움을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2. 이 여인은 어떤 향응을 받는가. 

"그의 사랑은 내 위에 기로구나." 즉 "그는" 내게 대한 승리자(trinmph over) 로서가 아니라 나의 승리를 기뻐하는(triumph in)자로서 내 머리 위에 나부끼는 깃발로 "나를 인도해" 들이셨다. 또 그는 언제나 우리를 자기와 함께 그리고 자기 안에서 승리하게 하신다(고후 2:14).

복음은 "깃발"이나 "기호"에 비유된다(사 11:12). 그리고 이 깃발에 나타난 것, 즉 황금 글자로 깃발에 씌여진 "사랑"이며, 피로 씌어진 글자도 "사랑"이다. 그리고 이 깃발은 곧 그 "잔치집"에서 내어 놓는 대접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구원의 대장"이시며 그는 자기의 모든 병사들을 사랑의 깃발 아래로 불러 모으신다. 그들은 그 깃발을 중심으로 모인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 깃발에 시선을 보내고 있어야 하며 그것에 의해 활력을 얻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들을 "속박하여" 대장부답게 싸우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성읍을 빼앗으면 정복자는 자기의 군기를 새 점령지에 세운다. "그는 나를 그의 사랑으로 정복하셨고 인자하심으로써 나를 압도해 버리셨으니 그것이 곧 내 위에 기로다." 

이와 같이 이 여인은 이전에 자신이 경험하였던 사실을 말하고 있고, 이제 그 체험을 기쁨으로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먹는 빵을 잊어서는 안 되며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만나로 먹여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Ⅳ.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강렬한 애정과 가장 정열적인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5절).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으니, 이는 그 사랑에 의해 압도되고 그 힘을 못견디어 냈기 때문이다." 다윗은 시편 110편에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주의 규례를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오며(20절),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내 영혼이 피곤하오니(81절), 주의 법도와 주의 구원을 확신하려는 노력과 그것이 부족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기진맥진하였나이다." 

이 여인은 아마 그 때에 자기의 사랑하는 이로부터 떨어져 있으면서 그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와 그의 지체 때문에 슬픔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사랑에 대한 과식으로 탈이 나는 때보다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병 나는 것이 영혼에게는 얼마나 더 나은 것인지 모른다. 

이 여인은 강심제를 달라고 요구한다.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도우라. 혹은 기름이나 꽃, 그 외에 기운나게 하는 것이면 어떤 것으로든 내 힘을 도우라.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즉 사과나무 되신 그리스도의 열매로(3절) 나를 시원하게 하며, 그의 공로와 중보로 나를 위안시키고 내 영혼에 대한 그의 사랑의 감각으로 나를 위로케 하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 병이 난" 자들은 신령한 위로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영적 양식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Ⅴ. 그녀는 기진맥진해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출됨으로써 신적 은혜의 효능과 따사로움을 체험하게 된다(6절). 그는 비록 물러난 듯이 보였었지만 이런 때에는 조속한 도움을 주셨다.

1. 사랑에 병든 영혼을 부지시키고 혼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머리를 떠받쳐 베개처럼 편히 눕게 하신다." 

다윗은 "자기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랐을" 때(시 63:8) 하나님의 손이 자기를 붙들어 주시는 것을 경험하였고, 욥은 사면초가의 궁지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힘을 넣어 주신다"는 것을 발견하였다(욥 23:6). 

"모든 성도는 다 그의 수중에 있으며" 그의 손은 저들의 아픈 머리를 부드럽게 잡아 주신다.

2. 사랑에 병든 영혼을 격려하여 자기가 돌아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도록 하기 위하여. "이러는 중에 그는 오른손으로 나를 안으시는구나. 그럼으로써 그는 내게 대한 사랑의 확증을 명백하게 보여 주신다." 

신자들의 모든 힘과 위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왼 손이 받쳐주시고 오른손이 안아 주시는 데서 나온다.

Ⅵ. 이 여인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가 이처럼 자기에게 가까이 계심을 보고 그와의 교제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7절). 

"예루살렘 여자(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인 예루살렘이 그의 모든 딸들에게, 교회가 그 모든 지체들에게, 믿는 영혼이 자기의 모든 능력과 기능에게, 신부가 자기와 자기 주위의 모든 자에게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도록" 부탁하고 있으니 이는 그녀가 그의 팔에 안겨 있었듯이(6절), 그가 그녀의 팔에서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노루와 들사슴으로" 그들에게 이 부탁을 하고 있다. 즉 "사랑스러운 사슴과 즐거운 노루처럼" 그들이 보기에 사랑스럽고 그들에게 소중한 모든 것으로써 부탁한다. "내 사랑은 그들 사슴과 노루가 너희에게 소중한 것보다 나에게는 더 소중하며, 매우 작은 소리에도 놀라는 노루나 사슴처럼 내 사랑도 작은 소리에 방해받을 것이다.

1.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감미롭고 그의 사랑은 인식의 범위 안에 밝히 계시되고 있다. 

이 교제와 사랑을 경험하는 이들이라면 이 복된 장면과 이 복된 방문이 계속되기를 소원하지 않을 수 없다. 베드로는 거룩한 변화산상에 초막을 지었으면 하고 원하였던 것이다(마 17:4).

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원하실 때에는 이런 비상한 자기 전달도 회수해 가신다. 

그는 자유로운 행위자이시며 성령은 "바람처럼" 원하시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분다." 그러므로 그가 원하시는 일이라면 우리는 묵묵히 따라가야 마땅한 것이다.

3. 그러나 우리는 그를 노엽게 하여 물러가시도록 만들거나 얼굴을 숨기시게 할 만한 일을 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을 주의깊게 감시하여 그의 선하신 성령을 비탄에 잠기게 할 그 어떤 생각도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로를 얻고 있는 이들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그 위로를 잃을까봐 두려워해야 한다.

-------

그리스도와 교회간의 사랑(아 2:8-13)

교회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때 맞추어 소생한 뒤 장차 있을 그리스도와의 계속적인 교제를 생각하고 그 기쁨에 몸둘 바를 몰라 한다.

Ⅰ. 이 여인은 그가 다가옴을 기뻐하고 있다(8절).

1. 이 여인은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 

"이것은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구나. 그가 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목소리구나." 

그리스도의 양떼 중 한 마리처럼 이 여인은 그를 보기도 전에 "그 목소리를 알며" "딴 사람의 목소리"와 쉽사리 구별할 줄 안다(요 10:4, 5).

또 이 여인은 신랑의 진실한 친구처럼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한다"(요 3:29). 

이 여인은 얼마나 의기양양한 태도로 부르짖으며 얼마나 기쁨에 넘쳐 소리치는가를 보라. "이것은 나의 사랑하는자의 목소리로구나 이것은 다른 어떤 자의 목소리일 리가 없다. 그 이외의 어느 누가 이처럼 내 가슴에 울리는 말을 하며 내 가슴을 불타오르게 할 수 있으랴."

2. 이 여인은 그가 오심을 보며 교회는 "우리 하나님, 우리 왕"의 행차하심을 본다(시 68:24). 

"보라, 그가 오시느니라." 이 말씀은 구약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육을 입고 오시는 것에 대해 전망하였던 사실에다 적용하는 것이 매우 타당하다. 

"아브라함"은 멀리서 "자기 날을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시간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메시야 도래에 대한 사실은 더욱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신앙의 눈으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고대하던 자들은 그가 오시는 것을 보았고 그 광경에 환희작약하였다. 

"보라! 그가 오시느니라." 그들은 그가 "보라! 내가 오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으며(시 40:7) 그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약속하셨던 대로 "오시는구나."

(1) 그는 즐거이 그리고 매우 민첩하게 오고 있다. 

그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이" 달리며 넘어서 온다(9절). 

이것은 자기가 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자의 태도이며, 자기 사업에 마음을 쏟고 인간의 자손과 함께 기뻐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그는 피로 세례를 받으러 오셨다. 그 피의 세례를 "다 이루시기까지 그의 답답함은 어떠 했겠는가!"(눅 12:50)

(2) 그는 도중에 가로 놓인 온갖 어려움을 경시하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온다. 

그는 "산에서 달리고(뛰어 넘는다는 뜻도 있음:역주)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그의 전도(前途)에는 낙심케 할 일들이 많으나 그는 이들을 개의치 않고 질주한다. 

율법의 저주와 십자가 상의 죽음을 통과하지 않으면 알 될 난관이었고, 모든 흑암 권세들은 그가 맞부딪쳐 싸우지 않으면 아니 될 강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단호한 사랑 앞에는 이러한 태산준령도 평지와 다름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구원을 베푸는 곳이지만 언제고 간에 이에는 반대가 따른다. 그러나 그 반대가 무엇이든 간에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분쇄해 버리시며 극복하실 것이다.

(3) 그는 "노루나 어린 사슴처럼" 신속하게 온다. 

그들은 그가 도래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루가 일년이고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이듯이] 생각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는 급히 오셨다. 

이제나 그제나 마찬가지인 것은 "정녕 그가 속히 오시리라"는 것이다. "오실 그분은 꼭 오실 것이며, 그는 지체하지 않으시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건지시기 위해 오시는 때에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 그는 결코 자기 시간을 넘기시면서까지 머무르지 않으실 터이니 그 시간은 최상의 시간이겠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개개의 신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가지는 위로를 거두어 들이시고 그들을 버리시는 것처럼 보이실 때조차 그것은 단지 잠시 동안만의 일이며 그가 곧 영원한 자비로써 돌아오실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

Ⅱ. 이 여인은 그를 흘낏 보았고 그의 은총을 순간적으로 보았을 뿐인데도 그것을 즐거워한다. "그는 우리의 벽 뒤에 서 있다. 나는 그가 거기에 있음을 안다. 왜냐하면 그는 때때로 창으로 바라보거나 들여다 보며 창살 틈으로 나타나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바로 구약교회가 메시야의 도래를 고대하는 동안 겪은 상황이었다. 의식 율법은 "간막이 벽"(엡 2:14)이나 "수건"(고후 3:13)이라고 칭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벽 뒤에서 계셨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 가까이 그를 모시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그를 똑똑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여하튼 그를 자기들과 함께 소유하고 있었다. 실체이신 그는 그림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아니하셨다(골 2:17). 

그들은 그가 의식적(儀式的)제도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 보시며 그 창살틈을 통해 웃고 계심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희생 제사와 정죄의식( 罪儀式)가운데에서 자기를 그들에게 드러내셨으며 자기의 은혜에 대한 암시와 간절하신 증거를 그들에게 주셨으니 이는 두 가지를 위해서이다. 즉 자기의 도래에 대한 약속과 자기의 도래를 동경하는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기 위해서 자신을 드러내셨다.

이러한 현재의 상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형편과 비교된다. 우리가 지금은 "그를 거울을 통해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보며"(신체는 우리와 그 사이의 벽이며 우리는 때때로 이 벽의 창문을 통해 그를 바라 본다), 우리가 희망하는 대로 당장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 그를 보지는 못한다. 

성찬에서 그리스도는 우리 가까이 계시나 그가 계신 곳은 외적 상징인 "벽 뒤"이며 그가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은 바로 이 "창살 틈"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곧 "그를 원래의 모습대로 보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의심받고 있는 신자의 상태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아니 하시지만 그래도 멀리 계신 것은 아니다(욥 34:14 참조, 그리고 욥 23:8-10 비교). 

이 여인은 자기와 자기가 사랑하는 자 사이에 개재되어 있는 벽을 "우리의 벽"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그 벽이 죄인 까닭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분리시키는 벽은 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게다가 그 벽은 우리 자신이 세운 것이다(사 59:1). 그는 이 벽 뒤에 서서 우리가 회개하는 즉시 "은혜를 주시고자 기다리시며" 우리와 기꺼이 화해하시려고 하신다. 

그 곳에서 "그는 창으로 들여다 보시며" 우리 마음의 창틀을 살피시고 우리 영혼의 일을 관찰하신다. 그는 창문을 바라보고 계시며 그들에게 다소 위로를 베푸심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데 이는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귀환을 끊임없이 희망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Ⅲ. 이 여인은 그의 은혜스런 초대를 되풀이하여 언급하고 있다(10-13).

이 여인은 그 사랑하는 자가 자신에게 한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데 이는 그 말씀이 자기에게 매우 즐겁고도 강한 인상을 남겼던 까닭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소생케 하는 말씀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녀가 이 말씀을 하는 것은 그가 이 여인의 영혼에 대해 말씀하신 것과 "이 여인의 영혼을 위해 행하신 일을" 고함으로써(시 66:16) 타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이다.

1. 그는 이 여인을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라고 부르고 있다. 

이 여인이 타인들에게는 무엇으로 비치던 간에 그에게는 용납할 만한 여인이요 그가 보기에는 귀여운 여인이었다.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사랑하는 자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리스도께도 사랑받는 자로 인정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 드려진 사랑은 절대로 상실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신도들에게 사랑을 표현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자기를 따르도록 초대하며 격려해 주신다.

2. 그는 이 여인에게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부른다(10, 13). 

그가 반복해서 촉구하는 데에서 이 여인에게 주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우리는 종종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가자고 부르심을 받을 필요가 있다.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반면에 이것은 그가 열심히 촉구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혼은 귀중하다. 그는 이 고귀한 영혼의 복지를 위해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바쳐서 그들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간곡히 그리고 강력하게 권하고 있다.

3. 그는 함께 가자는 한 가지 이유로서 봄철이 돌아와 날씨가 화창함을 들고 있다.

(1) 이 계절은 아주 다양한 표현으로 우아하게 묘사되어 있다.

1) "겨울도 지났다." 

겨울은 어둡고 추운 불모의 계절이다. 어렵고도 긴 겨울이 드디어 지나가 버렸다. 

그와 같은 겨울은 언제나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에 봄이 겨울 다음에 오지 않고 딴 어느 계절에 접속된다고 한다면 그 봄은 현재 만큼 즐거운 계절은 되지 못할 것이다. 즉 겨울은 봄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계절이다(전 7:14). 

하늘의 얼굴이나 땅의 표면도 언제든지 똑같은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변천을 숙명으로 하여 날마다, 해마다 변동하는 것이다. 

"겨울은 지났으나" 그렇다고 영원히 지나가 버린 것은 아니다. 그 겨울은 다시 돌아올 것이며 우리는 그 겨울을 위해 여름철에 대비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잠 6:6, 8). 

우리는 마치 울기만 하고 기뻐해 보지 못했던 사람처럼 겨울에는 슬퍼해야만 하고 여름에는 기쁘기만 했던 자인양 기뻐해야만 하는 것이니 이는 겨울과 여름, 이 양자가 다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비도 그쳤다." 

이 비는 찬 비요, 폭풍이 수반된 겨울비다. 이제 그 비가 그치고 "풀 위에 내리는 이슬같이 단비가 내린다." 

세상을 다 잠기게 하였던 비도 드디어 그치고(창 8:1-3)하나님께서는 그 이상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은혜의 언약에 대한 상징이요 예표였다(사 54:9).

3) "지면에는 꽃이 핀다." 

겨울 내내 그들은 죽어서 뿌리속에 파묻혀 있었고 다시 꽃이 피어날 것 같은 징조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봄이 되자 그들은 소생하여 놀라우리만치 가지 가지의 모습을 드러내며 신록을 자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꽃들을 만들어 내는 이슬처럼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미 5:7). 그것들은 지면에 나타나지만(핀다는 말의 뜻은 원래 나타난다는 것이다. 역주) 곧 사라질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인생은 "들의 꽃"과 같다(욥 14:2).

4) "새가 노래할 때에 이르렀다." 

작은 새들은 겨우내 그들이 칩거하는 곳에 숨어 있으면서 거의 죽은 것 같은 생활을 하다가, 봄이 돌아오면 겨울에 당하던 모든 재난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있는 재주를 다해 창조주께 대한 찬미의 노래를 부른다. 

먹을 것이 없어서 우는 새들을 알아보시는 분께서(시 147:9)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을(시 104:12) 눈여겨 보시지 않을 리는 없다. 

새들의 노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인색한 우리를 수치스럽게 한다. 우리는 새보다 더 잘 먹고(마 6:26) 더 좋은 교육을 받으며(욥 35:11) "많은 참새들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으면서도 그를 찬미하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다. 

새들은 크게 보살펴 주는 일이 없는 채 살아가지만(마 6:26) 그래도 그것들은 우리가 불평하는 동안에도 노래를 부른다.

5)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이 새는 철새 중 한 가지로 예레미야서 8장 7절에 언급되기를 돌아올 때와 노래하는 때를 지키는 새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새는 "여호와의 심판을 알지 못하고" 그 시기를 이해하지도 못하며, "때를 따라 아름다운" 것을 행하지도 못하고 때를 알리는 노래도 부를 줄 모르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6) "무화과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다." 

이로써 "우리는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안다"(마 24:32). 이 때가 되면 푸른 무화과 열매가 익어서 사용하기에 알맞을 만큼 된다. 그리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대지는 "꽃"을 피울 뿐만 아니라(12절) "열매"도 맺는다. 열매 자체는 물론 유용하나 그 향기에 있어서도 단지 관상용의 즐거움밖에 되지 않는 꽃의 향기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뱀은 소위 포도나무 향기에 도망을 간다고들 말하는데 우리는 옛뱀이 누구이며 참 포도나무가 누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 이상과 같이 돌아오는 봄에 대한 묘사는 그리스도와 함께 가야할 이유로서 열거된 것인데 이것은 다음 사실에 적용될 수 있다.

1) 구약의 율법이 지배하는 방안에 복음을 들여오는 것.

교회로 보아 구약 기간은 겨울철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차가 왔던 것을 따뜻하게 하며 이전에는 죽고 열매 맺지 못하던 것을 생산적인 것으로 만든다. 

복음은 이르는 곳마다 아름다움과 영광을 입혀 주며(고후 3:7, 8)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봄철이 즐거운 때이듯 복음의 때도 그렇다. Aspice ventutro loetentur ut omnia seclo 즉 "동터오는 시대가 불어 넣어 주는 기쁨이 어떠한가 보라!" 로마의 시인 버질(virgil)은 예언집에서 그와 같이 말하였는데 이는 아마 그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 때에 그리스도의 왕국 건립에 대하여 보다 많은 시사를 던져 주는 말일 것이다(시편 96:11 참조). 

"그런즉 일어나서" 이 봄철을 마음껏 활용하라. 이 세상과 육신으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자(고전 1:9).

2) 혹심한 수난과 속박의 겨울이 지난 뒤 핍박하는 원수들의 세력에서 교회를 건지시고 그 자유와 평안을 회복시키는 것. 

환란의 폭풍이 그치고 "반구의 소리," 즉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쁜 소리가 다시 들리며 성례를 자유로이 만끽할 수 있게 될 때가 바로 이 복된 때를 활용하러 "일어나 함께 가야"할 때이다. 주 여호와의 빛에 행하고 주의 길을 노래하라. 교회가 평안을 얻었을 때에 그들은 유익한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행 9:31).

3) 자연의 상태에서 은총의 상태로 죄인을 회심시키는 것.

이 복된 변화는 봄이 되돌아오는 것과 같아서 만물의 변화이며 아주 편안케 되는 변화이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이다. 그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겨울의 땅처럼 굳고 차갑고 얼어 붙어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던 영혼이 봄철의 대지와 같이 다산성(多産性)을 소유하게 되며 점차로 그 열매를 완전히 여물게 한다. 이런 복된 변화는 순전히 의로운 태양의 접근과 그 영향력에 기인된 것이다. 

그 의로운 태양은 하늘에서 우리에게 "일어나 함께 가자"고 부르신다. 자! 오라. 여름에 거두어 들이자.

4) 내적인 낙심과 낙담의 상태 후에 성도들을 위로하시는 것.

의심과 불안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겨울 땅과 같다. 

그 밤은 길며 그 낮은 어둡고, 따사롭던 애정은 냉기가 감돈다. 되는 일이 없고 얻는 것도 없으며 그 손은 봉해져 있다. 

그러나 위로의 봄이 돌아 오리라. 새는 다시 지저귀며 꽃들은 필 것이다. 

그러므로 시들어가는 불쌍한 영혼아! 일어나서 네가 사랑하는 자와 "함께 가라." "일어나 네 티끌을 떨어 버릴찌어다"(사 52:2).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음이라"(사 60:1). "그 빛에 행하라"(사 2:5).

5) 마지막 날에 있을 몸의 부활과 나타날 영광을 나타내는 것. 

무덤 속에 누워 있던 뼈들은 겨우내 땅 속에 들어 있는 식물의 뿌리와 같다. 그러나 그 날에는 뼈들이 "연한 풀의 무성함 같을 것"이다(사 66:14; 26:19). 그 날은 겨울에게 영영 작별을 고하는 날이 될 것이며 영원한 봄으로 기쁘게 들어가는 날이 될 것이다.

----------

그리스도의 권고와 교회의 소망(아 2:14-17)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Ⅰ.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모든 믿는 영혼을 초대하신다. 

이것은 자기와 교제하러 오라는 격려의 초대이다.

1. 이제 그의 사랑은 그의 "비둘기"가 되었다. 

다윗은 교회를 하나님의 "멧 비둘기"라고 불렀다(시 74:19) 그와 같이 이 여인도 본문에서 비둘기로 호칭된다.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힌 비둘기"(시 68:13)는 아름다움의 상징이며 결백과 평화의 상징이다. 은혜로운 심령은 비둘기 같은 심령이며 무해하고 정적과 청결을 사랑하며, 산비둘기가 그 짝에게 하듯 그리스도께 신실한 마음이다. 

성령이 예수께 "비둘기 같이" 내리셨듯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크리스챤에게 내려 오셔서 그들의 "심령을 온유하고 조용하게" 만들어 주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비둘기"이다. 그가 교회를 자기의 소유로 인정하시고 교회를 기뻐하시는 때문이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평안을 찾을 수 있으며 그의 방주 밖에서는 안식을 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노아의 비둘기처럼 교회는 그리스도께로 돌아온다.

2. 이 비둘기는 "바위틈과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말해 준다.

(1) 이 여인의 찬양. 

그리스도는 반석이시다. 비둘기가 맹금류의 습격을 받으면 바위구멍 속에 숨듯이(렘 48:28) 교회는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으며 그분 안에서만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평안을 찾을 수 있다. 

모세는 바위틈에 숨어서야 하나님의 영광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었다. 만일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광채에 견디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여인은 "낭떠러지의 은밀한 곳"으로 물러나 있는데 이는 이런 곳에서라야 그녀는 홀로, 방해를 받지 않고 자기 자신의 마음과 더 잘 사귈 수 있겠기 때문이다. 

선한 크리스챤은 은밀한 시간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때때로 "혼자 기도하시기 위하여" 산으로 물러 가셨을 것이다.

(2) 이 여인의 수치. 

[그러나]그녀는 공포와 수치로 인하여 "바위틈"과 "은밀한 곳"으로 기어 들어갔던 것이리라. 

실의에 빠지고 낙담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자의 눈까지도 피하려고 자기 머리를 감추기 위해 어디라도 비집고 들어갔을 것이다. 

그의 존재 앞에 나타나 말을 걸기에는 너무나 무자격하고 무가치한 자신을 스스로 의식하고 이 여인은 물러났을 것이며 "지혜(마음)"없는 어리석은 비둘기" 같았을 것이다(호 7:11).

3. 그리스도께서는 이 칩거하고 있는 여인을 불러내신다. 

자!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해다오." 

이 여인은 "비둘기처럼 슬피 울고 있었으며"(사 38:14) "골짜기의 비둘기"처럼 슬퍼하고 있었다. 

그녀는 위험하게 내려 걸린 바위 틈 근처에서 "자기 죄악 까닭에 슬피 울며"(겔 7:16),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악한 양심에서 속죄하여 "흠없는 얼굴을 들라"고 이 여인을 부르시며(욥 11:15; 22:26)거기에서 위대하신 제사장을 모시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히 4:16)그녀의 청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인지 고하라고 부르신다. 

나로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가 말해야 하는 사연을 듣게 하라.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면 좋겠느냐?"를 자유스럽게 당당하게 말해 보아라.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꺼려하지 말고 말하여라.

4. 이 여인을 격려하기 위해 그는 그녀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자기의 그녀에 대한 선한 생각을 말해 주고 있다. 

"네 소리는 부드럽다." 비록 너는 "학이나 제비같이 지저귀나" 네 기도 소리는 감미롭다(사 38:14). 

하나님 귀에는 네 기도 소리가 음악같이 부드럽고 아름답다. 

그는 우리에게 "정직한 자의 기도 소리는 자기의 기쁨"이라고 확실히 말씀하셨다. 

그는 노아의 희생 제사에서 달콤한 향기를 맡으셨고 "신령한 제사"도 그에 못지 않게 "기뻐 받으신다"(벧전 2:5). 

이것은 우리의 제사를 권장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들을 최선의 것으로 활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겸손이며 "성도들의 기도로 드려진 많은 향"의 효력을 칭찬하는 것이다(계 8:3). 

"네가 부끄러워하는 너의 얼굴은 비록 지금 슬퍼하는 얼굴이라고 하더라도 아름답다. 하물며 즐거워하게 될 때에는 그 얼굴이 얼마나 더 아름다우랴!" 

우리가 사람 앞에 들어내 보이는 용모 즉 교제가 성스럽고 아주 아름다우며 우리의 고백과 어울리는 "때"에는, 우리의 기도 소리가 부드러우며 하나님께 열납된다. 성별된 자들은 최상의 아름다움을 지니는 자들이다.

Ⅱ. 그리스도께서 자기 종들에게 명령을 내리신다. 

<성령 안에 깨어 경계하여야 할 바> 이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공포에 떨게 하며 불쌍하게도 놀란 비둘기를 바위 틈 사이로 내쫓듯 그의 교회를 내몰며, 이 세상에 있는 그의 나라의 세력에 방해가 되고 인간의 마음에 있는 그의 왕국을 좀 먹는 것이 <여전히>존재한다. 

이런 것들에 대항하며 <잡아 억제하여 가두고> 눌러 이기라는 것이 바로 그가 자기 종들에게 내리시는 명령이다(15절). 

"우리를 위하여 여우를 잡으라"(우리를 위해 이들을 잡는 것이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위한 훌륭한 봉사이기 때문이다). 

몰래 기어들어 오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그들이 비록 작더라도 큰 해를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포도원을 허는데" 이는 언제라도 허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특히 지금은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으니 곧 포도나무에 "연한 포도"가 달리기 시작하는 때이다. 이 포도는 보존되지 않으면 안 되며 이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포도의 수확은 망칠 것이다. 

신자들은 연약하지만 유용한 포두나무와 같다. 그 열매는 처음에는 "연한 포도"와 같으며 이것이 완전히 익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은 여우를 잡으라"는 이 명령은 다음 사실을 뜻한다.

1. 각 신도들에게 그들의 부패한 마음과 <무심코 세상따라 방심함으로 자행자지하는> 옛습관을 정화시키며 죄스런 욕망과 정욕을 눌러 이기라는 명령. 

이러한 것들은 "여우" 곧 "작은 여우"와 같은 것으로서 그들의 은혜와 위로를 파괴시키며, 선한 동기를 억누르고 선한 출발을 짓이겨 버리며, 그들이 성숙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 [오직 주 예수님 이름으로!!] 

맨 처음에 일어나는 죄의 머리를 잡으며 바빌론의 어린 것들을 메어치고(시 137:9) 사소한 것같이 보이는 죄악들을 때려 눕혀라. 

왜냐하면 큰 방축도 작은 개미 구멍으로 시작되나 결국 무너지는 것같이 작은 것이 흔히는 매우 큰 위험으로 판명되는 까닭이다. 

선한 일에 방해가 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제거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2. 모든 자들이 자기 위치에서 온갖 악한 견해와 행위의 만연을 억제하며 방지하도록 하라는 명령. 

인간의 판단을 부패케 하고 그들의 양심을 타락시키며 그 마음을 혼란케 하는 경향이 있는 일들, 그리고 미덕과 경건을 지향하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온갖 생각과 행위가 만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해자들은 여우들이다(눅 13:32). 우매한 선지자도 여우이다(겔 13:4). 

이단과 분열의 가라지를 뿌리는 자들, 디오드레베처럼 교회의 평화를 어지럽히며 복음의 발전을 방해하는 자들은 "여우"요 "작은 여우"이다. 

이들의 머리를 때려 죽여서는 아니 되고("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목숨을 멸하러 오신게 아니었다") 잡아야만 한다. 

잡아서 길을 들이거나 <길이 들지 않으면>적어도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주님이 정하신 기간까지>가두어 억제하여야 한다.

Ⅲ. 교회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 믿음의 고백을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와 그와의 교제에서 얻는 이익을 만족해 한다(16절).

그는 이 여인에게 [분명히 개인적 초청을 하고 있는바!!] "일어나서[네가 있는 곳에서 나와서]" 자기와 "[더 나은 차원과 단계로]함께 가자"고 불렀고, 자기로 하여금 이 여인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게 하라고 요구하였다. 

이 16절은 그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비록 현재에는 어두움 속에 있고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하여, 분리 느낌을 경험하고 있지만!!] 이 여인은 그의 부름에 [간접적으로!!]응답하고 있다.

1. 이 여인은 자기와 자기의 사랑하는 자 사이의 이해와 상호관계를 생각하고 스스로 위안을 얻고 있다. 

원문에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그리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다]라고 매우 강조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문장의 간결함은 그녀의 애정이 광대함을 말해 준다. 

"그가 내게 대해 무엇이 되며 내가 그에게는 무엇이 되는지는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머리 속에서 보다 잘 이해될 수 있다."

(1) 그리스도가 자기들의 것이라는 것은 참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특권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 

이것은 소유자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나는 그에게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소유권과 보유권─즉 "나는 그의 충만한 것으로부터 받는다"─을 뜻하기도 한다. 

신도들은 그리스도와 분담하고 참여하는 자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익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를 향유하기도 한다. 

그들은 그와의 계약뿐만 아니라 교제까지도 얻은 자들이다. 

중보자로서 그가 하시는 일은 영광에 찬 기획물이며 그 일에서 얻는 모든 혜택은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는 이 세상이 되어 주지도, 되어 줄 수도 없는 그러한 존재이며, 그들이 필요로 하고 소원하는 모든 것으로서 그들에게 완전한 행복이 되어 줄 것이다. 그의 존재 전체가 그들의 것이며 그의 모든 것, 그가 행하신 모든 것, 그가 하고 계신 모든 일이 그들의 것이다. 

그가 복음 안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 그가 하늘 나라에서 예비하고 계신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다.

(2) 모든 참 신도들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특성은 그들도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럴 때에라야, 그럴 때만이 그리스도도 그들의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그에게 드렸던 것이다(고후 8:5). 

그들은 그의 교훈을 받고 그의 법에 복종한다. 그들은 그의 형상을 띄고 그의 이익에 영합하며, 그리스도께 속한다. 

우리가 만약 그의 것이며, 그의 전부이고, 오직 그만의 것이며, 영원히 그의 것이라면, 우리는 그가 우리의 것이라는 데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2. 이 여인은 그의 은혜가 자기 백성과 갖는 교제를 생각하고 스스로 위안을 얻는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자기 양떼를)먹이시는구나."

여인은 자기에게 대한 그의 은총의 징표를 세부적으로 원하기 때문에 그가 전체적으로 모든 신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에서 기뻐하고 있다. 

그가 보시기에 모든 신도는 백합화 같다. 그는 백합화 가운데서 "먹이신다." 

사람이 자기 식탁이나 정원을 즐거워하듯 그는 신도들을 기뻐하며 그들의 집회를 즐거워하신다. 

즉 그는 "금 촛대 사이로 거니시는" 것이다. 그는 그들과 담소하시고 그들에게 선한 일을 해 주기를 즐겨 하신다...<그럼에도 여전히 성령님은 다소 아쉬워 하시는 것 같다!!>

Ⅳ. 그리스도의 내림에 대한 교회의 소망과 기대 및 이를 바탕으로 하는 교회의 기도.

1. 교회는 "날이 새서 그림자가 달아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마지 않는다. 

복음의 날은 동틀 것이며 의식 율법의 그림자는 달아날 것이다. 저 어두운 종규(宗規)의 긴 밤이 지나면 마침내 "새벽이 높은 데서부터 찾아와 흑암 중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춰 주신다"는 것은 구약 교회의 위안이 되었다. 

태양이 떠오르면 밤의 그림자가 사라지듯, 실체가 오면 낮의 그림자(허상)도 사라진다. 

돌보시지 않고 버리신 밤이 지나면 위로의 낮이 찾아 올 것이다. 

혹은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영원한 행복에도 비할 수도 있다. 

우리가 처하고 있는 현재 상태의 그림자, 즉 우리의 어두움과 의심들, 우리의 슬픔과 억울하고 원통한 모든 일들은 사라져 버릴 것이며 영광스러운 날이 밝아 올 것이다. "의로우신 자가 다스리시는" 아침이 밝아오며 다시는 밤이 없는 낮이 올 것이다.

2. 이 여인은[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그 어느 시점에 그녀의 사랑하는 자가 <친히 다시> 나타나서 자기를 도와 주고 위로하며 안위해 주도록 간청하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돌아오라. 내게로 돌아오라. 나를 찾아 와 나를 구원하소서. 세상 끝까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소서. 나의 곤궁한 날에는 서둘러 나를 도우시며 오래 지체하지 마소서. (우리를) 나뉘게 하는 산이라도 넘어오소서. 그 시간과 날을 막는 산이 있더라도 그 빛과 사랑에 대한 은혜로운 기대로써 넘어 오소서."

3. 이 여인은 그가 현재를 위해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를 바랄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을 데리러 급히 와 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비록 그렇더라도 주 예수여! 오소서! 속히 오소서! 도중에 비록 산들이 있더라도 주께서는 노루나 어린 사슴처럼 그 산들을 쉽사리 넘어오실 수 있나이다. 내게 당신을 나타내시든지, 나를 당신께로 데려가소서!"

.......((감상!!))그러나, 전후 문맥을 찬잔히 살펴 보건데, 완곡하게<지금은 여기까지만!, 하면서 넌지시> 완전히 자신을 내려 놓고 주께 맡겨드려 동행함 안으로 들어서기를 주저주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함께 전진하지 않는다면 <주와 함께 나아감의 영적 전진에서>뒤쳐지게 되고, 이는 결국 원치 않는 <분리>를 경험하게 될 수 있음을 주의하라!!

===
===
**아가서의 주제 = 만족 중의 만족이다
..... 구체적으로 볼 때, 아가서는 JC를 사랑하는 이가 갖는 영적 체험 생활의 네 단계를 묘사함 = 체험적 측면에서는 십자가가 먼저 오고, 그 다음에 부활과 승천이 오게 되며, 뒤이어 휘장안에 사는 삶의 단계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십자가-부활-승천-휘장 >이란 단어는 직접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으나, 그리스도인 생활의 단계들이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계시되었거나 밝혀졌음을 볼 필요가 있음...십자가의 상징들, 부활과 승천의 상징들, 새 창조와 휘장 안의 생활을 의미하는 상징들을  참아내고 올바르게 해석하도록 하라..
---*1>[그리스도께 매혹되고 이끌려 그분만 추구하는 삶] 그분의 사랑에 매혹되고 그분의 달콤함 안에서 그분께 이끌리며 오직 그분으로 말미암은 완전한 만족을 위해 그분을 추구함 
---*2>[자아 파쇄하도록 인도하는 구주 십자가 체험의 삶] 구주의 십자가와 하나 됨 통해서만 자아로부터 구출되도록 부르심 받음 
---*3>[승천 안에 사는 삶] 구주의 부활 안에 있는 Q의 새 창조로, 승천 안에 살도록 그분께 부르심 받음 
---*4>[휘장 안에, 지성소 안에 사는 삶]  구주의 부활을 체험한 후에 그분의 십자가를 통해 휘장 안에서 살도록 더욱 강하게 부르심 받음
--------------
**아가서...[탁월한 결혼 안에 있는,  사랑의 역사에 대한 시가] ..성경은 전체가 Q께서 사람과 사랑에 빠진 것을 말하는 로맨스, 즉 최고 수준의 사랑 이야기임.
.....표면적으로 볼 때 [나의 사랑하는 자라 불리고 있는] 지혜로운 예루살렘 왕 솔로몬(뜻 : 평강)과 [사랑하는 자, 또는 사랑이라 불리는...1:15, 2:2, 4:1,7, 6:4]시골 소녀 술람미(솔로몬의 여성형)의 역사로, 신분 차이를 넘어서서 사랑에 빠지고 함께 결합 한 후 내내 친교 안에 <영속적으로>머무르는 바, 이는 [측량할 수 없이 위대하고 한량없이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지극히 작고 어리석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셨음
.....이는,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믿는 이들의 연합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묘사임
---신약 전체는 몸의 생활을 강조하지,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연인으로서의 생활을 강조하지는 않는다(롬12:4-5, 고전`12:27)....그러나, 아가서는 단체적인 몸을 강조하지 않고 개인적인 믿는 이들을 강조한다..... 잊지말라, 단체적인 몸의 생활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과의 개인적인 접촉을 가져야만 하며,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통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면 합당한 몸의 생활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1>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듯이 Q께서 그분의 선민 이스라엘을 사랑하심(사53:5-7, 렘2:2, 3:1, 겔16:8, 호2:19-20) ....이스라엘은 신부, 하나님 자신은 신랑으로서 [혼인 관계]였다.
--*2>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듯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회를 사랑하심(엡5:5, 31-32, 계19:7-9, 21:2, 9) .. 계19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신부인 이기는 자들과 함께 혼인잔치를 가질 것이며, 그분의 혼인날은 (마치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이 있듯이) 천년동안이 될 것임을 본다.....그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인, 모든 그분의 믿는이들은 어린양의 아내가 될 것, 곧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신 그리스도의 단체적인 신부가 될 것이다, 
--*3>믿는이들은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중매되었음(고후11ㅣ2)
.....바울의 설명을 따르면 믿는이들은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중매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모든 믿는이들은 여성이며, 영적으로 우리 모두는 형제나 자매나 동일하게 그리스도께 중매된 처녀들이다.
---------
**아가서의 내용 : 개인적인 믿는이와 그리스도의 애정어린 교통에 대한 점진적인 체험인데, 허드슨 테일러의 표현을 빌린다면 아가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친교에 대한 것이다.
----[아가서 개요]----
**단락들(내재적 영적 의미에 따른 분류)
--*1>[참되고 충만한, 영원한] 만족을 위해 그리스도를 추구하도록 이끌림(1:2-2:7)
--*2>십자가와 하나됨 통해 자아에서 구출되도록 부르심 받음(2:8-3:5)
--*3>부활 안에 있는 새 창조로서 승천 안에 삶(3:6-5:1)
--*4>부활 후에 십자가를 통하여 휘장 안에 살도록 더 강하게 부르심 받음(5:2-6:13)
--*5>주님의 사역에 동참함(7:1-13)
--*6>휴거되기를 소망함(8:1-14)
---------
1.다함 없는, 만족 중의 만족 얻기 위해 유일 무이한 그리스도를 추구하도록 이끌림(1:2-2:7)
---1>그리스도께 매혹되어 달려감(1:2-4상) 
---2>그리스도와의 교통 통해 교회생활 안으로 들어감(1:4하-8) 
---3>주 영에 의해 재창조의 변화 입음(1:9-16상, 2:1-3상) 
---4>그리스도 안에서 안식-누림 인해 만족함(1:16하-17, 3:3하-7)
2.십자가와 하나됨 통해 자아에서 벗어나도록 부름 받음(2:8-3"5)
---1>구주와의 교통 통해 그분의 부활 능력으로(2:8-9) 
---2>간청 받고 격려 받음(2:14-15) 
---3>십자가와 하나됨 안에 머무르도록 부름 받음(2:14-15) 
---4>연인이 거절하고 실패함(2:16-3:1) 
---5>연인이 깨어나고<자각-각성-회개> 회복됨(3:2-4) 
---6>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구주께서 금령 내리심(3:5)
3.부활 안에 있는 새 창조물로서 승천 안에 살도록 부름 받음(3:6-5:1)
---1>새 창조물(3:6-4:6)  ==1)연인이 그리스도와 완전히 연결됨 통해서(3:6-11) ==2)새 창조물로서 신부인 연인의 아름다움(4:1-5) ==3)더 깊이 구주를 추구하는 연인(4:6) 
---2>승천 안에 살도록 부름 받음(4:7-15) ==1)그분이 친히 부르심(4:7-8) ==2)연인의 무언의 다짐과 응답(4:9) ==3)그분께서 연인을 내밀하게 누리심(4:10-15) 
---3>오직 사랑 안에서 살아감의 생활(4:16-5:1) ==1)신부가 응답함(4:16) ==2)사랑하는 분께서 응답하심(5:1)
4.부활 후 십자가를 통하여 휘장 안에 살도록 더 분명하게 부름 받음(5:2-6:3)
A>부활 후 십자가로 더 분명히 부름 받으나 연인이 실패함(5:2-6:3)
---1>사랑하는 분께서 부르심(5:2) 
---2>연인이 거절함(5:3) 
---3>연인이 문을 엶(5:4-5) 
---4>사랑하는 분께서 숨으심(5:6) 
---5>연인이 상처 입음(5:7) 
---6>연인이 평범한 믿는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함(5:8) 
---7>연인이 첫번째 질문을 받음(5:9) 
---8>사랑하는 분께 대해 연인의 받은 인상, 그 대답 
---9>두번째 받은 질문(6:1) 
---10>답변하는 연인(6:2-3)
B>휘장 안에서의 생활로 들어감(6:4-13)
---1>사랑하는 분께서 칭송함(6:4-10) 
---2>연인이 일함(6:11) 
---3>연인이 전진하고 승리함(6:12-13)
5.연인이 주님의 일에 동참함(7:1-13)
---1>주님의 일에 일꾼으로 장비됨(7:1-9상) ==1)주 영께서 연인의 미덕들을 살펴 보심(7:1-5) ==2)사랑하는 분께서 칭송의 말씀을 덧붙이심(7:6-9상)
---2>연인이 사랑하는 분과 함께 일함(7:9하-13)
6.휴거되기를 소망함(8:1-14)
---1>연인이 자기 육체때문에 탄식함(8:1) 
---2>위의 탄식에서부터의 구원을 소망함은 휴거를 바라는 것임(8:2-4) 
---3>휴거되기전(8:5-14)
-------
-------
'아가(雅歌)'라는 말은  맑다, 바르다, 우아하다, 아름답다, 고상하다 라는 뜻이 있다. 아가(雅歌)를 우리말로 옮기면 '맑고 지순한 사랑의 노래'로도 번역할 수 있다..
일단 참되게 그리스도를 믿는 이마다 겪는 참된 체험인 바, 우리가 그리스도께 매혹되어 그분을 따른 바로 그 때부터 그분은 결코 우리를 거부하지 않으신다. 또한, 일단 그분과의 영적 접촉 통해 참되게 매혹되고 매료되고 황홀한 사랑을 맛본 모든 믿는이들은 누구나 그분의 연인(도드)으로서 그리스도와의 교통 안으로 들어감을 사모하게 되는데, 그 친밀한 교통의 결과로 그녀는 진정한 의미의 생명 공급과 나눔의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감의 자격을 얻게 된다(아 1:4하-8). 그녀가 사랑하는 분은 그분의 연인을 지성소(주님의 내실)인 그녀의 영 안으로 이끌어서 그녀와 교통을 갖게 되는데, 여기에서 언급하는 우리의<그리스도의> 내실은 우리의 영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은 곧 그리스도의 거처이고(딤후 4:22), 그분의 지성소가 되기 때문이다(히 10:19). 그리스도와 교통할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면서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사랑하는 분은 연인이 교회들(양 무리)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며, 또한 주님께서 목양하시는 그분의 교회들(목자들의 천막) 안에서 그녀의 영적인 자녀들(어린 염소들..아직 십자가를 알지 못하고 천연적인 생명들..그러기에는 너무 어려서 아직 양이 되지 못한)을 먹이게 하신다. 비록, 우리는 많은 때 그리스도의 움직이심에 예민하게 마음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놓쳐버리기 일쑤여서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을 알지 못하게 되기도 하며, 그분의 임재를 체험하다가 그분의 부재를 느끼면 얼마나 우리는 비참한 상태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우리가 <아파하고 회개함 통해 돌이켜  떨어진 바로 그곳에서 부터 양떼의 빌자국을 따라> 교회들을 따를 때, 우리는 그분을 찾아내게 됨을 알게 된다. 우리가 교회를 찾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다시 찾게 되고, 그분과의 교통 안에서 그분의 임재를 누리게 되며, 이것이 새 예루살렘에서 묘사된 정금길을 걷는 경험임을 알게 된다. 
---[아가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죽음-부활-승천, 성령으로 오셔서 내주하심 통해 남편이신 그분께 합당한 신부, 어린양의 아내로 영화롭게 하심을 그대로 표상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왕 솔로몬과 시골처녀 술람미는 신분에 있어서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기에, (시골처녀인 술람미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지만), 하기에 술람미 편에서가 아니라 솔로몬 왕이 먼저 자원하여 그녀의 마울로 찾아 가서, 한면으로는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스스로 시골 처녀와 같은, 시골 사람이 되어) 그녀에게 구애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면으로는 그녀를 왕후로 만들어 영화롭게 하엿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로맨스에 대한 예표인 것..
============
2장: 신랑의 초청
##1-7절, 사랑의 교제
[1-2절]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1절은 신부의 말의 계속이라고 본다(NASB, NIV). 신부는 자신을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라고 표현한다. ‘수선화’(카바첼레스 )는 크로커스(crocus)나 사프론(meadow-saffron) 꽃나무(BDB), 혹은 수선화 종류 아스포델(asphodel) 꽃나무(KB)라고 한다. 사프론꽃은 오렌지색 점이 있는 자주색 혹은 흰색 꽃이라고 한다.
사론은 갈멜산 남쪽의 비옥한 목초지역이며 사론의 수선화는 들판에 핀 예쁜 꽃이다. 성도는 들판에 핀 꽃과 같다. 또 골짜기는 보통 눈물과 고난의 세상을 상징한다. 과연 성도는 눈물과 고난이 많은 세상에서 피어난 백합화와 같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다.
2절은 신랑의 말인데, 신랑도 신부를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고 표현한다. 가시나무는 세상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악의 세력을 가리킬 것이다. 교회와 성도들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와 같다. 그러나 가시나무에 찔릴수록 꽃향기는 더욱 주위에 퍼진다.
[3절]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신부는 신랑이 남자들 중에 사과나무같이 독특한 존재라고 고백한다.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독특하시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신 10:17),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다(딤전 6:15).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라고 불리신다(계 17:14).
또 신부는 사과나무 같은 신랑의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다고 말한다. 나무 그늘에 앉는다는 것은 거기에서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 쉰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가 세상의 환난과 핍박을 피할 수 있는 곳이며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주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고(마 11:28), 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다(요 14:27).
또 신부는 그 사과 열매가 입에 달았다고 말한다. 사과는 과일들중 대표적 과일이며 몸에 대단히 좋은 과일이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 사역과 그 은택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구속(救贖) 곧 죄사함을 받았고 (엡 1:7),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롬3:24). 주께서 십자가에서 찢으신 살과 흘리
이전글 : 아1..아가서-하나님의 사랑, 주님 얻음.7가지갈망(열매미친전명기)JC의신부패러다임
다음글 : 아3.분향단.향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