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2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사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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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0장

===희망의 말씀

1.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작은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16.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같이 치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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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40 : 26-31... *26.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27.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피곤한 자에게는 능력[ = 코아흐 power 헬>두나미스]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 오님 오츠마 .trength힘/might세력..헬>이스퀴스]을 더하시나니  [“그는 피곤한 자에게 힘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능력을 더하신다.”(현대인 성경)]  *30.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바후림, 선발된 자]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지속적으로 새 힘을 얻으라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 40:30-31)

피곤한 삶을 사는 것....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 말씀을 읽어도 말씀대로 살지 않으며, 변화하지 않는 삶에 피곤이 있다. 그리고 말씀을 들어도 스스로 말씀을 막으며 인정하지 않는 삶, 바로 그 속에 피곤이 있다. 자신의 생각이 말씀을 앞서 나가며 자신의 경험이 말씀을 압도할 때 그의 삶에는 피곤이 있다.....피곤하신 분이 계십니까? 고통과 근심 속에 낙심 가운데 오신 분? 낙심이란 히브리어로 ‘마사스’(masas)인데 이 단어는 ‘해체시키다, 황폐케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낙심이라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백해무익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도 피곤해 하고, 한숨 쉬고, 탄식하면서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다....이 피곤, 낙심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와 영혼을 황폐케 하고 해체시킬 뿐 아니라 손해만 가져다주는데,. 이 피곤, 염려, 낙심은 사실 외부적인 일보다는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대적자는 다름이 아닌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인생이 넘어지고 자빠지고, 피곤하고 무능해져도, 다시 새 힘을 얻어야 함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얻는 사람들은 이처럼 창공을 나는 독수리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새 힘을 얻고 사는 사람은 환경에 지배받지 않으며, 사람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인생은 초점 맞추기!!.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면 반드시 일어설 수 있다. 인생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새 힘을 얻는다. 여호와를 앙망 하는 삶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삶이다.

이사야 40장의 주제는 한 마디로 ‘새 힘’이다... 내가 새롭게 살려고 애써도 내 마음 가운데 새 힘, 새 능력이 없으면 새로워지지 못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포로생활로 피곤하며 곤비하여 넘어지고 지친 상태에 빠져 있었다(사 40:30).....도저히 일어날 힘이 없는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예루살렘 성전 회복과 귀향의 꿈은 날이 갈수록 무너지고 있었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결과 피곤하고, 곤비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생존의 소망을 완전히 상실했던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전 민족에게 포로에서 해방, 곧 구원이라는 새 힘과 영광의 빛을 선포했다. 그런데 이러한 새 힘은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주신다(사 40:31).

이사야 40장 31절 말씀에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은 히브리어로 ‘웨코예 예호와’인데, 어두운 밤에 광명을 바라보듯이, 하루 종일 노동한 품꾼이 품삯을 바라듯이 참을성 있게 끝까지 하나님을 대망하며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를 앙망하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코웨 예호와” 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여호와의 도우심을 기다리라는 뜻...여기서 여호와의 도우심을 기다린다는 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뜻이다.

>>둘은, 여호와를 전심으로 찾아 의지하라는 뜻...역대하 16장 9절에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 고 했다....하나님의 능력은 아무에게나 주시지 아니하고 전심으로 주를 찾아 의지하는 자에게 주신다는 말이다. 

>>셋은, 여호와께 간구하라는 뜻...마태복음 7장 7절에는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만날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고 했다. 이는 계속적으로 간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새 힘을 ‘얻으리니’는 ‘하라프’로 ‘움돋다, 꿰뚫어 지나가다’라는 뜻으로, 단단하게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연약한 새 순이 올라오듯이, 하나님을 앙망할 때 하나님의 새 힘을 얻어 지속적으로 솟구쳐 오르며 승리하는 것을 말한다. ....지속적으로 새 힘을 얻으려면 

>>첫째, 올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을 앙망하므로 새 힘을 얻을 때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같이 솟구치는 생명력으로 어떤 장애물도 뚫고 올라간다.....‘올라간다’는 히브리어 ‘아라’로, ‘높이 오르다, 들어 올리다’라는 뜻,. 우리 힘으로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곳에 하나님께서 들어 올려 주셔서 올라간다는 의미......그렇다면 올라가는 생활은 어떠한 생활일까?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나 시온 산에 있는 성전을 높은 곳으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그 곳은 크고 높으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요,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출 25:22, 29:42-43, 30:6,36, 레 16:2, 민 17:4).,,,,,,모세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산에 올라갔다(출19:3,20,24, 24:2,9,13). 또한 신약 때 예루살렘 여행을 말할 때는 언제나 ‘올라간다’는 표현을 사용했다(막15:41, 눅2:22, 요5:1, 7:8, 11:55, 행13:31). ‘올라간다’는 것은 에녹같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의미한다(창5:22-24).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민 13:30)”하였으나, 나머지 열 정탐꾼의 악평으로 전 이스라엘 백성은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하고 장막 중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였다(신 1:26-27, 시 106:24-26)....하나님께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신 1:21)”고 끝까지 용기를 주었지만, 말씀을 멸시하고 불신하다가 결국 가나안 땅을 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절되고 말았다(신 2:13-14). 여호수아를 필두로 한 광야 2세대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믿고 가나안 땅에 올라가 전쟁에서 승리하였다(수 7:2, 11:9,12,15)......욥기 39장 27에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라고 기록돼있는데, 여기 ‘공중에 뜨다’는 히브리어 ‘가바’로 ‘솟아오르다, 심히 높이 올라가다’라는 뜻이다. 독수리는 강한 바람이 불면 양 날개를 일직선으로 뻗은 상태로 상승기류를 이용해 여유 있게 날아오른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음으로 은혜 위에 은혜 곧 갑절의 은혜의 날개를 받은 우리도 성령의 바람을 이용해 하늘나라로 높이 올라갈 수 있다(요 1:16).  ...비록 이 땅에서 가난하고 근심거리가 많다 할지라도, 말씀의 계시를 받아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고 오직 하늘 기업에 소망을 두는 자는 그 삶이 미래 지향적인 삶이요, 비전이 차고 넘치는 삶이 된다는 것이다(벧전 5:7, 잠 29:18).

하나님께서는 독수리가 비상할 것처럼 우리도 비상하는 신앙이 되기를 원하신다. 독수리는 강한 바람을 치고 힘 있게 솟아올라간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 충만함에서 오는 힘으로 비상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의 약함이 새 힘을 얻게 하는 동력이 됨을 굳게 믿으라...

힘은 인간 삶을 존재하게하며 향상되게 하고 발전하게 하는 절대적 요인으로,. 힘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신자는 영적인 새 힘을 얻어야  옳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다. 영적 새 힘을 얻으려면 여호와를 앙망해야 한다. ....“새 힘을 얻으리니(renew)” 라고 번역된 말은 실제로 ‘생명을 다시 되찾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넘어져서 죽어가는 나무가 갑자기 변화가 생겨 생명력을 갖게 되는 장면과 같다. 그것은 “죽음” 이 새 생명으로 대체되는 변화의 한 종류이다....또한 힘을 새롭게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내 힘에서 하나님의 힘으로 바꾸는 것이 새 힘을 얻는 것이다.....이사야는 이것을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 일어나는 일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는 그분의 포도원에서 일할 때 새 힘을 얻는 바, 약함은 그분의 신성한 능력으로 대체된다... 그것은 변화의 한 종류이며, 그분께 그대의 약함을 내어드리는 곳에서 약함 대신 그분의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번역된 “새 힘을 얻다(renew)” 라는 단어의 동의어 중 하나가 “대신하다(substitute)” 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교환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우리의 약함은 그분의 힘을 얻기 위한 고정 발판이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인 것이다.

하나님은 약한 자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사 40:29).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하고 그 분의 힘에 붙들릴 때 결코 힘이 고갈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16)...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그분을 위해 그리고 그분과 함께 일할 때 우리는 새 힘을 얻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지속적으로 새 힘을 얻게 되고, 충전되며, 활기를 되찾게 되는 바,  이것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혼란과 도전의 한 가운데서도 신선함과 기쁨의 충만함을 유지하게 하며, 영 안에서 항상 불타고 열렬하며 활기가 넘치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힘에 붙들려야 한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코아흐)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오님 오츠마)을 더하시나니”(사 40:29) = “그는 피곤한 자에게 힘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능력을 더하신다.”(현대인 성경)

‘힘’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코아흐’ 인데 그 뜻은 생기 있는 능력. 새 힘’이라는 것은 인간적인 힘이 기계적인 힘도 아닌, 그것은 하나님의 힘이다.....세상적인 힘은 다 한계가 있다. 물질의 힘도. 권력도 다 때가 되면 쇠하고 소용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은 다함이 없다. 끝이 없다. 그리고 날마다 새롭기 까지 하다.....독수리가 날개 치며 창공을 향해 올라감 같은 새 힘을 공급받게 되고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마칠 때 까지 걸어가도, 달려가도 피곤치 아니할 것이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 18:1)...여기에서 나의 “힘”은 히브리어로 “하자크” 인데 기본어근은 ‘달라붙다’이고 사역동사로 ‘강하게 하다’, ‘치료하다’, ‘돕다’이다. 즉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 달라붙어 하나님께 나로 강하게 하고 치료해 주고,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다. 하나님이 없으면 살 수도 없고, 아무것도 알 수도 없다. 그렇다. 하나님의 힘에 붙들리려면 하나님 만이 나의 힘이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하나님만을 최고로 최상으로 사랑해야 한다. 바로 이렇게 주어지는 새 힘은 피곤치도 곤비치도 넘어지지도 않게 만든다.

>>넷째, 여호와만을 지속적으로 앙망해야 한다.“여호와께 시선과 마음을 고정”해야 합니다. 어떤 폭풍이 치고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할 때(사 40:31), ‘앙망(히브리어: 카와)’은 하루 종일 노동한 품꾼들이 저녁때 주인으로부터 임금을 받을 것을 바라보듯이 참고 기다리는 것이며, ‘얻으리니(히브리어: 하라프)’는 ‘움돋다, 꿰뚫어 지나가다’라는 뜻이다....겨울에 단단하게 얼어붙은 대지를 가장 연약한 새순이 뚫고 올라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얻으면 솟구치는 생명력으로 어떤 장애물도 뚫고 올라온다는 것을 말한다. .....앙망한다는 히브리어가 “코예”인데 이는 “기다리다” “찾다” “바라다”라는 뜻으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는 자,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 하나님으로 만족함을 찾는 것, 하나님의 위로를 찾는 것, 하나님의 능력을 기다리는 것등을 의미한다......‘앙망은 하나님을 향한 흔들림 없는 전적인 신뢰..... 히브리어 “카와”는 ‘기다린다.’ ‘바라본다.’ ‘신뢰한다.’ 라는 세 가지 뜻이 들어 있다. 오늘 본문에는 이 세 가지 의미가 다 들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앙망하라.’ 라는 말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하나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감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라.’ 라는 하나님의 요청과 그 요청에 대한 우리의 신앙 결단의 의미가 들어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은 자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과 같다.

갈멜산에 있던 엘리야가 병거를 타고 앞서 달려가는 아합 왕보다 먼저 이스르엘 평원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 새 힘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왕상 18:46).

두 번째는 아무리 달려도 기력이 바닥나지 않는 모습과 같다.

120년을 살았던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눈이 흐려지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이 새 힘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다.

세 번째는 아무리 많이 걸어도 피곤하지 않는 모습과 같다.

사도바울(21,600km)이 2만km 이상이나 되는 거리를, 요한 웨슬리(25만 마일)도 4만km 이상이나 되는 거리를 다니면서 전도하였지만, 이들이 결코 피곤함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에게도 이 새 힘을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새 힘을 받는다면, 결코 피곤함이 없는 사역과 신앙생활과 인생이 될 것이다....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새 힘이 주어지는 법이다. 바로 그 새 힘이 우리를 지치지 않게 하고 결코 넘어지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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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2: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과 눅 10:27[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에서 ‘뜻’으로 번역된 디아노이아(διάνοια)의 원래의 뜻은 ‘지각력’이다. 디아노이아는 ‘~를 통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디아(διά)와 ‘지식’ 또는 ‘지각’이라는 뜻의 명사 누스(νούς)가 합하여 이루어진 말로써 ‘뜻’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력’을 의미한다. 우리말로 ‘뜻’이라고 하면 ‘마음’이라는 말과 비슷하여 마 22:37의 번역 역시 의미 중첩에 지나지 않는 말이 되고 말기 때문에 ‘뜻’이라고 하기 보다는 ‘지각’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호 4:6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라고 하면서 아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쳤듯이, 주님 역시 모든 지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알아야만 한다고 강조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여 신 6:5의 말씀을 다시 번역해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할 뿐 아니라 네 생명을 바치기까지 너의 모든 것을 가지고 온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고 할 수 있으며, 마 2:37의 말씀은 다음처럼 번역할 수 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너의 모든 지식과 지각을 사용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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