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구속사적 관점에서 연결되는 율법과 복음의 이해> 1. 율법과 복음의 본질 율법(律法)이란 문자 그대로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인지 아니면 범죄의 대가는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규정한 것이며, 복음(福音)이란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요구되는 모든 것을 대신 치러 주셨다는 좋은 소식이다.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선포의 근간(강령)이 되는 것은 오직 사랑-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다!!! 이것을 이루는 것을 <율법을 다 지켰다>고 표현한다. 많은 사람들이 율법하면 구약의 모세 율법만 생각한다. 반대로 복음하면 신약의 복음만 생각한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엄밀하게는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과 우리의 양심에 새기신 법에서부터 구약 율법 곧 모세 율법 그리고 신약의 산상수훈의 교훈 등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 규범으로 그리고 선악의 기준으로 주신 모든 법을 다 포함한다. 또한 복음이라 할 때에는 신약의 복음뿐 아니라 예수의 구원과 관련된 구약의 모든 내용, 즉 에덴 동산에서의 여자의 후손 언약(창 3:15) 이후 각종 언약의 내용들, 나아가 예수와 관련된 선지자들의 모든 예언 선포도 다 복음일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 구속의 역사 전개를 위한 경륜(Dispensation)의 방법상 예수께서 오시기 이전의 시대에는 예수께서 오실 것에 대한 옛 언약(구약, Old testament)과 (믿음의 은혜로가 아니라, 지켜냄으로 얻는)구원의 객관적 조건을 제시하는 율법을 주로 강조하셨고, 예수께서 오신 이후의 시대에는 예수께서 천국에서의 최종 구원을 내용으로 새로 맺어주신 새 언약(신약, New testament)과 이미 예수께서 구원의 조건에 필요한 죄값을 우리를 위해 치르셨음을 선포하는 복음을 주로 강조하셨다. 그리하여 앞에서 말한대로 율법하면 일반적으로 모세 율법과 그와 관련된 구약 법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되게 되었다. 또 구약 시대는 율법의 시대요 신약 시대는 복음의 시대라는 통념(通念)이 있게 되었다. 또한 논리적으로도 구원 사역에 대한 선포인 복음이 있기 전에 왜 구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규명이 요구되는 바 율법이 복음보다 먼저 제시될 필요도 있었다. 그리하여 점진성을 가진 계시의 속성상 구약 시대에는 율법이 보다 강조되고 신약 시대에는 복음이 강조된 이유로 이상의 통념이 통용되어 성경에서도 이런 통념이 자연스러이 사용되게 되었다. 따라서 예를 들어 율법이라 할 때에는 대부분의 경우 앞서의 통념대로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으나 때로는 모세 율법이나 여타 관련 구약 율법들 만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를 율법 전체를 다 의미하는 것인지를 성경 각 문맥에서 명확히 구분할 필요도 있다 (신 27:8; 요 1;17; 갈 3;10; 약 2:12) 2. 율법과 복음의 관계 구약과 신약은 예수를 중심으로 전후로 나뉘어지고 그 강조점도 다르나 예수 안에서 하나로 통일된다. 그 두 언약과 관련되어 즉 그 두 언약의 내용인 동시에 조건으로서 각각 따로 강조되며 계시된 율법과 복음도 그 역할은 다를지라도 인간 구원이란 대목적 하에서 서로 연결된 계시들이다. 먼저 율법은 인간에게 선과 악의 기준을 제시하여 인간이 왜 죄인인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죄의 대가인 형벌을 규정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인 바 자신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절대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구원받을 수 없음을, 그리고 형벌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있는 그대로 제시한다. 율법은 이것으로만 자기의 역할을 다하는 제한적 속성을 갖고 있다. (율법자체만으로는 즉, 은혜의 성령의 도움 없이 인간 혼자서는 율법의 근본 목적, 곧 긍정적인 측면에서<구원, 곧 거룩함의 회복을 통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분과의 교제와 그 영광에의 참여>를 이룰 수 없으며, 동시에 부정적 측면인 죄벌이 강조될 수 밖에 없는 맹점이 있다. 이것을 마귀는 극대화시켜서 자연인과 중생하지 못한 신자들을 파괴하는 자신의 무기로 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구약안에서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란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믿는 아브라함을 통해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굳게 붙들며 그분과 그분의 신실하신 약속을 그대로 믿고 바라봄으로 담대히 직접 믿음을 통해 성령께서 도우시는 사랑의 친밀한 관계 안으로 들어섬을 통해 구원받는 (회복의)길을 제시해 주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호렙산에서 그 거룩하게 하는 사랑의 불이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거부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사람이 혼자서는 결코 이루지 못할, 사람이 마땅히 지키면 구원받을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 근간이 되는 십계명과 율례와 법도들을 주셔서 죄와 악의 기준을 제시하셨고 그 안에서 그 요구를 온전히 이루실 메시아를 대망하게 하신 것이다.) 반면 복음은 죄인에 대한 정죄에서 머무는 율법에서 더 나아가 예수께서 인간의 죄값을 대신 치르시어 죄인을 구원했음을 선포한다. 구약과 신약이 예수를 전후로 나뉘었으나 기실은 한 분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란 통일성이 있었으며 서로 단절된 관계가 아니라 그 질과 양면에서 점진적 발전 관계에 있었듯이 구약과 신약의 조건 또는 내용의 형식으로 계시된 율법과 복음도 그 역할은 서로 다르나 한 분 하나님(주체)의 구원 계시(목적)라는 통일성이 있으며 또한 점진적 발전 관계에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이처럼 전항에서 고찰하였듯이 하나님의 경륜상 구약과 신약 시대에 각각 율법과 복음이 따로 강조되었으나 여기 보듯이 양자는 본질적으로 통일성이 있는 점진적 발전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구약 시대를 불문하고 택한 자는 율법과 복음을 둘 다 주신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예수 복음 사역의 결과인 구속 은총의 적용을 받아 구원을 받는다. 또한 불택자는 율법과 복음을 둘 다 주신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그 역시 시대를 불문하고 율법의 적용을 받아 심판을 받게 된다. (합 2:4; 마 5:17; 롬 2:12-16; 4:11) 3. 율법에 대한 오해의 시정 이상에서 우리는 율법과 복음의 실체 및 그 관계에 대하여 연구해 보았다. 그런데 이상에서 논한 대로 율법은 그 목적은 인간 구원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이면서도 그 역할이 인간의 죄에 대한 지적과 정죄이다. 따라서 목적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율법은 매우 긍정적이며, 역할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매우 부정적으로 보이는 이중성이 있다. 물론 이런 이중성은 표면적으로만 그렇다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율법은 복음과 연결되어 인간 구원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일관된 계시이다. 성경에서 어떤 경우에는 율법에 대하여 절대적 긍정적 측면(마 5:17; 롬 3:31)을 이야기하고 또 때로는 부정적 측면(롬 3:28; 갈 3:21; 5:1; 히 7:19)을 이야기 하는데 이는 상호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자체가 목적에 있어서는 인간 구원으로 긍정적이나 역할에 있어서는 죄의 정죄만 담당하여 부정적인 바 각각 다른 측면에서 율법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히 율법에 관해서는 율법이 갖고 있는 모든 측면을 통시적(通視的)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기 쉽다. 또한 앞서 밝힌 대로 하나님께서는 구속사 전개의 경륜상 구약 시대에는 율법을 더욱 강조하였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구약 시대에 예수가 태어나기 위해서 준비된 민족이요, 또한 새 언약이 주어지기 전에 옛 언약을 인류의 대표로서 받았던 민족이었다. 이처럼 특별히 선택된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선민 지위나 율법이 모두 구약 구속사 경륜의 한 부분일 뿐이요, 점진적으로 계시된 신구약 전체계시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였다. 아니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속사의 시대와 모든 경륜이 예수를 중심으로 구약에서 신약으로 발전 변화하였음을 시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선민 지위를 고수하는 데 집착하여 구약 시대에 주로 강조된 율법만이 계시의 전부이며, 또 이를 지킴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는 유대교적 오류를 고집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현대 크리스챤에게는 별반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구약과 신약이 교차하던 초대교회 시대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었다. 어쨌든 이처럼 율법에 대한 통시적 이해를 갖지 않을 때에는 여러가지로 율법에 대한 오해에 빠지기쉽다. 이제 이를 두 유형으로 요약하고 율법 자체의 실체 및 구속사적 관점에서 복음과 연결시켜 볼 때의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4. 오해와 해답 1> 율법만이 하나님의 계시이며 인간은 이를 지켜서 구원얻을 수 있다. ---율법도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불가능하다. 오직 죄 없으신 예수님만 지킬 수 있었다. ----율법도 하나님의 계시인 것은 분명하나 그것은 오직 복음과 함께 연합해야만 온전할 수 있다. 또한 율법은 그 자체를 지켜서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음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롬 5:13-20; 갈 2:16-21; 히 7:19-28) 2> 율법은 악한 것이며 더욱이 신약 시대의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더 이상 필요없다. ----율법의 역할이 인간의 정죄인 것은 것은 분명하나 그것은 인간에게 구원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 구원의 목적에 기여하는 것이다. 또한 율법이 악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범하는 인간이 악한 것이다(롬 7:6-16) 그리고 신약 시대에 이르러 복음이 최종 제시되었다 하여도 율법은 여전히 선한 행위의 기준으로 요청된다.(롬 7:7) 특히 대속주님이신 예수님을 모르거나 거부하여 믿지않는 불신자의 경우 더욱 그러하며 그들에게는 백보좌심판의 잣대로 쓰이게 될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도 율법을 지켜서 구원얻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더욱 감사하여 그 율법의 규정자체보다 한걸음 더 깊이 나아가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근본 의도-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를, 겸손과 믿음으로 보혈을 의지하고 성령께 순종함의 은혜로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지켜내도록 인도하신다.(마 22:40; 약 2:12) -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신자에게 있어서 더 나아가 곧,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롬13:8-10) 한편 복음이 온전히 주어지지 않았던 구약 시대에도 택한 자는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 들어가 교제하고 그 영광을 누림의)구원을 얻었듯이, 율법 자체도 신약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결코 폐지된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악인들에 대한 심판의 정당한 근거로서 존속된다.(롬 4:11) 다만 성도에게 있어서는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성도들이 육신의 노력으로 율법을 다 지켜서가 아니라 예수님안에 있는 성도들을 대표하고 대신하여 죄없으신 *예수님이 율법을 온전히 지켜내셨고, 율법의 요구를(주어진 선악지식인 율법의 자구대로 하나라도 어기면 율법 전체를 어긴 것이요, 그것은 죄이며 죄의 삯은 오직 사망임) *십자가죽음을 통해 다 채워 주셔서 율법을 세운 그 목적을 완성하셨고 *게다가 또한, 성도들은 십자가보혈과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기에 하나님의 왕가의 가족법인 사랑과 은혜의 성령의 법을 적용받고(롬8:1)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의 율법의 정죄와 형벌구조에서 제외되었을 뿐이요, (마 5:17) *더 나아가 내주하시는 성령의 끊임없는 깨우침과 가르침, 도우심의 은혜로 모든 율법의 근본정신-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삶속에서 이루어 가는 신약의 성도들 역시, 구원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을 통해서만 이루도록 하셨다는 것을 절대 잊으면 안된다. 그리고 오히려 불완전한 기존 율법의 외적 의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은혜와 사랑과 생명의 새 언약(또는 내적 의를 더 강조하는 더 엄격하면서도 완전케 된 새언약의 율법은) 아래에서 사는 신약의 성도들은, 선악지식 곧, 율법의 글자에 얽매어 지켜내는 것으로가 아니라, 정죄함을 없이 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에서, 내주하셔서 인도하시며 죄를 일깨우며 참사랑의 길을 인도하며 가르쳐주시는 성령께 성도들이 겸손과 믿음으로 순종하고 보혈을 의지하여 살아감으로써(곧, 생명지식을 통하여)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은혜로 지켜냄으로써만 가능하도록 하셨다!!! # 또한 초대교회 당시에 성경이란 오직 구약뿐이었음을 잊지 말자, 회심한 사도바울은 아라비아광야에 3년간 머물러 있으면서 구약속에 일관성있게 계시되어온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고, 그로써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을 전도할 수 있었다. 실은 사도바울이 이야기 하는, 성장한 사람들이 먹어야 할 바 굳은 음식이란 예언서와 율법의 말씀들일 것이다.. 이처럼 신약의 관점에서 구약을 읽고 묵상하며 예수님을 발견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발견해내는 것이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현대신학에서의 하나님의 고난 > 1) 기타모리Kazo Kitamori : 하나님 아픔의 베이스(*낙관론적인 하나님 사랑의 소프라노의 일원성에 대한 표현으로서) -- K. Kitamori는 20세기 후반의 하나님의 고난에 대한 최초의 옹호자로 간주된다. 그의 하나님 아픔의 신학은 독일신학계에 소개된 이후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되었다. 독일신학계에서 신학적 위치를 굳히는데,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그의 신학은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신성은 고난받을 수 없다는 기독교 전통의 신학적 공리를 부인했다는 날카로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그의 신학은 하나님개념의 혁명으로 일으킨 현대 십자가신학의 전형으로 간주되기도 했다.그의 하나님 이해의 핵심은 하나님은 자기아픔을 통해서 인간의 아픔을 해결해 주신다는 사실이며 그의 이런 신학적 착상은 <(예레미야 31:20)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 즉>과 루터에게서, 특히 그의 숨어 계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낯선 사역과 본래적 사역사상에서 신학적 통찰을 발견했다. 서구신학은 바르트와 부룬너의 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낙관주의적 신관, 즉 하나님 사랑의 일원론에 근거하고 있었다. F. E. D. Schleiermacher , A. Ritschl ,W. Hermann, A. Harnack과 같은 신학자들이 소리 높였던 하나님 사랑의 소프라노를 비판하고, 그는 하나님 아픔의 베이스를 듣는다. -- 하나님 사랑의 소프라노신학은 하나님 아픔의중보자가 상실된, '중보없는 하나님 사랑'을 노래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하나님은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죄인들을 사랑해야 하는 아픔과 실제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어 사람이 되게 하시고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 아픔, 즉 구원은 하나님의 아픔을 통해서만이 성취된다는 사실을 그는 신학적으로 깊이 설명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고난 당할 때 하나님은 아픔을 느낀다. 인간의 아픔이 곧 그의 아픔이다. 하나님은 아픔을 인간을 '위하여' 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당하신다. 하나님의 아픔은 모든 인간의 아픔이 수용되는 '큰 아픔'이다. 인간의 외곽지대의 신음 속에서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아픔의 베이스를 듣지 못하고, 하나님 사랑의 소프라노에만 몰입한다면, 인간현실을 전체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그에 의하면, 고난신학은 고난의 실존을 매개로 고난의 교회에 봉사하는 신학이다. -- 그에 의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형벌)에 대한 인식이 곧 지혜의 시작이며 하나님의 아픔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을 사랑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사랑의 두 요소 사이에서 제 3의 것이 발생했는데, 곧 하나님의 아픔이다. 하나님아픔의 신학은 양극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한 극은 아픔이 하나님의 본질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픔은 결코 인간의 불행에 대한 동정의 아픔은 아니다. 또 하나의 극은 인간의 고난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라는 그의 확신이다. 그러나 인간의 고난이, 반드시 저주하는 하나님에 의해 형벌로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아픔의 상징(象徵)으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는 십자가를 단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의 표현정도로 격하시키는 근대의 자유주의 신학을 사랑의 일원론으로 명명하고 비판한다.그에 의하면 십자가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가슴 안에 (모략으로서 이미)존재한다. 구원자로서의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죽게 허용해야 하는 아픔을 경험한다. -- 이런 하나님의 아픔의 소식이 인간의 파열된 아픔을 치유한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아픔의 소식은 기쁨의 소식이다. 하나님의 아픔은 그의 사랑과 진노 속에 발생하는 제 3의 것 곧 사랑이 진노를 정복하면서 발생하는 사랑과 진노의 종합이다. 하나님의 아픔의 발생케 하는 것은 인간의 죄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진노이다. 하나님의 아픔은 그의 진노를 삼키는 행위이다. 또 그의 신학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고난 중의 그들과 함께 고난받는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인간의 고난은 결코 하나님의 동정을 자극하는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본래 하나님 뜻 안에서 도달해야 마땅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성품에 도달하지 못하였음의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을 추구하도록 고양하고 격려하는 )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난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반역)죄에 대한 형벌인가 ? 그렇다. 그러나 인간의 고난은 하나님이 인간구원 행위 속에서 자기자신에게 가하신 자기고난의 상징, 즉 유비라는 좀 색다른 사실에 의해서만 그렇다고 한다. 즉 초월적인 하나님고난은 (만물-모든 피조물의 신음한다는 차원에서의)세계고난 속에 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내재적인 고난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고난의 단서가 된다. -- Kitamori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아픔은 결코 여러 교리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하나님의 아픔은 그의 전(全)교의학 체계의 프로레고메나이다. 그에 의하면 교의학은 하나님의 아픔을 가장 중요한 관심으로 삼는 신학적 사고형식이다. 신학은 파토스( Pathos,곧 하나님의 아픔)에 관심 갖는 로고스이며, 파토스를 보존하는 것이 로고스의 과제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픔의 파토스를 로고스신학 속에서 취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만약 파토스를 로고스적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성공은 실제상으로는 실패다. 왜냐하면 구원은 파토스의 문제이긴 하지만, 구원은 전달되어져야 하며 이 전달은 로고스의 매개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파토스의 타오르는 불길은 로고스에 의해 통제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아픔의 신학은 결코 교회에서 인기 있는 신학은 될 수 없으며, 항상 세상의 거부에 직면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존재의 유추를 아픔의 유추로 보충한다.로마 카톨릭교회의 존재의 유추가 창조질서에 근거한 데 반하여 아픔의 유추는 구속질서에 근거한다. 즉 하나님 지식이 주어지는 행위는 다름 아닌 인간의 반역을 극복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아픔의 행위이다. 이런 그의 아픔의 유추는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매우 혁명적 의미를 지닌다. -- 이는 칼 바르트와 같이 하나님 존재 안의 삼위일체성을 자기관계성으로 규정한 내재적 삼위일체론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에게 특히 그러하다. 즉, 만약 하나님의 본질이 아픔이라면, 내재적 삼위일체론은 중요한 측면을 상실하고 있다: 성부 하나님은 단순히 성자 그리스도를 출생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죽게 하시기도 하는 것이다. Kitamori에 의하면, 성부 하나님의 성자의 출생행위는 단지 성자의 희생행위의 이차적인 배경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가 주장하는 현대 삼위일체론의 과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님의 내적 본질 속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또 완전한 기독론은 단일한 본성 안의 두 차원, 즉 그리스도의 아픔으로서의 하나님의 외곽성(outsideness of God)과 하나님 자신의 아픔으로서의 하나님의 내면성(insideness of God)을 모두 보존해야만 한다. 삼위일체론적이고 기독론적인 이같은 배경 속에서만, 왜 그가 성부수난설에 동의하지 않고 양자는 구별되어야 하는지가 이해될 수 있다. 성부수난설은 성부 하나님자신이 고난을 당했다는 그런 단순한 주장만은 아니다. 성부수난설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그리스도 사이의 일체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 양태론적 군주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두 가지 근거로 성부수난설을 거부한다. 첫째는 통상적인 삼위일체론적 이유로,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서도 하나님은 無가 된 것은 아니었다. 둘째, 하나님의 아픔은 하나님이 자신 밖으로 나오신다는 사실에 근거하지만, 성부수난설은 양태론적 군주론적 성격을 지니기에, 하나님 안에 일체의 구분이 없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외곽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아픔을 논한 후, 그의 신학의 실천적 의미를 제시한다. 하나님의 고난은 기독신자의 고난을 요구한다. -- 기독교회는 (*자신의 회복시켜주신 축복 곧, 평강과 기쁨,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회복시키시는 축복과 사랑의 증인으로, 또한) 자신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고난에 대한 지속적인 증인으로 부름 받았다. 기독교회는 하나님 고난의 가장 명료한 상징이다. 교회는 고난과 아픔의 시대에 항상 존재하며 교회의 윤리는 (축복의 윤리 못지 않게)고난의 윤리가 되어야 한다.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대속적인 특성을 반드시 가진) 고난받는 사랑(=*아니 오히려, 인자와 자비와 긍휼, 은혜가 모두 포함된, 나눔과 고난에의 참여가 포함된 아가페사랑)이 되어야 한다. 기독신자 각 개인도 (예수님처럼)고난받는 종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았다. 사도 바울은 이런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via dolorosa)>을 따르도록 부름 받은 고난의 제자직에 대한 원형이다. 기쁨과 풍요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아픔을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헬라세계뿐 아니라 물질적 번영의 20세기에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허락받았다. (이를 절대로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기쁨과 풍요의 시대 속에서라도 아픔과 고난의 삶을 살도록 (*믿는 이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과 깨달음의 분량에 따라, 특별히) 부름 받았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순종, 가난, 혹한 노동, 금식, 독신의 수도원적 생활을 부흥시키기를 원했으며 이를 통해 풍요의 시대에서 하나님아픔의 증인으로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가 제창한 수도원적인 삶은 결코 Karl Holl이 비판한 중세 시대의 경건한 게임이 아니라, 하나님아픔의 자발적이고도 능동적인 상징화였다. 2) 몰트만Jurgen Moltmann : 십자가에 딜리신 하나님 -- 20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하나님 고난의 신학자라는 J. Moltmann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십자가 신학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기독교 신학의 원천과 척도로서의 십자가에서 죽은 자 2. 하나님의 죽음으로서의 예수의 죽음 3.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 자신의 분열인가 ? ...십자가상의 예수의 죽음에서 하나님은 자신과 투쟁했고, 자신에 대해 울부짖었으며, 자신에 대해 죽었다. 4. 하나님은 고난받을 수 있다...이 사실은 구약 선지자들의 감정적 신학을 의미한다. 5. 삼위일체적 십자가 신학: 즉 삼위일체론의 가장 간명한 표현은 하나님의 십자가 행동이다. 6. 사회적 윤리적 차원에서 십자가신학은 신자들만의 협소한 Ghetto를 지양하고 불신자와 신앙반대자들과의 교제를 가능하게 한다. ...Moltmann은 십자가 신학의 윤리를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 도입하여 정치적 십자가신학을 전개했다. 삼위일체론을 철저히 역사화 하여 몰트만의 십자가 중심적 삼위일체론을 전개했다. 십자가의 죽음은 그에 의하면 하나님 자신 속의 양분화이다. 십자가 죽음의 균열은 하나님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신인적 인격에게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았다. 하나님자신이 하나님을 추방했다. 그에 의하면 고대의 무감정적 신학대신에 하나님의 열정과 고난을 말하는 감정적 신학이 등장해야 한다. -- 몰트만에 의하면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그리스도를 부활시켜 세계의 희망이 되시게 한 것이 바로 교회가 강자와의 야합을 종식하고 억눌린 자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근거가 된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 신학의 총체적 국면은 십자가라는 집합점으로 수렴되며 십자가라는 아르키메데스점에 의해 재해석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기독교 신학의 근거요 비판이다. 십자가는 삼위일체론의 내용원리이며, 삼위일체론은 십자가신학의 형식원리이다. 십자가 신학적 구성과 연구는 삼위일체론의 재구성으로 연결되었다. 몰트만은 그의 튀빙겐 대학에서의 '하나님과 부활'에 대한 취임강의에서 신정론의 맥락에서 다음의 핵심적 질문을 명확하게 제기했다 : 예수의 죽음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있으며 하나님은 누구인가 ? 그에 의하면, 예수의 고난에서 하나님은 고난받는다. 십자가상에서 신정론에 위배되는 부성적이고 차가운 통치세력으로서의 옛 하나님象은 변화된다.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은 권능과 통치를 스스로 배제하시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비하시켰다. -- 오직 <십자가에서 죽은 자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 즉, 천상적 당신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은 자 속에 계시된 지상적이고 인간적인 하나님이라는 전제아래서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신정론의 질문에 대해 합법적이고 미래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신정론질문의 피고인이 아니라 대답 자체가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기정당화로서의 그리스도적 신정론이 된다. 이 십자가에서 죽은 자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재의 역설적 변증법은 자기폐쇄적 역설이 아니라 열려진 변증법이다. 우리가 부활을 통해 권능 있게 증거하시는 하나님을 모든 사람을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신을 연루시킨 하나님을 통해 정의할 때 우리는 미래개방성을 열 수 있다. 몰트만의 십자가신학은 종종 아우슈비츠이후의 기독론으로 명명된다. -- 1972년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기독교 희망의 신학적 근거는 십자가에 처형당한 그리스도의 부활임을 주장한다. 그는 신학, 교회,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성공과 번영이 찬양되고 고난에 대해 무관심한 상황을 비판하고, 그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는 실패와 모욕으로 고난 당하다 신음 속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놓여 있음을 부각시켰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그리스도를 부활시켜 세계의 희망이 되게 한 사실이 교회가 강자의 번영과 성공욕에 야합할 것이 아니라, 억눌린 자의 고난에 동참하여 희망을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신학의 전(全)국면이 십자가에 수렴되며 이 십자가라는 수렴점에 의해 신학의 전면이 해석된다. -- 즉 십자가는 기독교 신학의 근거이자 비판이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체험을 유일하고도 본질적인 하나님신앙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는 루터가 1518년 Heidelberger Disputation에서 주창한 십자가 신학전통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죽음을 해석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에 대한 구속론적 의미뿐만 지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기 자신에 대한 삼위일체론적 의미, 즉 골고다 언덕에서의 성자의 죽음과 불가분 연합되어 있고, 그 죽음 속에서만이 계시된 깊은 하나님고난을 의미한다. 그가 발견한 고난받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불멸성과 연결되어 고백된 하나님의 고난불가능성에 대한 서구신학적 전통에 대한 부정이요 비판이었다. --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역사 속에 참여하셨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하나님의 자기계시로 이해하는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하나님의 신성이 고난받을 수 없다고 믿을 수 있는가 ?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가 고난받도록 한 것인가 ? 아니면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안에서 고난받으셨는가 ? 전술한 바와 같이 한스 큉의 하나님의 고난불가능성 공리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같이 몰트만도, 헬라 철학적 신개념인 神의 무감정공리의 영향을 받은 전통적 기독교 신론은 고난 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고난을 말해야 하기에, 내적 모순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만족스럽게 해소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에 진단에 의하면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고난의 역사보다는 하나님의 무감정 공리가 더 부각되어 왔다. 하나님은 고난받을 수 없기에 그리스도의 고난은 고작해야 나사렛 출신의 착한 한 청년의 인간적인 고난과 비극정도로 간주된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서만이 하나님을 인식하며 발견한다. -- 그리스도의 고난은 고난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고난이 아니라, 고난받는 하나님의 고난이다. 그러면 기독교 신앙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하나님의 고난에 대해서도 분명히 언급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초기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의 무감정 공리를 고집하고 있었는가 ? 몰트만은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의 고난불가능성이 부패와 죽음과 고난에 종속되는 피조물들과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구분시켜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구원은 곧 不死性과 無苦難性의 상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스 큉과 유사한 표현으로 몰트만은 하나님의 고난을 주장한다. 즉 하나님의 본질적인 고난불가능성과 숙명적인 고난성, 양자를 넘어 제 3의 고난형태, 즉 능동적인 고난, 열정적인 사랑의 고난, 세계고난에 대한 자발적인 개방이요, (존재의 결핍에 근거한 고난이 아니라), 존재의 충만으로부터 흘러나온 사랑의 고난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고난이다(Caritas est passio). -- 하나님의 사랑의 고난은 자신의 외적인 구원행동뿐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삼위일체적 교제에도 관계된다. 삼위일체외적 고난과 삼위일체내적 고난은 상호적으로 상응하고 일치한다. 몰트만은 하나님의 고난을 오직 삼위일체적으로만 언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종교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같은 유일신론은 결코 하나님의 고난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몰트만은 하나님고난(Theopathie)에 대한 논의를 하나님의 고난불가능성이 지배적이었던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하나님이해의 큰 흐름에서 소외된 채 이어져 온 하나님고난의 여러 신학적 흐름을 흡수함으로 시작하고 있다. 성경적이라기보다는 헬라철학적인 하나님의 무감정공리의 비판적 극복시도 과정에서, 신학적 동지들을 만났다. -- 천진난만하고 무죄한 어린아이의 죽음과 고난은 천상에 좌정해 있는 전능하고 선한 신(神)에 향한 신앙의 정당한 부정이다. 죄 없는 자들을 고난받게 허용하는 神은 神이라 불릴 자격도 없다. 전능하고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순진한 유아기적인 신뢰는 무죄한 자들의 고난으로 파괴된다. (이유를 모른 채 징계를 받고 있는 사람의 고통과 무관한, 선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조건 옳고 믿을 만 하신가를 묻는)신정론에 대한 답변을 애써 제시해 보려는 욥의 친구들의 신학은 부정된다.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분 외에 누가 욥의 신학적 친구가 될 수 있는가 ? > 현대의 반항-무신론은 말한다. <인간은 세계의 악을 부정할 수는 있지만, 세계의 아픔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의 이성은 神은 증명할 수 있지만, 인간의 느낌은 神은 시인할 수 없다.> 세계고난은 구원된 세계에 대한 환상으로 사로잡힌 모든 유신론의 파선을 초래케 하는 무신론의 암초이다. 고난이라는 암초에 걸려 유신론은 전능하고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포기한다. 그러나 유신론도 무신론도 신정론질문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변을 제공하지 못한다. 신정론질문은 결코 사변적 질문이 아니라 비판적 질문이다. 즉 신정론질문은 포괄적인 '종말론적 질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는 종말론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복음을 믿는 자들은 결코 신정론 질문을 회피하려 하지 않으며, 깊은 신앙의 경지로 나아가면 갈수록 더, (하나님께서 더불어 겪고 계신) 세계의 아픔(*만물의 신음-실은, 인간의 원죄로 인한 것이다)에 대해서 민감하고도 진지하게 반응하며 더욱 더 하나님과 그분의 (영적 실재로서 이미 하늘에 마련하신, 이 땅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의)새로운 창조세계에 대해 열망한다. 인간의 고난에 대한 다양한 설명시도가 존재해 왔다. 교부들은 랍비-바울 전통을 따라서, 고난과 죽음은 인간의 죄에 대한 형벌로 이해했다. (*실은 원죄와 죄, 또한 그로 인한 영향들이 원인이다) 죄로부터의 고난과 죽음의 이런 인과적 유추에 대해 물론 여러사람들이 비판했다. 교부들은 죽음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창조시에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비판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결코 단순히 죄의 결과 혹은 하나님의 형벌이 아니다. 몰트만에 의하면, 물론 구약성경이 특히 강조하듯이, 고난과 인간의 죄 사이에는 인과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죄와 고난 사이의 도덕적, 법제적인 연관은 실제에 있어서는 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이 세계 속에는 일견,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1)죄 없는 자의 고난 2)경제적 불평등 구조아래서 발생하는 가난한 자의 고난 3) 죄 없는 유아들의 고난이 실제로 현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실제로는 원죄와 (자신의 죄든지 타인의 죄든지 불문하고) 죄, 그 영향으로 말미암는, 일견 사람이 보기에는 무죄한 자들의 이 고난과 세계의 아픔(피조물의 신음) 모두를 성삼위 하나님이 손수 짊어지시고 애통해 하며 아파하신다.!!!) <다중지능 테스트> 각 문항을 읽고 해당 번호를 맨 아래 답안지에 표시하세요.(1. 전혀 그렇지 않다 / 2. 별로 그렇지 않다 / 3. 보통이다 / 4. 대체로 그렇다 / 5. 매우 그렇다) 1. 취미 생활로 악기 연주나 음악 감상을 즐긴다. 2. 운동 경기를 보면 운동선수들의 장단점을 잘 집어낸다. 3. 어떤 일이든 실험하고 검증하는 것을 좋아한다. 4. 손으로 물건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5. 다른 사람보다 어휘력이 풍부한 편이다. 6. 친구나 가족들의 고민거리를 들어 주거나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다. 7.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생활을 계획하는 것을 좋아한다. 8. 자동차에 관심이 많고, 각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고 있다. 9. 악보를 보면 그 곡의 멜로디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10. 평소에 몸을 움직이며 활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11. 학교 다닐 때 수학이나 과학과목을 좋아했다. 12. 어림짐작으로도 길이나 넓이를 비교적 잘 알아맞힌다. 13. 글이나 문서를 읽을 때 문법적으로 어색한 문장을 잘 찾아낸다. 14. 직장 내 성희롱이 왜 발생하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알고 있다. 15. 나의 건강 상태나 기분, 컨디션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16. 옷이나 가방을 보면 어떤 브랜드인지 바로 알아맞힐 수 있다. 17. 다른 사람의 연주나 노래를 들으면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알 수 있다. 18. 어떤 운동이라도 한두 번 해보면 잘 할 수 있다. 19. 다른 사람의 말 속에서 비논리적인 점을 잘 찾아낸다. 20.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고 평가를 잘 할 수 있다. 21. 나의 어렸을 때 꿈은 작가나 아나운서였다. 22. 다른 사람들로부터 다정다감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23. 내 생각이나 감정을 상황에 맞게 잘 통제하고 조절한다. 24. 동물이나 식물에 관하여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25. 다른 사람과 노래할 때 화음을 잘 넣는다. 26. 운동을 잘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27. 회사 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와 방법을 잘 알고 있다. 28. 내 방이나 사무실을 꾸밀때, 어떤 재료를 사용해야 하고 어떻게 배치해야 할 지 잘 알아낸다. 29. 글을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쓴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30. 직장 동료나 상사의 기분을 잘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처한다. 31. 평소에 내 능력이나 재능을 계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잇다. 32. 동물이나 식물을 좋아하고 잘 돌본다. 33. 악기를 연주할 때 곡의 음정, 리듬, 빠르기, 분위기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34. 뜨개질이나 조각, 조립과 같이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한 활동을 잘할 수 있다. 35. 물건의 가격이나 은행 이자 등을 잘 계산한다. 36.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를 잘한다고 칭찬 받은 적이 있다. 37. 책이나 신문의 사설을 읽을 때 그 내용을 잘 이해한다. 38. 가족이나 직장 동료, 상사 등 누구와도 잘 지내는 편이다. 39. 내 일정을 다이어리에 정리하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 노력한다. 40. 나는 현재 동식물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41. 어떤 악기라고 연주법을 비교적 쉽게 배운다. 42. 개그맨이나 탤런트,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잘 흉내 낼 수 있다. 43. 어떤 것을 암기할 때 무작정 외우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이해하여 암기하곤 한다. 44.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때 그림이나 개념 지도를 그려 가며 외운다. 45. 학교 다닐 때 국어 시간이나 글쓰기 시간을 좋아했다. 46. 내가 속한 집단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찾아서 수행한다. 47.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서, 다음에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한다. 48. 동식물이나 특정 사물이 갖는 특징을 분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49. 빈칸을 주고 어떤 곡을 채워 보라고 하면 박자와 전체 곡의 분위기에 맞게 채울 수 있다. 50. 연기나 춤으로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잘 표현할 수 있다. 51. 어떤 문제가 생기면 성급하게 결혼을 내리기보다는 여러 가지로 그 원인을 밝히려고 한다. 52. 고장 난 기계나 물건을 잘 고친다. 53.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의 핵심을 잘 파악한다. 54. 다른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이나 연설을 잘한다. 55. 앞으로 어떻게 성공해야 할지에 대해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56.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많이 알고 있다. A B C D E F G H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평가> 답안의 번호가 1인 경우는 1점, 2는 2점, 3은 3점, 4는 4점, 5는 5점을 준다. 표의 세로 항목별로 점수 합계를 낸다. 세로 항목별로 점수를 다음 공식에 넣어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다. (총점-7)/7*25 = 각 지능의 점수 ## 각각의 세로 항목에 해당하는 지능-- A: 음악지능 B: 신체운동지능 C: 논리수학지능 D: 공간지능 E: 언어지능 F: 인간친화지능 G: 자기성찰지능 H: 자연친화지능 <다른 형태의 다중지능 테스트>-동의하는 것을 체크하여 각 점수를 합산한다. 1. 언어적 지능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나는 낱말게임을 좋아한다. 나는 국어 과목이 재미있다. 나는 사회 과목이 재미있다. 나는 낱말 맞추기나 끝말잇기 등을 좋아한다. 나는 이름, 장소, 날짜 또는 사소한 것을 잘 기억한다. 나는 말 또는 글로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 책에서 봤거나 들은 이야기를 자주 이야기한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단어의 뜻을 쉽게 이해한다. 다른 아이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재미있어 한다. 2. 논리-수학적 지능 나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왜 그럴까?’ 하는 궁금증을 자주 가진다. 나는 재빠르게 계산문제를 암산한다. 나는 수학시간을 좋아한다. 나는 과학시간을 좋아한다. 나는 계산 게임이나 컴퓨터 게임을 좋아한다. 나는 장기, 바둑, 기타 두뇌 개발용 게임이나 퍼즐 등을 좋아한다. 나는 규칙들을 잘 만들거나 쉽게 이해한다.(방학에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실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문제를 해결할 때 단계별로 하나하나씩 체계적으로 풀어나가는 편이다. 나는 물건의 양이 많거나 그룹이 지어져 있을 경우, 그것들을 분류하고 나눔으로써 그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곤 한다. 3. 공간적 지능 나는 그림을 감상하거나 그리기를 좋아한다. 나는 지도를 보고 위치를 잘 알고 길을 찾을 수 있다. 나는 공상이나 상상을 잘 한다. 나는 미술 활동을 좋아한다. 나는 내 생각을 설명할 때 도표나 그림 등을 그려서 설명하곤 한다. 나는 영화, 사진 찍기, 캠코더로 다양한 일들의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조각 그림 맞추기나 미로 찾기 게임 등이 재미있다. 나는 독서를 할 때 글자보다는 그림이 많은 책을 더 좋아한다. 나는 연습장이나 기타 다른 용지에 아무 생각없이 낙서를 끄적거린다. 나는 어떤 물건을 다른 방향에서 봤을 때 어떻게 보일지를 쉽게 머리 속에 그릴 수 있다. 4. 신체-운동적 지능 나는 운동이나 춤추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자주 한다. 나는 새로운 스포츠나 댄스를 쉽게 배우며 실력이 빨리 향상된다. 나는 다른 사람의 몸짓이나 특징을 잘 흉내 낸다. 나는 혼자 힘으로 무엇을 조립하거나 만드는 등 손재주가 있다. 나는 무언가를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다뤄봐야만 한다. 나는 체육시간이나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나는 실내보다 실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는 놀이 동산에 가면 가장 스릴 있는 것을 골라서 타곤 한다 나는 한 곳에 오래 앉아 있을 때 움직이거나, 잡아 당기거나, 발을 가볍게 치는 등 잠시도 가만있지 못한다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교본을 읽거나 비디오 테이프를 보는 것보다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5. 음악적 지능 나는 음정이 고르지 못하거나 소리가 이상하게 들릴 때 그것을 지적할 수 있다. 나는 음악을 몇 번 들은 후에 쉽게 따라 부르거나 그 멜로디를 쉽게 기억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노래를 잘 한다고 얘기한다. 나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쉽고 재미있다. 나는 들어 본 영화 음악이나 광고 음악 등이 머리 속에 떠오르곤 한다. 나도 모르게 자주 콧노래를 부른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나도 모르게 음악에 맞춰 손으로 박자를 맞추곤 한다. 나는 음악을 듣고 악기들의 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 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일하거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많은 노래를 기억하여 부를 수 있다. 6. 대인관계 지능 나는 혼자 집에서 TV프로나 비디오를 보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서 즐기는 모임에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편이며, 사람들의 논쟁이나 말다툼 등을 잘 해결해주는 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슬픔에 잠겨있는 걸 볼 때 같이 슬픔을 느낀다. 나는 행복해 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 나도 행복해진다. 나는 조깅 같이 혼자 하는 운동보다는 농구나 축구처럼 단체 경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아주 친한 친구가 세 명 이상 있다. 나는 다른 친구 보다 앞장서서 일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하는 방법을 보여주곤 한다. 나는 공부나 놀이를 할 때 친구들이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고 이해를 잘 하는 편이다. 나는 어떤 문제를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끙끙대지 않고,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협력한다. 7. 자기이해 지능 나는 홀로 생각하면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나는 미래의 꿈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나는 내가 잘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나는 나의 발전을 위해 좀 더 잘 하려고 계획하며 실천한다. 나는 나의 흥미나 취미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혼자서 생각한 후 결심하는 편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보다는 혼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느낌이나 생각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확히 표현한다. 나는 자신에 대해 반성해보고 내 생활에서 중요한 문제가 무언지 조용히 생각해보곤 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존재라고 느낀다. 8. 자연탐구 지능 나는 신체의 주요 기관들의 위치와 작용에 대해 관심이 많으며 잘 알고 있는 편이다. 나는 숲이나 산속을 걸어갈 때 동물의 발자국이나 새들의 둥지 등에 관심을 갖고, 또한 날씨 신호를 구분할 수 있다. 나는 천문학, 우주의 탄생, 생명의 진화 등에 대해 관심이 많다. 나는 여러 종류의 나무, 꽃, 식물 등을 구분할 수 있고 이름을 잘 기억한다. 나는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거나 애완동물을 좋아한다. 나는 식물에 직접 물을 주고 잘 가꾼다. 나는 세계적인 주요 환경 문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자원을 아끼고 보존하는 것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쓰레기를 버릴 때 분리를 잘 해서 버리며 함부로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나는 자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연이 신비하게 느껴질 때가 많고 궁금하다. @@@다중지능 설명과 그 적용 예@@@ <언어지능> *정의 ---말을 잘 하거나 글을 잘 쓰는 능력으로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소리를 인지하고, 언어의 구조를 파악하며, 단어의 뜻을 인지하며, 실용적으로 언어를 활용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활동-- 공식연설, 일기, 창작, 언쟁, 임기응변, 유머 및 농담, 이야기 만들기 *대표적 직업 ---연설가, 이야기꾼, 정치가, 시인, 극작가, 편집자, 기자 <논리-수학적 지능> *정의 --사물에 대한 이해력을 발휘하고 사물 사이의 논리적 계열성을 이해하며, 유사성과 차이점을 측정하고 사정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분류하거나, 패턴 인식, 조직화, 추상적추론 등을 위한 지능입니다. *활동 --추상적 공식, 도표 구조화, 수열, 계산법, 부호해독, 삼단논법, 문제해결 *대표적 직업 ---수학자, 회계사, 통계전문가, 과학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논리학자 <공간적 지능 > *정의 ---색, 형태, 구조에 관련된 지능으로 명확하게 사물을 인지하는 능력입니다. 공간에서 사물을 조정하는 능력, 상상력을 이용하여 변화시키는 능력,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능력 및 사물을 2차원 3차원 공간에 사용하는 능력, 사물을 시각화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활동 ---항해, 지도제작, 체스게임, 상상력, 색채배합, 패턴, 디자인, 그림, 데생, 인지도, 조각, 사진 *대표적 직업 ---안내자, 정찰병, 사냥꾼, 건축가, 실내장식가, 발명가, 예술가 <신체-운동적 지능> *정의 ---신체부위를 조절하는 능력과 사물을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으로 공연, 춤, 신체운동으로 나타나고 육체적 협응 능력이 그 중요 기능입니다. 이 지능은 신체의 운동을 통제하고 조절하고 신체적지각능력을 민감하게 하고 신체와 정신의 결합, 모방 능력을 기르고 신체기능을 향상시키는 능력을 말합니다. *활동--- 민속 창작춤, 역할극, 제스츄어, 드라마, 무술, 운동, 무언극, 스포츠 *대표적 직업--- 배우, 무언극 배우, 경기자, 무용가, 공예가, 조각가, 기계공, 외과의사 <음악적 지능> *정의 ---음조, 리듬, 박자, 음색을 인식하고, 주변의 소리나 음악에 반응하는 능력입니다. 멜로디와 화음을 창조하고, 소리에 민감히 반응하여 따라하고, 음악을 듣거나 연구하기 위한 도구를 사용하고 음악 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활동--- 리듬패턴, 보컬 사운드, 작곡 및 편곡, 배경을 선정, 악기연주, 노래, 공연 *대표적 직업 ---음악 비평가, 작곡가, 연주가, 악기제작자 <대인관계 지능> *정의---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성향, 의지, 기질, 동기, 욕구 같은 것을 파악해서 그에 따라 민감하고 적절하게 반응을 보이며 행동하는 감각이 있는 사람이 소유한 지능입니다. 언어적,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나타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고 설득을 잘하며 남을 감동시키는 지능입니다. *활동 ---피드백 주고받기, 타인의 감정에 대한 이해, 협력 학습전략, 일대일 대면, 공감, 분업, 집단 프로젝트 *대표적 직업 ---카운슬러, 교사. 심리치료사, 정치가, 종교지도자, 세일즈맨 <자기이해 지능> *정의 ---자아를 이해하는 능력으로 자기 내부에서 진행되는 변화 같은 것을 감지하고 자신의 기분이나 생각, 느낌 같은 것을 분별하여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일상생활에서 효과적으로 생활하는 능력이며 객관적이고 냉정한 자기분석 능력도 여기 포함됩니다. **활동 ---반성적 사고, 메타인지기술, 사고전략, 정신집중 기술, 고도의 추론 대표적 직업 ---철학자, 신학자, 소설가, 심리학자 어느 직업이든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지능 <자연탐구 지능> *정의 ---사물을 구별하고 분류하는 능력과 환경의 특징을 사용하는 능력 분별-대처 기능으로 사물을 분별하고 그 사물과 인간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분별-대처 기능입니다. *활동 ---관찰, 견학, 소풍, 여행, 하이킹, 자연보호, 모험심 기르기, 동물 기르기 *대표적 직업 ---식물학자, 과학자, 정원사, 수의사, 해양학자, 공원관리자, 도보여행자, 지질학자, 동물원관리자 ###위의 8가지MI에다가 혹자는<봉사지능>을 추가하고 자기이해지능 대신 감각지능을 넣어서 9가지로 MI를 측정한다. 어떤 직업을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요소들이 ‘의사결정 유발요소’”라며 “우리 안에는 다양한 의사결정 유발요소가 숨어 있는데 그중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가 ‘MI 패턴’”이라고 말한다. MI는 ‘Multiple Intelligences’의 약자로 ‘다양한 지능’을 뜻한다. ‘MI 이론’은 하워드 가드너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주창한 지능계발 이론. 가드너 교수는 인간의 지능은 모두 8가지가 있으며 계발 여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9가지 MI는 ▲논리수리지능 ▲언어지능 ▲대인관계지능 ▲공간지능 ▲음악지능 ▲신체지능 ▲자연탐구지능 ▲봉사지능 ▲감각지능 등이다. 모든 사람은 이들 9가지 지능을 갖고 있으며, 단지 어떤 지능이 강하거나 약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자신이 강한 지능을 적극 계발, 활용하는 것이 직업선택의 왕도라고 할 수 있다. --9가지 MI에 따라 ‘MI 패턴’을 5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자신의 MI 패턴을 분석하는 것이 직업 선택의 출발점”이라며 “MI 패턴 분포도와 함께 자신의 MI 가운데 가장 강한 것과 약한 것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1. 스타형 패턴 9가지 MI 중에서 한 가지 지능이 아주 높고 아울러 대인관계지능도 매우 높은 유형의 사람이다. 이 타입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두각을 발휘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뛰어나 그 분야의 리더로 부상할 확률이 높다. 스타형 패턴을 가진 사람은 의사, 변호사 등 개인 능력이 중시되는 전문직에서 시작하더라도 나중에는 종합병원 원장이나 대형 로펌 대표 등 조직의 리더로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2. 스페셜리스트 패턴 논리수리지능이 매우 높거나 한 가지 전문적인 분야의 지능이 아주 뛰어난 데 비해 대인관계지능은 그다지 높지 않은 유형이다. 이 타입은 커리어를 선택할 때 강하게 타고난 지능을 핵심능력으로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 예를 들어, 스페셜리스트 유형 중에서 논리수리지능이 아주 높은 사람은 의사, 법률가, 교수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게 적합하고, 신체지능이 뛰어난 사람은 운동선수나 무용가 등 자신의 몸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게 좋다. #3. 제너럴리스트 패턴 이 타입은 MI 간의 편차가 작고 대부분의 지능이 중간 정도인 사람이다. 이들은 특별히 뛰어난 지능은 없지만 대인관계지능만은 중간 이상으로 나타난다. 제너럴리스트 유형은 일반적으로 여러 지능이 골고루 필요한 업무에 적합하다. 교사, 기자, 방송사 PD와 같이 여러 가지 역량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분야가 좋고, 기업 분야에 진출한다면 마케팅, 홍보, 인사, 총무, 기업 교육 같은 직종이 유리하다. #4. 스타형 제너럴리스트 패턴 제너럴리스트 유형 중에서도 특히 대인관계지능이 높은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 중에서도 대인관계지능과 봉사지능, 신체지능이 뛰어나 승부욕이 강한 경우에는 영업본부장 같은 임원급으로 성장할 확률이 높고, 나아가 영업전문 최고경영자(CEO)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대인관계지능이 우수하고 전반적으로 무난한 지능을 가진 사람은 영업이나 업무지원 부서에서 일하는 게 좋다. #5. 봉사지능 타입과 감각지능 타입 패턴 다른 지능은 비교적 낮은 데 반해 감각지능이나 봉사지능만큼은 유독 높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강한 지능을 최대한 살려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예컨대 감각지능이 높을 경우엔 발달된 감각을 잘 계발해 요리사나 파티시에, 소믈리에 등이 될 수 있고, 봉사지능이 높으면 간호사, 호스피스, 사회복지사 혹은 유아교육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봉사지능과 대인관계지능이 동시에 높을 경우엔 관광, 호텔업 같은 서비스업에 적합하다. ****봉사지능:봉사지능은 타인의 욕구나 느낌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이를 도와주려는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게 높게 나타나는 지능입니다. 이 지능이 높으면 주로 간호사, 호스피스, 여행가이드, 스튜어디스, 호텔서비스업 등 다른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업에 적합합니다. 봉사지능이 높으면 사람의 문제에 관심이 많고, 심리적ㆍ정서적으로 안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도록 해주는 능력이 뛰어나며 이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에서 뛰어난 두각을 보여주게 됩니다. 논리수리지능이 강한 사람에게 알맞은 직업으로 대표되는 의사의 경우에도 인간을 치료하는 업이므로 환자에 대해 봉사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생명과 관련된 일을 할 때는 더욱 그러하므로 환자를 돌보거나 치료해주는 직업의 경우 중요한 지능이 됩니다. 봉사지능이 높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대해 수용적 태도를 가지며 남을 배려하는 성향이 높으므로 타인에 대한 봉사정신이 요구되는 서비스업에 적합한 경우가 많고 자선활동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감각지능 :감각지능이란 미각이나 후각 같은 감각기관이 잘 발달되어 이를 통해 먹고 사는 능력입니다. 감각 지능이 발달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미각, 후각, 시각, 촉각, 청각 등의 오감이 모두 예민할 수도 있으나 특히 미각과 후각이 발달한 경우를 주로 뜻합니다. 감각지능이 높으면 미각에서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의 차이뿐 아니라 맛과 향에 있어서 아주 작은 차이나 변화까지도 판별해내는 능력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미각이 발달하여 음식을 맛보고 들어간 재료와 양을 구분해내기도 하고 후각이 발달하여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미묘한 냄새까지 맡아내는 경우 요리사나 파티셰, 소믈리에 등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감각지능이 발달하면 미각이나 후각에서 받는 자극의 강도의 크기와 질적 차이를 그 정도에 따라 세세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감각지능은 이렇게 자극의 종합적 차이와 특성 차이를 구분해 내는 능력 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의 기대와 취향에 맞도록 이를 이용하여 새로운 맛이나 향을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됩니다. 이러한 감각지능은 타고나는 부분이 큽니다만 꾸준히 연습하면 더욱 계발이 되고 또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무뎌지기도 쉽습니다. 그러므로 유명한 소믈리에의 경우에도 반복적인 테이스팅 훈련을 하며 짜고 매운 음식도 피하고 담배를 삼가는 등 감각지능을 계발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에니어그램-간략한 유형찾기> ####Aa7(낙천)Ab5(사색)Ac6(충성) Ba2(조력)Bb3(성공)Bc4(예술) Ca9(중재)Cb1(개혁)Cc8(지도) ##신경증.1->4->2->8->5->7->1, 9->6->3->9 #### (선택법------1:전혀 그렇지 않다, 2:약간 그렇지 않은편이다 3:보통이다 4: 약간 그렇다 5:매우 그렇다) ###그룹1 --일반적 경향성 1.A(미래지향, 준비성철저, 수수) 1)어떤 문제해결 위해 주로 객관적인 정보나 논리적인 추론을 먼저 찾음. 상황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 2)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대비를 잘하는 편이다. 또한 어떤일을 추진하기전에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고 따져본다. 종종 합당하고 신뢰할 만한 권위자나 단체의 의견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3)일반적으로 꾸밈이 없이 수수한 외모를 갖추고 있다. 2.B(약간 과거지향, 사랑-인정, 약간튀게 보임) 1)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사랑을 받고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대체로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며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매우 중요하게 다가온다. 2)과거의 나의 모습보다 좀 더 나아보이도록 외모와 옷차림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나는 느낌과 감정이 매우 풍부하고 직관(직감)적이어서 주변분위기를 쉽게 파악한다. 3)매우 친절하고 남에게 배려도 잘한다. 외모는 부드러운 편이고 남들보다 화려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기도 하며 우정이나 친밀함, 대인관계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3.C(현재중요성 강조) 1)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자기 의견이 분명하고 종종 자기를 주장하거나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내 의지가 방해를 받을 때는 자신이나 남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2)사람들의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당연한 것과 옳고 의무적인 일에 관심을 더 갖고 있다. 남에게 좌우되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내면의 문제 혹은 나만의 것을 남에게 설명할 필요를 잘 느끼지 못한다. 3)과거도 중요하고 미래도 중요하지만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적 측면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어떤 일이 <옳거나, 해야 한다>고 여기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다. ###그룹2.---갈등상황(관계)이나 욕구충족 안되었을 때 반응양상 1.a(시간이 해결, 잘될 것) -나는 문제 상황이 닥치더라도 밝은 면을 강조하거나 그것을 보기 원한다. 스스로 좋은 기분에 머무르고 싶고 타인에게도 언제나 사기를 북돋아 주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인지 자연히 타인이 행복해지도록 돕는 것을 좋아한다. -나 자신이 부정적이거나 고통스러운 부분을 보기가 싫다. 그래서 애써 외면해 버리고 문제가 없는 양 행동하곤 한다. -나는 모든 일이 긍정적이고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풀린다고 느낀다. 물론 항상 기분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없는 기분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를 원한다. 2.b(논리적 분석) -나는 매우 객관적이고 주어진 일을 잘 완수한다. 나 자신을 잘 통제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정이나 느낌은 뒤로 젖혀두는 경향이 있고 유능하거나 지식을 얻기위해 노력함으로써 어려움을 다루는 법을 나름대로 잘 배우는 편이다. -나는 어떤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려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주관적인 감정으로 인해 중요한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어떤 갈등상황에서 감정이 끼어들지 않도록 초연한 태도를 취하려 한다. 3.c(화통, 풀자!!) -나는 문제가 생기거나 갈등이 생기면 감정반응(화, 두려움, 상처받음)을 꾹 눌러참는 것이 아니라 그자리에서 드러내는 편이며, 그 때 다른 사람을 얼마나 신뢰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타인이 나의 이런 감정상태에 맞춰주기를 원하고 그 일의 해결을 위해 나만큼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타인이 나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것은 그 내용이 합당한지의 여부를 떠나서 매우 기뿐나쁘게 여겨진다. 나의 감정이 표현되고 다루어지고 난 후에야 나는 상황이 정리되고 가라앉을 수 있다. 나는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나의 생각과 의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나 피드백을 자주 확인하려 한다. <진로지도>####Aa7(낙천가)Ab5(사색가)Ac6(충성가) Ba2(조력자)Bb3(성공자)Bc4(예술가) Ca9(중재자)Cb1(개혁가)Cc8(지도자) 1.감정형(가슴) *2-조력가:감정이입, 이타주의-인간관계, 정서 ---상담가, 교사, 사회복지사, 서비스직, 비서, 배우, 스튜디어스, 요리사 *3-성취가:자기존중, 자기개발-성공, 실적 ---관리인, 법조인, 금융계, 컴퓨터분야, 방송인, 연기자, 지도자, *4-예술가:예술적창의성-창의성, 주관적 감정---시인, 소설가, 음악(무용)가, 직업상담가, 출판업, 미술재료상 2.사고형(머리) *5-사색가:지식, 독창적사고-정보, 지식--과학기술분야, 상담가, 음악(예술)가, 프리랜서 *6-충성가:동일시, 사회협력-안전, 걱정,대비 ---법조, 공무원, 군대, 협동연구, 의료서비스, 보디가드(대항6), 자영업(권위주의반대) *7-낙천가:열정, 실용주의적행동 - 아이디어, 가능성 --- 비행사, 사진사, 사회복지사, 직업상담, 간ㅇ호, 세일즈맨, 분쟁조정자, 기획자 3.본능형(장) *8-지도자:자기주장, 지도성 - 권력, 통제 - 자영업, 사업가, 스포츠 스타, 지역의원, 지도자, 상담사 *9-중재자:수락성, 수용성 - 평화, 조화 - 중재자, 외교관, 상담자, 보모, 기타 공익단체 *1-개혁가:합리성, 사회적 책임감 - 규칙, 공평무사 - 교사, 의사, 간호, 성직자, 변호, 경영자, 과학자, 외과의사, 은행가, 주식중개업자 #매우 중요한 Tips: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의 심리적 접근방법을(MBTI 에니어그램 등) 주님 품안에 잠겨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 주님을 향하여, 주님을 위하여,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내적치료의 근거로서 적용하는 것은 사실 적당치 않다. 왜냐하면 첫째, 세상이 추구하는 <자아>란 그리스도인으로서 볼 때에는 거짓자아요 옛자아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타락이전의 참자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에니어그램이 표방하고 있는 원마음의 감정들은 본래 1차적-본능적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실락원의 감정들로서 두려움-거절감(두뇌형), 수치감-실패감(감정형), 분노-좌절감(내장형)들인데 이것들은 타락의 결과로서 나타난 감정반응이요, 이것을 해소하기 위한 반작용으로 그 감정에 준하는 성격들이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에니어그램 검사를 통해 자신의 유형을 알고서 좌우의 날개를 균형있게 만들고 통합의 방향을 모색함의 치료를 한다>는 하는 것은 뿌리를 바로잡음이 아닌 오직 숙명론적인 미봉책에 불과할 수 있다. <십자가에 달려 팔벌려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이 없이, 곧 십자가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 모든 원죄와 타락의 뿌리를 해결하시며 두 팔을 벌려 품어주시는 사랑으로 모든 결핍 상태의 근원을 충족시켜 고치시며 온전한 내적치유를 이루시는 보혈과 성령의 근본적인 치유하심을 거부하고, 자기사랑- 자기관심- 자기연민- 자기용서로 이어지는 교만 가운데에 문제의 사람을 그냥 머물러 있게 만드는 것이요, <타락 상태>라는 근본을 해결함으로써 그 뿌리의 온전성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기에 외양은 기독교적인 색채로 칠할 수는 있지만 극히 세상적이요 육적인 것이므로,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니 육은 무익하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둘째, 세상은 육신의 정과 욕심인 육신의 일, 곧 세상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허영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자기자신을 쳐다보고 들여다보는, (거짓)자아실현을 추구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육신의 일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통해 회복된, 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일하나님과 연합한 참자아로 살고, 동시에 오히려 (거짓자아의)자아파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참자아의 온전한 성장-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을 주께서 이루어주시도록,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의지의 지향을 온전히 주께로 향한다. 더군다나 이 <자아파쇄>의 과정은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함으로써가 아니라, 상처받고 결핍되어 성장이 멈춰버린 1차적인 본능적 욕구들- 생존/안정 욕구, 사랑/존중 욕구, 힘/통제 욕구-에서 비롯된 원마음반응들(두려움, 수치감, 분노...)과 2차 마음반응들, 방어기제를 포함한 인간조건, 사회적-집단적 초자아의 악영향으로 인한 모든 묶임과 포로됨과 갇힘을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풀어서 자유케 해주시고, 충족시키시고 새롭게 하시는 주님 품에 침잠하여 그분을 묵상하며 그분안에서 쉴 때, 우리안에 내주하여 계시는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일을 행하신다. 즉, 보좌에 계신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 영광을 묵상하며 관상 가운데로 들어가 침잠하여 사랑의 응시로 그분께 잠겨들 때, 주님은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치료의 생명수강-보혈-속에 머리까지 완전히 잠겨들게 하시고 옛자아-거짓자아의 죽음과 해체를 이루시며 또한 성령의 불로 태워 소멸시켜버리고, 회복된 참자아로 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영적아비로 성장시켜 주신다. 이것은 또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시는 그 분을 믿는 믿음을 통해 들어가는, 듣는기도를 통한 2-way conversation으로 이루어진다. 단지, 위의 세상의 심리학적 접근방법들은 성화과정 가운데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 이미 , 그러나 <아직도 아니>라는 현 시점에서 나타나는 성격적 유형의 대강을 살펴 봄으로써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에서 다른 지체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줄 수는 있겠다. 또한 그 외양은 비록 타락한 오염된 모습의 형태로 나타나더라도 그 성격나름의 기본바탕은 주께서 주신 것이므로 경험적 관점에서 직업을 고려하는데 있어서의 적용은 어느정도 도움이 될수 있겠다고 보여진다. ***재능과 강점 == 적성에 따른 직업과 진로 선택의 기초.. ==재능은 일반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난, 눈에 띄는 특별한 능력이나 소질(몸에 대해서 맣할 때는 체질, 생각-감성/성격-행동 영역에 대해 말할 때는 소질)’, 곧 (동기-흥미 유발이 잘되고 자원하여 스스로 하고 싶어하며 잘 해내므로 보기에 자연스러운)생산적으로 쓰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사고-감정-행동 영역의 친숙하게 반복되는 패턴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예를 들면, 뛰어난 판단력-용기-순발력-체력 등의 어떤 측면을 가지고 있다든지, 뛰어난 지능이나 풍부한 감성이 있다든지 하는 형태로 관찰된다 또한, 본능적으로 호기심이 강하거나 성실하거나 인내심이 있다면 이것은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도 모르게 이끌려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일관성 있는 모습으로 어떤 사고-감정/성격-행동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될 때 이것이 바로 재능이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기에 실제로는 때때로 인식하기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재능은 가치중립적이라 할 수 있다. 재능에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것이 없다. 재능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자신이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위험을 감지하고 꼼꼼하게 계획을 세움으로써 나름대로 그 재능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고집이 센 편이라면 세일즈맨이나 변호사 등의 직업에서 그 재능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강점이란 <자원하여 행하는 즐거움-성취의 만족감이 수반된 전문성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재능이라는 기반위에 노력 통해서 얻어낸 지식과 기술이라는 기둥과 지붕이 얹어져서 완성되는 집과 같다. 우리 모두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 났다. 자신안에 원석이 있는 것이다. 단지 그것을 찾지 않고 있을 뿐이다. 자신만의 ‘재능’이라는 원석을 찾아 ‘지식’과 ‘기술’이라는 도구로 끊임없이 다듬는다면 그것은 언젠가 다이아몬드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강점은 우리에게 인생의 보람과 성취라는 선물로 나타날 것이다. ---강점은 남보다 우세하거나 더 뛰어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무언가 구체적이지 못한 것이 남아있다. 강점을 좀더 풀어서 설명해 본다면 마음에 하고 싶어하는 어떤 일을 수행할 때, 그 일 만큼은 즐겁게 몰두하여 수행하면서도(자원해서 갈망/열정적으로 임함) 완벽에 가까울 만큼 일관되게 잘 처리해내는 능력이 발휘되는 것을 말한다. 강점의 판단에는 두가지 중요한 요소가 함께 있어야 한다. 바로 완벽성과 일관성이 그것인데, 이 때 일하는 즐거움-성취의 즐거움이 함께 동반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자신이 완벽에 가까울 만큼 어떤일을 일관되게 할 수 없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강점은 오랜시간에 걸쳐서야 비로소 만들어 지는 것이다. --- 강점은 3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바로 재능, 지식, 기술이 그것이다. 이 3가지요소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재능이 없는 상태에서는 탁월함으로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당신이 아무리 1만시간의 노력을 퍼붓는다 해도 재능이 받쳐주지 못하면 그러한 완벽성과 일관성을 가지는 강점의 수준까지는 올라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강점의 시작은 당신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를 하자면 재능과 1만시간의 노력(지식, 기술)이 결합되었을 때 탁월한 전문성(강점)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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