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하14장 ===아사가 유다 왕이 되다...<마1: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1.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 2.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3.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4.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5.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6.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7.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8. 아사의 군대는 유다 중에서 큰 방패와 창을 잡는 자가 삼십만 명이요 베냐민 중에서 작은 방패를 잡으며 활을 당기는 자가 이십팔만 명이라 그들은 다 큰 용사였더라 9.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 하여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마레사[헤브론과 아스글론 연결로 중간 지점]에 이르매 10. 아사가 마주 나가서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 전열을 갖추고 11.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12.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13. 아사와 그와 함께 한 백성이 구스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살아 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의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노략한 물건이 매우 많았더라 14. 여호와께서 그랄 사면 모든 성읍 백성을 두렵게 하시니 무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치고 그 가운데에 있는 많은 물건을 노략하고 15. 또 짐승 지키는 천막을 치고 양과 낙타를 많이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 역대하 14장 (개요) 14장과 그 다음 두 장에는 아사 왕의 통치 역사가 나오는데 그 통치는 선정(善政)이었고 오래 간 통치였다. 1. 아사 왕의 경건(1-5). 2. 그의 정책(6-8). 3. 그의 번영과, 특히 그를 치러 나아온 에티오피아 인들에서 전취한 영광스러운 승리(9-15). ------------- 유다 왕 아사(대하 14:1-8) Ⅰ. 아사의 일반적 성격을 보자. 그는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한 것과 의로운 것을 행하였다”(2절). 1.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목적 삼고, 하나님께 대하여 자기 자신의 신실성을 입증하고자 애썼다. 자신들의 눈이나 세상의 눈에 의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것을 행하고자 하여, 규칙대로 걸어가는 자는 복이 있다. 2. 그는 하나님의 눈이 항상 자기를 내려다 보고 있음을 알았고, 게다가 그것은 그로 하여금 선과 정의를 지키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3. 하나님은 그가 하는 일을 통해서 그를 은혜스럽게 열납하셨고, 그의 행위를 선하고 의로운 것으로 승인하셨다. Ⅱ. 그가 등극하자마자 곧 착수한 축복된 개혁 사업이 있었다. 1. 그는 우상 숭배를 제거하며 철폐했다. 솔로몬의 치세 말기에 우상 숭배를 용인한 이래로 사신 숭배를 억압하기 위해 취해진 조처는 하나도 없었다. 따라서 그것은 지반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방신들이 경배의 대상이 되며 그 제단과 그 우상과 산당이 갖춰졌으되, 성전 예배는 비록 제사장들에 의해 명맥을 보존하고 있다고는 하지만(13:10) 대다수의 백성들에게는 소홀히 취급받고 있었다. 아사는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그 모든 우상의 제단과 형상들을 훼파시키는 일을 본격적으로 행하였으니(3, 5절) 이것은 그것들이 투기하시는 하나님께 큰 격노가 되었고, 또 그것들이 경솔하고 무분별한 백성에게 큰 유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상들을 파괴함으로써 우상 숭배자들이 개심하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그가 목적했던 점은 우상 파괴보다 오히려 이 우상 숭배자들의 개심이었다. 2. 그는 하나님 예배의 순수성을 되살려 내어 확립시켰다. 그리고 그는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제단을 시중드는 일에 그 본분을 다 했으므로 백성들도 제 본분을 다 하게끔 했다(4절). “그는 유다에게 명령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되” 이방의 잡신들은 찾지 못하게 했고, 또 “율법과 계명을 행하게 하였다” 즉 많은 무리가 완전히 태만히 했던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다시금 준수하게 했다. 이 일을 행하매, “그 국토가 그 앞에서 평온하였다”(5절). 비록 저희가 그 우상에 심히 애착하여 우상 버리기를 아주 싫어했지만, 저희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저희는 아사의 명령에 동조하게 되었고, 부끄러워서라도 거기에 협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권세를 잡고 그 권력으로 불경건 근절과 관습의 개혁을 단행하려는 자들은 아마 자기들의 처음에 예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큰 곤란에 직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사악은 슬슬 도망치는 것이고, 덕은 “모든 불의가 그 입을 봉하도록” 할 정도로 자기 편에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시 107:42). Ⅲ. 지나간 두 왕의 통치 기간 중에는 전쟁의 공포가 항시 존재했으나, 그 뒤 아사의 왕국은 안온했다. “그의 시대에는 그 땅이 10년간 평안하여”(1절) 이스라엘 왕국과의 전쟁도 없었다. 이것은 저희가 지난 왕 아비야 치세시 받은 타격에서 아주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한 연고다. 아비야의 승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에서 온 것이나, 그것은 그의 용기와 담대함에서 기인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아사의 평화에 대해 기초가 되었고, 또 이 태평성대는 아사 왕의 경건과 개혁에 대한 보상이었다. 아비야가 비록 경건한 종교심은 조금도 가지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큰 경건의 길을 예배해 주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만약 아비야가 그 나라를 평정하는 일을 시행치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아사도 개혁을 위해 지금 행한 그런 일을 할 수 없었으리라(inter arma silent leges). 즉 “무기의 소리로 시끄러운 곳에서는 율법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Ⅳ. 그는 그 태평성세를 지혜롭게 이용했다. “그 땅이 평안을 누렸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평안을 주셨음이라”고 했다. “만약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신다면 그 누가 분란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라는 말씀을 기억하자(욥 34:29). 하나님이 평안을 주시는 자는 참으로 평안을 누리며, 그리스도께서 평화를 주시는 자는 진실로 화평을 누릴 것이다. 그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다(요 14:27). 1. 아사는 저희가 갖는 평안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았다. “그가 우리에게 사면팔방 어느 곳이나 다 평안을 주셨다”고 했다. 곧 우리의 몸과 마음, 가족과 국가의 평안을 축복으로 받을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또 그 평안은 지금 착수된 계획의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였으므로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다”고 했다. 섭리자 하나님의 진노와 견책은 사악한 길에 들지 못하게 하는 방책으로 알아야 하듯이 꼭 마찬가지로 하나님 미소는 선한 사업에 대한 격려의 표시로 알아야 한다(학 2:18, 19; 말 3:10 참조). 우리는 “여호와를 찾는 것”이 선한 일임을 체험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 우리가 세상을 추구하는 동안에는 성가신 것밖에는 당하는 것이 없다. 2. 그는 대표자들을 통하여 백성들과 상의하여 저들이 지금 향유하고 있는 이 빛나는 평화 시대를 어떻게 잘 선용해야 할 것인가를 계획했다. (1) 그들이 게으르지 말며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전쟁을 쉬는 시대는 일에 종사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스스로 일할거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없었던 수십년간에 그는 “건축하자. 계속 일을 하자”고 말했다. “교회가 평안을 누렸을” 때, 그 교회들은 “튼튼히 건축되어” 갔던 것이다(행 9:31). 장검이 칼집에 꽂혀있는 동안에는 흙손을 들어라. (2) 저들은 너무 방심해서는 안 되며,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평화시에 환난에 대비해 나가야 하며, 어려움을 예상해서 그에 대한 저축을 해야 한다. ① 그는 자기의 주요 성읍들을 “성곽과 망대와 대문 및 빗장”으로 튼튼히 했다(7절). 그는 말한다. “그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는 동안에 우리는 이 일을 행하자”, 즉 “우리에게 기회가 있고 그 일에 대한 유리한 점도 있으며 우리를 방해할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이 때에 이 일을 행하자.” 그는 마치 뭔가 환난이 닥쳐와서 성벽을 튼튼히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가 오게 되고 그 때서야 진작 해 두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바라게 될 것을 예상이나 한 듯 이야기 했다. “그래서 저희는 건축하였으며 또 번영하였다.” ② 그는 전장에 나갈 많은 군대를 보유하였으니(8절), 이는 상비군이 아니고 국민병이나 시민대였다. 유다와 베냐민은 별개로 점호되었는데, 베냐민은(얼마 전만 해도 “작은 베냐민” 이라 불렸다. 시 68:27) 거의 유다의 군병에 육박하는 군대로 28대 30까지의 비율에 이르렀다. 이 지파가 늦게서야 그토록 놀랍게 증가했다. 하나님의 축복은 “작은 자 하나로도 천명이 되게” 하실 수 있다. 이 두 지파는 서로 다른 무장을 한 것처럼 보이는데, 한 쪽은 공격적으로 무장했고 다른 한쪽은 방어용 무장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유다 사람들은 둥근 방패를 썼고, 베냐민 지파는 손 방패를 썼다. 전자의 방패는 후자의 것보다 훨씬 컸다(왕상 10:16, 17). 유다 지파 사람들은 적과 접근전을 벌이며 창으로 싸웠고, 베냐민 사람들은 멀리서 적을 맞추기 위해 활을 당겼다. 양쪽이 다 제 공헌을 잘 했으니 어느 쪽도 나는 “네가 필요치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각기 다른 재능과 직업이 다같이 공통선을 도모하는 것이다. --------- 에티오피아군의 격파(대하 14:9-15) Ⅰ. 침입해온 에티오피아 인들의 막강한 군대로 말미암아 아사 왕국의 평화에 혼란이 왔다(9, 10절). 저희가 여전히 하나님을 찾았는데도 이런 두려움이 저희에게 임했으니, 이는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하나님이 저들을 위해 크나큰 일을 행하실 기회를 갖기 위해서였다. 그를 치려고 에티오피아 인의 막대한 수가 동원되었다. 무려 100만 명이었다. 그리고 그 때서야 아사는 이토록 긴급한 때를 대비해서 양성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은혜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겼던 바로 그 준비물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크게 득이 되어 나타날지도 모른다. Ⅱ. 이제 자기 머리 위에 험악한 구름이 내리 덮인 때를 즈음하여 아사가 하나님께 탄원을 드린다(11절). 자기 화평과 번영의 날에도 하나님을 찾았던 그가 그 환난의 날에는 더욱 자기 하나님께 거룩한 담대함으로 부르짖을 수 있었고, 그를 “자기의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었다. 그의 기도는 짧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었다. 1. 그는 무한하신 권세와 주권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다수이거나 소수이거나, 강대한 자들이거나 힘이 없는 자들이거나 주께는 도우시고 건지시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로서이다”(삼상 14:6 참조).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역사하시지 2차적인 방편의 힘으로 일하시는 게 아니시니(시 21:13), 도리어 “가장 약한 자를 도우시며 어린애와 젖먹이의 입에서 힘을 완전케 하심”이 그의 영광이다. “우리는 ‘여호와여! 우리의 편을 드소서! 우리에게는 당신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많은 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우리쪽에 계십시오! 왜냐하면 당신 없이는 우리가 아무 힘도 없는 까닭에서 입니다’고 말한다.” 2. 그는 저희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호소했다. “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또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주를 우리 하나님으로 택하였고, 우리 하나님께 단단히 매달려 있으며,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 된다고 약속하셨나이다”고 했다. 3. 그는 자기들이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한 이 토벌 작전에서 자기들은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전쟁 준비를 잘 했으나 그 준비에 전적으로 의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의지하옵고, 주께로부터 보증을 받아 주의 영광을 목적하며, 주의 힘에 맡기면서, 주의 이름으로 이 중다한 무리를 치러 가옵니다.” 4. 그는 하나님을 자기들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사람으로(문자적으로는 “죽을 사람”이라는 뜻이다) 주를 이기게 하지 마옵소서, 만약 사람이 우리를 압도하게 된다면, 그가 주를 이겼다고 사람들이 말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주께 의지하고 주의 이름으로 출전하며 또 주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격려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의 원수는 죽을 인간입니다. 죽을 인간이 죽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는 도저히 적수가 되지 아니함을 나타내소서. 여호와여! 주의 영예를 보전하소서. 주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하시옵소서.” Ⅲ. 하나님이 그로 자기 대적에게 이기게 하신 영광스러운 승리가 있다. 1. 하나님은 그들의 대적을 패배시키시고 그 군대를 혼란으로 몰아 넣으셨다(12절). “여호와께서 에티오피아인(구스 사람들)들을 치셨으니”, 곧 공포와 까닭 모를 놀램으로 쳐서 저들이 도주했으나, 그 이유도 알지 못했고 어디로 도망할지도 몰랐던 것이다. 2. 아사와 그 병사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주신 그 유리한 점을 이용했다. (1) 그들은 그 대적들을 진멸했다.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거꾸러졌으며”(누가 그 앞에 설 수 있겠는가?), 그의 군대 앞에서 넘어졌다. 그 군대는 저들을 멸하기 위해 부리신 천사들의 보이지 않는 무리였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소유하신 까닭에 “하나님의 무리”라고 불리운 이스라엘 대군이었을 것이다. (2) 그들은 저희 진영을 노략했고 살해된 자들과 그 행낭에서 “아주 많은 전리품을 빼앗아 가져 갔다.” (3) 그들은 저희와 연합해 있던 “성읍들도 쳤으니” 저희가 피신하러 그리로 갔기 때문이었으며, 그들은 그 성읍들에게도 전리품을 취해 갔다(14절). 그들은 저항 한 번 해 보지 못했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두려움이 저들 위에 임했기 때문이었고, 하나님께서 저희를 치러 보내신 두려움이 너무나 무서웠던 연고로 그 정복자들에게 대항할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4) 유다는 그 대적의 땅에서 무수한 가축을 데려가 버렸다(15절). 이와 같이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해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 마레사 Mareshah 성경에서 마레사는 두 사람의 이름과 한 곳의 지명으로 나온다. 1. 인명 1) 갈렙의 아들(손자?, 히브리어로는 조금 애매하다)이며 헤브론의 아버지이다. * 성경 구절 역대상 2:42 2) 유다 지파 사람으로 라아다의 아들이다. * 성경 구절 역대상 4:21 2. 지명 셰펠라(이 블로그 “셰펠라” 참고)에 있는 성읍으로서 오른쪽(동쪽)으로는 헤브론이 자리 잡고 있고, 왼쪽(서쪽)으로는 블레셋 성읍 아스글론(Ashkelon, 이 블로그 “아스글론” 참고)이 위치해 있다. 즉 마레사는 지중해에 있는 아스글론에서 동쪽의 헤브론으로 연결되는 동서 도로 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하고 나서 마레사를 유다 지파에게 할당했다(수 15:44). 마레사는 솔로몬의 아들이며 분열왕국 남유다의 초대 왕 르호보암이 요새화한 성읍 중 하나이다(대하 11:8). 유다 왕 아사 때 구스(오늘날의 에티오피아)의 세라가 군사 백만 명과 병거 300대를 이끌고 마레사로 쳐들어왔다. 아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움을 청하자 하나님은 구스 사람을 치셨다(대하 4:9-12). 마레사 출신 선지자 엘리에셀은 남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사악한 북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동맹을 맺은 것에 대해서 비난했다(대하 20:37). 또한 선지자 미가는 마레사의 파멸을 예언했다(미 1:15). 결국 기원전 6세기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공격으로 마레사는 종말을 고했다. 이후에 남쪽 지역에 살던 에돔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했으며, 바사(페르시아)와 헬라 시기 동안(기원전 6-1세기) 마레사는 이두매 지역의 일부가 되었다. 하스모니아 왕조는 헬라의 셀레우코스 왕조(기원전 2세기)에 반역을 일으켰으며, 하스모니아의 요한 히르카누스(John Hyrcanus)는 기원전 112년에 이 성읍을 정복하고, 주민들을 강제로 개종시켰다.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Pompey)는 마레사를 유대 지역과 나누어 다시 이두매에게 되돌려주었지만, 기원전 47년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마레사를 유대에 합병시켰다. 기원전 40년 마레사는 하스모니아 왕조의 안티고누스(Antigonus)와 로마의 지원을 받았던 이두매인 안티파터(Antipater)의 아들 헤롯 대왕의 권력 싸움에 끼어들었던 파르티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버려졌다. 오늘날 마레사는 동굴로 유명하다. 첫째는 비둘기장 동굴이다. 마레사는 식용과 제의용으로 비둘기를 키웠으며, 비둘기 똥은 비료로 이용했다. 동굴 안에 들어가면 동굴 벽에 수많은 구멍들(약 2,000개 정도)이 뚫려 있는데, 그 구멍은 비둘기들이 머무는 집이었다. 둘째, 올리브 동굴이다. 마레사의 주 수입원은 올리브 작물이었다. 그래서 마레사에는 올리브기름을 짜는 틀이 보존되어 있다. 셋째, 벨 동굴인데, 이 이름은 동굴 모양에서 비롯되었다. 이 동굴은 채석으로 인해서 생겨났다. 먼저 땅에 직경이 0.9m 크기로 파고들어가서 갱을 만들고 두께가 약 3m에 달하는 표면 암석을 잘라냈다. 그러고 나서 갱을 더 확대하고, 밧줄로 직사각형의 돌을 끌어올렸다. 이러한 채석은 비잔틴 시대(7세기 초)에 시작되었으며, 이슬람 시기(7-11세기)에 최고조에 달했다. 이렇게 얻은 돌은 건축과 석회 제조에 사용되었다. 이 벨 동굴에 들어가면 그저 탄성이 나올 뿐이다. 정말로 아름답다. 또한 벨 동굴 벽에는 십자가 표시가 있어서 그곳에서 비잔틴 시대에 예배가 드려졌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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